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날개 2화-여신 강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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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날개 2화, 여신 강림.
광활한 로더스 대륙의 동쪽, 빛의 여신인 샤이니아를 받드는 샤이니아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빛의 제국, 샤이니아. 그곳의 수도인 샤이아에서 지금 하나의 전설이 태어나려 하고 있었다. 몇만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새로운 비극을 만들어낼 그 일이….
그 날,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보면 이렇게 말한다.
‘그분이 태어나시던 밤에 어두운 하늘을 가르고 한줄기 빛이 황성으로 떨어져 내렸죠. 처음엔 갑자기 왠 봉변이냐 생각했지만 곧 그 빛이 샤이니아님의 무한한 힘을 담고 있는 걸 알고는 저희는 깨달았죠. 샤이니아님께서 자신의 분신을 보내셨다는 걸.’
그렇다. 그 빛줄기는 분명 샤이니아의 기운을 가득 담고 있었고, 그 빛줄기는 정확히 그 날 태어난 아이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여신이 직접 선택한 분신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범상치 않았다.
그 날 태어난 건 여자아이였는데 신기하게도 보통 아이들처럼 울지를 않았다. 그것뿐인가. 온몸에 신성력을 두르고는 그 크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교황과 황비를 똑바로 응시하는데 그 때, 그 아이의 눈빛을 본 그들은 마치 샤이니아께서 자신을 직접 바라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 정도였다. 이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아이의 이름을 샤이니아께서 직접 지어주신 것이다.
‘베르단디’
이것이 샤이니아에게 받은 그 아이의 이름이었다. 거기다가 샤이니아는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린드’라는 이름의 여자를 그녀의 가디언으로 붙여주었다. 신족 최강의 무력집단 ‘발키리’. 그곳에서도 최강의 무력을 담당하는 천사를 붙여준 것이다. 린드는 베르단디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계속 그녀의 옆을 지키며 그녀가 성장하는 모든 과정을 바라본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가 된다.
베르단디는 그 날부터 성녀라 불렸다. 여신이 직접 선택한 성스러운 여인. 그녀는 성장과정도 평범한 아이들과는 그 괘를 달리했다. 보통의 아이들이 아직 누워서 웅얼거릴 때, 그녀는 신성력을 이용해 바닥에서 5cm 정도 둥둥 떠서 돌아다녔으며 평범한 아이들이 한참 기기 시작했을 때에는 황궁의 서고에서 책을 읽으며 보냈다.
그녀의 지혜는 총명하기가 그지없어서 한번 보고 들은 것은 잊지 않았으며 항상 깨끗한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걸 사랑했다. 남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요, 타인의 기쁨을 곧 자신의 기쁨으로 여기는 훌륭한 여인으로 자랐다.
그녀의 나이 5세가 되었을 때, 보통의 또래 아이들이 한참 뛰어 놀 적에 그녀는 황궁에서 사는데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을 익혀갔다. 제국의 기본이 되는 신성력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일주일 안에 깨우쳐 버렸고, 그 이후의 시간을 요리 연습이나 뜨개질 같은 가사 일을 하면서 보내기 일쑤였다.
그녀의 나이 10세가 되었을 때, 그녀는 린드와 몇몇 수행원들을 대동하고는 황궁의 밖으로 나섰다. 아무리 살기 좋은 제국이라도 못 먹고 못사는 이들은 있기 마련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국은 상당 부분 썩어 있었다. 도시 바깥으로 조금만 빠져 나가면 헐벗고 굶주린 자들이 지천에 널려있었다. 그 날, 그녀는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상황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심각했었기에. 그녀는 그 날 하루 종일 거리를 돌아다니며 돈이 없어서 신관의 치료를 받지 못했던 병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들을 치료하는데 힘썼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무슨 일이 있어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성 밖으로 나와서 병자들을 치료하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공짜로 음식을 나눠주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가 직접 만들어주었다.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을 음식에 가득 담아서. 그녀가 만든 음식은 도저히 10살의 여자아이가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그 어떤 요리사가 해준 음식보다 맛이 있었다.
그 날 이후로 그녀는 말뿐인 성녀에서 진정한, 백성들을 위하는 제국의 성녀(聖女)가 되었다. 제국을 욕하는 사람이라도 절대로 그녀만은 욕하지 않았으며 세상의 모든 걸 미워하는 사람도 그녀만은 사랑스럽게 여겼다.
도움을 바라는 손길은 많은데 시간과 공간이 한정되어있다 보니 그녀는 언제나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을 보듬어주지 못하는 것에 큰 죄책감을 느꼈다. 제국민들도 그녀가 언제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알기에 그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수도에서 변방까지의 거리가 얼마며 그녀에게 쌓일 피로도는 얼마나 많을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비록 신관이나 사제는 아니었지만, 신성력이 아무리 신이 하사한 축복이라 해도 많이 사용하면 몸에 무리가 온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제국의 국민들이 모두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귀족들이었다. 이미 썩을 대로 썩은 그들은 백성들의 고통이 자신의 기쁨이요, 백성들의 행복이 자신의 불행이라 여길 정도로 권력에 취해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베르단디가 국고를 열어 국민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주니 그것이 매우 아까워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쾅!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것이오! 이대로 몇 년만 지나면 나라의 재정은 금세 바닥을 드러내게 될 것이오. 도대체 교황께서는 어쩌자고 저런 행동을 두고 보기만 하고 있는 게요!”
