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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쓰는 여신님-네크로맨서 카이 브릿드(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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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 형편 없군.’

 카이는 2층 창문에서 풀장의 상황을 내려다보며 비웃음을 머금었다. 그곳에는 막 자신이 조종하는 좀비들로 인해 궁지에 몰린 가인의 모습이 보였다. 겨우 이 정도 장난에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꼴이라니. 실망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거기다 녀석은 한 술 더 떠서 눈까지 감아버리는 것이다.

 “겨우 이 정도로 자포자기한 거냐? 그런 주제에 오라의 주인이야!”

 그의 꾸짖음은 자신이 조종하고 있던 인간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한심한 놈! 정에 이끌려서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다니! 애초에 그것을 위한 노림수였지만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걸려드니 허탈하기 짝이 없었다. 정말 저런 인간에게 리리스와 요르문간드가 애를 먹었단 말인가?

 ‘이래서야 모처럼 그녀에게 녀석의 무전기를 뺏으라고 한 보람도 없잖아?

 카이는 자신이 준비한 계획이 실행도 되기 전에 그 끝을 보이려고 하자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런 번거로운 짓은 하지 않는게 좋을 뻔했다. 이런 장난 같은 강령술에 휘둘려서야…….

 “하아아아아아아앗!”

 ‘응?’

 그때 갑작스런 가인의 기합 소리에 카이는 안색을 굳혔다. 그가 자신이 있는 방향을 향해 정확하게 주먹을 내뻗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어떻게 내가 있는 곳을 눈치 챈 거지?

 하지만 카이가 미처 놀라기도 전에 곧 그의 주위로 강맹한 오라의 기운들이 모여들었다.

 天    空    主    心    拳
 천    공    주    심    권

 투카카카카카카칵!

 순간 CCTV실의 벽이 터져 나가며 네 줄기의 토네이도가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그 칼날 같은 회오리의 무리는 자신들에게 닿는 모든 것들을 산산히 부숴버리며 그 몸을 격하게 뒤틀었다.

 주륵

 카이는 그 파괴의 현장을 멍하니 지켜보다가 이내 뺨에서 뜨거운 뭔가가 흐르는 것을 느꼈다. 손으로 만져보니 붉은 피가 묻어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앞의 폭발에서 튀어나온 콘크리트 파편에 얼굴을 베인 모양이었다.
 가인이 AI슈츠를 착용하지 않고 있는 게 카이의 목숨을 살렸다. 그의 오라 컨트롤이 조금만 더 정확했더라면, 그래서 오라의 토네이도가 카이의 전방에서 터지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그의 몸은 토네이도의 폭발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하, 하하…….”

 카이의 입으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래……. 그래야지……. 그렇게 나와 줘야지…….

 “하하하하하!”

 폭발의 여파가 걷혀나가자 무너진 벽 사이로 풀장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아래로는 유가인이 날카로운 눈초리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카이는 아직 자신의 유흥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에 기쁨을 느끼며 큰 소리로 외쳤다.

 “좋아! 다행이야! 이제야 해볼만 하군!”

 순간 그는 손에 들고 있던 검은색의 피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울려퍼지는 기묘한 화음. 앞에서 가인이 들었던 예의 피리 소리였다. 그것은 카이가 부르는 혼의 심퍼시(Sympathy). 그 소리에 반응하여 풀장의 밑에 잠들어있던 마수가 깨어나기 시작했다.

 [캬아아아아아]

 촤아아아아

 풀장의 수면으로 떠오르는 거대한 그림자. 면적이 140제곱미터에 달하는 몬스터가 풀장의 레일 줄들을 일제히 끊어버리며 수면 위로 부상했다. 가인은 고막이 찢어질 듯한 괴물의 비명 소리에 귀를 틀어막으며 신음했다. 칠판이나 유리를 손톱으로 긁는 소리와 비슷했지만 그것보다 몇 배는 더 큰 음량이었다.

 [후……후…….]

 그때 몬스터의 두 눈에서 예의 푸른빛이 번쩍이며 그 입으로 카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놀아볼까?]

 “……!”

