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공간 - 에피소드2. 칸자리아 호위임무
페이지 정보
본문
"여어~ 시아 일어날 시간이다!"
라면서 벌컥 방문을 열어버린 사람은 시엘이었다. 보통, 17세 소녀의 방문을 이렇게 열어젖히면 대부분은 비명소리가 들려올테지만, 이미 평범의 범위를 가뿐히 벗어난 이 두 남매에겐 이런 일은 일상다반사였다. 다만,
"우으응─── 어, 지금 몇시?"
"끼야아아아아아아악!"
10살의 조금은 조숙한 소녀에겐 조금은 충격적인 진입이라고 볼 수도 있었겠다.
* * *
"뭐, 뭐야아아!?"
붉게 물든 뺨을 부여잡고 엉덩방아를 찧는 시엘은 오히려 이런 상황이 처음인듯이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것은 방의 원주인인 시아가 아니라, 시아의 장난감으로 돌변한 듯이 아주 귀여운 파자마를 걸친채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거친숨을 몰아쉬며 시엘을 죽일듯이 노려보는 소녀였다.
"여, 여성의 방에 이렇게 무식하게 들어오다니. 아저씨는 매너란게 없군요!"
"아, 아저씨라니! 게다가 여긴 시아방이잖아! 원래부터 이렇게 들어와도 상관 없었다고!"
뭇 남성들이나 정상적인 체계하에서 자라난 여성들이라면 시엘의 말을 듣는 즉시 '여성의 적'으로 인식할법도 했지만, 시아의 평소 행동거지나, 시엘의 성격등을 잘 알고있는 사람들이 보면 오히려 시엘의 행동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단, 그것을 전혀 모르는 이 소녀에겐 신선한── 아니 파격적인 쇼크였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는사이 시아는 아스타롯사의 뒷덜미를 낚아채서 자신의 침대 뒷켠으로 치우고서는 말했다.
"오빠, 지금 몇시이?"
"8시 25분이다. 아침식사를 담은 접시는 여기 둘테니까 둘이서 맛있게 먹으라고."
"으응. 땡큐우~"
시엘은 그럼 이라고 중얼거리면서 방문을 열고서 나가버렸다. 시아는 방문을 다시 잘 닫고서 아침식사가 담긴 접시를 천천히 가져왔다.
"어, 언니! 저런 아저씨가 방문을 벌컥벌컥 열어젖히고 들어오는데, 그런반응이 뭐에요?"
그러자 시아는 식사가 담긴 접시를 집어들며 뒷머리를 긁더니, 가만히 생각에 잠긴듯이 있다가 아스타롯사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괜찮아. 저 인간은 나의 오빠니까. 친.오.빠."
그러자 아스타롯사는 시아의 팔을 흔들며 말했다.
"그.러.니.까. 만 18세가 넘은 남녀끼리 뭔가 숨길 것도 없나요?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이건─── 그리고 10살이라고 해도 전 여자라구요!"
조숙한 소녀에게 있어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는 시아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시엘과 지내온 시아는 아스타롯사가 화내는 이유에 대해선 너무도 무뎌져 있었다. 애시당초 시엘이라는 사람은 여동생의 몸매라던가, 여성성에 관해서는 눈꼽만치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다른 여성에게서 그런것을 찾으려는───
"무으── 아침먹기 전에 내가 왜 이런걸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거야? 잘들어 롯사. 시엘이란 사람은 그냥 아주 단순해서 아침식사를 가져왔을 뿐이야. 그러니까 화를 내지 않아도 좋아."
"에엑!? 그럼 언니는 아무 남자나 다 방문을 벌컥벌컥 열어도 상관 없다는 소리에요?"
그러자 시아는 포크를 접시에 내려 꽂으며 말했다.
"뭐, 하이드 오빠나 카렌이 그런짓을 했다면 죽여버릴지도 모르겠지만───"
* * *
"좋은 아침이에요!"
"시아양 일어나셨는가?"
여관 홀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던 설경이 반갑게 시아를 향해서 인사를 건내주었다. 시아는 주위를 둘러보며 설경이 앉아있는 테이블의 맞은 편에 앉으며 물었다.
"어라? 다른 사람들은요?"
