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OHAZARD - Another Survivor : 지옥의 외인들(지옥의 사람들 4화)-
페이지 정보
본문
“헉헉헉헉...에고 숨차!”
브릭(가이버)은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매점자판기에 몸을 기대었다. 그는 옷을 흠뻑 적시는 끈적끈적한 땀방울과 차가운 빗방울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짧고 단정한 스포츠머리는 심하게 헝클어져있어 브릭이 막 자다 나온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과 함께 핏방울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지만 심한 상처는 아니었는지 브릭은 귀찮다는 듯 소매로 쓰윽 닦아냈다. 브릭은 녹색과 갈색이 적절히 혼합되어 있는 위장용 군복과 비를 막아줄 녹색우비를 입고 있었다. 브릭이 주한미군에 머물렀을 시절 챙긴 상당히 오래된(?)군복이었다. 일반 옷감들과 달리 관리를 잘 안 해주어도[군대에서 알면 경을 칠 일이지만.] 누그러지거나, 엉망이 되는 일이 별로 없고, 촉감이 부드러워서[정말이에요!! -브릭 왈.]가끔 엄브렐라사 장거리 화물운송을 할 때 이 옷차림을 하고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철컥
“탄창을 집어넣을 수도 있지.”
그는 검은색 조끼의 크고, 자잘한 주머니들 속에서 탄환들을 뽑았다. 붉은색 종이와, 황동색 탄피로 잘 덮여져 있는 이 탄환들은 장총이나, 샷건에서 주로 쓰이는 산탄계열의 총탄들이었다. 그는 전방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고 중얼거리며 빈총에 한발씩 산탄을 채워넣기 시작했다. 브릭이 들고 있는 총은 오버-언더 장전형식의 샷건이었다. 클레이 사격장같은 곳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 총은 레버를 옆으로 돌려 총을 꺾은 뒤 위,아래에 총탄을 한발씩 넣고 쏘는 형식의 샷건이었다. 생물을 죽이는데 더할 나위 없는 무기였지만 겨우 2발밖에 들어갈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좀비들이 다가오는데 느긋하게 탄환을 장전해야 하는 심각한 단점이 있었다. 브릭은 2m 앞까지 다가온 좀비를 바라보고 짜증을 내며 탄환을 집어넣고, 장전했다.
“젠장! 차라리 서부극의 사이드 바이 사이드가 좋겠군!!”
브릭은 어렸을 때 서부극영화에서 활약했던 커다란 총구 두 개에 탄환도 두발씩 들어가는 수렵&호신용 샷건을 떠올리며 욕지기를 터뜨렸다. 물론 이 총도 탄환이 두발밖에 들어간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가 들고 있는 샷건보다는 장전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좀비들이 거북이 마냥 느릿느릿 걸어온다는 점이었다. 그것들은 산납게 내리는 비속을 뚫고 거침없이 자판기 앞까지 다가와 이빨을 드러냈다.
“우어어어어어.”
철컬 -쾅
“미친놈. 혼자 잘 떠들어보세요.”
“으으으으으..”
쾅
브릭은 자신의 팔목을 물기 위해 앞니가 두어개는 빠진 이를 드러낸 대머리 남자의 얼굴을 개머리판으로 후려쳤다. 개머리판에 썩어가는 살점과 피가 묻어 더러워졌지만 브릭은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총을 막대기 휘두르듯이 휘둘렀다. 좀비는 두,세방을 더 얻어맞고 땅바닥에 드러누워 버렸고, 그 좀비를 따라온 치마가 찢어져 속옷이 드러나 보이는 2명의 여자 좀비들에게 브릭은 힘겹게 집어넣은 산탄이라는 고마운 선물을 주었다. 여자들은 머리가 터져 나가거나, 반쯤 부서진 채로 땅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빌어먹을!”
브릭은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계속 추적해오는 좀비들을 피해 뛰었다. 거북이같은 좀비들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처럼 토끼 뺨치는 브릭을 뒤쫓아 오지 못하고 귀곡성을 부르며 한탄했다. 브릭은 그것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운 뒤 길가로 뛰었다. 큰길은 시야가 탁 트여있고, 진압작전때와 달리 많이 한산해졌을 것이라는 생각 덕택이었다.
