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천사의 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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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내가 이렇게 침음성을 내뱉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날 알아보는 천사가 하나도 없다는 것. 내가 아는 모든 천사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나.를.부.정.했.다.는.것.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은 참기 힘들었다. 대체 내가 봉인되어 있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답은 뻔했다.
신이 기억을 지웠을 것이다. 자신들의 지도자의 봉인으로 혼란해하면 자칫 그 분이 새로 만든 세상을 망가뜨리게 되는 결과가 올 가능성도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이건 조금, 아니 아주우우우우~ 기분이 나빴다. 생각해 보라. 내가 잘 알던 경비 천사들이 내가 이곳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물러가시오! 이곳은 선택받은 천사들만이 들어올 수 있는 일월의 방이란 말이오!"
라고 말해 봐라. 봉인 전에는 '아이구, 우리엘님. 이제 오시는 겁니까?' '요즈음 기분이 좋으신가 보군요.' 란 말들을 하던 녀석들이 말이다. 그리고 내가 우리엘이라고 말을 해 보았자,
"우리엘님은 당신처럼 광휘없고 풍채가 허약해 보이지 않으시오! 헛된 소리를 하다니...타락천사?"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타.락.천.사. 라니! 내가 어딜 봐서 타락천사란 것인가! 현재의 내 모습을 보면 순백색의 날개 2장으로 몸을 가리고 다른 2장으로는 다리 부분을 가리며 남은 맨 위쪽의 두 장으로 날아다니고 있는데, 내가 어찌 그렇게 추악한(타락천사 중에 잘 생긴 녀석들 모두 제외하고...)타락천사로 보일 수 있다는 말인가! 나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서 경비 천사들의 따귀를 한 대씩 갈겨 버렸다.
"이것들이...상전을 몰라봐?"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따귀를 맞은 경비 천사들이 나를 조금씩 알아보기 시작한 것이다.
"우리엘...님?"
"그래!"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녀석이 날 알아보자 나는 기쁨에 겨워 녀석을 얼싸안았다.(솔직히 나중에 후회를 했다. 으윽...난 동성 연애자가 아니다.) 나는 일월의 방 안으로 들어가 한명씩 차례차례 따귀를 먹여주었다. 당연히 활동을 안 할 적에. 먼저 일식을 담당하는 녀석의 따귀를 갈겨준 다음에 그 녀석에게 일식을 시키라고 명령한 후 나 대신 태양을 감독하던 녀석의 따귀를 그대로 갈겨주었다. 월식과 달 역시도 그렇게 해결했다. 그런데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별을 담당하는 녀석들이었다. 그 녀석들은 언제나 빛을 비추어야 했기 때문에 내가 그들의 따귀를 때리려면 그들이 행동을 멈추어야 했다. 이거 참 난감했다. 뭐 내 생각대로라면 별들이 빛을 잃건 말건 그들의 따귀를 때렸겠지만, 그들은 신이 만든 세계의 별빛을 담당하고 있었다. 빛을 잃으면 또 그 분에게 혼날 지도 모르는 일이었으니까.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던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분에게 도움을 청했다. 기억 봉인을 거신 분에게.
"다 보고 있죠? 어떡하죠?"
그러자 다시 그 분의 대답이 들려왔다. 역시, 전능자이신 그 분은 내가 어디 있든지 이야기를 들어 주셨다. 나는 그 분을 좋아한다. 그러나 이것과 그것은 별개다.
[따귀를 때리는 것만이 나의 기억 봉인을 풀 수 있다고 생각한 거니?]
"그렇지만 다른 방법을 모르잖아요."
[그렇지만 해와 달의 천사의 봉인 해제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나의 뜻을 이행해 주었구나. 우리엘.]
그 분의 이런 칭찬에 나는 기분이 뿌듯해 짐을 느꼈다. 하지만 지금 이 일을 타계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럼, 어쩌죠? 그냥 당신께서 다 풀어 주세요."
[처음부터 그런 말 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니?]
뜨끔.
정곡을 찔린 내 머리가 뜨끔했다.
"하...하여튼요!"
[알았다. 알았어.]
순간, 모든 천사들의 기억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우리엘님!"
"그동안 어디 계셨어요?"
"봉인되셨다는 말은 들었지만..."
"별고 없으세요?"
순식간에 인사말들이 쏟아졌다.
"아하하...그냥 어떻게든 지냈지."
나는 이렇게 얼버무리면서 내가 옛날에 앉던 자리, 태양의 옥좌에 앉았다.
"와아!"
"역시 우리엘님이셔. 태양의 광채가 빛을 발하잖아!"