"시엘과 하이드, 태상, 카렌은 4명이서 퀘스트를 받아가지고 나갔다네. 뭐라고 했더라? 아, 그래! 칸자리아 산에 간다고 했었네. 달다이라의 대부호인 엑자일 백작이 운영하는 상단이 친한 엘프와 직접거래를 한다더군. 덕분에 많은 용병을 고용한다는 소식에 4명도 같이 간게지. 나야 뭐, 이렇게 다친 몸으로 가봤자 별수가 없기에 남은 것일세."
라면서 설명을 마쳤다. 시아는 설명을 다 듣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충 다들 원래대로 돌아갔군요."
"그런셈이지. 그런데 시아양? 아스타롯사양이 안보이네만?"
"아~ 롯사~ 이리 내려오지 않고 뭐하는거야~"
마치 강아지를 부르듯이 콧소리를 넣어가며 말하는 시아를 보며 설경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나 이내 시야에 나타난 아스타롯사를 보며 설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저기 언니. 이, 이, 이런 옷은 조금───"
"괜찮아~! 롯사는 너~무 너~무 귀여워서 잘 어울린다고~"
너풀너풀 거리는 리본을 둘째치고, 미니스커트풍의 일본 무녀복을 입은 아스타롯사는 확실히 귀여웠다. 하지만 설경은 귀엽다는 생각보다는 책을 펴고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벌써 애칭인가."
"설경 오빠! 귀엽죠? 그쵸? 네에?"
설경은 책에서 눈조차 때지 않고 건성으로 답했다.
"그래그래, 참 귀엽다네. 시아양."
"꺄아악! 들었지? 롯사는 너무 귀여워~ 아이이잉!"
설경은 하트눈으로 변한 시아를 보며 그저 다시한번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 * *
"칸자리아 산이라. 여긴 가까운 곳인데도 처음이네."
하이드의 말에 시엘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 나도 그래. 여긴 초보들이 올만한 곳이 아니니까."
시엘의 대답에 하이드는 허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푸하하하! 괜찮아! 우린 이제 초보가 아니다!"
그러자 카렌은 허리춤의 자루에서 사과를 꺼내들고서는 와삭와삭 깨물어 먹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딱히 고렙도 아니죠."
"거기 분위기 망치는 꼬맹이는 빠져."
"아니. 카렌의 말이 백번 옳아. 하이드. 자신감도 좋지만, 처음 와보는 곳은 되도록이면 조심하는게 좋아."
태상이 하이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하이드는 기가 죽기 보다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용병이라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별로 없군."
"뭐, 이런 의뢰는 보수는 많지만 시간이 오래걸려, 그러니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적당히 속도감 있는 의뢰들을 중시하는 편이지."
태상이 자신의 안내서인 메이즈를 뒤적이며 말했다. 메이즈에는 의뢰 로그가 빼곡히 적혀있었고, 클리어 시간도 빼곡히 나열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의뢰들은 거의 6시간 안에 완료된 것이 전부였다.
"그렇군. 하기사 우리도 한때는 그랬으니까."
"트라카샤 무리의 습격이다! 용병들은 방어태세를 갖춰라!"
선발대로부터 누군가가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이미 용병들에게 몇가지 지시사항이 있었기 때문에 신속하게 진형을 맞추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높은 소나무의 기둥들 사이로 거대한 검은 개미같은 것들이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 메인 퀘스트 때처럼 변종은 아니었지만, 그 수가 많아서 자칫 잘못하면 녀석들의 밥이 되기 쉽상인 중급 몬스터였다.
"카렌, 지원사격 부탁한다."
"맞겨만 주시지요! 녀석들의 정수리에 이 중창들을 꽂아드리겠습니다!"
그러자 태상은 손에 들고 있던 스펠북으로 카렌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주책은 그만떨고 활이나 잡으시지요."
"시엘 가자!"
하이드는 호기롭게 외치고서는 트라카샤를 향해서 몸을 날렸다. 그에 비해서 시엘은 갑옷의 무게 때문인지 조금 느릿한 속도로 트라카샤를 향해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이드는 맨 먼저 만난 트라카샤의 눈을 향해서 자신의 거대한 대검을 그대로 쑤셔밖았다. 그러자 누런색의 진액이 튀어나와 하이드의 팔뚝을 적셨다. 하이드는 서서히 몸안에서 끓어오르는 힘을 느끼며 괴로워 하는 트라카샤를 그대로 발로차서 날려버렸다.
