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공수보병연대. -Fire and Menu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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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공수보병연대 2화. -Fire and Menuever-
렉미안의 몸이 허공에 부웅 떴다가 중력에 끌려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렉미안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가만히 숫자를 셌다.
"초강하. 천. 이천. 삼천..."
각종 정보와 아군과의 화상 교신을 담당하는 헬멧의 스캐너에 숫자가 떠올랐다. 그 숫자는 3000에서 계속 솟구치며 4000에 도달하려 하고 있었다. 4000이 되는 순간 그가 등에 둘러 멘 역추진 제트팩이 작동하며 강하 속도를 줄여줄 것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잘못이 있어 그것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는 싸우지도 못하고 죽는 것이다.
-취익!!
지대공 미사일이 연달아 터지는 시끄러운 와중에도 렉미안은 분명히 재트팩의 노즐이 가동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노즐의 추진 방향을 조절하며 적절한 착지 위치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사방이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그의 발 밑에는 모든 공수부대원들이 원하는 지형인 초원 대신 빽빽한 나무가 가득 찬 숲이 바람에 남실거리며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첫번째 전투 강하를 겪은 역전의 고참인 그도 이런 위치에서 안정적인 착지를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어쨌든 숲에서 최대한 피해보기 위해 노즐의 분사 방향을 왼쪽으로 꺾으며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털썩.
장갑복의 완충기가 작동하며 착지의 충격을 덜어주었다. 렉미안은 움직이지 않고 눈동자만 굴려가며 주위를 주시했다. 다행히도 적의 기척은 없었다. 그는 우선 조심스럽게 제트팩을 떨어뜨렸다. 제트팩이 장갑복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에 나뒹굴며 초록빛 풀을 깔아뭉겠다. 수풀이 바람에 이리저리 흐드러지게 흔들렸다. 렉미안은 재빠르게 제트팩의 안쪽에 있었던 개인 군장에서 그의 개인화기를 꺼냈다. 육중한 크기의 기관포가 손에 단단히 잡혔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대공포화가 다시 귓전을 울렸다. 밤의 장막이 작렬하는 폭발에 찢겨나가고 있었다.
같은 시각. 무디 병장 일행.
F중대의 1소대 소속 무디 병장은 운이 좋았다. 그는 착지한지 얼마 안되어 같은 분대의 대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떨어진 자리는 집결지에서도 상당히 가까운 곳이었다. 다른 대원들과 몇 번 더 합류한 뒤 그들은 집결지로 가는 지름길인 작은 샛길을 일렬 종대로 열을 지어 이동했다. 선두에는 아까 전 빨리 뛰어내리자며 욕지거리를 해댔던 엘더가 섰고, 그 뒤로 분대원들이 따랐다.
"근데 분대장님."
뒤에서 대기갑 로켓포를 들고 따라오던 말라키가 무디에게 조용히 물었다.
"왜."
무디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집결지가 왜 다리 근처입니까? 그것도 우리 중대만."
"브리핑할 때 졸았나?"
".....윽."
무디가 걷다 말고 뒤돌아보았다. 헬멧 유리에 가리긴 했지만 말라키의 당황해하는 표정이 보이는 듯 했다.
"이번엔 졸지 말고 잘 듣게. 어차피 그놈의 멀미약 때문에 말짱하겠지만 말야. 그 다리 때문에 집결지가 정해진거야."
"예?"
무디는 통신기에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고, 핀잔을 주듯 말했다.
"생긴 것만큼 멍청하군. 상병. 다리를 접수해야 하는게 우리의 임무다. 무지하게 중요한 다리야. 나머지는 전투에 들어가면 알게 될거다."
"예.."
대공 포화로 시끄러웠던 랜딩 존에서 벗어나자 주위는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밤을 잊은 새 몇 마리만이 구억구억 울다가 장갑복을 두른 병사들이 걷는 소리에 놀라 푸드득거리며 사라질 뿐이었다. 그러나 평화로운 와중에도 무디 일행은 헬멧의 열영상 센서와 야간투시 스캐너로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한동안 그런 상태가 지속되었다.
