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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날개 2화-여신 강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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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녀라 불리는 베르단디 공주는 하루가 다르게 예뻐지고 성숙해져갔다. 황제와 황비는 그런 공주를 보며 하루를 보내는 게 즐거웠다. 제국민들은 그녀를 드높여 칭송하고 공주는 다른 나라의 공주들처럼 오만하고 자존심이 세지 않고 오히려 백성들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성품은 또 어떤가. 한없이 자비롭고 한없이 자애롭고 한없이 착하고, 그러면서도 그 아름다움은 퇴색되지 않고 그 안에서 오히려 더욱 빛을 발하고 있었다. 전부터 세레니아를 받드는 사제들은 모두 미남 미녀였지만 그중에서도 특출 난 사람들은 더욱 아름다웠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모두 거대한 신성력을 지녔고, 오만하지 않고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는 그런 훌륭한 사람들이었다. 일부에선 그런 사람들은 여신이 총애하기 때문이라는 말이 들려올 정도였다. 신성력과 미모는 여신의 특별한 배려라고 말이다.

 올해로 성녀의 나이는 13세. 그녀가 그동안 열심히 사람들을 치료하고 다녔지만 아직도 아프고 병든 사람은 끊이질 않았다. 성녀를 도와 교단에서도 적극적으로 지원을 해주고 있는데도 말이다. 베르단디는 항상 그게 안타까웠다.
 오늘도 어김없이 순백의 로브를 걸치고는 나갈 채비를 마친 베르단디가 린드와 함께 황궁 밖으로 나가려 할 때, 그녀의 침실로 황제가 직접 행차했다.

 “아바마마. 이곳에는 어인일로…….”

 “허허, 애비가 딸을 보러 오는데 굳이 무슨 일이 있어야 하느냐?”

 “아니옵니다. 아바마마. 나라일로 공사다망(公私多忙)하신 아바마마께서 친히 시간을 내시어 들러주신 것에 놀란 것이었사옵니다.”

 교황은 허허 하고 웃더니 이내 웃는 표정으로 베르단디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래, 우리 공주. 이렇게 착하고 아름답게 자라주어서 짐은 매우 기쁘다. 지금 짐의 소원이 뭔지 아느냐?”

 “소녀가 미숙하여 아바마마의 뜻을 헤아릴 수가 없사옵니다.”

 “어허허, 우리 공주가 미숙하다면 세상은 전부 아둔한 사람들뿐이겠구나.”

 “아바마마, 소녀는 그런 뜻이…….”

 “아아, 그렇게 고개를 숙일 필요는 없느니라. 알고 있도다. 짐이 잠시 농을 한 것이니. 짐이 농을 잘 못하여 우리 공주를 당황하게 하였구나.”

 교황, 베르칸 폰 카시밀리온 이렌드 로운 세르니아는 다소곳한 자세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베르단디를 보며 다시 한번 세르니아 여신에게 감사를 드리며 베르단디에게 말했다.

 “요 몇 년간 베르단디 덕분에 제국민들의 삶이 나아졌다고 하더구나. 짐이 부덕한 탓에 백성들이 고생을 하여 짐의 마음이 편치 않았도다. 허나 공주 덕분에 그런 마음의 짐을 약간이나마 덜 수 있었도다.”

 “송구하옵니다. 아바마마.”

 공손히 답하며 베르단디는 여전히 베르칸 교황를 올려다보았다. 황제가 그런 말을 하려고 일부러 이곳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황제의 집무실까지 쉽게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으니까.

 “공주 앞이니까 털어놓을 수 있는 말 이다만, 귀족과 신관들의 비리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허나 짐의 힘이 미약하여 그들을 과감히 내치지 못하여 제국이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구나.”

 교황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었다. 제국민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을 물으면 그 첫째를 성녀인 베르단디라고 한다. 그리고 두 번째를 교황으로 꼽는다. 아무리 듣는 사람이 없을 때는 나랏님도 욕한다고 하지만 제국민들이 농담으로라도 망발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 것이 바로 성녀와 교황이었다. 실제로 귀족들이 교황을 대상으로 나쁜 소문을 퍼뜨리려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소문은 퍼지기도 전에 진압되었다. 귀족 측에서 소문을 퍼뜨리기 위해 심어 놓은 간자가 어느 여관에서 그런 말을 꺼내자마자 사람들은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이 그를 두들겨 팼던 것이다. 그나마 죽이지 않은 걸 감사해야 했대나 뭐라나.
 그 후, 귀족들은 두 번 다시 그런 일을 벌일 생각조차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만큼 교황은 훌륭히 제국을 이끌어 나갔지만 곳곳에서 일어나는 비리는 도무지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신성 제국이 이러니 다른 나라야 안 봐도 뻔할 것이다.

