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공간 - 에피소드2. 묘한 출발의 여운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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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어~ 이제오냐 시아?"
"흥! 전혀 안 반갑네!"
"우윽, 이봐 시아. 오늘은 또 왜 저기압인거야?"
"1000골드라고! 무려 1000골드! 퀘스트를 3번 수행해야지 간신히 긁어 모을 수 있는 거금이란말야!"
시아는 잔뜩 화가난 듯이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그걸 듣는 하이드나 시엘에겐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세계의 말이었다. 저기압과 1000골드가 대체 무슨 연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화난 시아의 힘은 오거 다섯마리를 뭉쳐다가 놓아도 전혀 지지 않을 정도이기에 둘은 그저 조용히 입다물고 탁자위에서 거품을 잔뜩 뿜고있는 맥주를 들이킬 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시아가 두잔을 거의 빼앗다시피해서 자신의 목구멍으로 넘겨버린지라,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왜 하필이면! 메르케르 숲에서 트롤이 나오는거냐구!"
"뭐엇!? 트롤을 만났었어? 그런데 너 살아 돌아온거야?"
"그래. 운이 좋게도 살아돌아왔다. 으이그~!"
놀라하는 하이드에게 뾰루퉁하게 쏘아대는 시아를 향해서 이번에는 시엘이 물었다.
"그런데 동생아. 어떻게 트롤에게서 살아 돌아온거냐?"
"이상하고 음침한 변태같은 녀석이 버그인지는 몰라도 샷건을 들고서 Bang! 트롤이 완전히 박살나버렸다── 랄까? 아무튼 거기까진 좋았지───"
시아의 말에 둘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시아를 빤히 쳐다보았다. 시아는 그런 둘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도끼눈으로 둘을 노려보았다. 덕분에 둘은 고전적인 회피용어를 남발하기에 그지 없었다.
"날씨 좋군. 안그런가 하이드군?"
"물론이지. 어허허~ 시엘 자네 옷은 언제나 봐도 멋지군."
"어디까지나 둘 모두다 엉큼한 남자라 이거지? 흥! 걱정마셔! 그런 해괴망측한── 아! 무! 튼! 그 녀석이 날 구해준 댓가라면서 1000골드를 가져갔다는 거잖아! 아악! 분해라! 차라리 죽고말지. 내 피같은 돈을── 흑흑흑──"
시아는 급기야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이드와 시엘은 서로 귀를 맞대고서 툴툴거렸다.
"하기사, 지난번에 5골드 빌리려다가 건물 벽에 틀어밖힌건 정말 대단했지."
"5골드 씩이나? 하이드군. 간이 부었었나봐?"
"거.기. 두우울? 자꾸만 나 몰래 호박씨 깔꺼야아아아!?"
결국 그날 달다이라 여관 브로세리카의 홀에서는 두사람의 비명이 한밤중까지 계속 되었다고 한다.
* * *
"어? 좋은 아침이에요. 설경씨."
"응? 시아양인가. 뭐, 좋은 아침이네."
"어라? 그건 뭐죠?"
"시엘군의 부탁으로 시아양의 검을 약간 손질했지. 자아. 이정도면 잘 갈아졌네. 그리고 하이드씨가 자네 쓰라고 아침부터 갑옷을 사다놓았다네. 시아양은 참 복도많아."
뭐, 약간 마음에 걸리는게 많은 시아였지만, 그러나 그 둘에게 만큼은 조금도 미안하지 않은 것도 역시 시아였다. 설경이 손질한 바스타드 소드는 새것처럼 은빛으로 투명하게 빛이 나고 있었고, 갑옷 역시 은빛으로 투명하게 빛났다. 시아는 갑옷을 걸치고 바스타드 소드를 허리춤의 칼집에 도로 꽂았다. 그리고 머리를 조금 매만진 뒤에 홀의 거울앞에서 옷매무시를 점검하고 설경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때요? 이렇게 하면 괜찮나요?"
"음. 보기 좋네. 그보다 퀘스트를 하러갈 생각인가?"
"네. 어제 조금 일도 있었고──"
"그렇다면 나와 함께 가지 않겠나? 혼자서 하는 퀘스트는 조금 질려서 말일세."
"에? 그런가요? 그러면 함께가요."
