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공간 - 에피소드2. 달다이라 대결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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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맛있다. 역시 브로세리카의 음식은 천하일품이야."
길고 검은 머릿결과 하얀 블라우스와 치마가 잘 어울리는 소녀가 입주위를 닦으며 말했다. 소녀는 다름아닌 시아. 평상시에는 갑옷을 입은채 온갖 험한일을 해서 거의 남자처럼 비취지만, 옷을 갈아입으면 신기하게도 요조숙녀처럼 비춰지는 녀석이었다. 덕분에 시아의 주위의 사내들은 이미 시아를 안주거리삼아서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저녁은 잘 잡수셨는가?"
검은 정장을 입은채 뚜벅뚜벅 걸어오는 사내. 갈색빛의 피부와 검은 머릿결이 역시나 잘 어울리는 사람은, 다름아닌 설경이었다. 특히 허리춤에 차고 있는 일본도는 서양풍인 정장과 함께 어색함보다는 묘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시아는 빙긋 웃더니 자리에서 가볍게 일어나 여관문을 열고나갔다. 설경은 그런 시아를 에스코트 하면서 역시 뒤따라 나가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선남선녀 커플같은 두사람. 시아는 해가 막 저물려고 준비하는 파랗지도 붉지도 않은 하늘을 바라보며 설경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간만에 누군가에게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달다이라 시내를 구경하고 싶었거든요."
"허허허, 그보다 지난번 일은 용서하시게나."
"괜찮아요. 어쩔 수 없었던 일이잖아요. 돈은 아깝긴 하지만, 저의 저주도 겪어보니까 장난이 아니었었구요. 하이드 오빠는 그냥 희생양 이었을 뿐이니까요. 헤헤헤, 그래도 아까운 마음이 더 앞서네요."
그러자 설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아, 마침 보이는군. 저것이 이맘때쯤 달다이라 도시에 들른다는 곡예단이네. 규모도 커서 꽤나 재미있다고 하더군."
"그럼 한번 보러가죠."
"그래. 그럼 이번엔 내가 쏘도록하지. 어서 가보세."
설경이 팔을 들어보이자 시아 역시 빙긋 웃으면서 설경의 팔 사이로 자신의 팔을 넣었다.
* * *
"우와아아아아아!!"
짝짝짝짝짝짝!
함성과 박수소리가 천막을 가득 매웠다. 곡예단의 공연은 가히 환상적이어서 사람들은 그들이 묘기를 부릴때마다 손뼉을 쳐대며 환호성을 지르기에 급급했다. 사신의 공간답게 마법으로 인한 화려한 효과가 더해지자, 공연은 마치 꿈속에서 노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선사하고 있었다. 시아역시, 이런 화려한 공연은 거의 본적이 없었기에 박수를 쳐대면서 곡예단원에게서 눈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설경은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다 들어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공연을 보며 연신 미소를 띄워 올리고 있었다.
공연은 어느새 무르익은 듯이 곡예단원들이 일제히 빠져나가고, 허공중에 그네가 상하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름답게 치장한 곡예단원 하나가 그네를 붙잡고 다른 그네로 건너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곡예단의 악단중 북을 가진 사람이 스틱을 들고서 낮고 빠르게 북을 쳐댔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 * *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막아라! 절대로 막아야한다! 2차 성문이 뚫리는 것을 막아라!"
달다이라 치안유지부대는 갑작스런 비상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수많은 몬스터들이 몰려온 것이다. 보통이라면 성벽과 성문을 통해서 막아낼 수 있겠지만, 치안부대원의 1/3이 전사하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미 1차 성문은 박살이 나서 몬스터들이 도시를 보호하는 마법벽인 2차 성벽으로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법벽답게 그 내구도는 일반적인 1차 성문, 성벽과는 차원이 틀렸지만, 지금 맞이하고 있는 몬스터 무리들도 차원이 매한가지로 틀렸다.
"쿠웨에에에에엑!"
오크 한마리가 뛰어올라 병사의 몸을 타고 올라서 병사의 얼굴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보통이라면 오크의 주먹이 손상될 정도로 견고한 투구였지만, 이 오크의 피부는 돌이라도 되는 건지 오히려 병사의 얼굴이 투구와 함께 찌그러져 버렸다. 이곳 저곳에서는 병사들이 힘들게 막아서고 있었지만, 수세에 몰리는 중이었다. 피부도 돌처럼 단단했지만, 하다못해 그 약하디 약하던 코볼트도 검에 베이는 즉시 마치 트롤의 재생력을 보는 것처럼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어 버렸다. 치안 부대의 부대장인 프테우메리스는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라크로스를 불렀다.