"그래! 이 느낌이다! 피를 묻히면 이래야 정상이지!"
"이봐, 바보같이 폭주하진 말라고. 그러면 의뢰 성공은 커녕 죽도밥도 안될테니깐 말야."
"걱정마셔!"
변종몬스터의 재빠른 움직임에 익숙해진 하이드와 시엘은 그보다 훨씬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트라카샤를 보며 비웃기라도 하듯이 난도질을 시작했다. 특히 하이드의 움직임은 이전에 비해서 놀랍도록 성장해 있었다. 몬스터의 공격에 자신의 공격을 가해서 상쇄시키는 수준이 아니라 철갑처럼 단단하다는 트라카샤의 껍질을 초콜릿 부수듯이 쩌적쩌적 갈라버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단하군. 나름대로 성장한건가?"
"크크큭, 피의문신만 제대로 발동하면 이런 것쯤이야. 게다가 왠일인지 몸이 가뿐하잖냐."
그러자 시엘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야, 배워두었던 스킬을 발동시켜 봤거든."
"에, 성스러운 기운(Holy Aura)이라는 거였냐?"
"기억하고 있네. 아무튼 꽤나 쓸만한 기술이라니까."
둘은 그렇게 다정히 전투를 치루고 있는 동안, 뒤쪽에선 카렌이 사람키만한 활에 중형창을 시위에 먹여 곳곳에서 위험에 처한 용병들에게 지원사격을 넣어주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한번에 3~4개의 창을 거의 동시에 가까울 정도로 다른 각도로 쏘아내는 실력은 실로 자동 기관총을 연상케 만들었다. 한편 태상은 얼마전에 부숴진 지팡이를 대신하여 새로이 구입한 스펠북을 들고서 천천히 캐스팅을 시작했다.
"내 안에 잠들어 있는 불꽃이여. 내 눈앞의 모든 것에게 파괴를! 블래스트!"
태상의 손에 들린 스펠 북에서 붉은 빛이 솟아오르더니, 트라카샤 때의 가운데에서 거의 하얗게 보일 정도의 불꽃이 터져올라왔다. 그러자 트라카샤 무리들은 더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한 듯이 서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완전히 자취를 감춰 버렸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자 용병들은 서로의 일행을 찾아서 모여들었고, 이윽고 상단이 다시 출발하자 그 곁에서 천천히 따라가기 시작했다.
하이드가 자신의 몸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후아, 역시 전투란 이렇게 피를 묻혀야 제맛이지."
"아무튼 꽤나 많이 성장했는데 하이드. 이러다간 나의 가드가 깨져버리겠어?"
"흥, 내가 보기엔 네 녀석이 새로 구입한 그 방패가 더 좋아보이는데 말야. 난 아직 검은 쓰던거 그대로거든?"
하이드와 시엘은 뺀질거리면서 각자 자신이 더 쌔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태상과 카렌은 그런 둘을 즐거운 듯이 바라보며 천천히 길을 걷고 있었다.
"확실히 엄청나게 레벨업! 해버렸군요."
"어엉. 전설급의 마수들과 싸웠으니 경험치가 짭짤했겠지. 이거 간만에 새로운 스킬 몇개 배울지도 모르겠군."
태상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얼마쯤 걸어가자 주위는 금새 어두워졌다. 오전 11시에 산에 들어왔는데, 어느새 저녁이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모두는 각자의 배낭에서 두터운 코트를 꺼내들어서 몸에 걸쳤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도 각자 두터워 보이는 코트를 꺼내들어 몸에 걸치고 있었다. 카렌은 코트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빵을 꺼내들어 입에 배어물며 말했다.
"산이라서 그런지 해가 금방 져버리는군요."
"그렇군. 하지만 준비는 다 해왔으니 상관 없잖아."
