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죽여야 하는 남자, 사랑을 해서는 안되는 여자 -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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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날씨는 화창했다. 불쾌지수도 습도도 건조지수도 평균적이었다. 초겨울 날씨
치고는 비교적 괜찮은 편이었다.
따스하게 비치는(약간 불어대는 바람 때문에 차가운) 햇살 아래에 한철호와
채선혜는 공원을 둘러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둘은 콜로세움형 광장부터 시작
해서 고장난 분수대, 어린이용 놀이터 순으로 살을 벨 것 같은 찬 바람을 쐬며
공원을 산책했다.
둘은 발걸음을 조금씩 옮기며 편안한 대화를 나누었다. 만난 지 오늘이 이틀
째밖에 되지 않았지만은 둘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결혼한 지 5년이 넘
은 부부와 같아 보였다.
하얀 국화꽃이 담긴 꽃다발을 든 채선혜는 눈동자를 놀이터의 그네 쪽으로 돌
렸다. 그녀는 한철호의 손을 잡고 그와 함께 놀이터의 그네에 앉았다.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죠?”
그녀가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유치해.”
한철호는 지금 하는 짓거리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채선혜는 꽃다발을 바
닥에 내려놓으며 홀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60넘은 노인이 되면…… 그런 생각을 맨날 할지도 몰라요. 언제나 후
회하면서 살죠.”
“그게 무슨 상관이지?”
“모든 게…… 부질없는 짓이에요…… 죽으면 남는 거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잖
아요.”
“하긴…… 맞는 말이지. 악착 써서 돈을 모아도 강도짓해서 모아도 착취해서
모아도 죽으면 모든 게 손에서 떠나버리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나는 거
야…….”
한철호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녀의 중얼거림에 동조하듯이 중얼거렸
다. 그의 입에는 어느 새 찰나같이 타 버리며 연기를 바람에 실어 날리는 담배
가 물려 있었다.
“…….”
둘은 분위기에 크게 벗어난 이야기를 한 탓에 왠지 모를 보이지 않는 벽이 둘
을 가로막는 듯했다. 전쟁속의 작은 사랑…… 아무리 사랑이 아름답다 해도 때
는 정부와 국민이 대대적으로 전쟁을 벌이는 시기였다. 위력을 따지자면 정부
군이 월등히 우세했다. 그러나 민군은 전투에서 밀린다 해도 절대 굽히지 않았
다. 그들은 자유와 평화를 원했다. 정부의 탄압이 판을 치는 세상에 살지언정
차라리 맞서 싸우다 죽겠다는 심정으로……
소대를 지휘하며 숱한 국민들을 죽여 온 한철호는 그들의 심정을 잘 알고 있
었다. 젊었을 때 그는 뜻이 통하는 동지들을 모아 썩어가고 있는 정부에 시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는 한국이 과도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거품이 부풀
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거품이 빠지는 시기였다. 대부분의 기업이 문을 닫
고 이로 인해 길거리를 떠도는 실업자들이 곱절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거의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었다. 밥 달라며 주저앉아 우는 자식들, 극에
달하는 아내의 바가지, 친척들의 눈치……
졸지에 부랑자와 알거지가 되어버린 그들은 엿 같기 그지없는 사회에 한탄하
며 일부는 자살을 하기까지 했다. 이 때, 물가 높은 도시 중 하나인 울산에서
한 대학생이 사회비판이 담긴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이 전국적으로 보도
된 이후로 전국의 4000만이 넘는 국민들이 격분하여 전국적으로 시위를 벌이
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무장 시위였지만, 강압적인 정부의 행동에 공공시설
을 이용한 자살테러까지 감행하게 된다.
2012년의 끝이 다 되어갈 무렵에도 정부군과 민군의 싸움은 계속 되었다. 현
재는 추세가 정부군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1월부터 시작된 비무장 시위
가 5월쯤부터 화염병을 이용한 공격과 공공시설을 이용한 테러가 발생했으며,
6월이 되어서야 이런 과격한 테러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후우.”
한철호는 입에 물던 담배를 뱉어내고 몸속에 남아 폐를 썩게 만드는 담배연기
를 자동차 매연 뿜어내듯이 뿜어내었다. 그의 입에서는 니코틴 등등의 인체를
개같이 만드는 화학약품들이 섞여 새로이 태어난 담배의 냄새가 진동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채선혜는 내가 왜 이렇게 가만히 있어야 되냐고 생각하
고 있었다. 아까의 말을 아예 하지 말았을 걸…… 하는 생각만이 그녀의 머리
를 어지럽혔다.
“저기…….”
둘이 서로를 보며 동시에 말했다. 둘은 서로의 모습을 보자마자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먼저 말하세요.”
“네가 먼저 말해.”
둘은 먼저 말하기기 부끄러웠는지, 서로에게 먼저 말하라고 떠밀 듯이 말했
다. 몇 번 그러다가 한철호가 용기를 내어 먼저 말해다.
“궁금한 게 있는데…… 어째서 나에게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거지?”
그의 질문에 채선혜는 한숨을 한 번 내쉰 뒤에 말했다.
“철호 씨.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에 놀라서는 안돼요. 알았죠?”
