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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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part 2.-
제22화 - 반격이다! 가이버 I !! -
-삐잉! 삐잉!
미국 애리조나 주 그랜드 캐니언에 위치한 크로노스 본부기지. 갑자기 본부 기지 내에 요란하게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경보가 울림과 동시에 종합 상황실에서 관제원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본부 기지의 자폭코드가 발동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자폭까지는 겨우 30분. 전혀 생각지도 못하던 일이 벌어지자 관제원들은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으아아!! 자...자폭코드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자폭 코드를 발동시킨 거냐고!!!"
사실 누군지는 뻔했다. 이 본부 기지의 자폭 코드 같은 아주 위험한 것을 발동시킬 수 있는 사람은 현재 본부 기지 내에서는 딱 한 명, 바로 발카스뿐이다. 사실 발카스는 자폭 코드의 안전장치들을 미리 해제 시켜 놓고 기간틱 다크와의 전투에 임했다. 리엔쯔이와 와펠다노스가 함께 싸운다고 하지만 기간틱 다크는 만만한 상대는 아닐 터. 그렇다면 만약을 대비해서 보험 격으로 기지와 함께 기간틱 다크를 날려버리겠다는 막나가는 작전을 세웠던 것이다. 물론 기간틱 다크에게 이기면 발동시킬 필요가 없지만 전황이 극도로 불리해진 지금 발카스는 필사의 각오로 자폭 코드를 발동시킨 것이다. 이 계획 자체는 리엔쯔이와 와펠다노스 역시 알고 있었고 그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필사의 각오가 되 있는 것은 발카스와 와펠다노스, 리엔쯔이 뿐이었다.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기지내의 구성원 전부는 공포에 질려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였다. 미조제자인 과학자들이나 기타 기술자들, 행정 업무원들 뿐만 아니라 조제를 받은 전투원들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본부 기지 상층부 헬기 착륙장에 주기된 헬기들뿐만 아니라 지하의 리니어라인, 비상 탈출용의 캐터펄트 포트등등 이용 가능한 모든 교통수단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자폭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30분. 수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탈출하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혼란이 극에 달해 오히려 탈출이 지연되고 있었다. 이래가지고는 겨우 30분 동안에 전체 인원 중 잘해야 2~3% 정도만 탈출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발카스가 자폭 코드를 멈추지 않는 한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기지와 최후를 함께 해야 할 판이었다.
"그리셀더! 큰일 났습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우왕좌왕 하기는 시즈와 리베르타스들도 마찬가지였다. 최하층 P.W.G 구역에서 더 아래로 내려가던 이들은 왜 조아노이드들이 더 공격해 오지 않나 하고 의아해 하던 찰나 이런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설마 자기들을 못이길 것 같으니까 다 같이 죽자는 건가! 리베르타스 네 명은 한 목소리로 시즈에게 탈출을 권했다. 그러나 시즈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키토 님과의 합류가 먼저 입니다! 서두르세요!!"
시즈는 아키토를 두고 혼자만 갈 생각 같은 건 눈꼽의 반 만큼도 없었다. 지금 아키토는 우라누스의 성궤가 있는 지하 대공동에서 조아로드 세 명과 싸우고 있다. 본부 기지의 자폭 사실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도와주러 가지는 못할망정 탈출이라니. 시즈는 강하게 사념파를 방사해서 리베르타스들의 의견을 묵살하였다. 사념파를 수신한 리베르타스들은 그 이후로 두 번 다시 탈출의 탈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시즈들은 서둘러 아키토가 뚫고 내려간 통로를 따라 달려가기 시작했다. 시즈는 점점 마음이 조급해져만 갔다.
'아키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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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오오오~~!!
지하 동굴 내부에는 와펠다노스의 신모가 녹아내리면서 피어오르는 연기로 가득 찼다. 심지어는 와펠다노스 본인마저 녹는 건지 그의 몸에서도 연기가 많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키토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에너지가 다 해서 스스로 자멸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든 이건 찬스다! 이대로 저 성궤라고 불리는 돌무덤을 뚫고 들어가 유적의 항행제어구를 탈취해 오기만 하면 작전은 대 성공이다.
-불룩! 불룩!
"아니?!"
그 때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녹아내린 신모가 서서히 다른 물질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검은색의 윤기 나는 털이 갈색의 딱딱해 보이는 물질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신모들은 이리저리 뭉쳐 하나의 형태를 이루어 갔다. 그것은 놀랍게도 나무 뿌리들이였다! 나무뿌리들은 신모가 있던 곳이라면 어디서나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방으로 뻗은 나무뿌리들의 중심부가 있는 곳은 바로 와펠다노스가 서 있던 곳이었다.
놀라운 일은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나무뿌리들에서 새 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 싹들은 전부 하나의 나무로 성장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라나는 나무들 사이로 정체불명의 인영(人影)이 있었다! 혹시 조아노이드? 아니다. 조아노이드가 식물도 아닌데 어떻게 나무뿌리에서 태어난단 말인가. 게다가 헤드 센서의 반응도 조아노이드의 그것이 아니었다. 온 몸이 녹색의 털 뭉치로 뒤덮인 듯 한 그들은 팔다리가 있다는 것과 직립 보행을 한다는 것 빼고는 인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이끼나 풀로 사람 형태를 만든 것만 같아 보였다.
'.....결국 돌아왔구나. 본래의 모습으로......'
발카스는 유적의 위에서 갑자기 생겨난 울창한 밀림을 보며 신음하였다. 와펠다노스의 에너지 제한이 다 되서 결국 그의 본 모습을 봉인했던 것이 풀리고 만 것이다. 그 때 와펠다노스가 발카스에게 무언가를 건네면서 말했다.
"박사님. 조아 크리스털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와펠다노스가 내민 것은 조아 크리스털이었다! 그리고 연기가 걷힌 후 나타난 그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마치 커다란 곤충의 형태를 가진 그는 몸의 색깔도 검은색 계통이던 이전과는 달리 녹색 빛을 띠게 되었다. 발카스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 조아 크리스털을 받아 들었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만 와펠다노스에게 조아 크리스털은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와펠다노스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부터, 제 왕국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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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신도청 남탑 옥상 헬리포트. 이곳에서는 지금 케이들과 앱톰 -자기를 카브라알이라고 주장하는- 과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앱톰의 오른쪽 가슴 부위의 파란색 갑각 부분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거나 먹어라! 가이버 I !!>
-키이이잉...
빛나는 모양으로 봐서는 무슨 생체 열선포 같았다. 그것도 충전 시간이 꽤 긴걸 보니 위력이 상당히 강력한 무기 같았다. 케이와 베르단디, 하야미는 즉시 양 옆으로 흩어졌다. 바로 그 직후 카브라알의 가슴에서 강력한 빔이 발사되었다.
-쿠와아아!!
방금 전까지 케이들이 서 있던 자리를 카브라알의 빔이 훑고 지나갔다. 빔이 그친 후 바닥에는 깊은 고랑이 패여 버렸다. 대체 무슨 무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강력한 위력의 빔이었다. 다만 발사할 때까지의 타임 로스가 꽤 길고 사용자의 움직임도 제한되어서 케이들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빔은 이미 아무도 없는 자리를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방금 전에 앱톰이 발사한 빔은 '모레클 엑셀레이터(분자 가속기)'라고 불리는 무기다. 제압 이후 일본 지부에서 새롭게 개발한 하이퍼 조아노이드 '장갈로'의 주 무장으로 조사 대상의 분자 운동을 급속도로 가속시켜 상대를 단 십 수초 만에 기화시켜 버리는 무서운 무기다. 강력한 재질의 물체를 파괴하려면 출력을 그 만큼 더 올려야 하는 보통의 생체 열선포와는 달리 목표의 재질에 관계없이 일정한 출력만으로도 완전히 파괴해 버릴 수 있는 무기다. 다만 제조 방법이 극히 복잡한데다가 발사 시에는 사용자의 움직임이 크게 제한되고 발사 딜레이가 큰데다가 결정적으로 사정거리가 겨우 10m 정도밖에 안돼서 대량 채용까지는 이르지 못한 무기다.
<흥, 피했다 이거냐. 하긴 이런 무기는 발사까지 시간이 너무 걸리는 게 단점이지.>
한 번 코웃음 친 앱톰은 이번에는 왼 팔에 달린 철퇴(바이퍼 프레일)를 휘둘렀다. 순식간에 앱톰의 팔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철퇴를 공중에서 네 다섯 번 휘휘 돌린 직후 카브라알이 케이들에게 철퇴를 휘둘렀다.
-부웅!
-콰아앙!!
철퇴의 위력은 굉장했다. 다행히 피했기에 망정이지 제대로 맞았다면 아무리 가이버라 해도 치명상을 입을 위력이었다. 십 수 톤의 헬기가 거칠게 착륙해도 끄떡없을 정도의 두꺼운 콘크리트 바닥이 형편없이 깨져 나갔다. 앱톰은 다시 철퇴를 회수하였다. 그리고 재공격을 위해 다시 휘휘 휘둘렀다. 케이들은 바짝 긴장한 채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반격은 엄두도 못 냈다. 저건 틀림없이 앱톰이다. 앱톰을 구하러 와 놓고는 앱톰을 쓰러트린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은가.
<자! 이번에도 피해봐라!! 애송아!!>
-부우웅!!
앱톰의 철퇴가 다시 날아왔다. 이번에도 케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피해 다니기만 하였다. 앱톰의 철퇴가 달린 오른팔은 마치 고무줄처럼 자유자재로 늘어나면서 멀리까지 철퇴를 날려대었다.
-콰아앙!
이번에도 케이는 간발의 차로 철퇴를 피했다. 철퇴같이 무게로 공격하는 무기는 한 번 공격이 빗나가면 다음 공격까지 시간차가 꽤 나는 편이다. 그 틈을 타서 케이는 철퇴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졌다. 앱톰이 다시 철퇴를 회수하여 재공격을 시도하였다.
-콰앙! 카가각!!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공격을 해 왔다. 철퇴가 한 번 내리쳐 진 직후 갑자기 철퇴가 그 자리에서 방향을 바꿔서 날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처럼 회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진 그 자리에서 마치 미사일처럼 목표를 향해 바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 목표는 하야미였다!
"하야미씨!!"
-부웅!
하야미는 철퇴가 날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케이가 황급히 하야미 쪽으로 달려가려 하였지만 그와는 반대 방향에 있었기 때문에 시간에 댈 수가 없었다. 하야미가 철퇴에 박살나기 직전, 케이의 어깨에 앉아 있던 베르단디가 황급히 정령을 소환하였다.
"에어 버그 스파이러리!"
-휘이이잉!!
순간 하야미의 몸을 바람의 정령이 강하게 밀쳤다. 간발의 차로 하야미는 철퇴를 피할 수 있었다. 자신의 공격이 빚나가자 앱톰 -카브라알- 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분명히 명중이 확실한 상황이었는데도 저 하야미라는 녀석은 그걸 피해낸 것이다. 아니, 하야미가 피했다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하야미를 밀친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직접 피했다고 보기에는 자세가 엉망으로 무너졌었으니까. 누가 그랬을까 하며 의아해 하던 앱톰은 케이의 어깨에 무슨 조그만 인형 같은 것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물론 진짜 인형일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인간과는 다른 파동도 감지되었다. 그렇다면....
<쿡쿡쿡, 누가 요술을 부렸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 천상계 여신 계집이 함께하고 있었군.>
앱톰이 조그만 크기의 베르단디를 노려보자 케이가 베르단디를 지키려는 듯이 손으로 베르단디를 살짝 가렸다. 그러면서 케이는 앱톰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제발 정신 차려! 앱톰!! 왜 우리가 싸워야 해! 우린 널 구하러 왔단 말이야!!"
케이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앱톰은 그저 웃기만 하였다. 그 때 하야미가 케이 옆으로 걸어 와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소용없어, 케이. 지금 저건 앱톰이지만 동시에 앱톰이 아니기도 해. 지금의 저건 카브라알이야. 말로 한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냐."
사념파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앱톰을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앱톰의 몸은 카브라알이 조종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설득한다고 카브라알이 앱톰을 놔줄 리는 만무했다. 분명한 건 지금 저 몸만큼은 틀림없이 앱톰 본인이라는 점이다. 공격해봐야 부상을 당하는 건 앱톰의 몸. 원격 조작을 하는 카브라알이 데미지를 입을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카브라알의 수법을 간파해내서 그걸 깨트리지 않으면 현 상황을 타개하는 건 불가능했다.
<어떠냐, 가이버 I. 시험 삼아 한 번 메가 스매셔라도 쏴 보지 그래? 가만히 맞아 줄 테니 말이야.>
"뭐...뭐라고?!!"
<쏴 보라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 탈출하려면 그 수밖에 없다고. 낄낄낄.>
카브라알은 주위를 가리키며 웃었다. 상공에는 비행형 조아노이드 비카르르 무리가, 클라우드 게이트 벽면에는 바모아 부대가 생체 열선포를 겨누고 있다. 게다가 구출하려고 했던 앱톰의 육체는 카브라알에게 완전히 지배당해서 케이들을 공격하고 있다. 이 최악의 상황에서 탈출하려면 일단 지금 싸우고 있는 앱톰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앱톰은....
<쏘지 못하겠지? 모리사토 케이군. 가이버 III 마키시마 아키토라면 주저하지 않고 쐈을걸?>
케이가 머뭇거리자 카브라알이 케이를 비웃었다. 역시 그의 생각대로였다. 정에 휘둘려 확실한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점. 함께 싸워왔던 동료가 자기를 죽일 작정으로 공격을 하고 있는데도 맞서 싸우기는 고사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도망이나 다니는 한심한 모습.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케이는 다시 태어난 무라카미에게 패했고 결국에는 아키토에게 기간틱을 뺏겼다. 카브라알은 그러한 케이의 심성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쏠 테면 쏴보라는 식의 배짱을 부릴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다 할지라도 가까이 알고 지내던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짓은 할 수 없는 인간. 그것이 바로 케이였다.
<그런 나약한 마음 때문에 넌 전사로서는 실격이야, 모리사토 케이. 그리고 그 마음이 바로 이 자리에서 널 죽일 것이다.>
"웃기지 마!!"
그 때 케이의 옆에 있던 하야미가 카브라알에게 소리쳤다. 하야미는 분노한 눈으로 카브라알을 쏘아보며 외쳤다.
