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신의 공간 - 에피소드1. 상처투성이의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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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지 마시게나."
"으윽?"
"참 대단한 청년이군. 샌드드래곤을 물리치다니── 어허! 움직이지 말래두. 자꾸만 움직이면 뼈가 뒤틀려서 폐를 찌를 수도 있다네. 그렇게 되면 나로써도 손쓸 방도가 없단 말일세."
"그랜트씨. 다── 쿨럭! 다치신 곳은 없으시죠?"
그러자 시야로 하얀머릿결이 간간히 보이는 댄디한 아저씨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 사람아. 내 걱정을 할때가 아니라 자네의 건강을 걱정해야 할 때이네."
"으윽! 하지만, 그랜트씨를 구해야 하는데──"
"뭐, 그래도 목숨은 건졌으니 다행이지 않겠나? 불도 피웠고, 폐광 깊숙한 곳이니 다른 몬스터나 도적들이 침입할 염려는 없네. 그러니 걱정 말고 몸부터 추스리시게나."
그랜트씨의 얼굴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불을 피워 놓았는지, 폐광의 천장에는 그림자들이 너울너울 춤을추고 있었다. 불을 피웠으니 연기가 날 것 같았지만, 연기가 나지 않고 있었다. 흠, 참나무 같은 나무가 이곳에도 있던가? 그랜트씨는 약초도 다루고 있으니, 아마도 그런 것쯤은 알고 있겠지? 나중에 물어봐야겠군.
"그나저나, 일단은 출구가 어느쪽인지 모르니, 문제로군."
"에?"
"출구 말일세. 샌드드래곤이 쓰러지고 난뒤, 나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해서 끈을 풀었다네. 그리고 쓰러진 자네를 차마 버리고 갈 수 없어서 자네를 엎고서 정신없이 폐광 안쪽으로 달렸다네."
"그랬군요. 이곳에는 얼만큼 있었던 거죠?"
"시간은 잘 모르겠지만, 한 이틀정도는 되지 않았겠나?"
이틀이라. 그러고보니 3일이상 세이프티존에 진입을 못하면 자동적으로 죽는 규칙이 있었는데───
[괜찮습니다. 현재 이곳은 세이프티존입니다. 데스 카운트다운 : 36시간 00분 남음]
"세이프티존인가? 일단은 안심이군."
"자. 여기 먹게나."
"이건?"
"급한데로 약초를 정제한 포션일세. 좌측 갈비뼈가 모조리 골절되었으니, 일반적인 약초로는 왠만해서는 어림도 없다네. 약초는 체력을 회복시키지만, 그 효과는 100% 상처에 작용하지 못한다네. 약초의 성분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성분이 분해되어 소실되니까 말일세. 그렇지만, 정제된 포션의 경우에는 상처에 바로 들이부어도 되고, 마셔도 성분의 소실이 거의 없어서 이런 큰 상처에는 특효약이라네. 보아하니 약초만 구해온 모양인데, 긴급할때는 약초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으니, 포션도 한두개 정도 가지고 다니게나."
그러면서 그랜트씨는 내 입으로 초록빛의 액체를 흘려넣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그 맛은── 뭐랄까? 먼지와 나뭇가지를 섞어서 갈아놓은 그런 맛이었다. 여하튼 아주 끔찍한 그런 맛이었다. 그랜트씨는 나의 얼굴을 보더니 쿡쿡쿡! 하면서 웃었다.
"우윽! 맛이 대단하군요."
"급하게 정제한 것이라서 맛이 조금더 끔찍할 껄세."
"정제라── 그거 배울 수 있습니까?"
"원래대로라면 가게의 비밀이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서 몸을 바친 청년이니 내 자네에게 아주 간단한 정제법을 알려주겠네. 지금 이것을 만든 그 방식이기도 하지."