태상의 대답에 카렌은 그냥 조용히 빵을 배어먹을 뿐이었다. 시엘은 배낭에서 등불을 꺼내들고서는 태상에게 내밀었다. 태상이 조그맣게 주문을 외우자 등불의 심지에 불이 붙었다. 시엘은 등불을 자신의 배낭의 걸이에 걸어두고서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산의 고지대에서 불어내려오는 찬바람에 상단사람들을 비롯해서 여행에 익숙한 용병들도 옷을 단단히 여밀수 밖에 없었다.
"장난이 아니군."
"칸자리아 산의 고지대는 만년설에 뒤덮여 있으니까. 게다가 지독히도 춥다고 들었는데, 이렇게산의 중턱까지도 찬바람이 불어댈 줄이야."
"불평은 그만두시지. 일단 상단의 움직임이 멈춘 걸로 봐선 이제 슬슬 저녁시간이 된것 같은데."
시엘이 중간에 말을 끊었다. 그러자 상단측의 사람이 마차위에 올라서서는 큰소리로 외쳤다.
"오늘은 여기에서 쉬도록 하겠다! 용병들은 일러준대로 각자 불침번들을 정하고서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그러자 카렌이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와~ 그럼 야영인가요? 저희끼리 밥을 해먹는 건가요!?"
그러자 태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일단은 상단측에서 준비한 식량이 있다고 들었어. 오늘 저녁하고 내일 점심까지는 그걸로 해결할 생각이다. 식량은 2일치만 준비해왔거든."
그러자 카렌은 배낭에서 도마와 식칼을 꺼내다 말고는 시무룩한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냥 해먹어요오~"
그러나 태상은 카렌의 뒷덜미를 잡고서 상단에서 피워놓은 모닥불 쪽으로 끌고가며 말했다.
"그.러.니.까. 식량은 2일치밖에 없다니까 그러네."
하이드와 시엘은 그런 둘을 바라보며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서는 천천히 뒤따라갔다.
모닥불에는 이미 따끈하게 데워진 스프와 그리고 그 옆에는 주먹만한 빵이 놓여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지만, 여행경험이 많은 용병들은 차례를 지키며 능숙하게 각자의 식사를 챙겨갔고, 태상과 카렌, 시엘, 하이드도 스프한 그릇과 빵 두어조각을 금새 얻을 수 있었다. 태상은 아무말 없이 빵에 스프를 찍어서 입에 넣고 먹기 시작했다. 시엘과 하이드도 별다른 반응 없이 스프와 빵을 먹기 시작했다. 다만 카렌은 스프를 한모금 마셔보더니 곧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맛없어!"
그러자 태상은 카렌의 뒷통수에 꿀밤을 한대 후려치며 말했다.
"반찬투정금지구역."
그러나 시엘과 하이드는 카렌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 기분. 충분히 공감중이다. 좀 맛이 없군."
그러나 카렌은 징징거리며 말했다.
"눈물의 맛과 시아씨가 태운 생선 구이, 거기에 하이드씨가 미친듯이 묻혀온 괴상한 몬스터의 피맛, 마무리는 전통인도식 카레의 기묘한 맛이랄까요."
"거기까지 분석하다니. 과연 자칭 미식가로군."
"역시나 카렌의 혀는 천하일품."
시엘과 하이드는 박수를 치며 카렌의 분석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곧 시엘과 하이드의 뒷통수에도 태상의 주먹이 내리꽂혔다. 그리고 태상은 간단하고 명료하게 말했다.
"어린애 버릇 나쁘게 들이려한 죄값이라고 생각하세요."
"네에~"
라면서 동시에 카렌을 죽일듯이 노려보는 두사람이었다. 그리고는 각자 한마디씩 내뱉었다.
"먹어라! 피와 살이 된다!" / "씹고 씹고 또 씹어서 삼켜라!"
그러나 카렌에겐 이렇게 들렸다.
"네녀석의 뼈와 살을 분리시켜주마!" / "죽을 때까지 씹어주마!"
그러자 다시한번 태상의 주먹이 두사람의 뒷통수에 내리 꽂혔다.
"어린아이에게 겁을 주시면 곤란합니다."
* * *
다음타자는 누구?
라면서 벌컥 방문을 열어버린 사람은 시엘이었다. 보통, 17세 소녀의 방문을 이렇게 열어젖히면 대부분은 비명소리가 들려올테지만, 이미 평범의 범위를 가뿐히 벗어난 이 두 남매에겐 이런 일은 일상다반사였다. 다만,
"우으응─── 어, 지금 몇시?"
