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G '아앗 이건 나만의 이야기!' [공작원&지상 최악의 날(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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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인가?”
“말도 안돼. 어떻게 러시아군이 반나절도 채 못가서...”
“말세야. 말세...”
블라디보스토크 광장을 둘러싼 검은 물결은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며 더욱 힘차게 물결을 쳤다. 서방, 동방 할 것 없이 모든 외신들은 이 러시아의 주요 항구에 대해 연신 톱뉴스로 보도하며 장래 세계의 변화와 흐름에 대해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특히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러시아 국내로 무인정찰기를 띄웠다가 RLO에게 격추되어[RLO에서 공식적인 발표를 함.]자존심에 칼자국이 남은 초강대국 미국과, 자국의 영토를 하룻밤 사이에 송두리째 빼앗긴 러시아였다. 러시아군의 입장에선 이 오만하고, 시건방진 테러리스트 집단들을 당장이라도 짓밟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예상외의, 아니 상식을 벗어난 수준의 강력한 병기들과, 전투능력을 지닌 RLO로부터 블라디보스토크를 탈환한다는 사실은 어불성설이었다. 도리어 무리한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의 경제가 무너져 내릴 가능성도 있어 속으로 분노를 죽이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겉으로는 유감을 드러내며 내심 라이벌국가였던 러시아가 큰 타격을 입은 것을 매우 반기던 미국도, 수준 높은 그들의 능력을 점점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세계의 각 주요 언론에서는 이 군사대국 두 국가가 모종의 썸씽을 가지고 RLO를 압박할지도 모른다는데 초점을 두기 시작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신경 쓰지 않는지 한가하기 그지없었다. 광장에서 멀리 떨어진 항구에 정박한 키로프 군함에 승선한 RLO의 두목 슈미는 재채기를 내뱉었다. 슈미는 저 멀리 광장에서 검은 물결을 자랑하듯 일사분란하고도, 바른 자세로 행군하며 시민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어주는(?)자신의 군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좀 춥군.”
“그래도 남쪽이라 그런지 덜 춥습니다. 보스.”
까스빠진 리가 투덜거리며 볼멘소리를 내뱉는 그의 상관에게 이 정도 날씨는 별 것 아니라며 중얼거렸다. 그의 입에서 한마디, 한마디가 튀어 나올 때마다 따뜻하고, 새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슈미는 멀뚱멀뚱 그를 쳐다보며 주위에서 RLO식 인사[가슴을 치며 찬사를 덧붙이는.]에 계속 답하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의 눈에 보인 블라디보스토크란 항구는 온통 폐허와 아슬하게 버티고 서 있는 유럽식 건물들이었다. 유서 깊은 러시아의 항구는 마치 TV 속에서나 보던 체첸이란 곳에 온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전장이 되어 있었다.
“저 골치 아픈 민간인들은?”
슈미가 러시아산 망원경에 포착된 울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재촉하며 달래는 넉살 좋은 아줌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군대가 예의 전투기간처럼 자신들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지 행진하는 병사들이 대로를 점령하기가 무섭게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러시아에 신병을 인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뭐~러시아 측에서는 우리를 민간인들을 함부로 죽이는 사악한 군대로 선전하고, 자신들의 패배를 들키지 않으려는지, 반격준비를 한다. 여러 가지 무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등..잘 싸운다 등등...”
“흥~어차피 민간인 학살은 앞으로도 열심히 자행될 것 아닌가? 우리군 측에서 실행하던, 지지하던 러시아 정부에 의해서 자행되던. 어차피 죽을 운명들...이 동토에서 몰아내야 할 귀찮은 파리들일 뿐이야.”
그렇다! 이제 이곳은 러시아가 아니다. 여기는 극동시베리아를 포함한 나의 RLO의 첫 수도다! 날카로운 미소를 머금은 리의 설명에 슈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속으로 실소하였다. 그때 슈우욱~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 날아들었다. 눈 깜짝할 새에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그것은 미사일이란 인류가 만들어낸 유도병기였다. 그것도 컴퓨터의 명령과 건네받은 자료에 따라 목표를 설정하고 정확하게 날아온다는 정밀타격무기인 순항로켓이었다. 순항 로켓 5발이 지상 곳곳에 고개를 처박으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 폭발음은 멀리 떨어진 키로프 급에 승선한 슈미의 귀까지 간지럽힐 정도였다. 폭발과 굉음에 놀란 시민들은 소리를 지르며 대로변에서 흩어져 버렸다.
“아아~저쪽에 보조 이동 사령부 차량이 있었던가?”
슈미가 폭발이 있었던 곳을 바라보았다.
“다. 대 전자전 마법 스캐너와 기타 장비들이 들어있었습니다. 뭐~2세대형 병기니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리의 설명에 슈미는 신경 쓰인다는 얼굴로 눈을 가늘게 뜨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항미사일의 사격에 뒤늦게 RLO가 대공사격과, 똑같은 미사일을 쏘아 올리며 대응을 하고 있었다. 아직 완벽한 샘사이트(방공용 미사일 포대)가 갖춰지지 않은 RLO의 입장에서는 요격이 힘든 탄두 미사일이나, ICBM(대륙간 탄도탄)은 물론 심지어 그나마 격추의 가능성이 높은 저런 정밀타격병기인 순항미사일조차 격추하기 힘들다는 여론이 우세했다. 러시아군도 그렇게 파악하고, 여러 인공위성과, 무인정찰기들을 띄우며 그들의 동태를 살피는 한편, 이렇게 멀리서 깔짝거리며 귀찮게 구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류는 이들 RLO란 단체를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서 보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실수였다. 그들의 우둔함에 슈미가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휘리리리리릭~~쿠콰콰쾅
난데없이 허공에서 빛이 번쩍하며 먹잇감을 노리는 식인상어마냥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던 미사일들 3기가 허무하고도, 장렬히 산화하였다. 군관계자들이 본다면 적들의 휴대용 로켓이 순항미사일을 격추시켰거나, 예광탄이 하늘에 작렬하며 우연히 그것들을 때려잡았다고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뒤꽁무니에서 불을 뿜는 로켓은커녕, 예광탄의 예자도 보이지 않았다. RLO의 헬솔져들이 들고 있던 기다란 물체에서 낮은 화염을 내뿜을 때마다 소리, 소문 없이 식인상어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몇몇 미사일은 그들이 쏘는 정체불명의 신무기에 당해 기우뚱거리더니 엉뚱한 도로 한복판에 터져 시민들을 더욱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역시 헬스아이가 빛을 발휘하는군요.”
“헬솔져들의 특수 능력과 저런 병기만 있다면...후훗! 저런 애송이 미사일쯤이야..”
-격추 완료, 제2차 미사일 공격이 감지되었습니다. 목표 수는 순항 미사일 40여발, 탄도미사일 5발.-
슈미와 리의 귀에 부착된 이어폰에서 메마른 낮은 음성이 무심하게 들려왔다. 슈미는 고개를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정면대결도 못하는 한심한 인류. 그들과 나의 기술력차이를 똑똑히 보여주마. 슈미의 비웃음 소리가 조금씩 커져나갔다.
“헬스아이와, 데블아이 대물저격총 극한까지 능력을 끌어올리도록, 아울러 격추에 조금 어려움이 있는 탄도미사일은 그 녀석으로 대체한다.”
“다. 보스!”
[러시아 극동사령부.(현재 RLO와 대치중)]
슈우우욱~~~쿠콰콰콰쾅~~~슈우웅~~~퍼퍼퍼펑~~~~
러시아가 자랑하는 수많은, 이름도 다양한 로켓들이 허공을 찢으며 날아올랐다. 적들을 교란하듯 날아가서 치명타를 입히는 순항미사일들과, 주어진 명령대로 충실히, 그리고 음속으로 날아가 괴멸시키는 탄도미사일들. 종류는 두가지였으나 그 이름들과 원래 쓰임새는 다양한 로켓들은 전부 한 곳을 집중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가 자랑하는 부동항 중 하나였다.