 “아바마마는 훌륭히 나라를 이끌어 나가고 계십니다. 잘못된 건 아바마마가 아닌 자신의 사리사욕만을 체우는 신관들과 귀족들입니다. 소녀는 샤이니아님이 그들에게 언젠가 큰 벌을 내리실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래, 고맙구나…….”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아바마마. 전 사람들을 도우며 사는 것이 즐거울 뿐이에요. 그들의 미소, 그들의 행복, 밝게 웃으며 사는 사람들. 그 따스한 느낌이 제 행복이고 기쁨이에요.”

 베르단디의 말에 교황 베르칸은 다시 한번 딸이 훌륭하게 자라주었다고 생각하고는 이곳에 오기 전에 신하들과 나누었던 말을 베르단디에게 전했다.

 “좀 전에 중신들과 회의를 했네. 그 때 잠깐 네가 언급이 되었는데 너의 덕분에 백성들의 삶이 좋아졌다고 너에게 상을 내리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더구나. 루블리언 후작이 네가 너무 수고하니 기분전환 삼아 로일 왕국에 사절로 보내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더구나. 너의 생각은 어떠하냐.”

 “하지만 제가 로일 왕국으로 떠나면 백성들은…….”

 “너의 걱정이 무엇인지는 안다. 네가 떠나있는 동안 백성들의 치료와 식사는 귀족들이 해주겠다고 하더구나. 정말 왠일로 그런 생각들을 했는지…….”

 평소에는 그렇게도 의견 일치가 안 되던 귀족들이 이 날만은 정말로 진짜 왠일로 하나로 단합되어 지원을 약속했다. 베르칸은 그 행동이 수상했지만 나쁜 일이 아니었는지라 무어라 따지지 못하고 공주의 의견을 물은 뒤 결정 하겠다 하고는 그 안건은 보류해둔 상태였다.

 베르단디는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잠깐 로일 왕국에 다녀와도 귀족들이 자신이 하던 일을 맡아준다면 못 갈 것도 없었다. 그 뿐 아니라 로일 왕국에도 제국처럼 그런 사람들이 많을 터, 아무리 팔은 안으로 굽는다지만 그들도 사람이고 생명체다. 만물과 만인을 사랑하는 그녀로써는 그냥 두고만 볼 수 없는 일. 이왕 로일 왕국에 가는 김에 자신의 눈에 보이는 병든 자. 상처 입은 자. 배고픈 자들을 모두 보듬어 주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녀의 고민은 금방 끝이 났다. 로일 왕국에 사절로 가기로.

 “아바마마. 소녀가 사절로 가겠사옵니다.”

 “정말로 괜찮겠느냐? 짐은 도무지 안심이 안 되는구나.”

 “괜찮사옵니다. 린드가 절 지켜주는걸요.”

 “아! 그렇구나. 그녀가 있으면 안심이지.”

 베르칸 교황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그녀라면 분명 믿을 수 있었다. 어떤 위험이 닥치더라도 베르단디를 안전하게 지키리라. 하지만 그래도 안심이 안되는지 베르칸 교황은 한참을 생각한 끝에 제국 밖의 세상을 보여주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 생각하고는 그녀를 사절로 보내기로 결정을 내렸다.

 “아바마마. 그 서신은 서둘러 전해야 되는 것인지요?”

 “음? 아니다.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 천천히 다녀 오거라.”

 “그럼 로일 왕국으로 가는 도중에 변두리의 제국민들을 치료해도 될까요?”

 “응? 허허허허!”

 교황은 베르단디의 말에 정말로 환하게 웃었다. 아무래도 이 작은 공주는 몇 년 전부터 수도 밖의 제국민들을 보듬어주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까지 백성들을 보듬어주려 하다니. 정말 아름답게 자랐구나.
 교황은 흐뭇한 미소를 띠며 베르단디에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래, 얼마든지 원하는 데로 하거라.”

 “감사하옵니다. 아바마마.”

