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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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part 2.-
제19화 - 수라의 개막 -
클라우드 게이트는 현재 비상경계 태세에 들어간 상태였다. 지상에는 대형 서치라이트가 다수 배치돼서 건물 상공을 이리저리 비추고 있었고 하늘에는 초기경계용의 비행형 조아노이드인 '비카르르'들이 다수 떠 있었다. 그 밖에 건물 내부에 있던 모든 경비 요원이 비번 없이 총동원돼서 건물 주위를 물샐틈없이 경비하고 있었다. 경비는 지상과 하늘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지하의 물자 보급용 리니어 라인에도 외부의 침입에 대비해서 다수의 순찰조가 리니어 라인 전체를 순찰하고 있었다. 클라우드 게이트의 중앙 관제실은 건물 내외부의 각종 경비 시스템을 체크하느라 분주했다. 그리고 사령실의 중앙에는 신이 자리 잡고 앉아서 전체 병력의 지휘를 하고 있었다.
"적은 하늘에서 올 가능성이 높다! 대공 감시를 게을리 하지 말도록!!"
이 정도 병력과 경계 태세라면 그 어떤 적도 감히 침투를 생각지 못할 정도였다. 일단 신이 보기에는 몰래 잠입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가이버들이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정면 공격이다. 기간틱의 전투력이라면 조아노이드들로 이루어진 방어선을 뚫는 것 정도는 일도 아니니까. 그러나 이 방법 역시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이쪽에는 신을 비롯해서 (무슨 꿍꿍이로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쿨메그닉, 자빌, 카브라알 이렇게 조아로드가 네 명이나 있다. 한술 더 떠 앱톰의 목숨까지 이쪽이 쥐고 있기 때문에 맘대로 날뛸 수도 없을 것이다. 앱톰을 걱정한다면 말이다.
어쨌든 지금 하늘과 땅 위는 철통같이 봉쇄한 상태다. 혹시나 영화에서처럼 물자 반입차량에 몰래 숨어든다든지 하는 수법도 고려해서 클라우드 게이트의 차량이나 헬기 진입까지 아예 막아버렸다. 오늘 밤만 넘기면 되니까 그 정도쯤은 문제없다. 그렇다면 남은 루트는 단 하나, 지하다. 하지만 지하 역시 리니어 라인이나 하수도 등 침투 예상 지역은 이미 빈틈없이 순찰조가 배치돼 있는 상태였다. 일단은 안심해도 좋을 듯싶었다. 하지만 신은 여전히 어딘가 불안했다. 뭔가 놓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는 초조하게 사령실의 대형 스크린을 응시하였다.
'길고 긴 밤이 되겠군......'
-쿠쿠쿠쿠!!
신의 예상은 정확히 맞았다. 케이와 하야미는 지금 지하로 침투를 시도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침투로가 완전히 예상 밖이었다. 케이는 클라우드 게이트에서 멀리 떨어진 지점부터 땅을 직접 파 들어가며 클라우드 게이트 쪽으로 접근하고 있었다. 가이버의 중력 제어구에서 생성되는 고중력의 웜홀을 양 손에 모아서 그걸로 눈앞의 흙을 밀어내고 압축시켜가며 터널을 만들고 있었다. 두더지가 땅굴을 파는 요령과 어느 정도 비슷했다.
"리니어 라인 쪽에는 다수의 병력이 배치돼 있어요."
"어차피 우리의 목적지는 거기가 아냐. 더 아래다."
케이는 헤드 센서로 리니어 라인 쪽에 다수의 조아노이드 반응을 탐지해 내었다. 역시 케이들의 예상대로 놈들은 빈틈없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케이들은 감시가 심한 클라우드 게이트의 지하 리니어 라인 쪽으로는 가지 않았다. 목표는 더 아래 쪽, 클라우드 게이트의 최하층구역이다. 그 곳으로 직접 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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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위에서 뭔 난리가 났나 봐."
"무슨 상관이야. 여기로는 적들이 못 온다고."
클라우드 게이트의 최하층, 지표에서 지하로 200m 지점에는 거대한 저수지가 조성돼 있었다. 클라우드 게이트에 공급되는 각종 생활용수가 저장되는 곳으로 평소에는 도쿄에 이미 부설돼 있는 상수도 라인에서 용수를 공급 받지만 유사시에는 이곳의 물만으로도 버틸 수 있었다.
이곳에서 근무 중인 두 명의 크로노스 요원은 위쪽의 비상사태에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는 지표에서 무려 200m나 아래인데다가 이곳으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는 자제 반입용 엘리베이터와 비상계단뿐이었다. 물론 그 두 곳은 이미 통제 중이었다. 무엇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지하 200m 지점에서 부터 침투를 시작할 수 있을까. 게다가 이곳은 그냥 대량의 물을 저장하며 그 물의 정화를 수행하기만 할 뿐인 곳으로 외부에서 노릴 만한 중요 목표라 할 수가 없었다. 위쪽으로 올라가면 조제 설비나 연구 시설 등의 중요 목표가 널렸는데 뭐 하러 이런 곳으로 올까. 원래 평시에도 별로 할 일이 없는지라 '땡보직' 취급을 받는 곳이라서 그런지 이 두 요원들은 풀어질 대로 풀어진 상태였다.
-촤아아!!
그 순간 물속에서 뭔가가 튀어 나왔다. 깜짝 놀란 이 두 요원이 허둥대는 사이에 튀어나온 뭔가가 이들 바로 앞에 사뿐히 착지하였다. 그것을 본 이들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가이버 I 이었다!
"가...가이버?!!"
"크..큰일이야! 빨리 위에 알려야!!"
이들은 둘 다 조아노이드로 조제된 사람들이지만 변신한다고 해서 가이버 I을 이길 수준은 절대 아니다. 싸우는 것 보다는 일각이라도 빨리 위에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들은 그 자리에서 즉시 뒤돌아서서 전화기로 달려가려고 하였다. 그런데 뒤돌아선 그들의 눈앞에 또 하나의 그림자가 있었다. 처음 보는 조아노이드였는데 그 자의 가슴에서 뭔가 하얀 냉기 같은 것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렇게는 못 하지."
-슈오오오!
하야미의 가슴 부위의 냉각핀에서 강력한 냉기가 방출되었다. 공포에 질린 둘은 도망치려고 하였지만 이미 늦었다. 냉기는 그대로 두 사람을 꽁꽁 얼려버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요원들은 그대로 하얀 얼음덩어리가 되버려서 땅에 쓰러졌다.
"다행히 간단하게 들어왔네요."
"역시 예상대로야. 여기 최하층 저수지만큼은 경비가 허술할 줄 알았지. 상식적으로는 침투의 시작지점이 될 수가 없는 곳이니까."
근무하던 요원들을 간단하게 처치한 케이와 하야미는 안도하였다. 케이는 솔직히 처음에는 반신반의하였다. 하야미는 이곳 최하층 저수지로 들어가면 크로노스의 경비망에 걸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하였었다. 하야미가 이 클라우드 게이트의 내부 구조를 잘 알고 있다고 하기도 했고 솔직히 다른 대안도 없었으니 이 방법을 따른 거지만 이렇게까지 일이 잘 풀릴 줄이야. 물론 이제 첫 단추를 꿴 셈이므로 기뻐하는 건 아직 일렀지만 일단 내부로 들어온 이상 반은 먹고 들어간 셈이다.
