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2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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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part 2.-
제25화 - 부활의 기간틱 -
"으으...!! 추워....!"
도쿄 나가노구의 한 아파트 8층 베란다에서 두 명의 남자가 12월의 강추위 속에서 오들오들 떨어가며 앉아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떨고 있는 사람은 다이라 한 사람 뿐이었다. 옆에 앉아 있는 아소는 카메라 렌즈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아소는 춥지도 않은지 미동도 안 하고 있었다.
"춥다 춥다 하면 더 추운 거야. 그냥 가만히 있어. 정 추우면 아까 시바다가 준 커피나 마시라고."
"저....죄...죄송하지만 방금 전에 그거 다 마셨는데요. 헤헤...."
다이라는 몸을 녹이겠답시고 아까 받은 커피포트의 커피를 자주 갔다 마셨다. 결국 그 많은 커피를 혼자 다 마셔 버리고 말았지만. 아소는 뒤통수를 긁적이는 다이라를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며 끌끌 혀를 찼다. 기자 생활 하다보면 한 여름 땡볕아래건 한 겨울 매서운 삭풍 아래건 간에 죽치고 앉아서 잠복근무해야 할 일이 많은데 저렇게 추위를 잘 타서야 뭐에 쓸까. 게다가 이들이 소속돼 있는 잡지사는 연예인이나 사회 유명 인사들의 사생활에 관련된 기사를 많이 쓰는지라 이렇게 잠복근무해야 할 일이 많은데 말이다. (나쁘게 말하자면 파파라치)
어쨌든 이들이 한 겨울의 찬바람을 다 맞아 가면서 지켜보고 있는 클라우드 게이트에서는 그 동안 몇 가지 현상이 관측되기는 하였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클라우드 게이트 바로 옆에 있는 도쿄 신 도청 옥상에서 몇 가지 일이 있었는데 가끔씩 섬광이 반짝이기도 하고 폭음도 아주 작지만 들려왔다. 게다가 몇 분 전에는 아주 강력한 레이저로 보이는 빛이 뻗어 나가는 것도 보였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어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들이 들인 노력에 비하면 성과는 아직 보잘 것 없었다.
"저...선배님."
"왜?"
"선배님은 왜 그렇게 가이버에 집착하세요?"
다이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아소는 카메라 렌즈에서 눈을 떼고 잠시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간단하게 한 마디만 하였다.
"진실."
"예? 그게 무슨..."
"난 진실을 알고 싶은 것뿐이야. 크로노스가 떠벌이는 말들 뒤에 숨은 진실을 말이야."
아소는 이제 크로노스의 말이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괴물들을 총동원해서는 순전히 폭력만으로 인간 세계를 한 번에 뒤집어 버리고 교묘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파고 들어갔다. 온갖 떡밥을 던져가며 조아노이드로의 조제를 사람들에게 은근히 권하고 있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다. 조아노이드로의 조제, 그것이 정말 놈들의 말처럼 '신인류'로의 진화일까?
"난 가이버가 인간이라고 생각해. 우리랑 같은 인간."
"네? 하지만 통제국은 가이버가 외계에서 온 외계인 테러리스트....."
"멍청아! 넌 놈들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거냐! 같은 편을 죽이는 놈들 말을!"
아소의 말에 다이라는 화들짝 놀라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가장 높은 층인 데다가 주위에 들을 사람도 없건만 본능적으로 나오는 행동이었다. 아소의 말은 불과 이틀 전에 푸르크슈탈과 가이버 기간틱과의 전투 이후 부상으로 전투력을 잃은 푸르크슈탈을 다른 12신장 멤버 세 명이 죽여 버린 사건을 말한 것이었다. 그 때 일어났던 모든 일을 이 두 사람은 전부 다 촬영해서 가지고 있었다. 특종이랍시고 지면에 올리기에는 너무나도 위험한, 이들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는 위험한 사진이었다.
"서...선배님!! 목소리가 너무 크세요~~!"
다이라는 두려움에 떨면서 아소에게 진정하라고 말했지만 그는 들은 체도 안 했다. 그 때 그 사건 이후로 아소는 절대 크로노스의 어떠한 말도 믿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이버와 싸우느라 지칠 대로 지친 자기 동료를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죽여 버린 녀석들이 말하는 평화를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크로노스의 모든 행동 역시 수상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였다. 크로노스는 폭압 정치를 펼치지 않고 시민들을 위한 통치를 하였다. 크게는 지구 자연환경 복원사업부터 시작해서 나라 안으로는 그동안의 비효율적이던 행정 체계를 바로잡고 경제를 일으켜 세우며 민생 안정에 주력하였다. 실제로 경기는 제압 이전보다 더 좋아졌고 실업율도 급락하였다. 서민들 가슴에 못을 박던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도 일소되었다. 공직자들이 깨끗해져서 그런 다기 보다는 기존의 고위 관료들이나 정치인들을 크로노스가 이런저런 죄명을 붙여 모조리 다 숙청해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웃기는 건 시민들의 태도. 자기가 정당한 한 표를 행사해서 뽑은 정치인들을 자기들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전부 다 없애버렸는데도 그 행위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튼실한 행정으로 인해 세상이 살기 더 좋아진 것은 사실이었다. 이제 사람들의 인식은 많이 변했다. 크로노스는 침략자가 아니라 혁명가들이며 진정한 의사들이라는 생각이 사람들 사이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다소간의 비효율을 감수해야 하는 민주 의회 정치를 송두리째 땅에 묻어 버린 값비싼 안정이었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환영하였다. 마치 1차 대전 종전 후 히틀러가 정권을 잡을 당시의 독일처럼.
아소는 바로 그 점을 염려하고 있었다. 민중을 힘으로 억누르는 것 보다 당근을 줘가면서 서서히 길들이는 것. 이것이 한 수 높은 수법이었다. 과거 히틀러가 독일에서 정권을 잡을 당시와 매우 흡사했다. 히틀러는 말했다. 배고파 본 적이 있는 사람은 눈앞에 빵이 놓여 있는 한 언론의 자유니 민주주의니 하는 쓸데없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라고. 지금 세상 모든 사람들은 바로 이런 식으로 길들여져 가고 있었다. 크로노스의 충실한 개로서.
"조아노이드로의 조제도 뭔가 꿍꿍이속이 있어! 그리고 가이버도 그 놈들 말처럼 외계인일리가 없어. 난 그것을 확인하고 싶은 거야."
아소는 가능한 한 그 가이버라는 존재와 만나보고 싶었다. 오늘 밤 가이버가 저렇게 클라우드 게이트에서 한바탕 하고 있을 때 만날 기회가 생길 수 있겠지만 이렇게 거리가 멀어서는 그럴 기회는 영영 없을 것만 같았다. 통제국의 현장 통제만 없다면야 당장이라도 달려갈 아소지만 지금은 이렇게 멀리서나마 볼 수밖에 없었다.
"저....선배님, 선배님."
"왜?"
"저기 아래에 먼일이 났나봐요. 사람들이 잔뜩 몰려가고 있는데요?"
다이라의 말에 아소는 카메라에서 눈을 떼서는 아래를 내려다 봤다. 과연 다이라의 말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사람들 걸어가는 거야 특별할 건 없는 광경이지만 아소는 그 모습을 보고 뭔가 이상함을 직감하였다. 여기는 주택가라 퇴근시간만 넘기면 사람의 통행이 뚝 끊기다시피 하는 곳이다. 게다가 이들이 여기 자리 잡을 당시에는 인적이 완전히 끊기다 시피 했었다. 새벽 시간인 지금 사람들이 저렇게 몰려가고 있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는 즉시 카메라를 길가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경악하였다.
"저...저럴 수가!"
"왜 그러세요? 선배님. 어디 불이라도 났어요?"
"단세포 같은 녀석! 카메라로 사람들을 자세히 비춰 봐!"