 그렇게 베르단디의 첫 여행이 결정되었다.







 베르단디와 사절단의 인원은 베르단디를 포함해서 총 53명이었다. 원래는 대규모로 계획되었었지만 베르단디의 강력한 반대로 줄이고 줄여서 이정도인 것이다.
 사절단의 수행원을 살펴보자면 베르단디를 보호할 성기사가 10명, 신관이 20여명, 성기사들과 신관들의 수발을 들어줄 시종과 시녀가 10명씩. 이렇게 총 50명에 베르단디와 린드, 베르단디의 전속 시녀인 로니를 포함해서 총 53명 이었다. 사절단의 이동 경로는 베르단디가 잡기로 했다. 이 여행의 목적이 베르단디의 해외(?)구경 겸 그동안 거리가 멀어서 치료해주지 못했던 제국민들을 치료할 겸해서 가는 것이었으므로. 덕분에 사절단은 로일 왕국에 도착하는데 한 달을 더 소비하고 말았다.

 파아앗!

 베르단디의 손에서 새하얀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썩어가던 다리의 상처가 기적같이 아물었다. 사내는 자신의 다리가 아무는 걸 눈으로 보면서도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비싼 치료비에 손도 못 대고 썩어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건만 자신을 괴롭히던 상처가 단 한순간에 나아버린 것이다.

 “자, 다 됐어요. 이젠 아프지 마세요.”

 그 상처를 치료한 장본인은 사내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긋 웃으며 말했다. 사내는 그 목소리를 듣고서야 정신을 수습하고는 급히 고개를 숙였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성녀님. 이 은혜는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일어나세요. 제발요. 이건 신을 모시는 자로써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에요. 그렇게 고개를 숙이시면 제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니 일어나세요.”

 베르단디는 사내가 계속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자 당황하면서 사내를 일으켜 새우려 했다. 이 일은 자신의 숙명이자 기쁨. 사람들의 감사 인사를 받기 위해서 한 일이 아니었다.

 ‘공주 마마도 참, 이젠 적응하실 때도 되었을 텐데.’

 항상 저런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봐온 로니는 그런 공주의 모습에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름답고 현명하고 지혜로운 공주지만 그런 순수한 마음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 어쩌면 저 모습이 진정한 성녀의 모습일지도⋯.
 로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넓은 공터에 간이 천막이 몇 개 쳐져 있었고 천막마다 이 근방의 환자들이 줄줄이 들어서고 있었다. 오늘 하루를 이곳에서 쉬어가기로 결정하고서 아침부터 오후 3시인 지금까지 치료를 하고 있건만 이곳에서도 역시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몰려오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이곳의 주민들이 그들을 배려해줘서 쉬어가며 할 수 있었지만 우리의 착한 성녀는 그 쉬는 시간도 안타까워서 울상을 짖곤 한다. 어쩌면 이리 순수할 수 있는지. 덕분에 요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아무리 성녀라도 신성력에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 그런데 베르단디는 이동을 하면서 들르는 마을마다 이러한 일을 하는데 마을이 자주 나오는 경우는 3일을 쉬지 않고 신성력을 사용하여 치료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수행원들을 배려해서 피곤한 표정 한번 짓지를 않으니 모든 걸 뒤에서 바라보는 로니의 마음이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사절단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서 베르단디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었다. 때문에 지금 사절단으로 따라온 20여명의 신관들도 전력으로 치료를 해주고 있는 실정이었다. 자신들이 맡은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가 되지 않으면 베르단디가 그들에게 다시 치료를 해주기 때문에. 로일 왕국은 따로 용병 왕국이라고 불린 만큼 국민의 대다수가 용병을 하고 있었다. 때문에 간단한 상처쯤이야 스스로도 치료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이렇게 사람들이 많이 몰린 이유는 이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간단한 치료로는 나을 수 없는 부상이나 병을 지닌 사람들이기 때문이었다.

 “공주 마마. 날이 덥습니다. 여기 시원한 물 한잔 들고 하세요.”

 “아, 고마워요. 로니.”

 베르단디는 컵을 들고선 천천히 물을 마셨다. 그렇게 한잔을 다 마신 베르단디는 다시 치료에 전념했다. 그런 베르단디를 로니는 난감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는 로일 왕국에 들어서고부터 7일째인 지금까지 한 가지 생각만이 떠올랐다.

