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other Moon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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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보니 전혀 다른방.. 잠깐의 공황이 정신을 휩쓸고 이내에 하나의 갈피를 잡아냈다.
[그 재빠른 움직임.. 후후.. 어서말해.. 지금도 이 목을.. 물어 뜯고 싶지?]
어젯밤이라는 끔찍한 악몽이 정신을 일깨웠다. 다행히 방의 주인은 지금 이 자리에 없는 듯 싶었다. 이거 외박인가? 게다가.. 다른사람의, 더욱이 여성의 집에서 외박이라니. 한가지 추가하자면, 사츠키처럼 정상이 아닌 듯한 사람의 집이다. 아키하가 알게되면 화를 낸다기 보다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알몸으로 쫓아낼지도..
스스로 가상의 무덤을 파버리고서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별다른 수는 없었다. 단지 빠르게 빠져나가야 할 뿐이다.
"어잇샤!"
"일어났네. 그것도 꽤나 늦은 시간."
"------!"
방의 주인이 부엌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밀며 말했다. 그녀는 할일을 마져 마치는 것처럼 잠깐 부엌쪽을 힐끔거리고서는 내가 앉아있는 침대로 걸어왔다. 그리고서는 허리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아직 말하지 않았어."
"에.. 그러니까 뭘?"
멀뚱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려니, 그녀는 약간 살기가 묻은 눈으로 나의 가슴을 응시했다.
"뱀의 피에 먹히지도 않다니. 게다가 만월로 흉폭해진 그 피를 희석시키고 있을 줄이야.. 대체 어떤 혈족이지?"
"혈족? 뱀의 피? 대체 무슨 소리지?"
"바른대로 말하는게 좋을꺼야."
라면서 더욱 짙은 살기를 뿌려대는 그녀, 솔직히 말해주면 좋겠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나로서는 그녀에게 말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이런 인간 이외의 일쪽으로는 전혀, 아무것도, 도저히 알 수도 없어서 둘러대기도 뭐한 상황이니까.
"바른대로 말하자면, 난 평범한 고등학생이야. 이름은.. 토노 시키."
"그런 것을 물어보는게 아니잖아."
왠지 화내는 그녀를 바라보려니 토라진 고양이처럼 털을 바짝 새우고 있는 것 같다. 뭐랄까? 잔뜩 긴장했던 내가 바보스러울 정도로 그녀는 진지하지 않게 화를 내고 있었다.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려니까, 오히려 그녀는 더욱 화를 내버렸다.
"이이잇! 도데체가 정체가 뭐야? 만월의 나를 자를 수 있는 희한한 단도술. 게다가 지독한 사도의 피를 감당하는 피. 그리고.. 마안조차도 가뿐하게 무시하는 그 엉뚱한 현상은.."
"마안?"
"됐어. 그다지 바라던 것도 아니지만, 일단은 넘어가도록 하지. 그나저나 그 피는 안빼도 되겠네. 괜스레 내가 힘 뺄 필요도 없겠고."
"그러면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
내가 말하자 그녀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사양하지 않고 질문이나 던져 볼까나?
"이름은?" / "알퀘이드 브륜스터드."
"국적은?" / "독일.. 이려나?"
"이려나라니.. 마지막으로. 나를 데려온 목적은?"
"뱀의 말살과 내 힘의 회복."
마지막 대답에서는 물씬 지독한 독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대충 유추해보자면, 이 녀석은 흡혈귀를 퇴치하려는 녀석 같다.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을 하고있는 동안 부엌에서 약간의 그을리는 냄새가 스며나왔다. 내가 잠깐 부엌을 바라보자 그녀는 이내에 부엌에서 하던일이 생각 났는지, 허겁지겁 뛰어가며 외쳤다.
"타버리면 안돼애앳!"
"위험하군.."
***
"그래서.. 만든거니까. 먹어."