"끼야아아아아아아악!"
10살의 조금은 조숙한 소녀에겐 조금은 충격적인 진입이라고 볼 수도 있었겠다.
* * *
"뭐, 뭐야아아!?"
붉게 물든 뺨을 부여잡고 엉덩방아를 찧는 시엘은 오히려 이런 상황이 처음인듯이 당황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만들어 낸것은 방의 원주인인 시아가 아니라, 시아의 장난감으로 돌변한 듯이 아주 귀여운 파자마를 걸친채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거친숨을 몰아쉬며 시엘을 죽일듯이 노려보는 소녀였다.
"여, 여성의 방에 이렇게 무식하게 들어오다니. 아저씨는 매너란게 없군요!"
"아, 아저씨라니! 게다가 여긴 시아방이잖아! 원래부터 이렇게 들어와도 상관 없었다고!"
뭇 남성들이나 정상적인 체계하에서 자라난 여성들이라면 시엘의 말을 듣는 즉시 '여성의 적'으로 인식할법도 했지만, 시아의 평소 행동거지나, 시엘의 성격등을 잘 알고있는 사람들이 보면 오히려 시엘의 행동이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단, 그것을 전혀 모르는 이 소녀에겐 신선한── 아니 파격적인 쇼크였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는사이 시아는 아스타롯사의 뒷덜미를 낚아채서 자신의 침대 뒷켠으로 치우고서는 말했다.
"오빠, 지금 몇시이?"
"8시 25분이다. 아침식사를 담은 접시는 여기 둘테니까 둘이서 맛있게 먹으라고."
"으응. 땡큐우~"
시엘은 그럼 이라고 중얼거리면서 방문을 열고서 나가버렸다. 시아는 방문을 다시 잘 닫고서 아침식사가 담긴 접시를 천천히 가져왔다.
"어, 언니! 저런 아저씨가 방문을 벌컥벌컥 열어젖히고 들어오는데, 그런반응이 뭐에요?"
그러자 시아는 식사가 담긴 접시를 집어들며 뒷머리를 긁더니, 가만히 생각에 잠긴듯이 있다가 아스타롯사의 머리를 만지며 말했다.
"괜찮아. 저 인간은 나의 오빠니까. 친.오.빠."
그러자 아스타롯사는 시아의 팔을 흔들며 말했다.
"그.러.니.까. 만 18세가 넘은 남녀끼리 뭔가 숨길 것도 없나요?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이건─── 그리고 10살이라고 해도 전 여자라구요!"
조숙한 소녀에게 있어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는 시아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세월동안 시엘과 지내온 시아는 아스타롯사가 화내는 이유에 대해선 너무도 무뎌져 있었다. 애시당초 시엘이라는 사람은 여동생의 몸매라던가, 여성성에 관해서는 눈꼽만치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다른 여성에게서 그런것을 찾으려는───
"무으── 아침먹기 전에 내가 왜 이런걸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거야? 잘들어 롯사. 시엘이란 사람은 그냥 아주 단순해서 아침식사를 가져왔을 뿐이야. 그러니까 화를 내지 않아도 좋아."
"에엑!? 그럼 언니는 아무 남자나 다 방문을 벌컥벌컥 열어도 상관 없다는 소리에요?"
그러자 시아는 포크를 접시에 내려 꽂으며 말했다.
"뭐, 하이드 오빠나 카렌이 그런짓을 했다면 죽여버릴지도 모르겠지만───"
* * *
"좋은 아침이에요!"
"시아양 일어나셨는가?"
여관 홀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던 설경이 반갑게 시아를 향해서 인사를 건내주었다. 시아는 주위를 둘러보며 설경이 앉아있는 테이블의 맞은 편에 앉으며 물었다.
"어라? 다른 사람들은요?"
"시엘과 하이드, 태상, 카렌은 4명이서 퀘스트를 받아가지고 나갔다네. 뭐라고 했더라? 아, 그래! 칸자리아 산에 간다고 했었네. 달다이라의 대부호인 엑자일 백작이 운영하는 상단이 친한 엘프와 직접거래를 한다더군. 덕분에 많은 용병을 고용한다는 소식에 4명도 같이 간게지. 나야 뭐, 이렇게 다친 몸으로 가봤자 별수가 없기에 남은 것일세."
