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Moon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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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뉘엿뉘엿 져가고 있었다. 테라스에 앉아서 멍하니 해를 바라보려니 뒤쪽에서 옷이 살결에 스치는 소리와 함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엿보면 죽을 줄 알아."
"예~ 예~ 안 봅니다. 안 봐요."
해가 저무는 속도는 조금씩 가속을 붙이기 시작했고, 곧 건물로 인해 들쑥날쑥한 지평선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바로 그 해가 사라짐과 동시에 테라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가 비취기 전보다 더욱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가자고, 오늘은 반드시 해결 봐야겠어."
"해결이라니.. 하아!"
그녀는 나의 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인질이라지만, 왠지 친구처럼 대하는게 오히려 더욱 어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렇게나 애를써도 열리지 않던 현관문이 그녀의 손에는 부드럽게 열렸다. 복도를 따라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아파트를 빠져나오자, 어느새 하늘 한쪽 구석에서는 둥근 달이 지면을 비추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달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강한 월령이군."
"으음..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요동치는데, 이것이 뱀의 피라는 것인가?"
정확히 심장 근처에서 뜨거운 기운이 이리저리 날뛰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언가의 막에 의해서 그 자리를 벗어나고 있지는 않고 있었다. 그녀는 허리에 손을 얹고서는 나를, 정확히 나의 가슴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건 네 피속에 흐르는 힘이야. 정확히는 나도 잘 몰라. 나도 이 나라의 고신도는 전혀 몰라."
"뭔가 모를 소리만 또 하는군. 됐어. 그것보다 이제부터는 어딜 갈꺼야? 이왕이면 빨리 끝내자고, 더 이상 외박 따윌 했다간 동생녀석에게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겠단말야."
그러나 이 녀석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서 대답했다.
"어라? 형제가 있던거야?"
"형제? 흐음.. 정확히는 남매겠지."
"여동생?"
"그래. 그것도 무척이나 껄끄러운 관계의.. 이쯤 말하면 대충 알아 들었을테니 빨리 끝내자고.."
그러나 녀석은 두리번 거리는 것을 그만두고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나의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또 냄새를 맡기도 했다. 그리고는 뭔가 알다가도 모를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상하단말야. 분명히 피냄새가 흐르고 있는데, 정작 이 녀석은 다른 속성의.. 음.. 에잇! 이해가 안돼!"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아무튼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잖아."
"기각. 솔직히 네가 말한 것처럼 뱀이 나타날지, 나타나지 않을지는 몰라. 게다가 녀석은 사자(死者)를 운영하지도 않아. 요컨대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리지. 웃기게 된건 그녀석의 맥박이 희미해서 느끼기가 무척이나 힘들어. 이런 경우는 처음이란거야."
"그래서 미끼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딩동댕! 그러니까 앞으로 계속 사용할꺼야."
아무래도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그렇다고 도망치자니, 그날의 그 날렵한 움직임이 생각났다. 뭔가 나도 그런 움직임을 한 기억이 있는 것 같지만, 일단은 이녀석이 한수 위일 것 같은 느낌은 분명했다. 이래저래 끼지도 도망치지도 못할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나마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경찰이 와서 구해주기를 바란다는 것 뿐.. 이려나?
"일단은 이 근처이긴 한데.. 오차 범위는 약 1Km겠네."
"오차치고는 엄청 넓잖아."
"흐응.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무턱대고 이 도시를 해집을 수는 없을 노릇이잖아? 물론 그렇게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랬다간 일만 더 커지니까 사양할래."
"잠깐.. 그렇게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괴물이냐."
"괴물아냐! 넌 힘쎈 사람이 힘자랑 한다고 괴물이라고 하냐!"
뭐, 그렇게 말한다면 충분히 내가 나쁜녀석이지만 말야.. 이건 그 범주를 넘어선 언행이며, 사고방식인걸 모를까나.
"일반상식을 벗어난 것을 보고 괴물이라고 하는거야."
"아레? 일반상식?"
설마.. 몰랐던 것인가? 강적이 아니라.. 진정한 괴물이로군. 이래서야 도망치는 것은 고사하고, 이번일 와중에 죽지 않게만 빌게 생겼다.
"아직도 인거야?"
몇십여분 쯤을 걸어가며 물어봤지만, 녀석은 조용히 턱을 짚고서는 걸어갈 뿐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 생각 난 것처럼 나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너 그때 나를 어떻게 벤거야?"