절묘한 동작으로 그릇을 내게 밀어주었다. 그릇을 바라보니 라면이 끓여져 있었다. 보기보다는 솜씨가 제법인 것처럼 좋은 냄새가 퍼져나왔다. 나는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갈라놓고서는 라면에 젓가락을 찔러넣다가 문득 그녀의 앞에는 라면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뭐야? 안먹어? 이상하다.. 이곳의 인간들이 주로 먹는 식품이 아니었나?"
"아니아니.. 먹을려고 하다가, 넌 안 먹는거야?"
"나? 괜찮아. 이런거 먹어봤자, 배만 부르지. 욕구가 충족되는 것은 아니니까."
뭔가, 아스트랄한 농도가 짙은 말을 선뜻 던지는 이 녀석이 굉장하게 느껴졌다. 식사를 하는 동안 그녀는 내내 나의 동작을 하나하나 살피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호기심 어린 어린아이의 눈동자 같아서 무척이나 부담되는 눈빛이었다. 그렇다고 거부하기엔 배가 너무나도 고팠기에 일단은 이것저것 생각을 제쳐놓고서는 신나게 입안으로 라면을 들이부었다.
"하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다행이네. 난 또 틀리게 한 줄 알았어."
"...그러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소리?"
"그냥 넘어가자고. 뭘 따져? 잘 먹었으면서."
그런 소리를 선뜻 던지는 이 녀석이 더더욱 굉장하게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나자 할일이 없어져 버렸다. 뭔가 목적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끌려온 것이라서 할일이 없는 것이었다. 녀석은 그릇을 개수대에 넣고서는 거품을 휘날리며 열심히 닦고 있었다. 나는 단지 심심해서 가만히 침대에 앉아 있다가, TV를 틀었다.
"이 시간에는 역시 아줌마들 프로 뿐이로군."
그렇게 다시 TV를 끄자 그녀는 손을 슥슥 닦으면서 다가왔다. 그리고서는 단지 침대 옆에 나란히 앉았다. 뭐랄까.. 어색한 분위기였다.
"불공평 한데 말야. 아무튼 좋아. 일단은 뱀을 잡아야하니 널 좀 이용해야 되겠는걸?"
"이용하다니. 어디에?"
"미끼. 일단은 저녁까지 자두는게 좋을꺼야. 밤새도록 돌아다닐 예정이니까."
"엑!? 무슨소리야."
"말 그대로야. 지금은 만월이라고, 분명히 뱀 녀석이 미쳐서 날뛸게 뻔한데. 그렇다면 너의 몸속에 있는 피에 감응해서 다가올지도 모른다구. 훗훗.."
들어보면 그럴싸한 말인데, 뭔가 이 녀석은 크게 간과한게 있다.
"그런데 말야. 그 뱀이라는 녀석.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쉽게 접근할까? 분명히 뭔가 수상한 낌새를 느끼고서는 한동안 내 앞에는 나타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말야."
"-------"
아아.. 굳었다. 굳었다. 굳었다. 직격탄 그대로 헤드샷에 성공한 것인가? 굳은채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는 이내에 고개를 세차게 저으면서 억지를 부리는 듯이 말했다.
"분명히 올거야! 올거라구! 내가 장담해!"
"----그래그래.. 오겠지."
"무우.. 그런 무책임한 소리!"
라고 말하고서 그녀는 고개를 팩 돌려버렸다. 그러더니 침대위로 쓰러졌다. 그러나 일어나지 않았다. 어라? 뭐야? 갑자기 왜..
"쿠울~"
"주무시는 겁니까?"
이 녀석.. 의외로 강적이다.
***
오후 내내 나는 이 녀석 방에 있었다. 아니 나갈 수가 없었다. 무슨 짓거리를 해둔 것인지,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선을 그어도 봤지만, 여전히 꿋꿋하게 버티는 현관문이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테라스를 통해서 내려가 볼까 했지만, 테라스 밖으로 손을 뻗은 순간 나의 몸은 테라스 창문 안쪽으로 들어와 있었다. 장난처럼 그렇게 이상한 현상을 보고서는 탈출할 생각을 버렸다. 솔직히 이 녀석을 베어버리면 간단하겠지만, 생사람을 죽이기엔 조금 이유가 부족했다.