아소의 호통에 다이라는 입술을 잠깐 샐쭉 이고는 카메라를 거리의 사람들에게 비춰봤다. 그리고 다이라 역시 경악하였다.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전부 서서히 조아노이드로 변신하면서 걸어가고 있던 것이다. 지금 아래에 있는 사람들은 전부 자진해서 조제를 받은 민간인 조아노이드들이었던 것이다. 아소는 카메라의 비율을 변환해 가며 사람들이 가고 있는 방향을 추정해 보았다. 저 멀리까지 뻗어있는 민간인 조아노이드들의 행렬, 그리고 그 쪽 방향의 저 끝에는 클라우드 게이트가 있었다. 물론 그 쪽은 가장 번화가인 신주쿠니까 다른 건물들도 많이 있지만 지금 정황으로 봐서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들의 목적지는 클라우드 게이트였다.
"다이라! 카메라 챙겨!"
아소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만 펼쳐놓은 장비들을 전부 다 챙기기 시작했다. 당황한 다이라 역시 허둥지둥 자기 장비들을 챙겼다. 영문도 모른 채 장비들을 챙기면서 다이라가 급히 물었다.
"선배! 어디 가시려고요?"
"어디긴 어디야! 클라우드 게이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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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씨, 드디어...."
"그 동안 걱정 끼쳐서 미안해, 베르단디. 이젠 괜찮아."
베르단디는 기간틱으로 변신한 케이를 감격스러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드디어 시련을 뛰어넘은 케이의 모습을 보며 베르단디는 눈물을 글썽였다. 지금 이 순간 케이의 모습이 너무나도 커 보였다. 신장이 거의 3m에 달하는 기간틱 형태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요 며칠 동안 의기소침해 있던 케이의 모습과 지금 자신의 의지를 되찾은 케이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지금의 케이는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베르단디. 이제 넌 어딘가로 피해있어. 여긴 내게 맡기고."
"네! 그럼 전 이만 돌아갈게요."
베르단디는 순순히 케이의 말에 따랐다. 이제부터는 기간틱과 조아로드의 정면 대결이었다. 더 이상은 조그만 분신채 형태의 베르단디로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녀는 이 자리를 피해서 케이의 부담을 덜어주기로 하였다. 베르단디는 케이의 얼굴 바로 옆으로 날아왔다.
"그럼, 몸조심하세요. 케이 씨의 무운을 빌어요. Goddess bless you....."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케이의 볼에 키스를 하였다. 축복의 키스. 전사의 승리를 기원하는 여신의 축복의 키스였다. 두터운 기간틱의 안면 장갑 위였지만 그녀의 느낌이 확실히 케이에게 전달 되었다. 수줍게 키스를 한 베르단디는 즉시 도청 아래로 쏜 살 같이 내려갔다. 이제 케이는 부담 없이 카브라알과 싸울 수 있게 되었다.
<아니.... 이럴 수가! 너 이 녀석....언제 기간틱의 힘을 되찾았지?>
카브라알은 기간틱으로 변신해 있는 케이를 보며 적잖이 당황해 하였다. 이건 전혀 예상 밖이었다. 가이버 III, 마키시마 아키토에게 기간틱의 주도권을 빼앗겨서 방금 전 까지만 해도 소환을 하지 못하던 녀석이 어느 틈에 기간틱을 되찾았다는 말인가! 보통의 가이버 I 이라면 모를까 가이버 기간틱이라면 카브라알로서는 만만치 않은 싸움이 될 것이었다.
"방금 전에 되찾았다. 베르단디가, 그리고 하야미 씨가 내게 힘을 주었어. 바로 널 쓰러트릴 힘을!!"
케이는 절대로 질 수가 없었다. 더 이상은 케이마 씨나 하야미 씨와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베르단디의 눈에서 더 이상 눈물이 흐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해!
<건방지구나! 이 애송아!! 그깟 변신 좀 했기로서니 기고만장해 가지고는!>
-샤아아
카브라알의 거안(巨眼)촉수들이 일제히 케이와 앱톰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무리 기간틱이라 해도 이 카브라알님의 상대는 아니라는 걸 가르쳐 주마!!>
"온다!"
"좋아!!"
케이와 앱톰은 즉시 양 옆으로 흩어졌다. 방금 전까지 그들이 서 있던 자리로 거안 촉수들이 빠른 속도로 날아와 바닥과 충돌하였다.
-콰아앙!!
거안 촉수의 위력은 굉장했다. 두터운 헬리포트의 콘크리트 바닥을 뚫고 도청 안으로 파고 들어갈 정도였다. 케이와 앱톰은 서로 반대방향으로 달리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그런 그들을 향해 다른 거안 촉수들이 달려들었다. 우선 앱톰을 향해 한 개의 거안 촉수가 정면에서 달려들었다. 앱톰은 즉시 머리의 생체 열선포를 전개 하였다.
"흥!"
-푸슝!!
앱톰의 이마에서 강력한 생체 열선포가 발사되었다. 열선은 그대로 거안 촉수의 머리 한 가운데를 관통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움직임이 멎은 거안 촉수를 향해 앱톰이 생체 미사일들을 발사하였다.
-푸슈슉! 콰아앙!!!
미사일에 맞은 거안 촉수는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케이에게도 거안 촉수가 달려들었다. 케이에게 다가가는 것은 모두 세 개. 세 개의 거안 촉수는 케이의 바로 뒤 쪽에서 접근하였다. 순식간에 케이와 거안 촉수들이 나란히 달리게 되었다.
<크아아아!!!>
-부웅! 촤촤촥!!
케이라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거안 촉수가 사정거리에 들어오자 케이는 신축이 자유로운 기간틱의 고주파 소드를 길게 전개해서 한 번에 거안 촉수 세 개를 간단히 잘라 버렸다.
-우르르릉!!
"밑이다!!"
지면이 심하게 울리기 시작하자 케이와 앱톰은 즉시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간발의 차로 또 세 개의 거안 촉수가 바닥을 뚫고 올라왔다. 도청 측면을 뚫고 들어와서는 밑에서 부터 기습을 건 것이다.
"기가 소닉 버스터!!"
-큐우우우웅!!!
케이는 기간틱의 안면 장갑에 숨겨져 있던 금속구를 전개해서 그 세 개의 거안 촉수에게 소닉 버스터를 퍼부어 버렸다. 음파 공격에 노출된 거안 촉수 세 개는 순식간에 분해되어 버렸다.
-슈욱, 슈욱
"윽! 또 재생했어!"
앱톰은 혀를 찼다. 케이와 앱톰이 부숴놓은 거안 촉수들에게서 또 다시 그 징그러운 머리가 돋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거안 촉수의 공격 자체야 별거 아니지만 케이와 앱톰은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기세와는 달리 카브라알의 공격은 그리 대단한 것은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든 저렇게 쉽게 재생한다면야 여기서 계속 싸워봐야 지치는 건 케이들 쪽이다. 뭔가 다른 방법을 찾지 않으면 안됐다.
"앱톰. 클라우드 게이트 내부로 쳐들어가자."
"뭐야?! 갑자기 왜!"
"재생하는 촉수는 아무리 공격해 봐야 우리만 소모될 뿐이야. 본체를 찾아서 부숴야 해!!"
-쿠우웅!!
케이는 다짜고짜 앱톰을 한 손으로 끌어안고는 부스터를 가동시켜 전속력으로 클라우드 게이트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슴 한 가운데에 있는 작은 돌기를 크게 확대시켜 커다란 뿔을 만들어 내었다. 바리어로 코팅한 충각과 기간틱의 속도를 이용한 돌진기, 그래비티 램이다!
-퍼퍼퍽!
거안 촉수들은 케이의 돌진을 막아 보려고 그의 진로 앞을 가로 막아 보기도 했지만 강력한 운동 에너지를 견디지 못하고 전부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케이는 순식간에 클라우드 게이트의 외벽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그대로 벽을 부수며 내부로 돌진해 들어갔다.