"뭐어? 뱀을 찾는다던가 뭔가가 아니고, 그걸 생각한거야?"
"그건 나중이고, 일단 어떻게 나를 자른거야?"
녀석의 눈빛이 뭔가 심상치 않다. 음.. 일단은 그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봤다. 분명히 녀석을 보고서는 뭔지 모를 기분에 휩싸이게 되어버린 뒤에, 안경을 벗고서 녀석의 점을 응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녀석의 점이나 선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뭔가 더욱 집중을 가하자 녀석의 주위로 퍼져나오는 붉은 빛무리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빛무리의 불규칙한 균열을 그대로 그어버렸을 뿐이었다.
"뭐랄까? 너의 몸에서 퍼져나오는 빛무리의 균열을 그어버렸어."
"음? 빛무리를?"
녀석은 뭔가 기억을 해내려는 듯이 말없이 한참을 서있다가 곧 나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마안은 아냐. 그렇다면 다른 힘이로군. 색다른걸? 만월의 나에게 타격을 줄만큼 강력한 힘이라니. 칫!"
"응? 하지만 그 때 뿐일지도 몰라.. 나도 그게 처음 본 현상이었으니까."
"헤에.. 그렇다면 극한의 상황에서 끌려나온 잠재력이라고 볼 수 있겠네. 의외로 강한 힘을 내포한 혈족일지도.."
녀석의 눈빛이 조금은 사이해졌다. 뭐랄까, 이걸 먹을까 말까 하는 포식자의 눈빛이랄까? 호기심반, 질투반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 어서 화제를 바꿔야만 했다.
"그런데 뱀이라는 녀석은 언제쯤 찾을꺼야?"
"틀렸어. 희미하게 느껴지던 것이 사라졌어. 생각하는 동안에도 어두운 골목을 이리저리 탐색하고 있었다고. 녀석은 지금 자중하고 있는거야. 스스로의 최저한의 혈액만 섭취하는 거겠지."
그러면서 왠지 모르게 파랗게 시려보이는 손톱을 탁탁 털었다.
***
그리고는 한참 거리를 돌아다니기만 했다. 그 뒤를 나는 졸졸 쫓아갈 뿐이었고, 그녀는 아무말 없이 거리를 배회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덧 어제의 그 공원에 이르렀다. 납치된 곳이라서 뭔가 깨름칙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인질 주제에 그냥 가자고해도 들어줄 녀석은 아닐테니까.
"뭔가 단서가 될만한 걸 찾아보자구."
내가 그렇게 말하자 녀석의 눈빛이 갑작스레 날카로워져 버렸다. 그와함께.. 예의 힘의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달빛이 일그러질 정도로 강렬한 힘이 몸을 짓눌러왔다. 그런데 갑작스레 그녀의 손이 내 목덜미를 잡고서는 뒤로 휙하고 던져버렸다.
"제 3자는 이제 그만 빠져."
"알퀘이드 브륜스터드. 이제 그만 그 사람을 넘겨."
"흥! 이제 미끼따윈 쓸모 없어. 지난번에 죽였는데, 금방 전생하는구나? 재미있군.."
"더 이상 로어따위가 아냐. 그런 쓰레기 같은 녀석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치 않아."
그러면서 점차 가로등 불빛으로 나아오는 뱀. 이미 목소리를 들은 순간부터 나의 의식은 오로지 뱀에게 쏠려버렸다. 잊을 수 없을 목소리. 그것은 이제는 붉은 눈이 되어버려서 더 이상은 친구로써 남아주지 못할 클레스 메이트였다. 빙그레 웃으면서 가로등 불빛 아래로 완전히 나타난 유미즈카는, 약간 창백한 얼굴로 알퀘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힘으로 밀리고 있었다. 알퀘이드라는 진조의 힘에 의해서 눌려버린 것이다.
"호오? 그렇다면 더 이상 살아날 수 없다는 뜻이군. 확실히 정상적인 계승이 이뤄지지 못해서 혼의 코드가 짓뭉개져 버렸다는 것인가? 단지 힘덩어리만이 전달 되었단 것일까? 후후후후.. 상관 없어. 죽일테니까.."
거대한 힘.. 그것이 유미즈카를 더더욱 짓누르고 있었다. 이해했다. 유미즈카는 사도, 이제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란 말인가? 저 사색이 된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하얀 진조에게 느끼는 감정은 분노.
그만해!
그녀는 옳은 일을 하는 중이야.