 ‘1년 안에 돌아갈 수는 있을까?’

 베르단디의 행동을 봐서는 그러긴 쉽지 않을 듯 했다. 이렇게 베르단디 사절단의 하루가 또 지나고 있었다.





 로일 왕국에 들어서고 한 달이 지났다. 실은 왕성까지 그렇게 걸리는 것은 아니었지만 베르단디가 워낙 착한지라 아픈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서 일일이 들러서 치료를 해주고 하면 시간이 제법 지나버리는 것이다. 사절단은 일도 빨리 끝내고 싶고 베르단디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이고자 이동 속도를 조금 높였다. 덕분에 이제 왕성까지 하루거리에 다다를 수 있었다. 사절단의 그런 배려에도 불구하고 베르단디는 이동하는 내내 시종들과 시녀들이 힘들어 할까봐 간간히 축복을 해주고 체력을 회복시켜 주었다. 성기사들과 신관들은 말과 마차를 타고 가지만 그들은 천한 취급을 받고 여기까지 걸어와야 했던 것이다. 베르단디는 그들을 위해서 마차를 더 구입하고자 했지만 그것만은 베르단디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해줄 수 있는 건 그저 틈틈이 그들이 피로하지 않게 회복시켜주는 일 뿐. 그들을 보며 베르단디의 뇌리에 떠오르는 생각은 하나였다.

 전들도 같은 인간인데 어째서 저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걸까?

 모든 걸 가장 순수한 시선으로 볼 수 있는 베르단디이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다. 이런 신분 계급이 형성되고 고착된 지 몇 천 년이다. 때문에 이젠 소수의 인물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당연하게 생각하는 일이었다. 이것이 바뀌려면 대륙의 반을 뒤덮는 거대한 혁명이 일어나거나 신이 직접 나서서 신의 이름으로 바꿔야 할 것이다. 베르단디도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몸이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신성 제국이라 불리는 곳에서도 이런 행동을 하는 게 서글펐다. 때문에 그녀는 자신과 같이 여행하는 동안만이라도 그들을 좀 더 편하게 해주고자 했다. 덕분에 시종들과 시녀들은 여행 내내 그나마 편하게 이동을 할 수 있었다.

 폴튼 영지

 로일 왕국의 수도인 로스트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마지막 영지였다.

 “오늘은 여기서 하루 묵어가죠.”

 “알겠습니다. 공주 마마.”

 가장 가까이 있던 성기사 하나가 대답을 하고는 뒤의 행렬로 명을 전달했다.
 아직 태양이 서쪽으로 넘어가지 않았건만 사절단은 아무 말 없이 폴튼 영지의 가장 큰 여관에 짐을 풀었다. 베르단디가 이런 결정을 내린 것이 한 두 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이유야 뻔하다.

 “자, 그럼 오늘도 시작해볼까요?”

 활기찬 목소리로 말하곤 베르단디는 앞장서서 걸어 나갔다. 그 뒤로 간이 천막을 짊어진 성기사와 시종들이 뒤따랐고 그 뒤로 나머지 일행들이 뒤따랐다.

 ‘공주님도 참, 과연 성녀라 불리는 분다우시네. 사람들을 치료 하시는 게 그렇게도 좋으실까.’





 신관의 치료가 단순히 신성력을 쏟아 부어 상처를 회복시키는 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신성력의 쓰임새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첫째. 위에 언급한 상처에 직접 신성력을 투입하는 것.

 이 방법은 찰과상정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상처가 너무 커서 지혈이 제대로 되질 않거나 상처가 이미 썩기 시작한 자들. 즉, 중환자들에게 쓰이는 방법이다.

 둘째. 신성력이 담긴 노래를 부르는 것.

 일명 신성 찬트라 불리는데 신성력이 담긴 성가를 불러서 신체의 회복 속도를 향상시키거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어 긴장을 풀어주거나 용기를 북돋아주어 용맹하게 싸우거나 광범위한 축복을 걸어주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쓰이지만 베르단디는 주로 경미한 찰과상을 입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신성찬트를 불러주는데 쓰고 있었다.

 “felicitas cum amicis communica….”

 “오오…….”

 “대단해. 상처가 순식간에 아물고 있어….”

 “그것뿐만이 아냐. 몸에 힘이 넘치고 있어. 이것이 전장에서 들었던 축복의 노래…….”

 “이것이 소문의 축복의 노래?”