-콰콰앙!!
"쳇! 무식한 녀석 같으니! 좀 살살 다루란 말이야!"
"미안. 하지만 지금은 빨리 놈의 본체부터 찾아야 해."
내부로 돌입한 케이는 일단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우선 본체의 정확한 위치부터 파악하는 것이 먼저였다. 케이는 기간틱의 헤드 센서 5개를 전부 총 동원하여 클라우드 게이트 전체를 스캔하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 주위를 탐색한 케이는 놀라운 사실을 알아내었다. 건물 내부, 케이들의 머리 위쪽 내부에 뭔가 아주 거대한 생물체의 반응이 감지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지금 클라우드 게이트 내부에는 조아노이드의 반응이 단 한 마리도 감지되지 않았다. 케이가 잠입해 올 때 까지만 해도 수천을 헤아리던 그 많은 조아노이드들이 다 어디로 간 것일까.
"터무니없이 크다고? 그럼 놈이 지금 두 번째 변신을 하고 있는 걸까?"
"아마도 그럴 꺼야. 그리고 그건 조아노이드들이 사라진 것과 무슨 연관이 있을 거고."
-콰앙! 투쾅!
바로 그 때 바닥과 천정에서 거안 촉수들이 벽을 뚫고 들이닥쳤다. 케이와 앱톰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콰쾅!!
케이들의 앞에 또 다른 거안 촉수가 벽을 뚫고 나타났다. 케이는 그 거안 촉수를 향해 고주파 소드를 휘둘렀다.
-부웅! 촤악!
고주파 소드에 잘린 거안 촉수는 잘려진 머리 부분만 남기고 다시 벽 속으로 후퇴하였다. 그런데 잘려진 촉수를 내려다 본 케이와 앱톰은 깜짝 놀랐다. 촉수의 표면에는 마치 녹아들어가듯이 촉수와 융합이 된 조아노이드의 손이나 발이 보였다. 아마도 촉수에게 흡수당한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 이건 대체....!"
"그런가, 이제야 알겠군. 녀석은 사념파로 클라우드 게이트의 모든 조아노이드를 불러들인 다음 흡수해 버린 거야. 그러니 조아노이드가 한 마리도 안 보일 수밖에."
카브라알은 이렇게 수천의 조아노이드를 흡수하여 자신의 최종 전투형태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마치 앱톰이 상대 조아노이드를 흡수해서 양분을 만들듯이.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앱톰은 흡수한 조아노이드가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 그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지만 카브라알은 그냥 단순히 육체를 구성하기 위한 양분으로서만 취급하는 것 같았다.
<킥킥킥! 바로 맞았어.>
"카브라알?!!"
바로 그 때 이들의 머리 위에서 건물 전체를 쩌렁쩌렁 진동 시킬 정도의 커다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이들이 있던 복도의 천정과 벽면에 빠르게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걸 알아냈다고 해서 내게 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기대하라고. 진짜 쇼는 지금부터니까!>
-우르르르르릉!!!
복도의 천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두터운 콘크리트 더미들이 케이와 앱톰에게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카브라알의 최종 전투형태가 완성된 것이다! 두 사람은 즉시 건물 밖으로 탈출을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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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기리 주임의 버려진 별장 지하, 울드들은 지금 응접실에 모인 채로 TV 뉴스 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그러나 TV에서는 현재 클라우드 게이트의 상황 같은 건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저 오늘 밤은 그 지역 통행이 통제된다는 안내 방송 이외에는 특별한 내용은 없었다. 스쿨드가 무인 정찰기를 또 만들어서 내보낼 수 있으면 좋겠지만 저번에 푸르크슈탈 사건에서 그나마 한 대 남았던 정찰기를 날려버리는 바람에 또 보낼 수가 없었다.
"우웅~~! 부품만이라도 있었으면 정찰기를 또 만들 수 있는데...."
이젠 부품도 없었다. 옛날처럼 맘대로 밖에 나갈 수가 없으니 부품을 조달할 방법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히 린드가 부탁한 '그건' 어떻게 완성할 수 있었지만.
"케이 씨는 지금 괜찮으실까요...."
베르단디는 초조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케이들 몰래 보낸 분신채가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분신채는 정찰 수단으로서는 이상적이었지만 본체와 실시간으로 정신을 공유할 수는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는 베르단디에게 그 어떠한 정신적 데미지도 없었으니 분신체가 아직은 무사하다는 것 빼고는 알 수가 없었다. 분신체가 무사하다는 얘기는 아직 그 두 사람도 무사하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케이와 하야미는 앱톰을 구출했을까? 혹시나 적들에게 들켜서 쫓기지는 않을까? 적들의 함정에 빠지지는 않았을까? 베르단디는 초조함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마음을 달래보려고 자수를 잡아 봤지만 전혀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인터넷에선 뭐 없나요?"
핫세의 물음에 지로는 한숨만 내 쉬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인터넷을 돌아다녀봐도 게시판에는 클라우드 게이트 주변이 시끄럽다는 말들 이외에는 특별히 상황을 알 만한 게시물이 올라오지 않았다. 하긴 지금 그 주변은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으니 무리도 아니지만.
"정말이지, 케이 짱도 의외로 무모한 면이 있다니까. 함정이 뻔 한데도 그냥 가다니...."
메구미 역시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그 함정 얘기는 지금까지 한 열 번은 했다. 한 얘기를 몇 번 씩이나 한다는 것이 그걸 증명했다. 솔직히 그건 지금 이 자리에 모인 모두들 전부 다 마찬가지였다. 평소 같으면 진작 침대 속에서 자고 있을 시간이지만 아무도 침실로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케이들 걱정이나 하면서 응접실에 모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처럼 시간이 안 가는 때도 없었다. 아마도 오늘 밤이 이들에게 있어서 가장 긴 밤이 되지 않을까.
-위이잉
"아! 돌아왔어요!"
그 때 응접실 벽에 걸려있던 거울이 빛나면서 뭔가 조그만 것이 튀어 나왔다. 베르단디가 보낸 분신체가 드디어 돌아온 것이다. 베르단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는 분신채를 맞이하였다. 분신채를 본 모두가 깜짝 놀랐다. 지로를 비롯한 인간들은 베르단디를 꼭 빼닮은 인형이 거울에서 튀어나왔다고 놀라고(그들은 분신채란 것을 모르니까) 여신들은 베르단디가 분신채를 보냈었다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놀랐다. 울드가 인간들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우리 여신들은 저렇게 자신의 일부를 분신채의 모습으로 만들어서 내보낼 수 있어. 하나의 의식을 공유하는 독립된 개체지."
베르단디와 분신체가 하나로 합체하였다. 이제 그 동안 분신체가 보고 들은 모든 일이 베르단디의 기억에 옮겨질 것이다. 드디어 현장 상황을 정확하게 알 수 있게 됐다. 여신들은 베르단디의 반응을 초조하게 기다렸다. 한동안 분신체가 가져온 기억을 느끼던 베르단디는 눈을 꼭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흑"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베르단디는 눈물을 흘리면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자 주위의 모두가 당황해하기 시작했다.
"언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베르단디! 대체 무슨 일이야?"
한동안 눈물만 흘리던 그녀가 간신히 입을 열었다.
"하....하야미 씨가..... 하야미 씨가....."
"하야미 씨? 하야미 씨가 어쨌는데?!"
-따르르릉!!
바로 그 순간 전화가 왔다. 이들에게 전화가 올 일이 있다면 천상계 아니면 아키토 둘 중 하나뿐이다. 배신한 아키토가 전화를 걸어올 일은 없을 테니 이 전화는 아마도 천상계일 것이다. 울드는 잠시 받을까 말까 망설였다. 또 천상계 고위층에서 현 상황 보고를 하라는 얼빠진 소리나 할까 싶었기 때문이었다. 베르단디와 전화를 번갈아 보던 울드는 내키지 않다는 듯 한 표정으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누구?"
