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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G '아앗 이건 나만의 이야기!' [한겨울에 까푸쓰타~!&아프간의 소용돌이(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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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드득. 뽀드득.

“하아.”

케이의 입에서 하얀 김이 뿜어져 나왔다. 베르단디가 밤을 새워서 떠준 예쁜 스웨터와 목도리로 무장한 케이는 집 앞에 잔뜩 쌓인 눈들을 열심히 치우며 거친 숨소리를 내쉬었다. 약 1시간을 열심히 일한 그는 이마를 잔뜩 적시는 땀방울을 옷깃으로 훔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뒷산을 보고, 활짝 열린 대문을 바라보았다. 동양식 저택이라며 굉장히 신기해하던 휠체어를 끌고 다니는 여자가 생각난 것이다.

“그 녀석...괜찮을까? 세끼를 굶었는데..”

케이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삽을 지팡이 삼아 기대며 한숨을 푹푹 내쉬는 케이의 맘속에 그 녀석이 멋대로 돌아다니고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

‘그 녀석. 지금 뭐하고 있기에 돌아올 생각을 않는 거야? 녀석 때문에.’

베르단디가 얼마나 울었는데. 케이는 지난밤에 안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베르단디에게 추궁을 한 자신을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 러시안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걱정이 들고, 베르단디가 힘들어하는 티가 역력해서 추궁을 했는데. 베르단디는 눈물을 글썽이더니 자신의 품에 안겨 상의를 눈물로 적셔버렸다.

‘이런 바보같으니.’

그런 식으로 추궁하면 될 것도 안 되지!!! 케이는 주먹을 꽉 쥐고 바보 같은 자신의 머리를 세게 박으며 자책하였다. 약 1분 정도 자아비판을 하며 눈 위에 서 있을 때 검은 그림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뭐 하십니까?”


“.....머리 위에 묻은 눈 털어.”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물음에 케이는 덜컥 내려앉은 심장을 진정시키며 뒤를 돌아보았다. 깜짝 놀란 케이의 눈에 들어온 남자는 인줴였다. 그는 집안에서 까푸스타를 열심히 해치운 듯 입가에 물기가 잔뜩 묻은 것을 소매로 쓱쓱 문지르며 케이를 불렀다. 케이는 떨렸던 가슴을 다시 진정시키며 적당히 둘러댔다. 인줴는 수긍하며 넘어갔지만 다른 이들이 보았다면 케이의 머리가 좀. 이상 있는 것 갔다며 언덕 위의 하얀집으로 신고했을 모범적인 행동이었다. 케이는 수긍하며 넘어가는 인줴를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인줴가 자신이 온 목적을 밝혔다.

“베르단디씨께서 녹차를 끓였습니다. 바깥 날씨가 싸늘하니까 그만 하고 들어오시라는군요. 간식도 드시라면서.”


“고맙다.”


“스읍.”

간식이란 단어가 튀어나오자 그런 단어를 써서 스스로의 식욕을 증강시킨 인줴는 저절로 나오는 군침을 다시 옷소매로 닦으며 말을 이었다. 인줴의 말에는 왠지 빨리 먹으러 들어가자는 재촉하는 티가 역력했기에 케이는 고맙다는 말을 예의상 던지며 서둘러 들어갔다. 인줴가 그의 뒤를 졸졸졸 따라갔다.

“후아암. 날씨는?”

대문을 들어서자 잔뜩 충혈된 두 눈을 세게 문지르며 넌지시 묻는 울드가 마중 나왔다. 케이는 자신이 소지하고 있던 온도계를 꺼내 오도계의 빨간 중금속이 -15를 가리킴을 보고 말했다.

“영하 15도. 더 떨어졌어.”


“으그그그. 아무리 여신이라도 이런 날씨에는 옴짝달싹도 못해!!”