"이제 저 위쪽에 있는 환기구를 통해서 지하 조제시설로 가 보자. 바로 위는 발전 구역이고 거기를 지나면 지하 조제구역이니까 한참 올라가야 할 거야. 아마 엘리베이터나 비상 계단 등은 경비가 있겠지."
"그런데 어떻게 여기 내부를 그렇게나 잘 아세요?"
"유적기지에 있을 당시에 이곳의 설계도를 자주 들여다봤어. 그건 비밀은 아니었거든."
클라우드 게이트의 건설 계획 자체는 제압전이 벌어지기 이전부터 있었다. 실제로 클라우드 게이트가 공사에 들어간 시기는 크로노스가 지구 제압을 하기 몇 년 전이었다. 크로노스는 지구 제압 이후 세계 각지에 세울 크로노스의 시설들에 대한 상세 설계를 오래전에 마무리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 설계 파일들은 일부 시설을 제외하면 누구나 열람 가능했기 때문에 하야미도 그 설계 파일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원래 그의 전공은 생화학이지만 건축에 관해서도 취미 차원에서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자주 들여다보곤 했었다. 그 때 얻은 지식이 지금 이 순간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앱톰이 있을까요?"
"글쎄, 하지만 뭔가 제대로 된 설비가 있는 곳에 갇혀있을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일단 조사는 거기부터야."
두 사람은 즉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환기구는 이곳의 이십여 미터는 될 듯 한 높이의 천정에 있었으므로 하늘이라도 날지 않는 이상은 무리였다. 케이는 하야미를 껴안은 채로 중력제어구를 제어해서 천정으로 날아 올라갔다.
"......"
그러나 케이와 하야미는 자신들을 뒤쫓는 두 개의 그림자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다. 그 두 그림자 중 아주 작은 그림자 하나는 케이들을 뒤쫓아 환기구 쪽으로 날아 올라갔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대로 어딘가로 슬며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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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아주 난리법석을 떨고 있군."
클라우드 게이트의 VIP룸에서 자빌이 창밖을 내다보며 혀를 찼다. 창 밖에는 대공 감시를 위해 하늘을 이리저리 비추고 있는 서치라이트들의 불빛 때문에 눈이 다 아플 지경이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초기경계형 조아노이드들의 모습도 다수 보였다. 클라우드 게이트 전체가 마치 벌집을 들쑤셔 놓은 것만 같았다. 현재 일본 지부의 임시 책임자인 신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다 보였다. 하긴 무리도 아니다. 이 클라우드 게이트는 이전에 가이버 기간틱에게 공격을 당한 적이 있었고 가이버가 앱톰을 구하기 위해 오늘 밤 올 것이 확실하므로 누구나 신경질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
"자빌, 부하한테서는 연락이 왔어?"
쿨메그닉이 자빌에게 물었다. 자빌은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사실 이들은 지금 몰래 투입한 자빌의 직속 부하로부터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락이 왔을 때가 바로 이들의 계획이 시작될 때였다. 아직까지는 연락이 없었다.
<자빌 붐 하이얀 각하. 놈들이 왔습니다.>
그 때 자빌의 뇌리에 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빌의 직속 부하가 드디어 이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소식을 전하였다. 자빌의 표정이 대번에 환해졌다. 자빌은 부하에게 계획대로 행동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리고 쿨메그닉과 카브라알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쇼가 드디어 시작됐어. 놈들이 왔다."
"후후후. 순진한 녀석 같으니. 결국은 미끼를 물었군."
이 세 사람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때가 왔다. 가이버의 컨트롤 메탈을 손에 넣고 그 비밀을 규명할 수 있는 기회가. 알칸펠이나 발카스가 다른 신장 멤버들에게 절대로 숨기려고 하는 어떤 엄청난 비밀. 세 신장은 흥분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조금은 의외였다. 이들은 사실 케이가 가이버 기간틱으로 변신해서 정면 승부를 걸어올 줄 알고 있었는데 정작 녀석은 은밀 잠입을 선택하였다. 하긴 바보가 아닌 이상 앱톰이라는 인질이 있는데 마음대로 날뛸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어차피 녀석은 기간틱을 맘대로 쓸 수 없잖아."
쿨메그닉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때 자빌이 이제 막 생각났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 기간틱 말인데, 가이버 I은 기간틱이 되는 힘을 잃은 거야?"
"글쎄, 아주 잃지는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정상은 아닌 것 같아."
쿨메그닉은 자신의 생각을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이제까지 가이버 기간틱과 기간틱 다크가 동시에 한 자리에 나타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기간틱의 전투력으로 생각해보건데 둘이 같이 나타나면 그야말로 무적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어째서 둘이 같이 나오지 않는 걸까. 그리고 그저께 밤에 아카리가오카 지구에서 푸르크슈탈과 가이버 기간틱이 교전했을 때 가이버 I의 거인 식장이 이들이 보는 눈앞에서 그대로 벗겨져 버렸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바로 그 시각, 워싱턴에 기간틱 다크가 출현해서 필라즈 오브 헤븐에 치명타를 가했었다고 한다.
"자, 그럼 이것이 뭘 의미할까?"
"설마.... 기간틱은 원래 하나뿐이다, 라는 건가?"
"정답. 역시 노사는 머리가 좋으시다니깐."
카브라알과 자빌은 쿨메그닉의 말을 듣고 나서야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기간틱은 원래 하나뿐인 것이다. 그것을 가이버 I과 가이버 III가 교대로 식장해서 쓰는 것이다. 그리고 그저께 가이버 I의 기간틱이 분리될 적에 가이버 I은 상당히 당황해하는 모습이었다. 그것으로 미루어 볼 때 자기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기간틱이 강제 해제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간틱의 주도권은 가이버 III 가 가지고 있다는 뜻이며 지금 그들은 서로 협력태세에 있지 않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 가이버 III 마키시마 아키토는 이제 자기만의 조아노이드 군대를 가지고 있으며 착실히 세를 키워가고 있다. 게다가 기간틱이라는 강력한 힘도 손에 넣었다. 그러니 지금의 아키토로서는 굳이 가이버 I의 힘이 필요 없다고 할 수 있다.
"뭐 어쨌든 이건 아주 절호의 기회야. 두 놈이 이렇게 분열된 상태라면 우리가 상대하기 아주 쉬워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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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드 게이트에는 조제 시설이 두 군데가 있다. 하나는 97층의 조제시설이고 이곳에서는 일반인 조제 희망자들의 적성 검사 및 조제가 행해진다. 그리고 지하의 조제 구역은 크로노스 조직원들의 조제 및 외부에 공개할 수 없는 각종 비밀 인체실험등을 수행하는 곳이다. 클라우드 게이트는 위아래 조제구역 합쳐서 전부 700기의 조제통을 보유하고 있고 이 숫자는 관동 지역에서는 최대 수량이다.