거의 집결지에 도달할 무렵, 천천히 걷고 있던 엘더가 주먹을 위로 들며 그 자리에서 몸을 낮췄다. 대원들 모두가 일제히 한쪽 다리의 무릎을 꿇고 사방으로 총을 겨눴다. 불안한 정적이 흘렀다.
"뭔가?"
무디가 소리가 새어나갈새라 아주 작은 목소리로 엘더에게 물었다.
"나무덤불에 누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엘더가 왼쪽에 있는 덤불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디는 조심스럽게 엘더 앞으로 걸어나오더니 장갑복의 등화관제용 라이트를 두번 껐다 켰다 했다. 엘더가 나무 덤불로 기관포를 돌렸다. 대원들이 모두 숨을 죽였다. 덤불에서 희미한 불빛이 세번 반짝거렸다. 정확한 신호였다. 무디는 손을 두번 까닥였다. 그러자 덤불에서 장갑복을 입은 병사 두 명이 튀어나왔다. 놀랍게도 한 명은 렉미안이었다. 대원들이 모두 놀랐다.
"중대장님? 정말 중대장님이십니까?"
"이런. 무디였군."
렉미안이 기관포를 내리며 대답했다. 그의 옆에는 어깨 장갑에 1 연대의 마크가 새겨진 장갑복을 입은 병사가 서있었다. 아마도 잘못 떨어진 것일게다. 무디는 그를 흘끗 보더니 렉미안에게만 통신 채널을 열고 물었다.
"옆의 촌놈은 누굽니까?"
"잘못 떨어진 1 연대 병사야. 우선 우리 중대에 합류시키지."
"예."
다시 대원들이 움직였다. 어느새 그들의 숫자는 1개 소대급으로 불어나 있었다.
약 한시간 후. 그들은 무사히 집결지에 도착했다. 이미 몇몇 중대원들이 도착해 있었다. 렉미안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다리를 스캐너의 줌 인 기능으로 자세히 관찰했다. 다리의 입구에는 검문소를 가장한 벙커가 있었고, 긴장을 푼 적 몇명이 2인 1조로 순찰을 돌고 있었다. 좀 더 접근해야 정확한 동태를 알 수 있겠지만, 적의 숫자는 2개 소대 정도인 것 같았다. 그는 뒤로 돌아 대원들의 숫자를 확인했다. 전부 다 온 것은 아니지만 약 80명 가량이 온 상태였다. 그 정도면 병력은 충분했다. 또한 대기갑 로켓포나 소대지원용 중기관포를 든 대원도 충분했고, 기습적으로 돌입한다면 다리를 점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중위님."
누군가가 렉미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1소대의 소대장인 라미아였다.
"아. 라미아. 대원들의 정확한 숫자는 파악했나?"
"예. 85명입니다. 나머지가 올때까지 기다릴까요?"
"아니. 더이상 지체하면 적이 다리에 증원 병력을 파견할거다. 시간이 없어."
라미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대원들을 준비시키겠습니다."
"알겠네."
라미아는 헬멧을 쓰며 대원들을 일으켜 세웠다. 렉미안은 기관포의 장전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긴장감이 온 몸을 휩싸고 돌기 시작했다. 대원들이 그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대부분은 아직 헬멧의 유리를 닫지 않았다. 그는 대원들의 눈을 찬찬히 훑었다. 흥분과 긴장감에 가득 차 있는 눈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좋아. 우리는 이제부터 다리를 점거하러 간다. 적의 병력은 약 2개 소대 가량이며, 정보에 따르면 벙커에 다수의 중기관포가 배치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확실한 엄호와 대담한 돌입이 있다면, 벙커를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렉미안의 브리핑에 대원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그는 한발짝 옆으로 움직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기관포수들은 나와 각 소대장과 함께 돌입한다. 분대당 하나씩 지급되어 있는 60mm 고폭탄 발사기를 적절히 활용하면 더욱 우리의 진입이 쉬워질 것이다. 중기관포팀과 대기갑 로켓포팀은 벙커에 화력을 집중하도록. 거치할 위치는 각 분대장들이 지시해 줄 것이다."
