아스란드 전기-천공의 궤-6
페이지 정보
본문
마치 손톱으로 쇠를 귾는듯한 소리에 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두 손으로 자신의 귀를 막아버렸다. 그렇지 않는다면 귀가 찢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 역시 조금 시끄러웠나?"
캄이 리아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언뜻 그를 보니 그의 손에 자그만한 무언가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지만 워낙 작았기 때문인지 손모양으로만 그가 뭘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그건 뭐죠?"
"응? 이거?"
아직까지도 귀가 울리는지 손으로 막고 있는 그녀한테 캄이 손에 쥐던 것을 그녀 눈 앞으로 내밀어 자세히 보이게 해주었다. 은색으로 빛나는 조그만 은색의 원통형 물체였고 한쪽 끝이 납작하게 입에 물기 편한 구조로 파여져 있었다. 피리였다.
"녀석 호출용. 이것이 아니면 그 녀석 오지 않을려고 하거든."
"녀....석 이라니요?"
문득 아까 짓궃게 웃었던 캄의 얼굴이 생각나는 것은 필시 자신의 착각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시키며 리아가 그렇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어느새 캄의 얼굴에서는 그녀의 자기 합리화에도 불구하고 개구장이를 연상시키는 짓궃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내가 말했지?"
-삐익.
또 다른 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아까와 비슷한 소리긴 했지만 이상하게 이번 소리는 듣기 싫은 감이 전혀 없는 소리였다. 그런 소리에 리아는 막고 있던 손을 내리고 위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녀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빛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조금 정신이 없는 여행이 될 거라고."
-삐익.
쿠웅이라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내려왔다. 생물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옳은 표현일 것이다. 아니, 실제로 그건 생물체가 맞았고 더 나아가서 말하자면 동물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리아는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정말로 동물일까라고 하는 작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건 동물이라고 하기에는 약간의 위화감이 하나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어, 그동안 잘 지냈냐?"
-삐익.
동물-정확히 말하자면 새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긍정을 토했다. 아무래도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 동물인 것 같았다. 이것만 하더라도 상당한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지만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동물은 가끔 가다가 리아 자신도 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납득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자신이 느끼는 위화감에 비한다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 쯤이야 새발의 피도 안가는 셈이지만.
"미안하지만 오늘도 조금 부탁할께. 아, 참고로 오늘은 반대쪽으로 부탁해."
-삐이?
그의 말에 새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궁금증을 토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들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새라.....확실히 그런 새는 드물다기 보다는 없다고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물론 눈 앞에 새를 제외시킨다면. 하지만 그런 것 또한 리아가 느끼는 위화감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오늘부터 여행을 떠나기로 했거든. 그래서 델라국에 갈려고. 당분간 돌아오지 못할거야."
-삐이.....
눈에 띄게 그의 말에 낙심을 하는 새. 전체적으로 보다 부분적으로 보나 보이는 분위기는 굉장히 슬프다는 기색이 역력하게 나오고 있었다. 이 정도까지 감정을 표현하는 새라면 분명 서커스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참으로 앞날이 창창하다고 할 수 있는 동물이었다.
"걱정마. 여행이 끝나면 다시 돌아올 테니까 너무 그렇게 낙심하지 마."
-삐익?
진짜지?라고 묻는 듯 한 행동이었다. 이 정도면 동물이 아니라 동물의 탈을 쓴 인간이라고 해도 믿을 것이다.
"그럼. 진짜고 말고. 내가 언제 약속을 어긴 적 있었어? 나 캄,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마는 성격이라고."
"잠깐! 잠깐만요!"
더이상 참지를 못하겠다는 듯 리아가 캄과 새에 대화(?)에 끼어들고 말았다. 그녀의 끼어들기에 캄과 새는 무슨 일이냐는 듯 동시에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그건 뭐죠!?"
한 손으로 새를 가르키며 리아가 그렇게 묻자 캄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보면 몰라? 독수리잖아. 독수리 처음 봐?"
그의 말대로 캄의 있던 동물의 정체는 독수리였다. 굳이 모습을 비유하자면 윌베르그 독수리와 그 모습이 흡사하다고 볼 수가 있는 독수리가 캄 앞에 우뚝 서 있었다. 그래, 독수리이다. 캄 앞에 있는 동물은 독수리였다. 하지만 리아에게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가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다른 쪽이었다.
"그렇게 큰 독수리가 세상에 어딨어요!?"
그렇다. 그녀는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이다. 저토록 무식하게 큰 독수리를. 크기만 놓고 따진다면 오두막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일 것이다. 다리 쪽을 보자니 보기만 해도 무식하게 무거울 것이라 생각되는 몸무게를 갸날픈-어디까지나 독수리 입장에서 갸날픈 것이다.-두 다리로 버티는 모습이 너무나도 애처롭게 보였다.
"여기 있잖아."
-삐익.
보고도 모르겠냐는 표정이다.
"뭐, 그 기분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 에스테이나 산맥에서는 이런 동물 쯤이야 흔하디 흔하다고? 거짓말 안하고 몸집이 너만한 곤충들도 여기에 서식을 하고 있어."
말도 안돼!라는 말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확실히 이 비정상적으로 자란 나무들이나 눈 앞에 오두막보다 큰 독수리를 보자니 자신의 몸만한 곤충이 있다는 것도 왠지 모르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하긴 에스테이나 산맥을 이제 막 들어온 신참한테는 뭘 보나 놀라움의 연속이겠지만."