“놀랄일은 없을 거야.”
“그럼 말할게요. 저…… 사실은 울산 온산공단 쪽의 민군 지도자의 딸이에요.”
“!!!!”
한철호의 겉모습은 무반응이었지만 속으로는 놀라 자빠질 듯했다. 그 기색은
곧 표정으로 드러나 버렸다.
“그, 그랬었군. 그런데 어째서 자기의 정체를 쉽게 드러내는 거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에요. 혼자서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죠. 서로 협력하고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죠. 저도 그래요. 지금 민군이나 정부군 모두가 어느
한 쪽이 쓰러지는 것보다 가난하더라도 편안하게 살아가길 바라고 있을 거에
요. 저는 민군에서 고립된 존재에요. 아무도 저에게 일거리를 주지 않아요. 제
가 나서서 뭘 하려고 해도 됐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하겠습니다. 마
치 제가 그들로부터…….”
“그들로부터 소외감을 느꼈다고?”
채선혜의 눈에 눈망울이 맺혔다.
“맞아요. 소외된 느낌이었어요. 모두가 나를…… 따돌리는 듯한 느낌이었어
요. 다른 사람들은 무언가를 위해서 열심히 사는데…… 저 혼자만 바보같이 있
으니까…… 쓸쓸했어요. 늘 그랬죠. 그래서 쓸쓸함을 달래줄 사람을 찾으러
늘 울산대공원의 광장으로 와서 비둘기랑 같이 시간을 보냈었거든요.”
“때마침 내가 와서 날 네 쓸쓸함을 달래줄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나에게 애정
을 쏟은 것이다 그런 것이군.”
“솔직히 말해서…… 그래요.”
채선혜는 울고 있었다. 자신의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남자에
게 애정을 쏟은 그녀 자신이 매우 비참하고 죄스럽게 느껴졌다.
“이런 제가…… 밉지 않으세요?”
울고있던 그녀가 무뚝뚝한 얼굴로 가만히 있던 한철호에게 물었다. 그는 주머
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며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원래 인간이란 그런 동물이야. 세상에서 제일 나약한 동물이지. 자기를 위해
서라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고 행하는 게 본능적으로만 행동하는 짐승들만
도 못해. 네가 그런 마음으로 행동한 건 그나마 나은 것일지도 모르지. 이용해
먹은 씹쌔끼들 보단 훨씬 나을 테니.”
그는 다 피우다 만 담배를 침 뱉듯이 바닥에 뱉어버렸다. 이제 그의 버릇이 피
우다 만 담배를 뱉어버리는 게 되어버린 모양이다.
채선혜는 그네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한철호도 따라 몸을 일으키며 말했
다.
“솔직히 나도 말할 게 있어. 난 정부군 송골매부대 소속 소대장이다.”
그의 말에 채선혜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까무러쳐 버린다.
“네!? 송골매부대요? 설마 했는데…… 정말 송골매부대 소속이었다니.”
한철호는 사복 바지 주머니에 있던 매그넘을 꺼내어 보였다.
“이 권총은 상부 기관에서 소대장의 권한으로 명령을 듣지 않는 병사를 죽이
라고 지급한 것이지. 소대장의 특권이라고나 할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매그넘을 주머니에 도로 넣어버렸다. 그리고는 또다시 담
배를 피우기 시작한다. 기름으로 우중충해진 기분을 모조리 태워버리기 위
해……
하지만 이런다고 한철호의 기분이 하늘로 증발해버리는 가벼운 수증기가 될
리가 없었다. 담배를 피우면 피울수록 그의 마음은 탁한 담배연기로 호흡기가
썩어 들어가는 것처럼 될 뿐이었다.
그는 담배를 침 뱉듯이 뱉어버리고 재킷안에 있던 시디플레이어를 채선혜에
게 주며 말했다.
“이건 내가 아끼는 시디플레이어야. 2년 된 거지. 쓸쓸하면 음악으로 달래봐.
뉴 에이지라 좀 그렇지만 나름대로 들을 만해.”
“이, 이런 걸 저에게 주시는 거에요?”
“군인에게 음악 따위는 필요없어. 그럼.”
한철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울산대공원을 빠져나가려 발걸음을 옮겼다.
“자, 잠깐만요!”
“…….”
발걸음을 옮기던 그는 채선혜의 외침에 순간적으로 멈추어 뒤로 돌아보았다.
“저기…… 제가 싫어서 가시는 거라면 말리지 않겠어요. 하지만 다시 만나주
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내일 정오에 우리가 처음 만났던 장소로 와 주세요!”
채선혜의 어조는 애절하기 짝이 없었다. 부탁을 하는 것인지 애걸복걸하는 것
인지 구걸을 하는 것인지 혼동될 정도였다.
한철호는 그런 그녀의 말에 돌아서서 택시를 타고 사라지는 것으로 보답했
다. 그의 표정은 침울함이 가득 차 있었다.
택시를 타고 시청을 향하던 한철호는 평상시와는 달리 크고 작은 장갑차들이
분주하게 다니는 것을 목격했다. 송골매부대 군인들도 목격했다. 그들은 모두
어느 한 지점을 향해 이동하는 듯했다. 뭔가 심상치 않다고 짐작한 그는 운전
기사에게 저들을 따라가 보라고 했다.