대원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렉미안은 돌 옆에 세워놓은 기관포를 집어들었다.
"자. 이동한다."
헬멧 유리를 닫으며 중대원들이 각자의 장비를 챙기고 그의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공포화가 멈춘 하늘은 다시 어둠에 잠들었다.
병사들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수풀에 몸을 숨기고 최대한 몸을 숙인채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때까지 뛰었다. 무거운 대기갑 로켓포를 든 대원들이 힘들어 했지만 그들은 내색하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뛰었을까. 정지 명령이 떨어졌다. 다리에 다다른 것이다. 잠시 숨을 돌린 분대장들이 중기관포와 로켓포를 거치할 위치를 지정해주기 위해 대열의 뒤로 돌아갔다. 렉미안은 다시 벙커와 그 주위의 적을 면밀히 관찰했다. 이제는 확실히 거리가 가까워진 터라 벙커의 무장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중기관포가..하나..둘...셋...넷.."
그는 카메라를 옆으로 돌렸다. 다리를 겨누고 있는 중기관포 진지가 눈에 들어왔다. 철벽으로 둘러쌓은 그 진지에는 기관포가 두 개 거치되어 있었고, 각 포마다 사수와 부사수가 한명씩 배치되어 있었다. 렉미안은 다시 벙커의 우측으로 시선을 돌렸다. 구경 145mm 대전차포가 조작병이 없는 채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아마 다리를 건너려고 덤벼들 아군의 기갑부대를 상대하기 위해 급하기 배치한 것 같았다. 벙커에 포 조작병이 없다면 그리 큰 위협은 되지 않을 듯 했다. 렉미안은 관측을 마치고는 다시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가 돌아오자 무디가 마중이라도 하듯 보고했다.
"중기관포와 로켓포의 배치를 마쳤습니다. 목표도 모두 알려두었습니다."
"좋아. 엄호팀의 지휘는 누가 맡았나?"
"라미아 소위님입니다."
"그 친구라면 믿을 수 있지."
렉미안은 헬멧 스캐너 왼쪽 위의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3분 후에 돌입한다. 고폭탄 발사기 사수들로 우선 보초와 기관포 진지를 제압한 뒤에 벙커에 모든 화력을 집중한다. 물론 적들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므로 항상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옛."
벙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애수어린 여성의 목소리가 대기 속으로 사라질 듯 말 듯 희미하게 울려나오는 반주를 타고 주위의 침묵을 잔잔히 흩뜨렸다. 예전에 카란토 공국에서 살다 온 라미아 소위가 가만히 가사를 웅얼거렸다. 흔한 사랑 얘기를 담은 가사였다.
"나는 버려졌어요...그 사람에게...그 사람은 나를 단호하게 떠났어요...아무렇지도 않게...그가 그랬는데도..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바보같이..."
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었다. 라미아는 곧 따라부르기를 멈췄다. 그러나 노래는 구슬프게 이어졌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나오는 노래는 대원들에게 약간의 짜증을 안겨줄 뿐이었다. 시간은 사라지는 노랫말처럼 천천히 흘러갔다.
렉미안이 일어섰다. 그리고 작지만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사격!!"
노래가 사라졌다. 대신 고폭탄 발사기의 특유의 발사음이 대기를 갈라찢었다. 유탄이 하늘 높이 궤적을 그리며 솟아오르다가 적의 중기관포 진지에 정확하게 꽂혔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포구도 채 돌리지 못한 병사의 몸이 허공으로 튀어올랐다가 떨어졌다. 놀란 보초들이 유탄이 날아온 곳으로 돌아섰다. 고폭탄 발사기가 한바탕 적진을 휩쓸자 이번엔 중기관포와 로켓포가 바톤을 넘겨받았다. 기관포를 쏠려고 장전 손잡이를 당기던 병사들이 날아드는 로켓탄을 보고 혼비백산했다. 렉미안은 이를 놓치지 않고 명령 대신 자신이 먼저 달려나갔다. 무디 병장이 그의 뒤를 잇자 다른 병사들도 일제히 몸을 일으켜 세워 벙커로 돌진했다.