울드가 팔짱을 끼며 이를 으드득 갈며 말했다. 괜히 불만을 케이에게 털어놓는 것 같다.라고 인줴는 생각했다. 케이는 너무도 익숙한 게으름뱅이 울드의 설명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울드는 하품을 해보이며 헝클어진 은발을 손가락으로 이리 꼬고, 저리 꼬았다. 그녀는 뒤이어 인줴가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와아~정말 날씨가 산뜻하군요.”


“산뜻.”


“하다고?”

끄덕끄덕.

인줴는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는 한 남자와 한 여신을 보고 이상하다는 눈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대충 수궁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베르단디가 기다리고 있는 응접실로 들어가 버렸다. 특히 울드는 정말 깜짝 놀랐는지 졸음이 싹 달아난 눈으로 인줴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왜 그러시는지?”


“아니. 혹시 그 녀석도 이 날씨가 좋아서 안 들어오는 것 아냐?”


“네?"

울드의 혼잣말에 인줴가 귀가 솔깃하여 반문하였고 울드는 손사래를 치며 아무 것도 아니라며 둘러댔다. 인줴는  억지웃음을 지으며 땀방울을 흘리는 울드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케이를 따라 응접실로 사라져버렸다. 케이와 인줴를 위한 맛있는 간식들이 기대된다는 듯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말이다. 그의 모습은 흡사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혀를 내밀 때의 모습과 비슷했다.

“.......”

이 자식. 너 정체가 뭐냐?! 영하 15도를 훌쩍 넘기고도 계속 내려가야 된다고 보채는 온도계를 들고 울드가 중얼거렸다.





“잘 먹겠습니다.”

바삭. 바삭. 우걱.

연구를 하겠다며 들어간 울드와, 희귀한 장미의 엑기스 추출 중이라며 딱 잘라 거절한 페이오스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응접실에 모여 녹차와 비스킷, 샌드위치와 까푸스타를 죽일 듯이 씹으며 맛있는 입소리를 냈다. 모두들 행복하다는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특히 스쿨드와 인줴가 가관이었다. 스쿨드는 언니가 만들어준 수제 아이스크림을 반 이상 떠먹고, 입에 묻은 크림들을 혀로 핥아 먹었다. 인줴는 누가 뺏으려고 쫓아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까푸스타와 샌드위치를 입에 넣고 있었다. 스쿨드와 인줴는 한 쌍의 암컷 영양과 다람쥐처럼 보였다. 혀로 핥는 모습과 볼에 우악스럽게 집어넣는 모습은 NGC에서 생태계 촬영을 해도 될 것 같은 엽기적인 모습이었다. 이 장면을 보고 이반은 이런 감상을 내렸다.

‘세계 최고의 식탐대회에 나가도 손색이 없을 듯. 무시무시한 먹보들.’

만약 이반이 이 말을 입 밖으로 내밀었다면 인줴의 암바와 스쿨드의 허리케인 라나가 작렬했을 것이다. 케이는 그의 감상에 전적으로 동감하면서 바닥에 엎어져 사경을 해매는 이반을 구경하며 명복을 빌어줬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이반은 입조심을 하자고 다짐하며 눈앞에 있는 먹을 것들에 집중하였다. 이반과 스쿨드, 인줴가 나름대로 즐거운 티타임을 즐기는 반면 케이와 베르단디는 암울 그 자체였다. 두 사람(특히 케이)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서로의 손을 잡고 있었다. 왠지 처음 연애하는 숫총갓, 숫처녀같은 모습이었다.

“.............”


“.............”

이봐! 거기 남자!! 확실하게 덮쳐!!!!라고 필자가 펜을 집어던지며 욕할 것 같이 소심한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베르단디에게 뭐라 말을 꺼내야 할지 망설였다. 어제 밤의 일에 대해 사과를 해야 할 것도 같고, 다시 안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며 추궁해야 될 것 같지만. 또 베르단디의 눈물을 보거나, 억지로 참는 모습을 볼 것 같아 신경이 쓰였다. 겉으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지만 그의 속을 새까맣게 타들어갔다. 베르단디도 그녀 나름대로 새까맣게 속이 타들어가고 있었다. 가출한 안나가 원망스럽기도 한 베르단디였다.