네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는걸 기억해
힘도 없는 녀석이 무엇을 바라는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그녀를 구한다."
핀치일때 구해주겠다는 약속. 지키지 못할 것 같았던 약속을.. 이젠 인간이 아니게 된 그녀이지만, 그것을 이행시켜준다.
"알퀘이드 브륜스터드. 그녀를 놓아줘."
"제 3자의 입장을 포기하고 적이 되는군."
***
"알퀘이드 브륜스터드. 그녀를 놓아줘."
"제 3자의 입장을 포기하고 적이 되는군."
그녀의 공간이 넓어져 나까지 덮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코 지지 않겠다.
카칫~!
"그래.. 어차피 너도 죽이려고 했어. 나에게 상처따윌 입히다니, 한낱 인.간. 주제에 말이지.. 우후후후.."
그래. 어차피 그녀와 나는 적이었다. 뱀이 유미즈카가 아니었다면, 나는 분명히 제 3자를 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뱀이라고 지명된 순간부터, 나의 톱니바퀴는 돌아가기 시작했다. 핀치일때 도와달라던 그 목소리의 파편이 깨어져서 나의 톱니바퀴는 흐르기 시작했다.
"어때? 이번에도 죽일 수 있겠어? 그때처럼 나를 베어 넘길 수 있겠어?"
"------"
"그러면 죽어."
끼아아아아앙!
공간이 응축된다. 뒤로 스텝을 밟았다. 가볍게, 되도록이면 빠르게, 공간을 점하며, 공간에서 공간으로 뛰어넘는다. 안구의 반응속도를 높여라. 그리고 적을 인식해라.
스퓨욱!
응축되는 공간을 빠져나와 그녀의 곁을 지나친다. 공격해 오는 팔을 피해 유미즈카의 곁으로 다가간다. 아직도 힘에 눌린채로 괴로워 하는 유미즈카를 옆구리에 껴넣는다. 뒤쪽으로부터 수축되어오는 압박감, 그녀가 움직여 오고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날 수는 없다. 그녀를 안고서 몸이 움직이는데로 따라간다. 가로등의 기둥을 잡고서 가볍게 붙어 오른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박차고, 그 뒤를 이어서 할퀴어 오는 하얀 진조의 팔을 피해 허공을 가로지른다. 약 15M의 도약이 끝나기 직전 몸을 비틀어 궤도를 랜덤하게 흩어버린다.
터터텅! 우지직!
대부분의 보도블럭이 깨어져 버렸다. 희끗하게 보이는 하얀 진조의 질주, 그것을 피해 단도를 휘두른다. 맞부딫히는 강렬한 힘을 검날을 통해서 허공으로 튕겨낸다. 그리고 빠르게 숲속으로 질주했다. 나무기둥을 밟고 차며, 그렇게 튄다. 스스로의 힘을 아낌없이 개방하여 도주를 시도했다.
"흐랴압!"
마지막으로 거리를 향해서 전력의 질주를 불태웠다. 희끗하게 비취던 하얀 진조의 질주가 사라졌다. 하지만 안심은 이르다. 빠르게, 그녀의 공간을 털어버렸다. 다리의 근육이 극한의 신호를 보내왔지만, 한동안 질주를 지속했다.
"빠르네. 과연 엄청난 혈족이군. 마치 흡혈종을 상대하기 위한 퇴마의 혈족."
"재미있군요. 당신의 속도를 능가하는 존재가 오랫만에 나타났는데 말이죠."
"나타나셨군. 활의 사제. 아니 교회의 개.."
"분위기가 평소보다 살벌하군요. 변태흡혈귀씨."
스파아아아앙!
커다란 균열음, 그와함께 둘의 모습을 사라졌다. 그리고 단지 을씨년스러운 가로등 불빛만이 남아있었다.
***
어느새 담장을 넘어서 현관문 앞에 쓰러져 버렸다. 그러자 현관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검은 머릿결의 소녀, 그 얼굴이 확인되자 온몸의 긴장을 풀어버렸다. 긴장이 풀린 근육에는 엄청난 피로감이 쌓여왔다.
"오.. 오라버니!?"
"여어~ 아키하.."
되도록이면 밝게 인사를 건내주고서는 의식을 잃었다.
"엿보면 죽을 줄 알아."
"예~ 예~ 안 봅니다. 안 봐요."