택시가 장갑차들을 따라 갔다. 장갑차들은 공교롭게도 울산 시청의 도로 앞
에 모여들고 있었다. 그 장갑차들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군인들과 장교들이 내
려 시청 안으로 모여 들었다.
한철호는 택시기사에게 요금을 지불하고 그들을 뒤따라가 보았다. 시청의 건
물 앞에는 시장이 장교들에게 허리를 굽히며 손수 차를 대접하고 있었다. 시장
이란 작자가 저렇게 줏대가 없다니…… 한철호는 혀를 끌끌 차며 시청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를 마시고 있던 장교 한 명이 한철호를 보고는 찻잔을 내려놓고 그에게 걸
어가며 그를 불렀다.
“한철호 소대장.”
한철호는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장교를 보는 순간 당황해며 경례했
다. 그는 한철호의 상사 되는 소장이었던 것이다.
“충! 성!”
“충성.”
소장도 경례했다. 둘은 경례를 끝내고 한적한 벤치로 발걸음을 옮겼다.
벤치에 앉은 소장은 한철호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 갔다오는 건가?”
“바람쐬러 갔다왔습니다.”
한철호는 그렇게 말했다. 소장은 한철호에게 담배 한 개비를 얻어 피우기 시
작했다. 담배 연기는 베틀에서 나오는 실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래? 요새 많이 풀어지는군 그래.”
“…….”
“하하하! 괜찮네. 자네는 단지 내 명령에만 따르는 게 아닌가?”
“…….”
소장은 담배를 입에 물고 코로 연기를 내뿜으며 한철호에게 말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알려주겠다. 좋은 소식은 공략하기 힘들었던 온산
공단이 밀고한 한 민군 덕에 아무런 피해 없이 쉽게 공략했네. 그리고 나쁜 소
식은 그 지역 민군지도자의 딸이 도망쳤다는 것이네. 그대로 놔둔다면 아직 정
리되지 않은 민군들을 설득하러 돌아다닐 위험이 있지.”
“…….”
한철호는 고개를 푹 숙이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 꼴을 보던 소장이 그에게
넌시지 물었다.
“자네 그 민군지도자의 딸을 알지?”
“전혀 모릅니다.”
한철호는 회피하듯이 딱 잡아뗐다.
“만약 자네가 그 여자를 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어쩔 텐가? 자진해서 영
창 갈텐가?”
“마치 제가 그 여자와 아는 사이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군요.”
“당연하지. 1시간 전에 자네가 그 채선혜라는 여자와 만나고 왔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니까.”
“!!!!”
한철호는 그 소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소장은 그런 그의 얼굴을 보고는
내 말이 맞지? 라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어떻게 소장이 채선혜란 여자를 알
았을까? 그리고 한철호가 그녀와 만난 것도 어떻게 알았을까?
“울산대공원을 지나쳐 온 군인이 자네와 채선혜가 만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었지. 군인으로써, 그것도 정부에게 월급만 300만원씩이나 받는
군인 중 한명인 자네가 어찌 정부의 적인 민군과 만날 수가 있단 말인가!”
“할말 없습니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군법 제 1조와 정부군법 제 1조를 복창해봐라!”
“군법 제 1조! 군인은 상사의 명령에 절대복종한다! 정부군법 제 1조! 절대복
종은 물론이요, 민군은 우리 정부군의 적이다!”
“말은 잘 한다!”
“…….”
소장은 복창을 마친 한철호를 꾸짖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은색으로 된 구경
20mm총알을 한철호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 총알은 철갑탄이다. 그리고 총알이 몸에 박히는 순간에 독극물이 퍼지도
록 특수 설계한 총알이지. 내가 자네에게 왜 이 총알을 주는지 잘 알겠지?”
한철호는 침울한 얼굴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눈치가 빨라서 좋아. 그럼 이 총알로 잘 해보게. 이 일만 끝나면 상부
에 자네를 미국에 휴가를 보내달라고 건의하겠네. 그럼 내일 좋은 소식을 기다
리겠네.”
소장은 한철호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자리에서 일어나 가 버렸다. 6발의 은색
총알을 쥔 한철호는 주머니에서 매그넘을 꺼내어 총알을 은색 총알로 갈아 끼
우고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그리고는 군인들에게 몸살이라는 핑계로 자가용
장갑차에 들어가 드러누워 버렸다.
한철호는 평상시와는 늦은 10시에 일어났다.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눈
은 퉁퉁 부었고 눈 밑은 시퍼랬다. 머리칼은 눌러졌고 피부는 떡칠한 것 같아
보였다.
그는 씻지도 않고 손수 자가용 장갑차를 몰고 울산대공원에 갔다.
대공원 앞에 도착한 그는 장갑차에서 내려 매그넘 하나만 들고 아무도 없는
폐허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공원을 거닐고 다녔다. 참새들은 숨 가쁘게 지저귀
고 벌레들은 꿈틀거리며 살아있다는 표시를 하지만, 한철호만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착잡함과 침울함과 비참함의 이끼로 뒤덮힌 듯했다.