그랜트씨는 나의 몸을 돌려 눕히더니, 곧 유리병하나와 그리고 사발하나, 물이든 수통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약초 두장을 나의 배낭에서 꺼내들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네. 우선 약초 하나를 이렇게 태워서 그 재를 여기 사발에 넣어두는 것이네. 그리고 여기에 물을 조금 붓고, 나머지 약초 한장을 넣는 것이지. 그리고 이렇게 나뭇가지던지, 막대기로 꾹꾹 빻아가면서 서서히 가열하면 된다네. 한가지 주의할 점은 반드시 한장은 태워서 재로 만들어서 넣어야 한다는 것일세. 태워진 약초는 거의 최고급 숯의 역할을 해서 약초의 성분을 정제할때 복잡한 기구가 없어도, 어느정도 불순물을 걸러주는 역할을 하니까. 물론, 기구보다는 못하지만── 아무튼 이렇게 해서 물이 약초잎과 같은 색으로 물들게 되면 여기 준비해둔 유리병에 조심스럽게 따르게나. 물론 건더기들은 빼고 말일세."
그러자 유리병에는 초록빛의 투명한 액체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맛은 최악이겠지. 그랜트씨는 유리병을 살살 흔들어 냄새를 맡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의 코에도 유리병을 가져다 대었다. 끔찍한 맛과는 달리, 상쾌한 약초내음이 퍼졌다.
"이게 약초를 정재하는 아주 단순한 방법이지. 왠만한 약초꾼이라면 평상시 만들어가지고 다니는 상비약이랄까? 아무튼 이 이상은 가게의 비밀유지에 해가되니 말하지는 않겠네."
"감사합니다. 의외로 쓸모가 많겠는데요."
[기술 기록! 하급 포션을 정제하는 방법을 적었습니다. 레시피 습득 : 하급 포션 정제법]
음, 그러고 보니 이 책 확실히 대단하다. 그 와중에도 나를 따라다니고, 게다가 여러가지 기능도 하다니. 현실세계로 탈출 할 때에도 다른 것보다 이 책은 반드시 가져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야. 이런 책이 노트북따위와는 전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기능을 지녔다니───
"어떤가? 이제 좀 움직일만 한가?"
"아직까지 가슴이 좀 아프지만, 움직이는데 불편한 점을 거의 못느끼겠군요."
"당연하지. 지난 2일간 내가 자네에게 먹인 약초만 몇개인데. 이정도는 해줘야 하지."
"그런데 아까전에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군요."
"그런 방식의 정제법은 약간의 마취효과를 가져오지. 이 약초는 그리피아라고 하는데, 태우게 되면 약초의 성분중 일부가 마취효과를 지닌 물질로 바뀌기 때문이지."
"그렇군요."
"그래서 급할때 쓴다는게야. 일단 통증을 가라앉히게 되니, 조금더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움직일 수 있지. 하지만 과용하면 아예 잠들어 버리니까. 조심하게나."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랜트씨는 불을 발로 비벼껐다. 그리고서는 킁킁거리며 숨을 쉬더니 약간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불을 너무 오래피웠나보군."
"에?"
"이건 약초를 따고 남은 그리피아 나뭇가지인데, 연기가 나질 않고 화력이 오래가지만, 역시나 마취효과가 있기 때문이지. 내가 조심해서 피웠다지만, 약간 어지럽군. 하지만 자네에겐 조금 잘된 일일지도 몰라. 통증이 많이 약화 되었을테니깐 말일세."
그러고 나서 그랜트씨는 아직 불씨가 덜꺼진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고서 폐광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서 나도 걸었다. 하지만 어느쪽이 출구인지는 모르기 때문에, 그냥 이리저리 걸어다닐 뿐이었다.
"루이즈. 혹시 출구를 표시해 줄 수는 없겠어?"
[플레이어가 인지할 수 없는 대상의 표시기능은 퀘스트 이외엔 제가 사용할 수 없는 기술입니다.]
"윽! 그렇다면 바람의 방향 같은건?"