 후우우우우

 그것은 무색에 가까운 하얀색의 두꺼비였다. 일단은 그렇게 보였다. 하지만 상식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덩치와 등 뒤로 돋아난 날개 같은 지느러미 한 쌍, 육식동물에게서나 있을 법한 날카로운 이빨은 녀석을 단순한 두꺼비가 아니게 하고 있었다. 거기다 저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는 꼬리라니!

 “뭐, 뭐야……?”

 가인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괴물의 외관 때문에 놀란 것이 아니다. 녀석의 입에서 카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게 때문에 놀란 것이었다.

 ‘괴물을……조종하는 건가?

 친구들을 조종할 때와 같이?
 푸른빛을 번뜩이는 괴물의 눈이 그 증거였다. 괴물은 가인을 내려다보며 유창하게 인간의 언어를 구사했다.

 [이런 건 처음 봤겠지? 이게 바로 내 능력이야. 혼이 있는 생명체라면 무엇이든지 조종할 수 있지. 이것이 바로 강령술! 이것이 바로 네크로맨시!]

 순간 괴물은 그 거대한 지느러미로 수면을 치며 뛰어올랐다.

 [그렇기에 나의 또 다른 이름은 바로 네크로맨서(Necromancer)!]

 드드드드드드

 괴물이 뛰어오른 것만으로도 수영장의 건물이 흔들리며 그 밑의 철근들이 비명을 질렀다. 가인은 밖으로 터져 나오는 풀장의 물들에 전신을 얻어맞으면서도 괴물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괴물의 그림자가 수영장을 검게 물들였지만 가인의 얼굴에서는 한 친의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따위 것!’

 이런 몬스터 따위! 수십 번도 더 상대해온 나다! 이제 와서 두려워할 것 같으냐! 가인은 오른손으로 오라의 토네이도를 끌어 모으며, 자신에게로 떨어져 내리는 몬스터를 향해 주먹을 내찔렀다.

 “천공권!”

 투카카카카칵

 거센 오라의 토네이도가 공기를 찢어발기면 날아올랐다. AI슈츠를 입지 않은 상태에서 있는 힘껏 천공권을 시전해선지 그 반탄력에 떠밀려 가인의 몸이 허공으로 날아가려 했다. 가인은 튕겨나갈 것 같은 오른손을 왼손으로 떠받치며 땅에서 다리가 떨어지지 않도록 무게 중심을 낮췄다. 파괴적인 이미지를 강하게 떠올리다 보니 오라를 사용한 가인의 몸도 그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크으윽! 역시 AI츄츠가 없으면!’

 토네이도의 여파에 노출된 맨살이 칼에 베이는 것처럼 아프다! 하지만 가인은 이를 악물며 몬스터를 노려보았다. 이정도의 거리에서 최대한 힘을 실은 천공권이다! 거기다 녀석은 더할 나위 없는 거대한 표적!

 “피할 수 있다면 어디 한 번 피해봐!”

 [……그럴까?]

 휘릭

 순간 몬스터는 그 거대한 몸으로는 믿기 힘든 선회력으로 토네이도를 피해냈다. 그러자 표적을 잃어버린 천공권은 그대로 수영장의 천장에 부딪쳤다.

 콰아아앙

 폭음과 함께 콘그리트의 파편들이 풀장으로 떨어져 내렸다. 가인은 민첩한 몬스터의 회피에 할 말을 잊었다. 저 크기로 저런 민첩함을 보일 수 있다니! 거기다 녀석은 쏟아져 내리는 콘크리트의 파편들까지 S자로 피해내는 여유를 보였다.

 ‘빠르다!’

 기존의 몬스터와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움직임이었다. 좀 더 능숙하면서도 이성적이라고 해야 하나? 몬스터는 웃음을 터뜨리며 가인이 있는 방향으로 선회해왔다.

 [하하하하하! 일단 내가 이 아이를 조종하는 이상, 지금까지의 녀석들처럼 손쉽게 해치울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마라!]