캄이 독수리를 가르키며 말했다.
"어째든 너와 에레나 그리고 카리나는 이 녀석을 타고 에스테이나 산맥을 벗어나도록 해. 다무는 나와 같이 여기서부터 뛰어서 에스테이나 산맥을 벗어난다."
"스승님이 왠 일로 그런 귀찮은 일을!?"
다무의 얼굴에 놀라움이 자리잡았다. 무리도 아니었다. 캄의 좌우명 중에 하나가 '귀찮은 것을 하지도 말자.'일 정도로 그는 자신한테 귀찮은 것을 극도로 안하는 주의다. 그런 캄이 지금 자기 입으로 스스로 말한 것이다. 자신의 발로 직접 뛰어서 이 에스테이나 산맥을 내려가겠다고.
"....정말로 모르는거냐?"
그가 다무를 바라보는 표정은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에 대한 무지함을 탓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평소 하루에도 수십번 그런 표정을 받아오기에 캄의 표정에 아무런 반응도 없이 연신 놀라고 있는 다무였지만 이 다음에 이어진 말에 그는 그 스스로도 자신의 무지함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녀석, 세명이 한계잖아."
-삐.
확인 사살로 옆에서 본인이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렇죠."
그제서야 다무는 평소 마을을 내려갈 때 수행을 목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전부 독수리를 타고 가는 대신 자신은 뛰어서 에스테이나 산맥을 내려왔다는 것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전에 분명 자신의 스승이 그런 말을 한 것 같기도 하다는 애매한 생각까지 하였다. 캄의 말에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사실을 잊어먹고 만 것이다.
"저거 진짜 바보 아냐?"
-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동의가 옆에서 나왔다. 동물과 자신의 스승한테서 이렇게 욕을 얻어먹는 것처럼 불쌍해 보이는 것이 또 있을지 모를 정도로 다무의 모습은 너무나도 처절하게 불쌍해 보였다. 인간이 저렇게 불쌍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여신관 리아는 오늘 처음 깨달을 수 있었다.
"뭐, 그런고로 나와 다무를 제외한 모두는 이 녀석한테 타시길. 그럼 잘 부탁해."
-삐익!
맡겨만 달라는 듯이 독수리가 날개를 쫙 피면서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 모습에는 일종의 위용도 같이 들어가 있는 듯 했다.
"자, 그럼 우린 서서히 몸이나 풀자, 바.보. 제자."
어째 모르게 바보라는 글자에 악센트가 들어가 있는 듯 했다. 하지만 평소대로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생각해봐도 바보 소리를 들을 정도로 바보스런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자. 잠깐만요! 이걸 타고서 산을 내려간다고요!?"
연신 놀라움에 연속. 이번에는 독수리를 타고 이 산맥을 내려간다는 말에 놀라고 만 여신관 리아였다. 하긴 저렇게 커다란 몸을 가지고 있으니 사람을 태우는 것도 그다지 무리는 아닐 듯 싶었지만 그래도 놀라는 것은 놀라는 것이었다.
"나와 다무는 괜찮지만 너희들이 걸어서 에스테이나 산맥을 내려갈려면 하루 왠 종일 걸어도 모자를 거다. 그렇게 된다면 오늘 밤은 이 에스테이나 산맥에서 노숙을 해야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은 이쪽에서 사양이니까 얼른 타기나 해."
"자.....잠깐만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이리저리 독수리를 타는 것을 거부하는 리아를 캄은 조용히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미안하지만 니 의견은 지금 이 순간부터 전부 기각하겠어."
그리고는 순식간에 그녀를 업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잠시 깨닫지 못한 그녀는 이내 캄이 자신을 업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는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무시한 채 캄은 독수리를 바라보았다. 그가 쳐다보자 독수리는 조용히 날개 한쪽을 펼쳐서 자신의 등 쪽으로 올라오기 편하도록 길을 만들어 주었다.
"가자.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
에레나와 카리나를 보며 말했다. 그의 말에 두 여자는 아무 거리낌도 없다는 듯이 독수리가 만들어 놓은 길쪽으로 걸어갔다. 오히려 잘 부탁한다는 미소를 독수리한테 짓고 있었다. 두 여자의 미소에 독수리는 맡겨줘라고 말하는 듯 힘찬 울음을 내뱉었다.
"자.....잠시만 기다려 달라니까요!"
"미안. 지금 우리들한테는 그 잠시의 시간도 남아있지 않아."
독수리 등으로 올라가 리아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점프를 해서 독수리 등에서 내려왔다. 어느새 독수리 등에는 에레나와 카리나가 올라가 있었다.
"그럼 부탁한다."
-삐익!
힘찬 울음 소리와 함께 날개를 펼쳐 서서히 위로 활강을 시작하였다. 언뜻 리아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캄은 그 소리를 무시하며 아직도 자기 자신을 탓하고 있는 다무에게 다가가 사정을 봐줄 것도 없이 그의 머리를 향해 힘차게 발길질을 한번 먹여주었다.
"쿠악!"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거냐? 너 바보라는 거 자꾸만 티낼래?"
상당한 충격이었는지 몸이 높이 떴다가 다시 내려왔다. 하지만 그런 그의 발길질은 우습다는 듯이 다무는 재빨리 쓰러진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옷에 묻은 흙을 털며 평소대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아야야.....스승님, 요즘 들어 때릴 때에 강도가 옛날보다 세진 것 같은데요?"