지금 이 곳에서 야간 당직근무를 서고 있던 일곱 명의 연구원들은 모두 손발이 묶이고 입에는 재갈이 물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조제 구역으로 몰래 숨어들어온 케이와 하야미가 전부 다 포박한 것이다. 모든 경비원들이 외곽 지역 순찰에 투입된 상태인데다가 이들은 설마 케이들이 지하에서 부터 올라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조제 시설 내에는 경비원이 한 명도 없었다. 하야미는 연구원들을 제압한 직후 우선 조제시설내의 보안 시스템을 해킹하였다.
"좋아, 이렇게 과거 6시간 동안의 녹화 파일을 계속해서 돌리면 위에서는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 못할 거야."
"생각보다 간단하네요. 겨우 그 정도로 간단히 무력화 시키다니."
"후후, 원래 허점이란 건 의외로 간단한 문제일 경우가 많아. 그리고 그런 것일수록 발견이 더 어렵지."
하지만 위에서 누군가가 여기로 직접 온다면 그때는 대번에 들키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여유 부릴 때가 아니었다. 케이는 서둘러 조제시설 주변을 헤드 센서로 스캔해 보았다. 혹시나 앱톰의 반응이 나오나 보려는 것이다. 그러나 헤드 센서에는 익숙한 앱톰의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여기는 없다는 뜻일까?"
"아뇨, 앱톰의 몸은 돌로 변했다잖아요. 체조직의 특성이 바뀌어서 가이버의 헤드센서가 구분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죠."
케이의 말도 옳았기 때문에 아직은 여길 뜰 때가 아니었다. 하야미는 즉시 콘솔을 조작해서 최근 이 곳에 들어온 실험체나 조제자 리스트를 검색해 보았다. 앱톰같이 중요한 인물이라면 반드시 여기에 기록돼 있을 것이다. 이곳에 있는 족히 3~400개는 돼 보이는 조제통과 수십 개의 소규모 실험실들을 일일이 다 뒤져볼 수는 없으니 우선 검색부터 먼저 해 보는 것이다.
바로 그 때 포박당해서 땅바닥에 누워있던 연구원 한 명이 낑낑 거리며 그 자리에서 일어서려했다. 케이와 하야미가 콘솔 모니터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서 그 연구원은 근처에 있던 다른 콘솔 데스크에 몸을 기대서는 슬그머니 일어섰다. 그리고는 뒤로 묶인 손으로 콘솔 데스크에 있던 단추를 눌렀다. 손목만 묶었지 손가락까지 다 묶지는 않았기 때문에 버튼 몇 개 누르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위잉!
연구원이 단추를 누르자 즉시 콘솔 모니터에 반응이 왔다. 그제야 케이와 하야미는 이 연구원의 행동을 눈치 채었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이 서둘러 달려와서는 이 연구원을 다시 땅바닥에 패대기쳤다.
-쿵!
"우읍!"
"이봐!! 무슨 짓을 한 거야!"
하야미는 당장이라도 이 연구원을 죽일 기세로 으르렁 거렸다. 혹시나 위쪽에 비상 신호라도 보낸 것일까? 그러나 모니터에 나타난 보안 시스템은 여전히 잠잠한 채 그대로였다. 확실히 경보 장치를 가동시킨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뭘 누른 걸까?
"하야미씨! 저길 보세요!"
그 때 모니터를 주시하던 케이가 소리쳤다. 화면에는 어딘가에 배치된 조제통 다섯 기의 배양액이 빠지고 있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내부에 가득 들어차 있던 배양액이 다 배출되고 난 이후 조제통의 유리문이 열리면서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광경을 본 하야미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혀를 찼다.
"뭐야, 이제 보니 이 녀석 조제 중이던 조아노이드를 조제통에서 꺼낸 거잖아. 저런 어리석은 짓을 하다니."
하야미가 이렇게 말하는 건 다 이유가 있었다. 조제가 완료됐다고 해서 바로 날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온 몸의 세포가 급격한 변화를 거친 이후이므로 조제 완료 직후의 조제자는 체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다. 그러므로 조제 완료 후 하루 정도 휴식을 취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저 녀석들은 케이와 하야미가 여기 오기 전까지만 해도 계속 조제통 안에 있던 놈들이니 아마도 아직 미완성일지도 몰랐다. 그런 미완성품을 꺼내서 뭘 어쩌자는 걸까? 게다가 계속해서 조제통 안에서 의식 없이 있던 놈들이 상황파악이나 제대로 할 수 있을까?
"크으으으...!!"
-투둑! 쿠국!!
그러나 그 예상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이놈들은 놀랍게도 나오자마자 바로 전투형태로 변신을 하였다. 변신을 완료한 다섯 마리의 조아노이드들이 빠른 속도로 케이와 하야미를 향해 달려왔다. 나타난 조아노이드들을 본 두 사람은 경악하였다.
"에...엔자임 III ?!!"
"이럴 수가! 어떻게 나오자마자 바로!!"
두 사람은 몰랐지만 이 엔자임 III들은 미완성품이 아니었다. 이미 예전에 완성돼서 언제든지 나갈 때만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다만 엔자임 III는 어떤 부상도 순식간에 자연 치유하는 무시무시한 신진대사 속도 때문에 세포의 노화 속도가 너무 빨라 완성하자 마자 밖에 꺼내놓을 수가 없어서 조제통 안에서 슬립(sleep)모드로 잠자고 있었을 뿐이다. 게다가 이들의 유전자에는 뭘 사냥해야 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이미 다 각인돼 있었기 때문에 별도의 상황설명도 필요 없었다. 그리고 이들의 목표는 당연히 가이버였다!
"크아아아!!"
엔자임 III들이 괴성을 지르면서 케이와 하야미에게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본능적으로 양쪽으로 흩어졌다. 그런데 모든 엔자임들이 하야미는 무시하고 전부 케이에게로만 달려들었다.
-휘익! 쉬릭!
"윽!!"
엔자임 III들의 맹공이 케이를 향해 날아왔다. 강식장갑 분해효소가 흐르는 손톱 때문에 케이의 강식장갑들에는 무수히 많은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케이는 다만 간신히 피해 다니며 치명상만큼은 면하고 있었다.
"젠장!!"
-푸슝! 퍼억!!
케이는 헤드빔을 쏴서 바로 눈앞에 있던 엔자임의 가슴을 뚫어 버렸다. 그러나 잠시 주춤거리기만 할 뿐 그 엔자임은 다시 괴성을 지르며 케이에게 달려들었다. 케이는 그 일격을 간신히 피했다. 이놈들은 헤드빔 정도로는 움직임을 봉쇄시킬 수가 없다. 좀 더 강력한 무기를 써야 했다. 그러나 이 녀석들에게 치명타를 안길 수 있는 무기는 시동시키는데 시간이 너무 걸렸다. 운동능력 조차 가이버를 능가할 정도의 이 녀석들을 상대로 어떻게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케이!! 위험해!!!"
-퍼억!