시아의 승락에 설경은 기분좋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정하게 뒤로 묶은 긴 머리와, 그리고 차분해보이는 얼굴. 소매폭이 넓은 옷자락과, 허리춤에 차고 있는 긴 일본도는 마치 잘 정돈된 동양의 검객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 같은 모습의 설경이었다. 그리고 그 자신도 꽤나 뛰어난 솜씨의 검사였기에, 시아는 기분좋게 승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엘군은 자네의 오라비가 되는데, 사이좋게 지내면 좋지 않겠는가? 어제는 좀 심했다네."
"히엑! 다 보셨나요?"
"안볼래야 안보일 수가 없지. 숙녀는 언제나 정숙한 법이라네. 뭐, 시아양처럼 활기찬 아가씨도 나쁘지는 않지만 말일세."
"헤헤헷. 그러면 어서 퀘스트를 검색해 볼까요?"
"아, 내가 미리 검색해 둔 것이 있다네."
설경이 앞서서 걸어간 곳은 한 구석진 골목에 차려진 노점의 점술가였다. 점술가의 얼굴은 매우 일그러져 있어서 시아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뒷걸음질을 칠 정도였다. 하지만 설경은 괜찮다는 듯이 다가오라고 손짓을 했고, 시아는 천천히 걸어서 다시 점술가의 앞에 섰다. 점술가는 시아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곧 설경을 향해서 말했다.
"그렇군. 그 부탁을 들어주려고 온겐가?"
"──그런셈이지요."
"그렇군. 설명은 다시 안해도 되겠지? 아가씨는 설명이 필요한가?"
"히엑? 네, 넷!"
갑작스러운 시선에 시아는 잔뜩 굳어서 대답했다. 그러자 설경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시아의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제가 설명해드리지요. 그럼 이만──"
"다녀오시게나. 부디 성공하길 빌겠네."
골목길에서 나오자마자 시아는 고개를 좌우로 새차게 흔들면서 말했다.
"후아아── 그렇게 무섭게 생긴 사람도 있구나."
"하하하, 뭐 생긴것은 그렇지만, 솜씨좋은 점술가라네. 그보다 맘대로 정해서 미안하지만── 이번 우리의 퀘스트는 오크족장을 만나는 것일세."
"네에!?"
"그 점술가, 사실은 인간과 오크의 혼혈이라고 들었다네. 그래서 오크와도 어느정도 친분이 있는 모양이야. 그런데 요즘 제국측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대다가, 근처의 소수 몬스터 무리들을 토벌하러 다니는 토벌대도 있고 해서 걱정이 되는 모양이더군."
시아는 한손으로 턱을 짚으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곧 약간은 심각해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군요. 하지만 만만치는 않겠는데요."
"그거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시아양의 힘이라면 분명히 통할껄세. 하하하──"
"아잉! 자꾸 놀리실 껀가욧!"
* * *
"펜리스 숲은 언제나 와도 쌀쌀하군요."
"뭐, 오래전 메르케르 숲의 구석에 냉혹의 마물 펜리스가 숨어들어 그 생명을 다한채 죽어갔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숲이니까. 하지만, 그 덕분에 오크들에겐 더없이 좋은 은닉처가 되었겠지. 자, 거기에 있는 나뭇가지 조심하시게나."
설경은 친절하게 길을 만들면서 서서히 전진을 했다. 책자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서서히 나아가고 있었지만, 온도는 조금씩 더 낮아져서, 이제는 입에서 하얀입김이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시아의 은빛갑옷 위로 하얀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시아는 얼어붙은 몸을 풀겸 몸을 움직이다가, 나무들 사이로 급하게 숨어드는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구냐!"
피융! 팅!
시아는 급히 몸을 틀었다. 덕분에 화살은 갑옷의 두꺼운 철판에 부딫혀 부러지며 튕겨져 나가버렸다. 설경에게도 말을 하려고 돌려보자 설경은 이미 가만히 서서 칼위로 손을 올린채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윽고, 아주 조그만 목소리가 시아의 귓가에 울려퍼졌다.
'적은 내가 만든 이 길을 기준으로 좌측 나뭇가지 위에 하나, 우측 땅속에 둘. 그리고 우측 나뭇가지 위에 둘정도가 매복해 있다네. 몸이 가벼운 내가 나뭇가지 위로 올라갈테니 시아양은 땅속에 매복한 적을 상대해주시게나.'
시아는 설경의 목소리에 아주 살짝 고개를 흔들고서는 몸을 돌려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위로 화살이 날아왔으나, 시아의 갑옷에 화살이 오히려 튕겨져 나가버렸다.
"대단해. 갑옷사이를 일부러 노리고 있어. 하지만 그정도로는 이 시아님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야!"
