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own Angel - 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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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own Angel - prologue
야간 자습이 끝나고 9:00..
“유민아 비 온다! 너 우산 있냐?”
연호의 말에 땅에서 시선을 떼고는 밖을 바라보았다. 이런 젠장... 분명 아침에 일기예보에서는 비 올 거란 말은 안했는데?!
“없어! 이런 젠장... 운동장이 질퍽한 것이... 새로 산 신발 다 버리게 돼 버렸군...아니, 아직 유민이 덕에 희망은 있는 건가!”
지금 밖은 난리도 아니었다. 가방이나 신문지 등으로 머리만 가리고 막 뛰어가는 녀석이 있는 반면 엄마가 와서 우산을 쓰고 안전하게(?) 집으로 향하는 아이도 있었다. 젠장. 정말 요즘 일기예보는 믿을 게 못된다. 하지만 뭐... 나는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
“오빠~!”
유미나. 즉 내 동생이 마중을 꼭 나와 주니까.
“미나야!! 아, 역시 나는 친구를 잘 둔 덕택인가. 우산을 이렇게 2개 더 준비해주니 말이야.”
“내일 쏴라.”
“오빠는?! 내가 우산 들고 온 건데 오빠가 얻어먹으려는 거야?”
이런 맹랑한 구석만 빼면 별로 싫어할 구석은 없는 녀석이다.
내 이름은 유민. 올해 17살. 대한민국에서 명망 높은 벤츠기업 회장의 아들이다. 사실 그런 회장의 아들이라면 이런 귀찮은 야간자습까지 마치고 늦게 집으로 돌아갈 이유는 없지만 그런 틀에 박힌 생활은 지겨워서(완전 공부벌레 애들을 모아놓은 이 곳은 강남이다. 난 이곳을 빠져 나갈 거야 나갈 거야 나갈 거야 나갈 거야... 안 나가면 난 말라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죽을 거야...) 내가 아버지께 부탁을 한 것이다. 서울 변두리에서 혼자 자취하면서 그렇게 편하게 살려고. 두말 않으시고 아버지는 허락하였다. 틀에 박힌 사고방식으로는 미래를 내다볼 수 없대나 뭐라나... 아버지는 꽉 막힌 그런 답답한 사람과는 거리가 1만 광년 떨어진 자유분방한 분이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미나. 이 녀석도 날 따라 나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유미나. 올해 16살. 이 녀석은 내가 도무지 이해를 하려 해도 할 수가 없다. 중학생 주제에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나도 안했지만...) 애들이랑 놀러갈 생각도 안하고 나만 죽어라 쫓아다닌다. 어찌 브라더 콤플렉스(brother complex)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어렸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 그냥 오빠 동생 관계였는데 애가 사춘기라 예민해서 그런 건가... 자기 오빠를 무슨 남편으로 생각한다. 다행히 녀석도 생각이 없는 건 아닌지 알아서 경계선을 만들어서 별 걱정을 하지는 않고 있다. 허나... 커서도 이러는 건 아닐런지...
“연호 오빠. 나 맛있는 것 좀 사주라.”
미나가 애교를 떨면서(솔직히 나는 닭살 돋는다.) 구걸(?)을 하자 연호는 좋아 죽으려는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유민아. 이 녀석 내 여친으로 만들면 안 되냐?”
그러면 내가 하는 말은 따로 있다.
“너 가져도 돼.”
연호 녀석에게 우산 하나 빌려주고 집으로 향했다. 여전히 비는 부슬부슬 끝도 없게, 지겹게도 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어정쩡하게 내릴 바에야 차라리 팍 오던지, 아니면 아예 오지를 말지. 이놈의 날씨는 괴팍하기도 하다. 그런데 미나가 하는 짓은 나를 더욱 어이없게 만든다.
“오빠. 사람들이 우리 쳐다보는 것 좀 봐.”
“그 말을 하기 전에 이 팔짱 좀 풀어주지 그러니?”
다 큰 아가씨가 못하는 짓이 없다. 자기 우산은 벌써 걷어버리고 나에게 팔짱을 끼면서 붙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뭐 한 두 번 이러는 것은 아니니 별 그런 것은 없지만...
여전히 이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별로 곱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내 복장은 교복. 학생의 신분에 이렇게 팔짱까지 끼는데 사람들이 좋게 보겠는가...