[가능합니다. 하지만 퀘스트 이외의 상황에서 방향표시 기능은 저의 기능이 아니기 때문에, 사용하시게 되면 정신력을 지불하셔야 합니다.]
"알았어. 시작해줘."
시작해줘라는 말과 함께, 눈앞이 약간더 흐릿해졌다. 하지만 책이 펴지면서 방향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랜트씨. 제가 앞장서보죠. 횃불을 주세요."
바람의 방향이라서 그런지 화살표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지만, 좁은 통로라는 지형 덕분에 대체적으로 방향은 맞아 떨어졌다. 하지만, 역시나 바람의 방향으로는 출구를 찾기가 어려웠다. 한참을 걸어다녔지만, 출구는 그림도 보이질 않았고, 가끔가다가 보이는 작은 공기구멍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기구멍이 있다는 것은, 어찌됬던, 출구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출구를 찾았습니다. 출구의 방향표시로 전환하겠습니까?]
"그렇게 해─── 으윽!"
아까전보다 훨씬 더 심한 현기증이 나를 덮쳐왔다. 다행히도 내가 눈치채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내가 출구를 확인했었다는 뜻이다.
비틀거리면서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자, 환한 불빛이 보였다. 드디어 출구──
* * *
"흐흐흐! 드디어 나왔군."
"자아! 얼마전에는 드래곤 덕분에 아주 혼났지만, 지금은 천천히 너희 둘을 발라먹어주마. 큭큭큭────"
도적들은 3일이라는 시간을 기달려 마침내 다크엔과 그랜트가 출구에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출구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았고, 지금 이렇게 둘을 생포했던 것이다. 게다가 모험가라는 녀석은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기에, 그들은 쾌재를 부르며 둘을 생포했다.
"크하하하하하! 결국 우리 동료들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것이다!"
"으윽!"
"이보게! 그 사람은 환자일세. 거칠게 다루지 말게!"
"시끄러! 이 녀석 덕분에 우리 동료들 여럿이 죽어나갔단 말이다! 자아! 목을 매달자! 얘들아 어서 준비해라!"
라면서 두목으로 보이는 애꾸의 도적은 다크엔을 거칠게 땅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러자 다른 도적들이 다크엔의 양팔을 잡고서 급조한 듯한 교수대로 다크엔을 질질질 끌고갔다.
"시시껄렁한 퀘스트로군."
"으잉? 누구냐? 모습을 밝혀라!"
애꾸의 도적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피려는 순간───
피슈우우우웃!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애꾸의 도적의 이마엔 사람 손가락 두개 정도의 굵기를 지닌 화살이 보기좋게 밖혀버렸다. 그리고 폐광 출구 위쪽의 바위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검은 머릿결과 그리고 거만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한 청년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면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청년은 쓰러진 애꾸도적을 한번 훑어보고서, 다른 도적들 역시 한번 슬쩍 훑어 봤다.
"목표는 총 30명이라. 단순하군."
"우── 우와아아아아! 쳐라!"
한동안 패닉에 빠져있던 도적들이 정신을 차린듯이 청년을 향해서 뛰어가기 시작했다.
"약간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지. 덕분에 요 이틀간 정신도 못차리고 쓰러져 있어야 했지만, 자아! 가라! 백.발.백.중. 애로우 터렛![화살의 작은탑]"
청년의 옆쪽으로 나타난 것은 사람키의 절반정도 크기의 작은 탑이었다. 아니, 탑이라기엔 너무도 작아서, 그냥 바퀴가 달리고 작은 포대가 달린 벽돌상자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습과는 달리 상자에서는 약간 딱딱한 음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목표물 30인. 포화를 시작합니다."
"으윽?"
"참 대단한 청년이군. 샌드드래곤을 물리치다니── 어허! 움직이지 말래두. 자꾸만 움직이면 뼈가 뒤틀려서 폐를 찌를 수도 있다네. 그렇게 되면 나로써도 손쓸 방도가 없단 말일세."