금발의 중후한 인상의 중년 귀족이 탁상을 강하게 치며 외쳤다. 그는 알폰소 덴 루블리언 후작으로 제국에서 상당한 힘을 지니고 있는 귀족이었다. 언제나 백성의 고혈을 빼먹는데 앞장을 서는 자로써 백성들 중 그를 좋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성녀께서 그 일을 하신 지 1년째, 고작 1년이 지났을 뿐인데도 작년에 비해서 국고가 상당히 비었습니다. 세금은 작년과 다름없이 받았거늘 그런 것들이 또다시 금방금방 빠져나가니 국고의 빈곳이 제법 보입니다.”
외눈알을 걸친 30대 초반의 남자가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그는 라피온 덴 라스펠린 백작으로 현재 제정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벌써 국고가 그만큼이나 비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루블리언 후작 각하. 이대로 5년만 지나면 국고는 바닥이 나고 국력은 약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성녀께서 하시는 일을 막을 명분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놔두기에는 몇 년후의 국가의 제정이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있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백성들에게 걷고 있는 세금의 반 정도가 자신들의 손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그동안은 어떻게 넘겨왔지만 지금과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백성들의 세금을 더 걷지 않는 한 교황도 곧 세금의 반 정도가 다른 곳으로 센다는 걸 알게 될 것이었다. 그들은 상황이 그렇게 되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성녀의 행동을 저지해야만 했다. 잘못되면 더 이상은 지금과 같은 사치는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일은 그들이 느끼기에는 제국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일로 여겨졌다.
“여신께서 직접 선택한 분신이신지라 좀 찜찜하긴 하지만 어쎄신을 보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녀의 암살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세리온 제국에게 이 일을 떠넘기는 겁니다. 사악한 마법사가 마왕의 소환을 준비하려는데 성녀의 존재가 방해가 되어서 암살을 하려 한 것으로 말입니다. 마침 저희 신성 제국은 마도를 경시하니 이보다 더 좋은 명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전쟁이 터지면 성녀에게 도움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전장으로 내몰면 민심의 동요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지껏 가만히 앉아서 얘기를 듣기만 하던 한 귀족이 손을 들고 말했다. 얼굴이 꼭 쥐상처럼 생겨서 비열해 보이는 눈을 번뜩이는 그는 바후만 덴 크로실린 백작이었다. 이 모임에서 언제나 악독한 계책만을 내놓는 자이기도 했다. 비열해 보이는 외모만큼이나 하는 짓도 인간 이하인 존재였다. 바후만은 옹졸하고 질투심이 많은 자다. 자기 외의 사람이 특별대우를 받는 것을 못 견딜 사람인 것이다. 오직 귀족만이 세상을 지배할 자격이 있고 인간으로써 살아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철저히 특권 의식과 귀족주의에 찌들어 있어서 황족과 귀족 이외의 사람은 전부 벌레 이하로 여기는 이였다. 그런 그가 모든 국민들을 아껴주는 모습은 마치 자신의 특권을 벌레에게 배푸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괜찮은 생각이긴 하지만 어쎄신들이 이번 일을 받아들일지가 의문이구려. 비록 그런 일을 하고는 있지만 평민인 주제에 그들도 사람이랍시고 몇몇이 성녀의 도움을 받은 자가 있는 것 같더구려. 그 몇몇이 내부에서 고위직이었을 경우는 에초에 의뢰 자체가 성립이 안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오히려 의뢰를 한 우리를 암살하려 들지 모르는 일이 아니겠소?”
루블리언 후작이 그렇게 말하자 그들이 모여 있는 방안의 온도가 10도 이상은 뚝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만약 진짜 그렇다면 그들은 제국의 어쎄신들을 모두 말살하지 않는 한, 편안한 밤을 보내기는 글렀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더구나 그들을 더욱 침울하게 만든 건 루블리언 후작이 한 말이 절대 허언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만약에 성녀의 도움을 받은 자가 어쎄신 길드의 마스터라면 의뢰는 당연히 실패할 것이고 제국에 귀족의 씨가 마를 수도 있었다. 더구나 현제 성녀의 명성이나 직위를 고려해도 그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우선은 크로실린 백작의 의견을 깊이 검토해보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자리를 파합시다.”
“예. 후작 각하.”
잠시 후, 모두가 자리를 떠나고 자리에 라피온만 남자 루블리언 후작이 입을 열었다.
“그래, 너는 더 좋은 생각이 있느냐?”
“우선은 지금 당장 성녀를 제거하는 것은 그리 옳은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명성도 명성이려니와 성녀는 교황께서 오랜 기다림 끝에 겨우 본 귀한 후손입니다. 만약 그녀가 올해 안에 죽기라도 한다면 제국은 더욱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옵니다. 차라리 2~3년 정도 지금처럼 내버려두고 그 후에 여행이라도 보내서 제국 내에서가 아닌 다른 왕국이나 제국에서 암살을 당하게 하면 그것으로 전쟁의 명분도 얻고 교황의 분노도 돌릴 수 있을 거라 판단되옵니다. 아니, 이 경우에는 오히려 제국의 백성들을 쉽게 선동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미 수도의 대부분의 백성들은 성녀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 그들이 성녀가 다른 지역에서 암살을 당해 죽었다고 한다면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는 뻔하지 않겠사옵니까.”
“크크크큭, 그렇지. 옳지. 아주 좋은 의견이야. 역시 크로실린 백작. 만약 그 일만 성공한다면 내가 섭섭지 않게 보답해주겠네.”
“영광이옵니다. 후작 각하.”