그 때 케이의 등 뒤쪽에서 기습을 하려던 엔자임 III를 하야미가 몸으로 들이 받았다. 하야미의 몸통 박치기에 엔자임이 주춤거렸지만 단지 그 뿐이었다. 손종 실험체로 조제돼서 적어도 일반인 보다는 힘이 훨씬 세진 하야미지만 엔자임 III에게는 그저 우스운 수준이었다. 엔자임 III가 귀찮다는 듯이 주먹을 휘둘러서는 하야미를 쳐냈다.
-퍼억!
"크악!!"
"하야미씨!! 이놈이!!!"
-콰악!!
하야미가 쓰러지자 케이가 그 엔자임의 턱을 힘껏 걷어찼다. 아무래도 상대가 가이버이니 만큼 이번에는 엔자임이 뒤로 완전히 쓰러져 버렸다. 물론 이 정도 공격에 죽을 엔자임은 절대 아니지만.
-휘릭!
바로 그 때 다른 엔자임 III가 그 날카로운 가시가 달린 꼬리를 케이에게 휘둘렀다. 케이는 이 때 다른 놈을 보고 있어서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그 순간 누군가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케이씨!! 위험해요!!"
-푸욱!!
"으아악!!"
비명을 들은 순간 케이는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여서 몸통이 꿰이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른팔에 엔자임의 꼬리침이 깊숙이 박히고 말았다. 케이의 비명이 울려 퍼지면서 관통당한 팔에서 많은 피가 터져 나왔다.
-푸슝!!
케이는 헤드빔으로 일단 그 엔자임의 꼬리를 중간에 끊어버렸다. 그리고 일단 그 자리에서 뒤로 물러섰다. 케이와 하야미는 숨을 헐떡이며 한 자리에 모였고 엔자임들 역시 잠시 전열을 가다듬으려는 듯이 한 자리에 모였다. 하야미가 케이의 부상 정도를 보고는 놀라서 말했다.
"세상에! 케이, 괜찮아?!"
"예...일단은. 강식장갑의 회복능력 덕분에 고통은 지금 많이 가셨어요. 완전히 아물려면 좀 더 시간이 있어야겠지만...."
케이와 하야미는 공포로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다. 상대는 다름 아닌 엔자임 III들이고 그것도 2:5다! 앱톰과 아키토, 여신들이 함께 싸웠을 때도 죽을 고생을 해 가며 싸운 놈들인데 어떻게 이들 둘 만으로 이긴다는 말인가. 기간틱이라도 쓸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지금 케이는 기간틱 소환이 불가능했다. 소환해 보려 했지만 이미 아키토가 먼저 쓰고 있어서 사용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저, 그건 그렇고 방금 전에 미리 경고 주신 거 고맙습니다. 덕분에 치명상은 면했어요."
"경고? 무슨 소리야. 나도 놈들의 주먹에 맞아서 뻗어 있었는데."
하야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방금 전에 그 목소리는 누구인가? 게다가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몰랐지만 자세히 생각해보니 하야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게다가 어디서 많이 듣던.....
"케이씨, 괜찮으세요?"
그 때 케이의 어깨 부근에 무엇인가가 내려앉았다. 그것을 본 케이와 하야미는 깜짝 놀랐다. 바로 베르단디였다! 아주 작은 인형 크기로 작아진 모습의 베르단디였던 것이다. 아마도 케이 모르게 분신체를 보낸 모양이었다. 아까의 목소리는 결국 베르단디였던 것이다. 케이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세상에! 베르단디! 여긴 왜 왔어!!"
"죄송해요....케이 씨가 너무 걱정돼서 그만...."
베르단디는 결국 케이의 말을 안 듣고 이렇게 따라 오고 말았다. 다만 본인이 직접 올 수는 없으니까 케이가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이렇게 분신체를 보낸 것이다. 하야미는 조그만 베르단디를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자, 그럼 이제 3:5인가?"
하지만 따지고 보면 여전히 2:5다. 분신체 상태의 베르단디로서는 대단한 법술을 구사할 수가 없었다. 또한 어차피 엔자임 III들에게는 법술 자체가 안 통한다. 베르단디의 본체가 직접 여기 온다해도 큰 도움은 되기 힘들었다.
"크르르르!!"
엔자임 III들이 서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케이들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정면 승부는 도저히 승산이 없었다. 그 때 베르단디가 법술을 외우기 시작했다.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의 정령들이여, 그대들의 눈부신 날갯짓으로 우리들의 모습을 감추어 다오. 일루젼!"
-파앗!!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주위에 케이와 하야미의 모습이 수도 없이 생겨난 것이다. 오른팔에 입은 부상까지 똑같이 재현된 가이버 I과 하야미의 모습을 한 정체불명의 존재들이 거의 오십 명은 생겨난 것이다. 케이들도 당황스러웠지만 상대인 엔자임들은 더욱 더 허둥대었다. 갑자기 목표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베르단디가 케이와 하야미에게 설명하였다.
"분신체의 법술, 일루젼이에요. 빛의 정령을 부려서 케이 씨와 하야미 씨의 모습을 한 잔상을 만들어 낸 거죠."
"대단해! 베르단디!"
"하지만 저 잔상들은 크게 움직이지는 못해요. 게다가 그냥 영상일 뿐이니까 금방 간파당할 꺼 에요. 이틈에 빨리 어딘가로 피해야 해요!"
"크아아아!!"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엔자임들이 잔상들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엔자임의 손이 닿을 때마다 잔상이 하나 둘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들키는 건 시간문제였다. 케이는 즉시 하야미를 꽉 껴안고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아직까지 엔자임들은 케이들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케이는 그렇게 조제시설의 이층으로 날아 올라갔다.
아래층의 조제시설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구름다리 위로 올라간 케이는 일단 아직까지 팔에 박혀 있던 엔자임 III의 꼬리를 빼냈다. 상처는 처참했다. 출혈은 멈췄지만 엔자임의 분해 효소로 인해 상처 부위가 타들어가 버리면서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베르단디는 그 상처를 보며 새파랗게 질렸다. 치료를 해주고 싶었지만 강식장갑의 법술 거부 기능 때문에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케이! 놈들이 온다!!"
그 때 하야미가 소리쳤다. 아래에서 이쪽으로 엔자임들이 날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역시나 잔상은 금방 간파당하고 말았다. 세 사람은 즉시 그 자리에서 있는 힘껏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러고만 있으면 또 다른 증원 병력이 올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끝장이다! 어서 빨리 저 녀석들을 해치우던가 따돌려야 한다.
"케이! 저 녀석들을 유인해 봐!!"
"네?! 그게 무슨...."
"저쪽 환기 닥트 아래에 막다른 골목이 있어. 놈들을 그리로 유인해 봐. 그리고...!"
"알겠습니다!! 한번 해볼게요!"
케이는 하야미의 작전을 금방 이해하였다. 그길로 그들은 각자 흩어졌다. 케이와 베르단디가 엔자임들을 유인하고 하야미는 즉시 그 막다른 골목 쪽으로 달려갔다. 엔자임들의 최우선 목표는 가이버이기에 엔자임들은 하야미의 존재를 그냥 무시하였다. 케이는 하야미가 가서 미리 준비를 해 놓을 때까지 시간을 벌기 위해 일부러 주위를 빙 돌았다.