 후우우웅

 파공음과 함께 괴물이 그 육중한 몸을 이끌고 가인의 앞으로 돌진해왔다. 가인은 다가올 충격을 대비하며 눈앞으로 오라 쉴드를 끌어 모았다. AI슈츠를 착용하고 있었더라면 부츠의 힘으로 가볍게 피해냈을 공격이지만 지금의 그에게는 오라 쉴드를 막아내는 것만 해도 벅찬 일이었다.

 휘이이이잉

 “큭!”

 하지만 몬스터는 가인의 예상과는 달리 그의 코앞까지 다가오다가 재빨리 위로 날아올랐다. 그러자 거센 풍압이 일어나며 가인의 얼굴을 때렸고, 휘날리는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렸다.

 “……!”

 순간 가인은 반사적으로 옆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러자 그가 피한 자리로 괴물의 거대한 꼬리가 내려 찍혔다. 쩍! 타일이 박살나며 콘크리트가 한 움큼 꼬리 모양으로 패여 나갔다. 가인은 튀어 오른 타일 조각에 등과 손을 베이며 몸을 일으켰다. 쉬고 있을 틈이 없었다. 지금 자신은 녀석의 사정권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휘이이이이익

 그 생각을 하기가 무색하게 괴물의 꼬리가 횡 방향으로 날아들었다. 가인은 그 공격을 뛰어 넘어 피하려고 했지만, 곧 몸이 자신의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오라 쉴드를 펼쳤다.
 제길! AI츄츠만 있었더라면 이 따위 것!

 퍼어어엉!

 쉴드를 후려치는 괴물의 꼬리. 그 충격에 가인은 한참을 뒤로 밀려났다. 그 바람에 발바닥이 까지면서 끌려온 자리에 핏자국이 그려졌다. 가인은 이를 악물었다. 갑자기 전신이 아파왔다. 꼬리를 피해내는 과정에서 입은 타박상들이 일제히 비명을 질러댔던 것이다. 그 고통들을 긴장감 하나로 참아내기에는 역시 무리가 있었다.

 ‘인간의 몸이란 게 이렇게 무력했던가? 이렇게 연약했던가?’

 [하하하. 잘 피해내는데? 좀 더 피해보시지.]

 괴물은 꼬리 하나만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여 가인을 유린해왔다. 마치 그의 당황하는 모습을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가인은 사방팔방으로 자신을 후려쳐오는 괴물의 꼬리를 오라 쉴드로 아슬아슬하게 막아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제길! 도저히 틈이 없어!’

 기존의 몬스터들이 짐승처럼 저돌적으로 공격해왔던 것에 비해, 이 카이라는 녀석은 최대한 불필요한 움직임을 줄이며 효과적으로 괴물을 조종하고 있었다. Ai슈츠를 입고 있더라도 쉽게 상대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아마 녀석이 처음부터 본 실력을 발휘했더라면 싸움의 승패는 예전에 갈라졌을 것이다.

 ‘날……깔보고 있는 건가?’

 날 가지고 놀고 있는 거야? 가인은 힘겹게 괴물의 공격을 빗겨내며 이를 갈았다. 귓가로 들려오는 카이의 비웃음 소리가 그의 신경을 잔뜩 긁어대고 있었다. 가인은 오른손으로 오라 쉴드를 유지한 채 왼손으로 토네이도를 끌어 모았다.

 ‘그래. 마음껏 깔보고 있어라.’

 그 오만함이 네 녀석의 패배로 이어질 테니까!
 가인은 순간 재차 날아드는 괴물의 꼬리를 향해 오라 쉴드를 거두며 왼손으로 천공권 산을 더뜨렸다. 퍼엉! 거센 폭발음과 함께 괴물의 꼬리가 튕겨 나갔다.

 [엇!]

 당황하는 카이. 그리고 가인은 주저없이 오른손의 천공권을 날렸다.

 “이거나 먹어라!!!”

 투카카카카칵

 마치 포효하는 짐승처럼 대기를 찢어발기며 날아가는 천공권. 그 오라의 토네이도는 정확하게 천장을 꿰뚫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가인은 주먹을 뻗은 상태에서 두 눈을 크게 떴다.
 ……천장? 몬스터가 아니고 천장이라고?