그렇게 계략을 꾸미는 그들의 밤은 지나가고 있었다.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공주 마마.”
“아, 괜찮아요. 국민들이 저리 좋아하는데 제가 조금 피곤하다고 해서 미룰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로니도 하루 종일 절 따라다니느라 피곤할 텐데 이만 들어가서 쉬어요.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
“아닙니다. 공주 마마. 공주 마마를 보필하는 것이 거의 일. 그런 일로는 피곤할 것도 없습니다. 그보다 전 공주 마마의 안위가 걱정스러운 겁니다.”
“전 정말 괜찮아요. 그들이 웃어주는 것만 보아도 피곤은 씻은 듯이 날아가 버리니까요. 근데 점점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데 왜 그러는지 알아요?”
로니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서는 그 일을 말해야 될지를 고민했다. 베르단디는 로니가 잠시 생각에 잠긴 틈을 타 그녀를 바라보았다. 비단같이 아름다운 은발에 별처럼 반짝이는 아름다운 은빛의 눈동자. 행동도 조심스럽고 언제나 꼼꼼하고 세심하며 배려심이 깊은 사람. 마치 명문가의 여식과도 같은 기품있는 모습에 현명하기까지 한데 어째서 시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언젠가는 말해주겠지. 그래, 난 믿어. 언젠가는 나를 믿고 말을 해주겠지.
“로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제 질문에 답을 안 할건가요?”
“아, 죄송합니다. 공주 마마.”
“괜찮으니까 제 질문에 답을 해 줘야죠. 왜 치료받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죠? 제가 1년간 치료하며 본 바로는 그렇게 금방 줄어들 정도로 병든 사람이 적은 것이 아니었어요. 세상에 신성 제국에 굶주리고 헐벗고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있었다니. 다른 나라에서 이런 제국을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워요. 제국이 욕을 먹지 않기 위해서라도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하루 빨리 없어져야 될 거에요. 전 그걸 위해서 노력하는 거고요.”
알고 있습니다. 공주 마마. 저희의 성녀시여. 그 고운 마음씨가 저희를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걸 알고 계십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전 공주 마마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도 있답니다.
“치료 받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은 공주 마마 때문이옵니다.”
“저…때문이라고요?”
“예, 국민들은 공주 마마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그리 심각한 상황이 아닌 사람들은 알아서 자리를 피하는 것입니다. 공주 마마는 분명 그들을 보면 신성력으로 치료하려 하실게 뻔하기 때문이죠. 공주 마마께오선 샤이니아 여신님의 선택을 받으신 신성한 존재. 때문에 아무리 신성력이 하이프리스트급이라 해도 하루 종일 사용하시는데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겠지요. 국민들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심각한 상황이 아니면 나서질 않는 것이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최근엔 신전에서도 신관들을 파견해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요? 잘됐네요. 걱정했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베르단디는 정말 안심이 됐는지 해맑게 웃었다. 어찌 이제 11살의 아이가 저리 아름다울 수 있을까. 어찌 저런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니고 있을 수 있을까. 그녀는 정말 여신께서 내려주신 고귀한 선물이었다.
“이제 그만 쉬어요. 저도 이만 잠자리에 들테니.”
“예, 그럼 편히 쉬시길 바라옵니다. 공주 마마.”
로니는 깊게 읍을 하고는 물러났다. 이제 그녀의 방에는 그녀와 린드만 남아있었다.
“린드도 편히 쉬어요.”
끄덕.
린드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검을 가슴에 안은 채, 창문에 걸터앉았다. 어릴 때부터 린드는 그곳에서 잠을 취했기에 이제는 베르단디도 그러려니 했다. 린드는 언제나 적이 습격하기 좋은 위치에 서서 베르단디에게 그 어떤 위험도 닿지 못하도록 경호해왔다. 지금도 그녀가 선택한 자리는 베르단디의 침실과 입구의 중간에 위치한 창문, 이곳이라면 그녀의 실력으로 어떤 위험에 처하기 전에 대처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자리였던 것이다.
“잘 자요, 린드.”
“베르단디도.”
잠시 후, 방안에는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들렸다.
‘보거라, 베르단디.’
‘여긴 어디? 저 사람은 누구?’
난 분명 침실에서 잠이 들었는데 도대체 여긴….
‘난 샤이니아다. 여긴 너의 의식 속이다. 나는 지금 너의 의식 속으로 네가 보고 있는 것들을 투영시키고 있는 거란다. 잘 보거라, 베르단디. 저 사람이 인류 최후의 희망, 세상을 멸망으로부터 지킬 혼돈의 신이니.’
베르단디는 주위를 둘러보던 시선을 돌려서 열심히 뛰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흑발의 더벅머리에 순박해 보이는 인상의 소년이었는데 처음 보는데도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갔다. 그런데 저 사람이 혼돈의 신이라고?
‘그의 이름은 케이, 인간으로 환생한 신이다. 원래 그의 이름은 세레스틴이었지. 하지만 그는 언젠가 중간계에 인간으로써는 감당하지 못할 위험이 닥치리라 예상하고 신의 몸을 버리고 인간으로 환생을 했다. 너는 미래에 그를 도와서 세상을 멸망으로부터 지켜야 할 사명이 있다. 그때가 되면 그분께서도 너희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실 것이다.’