-"아, 울드! 나야, 페이오스!"
역시나 천상계였다. 페이오스의 목소리는 왠지 모르게 다급해 보였다. 천상계가 장님이 아닌 이상 지금 클라우드 게이트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울드는 다소 퉁명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무슨 일이야? 우리도 현장 상황은 자세히 몰라."
-"내 말 부터 우선 들어봐! 지금 클라우드 게이트 주변으로 조아노이드 대군이 집결하고 있어!"
"뭐라고?!"
-"혹시 케이 씨 잡으려고 모이는 거 아냐? 도쿄 전 지역에서 조아노이드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고 있다니까! 숫자가 장난이 아니야!"
페이오스 역시 유그드라실의 감시 시스템을 이용해서 지상계의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고 있었다. 사실 페이오스가 다 말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천상계의 정보 센터는 정신없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도쿄의 조아노이드 대량 출몰과 더불어 미국에서는 애리조나에 있다고 하는 크로노스의 본부 기지가 갑자기 자폭을 하였다. 이들은 지금 지상에 얼마 있지 않은 천상계 소속 정보 요원들을 다그쳐 정보 수집에 여념이 없었다. 페이오스는 그 바쁜 와중에 울드들에게 상황을 알려주려고 전화한 것이다.
울드는 그 이후로도 좀 더 페이오스와 심각하게 대화를 나누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난 이후 울드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미루어 봐서는 케이에게 대 위기가 닥친 것이 틀림없었다.
"아무래도 지금 상황이 너무 위험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 같아. 베르단디! 네가 마지막으로 봤을 때 케이의 상태는 어땠어?"
울드는 심각한 얼굴로 베르단디에게 물었다. 베르단디는 간신히 진정을 한 다음에 차근차근 말했다.
"케이 씨는.... 기간틱으로 변신하셨어요. 그리고 12신장 카브라알과 대결에 들어가셨고요. 그 이상은 제 분신채는 보지 못했어요. 케이 씨에게 부담이 될 까봐 서둘러 그 자리에서 물러났기 때문에..."
"케이가 기간틱이 됐다고?"
그 말에 린드가 놀란 얼굴이 되었다. 아키토에게 의지력에서 압도당한 케이가 기간틱으로 변신했다? 혹시 그 때 당시 아키토가 기간틱을 쓰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케이의 의지가 아키토를 압도한 것일까. 만약 후자라면 이건 크게 기뻐해야 할 일이었다. 드디어 케이가 방황하던 마음을 다 잡은 것이다. 린드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렇다면 난 지금 당장 클라우드 게이트로 가겠다."
"린드?!"
"가서 케이를 엄호하겠다. 내 실력으로는 조아로드와 정면 대결은 무리겠지만 최소한 케이가 다른 데 신경 안 쓰고 1:1 로 놈과 싸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줘야지. 스쿨드. 그걸 다오."
"잠깐 기다려!"
린드의 말을 들은 스쿨드는 부리나케 자기 방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잠시 후 낑낑대며 방에서 뭔가를 가지고 나왔다. 스쿨드의 키 보다 훨씬 큰 배틀 엑스와 건틀렛 비슷한 물건이었다. 린드를 위해 스쿨드가 만든 비장의 발명품이었다.
"자! 드디어 완성했어. 고주파 엑스 Mk.2 와 전자파 실드!"
"난 고주파 엑스만 부탁했는데. 전자파 실드는 뭐지?"
"차례대로 설명해 줄께. 우선 고주파 엑스부터."
스쿨드는 린드에게 고주파 엑스를 건넸다. 전작인 MK.1 을 린드의 주문에 따라 계량한 신형 고주파 엑스였는데 전과는 달리 날 부분이 아주 날카로웠다. 그리고 무게도 더 묵직해 졌다. 스쿨드는 자기 발명품을 남에게 선보일 때면 언제나 그랬듯이 으스대며 설명하였다.
"신형 고주파 엑스는 우선 사용시간을 늘렸어. 가동시간은 30분이야."
바로 들어오는 울드의 태클.
"그래봐야 한 10분 늘어났네."
"시끄러! 10분 늘리는 것도 힘들단 말이야! 그리고 이번에는 날의 진동 장치 부분을 대단히 강한 금속 소재를 이용해서 만들었어. 그리고 날도 날카롭게 만들어 뒀고. 배터리가 떨어져도 보통 도끼처럼 쓸 수 있어."
저번에 엔자임 III들과 싸울 때 드러난 고주파 엑스의 문제점은 배터리가 방전돼서 고주파 진동이 불가능해지면 무기로서 전혀 쓸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사용시간을 늘려야 하지만 그건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 마련. 그래서 아예 진동 부분을 날카로운 도끼 날로 만들어서 배터리가 없어도 최소한 보통의 도끼처럼 쓸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리고 배터리의 교환도 이전보다 더 신속히 할 수 있도록 계량하였다. 스쿨드는 예비 배터리도 린드에게 함께 건넸다.
"그리고 이건 전자파 실드."
스쿨드가 두 번째로 린드에게 건넨 것은 마치 중세 기사 갑옷의 건틀렛과도 같은 형상이었다. 다만 손등 까지만 장갑이 덮여 있어서 손가락이 자유롭게 움직이고 건틀렛과는 달리 팔꿈치까지 보호를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났다. 장갑의 손등 부분에는 커다란 은색 금속구가 박혀 있었다. 스쿨드는 린드에게 그건 잘 안 쓰는 팔에 착용하라고 조언하였다. 린드는 왼 팔에 그 고주파 실드를 끼웠다. 의외로 무게는 대단히 가벼웠다.
"손등의 그 금속구 보이지? 거기서 강력한 전자파가 발생되면서 장갑 전체에 일종의 필드가 형성돼. 그걸로 적의 광선 공격 같은 것을 막는 거야."
스쿨드의 두 번째 발명품은 바로 방어구로서 '전자파 실드'라고 한다. 조아로드들이나 일부 하이퍼 조아노이드 같은 경우에는 아주 강력한 빔을 발사하는 경우고 있는데 이건 거기에 대응해서 만들어진 장비다. 이전에 가이버 III 와 강화된 네오 젝토올과의 전투에서 네오 젝토올이 메가 스매셔를 막아냈던 것을 응용한 것인데 당시의 젝토올처럼 이 장비도 한 점에 아주 강력한 전자파의 칼날을 만들어내서 빔을 '가르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다. 보통의 바리어나 여신들이 구사하는 법술의 '실드'는 넓은 범위를 커버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상대방의 공격이 너무 강력할 경우 쉽게 깨질 수가 있다.
하지만 모든 에너지를 아주 좁은 점에 집중해서 빔의 공격을 갈라버린다면 충분히 생존할 수 있다. 홍수에 다리는 무너질지언정 물과의 접촉 면적이 아주 작은 쇠기둥 등은 무사히 남아있을 가능성이 큰 것과 동일한 개념인 것이다. 이전에 젝토올이 그랬고 그리고 앱톰도 그것을 증명해 보였다. 앞으로의 싸움은 더욱 더 격화될 것이고 그렇다면 무기만 강화할 것이 아니라 방어구에 대한 대책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생각으로 스쿨드는 그 때의 영감을 실현시킨 것이다.
"하지만 직접 공격에 대한 방어력은 약해. 어디까지나 빔 공격에 한해서만 효과가 있어. 그것도 메가 스매셔 급의 공격이라면 한 번이상은 무리야."
"그 정도라 할지라도 최소한 한 번은 막는다는 거지? 그거면 충분하다."
린드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며 방어구를 낀 왼손을 이리저리 돌려보았다. 착용감은 상당히 좋았다. 한 번 뿐이라 해도 린드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솔직히 메가 스매셔급의 공격을 연속으로 허용하면 이쪽의 목숨은 없다고 봐야 하고 완력에서 밀리는 린드 입장에서는 겨우 팔뚝만한 방패 추가됐다고 해서 놈들의 직접 공격에 무사할 수는 없었다. 막을 생각 보다는 피하는 식의 전투를 해야 하는 것이 정답이었고 린드 입장에서도 그런 식의 공격이 더 익숙했다. 이 실드의 빔 방어 효과는 일종의 '보험'이라고 생각해 두는 것이 좋을 듯싶었다.