해가 저무는 속도는 조금씩 가속을 붙이기 시작했고, 곧 건물로 인해 들쑥날쑥한 지평선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바로 그 해가 사라짐과 동시에 테라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해가 비취기 전보다 더욱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이 나를 내려다보며 싱긋 웃었다.
"가자고, 오늘은 반드시 해결 봐야겠어."
"해결이라니.. 하아!"
그녀는 나의 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인질이라지만, 왠지 친구처럼 대하는게 오히려 더욱 어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그렇게나 애를써도 열리지 않던 현관문이 그녀의 손에는 부드럽게 열렸다. 복도를 따라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아파트를 빠져나오자, 어느새 하늘 한쪽 구석에서는 둥근 달이 지면을 비추려 하고 있었다. 그녀는 달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강한 월령이군."
"으음.. 가슴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요동치는데, 이것이 뱀의 피라는 것인가?"
정확히 심장 근처에서 뜨거운 기운이 이리저리 날뛰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언가의 막에 의해서 그 자리를 벗어나고 있지는 않고 있었다. 그녀는 허리에 손을 얹고서는 나를, 정확히 나의 가슴을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건 네 피속에 흐르는 힘이야. 정확히는 나도 잘 몰라. 나도 이 나라의 고신도는 전혀 몰라."
"뭔가 모를 소리만 또 하는군. 됐어. 그것보다 이제부터는 어딜 갈꺼야? 이왕이면 빨리 끝내자고, 더 이상 외박 따윌 했다간 동생녀석에게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겠단말야."
그러나 이 녀석은 주위를 두리번 거리면서 대답했다.
"어라? 형제가 있던거야?"
"형제? 흐음.. 정확히는 남매겠지."
"여동생?"
"그래. 그것도 무척이나 껄끄러운 관계의.. 이쯤 말하면 대충 알아 들었을테니 빨리 끝내자고.."
그러나 녀석은 두리번 거리는 것을 그만두고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나의 이곳저곳을 살펴보고, 또 냄새를 맡기도 했다. 그리고는 뭔가 알다가도 모를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이상하단말야. 분명히 피냄새가 흐르고 있는데, 정작 이 녀석은 다른 속성의.. 음.. 에잇! 이해가 안돼!"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아무튼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잖아."
"기각. 솔직히 네가 말한 것처럼 뱀이 나타날지, 나타나지 않을지는 몰라. 게다가 녀석은 사자(死者)를 운영하지도 않아. 요컨대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는 소리지. 웃기게 된건 그녀석의 맥박이 희미해서 느끼기가 무척이나 힘들어. 이런 경우는 처음이란거야."
"그래서 미끼가 필요하다는 말인가?"
"딩동댕! 그러니까 앞으로 계속 사용할꺼야."
아무래도 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그렇다고 도망치자니, 그날의 그 날렵한 움직임이 생각났다. 뭔가 나도 그런 움직임을 한 기억이 있는 것 같지만, 일단은 이녀석이 한수 위일 것 같은 느낌은 분명했다. 이래저래 끼지도 도망치지도 못할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나마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경찰이 와서 구해주기를 바란다는 것 뿐.. 이려나?
"일단은 이 근처이긴 한데.. 오차 범위는 약 1Km겠네."
"오차치고는 엄청 넓잖아."
"흐응. 그래도 어쩔 수 없다고. 무턱대고 이 도시를 해집을 수는 없을 노릇이잖아? 물론 그렇게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랬다간 일만 더 커지니까 사양할래."
"잠깐.. 그렇게 못하는 것은 아니라는.. 괴물이냐."
"괴물아냐! 넌 힘쎈 사람이 힘자랑 한다고 괴물이라고 하냐!"
뭐, 그렇게 말한다면 충분히 내가 나쁜녀석이지만 말야.. 이건 그 범주를 넘어선 언행이며, 사고방식인걸 모를까나.
"일반상식을 벗어난 것을 보고 괴물이라고 하는거야."
"아레? 일반상식?"
설마.. 몰랐던 것인가? 강적이 아니라.. 진정한 괴물이로군. 이래서야 도망치는 것은 고사하고, 이번일 와중에 죽지 않게만 빌게 생겼다.
"아직도 인거야?"
몇십여분 쯤을 걸어가며 물어봤지만, 녀석은 조용히 턱을 짚고서는 걸어갈 뿐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뭔가 생각 난 것처럼 나를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너 그때 나를 어떻게 벤거야?"
"뭐어? 뱀을 찾는다던가 뭔가가 아니고, 그걸 생각한거야?"