"기분 탓이겠지."
그가 이리저리 몸을 풀며 그렇게 답했다. 천천히 하면서도 꼼꼼하게 스트레칭을 하는 자신의 스승을 바라보며 다무도 마찬가지로 스트레칭으로 자신의 몸을 풀기 시작했다.
"흐음, 아스테이나 산맥을 뛰어서 내려가는 것도 정말 오래간만인데? 한 5년만인가?"
"그렇게 되네요."
갑자기 캄이 뭔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미소로 자신의 제자를 쳐다보았다.
"제자가 얼만큼 성장을 했는지 체크를 해주는 것도 스승의 몫 중에 하나겠지. 어때? 누가 더 빨리 이 산맥을 벗어나나 내기할까? 만약 니가 이기면 내가 들어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너의 소원을 한가지 들어주마."
"정말요!?"
그의 제안에 다무가 눈에 띄도록 흥분을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무리도 아니다. 평소 캄에게 시달려왔던 그이기에 이번 기회를 통해서 그 시달림을 조금이라도 줄여볼 속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3일에 한번으로 이 산을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것을 반복하였기 때문에 자신한테 어느 정도 승산이 있다는 것도 캄의 유혹에 넘어가게 하는데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었다.
"그래. 내가 언제 거짓말 하는 거 봤냐? 일단 한번 시작한 일이나 약속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해내고 만다. 그게 바로 나 캄이라는 남자의 좌우명이다."
"좋아요! 받아들이겠어요!"
그의 승낙에 캄은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내가 이겼을 경우 니가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는거다. 동등한 조건이라고. 불만은 없겠지?"
"물론입니다. 불만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동등한 조건에 동등한 출발. 이만큼 공평한 시합도 없을 거라 생각하며 그는 마음 속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몸을 푸는 것에 한층 정성을 더하였다.
"그럼 서서히 출발해볼까? 준비는 다 됐겠지?"
"물론입니다! 저는 언제든지 달릴 준비가 되어 있어요!"
단단히 기합이 들어간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캄은 가소롭다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 간다!"
그 말을 끝으로 에스테이나 산맥에서는 갑작스런 두 남자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가 벌어지고 말았다.
같은 시간.
"히이익! 자....잠깐만요! 주.....중심을 잡지.....히이이익!"
하늘에서는 한 여자의 처절한 외침이 가득 울려퍼지고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빛의 신 루를 섬기는 여신관 리아의 외침이었다.
"걱정마세요. 떨어질 염려는 없으니까요."
에레나가 약간은 난감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아직도 독수리 등에서 떨어질까봐 이리저리 비명을 지르고 있는 리아를 안심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물론 그 옆에서 카리나도 위로하는데 모든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덥썩. 에레나가 리아의 손을 잡으며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정신이 없었기 때문인지 비교적 쉽게 에레나의 곁으로 다가가는 리아는 여전히 불안한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에레나의 손을 다른 손으로 꼭 잡았다.
뭐, 아무런 안전 장치도 없이 몸 하나만을 믿고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녀의 그런 행동을 에레나와 카리나가 모를 리가 없었다. 특히 카리나는 처음에 탈 때 자신도 리아와 비슷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마음 속 어딘가에서부터 그녀의 행동에 대한 아련한 동정심이 생기고 있었다.
"우우.....죄.....죄송합니다....제가 워낙 무서운 곳을 싫어해서......"
찰싹. 누가 본다면 연인 사이라고 착각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달라붙어 있었다. 하지만 미녀 두 명이 붙어있는 것이라서 그런지 위화감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무섭다고 한다면 무섭다고 할 수가 있었다.
"괜찮아요. 사람마다 다 사정이 있는데 그걸 탓할 수는 없죠."
성녀다. 그것이 지금 리아에 머리 속에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어쩌면 저렇게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려줄까? 어쩌면 저렇게 행동 하나하나 말 하나하나가 성녀 같을까? 그녀의 머리 속에는 에레나의 대한 찬양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저기.....죄송하지만 왠만하면 현실로 돌아오시는 것이 어떠신지?"
카리나가 그런 리아에 상태를 눈치챘는지 조심스런 말투로 그런 제안을 하였다. 그리고 문득 그녀는 전에 책에서 읽었던 어떤 내용을 생각해 내었다. 뭐라고 했더라. 아마 흔들다리 효과라고 했을 것이다. 아마 무서운 곳에 있거나 무서운 것을 보았을 때 증가하는 심장 박동수를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의 심리라고-
잠깐, 뭔가 이 상황과 자신이 읽었던 책의 내용이 겹쳐진다고 생각이 되는 카리나였다. 높은 곳에 있어서 무서움에 떨고 있는 여신관. 그리고 그런 그녀를 위로해주며 부축해주는 자신의 스승님. 그리고 그런 스승님을 소중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보고 있는 여신관.-겉으로는 그렇게 보이고 있었다.-
"저....저기 잠시만요! 아무리 그래도 그런 위험한 관계는 안된다고요! 한낱 심리 때문에 평생 돌아오지 못할 길을 걸어서는 안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 명의 여성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할 강을 건널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카리나였기에 서둘러 리아에 행동을 만류하기 시작했다.