“그래! 이렇게 했어야 했어!! 이렇게!!!”
가는 콧수염이 툭 튀어나오고, 눈에는 다크써클이 짙어 피곤함이 역력한 사령관이 기운을 내며 커다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다. 다소 민간인 피해가 크더라도, 저런 게릴라들에게 러시아가 자랑하는 미사일전력의 위력을 보여줘야 했다. 그는 어리석게도 괜히 육군과, 기갑사단을 투입해 체첸과 그루지야 반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던 붉은 군대와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한 자신의 부하들에게 현대전의 위력을 실감케 하며 입에서 침을 계속 투하했다. 덕택에 그의 보좌관으로 있는 여성비서에게 온갖 침덩어리들이 계속 얼굴에 붙었다. 여자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몰래 상관을 흘겨보았다.
“저것들은 체첸이나, 그루지야 같은 반연방 테러리스트들과는 틀렸어.”
바실로프 코르네이(극동군 사령부 담당)자랑스런 조국이 만든 대형 모니터와 이름 모를 전자장비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MD인가, 뭔가 하는 가장 멍청한 방어 계획을 지닌 미국도 이정도 공격을 막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하물며 저 이름도 기이한 단체는 또 어떻겠는가? 사령관은 온몸을 부르르 떨어내며 무너져 내리고 있을 그들의 전력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흥분을 토해냈다. 그러나 옆에 붙어 있는 보좌여성군인 례나는 걱정이 앞섰다.
‘적들은 듣도 보도 못한 무기체계를 지닌 정규군이라 했는데...’
패잔병들의 진술에 따르면 그들은 괴뢰국 일본도 지니지 못한 이족보행병기를 지니고 있었고, 자신들의 전술을 꿰뚫어 보기라도 했는지, 계획적으로 조여 오는 검은 옷으로 통일한 병사들이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던 보병화기는 진짜 테러리스트들을 연상시키게 만들 정도로 오래된 구식병기들이 많았으나, 화력의 선두부대인 기갑만큼은 차이가 났다고 말했다.
“건물 크기의 로봇, 로봇이라...어깨에 포를 장착한 로봇도 있다고 했지?”
장비는 덜떨어지나 자신들의 약점을 노려 파괴해버리며, 쉬지 않고 전진해오는 검은 방독면과, 검은색 방탄복으로 통일한 병사들, 하인드 헬기의 로켓을 맨몸으로 버티며 달려와 영화 속 ‘킹콩’이 그러하듯 철저히 박살내버리는 고릴라 형 거대보행병기, 일반인보다 절반 정도 더 큰 크기에 불과하나,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보행병기까지...육군의 진술은 너무도 허무맹랑하여 믿을 수 없었으나 현실은 그것을 믿게 만들었다. 해군 또한 그들과 조금 다르지만 역시 충격을 받았는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 지난 반세기 전에 해체가 되었던 미해군 소속 전함과 일본군의 대함거포들이 작렬하며 항구를 불태웠고, 초계기와, 전투폭격기, 그 폭격기를 호위하는 전투기 편대가 정체불명의 병기에 당해 치명상을 입고 후퇴했다, 자신들도 겨우 5척을 건조한 키로프급이 양산이라도 한 듯 블라디보스토크항구에 쏟아져 나와 정박중이라는 믿기 힘든 사실은 그들을 정말로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단 한명만은 예외였다.
“하하하~~모조리 타버려라!!”
례나는 결국 소리를 치며 모니터로 지켜보는 사령관을 째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위성 사진과, 정찰기들의 보고대로 저들의 육군 방공망이 무척 취약하다면 좋겠지만.
“역시..희망에 불과하겠지?”
례나는 실소하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화면은 미사일들이 진행한 흔적과, 목표의 위성사진 대신 정찰기들이 실시간으로 생중계 하는 전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최신형 버전이 아니라 조금 상태가 안 좋은 구식 분대형 무인정찰기를 사용해서인지 화면은 흑백이었다. 그러나 건물들의 실물, 폐허가 된 흔적들, 포탄자국등등 모든 것이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모니터 속에 무언가 하얀 불꽃을 일으키며, 구름을 그리며 낮게 날아가고 있었다. 시스키밍(목표와 가까워지면 낮게 날며 적의 레이더를 피하는 순항미사일 특유의 방공망을 피하는 방법)을 하며 날아들고 있었다. 목표는 광장에 설치된 레이더벤(벤차량에 레이더를 장착한)이었다. 그녀의 걱정이 사실이 단지 기우라면 사령관이 원하던 대로 광장은 80kg 탄두에 의해 잿더미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벌인 짓이 모두 헛고생이란 의미가 될 것이다.
“.......”
“뭐, 뭐야 저건!!”
사령관이 갈갈이 날뛰며 옆에 붙어 있는 오폐라더르(오퍼레이터)를 붙잡고 저게 어떻게 된 상황이냐며 화를 냈다. 오퍼레이터들도 놀라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미사일이 유폭한 것인가? 갑자기 순항미사일의 날개와, 동체가 살짝 불꽃을 일으키더니 스스로 허공에서 터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그들도 사령관을 똑바로 바라보며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두 가지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첫째. 미사일폭격은 실패하였고, 둘째. 적들과 상대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래도...탄도 미사일이 있어.”
사령관은 마지막 희망을 기다란 곡선을 그리며 음속으로 돌진 중인 탄도미사일에 배팅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례나는 사령관의 생각이 정말로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피해는?”
“후폭풍에 휘말려 사망한 헬솔져 5, 화약 은닉처로 생각해두었던 아파트의 절반이 무너짐, 쾨니히스 골렘, 디아블로 기체가 각각 4기씩 폭발했습니다. 미사일들은 대부분 격추시켰으나 3000km바깥에서 탄도미사일 5기가 날아온다는 정보. 약 1분 30초 뒤에 도착합니다.”
“핵 탑재인가?”
“아닙니다. 그들도 머리는 있습니다. 테러리스트 잡겠다고 핵전쟁까지 벌이지는 않을 겁니다.”
리의 설명에 미간을 살짝 찌푸린 슈미가 안락한 목제 의자에서 일어나 허공에 뜬 다양한 영상들을 바라보았다. 슈미의 신경이 쏠린 영상 속에는 현재 날아오고 있는 미사일로 추정되는 탄도 미사일의 이름과, 성능, 제원같은 정보들이 담겨져 있었다. 그것에 대한 격추는 자신이 자랑하는 RLO의 또 하나의 걸작 조기경보&방어통제항공선에 달려 있었다. 헬솔져들 각각이 가지고 있는 헬스아이란 다중 동작 포착 능력과, 그것을 보완해 뛰어난 광학장치과 망원경, 강력한 탄환을 소리, 소문없이 발사하는 발사체로 무장한 대물저격총 데블아이로는 저런 음속의 병기까지 잡아내지는 못했다. 아음속(순항미사일급)이라면 또 모를까, 저것은 그가 보병들에게 준 능력으로도 어림없었다. 그 때문에 슈미는 탄도미사일의 거리를 계산하며 확실한 저격을 준비 중일 항공선을 떠올리며 미소를 띄워 보냈다.
“후훗. 커다란 고양이가 감히 호랑이를 건들겠다고 설치다니. 가소롭군.”
서방 언론이 보기에는 자신이 작은 고양이로 보이겠지만 승패가 빤히 보이는 전쟁이란 것을 너무도 잘 아는 이들에게는 자신이 작은 호랑이로 보이겠지? 슈미는 웃음을 터뜨리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의 예상대로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기 30초 전에 전 탄도미사일의 요격을 확인했다는 메시지가 허공에 떠올라 그를 반겼다.
“우리와의 전투에 휩쓸리지 않고, 용케 살아남은 기자 놈들 몇 놈 족쳐서 프로파간다(홍보활동)실시하게 해. 거슬리는 놈들은 처리해도 상관없어.”
