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여신님-네크로맨서 카이 브릿드(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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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드드드드드드드!!!!!!!!
케이가 분노를 터뜨리는 것만으로도 대지가 미친 듯이 흔들렸다. 주위의 사람들은 때 아닌 지진에 당황한 표정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지금 그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오직 그를 이렇게 만든, 리리스를 죽게 만든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미칠 듯한 살의(殺意)뿐이었다.
죽인다.
죽여 버린다.
내 소중한 제자를 죽게 만든 녀석을…….
“죽여버린다!!!!”
콰아아아아!!!
케이의 주위로 거대한 광풍이 몰아쳤다. 그 무엇도 하지 않았다. 단지 대상에 대한 살의만 내비쳤을 뿐, 그러나 그것만으로 자연은 그의 의지에 화답해 같이 분노를 터뜨리고 있는 것이다. 이 순간, 하늘이, 땅이, 바람이, 3차원에 속한 모든 것들이 인간의 적이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화면 안의 두꺼비 괴물이 세계의 적으로 간주되었다. 오직 케이가 그를 적으로 판단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파아아앗!
토마호크의 백미러에 빛이 번쩍이더니 그 안에서 한 인영이 튀어나왔다. 그 사람은 두말 할 것 없이 베르단디였다. 시장을 보던 그녀는 케이가 힘을 방출하자 서둘러 돌아온 것이다(음식 재료들은 아까웠기 때문에 서두르는 와중에도 챙겨왔다).
“케이 씨!”
베르단디가 정원에 도착해서 처음 본 장면은 술법으로 만들어낸 화면을 무섭게 노려보며 기운을 내뿜고 있는 케이의 모습이었다. 자신이 봉환을 풀었을 때 보다는 보다는 약하지만 지금의 자신보다는 강한 기운. 이것도 그나마 남은 이성으로 봉인을 풀지 않았기에 이정도지 이성을 잃어서 봉인을 풀었다면……상상하기 싫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우선은 케이를 진정시켜야 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리 분노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 놔두면 케이의 손에 지구가 멸망할지도 모른다. 케이가 화면을 바라보며 분노를 표했기 때문에 그 안에 답이 있을 거라 생각하고 베르단디는 재빨리 케이의 곁에 다가서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에 나타난 형상은……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가인을 바라보는 가인의 반 친구들. 그런 친구들을 여기저기 다친 몸을 한 채 창백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가인. 그리고 가인의 뒤에는……두꺼비!? 그것도 여지껏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두꺼비 모양의 날개달린 괴 생물체였다. 맙소사. 저건 몬스터? 가인 씨는 왜 변신을 안 하고 있는 거지? 상황이 저렇게 되기 전에 처리하는 게 피스메이커의 일 일 텐데!?
쿠쿠쿠쿠쿠쿠쿠
그때 점점 거세지는 압력을 느끼며 베르단디는 아차했다. 지금은 저 상황보다도 케이를 진정시키는 것이 최우선상황이었다. 이대로 케이가 폭주하면 이 지상엔 마신이 강림한 것이랑 다를 것이 없게 된다.
“케이 씨! 진정하세요!”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붙잡으려 했지만 되려 베르단디가 튕겨나고 말았다. 그렇다는 말은 지금 케이는 그 누구의 말도 들리지 않는다는 소리다. 그렇지 않으면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하는 베르단디를 튕겨낼 리 없으니까.
반탄력에 튕겨나갔던 베르단디는 바닥을 몇 차례 구른 후, 재빨리 일어났다. 쓰러져서 어물거릴 시간이 없었다.
베르단디는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눈을 감았다. 지금 떠올릴 생각은 케이를 원래상태로 돌려야겠다는 일념(一念). 오로지 그 하나만을 간절히 원해야 한다. 실수는 절대 용납이 안된다.
“felicitas cum amicis communica….”
여신의 노래는 단순한 노래가 아닌 일종의 명령어. 음정에 의한 주파수 변동은 모두 술법공식을 실행하기 위한 주문. 이것이 바로 신성 찬트였다. 노래에 의지를 담아 뜻을 행하는 절대 주문.
‘케이 씨. 정신 차리세요! 제발!’
여신의 힘이란 강한 의지에서 강한 힘이 나오는 것! 지금 이 순간 케이를 구하고 싶다는 베르단디의 강한 마음이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거대한 힘이 되어 퍼져나갔다.
스파아아아아아아앗!!!