“헉헉. 제길.”
그러나 20분 동안 쉬지 않고 뛰며 본 것이라고는 죽은 시체들과, 썩어가는 시체들뿐. 온통 주검들뿐이었다. 어떤 것들은 기어오거나, 서서 느릿느릿 다가오며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었지만 달갑지 않았다. 브릭은 가래침을 뱉어내며 팔로 입가에 흘러나온 침방울들을 닦아냈다. 그의 어깨에 무겁게 들려있는 가방은 오늘따라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교회 찾다가 내가 죽겠군. 젠장!”
브릭은 전에 미국의 군사력에 대해 신나게 토론했던 라쿤토박이 중년 술집사장처럼 이곳 출신이 아니었다. 아직도 자신의 직장까지 가는데 네비게이션의 친절한 설명에 귀 기울이거나, 교회에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엄브렐라 소속 신입사원이었다. 이곳으로 배치되 화물운송을 맡으며 제법 짭짤한 수입을 올려가던 브릭은 라디오에서 교회로 오라는 단순한 재난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집에서 챙길 수 있는 모든 탄약들을 챙기고 길거리로 나온 것이었다.
“하다못해 경찰서나, 소방서라도 나와줘야 되는 것 아냐!! 젠장.”
브릭은 주인 없는 서점에서 털어온 관광가이드 ‘라쿤이 한눈에 보여요’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포켓지도를 꺼내 보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 지도는 관광용으로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큰길에 따라 여행하는 경로를 알려주고, 주요 관광시설들을 알려줄 뿐 라쿤시티의 복잡한 골목길과, 도로를 빠져나가는 방법, 경찰서로 가는 방법 따위의 고난이도 기술들은 실려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경찰서와 교회를 한참 지나 다운타운과, 업타운의 중간지점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지도와 근처 지리를 비교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긴 또 어디야?”
브릭은 그가 들고 있던 장총의 탄환을 확인한 뒤 투덜거리며 바로 옆에 세워진 커피숍을 바라보았다. 커피가게 앞에 세워진 야외 탁자들에는 연인으로 추정되는 여자와, 남자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탁자 위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누군가 빼가기라도 했는지 쏙 빠져 사라져 있었다. 브릭은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끼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젠장!”
그곳에는 더 심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자동차들이 마치 돌무덤이라도 만든 양 자동차들이 한데 어우러져 바리케이드를 형성하고 있었다. 개중에 몇 대는 이 자동차벽을 보충하기 위해 세워두었는지 가지런히 정렬해 있는 차량들도 있었으나, 그 차량들과 뒤집어진 차량들 위에는 어김없이 주검들과 갈기갈기 찢어진 시체조각들, 아직도 불길에 휩싸인 승용차들이 올려져 있어 기괴함을 더했다. 자동차 벽너머에는 귀곡성이 크고 뚜렷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최근에 부활한 것임에 틀림없는 시체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브릭은 애꿎은 땅바닥을 군화발로 차버리며 욕을 뱉어냈다.
‘하필이면 시청, 소방서로 가는 직속도로가 막혀버리다니!!’
차량들 너머에는 느릿느릿 기어가다시피 걸어 다니는 사람들과, 엉망으로 전복되있는 소방차들이 있었다. 설령 아슬아슬하게 벽을 넘는다 해도 저 소방차와 좀비들을 뚫고 공공장소로 향한다는 생각은 전차의 지원 없이 적들이 주둔해 있는 시가지로 돌격하는 것과 똑같은 케이스의 미친 짓이었다. 브릭은 소위 미친 짓을 해볼까 떠올리며 가방속에 진공포장처리되어 있는 물건을 꺼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관두자, 총탄도 빨리 구해야 되는데...엉!’
브릭은 시무룩해진 얼굴이 되어 다른 길을 찾아보려는 찰나. 1명이서 충분히 통과 가능한 골목길을 발견하였다. 좀비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웬일인지 펜스 같은 것으로 막아놓은 흔적도 전혀 없었다. 브릭은 지도를 다시 한 번 살핀 뒤 이 길을 따라 시청이 있는 방향으로 가면 어떨까? 하고 머리를 굴렸다.