“다. 보스!”
슈미는 진지하고도 조용한 동양인 리를 잠깐동안 빤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그 외에 다른 소식은 없나?”
슈미의 질문에 리는 있다고 답했다. 그의 친절한(?)설명에 슈미는 놀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의 계획에 재를 뿌리려는 귀여운 파리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것도 괴뢰국 일본에 있다고?”
“다. 슈미보스의 계획대로 유그드라실과 니드벡(마계의 중추시스템)이 통제불능인 상황인 것은 잘 아실 겁니다.”
“뭐. 이제 그 정도 장난(?)은 이쯤에서 끝내도 좋겠지만...아직 1급 여신은 써먹을 데가 많거든?”
“........다(네.)”
슈미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얼굴에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그의 깊은 붉은색 눈동자가 더욱 더 붉게 변하며 가늘게 변했다. 그의 머리칼이 찰랑이며 오만한 표정을 짓게 만들었다. 슈미의 그런 모습은 자신의 앞에 있는 모든 죄인들을 죽이라고 명령하며 킬킬 거리는 듯 한 인상의 미친 왕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물론 슈미는 그런 군왕이 되는 것은 싫었지만 자신의 이상과, 꿈을 위해서 천계, 마계까지 멸망시킬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속에 등장하는 왕과 너무도 흡사했다. 아니 오히려 그 왕을 능가하는 무시무시한 자였다.
“파리들이 귀찮게 굴지 못하도록 하자고.”
[일본. 케이네 신사. -케이의 방]
휘릭 척. 딸깍.
헤드폰 밑으로 길게 연결된 조그맣고, 둥그런 마이크가 안나의 도톰하고, 붉은 입술쪽을 향했다. 케이가 안나가 쓴 헤드셋의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 후 엄지손가락을 들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안나도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맞받아쳤다. 케이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부탁한다고 말했다. 안나는 평소 그녀의 화내는 모습과 너무도 안 어울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를 씩 드러냈다. 베르단디가 보았다면 굉장히 좋아라! 할 모습이겠으나 문제의 당사자는 지금 몸져 앓아, 페이오스가 그녀의 상태를 체크 하고 있었다. 덕택에 베르단디는 계속 나신인 상태로 허공에 둥둥 떠 있어야 했고, 그런 모습을 실수로(?)들킨 사례가 조금 전 있었기에 케이는 강제로 응접실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Tea 룸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 설령 케이가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 쳐도 안나의 날카로운 시선과 페이오스의 날카로운 장미덩쿨을 견뎌낼 자신이 없는 그는 그저 조용히 자신의 방안에 틀어박혀 안나가 무선랜(실은 국가간 통신을 하고 있으므로 Wan이라고 읽어야겠지만)통신을 하는 것을 돕는 수밖에 없었다. 안나는 케이가 알아듣지 못할 갖가지 러시아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며 중얼거렸다. 모니터에 영어로 번역된 러시아어가 채팅하듯 게시물에 쓰였고, 그 때마다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안나가 쓴 헤드폰에 들려왔다.
“다행이군. 그나마 대 어둠귀신+항제의 재료 중 중요한 것들이 대부분 이 집에 있었으니 말이야.”
안나의 중얼거림에 케이는 울드, 페이오스의 실험실에 쳐박혀 있던 플라스틱 용기와, 유리비커 속에 들어 있던 기괴한 색들의(?)약품들을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 여신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자신에게 그런 끔찍한 것들(?)을 먹였다는 사실이 떠올라 비위가 상한 것이었다. 케이는 다시는 ‘자신과 베르단디 사이의 관계를 증진(이라고 쓰고 후퇴라고 읽는.)시켜 주겠다. 며 먹는 약은 절대로 먹지 않겠노라고~올해에만 30번째가 되는 다짐을 다시 되풀이했다. 자신은 먹지 않겠다고 여겨도, 가끔 자신의 또 다른 인격(??)이 실수로 먹거나, 그녀들이 강제로 먹이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자보단 당연히 후자의 경우가 압도적이었다. 어쨌든 그녀들이 큰 맘 먹고 비싼 돈 주고 산 물품들이 이런 때에 유용하게 쓰인다는 점은 정말 불행 중 다행이었다. 어차피 기이하고, 끔찍한 약물이 되어 케이의 뱃속에 들어갈 바엔 차라리 진짜 약품이 되어 베르단디를 치료하는데 쓰이는 것이 백배, 천배 더 나았다. 문득 케이는 귓가에 들려오는 페이오스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에엥? 아쉽네요. 특제 강심제 푸름의 박력(?)으로 만들려고 놔둔 블루 허브 추출액과 효소였는데...그것도 케이씨 전용으로 만든 것이라..’
페이오스의 자신을 실험용 모르모트로 사용하지 못해 아쉽다(?)는 다소 과장된 표현이긴 하나(아니다! 그녀라면 정말 그렇게 할지도 몰라. -케이 왈)어쨌든 괴신약을 먹이길 못하게 된 아쉬운 목소리를 떠올리며 저절로 얼굴에 진땀이 새겨졌다. 으으~조심해야지 또 조심해야지!! 물론 케이는 페이오스가 특제 강심제 대신 그보다 더욱 강력한 용기 증폭제인 폭주 엑기스 ‘화염의 부름’을 만들 계획을 몰래 세우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딸깍. 딸깍.
“아.”
케이는 귓가에 들려오는 마우스를 요란하게 누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모니터에 집중, 또 집중을 했다. 안나는 진지한 얼굴과 분노한 얼굴을 동시에 하고(실은 이 모습이 그녀가 진지하게 일에 매달릴 때 짓는 표정 같았다.)모니터를 눈으로 훑어 내리며 마우스와 타자기를 연신 두드렸다. 그렇게 작업하기를 약 3분. 안나가 기뻐하며 케이를 돌아보았다.
“성공이에요. 지금 모든 물자와, 탄약, 더불어 제작파일, 묠니르가 돌아갈 것이랍니다. 그 바보 녀석이 지금 당신과 통신하고 싶다는 군요. 쳇.”
안나는 묠니르를 향해 혼잣말로 욕설을 퍼부었지만 그래도 기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에 대한 기대감과 그리움이 하늘을 찌르는 것 같았다. 케이도 기쁘다는 얼굴을 하고 안나 옆으로 다가와 타자기를 두드렸다. 짧지만 내용은 확실하게 전해지는 영어문장이었다.
-그 동안 잘 지냈니?
-알로? 모쉬노 케이이치? 이 베르단디?(여보세요? 케이이치와 베르단디 있나요?)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모 비밀군기지에 있다는 군사마니아 러시안 마족은 케이의 영문을 알아듣지 못했는지 알 수 없는 언어를 남겼다. 러시아의 키릴문자였다. 케이는 뒤늦게 그가 영어를 잘 못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어떻게 대화를 주고받을지 고민이 된 것이었다. 의외로 고민해결은 간단하게 풀렸다. 안나 덕택이었다.
“바보. 우리 그라스나야와 연결된 이 회선을 쌍방향음성통신모드로 바꾼 뒤, 개인 채널로 바꾸면 되잖아요.”
라며 핀잔을 잔뜩 먹인 그녀는 마우스를 움직여 음성통신모드로 설정을 바꿨다.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고지식한 점은 스쿨드를 떠오르게 만들어 고지식하다는 인상을 풍겼지만, 그녀는 이런 전쟁과, 질병(?)이 뒤엉킨 최악의 정체상황에선 디지털만이 최고의 고속도로라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녀는 타자기 두드리는 게 싫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모니터에 집중에 또 집중을 하였다. 완벽하게 완료 되었는지 그녀는 자신이 쓰고 있던 헤드셋을 케이에게 건네주었다.
“그나저나 너무 하네 나쁜 놈. 동료인 나는 하나도 반갑지 않다는 것인가?”