"인질을 잡는 치사한 짓이나 하는 네 놈들은 케이를 우롱할 자격이 없어!! 케이의 그 마음이야 말로 가장 강한 마음이야!!"
카브라알은 하야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하야미를 보던 카브라알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호오? 조아노이드처럼 생겼는데도 사념파가 왜 안통하나 했더니 이제 보니 실패작인 손종실험체였군.>
"닥쳐!! 난 실패작이 아냐! 나는 네놈들과 싸우기 위해, 먼저 간 동료들의 유지를 이어가기 위해 자진해서 이런 몸이 되었다!"
실패작이라니, 당치도 않은 말이다. 오히려 대성공이다. 크로노스가 강제로 심어놓은 바이러스로 부터 도망치면서 동시에 조아로드의 사념파에 굴복하지 않는 몸, 그것이 바로 손종 실험체. 원래 우연히 만들어지는 불완전한 개체인 손종 실험체를 일부러 만드는 무모한 실험이 결국 성공해서 이렇게 하야미가 살아남았는데 그게 성공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모두의 의지와 생명이 이루어낸 기적을 실패작으로 규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훗, 그렇다면 지금 당장 네 동료들에게 보내주마!>
-부웅!!
카브라알이 다시 오른 팔의 철퇴를 하야미에게 휘둘렀다. 하야미는 이미 공격을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몸을 움직여서 그걸 피했다. 그러나 철퇴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 갑자기 방향을 바꿔서 하야미의 등 뒤를 향해 날아갔다. 너무나 빠른 속도에 하야미는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하야미는 이번에는 도저히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바로 그 순간!
-퍼억!!
<아니?!>
놀랍게도 케이가 오른 팔로 카브라알의 철퇴를 정면에서 막아 내었다. 철퇴는 케이의 오른 손에 꽉 붙잡혀 버려서 이번에는 회수가 되지 않았다. 카브라알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가던 철퇴를 가이버 I 이 너무나 손쉽게 막아내자 순간 깜짝 놀랐다. 케이는 카브라알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카브라알. 너희는 절대로 알 수가 없을 거야. 우리가 싸우는 이유를."
<흐..흥! 그 잘난 이유가 대체 뭐냐.>
여유 있는 척 하고 있는 카브라알이지만 솔직히 그다지 여유가 없었다. 기간틱도 아닌 가이버 I이 철퇴를 멈춰 세운 것도 놀라운데 단 한손으로 자기 손바닥보다 열배는 더 커다란 철퇴를 강하게 붙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무기를 회수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케이가 오른손에 힘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신뢰라는 끈을 위해.... 그리고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야!!"
-퍼어억!!
케이가 손을 움켜쥐자 그 힘을 견디지 못한 카브라알의 철퇴가 마치 수박 터지듯이 깨져 나갔다. 부서진 철퇴의 파편들이 케이의 발아래에 떨어졌다. 카브라알뿐만이 아니라 하야미나 베르단디까지 깜짝 놀랐다. 이것이 케이의 힘, 바로 마음의 힘이었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반드시 살아남겠다는 강한 의지. 그것이 바로 카브라알의 철퇴를 멈춰 세운 것이다.
<크...크윽! 그렇다면 이거나 먹어라! 모레클 엑셀레이터!!>
-키이이이....
그 때 카브라알의 오른쪽 가슴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아까 맨 처음 썼던 무기, 모레클 엑셀레이터다! 케이들이 즉시 양 옆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직후 카브라알의 오른 쪽 가슴에서 모레클 엑셀레이터가 발사되었다.
-쿠와아아!!!!
그러나 이번에도 형편없이 빚나갔다. 무기가 발사됐을 때는 이미 케이들은 그 자리를 피한 뒤였다. 모레클 엑셀레이터의 빔은 그 자리에 남아 있던 철퇴의 파편들만 깨끗이 기화시켜 버렸을 뿐이다. 그 광경을 보며 케이들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확실히 굉장한 위력의 무기이기는 하지만 발사 준비부터 전부 다 보일 뿐만 아니라 발사까지의 딜레이까지 있기 때문에 피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다. 즉 지금의 케이들에게는 통할 무기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아무 대책도 없이 그걸 또 쏘다니?
<....뭐, 좋다. 이런 단순한 무기가 내 취향이기는 하지만 가이버 I에게는 안 통한다면.....무장 변경이다!>
카브라알은 방금 전까지 철퇴가 달려있던 왼쪽 손목을 보며 말했다. 그 직후 갑자기 그가 왼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잘려진 왼쪽 손목에서 뭔가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슈우욱!
이윽고 왼쪽 손목 부근에는 아주 뾰족한 창이 돋아났다. 무장 변경이 완료되자 카브라알은 그 창을 바닥에다 대고 힘껏 꽂았다.
-콰직!
창은 콘크리트 바닥에 그대로 박혔다. 하지만 그냥 보기에는 아까의 철퇴보다 나을 게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창끝이 꽂인 곳을 중심으로 커다란 구덩이가 순식간에 생겨났다. 그것도 깨져 나간 게 아니라 모래가 무너지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 것을 본 케이는 직감적으로 저것이 가이버의 고주파 소드와 같은 고주파 병기임을 알아내었다. 케이의 추측대로 저 창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관통한 물체에 고주파수를 흘려보내 주위의 분자 구조를 완전히 파괴하는 '고주파 스피어'였다!
<자, 그럼 이제 제 2라운드다. 가이버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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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도쿄 도청 옥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클라우드 게이트의 종합 상황실에서도 다 보고 있었다. 종합 상황실에서는 지금 다들 바짝 긴장한 채 가이버들과 앱톰의 '대결'을 보고 있었다. 가이버들이 앱톰을 구하러 온 것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지금 저들의 행동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건 누가 봐도 목숨을 건 대결 아닌가. 혹시나 연극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러나 연극이라고 하기에는 앱톰의 공격들이 하나같이 다 위험한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진짜 대결이라고 하기에도 이상한 것이 가이버들은 그저 도망만 다닐 뿐 이렇다 할 반격을 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은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 이었다. 아까 실험실에서 탈출할 때도 앱톰이 가이버들과 '합류'하려고 했다고 보기에도 어딘가 이상했었는데 이젠 저렇게 가이버를 죽일 기세로 덤비다니. 저들이 왜 저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앱톰도 문제지만 지금 가이버들은 사방으로 포위된 상태다. 상공에는 비카르르 부대, 클라우드 게이트에는 바모아 부대가 가이버들을 노리고 있다. 이런 절대적인 위기 상황에서 가이버 I 은 어째서 기간틱으로 변신하지 않는 걸까?
'아니, 어쩌면..... 변신을 '못하는 게' 아닐까?'
안한다기 보다는 못한다고 보는 게 더 말이 맞을 듯싶었다. 지금의 가이버의 행동을 보자면 말이다. 기간틱으로 변신한다고 해서 꼭 앱톰을 때려잡을 필요는 없다. 주위의 다른 조아노이드 부대를 순식간에 박살내서 포위를 뚫은 다음 탈출을 하던가 아니면 앱톰을 잠시 무력화 시켜서 데리고 탈출하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려면 기간틱 형태는 필수였다. 신이 관제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투 현장을 도청 옥상에 한정시켜라! 놈들을 절대 도망치게 해서는 안 된다!"
어쨌든 지금은 일단 지켜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앱톰이나 가이버나 둘 다 크로노스의 적이기는 마찬가지였고 이들이 지금 연극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으니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공격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우선은 모두 그 자리에서 대기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비카르르 소대, 도청 옥상으로 강하 중!!"
그 때 관제원이 뜻밖에 보고를 하였다. 잠시 후 메인 스크린에 상공에서 대기 중이던 비카르르들이 도청 옥상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관제원이 당황해 하며 신에게 확인을 요청하였다. 혹시나 신이 사념파로 직접 명령을 내렸을 것 같아서였다.
"저....저건 각하의 지시십니까?"
"무슨 바보 같은 소리! 난 저런 지시 내린 적 없어!'
신의 말을 들은 관제원들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붙잡고 비카르르들을 호출하였다. 그러나 비카르르들은 전혀 응답이 없었다. 틀림없이 통신을 수신했을 텐데도 비카르르들이 이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신이 조아 크리스털을 활성화 시키며 사념파를 방사하였다.
-키이잉!
<비카르르들이여! 대답하라! 왜 내 지시를 어긴 거냐! 난 현 위치를 지키라고 명령했다!!>
<......>
<내 말 안 들리나! 어서 대답해!!>
<......>
그러나 비카르르들은 신의 사념파마저 거부한 채 계속해서 도청 옥상으로 강하 중이었다. 조아노이드가 조아로드의 사념파를 거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비카르르들을 사념파로 통제할 수가 없었다.
'헉! 이...이건!!'
그 순간 신은 경악스러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사념파에 다른 사념파가 끼어들어 외부로 방사되는 것을 차단하고 있던 것이다! 사념파가 봉쇄당했으니 비카르르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대체 누가 조아로드의 사념파를 봉쇄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같은 조아로드가 아닌 이상은....
'설마! 쿨매그닉 놈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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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신 녀석, 이제야 자기 사념파가 봉쇄 당한 것을 눈치 챘군."
신의 예상대로 사념파를 봉쇄한 것은 쿨매그닉 일당이었다. 신의 우려대로 이들이 드디어 행동을 개시한 것이다. 카브라알이 앱톰의 육체를 조종하고 쿨매그닉이 자신의 사념파로 신의 사념파를 봉쇄한다. 그리고 밖에 나와 있는 조아노이드들은 자빌이 컨트롤한다. 피아 전력차는 1:3. 사념파 승부에서 신이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물론 카브라알은 앱톰의 컨트롤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1:2 지만 여전히 상대가 안 되는데다가 지금 쿨매그닉들이 있는 곳의 설비를 이용하면 사념파를 더욱 더 확대 증폭할 수 있기 때문에 이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신이 사념파의 봉쇄사실을 알아차리기는 했지만 여기에 있다면 당분간은 신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감시 시스템을 전부 다 다운시켜서 이들의 이동 장면을 보이지 않게 하였으니까. 그리고 장소를 들킨다 해도 별로 상관없다. 이쪽은 세 명. 신은 단 혼자. 누가 와서 도와줄 사람도 없다. 머리가 조금이라도 돌아가는 녀석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싸움을 걸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노사. 장난은 적당히 하시고 이제 슬슬 끝내시죠."
자빌이 가부좌를 튼 채로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카브라알에게 푸념하듯이 말했다. 앱톰을 조종하고 있는 카브라알이 장난삼아 승부를 '일부러' 맺지 않는 걸로 알고 짜증을 좀 부린 것이다. 신이 사념파를 봉쇄당한 것을 안 이상 정면공격은 안 해오더라도 다른 수를 쓸 지도 몰랐기 때문에 꾸물거릴 틈은 없었다. 카브라알은 여전히 자세를 풀지 않고 대꾸하였다.
"재촉하지 말게나. 앱톰을 컨트롤 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까. 잘못해서 가이버의 컨트롤 메탈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어쩔 건가."
앱톰은 기존의 조아노이드와는 완전히 다른 구조인지라 카브라알로서도 조종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맨 처음 앱톰이 폭주했던 이유도 카브라알이 앱톰의 '조종'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능력도 알아서 선택하고 무기도 자유롭게 바꾸고 있지만 대신 무장의 컨트롤에 집중하느라 몸을 움직이는 건 거의 포기하고 있는 지경이었다. 가이버들이 앱톰을 공격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컨트롤 메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비카르르의 초음파 집중조사, 해도 괜찮을까?"
지금 이들이 노리는 것은 가이버의 컨트롤 메탈. 초음파라도 쏴서 혹시나 메탈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자빌이 이런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실제로 아까 비카르르들이 초음파를 조사했을 때 가이버가 괴로워하는 것이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빌의 걱정에 쿨매그닉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걱정할 것 없어. 비카르르의 초음파로는 메탈은 파괴되지 않아. 그저 잠시 기능장애를 일으킬 뿐이지."
사실 비카르르의 초음파는 무기가 아니라 박쥐처럼 목표의 탐지와 장애물 등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일시적으로 메탈의 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뿐이다. 물론 옆에서 봤을 때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직접 당하는 당사자인 가이버 I 으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느낄 것이다. 컨트롤 메탈은 식장자의 뇌와 직접 연결돼 있으니 말이다.
"좋아, 그럼 시작하지. 자빌."
"알았어."
자빌의 조아 크리스털이 밝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비카르르들에게 다음 행동을 사념파로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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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쉬쉭!!
"으윽!!"
카브라알의 매서운 공격이 날아오고 있었다. 파괴된 오른 팔의 무장을 고주파 스피어로 바꾼 뒤 카브라알은 아주 빠른 속도로 케이들을 찔러 왔다. 케이들은 이리저리 도망 다니면서 공격을 피하기 바빴다. 비록 창이라는 무기의 특성상 찌르기 위주의 단순한 패턴의 공격이었지만 무기의 무게가 가벼워진 만큼 스피드가 아까보다 훨씬 더 빨라졌다.
-퍼퍼퍽!!
고주파 스피어가 바닥을 찌를 때마다 바닥에는 마치 개미지옥의 구덩이 마냥 커다란 구멍이 무수히 많이 생겼다. 역시 고주파수 병기답게 두꺼운 강화 콘크리트제 바닥을 아주 간단히 관통해 들어갔다. 저 정도 위력이라면 아무리 가이버의 강식장갑 이라고 해도 한 방에 뚫릴게 분명했다. 케이는 애가 탔다. 이럴 때 기간틱을 쓸 수만 있다면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데...!
"케이씨! 뭔가 이상해요!"
"뭐가!"
그 때 베르단디가 케이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위험하니까 어디론가 피해있으라고 했는데 왜 또 전투 현장으로 들어온 걸까. 게다가 지금 케이는 카브라알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같이 있다가는 카브라알의 공격에 당할 수도 있었다. 물론 분신채가 죽는다고 해서 본체인 베르단디까지 죽는 건 아니지만 (정신적 데미지는 있다고 한다) 그래도 케이로서는 베르단디의 아주 조그만 부분이라 할지라도 잃고 싶지 않았다.
"앱톰 씨의 파동이 느껴지지 않아요!"
"무슨 소리야! 앱톰의 몸은 저기 있잖아!"
-쉬이익!!