“저기. 베르단디.”


“케이씨.”


“아!”

두 사람이 동시에 서로를 불렀다. 그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탄성을 질렀다. 마치 처음 연애할 때처럼 두 사람의 얼굴이 새빨간 홍시가 되었다. 이 광경을 목격한 스쿨드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진지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새빨간 얼굴의 언니와 변태인간(?)이 너무도 어설픈 개그쇼를 하는 것 같아 어이없었다. 평소처럼 행동해도 되는데! 라고 말하려다 꾹 참으며 미리 방해가 될 것 같은 장애물들을 제거하기 시작했다. 그 장애물이란.

질질질.


“자! 이제 티타임 끝이야. 다시 일하러 가자고.”


“에? 너무해요 스쿨드. 난 이제 막 홍차에 입을 댔다고요.”


“우걱우걱우걱우걱.”


“시꺼! 잔말 말고 따라와~!”

두 마족은 테이블 위의 맛있는 음식들을 입안에 털어 넣다가 갑작스런 스쿨드의 행패(?)에 억울하다며 항의를 했다. 이반은 애걸복걸하며 끝까지 마시던 찻잔을 입에 꽉 물었고, 인줴는 조금이라도 음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더 빨리, 더 큰소리로 음식을 씹어 먹으며 응접실의 벽을 붙잡고 버티려 했지만 두 마족을 질질 끌고 가는 스쿨드의 괴력은 대단했다. 자기보다 두 배는 더 커 보이는 러시안들을 질질 끌고 가는 그녀의 뒷모습은 자루포대 안에 시체를 넣고 어디론가 끌고 가는 사이코 살인마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케이에게 오늘의 스쿨드는 악마나, 살인마가 아닌 천사처럼 보였다. 스쿨드가 하얀 빛을 내뿜으며 천사의 날개를 펄럭이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고맙다. 다음 주에 시내로 나가면 반드시 131을 먹다 배부를 정도로 사다주마!!’

웬일로 달려들지 않고 조용히 사라져주는 스쿨드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는 케이였다.  스쿨드는 케이의 환희에 찬 얼굴을 보지 못했다. 케이는 이제 어젯밤의 일을 종결지을 때라고 다짐하였다. 베르단디의 맑은 두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자 괜스래 심장이 두근거렸다. 케이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말했다.

“저기 베르단디.”


“네?”


“.......힘든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


“.......”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기운이 30초간 흘렀다. 케이가 말을 덧붙이려 입을 열려는 찰나.

“...미안해요 케이씨.”


“아 난 괜찮. 내가 더 미안...어젯밤에는 내가 말을 좀 심하게 했어.”

이 사람아. 안나한테 무슨 일 생겼냐고 묻는 것이 말을 좀 심하게 한 것이냐? 지로가 들었으면 닭살 돋는 분위기 만들지 말라며 머리를 잡고 흔들었을 것이라고 케이는 호언장담했다. 지로는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온몸에 돋는 각종 닭살과 오한을 느꼈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너무 힘들어요.”


“베르단디.”


“그렇지만. 지금 이야기를 꺼낼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


“........”

고개를 푹 숙이고 다시 침묵으로 일관한 베르단디. 케이는 안쓰럽다는 얼굴로 안나녀석에 대해 별의별 근심에 휩싸인 베르단디를 자신의 품에 안아주었다. 케이의 포옹에 베르단디는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가 익숙해졌는지 두 팔을 벌려 그의 등을 감쌌다. 그의 귀에 고맙다고 귓속말을 속삭였고 케이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 두 사람은 평소와 똑같은 연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거기에 두 사람은 좀 더 전진을 하려 했다. 모든 연인들이라면 당연히 하는 그것을.

“베르단디.”


“케이씨.”