안나가 원망과, 분노가 뒤섞인 살기를 모니터로 쏘아붙이자 케이는 하하. 너털웃음을 토해내며 안나를 위로하려 했다. 물론 그녀는 케이가 뭐라 했는지 전혀 듣지도 않고 바닥에 드러누워 볼멘소리로 뭐라 러시아어를 내뱉었다. 그녀의 그런 황당한 모습은 마치 고백을 했는데 받아주지 않는 남자아이에게 실망한 소녀들의 모습과 똑같아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론 재미있기도 했다.
-알로? 모쉬노 가스빠진 케이이치?(여보세요? 케이이치씨인가요?)
-응. 나, 케이야.
그러나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 못하여, 페이오스의 법술과, 마술, 자신의 능력으로 겨우겨우 버텨온 그로서는 지금 페이오스의 법술, 마술이 능력을 끼치지 못하는 아프간에서는 케이의 말을 들을 수만 있을 뿐 하나도 이해하질 못하고 있었다. 케이의 일본어 음성이 들여올 때마다 묠니르측은 당황했는지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며 헤드폰에 대고 안녕이란 러시아 인사면 계속 할 뿐이었다. 묠니르와 케이의 그런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던 안나가 참다못해 그의 헤드폰을 뺏었다.
“이리 내욧.”
“아..응.”
-에이! 묠니르.(이봐! 묠니르.)
-.........끄또 므이?(당신은 누구야?)
-......쵸르트(빌어먹을 자식)
겨우 타자기로 대화하는 것 대신 음성통신으로 바뀌었을 뿐인데...자신의 목소리도 몰라? 그녀는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론 정말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낯익은 남자의 음성을 계속 들었다. 그가 뒤늦게 안나?라고 질문을 하자 안나는 기쁘다는 듯 크게 소리를 쳤다.
-에떠 야!(나야!) 야. 안나.(나. 안나야) 에떠 므이 드루까(당신의 여자친구 혹은 여자동료)
-안누?(안나? -전화를 할 때는 상대방의 이름 뒷부분에서 아발음은 우로, 야 발음은 유로 바뀌어서 대화한다, 단 외국인은 제외)....그곳에는 어떻게?
안나는 의문심을 드러내는 묠니르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며, 네 계좌 사용부분을 확인하고, 네가 필요한 중요한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서둘러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프간 기지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부장들의 목소리가 안나의 귀를 간질였다. 현재 워프 마법진 재가동 중으로, 좀 있으면 작동이 될 것이라는. 묠니르는 오랜만에 만난 동료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 남은 시간동안 파헤치기로 했다.
-까끄 졔라?(잘 지내?) 그리고 왜 하필이면 일본에? 미국에서 기다리거나, 이곳으로 직접 와서 만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혹시 그 화 잘 내는 성격 때문에 나 만난답시고 먼저 온 것 아냐? 지휘관은 차분하게, 때론 냉정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놓고선?
-아아~쟈볼르시쩨(소란떨지마세요)내가 당신같이 바. 보. 상관 만나겠다고 이런 약해빠진 국가에 올 것 같아? 그리고 스빠씨뻐(고마워) 나르말리너(그럭저럭 잘 지내.)
라며 일본을 비하하며 손사래를 치지만 그녀의 걱정되고, 당황한 얼굴은 케이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안나는 정말로 묠니르를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베르단디를, 그리고 베르단디가 자신을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어쨌든 정신없으니까. 빨리 와.
-다.
묠니르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안나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렇게 모든 일이 원만하게 풀리고 안나가 막 헤드폰을 벗으려 했다. 안나는 뒤이어 들려오는 커다란 폭음에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크윽. 탄식했다. 뭔가 엄청난 폭발음과, 사람들의 비명소리같은 것이 갑자기 들려와 그녀의 고막을 건드렸던 것이었다. 폭음이 사라진 뒤 뭔가 타닥타닥 타오르는 소리와, 파직거리는 방전음이 귀에 들려왔다.
-알로? 묠니르? 알로? 묠니르??!
안나가 당황하여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케이가 무슨 일이냐며 놀라 다가와 안나의 헤드폰 한쪽을 뺏어 귀에 가져다 댔다. 그러나 묠니르의 목소리는 끝내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모니터에 붉은색 키릴 문자가 대신 안나에게 다급함을 절실하게 알리려 하고 있었다.
-경고. 내부침입자 발생. 내부 침입자 발생.
파직. 쿠쾅 파지직 파팟.
“......”
스파크를 구토하듯 잔뜩 토해내는 전선의 울부짖음에 묠니르는 서서히 눈을 떴다. 눈위에 뭔가 묻었는지 자꾸 세상이 붉게 보였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긴 핏자국이 자신의 눈가를 덮은 것이었다. 묠니르는 불과 몇 분만에 엉망이 돼 버린 컴퓨터 관제실을 돌아보고 놀라워했다. 누군가 컴포지션4(C4)같은 고폭약을 쓰기라도 했는지 이곳은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마이크를 붙잡고 대화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그는 무의식중에 엎드려 살았지만 자신이 통신을 할수 있도록 허락한 통신부장과, 여러 오폐라더르(오퍼레이터)들은 산화되었거나, 새까맣게 타버려 다신 컴퓨터를 만질 수 없는 몸이 되어 있었다.
“이게 대체...여보세요? 안나? 케이이치씨??!!”
묠니르는 들고 있던 마이크를 들고 다시 대화를 시도했지만 폭발에 휘말린 전자기기들이 스파크를 일으키고, 이상한 노이즈(잡음)만 일으켜 더 이상의 통신은 무리였다. 묠니르는 마이크를 그대로 내팽개치고 품속에서 위협적인 무언가를 꺼냈다. 자신이 일본에서 급조한, 그리고 스쿨드(기술담당)와, 울드(탄약담당)가 약간의 개량을 가해준 선물인 2연발유탄직사화기였다. 마치 서부시대 때 사용된 2개의 총구로 구성된 샷건의 소형모델을 보는 듯 했다. 이것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돌아오길 바라던 눈빛의 두 여신들을 보고 씁쓸한 미소를 짓는 묠니르. 지금도 그녀들은 자신이 돌아오길 바랄까? 케이들의 평범한 일상(?)이 자신이 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 묠니르는 그녀들과, 자신이 사랑했던 이와 생김새가 똑같은 베르단디를 떠올리며 총구를 열었다. 총을 잡고 살짝 흔들자 뒷부분이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열렸다.
-철컥
뒤이어 묠니르는 그곳에 두 개의 다른 총탄을 번갈아 집어넣었다. 한발은 총포상에서 구할 수 있는 기본탄인 산탄을, 다른 하나는 신호탄으로도 사용되고, 때론 위협적인 무기가 될 수도 있는 플레어로 쓰이는 적열 탄을 집어넣었다.
“일단은 돌아간다.”
일본으로, 케이이치 일행에게로, 페이오스에게로, 묠니르는 자신의 휴가를 자기 멋대로 끝났다고 판단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리고 신이 보기에는 그의 행동은 엄연히 휴가라고 보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말도 안돼. 어떻게 러시아군이 반나절도 채 못가서...”
“말세야. 말세...”