“정말. 오빠는 이렇게 예쁜 동생을 두고 남 눈치나 보는 거야?”
나는 평생 가도 이 녀석을 이기지는 못할 것 같았다. 약 10분간 따가운 시선을 느껴서야(때로는 질투의 시선)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잉. 좀 더 이렇게 있고 싶은데.”
죽일. 아예 내 얼굴을 세상에 다 팔지 그러냐.
대문 앞의 벨을 눌리자 언제나 듣는 ‘딩동’하는 맑은 소리가 나면서 스피커폰에서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아줌마. 우리에요.”
‘철컹’하는 마찰음을 내며 대문이 열리자 나는 냉큼 팔짱을 풀고는 집 안으로 향했다.
뭐, 밖에 나와서 살긴 하지만 우리를 돌봐주는 아줌마가 있긴 있다. 그래도 명색이 벤처그룹의 자식이 밖으로 나가는데 당연한 것 아닌가.(어쩌면 나는 이미 썩어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후...”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책가방을 방구석에 던지고는 침대위에 몸을 눕혔다. 몸이 땀으로 인해 젖어서 찝찝했지만 이 편한 기분을 조금 더 느끼고 싶었다.
[띠리리~ 띠리리리링~ 띠리링]
문자가 온 모양이다.
[4월 27일 0xx-xxxx-xxxx - 야. 지금 컴퓨터 켜고 스타 하자.]
연호였다. 이 녀석은 어떻게 내가 방금 집에 온 것을 이렇게도 정확히 맞추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컴퓨터를 켜기가 귀찮았던 나는 짧은 답장을 날리고는 전원을 꺼버렸다.
[내일하자]
시선을 좌우로 흔들다가 문득 왼손 약손가락에 끼어있는 반지를 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말이 많았던 반지였다. 보통 시중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반지는 아니었다. 겉모양은 투박하지만 한 가운데 붙어있는 조그마한 루비 덕에 반지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고가라는 것을 한 눈에 볼 만한 반지였다. 그리고 루비에 아주 세세한 세공이 되어있다. 그런데 이 반지가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첫째, 이 반지는 어떤 수를 써도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계로 잘라내는 것을 시도한 것도 100여 번이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흠집조차 나지 않는 것이다.(오히려 기계가 망가져서 물려주기까지 했다고 한다.)그리고 내 손이 자라남에 따라 반지도 자라나는 것이다. 덕분에 전혀 불편함을 몰랐다.
하긴... 이 반지 덕분에 내 과거도 알 수 있었지만...
그렇지... 녀석이 브라더 콤플렉스(맞긴 맞는 건가?)가 생긴 시점도 이 반지에 대한 내 과거를 알았을 때부터인 것 같다.
“유미나. 아줌마 갔냐?”
“어!”
그제야 몸을 일으킨 나는 슬금슬금 욕실로 향했다. 욕조 안에는 따뜻한 물이 가득 차 있었다. 또 미나가 미리 켜놓은 거겠지. 어찌 생각하면 참 호강하는 오빠인 것 같다.(이 말을 다른 사람들이 들었다면 아마 나를 칼로 죽이려고 들 거야.) 교복을 세탁기 위에 올리고는 샤워기로 이미 식어서 찌들어진 땀을 대충 씻어 내고 욕조에 몸을 담갔다.
“후...”
뜨거운 기운이 온몸을 자극하면서 근육이 풀려나감을 느꼈다. 사람들이 목욕을 좋아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 기분 때문일 것이다. 가만히 머리를 뒤로 젖히고 욕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 자세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세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의 단계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자세라고나 할까?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10여분정도 흘렀을까? 그대로 있는 것도 귀찮아진 나는 욕조에서 몸을 빼고는 전신 거울을 바라보았다.
“흠... 이 정도면 멋진 남자가 아닌가?!”
5년여 간에 걸쳐 만든 근육은 항상 나를 뿌듯하게 만든다. 무식하게 커다란 근육이 아닌 적당히 붙은 근육은 남성미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준다고나 할까? 그렇게 또 30초간 거울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나는 시선을 돌리다가 문득 자신의 4번째 욕조의 물을 빼고는 수건으로 대충 닦고 수건으로 은밀한 곳만 가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컥! 야 이 미친년아! 어서 저리로 가!!”