라면서 설명을 마쳤다. 시아는 설명을 다 듣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충 다들 원래대로 돌아갔군요."
"그런셈이지. 그런데 시아양? 아스타롯사양이 안보이네만?"
"아~ 롯사~ 이리 내려오지 않고 뭐하는거야~"
마치 강아지를 부르듯이 콧소리를 넣어가며 말하는 시아를 보며 설경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러나 이내 시야에 나타난 아스타롯사를 보며 설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저기 언니. 이, 이, 이런 옷은 조금───"
"괜찮아~! 롯사는 너~무 너~무 귀여워서 잘 어울린다고~"
너풀너풀 거리는 리본을 둘째치고, 미니스커트풍의 일본 무녀복을 입은 아스타롯사는 확실히 귀여웠다. 하지만 설경은 귀엽다는 생각보다는 책을 펴고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벌써 애칭인가."
"설경 오빠! 귀엽죠? 그쵸? 네에?"
설경은 책에서 눈조차 때지 않고 건성으로 답했다.
"그래그래, 참 귀엽다네. 시아양."
"꺄아악! 들었지? 롯사는 너무 귀여워~ 아이이잉!"
설경은 하트눈으로 변한 시아를 보며 그저 다시한번 한숨을 내쉴 뿐이었다.
* * *
"칸자리아 산이라. 여긴 가까운 곳인데도 처음이네."
하이드의 말에 시엘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 나도 그래. 여긴 초보들이 올만한 곳이 아니니까."
시엘의 대답에 하이드는 허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푸하하하! 괜찮아! 우린 이제 초보가 아니다!"
그러자 카렌은 허리춤의 자루에서 사과를 꺼내들고서는 와삭와삭 깨물어 먹으며 말했다.
"그렇다고 딱히 고렙도 아니죠."
"거기 분위기 망치는 꼬맹이는 빠져."
"아니. 카렌의 말이 백번 옳아. 하이드. 자신감도 좋지만, 처음 와보는 곳은 되도록이면 조심하는게 좋아."
태상이 하이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그러나 하이드는 기가 죽기 보다는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말했다.
"그런데 용병이라곤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별로 없군."
"뭐, 이런 의뢰는 보수는 많지만 시간이 오래걸려, 그러니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적당히 속도감 있는 의뢰들을 중시하는 편이지."
태상이 자신의 안내서인 메이즈를 뒤적이며 말했다. 메이즈에는 의뢰 로그가 빼곡히 적혀있었고, 클리어 시간도 빼곡히 나열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의뢰들은 거의 6시간 안에 완료된 것이 전부였다.
"그렇군. 하기사 우리도 한때는 그랬으니까."
"트라카샤 무리의 습격이다! 용병들은 방어태세를 갖춰라!"
선발대로부터 누군가가 커다란 목소리로 외쳤다. 이미 용병들에게 몇가지 지시사항이 있었기 때문에 신속하게 진형을 맞추고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높은 소나무의 기둥들 사이로 거대한 검은 개미같은 것들이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 메인 퀘스트 때처럼 변종은 아니었지만, 그 수가 많아서 자칫 잘못하면 녀석들의 밥이 되기 쉽상인 중급 몬스터였다.
"카렌, 지원사격 부탁한다."
"맞겨만 주시지요! 녀석들의 정수리에 이 중창들을 꽂아드리겠습니다!"
그러자 태상은 손에 들고 있던 스펠북으로 카렌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주책은 그만떨고 활이나 잡으시지요."
"시엘 가자!"
하이드는 호기롭게 외치고서는 트라카샤를 향해서 몸을 날렸다. 그에 비해서 시엘은 갑옷의 무게 때문인지 조금 느릿한 속도로 트라카샤를 향해서 나아가기 시작했다.
하이드는 맨 먼저 만난 트라카샤의 눈을 향해서 자신의 거대한 대검을 그대로 쑤셔밖았다. 그러자 누런색의 진액이 튀어나와 하이드의 팔뚝을 적셨다. 하이드는 서서히 몸안에서 끓어오르는 힘을 느끼며 괴로워 하는 트라카샤를 그대로 발로차서 날려버렸다.