-콰앙!!!
벙커의 총안구로 정확히 빨려들어간 로켓탄이 폭발하며 내부를 휩쓸었다. 장갑복과 함께 섞인 몸조각이 튀어나와 이리저리 날렸다. 보초들이 돌진하는 렉미안과 대원들을 향해 총을 쏴댔지만, 중기관포의 엄호에 얼마 못가 제압당했다.
"크리젠바움! 분대원과 함께 벙커를 수색해! 나머지는 잔당을 소탕한다!"
렉미안은 신속하게 명령을 내리고 벙커의 뒤에 있는 주택의 창문을 깨고 수류탄을 던져넣고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폭음과 함께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뒤를 따르던 통신병 러즈를 부르고 문을 걷어차 안으로 들어갔다. 수류탄 한 방에 폐허가 된 응접실이 그를 맞았다. 폭심의 중앙에 있었는지 미쳐 장갑복을 챙겨입지 못한 갈기갈기 찢겨져 나간 시신이 탁자에 널부러져 있었다. 그는 수신호로 러즈에게 2층을 수색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자신은 응접실과 그 주변에서 뭔가 정보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하지만 기대와는 반대로, 그 흔한 지도나 상부에서 내려온 문서같은 건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약간 실망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올라오자마자 러즈가 황급히 그에게 외쳤다.
"중대장님! 중대장님! 다리 반대편을 보십시오!"
"뭐야?"
그는 무신경한 얼굴로 다리 반대쪽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그 표정은 순식간에 당황으로 돌변했다.
쇳소리를 내며 자신들을 도륙하기 위해 천천히 굴러오는 그것-
그것은 전차였다.
렉미안의 몸이 허공에 부웅 떴다가 중력에 끌려 지상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렉미안은 눈도 깜짝하지 않고 가만히 숫자를 셌다.
"초강하. 천. 이천. 삼천..."
각종 정보와 아군과의 화상 교신을 담당하는 헬멧의 스캐너에 숫자가 떠올랐다. 그 숫자는 3000에서 계속 솟구치며 4000에 도달하려 하고 있었다. 4000이 되는 순간 그가 등에 둘러 멘 역추진 제트팩이 작동하며 강하 속도를 줄여줄 것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잘못이 있어 그것이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는 싸우지도 못하고 죽는 것이다.
-취익!!
지대공 미사일이 연달아 터지는 시끄러운 와중에도 렉미안은 분명히 재트팩의 노즐이 가동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한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천천히 노즐의 추진 방향을 조절하며 적절한 착지 위치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사방이 혼란스러웠다. 게다가 그의 발 밑에는 모든 공수부대원들이 원하는 지형인 초원 대신 빽빽한 나무가 가득 찬 숲이 바람에 남실거리며 어둠 속에서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첫번째 전투 강하를 겪은 역전의 고참인 그도 이런 위치에서 안정적인 착지를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어쨌든 숲에서 최대한 피해보기 위해 노즐의 분사 방향을 왼쪽으로 꺾으며 천천히 땅으로 내려왔다.
-털썩.
장갑복의 완충기가 작동하며 착지의 충격을 덜어주었다. 렉미안은 움직이지 않고 눈동자만 굴려가며 주위를 주시했다. 다행히도 적의 기척은 없었다. 그는 우선 조심스럽게 제트팩을 떨어뜨렸다. 제트팩이 장갑복에서 떨어져 나와 바닥에 나뒹굴며 초록빛 풀을 깔아뭉겠다. 수풀이 바람에 이리저리 흐드러지게 흔들렸다. 렉미안은 재빠르게 제트팩의 안쪽에 있었던 개인 군장에서 그의 개인화기를 꺼냈다. 육중한 크기의 기관포가 손에 단단히 잡혔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대공포화가 다시 귓전을 울렸다. 밤의 장막이 작렬하는 폭발에 찢겨나가고 있었다.
같은 시각. 무디 병장 일행.