"저도 가겠어요!"
그 때 베르단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녀는 즉시 눈물을 털어내고는 결연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러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크게 놀랐다. 그리고 일치단결해서 베르단디를 말렸다.
"가면 안 돼! 베르단디! 위험하다고!"
"언니! 언니 무기는 아직 못 만들었단 말이야! 위험해!!"
"베르단디, 심호흡 먼저 해서 마음을 좀 차분하게 가라앉혀봐. 다시 한 번 생각 좀 해보라고."
모두가 열심히 베르단디를 말렸지만 그녀는 듣지 않았다. 오히려 바로 그 자리에서 법술로 순식간에 여신 특유의 전투복으로 갈아입기까지 하였다. 린드는 뭐라 말하려 하였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결연한 베르단디의 표정을 보고 이미 말려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린드는 무장을 점검하면서 지나가듯이 말했다.
"준비해라. 지금 당장 갈 거다."
"린드!! 말리지 않고서!"
깜짝 놀란 울드가 뭐라 항의하려 하였지만 린드는 그저 지긋이 울드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언니라면 잘 알지 않느냐고, 베르단디가 하고자 한다면 아무도 못 말린다는 것을. 마치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울드도 이내 그 뜻을 이해하였다. 그녀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좋아, 그럼 나도 갈께."
"울드 언니! 언니까지 갈 필요는...."
"동생이 위험한데 간다는데 지켜줘야지. 린드는 아무래도 현장에서 너무 바쁠 것 같으니 네 경호는 내가 하는 게 좋지 않겠어? 상대는 바로 조아로드니까."
울드는 베르단디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그 자리에서 자신의 옷도 전투복으로 바꿨다. 울드는 자신감 넘치는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이번엔 나도 자신 있다고! 대 조아노이드용 법술을 드디어 완성했다는 말씀! 일반 조아노이드들 따위는 그냥 휩쓸어버릴 수 있어."
"나도! 나도 갈래!!"
그 때 스쿨드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베르단디에게 매달렸다. 그러나 베르단디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지금 가는 곳은 아무래도 스쿨드까지 가기에는 너무 위험했다. 스쿨드는 울고 불며 자기도 같이 가겠다고 떼를 썼지만 베르단디는 끝내 그것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한참을 실랑이 하던 스쿨드는 결국 포기하고는 베르단디 품에 안겨서는 훌쩍이기 시작했다.
"언니.... 언니..... 꼭 돌아와야 해. 꼭!"
"응....반드시 돌아올게. 케이 씨와 함께."
베르단디는 주위를 돌아보며 다른 사람들과도 인사를 나누었다. 모두들 이젠 더 이상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몸조심하라고만 말하였다. 이렇게 인사를 하고 있으니 마치 죽기 전에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것만 같아 보였다. 그러나 베르단디는 반드시 돌아오겠다는 결의를 다졌다. 죽을 생각 같은 건 털끝만치도 없었다. 더더군다나 케이를 두고 그냥 죽을 생각은 전혀.
솔직히 말해서 베르단디들은 아예 가지 않는 것이 현명할 지도 모른다. 조아로드와 가이버 기간틱이 풀 파워로 격돌하는 현장이다. 케이가 아무리 강하다고는 해도 베르단디들까지 신경 쓸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가 봐야 케이의 발목이나 잡을 가능성이 더 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 케이의 위기를 두고 가만히 있을 베르단디는 아니었다. 조아로드 상대로는 도움이 안 되겠지만 최소한 다른 적들이 케이에게 또 달려드는 것만큼은 막아내야 했다. 베르단디들을 즉시 거울로 현장으로 순간 이동할 준비를 하였다. 울드나 린드는 순간이동 방법이 틀리므로 베르단디가 거울로 통로를 만들어서 가는 것이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케이 씨! 저 미약하지만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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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우우웅!
시바다의 아파트를 서둘러 나온 아소와 다이라는 즉시 차를 몰고 클라우드 게이트 쪽으로 가고 있었다. 과연 클라우드 게이트가 있는 신주쿠 방면으로 가면 갈수록 길가에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며 걸어가고 있는 민간인 조아노이드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민간인 조아노이드들은 차도나 인도 같은 건 아랑곳 하지 않고 그냥 아무렇게나 걸어가고 있었다. 그나마 지금이 한 밤중이라 차량 통행이 뜸해서 다행이었다.
"저...서....선배님. 정말 이렇게 가도 괜찮은 거에요? 통제국이...."
"그건 걱정 마. 아마 통제국이나 경찰도 다 저지경일 거야."
차를 전속력으로 몰고 있는 아소에게 다이라가 걱정스럽다는 듯이 물었지만 아소는 개의치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도쿄 전역의 조아노이드가 다 저 지경이라면 경찰관들도 전부 다 저지경일 것이 분명했다. 크로노스의 지구 제압이후 경찰력도 전부 크로노스 측에서 파견한 인물들로 교체됐으니 당연히 그들도 조아노이드일 것이다. 아마 이들이 클라우드 게이트까지 가는 것을 저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소는 창밖의 이 광경을 보고 치를 떨었다. 지금 저들은 주위의 상황 같은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저 맹목적으로 앞으로 걸어가기만 하였다. 아마도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무슨 최면술 같은 것으로 조종당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다만 그 최면술이란 건 아마도 일반인에게는 통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미조제자인 아소나 다이라가 멀쩡한 것도 그렇고 길가에는 역시 미조제자로 보이는 일반인들이 이 조아노이드 무리를 보며 공포에 질려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었다.
"잘 봐둬, 다이라. 지금 펼쳐지고 있는 이 광경이 크로노스가 열심히 떠벌리던 '이상적인 사회', '신인류'의 진짜 정체니까 말이야."
저 모습들을 보면 알 수 있었다. 조아노이드에게 있어서 진정한 자유란 없다. 여차하면 저렇게 의식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그저 꼭두각시 인형처럼 크로노스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크로노스가 온갖 당근을 제시해 가며 사람들에게 자발적으로 조아노이드 조제를 권장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냥 강제로 하게 되면 인류의 저항이 거셀 게 뻔 하므로 가급적 귀찮은 일 없이 계획을 행하려 했던 것이다. 아소의 말뜻을 알아들은 다이라는 공포에 질렸다. 조아노이드가 된다는 것이 이런 것이었단 말인가!
"그...그렇다면 지금까지 아주 신중하던 통제국이 왜 갑자기 이렇게 본심을 드러낸 거죠?"
"지금 그걸 확인하려고 가는 거잖아."
-끼기긱! 부우웅!
신주쿠 쪽으로 갈수록 도로로 쏟아져 나온 조아노이드의 숫자가 점점 많아져서 운전을 하기가 힘들어졌다. 아무리 최면상태에 빠진 상태라 해도 부딪히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아소는 조아노이드들을 치지 않기 위해 열심히 핸들을 꺾어대었다. 하지만 속도는 줄이지 않았다. 그의 마음은 점점 다급해져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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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쿵~!
"오오! 드디어 한 판 시작한 모양이군! 피가 끓어오르는데!"
베루더는 손에 들고 있는 톰슨 기관단총을 꽉 움켜잡았다. 아까는 가이버 I 이 그 기간틱이라는 거인으로 변신하고 나서 건물을 뚫고 나온 괴상한 촉수들과 잠시 교전을 벌인 후 클라우드 게이트 안으로 돌격해 들어갔다. 그로부터 시간이 좀 지났지만 가이버 기간틱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밖에서는 안의 상황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베루더는 지금 몸이 근질근질 거려서 못 견딜 지경이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돌격해 들어가서 신나게 싸우고 싶었다.