그는 채선혜와 약속했던 장소에서 약속시간 보다 1시간 빠른 11시에 와서 빈
공터에 앉아 기다렸다. 그의 오른손에는 구름에 끼어 햇빛이 비치지 않아 찬란
한 빛을 내지 못하는 매그넘이 쥐어져 있었다.
매섭게 불어 닥치는 찬 바람 한줄기가 한철호의 뺨을 후려치듯이 지나간다.
덤으로 낙엽 하나도 그의 뺨을 후려치듯이 지나간다……
한철호의 앞에 채선혜가 나타났다. 그녀는 한철호가 준 시디플레이어를 들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 역시 한철호와 같았다.
“…….”
“…….”
둘은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대화는 기대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 이유는
한철호의 표정이 민군을 죽일 때의 악바리 같은 표정으로 변하여 구경 20mm
의 매그넘을 채선혜의 가슴 쪽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채선혜는 이어폰을 빼고 시디플레이어를 가슴에 올려다 놓으며 말했다.
“결국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요?”
“…….”
“당신 탓이 아니에요.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 거에요.”
“…….”
그녀의 표정은 마치 자식과 헤어져서 슬피 우는 부모 같았다. 그녀의 눈에서
는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제…… 사람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있는 걸 봤어요. 군인들은 시체를 모
아 바닷가에 던져 버렸죠. 그 시체들 중에 제 부모님도 끼어 있었어요…… 저
혼자 살아남았죠.”
“…….”
매그넘을 쥔 한철호의 손이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군인들을 속으로 저주했어요…… 어째서 썩은 정부의 앞잡이 짓을 하는 거
지? 혼자 살려고 왜 남을 죽이지? 라고 생각했죠…….”
“…….”
“철호씨는 좀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겉은 차가워도…… 무뚝뚝해보여
도…… 다른 군인들과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저의 그런 생각은 산산이 부서졌어요! 당신은 상사의 말
에 절대복종하는 군인에 지나지 않았어요!”
채선혜는 눈물을 쏟아내며 한철호를 질책하듯이 외쳐댔다. 그러나 그런 말을
잠자코 듣기만 하다 뱉어낸 한철호의 대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허탈감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곧 매그넘의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커멓게 변해버린 하
늘에서는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철호씨.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세요.”
“…….”
채선혜는 매그넘으로 자신을 쏘려고 하는 한철호를 설득했다. 그러나 수개월
간의 혹독한 훈련으로 다져진 강철같은 그의 마음을 말 몇 마디 따위로 쉽사
리 구부릴 수 없었다.
“이제 사람 죽이는 군인은 그만두고 저랑 같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가요!”
“…….”
“철호씨! 민군을 다 죽인다면 정부에서는 이제 군인은 필요 없다며 다 해고시
킬 거에요! 그 전에 저랑 같이 도망가요!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거에요!
“…….”
한철호의 손가락이 매그넘의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이었다. 그의 몸 전체는 덜
덜 떨고 있었다.
“철호씨!”
“그만해.”
“철호씨! 저랑 같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가요!”
“그만해!”
“철호씨!”
“그만해!! 시끄러워!!”
타앙!
한철호가 쏜 한 발의 철갑탄이 아주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날아가 방어하려
내밀던 시디플레이어를 뚫고 채선혜의 가슴에 박혔다. 그녀의 가슴에서 선홍
빛의 핏줄기가 새어나오며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으으으…….”
한철호는 겁에 질린 듯이 벌벌 떨었다. 그는 황급히 쓰러진 채선혜에게 다가
가 맥박을 짚어보았다.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은 것을 감지한 그는 바닥
에 쓰러져 차갑게 변한 채선혜를 부둥켜 안으로 울어댔다.
“으흐흐흐흑…….”
바닥은 채선혜의 피로 번져갔다. 한철호의 몸은 그녀의 피로 물들어 젖어갔
다. 이슬비를 뿌리던 하늘은 한철호의 행동을 꾸짖듯이 소나기를 퍼부어댔다.
참 안타까운 사랑이다.
전쟁속의 작은 사랑……
연인과 군인이란 갈등……
상사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만 하는 군인의 슬픔……
작은 사랑조차 용납지 않는 세상……
이 모든 것은 전쟁이란 씻을 수 없는 죄악에서 생겨난 것이라……
전쟁은 손해만 준다.
서로의 이익을 위한 전쟁은 서로의 손해만 줄 뿐이다.
서로의 손해를 위한 대화는 서로의 이익을 곱절로 되돌려준다.
싸우기 보단 대화로 해결합시다.
세상이 힘들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삽시다.
서로가 타협한다면……
대화로 해결한다면……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입니다.
날씨는 화창했다. 불쾌지수도 습도도 건조지수도 평균적이었다. 초겨울 날씨
치고는 비교적 괜찮은 편이었다.
따스하게 비치는(약간 불어대는 바람 때문에 차가운) 햇살 아래에 한철호와
채선혜는 공원을 둘러보며 걸어가고 있었다. 둘은 콜로세움형 광장부터 시작
해서 고장난 분수대, 어린이용 놀이터 순으로 살을 벨 것 같은 찬 바람을 쐬며
공원을 산책했다.