“얼레? 오빠동생 사이에 그런 게 무슨 대수야? 남도 아닌데?”
“으이구.. 비켜!”
보통 TV에서는 이럴 때 비명을 꽥 지르고는 도망간다고 하는데 그건 다 거짓인가 보다. 아래쪽의 수건을 잡아당겨 더욱 조고는 얼른 내 방으로 달렸다.
‘탕’하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문을 닫았다.
“젠장. 정말 생각이 있긴 한건지..”
짧은 라운드 티에 편한 트레이닝팬츠를 입고 밥을 먹으러 부엌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야, 밥은 어디 있냐...?”
“응? 사실, 오빠 데리러 가기 전에 아줌마에게 말했어. 나가서 먹을 거라고.”
이런 젠장... 정말 주도면밀하고 사악한 동생이었다. 사실 야식을 학교에서 먹긴 했지만 또 오면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그리고 녀석은 저녁을 꼭 나랑 같이 먹으려고 한다.
“나가자.”
“오빠. 사람들이 또 쳐다본다. 헤헤”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아, 오빠 미안해~! 이번만 눈 한번 딱 감고 봐주라. 응?? 응??”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나 참... 쪽팔려서... 어찌 이 오빠의 마음을 하나도 생각해주지 않는 것인가.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아서 그냥 밖으로 나왔다. 아직 4월이라 조금 추우므로 청바지에 남방을 입고 밖으로 향했다. 지금 동생은... 허리까지 오는 생머리에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 색 통바지에 굽 높은 구두... 중학생이라 보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는 복장이다. 키도 168이나 되니... 이건 어른이지... 그나저나... 밥 먹으러 가는데 왜 굳이 이런 복장을 하는 것인지...
“이게 다 오빠를 위한 거야.”
오빠를 위한다면 제발 평범한 중학생처럼 행동해주지 않겠습니까하고 한마디 쏘려다가 고개를 숙여버렸다. 나는 이 녀석에게 절대 이길 수 없다.
“순대나 먹자.”
“싫어. 나는 스테이크가 먹고 싶은걸?”
“저 앞에 돈가스 집까지는 내가 양보해주마.”
“내가 어떻게 마련한 자리인데. 스테이크 밑으로는 절대 안돼.”
그렇게 해서 고급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음... 저는 블레이드 스테이크 하나요. 오빠는?”
“난... 순대가 먹고 싶었는데...”
“손...님? 순대는 없는데요?”
“젠장. 저도 같은 걸로...”
“고기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웰던(Well-done)으로요.”
“난 그냥 바짝 태워주시구려(BAZZAK TAEWERJUSIGULYR).”
그렇게 택시까지 타고서 서울 중심부로 파고든 우리는 TGI로 갔다.
주문 받는 ‘아저씨’(기분이 더러워서 아저씨라고 한다.)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자 미나가 종이를 꺼내고는 막 적어가기 시작했다.(그런 건 다 어디서 준비했대?) 종이를 받아든 웨이터 아저씨는 알았다는 듯이 돌아갔다.
“오빠. 아직도 삐진 거야?”
“하.. 편한 일상을 위하여 나는 집을 뛰쳐나왔노라. 순대여...”
그러자 미나가 웃으면서 -자기 딴에는 귀엽게 보였겠지만 내게는 한없이 가증스럽게 보였다.- 말했다.
“정말 오빠는 그런 점이 못 말린다니까.”
레스토랑 안은 이상하게 오늘따라 조금 많아보였다. 분위기에 안 맞게... 그 중 몇몇 우리를 보면서 얘기를 나누는데 아무래도 여자가 아깝다는 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특히 저 쪽 버터남자 두 명은 그 증세가 더 심각해 보였다. 막 대 놓고 윙크를 날린다.(한 놈은 미나 몰라 나한테 가운데 손가락도 내민다.) 저것들이 레스토랑의 예의는 배운 것 일까나... 아무래도 조금 뒤에 이쪽으로 자리를 이동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것들도 돈 꽤 있는 것들인 것 같았다.
“대충 먹고 나가자.”
“응? 이미 후식까지 다 시켰는데?”
아무래도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각은 짧아야 1시일 것 같았다.