브릭은 비 때문에 시야가 좋지 못한 위험한 상황이다.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돌아갈 수도 없다며 자위했다. 1분의 망설임 끝에 브릭은 빗물이 고인 우비를 한번 툭툭 턴 뒤 가방을 챙기고 장총을 들었다.
“조심해야겠군.”
철커텅.
“으아아아아아~~!”
“아아. 아아아아아아...”
“으으...”
브릭이 막 움직이려는 찰나 그의 뒤쪽에서 커다란 소리와 함께 익숙한 귀곡성이 들려왔다.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채소가게에서 끊임없이 단체로 쏟아져 나왔다. 브릭은 지겹게 들어온 울음소리를 듣고 머리끝까지 화를 냈다. 한 마리라도 전방 1m 앞에 다가오면 잡아 먹어버릴 기세였다. 일반인들이라면 놀라겠지만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괴물들에게는 어림도 없는 소리. 브릭은 그것들에게 기가 막힌다는 듯 쓴 소리를 퍼붓고 골목으로 달려가 버렸다.
“입냄새 난다. 이 썩을 놈들아!”
그러나 예상외로 골목길을 통과하기란 쉽지 않았다. 단신으로 싸우기도 힘든데 골목의 시야가 가려진 곳곳마다 좀비들이 나타나 자신을 물어뜯으려 한 것이다. 브릭은 몇 번이고 그것들에게 물어뜯기며 가방을 들고 빠져나왔다. 그러나 큰길도 아니었고, 시청이나, 교회, 기타 관공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빌어먹을. 번화가잖아[외곽지역, 다운타운]”
이 망할 골목길. 알고보니 번화가로 빠져나가는 최상의 지름길이었잖아!! 브릭은 경악하며 들고 있던 관광가이드북에서 지도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브릭은 자신이 있던 곳에서 반대편에 위치한 상가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다운타운은 3,4층짜리 중층건물들과, 메디컬 클리닉, 서점과 기타 과일가게, 채소가게, 골동풍 가게 등등 중소도시에 불과한 라쿤시티에서 팔기 좋은 물건들이 집합한 그런 곳이었다.
“으으으으...”
“꺼져. 면상에서 냄새나!”
타탕- 타탕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안경을 흐트러지게 쓴 뚱보 여자 좀비가 튀어나와 어깨를 잡았다. 브릭은 뒤돌아보기 무섭게 욕을 날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뚱보의 얼굴부분은 형체조차 알 수 없게 온통 피칠을 하며 사라져버렸다. 뚱보의 목 없는 몸뚱이는 10초 정도 서 있다가 축 늘어져 내렸다. 브릭은 튀어 오르는 혐오감과 욕지기를 애써 참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브릭은 빌어먹을 뚱보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좀비가 습격해온 방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가게. 청사과와 여러 과일들이 가지런히 배치되어 있는 가게의 문은 환하게 열려 있었고, 그곳에서 수십 명이 넘는 다양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양복차림의 세일즈맨과, 안경을 쓴 중학생 남자아이, 10세가 조금 넘는 소녀, 원래는 상인이었는지 에이프릴을 걸친 우람한 아줌마 등등. 약 40명에 달하는 비정상인들이 가게에서 추가로 쏟아져 나오자 브릭은 경악하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브릭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서 떨어뜨린 짐을 챙기고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여긴 DMZ보다 더 살벌해!!!!”
브릭은 문득 제대 전에 주한미군에서 근무했던 때의 기억을 잠깐 떠올리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하반신의 그의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마라토너인양 조금도 쉬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길거리에 널린 시체들과, 엉망으로 쏟아져 내팽개쳐진 신문쪼가리들을 치워버리면 군복차림의 마라토너가 될 것 같았지만 전혀 농담할 상황이 아니기에 이런 엉뚱한 상상도 떠오르지 않았다. 평소의 자신같으면 어김없이 떠올렸겠지만....
“으어어어..”
“비켜!”
철컥 -쾅
눈앞에 좀비들이 팔을 휘두르며 자신을 붙잡으려 하자 그는 빠른 움직임으로 가볍게 피하거나, 샷건으로 안식을 선물해주었다.