"으으으....! 어서 빨리 도망치자!"
반면 같이 있는 마라는 좌불안석이었다. 그동안 힐드랑 같이 다니면서 크로노스의 무서운 힘을 똑똑히 봐 온 마라는 지금 놈들의 본거지 바로 앞에 이렇게 대기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두려운 일이었다. 이럴 때 옆에 힐드가 있으면 정말 좋겠지만 힐드는 잠시 볼일이 있다며 베루더와 함께 여기서 상황을 살피라는 명령만 내리고 어디론가 가 버렸다. 하필이면 저런 밀리터리, 러시아 마니아, 그리고 못 말리는 전투광이랑 함께 있으라니. 베루더가 힐드의 명령을 무시하고 멋대로 뛰쳐나갈 까봐 두려웠다. 아니 솔직히 혼자 멋대로 뛰쳐나가는 것 까지는 그렇다 쳐도 그 불똥이 마라 자신에게까지 튈까봐 그게 두려웠던 것이다.
"힐드님은 여기서 상황을 살피라고 하셨어. 도망치면 명령 불복종이야."
"그러는 넌! 나가서 싸우는 것도 명령 불복종이야!"
"싸우지 말라고는 안 하셨잖아. 그리고 전방 정찰을 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전투를 할 경우도 생기게 돼."
베루더는 넉살좋게 마라에게 대꾸하였다. 마라는 도대체 어찌해야 좋을지 몰랐다. 도망치자니 힐드의 후환이 무섭고 여기 그냥 있자니 죽을까봐 겁나고. 게다가 같이 있는 동료란 녀석은 당장이라도 싸움에 끼어들려고 벼르고 있고. 물론 여기서 가만히 있으면 들키지는 않을 거고 그러면 전투가 벌어질 일도 없다. 그러나 베루더가 뛰쳐나가서 자신들의 존재를 저 괴물에게 알리게 되면 그 때 가서는 싫어도 싸울 수밖에 없다. 마라는 어디 숨어 있을 데는 없나 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끼어드는 것도 일단 상황을 봐서 끼어들어야지. 우선은 그 가이버 기간틱이란 녀석이 다시 밖으로 나와야...."
"이...이봐! 베루더! 저기! 저기 좀 봐봐!!"
그 때 갑자기 마라가 베루더의 옷깃을 잡아끌었다. 또 무슨 투정을 부리려고 하느냐고 쏘아 붙이려던 베루더는 마라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고 깜짝 놀랐다. 마라가 가리킨 곳은 빌딩 아래 도로였는데 어느 샌가 수없이 많은 조아노이드들이 걸어가고 있었다! 마라는 이제 사시나무 떨듯이 떨고 있었다.
"우...우리 들킨 거야! 우리를 포위하려고....!"
"진정 좀 해! 저건 우리를 잡으려는 게 아니잖아. 놈들은 그저 여길 지나가고 있을 뿐이라고."
하지만 베루더도 지금 내심 놀라고 있었다. 어느새 저렇게 많은 조아노이드들이 나타난 것일까. 게다가 좀 더 자세히 보니 조아노이드들은 그저 맹목적으로 걷고만 있었다. 흐느적거리며 걷는 그 모양세가 마치 좀비들이 몰려가는 것만 같았다. 자신의 의지로 걷고 있는 게 아닌 것이 확실했다. 혹시나 그 조아로드만의 특기 '사념파'라는 것이 아닐까? 그건 그렇다 쳐도 왜 저렇게 많은 조아노이드를 모은 것일까? 혼자서는 기간틱을 상대할 수가 없으니까 부하들이라도 모아보려고 그런 것일까? 어쨌든 뭔가 큰 일이 벌어진 것임에는 틀림없었다.
"아무튼 이거 무지하게 흥분되는군! 그렇다면 일단 몸 푸는 셈 치고 저 놈들 부터 먼저 상대해 줘야겠지?"
"그...그만 둬!"
베루더가 기관단총을 아래로 겨누고 냅다 갈기려고 하였다. 마라가 허둥대며 그걸 말리려는 순간, 이들의 머리 위에서 강한 섬광이 발생되었다!
-쿠콰아아앙!!!!
"뭐...뭐야!!!"
"히이이익!!"
깜짝 놀란 베루더는 즉시 고개를 들었고 겁에 질린 마라는 즉시 바닥에 웅크렸다. 클라우드 게이트의 내부에서 아주 거대한 빔이 밖으로 뚫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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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선배님, 아무래도 안 되겠는데요...."
신주쿠 안으로 들어서자 길거리를 민간인 조아노이드들이 꽉 메우다 시피해서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물론 조아노이드들은 천천히 걷고 있으니까 거기에 맞춰서 천천히 움직이면 되지만 그런 식으로 가서는 어느 세월에 클라우드 게이트에 도착할지 알 수 없었다. 아소는 이윽고 결심하였다. 그리고 차의 시동을 껐다.
"다이라, 내려."
"네?!"
"지금부터는 걸어간다."
그렇게 말하고는 아소는 카메라 가방만을 둘러메고 차에서 내렸다. 다이라 역시 자기 장비를 서둘러 챙기고는 차에서 내렸다. 아소는 길거리에 차를 그냥 세워둔채로 어딘가로 걷기 시작했다. 다이라도 황급히 그 뒤를 따랐다.
"서...선배! 이래도 괜찮은 거예요?"
"괜찮아. 녀석들은 지금 우리 따위는 안중에도 없어. 건드리지만 않으면 괜찮을 거야."
척 보기에도 무섭게 생긴 조아노이드 무리 속을 아소는 태연하게 걷고 있었다. 다이라는 언제 저 놈들이 자기들을 덮칠까봐 두려워서 숨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그저 아소만 졸졸 따라가고 있었다. 다행히 아소의 말대로 누군가의 조종을 받고 있기 때문인지 조아노이드들은 이들에게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마치 몽유병 환자들 같다고나 할까.
아소는 이윽고 어느 건물 옆의 비상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다이라 역시 그를 따라 올라갔다. 이 건물은 아소가 처음에 클라우드 게이트 촬영을 하기 위해 맨 처음 점찍어 뒀던 곳이었다. 물론 낮에는 통제국의 경비가 삼엄해서 엄두를 못 냈지만 지금이라면 괜찮을 듯싶었다. 15층 높이의 거물을 이들은 무거운 장비들을 둘러메고 그냥 걸어 올라갔다. 이윽고 이들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왔다. 올라와 보니 클라우드 게이트의 거대한 위용이 한 눈에 보였다. 망원 렌즈를 이용하면 충분히 상황 관찰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아소는 도착하자마자 자리를 잡고 카메라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다이라는 뭔가 불안한지 계속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저....선배님. 그냥 돌아가시는 게 어때요? 아무래도 이거 너무 위험한 것 아닌가요? 이러다가...."
"돌아갈 거면 너 혼자 가."
아소는 뒤도 안 돌아보고 대꾸하였다. 그는 장비 설치를 마치자마자 바로 카메라 렌즈에 눈을 갔다 대었다. 그러는 동안에 그는 계속해서 다이라에게 말을 하였다.
"지금부터 보게 될 광경은 크로노스가 주는 요람에만 틀어박혀 살 생각이라면 모르는 게 좋을 것들을 보게 될 거야. 다이라, 넌 안정과 진실 중에서 뭘 택할 꺼지?"
"저....저는....."
"각오가 돼 있지 않다면 그냥 돌아가. 널 탓하진 않겠다. 하지만 난 여기서 반드시 진실을 보고야 말겠어."
다이라의 마음속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그냥 돌아가는 거야. 가서 모른척하고 사는 거야. 그 문제의 필름도 없애 버리고 난 아무것도 못 봤다고 하면서 그냥 사는 거야. 연예인들 가십거리나 파헤치고 진실 10%, 소설 90%로 구성된 '기사'나 적당히 쓰면서 사는 거야. 난 그냥 3류 잡지사 기자일 뿐이야. 요즘 세상, 크로노스 덕분에 살기는 좋잖아? 그냥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눈감고 귀 막고 입 다물고 살아가면 평화롭게 살 수 있어. 그래, 그러는 거야....