"네, 네? 아, 죄송해요. 이 분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시길래 그만 감동을 먹어서 주체하지를 못했네요."
다행히도 건너기 직전에 빠져나올 수가 있었기에-어디까지나 카리나의 관점에서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카리나는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신이 한명의 여성을 구해냈다(?)는 점에는 약간은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물론, 리아는 그녀의 말대로 순수하게 그녀의 대한 감동으로 그녀를 그렇게 보았을 뿐이지만.
"그런데 조금 놀랐어요. 이렇게 큰 독수리가 이 세상에 있을 줄이야."
이제는 많이 안정이 되었는지 독수리의 등을 조용히 쓰담으며 그렇게 말했다. 물론 아까 전에 말했다시피 높은 곳을 무서워하기 때문인지 얼굴색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말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녀는 왠지 모르게 필사적으로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있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다.
"네. 태어났을 때부터 저희들과 같이 지내서요. 가족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삐익!
그렇다고 말하는 것 같은 힘찬 울음 소리가 하늘을 가득 메웠다.
"그나저나 첫 여행부터 꽤나 소란스러운 여행이 되고 말았네요. 뭐, 최소한 지루하지는 않을테니 그건 그거 나름대로 좋은 일이군요."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괜히 폐를 끼치게 되어서."
에레나의 말에 리아는 정말로 죄송스럽다는 표정으로 리아가 고개를 숙여 사과를 표시했다. 에레나는 그런 리아에 사과가 부담이 된다는 듯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저희들은 순전히 저희들이 그렇게 하자고 정해서 하는 여행이니까요. 굳이 감사를 표시하실려면 캄한테 하는 것이 좋아요. 이번 여행은 그가 결정한 것이니까요."
"그것도 독단적이었죠."
캄의 행동을 떠올리며 카리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일을 정한다면 그 누가 방해를 한다 하더라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완수를 하고 만다. 그리고 누가 방해를 하더라도 누가 옆에서 말린다 하더라도 철저하게 무시를 한다. 자신의 신념을 믿고서 그 신념대로 움직이는 남자. 그 남자가 바로 캄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남자였다.
"뭐, 우리들한테는 선택권이란 없다는 거겠지."
"근데 신기하게도 항상 스승님께서 선택하신 일은 나중에 가면 전부 우리한테 이득이 되어서 온다는 거죠."
"그렇긴 그렇네. 뭐랄까, 선택운이 남보다 강하다고 해야할까?"
오랜만에 제자와 스승 사이에는 캄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마 당사자가 듣는다면 '신경 끄시지?'라는 말이 나오겠지만 지금 그녀들이 있는 곳에 캄은 없었기에 오랜만에 실컷 그에 대한 이야기 꽃을 피울 수가 있었다.
"언제나 무신경한 척을 하면서 알고 보면 남들 모르게 세세한 신경을 써주는 것이 너무 귀엽달까나? 저번에 내가 식탁에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했을 때 기억나지?"
"아, 네. 그때 분명 스승님, 그릇 놓는데 지장이 없으면 아무 문제 없어라고 했죠?"
"응. 근데 밤에 내가 우연히 봤는데 캄이 부엌에서 무언가를 하더라고. 약간 호기심을 동해서 조금 살펴봤는데 뭘 하고 있었는 줄 알아? 글쎄 식탁의 균형을 맞추고 있더라고."
아마 본인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지금 하고 있는 말을 은폐시키기 위해 그녀의 입을 막았을 테지만 아까 전에도 말했다시피 여기에는 캄은 없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없는 사람이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정말요? 아, 그래서 그때 스승님이 피곤해 하셨구나."
"응. 거의 밤을 새면서까지 작업을 했으니까. 예나 지금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서투르다니까."
참고로 말하자면 스승과 제자의 대화에 끼어들 틈이 없었기에 여신관 리아는 그저 멍하니 그 둘을 바라볼 뿐이었다.
"거기다가 모든 일을 너희들한테만 시키는 것 같아도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자기 자신이 맡곤 하지."
"뭐, 다무는 그럴 때마다 스승님한테 무슨 바람이 불었냐고 말해서 매를 벌지만요."
"그것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말이야."
"사이가.....무척 좋으신가 보내요."
그 한마디를 하였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수다 모드로 들어간 두 여자에게 보이는 틈이라고는 전혀 없었기에 리아로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녀의 말에 에레나와 카리나는 서로를 바라보다 이내 후훗, 웃으며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거야 가족이니까요.""
-삐익!
다시 한번 독수리가 힘차게 울었다.
========================================================================
이 소설은 C.O.W 프로젝트 동인지 회지를 위해서 연재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
궁금하신 사항이나 이상한 점이 있다면 리플로 남겨주세요.
"아, 역시 조금 시끄러웠나?"
캄이 리아를 보며 그렇게 말했다. 언뜻 그를 보니 그의 손에 자그만한 무언가가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었지만 워낙 작았기 때문인지 손모양으로만 그가 뭘 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그건 뭐죠?"
"응? 이거?"
아직까지도 귀가 울리는지 손으로 막고 있는 그녀한테 캄이 손에 쥐던 것을 그녀 눈 앞으로 내밀어 자세히 보이게 해주었다. 은색으로 빛나는 조그만 은색의 원통형 물체였고 한쪽 끝이 납작하게 입에 물기 편한 구조로 파여져 있었다. 피리였다.