둘은 발걸음을 조금씩 옮기며 편안한 대화를 나누었다. 만난 지 오늘이 이틀
째밖에 되지 않았지만은 둘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결혼한 지 5년이 넘
은 부부와 같아 보였다.
하얀 국화꽃이 담긴 꽃다발을 든 채선혜는 눈동자를 놀이터의 그네 쪽으로 돌
렸다. 그녀는 한철호의 손을 잡고 그와 함께 놀이터의 그네에 앉았다.
“동심으로 돌아가는 기분이죠?”
그녀가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물었다.
“유치해.”
한철호는 지금 하는 짓거리가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채선혜는 꽃다발을 바
닥에 내려놓으며 홀로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우리가 60넘은 노인이 되면…… 그런 생각을 맨날 할지도 몰라요. 언제나 후
회하면서 살죠.”
“그게 무슨 상관이지?”
“모든 게…… 부질없는 짓이에요…… 죽으면 남는 거 없이 빈손으로 돌아가잖
아요.”
“하긴…… 맞는 말이지. 악착 써서 돈을 모아도 강도짓해서 모아도 착취해서
모아도 죽으면 모든 게 손에서 떠나버리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나는 거
야…….”
한철호는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며 그녀의 중얼거림에 동조하듯이 중얼거렸
다. 그의 입에는 어느 새 찰나같이 타 버리며 연기를 바람에 실어 날리는 담배
가 물려 있었다.
“…….”
둘은 분위기에 크게 벗어난 이야기를 한 탓에 왠지 모를 보이지 않는 벽이 둘
을 가로막는 듯했다. 전쟁속의 작은 사랑…… 아무리 사랑이 아름답다 해도 때
는 정부와 국민이 대대적으로 전쟁을 벌이는 시기였다. 위력을 따지자면 정부
군이 월등히 우세했다. 그러나 민군은 전투에서 밀린다 해도 절대 굽히지 않았
다. 그들은 자유와 평화를 원했다. 정부의 탄압이 판을 치는 세상에 살지언정
차라리 맞서 싸우다 죽겠다는 심정으로……
소대를 지휘하며 숱한 국민들을 죽여 온 한철호는 그들의 심정을 잘 알고 있
었다. 젊었을 때 그는 뜻이 통하는 동지들을 모아 썩어가고 있는 정부에 시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당시는 한국이 과도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거품이 부풀
어 오를 대로 부풀어 오른 거품이 빠지는 시기였다. 대부분의 기업이 문을 닫
고 이로 인해 길거리를 떠도는 실업자들이 곱절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거의 가족을 먹여 살리는 가장이었다. 밥 달라며 주저앉아 우는 자식들, 극에
달하는 아내의 바가지, 친척들의 눈치……
졸지에 부랑자와 알거지가 되어버린 그들은 엿 같기 그지없는 사회에 한탄하
며 일부는 자살을 하기까지 했다. 이 때, 물가 높은 도시 중 하나인 울산에서
한 대학생이 사회비판이 담긴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사건이 전국적으로 보도
된 이후로 전국의 4000만이 넘는 국민들이 격분하여 전국적으로 시위를 벌이
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비무장 시위였지만, 강압적인 정부의 행동에 공공시설
을 이용한 자살테러까지 감행하게 된다.
2012년의 끝이 다 되어갈 무렵에도 정부군과 민군의 싸움은 계속 되었다. 현
재는 추세가 정부군 쪽으로 기울어가고 있었다. 1월부터 시작된 비무장 시위
가 5월쯤부터 화염병을 이용한 공격과 공공시설을 이용한 테러가 발생했으며,
6월이 되어서야 이런 과격한 테러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후우.”
한철호는 입에 물던 담배를 뱉어내고 몸속에 남아 폐를 썩게 만드는 담배연기
를 자동차 매연 뿜어내듯이 뿜어내었다. 그의 입에서는 니코틴 등등의 인체를
개같이 만드는 화학약품들이 섞여 새로이 태어난 담배의 냄새가 진동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채선혜는 내가 왜 이렇게 가만히 있어야 되냐고 생각하
고 있었다. 아까의 말을 아예 하지 말았을 걸…… 하는 생각만이 그녀의 머리
를 어지럽혔다.
“저기…….”
둘이 서로를 보며 동시에 말했다. 둘은 서로의 모습을 보자마자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다.
“먼저 말하세요.”
“네가 먼저 말해.”
둘은 먼저 말하기기 부끄러웠는지, 서로에게 먼저 말하라고 떠밀 듯이 말했
다. 몇 번 그러다가 한철호가 용기를 내어 먼저 말해다.
“궁금한 게 있는데…… 어째서 나에게 그렇게 관심을 가지는 거지?”
그의 질문에 채선혜는 한숨을 한 번 내쉰 뒤에 말했다.
“철호 씨. 지금부터 제가 하는 말에 놀라서는 안돼요. 알았죠?”
“놀랄일은 없을 거야.”
“그럼 말할게요. 저…… 사실은 울산 온산공단 쪽의 민군 지도자의 딸이에요.”
“!!!!”