부웅! 파각!
거칠은 일격에 적들이 숨어있던 지하참호가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적들은 참호에서 튀어나와 시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일그러진 얼굴, 뾰족한 코, 그리고 녹색의 피부. 분명히 그것은 오크였다. 단지, 메르케르 숲의 멍청한 녀석들과는 다르게, 나무껍질로 만든 듯한 갑옷을 입고 있었고, 짧은 칼과 활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를 파괴하려 온 것이냐! 인간!"
"아냐! 우린 단지 너희들의 대장에게 말을 전하기 위── 히에엑!"
피융! 피융!
"그런 어처구니 없는 말에 누가 속을 줄 아는가? 우리는 그렇게 멍청한 녀석들은 아니다!"
"위험하잖아! 그리고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 히이익!"
그 순간 나뭇가지위로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휙휙 지나가더니, 곧 밧줄에 꽁꽁묶인채 아래로 늘어져서는 바둥바둥거리는 오크 셋과 함께 설경이 땅으로 사뿐히 내려 앉았다. 그러더니, 곧 사람모습의 종잇조각을 꺼내더니 나지막하게 외쳤다.
"활(活)!"
그러자 종잇조각은 하얀 연기와 함께 골목길의 점술가처럼 변했다.
"우리는 메네스가 보내서 온 자들이오. 그대들의 대장에게 말을 전해야 하기에 이곳에 찾아온 것이오."
"───그대의 주술에 우리가 속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대들이 과연 메네스가 보낸자라는 증거는 있는가?"
그러자 설경은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들었다. 오크들은 편지를 받아들자마자 무기를 내려놓고 말했다.
"확실하다. 메네스의 주술이 느껴지는 물건이다. 하지만 대장을 만나지는 못할듯 싶다. 대장은 지금 펜리스 숲의 괴수들과 싸우기 위해서 북쪽으로 향했다."
"괴수라니?"
설경의 질문에 오크들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믿어볼만한 인간들 같기에 말하겠다. 얼마전 우리 펜리스 오크족은 어떤 거대한 도마뱀으로부터 습격을 받았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싸웠지만, 거대한 도마뱀의 주위로는 짙은 독구름이 있어서 다가가기도 전에 죽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우리는 그 도마뱀과의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기 위해서 대장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향했다."
오크들의 말에 시아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곧 류르를 꺼내들고서는 물었다.
"방금 들은 그 괴물 뭔지 알수 있겠어? 류르?"
[류르 - 네. 아마도 슬러지 리저드(Sludge Lizard)라고 생각됩니다. 느릿한 행동때문에 그렇게 위험한 몬스터는 아니지만, 정면으로 붙게 된다면 트롤만큼이나 위험한 몬스터입니다. 하지만 워낙 깊은 펜리스 숲속에서 살기 때문에 이런 외곽까지 나왔다는 것은 화가나있는게 확실합니다.]
"화가 났다? 어째서?"
[류르 - 글쎄요. 그거야 지 맘아닙니까?]
류르의 솔직담백한 대답에 설경과 시아는 할말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설경은 곧 정신을 차리고서 말했다.
"그렇다면 일단은 저희는 물러나겠소. 그런데 그대들은 언제쯤 출발할 것이오?"
"두번째 부대는 내일쯤이면 출발할 것이다."
"그러면 내일 우리도 일행을 데려올테니 기다려 주시겠소?"
"도와준다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것이고, 사실 우리도 슬러지 리저드에게 얻을 수 있는 물건이 많으니까 말이오."
설경의 말에, 오크들은 잠깐 서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고, 설경은 재차 다짐을 받은 뒤에야 뒤돌아섰다. 시아는 그런 설경에게 물었다.
"내일 다시 오는 건가요?"
"그런셈이네. 그보다 자꾸 맘대로 진행해서 미안하군."
"괜찮아요. 내일은 하이드랑 저희 오빠, 그리고 카렌씨와 태상씨에게도 부탁해봐요."
"하이드씨와 시엘군은 올지도 모르겠지만, 카렌과 태상은 올지 모르겠군."
설경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자아! 어서 돌아가요. 여긴 너~무 춥다구요."
"하하하! 알겠네."
슬러지 리자드와의 결전을 약속한 시아와 설경.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흥! 전혀 안 반갑네!"
"우윽, 이봐 시아. 오늘은 또 왜 저기압인거야?"