케이의 옆으로 고주파 스피어가 스쳐 지나갔다. 지금 케이는 자기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 상황인지라 베르단디의 말을 집중해서 들을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뜬금없이 파동이 느껴지지 않다니? 조종을 당하고 있다 해도 저기 있는 몸은 틀림없이 앱톰의 육체다. 파동이 느껴지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헤드 센서의 반응에도 틀림없이 앱톰의 육체라는 것이 느껴지고 있기까지 한데 말이다.
"그게 아니라 앱톰 씨의 파동이 다른 파동에 의해 억눌리고 있는 것 같아요! 마치 다른 물질이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아요!"
"다른 물질이라고?!"
도망 다니느라 정신이 없는 케이와는 달리 베르단디는 전투 현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차분하게 관찰할 여유가 있었으니 뭔가를 알아냈을 수도 있다. 케이는 다시 한 번 헤드 센서를 앱톰에게 집중시켰다. 이번에는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하였다. 물론 그 와중에도 고주파 스피어가 계속해서 날아오고 있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케이는 분석을 멈추지 않았다. 잘하면 앱톰을 카브라알의 손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아! 이...이건!!'
그 순간 케이는 헤드 센서로 뭔가를 발견해 냈다. 지금 앱톰의 몸에는....
"케이!! 위를 조심해!!"
그 순간 하야미의 외침이 들려왔다. 깜짝 놀란 케이가 하야미가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어느 틈엔가 케이의 바로 뒤 쪽 상공에 세 마리의 비카르르들이 내려와 있었다!
-위이이잉!!
"끄....끄아아아!!!"
"케이 씨!!"
케이가 머리를 감싸 쥐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비카르르의 초음파가 또 다시 컨트롤 메탈에 집중되기 시작한 것이다. 메탈이 초음파로 인해 기능 장애가 발생하면서 케이의 뇌에 그 데미지가 직접 전달되는 것이다. 머리가 깨질 것만 같은 고통에 케이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케이! 이...이런 제길!!"
하야미는 케이를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애가 탔다. 하야미의 능력으로는 공중에 떠 있는 비카르르들을 공격할 방법이 없었다. 그가 뛰어 오를 수 있는 높이보다 더 높이 떠 있는데다가 하야미의 유일한 무기인 냉기 역시 공중의 적을 공격할 능력은 없었다. 그건 베르단디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조아노이드는 천상계의 법술에 강한 저항성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지금 베르단디의 몸은 아주 작은 분신체라서 능력의 제한이 컸다. 사실 지금까지 그녀는 그 조그만 몸에 부담이 가지 않게 완급을 조절해 가며 옆에서 지원을 하는 정도로만 약하게 기술을 써왔었다. 그것조차도 지금 시점에서는 점점 피로가 쌓여 가는 상황에서 몸에 큰 부담을 주는 공격 법술을 쓸 수는 없었다.
"베르단디님! 제 몸을 공중으로 날려 주실 수 있습니까? 저 놈들을 잡아야 합니다!"
"무리에요! 공중에 띄우는 것 정도는 몰라도 지금의 저로서는 하야미 씨를 자유롭게 날게 할 수가 없어요!"
하야미의 말에 베르단디는 고개를 저으며 안타까워했다. 지금 베르단디는 조그만 몸으로 이제까지 너무 많은 법술을 써 왔다. 이 상황에서 더 무리를 할 여력은 없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하야미의 방법 역시 무모하기 짝이 없다. 원래 공중전용으로 개발된 조아노이드를 상대로 하늘을 날지 못하는 하야미가 단지 바람의 힘으로 날려가서 싸우겠다니. 자칫 잘못하면 놈들은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도청 아래로 추락할 수도 있었다.
<킥킥킥. 내 공격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보니 비카르르들의 존재를 잊었던 모양이지?>
카브라알은 잠시 공격을 멈추고 가이버 I 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고주파 스피어를 들어 올려 가이버 I 을 겨누었다. 이들이 노리는 건 컨트롤 메탈 하나 뿐. 가이버 I 의 몸뚱이 따위는 필요 없다. 이걸로 몸을 완전히 산산조각내서 머리만, 아니 메탈만 가져가면 그만이다. 저렇게 가이버 I 이 꼼짝 못할 때가 찬스였다.
<응?>
그 때 하야미가 카브라알의 앞을 가로 막아 섰다. 카브라알의 의도를 눈치 챈 하야미가 케이를 보호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둘 사이의 전투력 차가 너무 컸다. 하야미로서는 앱톰의 육체를 조종하고 있는 카브라알을 막을 수가 없었다. 카브라알은 그를 보며 코웃음 쳤다.
<흥, 실패작 주제에 날 막겠다고? 같이 저 세상으로 보내주마!>
하야미는 죽음을 각오하였다. 물론 이길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베르단디 역시 하야미의 옆에 섰다. 그녀도 있는 힘껏 케이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다. 바로 그 때였다!
"끄아아아아!!!"
-파아앙!!
케이의 비명 소리가 한 층 더 커졌다고 느껴진 순간 갑자기 식장이 해제되어 버렸다! 강식장갑이 벗겨지고 원래 모습의 케이가 나타나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크게 놀랐다. 설마 비카르르의 초음파가 식장을 강제로 벗겨낼 정도였단 말인가. 식장이 벗겨진 케이는 컨트롤 메탈이 가상의 공간으로 후퇴한 덕분에 더 이상 고통은 느껴지지 않은지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멍한 표정이었다. 마치 몽유병 환자 같은 모습으로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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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좀 뜻밖이군."
비카르르들을 조종하던 쿨매그닉 일당은 가이버 I의 식장이 벗겨지자 크게 놀랐다.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한 것이다. 아마도 초음파 공격을 못 견딘 컨트롤 메탈이 가상의 공간으로 후퇴한 것일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어쨌든 이건 낭패였다. 강식장갑이 벗겨진 지금의 모리사토 케이는 그저 보통 인간일 뿐. 지금 저 놈을 죽이면 가이버 I 을 영원히 없애 버릴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가이버 I의 컨트롤 메탈은 영원히 손에 넣을 수 없게 된다. 이들의 목적은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쳇, 할 수 없군. 자빌. 일단은 녀석을 이쪽으로 끌고 오게 해. 우선은 신병부터 확보해 두자고."
"알았어."
자빌의 조아 크리스털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비카르르 두 마리가 케이의 양팔을 하나씩 발로 붙잡고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케이는 정신을 잃었는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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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카르르들이 날아오르고 있습니다! 가이버 I, 모리사토 케이는 기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클라우드 게이트의 종합 상황실에서도 그 장면이 똑똑히 보였다. 신은 마른 침을 삼키면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 역시 설마 비카르르의 초음파가 저런 결과를 이끌어 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비카르르들의 진로는 어떻게 되나?"
"정확한 도착지점은 아직 알 수 없지만 현재 날아오는 방향과 고도로 봤을 때 이곳으로 귀환할 가능성이 큽니다."
비카르르들은 여전히 이쪽의 호출에 응하지 않고 있었다. 어쨌든 저걸 보니 쿨매그닉 놈들의 목적은 가이버 I 을 없애는 게 아니라 포로로 잡으려고 하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가이버 I 을 이용해 가이버의 비밀을 밝혀내려고 하는 것이리라. 발카스도 신과 푸르크슈탈에게 차마 얘기를 하지 못한 놀라운 비밀을. 그것이 알칸펠에 대한 반역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들은 그 비밀을 캐내려고 하는 것이다.
"비카르르들의 예상 도착지점에 경비 부대를 파견하라. 가이버 I 이 도착하면 그자의 신병은 우리가 인수한다!"
신은 관제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어쨌든 쿨매그닉들의 의도대로 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맹세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알칸펠을 위해 죽겠다고. 반역을 저지르고 있는 쿨매그닉 녀석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비명에 죽어간 그의 친구 푸르크슈탈을 위해서도....!
"쿨메그닉, 자빌, 카브라알. 이 세 신장의 소재는 파악했나?"
신이 그 때 막 생각났다는 듯이 관제원들에게 물었다. 그 세 명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가서 직접 담판을 짓든 아니면 다른 수를 쓰든 간에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아까 전에 이 세 신장의 소재를 파악하라고 명령을 내려뒀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마비된 감시 시스템이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설사 찾아낸다 해도 그 세 명 모두 다 조아로드라는 게 문제였다. 공작원들에게 사념파로 자기들 위치를 절대 말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면 공작원은 거기에 저항할 수가 없다.
가이버뿐만이 아니라 그 세 명까지 적이 됐다고 생각하니 신은 점점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념파까지 놈들에게 봉쇄돼서 전투 병력의 통제도 원활하지 못했다. 손발뿐만 아니라 눈까지 전부 다 봉쇄당한 채 갇혀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잡혀오고 있는 케이를 이쪽에서 확보해 두면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음모를 저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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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비카르르들이 케이를 붙잡고 날아오르는 장면을 하야미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큰 소리로 케이를 불렀지만 케이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쫓아가서 케이를 구하고 싶었지만 하늘을 날 수 없는 하야미로서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케이!! 제발 정신 차려!! 눈을 뜨란 말이야!!!"
지금 케이가 잡혀가 버리면 모든 게 끝이다. 앱톰을 구하는 것도, 크로노스와의 싸움도, 야마무라 교수와 오다기리 주임, 그리고 다른 동료들의 유지도 전부 끝이다!
-휘잉!!
그 순간 하야미는 뭔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그 직후 황급히 몸을 옆으로 피했다. 그러자 하야미의 바로 옆으로 고주파 스피어가 스쳐 지나갔다. 빗나간 스피어는 그대로 바닥에 박혔다. 그리고 격렬한 진동이 그 주위에 전해졌다.
-쿠와아아!!
"우아악!!"
고주파 스피어의 위력은 엄청났다. 스피어에 당한 바닥 부근에 어른 남자가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 조금만 피하는 게 늦었다면 하야미는 저 스피어에 박살이 났을 것이다. 하야미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카브라알을 바라보았다.
<흥, 용케도 피했군. 허나 너 혼자서 발버둥 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으냐.>
"우윽....!"
<이미 케이는 내 손아귀에 있다. 너희들은 진 거야. 그냥 얌전히 이 고주파 스피어에 박살나는 게 좋을 거다.>
하야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꼭 쥔 그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이제 모든 게 끝장이란 말인가. 도대체 난, 우리는 뭘 위해서 이제까지 싸워 왔단 말인가.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건 생체실험을 한 동료들의 의지와 저항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야마무라 교수와 오다기리 주임의 혼도 여기까지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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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씨!! 제발 정신 차리세요!!"
베르단디는 끌려가는 케이의 얼굴 바로 옆을 날면서 그를 깨우려 하였지만 케이는 미동조차 안 했다. 베르단디가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았는지 비카르르들은 그녀의 존재를 무시하였다. 그렇다고 지금의 베르단디로서는 비카르르를 격추 시킬 능력이 없었다. 베르단디는 작은 몸의 미약한 힘이나마 사용해서 케이에게 회복 법술을 걸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그를 깨우려는 것이다.
"케이 씨! 제발...!"
그 때 베르단디의 눈에 케이의 입술이 살짝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너무나 조심스럽게 움직여서 처음에는 잘 몰라볼 뻔 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비로소 그것을 파악해 낼 수 있었다. 그녀는 즉시 케이에게서 떨어져서 아래로 급강하 하였다. 베르단디가 케이에게서 충분히 멀어졌을 바로 그 때였다!
"가이버어어어!!!!!"
-쿠와아아앙!!!
갑자기 폭음이 울려 퍼지면서 케이의 몸 주위에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강식장갑이 소환될 때 일어나는 충격파였다. 그 충격파로 인해 케이를 붙잡고 날아오르던 비카르르 두 마리는 그대로 박살나 버렸다. 그리고 타 차원에 있던 강식장갑이 소환돼서 케이의 몸에 합체 되었다. 가이버 I, 케이의 완벽한 부활이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현장에 있던 모두가 크게 놀랐다.
-푸슝!! 푸슝!!
재식장을 완료한 가이버 I, 케이는 즉시 반격을 하였다. 우선 헤드빔을 난사해서 그 때까지도 주위에 날아다니던 비카르르들을 공격하였다. 현장 상공에 있던 비카르르 다섯 마리는 예기치 못한 가이버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케이의 헤드빔은 정확하게 비카르르들의 머리나 심장 부위를 정확히 직격해서 일격에 끝장을 내었다. 순식간에 비카르르 다섯 마리가 전멸하였다.
-큐우우웅!!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케이는 비카르르를 전멸시키자마자 즉시 클라우드 게이트의 외벽 발사대에 대기 중이던 바모아 부대에게 소닉 버스터를 퍼부어 버렸다.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있던 건 바모아 부대도 마찬가지였고 이들 역시 케이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키아아아!!"
"카아악!!"
-부와아아아!!!
소닉 버스터의 분자 해체 공격을 받은 바모아 부대가 순식간에 소멸돼 버렸다. 이렇게 해서 케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들을 포위하고 있던 조아노이드 부대를 전멸시켰다. 그리고 그는 중력 제어구를 조종해서 다시 도청 옥상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런 그의 어깨 위로 베르단디가 다시 날아왔다.
"케이 씨! 무사하셨군요! 다행이에요...."
"걱정 끼쳐서 미안해, 베르단디. 하지만 이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어."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이라 다들 모두 얼이 빠진 상태였다. 하야미 역시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아까 분명히 케이는 기절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순식간에 재식장을 하고는 조아노이드 부대를 전멸 시켜 버리다니. 게다가 '이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라고? 그렇다면 이게 다 일부러 한 거란 말인가?
<너...너 이놈! '이것 밖에는' 이라니! 설마 아까 식장을 일부러 벗었다는 말이냐?!>
카브라알 역시 당황해 하며 말했다. 케이는 카브라알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 아까 그건 내가 일부러 해제한 거야.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조아노이드 부대를 단숨에 해치울 찬스를 만들기 위해."
비카르르의 초음파 조사로 인해 컨트롤 메탈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식장자인 케이 역시 머리가 깨질 것만 같은 고통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대로 조금만 더 초음파를 맞았다면 틀림없이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 기능을 유지하지 못하는 가이버의 컨트롤 메탈은 자기 방어 기능을 가동시킬 수가 없게 되고 카브라알의 공격에 그대로 끝장났을 것이다.