블라디보스토크 광장을 둘러싼 검은 물결은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며 더욱 힘차게 물결을 쳤다. 서방, 동방 할 것 없이 모든 외신들은 이 러시아의 주요 항구에 대해 연신 톱뉴스로 보도하며 장래 세계의 변화와 흐름에 대해 시끄럽게 떠들어댔다. 특히 여기서 주목되는 점은 러시아 국내로 무인정찰기를 띄웠다가 RLO에게 격추되어[RLO에서 공식적인 발표를 함.]자존심에 칼자국이 남은 초강대국 미국과, 자국의 영토를 하룻밤 사이에 송두리째 빼앗긴 러시아였다. 러시아군의 입장에선 이 오만하고, 시건방진 테러리스트 집단들을 당장이라도 짓밟아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예상외의, 아니 상식을 벗어난 수준의 강력한 병기들과, 전투능력을 지닌 RLO로부터 블라디보스토크를 탈환한다는 사실은 어불성설이었다. 도리어 무리한 전쟁으로 인해 러시아의 경제가 무너져 내릴 가능성도 있어 속으로 분노를 죽이며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겉으로는 유감을 드러내며 내심 라이벌국가였던 러시아가 큰 타격을 입은 것을 매우 반기던 미국도, 수준 높은 그들의 능력을 점점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세계의 각 주요 언론에서는 이 군사대국 두 국가가 모종의 썸씽을 가지고 RLO를 압박할지도 모른다는데 초점을 두기 시작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신경 쓰지 않는지 한가하기 그지없었다. 광장에서 멀리 떨어진 항구에 정박한 키로프 군함에 승선한 RLO의 두목 슈미는 재채기를 내뱉었다. 슈미는 저 멀리 광장에서 검은 물결을 자랑하듯 일사분란하고도, 바른 자세로 행군하며 시민들의 눈을 즐겁게 만들어주는(?)자신의 군대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좀 춥군.”
“그래도 남쪽이라 그런지 덜 춥습니다. 보스.”
까스빠진 리가 투덜거리며 볼멘소리를 내뱉는 그의 상관에게 이 정도 날씨는 별 것 아니라며 중얼거렸다. 그의 입에서 한마디, 한마디가 튀어 나올 때마다 따뜻하고, 새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슈미는 멀뚱멀뚱 그를 쳐다보며 주위에서 RLO식 인사[가슴을 치며 찬사를 덧붙이는.]에 계속 답하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의 눈에 보인 블라디보스토크란 항구는 온통 폐허와 아슬하게 버티고 서 있는 유럽식 건물들이었다. 유서 깊은 러시아의 항구는 마치 TV 속에서나 보던 체첸이란 곳에 온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전장이 되어 있었다.
“저 골치 아픈 민간인들은?”
슈미가 러시아산 망원경에 포착된 울고 있는 어린 아이들을 재촉하며 달래는 넉살 좋은 아줌마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는 자신의 군대가 예의 전투기간처럼 자신들에게 해코지를 하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지 행진하는 병사들이 대로를 점령하기가 무섭게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러시아에 신병을 인도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뭐~러시아 측에서는 우리를 민간인들을 함부로 죽이는 사악한 군대로 선전하고, 자신들의 패배를 들키지 않으려는지, 반격준비를 한다. 여러 가지 무기를 준비하고 있다는 등..잘 싸운다 등등...”
“흥~어차피 민간인 학살은 앞으로도 열심히 자행될 것 아닌가? 우리군 측에서 실행하던, 지지하던 러시아 정부에 의해서 자행되던. 어차피 죽을 운명들...이 동토에서 몰아내야 할 귀찮은 파리들일 뿐이야.”
그렇다! 이제 이곳은 러시아가 아니다. 여기는 극동시베리아를 포함한 나의 RLO의 첫 수도다! 날카로운 미소를 머금은 리의 설명에 슈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속으로 실소하였다. 그때 슈우욱~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 날아들었다. 눈 깜짝할 새에 허공을 가르며 날아오는 그것은 미사일이란 인류가 만들어낸 유도병기였다. 그것도 컴퓨터의 명령과 건네받은 자료에 따라 목표를 설정하고 정확하게 날아온다는 정밀타격무기인 순항로켓이었다. 순항 로켓 5발이 지상 곳곳에 고개를 처박으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그 폭발음은 멀리 떨어진 키로프 급에 승선한 슈미의 귀까지 간지럽힐 정도였다. 폭발과 굉음에 놀란 시민들은 소리를 지르며 대로변에서 흩어져 버렸다.
“아아~저쪽에 보조 이동 사령부 차량이 있었던가?”
슈미가 폭발이 있었던 곳을 바라보았다.
“다. 대 전자전 마법 스캐너와 기타 장비들이 들어있었습니다. 뭐~2세대형 병기니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리의 설명에 슈미는 신경 쓰인다는 얼굴로 눈을 가늘게 뜨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순항미사일의 사격에 뒤늦게 RLO가 대공사격과, 똑같은 미사일을 쏘아 올리며 대응을 하고 있었다. 아직 완벽한 샘사이트(방공용 미사일 포대)가 갖춰지지 않은 RLO의 입장에서는 요격이 힘든 탄두 미사일이나, ICBM(대륙간 탄도탄)은 물론 심지어 그나마 격추의 가능성이 높은 저런 정밀타격병기인 순항미사일조차 격추하기 힘들다는 여론이 우세했다. 러시아군도 그렇게 파악하고, 여러 인공위성과, 무인정찰기들을 띄우며 그들의 동태를 살피는 한편, 이렇게 멀리서 깔짝거리며 귀찮게 구는 것이었다. 그러나 인류는 이들 RLO란 단체를 자신들의 기준에 맞춰서 보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실수였다. 그들의 우둔함에 슈미가 탄식하며 중얼거렸다.
휘리리리리릭~~쿠콰콰쾅
난데없이 허공에서 빛이 번쩍하며 먹잇감을 노리는 식인상어마냥 공기를 가르며 날아오던 미사일들 3기가 허무하고도, 장렬히 산화하였다. 군관계자들이 본다면 적들의 휴대용 로켓이 순항미사일을 격추시켰거나, 예광탄이 하늘에 작렬하며 우연히 그것들을 때려잡았다고 판단을 내렸을 것이다. 그러나 뒤꽁무니에서 불을 뿜는 로켓은커녕, 예광탄의 예자도 보이지 않았다. RLO의 헬솔져들이 들고 있던 기다란 물체에서 낮은 화염을 내뿜을 때마다 소리, 소문 없이 식인상어들은 떼죽음을 당했다. 몇몇 미사일은 그들이 쏘는 정체불명의 신무기에 당해 기우뚱거리더니 엉뚱한 도로 한복판에 터져 시민들을 더욱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역시 헬스아이가 빛을 발휘하는군요.”
“헬솔져들의 특수 능력과 저런 병기만 있다면...후훗! 저런 애송이 미사일쯤이야..”
-격추 완료, 제2차 미사일 공격이 감지되었습니다. 목표 수는 순항 미사일 40여발, 탄도미사일 5발.-
슈미와 리의 귀에 부착된 이어폰에서 메마른 낮은 음성이 무심하게 들려왔다. 슈미는 고개를 흔들며 미소를 지었다. 정면대결도 못하는 한심한 인류. 그들과 나의 기술력차이를 똑똑히 보여주마. 슈미의 비웃음 소리가 조금씩 커져나갔다.
“헬스아이와, 데블아이 대물저격총 극한까지 능력을 끌어올리도록, 아울러 격추에 조금 어려움이 있는 탄도미사일은 그 녀석으로 대체한다.”
“다. 보스!”
[러시아 극동사령부.(현재 RLO와 대치중)]
슈우우욱~~~쿠콰콰콰쾅~~~슈우웅~~~퍼퍼퍼펑~~~~
러시아가 자랑하는 수많은, 이름도 다양한 로켓들이 허공을 찢으며 날아올랐다. 적들을 교란하듯 날아가서 치명타를 입히는 순항미사일들과, 주어진 명령대로 충실히, 그리고 음속으로 날아가 괴멸시키는 탄도미사일들. 종류는 두가지였으나 그 이름들과 원래 쓰임새는 다양한 로켓들은 전부 한 곳을 집중으로 날아들고 있었다. 블라디보스토크...러시아가 자랑하는 부동항 중 하나였다.
“그래! 이렇게 했어야 했어!! 이렇게!!!”