-파앗!
"키익!!"
베르단디가 법술로 강한 섬광을 만들어내서 잠시 엔자임 III의 눈을 멀게 하였다. 압도적인 운동능력을 갖춘 엔자임 III들 때문에 위기의 순간이 오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이렇게 베르단디가 법술로 녀석들을 따돌렸다. 한동안 도망 다니던 케이는 이제 이만하면 됐겠다 싶어서 하야미가 얘기한 그 막다른 골목 쪽으로 달려갔다. 엔자임들이 그런 케이를 쫓아 그 골목으로 들어갔다.
"크르르르....!"
엔자임 III들이 골목으로 들어가자 막다른 길에서 주춤거리고 있는 가이버 I이 보였다. 이들은 이제 승리를 확신한 듯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슈우우우우!!
"키익?!!"
골목의 중간 지점까지 들어온 그 순간 어디선가 정체불명의 냉기가 엔자임들을 덮쳤다. 바로 골목길의 좁은 틈새에 숨어있던 하야미가 방사한 냉기였다. 하야미의 냉기는 순식간에 다섯 마리의 엔자임들의 몸을 꽁꽁 얼려버리기 시작했다. 엔자임들은 냉기로 인해 겉의 피부가 얼어 버리면서 그 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겨우 이정도 냉기에는 엔자임 III들은 죽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실은 하야미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결정타는 따로 있다!
"지금이야! 케이!!"
-철컥! 키이이이!!!
하야미의 외침을 신호로 케이가 왼쪽 흉부 장갑을 열어젖혀서 메가 스매셔를 준비하였다. 엔자임들이 하야미의 냉기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지금이 찬스였다. 메가 스매셔라면 아무리 대단한 회복능력의 엔자임들이라도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소멸시켜 버릴 수 있다. 물론 저번에 처음 엔자임 III들과 싸웠을 때처럼 녀석들이 땅속으로 파고 들어가서 피할지도 몰랐지만 지금 이순간은 그런 수법이 불가능했다. 몸이 다들 바짝 얼어버려서 움직임이 매우 둔한데다가 바닥은 강화 콘크리트로 되 있어서 쉽게 뚫을 수가 없었다.
-퍼어어엉!!!
드디어 메가 스매셔가 발사 되었다. 좁은 외길 안에서 한데 뭉쳐있던 엔자임 III들을 거대한 빔의 폭포가 휩쓸었다. 순식간에 다섯 마리의 엔자임들이 그 자리에서 소멸되어 갔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메가 스매셔는 그대로 직진해서 진로 상에 있던 조제통들을 모두 박살내 버렸다.
-쿠콰콰쾅!!
'멈춰! 제발 멈춰 줘! 스매셔!!'
케이는 필사적으로 스매셔를 멈추려고 하였다. 이 이상 내부 시설에 피해가 커지면 놈들에게 들킬 가능성이 더 높아지게 된다. 그러나 스매셔는 그렇게 조절이 쉽게 되는 무기가 아니다. 케이는 스매셔의 빔을 끌려고 하였지만 결국 스매셔의 섬광은 진로상의 모든 시설물들을 다 박살내고 앞을 가로막고 있던 건물의 외벽까지 뚫어버린 다음에야 멈췄다.
"후우~ 간신히 이겼군...."
골목길의 비좁은 틈새에 피해있던 하야미는 섬광이 가시자 밖으로 나왔다. 보이는 광경은 아주 처참했다. 스매셔가 지나간 바닥은 깊은 고랑이 패여 있었고 진로상의 모든 시설물들은 완전히 박살나 있었다. 이 지역의 감시 시스템을 잠재웠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피해가 커서는 놈들이 금방 눈치 채고 말 것이 틀림없었다.
"하야미씨가 발을 묶어 준 덕에 이길 수 있었어요."
"뭘 이정도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인걸."
"그리고 베르단디도 고마워. 덕분에 무사히 살아남았어."
"아니에요. 전 별로 한 것도 없는걸요."
말은 여유 있게 하지만 지금 이들은 그렇게 여유 있는 입장이 아니었다. 잠입 초기에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는 바람에 케이는 지금 심한 데미지를 입은 상태였다. 오른팔에는 큰 구멍이 뚫리고 말았고 그 밖에 온몸에도 엔자임들의 손톱자국이 잔뜩 있었다. 게다가 내부 시설에 너무 큰 피해를 입히는 바람에 이제 녀석들이 여기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을 눈치 챘을지도 몰랐다.
"윽?!"
그 순간 하야미가 그 자리에서 휘청거렸다. 깜짝 놀란 케이와 베르단디가 서둘러 하야미에게 달려왔다.
"하야미씨! 왜 그러세요?"
"괘...괜찮아. 냉기를 좀 써서 약간 피곤한 것뿐이야. 그것보다 빨리 여길 뜨자. 놈들이 몰려올 꺼야."
"예, 하지만 앱톰부터 찾아야....."
"그건 걱정 마. 여기에는 없는 것 같으니까. 아까 검색해 봤을 때는 여기 없는 걸로 되 있었어."
그렇다면 있을 만한 곳은 이 빌딩의 97층, 제 2의 실험 조제구역이다. 그 곳은 민간인 조제 섹션이지만 거기에도 특별 실험실 같은 곳들이 있으므로 여기 없다면 거기 있을 가능성이 컸다. 세 사람은 즉시 하늘로 날아올라 또 다시 환기 구멍으로 들어갔다. 정상적인 통로는 순찰이 돌고 있을 것이 뻔하므로 이렇게 환기구만을 이용해야 한다.
"부하에게서 연락이 왔어. 놈들이 드디어 이쪽으로 기어 올라오고 있다더군."
VIP룸에서 자빌이 새로운 소식을 전했다. 그 말을 들은 쿨메그닉과 카브라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여기서 한가하게 차나 마시면서 노닥거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이제부터 진짜 파티가 시작될 참이니까. 엔자임 III 들이라는 '뜻하지 않은 사고'가 있었지만 다행히 가이버들이 알아서 잘 처리한 덕분에 한숨 돌리게 되었다. 엔자임 III들은 이들 세 신장이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이 곳 클라우드 게이트의 대 가이버용 비밀 병기였다. 만약 거기서 가이버가 당하기라도 했다면 모든 계획이 다 틀어질 뻔 했다.
"이젠 녀석들이 여기까지 무사히 오기만을 빌어야 하는군."
카브라알은 좀 걱정된다는 투로 말했다. 엔자임들의 공격 때문에 가이버가 좀 심한 데미지를 입은 데다가 너무나 요란하게 소란을 떠는 바람에 신이 가이버의 침입 사실을 눈치 챘을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현재 외부에서 순찰중인 병력을 전부 다 안으로 불러들일 수도 있었고 그렇게 되면 가이버들이 여기까지 오는 게 더욱 더 힘들어진다. 카브라알의 우려에 자빌은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그 점은 걱정 마십시오, 노사. 요소요소에 제 부하들을 배치해서 가이버들이 이곳 경비 시스템에 안 걸리게끔 조치해 놨으니까요."