때문에 한순간 지구 전체가 빛나며 모든 사람들의 가슴에 따스함이란 감정을 남기고는 사라진다. 그리고 케이도 베르단디의 힘에 의해 가까스로 폭주를 멈추고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비록 세레스틴의 기억으로 인한 분노는 남아있었지만 적어도 한 가닥 이성은 유지시킬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하아…하아…다, 다행이야……케이……씨.”
털썩.
“베르단디!!”
하지만 정작 베르단디는 너무 강한 힘을 써버려서 그만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베르단디는 수면을 취함으로써 소모되었던 힘을 보충한다. 때문에 힘을 많이 쓸수록 수면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정도의 힘을 사용했으니 베르단디는 최소 3일 이내에는 깨어나지 않으리라.
“베르단디. 베르단디!”
흔들어보지만 깨어나지 않는 베르단디. 케이는 이를 악물었다. 베르단디가 나 때문에! 난 힘을 얻었어도 베르단디에게 도움 하나 주지 못하다니! 정말 이런 자신이 죽도록 미웠다. 케이는 잠시 아직 술법으로 유지되고 있는 화면을 바라보았다. 반 친구들을 바라보는 가인의 뒤로 보이는 거대한 두꺼비. 케이는 그 두꺼비를 강하게 노려보다가 이내 베르단디를 안아들고는 집으로 달려 들어갔다.
타다다다다….
케이가 안으로 사라진 잠시 후, 가인쪽은 상황이 최악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끈질기군. 인내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대체…….]
카이는 자신이 몸을 빌린 괴물의 혀에 포박당한 채 피투성이가 된 가인을 내려다보았다. 결국 그는 자신의 도발에 응하지 않았다. 친구들의 앞에서는 오라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건가?
‘흥. 자신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도 힘을 숨기는 건 대체 무슨 심보야?’
카이는 물론 알고 있었다. 지금 자신이 그에게 하는 행동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그는 가인을 고립시키고 싶었다. 이 괴로움이라고는 모르는 세상에서 태평스럽게 살아온 그에게 커다란 칼자국을 남기고 싶었다. 무엇보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손을 뻗친 그를 괴롭히고 싶었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하지만 죽이면 곤란하지.’
일단 네 녀석은 그 구차한 목숨을 계속 이어줘야 되니까.
유가인. 그는 오라의 주인. 그리고 옴팔로스의 문을 열 수 있는 단 하나의 열쇠다. 이 둔해빠진 인간을 각성시키기 위해서는 좀 더 자극적인 뭔가가 필요했다. 힘을 자각시킬 계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과 같은 방법이 최적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는 걸까? 녀석은 고집도 오기도 아닌 만용을 부리고 있었다. 저러다 죽게 된다면 그것은 무엇을 위한 죽음일까? 아무리 괴물 취급을 받는 게 싫다지만 그것이 자신의 목숨보다도 중요할 수 있을까?
‘그런 취급 따위……이쪽에서는 셀 수도 없이 받아왔단 말이다.’
그런 와중에도 카이다 깨달을 수 있었던 것. 그것은 결국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살아남아야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 자신의 삶도, 인생도, 가족도!
‘그리고 사랑도!’
그렇기에 자신은 모든 것을 견뎌왔다. 그에게 있어서 가인의 저런 모습은 단순히 행복에 절은 얼간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카이는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끌어 오르는 혐오감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래. 저런 녀석에게 리리스가 끌릴 리 없어.’
쿠사나기나 한시영이 했던 말들은 모두 헛소리임이 틀림없다. 자신과 같은 절망뿐인 인생을 걸어온 그녀라면, 바르의 별들이었던 그녀라면 이 풍족한 세상에 참을 수 없는 증오를 느꼈을 것이다. 당연히 행복에 겨운 삶을 살면서도 그것이 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저 녀석에게 마음을 줄 리가 없다!
‘기우였던 거야. 하, 나도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그런 근거도 없는 말들에 조바심을 느꼈다니.’
그녀에 대한 것은 누구보다도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자신을 제지하지 않는 그녀의 행동이 모든 것을 증명했다. 카이는 한때나마 그녀에게 의심을 품었던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이거……나중에 무릎 꿇고서라도 사과해야겠군. 그녀가 용서 해줄지는 모르겠지만.
‘리리스, 미안.’
카이는 자신의 머리를 따뜻이 쓰다듬어주던 그녀를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깊이 사죄했다.
탕!
그때 그는 본체로 삼았던 학생의 육체에서 CCTV실의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카이는 재빨리 몬스터의 육체를 대기 상태로 돌려놓고 학생의 육식으로 튕겨지듯 돌아왔다. 눈을 뜨고 문 쪽을 돌아보자 설마 했던 인물이 그곳에 서있었다. 그의 기대가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이다.