윽. 베르단디의 숨결이. 아앗! 입술이!! 막상 하려 하니 당황하다 못해 두려워진 케이의 가슴. 심장박동이 더욱 크게 들리는 듯 해 케이는 미칠 것만 같았다. 베르단디의 입술이 점점 다가오자 케이는 당황하여 얼굴이 새빨개졌다. 아아~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아!!! 케이는 기절하지 않으려 안절부절못하며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대려 했다. 유성우가 떨어지는 밤에 메구미가 시도한 두 사람의 키스작전도 실패했는데 이 응접실에서의 키스는 왠지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쿨드 덕택에 방해꾼들도 사라졌고 말이다. 고맙다 스쿨드!

이제 입만 닿으면!!!

입만 닿으면!!!

입만!!

닿으면!!

그러나 케이의 생각은 거기에서 끝을 맺고 말았다.

쿵.

“흐엑!”

둔탁한 물체가 떨어지는 것 같은 소리에 케이는 화들짝 놀라 1cm나 가까워진 자신의 입술을 떼고 말았다. 덕택에 키스는 물 건너 가버렸고 베르단디도 화들짝 놀라 문 쪽을 바라보았다. 쿵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드르륵 문이 무서운 기세로 열렸다. 부스스함 대신 우아하게 땋아진 은발을 휘날리는 울드였다.

“어머나. 내가 한참 좋은 분위기를 망친것인가?”


“읔.”


“언니? 무슨.”

울드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웃음소리를 흘렸다. 울드의 한마디에 케이는 찔끔한 가슴을 부여잡으며 방해꾼을 노려보았다. 으악! 울드 왜 여기서 등장하는 거야! 베르단디도 당혹스럽다는 얼굴로 울드를 불러 무슨 일인지를 물었고 울드는 손가락으로 복도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돌아왔어. 그 군인 아줌마.”


“누가 군인 아줌마라는 것인가?”

울드가 큰소리로 키득거리며 자신을 소개하자 예의 화난 여자의 목소리가 바깥에서 들려왔다. 키스 분위기가 망쳐진 지금은 별로 반갑지 않은 여자의 목소리였다. 하지만 베르단디는 달랐다. 드디어 돌아온 여자의 목소리에 반갑다는 얼굴로 달려갔다.

“드디어 돌아왔군요.”


“흥. 무슨 전쟁터 나갔다가 돌아온 사람 보듯 하시는 것입니까? 나 같은 녀석은 영하 30도가 내려가는 벌판 위에 알몸으로 내팽개쳐 놓아도 살아갈 케이스입니다. 당연히 무사하죠.”


“말은 잘 하시네~! 너 때문에 이 집안이 이 고생이야. 얼른 물어내.”


“시끄러 이 은발아. 불행히도 오늘 밤에 여길 떠나야 될 것 같아서 어젯밤부터 미리 준비를 하러 나간 것이다. 나도 이런 분위기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지만 착륙 예정지에, 접선은 물론이고 차후 대비를 위해서는 별 수가 없었다고!”


“말은 잘해요~여하튼 밥이나 먹어!”


“쟈볼르시쪠! 난 거짓말 따윈 안 한다고....뭐. 집안 분위기가 이렇게 험악하게 돌아간 것은 정말 미안하게 생각한다. 베르단디한테 특히 더 미안하고.”


“괜찮아요. 들어오세요. 추우니까 차 한잔.”


“스빠씨뻐(고마워)”


“우왓! 너, 너 돌아온 것이야!!”


“크크크. 그렇다 꼬맹이. 우리 인줴를 위한 먹을 것들은 자알~살 준비는 됐나?”


“우으으~다음에는 절대 안 질꺼야! 내가 직접 인공위성을 쏘아 올려서 기상관제를 할 거라고!!”


“맘대로 하게 동무.”


“우으~절대 안져!”


“까삐딴!”


퍼퍽.


“얌전히 있어.”


“돌아오셨군요 사령관.”