"1000골드라고! 무려 1000골드! 퀘스트를 3번 수행해야지 간신히 긁어 모을 수 있는 거금이란말야!"
시아는 잔뜩 화가난 듯이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그걸 듣는 하이드나 시엘에겐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세계의 말이었다. 저기압과 1000골드가 대체 무슨 연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화난 시아의 힘은 오거 다섯마리를 뭉쳐다가 놓아도 전혀 지지 않을 정도이기에 둘은 그저 조용히 입다물고 탁자위에서 거품을 잔뜩 뿜고있는 맥주를 들이킬 뿐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시아가 두잔을 거의 빼앗다시피해서 자신의 목구멍으로 넘겨버린지라,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왜 하필이면! 메르케르 숲에서 트롤이 나오는거냐구!"
"뭐엇!? 트롤을 만났었어? 그런데 너 살아 돌아온거야?"
"그래. 운이 좋게도 살아돌아왔다. 으이그~!"
놀라하는 하이드에게 뾰루퉁하게 쏘아대는 시아를 향해서 이번에는 시엘이 물었다.
"그런데 동생아. 어떻게 트롤에게서 살아 돌아온거냐?"
"이상하고 음침한 변태같은 녀석이 버그인지는 몰라도 샷건을 들고서 Bang! 트롤이 완전히 박살나버렸다── 랄까? 아무튼 거기까진 좋았지───"
시아의 말에 둘은 침을 꿀꺽 삼키면서 시아를 빤히 쳐다보았다. 시아는 그런 둘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도끼눈으로 둘을 노려보았다. 덕분에 둘은 고전적인 회피용어를 남발하기에 그지 없었다.
"날씨 좋군. 안그런가 하이드군?"
"물론이지. 어허허~ 시엘 자네 옷은 언제나 봐도 멋지군."
"어디까지나 둘 모두다 엉큼한 남자라 이거지? 흥! 걱정마셔! 그런 해괴망측한── 아! 무! 튼! 그 녀석이 날 구해준 댓가라면서 1000골드를 가져갔다는 거잖아! 아악! 분해라! 차라리 죽고말지. 내 피같은 돈을── 흑흑흑──"
시아는 급기야 흐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하이드와 시엘은 서로 귀를 맞대고서 툴툴거렸다.
"하기사, 지난번에 5골드 빌리려다가 건물 벽에 틀어밖힌건 정말 대단했지."
"5골드 씩이나? 하이드군. 간이 부었었나봐?"
"거.기. 두우울? 자꾸만 나 몰래 호박씨 깔꺼야아아아!?"
결국 그날 달다이라 여관 브로세리카의 홀에서는 두사람의 비명이 한밤중까지 계속 되었다고 한다.
* * *
"어? 좋은 아침이에요. 설경씨."
"응? 시아양인가. 뭐, 좋은 아침이네."
"어라? 그건 뭐죠?"
"시엘군의 부탁으로 시아양의 검을 약간 손질했지. 자아. 이정도면 잘 갈아졌네. 그리고 하이드씨가 자네 쓰라고 아침부터 갑옷을 사다놓았다네. 시아양은 참 복도많아."
뭐, 약간 마음에 걸리는게 많은 시아였지만, 그러나 그 둘에게 만큼은 조금도 미안하지 않은 것도 역시 시아였다. 설경이 손질한 바스타드 소드는 새것처럼 은빛으로 투명하게 빛이 나고 있었고, 갑옷 역시 은빛으로 투명하게 빛났다. 시아는 갑옷을 걸치고 바스타드 소드를 허리춤의 칼집에 도로 꽂았다. 그리고 머리를 조금 매만진 뒤에 홀의 거울앞에서 옷매무시를 점검하고 설경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때요? 이렇게 하면 괜찮나요?"
"음. 보기 좋네. 그보다 퀘스트를 하러갈 생각인가?"
"네. 어제 조금 일도 있었고──"
"그렇다면 나와 함께 가지 않겠나? 혼자서 하는 퀘스트는 조금 질려서 말일세."
"에? 그런가요? 그러면 함께가요."
시아의 승락에 설경은 기분좋게 웃으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단정하게 뒤로 묶은 긴 머리와, 그리고 차분해보이는 얼굴. 소매폭이 넓은 옷자락과, 허리춤에 차고 있는 긴 일본도는 마치 잘 정돈된 동양의 검객을 그대로 형상화한 것 같은 모습의 설경이었다. 그리고 그 자신도 꽤나 뛰어난 솜씨의 검사였기에, 시아는 기분좋게 승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시엘군은 자네의 오라비가 되는데, 사이좋게 지내면 좋지 않겠는가? 어제는 좀 심했다네."