눈앞의 소년은 갑자기 날아온 무언가를 열심히 피하는 중이었다. 통나무가 날아오고 하늘에서 그물이 떨어지고 발밑이 꺼지며 나무창을 박아놓은 함정이 나오고 화살이 날아오고 거대한 도끼가 좌우로 왔다갔다하고, 수십개의 함정이 오직 그 하나만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침입자를 막으려고 하는게 아니라 순수하게 죽이려고 설치해 놓은 듯한 함정을 그는 아슬아슬하게 피해내고 있었다. 이윽고 모든 함정을 다 통과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쉬는 그한테 16방위를 점하고 단검들이 날아왔다. 그는 기겁을 하고는 급소가 되는 부분만을 보호한 채, 몸으로 그곳을 뚫었다. 단검들을 뚫고 앞으로 달려나갈 때, 또 그를 향해 4개의 창이 날아왔다. 그 소년은 창들을 몸을 납작 엎드려 피한 다음 구부렸던 다리를 펴며 그 탄력으로 앞으로 대쉬했다. 잠시 달려가는 듯하니 양쪽의 풀 속에서 20발의 화살들이 날아왔다. 소년은 화살을 보며 달려가다가 틈을 발견했는지 그곳을 향해 몸을 나렸다. 막 화살을 빠져나왔을 즘에 그의 머리를 노리고 하나의 창이 빠른 속도로 꽃혀 들어갔다.
‘꺄악.’
베르단디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함정 같은 건 자세히 모르는 자신이 보기에도 저건 상황이 매우 안 좋았다. 화살을 피하느라 신경이 그쪽으로 쏠린 틈을 타 빈틈을 노리고 날아오는 창을 피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 소년, 아. 이름이 케이라고 했었나? 그래. 케이도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 아직까지 몸에 박혀있던 단검을 뽑아들더니 날아오는 창을 후려갈겨서 아슬아슬하게 방향을 틀어놓았다. 그리고 그 대가로 케이는 손아귀가 찢어졌다. 그 창이 마지막이었는지 그가 씩씩거리며 집으로 갈때까지도 더 이상의 공격은 없었다.
‘저걸 어떡하지. 어쩌면 좋아.’
베르단디는 눈물을 그렁거리며 아무것도 못한 채, 발만 동동거리며 멀어지는 케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샤이니아는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말이다. 그 착한 성격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구나. 그 애가 맘에 드는 것도 있겠지만 그 모습을 보니 남을 도와주는 것이 너의 천성이었구나. 도대체 어떻게 자라면 이렇게 세상의 때가 묻지 않고 클 수 있을까.
샤이니아는 진심으로 이렇게 착하게 자라난 베르단디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성격의 여아가 얼마나 될까. 있기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수가 매우 적고 베르단디처럼 성녀라거나 공주의 신분 같은 자신을 지킬 무엇이 없는 한 남들한테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는 신세가 될 거라는 건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 순수한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세상은 착한 사람보다 나쁜 사람이 더 많은 듯 보인다.
‘기억해라 베르단디. 그가 바로 세상을 구할 존재다. 네가 옆에서 도와줘야 할 존재다. 나, 샤이니아의 이름으로.’
‘예, 여신이시여.’
베르단디는 이제 마음을 안정시킨 듯, 바른 몸가짐을 하고 샤이니아에게 예를 표하며 아이답지 않은 말로 답했다.
‘그래, 너라면 훌륭하게 해낼거라 믿는다. 내가 신으로써 간섭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인듯하구나. 앞으로 10년 안으로 마신이 지상에 무슨 일을 벌일 것이다. 너의 미래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자세히 모른다. 허나,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이겨 내거라. 너라면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돌아가거라. 그리고 이 일은 아직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거라. 케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알겠습니다. 여신이시여.’
그렇게 답하는 순간 베르단디는 환한 빛에 휩싸여 정신을 잃었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에는 평소와 같은 아침이었다. 그녀는 잠시 꿈을 떠올려보았다. 그 일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 진짜 샤이니아께서 보여주신 인연이라면……베르단디는 잠시 그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내가 도와야 할 분,”
조용히 눈을 감고 양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불러본다.
“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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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화 여신 강림입니다. 왜 타이틀이 여신 강림이냐고요? 베르단디 여신이잖아요. 아니, 인간으로 나왔지만 행동은 완전히 여신이죠. 그리고 꿈속에서나마 샤이니아가 강림했고요. 태어난 날에도 완전한 강림은 아니었지만 신탁같은 걸로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습니다. 아니 아니, 그런건 둘째치고 얘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말이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작가도 모릅니다아. 제가 원래 이렇게 계획성이 없어서리... 그럼 저는 이만.
광활한 로더스 대륙의 동쪽, 빛의 여신인 샤이니아를 받드는 샤이니아교를 국교로 삼고 있는 빛의 제국, 샤이니아. 그곳의 수도인 샤이아에서 지금 하나의 전설이 태어나려 하고 있었다. 몇만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새로운 비극을 만들어낼 그 일이….
그 날,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어보면 이렇게 말한다.
‘그분이 태어나시던 밤에 어두운 하늘을 가르고 한줄기 빛이 황성으로 떨어져 내렸죠. 처음엔 갑자기 왠 봉변이냐 생각했지만 곧 그 빛이 샤이니아님의 무한한 힘을 담고 있는 걸 알고는 저희는 깨달았죠. 샤이니아님께서 자신의 분신을 보내셨다는 걸.’
그렇다. 그 빛줄기는 분명 샤이니아의 기운을 가득 담고 있었고, 그 빛줄기는 정확히 그 날 태어난 아이의 몸속으로 스며들었다. 여신이 직접 선택한 분신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범상치 않았다.