무슨 일이 있어도 녀석들은 바로 여기까지 와 줘야 한다. 안 그러면 이들이 애써 준비한 무대가 모두 다 헛수고가 되고 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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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도 우리의 성지에 그 더러운 발을 들여놓았구나. 기간틱 다크 마키시마 아키토!!!"
발카스는 강림자의 유적, 우라누스의 성궤 위에서 아키토를 내려다보며 일갈하였다. 이곳은 크로노스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자 발카스가 알칸펠에게서 첫 임무를 부여받은, 발카스 입장에서도 가슴 벅찬 기억의 장소였다. 그런 곳을 침범 당했으니 발카스가 분노하는 것도 당연했다.
"허나! 더 이상의 행패는 용서치 않겠다! 오늘이 바로 너의 제삿날이 될 줄 알아라!!"
발카스의 양 옆에 서 있던 와펠다노스와 리엔쯔이 역시 살기가 가득한 눈으로 아키토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아키토는 전혀 위축됨이 없었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웃기까지 했다. 그러자 와펠다노스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후후후."
"뭐가 우습냐. 지금 네 처지가 이해가 안 가나?"
아키토는 이들 세 신장을 똑바로 노려보며 말했다.
"너희들, 정말로 나와 여기서 한바탕 할 거냐?"
"뭐?!"
"너희들과 내가 여기서 신나게 날뛰면 그 잘난 성궤가 무사할까?"
그 말을 들은 세 신장은 일순 경직되었다. 아키토의 말 그대로였다. 강대한 전투력의 기간틱과 조아로드 세 명이 여기서 풀 파워로 맞붙게 되면 주위는 일순간에 초토화가 될 수도 있었다. 우라누스의 성궤가 박살나는 것은 물론이고 자칫 잘못하면 이 바로 위에 세워진 본부 기지 자체가 날아가 버릴 수도 있었다. 이 우라누스의 성궤는 크로노스의 모든 과학기술의 원천이자 크로노스의 성지였다. 기간틱 다크와의 전투로 그 성지를 잃게 된다면 이들에게는 더없이 뼈아픈 손실이었다. 원래 어느 조직, 나라도 다 마찬가지지만 그 조직이 성지로서 중요시 하는 곳은 단순히 그들의 영토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정신이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그런 곳은 절대로 빼앗길 수 없는 조직 그 자체라 할 수 있었다. 여기서 기간틱과 싸우려면 그걸 각오해야 한다. 과연 발카스는 그런 큰 손실을 감당할 수 있을까?
"상관없다."
"닥터 발카스!?"
발카스의 발언에 와펠다노스와 리엔쯔이가 깜짝 놀라 발카스를 주목하였다. 발카스의 표정은 의외로 담담했다.
"널 잡을 수만 있다면 여기를 통째로 잃어도 알칸펠님께서는 용서해 주실 거다. 아니, 용서해 주시지 않는다 해도 상관없다. 너만 없앨 수 있다면 난 그 어떠한 대가도 치를 각오가 돼있다."
아키토는 이제 크로노스 최대의 적으로 성장하고 말았다. 기간틱이라는 강대한 힘을 가지게 된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자신만의 조아노이드 군대를 가지고 착실하게 그 세를 키워가고 있었다. 여기서 아키토를 더 이상 내버려 뒀다가는 크로노스 조직 그 자체를 붕괴시킬 수도 있었다. 크로노스는 지금 타천체로의 진출이라는 최종 목적을 눈앞에 두고 있는 가장 중요한 때에 와 있었다. 그런 중요한 이때 자칫 잘못하면 아키토 단 한 놈 때문에 계획 전체가 붕괴될 수도 있었다. 아키토만 해치울 수 있다면 발카스는 어떠한 희생이라도 기꺼이 치를 각오가 돼있었다.
"좋아!! 너희들이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나 역시 봐주지 않겠다!!"
아키토는 즉시 자세를 갖추며 전투에 대비하였다. 와펠다노스와 리엔쯔이 역시 다시 살기를 띄었다. 발카스가 와펠다노스를 돌아보며 말했다.
"와펠다노스. 우선은 자네부터."
"알겠습니다."
-파아앗!
와펠다노스의 조아 크리스털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드디어 와펠다노스가 전투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크리스털이 빛나기 시작한 직후 갑자기 그가 걸치고 있던 전신을 뒤덮은 검은 망토가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꽃봉오리가 꽃을 피우기 직전의 모습이었다. 바로 그 직후 와펠다노스의 망토 아래에서 갑자기 뭔가가 폭발적으로 뻗어 나오기 시작했다.
-푸하학!!
와펠다노스의 망토 아래에서 정체불명의 검은 털들이 뻗어 나왔다. 그런데 그 양과 길이가 정말 무시무시했다. 와펠다노스의 체구는 잘해야 2m 정도 돼 보이는데도 그 몸에서 자라난 검은 털들은 전체 둘레만 거의 1Km는 넘는 거대한 우라누스의 성궤를 완전히 뒤덮었다. 성궤를 완전히 뒤덮은 와펠다노스의 털들은 순식간에 아키토에게로 몰려들었다.
-휘리릭!
"욱!!"
아키토가 미처 피하기도 전에 와펠다노스의 털들이 아키토의 온 몸을 칭칭 감았다. 아키토는 그것을 힘으로 끊으려 했지만 잠깐 늘어나기만 할 뿐 한 가닥도 끊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아키토의 몸을 더욱 더 강하게 조여들 뿐이었다. 기간틱의 힘으로도 끊어지지 않는 엄청난 강도의 털이었다. 그렇게 아키토를 붙잡은 와펠다노스가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와하하하!! 어떠냐, 기간틱 다크! 이것이 바로 내 비장의 무기, 신모(神毛)다!! 비단보다 부드러우면서도 강철보다도 훨씬 강한 이 신모를 힘으로 끊을 수 있을 것 같으냐!!"
-촤라락!!
신모는 점점 아키토의 몸을 휘감아 갔다. 이윽고 아키토의 온 몸은 신모로 완전히 뒤덮여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와펠다노스는 신모를 조작해서 더욱 더 강하게 아키토의 몸을 조였다. 이대로 꽉 쥐어짜서 없애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 광경을 보던 리엔쯔이는 좀 어이없다는 듯이 혀를 찼다.
"훗, 내가 나갈 차례도 없었군. 이거 너무 싱거운데."
"아니... 아직은 아냐."
그러나 발카스는 이대로 끝날 아키토가 아니란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발카스는 여전히 잔뜩 굳은 표정으로 신모로 뒤덮인 아키토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신모를 뚫고 뭔가가 튀어 나왔다.
-휘릭! 촤아악!!