가는 콧수염이 툭 튀어나오고, 눈에는 다크써클이 짙어 피곤함이 역력한 사령관이 기운을 내며 커다란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진작 이렇게 했어야 했다. 다소 민간인 피해가 크더라도, 저런 게릴라들에게 러시아가 자랑하는 미사일전력의 위력을 보여줘야 했다. 그는 어리석게도 괜히 육군과, 기갑사단을 투입해 체첸과 그루지야 반군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던 붉은 군대와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한 자신의 부하들에게 현대전의 위력을 실감케 하며 입에서 침을 계속 투하했다. 덕택에 그의 보좌관으로 있는 여성비서에게 온갖 침덩어리들이 계속 얼굴에 붙었다. 여자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몰래 상관을 흘겨보았다.
“저것들은 체첸이나, 그루지야 같은 반연방 테러리스트들과는 틀렸어.”
바실로프 코르네이(극동군 사령부 담당)자랑스런 조국이 만든 대형 모니터와 이름 모를 전자장비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크게 환호성을 질렀다. MD인가, 뭔가 하는 가장 멍청한 방어 계획을 지닌 미국도 이정도 공격을 막아내지는 못할 것이다. 하물며 저 이름도 기이한 단체는 또 어떻겠는가? 사령관은 온몸을 부르르 떨어내며 무너져 내리고 있을 그들의 전력을 떠올리며 마음속으로 흥분을 토해냈다. 그러나 옆에 붙어 있는 보좌여성군인 례나는 걱정이 앞섰다.
‘적들은 듣도 보도 못한 무기체계를 지닌 정규군이라 했는데...’
패잔병들의 진술에 따르면 그들은 괴뢰국 일본도 지니지 못한 이족보행병기를 지니고 있었고, 자신들의 전술을 꿰뚫어 보기라도 했는지, 계획적으로 조여 오는 검은 옷으로 통일한 병사들이 있었다. 그들이 들고 있던 보병화기는 진짜 테러리스트들을 연상시키게 만들 정도로 오래된 구식병기들이 많았으나, 화력의 선두부대인 기갑만큼은 차이가 났다고 말했다.
“건물 크기의 로봇, 로봇이라...어깨에 포를 장착한 로봇도 있다고 했지?”
장비는 덜떨어지나 자신들의 약점을 노려 파괴해버리며, 쉬지 않고 전진해오는 검은 방독면과, 검은색 방탄복으로 통일한 병사들, 하인드 헬기의 로켓을 맨몸으로 버티며 달려와 영화 속 ‘킹콩’이 그러하듯 철저히 박살내버리는 고릴라 형 거대보행병기, 일반인보다 절반 정도 더 큰 크기에 불과하나, 막강한 화력으로 무장한 보행병기까지...육군의 진술은 너무도 허무맹랑하여 믿을 수 없었으나 현실은 그것을 믿게 만들었다. 해군 또한 그들과 조금 다르지만 역시 충격을 받았는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있었다. 지난 반세기 전에 해체가 되었던 미해군 소속 전함과 일본군의 대함거포들이 작렬하며 항구를 불태웠고, 초계기와, 전투폭격기, 그 폭격기를 호위하는 전투기 편대가 정체불명의 병기에 당해 치명상을 입고 후퇴했다, 자신들도 겨우 5척을 건조한 키로프급이 양산이라도 한 듯 블라디보스토크항구에 쏟아져 나와 정박중이라는 믿기 힘든 사실은 그들을 정말로 침묵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 단 한명만은 예외였다.
“하하하~~모조리 타버려라!!”
례나는 결국 소리를 치며 모니터로 지켜보는 사령관을 째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위성 사진과, 정찰기들의 보고대로 저들의 육군 방공망이 무척 취약하다면 좋겠지만.
“역시..희망에 불과하겠지?”
례나는 실소하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화면은 미사일들이 진행한 흔적과, 목표의 위성사진 대신 정찰기들이 실시간으로 생중계 하는 전장으로 바뀌어 있었다. 최신형 버전이 아니라 조금 상태가 안 좋은 구식 분대형 무인정찰기를 사용해서인지 화면은 흑백이었다. 그러나 건물들의 실물, 폐허가 된 흔적들, 포탄자국등등 모든 것이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모니터 속에 무언가 하얀 불꽃을 일으키며, 구름을 그리며 낮게 날아가고 있었다. 시스키밍(목표와 가까워지면 낮게 날며 적의 레이더를 피하는 순항미사일 특유의 방공망을 피하는 방법)을 하며 날아들고 있었다. 목표는 광장에 설치된 레이더벤(벤차량에 레이더를 장착한)이었다. 그녀의 걱정이 사실이 단지 기우라면 사령관이 원하던 대로 광장은 80kg 탄두에 의해 잿더미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지금까지 벌인 짓이 모두 헛고생이란 의미가 될 것이다.
“.......”
“뭐, 뭐야 저건!!”
사령관이 갈갈이 날뛰며 옆에 붙어 있는 오폐라더르(오퍼레이터)를 붙잡고 저게 어떻게 된 상황이냐며 화를 냈다. 오퍼레이터들도 놀라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미사일이 유폭한 것인가? 갑자기 순항미사일의 날개와, 동체가 살짝 불꽃을 일으키더니 스스로 허공에서 터져버리는 것이 아닌가?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이 어이없는 상황에 그들도 사령관을 똑바로 바라보며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두 가지는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첫째. 미사일폭격은 실패하였고, 둘째. 적들과 상대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그래도...탄도 미사일이 있어.”
사령관은 마지막 희망을 기다란 곡선을 그리며 음속으로 돌진 중인 탄도미사일에 배팅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례나는 사령관의 생각이 정말로 부질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피해는?”
“후폭풍에 휘말려 사망한 헬솔져 5, 화약 은닉처로 생각해두었던 아파트의 절반이 무너짐, 쾨니히스 골렘, 디아블로 기체가 각각 4기씩 폭발했습니다. 미사일들은 대부분 격추시켰으나 3000km바깥에서 탄도미사일 5기가 날아온다는 정보. 약 1분 30초 뒤에 도착합니다.”
“핵 탑재인가?”
“아닙니다. 그들도 머리는 있습니다. 테러리스트 잡겠다고 핵전쟁까지 벌이지는 않을 겁니다.”
리의 설명에 미간을 살짝 찌푸린 슈미가 안락한 목제 의자에서 일어나 허공에 뜬 다양한 영상들을 바라보았다. 슈미의 신경이 쏠린 영상 속에는 현재 날아오고 있는 미사일로 추정되는 탄도 미사일의 이름과, 성능, 제원같은 정보들이 담겨져 있었다. 그것에 대한 격추는 자신이 자랑하는 RLO의 또 하나의 걸작 조기경보&방어통제항공선에 달려 있었다. 헬솔져들 각각이 가지고 있는 헬스아이란 다중 동작 포착 능력과, 그것을 보완해 뛰어난 광학장치과 망원경, 강력한 탄환을 소리, 소문없이 발사하는 발사체로 무장한 대물저격총 데블아이로는 저런 음속의 병기까지 잡아내지는 못했다. 아음속(순항미사일급)이라면 또 모를까, 저것은 그가 보병들에게 준 능력으로도 어림없었다. 그 때문에 슈미는 탄도미사일의 거리를 계산하며 확실한 저격을 준비 중일 항공선을 떠올리며 미소를 띄워 보냈다.
“후훗. 커다란 고양이가 감히 호랑이를 건들겠다고 설치다니. 가소롭군.”
서방 언론이 보기에는 자신이 작은 고양이로 보이겠지만 승패가 빤히 보이는 전쟁이란 것을 너무도 잘 아는 이들에게는 자신이 작은 호랑이로 보이겠지? 슈미는 웃음을 터뜨리며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의 예상대로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기 30초 전에 전 탄도미사일의 요격을 확인했다는 메시지가 허공에 떠올라 그를 반겼다.
“우리와의 전투에 휩쓸리지 않고, 용케 살아남은 기자 놈들 몇 놈 족쳐서 프로파간다(홍보활동)실시하게 해. 거슬리는 놈들은 처리해도 상관없어.”