“아아. 돌아갈 코스는 정해졌다. 불행히도 강습헬기행이다. 젠장!”


“우헤헤헤헤~까삐딴은~! 고소 공포증!!”


퍼퍼퍽.


“쟈볼르시쪠”


“돌아왔군요. 바보군.”


“누가 바보야? 그래 엑기스는 잘 추출됐나 보군요. 페이오스.”


“흥. 누구의 화병을 가라앉힐 약을 만드는데. 이 정도쯤이야~!”

바깥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들과 목소리. 케이는 그 목소리와 반응들을 들으며 절로 미소를 지었다. 케이는 천천히 베르단디가 나간 복도로 걸어 나왔다. 진흙투성이의 군화를 툭툭 털며 평소와는 다른 미소가 가득한 얼굴의 신발장 옆에 서 있었다. 케이는 절로 지어진 미소를 가라앉히며 짐짓 화가 난 것처럼 말하였다.


“왜 이제야 온 거야?”


“아아. 이즈비니찌(미안합니다) 하필이면 내일이 떠나는 날이라 사전조종을 하러 나갔거든요. 뒷산도 둘러보고, 저희가 탑승할 헬기가 착륙할 지점들을 몇 곳 둘러보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떠...난다고?”


“.......다.”


케이가 묻자 안나는 망설이듯 뒷머리를 긁적이더니 러시아 어로 대답했다. 케이는 안나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랬구나.”

막상 뭐라고 말을 하려 했지만 입 밖으로 튀어나오지 못해 이런 답밖에 할 수 없었다. 그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나는 피식 웃어 보이며 말했다.


“하지만.”


“???”


“불행히도 지금의 눈보라 때문에 우리의 카모프 헬기도 뜨기가 힘들다 하더군요. 시야가 가려졌고, 움직이기 불편하다나? 그 때문에 떠나는 날이 2일 뒤로 미뤄졌습니다. 죄송합니다.”


“다행이네.”


“네. 다행...뭐라고요?”

케이가 내뱉은 말에 안나가 고개를 끄덕이다 멈칫하여 반문했다. 케이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 번 말 해주었고 안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예상치 못한 말이었는지 당혹스러운 얼굴이 되었지만 싫지는 않은 눈치였다. 안나의 이런 어리숙한 모습에 울드는 속으로 웃음을 터뜨리며 생각했다.


‘뭐야. 언제는 베르단디가 싫어서 떠난다고 했더니.’

본심은 떠나기 싫었구나. 울드는 안나의 즐거워하는 모습에 코웃음을 치며 키득거렸다. 어젯밤 생긴 일로 가졌던 안나에 대한 나쁜 감정이 눈 녹듯 사르르 사라져갔다. 울드는 이제 분위기를 암울하게 만들어갔던 이 안나를 어떻게 처리해야 될까 고민하였다. 그러나 그 고민은 스쿨드와 페이오스가 해결해주었다.

“후후훗! 그런 고로 나와, 페이오스, 울드 이렇게 팀을 먹고! 안나, 이반, 인줴. 이렇게 팀을 먹고 우노나 젠가를 가지고 노는 것 어때?! 물론 진 팀은 131 아이스크림!!”


“유치하게 그게 뭐야. 131보다는 호화찬란한 수영복을!!”


“핫!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대결이다!!!”


그래. 이게 좋은 것이겠지? 케이는 아까 응접실에서의 베르단디와 닿을 수 있었던 아슬아슬한 입술을 문지르며 아쉬운 마음을 깨끗이 지워버렸다. 키스라면 언제든지 할 기회가 오지만 화 잘내고 성질 더러운 친구가 사라지는 것은 뭔가 허전할 것 같았다……. 빨간 머리의 군바리도 돌아오면 좋겠는데. 케이는 연애에 방해물이 될지도 모를 엉뚱한 이가 돌아오길 빌었다. 케이 일행의 오후는 이제 행복했다. 아니 행복했었다. 이 일이 생기기 전까지는.

털썩.