고기를 기다리는데 도대체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졌다. 지겹다. 순대는 시장이라서 시끌벅적한 것이 나에게 딱 맞지만... 조금 뒤에 나온 야채 스프가 어찌 그렇게 기쁘던지...
그리고 조금 더 후에야 드디어 고기가 왔다. 내가 처음에 시켰던 바짝 태운 고기가 아닌 웰던의 고기...
웨이터가 잘라주려는 것을 뿌리치고는 내가 잘랐다. 성질대로 자르다보니 한 조각의 1변당 1cm가 된 것 같다.
“오빠. 분위기 좋다. 그치?”
아직 미나는 내 기분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걸지도.
“사실... 나는 오빠랑 이렇게 나온 게 정말 좋은 거 알아?”
“무슨 말이냐?”
“오빠는 정말 둔해.”
그렇게 찡긋 웃고는 고기 조각을 포크로 하나 찍고는 입 안으로 넣었다.
“후... 너 정말 16살이 맞긴 한 거냐?”
“아마... 아닐걸?”
몇 번씩 말을 주고받다보니 기분이 대충 풀어지긴 했다. 대화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는가보다.
나는 버터나이프로 버터를 한 조각 떼어내어 접시에 옮기고는 빵에 버터를 발랐다. 그리고는 입 안에 넣고는 열심히 씹었다. 그런데 그 때 미나가 하는 말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나, 오빠한테 시집 갈 꺼다.”
“컥!! 컥!! 컥!! 컥!! 무, 물!!”
나에게 유일한 약점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유미나’겠지요?
도대체가 애가 할 말 못할 말을 가릴 줄을 모르니... 겉모습은 이미 어른이지만 머리는 아직 중 3이 맞긴 한가보다. 어쩌면 더 어릴지도. 그래도 아까 그 사건 때문에 그 남자 2명이 다가오진 않았다. 아무래도 이상하게 보인 것 같았다.
“뭐 어때, 나랑 오빠는 피도 안 이어져있는데.”
“내가 너한테 장가를 가면 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 그냥 애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요.”
“10 년 안에 장 지지게 될 거야. 훗.”
나는 그 때 녀석의 말을 장난으로 여겼지요.
집에 가는데도 내 팔에 팔짱을 낀 미나는 여전히 싱글벙글이다.
“헤헤. 말했다. 말했다.”
그래... 백날 그 말만 반복해라. 택시를 타자고 했는데도 억지로 걸으려는 녀석 때문에 나는 이리 저리 한숨만 내쉬었다.
“난 분명 너 때문에 100살까지의 내 명이 50으로 단축되었을 거야.”
“이왕 단축 되는 거 여기서 그냥 죽지?”
“나한테 시집간다는 때는 언제고...”
“아참, 그렇지?”
이 여자. 데려갈 남자 정말 불쌍하다.
정말 불쌍합니다. 내 미래가.
앞에 작은 횡단보도가 보였다. 미나와 나는 횡단보도로 발걸음을 향했다. 다가올 엄청난 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걸까요?
신호등이 초록색 빛으로 바뀌었다.
미나의 생각을 지금이라도 바꿀 순 없겠지요?
한 걸음 앞으로 간 순간...
내 마음도 내가 못 바꾸겠는데 미나의 마음을 과연 바꿀 수 있을까요?
엄청난 속도의 폭주한 자동차가 우리를 덮쳤다. 아무래도 음주운전인 것 같았다.
그 녀석은 분명 미쳤을 거예요. 에휴...
기겁을 하는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입을 손으로 가리는 미나.. 그 때 내 왼손 약지의 루비가 푸른 색 빛이 돌았다는 것을 본 건 나의 착각이었을까? 그 후에 필름이 끊겼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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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쓰는 소설인데 재미있게 봐줘요.. 잉잉 ㅡㅡa
다음 편은... 언제 나올 지는 나도 모릅니다.
야간 자습이 끝나고 9:00..
“유민아 비 온다! 너 우산 있냐?”
연호의 말에 땅에서 시선을 떼고는 밖을 바라보았다. 이런 젠장... 분명 아침에 일기예보에서는 비 올 거란 말은 안했는데?!
“없어! 이런 젠장... 운동장이 질퍽한 것이... 새로 산 신발 다 버리게 돼 버렸군...아니, 아직 유민이 덕에 희망은 있는 건가!”