"그래! 이 느낌이다! 피를 묻히면 이래야 정상이지!"
"이봐, 바보같이 폭주하진 말라고. 그러면 의뢰 성공은 커녕 죽도밥도 안될테니깐 말야."
"걱정마셔!"
변종몬스터의 재빠른 움직임에 익숙해진 하이드와 시엘은 그보다 훨씬 느릿느릿하게 움직이는 트라카샤를 보며 비웃기라도 하듯이 난도질을 시작했다. 특히 하이드의 움직임은 이전에 비해서 놀랍도록 성장해 있었다. 몬스터의 공격에 자신의 공격을 가해서 상쇄시키는 수준이 아니라 철갑처럼 단단하다는 트라카샤의 껍질을 초콜릿 부수듯이 쩌적쩌적 갈라버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단하군. 나름대로 성장한건가?"
"크크큭, 피의문신만 제대로 발동하면 이런 것쯤이야. 게다가 왠일인지 몸이 가뿐하잖냐."
그러자 시엘은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그야, 배워두었던 스킬을 발동시켜 봤거든."
"에, 성스러운 기운(Holy Aura)이라는 거였냐?"
"기억하고 있네. 아무튼 꽤나 쓸만한 기술이라니까."
둘은 그렇게 다정히 전투를 치루고 있는 동안, 뒤쪽에선 카렌이 사람키만한 활에 중형창을 시위에 먹여 곳곳에서 위험에 처한 용병들에게 지원사격을 넣어주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한번에 3~4개의 창을 거의 동시에 가까울 정도로 다른 각도로 쏘아내는 실력은 실로 자동 기관총을 연상케 만들었다. 한편 태상은 얼마전에 부숴진 지팡이를 대신하여 새로이 구입한 스펠북을 들고서 천천히 캐스팅을 시작했다.
"내 안에 잠들어 있는 불꽃이여. 내 눈앞의 모든 것에게 파괴를! 블래스트!"
태상의 손에 들린 스펠 북에서 붉은 빛이 솟아오르더니, 트라카샤 때의 가운데에서 거의 하얗게 보일 정도의 불꽃이 터져올라왔다. 그러자 트라카샤 무리들은 더 이상은 무리라고 생각한 듯이 서서히 뒤로 물러나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완전히 자취를 감춰 버렸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자 용병들은 서로의 일행을 찾아서 모여들었고, 이윽고 상단이 다시 출발하자 그 곁에서 천천히 따라가기 시작했다.
하이드가 자신의 몸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말했다.
"후아, 역시 전투란 이렇게 피를 묻혀야 제맛이지."
"아무튼 꽤나 많이 성장했는데 하이드. 이러다간 나의 가드가 깨져버리겠어?"
"흥, 내가 보기엔 네 녀석이 새로 구입한 그 방패가 더 좋아보이는데 말야. 난 아직 검은 쓰던거 그대로거든?"
하이드와 시엘은 뺀질거리면서 각자 자신이 더 쌔다고 우기기 시작했다. 태상과 카렌은 그런 둘을 즐거운 듯이 바라보며 천천히 길을 걷고 있었다.
"확실히 엄청나게 레벨업! 해버렸군요."
"어엉. 전설급의 마수들과 싸웠으니 경험치가 짭짤했겠지. 이거 간만에 새로운 스킬 몇개 배울지도 모르겠군."
태상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
얼마쯤 걸어가자 주위는 금새 어두워졌다. 오전 11시에 산에 들어왔는데, 어느새 저녁이 되어버린 모양이었다. 모두는 각자의 배낭에서 두터운 코트를 꺼내들어서 몸에 걸쳤다.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도 각자 두터워 보이는 코트를 꺼내들어 몸에 걸치고 있었다. 카렌은 코트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빵을 꺼내들어 입에 배어물며 말했다.
"산이라서 그런지 해가 금방 져버리는군요."
"그렇군. 하지만 준비는 다 해왔으니 상관 없잖아."