'기자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명제는 진실, 이거 하나 뿐이야. 네가 내일 당장 사표 쓴다 해도 그 순간까지는 잊지 마라. 진실이란 것을.'
갑자기 처음 입사했던 날이 생각났다. (그래봐야 약 한 달 전 얘기지만) 잡지사에 수습기자로서 입사해서 그를 가르쳐 줄 선배 기자인 아소와의 첫 대면. 그 때 아소는 다이라를 처음 보면서 이 말을 하였었다. 진실. 처음에는 소설을 기사랍시고 써대는 3류 잡지사의 현장 기자가 뭔 소리를 하는 거냐며 흘려들었던 말이다. 물론 나중에 아소의 과거를 다른 선배 기자들로부터 듣고 나서는 그런 생각이 싹 사라졌었지만.
진실..... 진실..... 진실을 보라. 기자의 절대 명제..... 진실.....
"아뇨... 저도 보고 싶습니다. 진실을."
그렇게 말하면서 다이라 역시 카메라를 설치하려 하였다. 그 때 아소가 말했다.
"아니, 넌 설치하지 말고 눈으로 주변을 잘 살펴. 지금은 너무 근접해 있어서 둘 다 카메라에만 정신을 집중하면 다른 곳의 상황을 놓치게 돼."
망원 렌즈는 멀리 있는 사물을 확대해서 볼 수 있지만 대신 관측 범위는 좁아지게 된다. 아소는 잘 생각했다느니 하는 식으로 다이라를 격려하지 않았다. 누굴 따뜻하게 격려하는 거랑은 거리가 먼 사람이란 건 지난 한 달 동안같이 다녀보면서 확실히 알고 있는 다이라였다. 하지만 그래도 그는 기뻤다. 자기에게 따로 역할을 맡긴다는 것 자체가 칭찬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응? 저건 뭐지?"
그 때 아소가 클라우드 게이트의 벽면에서 뭔가를 발견하였다. 배율을 확대해서 그것을 본 아소는 깜짝 놀랐다. 클라우드 게이트의 벽면에 뭔가 커다란 머리 같은 것을 달고 있는 촉수들이 삐져나와 있는 것이었다. 그는 즉시 그것들을 촬영하기 시작했다.
"선배님! 저기! 저기요!"
그 때 다이라가 어느 한 지점을 손으로 가리켰다. 아소는 즉시 그 쪽으로 카메라를 돌렸다. 그러자 그의 카메라에 허공에 떠 있는 사람 형태의 물체 두개가 보였다. 하나는 마치 검은 색 곤충과도 같은 모양이었지만 다른 하나는 아소도 알고 있는 형태였다. 다름 아닌 가이버였다! 지금 저 둘은 클라우드 게이트의 벽면을 뚫고 나온 것이다.
-쿠콰쾅!!
바로 그 때 폭음이 울려 퍼지면서 클라우드 게이트의 벽면에서 아주 거대한 손이 튀어나왔다! 그 거대한 손은 가이버들을 낚아채기 위해 재빠르게 움직였다. 가이버들이 간발의 차로 그 손의 공격을 피하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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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저건 또 뭐야!!"
앱톰은 자기들을 잡으려 했던 거대한 손을 보며 욕지기를 내뱉었다. 손바닥크기 만으로도 기간틱을 완전히 감싸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간신히 피했기에 망정이지 저거에 잡혔으면 뼈도 못 추릴 뻔 했다.
-쿠르르릉!!
"피해!"
그 순간 아까의 손이 나왔던 곳의 반대편에서 또 다른 손이 벽면을 뚫고 이들을 덮쳐왔다. 케이들은 즉시 거리를 벌려 그 손을 피했다. 케이와 앱톰은 기가 막혔다. 거대화가 카브라알의 진짜 전투형태란 말인가!
케이들을 잡는데 실패한 그 손은 다시 나왔던 구멍 속으로 도로 들어가 버렸다. 잠시 주위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케이는 앱톰에게 살짝 말했다.
"앱톰. 내 곁에 바짝 붙어있어. 다음 공격이 올 거야."
그 순간 클라우드 게이트의 벽면, 아까 거대 손들이 튀어나온 구멍들 한 가운데의 벽면이 뭔가에 의해 빠르게 녹고 있는 것이 보였다! 케이는 즉시 바리어를 전개해서 자신과 앱톰을 둘러쌌다. 그리고 그 직후 벽면을 뚫고 거대한 빔이 발사되었다!
-쿠와아아아!!!
"윽!!"
발사된 빔의 폭포는 그대로 케이와 앱톰을 집어 삼켰다. 다행히 기간틱의 바리어를 뚫을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케이가 미리 대비하고 있지 않았다면 큰일 날 뻔 했다. 하지만 위력으로 봐서는 가이버의 메가 스매셔는 가볍게 뛰어넘을 수준이었다.
<크후후후.....바리어냐?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겨우 이거 한 방에 죽어버리면.....>
-콰지지직!!
그 때 카브라알의 목소리가 들리면서 클라우드 게이트의 외벽이 빠르게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광선이 뚫고 나온 벽면 구멍으로 두개의 거대한 손이 나타나서는 그 구멍을 더 크게 벌리기 시작했다. 최종 전투형태를 완성한 카브라알이 밖으로 나오려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 까지 한 보람이 없으니까!!!>
-콰콰콰!!!
그 거대한 손들은 기어코 외벽을 완전히 부숴버렸다. 순식간에 거대한 구멍이 생겨 버렸다. 그리고 그 구멍에서 뭔가가 날아올랐다. 아주 거대한 크기의 공룡 같은 것이! 케이와 앱톰은 즉시 더 뒤로 물러났다.
-콰아아앙!!!
클라우드 게이트를 박차고 나온 그 거대 괴물은 그대로 도쿄 신 도청 옥상위에 착지하였다. 거대 괴물의 착지 충격으로 인해 도청의 모든 유리창이 다 깨져나갔고 최상층 부는 건물 벽면 전체에 무수히 많은 균열이 발생하였다. 옥상의 헬리포트는 완전히 주저앉았다. 그리고 그제야 카브라알의 최종 전투 형태가 확실히 보였다. 길고 거대한 꼬리, 세 부분으로 입이 갈라져 있는 도마뱀 형태의 얼굴, 굉장히 비대한 하반신, 저 모습은 틀림없이 드래곤, 용의 모습이었다!!
<쿠와아아아아!!!!!>
밖으로 나온 거대 용, 카브라알이 포효하였다. 드래곤, 저 모습이 바로 12신장 카브라알의 최종 전투형태였다! 케이와 앱톰은 경악하였다. 너무나 놀라서 말문이 다 막힐 정도였다. 포효 소리만으로도 심장이 멎을 것만 같은 박력이었다.
<크흐흐흐! 어떠냐, 애송이들아. 너무 놀라서 말도 안 나오냐? 이것이 바로 나의 최종 전투형태, '드래곤 로드 카브라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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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으아아아!!!"
다른 건물 옥상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마라는 결국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설마 빌딩 안에서 저런 황당한 괴물이 튀어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상도 못했었다. 드래곤 로드 카브라알이 나오자마자 크게 포효했을 때는 얼굴이 아주 창백해져서 당장이라도 심장 마비에 걸릴 것만 같은 모습이 되기까지 했다.