“리리스…….”
카이는 의아한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리리스. 여기서는 테레이아 민체스터라고 불리는 여학생이 차갑게 굳은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거야. 리리스? 왜?
카이는 불안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며 그녀가 먼저 말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테레이아는 입을 열었다.
“그만둬, 카이.”
뭐?
“이제 그 정도면 충분해.”
테레이아는 카이를 꾸짖듯이 엄격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카이가 고개를 떨구며 의기소침해하는 모습이 마음에 걸렸지만 그의 행동을 방관할 생각이 없었다. 카이는 희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충분하다는 거야?”
카이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 눈에는 원망의 빛이 서려있었다.
“전혀, 전혀 충분하지 않아! 어째서 저런 녀석을 감싸고도는 거지? 저런 테라인 따위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잖아? 응?”
“……감싸고 도는 게 아니야.”
테레이아는 그의 반응이 격해지자 애써 그를 달래듯이 부드럽게 말했다.
“지나친 자극은 자칫 잘못하면 마음의 이베니즈(eveness:균등성)를 무너뜨리기 때문이야. 우리는 잠정적인 결론 끝에 옴팔로스의 열쇠를 이용하기로 결심했어. 하지만 열쇠를 돌리기도 전에 부숴버리면 안되잖아?
“…….”
카이는 입술을 앙 다물며 다시 고개를 떨어뜨렸다. 테레이아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그의 양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녀는 예전에도 그랬듯이 동생을 달래는 누나처럼 따뜻하게 속삭여주었다.
“카이, 아까 나에게 뭐라고 했었지? 너와 나, 그리고 유메. 이렇게 셋이서 사는 것도 꿈이 아니라고 했지? 참고 견디자고 했지? 우리가 인내해온 시간들을 떠올려봐. 여기서 감정대로 행동하다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 버린다고. 그걸 원하는 거야? 유메가 풀려나길 원했던 게 아니었니?”
“…….”
“그러니 이제 그만해도 돼. 모든 일이 다 잘 될 거야. 다 잘 될 테니까……그러니까 더 이상…….”
테레이아는 카이의 기분이 많이 누그러진 것 같자 안도하며 말을 이었다.
“그를 괴롭히지 마.”
“……!”
순간 카이는 거칠게 테레이아의 손을 뿌리쳤다. 테레이아는 깜짝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갑자기 그가 왜 이러는 거지? 그렇게 당황하는 그녀에게 카이는 이를 갈며 소리쳤다.
“거짓말! 마음에도 없는 소리하지 마. 리리스!”
“……카, 카이? 거짓말이라니?”
거짓말? 어째서?
“그게 무슨 소리야!”
소리치는 그녀에게 카이는 차갑게 가라앉은 얼굴로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그는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
“감싸고도는 게 아니라고? 그렇다면 어째서 그렇게 필요 이상으로 그를 보호하는 거지? 내가 그를 죽일 리가 없잖아? 죽일려면 진작에 죽일 수 있었어.”
카이의 목소리에 비통함이 배여나오기 시작했다.
“내가 뭐 때문에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었다고 생각해? 내가 왜 이렇게 이렇게 번거롭게 꾸몄다고 생각해?”
카이의 질문에 테레이아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렇다. 그는 애초에 가인을 죽일 생각이 없었다. 단지 그는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가인에 대한 나의……마음을…….’
테레이아는 떨리는 목소리를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날……시험했던 거야. 카이?”
믿을 수 없다. 설마 그가 날 속이다니. 설마 그가…….
“그런 거니? 그런 거야?”
계속되는 그녀의 추궁에 카이는 자조 섞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실이 아니길 바랐어. 누구보다 널 믿고 싶었는데……모두에게 너의 결백을 증명하고 싶었는데…….”
여기까지 나타나 자신을 제지하는 그녀의 모습이 더없이 확실한 증거였다. 그녀의 말 속에서 오라의 주인을 걱정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침착함 속에 숨겨진 그 다급함이라니! 그러자 배신감은 질투로, 질투는 증오로 변해갔다.
“모든 것이 변해버렸어, 리리스. 유메에 대한 마음도, 나에 대한 마음도. 노아의 리리스는 더 이상 여기에 존재하지 않아. 유메가 풀려나길 원하지 않느냐고? 하! 잘도 그런 걸 물을 수 있군! 잘도 그런 거짓말에 유메의 이름을 들먹일 수 있어!”
“카이…….”