지금 밖은 난리도 아니었다. 가방이나 신문지 등으로 머리만 가리고 막 뛰어가는 녀석이 있는 반면 엄마가 와서 우산을 쓰고 안전하게(?) 집으로 향하는 아이도 있었다. 젠장. 정말 요즘 일기예보는 믿을 게 못된다. 하지만 뭐... 나는 그리 걱정하지 않는다. 왜냐?
“오빠~!”
유미나. 즉 내 동생이 마중을 꼭 나와 주니까.
“미나야!! 아, 역시 나는 친구를 잘 둔 덕택인가. 우산을 이렇게 2개 더 준비해주니 말이야.”
“내일 쏴라.”
“오빠는?! 내가 우산 들고 온 건데 오빠가 얻어먹으려는 거야?”
이런 맹랑한 구석만 빼면 별로 싫어할 구석은 없는 녀석이다.
내 이름은 유민. 올해 17살. 대한민국에서 명망 높은 벤츠기업 회장의 아들이다. 사실 그런 회장의 아들이라면 이런 귀찮은 야간자습까지 마치고 늦게 집으로 돌아갈 이유는 없지만 그런 틀에 박힌 생활은 지겨워서(완전 공부벌레 애들을 모아놓은 이 곳은 강남이다. 난 이곳을 빠져 나갈 거야 나갈 거야 나갈 거야 나갈 거야... 안 나가면 난 말라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죽을 거야 죽을 거야...) 내가 아버지께 부탁을 한 것이다. 서울 변두리에서 혼자 자취하면서 그렇게 편하게 살려고. 두말 않으시고 아버지는 허락하였다. 틀에 박힌 사고방식으로는 미래를 내다볼 수 없대나 뭐라나... 아버지는 꽉 막힌 그런 답답한 사람과는 거리가 1만 광년 떨어진 자유분방한 분이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유미나. 이 녀석도 날 따라 나가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유미나. 올해 16살. 이 녀석은 내가 도무지 이해를 하려 해도 할 수가 없다. 중학생 주제에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나도 안했지만...) 애들이랑 놀러갈 생각도 안하고 나만 죽어라 쫓아다닌다. 어찌 브라더 콤플렉스(brother complex)인가... 하고 생각했지만... 어렸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 그냥 오빠 동생 관계였는데 애가 사춘기라 예민해서 그런 건가... 자기 오빠를 무슨 남편으로 생각한다. 다행히 녀석도 생각이 없는 건 아닌지 알아서 경계선을 만들어서 별 걱정을 하지는 않고 있다. 허나... 커서도 이러는 건 아닐런지...
“연호 오빠. 나 맛있는 것 좀 사주라.”
미나가 애교를 떨면서(솔직히 나는 닭살 돋는다.) 구걸(?)을 하자 연호는 좋아 죽으려는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유민아. 이 녀석 내 여친으로 만들면 안 되냐?”
그러면 내가 하는 말은 따로 있다.
“너 가져도 돼.”
연호 녀석에게 우산 하나 빌려주고 집으로 향했다. 여전히 비는 부슬부슬 끝도 없게, 지겹게도 내리고 있었다. 이렇게 어정쩡하게 내릴 바에야 차라리 팍 오던지, 아니면 아예 오지를 말지. 이놈의 날씨는 괴팍하기도 하다. 그런데 미나가 하는 짓은 나를 더욱 어이없게 만든다.
“오빠. 사람들이 우리 쳐다보는 것 좀 봐.”
“그 말을 하기 전에 이 팔짱 좀 풀어주지 그러니?”
다 큰 아가씨가 못하는 짓이 없다. 자기 우산은 벌써 걷어버리고 나에게 팔짱을 끼면서 붙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뭐 한 두 번 이러는 것은 아니니 별 그런 것은 없지만...
여전히 이쪽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별로 곱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내 복장은 교복. 학생의 신분에 이렇게 팔짱까지 끼는데 사람들이 좋게 보겠는가...
“정말. 오빠는 이렇게 예쁜 동생을 두고 남 눈치나 보는 거야?”
나는 평생 가도 이 녀석을 이기지는 못할 것 같았다. 약 10분간 따가운 시선을 느껴서야(때로는 질투의 시선)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잉. 좀 더 이렇게 있고 싶은데.”