앗 하는 사이에 기간틱의 고주파 소드가 전부 전개돼서 신모를 끊어 버렸다. 잘려나간 신모가 떨어지면서 기간틱 다크의 모습이 보였다. 그 정도의 조임에는 끄떡없다는 듯이 기간틱 다크의 몸은 멀쩡했다. 고주파수로 진동하면서 물체의 분자 결합 자체를 풀어버리는 고주파 소드 앞에서는 물체의 강도 같은 건 의미가 없었다. 그러니 아무리 부드러운 신모라 할지라도 여지없이 잘릴 수밖에 없다. 잡아당겨 끊어버리는게 불가능하다면 자르면 된다!
"이놈이!!"
-휘리릭!
와펠다노스가 다시 한 번 신모를 조작해서 아키토를 덮쳤다. 그러나 이번에도 고주파 소드에 저지당하고 말았다. 아키토는 코웃음을 쳤다.
"훗, 소용없어. 이 고주파 소드에 베이지 않는 물질 따위는 없다."
와펠다노스의 능력이 만약 이게 다라고 한다면 그렇게 어려운 상대는 아니다. 신모로 아무리 아키토를 덮쳐 봤자 고주파 소드를 한 번만 휘둘러 주면 간단하게 베어 버릴 수 있으니까. 문제는 지금 아키토의 목표인 우라누스의 성궤를 와펠다노스의 신모가 완전히 뒤덮어 버려 돌입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발카스는 와펠다노스로 하여금 성궤의 방어를 맡기고 리엔쯔이로 하여금 공격에 나서게 할 참이었던 모양이다. 고주파 소드로 때때로 와펠다노스의 신모를 견제해 주기만 하면 리엔쯔이와 1:1로 붙어 볼만했다. 아직 리엔쯔이의 능력은 자세히 모르지만.
"하앗!"
아키토는 중력제어구를 조종해서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제 아키토가 반격할 차례였다. 아키토는 모여 있는 세 명의 신장을 조준한 후 헤드빔을 발사하였다. 기간틱의 이마에서 세 개의 강력한 빔이 발사되었다.
-푸슝! 푸슝!!
빔이 날아오자 리엔쯔이와 발카스는 바리어를 쳐서 간단하게 그 공격을 막아내었다. 그러나 와펠다노스만큼은 완벽하게 막지 못했다. 그는 바리어를 펼치는 게 아니라 자기의 신모를 집중시켜 신모의 방어벽을 만들어내었다. 기간틱의 헤드빔은 결국 그 신모의 장벽에 막히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어째서 와펠다노스는 바리어를 치지 않고 신모로 빔을 막은 것일까?
"후후후.... 그렇군. 네 녀석, 바리어를 칠 에너지가 없군?"
"큭!!"
같은 생각을 한 리엔쯔이와 발카스가 황급히 와펠다노스를 보호하기 위해 그의 앞을 막아섰다. 아키토의 추측 그대로였다. 성궤 전체와 동굴 내부에 신모를 잔뜩 풀어놓은 와펠다노스는 그 신모를 전개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다 집중시켜서 바리어로 돌릴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아키토에게 절호의 찬스였다. 신모만으로는 아키토의 공격을 완전히 막을 수가 없다. 즉 지금 와펠다노스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라고 봐도 좋았다. 그렇게 되면 발카스와 리엔쯔이는 와펠다노스를 보호하려 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들의 행동에 제약이 생기게 된다. 아키토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바로 다음 공격을 하였다.
"받아랏! 소닉 버스터!!'
-큐우우우!!!
가이버의 음파 공격 병기 소닉 버스터가 발동 되었다. 아키토의 예상대로 리엔쯔이와 발카스가 와펠다노스를 보호하기 위해 바리어를 펼쳐 그를 보호하였다. 그러나 아키토의 목표는 와펠다노스가 아니었다.
-부아악!!
예상과는 달리 소닉 버스터는 성궤의 표면을 덮고 있던 신모들에 집중되었다. 소닉 버스터 공격을 받은 신모의 부분은 그대로 소멸되어 버렸다. 그러자 그 뚫린 커다란 구멍 사이로 성궤의 표면이 드러나 버렸다. 아키토의 의도는 바로 이것이었다. 리엔쯔이와 발카스를 와펠다노스에게 묶어 버린 후 성궤의 표면에 있던 신모를 없애고 성궤 안으로 돌입해 들어가려는 것이었다.
"좋았어!! 그럼 간다!"
-쿠우웅!!
기간틱 다크의 중력 제어구들이 풀 파워로 가동되면서 등 부분의 부스터가 점화되었다. 아키토는 그렇게 허점을 만든 후 성궤를 항해 돌진하였다. 돌진하면서 기간틱 다크의 가슴 부분에 있던 조그만 뿔이 갑자기 길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늘어난 뿔에는 바리어가 코팅되면서 새하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간다!! 그래비티 램(Gravity ram : 중력충각(衝角))!!"
이것이 바로 기간틱의 돌진기(突進技), 그래비티 램이었다. 가슴 부위의 충각을 전개 시키고 부스터로 가속한 기간틱의 거체가 직접 상대방에게 부딪히는 기술이었다. 그 운동에너지만으로도 파멸적인 위력을 발휘하는 기술이었다. 사실상 이것을 힘으로 막을 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키토는 이대로 성궤의 표면을 뚫고 내부로 뛰어 들어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파앗!
"엔쯔이?!!"
그 때 리엔쯔이가 아래로 뛰어내렸다. 기간틱 다크의 돌격을 저지하려는 것이었다. 뛰어내리면서 리엔쯔이 역시 전투형태로 변신을 하였다.
"화수신(化獸神)!!"
-푸화악!!
리엔쯔이가 입고 있던 의복이 타 없어지면서 순식간에 그의 몸이 전투 형태로 변화되었다. 전투형태로 변화된 리엔쯔이는 머리에 커다란 두 갈래의 뿔이 생기고 온 몸이 녹색의 피부와 검은색의 갑각이 적절히 뒤섞인 형태로 변했다. 무엇보다 그의 양 팔에는 마치 검처럼 생긴 아주 기다란 돌기 두 개가 생성되었다. 그 길이가 리엔쯔이의 양 팔 길이와 맞먹을 정도였다. 저 검이 주 무기일까?
"훗! 재미있군!! 이 그래비티 램을 받아낼 수 있으면 받아봐라!!"
아키토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대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런 가냘픈 몸으로 이 기간틱 다크의 충돌 에너지를 견뎌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이대로 리엔쯔이까지 같이 꿰어버릴 기세로 아키토는 속도를 더욱 더 올렸다.
-스윽
"웃?!!"
리엔쯔이가 사정거리에 들어온 그 순간 갑자기 리엔쯔이의 모습이 사라져갔다. 아니, 리엔쯔이만이 아니다. 전방에 있던 우라누스의 성궤까지 같이 사라졌다. 그리고 주위가 일순간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아키토가 어리둥절하고 있을 찰나 갑자기 전방이 환해지기 시작하면서 무엇인가가 나타났다.
"아니?!! 이건!!"
아키토는 경악하였다. 어느새 동굴의 외벽이 바로 코앞에 나타난 것이다! 풀 가속이던 아키토는 미처 멈추지 못하고 그대로 벽에 충돌하고 말았다.
-콰아아앙!!!