"녀석 호출용. 이것이 아니면 그 녀석 오지 않을려고 하거든."
"녀....석 이라니요?"
문득 아까 짓궃게 웃었던 캄의 얼굴이 생각나는 것은 필시 자신의 착각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시키며 리아가 그렇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어느새 캄의 얼굴에서는 그녀의 자기 합리화에도 불구하고 개구장이를 연상시키는 짓궃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내가 말했지?"
-삐익.
또 다른 소리가 위에서 들려왔다. 아까와 비슷한 소리긴 했지만 이상하게 이번 소리는 듣기 싫은 감이 전혀 없는 소리였다. 그런 소리에 리아는 막고 있던 손을 내리고 위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녀의 눈에는 믿을 수 없다는 빛이 가득 들어가 있었다.
"조금 정신이 없는 여행이 될 거라고."
-삐익.
쿠웅이라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내려왔다. 생물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옳은 표현일 것이다. 아니, 실제로 그건 생물체가 맞았고 더 나아가서 말하자면 동물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적합한 이름일 것이다. 하지만 리아는 지금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정말로 동물일까라고 하는 작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그건 동물이라고 하기에는 약간의 위화감이 하나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어, 그동안 잘 지냈냐?"
-삐익.
동물-정확히 말하자면 새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긍정을 토했다. 아무래도 인간의 말을 알아듣는 동물인 것 같았다. 이것만 하더라도 상당한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지만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동물은 가끔 가다가 리아 자신도 보기 때문에 어느 정도 납득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자신이 느끼는 위화감에 비한다면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 쯤이야 새발의 피도 안가는 셈이지만.
"미안하지만 오늘도 조금 부탁할께. 아, 참고로 오늘은 반대쪽으로 부탁해."
-삐이?
그의 말에 새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궁금증을 토했다. 사람의 말을 알아들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새라.....확실히 그런 새는 드물다기 보다는 없다고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물론 눈 앞에 새를 제외시킨다면. 하지만 그런 것 또한 리아가 느끼는 위화감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오늘부터 여행을 떠나기로 했거든. 그래서 델라국에 갈려고. 당분간 돌아오지 못할거야."
-삐이.....
눈에 띄게 그의 말에 낙심을 하는 새. 전체적으로 보다 부분적으로 보나 보이는 분위기는 굉장히 슬프다는 기색이 역력하게 나오고 있었다. 이 정도까지 감정을 표현하는 새라면 분명 서커스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게 될 것이 분명하다. 참으로 앞날이 창창하다고 할 수 있는 동물이었다.
"걱정마. 여행이 끝나면 다시 돌아올 테니까 너무 그렇게 낙심하지 마."
-삐익?
진짜지?라고 묻는 듯 한 행동이었다. 이 정도면 동물이 아니라 동물의 탈을 쓴 인간이라고 해도 믿을 것이다.
"그럼. 진짜고 말고. 내가 언제 약속을 어긴 적 있었어? 나 캄, 한번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고 마는 성격이라고."
"잠깐! 잠깐만요!"
더이상 참지를 못하겠다는 듯 리아가 캄과 새에 대화(?)에 끼어들고 말았다. 그녀의 끼어들기에 캄과 새는 무슨 일이냐는 듯 동시에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그건 뭐죠!?"
한 손으로 새를 가르키며 리아가 그렇게 묻자 캄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냐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보면 몰라? 독수리잖아. 독수리 처음 봐?"
그의 말대로 캄의 있던 동물의 정체는 독수리였다. 굳이 모습을 비유하자면 윌베르그 독수리와 그 모습이 흡사하다고 볼 수가 있는 독수리가 캄 앞에 우뚝 서 있었다. 그래, 독수리이다. 캄 앞에 있는 동물은 독수리였다. 하지만 리아에게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가 문제로 삼고 있는 것은 다른 쪽이었다.
"그렇게 큰 독수리가 세상에 어딨어요!?"
그렇다. 그녀는 한번도 보지 못한 것이다. 저토록 무식하게 큰 독수리를. 크기만 놓고 따진다면 오두막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일 것이다. 다리 쪽을 보자니 보기만 해도 무식하게 무거울 것이라 생각되는 몸무게를 갸날픈-어디까지나 독수리 입장에서 갸날픈 것이다.-두 다리로 버티는 모습이 너무나도 애처롭게 보였다.
"여기 있잖아."
-삐익.
보고도 모르겠냐는 표정이다.
"뭐, 그 기분은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 에스테이나 산맥에서는 이런 동물 쯤이야 흔하디 흔하다고? 거짓말 안하고 몸집이 너만한 곤충들도 여기에 서식을 하고 있어."
말도 안돼!라는 말을 집어삼키고 말았다. 확실히 이 비정상적으로 자란 나무들이나 눈 앞에 오두막보다 큰 독수리를 보자니 자신의 몸만한 곤충이 있다는 것도 왠지 모르게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녀의 머리속을 스치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하긴 에스테이나 산맥을 이제 막 들어온 신참한테는 뭘 보나 놀라움의 연속이겠지만."
캄이 독수리를 가르키며 말했다.
"어째든 너와 에레나 그리고 카리나는 이 녀석을 타고 에스테이나 산맥을 벗어나도록 해. 다무는 나와 같이 여기서부터 뛰어서 에스테이나 산맥을 벗어난다."
"스승님이 왠 일로 그런 귀찮은 일을!?"