“다. 보스!”
슈미는 진지하고도 조용한 동양인 리를 잠깐동안 빤히 쳐다보다가 물었다.
“그 외에 다른 소식은 없나?”
슈미의 질문에 리는 있다고 답했다. 그의 친절한(?)설명에 슈미는 놀라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의 계획에 재를 뿌리려는 귀여운 파리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것도 괴뢰국 일본에 있다고?”
“다. 슈미보스의 계획대로 유그드라실과 니드벡(마계의 중추시스템)이 통제불능인 상황인 것은 잘 아실 겁니다.”
“뭐. 이제 그 정도 장난(?)은 이쯤에서 끝내도 좋겠지만...아직 1급 여신은 써먹을 데가 많거든?”
“........다(네.)”
슈미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얼굴에 미소를 그리며 입을 열었다. 그의 깊은 붉은색 눈동자가 더욱 더 붉게 변하며 가늘게 변했다. 그의 머리칼이 찰랑이며 오만한 표정을 짓게 만들었다. 슈미의 그런 모습은 자신의 앞에 있는 모든 죄인들을 죽이라고 명령하며 킬킬 거리는 듯 한 인상의 미친 왕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물론 슈미는 그런 군왕이 되는 것은 싫었지만 자신의 이상과, 꿈을 위해서 천계, 마계까지 멸망시킬 무시무시한 계획을 세우고 있는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속에 등장하는 왕과 너무도 흡사했다. 아니 오히려 그 왕을 능가하는 무시무시한 자였다.
“파리들이 귀찮게 굴지 못하도록 하자고.”
[일본. 케이네 신사. -케이의 방]
휘릭 척. 딸깍.
헤드폰 밑으로 길게 연결된 조그맣고, 둥그런 마이크가 안나의 도톰하고, 붉은 입술쪽을 향했다. 케이가 안나가 쓴 헤드셋의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 후 엄지손가락을 들어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안나도 엄지손가락을 세우며 맞받아쳤다. 케이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부탁한다고 말했다. 안나는 평소 그녀의 화내는 모습과 너무도 안 어울리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를 씩 드러냈다. 베르단디가 보았다면 굉장히 좋아라! 할 모습이겠으나 문제의 당사자는 지금 몸져 앓아, 페이오스가 그녀의 상태를 체크 하고 있었다. 덕택에 베르단디는 계속 나신인 상태로 허공에 둥둥 떠 있어야 했고, 그런 모습을 실수로(?)들킨 사례가 조금 전 있었기에 케이는 강제로 응접실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었다. 모두의 Tea 룸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 설령 케이가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 쳐도 안나의 날카로운 시선과 페이오스의 날카로운 장미덩쿨을 견뎌낼 자신이 없는 그는 그저 조용히 자신의 방안에 틀어박혀 안나가 무선랜(실은 국가간 통신을 하고 있으므로 Wan이라고 읽어야겠지만)통신을 하는 것을 돕는 수밖에 없었다. 안나는 케이가 알아듣지 못할 갖가지 러시아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하며 중얼거렸다. 모니터에 영어로 번역된 러시아어가 채팅하듯 게시물에 쓰였고, 그 때마다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안나가 쓴 헤드폰에 들려왔다.
“다행이군. 그나마 대 어둠귀신+항제의 재료 중 중요한 것들이 대부분 이 집에 있었으니 말이야.”
안나의 중얼거림에 케이는 울드, 페이오스의 실험실에 쳐박혀 있던 플라스틱 용기와, 유리비커 속에 들어 있던 기괴한 색들의(?)약품들을 떠올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 여신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없이 자신에게 그런 끔찍한 것들(?)을 먹였다는 사실이 떠올라 비위가 상한 것이었다. 케이는 다시는 ‘자신과 베르단디 사이의 관계를 증진(이라고 쓰고 후퇴라고 읽는.)시켜 주겠다. 며 먹는 약은 절대로 먹지 않겠노라고~올해에만 30번째가 되는 다짐을 다시 되풀이했다. 자신은 먹지 않겠다고 여겨도, 가끔 자신의 또 다른 인격(??)이 실수로 먹거나, 그녀들이 강제로 먹이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전자보단 당연히 후자의 경우가 압도적이었다. 어쨌든 그녀들이 큰 맘 먹고 비싼 돈 주고 산 물품들이 이런 때에 유용하게 쓰인다는 점은 정말 불행 중 다행이었다. 어차피 기이하고, 끔찍한 약물이 되어 케이의 뱃속에 들어갈 바엔 차라리 진짜 약품이 되어 베르단디를 치료하는데 쓰이는 것이 백배, 천배 더 나았다. 문득 케이는 귓가에 들려오는 페이오스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에엥? 아쉽네요. 특제 강심제 푸름의 박력(?)으로 만들려고 놔둔 블루 허브 추출액과 효소였는데...그것도 케이씨 전용으로 만든 것이라..’
페이오스의 자신을 실험용 모르모트로 사용하지 못해 아쉽다(?)는 다소 과장된 표현이긴 하나(아니다! 그녀라면 정말 그렇게 할지도 몰라. -케이 왈)어쨌든 괴신약을 먹이길 못하게 된 아쉬운 목소리를 떠올리며 저절로 얼굴에 진땀이 새겨졌다. 으으~조심해야지 또 조심해야지!! 물론 케이는 페이오스가 특제 강심제 대신 그보다 더욱 강력한 용기 증폭제인 폭주 엑기스 ‘화염의 부름’을 만들 계획을 몰래 세우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딸깍. 딸깍.
“아.”
케이는 귓가에 들려오는 마우스를 요란하게 누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모니터에 집중, 또 집중을 했다. 안나는 진지한 얼굴과 분노한 얼굴을 동시에 하고(실은 이 모습이 그녀가 진지하게 일에 매달릴 때 짓는 표정 같았다.)모니터를 눈으로 훑어 내리며 마우스와 타자기를 연신 두드렸다. 그렇게 작업하기를 약 3분. 안나가 기뻐하며 케이를 돌아보았다.
“성공이에요. 지금 모든 물자와, 탄약, 더불어 제작파일, 묠니르가 돌아갈 것이랍니다. 그 바보 녀석이 지금 당신과 통신하고 싶다는 군요. 쳇.”
안나는 묠니르를 향해 혼잣말로 욕설을 퍼부었지만 그래도 기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에 대한 기대감과 그리움이 하늘을 찌르는 것 같았다. 케이도 기쁘다는 얼굴을 하고 안나 옆으로 다가와 타자기를 두드렸다. 짧지만 내용은 확실하게 전해지는 영어문장이었다.
-그 동안 잘 지냈니?
-알로? 모쉬노 케이이치? 이 베르단디?(여보세요? 케이이치와 베르단디 있나요?)
그러나 아프가니스탄의 모 비밀군기지에 있다는 군사마니아 러시안 마족은 케이의 영문을 알아듣지 못했는지 알 수 없는 언어를 남겼다. 러시아의 키릴문자였다. 케이는 뒤늦게 그가 영어를 잘 못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뒤통수를 벅벅 긁었다. 어떻게 대화를 주고받을지 고민이 된 것이었다. 의외로 고민해결은 간단하게 풀렸다. 안나 덕택이었다.
“바보. 우리 그라스나야와 연결된 이 회선을 쌍방향음성통신모드로 바꾼 뒤, 개인 채널로 바꾸면 되잖아요.”
라며 핀잔을 잔뜩 먹인 그녀는 마우스를 움직여 음성통신모드로 설정을 바꿨다. 아날로그를 지향하는 고지식한 점은 스쿨드를 떠오르게 만들어 고지식하다는 인상을 풍겼지만, 그녀는 이런 전쟁과, 질병(?)이 뒤엉킨 최악의 정체상황에선 디지털만이 최고의 고속도로라는 점을 간파하고 있었다. 그녀는 타자기 두드리는 게 싫다고 투덜거리면서도 모니터에 집중에 또 집중을 하였다. 완벽하게 완료 되었는지 그녀는 자신이 쓰고 있던 헤드셋을 케이에게 건네주었다.