"할 일이 없다는게 이렇게나 지루할 줄이야."
뭔가 없나 해서 이리저리 집안 을 돌아다니다가 문득 부엌 구석에 있는 검은 가루가 들어있는 통을 발견했다. 뚜껑을 열고서 냄새를 확인하자 짙은 커피향이 배어나왔다.
"흠.. 일단 이거라도 마셔보기로 할까?"
주전자는 다행히 가스레인지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물을 받아서 주전자에 넣고 가스 불을 붙였다.
"어디보자. 음.. 컵은 한개 뿐인가? 어쩔 수 없군. 일단은 마셔야지."
컵에 커피가루를 넣고서 다시 그위로 물을 부었다. 커피향이 은은히 퍼져나왔다. 왠지 달콤한 향이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갑작스레 침대위에서 뒹굴어야할 녀석이 벌떡 일어나서는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뭔가 굉장히 다급하고도 무서운 얼굴로..
"뭘 끓인거야!"
"커- 커피."
"커피? 에!? 설마 저 통에 든 가루를?"
"어라? 그런데.. 왜?"
"이- 이- 바보! 그건 커피 가루가 아니라 내 식사 대신이란 말야!"
"대.. 시인!?"
녀석은 굉장히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 손에 들린 컵을 빼앗아갔다. 그리고는 그 뜨거운 것을 단숨에 들이켜 버렸다. 뭔가 아스트랄한 농도가 위험 수위에 이르르고 있었다. 멍하니 녀석을 바라보고 있자니 녀석은 다시 원래의 헤실거리는 모습으로 돌아가서는 입을 열었다.
"어쨌든 함부로 건들이지마. 자칫 잘못하면, 흡혈충동이 심해져서 너를 죽일지도 몰라."
"응? 왜? 이거 그렇게도 중요한거야?"
"부해림 커피야. 내가 말 안했던가? 이건 흡혈충동을 격감시켜주는 효과가 있는데 말야. 물론 인간이 먹으면 사도로써의 힘을 극대화 시켜주는 극 희귀 레어아이템 이랄까?"
"그런거.. 말해주지 않았잖아. 게다가.. 부해림이란거.. 사도라는거.. 아무것도 이해가 되질 않는데 말야."
그렇다. 아니다를 떠나 그 이전의 문제가 있었다. 이 녀석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너무도 다른 것이다.
***
"귀찮네. 잠이 안와."
"다행이네. 나도 잠이 안왔는데 혼자서 심심했거든. 문은 열리지도 않지, 게다가 테라스로의 탈출은 이상하게 안된달까. 그래서 결국은 커피라도 마시려니까 방해 받았지.."
"잡혀 있는 주제에 할껀 다하네.."
그런가? 하긴 녀석에게 잡힌 주제에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정말이지 할일도 없이 이렇게 있는건 질색이다.
"흐음.. 뭐 아무튼 일단은 너에게 간단한 것 정도는 가르쳐 줘야. 사고가 없겠네. 좋아. 흡혈귀 강의(1)시작하지."
"잠깐.. (1)은 뭐야?"
"극히 기초중에 기초."
라면서 녀석은 팔짱을 끼고서는 한참을 뭔가 생각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일반적으로는 흡혈귀라 불리고 있어도, 우린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져. 태어날 때부터 흡혈귀였던 종과 흡혈귀가 된 종. 전자를 진조(眞祖), 후자를 사도(死徒)라고 부르지. 너희들이 흡혈귀라고 부르는 쪽은 시도야. 인간의 피를 빨고 이를 자신의 노예로 삼고, 그리고 태양 빛에 약하며 세례의식 앞에 패퇴하는. 나의 적도 사도로 구별되는 흡혈귀야. 일단은 이정도면 알아 들을까나?"