 베르단디의 신성 찬트를 들은 사람들은 저마다 몸을 둘러보며 한마디씩 꺼냈다.

 ‘아차, 실수인가. 마음을 안정시키는 쪽으로 할 걸 그랬나.’

 사람들이 기운이 없어보여서 노래에 살짝 용기의 힘을 담은게 실수였나 보다. 이거 꽤나 곤란해질 지도…….

 베르단디가 걱정한 것과는 달리 사람들은 별다른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묻고 싶은 것은 많지만 자신을 치료해준 성녀에게 뭐라고 할 정도로 양심이 없진 않으니까. 사실 가벼운 찰과상이라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아무는 정도의 상처였지만 베르단디는 이왕 치료하는 거 확실하게 하자는 생각에 그들도 불러 모아 치료를 해준 것이다.

 위의 두 가지 방법 말고도 여러 가지 사용법이 있다. 예를 들어서 물에 신성력을 주입하면 그건 물이 아니라 비싼 포션이 된다. 신성력을 이용한 공격 마법도 있지만 그건 다음에 언급하기로 한다.
 아무튼 이렇게 베르단디 사절단의 하루는 저물어갔다.






 “후우….”

 “후후. 공주님이 긴장하시는 모습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그래요? 하긴 그럴지도…….”

 베르단디는 조금 전에 만났던 가람 아르시안 폰 로일 국왕을 떠올렸다. 가람 국왕은 현재 나이 54로 5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였다. 때문에 머리는 희끗희끗한 흰머리들이 보였지만 몸은 50대가 아니라 3~30대라고 해도 충분할 정도로 건장한 몸을 하고 있었다. 전신으로 뿜어져 나오는 위압감이라고 해야 할까 카리스마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이 장내를 뒤덮고 있어 과연 용병왕이라는 칭호가 아깝지 않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자신을 맞아 줄때는 마치 평범한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었다. 편안하고 자상한…….

 “나를 대할 때랑 신하들을 대할 때랑은 분위기가 너무 달라져서 나도 모르게 살짝 긴장했는지도…….”

 “후후훗.”

 “뭐야. 농담 아니라고요. 로니.”

 “알아요, 공주 마마. 공주 마마가 농담을 하시는 걸 한번도 본 적이 없으니까요.”

 “에……그랬나요? 흐음…….”

 베르단디는 오른손 검지로 자신의 입술을 툭툭 건드리며 생각에 빠졌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자신이 누구에게 농담 비슷한 걸 한 적도 없는 것 같았다.

 “로니. 혹시 내가 거짓말 한 적 있나요?”

 “무슨 말씀을. 농담은 물론이거니와 거짓말도 태어나서 단 한번도 한 적이 없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것뿐이 아니죠. 공주 마마는 자신을 위한 일은 한번도 한 적이 없으세요. 하는 일이라고는 전부 남을 돕는 것 뿐. 처음에 요리를 배우실 때도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여주기 위해서라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데요. 제국민들이 때때로는 성녀가 아니라 인간의 몸을 빌어 환생한 자애의 신이 아닌가 하는 얘기도 돌았어요.”

 “자애의 신이라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죠. 공주 마마를 보고 있으면 저도 가끔 공주 마마는 혹시 신이 직접 강림한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백성들을 위하고 계시니까요. 한 가지 라도 좋으니까 공주 마마의 취미를 가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요.”

 “그럴까요? 좀 전에 접견실에서 마신 차가 마음에 들던데 그 차 이름이 뭔지 아세요?”

 “그건 다즐링이라고 하는 홍차의 하나에요. 제국에서도 구할 수 있어요.”

 “티타임을 가지는 여유 정도는 누려도 되겠죠?”

 로니는 웃으며 대답해주었다.

 “물론이죠.”





 넓은 집무실에 두 사람이 자리하고 있었다. 편해 보이는 의자에 앉아 서류를 넘기고 있는 남자는 40대 중반의 날카로운 인상을 지닌 남자였고 그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사내는 복면을 하고 활동하기 편한 전신 타이즈를 걸치고 있어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의자에 앉아있는 남자가 바로 어세신 길드 중 수위를 다투는 다크 소드의 길드 마스터인 라이오였다.

 “…그곳은 이제 한명만 제거하면 모든 상권이 레스텀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후의 일은 그쪽에서 알아서 하기로 했으니 실제로 그 한명만 제거하면 의뢰는 무사히 완료하게 됩니다.”