"지금 가서 달다이라의 모험가들을 모아주게나. 이것은 이 도시의 생존이 걸린일이야. 난 제국측이 이 사실을 통보하겠네. 듣도보도 못한 몬스터들의 습격을───"
라크로스는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빠르게 달려나갔다. 몬스터가 드디어 마법벽에 당도한 모양인지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쿠타타타탕!
* * *
쿠타타타탕!
북소리가 울려퍼지자 반대편에서 흔들리던 그네로 곡예단원이 무사히 건너갔다. 시아는 와! 하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였다. 설경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의 검손잡이로 손을 올렸다. 설경의 전투자세였다. 시아는 갑자기 변한 설경의 분위기에 멍하니 설경을 바라보았다. 설경은 시아의 손을 잡고서 말했다.
"나가서 이야기하세."
설경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온 시아는 그제서야 뭔가를 느끼는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곧 설경을 바라보았다. 좀전까지와는 달리 매우 진지한 자세였다.
"뭔가 일어나고 있군요."
"그래. 이렇게 도심 깊숙히까지 마력의 파동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네. 뭔가 좋지 않은 일이야. 일단 여관으로 빨리 돌아가보는게 좋겠네."
설경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아는 치마의 왼편을 찢더니 그대로 뛰기 시작했다.
찌이이이익!
"저도 느껴져요. 뭔가 굉장히 좋지 않아요."
거리를 뛰어가는 것은 비단 시아와 설경뿐만이 아니었다. 모험가들, 그러니까 플레이어들로 보이는 인물들은 죄다 거리를 뛰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앉은 레벨의 플레이어라고 해도 이정도의 마력파동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히 방금전에 시작한 인물이라도 말이다. 시아와 설경은 다급히 여관으로 들어섰다. 여관은 이미 꽉차있었다. 대부분이 무장을 단단히 한채 현관으로 들어온 시아와 설경에게 한번씩 눈빛을 주고서는 다시 자신들의 탁자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왔군. 자 여기 갑옷. 이럴줄 알고 미리 천을 쳐뒀으니까 저기 구석에서 갈아입어."
시엘이 시아의 갑옷과 검, 방패를 건내주며 말했다. 평상시 같았으면 길길히 날뛰었을 시아였지만, 이번에는 잠자코 시엘의 말대로 구석의 천막이 쳐진곳에서 옷을 갈아입고서 나왔다. 설경 역시 양복을 벗어던지자, 자신이 입는 헐렁한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엇다. 시엘은 모두 준비가 끝난 두사람을 이끌고 한쪽 테이블로 향했다. 그곳에는 카렌과 태상, 하이드가 앉아서 초조하게 뭔가를 기다리는 듯 했다. 시아가 테이블 근처에 나타나자, 어디선가 많이 본 사람이 하이드의 옆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달다이라 치안부대의 2소대장인 라크로스라고 합니다. 저를 보신분들도 아마 많으시니 소개는 이쯤에서 마치겠습니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자면,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뭐?" / "갑자기 왠 도움이." / "이 불길한 느낌과 뭔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갑작스런 퀘스트로군. / "정말이지 기대되는걸?"
라크로스는 숨을 한번 내쉬고서는 주위를 둘러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주위가 다시 조용해지자 라크로스는 입을 열었다.
"여기에 있는, 아니 달다이라에 체류하시는 모든 모험가님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라크로스의 말에 모두는 완전히 입을 다물어 버렸다. 모든 모험가들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지금 느껴지는 그것과 너무나도 잘 매치되는 언어였기 때문이다.
"지금, 달다이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신종 몬스터의 거대한 무리들에게 습격당하고 있습니다. 치안부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서 저지하고 있지만, 이미 1/3이 괴멸당한 상태입니다. 아니 지금쯤이면 더 많은 사상자가 나타났겠지요. 이런 중대한 위기의 시점에서 여러분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제국측에 보고를 했지만, 이곳까지의 지원에는 수일이 소모될껍니다. 이제 믿을 것은 나머지 치안부대와 모험가님들 전부입니다."
다시 숨을 고르고선 라크로스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도와주십시요."
라크로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플레이어들의 책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메인 퀘스트 발동 - 달다이라로 괴생명체들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이 의뢰를 수락하면 달다이라를 지키는 것에 그대들의 목숨이 달리게 된다. 하지만 받지 않는다면 달다이라를 빠져나가는 것이 목표가 된다. 나 사신은 그대들의 현명한 선택을 바라며 이 퀘스트를 발동한다. -데이모스]
그러나 시아의 일행들은 조금 다른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메인 퀘스트 발동 - 아타락시아의 결정이 공명하고 있다. 아타락시아의 결정중 하나가 메트로 리버 근처에 있는 스펙터 동굴에서 반응을 하고 있다. 뭔가 이번 사건과 중요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감지된다. 목표는 스펙터 동굴의 아타락시아 결정의 탈환. - 데이모스]
"이거이거, 대단한 이벤트로군.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원하던 전투 아닌가?"