"히엑! 다 보셨나요?"
"안볼래야 안보일 수가 없지. 숙녀는 언제나 정숙한 법이라네. 뭐, 시아양처럼 활기찬 아가씨도 나쁘지는 않지만 말일세."
"헤헤헷. 그러면 어서 퀘스트를 검색해 볼까요?"
"아, 내가 미리 검색해 둔 것이 있다네."
설경이 앞서서 걸어간 곳은 한 구석진 골목에 차려진 노점의 점술가였다. 점술가의 얼굴은 매우 일그러져 있어서 시아는 그 모습을 보자마자 뒷걸음질을 칠 정도였다. 하지만 설경은 괜찮다는 듯이 다가오라고 손짓을 했고, 시아는 천천히 걸어서 다시 점술가의 앞에 섰다. 점술가는 시아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곧 설경을 향해서 말했다.
"그렇군. 그 부탁을 들어주려고 온겐가?"
"──그런셈이지요."
"그렇군. 설명은 다시 안해도 되겠지? 아가씨는 설명이 필요한가?"
"히엑? 네, 넷!"
갑작스러운 시선에 시아는 잔뜩 굳어서 대답했다. 그러자 설경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시아의 손을 잡아 끌어당겼다.
"제가 설명해드리지요. 그럼 이만──"
"다녀오시게나. 부디 성공하길 빌겠네."
골목길에서 나오자마자 시아는 고개를 좌우로 새차게 흔들면서 말했다.
"후아아── 그렇게 무섭게 생긴 사람도 있구나."
"하하하, 뭐 생긴것은 그렇지만, 솜씨좋은 점술가라네. 그보다 맘대로 정해서 미안하지만── 이번 우리의 퀘스트는 오크족장을 만나는 것일세."
"네에!?"
"그 점술가, 사실은 인간과 오크의 혼혈이라고 들었다네. 그래서 오크와도 어느정도 친분이 있는 모양이야. 그런데 요즘 제국측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대다가, 근처의 소수 몬스터 무리들을 토벌하러 다니는 토벌대도 있고 해서 걱정이 되는 모양이더군."
시아는 한손으로 턱을 짚으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곧 약간은 심각해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그렇군요. 하지만 만만치는 않겠는데요."
"그거야 그럴지도 모르지만, 시아양의 힘이라면 분명히 통할껄세. 하하하──"
"아잉! 자꾸 놀리실 껀가욧!"
* * *
"펜리스 숲은 언제나 와도 쌀쌀하군요."
"뭐, 오래전 메르케르 숲의 구석에 냉혹의 마물 펜리스가 숨어들어 그 생명을 다한채 죽어갔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숲이니까. 하지만, 그 덕분에 오크들에겐 더없이 좋은 은닉처가 되었겠지. 자, 거기에 있는 나뭇가지 조심하시게나."
설경은 친절하게 길을 만들면서 서서히 전진을 했다. 책자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서서히 나아가고 있었지만, 온도는 조금씩 더 낮아져서, 이제는 입에서 하얀입김이 보일 정도였다. 그리고 시아의 은빛갑옷 위로 하얀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시아는 얼어붙은 몸을 풀겸 몸을 움직이다가, 나무들 사이로 급하게 숨어드는 그림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누구냐!"
피융! 팅!
시아는 급히 몸을 틀었다. 덕분에 화살은 갑옷의 두꺼운 철판에 부딫혀 부러지며 튕겨져 나가버렸다. 설경에게도 말을 하려고 돌려보자 설경은 이미 가만히 서서 칼위로 손을 올린채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는 이윽고, 아주 조그만 목소리가 시아의 귓가에 울려퍼졌다.
'적은 내가 만든 이 길을 기준으로 좌측 나뭇가지 위에 하나, 우측 땅속에 둘. 그리고 우측 나뭇가지 위에 둘정도가 매복해 있다네. 몸이 가벼운 내가 나뭇가지 위로 올라갈테니 시아양은 땅속에 매복한 적을 상대해주시게나.'
시아는 설경의 목소리에 아주 살짝 고개를 흔들고서는 몸을 돌려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위로 화살이 날아왔으나, 시아의 갑옷에 화살이 오히려 튕겨져 나가버렸다.
"대단해. 갑옷사이를 일부러 노리고 있어. 하지만 그정도로는 이 시아님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야!"