죽일. 아예 내 얼굴을 세상에 다 팔지 그러냐.
대문 앞의 벨을 눌리자 언제나 듣는 ‘딩동’하는 맑은 소리가 나면서 스피커폰에서 소리가 들렸다.
“누구세요”
“아줌마. 우리에요.”
‘철컹’하는 마찰음을 내며 대문이 열리자 나는 냉큼 팔짱을 풀고는 집 안으로 향했다.
뭐, 밖에 나와서 살긴 하지만 우리를 돌봐주는 아줌마가 있긴 있다. 그래도 명색이 벤처그룹의 자식이 밖으로 나가는데 당연한 것 아닌가.(어쩌면 나는 이미 썩어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후...”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책가방을 방구석에 던지고는 침대위에 몸을 눕혔다. 몸이 땀으로 인해 젖어서 찝찝했지만 이 편한 기분을 조금 더 느끼고 싶었다.
[띠리리~ 띠리리리링~ 띠리링]
문자가 온 모양이다.
[4월 27일 0xx-xxxx-xxxx - 야. 지금 컴퓨터 켜고 스타 하자.]
연호였다. 이 녀석은 어떻게 내가 방금 집에 온 것을 이렇게도 정확히 맞추는 건지 신기할 따름이다. 하지만 컴퓨터를 켜기가 귀찮았던 나는 짧은 답장을 날리고는 전원을 꺼버렸다.
[내일하자]
시선을 좌우로 흔들다가 문득 왼손 약손가락에 끼어있는 반지를 보았다. 어렸을 때부터 말이 많았던 반지였다. 보통 시중에서 볼 수 있는 그런 반지는 아니었다. 겉모양은 투박하지만 한 가운데 붙어있는 조그마한 루비 덕에 반지를 볼 줄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고가라는 것을 한 눈에 볼 만한 반지였다. 그리고 루비에 아주 세세한 세공이 되어있다. 그런데 이 반지가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첫째, 이 반지는 어떤 수를 써도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계로 잘라내는 것을 시도한 것도 100여 번이 넘어갈 것이다. 하지만 어떤 연유에서인지 흠집조차 나지 않는 것이다.(오히려 기계가 망가져서 물려주기까지 했다고 한다.)그리고 내 손이 자라남에 따라 반지도 자라나는 것이다. 덕분에 전혀 불편함을 몰랐다.
하긴... 이 반지 덕분에 내 과거도 알 수 있었지만...
그렇지... 녀석이 브라더 콤플렉스(맞긴 맞는 건가?)가 생긴 시점도 이 반지에 대한 내 과거를 알았을 때부터인 것 같다.
“유미나. 아줌마 갔냐?”
“어!”
그제야 몸을 일으킨 나는 슬금슬금 욕실로 향했다. 욕조 안에는 따뜻한 물이 가득 차 있었다. 또 미나가 미리 켜놓은 거겠지. 어찌 생각하면 참 호강하는 오빠인 것 같다.(이 말을 다른 사람들이 들었다면 아마 나를 칼로 죽이려고 들 거야.) 교복을 세탁기 위에 올리고는 샤워기로 이미 식어서 찌들어진 땀을 대충 씻어 내고 욕조에 몸을 담갔다.
“후...”
뜨거운 기운이 온몸을 자극하면서 근육이 풀려나감을 느꼈다. 사람들이 목욕을 좋아하는 것은 아무래도 이 기분 때문일 것이다. 가만히 머리를 뒤로 젖히고 욕실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 자세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세다. 무념무상(無念無想)의 단계에 도달할 수 있는 가장 편한 자세라고나 할까? 무념무상의 상태에서 10여분정도 흘렀을까? 그대로 있는 것도 귀찮아진 나는 욕조에서 몸을 빼고는 전신 거울을 바라보았다.
“흠... 이 정도면 멋진 남자가 아닌가?!”
5년여 간에 걸쳐 만든 근육은 항상 나를 뿌듯하게 만든다. 무식하게 커다란 근육이 아닌 적당히 붙은 근육은 남성미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 시켜준다고나 할까? 그렇게 또 30초간 거울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나는 시선을 돌리다가 문득 자신의 4번째 욕조의 물을 빼고는 수건으로 대충 닦고 수건으로 은밀한 곳만 가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컥! 야 이 미친년아! 어서 저리로 가!!”