여기서 케이는 일부러 식장을 벗었다. 그렇게 해서 일단 놈들의 공격을 중지시키고 케이를 포박해서 방심하고 있을 때 다시 재식장을 해서 조아노이드 부대를 박살내고 포위망을 뚫는 작전을 생각해낸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아까 전개된 그대로다. 케이를 붙잡고 올라간 비카르르 두 마리를 재식장시의 충격파로 날려버리고 놈들이 당황해하는 그 찰나의 순간을 이용해서 나머지 전부에게 신속히 공격을 한 것이다.
그런데 케이의 작전에 차질이 생겼었다. 바로 베르단디였다. 케이가 끌려가자 그를 도우려고 베르단디가 케이의 바로 곁에 바짝 붙어 따라온 것이다. 식장을 하게 되면 충격파로 인해 베르단디까지 날아가게 된다. 하지만 지금 당장 변신한다고 큰 소리로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놈들에게는 케이가 계속해서 기절한 것처럼 보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텔레파시 같은 재주도 없는 케이는 그래서 베르단디만이 볼 수 있도록 입을 살짝 움직여서 입모양만으로 말을 하였다. '어서 피해, 변신할 꺼야.' 라고. 다행히 베르단디는 케이의 입의 움직임을 아주 정확히 이해하였다.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케이 씨 곁에 있었군요. 죄송해요....저 때문에 식장이 방해돼서...."
"아냐, 말도 안하고 이런 작전을 한 내가 나쁜걸. 그래도 베르단디가 내 말을 알아들어서 정말 다행이야."
하야미는 케이의 설명을 듣고 난 후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이제 형세는 다시 대등해졌다. 물론 아직 앱톰이 인질로 잡혀있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주변의 다른 적은 이제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다시 재식장한 케이의 몸은 아주 깨끗했다. 아까 전에 엔자임 III들과 싸우면서 생긴 상처들이 말끔하게 치유된 것이다. 강식장갑을 벗었다가 다시 입는 과정에서 강식 세포들이 재구성된 것이다.
케이는 카브라알을 향해 분명히 선언하였다.
"자! 이제 내 차례다, 카브라알!! 이제 이 싸움을 끝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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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 먹었군....."
클라우드 게이트의 종합 상황실에서 신은 나직하게 탄성을 올렸다. 이제 보니 가이버 I 은 위기상황을 탈출하기 위해 일부러 식장을 벗고는 잠시 포로가 됐던 것이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극도의 고통 속에서도 그런 묘안을 짜내다니. 이제까지 신 자신을 비롯해서 크로노스의 모두가 가이버 I, 모리사토 케이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한 방 먹은 기분이 드는 것은 자신뿐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는 세 신장 녀석들도 크게 놀랐을 것이다.
"저, 각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때 관제원 한 명이 신에게 다음 행동을 물었다.
"다른 비카르르 소대를 출동시킬까요? 어쨌든 비카르르의 초음파가 가이버에게 통한다는 게 입증된 이상....."
"아니, 출동시키지 않는다. 전 대원은 현 위치에서 대기하라."
신은 더 이상의 후속 병력을 내보내지 않기로 하였다. 비카르르뿐만이 아니라 바모아 부대도 출격 금지 명령을 내렸다. 보내봐야 쿨메그닉 일당의 사념파에 지배당할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가이버 I 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쿨메그닉 녀석들의 음모를 분쇄하는 것도 중요했다. 더 이상 녀석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전 대원은 나의 사념파가 미치는 범위 안에서만 행동하라! 절대로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이제 전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앱톰을 배후 조종하는 거야 쿨메그닉 일당이겠지만 가이버 I 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제 녀석들이 어떤 수를 들고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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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이 싸움을 끝낸다? 그거 재미있군. 드디어 네 친구인 이 앱톰의 몸을 공격할 생각이 들었나 보지?>
카브라알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고주파 스피어를 케이에게 날렸다.
<어디 한 번 공격해 봐라! 설령 공격당한다 해도 죽는 건 앱톰이지 내가 아니야!!>
-쉬이익!!
고주파 스피어가 케이를 향해 똑바로 날아왔다. 그 순간 케이 역시 고주파 스피어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갔다. 고주파 스피어가 케이에게 명중하기 직전 케이가 몸을 옆으로 살짝 틀었다.
-휘잉! 콰아앙!!
빚나간 고주파 스피어가 바닥에 꽂히면서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케이는 그렇게 살짝 고주파 스피어를 피했다. 공격을 아주 아슬아슬하게 최소한의 동작으로만 피하면 피한 직후 바로 반격을 가할 여지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고주파 스피어의 약점 또한 알아냈기 때문에 이런 무모해 보이는 짓을 한 것이다. 고주파 스피어의 약점, 그것은 신축성이 뛰어난 팔을 최대한으로 늘렸을 때 스피어가 다시 복귀하는 데에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케이는 바로 이것을 노린 것이다.
"앱톰은 반드시 구한다!!"
-쉬익! 슈칵!!
달려가면서 케이는 최대한으로 늘어난 카브라알의 왼 팔을 고주파 소드로 베어 버렸다. 고주파 스피어를 포함한 왼 팔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 식으로 카브라알의 고주파 스피어를 봉쇄한 케이는 그대로 전속력으로 카브라알에게 달려들었다. 케이가 고주파 소드를 전개한 채로 그대로 높이 뛰어 올랐다.
"간다! 카브라알!!"
<이...이 놈이 감히!!!>
케이가 뛰어 들어오자 당황한 카브라알이 다른 무기를 전개하였다. 그의 머리 왼쪽에 있던 짧은 가시들이 길게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강한 전기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뿔에 강력한 고전압을 가해서 일정 필드를 형성, 그 안에 들어온 적을 그대로 감전시켜 태워버리는 무기였다. 지금처럼 적이 달려들어올때 방어용으로 적합한 무기였다.
-파지지직!!
-부우웅!!
그러나 케이는 그 안으로 뛰어들지 않았다. 마치 이럴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케이는 중력 제어구를 조작해서 위로 솟구쳐 올랐다. 카브라알이 깜짝 놀라 위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케이는 카브라알의 등 뒤로 뛰어 넘어간 이후였다. 뛰어 넘어가면서 케이는 그 자리에 남은 베르단디와 하야미에게 소리쳤다.
"둘 다 이쪽으로 와요!!"
그 소리를 들은 베르단디와 하야미는 카브라알을 피해 멀리 빙 돌아 케이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케이들은 카브라알의 등 뒤에 몇 미터 떨어진 지점에 다시 모였다. 그러자 카브라알이 눈에 띄게 당황해 하는 것이 보였다. 등 뒤에 모였다고 해도 등을 빼앗겼다고 할 수가 없는 게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대응시간은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뒤돌아서면 되는 걸 가지고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키이이잉!!
잠시 후 카브라알이 다시 흉부의 모레클 엑셀레이터를 가동시키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 정확도가 떨어지고 반응이 느린 그런 무기를 왜 또 쏘는 것일까? 그런데 이번에는 방향까지 완전히 틀렸다. 케이들을 향해 쏘는 게 아니라 정 반대방향, 케이들이 처음에 있던 그 자리를 향해 쏘려는 것이다. 그 방향에는 아까 케이가 자른 고주파 스피어가 달린 앱톰의 왼 팔 밖에는 없었다. 베르단디와 하야미는 도대체 카브라알이 뭘 하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케이는 뭔가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쿠와아아앙!!!
그 때 모레클 엑셀레이터가 발사되었다. 모레클 엑셀레이터의 빔은 고주파 스피어의 파편들을 깨끗이 태워 버렸다. 하지만 단지 그 뿐이다. 지금 이 공격으로 케이들이 타격을 입을 일은 전혀 없다. 즉 누가 봐도 지금의 이 공격은 아무 의미 없는 에너지 낭비일 뿐이었다. 베르단디와 하야미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보고 있었지만 케이만큼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습니다."
"수수께끼? 난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어."
하야미뿐만이 아니라 베르단디까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케이는 베르단디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물론 가이버의 마스크 때문에 보이지는 않지만)
"베르단디 덕분이야. 덕분에 모든 비밀이 풀렸어."
"네? 저요? 제가 뭘 어떻게 도와드렸는지...."
"아까 나한테 말했잖아. 앱톰의 파동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그게 결정적인 힌트였어."
아까 전에 베르단디는 카브라알이 조종하고 있는 앱톰의 몸을 그녀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앱톰 특유의 파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뭔가 다른 파동이 흘러나오고 있던 것이다. 마치 앱톰의 몸에 무슨 이물질이 박힌 것처럼. 베르단디는 그 사실을 케이에게 말해주었고 케이는 즉시 헤드 센서로 앱톰의 몸을 자세히 스캔해서 베르단디의 말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결정적인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지금의 앱톰에게는 뇌가 없습니다!"
"뭐...뭐라고?!!"
"지금 앱톰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뇌는 다른 생물체의 체조직으로 만들어진 가짜 뇌입니다."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뇌가 없다니! 게다가 다른 생물체의 체조직이 진짜 뇌 행세를 하고 있다니. 하야미와 베르단디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앱톰의 육체는 다른 생물을 융합 포식하는 능력이 있다. 앱톰 본인의 의지가 작용하지 않는다면 그 몸의 세포가 본능적으로 대상을 흡수하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그 가짜 뇌는 앱톰의 육체에 융합되지 않을 수 있던 걸까?
"그 가짜 뇌는 앱톰의 뇌파와 비슷한 신호를 송출해서 앱톰 육체의 세포들을 속인 겁니다. 진짜 앱톰의 뇌 행세를 한 거죠."
level 4 실험실에서 스텔스 조아노이드를 잡아먹은 앱톰의 세포가 그 육체를 다시 재구축할 당시 이미 가짜 뇌가 그 자리에 있던 것이다. 앱톰의 세포들이 육체를 다시 만들 당시 세포들은 뇌가 이미 있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뇌의 복원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육체가 구성되자 그 가짜 뇌는 카브라알의 사념파를 수신하는 일종의 수신기 역할을 해서 카브라알의 의지에 따라 앱톰의 몸을 움직인 것이다. 맨 처음 앱톰이 복원되자마자 엉망으로 폭주했던 이유는 카브라알이 앱톰의 몸을 다루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그럼 그 가짜 뇌는 언제 들어간 거죠? 우린 앱톰 씨의 부활을 계속해서 지켜봤지만 그런 게 들어가는 모습은 보지 못했잖아요."
베르단디가 케이에게 질문을 하였다. 베르단디의 말대로 앱톰의 육체가 재구축될 당시 무슨 이물질 같은 게 들어가는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베르단디뿐만이 아니라 케이나 하야미도 보지 못했다. 즉, 진짜로 무슨 이물질이 외부에서 들어간 적은 없다는 뜻이다. 케이의 대답이 이어졌다.
"그건 내 추측이지만, 아까 최초로 잡아먹힌 그 스텔스 조아노이드의 육체 속에 처음부터 들어있던게 아닐까 싶어."
순전히 케이의 추측일 뿐이지만 정황상 그렇게밖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 스텔스 조아노이드는 이번 작전에 투입되기 전에 재조제를 받고 그 가짜 뇌를 몸속에 담아 뒀을 것이다. 그리고 앱톰의 세포가 그 조아노이드를 잡아먹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기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그 스텔스 조아노이드는 처음부터 앱톰에게 잡아먹히도록 하기 위해 실험실 안으로 들어가게 한 것이라는 말이 된다.
어쨌든 이것으로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카브라알이 이제까지 발사한 총 세 번의 모레클 엑셀레이터(분자 가속기) 공격. 첫 번째야 케이들을 노리고 쏜 것이지만 두 번째 부터는 전혀 의미 없는 공격이었다. 허점이 너무 커서 피하기가 쉬운 그 공격을 연거푸 세 번이나 쏜 이유. 게다가 마지막은 케이들을 노리고 쏜 게 아니라 잘려져 나간 왼 팔의 파편들을 노리고 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본체로 부터 떨어져 나간 앱톰의 체조직을 가능한 한 빨리 없애버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잘려져 나간 체조직들을 그냥 내버려 두게 되면 그 체조직은 즉시 세포 분열을 계시, 순식간에 원래의 진짜 뇌를 가진 앱톰을 복원시켜 버리기 때문이었다!
맨 처음 하야미의 몸을 융합포식하지 않은 이유도 설명이 된다. 앱톰의 몸을 조작하는 것이 서투른 상황에서 함부로 융합을 시도했다가 케이가 앱톰의 팔을 자르기라도 하면 하야미의 육체를 베이스로 진짜 앱톰이 부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부터 할 일은....."
"카브라알의 저 몸에서 충분히 개체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육체조각을 잘라내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카브라알로부터 지켜낼 수 있다면..... 앱톰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제 앱톰 구출에의 희망이 생겼다! 케이들은 의지를 다졌다.
이번에야 말로 앱톰을 구하는 것이다!
Next episode 제23화 '그 남자, 하야미' coming soon.....
p.s : 날씨가 더워요.....orz
제22화 - 반격이다! 가이버 I !! -
-삐잉! 삐잉!
미국 애리조나 주 그랜드 캐니언에 위치한 크로노스 본부기지. 갑자기 본부 기지 내에 요란하게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경보가 울림과 동시에 종합 상황실에서 관제원들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본부 기지의 자폭코드가 발동되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자폭까지는 겨우 30분. 전혀 생각지도 못하던 일이 벌어지자 관제원들은 완전히 이성을 잃었다.
"으아아!! 자...자폭코드가!!"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자폭 코드를 발동시킨 거냐고!!!"
사실 누군지는 뻔했다. 이 본부 기지의 자폭 코드 같은 아주 위험한 것을 발동시킬 수 있는 사람은 현재 본부 기지 내에서는 딱 한 명, 바로 발카스뿐이다. 사실 발카스는 자폭 코드의 안전장치들을 미리 해제 시켜 놓고 기간틱 다크와의 전투에 임했다. 리엔쯔이와 와펠다노스가 함께 싸운다고 하지만 기간틱 다크는 만만한 상대는 아닐 터. 그렇다면 만약을 대비해서 보험 격으로 기지와 함께 기간틱 다크를 날려버리겠다는 막나가는 작전을 세웠던 것이다. 물론 기간틱 다크에게 이기면 발동시킬 필요가 없지만 전황이 극도로 불리해진 지금 발카스는 필사의 각오로 자폭 코드를 발동시킨 것이다. 이 계획 자체는 리엔쯔이와 와펠다노스 역시 알고 있었고 그 필요성에는 공감하고 있었다.