 “사상자의 수는?”

 “아직 없습니다.”

 “그래. 괜찮군. 데르온 쪽에서 들어온 의뢰는 어떻게 됐나.”

 “현재 진행 중입니다만 변수가 생겼습니다.”

 “음?”

 라이오는 그 말이 심기에 거슬렸는지 살짝 인상을 쓰며 의문이 섞인 신음을 토했다. 복면인은 더욱 깊게 고개를 숙이며 보고를 계속했다.

 “그쪽에서 눈치를 챈 것 같습니다.”

 “그 정도는 알아서 해결해라. 그리고 쿠리오 후작이 의뢰한 일은?”

 “폴튼 후작의 암살 의뢰는 성공했습니다.”

 “확실하게 자연사로 보이게 했겠지?”

 “물론입니다.”

 라이오는 복면인의 보고가 멈추자 잠시 서류를 뒤적거리더니 이내 하나의 서류를 꺼냈다. 그 서류에는 성녀의 암살 의뢰가 적혀있었다.

 “크음…….”

 라이오는 심기가 불편한지 그 서류를 바라보며 신음성을 토했다. 이 의뢰는 아직 할지 안할지 결정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중대한 사항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길드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로일 왕국의 국운이 걸린 중대한 문제였다.

 “2호. 우리 길드원 중에 성녀에게 치료받은 이가 있는가?”

 2호라 불린 복면인은 잠시 생각을 하는 듯 하더니 이내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아직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흐음…….”

 2호의 말로써 라이오의 고심은 더욱 깊어졌다. 의뢰를 받아들이자니 길드의 목숨이 위태롭고 거절하자니 보수가 지나치게 크다.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의뢰가 자신의 길드에 왔는지 정말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지금 라이오가 들고 있는 의뢰서를 간단하게 말하자면 계륵이다. 버리긴 아깝고 취하긴 싫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와 같다.

 “2호, 자네 생각은 어떤가?”

 라이오가 묻자 2호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마스터의 명에 따를 뿐입니다.”

 “괜찮으니 자네의 생각을 말해보게.”

 라이오는 자신 혼자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 생각하고 2호의 생각을 물었다. 2호는 잠시 주저하는 듯 하더니 이내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솔직히……잘 모르겠습니다. 성녀를 죽이든 죽이지 않든 길드로써는 모두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라이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의뢰는 정말 처치 곤란이다.

 “끄응…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군. 제길.”

 그렇게 한참을 투덜거린 라이오는 이내 마음을 정했는지 펜을 꺼내들더니 서류에 사인을 했다.

 “성녀의 암살의뢰를 받아들인다.”

 그 말은 들은 2호는 놀란 눈으로 라이오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하겠다. 게다가 이미 선금으로 받은 금액이 만만치가 않아. 성공만 하면 우리 길드는 한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 지금 성녀의 위치는?”

 “로일 왕국의 수도에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수도를 벗어나면 성녀를 친다. 모두 준비 단단히 하도록 일러라.”

 “명을 받듭니다.”

 2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집무실에서 사라졌다. 정말 귀신같은 솜씨였다. 라이오는 혼자 남은 집무실에서 또 다시 고민에 빠졌다. 그렇게 라이오의 고민속에 또 하루는 저물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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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만에 한편 꼴랑 올립니다. 그동안 여러가지 일과 아이디어 저하와 시험이 겹쳐서 올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실은 컴퓨터가 제 방에 있는게 아니라 부모님방에 있는 거라서요. 쓰고싶을 때 맘대로 쓰지를 못합니다. 더군다나 옆에 누가 있으면 글이 안써진다는 점도 있지요. 에휴. 어쨌든 오랜만에 손이 키보드 위를 달리는 만큼 쓸 수 있을 때 확실하게 쓰도록 하겠습니다. 아마 내용은 다 잊어버리셨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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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일 왕국.... 용병 왕국이라고 불린다 함은 국민들이 용병일 이외에는 돈 벌 방법이 없다고 할 정도로 가난한 나라라는 뜻도 되겠군요. 옛날 스위스가 그랬죠.

아아, 베르단디 사마의 어여쁜 마음은 모든이를 감동시킨다니깐요.^^ 그런데 암살이라니....;;; 잘봤고요, 건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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