“헉헉...”
이번이 3번째다. 나는 언제까지 달려야 하는가? 브릭은 사방을 경계하며 그 흔하디 흔한 좀비들이 다가오지 않자 한숨을 내뱉으며 안정을 취했다. 전복된 경찰차 옆에 기대고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뒤 조금 진정이 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이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경고라는 것을 깨달은 브릭은 종아리를 반복해서 주물렀다. 그러다 문득 경찰차 안에 피칠을 하고 쓰러져 있는 시체를 볼 수 있었다.
“리볼버는 망가진 건가?”
경찰들이 사용하는 소구경 권총은 방아쇠와 총구가 완전히 오그라들어 사용 불가능이 되어 있었고, 약간의 권총탄과 산탄은 남겨져 차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시체는 차앞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기다란 금속 봉에 몸이 반쯤 박혀 죽어 있었다. 아마도 차 바로 앞에 세워진 건물(컴퓨터 가게로 추정되는)이 폭발하면서 철근이나, 철기둥같은 것이 날아들어 경관이 죽었을 것이다. 브릭은 시체의 죽음을 제멋대로 짜깁기하며 차안을 살폈다.
“탄환을 챙겨야겠군.”
권총용 9mm탄환 8발과, 아직 탄박스를 열어보지도 않은 산탄 30발짜리 상자가 드러나자 브릭은 빙고를 외치며 키득거렸다. 브릭은 탄환을 챙기고 경찰차의 문을 닫고 나가려는 찰나.
“......”
‘눈을 부릅 떴잖아.’
아까는 시체를 자세히 살피지 못해 잘 못 봤는데 인상이 부드러운 동글동글한 얼굴형의 경관은 눈을 크게 뜨고 고통에 떨다 죽기라도 했는지 축 늘어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얼마나 고통이 심했는지 알 수 있는 흔적들이 여럿 남아 있었다. 손톱은 잔뜩 부러져 마른 핏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고, 창문은 긁은 자국들이 선명했다. 브릭은 왠지 오늘을 위해 든든히 챙겨먹은 아침식사를 토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조심스레 손을 가져다댔다. 시체의 부릅뜬 눈을 덮어주기 위해서였다.
“.......”
‘좋은 곳으로 잘 가십시오. 주님곁으로 가게 된다면 그 자식보고 엿 먹으라고 좀 전해주세요.’
브릭은 이런 곳에 내팽개쳐진 자신의 상황을 하느님 탓으로 돌리고 눈을 감겼다. 시체의 차가운 느낌이 손에 살짝 스치자 자신의 손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후우.. 이제 끝났다.”
“............”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다. 브릭은 허리를 숙이고, 산탄상자와 가방을 매고 움직이려했다.
착
“우아아아악!!!”
“으어....”
맙소사!! 죽은 줄 알았던 시체가!!! 경관이!!
브릭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경관은 축 늘어진 상태에서 갑자기 손을 뻗어 브릭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다행히 몸이 금속 봉에 박혀 고정되어 있어 피만 주르륵 흐를 뿐 몸을 움직이지는 못했지만 붉게 물들은 경관의 눈은 인자한 인상을 지워버리고 탐욕에 가득찬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곡성을 토해내며...
“지저스 크라이스트!”
“우으으으...”
“그냥 얌전히 죽으면 어디가 덧나? X발!”
철컥 -탕
브릭은 문을 닫으려다 바지를 잡은 억샌 손을 떨쳐내고 산탄총을 들어올렸다. 경쾌한 장전음이 울렸다. 브릭은 조금 망설이다가 방아쇠를 당겼다. 남자의 머리가 피를 튀며 창문에 튀었다. 머리는 뒷좌석으로 날아가버렸다.