태상의 대답에 카렌은 그냥 조용히 빵을 배어먹을 뿐이었다. 시엘은 배낭에서 등불을 꺼내들고서는 태상에게 내밀었다. 태상이 조그맣게 주문을 외우자 등불의 심지에 불이 붙었다. 시엘은 등불을 자신의 배낭의 걸이에 걸어두고서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산의 고지대에서 불어내려오는 찬바람에 상단사람들을 비롯해서 여행에 익숙한 용병들도 옷을 단단히 여밀수 밖에 없었다.
"장난이 아니군."
"칸자리아 산의 고지대는 만년설에 뒤덮여 있으니까. 게다가 지독히도 춥다고 들었는데, 이렇게산의 중턱까지도 찬바람이 불어댈 줄이야."
"불평은 그만두시지. 일단 상단의 움직임이 멈춘 걸로 봐선 이제 슬슬 저녁시간이 된것 같은데."
시엘이 중간에 말을 끊었다. 그러자 상단측의 사람이 마차위에 올라서서는 큰소리로 외쳤다.
"오늘은 여기에서 쉬도록 하겠다! 용병들은 일러준대로 각자 불침번들을 정하고서 자유롭게 행동하도록!"
그러자 카렌이 들뜬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와~ 그럼 야영인가요? 저희끼리 밥을 해먹는 건가요!?"
그러자 태상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일단은 상단측에서 준비한 식량이 있다고 들었어. 오늘 저녁하고 내일 점심까지는 그걸로 해결할 생각이다. 식량은 2일치만 준비해왔거든."
그러자 카렌은 배낭에서 도마와 식칼을 꺼내다 말고는 시무룩한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냥 해먹어요오~"
그러나 태상은 카렌의 뒷덜미를 잡고서 상단에서 피워놓은 모닥불 쪽으로 끌고가며 말했다.
"그.러.니.까. 식량은 2일치밖에 없다니까 그러네."
하이드와 시엘은 그런 둘을 바라보며 어깨를 한번 으쓱하고서는 천천히 뒤따라갔다.
모닥불에는 이미 따끈하게 데워진 스프와 그리고 그 옆에는 주먹만한 빵이 놓여있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지만, 여행경험이 많은 용병들은 차례를 지키며 능숙하게 각자의 식사를 챙겨갔고, 태상과 카렌, 시엘, 하이드도 스프한 그릇과 빵 두어조각을 금새 얻을 수 있었다. 태상은 아무말 없이 빵에 스프를 찍어서 입에 넣고 먹기 시작했다. 시엘과 하이드도 별다른 반응 없이 스프와 빵을 먹기 시작했다. 다만 카렌은 스프를 한모금 마셔보더니 곧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맛없어!"
그러자 태상은 카렌의 뒷통수에 꿀밤을 한대 후려치며 말했다.
"반찬투정금지구역."
그러나 시엘과 하이드는 카렌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 기분. 충분히 공감중이다. 좀 맛이 없군."
그러나 카렌은 징징거리며 말했다.
"눈물의 맛과 시아씨가 태운 생선 구이, 거기에 하이드씨가 미친듯이 묻혀온 괴상한 몬스터의 피맛, 마무리는 전통인도식 카레의 기묘한 맛이랄까요."
"거기까지 분석하다니. 과연 자칭 미식가로군."
"역시나 카렌의 혀는 천하일품."
시엘과 하이드는 박수를 치며 카렌의 분석을 듣고 있었다. 그러나 곧 시엘과 하이드의 뒷통수에도 태상의 주먹이 내리꽂혔다. 그리고 태상은 간단하고 명료하게 말했다.
"어린애 버릇 나쁘게 들이려한 죄값이라고 생각하세요."
"네에~"
라면서 동시에 카렌을 죽일듯이 노려보는 두사람이었다. 그리고는 각자 한마디씩 내뱉었다.
"먹어라! 피와 살이 된다!" / "씹고 씹고 또 씹어서 삼켜라!"
그러나 카렌에겐 이렇게 들렸다.
"네녀석의 뼈와 살을 분리시켜주마!" / "죽을 때까지 씹어주마!"
그러자 다시한번 태상의 주먹이 두사람의 뒷통수에 내리 꽂혔다.
"어린아이에게 겁을 주시면 곤란합니다."
* * *
다음타자는 누구?
댓글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