"그랜트씨. 다── 쿨럭! 다치신 곳은 없으시죠?"
그러자 시야로 하얀머릿결이 간간히 보이는 댄디한 아저씨의 얼굴이 나타났다.
"이 사람아. 내 걱정을 할때가 아니라 자네의 건강을 걱정해야 할 때이네."
"으윽! 하지만, 그랜트씨를 구해야 하는데──"
"뭐, 그래도 목숨은 건졌으니 다행이지 않겠나? 불도 피웠고, 폐광 깊숙한 곳이니 다른 몬스터나 도적들이 침입할 염려는 없네. 그러니 걱정 말고 몸부터 추스리시게나."
그랜트씨의 얼굴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불을 피워 놓았는지, 폐광의 천장에는 그림자들이 너울너울 춤을추고 있었다. 불을 피웠으니 연기가 날 것 같았지만, 연기가 나지 않고 있었다. 흠, 참나무 같은 나무가 이곳에도 있던가? 그랜트씨는 약초도 다루고 있으니, 아마도 그런 것쯤은 알고 있겠지? 나중에 물어봐야겠군.
"그나저나, 일단은 출구가 어느쪽인지 모르니, 문제로군."
"에?"
"출구 말일세. 샌드드래곤이 쓰러지고 난뒤, 나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해서 끈을 풀었다네. 그리고 쓰러진 자네를 차마 버리고 갈 수 없어서 자네를 엎고서 정신없이 폐광 안쪽으로 달렸다네."
"그랬군요. 이곳에는 얼만큼 있었던 거죠?"
"시간은 잘 모르겠지만, 한 이틀정도는 되지 않았겠나?"
이틀이라. 그러고보니 3일이상 세이프티존에 진입을 못하면 자동적으로 죽는 규칙이 있었는데───
[괜찮습니다. 현재 이곳은 세이프티존입니다. 데스 카운트다운 : 36시간 00분 남음]
"세이프티존인가? 일단은 안심이군."
"자. 여기 먹게나."
"이건?"
"급한데로 약초를 정제한 포션일세. 좌측 갈비뼈가 모조리 골절되었으니, 일반적인 약초로는 왠만해서는 어림도 없다네. 약초는 체력을 회복시키지만, 그 효과는 100% 상처에 작용하지 못한다네. 약초의 성분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성분이 분해되어 소실되니까 말일세. 그렇지만, 정제된 포션의 경우에는 상처에 바로 들이부어도 되고, 마셔도 성분의 소실이 거의 없어서 이런 큰 상처에는 특효약이라네. 보아하니 약초만 구해온 모양인데, 긴급할때는 약초만 가지고는 어림도 없으니, 포션도 한두개 정도 가지고 다니게나."
그러면서 그랜트씨는 내 입으로 초록빛의 액체를 흘려넣었다. 역시나, 예상대로 그 맛은── 뭐랄까? 먼지와 나뭇가지를 섞어서 갈아놓은 그런 맛이었다. 여하튼 아주 끔찍한 그런 맛이었다. 그랜트씨는 나의 얼굴을 보더니 쿡쿡쿡! 하면서 웃었다.
"우윽! 맛이 대단하군요."
"급하게 정제한 것이라서 맛이 조금더 끔찍할 껄세."
"정제라── 그거 배울 수 있습니까?"
"원래대로라면 가게의 비밀이지만, 그래도 나를 위해서 몸을 바친 청년이니 내 자네에게 아주 간단한 정제법을 알려주겠네. 지금 이것을 만든 그 방식이기도 하지."