“.어 언니?”


“베, 베르단디?”


“.......베르단디?”


“베르단디!! 정신 차려!!”

......그들의 일상에 어둠의 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케이는 하얗게 타버린 속을 또다시 불태우며 베르단디를 불렀다. 그러나 한번 쓰러진 베르단디는 눈을 뜨지 않고 거친 숨만 내쉬었다. 그녀는 금방이라도 위태로워보였다. 케이는 베르단디의 손을 잡고 눈물만 흘렸다. 하지만 베르단디는 숨만 쌕쌕 거리며 위태로움을 알릴 뿐 케이의 부름에 응할 수 없었다. 몸이 말을 듣지 않는 것이었다.


“젠장!! 이게 무슨!!!”


“쟈볼르시쩨. 일단 따뜻한 방으로 옮겨. 몸이 완전히 시베리아 벌판이야!!”


“사령관!!”


“뭐야? 인줴. 거기서 엉뚱한 짓 하지 말고 당장 달려와서 베르단디 부축해!!”

모두들 베르단디가 쓰러져 혼란스러운 와중에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안나가 모두에게 지시를 내렸다. 갑자기 쓰러진 베르단디의 몸은 그녀가 여태껏 걸어온 차가운 눈밭의 날씨보다 더 싸늘했다. 마치 얼어 죽은 시체를 몸에 안은 것처럼. 이대로 죽지 마!! 죽으면 나나, 묠니르가 널 가만 안 둘 것이다!! 안나는 속으로 울부짖으며 자신의 과거를 이해해주고, 걱정해주던 여신을 부축했다. 겉으론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지만 속은 케이만큼, 아니 케이보다 더 타들어가는 안나는 엉뚱한 곳에서 자신을 부르는 인줴를 닦달했다. 인줴는 신발장 위에 올려진 옛날식 전화의 수화기를 들고 있었다.

“젠장! 여신들은 원래 병에 안 걸려. 그따위 병원에 연락해봤자 소용 없.”


“사령관님. 병원의 전화가 아닙니다.”


“그럼!!”

인줴가 두 눈을 크게 뜨며 진지하게 묻자 안나가 고함을 질렀다. 인줴는 난감하다는 표정이 되어 안나에게 수화기를 건내주며 말했다.


“하느님의 전화입니다.”


“뭣?!”

안나는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가 건내준 수화기만 멍하니 들고 있었다.





“빌어먹을. 당신이 신이야! 그러고도 신이냐고!! 어떻게 유그드라실이 크랙킹(남의 컴퓨터에 해킹하여 그 컴퓨터의 시스템을 부스는 행위)당하는 것을 빤히 보고만 있어! 젠장. 그것도 과거의 정보부의 자료라니? 젠장!! 분명히 그것을 폐쇄시켰다고 했잖아!!!”

수화기로 약 5분간 말을 주고받은 안나가 화를 내며 수화기를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안나는 빌어먹을 놈의 세상, 모조리 핵미사일 맞고 뒈져버려라는 식으로 분풀이를 해 무책임한 신을 향한 분노와 베르단디의 안부에 대한 광기어린 걱정을 드러냈다. 하지만 모두들 안나를 탓하지는 않았다. 케이일행은 베르단디에 대한 걱정 때문에 그녀를 간호하고 있는 케이와 울드를 제외한 모두들 구원이라도 받기 위해 몰려온 사람들처럼 신발장 앞에 서서 전화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안나의 버르장머리 없는 행동 탓인지 신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페이오스를 불렀다. 안나는 페이오스에게 수화기를 건네주며 말했다.

“유그드라실이 뚫렸어. 전체 시스템의 30%가 다운 상태란다. 다행히 천계와 이 디멘션 3 사이를 왔다갔다 할 수 있는 게이트는 무사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란다! 쵸르트!!(빌어먹을 자식!!)”


“........여보세요.”