브릭(가이버)은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매점자판기에 몸을 기대었다. 그는 옷을 흠뻑 적시는 끈적끈적한 땀방울과 차가운 빗방울을 느끼며 한숨을 내쉬었다. 짧고 단정한 스포츠머리는 심하게 헝클어져있어 브릭이 막 자다 나온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마에서 굵은 땀방울과 함께 핏방울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지만 심한 상처는 아니었는지 브릭은 귀찮다는 듯 소매로 쓰윽 닦아냈다. 브릭은 녹색과 갈색이 적절히 혼합되어 있는 위장용 군복과 비를 막아줄 녹색우비를 입고 있었다. 브릭이 주한미군에 머물렀을 시절 챙긴 상당히 오래된(?)군복이었다. 일반 옷감들과 달리 관리를 잘 안 해주어도[군대에서 알면 경을 칠 일이지만.] 누그러지거나, 엉망이 되는 일이 별로 없고, 촉감이 부드러워서[정말이에요!! -브릭 왈.]가끔 엄브렐라사 장거리 화물운송을 할 때 이 옷차림을 하고 나가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철컥
“탄창을 집어넣을 수도 있지.”
그는 검은색 조끼의 크고, 자잘한 주머니들 속에서 탄환들을 뽑았다. 붉은색 종이와, 황동색 탄피로 잘 덮여져 있는 이 탄환들은 장총이나, 샷건에서 주로 쓰이는 산탄계열의 총탄들이었다. 그는 전방에서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고 중얼거리며 빈총에 한발씩 산탄을 채워넣기 시작했다. 브릭이 들고 있는 총은 오버-언더 장전형식의 샷건이었다. 클레이 사격장같은 곳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 총은 레버를 옆으로 돌려 총을 꺾은 뒤 위,아래에 총탄을 한발씩 넣고 쏘는 형식의 샷건이었다. 생물을 죽이는데 더할 나위 없는 무기였지만 겨우 2발밖에 들어갈 수 없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어 좀비들이 다가오는데 느긋하게 탄환을 장전해야 하는 심각한 단점이 있었다. 브릭은 2m 앞까지 다가온 좀비를 바라보고 짜증을 내며 탄환을 집어넣고, 장전했다.
“젠장! 차라리 서부극의 사이드 바이 사이드가 좋겠군!!”
브릭은 어렸을 때 서부극영화에서 활약했던 커다란 총구 두 개에 탄환도 두발씩 들어가는 수렵&호신용 샷건을 떠올리며 욕지기를 터뜨렸다. 물론 이 총도 탄환이 두발밖에 들어간다는 치명적인 문제점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가 들고 있는 샷건보다는 장전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좀비들이 거북이 마냥 느릿느릿 걸어온다는 점이었다. 그것들은 산납게 내리는 비속을 뚫고 거침없이 자판기 앞까지 다가와 이빨을 드러냈다.
“우어어어어어.”
철컬 -쾅
“미친놈. 혼자 잘 떠들어보세요.”
“으으으으으..”
쾅
브릭은 자신의 팔목을 물기 위해 앞니가 두어개는 빠진 이를 드러낸 대머리 남자의 얼굴을 개머리판으로 후려쳤다. 개머리판에 썩어가는 살점과 피가 묻어 더러워졌지만 브릭은 대수롭지도 않다는 듯 총을 막대기 휘두르듯이 휘둘렀다. 좀비는 두,세방을 더 얻어맞고 땅바닥에 드러누워 버렸고, 그 좀비를 따라온 치마가 찢어져 속옷이 드러나 보이는 2명의 여자 좀비들에게 브릭은 힘겹게 집어넣은 산탄이라는 고마운 선물을 주었다. 여자들은 머리가 터져 나가거나, 반쯤 부서진 채로 땅바닥에 드러누워버렸다.
“빌어먹을!”
브릭은 놀란 가슴을 진정하고 계속 추적해오는 좀비들을 피해 뛰었다. 거북이같은 좀비들은 토끼와 거북이 이야기처럼 토끼 뺨치는 브릭을 뒤쫓아 오지 못하고 귀곡성을 부르며 한탄했다. 브릭은 그것들에게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운 뒤 길가로 뛰었다. 큰길은 시야가 탁 트여있고, 진압작전때와 달리 많이 한산해졌을 것이라는 생각 덕택이었다.
“헉헉. 제길.”