 “……!”

 그리고 가인은 볼 수 있었다. 자신의 오른손을 휘감고 있던 정체불명의 물체를. 그것은 다름 아닌 몬스터의 혀였다. 두꺼비 특유의 길다란 혀가 그 입에서부터 튀어나와 가인의 손을 붙들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녀석은 저 혀로 천공권의 궤도를 바꿔버린 모양이었다.

 [흐우우우우!]

 괴물의 혀는 그대로 가인의 팔을 감은 채 그를 옆으로 거칠게 휘둘렀다. 그러자 가인은 너무도 맥없이 수십 미터 떨어진 벽으로 몸을 처박았다. 크악! 순간 가인의 눈앞으로 별들이 튀어 오르며 얼굴의 반쪽이 피로 물들었다. 하지만 괴물의 공격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녀석은 여전히 가인의 팔을 놓지 않은 채 그를 들어다가 벽과 바닥으로 사정없이 패대기쳤다.

 퍽! 쾅! 타일이 깨지면서 붉은 피가 그 자리에서 배어나왔다. 뼈와 살이 깍여 나가는 고통에 피투성이가 된 가인의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졌다. 괴물은 그런 가인의 몰골에도 불구하고 분이 풀리지 않는지 다시 한번 그를 내던지려고 했다. 그때 가인의 팔을 붙들고 있던 괴물의 혀 부근으로 푸른빛의 기운들이 모여들었다.

 위이이이잉

 그 현상에 수상함을 느낀 몬스터는 재빨리 가인에게서 혀를 빼내려고 했다. 하지만……늦었어!

 투카카카카칵!

 [캬아아아악!]

 괴물의 입에서 귀를 찢는 비명 소리와 함께 그 혀가 앞 귀둥이 짤린 채 허공으로 피를 흩뿌렸다. 가인은 자신을 붙들고 있던 혀를 향해 그대로 천공권을 발사했던 것이다. 원래대로라면 천공권의 토네이도가 그 혀를 타고 그대로 본체를 꿰뚫어야 했지만, 몬스터는 눈치 빠르게 몸을 빼냄으로서 그 피래를 최소한도로 줄일 수 있었다.
 몬스터는 혀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분수로 입가를 적시며 카이의 목소리로 말했다.

 [후우. 후우. 역시 곧 죽어도 오라의 주인이라는 거로군. 꽤나 멋지게 해주잖아?]

 “크으으윽.”

 그러나 회심의 일격을 날린 것 치고서는 가인의 대가가 너무나 컸다. 일단 공격이 실패한 이상 회심의 일격이란 말도 의미가 없어졌고, 가인은 재기하기 힘들 정도로 부상을 입은 것이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 박살난 몸을 힘없이 늘어뜨렸다. 입으로 연신 피거품이 흘러나오며 눈앞이 어두워져갔다. 희미해지는 의식을 간신히 붙들고 있었지만 그것도 오래갈 것 같지 않았다. 그런 비몽사몽의 상태에서 가인은 습관적으로 자신의 가슴 부근에 손을 가져갔다. AI슈츠의 보호갑 속에서 포션을 꺼내려고 했던 것이다.

 ‘아…….’

 하지만 없는 것이 만져질 리가 없었다. 가인은 허무하게 손을 늘어뜨리며 고개를 떨궜다. 항상 당연하게 여겨왔던 Ai슈츠와 포션이 이렇게나 절실하게 느껴지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런 부상쯤이야 포션 한방이면 순식간에 완치될 수 있는데, 그래서 다시 한번 싸울 수 있는데……AI슈츠만 있었더라면……무전기만 있었더라면……!

 “으우아아압!”

 가인은 비명인지 기합인지 모를 소리를 내지르며 만신창이가 된 몸을 거칠게 일으켜 세웠다. 그는 약해지려는 자신을 꾸짖었다. 바보 같으니! 그래! AI슈츠가 없는 게 뭐가 어떻다는 거야? 무전기가 없는 게 뭐가 어때서! 이런 위기쯤이야 언제든지 이겨냈잖아? 매번 목숨을 걸어왔잖아? 달라진 건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어! 그러니까 질질 짜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저 눈앞에 있는 자식에게…….