“얼레? 오빠동생 사이에 그런 게 무슨 대수야? 남도 아닌데?”
“으이구.. 비켜!”
보통 TV에서는 이럴 때 비명을 꽥 지르고는 도망간다고 하는데 그건 다 거짓인가 보다. 아래쪽의 수건을 잡아당겨 더욱 조고는 얼른 내 방으로 달렸다.
‘탕’하는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문을 닫았다.
“젠장. 정말 생각이 있긴 한건지..”
짧은 라운드 티에 편한 트레이닝팬츠를 입고 밥을 먹으러 부엌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야, 밥은 어디 있냐...?”
“응? 사실, 오빠 데리러 가기 전에 아줌마에게 말했어. 나가서 먹을 거라고.”
이런 젠장... 정말 주도면밀하고 사악한 동생이었다. 사실 야식을 학교에서 먹긴 했지만 또 오면 배가 고프기 때문이다. 그리고 녀석은 저녁을 꼭 나랑 같이 먹으려고 한다.
“나가자.”
“오빠. 사람들이 또 쳐다본다. 헤헤”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아, 오빠 미안해~! 이번만 눈 한번 딱 감고 봐주라. 응?? 응??”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궁시렁...”
나 참... 쪽팔려서... 어찌 이 오빠의 마음을 하나도 생각해주지 않는 것인가. 다행히 비가 오지 않아서 그냥 밖으로 나왔다. 아직 4월이라 조금 추우므로 청바지에 남방을 입고 밖으로 향했다. 지금 동생은... 허리까지 오는 생머리에 흰색 와이셔츠에 검은 색 통바지에 굽 높은 구두... 중학생이라 보기에는 좀 어려움이 있는 복장이다. 키도 168이나 되니... 이건 어른이지... 그나저나... 밥 먹으러 가는데 왜 굳이 이런 복장을 하는 것인지...
“이게 다 오빠를 위한 거야.”
오빠를 위한다면 제발 평범한 중학생처럼 행동해주지 않겠습니까하고 한마디 쏘려다가 고개를 숙여버렸다. 나는 이 녀석에게 절대 이길 수 없다.
“순대나 먹자.”
“싫어. 나는 스테이크가 먹고 싶은걸?”
“저 앞에 돈가스 집까지는 내가 양보해주마.”
“내가 어떻게 마련한 자리인데. 스테이크 밑으로는 절대 안돼.”
그렇게 해서 고급 레스토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음... 저는 블레이드 스테이크 하나요. 오빠는?”
“난... 순대가 먹고 싶었는데...”
“손...님? 순대는 없는데요?”
“젠장. 저도 같은 걸로...”
“고기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웰던(Well-done)으로요.”
“난 그냥 바짝 태워주시구려(BAZZAK TAEWERJUSIGULYR).”
그렇게 택시까지 타고서 서울 중심부로 파고든 우리는 TGI로 갔다.
주문 받는 ‘아저씨’(기분이 더러워서 아저씨라고 한다.)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자 미나가 종이를 꺼내고는 막 적어가기 시작했다.(그런 건 다 어디서 준비했대?) 종이를 받아든 웨이터 아저씨는 알았다는 듯이 돌아갔다.
“오빠. 아직도 삐진 거야?”
“하.. 편한 일상을 위하여 나는 집을 뛰쳐나왔노라. 순대여...”
그러자 미나가 웃으면서 -자기 딴에는 귀엽게 보였겠지만 내게는 한없이 가증스럽게 보였다.- 말했다.
“정말 오빠는 그런 점이 못 말린다니까.”
레스토랑 안은 이상하게 오늘따라 조금 많아보였다. 분위기에 안 맞게... 그 중 몇몇 우리를 보면서 얘기를 나누는데 아무래도 여자가 아깝다는 소리를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특히 저 쪽 버터남자 두 명은 그 증세가 더 심각해 보였다. 막 대 놓고 윙크를 날린다.(한 놈은 미나 몰라 나한테 가운데 손가락도 내민다.) 저것들이 레스토랑의 예의는 배운 것 일까나... 아무래도 조금 뒤에 이쪽으로 자리를 이동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저것들도 돈 꽤 있는 것들인 것 같았다.