그 날 태어난 건 여자아이였는데 신기하게도 보통 아이들처럼 울지를 않았다. 그것뿐인가. 온몸에 신성력을 두르고는 그 크고 똘망똘망한 눈으로 교황과 황비를 똑바로 응시하는데 그 때, 그 아이의 눈빛을 본 그들은 마치 샤이니아께서 자신을 직접 바라보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만들 정도였다. 이변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아이의 이름을 샤이니아께서 직접 지어주신 것이다.
‘베르단디’
이것이 샤이니아에게 받은 그 아이의 이름이었다. 거기다가 샤이니아는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린드’라는 이름의 여자를 그녀의 가디언으로 붙여주었다. 신족 최강의 무력집단 ‘발키리’. 그곳에서도 최강의 무력을 담당하는 천사를 붙여준 것이다. 린드는 베르단디가 태어난 그 순간부터 계속 그녀의 옆을 지키며 그녀가 성장하는 모든 과정을 바라본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가 된다.
베르단디는 그 날부터 성녀라 불렸다. 여신이 직접 선택한 성스러운 여인. 그녀는 성장과정도 평범한 아이들과는 그 괘를 달리했다. 보통의 아이들이 아직 누워서 웅얼거릴 때, 그녀는 신성력을 이용해 바닥에서 5cm 정도 둥둥 떠서 돌아다녔으며 평범한 아이들이 한참 기기 시작했을 때에는 황궁의 서고에서 책을 읽으며 보냈다.
그녀의 지혜는 총명하기가 그지없어서 한번 보고 들은 것은 잊지 않았으며 항상 깨끗한 마음으로 세상의 모든 걸 사랑했다. 남의 고통이 자신의 고통이요, 타인의 기쁨을 곧 자신의 기쁨으로 여기는 훌륭한 여인으로 자랐다.
그녀의 나이 5세가 되었을 때, 보통의 또래 아이들이 한참 뛰어 놀 적에 그녀는 황궁에서 사는데 필요한 대부분의 것들을 익혀갔다. 제국의 기본이 되는 신성력을 제대로 사용하는 법을 일주일 안에 깨우쳐 버렸고, 그 이후의 시간을 요리 연습이나 뜨개질 같은 가사 일을 하면서 보내기 일쑤였다.
그녀의 나이 10세가 되었을 때, 그녀는 린드와 몇몇 수행원들을 대동하고는 황궁의 밖으로 나섰다. 아무리 살기 좋은 제국이라도 못 먹고 못사는 이들은 있기 마련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제국은 상당 부분 썩어 있었다. 도시 바깥으로 조금만 빠져 나가면 헐벗고 굶주린 자들이 지천에 널려있었다. 그 날, 그녀는 처음으로 눈물을 보였다. 상황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심각했었기에. 그녀는 그 날 하루 종일 거리를 돌아다니며 돈이 없어서 신관의 치료를 받지 못했던 병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그들을 치료하는데 힘썼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무슨 일이 있어도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성 밖으로 나와서 병자들을 치료하고 굶주린 백성들에게 공짜로 음식을 나눠주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녀가 직접 만들어주었다. 백성들을 위하는 마음을 음식에 가득 담아서. 그녀가 만든 음식은 도저히 10살의 여자아이가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그 어떤 요리사가 해준 음식보다 맛이 있었다.
그 날 이후로 그녀는 말뿐인 성녀에서 진정한, 백성들을 위하는 제국의 성녀(聖女)가 되었다. 제국을 욕하는 사람이라도 절대로 그녀만은 욕하지 않았으며 세상의 모든 걸 미워하는 사람도 그녀만은 사랑스럽게 여겼다.
도움을 바라는 손길은 많은데 시간과 공간이 한정되어있다 보니 그녀는 언제나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을 보듬어주지 못하는 것에 큰 죄책감을 느꼈다. 제국민들도 그녀가 언제나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을 알기에 그녀의 도움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불평을 하지 않았다. 수도에서 변방까지의 거리가 얼마며 그녀에게 쌓일 피로도는 얼마나 많을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비록 신관이나 사제는 아니었지만, 신성력이 아무리 신이 하사한 축복이라 해도 많이 사용하면 몸에 무리가 온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제국의 국민들이 모두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귀족들이었다. 이미 썩을 대로 썩은 그들은 백성들의 고통이 자신의 기쁨이요, 백성들의 행복이 자신의 불행이라 여길 정도로 권력에 취해있었는데, 어느 날부터 베르단디가 국고를 열어 국민들에게 무료로 음식을 주니 그것이 매우 아까워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쾅!
“이게 도대체 말이 되는 것이오! 이대로 몇 년만 지나면 나라의 재정은 금세 바닥을 드러내게 될 것이오. 도대체 교황께서는 어쩌자고 저런 행동을 두고 보기만 하고 있는 게요!”
금발의 중후한 인상의 중년 귀족이 탁상을 강하게 치며 외쳤다. 그는 알폰소 덴 루블리언 후작으로 제국에서 상당한 힘을 지니고 있는 귀족이었다. 언제나 백성의 고혈을 빼먹는데 앞장을 서는 자로써 백성들 중 그를 좋게 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게 말입니다. 성녀께서 그 일을 하신 지 1년째, 고작 1년이 지났을 뿐인데도 작년에 비해서 국고가 상당히 비었습니다. 세금은 작년과 다름없이 받았거늘 그런 것들이 또다시 금방금방 빠져나가니 국고의 빈곳이 제법 보입니다.”