하지만 필사의 각오가 되 있는 것은 발카스와 와펠다노스, 리엔쯔이 뿐이었다.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던 기지내의 구성원 전부는 공포에 질려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였다. 미조제자인 과학자들이나 기타 기술자들, 행정 업무원들 뿐만 아니라 조제를 받은 전투원들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본부 기지 상층부 헬기 착륙장에 주기된 헬기들뿐만 아니라 지하의 리니어라인, 비상 탈출용의 캐터펄트 포트등등 이용 가능한 모든 교통수단에 몰려들었다. 그러나 자폭까지 남은 시간은 겨우 30분. 수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탈출하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게다가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바람에 혼란이 극에 달해 오히려 탈출이 지연되고 있었다. 이래가지고는 겨우 30분 동안에 전체 인원 중 잘해야 2~3% 정도만 탈출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발카스가 자폭 코드를 멈추지 않는 한은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기지와 최후를 함께 해야 할 판이었다.
"그리셀더! 큰일 났습니다! 서두르지 않으면!!"
우왕좌왕 하기는 시즈와 리베르타스들도 마찬가지였다. 최하층 P.W.G 구역에서 더 아래로 내려가던 이들은 왜 조아노이드들이 더 공격해 오지 않나 하고 의아해 하던 찰나 이런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설마 자기들을 못이길 것 같으니까 다 같이 죽자는 건가! 리베르타스 네 명은 한 목소리로 시즈에게 탈출을 권했다. 그러나 시즈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키토 님과의 합류가 먼저 입니다! 서두르세요!!"
시즈는 아키토를 두고 혼자만 갈 생각 같은 건 눈꼽의 반 만큼도 없었다. 지금 아키토는 우라누스의 성궤가 있는 지하 대공동에서 조아로드 세 명과 싸우고 있다. 본부 기지의 자폭 사실을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도와주러 가지는 못할망정 탈출이라니. 시즈는 강하게 사념파를 방사해서 리베르타스들의 의견을 묵살하였다. 사념파를 수신한 리베르타스들은 그 이후로 두 번 다시 탈출의 탈자도 언급하지 않았다. 시즈들은 서둘러 아키토가 뚫고 내려간 통로를 따라 달려가기 시작했다. 시즈는 점점 마음이 조급해져만 갔다.
'아키토님!!'
**********************************************
-슈오오오~~!!
지하 동굴 내부에는 와펠다노스의 신모가 녹아내리면서 피어오르는 연기로 가득 찼다. 심지어는 와펠다노스 본인마저 녹는 건지 그의 몸에서도 연기가 많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키토는 뭐가 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에너지가 다 해서 스스로 자멸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찌됐든 이건 찬스다! 이대로 저 성궤라고 불리는 돌무덤을 뚫고 들어가 유적의 항행제어구를 탈취해 오기만 하면 작전은 대 성공이다.
-불룩! 불룩!
"아니?!"
그 때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녹아내린 신모가 서서히 다른 물질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검은색의 윤기 나는 털이 갈색의 딱딱해 보이는 물질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신모들은 이리저리 뭉쳐 하나의 형태를 이루어 갔다. 그것은 놀랍게도 나무 뿌리들이였다! 나무뿌리들은 신모가 있던 곳이라면 어디서나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방으로 뻗은 나무뿌리들의 중심부가 있는 곳은 바로 와펠다노스가 서 있던 곳이었다.
놀라운 일은 이것이 다가 아니었다. 나무뿌리들에서 새 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자라나기 시작했다. 그 싹들은 전부 하나의 나무로 성장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렇게 자라나는 나무들 사이로 정체불명의 인영(人影)이 있었다! 혹시 조아노이드? 아니다. 조아노이드가 식물도 아닌데 어떻게 나무뿌리에서 태어난단 말인가. 게다가 헤드 센서의 반응도 조아노이드의 그것이 아니었다. 온 몸이 녹색의 털 뭉치로 뒤덮인 듯 한 그들은 팔다리가 있다는 것과 직립 보행을 한다는 것 빼고는 인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치 이끼나 풀로 사람 형태를 만든 것만 같아 보였다.
'.....결국 돌아왔구나. 본래의 모습으로......'
발카스는 유적의 위에서 갑자기 생겨난 울창한 밀림을 보며 신음하였다. 와펠다노스의 에너지 제한이 다 되서 결국 그의 본 모습을 봉인했던 것이 풀리고 만 것이다. 그 때 와펠다노스가 발카스에게 무언가를 건네면서 말했다.
"박사님. 조아 크리스털을 돌려드리겠습니다."
와펠다노스가 내민 것은 조아 크리스털이었다! 그리고 연기가 걷힌 후 나타난 그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인간의 모습이 아니라 마치 커다란 곤충의 형태를 가진 그는 몸의 색깔도 검은색 계통이던 이전과는 달리 녹색 빛을 띠게 되었다. 발카스는 무거운 마음으로 그 조아 크리스털을 받아 들었다.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만 와펠다노스에게 조아 크리스털은 더 이상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와펠다노스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부터, 제 왕국의 마지막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
도쿄 신도청 남탑 옥상 헬리포트. 이곳에서는 지금 케이들과 앱톰 -자기를 카브라알이라고 주장하는- 과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앱톰의 오른쪽 가슴 부위의 파란색 갑각 부분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거나 먹어라! 가이버 I !!>
-키이이잉...
빛나는 모양으로 봐서는 무슨 생체 열선포 같았다. 그것도 충전 시간이 꽤 긴걸 보니 위력이 상당히 강력한 무기 같았다. 케이와 베르단디, 하야미는 즉시 양 옆으로 흩어졌다. 바로 그 직후 카브라알의 가슴에서 강력한 빔이 발사되었다.
-쿠와아아!!
방금 전까지 케이들이 서 있던 자리를 카브라알의 빔이 훑고 지나갔다. 빔이 그친 후 바닥에는 깊은 고랑이 패여 버렸다. 대체 무슨 무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강력한 위력의 빔이었다. 다만 발사할 때까지의 타임 로스가 꽤 길고 사용자의 움직임도 제한되어서 케이들의 움직임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빔은 이미 아무도 없는 자리를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방금 전에 앱톰이 발사한 빔은 '모레클 엑셀레이터(분자 가속기)'라고 불리는 무기다. 제압 이후 일본 지부에서 새롭게 개발한 하이퍼 조아노이드 '장갈로'의 주 무장으로 조사 대상의 분자 운동을 급속도로 가속시켜 상대를 단 십 수초 만에 기화시켜 버리는 무서운 무기다. 강력한 재질의 물체를 파괴하려면 출력을 그 만큼 더 올려야 하는 보통의 생체 열선포와는 달리 목표의 재질에 관계없이 일정한 출력만으로도 완전히 파괴해 버릴 수 있는 무기다. 다만 제조 방법이 극히 복잡한데다가 발사 시에는 사용자의 움직임이 크게 제한되고 발사 딜레이가 큰데다가 결정적으로 사정거리가 겨우 10m 정도밖에 안돼서 대량 채용까지는 이르지 못한 무기다.
<흥, 피했다 이거냐. 하긴 이런 무기는 발사까지 시간이 너무 걸리는 게 단점이지.>
한 번 코웃음 친 앱톰은 이번에는 왼 팔에 달린 철퇴(바이퍼 프레일)를 휘둘렀다. 순식간에 앱톰의 팔이 고무줄처럼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철퇴를 공중에서 네 다섯 번 휘휘 돌린 직후 카브라알이 케이들에게 철퇴를 휘둘렀다.
-부웅!
-콰아앙!!
철퇴의 위력은 굉장했다. 다행히 피했기에 망정이지 제대로 맞았다면 아무리 가이버라 해도 치명상을 입을 위력이었다. 십 수 톤의 헬기가 거칠게 착륙해도 끄떡없을 정도의 두꺼운 콘크리트 바닥이 형편없이 깨져 나갔다. 앱톰은 다시 철퇴를 회수하였다. 그리고 재공격을 위해 다시 휘휘 휘둘렀다. 케이들은 바짝 긴장한 채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반격은 엄두도 못 냈다. 저건 틀림없이 앱톰이다. 앱톰을 구하러 와 놓고는 앱톰을 쓰러트린다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은가.
<자! 이번에도 피해봐라!! 애송아!!>
-부우웅!!
앱톰의 철퇴가 다시 날아왔다. 이번에도 케이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피해 다니기만 하였다. 앱톰의 철퇴가 달린 오른팔은 마치 고무줄처럼 자유자재로 늘어나면서 멀리까지 철퇴를 날려대었다.
-콰아앙!
이번에도 케이는 간발의 차로 철퇴를 피했다. 철퇴같이 무게로 공격하는 무기는 한 번 공격이 빗나가면 다음 공격까지 시간차가 꽤 나는 편이다. 그 틈을 타서 케이는 철퇴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졌다. 앱톰이 다시 철퇴를 회수하여 재공격을 시도하였다.
-콰앙! 카가각!!
그런데 이번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공격을 해 왔다. 철퇴가 한 번 내리쳐 진 직후 갑자기 철퇴가 그 자리에서 방향을 바꿔서 날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처럼 회수를 하는 것이 아니라 떨어진 그 자리에서 마치 미사일처럼 목표를 향해 바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 목표는 하야미였다!
"하야미씨!!"
-부웅!
하야미는 철퇴가 날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케이가 황급히 하야미 쪽으로 달려가려 하였지만 그와는 반대 방향에 있었기 때문에 시간에 댈 수가 없었다. 하야미가 철퇴에 박살나기 직전, 케이의 어깨에 앉아 있던 베르단디가 황급히 정령을 소환하였다.
"에어 버그 스파이러리!"
-휘이이잉!!
순간 하야미의 몸을 바람의 정령이 강하게 밀쳤다. 간발의 차로 하야미는 철퇴를 피할 수 있었다. 자신의 공격이 빚나가자 앱톰 -카브라알- 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분명히 명중이 확실한 상황이었는데도 저 하야미라는 녀석은 그걸 피해낸 것이다. 아니, 하야미가 피했다기 보다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하야미를 밀친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직접 피했다고 보기에는 자세가 엉망으로 무너졌었으니까. 누가 그랬을까 하며 의아해 하던 앱톰은 케이의 어깨에 무슨 조그만 인형 같은 것이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물론 진짜 인형일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인간과는 다른 파동도 감지되었다. 그렇다면....
<쿡쿡쿡, 누가 요술을 부렸나 싶었는데 이제 보니 천상계 여신 계집이 함께하고 있었군.>
앱톰이 조그만 크기의 베르단디를 노려보자 케이가 베르단디를 지키려는 듯이 손으로 베르단디를 살짝 가렸다. 그러면서 케이는 앱톰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제발 정신 차려! 앱톰!! 왜 우리가 싸워야 해! 우린 널 구하러 왔단 말이야!!"
케이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앱톰은 그저 웃기만 하였다. 그 때 하야미가 케이 옆으로 걸어 와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소용없어, 케이. 지금 저건 앱톰이지만 동시에 앱톰이 아니기도 해. 지금의 저건 카브라알이야. 말로 한다고 해결될 상황이 아냐."
사념파를 완전히 무시할 수 있는 앱톰을 대체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 앱톰의 몸은 카브라알이 조종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설득한다고 카브라알이 앱톰을 놔줄 리는 만무했다. 분명한 건 지금 저 몸만큼은 틀림없이 앱톰 본인이라는 점이다. 공격해봐야 부상을 당하는 건 앱톰의 몸. 원격 조작을 하는 카브라알이 데미지를 입을 일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카브라알의 수법을 간파해내서 그걸 깨트리지 않으면 현 상황을 타개하는 건 불가능했다.
<어떠냐, 가이버 I. 시험 삼아 한 번 메가 스매셔라도 쏴 보지 그래? 가만히 맞아 줄 테니 말이야.>
"뭐...뭐라고?!!"
<쏴 보라니까. 지금 이 상황에서 탈출하려면 그 수밖에 없다고. 낄낄낄.>
카브라알은 주위를 가리키며 웃었다. 상공에는 비행형 조아노이드 비카르르 무리가, 클라우드 게이트 벽면에는 바모아 부대가 생체 열선포를 겨누고 있다. 게다가 구출하려고 했던 앱톰의 육체는 카브라알에게 완전히 지배당해서 케이들을 공격하고 있다. 이 최악의 상황에서 탈출하려면 일단 지금 싸우고 있는 앱톰을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앱톰은....
<쏘지 못하겠지? 모리사토 케이군. 가이버 III 마키시마 아키토라면 주저하지 않고 쐈을걸?>
케이가 머뭇거리자 카브라알이 케이를 비웃었다. 역시 그의 생각대로였다. 정에 휘둘려 확실한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점. 함께 싸워왔던 동료가 자기를 죽일 작정으로 공격을 하고 있는데도 맞서 싸우기는 고사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도망이나 다니는 한심한 모습.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케이는 다시 태어난 무라카미에게 패했고 결국에는 아키토에게 기간틱을 뺏겼다. 카브라알은 그러한 케이의 심성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쏠 테면 쏴보라는 식의 배짱을 부릴 수 있었던 것이다. 자신의 생명이 위험하다 할지라도 가까이 알고 지내던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짓은 할 수 없는 인간. 그것이 바로 케이였다.
<그런 나약한 마음 때문에 넌 전사로서는 실격이야, 모리사토 케이. 그리고 그 마음이 바로 이 자리에서 널 죽일 것이다.>
"웃기지 마!!"
그 때 케이의 옆에 있던 하야미가 카브라알에게 소리쳤다. 하야미는 분노한 눈으로 카브라알을 쏘아보며 외쳤다.
"인질을 잡는 치사한 짓이나 하는 네 놈들은 케이를 우롱할 자격이 없어!! 케이의 그 마음이야 말로 가장 강한 마음이야!!"
카브라알은 하야미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잠시 하야미를 보던 카브라알이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호오? 조아노이드처럼 생겼는데도 사념파가 왜 안통하나 했더니 이제 보니 실패작인 손종실험체였군.>
"닥쳐!! 난 실패작이 아냐! 나는 네놈들과 싸우기 위해, 먼저 간 동료들의 유지를 이어가기 위해 자진해서 이런 몸이 되었다!"
실패작이라니, 당치도 않은 말이다. 오히려 대성공이다. 크로노스가 강제로 심어놓은 바이러스로 부터 도망치면서 동시에 조아로드의 사념파에 굴복하지 않는 몸, 그것이 바로 손종 실험체. 원래 우연히 만들어지는 불완전한 개체인 손종 실험체를 일부러 만드는 무모한 실험이 결국 성공해서 이렇게 하야미가 살아남았는데 그게 성공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모두의 의지와 생명이 이루어낸 기적을 실패작으로 규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훗, 그렇다면 지금 당장 네 동료들에게 보내주마!>
-부웅!!