"멋져요, 우리엘님!"
"돌아오신 것이 몸으로 느껴져요!"
이번에는 근무하던 천사 중 여천사들의 찬사가 터져 나왔다. 역시, 이몸은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단 말씀이야. 아하하...
으윽. 인기 하니까 천계 7천 전체에서 최고의 인기 천사. 미카엘 녀석이 생각났다. 작은 전투든 큰 전투든, 녀석은 모습을 드러내어 완전 무장하고 불꽃의 광휘로 타락천사들을 심판했다. 그리고 제 5천에 가두었다. 그 녀석의 싸울 때의 모습은 예술 그 자체다. 불꽃같은 검놀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스피드에 맞춰서 휘날리는 머리카락...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연모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건 사실이었다.(다시 말하지만 나는 동성연애자가 아니다. 이것은 여천사들의 말을 종합해 본 결과에 불과하다.)
그와 루시퍼의 대결은 그의 인기를 한번에 급상승하게 만든 엄청난 대결이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대결 끝에 미카엘의 검이 루시퍼의 검을 동강내며 루시퍼의 몸을 갈랐다. 둘이 너무나 똑같이 생겼기에 눈으로만 둘을 구별한다는 것은 무리이고, 들고 있는 검과 내뿜는 기의 종류로 그들을 구분할 수 있었는데, 워낙 엄청난 속도로 움직이는 너석들이라 처음엔 누가 진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조금 지나고 신께 직접 받은 검을 높이 들고 있는 미카엘을 보고서야 그가 이겼다는 것을 알았다. 루시퍼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는지, 상처가 없어지고 몸이 재생된 후에도 한참 동안이나 미카엘을 노려보다가 결국 구름을 지나 불꽃에 휩싸여 땅으로 내려갔다.
이 사건을 본 능천사들 중 여천사들은 모두 미카엘의 열성 팬이 되었고, 그의 무용담은 천계 전체에 퍼져 이윽고 주천사, 권천사, 좌천사, 지천사마저도 그의 팬이 생겼다. 개중에는 남자 천사면서도 신에게 빌어 성(性)을 바꾼 후 미카엘을 따라다닌 천사도 있었다고 한다.(우리는 고유의 성이 있다. 남자 천사와 여천사는 분류되어 있다. 하지만 고유의 성이 싫다면 바꿀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일은 거의 없다. 인간의 시간으로 따질 수 없는 시간대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일이니...솔직히 고유의 성을 바꾼 성전환 천사(?)는 그 천사가 처음이었다. 그 소식을 듣고서야 나는 신께 부탁하면 성전환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새었다. 여하튼 나는 태양의 옥좌에 앉아서 태양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태양은 한시라도 가만히 서 있으면 안 되었다. 태양은 항상 규칙을 지켜 운행한다. 지금까지 내가 선 적은 특수한 경우에서였다. 여호수아가 신께 기도를 드렸을 때 케루빔(지천사) 한 명이 날아와(신의 뜻이라는 암시적인 말이었다. 케루빔이 신을 모시는 자이므로)나에게 태양의 운행을 잠시 멈추라는 신의 말씀을 전하였다. 히스기야 왕에게 선지자가 그 분의 힘을 역사하실 때. 해시계를 뒤로 돌렸다. 당연한 말이지만, 해시계의 눈금을 반대쪽으로 가게 하려면 태양 자체가 움직여야 했다. 그런 사건 이외에는 나는 절대로 규칙을 어긴 일이 없었다. 그런 내가 무슨 일 때문에 봉인당했냐고? 그건 나중에 내가 이야기하겠다.
오랜만에 태양을 움직여 보니까 감회가 새로웠다. 기분도 너무 좋았다. 나는 일동들이 모두 듣도록 말했다.
"자아! 나도 이제 돌아왔으니 우리가 쉴 때 되면 한 턱 쏘겠다. 일단 열심히 하는 거다!"
"네!"
일동들의 희망찬 목소리를 들으며 나도 기분이 좋아져서 나는 태양의 운행에 온 정신을 집중했다.
내가 태양의 운행에 집중하자 어느 샌가 영겁의 시간이 흐른 듯 했다.
"흐음...이제 조금 쉬자. 교대!"
"와아!"
일동들이 갑자기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아마도 그 속에는 '이제야 내가 이 노가다에서 벗어나는구나!'라는 생각이 깔려 있으리라. 앞으로 한 2억년 동안은 쉴 수 있을 것 같다. 잠시만의 휴식이지만 휴식을 얻은 우리들이었다.