 ‘한방 먹여줄 생각이나 하란 말이야!’

 푸화아아악

 가인의 몸에서 푸른빛의 오라가 회오리치듯 모여들었다. 예전의 그였더라면 진즉에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예전의 그였더라면 진즉에 쓰러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자신은!

 ‘너는 모두를 지켜줄 힘을 가지고 있다. 너에게는 무한한 오라의 가능성이 있으니까.’

 브루스. 그는 자신에게 뭐라고 말했던가? 뭐라고 가르쳤었지?

 ‘소중한 이를 지켜낼 수 있을 정도로 강해져라.’

 소중한 이? 가인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뒤편에 서있는 이들을 바라보았다. 지연 선생님, 반 친구들.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눈에 새기기 위해 노력했다. 모두 자신의 소중한 이들이었다. 자신이 지켜내고 싶은 이들이었다. 아무리 AI슈츠가 없다 한들, 아무리 불리한 싸움이라한들, 저들을 놔둔 채 이 자리를 피할 수는 없었다.

 “나는…….”

 가인은 마치 쥐어짜는 것처럼 목소리를 끄집어냈다. 질 수 없어! 지지 않을 거야! 그 집념 하나만이 그를 지탱해주었다.

 “나는……피스메이커!”

 피스메이커! 그 이름은 이차원의 생명체에게서 삼차원의 인류를 지켜내는 오라 능력자들의 호칭! 그리고 자신은 바로 오라 능력자였다. 그렇기에 나는!

 ‘모두를……지켜낼 거야!’

 그리고 네 녀석을…….

 “쓰러뜨린다!”

 가인의 기세에 발맞추어 그에게서 끊임없이 오라의 기류가 뿜어져 나왔다. 카이는 그런 가인의 모습을 응시하며 나지막하게 경탄했다. 이 상황에서도 아직 포기를 모르겠다는 눈빛이로군.

 ‘후후후……. 그래야지. 아직은 일러. 이 정도로 포기하기에는…….’

 이쯤에서 슬슬……본 무대를 열어보도록 할까?
 그리고 그는 자신이 메인으로 삼고 있던 몬스터를 제외한 나머지 네크로맨시들을 모두 풀어버렸다.

 “어, 어라?”

 “이게 뭐야?”

 가인은 자신의 뒤쪽에서 들려온 목소리들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카이에게 조종당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하나 둘 씩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가인은 자신도 모르게 오라를 감춰버렸다.

 “무슨 일이……있었던 거지?”

 가인에게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던 지연이 이마를 감싸 안으며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무슨 이유에선지는 모르겠지만 방금 전까지의 일들이 기억나지 않고 있었다. 거기다 정신을 차려보니 수영장은 난장판이 되어 있고……하여간 영문을 알 수 없는 일 투성이었다. 그렇게 어리둥절해하던 중, 그녀의 눈으로 피투성이가 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가인이 들어왔다. 그녀는 그의 상태에 깜짝 놀라 소리쳤다.

 “유, 유가인? 그, 그게 무슨 꼴이냐? 그 피는 다 뭐야?”

 “서, 선생님……이건……이건……!”

 가인은 그 물음에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지연은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며 서둘러 가인에게 다가와 그의 상처들을 살폈다.

 “도대체 뭘 했기에 이렇게 된 거야? 이마가 다 깨졌잖아? 아, 아니! 잠깐! 얘기는 나중에 듣기로 하고 일단 지혈부터 하자! 어서!”

 “전 괜찮아요, 선생님. 그보다 지금 이러실 때가 아니에요!”

 “시끄러워! 뭑 괜찮다는 거야! 잔소리하지 말고 냉큼 치료부터 받아! 그리고 너희들!”

 지연은 당황하는 가인에게 크게 일갈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이들을 시켜서 양호실의 박미정 선생님을 불러오게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부름에 응해야 할 학생들은 그녀의 위쪽을 멍하니 올려다 본 채 다들 얼이 빠져 있었다.