F중대의 1소대 소속 무디 병장은 운이 좋았다. 그는 착지한지 얼마 안되어 같은 분대의 대원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들이 떨어진 자리는 집결지에서도 상당히 가까운 곳이었다. 다른 대원들과 몇 번 더 합류한 뒤 그들은 집결지로 가는 지름길인 작은 샛길을 일렬 종대로 열을 지어 이동했다. 선두에는 아까 전 빨리 뛰어내리자며 욕지거리를 해댔던 엘더가 섰고, 그 뒤로 분대원들이 따랐다.
"근데 분대장님."
뒤에서 대기갑 로켓포를 들고 따라오던 말라키가 무디에게 조용히 물었다.
"왜."
무디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집결지가 왜 다리 근처입니까? 그것도 우리 중대만."
"브리핑할 때 졸았나?"
".....윽."
무디가 걷다 말고 뒤돌아보았다. 헬멧 유리에 가리긴 했지만 말라키의 당황해하는 표정이 보이는 듯 했다.
"이번엔 졸지 말고 잘 듣게. 어차피 그놈의 멀미약 때문에 말짱하겠지만 말야. 그 다리 때문에 집결지가 정해진거야."
"예?"
무디는 통신기에 들리지 않게 한숨을 내쉬고, 핀잔을 주듯 말했다.
"생긴 것만큼 멍청하군. 상병. 다리를 접수해야 하는게 우리의 임무다. 무지하게 중요한 다리야. 나머지는 전투에 들어가면 알게 될거다."
"예.."
대공 포화로 시끄러웠던 랜딩 존에서 벗어나자 주위는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밤을 잊은 새 몇 마리만이 구억구억 울다가 장갑복을 두른 병사들이 걷는 소리에 놀라 푸드득거리며 사라질 뿐이었다. 그러나 평화로운 와중에도 무디 일행은 헬멧의 열영상 센서와 야간투시 스캐너로 주위를 경계하고 있었다. 한동안 그런 상태가 지속되었다.
거의 집결지에 도달할 무렵, 천천히 걷고 있던 엘더가 주먹을 위로 들며 그 자리에서 몸을 낮췄다. 대원들 모두가 일제히 한쪽 다리의 무릎을 꿇고 사방으로 총을 겨눴다. 불안한 정적이 흘렀다.
"뭔가?"
무디가 소리가 새어나갈새라 아주 작은 목소리로 엘더에게 물었다.
"나무덤불에 누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엘더가 왼쪽에 있는 덤불을 가리키며 말했다. 무디는 조심스럽게 엘더 앞으로 걸어나오더니 장갑복의 등화관제용 라이트를 두번 껐다 켰다 했다. 엘더가 나무 덤불로 기관포를 돌렸다. 대원들이 모두 숨을 죽였다. 덤불에서 희미한 불빛이 세번 반짝거렸다. 정확한 신호였다. 무디는 손을 두번 까닥였다. 그러자 덤불에서 장갑복을 입은 병사 두 명이 튀어나왔다. 놀랍게도 한 명은 렉미안이었다. 대원들이 모두 놀랐다.
"중대장님? 정말 중대장님이십니까?"
"이런. 무디였군."
렉미안이 기관포를 내리며 대답했다. 그의 옆에는 어깨 장갑에 1 연대의 마크가 새겨진 장갑복을 입은 병사가 서있었다. 아마도 잘못 떨어진 것일게다. 무디는 그를 흘끗 보더니 렉미안에게만 통신 채널을 열고 물었다.
"옆의 촌놈은 누굽니까?"
"잘못 떨어진 1 연대 병사야. 우선 우리 중대에 합류시키지."
"예."
다시 대원들이 움직였다. 어느새 그들의 숫자는 1개 소대급으로 불어나 있었다.