"그건 나중이고, 일단 어떻게 나를 자른거야?"
녀석의 눈빛이 뭔가 심상치 않다. 음.. 일단은 그 당시의 상황을 떠올려봤다. 분명히 녀석을 보고서는 뭔지 모를 기분에 휩싸이게 되어버린 뒤에, 안경을 벗고서 녀석의 점을 응시하려고 했다. 그러나 녀석의 점이나 선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뭔가 더욱 집중을 가하자 녀석의 주위로 퍼져나오는 붉은 빛무리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빛무리의 불규칙한 균열을 그대로 그어버렸을 뿐이었다.
"뭐랄까? 너의 몸에서 퍼져나오는 빛무리의 균열을 그어버렸어."
"음? 빛무리를?"
녀석은 뭔가 기억을 해내려는 듯이 말없이 한참을 서있다가 곧 나를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마안은 아냐. 그렇다면 다른 힘이로군. 색다른걸? 만월의 나에게 타격을 줄만큼 강력한 힘이라니. 칫!"
"응? 하지만 그 때 뿐일지도 몰라.. 나도 그게 처음 본 현상이었으니까."
"헤에.. 그렇다면 극한의 상황에서 끌려나온 잠재력이라고 볼 수 있겠네. 의외로 강한 힘을 내포한 혈족일지도.."
녀석의 눈빛이 조금은 사이해졌다. 뭐랄까, 이걸 먹을까 말까 하는 포식자의 눈빛이랄까? 호기심반, 질투반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 어서 화제를 바꿔야만 했다.
"그런데 뱀이라는 녀석은 언제쯤 찾을꺼야?"
"틀렸어. 희미하게 느껴지던 것이 사라졌어. 생각하는 동안에도 어두운 골목을 이리저리 탐색하고 있었다고. 녀석은 지금 자중하고 있는거야. 스스로의 최저한의 혈액만 섭취하는 거겠지."
그러면서 왠지 모르게 파랗게 시려보이는 손톱을 탁탁 털었다.
***
그리고는 한참 거리를 돌아다니기만 했다. 그 뒤를 나는 졸졸 쫓아갈 뿐이었고, 그녀는 아무말 없이 거리를 배회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덧 어제의 그 공원에 이르렀다. 납치된 곳이라서 뭔가 깨름칙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인질 주제에 그냥 가자고해도 들어줄 녀석은 아닐테니까.
"뭔가 단서가 될만한 걸 찾아보자구."
내가 그렇게 말하자 녀석의 눈빛이 갑작스레 날카로워져 버렸다. 그와함께.. 예의 힘의 충돌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달빛이 일그러질 정도로 강렬한 힘이 몸을 짓눌러왔다. 그런데 갑작스레 그녀의 손이 내 목덜미를 잡고서는 뒤로 휙하고 던져버렸다.
"제 3자는 이제 그만 빠져."
"알퀘이드 브륜스터드. 이제 그만 그 사람을 넘겨."
"흥! 이제 미끼따윈 쓸모 없어. 지난번에 죽였는데, 금방 전생하는구나? 재미있군.."
"더 이상 로어따위가 아냐. 그런 쓰레기 같은 녀석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치 않아."
그러면서 점차 가로등 불빛으로 나아오는 뱀. 이미 목소리를 들은 순간부터 나의 의식은 오로지 뱀에게 쏠려버렸다. 잊을 수 없을 목소리. 그것은 이제는 붉은 눈이 되어버려서 더 이상은 친구로써 남아주지 못할 클레스 메이트였다. 빙그레 웃으면서 가로등 불빛 아래로 완전히 나타난 유미즈카는, 약간 창백한 얼굴로 알퀘이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힘으로 밀리고 있었다. 알퀘이드라는 진조의 힘에 의해서 눌려버린 것이다.
"호오? 그렇다면 더 이상 살아날 수 없다는 뜻이군. 확실히 정상적인 계승이 이뤄지지 못해서 혼의 코드가 짓뭉개져 버렸다는 것인가? 단지 힘덩어리만이 전달 되었단 것일까? 후후후후.. 상관 없어. 죽일테니까.."
거대한 힘.. 그것이 유미즈카를 더더욱 짓누르고 있었다. 이해했다. 유미즈카는 사도, 이제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존재였다. 그런데.. 그런데.. 어째서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란 말인가? 저 사색이 된 모습을 바라보면서 이 하얀 진조에게 느끼는 감정은 분노.