기간틱 다크의 충돌로 인해 동굴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아키토는 동굴의 벽면을 깊숙이 뚫고 들어간 이후에야 멈출 수 있었다. 다행히 어디 다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아키토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우라누스의 성궤를 향해 똑바로 날아갔는데 어째서 동굴의 벽면에 충돌한 것일까? 윙윙 울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구멍 밖으로 나온 아키토는 경악하였다. 자기가 있는 곳이 놀랍게도 처음 출발했던 지점의 벽면이었던 것이다. 어느새 180도나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거기서 뭐하고 있냐, 기간틱 다크. 날 박살낼 생각 아니었던가?"
아키토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분명 자신은 우라누스의 성궤를 향해 똑바로 날아갔다. 그런데 대체 무슨 짓을 한간지 모르겠지만 리엔쯔이가 그 방향을 반대로 돌려버린 것이다! 리엔쯔이를 만만하게 보던 아키토는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12신장 리엔쯔이의 능력이란 말인가. 아키토는 그 자리에서 머뭇거렸다. 다시 돌격해봐야 리엔쯔이가 또 방향을 돌려버릴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우선은 리엔쯔이의 능력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나서 공격을 해야 했다. 아키토가 머뭇거리자 리엔쯔이가 먼저 움직였다.
"안 올 거면 내가 가주지."
-스윽
리엔쯔이의 몸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어디론가 공간이동을 한 것이 틀림없었다. 헤드 센서에도 순간적으로 리엔쯔이의 반응이 사라졌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의 왼쪽 전방에 반응이 나왔다. 리엔쯔이다!
"이놈!!"
-푸슝!!
아키토는 즉시 그 쪽을 향해 헤드빔을 날렸다. 리엔쯔이는 어떠한 회피 동작도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헤드빔이 리엔쯔이에게 명중하기 직전에 갑자기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 버렸다. 아키토가 깜짝 놀라는 순간 갑자기 그의 등 뒤에서 강력한 빔이 날아와 아키토의 등을 직격하였다.
-퍼억!
"크윽!!"
다행히 기간틱의 장갑을 뚫을 정도는 아닌지라 약간 그을린 것 빼고 피해는 없었다. 깜짝 놀란 아키토는 즉시 뒤를 돌아 봤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헤드센서에도 다른 적의 반응 같은 건 감지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누가 쏜 빔일까.
그 순간 또다시 리엔쯔이가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아키토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리엔쯔이를 찾는 동안 또 다시 반응이 탐지되었다. 이번에는 아키토의 오른쪽이었다. 그는 즉시 고주파 소드를 리엔쯔이에게 날렸다.
"감히 어딜!!"
-촤악!!
3개의 칼날이 리엔쯔이를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이번에도 리엔쯔이는 태연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고주파 소드가 리엔쯔이에게 명중하기 직전, 이번에도 역시 고주파 소드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리엔쯔이에게는 닿지도 못했다. 아키토가 망연자실해 지는 그 순간 갑자기 그의 등 뒤에서 뭔가가 날아왔다.
-키잉!!
"웃!!?"
뒤 쪽에서 정체불명의 칼 세 개가 튀어나와 아키토를 덮쳤다. 다행히 절묘하게 빛나가서 칼날 하나가 아키토의 왼쪽 어깨 장식을 약간 잘랐을 뿐이다. 만약 제대로 명중했다면 치명상이 됐을 것이 분명했다. 섬뜩한 느낌이 든 아키토는 그 칼날을 유심히 바라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칼의 끝부분 모양이 기간틱의 고주파 소드와 완전히 일치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 칼들은 설마....
-휘릭! 철컥!!
아키토는 전개시켰던 고주파 소드를 다시 회수하였다. 그러자 그의 등 뒤에서 나타난 세 개의 칼날까지 뒤로 사라졌다. 아키토는 금방 사태를 깨달았다. 방금 전의 칼들은 전부 자기가 날린 고주파 소드였던 것이다!
"자, 어떠냐. 기간틱 다크. 이것이 내 능력이다."
"뭐라고?!"
"좀 전에 넌 그 고주파 소드로 자르지 못하는 물체는 없다고 말했지?"
리엔쯔이는 자신의 오른팔을 들어 보였다. 리엔쯔이의 팔 보다 더 길어 보이는 유난히 기다란 검의 모양이 눈길을 끌었다. 그는 자신의 양팔의 검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절공도'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절공도가 자르는 건 물체가 아냐. 공간 그 자체다."
리엔쯔이의 양 팔의 긴 칼, 이것은 격투전용 무기가 아니라 리엔쯔이의 특기인 '공간 절단'을 위한 도구였다. 리엔쯔이는 12신장 중에서 특이하게도 공간 조작을 할 수 있는 조아로드다. 양 팔의 절공도로 원하는 지점의 공간을 분단, 그 시작점과 끝지점을 자기 맘대로 설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키토가 아까 공격을 하였을 때 오히려 자기 공격에 자기가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공격이 날아오는 지점의 공간을 잘라서 그 공간의 반대편, 그러니까 출구를 아키토의 등 뒤 방향으로 설정을 해 놓게 되면 아까와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그게 내 능력의 전부는 아냐. 아까의 그건 오히려 잔재주에 불과해. 진짜는.... 바로 이거다!"
-스윽
또 다시 리엔쯔이의 모습이 사라졌다. 공간을 열어서 또 다시 어딘가로 순간이동을 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금세 모습을 드러내었다. 바로 아키토의 바로 앞이었다. 깜짝 놀란 아키토가 주춤거리는 순간 리엔쯔이가 아키토의 머리 위쪽으로 날아올랐다. 그러다가 그는 갑자기 급강하해서 아키토의 발아래 쪽으로 이동한 후 빠른 속도로 그 자리에서 이탈하였다. 아키토의 주위를 삼각형 모양으로 한 바퀴 돌기만 한 셈이었다. 아키토는 지금 저 놈이 뭔짓을 하는 건가하며 어리둥절해 하였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위이잉
"뭐...뭐야!!"
바람소리 비슷한 묘한 소리가 조그맣게 울리더니만 갑자기 아키토의 몸이 두 조각으로 분리 되었다! 아키토의 몸 한가운데를 중심으로 세로 방향으로 깨끗하게 나뉜 것이다. 분리된 두 몸은 서로 약 1m 가량 벌어졌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아키토는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몸의 기능 자체도 지극히 정상이었다. 즉 진짜로 몸이 잘린 건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지금 눈으로 보기에는 아키토의 몸은 두 동강이 나 있는 상태였다. 그는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알지 못해서 당황해하고 있었다. 그런 아키토를 리엔쯔이가 두 눈을 부릅뜨며 노려보았다.
'이제 넌 끝장이다, 기간틱 다크! 단(斷)!!"
Next episode 제20화 '공간을 가르는 검' coming soon........
p.s : 다음 편에는 오랜만에 설정도 같이 올릴 예정입니다. 리엔쯔이의 필살기 '절공참'을 설명해야 하걸랑요. -ㅅ-;; 아주 묘사하기가 골때리는 기술인지라 벌써부터 골치가 아픕니다....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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