"그러면 넌 사람이 아닌거야?"
"말 안했던가? 난 진조야. 단순하게 사도는 너희가 알고 있는 흡혈귀라고 생각하면 될꺼야. 진조는 그와는 조금 다르지만, 어차피 인질인 너에겐 이런 복잡한 설명은 필요 없겠지?"
뭐랄까.. 여기서도 인질취급인가. 할말은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녀석이 노린다는 뱀인가 뭔가 하는 녀석은 사도란 말이로군. 그리고 그 녀석의 피가 지금 내 몸속에 있고, 그녀는 그것을 이용해서 뱀이라는 사도를 잡는다 라는 것일까? 그렇다면..
"흡혈귀가 흡혈귀를 죽여?"
"아이참! 그래서 흡혈귀의 종류를 설명했잖아. 솔직히 진조는 피를 빨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어.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난 존재니까. 하지만 사도는 진조와는 달라. 흡혈을 해야만 살 수 있지. 결국은 그런거야. 인간이 모두다 흡혈귀가 되기전에 그 흡혈귀를 처단한다는 거지. 그렇게만 알아둬. 괜히 쓸때없는 일에 말려들지나 말고."
이봐요. 난 이미 충분히 훌륭하게 휘말렸다고는 생각해 주지 않는 걸까나? 라지만 녀석은 다시금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
"그러면 난 이만 잘테니까. 깨우지마! 다시 한번만 더 깨우면, 꽁꽁 묶어버릴지도 몰라."
라면서 녀석은 다시금 잠에 빠졌다. 뭘까.. 더욱더 복잡한 느낌은.. 왠지 더더욱 쓰잘때기 없이 깊숙하게 연관 되어버렸다.
[그 재빠른 움직임.. 후후.. 어서말해.. 지금도 이 목을.. 물어 뜯고 싶지?]
어젯밤이라는 끔찍한 악몽이 정신을 일깨웠다. 다행히 방의 주인은 지금 이 자리에 없는 듯 싶었다. 이거 외박인가? 게다가.. 다른사람의, 더욱이 여성의 집에서 외박이라니. 한가지 추가하자면, 사츠키처럼 정상이 아닌 듯한 사람의 집이다. 아키하가 알게되면 화를 낸다기 보다는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알몸으로 쫓아낼지도..
스스로 가상의 무덤을 파버리고서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별다른 수는 없었다. 단지 빠르게 빠져나가야 할 뿐이다.
"어잇샤!"
"일어났네. 그것도 꽤나 늦은 시간."
"------!"
방의 주인이 부엌에서 얼굴을 빼꼼히 내밀며 말했다. 그녀는 할일을 마져 마치는 것처럼 잠깐 부엌쪽을 힐끔거리고서는 내가 앉아있는 침대로 걸어왔다. 그리고서는 허리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아직 말하지 않았어."
"에.. 그러니까 뭘?"
멀뚱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려니, 그녀는 약간 살기가 묻은 눈으로 나의 가슴을 응시했다.
"뱀의 피에 먹히지도 않다니. 게다가 만월로 흉폭해진 그 피를 희석시키고 있을 줄이야.. 대체 어떤 혈족이지?"
"혈족? 뱀의 피? 대체 무슨 소리지?"
"바른대로 말하는게 좋을꺼야."
라면서 더욱 짙은 살기를 뿌려대는 그녀, 솔직히 말해주면 좋겠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나로서는 그녀에게 말할 방법이 없었다. 게다가 이런 인간 이외의 일쪽으로는 전혀, 아무것도, 도저히 알 수도 없어서 둘러대기도 뭐한 상황이니까.
"바른대로 말하자면, 난 평범한 고등학생이야. 이름은.. 토노 시키."
"그런 것을 물어보는게 아니잖아."