안나가 화를 내며 주저앉은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페이오스는 긴장을 억누르며 수화기를 잡았다. 모두들 페이오스가 구원자라도 되는 양 희망의 눈빛으로 페이오스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는 괜히 불안감만 증폭되었다.

-페이오스인가?


“네 신님. 유그드라실이...돌파 당했다고요?”


-.....정보부 소속 A급 특무한정 ‘안나’가 보고(?)한 대로다. 현재 시스템의 30%가 다운상태이다. 예전에 세레스틴이 유그드라실을 공격했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다.


“대체 누가 이런 짓을?”


-뿐만 아니라 마계의 니드백 시스템도 공격을 당해 12%가 다운 당했다. 마계 쪽을 미리 예방을 했기에 이정도로 끝났지만 그들이 개발한 백신이나, 이쪽의 백신도 소용이 없다. 과거 세레스틴 때와 유사한 바이러스이지만. 정도가 틀려.


“누군지는 알 수 없다는 것인가요?”


-그렇다 페이오스. 다행히 게이트는 살아 있으니. 손을 쓸 수 있을 때 손을 써야겠지? 지금 당장 울드, 스쿨드와 함께 이곳으로 돌아와라.


“.....알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인간계에 거주중인 베르단디도 함께 데려와라.


“!! 네?!”


-.............

뚜욱.

전화는 끊겼다. 페이오스는 한참을 수화기를 든채 멍하니 서 있다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한숨을 내쉬었다. 페이오스가 고개를 숙이며 수화기를 내려놓자 모두의 얼굴에 걱정이 서렸다. 케이 일행들 모두 암울한 표정이 되었다.

“.........”


“하느님께서...뭐라고 하셨어?”

스쿨드가 조심스럽게 페이오스에게 물었다. 페이오스는 한숨을 내쉬고 입을 열고, 머뭇거리다가 굳게 다물어버렸다. 옆에 있던 울드가 페이오스가 하려던 말을 눈치챘는지 스쿨드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준비 해. 하늘로 올라가야 될거야.”


“.........”


“..........”


“빨리들 게이트 열 준비나 해.”

울드가 스쿨드와 페이오스를 재촉했다. 겉으론 내색하지 않지만 울드도 걱정스러운 얼굴이 되어 있었다.





-조금 전 들어온 속보입니다. 사할린 열도와,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로프스크 등 러시아의 주요 중소도시들과 불과 8시간 만에 테러리스트들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러시아 정부는 2시간 전 테러리스트들과 러시아 극동함대간의.......<중략> 테러리스트들은 극동함대에서 탈취한 키로프 급 순양함들과 슬라바급, 출처 불명의 무기들을 가지고 무력시위를 펼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사상자는 5만명을 넘어가고 있으며, 약 2만명이 중상자로 병원에 실려가고....테러리스드들은 자신들을 R.L.O.라 소개하며........-


“맙소사.”


“까삐딴. 지금 이 일련의 사태들은 설마....”


“이반.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소리 들어봤나?”


“니옛(아뇨)”


“........”


안나가 두 눈을 크게 부릅뜨며 TV의 뉴스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두 부하들은 뭐라 할 말을 잃은 채 자신들의 적이 활동하는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TV 속에서 러시아 군 소속으로 추정되는 핵잠수함과 거대한 군함들이 위용을 자랑하는 모습이 방영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실속없는 군대로는 녀석들을 이길 수 없을거라고 인줴는 장담했다.

“..........”


“.......”


“좀 더 상황을 지켜본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 뿐이다.”


“....다.”


“베르단디의 간호에나 신경 쓰도록.”


“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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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ka님의 댓글

pika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열심히 쓰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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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버님의 댓글

가이버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이제 본격적인 스토리의 시작이군요. 그런데 그 시작이 베르단디사마의 병으로 시작되다디! 베르단디 팬인 저에게 이건 상당한 정신적 데미지! -_-;;

그런데 각종 군함으로 무장한 놈들을 테러리스트라고 할 수 있나?? (크기가 너무 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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