다무의 얼굴에 놀라움이 자리잡았다. 무리도 아니었다. 캄의 좌우명 중에 하나가 '귀찮은 것을 하지도 말자.'일 정도로 그는 자신한테 귀찮은 것을 극도로 안하는 주의다. 그런 캄이 지금 자기 입으로 스스로 말한 것이다. 자신의 발로 직접 뛰어서 이 에스테이나 산맥을 내려가겠다고.
"....정말로 모르는거냐?"
그가 다무를 바라보는 표정은 그가 가지고 있는 지식에 대한 무지함을 탓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평소 하루에도 수십번 그런 표정을 받아오기에 캄의 표정에 아무런 반응도 없이 연신 놀라고 있는 다무였지만 이 다음에 이어진 말에 그는 그 스스로도 자신의 무지함을 탓할 수 밖에 없었다.
"이 녀석, 세명이 한계잖아."
-삐.
확인 사살로 옆에서 본인이 고개를 끄덕여줬다.
"......그렇죠."
그제서야 다무는 평소 마을을 내려갈 때 수행을 목적으로 다른 사람들은 전부 독수리를 타고 가는 대신 자신은 뛰어서 에스테이나 산맥을 내려왔다는 것을 생각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전에 분명 자신의 스승이 그런 말을 한 것 같기도 하다는 애매한 생각까지 하였다. 캄의 말에 너무 놀란 나머지 그 사실을 잊어먹고 만 것이다.
"저거 진짜 바보 아냐?"
-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동의가 옆에서 나왔다. 동물과 자신의 스승한테서 이렇게 욕을 얻어먹는 것처럼 불쌍해 보이는 것이 또 있을지 모를 정도로 다무의 모습은 너무나도 처절하게 불쌍해 보였다. 인간이 저렇게 불쌍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을 여신관 리아는 오늘 처음 깨달을 수 있었다.
"뭐, 그런고로 나와 다무를 제외한 모두는 이 녀석한테 타시길. 그럼 잘 부탁해."
-삐익!
맡겨만 달라는 듯이 독수리가 날개를 쫙 피면서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 모습에는 일종의 위용도 같이 들어가 있는 듯 했다.
"자, 그럼 우린 서서히 몸이나 풀자, 바.보. 제자."
어째 모르게 바보라는 글자에 악센트가 들어가 있는 듯 했다. 하지만 평소대로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자신이 생각해봐도 바보 소리를 들을 정도로 바보스런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자. 잠깐만요! 이걸 타고서 산을 내려간다고요!?"
연신 놀라움에 연속. 이번에는 독수리를 타고 이 산맥을 내려간다는 말에 놀라고 만 여신관 리아였다. 하긴 저렇게 커다란 몸을 가지고 있으니 사람을 태우는 것도 그다지 무리는 아닐 듯 싶었지만 그래도 놀라는 것은 놀라는 것이었다.
"나와 다무는 괜찮지만 너희들이 걸어서 에스테이나 산맥을 내려갈려면 하루 왠 종일 걸어도 모자를 거다. 그렇게 된다면 오늘 밤은 이 에스테이나 산맥에서 노숙을 해야한다고. 그렇게 되는 것은 이쪽에서 사양이니까 얼른 타기나 해."
"자.....잠깐만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이리저리 독수리를 타는 것을 거부하는 리아를 캄은 조용히 한숨을 쉬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미안하지만 니 의견은 지금 이 순간부터 전부 기각하겠어."
그리고는 순식간에 그녀를 업었다.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잠시 깨닫지 못한 그녀는 이내 캄이 자신을 업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는지 이리저리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그녀를 무시한 채 캄은 독수리를 바라보았다. 그가 쳐다보자 독수리는 조용히 날개 한쪽을 펼쳐서 자신의 등 쪽으로 올라오기 편하도록 길을 만들어 주었다.
"가자.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
에레나와 카리나를 보며 말했다. 그의 말에 두 여자는 아무 거리낌도 없다는 듯이 독수리가 만들어 놓은 길쪽으로 걸어갔다. 오히려 잘 부탁한다는 미소를 독수리한테 짓고 있었다. 두 여자의 미소에 독수리는 맡겨줘라고 말하는 듯 힘찬 울음을 내뱉었다.
"자.....잠시만 기다려 달라니까요!"
"미안. 지금 우리들한테는 그 잠시의 시간도 남아있지 않아."
독수리 등으로 올라가 리아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점프를 해서 독수리 등에서 내려왔다. 어느새 독수리 등에는 에레나와 카리나가 올라가 있었다.
"그럼 부탁한다."
-삐익!
힘찬 울음 소리와 함께 날개를 펼쳐 서서히 위로 활강을 시작하였다. 언뜻 리아의 비명 소리가 들리는 듯 했지만 캄은 그 소리를 무시하며 아직도 자기 자신을 탓하고 있는 다무에게 다가가 사정을 봐줄 것도 없이 그의 머리를 향해 힘차게 발길질을 한번 먹여주었다.
"쿠악!"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거냐? 너 바보라는 거 자꾸만 티낼래?"
상당한 충격이었는지 몸이 높이 떴다가 다시 내려왔다. 하지만 그런 그의 발길질은 우습다는 듯이 다무는 재빨리 쓰러진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옷에 묻은 흙을 털며 평소대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아야야.....스승님, 요즘 들어 때릴 때에 강도가 옛날보다 세진 것 같은데요?"