약 한시간 후. 그들은 무사히 집결지에 도착했다. 이미 몇몇 중대원들이 도착해 있었다. 렉미안은 희미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다리를 스캐너의 줌 인 기능으로 자세히 관찰했다. 다리의 입구에는 검문소를 가장한 벙커가 있었고, 긴장을 푼 적 몇명이 2인 1조로 순찰을 돌고 있었다. 좀 더 접근해야 정확한 동태를 알 수 있겠지만, 적의 숫자는 2개 소대 정도인 것 같았다. 그는 뒤로 돌아 대원들의 숫자를 확인했다. 전부 다 온 것은 아니지만 약 80명 가량이 온 상태였다. 그 정도면 병력은 충분했다. 또한 대기갑 로켓포나 소대지원용 중기관포를 든 대원도 충분했고, 기습적으로 돌입한다면 다리를 점거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중위님."
누군가가 렉미안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1소대의 소대장인 라미아였다.
"아. 라미아. 대원들의 정확한 숫자는 파악했나?"
"예. 85명입니다. 나머지가 올때까지 기다릴까요?"
"아니. 더이상 지체하면 적이 다리에 증원 병력을 파견할거다. 시간이 없어."
라미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대원들을 준비시키겠습니다."
"알겠네."
라미아는 헬멧을 쓰며 대원들을 일으켜 세웠다. 렉미안은 기관포의 장전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긴장감이 온 몸을 휩싸고 돌기 시작했다. 대원들이 그의 주위로 모여들었다. 대부분은 아직 헬멧의 유리를 닫지 않았다. 그는 대원들의 눈을 찬찬히 훑었다. 흥분과 긴장감에 가득 차 있는 눈이 총총히 빛나고 있었다.
"좋아. 우리는 이제부터 다리를 점거하러 간다. 적의 병력은 약 2개 소대 가량이며, 정보에 따르면 벙커에 다수의 중기관포가 배치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확실한 엄호와 대담한 돌입이 있다면, 벙커를 쉽게 무력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렉미안의 브리핑에 대원들은 모두 숨을 죽였다. 그는 한발짝 옆으로 움직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기관포수들은 나와 각 소대장과 함께 돌입한다. 분대당 하나씩 지급되어 있는 60mm 고폭탄 발사기를 적절히 활용하면 더욱 우리의 진입이 쉬워질 것이다. 중기관포팀과 대기갑 로켓포팀은 벙커에 화력을 집중하도록. 거치할 위치는 각 분대장들이 지시해 줄 것이다."
대원들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렉미안은 돌 옆에 세워놓은 기관포를 집어들었다.
"자. 이동한다."
헬멧 유리를 닫으며 중대원들이 각자의 장비를 챙기고 그의 뒤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공포화가 멈춘 하늘은 다시 어둠에 잠들었다.
병사들은 재빠르게 움직였다. 수풀에 몸을 숨기고 최대한 몸을 숙인채 숨이 턱밑까지 차오를때까지 뛰었다. 무거운 대기갑 로켓포를 든 대원들이 힘들어 했지만 그들은 내색하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뛰었을까. 정지 명령이 떨어졌다. 다리에 다다른 것이다. 잠시 숨을 돌린 분대장들이 중기관포와 로켓포를 거치할 위치를 지정해주기 위해 대열의 뒤로 돌아갔다. 렉미안은 다시 벙커와 그 주위의 적을 면밀히 관찰했다. 이제는 확실히 거리가 가까워진 터라 벙커의 무장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중기관포가..하나..둘...셋...넷.."
그는 카메라를 옆으로 돌렸다. 다리를 겨누고 있는 중기관포 진지가 눈에 들어왔다. 철벽으로 둘러쌓은 그 진지에는 기관포가 두 개 거치되어 있었고, 각 포마다 사수와 부사수가 한명씩 배치되어 있었다. 렉미안은 다시 벙커의 우측으로 시선을 돌렸다. 구경 145mm 대전차포가 조작병이 없는 채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아마 다리를 건너려고 덤벼들 아군의 기갑부대를 상대하기 위해 급하기 배치한 것 같았다. 벙커에 포 조작병이 없다면 그리 큰 위협은 되지 않을 듯 했다. 렉미안은 관측을 마치고는 다시 병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그가 돌아오자 무디가 마중이라도 하듯 보고했다.
"중기관포와 로켓포의 배치를 마쳤습니다. 목표도 모두 알려두었습니다."
"좋아. 엄호팀의 지휘는 누가 맡았나?"