외눈알을 걸친 30대 초반의 남자가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그는 라피온 덴 라스펠린 백작으로 현재 제정을 담당하는 부서에서 일하고 있었다.
“벌써 국고가 그만큼이나 비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루블리언 후작 각하. 이대로 5년만 지나면 국고는 바닥이 나고 국력은 약해질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성녀께서 하시는 일을 막을 명분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그냥 놔두기에는 몇 년후의 국가의 제정이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이렇게 말하고는 있지만 여기 모인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백성들에게 걷고 있는 세금의 반 정도가 자신들의 손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그동안은 어떻게 넘겨왔지만 지금과 같은 일이 반복된다면 백성들의 세금을 더 걷지 않는 한 교황도 곧 세금의 반 정도가 다른 곳으로 센다는 걸 알게 될 것이었다. 그들은 상황이 그렇게 되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성녀의 행동을 저지해야만 했다. 잘못되면 더 이상은 지금과 같은 사치는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 일은 그들이 느끼기에는 제국의 명운이 걸린 중대한 일로 여겨졌다.
“여신께서 직접 선택한 분신이신지라 좀 찜찜하긴 하지만 어쎄신을 보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그녀의 암살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세리온 제국에게 이 일을 떠넘기는 겁니다. 사악한 마법사가 마왕의 소환을 준비하려는데 성녀의 존재가 방해가 되어서 암살을 하려 한 것으로 말입니다. 마침 저희 신성 제국은 마도를 경시하니 이보다 더 좋은 명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전쟁이 터지면 성녀에게 도움을 받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전장으로 내몰면 민심의 동요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지껏 가만히 앉아서 얘기를 듣기만 하던 한 귀족이 손을 들고 말했다. 얼굴이 꼭 쥐상처럼 생겨서 비열해 보이는 눈을 번뜩이는 그는 바후만 덴 크로실린 백작이었다. 이 모임에서 언제나 악독한 계책만을 내놓는 자이기도 했다. 비열해 보이는 외모만큼이나 하는 짓도 인간 이하인 존재였다. 바후만은 옹졸하고 질투심이 많은 자다. 자기 외의 사람이 특별대우를 받는 것을 못 견딜 사람인 것이다. 오직 귀족만이 세상을 지배할 자격이 있고 인간으로써 살아갈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철저히 특권 의식과 귀족주의에 찌들어 있어서 황족과 귀족 이외의 사람은 전부 벌레 이하로 여기는 이였다. 그런 그가 모든 국민들을 아껴주는 모습은 마치 자신의 특권을 벌레에게 배푸는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괜찮은 생각이긴 하지만 어쎄신들이 이번 일을 받아들일지가 의문이구려. 비록 그런 일을 하고는 있지만 평민인 주제에 그들도 사람이랍시고 몇몇이 성녀의 도움을 받은 자가 있는 것 같더구려. 그 몇몇이 내부에서 고위직이었을 경우는 에초에 의뢰 자체가 성립이 안 될 수도 있고 어쩌면 오히려 의뢰를 한 우리를 암살하려 들지 모르는 일이 아니겠소?”
루블리언 후작이 그렇게 말하자 그들이 모여 있는 방안의 온도가 10도 이상은 뚝 떨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만약 진짜 그렇다면 그들은 제국의 어쎄신들을 모두 말살하지 않는 한, 편안한 밤을 보내기는 글렀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더구나 그들을 더욱 침울하게 만든 건 루블리언 후작이 한 말이 절대 허언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었다. 만약에 성녀의 도움을 받은 자가 어쎄신 길드의 마스터라면 의뢰는 당연히 실패할 것이고 제국에 귀족의 씨가 마를 수도 있었다. 더구나 현제 성녀의 명성이나 직위를 고려해도 그 파장이 만만치 않았다.
“우선은 크로실린 백작의 의견을 깊이 검토해보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자리를 파합시다.”
“예. 후작 각하.”
잠시 후, 모두가 자리를 떠나고 자리에 라피온만 남자 루블리언 후작이 입을 열었다.
“그래, 너는 더 좋은 생각이 있느냐?”
“우선은 지금 당장 성녀를 제거하는 것은 그리 옳은 행동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명성도 명성이려니와 성녀는 교황께서 오랜 기다림 끝에 겨우 본 귀한 후손입니다. 만약 그녀가 올해 안에 죽기라도 한다면 제국은 더욱 최악의 상황이 될 것이옵니다. 차라리 2~3년 정도 지금처럼 내버려두고 그 후에 여행이라도 보내서 제국 내에서가 아닌 다른 왕국이나 제국에서 암살을 당하게 하면 그것으로 전쟁의 명분도 얻고 교황의 분노도 돌릴 수 있을 거라 판단되옵니다. 아니, 이 경우에는 오히려 제국의 백성들을 쉽게 선동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미 수도의 대부분의 백성들은 성녀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 그들이 성녀가 다른 지역에서 암살을 당해 죽었다고 한다면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는 뻔하지 않겠사옵니까.”
“크크크큭, 그렇지. 옳지. 아주 좋은 의견이야. 역시 크로실린 백작. 만약 그 일만 성공한다면 내가 섭섭지 않게 보답해주겠네.”
“영광이옵니다. 후작 각하.”
그렇게 계략을 꾸미는 그들의 밤은 지나가고 있었다.
“피곤하지 않으십니까. 공주 마마.”