왠지 화내는 그녀를 바라보려니 토라진 고양이처럼 털을 바짝 새우고 있는 것 같다. 뭐랄까? 잔뜩 긴장했던 내가 바보스러울 정도로 그녀는 진지하지 않게 화를 내고 있었다.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려니까, 오히려 그녀는 더욱 화를 내버렸다.
"이이잇! 도데체가 정체가 뭐야? 만월의 나를 자를 수 있는 희한한 단도술. 게다가 지독한 사도의 피를 감당하는 피. 그리고.. 마안조차도 가뿐하게 무시하는 그 엉뚱한 현상은.."
"마안?"
"됐어. 그다지 바라던 것도 아니지만, 일단은 넘어가도록 하지. 그나저나 그 피는 안빼도 되겠네. 괜스레 내가 힘 뺄 필요도 없겠고."
"그러면 질문 하나만 해도 될까?"
내가 말하자 그녀는 어이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사양하지 않고 질문이나 던져 볼까나?
"이름은?" / "알퀘이드 브륜스터드."
"국적은?" / "독일.. 이려나?"
"이려나라니.. 마지막으로. 나를 데려온 목적은?"
"뱀의 말살과 내 힘의 회복."
마지막 대답에서는 물씬 지독한 독기가 스며들어 있었다. 그러니까 대충 유추해보자면, 이 녀석은 흡혈귀를 퇴치하려는 녀석 같다.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을 하고있는 동안 부엌에서 약간의 그을리는 냄새가 스며나왔다. 내가 잠깐 부엌을 바라보자 그녀는 이내에 부엌에서 하던일이 생각 났는지, 허겁지겁 뛰어가며 외쳤다.
"타버리면 안돼애앳!"
"위험하군.."
***
"그래서.. 만든거니까. 먹어."
절묘한 동작으로 그릇을 내게 밀어주었다. 그릇을 바라보니 라면이 끓여져 있었다. 보기보다는 솜씨가 제법인 것처럼 좋은 냄새가 퍼져나왔다. 나는 나무젓가락을 반으로 갈라놓고서는 라면에 젓가락을 찔러넣다가 문득 그녀의 앞에는 라면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
"뭐야? 안먹어? 이상하다.. 이곳의 인간들이 주로 먹는 식품이 아니었나?"
"아니아니.. 먹을려고 하다가, 넌 안 먹는거야?"
"나? 괜찮아. 이런거 먹어봤자, 배만 부르지. 욕구가 충족되는 것은 아니니까."
뭔가, 아스트랄한 농도가 짙은 말을 선뜻 던지는 이 녀석이 굉장하게 느껴졌다. 식사를 하는 동안 그녀는 내내 나의 동작을 하나하나 살피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바라보았다. 그 모습은 마치 호기심 어린 어린아이의 눈동자 같아서 무척이나 부담되는 눈빛이었다. 그렇다고 거부하기엔 배가 너무나도 고팠기에 일단은 이것저것 생각을 제쳐놓고서는 신나게 입안으로 라면을 들이부었다.
"하아!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다행이네. 난 또 틀리게 한 줄 알았어."
"...그러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소리?"
"그냥 넘어가자고. 뭘 따져? 잘 먹었으면서."
그런 소리를 선뜻 던지는 이 녀석이 더더욱 굉장하게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나자 할일이 없어져 버렸다. 뭔가 목적이 있어서 온 것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끌려온 것이라서 할일이 없는 것이었다. 녀석은 그릇을 개수대에 넣고서는 거품을 휘날리며 열심히 닦고 있었다. 나는 단지 심심해서 가만히 침대에 앉아 있다가, TV를 틀었다.
"이 시간에는 역시 아줌마들 프로 뿐이로군."
그렇게 다시 TV를 끄자 그녀는 손을 슥슥 닦으면서 다가왔다. 그리고서는 단지 침대 옆에 나란히 앉았다. 뭐랄까.. 어색한 분위기였다.
"불공평 한데 말야. 아무튼 좋아. 일단은 뱀을 잡아야하니 널 좀 이용해야 되겠는걸?"