한철호의 겉모습은 무반응이었지만 속으로는 놀라 자빠질 듯했다. 그 기색은
곧 표정으로 드러나 버렸다.
“그, 그랬었군. 그런데 어째서 자기의 정체를 쉽게 드러내는 거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에요. 혼자서는 절대로 살아갈 수 없죠. 서로 협력하고
의지해야만 살아갈 수 있죠. 저도 그래요. 지금 민군이나 정부군 모두가 어느
한 쪽이 쓰러지는 것보다 가난하더라도 편안하게 살아가길 바라고 있을 거에
요. 저는 민군에서 고립된 존재에요. 아무도 저에게 일거리를 주지 않아요. 제
가 나서서 뭘 하려고 해도 됐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가 하겠습니다. 마
치 제가 그들로부터…….”
“그들로부터 소외감을 느꼈다고?”
채선혜의 눈에 눈망울이 맺혔다.
“맞아요. 소외된 느낌이었어요. 모두가 나를…… 따돌리는 듯한 느낌이었어
요. 다른 사람들은 무언가를 위해서 열심히 사는데…… 저 혼자만 바보같이 있
으니까…… 쓸쓸했어요. 늘 그랬죠. 그래서 쓸쓸함을 달래줄 사람을 찾으러
늘 울산대공원의 광장으로 와서 비둘기랑 같이 시간을 보냈었거든요.”
“때마침 내가 와서 날 네 쓸쓸함을 달래줄 사람으로 받아들이고 나에게 애정
을 쏟은 것이다 그런 것이군.”
“솔직히 말해서…… 그래요.”
채선혜는 울고 있었다. 자신의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남자에
게 애정을 쏟은 그녀 자신이 매우 비참하고 죄스럽게 느껴졌다.
“이런 제가…… 밉지 않으세요?”
울고있던 그녀가 무뚝뚝한 얼굴로 가만히 있던 한철호에게 물었다. 그는 주머
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며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원래 인간이란 그런 동물이야. 세상에서 제일 나약한 동물이지. 자기를 위해
서라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고 행하는 게 본능적으로만 행동하는 짐승들만
도 못해. 네가 그런 마음으로 행동한 건 그나마 나은 것일지도 모르지. 이용해
먹은 씹쌔끼들 보단 훨씬 나을 테니.”
그는 다 피우다 만 담배를 침 뱉듯이 바닥에 뱉어버렸다. 이제 그의 버릇이 피
우다 만 담배를 뱉어버리는 게 되어버린 모양이다.
채선혜는 그네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한철호도 따라 몸을 일으키며 말했
다.
“솔직히 나도 말할 게 있어. 난 정부군 송골매부대 소속 소대장이다.”
그의 말에 채선혜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까무러쳐 버린다.
“네!? 송골매부대요? 설마 했는데…… 정말 송골매부대 소속이었다니.”
한철호는 사복 바지 주머니에 있던 매그넘을 꺼내어 보였다.
“이 권총은 상부 기관에서 소대장의 권한으로 명령을 듣지 않는 병사를 죽이
라고 지급한 것이지. 소대장의 특권이라고나 할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매그넘을 주머니에 도로 넣어버렸다. 그리고는 또다시 담
배를 피우기 시작한다. 기름으로 우중충해진 기분을 모조리 태워버리기 위
해……
하지만 이런다고 한철호의 기분이 하늘로 증발해버리는 가벼운 수증기가 될
리가 없었다. 담배를 피우면 피울수록 그의 마음은 탁한 담배연기로 호흡기가
썩어 들어가는 것처럼 될 뿐이었다.
그는 담배를 침 뱉듯이 뱉어버리고 재킷안에 있던 시디플레이어를 채선혜에
게 주며 말했다.
“이건 내가 아끼는 시디플레이어야. 2년 된 거지. 쓸쓸하면 음악으로 달래봐.
뉴 에이지라 좀 그렇지만 나름대로 들을 만해.”
“이, 이런 걸 저에게 주시는 거에요?”
“군인에게 음악 따위는 필요없어. 그럼.”
한철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울산대공원을 빠져나가려 발걸음을 옮겼다.
“자, 잠깐만요!”
“…….”
발걸음을 옮기던 그는 채선혜의 외침에 순간적으로 멈추어 뒤로 돌아보았다.
“저기…… 제가 싫어서 가시는 거라면 말리지 않겠어요. 하지만 다시 만나주
실 생각이 있으시다면 내일 정오에 우리가 처음 만났던 장소로 와 주세요!”
채선혜의 어조는 애절하기 짝이 없었다. 부탁을 하는 것인지 애걸복걸하는 것
인지 구걸을 하는 것인지 혼동될 정도였다.
한철호는 그런 그녀의 말에 돌아서서 택시를 타고 사라지는 것으로 보답했
다. 그의 표정은 침울함이 가득 차 있었다.
택시를 타고 시청을 향하던 한철호는 평상시와는 달리 크고 작은 장갑차들이
분주하게 다니는 것을 목격했다. 송골매부대 군인들도 목격했다. 그들은 모두
어느 한 지점을 향해 이동하는 듯했다. 뭔가 심상치 않다고 짐작한 그는 운전
기사에게 저들을 따라가 보라고 했다.