 “……?”

 그제서야 지연은 자신의 주변이 거대한 그림자로 뒤덥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인상을 찡그리며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 천천히 위로 고개를 들었다.

 “……어?”

 그리고 목격할 수 있었다. 바로 하늘을 날고 있는 거대한 두꺼비를!

 ‘뭐, 뭐야? 저건?’

 지연은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황당감에 사로잡혔다. 내가 지금 헛것을 보고 있는 건가? 마치 헐리우드의 B급 SF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괴물이 자신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공포나 두려움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때 괴물이 그녀들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삼차원의 여러분들, 다들 안녕하신가?]

 “아…….”

 “으…….”

 순간, 공포는 빠르게 2학년 1반의 학생들 사이로 퍼져나갔다.

 “으, 으아아악! 괴물이다!”

 “사람 살려!”

  그들은 비명을 지르며 출입구로 달려나가려고 했다. 그 도망치는 뒷모습들을 카이는 딱하다는 듯 바라보며 네크로맨시를 발동시켰다.

 [이런 이런. 관객들이 도망치면 곤란하지. 얌전히들 있어달라고.]

 “……!”

 강령술에 걸린 학생들은 모든 행동을 멈추고 다시 가인을 향해 뒤돌아섰다. 하지만 아까의 강령술과는 달리, 이번의 강령술은 의식은 깨어있되 몸의 제약만을 빼앗는 것이었다. 학생들은 겁에 질린 얼굴로 가인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들을 마주하자 가인은 가슴 한 켠이 싸늘하게 식는 것을 느꼈다. 학생들은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으, 으아아아! 몸이, 몸이 안 움직여!”

 “어떻게 된 거야!”

 그들의 아우성에 가인은 어찌할 바를 모르며 몬스터를 노려보았다. 등 뒤로 친구들의 시선이 날카롭게 그를 찌르고 있었다. 저 시선들이 있는 한 오라를 사용할 자신이 없었다. 비록 비상 시였지만……남의 이목을 신경 쓸 때가 아니었지만…….

 ‘시, 싫어…….’

 오라를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사용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오라를 사용한다면……모두에게 내가 오라 능력자라는 게 밝혀진다면……! 가인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신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죽음의 공포와는 다른 공포가 밀려들었다. 자신의 생활이 완전히 깨져버릴지도 모른다는,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의 귓가로 카이의 흥얼거림이 들려왔다.

 [인간이란……힘을 가진 이를 두려워하지. 비록 같은 동족일지라도.]

 “……!”

 가인은 겁에 질린 얼굴로 몬스터를 올려다보았다. 카이는 그런 그를 내려다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자, 이들의 앞에서 네 힘을 보여 봐라. 오라의 주인!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 거지? 어차피 넌 이들과는 다르잖아?]

 다르다고?

 다르다니?

 ‘……뭐가?’

 그때 가인의 뒤쪽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들이 있었다.

 “가, 가인아…….”

 “유가인?”

 가인은 안색이 창백해진 채 뒤를 돌아보았다. 괴물과 얘기하는 그를 모두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연도, 재영도, 2학년 1반의 모두가 불신의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단 한명. 김우석만은 그런 시선을 보내지 않았지만 지금의 가인에겐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시선을 받자 가인은 자리에 못이 박힌 것처럼 굳어버렸다. 카이는 그 반응들을 흥미롭게 지켜보며 재차 말을 이었다.

 [넌 오라를 소유한……괴물이니까!]

 괴물!

 그 한마디가 가인의 가슴에 예리한 비수가 되어 꽃혔다.







 한편 2학년 1반의 학생들이 네크로맨시에 조종되기 10분 전, 한시민의 집 앞.

 츠팟!

 잠시 공간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 안에서 한 인영이 튀어나왔다.

 “쳇, 울드 녀석. 도와줘도 뭐라고 그래. 나도 이젠 몰라.”