“대충 먹고 나가자.”
“응? 이미 후식까지 다 시켰는데?”
아무래도 내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각은 짧아야 1시일 것 같았다.
고기를 기다리는데 도대체 1분이 1시간처럼... 느껴졌다. 지겹다. 순대는 시장이라서 시끌벅적한 것이 나에게 딱 맞지만... 조금 뒤에 나온 야채 스프가 어찌 그렇게 기쁘던지...
그리고 조금 더 후에야 드디어 고기가 왔다. 내가 처음에 시켰던 바짝 태운 고기가 아닌 웰던의 고기...
웨이터가 잘라주려는 것을 뿌리치고는 내가 잘랐다. 성질대로 자르다보니 한 조각의 1변당 1cm가 된 것 같다.
“오빠. 분위기 좋다. 그치?”
아직 미나는 내 기분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 같다. 아니면 일부러 저러는 걸지도.
“사실... 나는 오빠랑 이렇게 나온 게 정말 좋은 거 알아?”
“무슨 말이냐?”
“오빠는 정말 둔해.”
그렇게 찡긋 웃고는 고기 조각을 포크로 하나 찍고는 입 안으로 넣었다.
“후... 너 정말 16살이 맞긴 한 거냐?”
“아마... 아닐걸?”
몇 번씩 말을 주고받다보니 기분이 대충 풀어지긴 했다. 대화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효과가 있는가보다.
나는 버터나이프로 버터를 한 조각 떼어내어 접시에 옮기고는 빵에 버터를 발랐다. 그리고는 입 안에 넣고는 열심히 씹었다. 그런데 그 때 미나가 하는 말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나, 오빠한테 시집 갈 꺼다.”
“컥!! 컥!! 컥!! 컥!! 무, 물!!”
나에게 유일한 약점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유미나’겠지요?
도대체가 애가 할 말 못할 말을 가릴 줄을 모르니... 겉모습은 이미 어른이지만 머리는 아직 중 3이 맞긴 한가보다. 어쩌면 더 어릴지도. 그래도 아까 그 사건 때문에 그 남자 2명이 다가오진 않았다. 아무래도 이상하게 보인 것 같았다.
“뭐 어때, 나랑 오빠는 피도 안 이어져있는데.”
“내가 너한테 장가를 가면 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 그냥 애가 못하는 소리가 없어요.”
“10 년 안에 장 지지게 될 거야. 훗.”
나는 그 때 녀석의 말을 장난으로 여겼지요.
집에 가는데도 내 팔에 팔짱을 낀 미나는 여전히 싱글벙글이다.
“헤헤. 말했다. 말했다.”
그래... 백날 그 말만 반복해라. 택시를 타자고 했는데도 억지로 걸으려는 녀석 때문에 나는 이리 저리 한숨만 내쉬었다.
“난 분명 너 때문에 100살까지의 내 명이 50으로 단축되었을 거야.”
“이왕 단축 되는 거 여기서 그냥 죽지?”
“나한테 시집간다는 때는 언제고...”
“아참, 그렇지?”
이 여자. 데려갈 남자 정말 불쌍하다.
정말 불쌍합니다. 내 미래가.
앞에 작은 횡단보도가 보였다. 미나와 나는 횡단보도로 발걸음을 향했다. 다가올 엄청난 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걸까요?
신호등이 초록색 빛으로 바뀌었다.
미나의 생각을 지금이라도 바꿀 순 없겠지요?
한 걸음 앞으로 간 순간...
내 마음도 내가 못 바꾸겠는데 미나의 마음을 과연 바꿀 수 있을까요?
엄청난 속도의 폭주한 자동차가 우리를 덮쳤다. 아무래도 음주운전인 것 같았다.
그 녀석은 분명 미쳤을 거예요. 에휴...
기겁을 하는 주변의 사람들... 그리고 입을 손으로 가리는 미나.. 그 때 내 왼손 약지의 루비가 푸른 색 빛이 돌았다는 것을 본 건 나의 착각이었을까? 그 후에 필름이 끊겼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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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쓰는 소설인데 재미있게 봐줘요.. 잉잉 ㅡㅡa
다음 편은... 언제 나올 지는 나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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