택시가 장갑차들을 따라 갔다. 장갑차들은 공교롭게도 울산 시청의 도로 앞
에 모여들고 있었다. 그 장갑차들에서는 전국에서 모인 군인들과 장교들이 내
려 시청 안으로 모여 들었다.
한철호는 택시기사에게 요금을 지불하고 그들을 뒤따라가 보았다. 시청의 건
물 앞에는 시장이 장교들에게 허리를 굽히며 손수 차를 대접하고 있었다. 시장
이란 작자가 저렇게 줏대가 없다니…… 한철호는 혀를 끌끌 차며 시청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차를 마시고 있던 장교 한 명이 한철호를 보고는 찻잔을 내려놓고 그에게 걸
어가며 그를 불렀다.
“한철호 소대장.”
한철호는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그는 장교를 보는 순간 당황해며 경례했
다. 그는 한철호의 상사 되는 소장이었던 것이다.
“충! 성!”
“충성.”
소장도 경례했다. 둘은 경례를 끝내고 한적한 벤치로 발걸음을 옮겼다.
벤치에 앉은 소장은 한철호에게 말을 걸었다.
“어디 갔다오는 건가?”
“바람쐬러 갔다왔습니다.”
한철호는 그렇게 말했다. 소장은 한철호에게 담배 한 개비를 얻어 피우기 시
작했다. 담배 연기는 베틀에서 나오는 실처럼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래? 요새 많이 풀어지는군 그래.”
“…….”
“하하하! 괜찮네. 자네는 단지 내 명령에만 따르는 게 아닌가?”
“…….”
소장은 담배를 입에 물고 코로 연기를 내뿜으며 한철호에게 말했다.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을 알려주겠다. 좋은 소식은 공략하기 힘들었던 온산
공단이 밀고한 한 민군 덕에 아무런 피해 없이 쉽게 공략했네. 그리고 나쁜 소
식은 그 지역 민군지도자의 딸이 도망쳤다는 것이네. 그대로 놔둔다면 아직 정
리되지 않은 민군들을 설득하러 돌아다닐 위험이 있지.”
“…….”
한철호는 고개를 푹 숙이며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 꼴을 보던 소장이 그에게
넌시지 물었다.
“자네 그 민군지도자의 딸을 알지?”
“전혀 모릅니다.”
한철호는 회피하듯이 딱 잡아뗐다.
“만약 자네가 그 여자를 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어쩔 텐가? 자진해서 영
창 갈텐가?”
“마치 제가 그 여자와 아는 사이인 것처럼 말씀하시는 군요.”
“당연하지. 1시간 전에 자네가 그 채선혜라는 여자와 만나고 왔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니까.”
“!!!!”
한철호는 그 소리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소장은 그런 그의 얼굴을 보고는
내 말이 맞지? 라는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어떻게 소장이 채선혜란 여자를 알
았을까? 그리고 한철호가 그녀와 만난 것도 어떻게 알았을까?
“울산대공원을 지나쳐 온 군인이 자네와 채선혜가 만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었지. 군인으로써, 그것도 정부에게 월급만 300만원씩이나 받는
군인 중 한명인 자네가 어찌 정부의 적인 민군과 만날 수가 있단 말인가!”
“할말 없습니다.”
“그건 당연한 것이다! 군법 제 1조와 정부군법 제 1조를 복창해봐라!”
“군법 제 1조! 군인은 상사의 명령에 절대복종한다! 정부군법 제 1조! 절대복
종은 물론이요, 민군은 우리 정부군의 적이다!”
“말은 잘 한다!”
“…….”
소장은 복창을 마친 한철호를 꾸짖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은색으로 된 구경
20mm총알을 한철호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 총알은 철갑탄이다. 그리고 총알이 몸에 박히는 순간에 독극물이 퍼지도
록 특수 설계한 총알이지. 내가 자네에게 왜 이 총알을 주는지 잘 알겠지?”
한철호는 침울한 얼굴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네는 눈치가 빨라서 좋아. 그럼 이 총알로 잘 해보게. 이 일만 끝나면 상부
에 자네를 미국에 휴가를 보내달라고 건의하겠네. 그럼 내일 좋은 소식을 기다
리겠네.”
소장은 한철호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자리에서 일어나 가 버렸다. 6발의 은색
총알을 쥔 한철호는 주머니에서 매그넘을 꺼내어 총알을 은색 총알로 갈아 끼
우고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그리고는 군인들에게 몸살이라는 핑계로 자가용
장갑차에 들어가 드러누워 버렸다.
한철호는 평상시와는 늦은 10시에 일어났다. 그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눈
은 퉁퉁 부었고 눈 밑은 시퍼랬다. 머리칼은 눌러졌고 피부는 떡칠한 것 같아
보였다.
그는 씻지도 않고 손수 자가용 장갑차를 몰고 울산대공원에 갔다.
대공원 앞에 도착한 그는 장갑차에서 내려 매그넘 하나만 들고 아무도 없는
폐허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공원을 거닐고 다녔다. 참새들은 숨 가쁘게 지저귀
고 벌레들은 꿈틀거리며 살아있다는 표시를 하지만, 한철호만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그의 표정은 착잡함과 침울함과 비참함의 이끼로 뒤덮힌 듯했다.