"기분 탓이겠지."
그가 이리저리 몸을 풀며 그렇게 답했다. 천천히 하면서도 꼼꼼하게 스트레칭을 하는 자신의 스승을 바라보며 다무도 마찬가지로 스트레칭으로 자신의 몸을 풀기 시작했다.
"흐음, 아스테이나 산맥을 뛰어서 내려가는 것도 정말 오래간만인데? 한 5년만인가?"
"그렇게 되네요."
갑자기 캄이 뭔가 좋은 생각이 났다는 미소로 자신의 제자를 쳐다보았다.
"제자가 얼만큼 성장을 했는지 체크를 해주는 것도 스승의 몫 중에 하나겠지. 어때? 누가 더 빨리 이 산맥을 벗어나나 내기할까? 만약 니가 이기면 내가 들어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너의 소원을 한가지 들어주마."
"정말요!?"
그의 제안에 다무가 눈에 띄도록 흥분을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무리도 아니다. 평소 캄에게 시달려왔던 그이기에 이번 기회를 통해서 그 시달림을 조금이라도 줄여볼 속셈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3일에 한번으로 이 산을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것을 반복하였기 때문에 자신한테 어느 정도 승산이 있다는 것도 캄의 유혹에 넘어가게 하는데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었다.
"그래. 내가 언제 거짓말 하는 거 봤냐? 일단 한번 시작한 일이나 약속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해내고 만다. 그게 바로 나 캄이라는 남자의 좌우명이다."
"좋아요! 받아들이겠어요!"
그의 승낙에 캄은 마음에 들었다는 듯이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내가 이겼을 경우 니가 내 부탁을 하나 들어주는거다. 동등한 조건이라고. 불만은 없겠지?"
"물론입니다. 불만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동등한 조건에 동등한 출발. 이만큼 공평한 시합도 없을 거라 생각하며 그는 마음 속으로 파이팅을 외치며 몸을 푸는 것에 한층 정성을 더하였다.
"그럼 서서히 출발해볼까? 준비는 다 됐겠지?"
"물론입니다! 저는 언제든지 달릴 준비가 되어 있어요!"
단단히 기합이 들어간 모습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캄은 가소롭다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그럼 간다!"
그 말을 끝으로 에스테이나 산맥에서는 갑작스런 두 남자의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가 벌어지고 말았다.
같은 시간.
"히이익! 자....잠깐만요! 주.....중심을 잡지.....히이이익!"
하늘에서는 한 여자의 처절한 외침이 가득 울려퍼지고 있었다. 두말할 것도 없이 빛의 신 루를 섬기는 여신관 리아의 외침이었다.
"걱정마세요. 떨어질 염려는 없으니까요."
에레나가 약간은 난감한 듯한 미소를 지으며 아직도 독수리 등에서 떨어질까봐 이리저리 비명을 지르고 있는 리아를 안심시키기에 여념이 없었다. 물론 그 옆에서 카리나도 위로하는데 모든 시간을 할애하고 있었다.
"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요."
덥썩. 에레나가 리아의 손을 잡으며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정신이 없었기 때문인지 비교적 쉽게 에레나의 곁으로 다가가는 리아는 여전히 불안한지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에레나의 손을 다른 손으로 꼭 잡았다.
뭐, 아무런 안전 장치도 없이 몸 하나만을 믿고 하늘을 날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녀의 그런 행동을 에레나와 카리나가 모를 리가 없었다. 특히 카리나는 처음에 탈 때 자신도 리아와 비슷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마음 속 어딘가에서부터 그녀의 행동에 대한 아련한 동정심이 생기고 있었다.
"우우.....죄.....죄송합니다....제가 워낙 무서운 곳을 싫어해서......"
찰싹. 누가 본다면 연인 사이라고 착각해도 손색이 없을만큼 달라붙어 있었다. 하지만 미녀 두 명이 붙어있는 것이라서 그런지 위화감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무섭다고 한다면 무섭다고 할 수가 있었다.
"괜찮아요. 사람마다 다 사정이 있는데 그걸 탓할 수는 없죠."
성녀다. 그것이 지금 리아에 머리 속에서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어쩌면 저렇게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려줄까? 어쩌면 저렇게 행동 하나하나 말 하나하나가 성녀 같을까? 그녀의 머리 속에는 에레나의 대한 찬양만이 가득할 뿐이었다.
"저기.....죄송하지만 왠만하면 현실로 돌아오시는 것이 어떠신지?"
카리나가 그런 리아에 상태를 눈치챘는지 조심스런 말투로 그런 제안을 하였다. 그리고 문득 그녀는 전에 책에서 읽었던 어떤 내용을 생각해 내었다. 뭐라고 했더라. 아마 흔들다리 효과라고 했을 것이다. 아마 무서운 곳에 있거나 무서운 것을 보았을 때 증가하는 심장 박동수를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의 심리라고-
잠깐, 뭔가 이 상황과 자신이 읽었던 책의 내용이 겹쳐진다고 생각이 되는 카리나였다. 높은 곳에 있어서 무서움에 떨고 있는 여신관. 그리고 그런 그녀를 위로해주며 부축해주는 자신의 스승님. 그리고 그런 스승님을 소중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보고 있는 여신관.-겉으로는 그렇게 보이고 있었다.-
"저....저기 잠시만요! 아무리 그래도 그런 위험한 관계는 안된다고요! 한낱 심리 때문에 평생 돌아오지 못할 길을 걸어서는 안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한 명의 여성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 할 강을 건널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카리나였기에 서둘러 리아에 행동을 만류하기 시작했다.