붉은 머릿결이 인상적인 한 광전사가 주먹을 쥐며 말했다. 그러자 하이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며 말했다.
"간만에 멋진 잔치로군."
시엘은 금새 분위기를 타는 하이드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예이~ 예이~ 누가 널 말리겠냐."
대부분의 모험가들은 여관을 나서고 있었다. 보지 않아도 그들은 싸움을 택한 쪽이었다. 시아 일행은 잠깐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태상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일전에 얻었던 아타락시아의 결정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 뭔가를 알아낼 수도 있겠지."
"상관 없죠. 어차피 싸우러 갈텐데."
카렌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태상은 잠깐 얼굴을 찌푸리려다가 카렌을 보면서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웃을 수 있다니. 대단한 녀석이군."
"결정이 난것 같구만. 자아, 가세나. 우리의 싸움을 위해서."
모두는 발걸음을 때었다. 아직 여관에 남아있는 플레이어들도 없지는 않았다. 그들을 보면서 시아일행들의 한명한명도 잠깐 포기할까? 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러나 모두는 이미 결심한 듯이 문을 완전히 나섰다. 어느새 라크로스가 시아 일행에 따라붙으며 말했다.
"챔피언 일행께서 가주시다니. 든든하군요."
그러자 하이드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거하게 잔치 한번 벌이고 다시 만나서 술이나 할깝셔? 소대장 나으리."
"좋죠."
* * *
"드디어 한걸음을 때었군. 좋아좋아. 그대들의 결정에 후회는 없으리라 믿는다."
파란미소가 어울리는 한 사람이 높디높은 창공에서 제로스 대륙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다음타자는 본인입니다.
길고 검은 머릿결과 하얀 블라우스와 치마가 잘 어울리는 소녀가 입주위를 닦으며 말했다. 소녀는 다름아닌 시아. 평상시에는 갑옷을 입은채 온갖 험한일을 해서 거의 남자처럼 비취지만, 옷을 갈아입으면 신기하게도 요조숙녀처럼 비춰지는 녀석이었다. 덕분에 시아의 주위의 사내들은 이미 시아를 안주거리삼아서 즐겁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저녁은 잘 잡수셨는가?"
검은 정장을 입은채 뚜벅뚜벅 걸어오는 사내. 갈색빛의 피부와 검은 머릿결이 역시나 잘 어울리는 사람은, 다름아닌 설경이었다. 특히 허리춤에 차고 있는 일본도는 서양풍인 정장과 함께 어색함보다는 묘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시아는 빙긋 웃더니 자리에서 가볍게 일어나 여관문을 열고나갔다. 설경은 그런 시아를 에스코트 하면서 역시 뒤따라 나가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는 선남선녀 커플같은 두사람. 시아는 해가 막 저물려고 준비하는 파랗지도 붉지도 않은 하늘을 바라보며 설경에게 말했다.
"고맙습니다. 간만에 누군가에게 에스코트를 받으면서 달다이라 시내를 구경하고 싶었거든요."
"허허허, 그보다 지난번 일은 용서하시게나."
"괜찮아요. 어쩔 수 없었던 일이잖아요. 돈은 아깝긴 하지만, 저의 저주도 겪어보니까 장난이 아니었었구요. 하이드 오빠는 그냥 희생양 이었을 뿐이니까요. 헤헤헤, 그래도 아까운 마음이 더 앞서네요."
그러자 설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빙긋 웃었다.
"아, 마침 보이는군. 저것이 이맘때쯤 달다이라 도시에 들른다는 곡예단이네. 규모도 커서 꽤나 재미있다고 하더군."
"그럼 한번 보러가죠."
"그래. 그럼 이번엔 내가 쏘도록하지. 어서 가보세."
설경이 팔을 들어보이자 시아 역시 빙긋 웃으면서 설경의 팔 사이로 자신의 팔을 넣었다.
* * *
"우와아아아아아!!"
짝짝짝짝짝짝!