카브라알이 다시 오른 팔의 철퇴를 하야미에게 휘둘렀다. 하야미는 이미 공격을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몸을 움직여서 그걸 피했다. 그러나 철퇴가 땅에 떨어지기 직전 갑자기 방향을 바꿔서 하야미의 등 뒤를 향해 날아갔다. 너무나 빠른 속도에 하야미는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하야미는 이번에는 도저히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바로 그 순간!
-퍼억!!
<아니?!>
놀랍게도 케이가 오른 팔로 카브라알의 철퇴를 정면에서 막아 내었다. 철퇴는 케이의 오른 손에 꽉 붙잡혀 버려서 이번에는 회수가 되지 않았다. 카브라알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날아가던 철퇴를 가이버 I 이 너무나 손쉽게 막아내자 순간 깜짝 놀랐다. 케이는 카브라알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카브라알. 너희는 절대로 알 수가 없을 거야. 우리가 싸우는 이유를."
<흐..흥! 그 잘난 이유가 대체 뭐냐.>
여유 있는 척 하고 있는 카브라알이지만 솔직히 그다지 여유가 없었다. 기간틱도 아닌 가이버 I이 철퇴를 멈춰 세운 것도 놀라운데 단 한손으로 자기 손바닥보다 열배는 더 커다란 철퇴를 강하게 붙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무기를 회수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케이가 오른손에 힘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신뢰라는 끈을 위해.... 그리고 인간으로서 존재하기 위해서야!!"
-퍼어억!!
케이가 손을 움켜쥐자 그 힘을 견디지 못한 카브라알의 철퇴가 마치 수박 터지듯이 깨져 나갔다. 부서진 철퇴의 파편들이 케이의 발아래에 떨어졌다. 카브라알뿐만이 아니라 하야미나 베르단디까지 깜짝 놀랐다. 이것이 케이의 힘, 바로 마음의 힘이었다. 동료를 구하기 위해 반드시 살아남겠다는 강한 의지. 그것이 바로 카브라알의 철퇴를 멈춰 세운 것이다.
<크...크윽! 그렇다면 이거나 먹어라! 모레클 엑셀레이터!!>
-키이이이....
그 때 카브라알의 오른쪽 가슴이 다시 빛나기 시작했다. 아까 맨 처음 썼던 무기, 모레클 엑셀레이터다! 케이들이 즉시 양 옆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그 직후 카브라알의 오른 쪽 가슴에서 모레클 엑셀레이터가 발사되었다.
-쿠와아아!!!!
그러나 이번에도 형편없이 빚나갔다. 무기가 발사됐을 때는 이미 케이들은 그 자리를 피한 뒤였다. 모레클 엑셀레이터의 빔은 그 자리에 남아 있던 철퇴의 파편들만 깨끗이 기화시켜 버렸을 뿐이다. 그 광경을 보며 케이들은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확실히 굉장한 위력의 무기이기는 하지만 발사 준비부터 전부 다 보일 뿐만 아니라 발사까지의 딜레이까지 있기 때문에 피하는 게 그리 어렵지는 않다. 즉 지금의 케이들에게는 통할 무기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아무 대책도 없이 그걸 또 쏘다니?
<....뭐, 좋다. 이런 단순한 무기가 내 취향이기는 하지만 가이버 I에게는 안 통한다면.....무장 변경이다!>
카브라알은 방금 전까지 철퇴가 달려있던 왼쪽 손목을 보며 말했다. 그 직후 갑자기 그가 왼 팔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러자 잘려진 왼쪽 손목에서 뭔가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슈우욱!
이윽고 왼쪽 손목 부근에는 아주 뾰족한 창이 돋아났다. 무장 변경이 완료되자 카브라알은 그 창을 바닥에다 대고 힘껏 꽂았다.
-콰직!
창은 콘크리트 바닥에 그대로 박혔다. 하지만 그냥 보기에는 아까의 철퇴보다 나을 게 없어 보였다. 그런데 그 순간 창끝이 꽂인 곳을 중심으로 커다란 구덩이가 순식간에 생겨났다. 그것도 깨져 나간 게 아니라 모래가 무너지듯이 아주 자연스럽게. 그 것을 본 케이는 직감적으로 저것이 가이버의 고주파 소드와 같은 고주파 병기임을 알아내었다. 케이의 추측대로 저 창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관통한 물체에 고주파수를 흘려보내 주위의 분자 구조를 완전히 파괴하는 '고주파 스피어'였다!
<자, 그럼 이제 제 2라운드다. 가이버 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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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도쿄 도청 옥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클라우드 게이트의 종합 상황실에서도 다 보고 있었다. 종합 상황실에서는 지금 다들 바짝 긴장한 채 가이버들과 앱톰의 '대결'을 보고 있었다. 가이버들이 앱톰을 구하러 온 것이라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지금 저들의 행동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건 누가 봐도 목숨을 건 대결 아닌가. 혹시나 연극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러나 연극이라고 하기에는 앱톰의 공격들이 하나같이 다 위험한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진짜 대결이라고 하기에도 이상한 것이 가이버들은 그저 도망만 다닐 뿐 이렇다 할 반격을 하고 있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신은 이제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 이었다. 아까 실험실에서 탈출할 때도 앱톰이 가이버들과 '합류'하려고 했다고 보기에도 어딘가 이상했었는데 이젠 저렇게 가이버를 죽일 기세로 덤비다니. 저들이 왜 저러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앱톰도 문제지만 지금 가이버들은 사방으로 포위된 상태다. 상공에는 비카르르 부대, 클라우드 게이트에는 바모아 부대가 가이버들을 노리고 있다. 이런 절대적인 위기 상황에서 가이버 I 은 어째서 기간틱으로 변신하지 않는 걸까?
'아니, 어쩌면..... 변신을 '못하는 게' 아닐까?'
안한다기 보다는 못한다고 보는 게 더 말이 맞을 듯싶었다. 지금의 가이버의 행동을 보자면 말이다. 기간틱으로 변신한다고 해서 꼭 앱톰을 때려잡을 필요는 없다. 주위의 다른 조아노이드 부대를 순식간에 박살내서 포위를 뚫은 다음 탈출을 하던가 아니면 앱톰을 잠시 무력화 시켜서 데리고 탈출하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려면 기간틱 형태는 필수였다. 신이 관제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전투 현장을 도청 옥상에 한정시켜라! 놈들을 절대 도망치게 해서는 안 된다!"
어쨌든 지금은 일단 지켜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앱톰이나 가이버나 둘 다 크로노스의 적이기는 마찬가지였고 이들이 지금 연극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으니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공격명령은 내리지 않았다. 우선은 모두 그 자리에서 대기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비카르르 소대, 도청 옥상으로 강하 중!!"
그 때 관제원이 뜻밖에 보고를 하였다. 잠시 후 메인 스크린에 상공에서 대기 중이던 비카르르들이 도청 옥상으로 내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관제원이 당황해 하며 신에게 확인을 요청하였다. 혹시나 신이 사념파로 직접 명령을 내렸을 것 같아서였다.
"저....저건 각하의 지시십니까?"
"무슨 바보 같은 소리! 난 저런 지시 내린 적 없어!'
신의 말을 들은 관제원들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붙잡고 비카르르들을 호출하였다. 그러나 비카르르들은 전혀 응답이 없었다. 틀림없이 통신을 수신했을 텐데도 비카르르들이 이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 신이 조아 크리스털을 활성화 시키며 사념파를 방사하였다.
-키이잉!
<비카르르들이여! 대답하라! 왜 내 지시를 어긴 거냐! 난 현 위치를 지키라고 명령했다!!>
<......>
<내 말 안 들리나! 어서 대답해!!>
<......>
그러나 비카르르들은 신의 사념파마저 거부한 채 계속해서 도청 옥상으로 강하 중이었다. 조아노이드가 조아로드의 사념파를 거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도 비카르르들을 사념파로 통제할 수가 없었다.
'헉! 이...이건!!'
그 순간 신은 경악스러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사념파에 다른 사념파가 끼어들어 외부로 방사되는 것을 차단하고 있던 것이다! 사념파가 봉쇄당했으니 비카르르들이 제멋대로 행동하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대체 누가 조아로드의 사념파를 봉쇄할 수 있다는 말인가. 같은 조아로드가 아닌 이상은....
'설마! 쿨매그닉 놈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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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신 녀석, 이제야 자기 사념파가 봉쇄 당한 것을 눈치 챘군."
신의 예상대로 사념파를 봉쇄한 것은 쿨매그닉 일당이었다. 신의 우려대로 이들이 드디어 행동을 개시한 것이다. 카브라알이 앱톰의 육체를 조종하고 쿨매그닉이 자신의 사념파로 신의 사념파를 봉쇄한다. 그리고 밖에 나와 있는 조아노이드들은 자빌이 컨트롤한다. 피아 전력차는 1:3. 사념파 승부에서 신이 상대가 될 리 없었다. 물론 카브라알은 앱톰의 컨트롤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1:2 지만 여전히 상대가 안 되는데다가 지금 쿨매그닉들이 있는 곳의 설비를 이용하면 사념파를 더욱 더 확대 증폭할 수 있기 때문에 이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신이 사념파의 봉쇄사실을 알아차리기는 했지만 여기에 있다면 당분간은 신에게 들키지 않을 수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감시 시스템을 전부 다 다운시켜서 이들의 이동 장면을 보이지 않게 하였으니까. 그리고 장소를 들킨다 해도 별로 상관없다. 이쪽은 세 명. 신은 단 혼자. 누가 와서 도와줄 사람도 없다. 머리가 조금이라도 돌아가는 녀석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함부로 싸움을 걸어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노사. 장난은 적당히 하시고 이제 슬슬 끝내시죠."
자빌이 가부좌를 튼 채로 정신을 집중하고 있는 카브라알에게 푸념하듯이 말했다. 앱톰을 조종하고 있는 카브라알이 장난삼아 승부를 '일부러' 맺지 않는 걸로 알고 짜증을 좀 부린 것이다. 신이 사념파를 봉쇄당한 것을 안 이상 정면공격은 안 해오더라도 다른 수를 쓸 지도 몰랐기 때문에 꾸물거릴 틈은 없었다. 카브라알은 여전히 자세를 풀지 않고 대꾸하였다.
"재촉하지 말게나. 앱톰을 컨트롤 하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니까. 잘못해서 가이버의 컨트롤 메탈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어쩔 건가."
앱톰은 기존의 조아노이드와는 완전히 다른 구조인지라 카브라알로서도 조종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았다. 맨 처음 앱톰이 폭주했던 이유도 카브라알이 앱톰의 '조종'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랬던 것이다. 지금이야 어느 정도 익숙해져서 능력도 알아서 선택하고 무기도 자유롭게 바꾸고 있지만 대신 무장의 컨트롤에 집중하느라 몸을 움직이는 건 거의 포기하고 있는 지경이었다. 가이버들이 앱톰을 공격하는 것을 주저하고 있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다.
"아, 그러고 보니 컨트롤 메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비카르르의 초음파 집중조사, 해도 괜찮을까?"
지금 이들이 노리는 것은 가이버의 컨트롤 메탈. 초음파라도 쏴서 혹시나 메탈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큰일이니 자빌이 이런 걱정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실제로 아까 비카르르들이 초음파를 조사했을 때 가이버가 괴로워하는 것이 보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자빌의 걱정에 쿨매그닉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걱정할 것 없어. 비카르르의 초음파로는 메탈은 파괴되지 않아. 그저 잠시 기능장애를 일으킬 뿐이지."
사실 비카르르의 초음파는 무기가 아니라 박쥐처럼 목표의 탐지와 장애물 등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다. 다만 일시적으로 메탈의 기능에 장애를 일으킬 뿐이다. 물론 옆에서 봤을 때는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직접 당하는 당사자인 가이버 I 으로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을 느낄 것이다. 컨트롤 메탈은 식장자의 뇌와 직접 연결돼 있으니 말이다.
"좋아, 그럼 시작하지. 자빌."
"알았어."
자빌의 조아 크리스털이 밝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비카르르들에게 다음 행동을 사념파로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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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쉬쉭!!
"으윽!!"
카브라알의 매서운 공격이 날아오고 있었다. 파괴된 오른 팔의 무장을 고주파 스피어로 바꾼 뒤 카브라알은 아주 빠른 속도로 케이들을 찔러 왔다. 케이들은 이리저리 도망 다니면서 공격을 피하기 바빴다. 비록 창이라는 무기의 특성상 찌르기 위주의 단순한 패턴의 공격이었지만 무기의 무게가 가벼워진 만큼 스피드가 아까보다 훨씬 더 빨라졌다.
-퍼퍼퍽!!
고주파 스피어가 바닥을 찌를 때마다 바닥에는 마치 개미지옥의 구덩이 마냥 커다란 구멍이 무수히 많이 생겼다. 역시 고주파수 병기답게 두꺼운 강화 콘크리트제 바닥을 아주 간단히 관통해 들어갔다. 저 정도 위력이라면 아무리 가이버의 강식장갑 이라고 해도 한 방에 뚫릴게 분명했다. 케이는 애가 탔다. 이럴 때 기간틱을 쓸 수만 있다면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데...!
"케이씨! 뭔가 이상해요!"
"뭐가!"
그 때 베르단디가 케이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위험하니까 어디론가 피해있으라고 했는데 왜 또 전투 현장으로 들어온 걸까. 게다가 지금 케이는 카브라알의 집중 공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 같이 있다가는 카브라알의 공격에 당할 수도 있었다. 물론 분신채가 죽는다고 해서 본체인 베르단디까지 죽는 건 아니지만 (정신적 데미지는 있다고 한다) 그래도 케이로서는 베르단디의 아주 조그만 부분이라 할지라도 잃고 싶지 않았다.
"앱톰 씨의 파동이 느껴지지 않아요!"
"무슨 소리야! 앱톰의 몸은 저기 있잖아!"
-쉬이익!!
케이의 옆으로 고주파 스피어가 스쳐 지나갔다. 지금 케이는 자기 몸 하나 간수하기도 힘든 상황인지라 베르단디의 말을 집중해서 들을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뜬금없이 파동이 느껴지지 않다니? 조종을 당하고 있다 해도 저기 있는 몸은 틀림없이 앱톰의 육체다. 파동이 느껴지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헤드 센서의 반응에도 틀림없이 앱톰의 육체라는 것이 느껴지고 있기까지 한데 말이다.