"네, 네? 아, 죄송해요. 이 분이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시길래 그만 감동을 먹어서 주체하지를 못했네요."
다행히도 건너기 직전에 빠져나올 수가 있었기에-어디까지나 카리나의 관점에서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카리나는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자신이 한명의 여성을 구해냈다(?)는 점에는 약간은 자랑스러운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
물론, 리아는 그녀의 말대로 순수하게 그녀의 대한 감동으로 그녀를 그렇게 보았을 뿐이지만.
"그런데 조금 놀랐어요. 이렇게 큰 독수리가 이 세상에 있을 줄이야."
이제는 많이 안정이 되었는지 독수리의 등을 조용히 쓰담으며 그렇게 말했다. 물론 아까 전에 말했다시피 높은 곳을 무서워하기 때문인지 얼굴색은 여전히 창백했지만 말이다. 그렇기 때문인지 그녀는 왠지 모르게 필사적으로 고개를 아래로 숙이고 있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다.
"네. 태어났을 때부터 저희들과 같이 지내서요. 가족이라고 할 수가 있어요."
-삐익!
그렇다고 말하는 것 같은 힘찬 울음 소리가 하늘을 가득 메웠다.
"그나저나 첫 여행부터 꽤나 소란스러운 여행이 되고 말았네요. 뭐, 최소한 지루하지는 않을테니 그건 그거 나름대로 좋은 일이군요."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괜히 폐를 끼치게 되어서."
에레나의 말에 리아는 정말로 죄송스럽다는 표정으로 리아가 고개를 숙여 사과를 표시했다. 에레나는 그런 리아에 사과가 부담이 된다는 듯 재빨리 손을 내저었다.
"그러실 필요는 없어요. 저희들은 순전히 저희들이 그렇게 하자고 정해서 하는 여행이니까요. 굳이 감사를 표시하실려면 캄한테 하는 것이 좋아요. 이번 여행은 그가 결정한 것이니까요."
"그것도 독단적이었죠."
캄의 행동을 떠올리며 카리나가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일을 정한다면 그 누가 방해를 한다 하더라도 무슨 일이 있더라도 완수를 하고 만다. 그리고 누가 방해를 하더라도 누가 옆에서 말린다 하더라도 철저하게 무시를 한다. 자신의 신념을 믿고서 그 신념대로 움직이는 남자. 그 남자가 바로 캄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남자였다.
"뭐, 우리들한테는 선택권이란 없다는 거겠지."
"근데 신기하게도 항상 스승님께서 선택하신 일은 나중에 가면 전부 우리한테 이득이 되어서 온다는 거죠."
"그렇긴 그렇네. 뭐랄까, 선택운이 남보다 강하다고 해야할까?"
오랜만에 제자와 스승 사이에는 캄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우고 있었다. 아마 당사자가 듣는다면 '신경 끄시지?'라는 말이 나오겠지만 지금 그녀들이 있는 곳에 캄은 없었기에 오랜만에 실컷 그에 대한 이야기 꽃을 피울 수가 있었다.
"언제나 무신경한 척을 하면서 알고 보면 남들 모르게 세세한 신경을 써주는 것이 너무 귀엽달까나? 저번에 내가 식탁에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했을 때 기억나지?"
"아, 네. 그때 분명 스승님, 그릇 놓는데 지장이 없으면 아무 문제 없어라고 했죠?"
"응. 근데 밤에 내가 우연히 봤는데 캄이 부엌에서 무언가를 하더라고. 약간 호기심을 동해서 조금 살펴봤는데 뭘 하고 있었는 줄 알아? 글쎄 식탁의 균형을 맞추고 있더라고."
아마 본인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지금 하고 있는 말을 은폐시키기 위해 그녀의 입을 막았을 테지만 아까 전에도 말했다시피 여기에는 캄은 없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없는 사람이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정말요? 아, 그래서 그때 스승님이 피곤해 하셨구나."
"응. 거의 밤을 새면서까지 작업을 했으니까. 예나 지금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서투르다니까."
참고로 말하자면 스승과 제자의 대화에 끼어들 틈이 없었기에 여신관 리아는 그저 멍하니 그 둘을 바라볼 뿐이었다.
"거기다가 모든 일을 너희들한테만 시키는 것 같아도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자기 자신이 맡곤 하지."
"뭐, 다무는 그럴 때마다 스승님한테 무슨 바람이 불었냐고 말해서 매를 벌지만요."
"그것도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말이야."
"사이가.....무척 좋으신가 보내요."
그 한마디를 하였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수다 모드로 들어간 두 여자에게 보이는 틈이라고는 전혀 없었기에 리아로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도 내에서 최선을 다해 그런 말을 한 것이다. 그녀의 말에 에레나와 카리나는 서로를 바라보다 이내 후훗, 웃으며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거야 가족이니까요.""
-삐익!
다시 한번 독수리가 힘차게 울었다.
========================================================================
이 소설은 C.O.W 프로젝트 동인지 회지를 위해서 연재하고 있는 소설입니다.
========================================================================
궁금하신 사항이나 이상한 점이 있다면 리플로 남겨주세요.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