함성과 박수소리가 천막을 가득 매웠다. 곡예단의 공연은 가히 환상적이어서 사람들은 그들이 묘기를 부릴때마다 손뼉을 쳐대며 환호성을 지르기에 급급했다. 사신의 공간답게 마법으로 인한 화려한 효과가 더해지자, 공연은 마치 꿈속에서 노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선사하고 있었다. 시아역시, 이런 화려한 공연은 거의 본적이 없었기에 박수를 쳐대면서 곡예단원에게서 눈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설경은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다 들어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공연을 보며 연신 미소를 띄워 올리고 있었다.
공연은 어느새 무르익은 듯이 곡예단원들이 일제히 빠져나가고, 허공중에 그네가 상하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름답게 치장한 곡예단원 하나가 그네를 붙잡고 다른 그네로 건너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곡예단의 악단중 북을 가진 사람이 스틱을 들고서 낮고 빠르게 북을 쳐댔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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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
"막아라! 절대로 막아야한다! 2차 성문이 뚫리는 것을 막아라!"
달다이라 치안유지부대는 갑작스런 비상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수많은 몬스터들이 몰려온 것이다. 보통이라면 성벽과 성문을 통해서 막아낼 수 있겠지만, 치안부대원의 1/3이 전사하고 나서야 사태의 심각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미 1차 성문은 박살이 나서 몬스터들이 도시를 보호하는 마법벽인 2차 성벽으로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마법벽답게 그 내구도는 일반적인 1차 성문, 성벽과는 차원이 틀렸지만, 지금 맞이하고 있는 몬스터 무리들도 차원이 매한가지로 틀렸다.
"쿠웨에에에에엑!"
오크 한마리가 뛰어올라 병사의 몸을 타고 올라서 병사의 얼굴을 내려치기 시작했다. 보통이라면 오크의 주먹이 손상될 정도로 견고한 투구였지만, 이 오크의 피부는 돌이라도 되는 건지 오히려 병사의 얼굴이 투구와 함께 찌그러져 버렸다. 이곳 저곳에서는 병사들이 힘들게 막아서고 있었지만, 수세에 몰리는 중이었다. 피부도 돌처럼 단단했지만, 하다못해 그 약하디 약하던 코볼트도 검에 베이는 즉시 마치 트롤의 재생력을 보는 것처럼 순식간에 상처가 아물어 버렸다. 치안 부대의 부대장인 프테우메리스는 전전긍긍하다가 결국 라크로스를 불렀다.
"지금 가서 달다이라의 모험가들을 모아주게나. 이것은 이 도시의 생존이 걸린일이야. 난 제국측이 이 사실을 통보하겠네. 듣도보도 못한 몬스터들의 습격을───"
라크로스는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빠르게 달려나갔다. 몬스터가 드디어 마법벽에 당도한 모양인지 둔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쿠타타타탕!
* * *
쿠타타타탕!
북소리가 울려퍼지자 반대편에서 흔들리던 그네로 곡예단원이 무사히 건너갔다. 시아는 와! 하는 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때였다. 설경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신의 검손잡이로 손을 올렸다. 설경의 전투자세였다. 시아는 갑자기 변한 설경의 분위기에 멍하니 설경을 바라보았다. 설경은 시아의 손을 잡고서 말했다.
"나가서 이야기하세."
설경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온 시아는 그제서야 뭔가를 느끼는 것처럼 주위를 두리번 거리더니 곧 설경을 바라보았다. 좀전까지와는 달리 매우 진지한 자세였다.
"뭔가 일어나고 있군요."
"그래. 이렇게 도심 깊숙히까지 마력의 파동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네. 뭔가 좋지 않은 일이야. 일단 여관으로 빨리 돌아가보는게 좋겠네."
설경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아는 치마의 왼편을 찢더니 그대로 뛰기 시작했다.
찌이이이익!
"저도 느껴져요. 뭔가 굉장히 좋지 않아요."
거리를 뛰어가는 것은 비단 시아와 설경뿐만이 아니었다. 모험가들, 그러니까 플레이어들로 보이는 인물들은 죄다 거리를 뛰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앉은 레벨의 플레이어라고 해도 이정도의 마력파동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필히 방금전에 시작한 인물이라도 말이다. 시아와 설경은 다급히 여관으로 들어섰다. 여관은 이미 꽉차있었다. 대부분이 무장을 단단히 한채 현관으로 들어온 시아와 설경에게 한번씩 눈빛을 주고서는 다시 자신들의 탁자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 왔군. 자 여기 갑옷. 이럴줄 알고 미리 천을 쳐뒀으니까 저기 구석에서 갈아입어."