"그게 아니라 앱톰 씨의 파동이 다른 파동에 의해 억눌리고 있는 것 같아요! 마치 다른 물질이 들어와 있는 것만 같아요!"
"다른 물질이라고?!"
도망 다니느라 정신이 없는 케이와는 달리 베르단디는 전투 현장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차분하게 관찰할 여유가 있었으니 뭔가를 알아냈을 수도 있다. 케이는 다시 한 번 헤드 센서를 앱톰에게 집중시켰다. 이번에는 좀 더 세밀하게 관찰하였다. 물론 그 와중에도 고주파 스피어가 계속해서 날아오고 있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케이는 분석을 멈추지 않았다. 잘하면 앱톰을 카브라알의 손에서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아! 이...이건!!'
그 순간 케이는 헤드 센서로 뭔가를 발견해 냈다. 지금 앱톰의 몸에는....
"케이!! 위를 조심해!!"
그 순간 하야미의 외침이 들려왔다. 깜짝 놀란 케이가 하야미가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어느 틈엔가 케이의 바로 뒤 쪽 상공에 세 마리의 비카르르들이 내려와 있었다!
-위이이잉!!
"끄....끄아아아!!!"
"케이 씨!!"
케이가 머리를 감싸 쥐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비카르르의 초음파가 또 다시 컨트롤 메탈에 집중되기 시작한 것이다. 메탈이 초음파로 인해 기능 장애가 발생하면서 케이의 뇌에 그 데미지가 직접 전달되는 것이다. 머리가 깨질 것만 같은 고통에 케이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케이! 이...이런 제길!!"
하야미는 케이를 어떻게 도와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애가 탔다. 하야미의 능력으로는 공중에 떠 있는 비카르르들을 공격할 방법이 없었다. 그가 뛰어 오를 수 있는 높이보다 더 높이 떠 있는데다가 하야미의 유일한 무기인 냉기 역시 공중의 적을 공격할 능력은 없었다. 그건 베르단디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조아노이드는 천상계의 법술에 강한 저항성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지금 베르단디의 몸은 아주 작은 분신체라서 능력의 제한이 컸다. 사실 지금까지 그녀는 그 조그만 몸에 부담이 가지 않게 완급을 조절해 가며 옆에서 지원을 하는 정도로만 약하게 기술을 써왔었다. 그것조차도 지금 시점에서는 점점 피로가 쌓여 가는 상황에서 몸에 큰 부담을 주는 공격 법술을 쓸 수는 없었다.
"베르단디님! 제 몸을 공중으로 날려 주실 수 있습니까? 저 놈들을 잡아야 합니다!"
"무리에요! 공중에 띄우는 것 정도는 몰라도 지금의 저로서는 하야미 씨를 자유롭게 날게 할 수가 없어요!"
하야미의 말에 베르단디는 고개를 저으며 안타까워했다. 지금 베르단디는 조그만 몸으로 이제까지 너무 많은 법술을 써 왔다. 이 상황에서 더 무리를 할 여력은 없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하야미의 방법 역시 무모하기 짝이 없다. 원래 공중전용으로 개발된 조아노이드를 상대로 하늘을 날지 못하는 하야미가 단지 바람의 힘으로 날려가서 싸우겠다니. 자칫 잘못하면 놈들은 한 마리도 잡지 못하고 도청 아래로 추락할 수도 있었다.
<킥킥킥. 내 공격에만 정신이 팔려 있다 보니 비카르르들의 존재를 잊었던 모양이지?>
카브라알은 잠시 공격을 멈추고 가이버 I 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며 웃었다. 그리고 고주파 스피어를 들어 올려 가이버 I 을 겨누었다. 이들이 노리는 건 컨트롤 메탈 하나 뿐. 가이버 I 의 몸뚱이 따위는 필요 없다. 이걸로 몸을 완전히 산산조각내서 머리만, 아니 메탈만 가져가면 그만이다. 저렇게 가이버 I 이 꼼짝 못할 때가 찬스였다.
<응?>
그 때 하야미가 카브라알의 앞을 가로 막아 섰다. 카브라알의 의도를 눈치 챈 하야미가 케이를 보호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둘 사이의 전투력 차가 너무 컸다. 하야미로서는 앱톰의 육체를 조종하고 있는 카브라알을 막을 수가 없었다. 카브라알은 그를 보며 코웃음 쳤다.
<흥, 실패작 주제에 날 막겠다고? 같이 저 세상으로 보내주마!>
하야미는 죽음을 각오하였다. 물론 이길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베르단디 역시 하야미의 옆에 섰다. 그녀도 있는 힘껏 케이를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다. 바로 그 때였다!
"끄아아아아!!!"
-파아앙!!
케이의 비명 소리가 한 층 더 커졌다고 느껴진 순간 갑자기 식장이 해제되어 버렸다! 강식장갑이 벗겨지고 원래 모습의 케이가 나타나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크게 놀랐다. 설마 비카르르의 초음파가 식장을 강제로 벗겨낼 정도였단 말인가. 식장이 벗겨진 케이는 컨트롤 메탈이 가상의 공간으로 후퇴한 덕분에 더 이상 고통은 느껴지지 않은지 비명을 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멍한 표정이었다. 마치 몽유병 환자 같은 모습으로 서 있기만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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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좀 뜻밖이군."
비카르르들을 조종하던 쿨매그닉 일당은 가이버 I의 식장이 벗겨지자 크게 놀랐다.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한 것이다. 아마도 초음파 공격을 못 견딘 컨트롤 메탈이 가상의 공간으로 후퇴한 것일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어쨌든 이건 낭패였다. 강식장갑이 벗겨진 지금의 모리사토 케이는 그저 보통 인간일 뿐. 지금 저 놈을 죽이면 가이버 I 을 영원히 없애 버릴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가이버 I의 컨트롤 메탈은 영원히 손에 넣을 수 없게 된다. 이들의 목적은 바로 그것이 아니던가.
"쳇, 할 수 없군. 자빌. 일단은 녀석을 이쪽으로 끌고 오게 해. 우선은 신병부터 확보해 두자고."
"알았어."
자빌의 조아 크리스털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비카르르 두 마리가 케이의 양팔을 하나씩 발로 붙잡고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케이는 정신을 잃었는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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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카르르들이 날아오르고 있습니다! 가이버 I, 모리사토 케이는 기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클라우드 게이트의 종합 상황실에서도 그 장면이 똑똑히 보였다. 신은 마른 침을 삼키면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 역시 설마 비카르르의 초음파가 저런 결과를 이끌어 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
"비카르르들의 진로는 어떻게 되나?"
"정확한 도착지점은 아직 알 수 없지만 현재 날아오는 방향과 고도로 봤을 때 이곳으로 귀환할 가능성이 큽니다."
비카르르들은 여전히 이쪽의 호출에 응하지 않고 있었다. 어쨌든 저걸 보니 쿨매그닉 놈들의 목적은 가이버 I 을 없애는 게 아니라 포로로 잡으려고 하는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가이버 I 을 이용해 가이버의 비밀을 밝혀내려고 하는 것이리라. 발카스도 신과 푸르크슈탈에게 차마 얘기를 하지 못한 놀라운 비밀을. 그것이 알칸펠에 대한 반역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들은 그 비밀을 캐내려고 하는 것이다.
"비카르르들의 예상 도착지점에 경비 부대를 파견하라. 가이버 I 이 도착하면 그자의 신병은 우리가 인수한다!"
신은 관제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어쨌든 쿨매그닉들의 의도대로 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맹세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알칸펠을 위해 죽겠다고. 반역을 저지르고 있는 쿨매그닉 녀석들을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비명에 죽어간 그의 친구 푸르크슈탈을 위해서도....!
"쿨메그닉, 자빌, 카브라알. 이 세 신장의 소재는 파악했나?"
신이 그 때 막 생각났다는 듯이 관제원들에게 물었다. 그 세 명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아야 가서 직접 담판을 짓든 아니면 다른 수를 쓰든 간에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아까 전에 이 세 신장의 소재를 파악하라고 명령을 내려뒀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아직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마비된 감시 시스템이 아직 완전히 복구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설사 찾아낸다 해도 그 세 명 모두 다 조아로드라는 게 문제였다. 공작원들에게 사념파로 자기들 위치를 절대 말하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면 공작원은 거기에 저항할 수가 없다.
가이버뿐만이 아니라 그 세 명까지 적이 됐다고 생각하니 신은 점점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사념파까지 놈들에게 봉쇄돼서 전투 병력의 통제도 원활하지 못했다. 손발뿐만 아니라 눈까지 전부 다 봉쇄당한 채 갇혀 있는 듯 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잡혀오고 있는 케이를 이쪽에서 확보해 두면 어떻게 해서든 그들의 음모를 저지할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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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비카르르들이 케이를 붙잡고 날아오르는 장면을 하야미는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큰 소리로 케이를 불렀지만 케이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당장이라도 쫓아가서 케이를 구하고 싶었지만 하늘을 날 수 없는 하야미로서는 방법이 전혀 없었다.
"케이!! 제발 정신 차려!! 눈을 뜨란 말이야!!!"
지금 케이가 잡혀가 버리면 모든 게 끝이다. 앱톰을 구하는 것도, 크로노스와의 싸움도, 야마무라 교수와 오다기리 주임, 그리고 다른 동료들의 유지도 전부 끝이다!
-휘잉!!
그 순간 하야미는 뭔가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그 직후 황급히 몸을 옆으로 피했다. 그러자 하야미의 바로 옆으로 고주파 스피어가 스쳐 지나갔다. 빗나간 스피어는 그대로 바닥에 박혔다. 그리고 격렬한 진동이 그 주위에 전해졌다.
-쿠와아아!!
"우아악!!"
고주파 스피어의 위력은 엄청났다. 스피어에 당한 바닥 부근에 어른 남자가 충분히 들어가고도 남을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 조금만 피하는 게 늦었다면 하야미는 저 스피어에 박살이 났을 것이다. 하야미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카브라알을 바라보았다.
<흥, 용케도 피했군. 허나 너 혼자서 발버둥 친다고 뭐가 달라질 것 같으냐.>
"우윽....!"
<이미 케이는 내 손아귀에 있다. 너희들은 진 거야. 그냥 얌전히 이 고주파 스피어에 박살나는 게 좋을 거다.>
하야미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꼭 쥔 그의 주먹이 파르르 떨렸다. 이제 모든 게 끝장이란 말인가. 도대체 난, 우리는 뭘 위해서 이제까지 싸워 왔단 말인가. 살아남기 위해 목숨을 건 생체실험을 한 동료들의 의지와 저항의지를 굽히지 않았던 야마무라 교수와 오다기리 주임의 혼도 여기까지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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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씨!! 제발 정신 차리세요!!"
베르단디는 끌려가는 케이의 얼굴 바로 옆을 날면서 그를 깨우려 하였지만 케이는 미동조차 안 했다. 베르단디가 너무 작아서 보이지 않았는지 비카르르들은 그녀의 존재를 무시하였다. 그렇다고 지금의 베르단디로서는 비카르르를 격추 시킬 능력이 없었다. 베르단디는 작은 몸의 미약한 힘이나마 사용해서 케이에게 회복 법술을 걸고 있었다. 이렇게 해서라도 그를 깨우려는 것이다.
"케이 씨! 제발...!"
그 때 베르단디의 눈에 케이의 입술이 살짝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너무나 조심스럽게 움직여서 처음에는 잘 몰라볼 뻔 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비로소 그것을 파악해 낼 수 있었다. 그녀는 즉시 케이에게서 떨어져서 아래로 급강하 하였다. 베르단디가 케이에게서 충분히 멀어졌을 바로 그 때였다!
"가이버어어어!!!!!"
-쿠와아아앙!!!
갑자기 폭음이 울려 퍼지면서 케이의 몸 주위에 강한 폭발이 일어났다. 강식장갑이 소환될 때 일어나는 충격파였다. 그 충격파로 인해 케이를 붙잡고 날아오르던 비카르르 두 마리는 그대로 박살나 버렸다. 그리고 타 차원에 있던 강식장갑이 소환돼서 케이의 몸에 합체 되었다. 가이버 I, 케이의 완벽한 부활이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현장에 있던 모두가 크게 놀랐다.
-푸슝!! 푸슝!!
재식장을 완료한 가이버 I, 케이는 즉시 반격을 하였다. 우선 헤드빔을 난사해서 그 때까지도 주위에 날아다니던 비카르르들을 공격하였다. 현장 상공에 있던 비카르르 다섯 마리는 예기치 못한 가이버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케이의 헤드빔은 정확하게 비카르르들의 머리나 심장 부위를 정확히 직격해서 일격에 끝장을 내었다. 순식간에 비카르르 다섯 마리가 전멸하였다.
-큐우우웅!!
공격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케이는 비카르르를 전멸시키자마자 즉시 클라우드 게이트의 외벽 발사대에 대기 중이던 바모아 부대에게 소닉 버스터를 퍼부어 버렸다. 미처 대비하지 못하고 있던 건 바모아 부대도 마찬가지였고 이들 역시 케이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키아아아!!"
"카아악!!"
-부와아아아!!!
소닉 버스터의 분자 해체 공격을 받은 바모아 부대가 순식간에 소멸돼 버렸다. 이렇게 해서 케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들을 포위하고 있던 조아노이드 부대를 전멸시켰다. 그리고 그는 중력 제어구를 조종해서 다시 도청 옥상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런 그의 어깨 위로 베르단디가 다시 날아왔다.
"케이 씨! 무사하셨군요! 다행이에요...."
"걱정 끼쳐서 미안해, 베르단디. 하지만 이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어."
순식간에 벌어진 일들이라 다들 모두 얼이 빠진 상태였다. 하야미 역시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아까 분명히 케이는 기절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순식간에 재식장을 하고는 조아노이드 부대를 전멸 시켜 버리다니. 게다가 '이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라고? 그렇다면 이게 다 일부러 한 거란 말인가?
<너...너 이놈! '이것 밖에는' 이라니! 설마 아까 식장을 일부러 벗었다는 말이냐?!>
카브라알 역시 당황해 하며 말했다. 케이는 카브라알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 아까 그건 내가 일부러 해제한 거야. 우리를 포위하고 있는 조아노이드 부대를 단숨에 해치울 찬스를 만들기 위해."