“그나저나 너무 하네 나쁜 놈. 동료인 나는 하나도 반갑지 않다는 것인가?”
안나가 원망과, 분노가 뒤섞인 살기를 모니터로 쏘아붙이자 케이는 하하. 너털웃음을 토해내며 안나를 위로하려 했다. 물론 그녀는 케이가 뭐라 했는지 전혀 듣지도 않고 바닥에 드러누워 볼멘소리로 뭐라 러시아어를 내뱉었다. 그녀의 그런 황당한 모습은 마치 고백을 했는데 받아주지 않는 남자아이에게 실망한 소녀들의 모습과 똑같아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론 재미있기도 했다.
-알로? 모쉬노 가스빠진 케이이치?(여보세요? 케이이치씨인가요?)
-응. 나, 케이야.
그러나 일본어를 완벽하게 구사 못하여, 페이오스의 법술과, 마술, 자신의 능력으로 겨우겨우 버텨온 그로서는 지금 페이오스의 법술, 마술이 능력을 끼치지 못하는 아프간에서는 케이의 말을 들을 수만 있을 뿐 하나도 이해하질 못하고 있었다. 케이의 일본어 음성이 들여올 때마다 묠니르측은 당황했는지 어떻게 해야될지 모르겠다며 헤드폰에 대고 안녕이란 러시아 인사면 계속 할 뿐이었다. 묠니르와 케이의 그런 모습을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던 안나가 참다못해 그의 헤드폰을 뺏었다.
“이리 내욧.”
“아..응.”
-에이! 묠니르.(이봐! 묠니르.)
-.........끄또 므이?(당신은 누구야?)
-......쵸르트(빌어먹을 자식)
겨우 타자기로 대화하는 것 대신 음성통신으로 바뀌었을 뿐인데...자신의 목소리도 몰라? 그녀는 반갑기도 하고, 한편으론 정말 서운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낯익은 남자의 음성을 계속 들었다. 그가 뒤늦게 안나?라고 질문을 하자 안나는 기쁘다는 듯 크게 소리를 쳤다.
-에떠 야!(나야!) 야. 안나.(나. 안나야) 에떠 므이 드루까(당신의 여자친구 혹은 여자동료)
-안누?(안나? -전화를 할 때는 상대방의 이름 뒷부분에서 아발음은 우로, 야 발음은 유로 바뀌어서 대화한다, 단 외국인은 제외)....그곳에는 어떻게?
안나는 의문심을 드러내는 묠니르에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며, 네 계좌 사용부분을 확인하고, 네가 필요한 중요한 일이 발생했기 때문에 서둘러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프간 기지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부장들의 목소리가 안나의 귀를 간질였다. 현재 워프 마법진 재가동 중으로, 좀 있으면 작동이 될 것이라는. 묠니르는 오랜만에 만난 동료가 어떻게 지내는지에 대해 남은 시간동안 파헤치기로 했다.
-까끄 졔라?(잘 지내?) 그리고 왜 하필이면 일본에? 미국에서 기다리거나, 이곳으로 직접 와서 만나는 방법도 있었을 텐데. 혹시 그 화 잘 내는 성격 때문에 나 만난답시고 먼저 온 것 아냐? 지휘관은 차분하게, 때론 냉정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해놓고선?
-아아~쟈볼르시쩨(소란떨지마세요)내가 당신같이 바. 보. 상관 만나겠다고 이런 약해빠진 국가에 올 것 같아? 그리고 스빠씨뻐(고마워) 나르말리너(그럭저럭 잘 지내.)
라며 일본을 비하하며 손사래를 치지만 그녀의 걱정되고, 당황한 얼굴은 케이의 얼굴에 씁쓸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안나는 정말로 묠니르를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베르단디를, 그리고 베르단디가 자신을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어쨌든 정신없으니까. 빨리 와.
-다.
묠니르의 무미건조한 목소리가 안나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렇게 모든 일이 원만하게 풀리고 안나가 막 헤드폰을 벗으려 했다. 안나는 뒤이어 들려오는 커다란 폭음에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크윽. 탄식했다. 뭔가 엄청난 폭발음과, 사람들의 비명소리같은 것이 갑자기 들려와 그녀의 고막을 건드렸던 것이었다. 폭음이 사라진 뒤 뭔가 타닥타닥 타오르는 소리와, 파직거리는 방전음이 귀에 들려왔다.
-알로? 묠니르? 알로? 묠니르??!
안나가 당황하여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케이가 무슨 일이냐며 놀라 다가와 안나의 헤드폰 한쪽을 뺏어 귀에 가져다 댔다. 그러나 묠니르의 목소리는 끝내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모니터에 붉은색 키릴 문자가 대신 안나에게 다급함을 절실하게 알리려 하고 있었다.
-경고. 내부침입자 발생. 내부 침입자 발생.
파직. 쿠쾅 파지직 파팟.
“......”
스파크를 구토하듯 잔뜩 토해내는 전선의 울부짖음에 묠니르는 서서히 눈을 떴다. 눈위에 뭔가 묻었는지 자꾸 세상이 붉게 보였다. 이마에서 흘러내린 긴 핏자국이 자신의 눈가를 덮은 것이었다. 묠니르는 불과 몇 분만에 엉망이 돼 버린 컴퓨터 관제실을 돌아보고 놀라워했다. 누군가 컴포지션4(C4)같은 고폭약을 쓰기라도 했는지 이곳은 완전히 엉망이 되어 있었다. 다행히 마이크를 붙잡고 대화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그는 무의식중에 엎드려 살았지만 자신이 통신을 할수 있도록 허락한 통신부장과, 여러 오폐라더르(오퍼레이터)들은 산화되었거나, 새까맣게 타버려 다신 컴퓨터를 만질 수 없는 몸이 되어 있었다.
“이게 대체...여보세요? 안나? 케이이치씨??!!”
묠니르는 들고 있던 마이크를 들고 다시 대화를 시도했지만 폭발에 휘말린 전자기기들이 스파크를 일으키고, 이상한 노이즈(잡음)만 일으켜 더 이상의 통신은 무리였다. 묠니르는 마이크를 그대로 내팽개치고 품속에서 위협적인 무언가를 꺼냈다. 자신이 일본에서 급조한, 그리고 스쿨드(기술담당)와, 울드(탄약담당)가 약간의 개량을 가해준 선물인 2연발유탄직사화기였다. 마치 서부시대 때 사용된 2개의 총구로 구성된 샷건의 소형모델을 보는 듯 했다. 이것을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돌아오길 바라던 눈빛의 두 여신들을 보고 씁쓸한 미소를 짓는 묠니르. 지금도 그녀들은 자신이 돌아오길 바랄까? 케이들의 평범한 일상(?)이 자신이 돌아갈 수 있는 안식처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문을 제기한 묠니르는 그녀들과, 자신이 사랑했던 이와 생김새가 똑같은 베르단디를 떠올리며 총구를 열었다. 총을 잡고 살짝 흔들자 뒷부분이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열렸다.
-철컥
뒤이어 묠니르는 그곳에 두 개의 다른 총탄을 번갈아 집어넣었다. 한발은 총포상에서 구할 수 있는 기본탄인 산탄을, 다른 하나는 신호탄으로도 사용되고, 때론 위협적인 무기가 될 수도 있는 플레어로 쓰이는 적열 탄을 집어넣었다.
“일단은 돌아간다.”
일본으로, 케이이치 일행에게로, 페이오스에게로, 묠니르는 자신의 휴가를 자기 멋대로 끝났다고 판단하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물론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리고 신이 보기에는 그의 행동은 엄연히 휴가라고 보기 힘들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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