"우리엘님! 한 턱 쏘신다고 했잖아요! 설마 몇억년 전의 말씀을 잊으신 건 아니죠?"
"내가 그렇게 기억력이 나쁜 줄 알아? 알겠어. 모두 숲으로 가자!"
내가 6장의 날개를 펴는 것을 필두로 해서 다른 천사들 역시 자신들의 날개를 펼쳤다. 그리고 우리 쳔계에 있는 숲 중 제일 울창한 숲으로 향했다.
숲에 도착한 우리는 쾌 큰 나무의 가지 하나에 1명씩 앉았다. 그리고 주위에서 컵과 비슷하게 생긴 돌을 주워들었다. 나는 나무에서 아래쪽으로 소리를 질렀다.
"이봐! 내 부하들과 내가 오랜만에 거나하게 한 번 마시려 하거든? 부탁할게."
내 말이 끝나자마자 숲 저쪽에서 푸르스름안 안개 비슷한 게 몰려왔다. 비위 약한 여천사들은 벌써부터 눈을 감았다.
"우리엘님은, 다 좋은데 친화능력만은..."
어떤 천사가 내뱉었다. 나는 뾰루퉁하게 대답했다.
"치, 어떤 천사는 나보다 더 엽기적인 친화능력도 가지고 있다고!"
천사들은 한 종류의 생물들과 친화능력을 갖출 수 있었다. 내가 친화능을 사용한 생물은 바로 벌이었다. 엄청난 양의 벌떼들이 몰려와 돌로 된 잔을 운반해 온 꿀로 가득 채웠다. 그리고 물을 옮겨 와 꿀의 농도를 낮추었다. 각기 다른 벌집에서 만들어진 꿀이라 맛도 조금씩 틀렸다. 내 전용의 특별한 꿀차인 것이다. 벌들이 물러가자, 눈을 가렸던 천사들은 눈을 떴고, 자신들의 앞에 놓여진 꿀차에 모두 만족스러워했다.
말이 나온 김에 내 친화능력에 대해 한 마디 하겠다. 솔직히 벌들과 친한 내 친화능력은 그렇게 많이 엽기적이지는 않다.(물론 안 엽기적이라고 말 하진 않는다.)옛날에 떨어진 타락천사 벨제붑은 파리와의 친화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지네나 굼벵이와 친화능력을 지닌 천사들도 있기 때문에 그들이 친화능력을 발동하면 진짜 엽기가 뭔지 보여주는 이도 있었다.(하긴, 용모가 너무 아름다워서 따라다니는 남자들을 퇴치하기 위해서 일부러 지네와 친화관계를 맺었다는 슬픈 천사 이야기도 있기는 하다.)
여하튼, 우리들은 오랜만에 꿀차 파티를 벌였다. 파티가 끝난 후 나는 6장의 날개를 활짝 펴고 제 6천으로 향했다. 그 녀석은 아무래도 6천에 있을 듯 했으니까.
-제 6천
역시. 대천사들의 본부이니만큼 이곳에 그 녀석이 없다는 것은 있기 힘든 일이었다.
"여어."
나의 목소리라는 것을 알아챈 그 녀석의 얼굴이 찡그러진다. 그 녀석의 얼굴을 보고 녀석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여천사들 역시 험악한 표정으로 나를 노려본다. 한참 후에 녀석이 입을 열었다.
"왔나?"
"오랜만의 휴가지. 그런데 별로 반갑지 않은 눈치인데?"
반가울 리가 있을까. 이것은 거의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들의 사이를 저 광신도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것이기도 하고.
잠깐! 지금 '우리들의 사이'라고 해서 사이가 좋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전에 한번 말을 하지 않았는가? 나와 저 녀석은 언제 싸움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 녀석이 바로 미카엘이다. 나는 퉁명스럽게 미카엘에게 물었다.
"대천사에게만 입실이 가능하도록 한 이곳에 자신의 팬들까지 데리고 오셨다? 참 재주도 좋으시군."
그러자 미카엘이 나와 같은 어조로 대답했다.
"이들은 케루빔이거든."
커헉!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신의 시중을 드는 천사인 케루빔 여천사마저 꼬시다니...정말이지, 이 미카엘의 작업능력은 가히 경이롭다. 케루빔이라면 이곳에 들어올 수 있으니...이곳에 있는 것도 이해가 갔다. 그렇다면 저쪽의 나머지는...혹시...혹시...
"트론즈?"
내 짤막한 질문에 미카엘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쿠웅!
그 행동과 함께 나는 6천 대천사 회의실 바닥에 머리를 대야만 했다. 한 마디를 남기고.
"작업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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