비카르르의 초음파 조사로 인해 컨트롤 메탈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식장자인 케이 역시 머리가 깨질 것만 같은 고통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대로 조금만 더 초음파를 맞았다면 틀림없이 의식을 잃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제 기능을 유지하지 못하는 가이버의 컨트롤 메탈은 자기 방어 기능을 가동시킬 수가 없게 되고 카브라알의 공격에 그대로 끝장났을 것이다.
여기서 케이는 일부러 식장을 벗었다. 그렇게 해서 일단 놈들의 공격을 중지시키고 케이를 포박해서 방심하고 있을 때 다시 재식장을 해서 조아노이드 부대를 박살내고 포위망을 뚫는 작전을 생각해낸 것이다. 그 다음부터는 아까 전개된 그대로다. 케이를 붙잡고 올라간 비카르르 두 마리를 재식장시의 충격파로 날려버리고 놈들이 당황해하는 그 찰나의 순간을 이용해서 나머지 전부에게 신속히 공격을 한 것이다.
그런데 케이의 작전에 차질이 생겼었다. 바로 베르단디였다. 케이가 끌려가자 그를 도우려고 베르단디가 케이의 바로 곁에 바짝 붙어 따라온 것이다. 식장을 하게 되면 충격파로 인해 베르단디까지 날아가게 된다. 하지만 지금 당장 변신한다고 큰 소리로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놈들에게는 케이가 계속해서 기절한 것처럼 보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텔레파시 같은 재주도 없는 케이는 그래서 베르단디만이 볼 수 있도록 입을 살짝 움직여서 입모양만으로 말을 하였다. '어서 피해, 변신할 꺼야.' 라고. 다행히 베르단디는 케이의 입의 움직임을 아주 정확히 이해하였다.
"전 그런 줄도 모르고 케이 씨 곁에 있었군요. 죄송해요....저 때문에 식장이 방해돼서...."
"아냐, 말도 안하고 이런 작전을 한 내가 나쁜걸. 그래도 베르단디가 내 말을 알아들어서 정말 다행이야."
하야미는 케이의 설명을 듣고 난 후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이제 형세는 다시 대등해졌다. 물론 아직 앱톰이 인질로 잡혀있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주변의 다른 적은 이제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게다가 다시 재식장한 케이의 몸은 아주 깨끗했다. 아까 전에 엔자임 III들과 싸우면서 생긴 상처들이 말끔하게 치유된 것이다. 강식장갑을 벗었다가 다시 입는 과정에서 강식 세포들이 재구성된 것이다.
케이는 카브라알을 향해 분명히 선언하였다.
"자! 이제 내 차례다, 카브라알!! 이제 이 싸움을 끝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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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방 먹었군....."
클라우드 게이트의 종합 상황실에서 신은 나직하게 탄성을 올렸다. 이제 보니 가이버 I 은 위기상황을 탈출하기 위해 일부러 식장을 벗고는 잠시 포로가 됐던 것이다. 머리가 깨질 것 같은 극도의 고통 속에서도 그런 묘안을 짜내다니. 이제까지 신 자신을 비롯해서 크로노스의 모두가 가이버 I, 모리사토 케이를 너무 과소평가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한 방 먹은 기분이 드는 것은 자신뿐만이 아닐 것이다. 지금 모종의 음모를 꾸미고 있는 세 신장 녀석들도 크게 놀랐을 것이다.
"저, 각하.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때 관제원 한 명이 신에게 다음 행동을 물었다.
"다른 비카르르 소대를 출동시킬까요? 어쨌든 비카르르의 초음파가 가이버에게 통한다는 게 입증된 이상....."
"아니, 출동시키지 않는다. 전 대원은 현 위치에서 대기하라."
신은 더 이상의 후속 병력을 내보내지 않기로 하였다. 비카르르뿐만이 아니라 바모아 부대도 출격 금지 명령을 내렸다. 보내봐야 쿨메그닉 일당의 사념파에 지배당할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가이버 I 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쿨메그닉 녀석들의 음모를 분쇄하는 것도 중요했다. 더 이상 녀석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전 대원은 나의 사념파가 미치는 범위 안에서만 행동하라! 절대로 밖으로 나가서는 안 된다!"
이제 전투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었다. 앱톰을 배후 조종하는 거야 쿨메그닉 일당이겠지만 가이버 I 은 생각만큼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니었다. 이제 녀석들이 어떤 수를 들고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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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이 싸움을 끝낸다? 그거 재미있군. 드디어 네 친구인 이 앱톰의 몸을 공격할 생각이 들었나 보지?>
카브라알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그리고 고주파 스피어를 케이에게 날렸다.
<어디 한 번 공격해 봐라! 설령 공격당한다 해도 죽는 건 앱톰이지 내가 아니야!!>
-쉬이익!!
고주파 스피어가 케이를 향해 똑바로 날아왔다. 그 순간 케이 역시 고주파 스피어를 향해 정면으로 달려갔다. 고주파 스피어가 케이에게 명중하기 직전 케이가 몸을 옆으로 살짝 틀었다.
-휘잉! 콰아앙!!
빚나간 고주파 스피어가 바닥에 꽂히면서 커다란 구멍이 생겼다. 케이는 그렇게 살짝 고주파 스피어를 피했다. 공격을 아주 아슬아슬하게 최소한의 동작으로만 피하면 피한 직후 바로 반격을 가할 여지가 생기게 된다. 그리고 고주파 스피어의 약점 또한 알아냈기 때문에 이런 무모해 보이는 짓을 한 것이다. 고주파 스피어의 약점, 그것은 신축성이 뛰어난 팔을 최대한으로 늘렸을 때 스피어가 다시 복귀하는 데에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케이는 바로 이것을 노린 것이다.
"앱톰은 반드시 구한다!!"
-쉬익! 슈칵!!
달려가면서 케이는 최대한으로 늘어난 카브라알의 왼 팔을 고주파 소드로 베어 버렸다. 고주파 스피어를 포함한 왼 팔이 그대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런 식으로 카브라알의 고주파 스피어를 봉쇄한 케이는 그대로 전속력으로 카브라알에게 달려들었다. 케이가 고주파 소드를 전개한 채로 그대로 높이 뛰어 올랐다.
"간다! 카브라알!!"
<이...이 놈이 감히!!!>
케이가 뛰어 들어오자 당황한 카브라알이 다른 무기를 전개하였다. 그의 머리 왼쪽에 있던 짧은 가시들이 길게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강한 전기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뿔에 강력한 고전압을 가해서 일정 필드를 형성, 그 안에 들어온 적을 그대로 감전시켜 태워버리는 무기였다. 지금처럼 적이 달려들어올때 방어용으로 적합한 무기였다.
-파지지직!!
-부우웅!!
그러나 케이는 그 안으로 뛰어들지 않았다. 마치 이럴 것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케이는 중력 제어구를 조작해서 위로 솟구쳐 올랐다. 카브라알이 깜짝 놀라 위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케이는 카브라알의 등 뒤로 뛰어 넘어간 이후였다. 뛰어 넘어가면서 케이는 그 자리에 남은 베르단디와 하야미에게 소리쳤다.
"둘 다 이쪽으로 와요!!"
그 소리를 들은 베르단디와 하야미는 카브라알을 피해 멀리 빙 돌아 케이가 있는 쪽으로 달려왔다. 케이들은 카브라알의 등 뒤에 몇 미터 떨어진 지점에 다시 모였다. 그러자 카브라알이 눈에 띄게 당황해 하는 것이 보였다. 등 뒤에 모였다고 해도 등을 빼앗겼다고 할 수가 없는 게 거리가 상당히 떨어져 있어서 대응시간은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냥 뒤돌아서면 되는 걸 가지고 왜 저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키이이잉!!
잠시 후 카브라알이 다시 흉부의 모레클 엑셀레이터를 가동시키는 것이 보였다. 도대체 정확도가 떨어지고 반응이 느린 그런 무기를 왜 또 쏘는 것일까? 그런데 이번에는 방향까지 완전히 틀렸다. 케이들을 향해 쏘는 게 아니라 정 반대방향, 케이들이 처음에 있던 그 자리를 향해 쏘려는 것이다. 그 방향에는 아까 케이가 자른 고주파 스피어가 달린 앱톰의 왼 팔 밖에는 없었다. 베르단디와 하야미는 도대체 카브라알이 뭘 하려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지만 케이는 뭔가 확신에 찬 표정이었다.
-쿠와아아앙!!!
그 때 모레클 엑셀레이터가 발사되었다. 모레클 엑셀레이터의 빔은 고주파 스피어의 파편들을 깨끗이 태워 버렸다. 하지만 단지 그 뿐이다. 지금 이 공격으로 케이들이 타격을 입을 일은 전혀 없다. 즉 누가 봐도 지금의 이 공격은 아무 의미 없는 에너지 낭비일 뿐이었다. 베르단디와 하야미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그 광경을 보고 있었지만 케이만큼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습니다."
"수수께끼? 난 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어."
하야미뿐만이 아니라 베르단디까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케이는 베르단디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물론 가이버의 마스크 때문에 보이지는 않지만)
"베르단디 덕분이야. 덕분에 모든 비밀이 풀렸어."
"네? 저요? 제가 뭘 어떻게 도와드렸는지...."
"아까 나한테 말했잖아. 앱톰의 파동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그게 결정적인 힌트였어."
아까 전에 베르단디는 카브라알이 조종하고 있는 앱톰의 몸을 그녀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앱톰 특유의 파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뭔가 다른 파동이 흘러나오고 있던 것이다. 마치 앱톰의 몸에 무슨 이물질이 박힌 것처럼. 베르단디는 그 사실을 케이에게 말해주었고 케이는 즉시 헤드 센서로 앱톰의 몸을 자세히 스캔해서 베르단디의 말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거기서 그는 결정적인 사실을 알아낸 것이다.
"지금의 앱톰에게는 뇌가 없습니다!"
"뭐...뭐라고?!!"
"지금 앱톰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뇌는 다른 생물체의 체조직으로 만들어진 가짜 뇌입니다."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뇌가 없다니! 게다가 다른 생물체의 체조직이 진짜 뇌 행세를 하고 있다니. 하야미와 베르단디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데 이해가 안 가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앱톰의 육체는 다른 생물을 융합 포식하는 능력이 있다. 앱톰 본인의 의지가 작용하지 않는다면 그 몸의 세포가 본능적으로 대상을 흡수하게 된다. 그런데 어떻게 그 가짜 뇌는 앱톰의 육체에 융합되지 않을 수 있던 걸까?
"그 가짜 뇌는 앱톰의 뇌파와 비슷한 신호를 송출해서 앱톰 육체의 세포들을 속인 겁니다. 진짜 앱톰의 뇌 행세를 한 거죠."
level 4 실험실에서 스텔스 조아노이드를 잡아먹은 앱톰의 세포가 그 육체를 다시 재구축할 당시 이미 가짜 뇌가 그 자리에 있던 것이다. 앱톰의 세포들이 육체를 다시 만들 당시 세포들은 뇌가 이미 있다고 인식했기 때문에 뇌의 복원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육체가 구성되자 그 가짜 뇌는 카브라알의 사념파를 수신하는 일종의 수신기 역할을 해서 카브라알의 의지에 따라 앱톰의 몸을 움직인 것이다. 맨 처음 앱톰이 복원되자마자 엉망으로 폭주했던 이유는 카브라알이 앱톰의 몸을 다루는 것에 익숙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그럼 그 가짜 뇌는 언제 들어간 거죠? 우린 앱톰 씨의 부활을 계속해서 지켜봤지만 그런 게 들어가는 모습은 보지 못했잖아요."
베르단디가 케이에게 질문을 하였다. 베르단디의 말대로 앱톰의 육체가 재구축될 당시 무슨 이물질 같은 게 들어가는 장면은 보이지 않았다. 베르단디뿐만이 아니라 케이나 하야미도 보지 못했다. 즉, 진짜로 무슨 이물질이 외부에서 들어간 적은 없다는 뜻이다. 케이의 대답이 이어졌다.
"그건 내 추측이지만, 아까 최초로 잡아먹힌 그 스텔스 조아노이드의 육체 속에 처음부터 들어있던게 아닐까 싶어."
순전히 케이의 추측일 뿐이지만 정황상 그렇게밖엔 생각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그 스텔스 조아노이드는 이번 작전에 투입되기 전에 재조제를 받고 그 가짜 뇌를 몸속에 담아 뒀을 것이다. 그리고 앱톰의 세포가 그 조아노이드를 잡아먹기 시작하자 본격적으로 기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그 스텔스 조아노이드는 처음부터 앱톰에게 잡아먹히도록 하기 위해 실험실 안으로 들어가게 한 것이라는 말이 된다.
어쨌든 이것으로 모든 수수께끼가 풀렸다. 카브라알이 이제까지 발사한 총 세 번의 모레클 엑셀레이터(분자 가속기) 공격. 첫 번째야 케이들을 노리고 쏜 것이지만 두 번째 부터는 전혀 의미 없는 공격이었다. 허점이 너무 커서 피하기가 쉬운 그 공격을 연거푸 세 번이나 쏜 이유. 게다가 마지막은 케이들을 노리고 쏜 게 아니라 잘려져 나간 왼 팔의 파편들을 노리고 쏜 것이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본체로 부터 떨어져 나간 앱톰의 체조직을 가능한 한 빨리 없애버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잘려져 나간 체조직들을 그냥 내버려 두게 되면 그 체조직은 즉시 세포 분열을 계시, 순식간에 원래의 진짜 뇌를 가진 앱톰을 복원시켜 버리기 때문이었다!
맨 처음 하야미의 몸을 융합포식하지 않은 이유도 설명이 된다. 앱톰의 몸을 조작하는 것이 서투른 상황에서 함부로 융합을 시도했다가 케이가 앱톰의 팔을 자르기라도 하면 하야미의 육체를 베이스로 진짜 앱톰이 부활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부터 할 일은....."
"카브라알의 저 몸에서 충분히 개체화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육체조각을 잘라내는 겁니다. 그리고 그걸 카브라알로부터 지켜낼 수 있다면..... 앱톰을 구할 수 있습니다!"
이제 앱톰 구출에의 희망이 생겼다! 케이들은 의지를 다졌다.
이번에야 말로 앱톰을 구하는 것이다!
Next episode 제23화 '그 남자, 하야미' coming soon.....
p.s : 날씨가 더워요.....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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