그는 채선혜와 약속했던 장소에서 약속시간 보다 1시간 빠른 11시에 와서 빈
공터에 앉아 기다렸다. 그의 오른손에는 구름에 끼어 햇빛이 비치지 않아 찬란
한 빛을 내지 못하는 매그넘이 쥐어져 있었다.
매섭게 불어 닥치는 찬 바람 한줄기가 한철호의 뺨을 후려치듯이 지나간다.
덤으로 낙엽 하나도 그의 뺨을 후려치듯이 지나간다……
한철호의 앞에 채선혜가 나타났다. 그녀는 한철호가 준 시디플레이어를 들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 역시 한철호와 같았다.
“…….”
“…….”
둘은 서로를 지그시 바라보았다. 대화는 기대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 이유는
한철호의 표정이 민군을 죽일 때의 악바리 같은 표정으로 변하여 구경 20mm
의 매그넘을 채선혜의 가슴 쪽을 겨누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채선혜는 이어폰을 빼고 시디플레이어를 가슴에 올려다 놓으며 말했다.
“결국엔……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인가요?”
“…….”
“당신 탓이 아니에요. 세상이…… 우리를 그렇게 만든 거에요.”
“…….”
그녀의 표정은 마치 자식과 헤어져서 슬피 우는 부모 같았다. 그녀의 눈에서
는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어제…… 사람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여있는 걸 봤어요. 군인들은 시체를 모
아 바닷가에 던져 버렸죠. 그 시체들 중에 제 부모님도 끼어 있었어요…… 저
혼자 살아남았죠.”
“…….”
매그넘을 쥔 한철호의 손이 점점 떨리기 시작했다.
“군인들을 속으로 저주했어요…… 어째서 썩은 정부의 앞잡이 짓을 하는 거
지? 혼자 살려고 왜 남을 죽이지? 라고 생각했죠…….”
“…….”
“철호씨는 좀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겉은 차가워도…… 무뚝뚝해보여
도…… 다른 군인들과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저의 그런 생각은 산산이 부서졌어요! 당신은 상사의 말
에 절대복종하는 군인에 지나지 않았어요!”
채선혜는 눈물을 쏟아내며 한철호를 질책하듯이 외쳐댔다. 그러나 그런 말을
잠자코 듣기만 하다 뱉어낸 한철호의 대답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허탈감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곧 매그넘의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커멓게 변해버린 하
늘에서는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철호씨. 지금이라도 마음을 바꾸세요.”
“…….”
채선혜는 매그넘으로 자신을 쏘려고 하는 한철호를 설득했다. 그러나 수개월
간의 혹독한 훈련으로 다져진 강철같은 그의 마음을 말 몇 마디 따위로 쉽사
리 구부릴 수 없었다.
“이제 사람 죽이는 군인은 그만두고 저랑 같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가요!”
“…….”
“철호씨! 민군을 다 죽인다면 정부에서는 이제 군인은 필요 없다며 다 해고시
킬 거에요! 그 전에 저랑 같이 도망가요! 그리고 행복하게 사는 거에요!
“…….”
한철호의 손가락이 매그넘의 방아쇠를 당기기 직전이었다. 그의 몸 전체는 덜
덜 떨고 있었다.
“철호씨!”
“그만해.”
“철호씨! 저랑 같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가요!”
“그만해!”
“철호씨!”
“그만해!! 시끄러워!!”
타앙!
한철호가 쏜 한 발의 철갑탄이 아주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날아가 방어하려
내밀던 시디플레이어를 뚫고 채선혜의 가슴에 박혔다. 그녀의 가슴에서 선홍
빛의 핏줄기가 새어나오며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으으으…….”
한철호는 겁에 질린 듯이 벌벌 떨었다. 그는 황급히 쓰러진 채선혜에게 다가
가 맥박을 짚어보았다. 생명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은 것을 감지한 그는 바닥
에 쓰러져 차갑게 변한 채선혜를 부둥켜 안으로 울어댔다.
“으흐흐흐흑…….”
바닥은 채선혜의 피로 번져갔다. 한철호의 몸은 그녀의 피로 물들어 젖어갔
다. 이슬비를 뿌리던 하늘은 한철호의 행동을 꾸짖듯이 소나기를 퍼부어댔다.
참 안타까운 사랑이다.
전쟁속의 작은 사랑……
연인과 군인이란 갈등……
상사의 명령에 절대복종해야만 하는 군인의 슬픔……
작은 사랑조차 용납지 않는 세상……
이 모든 것은 전쟁이란 씻을 수 없는 죄악에서 생겨난 것이라……
전쟁은 손해만 준다.
서로의 이익을 위한 전쟁은 서로의 손해만 줄 뿐이다.
서로의 손해를 위한 대화는 서로의 이익을 곱절로 되돌려준다.
싸우기 보단 대화로 해결합시다.
세상이 힘들더라도 희망을 가지고 삽시다.
서로가 타협한다면……
대화로 해결한다면……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은 꿈이 아닌 현실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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