부웅! 파각!
거칠은 일격에 적들이 숨어있던 지하참호가 완전히 무너져 버렸고, 적들은 참호에서 튀어나와 시아를 노려보고 있었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일그러진 얼굴, 뾰족한 코, 그리고 녹색의 피부. 분명히 그것은 오크였다. 단지, 메르케르 숲의 멍청한 녀석들과는 다르게, 나무껍질로 만든 듯한 갑옷을 입고 있었고, 짧은 칼과 활로 무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를 파괴하려 온 것이냐! 인간!"
"아냐! 우린 단지 너희들의 대장에게 말을 전하기 위── 히에엑!"
피융! 피융!
"그런 어처구니 없는 말에 누가 속을 줄 아는가? 우리는 그렇게 멍청한 녀석들은 아니다!"
"위험하잖아! 그리고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들어! 히이익!"
그 순간 나뭇가지위로 검은 그림자가 빠르게 휙휙 지나가더니, 곧 밧줄에 꽁꽁묶인채 아래로 늘어져서는 바둥바둥거리는 오크 셋과 함께 설경이 땅으로 사뿐히 내려 앉았다. 그러더니, 곧 사람모습의 종잇조각을 꺼내더니 나지막하게 외쳤다.
"활(活)!"
그러자 종잇조각은 하얀 연기와 함께 골목길의 점술가처럼 변했다.
"우리는 메네스가 보내서 온 자들이오. 그대들의 대장에게 말을 전해야 하기에 이곳에 찾아온 것이오."
"───그대의 주술에 우리가 속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대들이 과연 메네스가 보낸자라는 증거는 있는가?"
그러자 설경은 주머니에서 편지를 꺼내들었다. 오크들은 편지를 받아들자마자 무기를 내려놓고 말했다.
"확실하다. 메네스의 주술이 느껴지는 물건이다. 하지만 대장을 만나지는 못할듯 싶다. 대장은 지금 펜리스 숲의 괴수들과 싸우기 위해서 북쪽으로 향했다."
"괴수라니?"
설경의 질문에 오크들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곧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다시 입을 열었다.
"그대들은 믿어볼만한 인간들 같기에 말하겠다. 얼마전 우리 펜리스 오크족은 어떤 거대한 도마뱀으로부터 습격을 받았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싸웠지만, 거대한 도마뱀의 주위로는 짙은 독구름이 있어서 다가가기도 전에 죽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우리는 그 도마뱀과의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기 위해서 대장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향했다."
오크들의 말에 시아는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곧 류르를 꺼내들고서는 물었다.
"방금 들은 그 괴물 뭔지 알수 있겠어? 류르?"
[류르 - 네. 아마도 슬러지 리저드(Sludge Lizard)라고 생각됩니다. 느릿한 행동때문에 그렇게 위험한 몬스터는 아니지만, 정면으로 붙게 된다면 트롤만큼이나 위험한 몬스터입니다. 하지만 워낙 깊은 펜리스 숲속에서 살기 때문에 이런 외곽까지 나왔다는 것은 화가나있는게 확실합니다.]
"화가 났다? 어째서?"
[류르 - 글쎄요. 그거야 지 맘아닙니까?]
류르의 솔직담백한 대답에 설경과 시아는 할말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설경은 곧 정신을 차리고서 말했다.
"그렇다면 일단은 저희는 물러나겠소. 그런데 그대들은 언제쯤 출발할 것이오?"
"두번째 부대는 내일쯤이면 출발할 것이다."
"그러면 내일 우리도 일행을 데려올테니 기다려 주시겠소?"
"도와준다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것이고, 사실 우리도 슬러지 리저드에게 얻을 수 있는 물건이 많으니까 말이오."
설경의 말에, 오크들은 잠깐 서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고, 설경은 재차 다짐을 받은 뒤에야 뒤돌아섰다. 시아는 그런 설경에게 물었다.
"내일 다시 오는 건가요?"
"그런셈이네. 그보다 자꾸 맘대로 진행해서 미안하군."
"괜찮아요. 내일은 하이드랑 저희 오빠, 그리고 카렌씨와 태상씨에게도 부탁해봐요."
"하이드씨와 시엘군은 올지도 모르겠지만, 카렌과 태상은 올지 모르겠군."
설경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자아! 어서 돌아가요. 여긴 너~무 춥다구요."
"하하하! 알겠네."
슬러지 리자드와의 결전을 약속한 시아와 설경.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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