“아, 괜찮아요. 국민들이 저리 좋아하는데 제가 조금 피곤하다고 해서 미룰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로니도 하루 종일 절 따라다니느라 피곤할 텐데 이만 들어가서 쉬어요.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
“아닙니다. 공주 마마. 공주 마마를 보필하는 것이 거의 일. 그런 일로는 피곤할 것도 없습니다. 그보다 전 공주 마마의 안위가 걱정스러운 겁니다.”
“전 정말 괜찮아요. 그들이 웃어주는 것만 보아도 피곤은 씻은 듯이 날아가 버리니까요. 근데 점점 치료를 받으러 오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는데 왜 그러는지 알아요?”
로니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서는 그 일을 말해야 될지를 고민했다. 베르단디는 로니가 잠시 생각에 잠긴 틈을 타 그녀를 바라보았다. 비단같이 아름다운 은발에 별처럼 반짝이는 아름다운 은빛의 눈동자. 행동도 조심스럽고 언제나 꼼꼼하고 세심하며 배려심이 깊은 사람. 마치 명문가의 여식과도 같은 기품있는 모습에 현명하기까지 한데 어째서 시녀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길래. 물어보고 싶었지만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언젠가는 말해주겠지. 그래, 난 믿어. 언젠가는 나를 믿고 말을 해주겠지.
“로니?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제 질문에 답을 안 할건가요?”
“아, 죄송합니다. 공주 마마.”
“괜찮으니까 제 질문에 답을 해 줘야죠. 왜 치료받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죠? 제가 1년간 치료하며 본 바로는 그렇게 금방 줄어들 정도로 병든 사람이 적은 것이 아니었어요. 세상에 신성 제국에 굶주리고 헐벗고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있었다니. 다른 나라에서 이런 제국을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워요. 제국이 욕을 먹지 않기 위해서라도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이 하루 빨리 없어져야 될 거에요. 전 그걸 위해서 노력하는 거고요.”
알고 있습니다. 공주 마마. 저희의 성녀시여. 그 고운 마음씨가 저희를 버티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걸 알고 계십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전 공주 마마를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도 있답니다.
“치료 받는 사람들이 줄어든 것은 공주 마마 때문이옵니다.”
“저…때문이라고요?”
“예, 국민들은 공주 마마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 그리 심각한 상황이 아닌 사람들은 알아서 자리를 피하는 것입니다. 공주 마마는 분명 그들을 보면 신성력으로 치료하려 하실게 뻔하기 때문이죠. 공주 마마께오선 샤이니아 여신님의 선택을 받으신 신성한 존재. 때문에 아무리 신성력이 하이프리스트급이라 해도 하루 종일 사용하시는데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겠지요. 국민들도 그것을 알기 때문에 심각한 상황이 아니면 나서질 않는 것이옵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최근엔 신전에서도 신관들을 파견해 사람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고 있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요? 잘됐네요. 걱정했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베르단디는 정말 안심이 됐는지 해맑게 웃었다. 어찌 이제 11살의 아이가 저리 아름다울 수 있을까. 어찌 저런 아름다운 마음씨를 지니고 있을 수 있을까. 그녀는 정말 여신께서 내려주신 고귀한 선물이었다.
“이제 그만 쉬어요. 저도 이만 잠자리에 들테니.”
“예, 그럼 편히 쉬시길 바라옵니다. 공주 마마.”
로니는 깊게 읍을 하고는 물러났다. 이제 그녀의 방에는 그녀와 린드만 남아있었다.
“린드도 편히 쉬어요.”
끄덕.
린드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고는 검을 가슴에 안은 채, 창문에 걸터앉았다. 어릴 때부터 린드는 그곳에서 잠을 취했기에 이제는 베르단디도 그러려니 했다. 린드는 언제나 적이 습격하기 좋은 위치에 서서 베르단디에게 그 어떤 위험도 닿지 못하도록 경호해왔다. 지금도 그녀가 선택한 자리는 베르단디의 침실과 입구의 중간에 위치한 창문, 이곳이라면 그녀의 실력으로 어떤 위험에 처하기 전에 대처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자리였던 것이다.
“잘 자요, 린드.”
“베르단디도.”
잠시 후, 방안에는 규칙적인 숨소리만이 들렸다.
‘보거라, 베르단디.’
‘여긴 어디? 저 사람은 누구?’
난 분명 침실에서 잠이 들었는데 도대체 여긴….
‘난 샤이니아다. 여긴 너의 의식 속이다. 나는 지금 너의 의식 속으로 네가 보고 있는 것들을 투영시키고 있는 거란다. 잘 보거라, 베르단디. 저 사람이 인류 최후의 희망, 세상을 멸망으로부터 지킬 혼돈의 신이니.’
베르단디는 주위를 둘러보던 시선을 돌려서 열심히 뛰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흑발의 더벅머리에 순박해 보이는 인상의 소년이었는데 처음 보는데도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갔다. 그런데 저 사람이 혼돈의 신이라고?
‘그의 이름은 케이, 인간으로 환생한 신이다. 원래 그의 이름은 세레스틴이었지. 하지만 그는 언젠가 중간계에 인간으로써는 감당하지 못할 위험이 닥치리라 예상하고 신의 몸을 버리고 인간으로 환생을 했다. 너는 미래에 그를 도와서 세상을 멸망으로부터 지켜야 할 사명이 있다. 그때가 되면 그분께서도 너희들에게 작은 도움을 주실 것이다.’