테레이아는 안타까운 어조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 얼굴에 깔리는 죄책감에 카이는 그토록 그리워하던 리리스에게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대신 그는 괴물에게 붙들려 있는 가인을 노려보았다. 참을 수 없는 증오가 그를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다 네 놈 탓이야! 리리스가 저렇게 변한 건! 모든 걸 엉망으로 만든 건! 다름 아닌 네 녀석!’
밉다. 저 녀석이 밉다.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다. 하지만…….
‘죽일 수가 없다니!’
그렇다면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히는 수밖에! 카이는 순간 네크로맨시를 발동시켜 하지연과 2학년 1반의 학생들을 움직였다. 지연과 재영들은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움직이는 몸에 비명을 질렀다.
“뭐, 뭐야? 이건?”
“맙소사!”
그들은 괴물의 혀에 전신을 포박당한 채 고개를 떨구고 있는 가인의 앞으로 걸어갔다. 비몽사몽간에 누군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낀 가인은 피가 엉겨 붙은 눈을 힘겹게 뜨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채 앞을 확인하기도 전에 날카로운 따귀가 그의 얼굴을 후려쳤다.
철썩!
“아아…….”
지연은 가인의 뺨을 때린 자신의 손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며 몸을 떨었다. 얼마나 인정사정없이 때렸는지 가인의 입으로 가는 선혈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지연의 뒤를 이어 2학년 1반의 학생들도 각각 한번씩 가인의 따귀를 때리기 시작한 것이다.
철썩! 철썩!
순식간에 가인의 얼굴이 시뻘겋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것을 내려다보며 카이는 웃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어서 힘을 써보라고, 오라의 주인! 뭘 망설이고 있는 거지? 응? 마음만 먹으면 금방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잖아!”
“……싫…어.”
가인은 입가가 다 쥐어터진 채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네크로맨시된 인간들에게서 그의 신음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카이는 입가를 일그러뜨렸다.
정말 꼴같잖은 자식! 아직도 그 따위 위선을 떨고 있는 거냐! 그렇게 상황파악을 못하겠어?!
짝! 짝! 짝! 짝! 짝!
“그, 그만해!”
재영은 가인의 얼굴을 연신 후려치는 자신의 행동에 비명을 질렀다. 가인은 누이 돌아갈 정도로 그것을 얻어맞다가 이내 고개를 숙이며 피를 한 움큼 토해냈다. 그러자 작은 웅덩이가 고일 정도로 검붉은 핏덩어리가 부러진 이빨들과 함께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 모습에 여학생들은 비명을 질렀지만 눈을 감을 수도 없었다. 얼굴을 돌리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흐응. 역시 자신에게 피해를 주는 걸로는 꿈쩍도 않겠다 이 말이지…….”
카이는 코웃음을 치며 손가락을 튕겼다. 좋아. 네 녀석이 그렇게 나온다면 다른 방법을 쓸 수밖에.
“자, 잠깐! 하지 마!”
“꺄악!”
학생들은 갑자기 풀장으로 걸어가는 자신들의 발걸음에 당황하기 시작했다. 가인은 부어오른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다가 카이가 있는 CCTV실을 향해 소리쳤다.
“무,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뭐, 별 거 아냐.”
카이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킥킥거렸다.
“네 녀석을 괴롭혀봐야 재미도 없으니까 좀 더 색다르게 놀아보려고.”
“……색다르게?”
가인은 힘없이 그 말을 중얼거리다가 곧 카이가 무엇을 하려는지 깨닫고선 두 눈을 부릅떴다. 지연 선생님과 친구들이 풀장으로 뛰어들려고 하고 있던 것이다. 설마 저 녀석! 선생님들을 풀장 밑으로 가라앉혀 죽일 셈인가! 그런 거야?
“그, 그만둬! 네가 원하는 건 나잖아! 다른 사람은 건드리지 마!”
“하하. 그러니까 네가 직접 저들을 말려보란 말이야. 설마 저들이 물에 빠져 죽는 걸 방관만 하고 있을 셈은 아니겠지? 그냥 오라를 사용하면 될 문제 아냐? 뭐가 어려워?”
카이는 가인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하나하나 즐기면서 환희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설마 괴물 취급 받는 게 무서워서 힘을 쓰지 않겠다는 거야? 따돌림 당하는 게 무서워서? 아하하하하! 이거 참 걸작이네. 넌 네 입으로 말했던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냐? 피스메이커라면서? 그건 저들을 지켜내기 위한 이름이 아니었나!”
그래. 역시 이런 거겠지. 모두를 위한다는 등 모두를 지켜내겠다는 등 아무리 떠들어 대봤자 너희들은 결국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인종이다. 자기만 무사하면 남이야 상처를 입든 숨이 끊어지든 알 바 아니라는 거지! 너희 테라는 예전부터 그랬어! 그렇게 너희 놈들은 우리를 유린하고 약탈해왔다!