 갈라진 공간 안에서 튀어나온 이는 바로 케이였다. 시민의 집 앞, 정확히는 현관으로 들어가는 길 중간에 있는 정원 위에 그가 내려섰다. 그 주위에는 케이가 정비하다 만 토마호크가 있었다. 때문의 토마호크의 부품들이 여기저기에 나뒹굴고 있었다. 케이는 바닥에 떨어져있는 스패너를 집어들며 말했다.

 “후우, 모르겠다. 정비나 마저 하자.”

 정비는 그리 오래지 않아서 마무리가 되었다. 부품들을 조립하고 오일만 채워 넣으면 끝나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작업만이 남은 상태였으니까. 자, 그러면 다른 이들이 어떻게 됬는지 볼까?

 슈아아앗

 케이가 가볍게 손을 내젖자 허공에 바람이 모여들더니 이내 둥그런 화면이 되었다. 그 안에는 페이오스, 울드, 스쿨드. 그리고 가인들의 모습이 차례로 비치고 있었다. 페이오스는 괜찮은 것 같고, 울드는……왜 혼자 싸우는 거지? 마라랑 같이 있는 거 아니었나? 스쿨드는……아이스크림 물고 뭐하는 거야? 그리고 피스 블루는…….

 케이는 가인을 살피다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지금 술법으로 보이는 상황은…….

 <이런 이런. 관객들이 도망치면 곤란하지. 얌전히들 있어달라고.>

 <으, 으아아아! 몸이, 몸이 안 움직여!>

 <어떻게 된 거야!>

 <인간이란……힘을 가진 이를 두려워하지. 비록 같은 동족일지라도.>

 <자, 이들의 앞에서 네 힘을 보여 봐라, 오라의 주인! 무엇을 망설이고 있는 거지? 어차피 넌 이들과는 다르잖아?>

 <가, 가인아…….>

 <유가인?>

 거기까지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첫째, 지금 가인의 뒤에서 있는 사람들은 평범한 인간들이라는 것.
 둘째, 지금 가인은 상당히 곤란한 상황이라는 것. 그렇지 않으면 몬스터가 앞에 있는데 AI슈츠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게 말도 안되는 일 일테니까. 무엇보다 그의 표정을 가장 굳어지게 한 건 왠지 모르게 익숙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생각에 잠겼을 때 갑자기 떠오른 기억의 파편 하나. 그 기억이 떠로으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아!!!”

 ‘그만둬, 로이나!’

 ‘저도 그러고 싶지만 몸이 의지를 안 따라 줘요, 그러니…….’

 ‘선생님께서 저를 죽여주세요.’

 “으으……안돼, 안돼에에에에!!!”

 세레스틴의, 그 옛날의 기억이 순식간에 뇌리를 스쳐지나가며 그 날 그가 느꼈던 모든 것들을 케이는 생생하게 느껴야 했다.

 승급을 한 달 앞두고 원인 모를 일로 인해서 정신만 깨어난 채, 육체의 제어권을 다른 이에게 빼앗긴 채, 자신의 동족을 죽여야 했던 자신의 아름다운 제자. 아무런 힘도 없어서 구하지 못하고 자신의 손으로 보내야만 했던 가련한 영혼. 그날의 아픔, 그날의 슬픔, 그날 느꼈던 좌절과 절망, 그리고 분노까지…….

 “로……이나.”

 주르르륵.

 어느새 그의 눈엔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왜 흘러내리는지 누구를 위한건지도 모르는 눈물이.
 케이는 시선을 화면으로 돌렸다. 그 화면에는 신체의 자유를 속박당한 채, 정신만 깨어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케이의 눈에 그들과 로이나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어느새 그의 두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있었다.

 “로이나!!!!!!!!”

-----------------------------------------------------------

드디어 슬슬 풀리고 있는 가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과연 분노한 케이의 행보는 어떻게 될까요?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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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님의 댓글

『☞추억™』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라가나오니,.,. 킄,.. 천마선인것같아여 여기서는 흑마법사 "데폰"이라는애가 오라를 다루는 마법사인데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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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더경님의 댓글

베이더경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ㅋㅋ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케이가 카이브릿드를 박살내고 상황종료된다에 한표~!![퍼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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