그만해!
그녀는 옳은 일을 하는 중이야.
네가 끼어들 자리는 없다는걸 기억해
힘도 없는 녀석이 무엇을 바라는거야?
그러니까.. 그러니까..
"나는 그녀를 구한다."
핀치일때 구해주겠다는 약속. 지키지 못할 것 같았던 약속을.. 이젠 인간이 아니게 된 그녀이지만, 그것을 이행시켜준다.
"알퀘이드 브륜스터드. 그녀를 놓아줘."
"제 3자의 입장을 포기하고 적이 되는군."
***
"알퀘이드 브륜스터드. 그녀를 놓아줘."
"제 3자의 입장을 포기하고 적이 되는군."
그녀의 공간이 넓어져 나까지 덮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결코 지지 않겠다.
카칫~!
"그래.. 어차피 너도 죽이려고 했어. 나에게 상처따윌 입히다니, 한낱 인.간. 주제에 말이지.. 우후후후.."
그래. 어차피 그녀와 나는 적이었다. 뱀이 유미즈카가 아니었다면, 나는 분명히 제 3자를 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가 뱀이라고 지명된 순간부터, 나의 톱니바퀴는 돌아가기 시작했다. 핀치일때 도와달라던 그 목소리의 파편이 깨어져서 나의 톱니바퀴는 흐르기 시작했다.
"어때? 이번에도 죽일 수 있겠어? 그때처럼 나를 베어 넘길 수 있겠어?"
"------"
"그러면 죽어."
끼아아아아앙!
공간이 응축된다. 뒤로 스텝을 밟았다. 가볍게, 되도록이면 빠르게, 공간을 점하며, 공간에서 공간으로 뛰어넘는다. 안구의 반응속도를 높여라. 그리고 적을 인식해라.
스퓨욱!
응축되는 공간을 빠져나와 그녀의 곁을 지나친다. 공격해 오는 팔을 피해 유미즈카의 곁으로 다가간다. 아직도 힘에 눌린채로 괴로워 하는 유미즈카를 옆구리에 껴넣는다. 뒤쪽으로부터 수축되어오는 압박감, 그녀가 움직여 오고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날 수는 없다. 그녀를 안고서 몸이 움직이는데로 따라간다. 가로등의 기둥을 잡고서 가볍게 붙어 오른다. 그리고 나뭇가지를 박차고, 그 뒤를 이어서 할퀴어 오는 하얀 진조의 팔을 피해 허공을 가로지른다. 약 15M의 도약이 끝나기 직전 몸을 비틀어 궤도를 랜덤하게 흩어버린다.
터터텅! 우지직!
대부분의 보도블럭이 깨어져 버렸다. 희끗하게 보이는 하얀 진조의 질주, 그것을 피해 단도를 휘두른다. 맞부딫히는 강렬한 힘을 검날을 통해서 허공으로 튕겨낸다. 그리고 빠르게 숲속으로 질주했다. 나무기둥을 밟고 차며, 그렇게 튄다. 스스로의 힘을 아낌없이 개방하여 도주를 시도했다.
"흐랴압!"
마지막으로 거리를 향해서 전력의 질주를 불태웠다. 희끗하게 비취던 하얀 진조의 질주가 사라졌다. 하지만 안심은 이르다. 빠르게, 그녀의 공간을 털어버렸다. 다리의 근육이 극한의 신호를 보내왔지만, 한동안 질주를 지속했다.
"빠르네. 과연 엄청난 혈족이군. 마치 흡혈종을 상대하기 위한 퇴마의 혈족."
"재미있군요. 당신의 속도를 능가하는 존재가 오랫만에 나타났는데 말이죠."
"나타나셨군. 활의 사제. 아니 교회의 개.."
"분위기가 평소보다 살벌하군요. 변태흡혈귀씨."
스파아아아앙!
커다란 균열음, 그와함께 둘의 모습을 사라졌다. 그리고 단지 을씨년스러운 가로등 불빛만이 남아있었다.
***
어느새 담장을 넘어서 현관문 앞에 쓰러져 버렸다. 그러자 현관문이 열리고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검은 머릿결의 소녀, 그 얼굴이 확인되자 온몸의 긴장을 풀어버렸다. 긴장이 풀린 근육에는 엄청난 피로감이 쌓여왔다.
"오.. 오라버니!?"
"여어~ 아키하.."
되도록이면 밝게 인사를 건내주고서는 의식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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