눈앞의 소년은 갑자기 날아온 무언가를 열심히 피하는 중이었다. 통나무가 날아오고 하늘에서 그물이 떨어지고 발밑이 꺼지며 나무창을 박아놓은 함정이 나오고 화살이 날아오고 거대한 도끼가 좌우로 왔다갔다하고, 수십개의 함정이 오직 그 하나만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침입자를 막으려고 하는게 아니라 순수하게 죽이려고 설치해 놓은 듯한 함정을 그는 아슬아슬하게 피해내고 있었다. 이윽고 모든 함정을 다 통과했는지 안도의 한숨을 쉬는 그한테 16방위를 점하고 단검들이 날아왔다. 그는 기겁을 하고는 급소가 되는 부분만을 보호한 채, 몸으로 그곳을 뚫었다. 단검들을 뚫고 앞으로 달려나갈 때, 또 그를 향해 4개의 창이 날아왔다. 그 소년은 창들을 몸을 납작 엎드려 피한 다음 구부렸던 다리를 펴며 그 탄력으로 앞으로 대쉬했다. 잠시 달려가는 듯하니 양쪽의 풀 속에서 20발의 화살들이 날아왔다. 소년은 화살을 보며 달려가다가 틈을 발견했는지 그곳을 향해 몸을 나렸다. 막 화살을 빠져나왔을 즘에 그의 머리를 노리고 하나의 창이 빠른 속도로 꽃혀 들어갔다.
‘꺄악.’
베르단디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 함정 같은 건 자세히 모르는 자신이 보기에도 저건 상황이 매우 안 좋았다. 화살을 피하느라 신경이 그쪽으로 쏠린 틈을 타 빈틈을 노리고 날아오는 창을 피하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 소년, 아. 이름이 케이라고 했었나? 그래. 케이도 피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지 아직까지 몸에 박혀있던 단검을 뽑아들더니 날아오는 창을 후려갈겨서 아슬아슬하게 방향을 틀어놓았다. 그리고 그 대가로 케이는 손아귀가 찢어졌다. 그 창이 마지막이었는지 그가 씩씩거리며 집으로 갈때까지도 더 이상의 공격은 없었다.
‘저걸 어떡하지. 어쩌면 좋아.’
베르단디는 눈물을 그렁거리며 아무것도 못한 채, 발만 동동거리며 멀어지는 케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샤이니아는 그 모습을 보며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게 말이다. 그 착한 성격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겠구나. 그 애가 맘에 드는 것도 있겠지만 그 모습을 보니 남을 도와주는 것이 너의 천성이었구나. 도대체 어떻게 자라면 이렇게 세상의 때가 묻지 않고 클 수 있을까.
샤이니아는 진심으로 이렇게 착하게 자라난 베르단디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런 성격의 여아가 얼마나 될까. 있기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 수가 매우 적고 베르단디처럼 성녀라거나 공주의 신분 같은 자신을 지킬 무엇이 없는 한 남들한테 이용만 당하고 버려지는 신세가 될 거라는 건 보지 않아도 뻔했다. 그 순수한 사람들이 살아가기에는 세상은 착한 사람보다 나쁜 사람이 더 많은 듯 보인다.
‘기억해라 베르단디. 그가 바로 세상을 구할 존재다. 네가 옆에서 도와줘야 할 존재다. 나, 샤이니아의 이름으로.’
‘예, 여신이시여.’
베르단디는 이제 마음을 안정시킨 듯, 바른 몸가짐을 하고 샤이니아에게 예를 표하며 아이답지 않은 말로 답했다.
‘그래, 너라면 훌륭하게 해낼거라 믿는다. 내가 신으로써 간섭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 인듯하구나. 앞으로 10년 안으로 마신이 지상에 무슨 일을 벌일 것이다. 너의 미래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자세히 모른다. 허나,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이겨 내거라. 너라면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예,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이제 돌아가거라. 그리고 이 일은 아직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거라. 케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알겠습니다. 여신이시여.’
그렇게 답하는 순간 베르단디는 환한 빛에 휩싸여 정신을 잃었다. 그녀가 깨어났을 때에는 평소와 같은 아침이었다. 그녀는 잠시 꿈을 떠올려보았다. 그 일이 단순한 꿈이 아니라 진짜 샤이니아께서 보여주신 인연이라면……베르단디는 잠시 그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내가 도와야 할 분,”
조용히 눈을 감고 양손을 가슴 앞에 모으고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불러본다.
“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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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화 여신 강림입니다. 왜 타이틀이 여신 강림이냐고요? 베르단디 여신이잖아요. 아니, 인간으로 나왔지만 행동은 완전히 여신이죠. 그리고 꿈속에서나마 샤이니아가 강림했고요. 태어난 날에도 완전한 강림은 아니었지만 신탁같은 걸로 자신의 의지를 전달했습니다. 아니 아니, 그런건 둘째치고 얘기는 이제부터 시작이니까 말이죠.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작가도 모릅니다아. 제가 원래 이렇게 계획성이 없어서리... 그럼 저는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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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神베르단디님의 댓글
女神베르단디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라전대 인물소개는 cafe에만 올렸습니다. 여긴 그림이 같이 안뜨더군요. 매우 아쉽기도 하고 그러네요.
<a class=auto href=http://cafe.daum.net/belldandycafe>http://cafe.daum.net/belldandycafe</a> <a class=auto_new href=http://cafe.daum.net/belldandycafe target=_blank>[새창에서 열기]</a> 에 뉴 오 나의 여신님-오라전대 인물소개라는 제목으로 올려져 있으니 보실분은 알아서 보세요. 이상 무책임한 작가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