그러나 20분 동안 쉬지 않고 뛰며 본 것이라고는 죽은 시체들과, 썩어가는 시체들뿐. 온통 주검들뿐이었다. 어떤 것들은 기어오거나, 서서 느릿느릿 다가오며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었지만 달갑지 않았다. 브릭은 가래침을 뱉어내며 팔로 입가에 흘러나온 침방울들을 닦아냈다. 그의 어깨에 무겁게 들려있는 가방은 오늘따라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교회 찾다가 내가 죽겠군. 젠장!”
브릭은 전에 미국의 군사력에 대해 신나게 토론했던 라쿤토박이 중년 술집사장처럼 이곳 출신이 아니었다. 아직도 자신의 직장까지 가는데 네비게이션의 친절한 설명에 귀 기울이거나, 교회에 한번도 나가본 적이 없는 엄브렐라 소속 신입사원이었다. 이곳으로 배치되 화물운송을 맡으며 제법 짭짤한 수입을 올려가던 브릭은 라디오에서 교회로 오라는 단순한 재난방송에 귀를 기울이고, 집에서 챙길 수 있는 모든 탄약들을 챙기고 길거리로 나온 것이었다.
“하다못해 경찰서나, 소방서라도 나와줘야 되는 것 아냐!! 젠장.”
브릭은 주인 없는 서점에서 털어온 관광가이드 ‘라쿤이 한눈에 보여요’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포켓지도를 꺼내 보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 지도는 관광용으로 제작된 것이기 때문에 큰길에 따라 여행하는 경로를 알려주고, 주요 관광시설들을 알려줄 뿐 라쿤시티의 복잡한 골목길과, 도로를 빠져나가는 방법, 경찰서로 가는 방법 따위의 고난이도 기술들은 실려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경찰서와 교회를 한참 지나 다운타운과, 업타운의 중간지점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지도와 근처 지리를 비교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긴 또 어디야?”
브릭은 그가 들고 있던 장총의 탄환을 확인한 뒤 투덜거리며 바로 옆에 세워진 커피숍을 바라보았다. 커피가게 앞에 세워진 야외 탁자들에는 연인으로 추정되는 여자와, 남자가 싸늘한 주검이 되어 탁자 위에 얼굴을 처박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누군가 빼가기라도 했는지 쏙 빠져 사라져 있었다. 브릭은 간담이 서늘해짐을 느끼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버렸다.
“젠장!”
그곳에는 더 심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자동차들이 마치 돌무덤이라도 만든 양 자동차들이 한데 어우러져 바리케이드를 형성하고 있었다. 개중에 몇 대는 이 자동차벽을 보충하기 위해 세워두었는지 가지런히 정렬해 있는 차량들도 있었으나, 그 차량들과 뒤집어진 차량들 위에는 어김없이 주검들과 갈기갈기 찢어진 시체조각들, 아직도 불길에 휩싸인 승용차들이 올려져 있어 기괴함을 더했다. 자동차 벽너머에는 귀곡성이 크고 뚜렷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최근에 부활한 것임에 틀림없는 시체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브릭은 애꿎은 땅바닥을 군화발로 차버리며 욕을 뱉어냈다.
‘하필이면 시청, 소방서로 가는 직속도로가 막혀버리다니!!’
차량들 너머에는 느릿느릿 기어가다시피 걸어 다니는 사람들과, 엉망으로 전복되있는 소방차들이 있었다. 설령 아슬아슬하게 벽을 넘는다 해도 저 소방차와 좀비들을 뚫고 공공장소로 향한다는 생각은 전차의 지원 없이 적들이 주둔해 있는 시가지로 돌격하는 것과 똑같은 케이스의 미친 짓이었다. 브릭은 소위 미친 짓을 해볼까 떠올리며 가방속에 진공포장처리되어 있는 물건을 꺼낼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관두자, 총탄도 빨리 구해야 되는데...엉!’
브릭은 시무룩해진 얼굴이 되어 다른 길을 찾아보려는 찰나. 1명이서 충분히 통과 가능한 골목길을 발견하였다. 좀비들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웬일인지 펜스 같은 것으로 막아놓은 흔적도 전혀 없었다. 브릭은 지도를 다시 한 번 살핀 뒤 이 길을 따라 시청이 있는 방향으로 가면 어떨까? 하고 머리를 굴렸다.