"이용하다니. 어디에?"
"미끼. 일단은 저녁까지 자두는게 좋을꺼야. 밤새도록 돌아다닐 예정이니까."
"엑!? 무슨소리야."
"말 그대로야. 지금은 만월이라고, 분명히 뱀 녀석이 미쳐서 날뛸게 뻔한데. 그렇다면 너의 몸속에 있는 피에 감응해서 다가올지도 모른다구. 훗훗.."
들어보면 그럴싸한 말인데, 뭔가 이 녀석은 크게 간과한게 있다.
"그런데 말야. 그 뱀이라는 녀석.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서도 쉽게 접근할까? 분명히 뭔가 수상한 낌새를 느끼고서는 한동안 내 앞에는 나타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하는데 말야."
"-------"
아아.. 굳었다. 굳었다. 굳었다. 직격탄 그대로 헤드샷에 성공한 것인가? 굳은채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는 이내에 고개를 세차게 저으면서 억지를 부리는 듯이 말했다.
"분명히 올거야! 올거라구! 내가 장담해!"
"----그래그래.. 오겠지."
"무우.. 그런 무책임한 소리!"
라고 말하고서 그녀는 고개를 팩 돌려버렸다. 그러더니 침대위로 쓰러졌다. 그러나 일어나지 않았다. 어라? 뭐야? 갑자기 왜..
"쿠울~"
"주무시는 겁니까?"
이 녀석.. 의외로 강적이다.
***
오후 내내 나는 이 녀석 방에 있었다. 아니 나갈 수가 없었다. 무슨 짓거리를 해둔 것인지, 현관문은 열리지 않았다. 선을 그어도 봤지만, 여전히 꿋꿋하게 버티는 현관문이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테라스를 통해서 내려가 볼까 했지만, 테라스 밖으로 손을 뻗은 순간 나의 몸은 테라스 창문 안쪽으로 들어와 있었다. 장난처럼 그렇게 이상한 현상을 보고서는 탈출할 생각을 버렸다. 솔직히 이 녀석을 베어버리면 간단하겠지만, 생사람을 죽이기엔 조금 이유가 부족했다.
"할 일이 없다는게 이렇게나 지루할 줄이야."
뭔가 없나 해서 이리저리 집안 을 돌아다니다가 문득 부엌 구석에 있는 검은 가루가 들어있는 통을 발견했다. 뚜껑을 열고서 냄새를 확인하자 짙은 커피향이 배어나왔다.
"흠.. 일단 이거라도 마셔보기로 할까?"
주전자는 다행히 가스레인지 위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물을 받아서 주전자에 넣고 가스 불을 붙였다.
"어디보자. 음.. 컵은 한개 뿐인가? 어쩔 수 없군. 일단은 마셔야지."
컵에 커피가루를 넣고서 다시 그위로 물을 부었다. 커피향이 은은히 퍼져나왔다. 왠지 달콤한 향이 무척이나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갑작스레 침대위에서 뒹굴어야할 녀석이 벌떡 일어나서는 이쪽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뭔가 굉장히 다급하고도 무서운 얼굴로..
"뭘 끓인거야!"
"커- 커피."
"커피? 에!? 설마 저 통에 든 가루를?"
"어라? 그런데.. 왜?"
"이- 이- 바보! 그건 커피 가루가 아니라 내 식사 대신이란 말야!"
"대.. 시인!?"
녀석은 굉장히 우울한 표정을 지으면서 내 손에 들린 컵을 빼앗아갔다. 그리고는 그 뜨거운 것을 단숨에 들이켜 버렸다. 뭔가 아스트랄한 농도가 위험 수위에 이르르고 있었다. 멍하니 녀석을 바라보고 있자니 녀석은 다시 원래의 헤실거리는 모습으로 돌아가서는 입을 열었다.