“이 이기적인 놈!”
이기적인 놈! 이기적인 놈!
카이의 목소리는 마치 메아리처럼 연신 울리며 가인의 귓가를 두들겼다. 가인의 부어오른 눈에서 굵은 눈물이 한 방을 두 방울 흘러내렸다. 그는 괴물의 혀에 단단히 묶인 몸을 애처롭게 떨며 흐느꼈다. 카이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다. 자신은 이기적이었다. 이 상황에 와서도, 모두가 위험에 처함 상태에서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힘을 사용하기 싫다고 소리치는 자신이 있었다. 자신은 친구들이 목숨을 잃는 것보다도 그들이 자신을 외면하는 걸 더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 가인아…….”
재영이 풀장의 사이드에 서서 파랗게 질린 얼굴로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1년 동안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서 지내온 친구들이 겁에 질린 모습으로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언제나 괄괄하던 하지연 선생님마저 어깨를 떨고 있었다. 그 모습을 더 이상 마주하지 못하고 가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지독한 현기증 속에서도 자신에 대한 혐오감만은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것만으로도 힘들어. 제 한 목숨 보존하는 것조차 힘든데 하물며 남까지 생각해 줄 여유는 없는 노릇이지.’
브루스가 했던 말이 문득 생각났다. 가인은 그 말이 갖는 의미를 절실히 깨달았다. 그렇다. 나는 여전히 누군가를 지킨다는 의미를 모르고 있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여전히 자신은 제자리를 맴돌고만 있었다.
‘하나도 성장하지 않았어.’
하나도 변하지 않았어. 하나도 강해지지 않았어. 가인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자시 자신의 어리석음에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 분노는 가인 자신을 불태우고 끝내는 이 모든 일을 꾸민 카이에게까지 번져나갔다.
용서할 수 없어,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네 녀석을!
‘절대로……절대로 용서하지 않겠어!’
순간 가인의 주위에 있던 대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대한 오라의 기운이 공간을 뒤흔들었다. 무너진 CCTV실의 벽 너머로 그것을 내려다보던 카이는 미소 지었다. 그래! 저들의 앞에서 네 힘을 모두 드러내라! 그리고 고립되어라! 네가 믿던 모든 것들에게서 외면당하는 아픔을 너도 느껴봐!
짝!
그대 날카로운 따귀 소리가 CCTV실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카이는 몸을 가누지 못하며 쓰러졌다.
“어……?”
카이는 멍하니 주저앉아서 눈을 깜빡이다가 천천히 자신의 뺨으로 손을 가져갔다. 뜨겁게 달아오른 뺨이 차가운 손과 맞닿자 아릿한 아픔이 그 부위로 퍼져나갔다. 카이는 이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넋을 잃었다가 천천히 시선을 올렸다. 그러자 그곳에는 자신이 사랑하는 그녀가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내려다가 보고 있었다. 그 들어올렸다가 내려가는 손이 자신의 뺨을 때린 모양이다.
“……왜?”
카이는 찢어진 입술을 움직여 간신이 그 한마디를 했다. 그러나 리리스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를 바라만 볼 뿐이었다. 그 시선이 너무도 차가웠다. 경멸이 담겨 있었다! 카이는 어째서 그녀가 자신을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왜, 왜 그래? 리리스. 왜? 어째서 날 때린 거야? 응? 왜…….
휙
하지만 그녀는 대답을 구하는 카이에게서 등을 돌려버렸다. 외면한 것이다. 리리스는 그렇게 CCTV실을 나가버렸고, 카이는 그 뒤를 향해 망연자실한 시선을 던져야만 했다.
‘리리스가……화가 났어.’
나에게 화가 난 거야…….
그녀가 이렇게나 노여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유메가 감근당한 이후로 처음이었다. 왜? 어째서 그런 표정을 짓는 거야? 왜 화를 내는 거지? 왜?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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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슬슬 카이 브릿드 편이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마지막 이야기를 쓰기 전에 마무리 지어야 할 일들이 꽤 되네요. 페이오스의 일이나 스쿨드의 일이나 케이의 일이나……앞으론 이렇게 광범위하게 전개시키는 건 철저히 피해야 겠습니다. 그리고 '빛의 날개'는 잠시 연중을 하겠습니다. 초반 뼈대만 잡고 갑작스레 연재한 거라 이야기가 잘 안풀리네요. '빛의 날개'는 좀 더 다듬고 나서 어느 정도 써 논 후에 다시 내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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