브릭은 비 때문에 시야가 좋지 못한 위험한 상황이다. 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돌아갈 수도 없다며 자위했다. 1분의 망설임 끝에 브릭은 빗물이 고인 우비를 한번 툭툭 턴 뒤 가방을 챙기고 장총을 들었다.
“조심해야겠군.”
철커텅.
“으아아아아아~~!”
“아아. 아아아아아아...”
“으으...”
브릭이 막 움직이려는 찰나 그의 뒤쪽에서 커다란 소리와 함께 익숙한 귀곡성이 들려왔다. 반갑지 않은 손님들이 채소가게에서 끊임없이 단체로 쏟아져 나왔다. 브릭은 지겹게 들어온 울음소리를 듣고 머리끝까지 화를 냈다. 한 마리라도 전방 1m 앞에 다가오면 잡아 먹어버릴 기세였다. 일반인들이라면 놀라겠지만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괴물들에게는 어림도 없는 소리. 브릭은 그것들에게 기가 막힌다는 듯 쓴 소리를 퍼붓고 골목으로 달려가 버렸다.
“입냄새 난다. 이 썩을 놈들아!”
그러나 예상외로 골목길을 통과하기란 쉽지 않았다. 단신으로 싸우기도 힘든데 골목의 시야가 가려진 곳곳마다 좀비들이 나타나 자신을 물어뜯으려 한 것이다. 브릭은 몇 번이고 그것들에게 물어뜯기며 가방을 들고 빠져나왔다. 그러나 큰길도 아니었고, 시청이나, 교회, 기타 관공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빌어먹을. 번화가잖아[외곽지역, 다운타운]”
이 망할 골목길. 알고보니 번화가로 빠져나가는 최상의 지름길이었잖아!! 브릭은 경악하며 들고 있던 관광가이드북에서 지도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브릭은 자신이 있던 곳에서 반대편에 위치한 상가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다운타운은 3,4층짜리 중층건물들과, 메디컬 클리닉, 서점과 기타 과일가게, 채소가게, 골동풍 가게 등등 중소도시에 불과한 라쿤시티에서 팔기 좋은 물건들이 집합한 그런 곳이었다.
“으으으으...”
“꺼져. 면상에서 냄새나!”
타탕- 타탕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안경을 흐트러지게 쓴 뚱보 여자 좀비가 튀어나와 어깨를 잡았다. 브릭은 뒤돌아보기 무섭게 욕을 날리며 방아쇠를 당겼다. 뚱보의 얼굴부분은 형체조차 알 수 없게 온통 피칠을 하며 사라져버렸다. 뚱보의 목 없는 몸뚱이는 10초 정도 서 있다가 축 늘어져 내렸다. 브릭은 튀어 오르는 혐오감과 욕지기를 애써 참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브릭은 빌어먹을 뚱보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좀비가 습격해온 방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가게. 청사과와 여러 과일들이 가지런히 배치되어 있는 가게의 문은 환하게 열려 있었고, 그곳에서 수십 명이 넘는 다양한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양복차림의 세일즈맨과, 안경을 쓴 중학생 남자아이, 10세가 조금 넘는 소녀, 원래는 상인이었는지 에이프릴을 걸친 우람한 아줌마 등등. 약 40명에 달하는 비정상인들이 가게에서 추가로 쏟아져 나오자 브릭은 경악하며 뒤로 슬금슬금 물러나기 시작했다. 브릭은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서 떨어뜨린 짐을 챙기고 뒤돌아 달리기 시작했다.
“여긴 DMZ보다 더 살벌해!!!!”
브릭은 문득 제대 전에 주한미군에서 근무했던 때의 기억을 잠깐 떠올리고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하반신의 그의 얼굴과는 대조적으로 마라토너인양 조금도 쉬지 않고 달리고 있었다. 길거리에 널린 시체들과, 엉망으로 쏟아져 내팽개쳐진 신문쪼가리들을 치워버리면 군복차림의 마라토너가 될 것 같았지만 전혀 농담할 상황이 아니기에 이런 엉뚱한 상상도 떠오르지 않았다. 평소의 자신같으면 어김없이 떠올렸겠지만....
“으어어어..”
“비켜!”