"어쨌든 함부로 건들이지마. 자칫 잘못하면, 흡혈충동이 심해져서 너를 죽일지도 몰라."
"응? 왜? 이거 그렇게도 중요한거야?"
"부해림 커피야. 내가 말 안했던가? 이건 흡혈충동을 격감시켜주는 효과가 있는데 말야. 물론 인간이 먹으면 사도로써의 힘을 극대화 시켜주는 극 희귀 레어아이템 이랄까?"
"그런거.. 말해주지 않았잖아. 게다가.. 부해림이란거.. 사도라는거.. 아무것도 이해가 되질 않는데 말야."
그렇다. 아니다를 떠나 그 이전의 문제가 있었다. 이 녀석의 세계와 나의 세계는 너무도 다른 것이다.
***
"귀찮네. 잠이 안와."
"다행이네. 나도 잠이 안왔는데 혼자서 심심했거든. 문은 열리지도 않지, 게다가 테라스로의 탈출은 이상하게 안된달까. 그래서 결국은 커피라도 마시려니까 방해 받았지.."
"잡혀 있는 주제에 할껀 다하네.."
그런가? 하긴 녀석에게 잡힌 주제에 이것저것 요구하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만, 정말이지 할일도 없이 이렇게 있는건 질색이다.
"흐음.. 뭐 아무튼 일단은 너에게 간단한 것 정도는 가르쳐 줘야. 사고가 없겠네. 좋아. 흡혈귀 강의(1)시작하지."
"잠깐.. (1)은 뭐야?"
"극히 기초중에 기초."
라면서 녀석은 팔짱을 끼고서는 한참을 뭔가 생각하더니 곧 입을 열었다.
"일반적으로는 흡혈귀라 불리고 있어도, 우린 크게 두 종류로 나뉘어져. 태어날 때부터 흡혈귀였던 종과 흡혈귀가 된 종. 전자를 진조(眞祖), 후자를 사도(死徒)라고 부르지. 너희들이 흡혈귀라고 부르는 쪽은 시도야. 인간의 피를 빨고 이를 자신의 노예로 삼고, 그리고 태양 빛에 약하며 세례의식 앞에 패퇴하는. 나의 적도 사도로 구별되는 흡혈귀야. 일단은 이정도면 알아 들을까나?"
"그러면 넌 사람이 아닌거야?"
"말 안했던가? 난 진조야. 단순하게 사도는 너희가 알고 있는 흡혈귀라고 생각하면 될꺼야. 진조는 그와는 조금 다르지만, 어차피 인질인 너에겐 이런 복잡한 설명은 필요 없겠지?"
뭐랄까.. 여기서도 인질취급인가. 할말은 없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 녀석이 노린다는 뱀인가 뭔가 하는 녀석은 사도란 말이로군. 그리고 그 녀석의 피가 지금 내 몸속에 있고, 그녀는 그것을 이용해서 뱀이라는 사도를 잡는다 라는 것일까? 그렇다면..
"흡혈귀가 흡혈귀를 죽여?"
"아이참! 그래서 흡혈귀의 종류를 설명했잖아. 솔직히 진조는 피를 빨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어. 원래부터 그렇게 태어난 존재니까. 하지만 사도는 진조와는 달라. 흡혈을 해야만 살 수 있지. 결국은 그런거야. 인간이 모두다 흡혈귀가 되기전에 그 흡혈귀를 처단한다는 거지. 그렇게만 알아둬. 괜히 쓸때없는 일에 말려들지나 말고."
이봐요. 난 이미 충분히 훌륭하게 휘말렸다고는 생각해 주지 않는 걸까나? 라지만 녀석은 다시금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
"그러면 난 이만 잘테니까. 깨우지마! 다시 한번만 더 깨우면, 꽁꽁 묶어버릴지도 몰라."
라면서 녀석은 다시금 잠에 빠졌다. 뭘까.. 더욱더 복잡한 느낌은.. 왠지 더더욱 쓰잘때기 없이 깊숙하게 연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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