그랜트씨는 나의 몸을 돌려 눕히더니, 곧 유리병하나와 그리고 사발하나, 물이든 수통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약초 두장을 나의 배낭에서 꺼내들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하네. 우선 약초 하나를 이렇게 태워서 그 재를 여기 사발에 넣어두는 것이네. 그리고 여기에 물을 조금 붓고, 나머지 약초 한장을 넣는 것이지. 그리고 이렇게 나뭇가지던지, 막대기로 꾹꾹 빻아가면서 서서히 가열하면 된다네. 한가지 주의할 점은 반드시 한장은 태워서 재로 만들어서 넣어야 한다는 것일세. 태워진 약초는 거의 최고급 숯의 역할을 해서 약초의 성분을 정제할때 복잡한 기구가 없어도, 어느정도 불순물을 걸러주는 역할을 하니까. 물론, 기구보다는 못하지만── 아무튼 이렇게 해서 물이 약초잎과 같은 색으로 물들게 되면 여기 준비해둔 유리병에 조심스럽게 따르게나. 물론 건더기들은 빼고 말일세."
그러자 유리병에는 초록빛의 투명한 액체가 한가득 들어있었다. 하지만, 분명히 맛은 최악이겠지. 그랜트씨는 유리병을 살살 흔들어 냄새를 맡아보더니 고개를 끄덕이면서 나의 코에도 유리병을 가져다 대었다. 끔찍한 맛과는 달리, 상쾌한 약초내음이 퍼졌다.
"이게 약초를 정재하는 아주 단순한 방법이지. 왠만한 약초꾼이라면 평상시 만들어가지고 다니는 상비약이랄까? 아무튼 이 이상은 가게의 비밀유지에 해가되니 말하지는 않겠네."
"감사합니다. 의외로 쓸모가 많겠는데요."
[기술 기록! 하급 포션을 정제하는 방법을 적었습니다. 레시피 습득 : 하급 포션 정제법]
음, 그러고 보니 이 책 확실히 대단하다. 그 와중에도 나를 따라다니고, 게다가 여러가지 기능도 하다니. 현실세계로 탈출 할 때에도 다른 것보다 이 책은 반드시 가져 갈 수 있으면 좋겠는데 말야. 이런 책이 노트북따위와는 전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기능을 지녔다니───
"어떤가? 이제 좀 움직일만 한가?"
"아직까지 가슴이 좀 아프지만, 움직이는데 불편한 점을 거의 못느끼겠군요."
"당연하지. 지난 2일간 내가 자네에게 먹인 약초만 몇개인데. 이정도는 해줘야 하지."
"그런데 아까전에는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심했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군요."
"그런 방식의 정제법은 약간의 마취효과를 가져오지. 이 약초는 그리피아라고 하는데, 태우게 되면 약초의 성분중 일부가 마취효과를 지닌 물질로 바뀌기 때문이지."
"그렇군요."
"그래서 급할때 쓴다는게야. 일단 통증을 가라앉히게 되니, 조금더 이성적으로 사고하고 움직일 수 있지. 하지만 과용하면 아예 잠들어 버리니까. 조심하게나."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랜트씨는 불을 발로 비벼껐다. 그리고서는 킁킁거리며 숨을 쉬더니 약간은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불을 너무 오래피웠나보군."
"에?"
"이건 약초를 따고 남은 그리피아 나뭇가지인데, 연기가 나질 않고 화력이 오래가지만, 역시나 마취효과가 있기 때문이지. 내가 조심해서 피웠다지만, 약간 어지럽군. 하지만 자네에겐 조금 잘된 일일지도 몰라. 통증이 많이 약화 되었을테니깐 말일세."
그러고 나서 그랜트씨는 아직 불씨가 덜꺼진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고서 폐광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서 나도 걸었다. 하지만 어느쪽이 출구인지는 모르기 때문에, 그냥 이리저리 걸어다닐 뿐이었다.
"루이즈. 혹시 출구를 표시해 줄 수는 없겠어?"
[플레이어가 인지할 수 없는 대상의 표시기능은 퀘스트 이외엔 제가 사용할 수 없는 기술입니다.]