놀라기는 베루더도 마찬가지였다. 지금 그는 도쿄 신 도청 옥상위에 서 있는 저 거대한 용을 보고 전율하고 있었다. 대충 보니 직립했을 때의 신장이 거의 60M, 꼬리를 합치면 백 미터는 확실히 넘어가는 거대한 몸집이었다. 중량도 저 정도라면 거의 5~6000 톤 정도는 하지 않을까 싶었다. 도쿄 신 도청이 아주 튼튼하게 지은 건물이라는 건 저걸 보면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오천 톤짜리 괴물이 위에서 떨어져 내렸는데도 건물은 아직까지 무너지지 않았으니까. 톰슨 기관단총을 쥐고 있는 그의 손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했다. 다만 마라와는 달리 그는 공포에 질려서 떨고 있는 게 아니라 희열에 들떠서 떨고 있는 게 달랐다.
"그래...그래 바로 저거야! 난 저런 거랑 싸우고 싶었다고!!"
"이...이봐, 베루더!! 가...가면 안 돼!!!"
"내 어릴 적 꿈은 드래곤을 때려잡는 용사가 되는 거였어! 오늘 그 꿈을 이루고야 말겠다!!"
-휘잉!
그 말을 남기고 그는 기관단총과 로켓탄 몇 발만 등에 진 채 드래곤 로드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마라는 그 자리에서 그저 주저앉은 채로 날아가는 베루더를 보고만 있었다. 가서 말린다고 들을 녀석도 아니거니와 무엇보다 저 도청 옥상위의 거대 드래곤에 압도돼서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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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선배님!!! 저...저...저....!"
"크로노스 일본지부 통제국은 빌딩 안에 저런 괴수도 키우고 있었나 보군. 누가 괴수왕국 일본 아니랄 까봐."
다이라는 완전히 공포에 질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지만 아소는 그 와중에도 침착하게 카메라로 드래곤 로드를 촬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소의 손도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서 시답잖은 농담 같은 거라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마음은 강했다. 15년 현장 기자의 관록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저런 거대 괴물이 클라우드 게이트에서 튀어 나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아소가 보기에는 직립 했을 때의 신장이 거의 60m. 꼬리를 포함한 전체 길이가 백 미터 이상. 중량도 어림잡아 5~6천 톤에 달할 것으로 보였다. 물론 크로노스는 우주 공간에 방주라는 길이만 50Km가 넘는 거대 생물전함을 만들어서 띄워 올릴 정도니 백 미터짜리 괴수 만드는 일이야 쉬울지도 모른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면 2년 전의 제압전 당시 그가 들은 소문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출장 나갔던 동료 기자가 해 준 얘기였는데 당시 중동 지역을 제압하던 크로노스는 현지에 주둔하고 있던 미군 부대의 강력한 저항에 막혀 진격이 지지부진했었다고 한다. 미군의 무기 대부분은 시야가 완전히 확보되는 유럽의 초원지대나 중동의 사막 지대에서 최고의 성능을 발휘할 수 있고(걸프전이 이를 확실히 증명하였다) 당시 주둔 미군은 보유하고 있던 전술핵을 사용해 가면서 까지 격렬하게 저항하였었다는 것이다. 그런 미군을 단 한 마리의 거대 괴물이 제압하였다는 것이었다. 전술핵을 얻어맞아도 끄떡없는 거대한 용 모양의 괴물이.
처음엔 그저 뜬 소문인줄 알았는데 얼마 전 인터넷에서 우연히 입수한 단 한 장의 사진 때문에 그는 큰 충격을 받았었다. 당시 사우디 현지에서 복무하던 미군 생존자 중 한명이 촬영한 사진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는데 그 사진에는 모래 바람 때문에 희미하게 보였지만 분명히 거대한 몸집을 한 괴물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혹시.....그 때의 괴물이 바로 저 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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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후후후. 감히 내게 덤빈 것을..... 지옥에서 후회하게 해 주마!!>
케이와 앱톰은 카브라알의 거대함에 압도되었다. 저런 것도 조아로드의 능력일까? 도대체 조아노이드를 얼마나 흡수했길레 저런 거대한 몸집을 완성할 수 있던 것일까.
-쩌억!!
그 때 드래곤 로드가 입을 크게 벌렸다. 세 갈래로 갈라져 있는 입이 사방으로 벌려지는 모습은 마치 꽃봉오리가 벌어지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봉오리의 중심, 입 한 가운데에 자리 잡은 커다란 구슬이 눈에 보였다.
-위이이잉!!!
그런데 그 구슬이 한층 더 커지더니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케이와 앱톰은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다. 저 모습은 틀림없이..... 생체 열선포다! 그렇게 인식한 순간 카브라알의 입의 구슬이 폭발하듯이 빛났다.
-쿠아아아앙!!!!
카브라알의 입에서 거대한 광선이 발사되었다.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광선의 충격파가 케이들의 몸을 거세게 뒤흔들었다. 발사된 광선은 그대로 직진, 진행방향에 서 있던 빌딩을 가볍게 관통하였다. 관통된 건물은 관통 부위가 마치 불에 녹인 양초처럼 힘없이 녹아 버렸다. 커다란 빌딩을 단 일격에 관통해 버릴 정도로 광선의 위력은 굉장했다. 아까 케이들에게 먼저 쐈던 그 광선도 바로 이것이었다.
<후후후, 잘도 피했군. 이게 바로 나 드래곤 로드의 필살기, '연옥포'다!>
-키이이이!!
카브라알이 제 2격을 준비하였다. 케이들은 즉시 움직였다. 멍하니 있다가는 저 광선에 흔적도 없이 녹아버릴 것이 분명했다. 연옥포는 발사 준비에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그 틈을 노려 카브라알에게 공격을 가해야 했다. 케이와 앱톰은 각자 다른 방향에서 카브라알을 향해 돌격해 들어갔다.
-부우웅!!
그 때 카브라알이 연옥포 발사를 중지하고 그 거대한 손을 케이들을 향해 휘둘렀다. 케이들 역시 다시 거리를 벌리며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몸집과는 어울리지 않게 아주 빠른 스피드를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저 속도와 중량 등을 놓고 생각해 보면 한 방 제대로 맞았다가는 아무리 거인 식장이라도 무사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에잇! 이 날파리 같은 녀석들!!>
-부웅! 부웅!!
카브라알은 마치 손으로 파리라도 잡는 듯이 양손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케이와 앱톰을 노렸다. 졸지에 쫓기는 파리 신세가 된 케이들은 빠른 속도로 비행하면서 카브라알의 공격을 피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은 기회를 노렸다. 확실히 지금 카브라알의 공격은 대단히 위력적이지만 허점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드래곤 로드의 덩치. 저 거대한 덩치라면 아무래도 사각지대가 너무 많을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지금 드래곤 로드 상태의 카브라알이 서 있는 곳은 도쿄 신도청의 옥상. 중량만 5천 톤이 넘는 괴물이 서 있기에는 구조적으로 너무 약했다. 그리고 너무 좁았다. 아무리 건물을 튼튼하게 지었다고 해도 시공사 측에서 이런 경우를 염두에 뒀을 리는 없다. 세상에 어느 건축가가 자기가 설계한 건물 옥상위에 5천 톤짜리 괴수가 내려앉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까. 분명 저래가지고는 방향 전환조차 쉽지 않을 것이다.
"앱톰!! 녀석의 사각지대로 가자!"
"좋았어!!"
두 사람은 즉시 카브라알의 등 뒤로 돌아들어갔다. 저런 거대 괴수의 사각지대 하면 역시 등 뒤다. 게다가 지금의 카브라알은 방향전환이 대단히 불편하다. 등 뒤에서 공격을 퍼부을 수 있다면....!
-부우웅!
"욱?!"
그러나 등 뒤로 돌아간 앱톰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아까 맨 처음 싸웠던 거안 촉수들이었다! 드래곤 로드의 등 부분에 마치 털처럼 빼곡히 들어차 있던 것이 전부 다 거안 촉수들이었던 것이다. 거안 촉수들은 앱톰을 보자마자 앱톰에게 달려들었다. 드래곤 로드는 주요 사각지대에 이런 거안 촉수들을 배치해서 사각지대를 감시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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