철컥 -쾅
눈앞에 좀비들이 팔을 휘두르며 자신을 붙잡으려 하자 그는 빠른 움직임으로 가볍게 피하거나, 샷건으로 안식을 선물해주었다.
“헉헉...”
이번이 3번째다. 나는 언제까지 달려야 하는가? 브릭은 사방을 경계하며 그 흔하디 흔한 좀비들이 다가오지 않자 한숨을 내뱉으며 안정을 취했다. 전복된 경찰차 옆에 기대고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 뒤 조금 진정이 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것이 너무 무리하지 말라는 경고라는 것을 깨달은 브릭은 종아리를 반복해서 주물렀다. 그러다 문득 경찰차 안에 피칠을 하고 쓰러져 있는 시체를 볼 수 있었다.
“리볼버는 망가진 건가?”
경찰들이 사용하는 소구경 권총은 방아쇠와 총구가 완전히 오그라들어 사용 불가능이 되어 있었고, 약간의 권총탄과 산탄은 남겨져 차바닥을 굴러다니고 있었다. 시체는 차앞 유리창을 뚫고 들어온 기다란 금속 봉에 몸이 반쯤 박혀 죽어 있었다. 아마도 차 바로 앞에 세워진 건물(컴퓨터 가게로 추정되는)이 폭발하면서 철근이나, 철기둥같은 것이 날아들어 경관이 죽었을 것이다. 브릭은 시체의 죽음을 제멋대로 짜깁기하며 차안을 살폈다.
“탄환을 챙겨야겠군.”
권총용 9mm탄환 8발과, 아직 탄박스를 열어보지도 않은 산탄 30발짜리 상자가 드러나자 브릭은 빙고를 외치며 키득거렸다. 브릭은 탄환을 챙기고 경찰차의 문을 닫고 나가려는 찰나.
“......”
‘눈을 부릅 떴잖아.’
아까는 시체를 자세히 살피지 못해 잘 못 봤는데 인상이 부드러운 동글동글한 얼굴형의 경관은 눈을 크게 뜨고 고통에 떨다 죽기라도 했는지 축 늘어져 있었다. 자세히 보니 얼마나 고통이 심했는지 알 수 있는 흔적들이 여럿 남아 있었다. 손톱은 잔뜩 부러져 마른 핏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고, 창문은 긁은 자국들이 선명했다. 브릭은 왠지 오늘을 위해 든든히 챙겨먹은 아침식사를 토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조심스레 손을 가져다댔다. 시체의 부릅뜬 눈을 덮어주기 위해서였다.
“.......”
‘좋은 곳으로 잘 가십시오. 주님곁으로 가게 된다면 그 자식보고 엿 먹으라고 좀 전해주세요.’
브릭은 이런 곳에 내팽개쳐진 자신의 상황을 하느님 탓으로 돌리고 눈을 감겼다. 시체의 차가운 느낌이 손에 살짝 스치자 자신의 손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후우.. 이제 끝났다.”
“............”
잠깐 동안 침묵이 흘렀다. 브릭은 허리를 숙이고, 산탄상자와 가방을 매고 움직이려했다.
착
“우아아아악!!!”
“으어....”
맙소사!! 죽은 줄 알았던 시체가!!! 경관이!!
브릭은 비명을 지르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경관은 축 늘어진 상태에서 갑자기 손을 뻗어 브릭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졌다. 다행히 몸이 금속 봉에 박혀 고정되어 있어 피만 주르륵 흐를 뿐 몸을 움직이지는 못했지만 붉게 물들은 경관의 눈은 인자한 인상을 지워버리고 탐욕에 가득찬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귀곡성을 토해내며...
“지저스 크라이스트!”
“우으으으...”
“그냥 얌전히 죽으면 어디가 덧나? X발!”
철컥 -탕
브릭은 문을 닫으려다 바지를 잡은 억샌 손을 떨쳐내고 산탄총을 들어올렸다. 경쾌한 장전음이 울렸다. 브릭은 조금 망설이다가 방아쇠를 당겼다. 남자의 머리가 피를 튀며 창문에 튀었다. 머리는 뒷좌석으로 날아가버렸다.
댓글목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