"윽! 그렇다면 바람의 방향 같은건?"
[가능합니다. 하지만 퀘스트 이외의 상황에서 방향표시 기능은 저의 기능이 아니기 때문에, 사용하시게 되면 정신력을 지불하셔야 합니다.]
"알았어. 시작해줘."
시작해줘라는 말과 함께, 눈앞이 약간더 흐릿해졌다. 하지만 책이 펴지면서 방향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그랜트씨. 제가 앞장서보죠. 횃불을 주세요."
바람의 방향이라서 그런지 화살표는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지만, 좁은 통로라는 지형 덕분에 대체적으로 방향은 맞아 떨어졌다. 하지만, 역시나 바람의 방향으로는 출구를 찾기가 어려웠다. 한참을 걸어다녔지만, 출구는 그림도 보이질 않았고, 가끔가다가 보이는 작은 공기구멍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기구멍이 있다는 것은, 어찌됬던, 출구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출구를 찾았습니다. 출구의 방향표시로 전환하겠습니까?]
"그렇게 해─── 으윽!"
아까전보다 훨씬 더 심한 현기증이 나를 덮쳐왔다. 다행히도 내가 눈치채지는 못했지만, 분명히 내가 출구를 확인했었다는 뜻이다.
비틀거리면서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자, 환한 불빛이 보였다. 드디어 출구──
* * *
"흐흐흐! 드디어 나왔군."
"자아! 얼마전에는 드래곤 덕분에 아주 혼났지만, 지금은 천천히 너희 둘을 발라먹어주마. 큭큭큭────"
도적들은 3일이라는 시간을 기달려 마침내 다크엔과 그랜트가 출구에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출구에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았고, 지금 이렇게 둘을 생포했던 것이다. 게다가 모험가라는 녀석은 이미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기에, 그들은 쾌재를 부르며 둘을 생포했다.
"크하하하하하! 결국 우리 동료들의 원수를 갚을 수 있는 것이다!"
"으윽!"
"이보게! 그 사람은 환자일세. 거칠게 다루지 말게!"
"시끄러! 이 녀석 덕분에 우리 동료들 여럿이 죽어나갔단 말이다! 자아! 목을 매달자! 얘들아 어서 준비해라!"
라면서 두목으로 보이는 애꾸의 도적은 다크엔을 거칠게 땅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러자 다른 도적들이 다크엔의 양팔을 잡고서 급조한 듯한 교수대로 다크엔을 질질질 끌고갔다.
"시시껄렁한 퀘스트로군."
"으잉? 누구냐? 모습을 밝혀라!"
애꾸의 도적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살피려는 순간───
피슈우우우웃!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애꾸의 도적의 이마엔 사람 손가락 두개 정도의 굵기를 지닌 화살이 보기좋게 밖혀버렸다. 그리고 폐광 출구 위쪽의 바위에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호리호리한 체형에 검은 머릿결과 그리고 거만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한 청년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면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청년은 쓰러진 애꾸도적을 한번 훑어보고서, 다른 도적들 역시 한번 슬쩍 훑어 봤다.
"목표는 총 30명이라. 단순하군."
"우── 우와아아아아! 쳐라!"
한동안 패닉에 빠져있던 도적들이 정신을 차린듯이 청년을 향해서 뛰어가기 시작했다.
"약간 심혈을 기울여서 만들었지. 덕분에 요 이틀간 정신도 못차리고 쓰러져 있어야 했지만, 자아! 가라! 백.발.백.중. 애로우 터렛![화살의 작은탑]"
청년의 옆쪽으로 나타난 것은 사람키의 절반정도 크기의 작은 탑이었다. 아니, 탑이라기엔 너무도 작아서, 그냥 바퀴가 달리고 작은 포대가 달린 벽돌상자처럼 보였다. 하지만, 모습과는 달리 상자에서는 약간 딱딱한 음성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목표물 30인. 포화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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