시엘이 시아의 갑옷과 검, 방패를 건내주며 말했다. 평상시 같았으면 길길히 날뛰었을 시아였지만, 이번에는 잠자코 시엘의 말대로 구석의 천막이 쳐진곳에서 옷을 갈아입고서 나왔다. 설경 역시 양복을 벗어던지자, 자신이 입는 헐렁한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엇다. 시엘은 모두 준비가 끝난 두사람을 이끌고 한쪽 테이블로 향했다. 그곳에는 카렌과 태상, 하이드가 앉아서 초조하게 뭔가를 기다리는 듯 했다. 시아가 테이블 근처에 나타나자, 어디선가 많이 본 사람이 하이드의 옆에서 일어났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달다이라 치안부대의 2소대장인 라크로스라고 합니다. 저를 보신분들도 아마 많으시니 소개는 이쯤에서 마치겠습니다.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자면, 여러분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뭐?" / "갑자기 왠 도움이." / "이 불길한 느낌과 뭔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갑작스런 퀘스트로군. / "정말이지 기대되는걸?"
라크로스는 숨을 한번 내쉬고서는 주위를 둘러보며 호흡을 가다듬었다. 주위가 다시 조용해지자 라크로스는 입을 열었다.
"여기에 있는, 아니 달다이라에 체류하시는 모든 모험가님들의 도움이 절실합니다."
라크로스의 말에 모두는 완전히 입을 다물어 버렸다. 모든 모험가들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지금 느껴지는 그것과 너무나도 잘 매치되는 언어였기 때문이다.
"지금, 달다이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신종 몬스터의 거대한 무리들에게 습격당하고 있습니다. 치안부대는 지금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서 저지하고 있지만, 이미 1/3이 괴멸당한 상태입니다. 아니 지금쯤이면 더 많은 사상자가 나타났겠지요. 이런 중대한 위기의 시점에서 여러분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제국측에 보고를 했지만, 이곳까지의 지원에는 수일이 소모될껍니다. 이제 믿을 것은 나머지 치안부대와 모험가님들 전부입니다."
다시 숨을 고르고선 라크로스는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도와주십시요."
라크로스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플레이어들의 책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메인 퀘스트 발동 - 달다이라로 괴생명체들의 습격이 시작되었다. 이 의뢰를 수락하면 달다이라를 지키는 것에 그대들의 목숨이 달리게 된다. 하지만 받지 않는다면 달다이라를 빠져나가는 것이 목표가 된다. 나 사신은 그대들의 현명한 선택을 바라며 이 퀘스트를 발동한다. -데이모스]
그러나 시아의 일행들은 조금 다른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메인 퀘스트 발동 - 아타락시아의 결정이 공명하고 있다. 아타락시아의 결정중 하나가 메트로 리버 근처에 있는 스펙터 동굴에서 반응을 하고 있다. 뭔가 이번 사건과 중요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감지된다. 목표는 스펙터 동굴의 아타락시아 결정의 탈환. - 데이모스]
"이거이거, 대단한 이벤트로군. 이것이야 말로 우리가 원하던 전투 아닌가?"
붉은 머릿결이 인상적인 한 광전사가 주먹을 쥐며 말했다. 그러자 하이드도 마찬가지로 일어나며 말했다.
"간만에 멋진 잔치로군."
시엘은 금새 분위기를 타는 하이드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예이~ 예이~ 누가 널 말리겠냐."
대부분의 모험가들은 여관을 나서고 있었다. 보지 않아도 그들은 싸움을 택한 쪽이었다. 시아 일행은 잠깐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다가 태상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일전에 얻었던 아타락시아의 결정과 관련이 있는 것 같아. 뭔가를 알아낼 수도 있겠지."
"상관 없죠. 어차피 싸우러 갈텐데."
카렌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태상은 잠깐 얼굴을 찌푸리려다가 카렌을 보면서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이런 분위기에서도 웃을 수 있다니. 대단한 녀석이군."
"결정이 난것 같구만. 자아, 가세나. 우리의 싸움을 위해서."
모두는 발걸음을 때었다. 아직 여관에 남아있는 플레이어들도 없지는 않았다. 그들을 보면서 시아일행들의 한명한명도 잠깐 포기할까? 라고 생각했었지만, 그러나 모두는 이미 결심한 듯이 문을 완전히 나섰다. 어느새 라크로스가 시아 일행에 따라붙으며 말했다.
"챔피언 일행께서 가주시다니. 든든하군요."
그러자 하이드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거하게 잔치 한번 벌이고 다시 만나서 술이나 할깝셔? 소대장 나으리."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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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한걸음을 때었군. 좋아좋아. 그대들의 결정에 후회는 없으리라 믿는다."
파란미소가 어울리는 한 사람이 높디높은 창공에서 제로스 대륙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다음타자는 본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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