"라미아 소위님입니다."
"그 친구라면 믿을 수 있지."
렉미안은 헬멧 스캐너 왼쪽 위의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3분 후에 돌입한다. 고폭탄 발사기 사수들로 우선 보초와 기관포 진지를 제압한 뒤에 벙커에 모든 화력을 집중한다. 물론 적들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므로 항상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옛."
벙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다. 애수어린 여성의 목소리가 대기 속으로 사라질 듯 말 듯 희미하게 울려나오는 반주를 타고 주위의 침묵을 잔잔히 흩뜨렸다. 예전에 카란토 공국에서 살다 온 라미아 소위가 가만히 가사를 웅얼거렸다. 흔한 사랑 얘기를 담은 가사였다.
"나는 버려졌어요...그 사람에게...그 사람은 나를 단호하게 떠났어요...아무렇지도 않게...그가 그랬는데도..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바보같이..."
전장에는 어울리지 않는 말들이었다. 라미아는 곧 따라부르기를 멈췄다. 그러나 노래는 구슬프게 이어졌다. 하지만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나오는 노래는 대원들에게 약간의 짜증을 안겨줄 뿐이었다. 시간은 사라지는 노랫말처럼 천천히 흘러갔다.
렉미안이 일어섰다. 그리고 작지만 단호하게 명령을 내렸다.
"사격!!"
노래가 사라졌다. 대신 고폭탄 발사기의 특유의 발사음이 대기를 갈라찢었다. 유탄이 하늘 높이 궤적을 그리며 솟아오르다가 적의 중기관포 진지에 정확하게 꽂혔다. 갑작스러운 공격에 포구도 채 돌리지 못한 병사의 몸이 허공으로 튀어올랐다가 떨어졌다. 놀란 보초들이 유탄이 날아온 곳으로 돌아섰다. 고폭탄 발사기가 한바탕 적진을 휩쓸자 이번엔 중기관포와 로켓포가 바톤을 넘겨받았다. 기관포를 쏠려고 장전 손잡이를 당기던 병사들이 날아드는 로켓탄을 보고 혼비백산했다. 렉미안은 이를 놓치지 않고 명령 대신 자신이 먼저 달려나갔다. 무디 병장이 그의 뒤를 잇자 다른 병사들도 일제히 몸을 일으켜 세워 벙커로 돌진했다.
-콰앙!!!
벙커의 총안구로 정확히 빨려들어간 로켓탄이 폭발하며 내부를 휩쓸었다. 장갑복과 함께 섞인 몸조각이 튀어나와 이리저리 날렸다. 보초들이 돌진하는 렉미안과 대원들을 향해 총을 쏴댔지만, 중기관포의 엄호에 얼마 못가 제압당했다.
"크리젠바움! 분대원과 함께 벙커를 수색해! 나머지는 잔당을 소탕한다!"
렉미안은 신속하게 명령을 내리고 벙커의 뒤에 있는 주택의 창문을 깨고 수류탄을 던져넣고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폭음과 함께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뒤를 따르던 통신병 러즈를 부르고 문을 걷어차 안으로 들어갔다. 수류탄 한 방에 폐허가 된 응접실이 그를 맞았다. 폭심의 중앙에 있었는지 미쳐 장갑복을 챙겨입지 못한 갈기갈기 찢겨져 나간 시신이 탁자에 널부러져 있었다. 그는 수신호로 러즈에게 2층을 수색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자신은 응접실과 그 주변에서 뭔가 정보가 될 만한 것을 찾았다. 하지만 기대와는 반대로, 그 흔한 지도나 상부에서 내려온 문서같은 건 코빼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약간 실망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올라오자마자 러즈가 황급히 그에게 외쳤다.
"중대장님! 중대장님! 다리 반대편을 보십시오!"
"뭐야?"
그는 무신경한 얼굴로 다리 반대쪽을 내다보았다. 그러나 그 표정은 순식간에 당황으로 돌변했다.
쇳소리를 내며 자신들을 도륙하기 위해 천천히 굴러오는 그것-
그것은 전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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