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G '아앗 이건 나만의 이야기!' [한겨울에 까푸쓰타~!&아프간의 소용돌이(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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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단디는?”
방문이 열리더니 안나가 얼굴을 빼꼼 내밀고 바로 앞에 침울하게 앉아 있는 스쿨드에게 물었다. 안나의 질문에 스쿨드는 슬픈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가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또 울었는지 스쿨드의 눈에는 마른 눈물자국들이 어지럽혀져 있었다. 안나는 물어본 내가 바보다라고 자책하며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녀의 손에는 간호를 위해 직접 정성을 다해 우려낸 붉은 색 수프가 담긴 접시가 들려 있었다. 물론 들고 온다 한들 베르단디가 도통 깨어날 생각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혀 쓸모가 없게 돼 버렸지만 말이다. [저 주세요! 라고 외쳤다가 케이와 안나의 합공격에 나가떨어진 이반을 제외하곤 모두 다 침울해 있었다.]
“............”
“.............”
빌어먹을. 안나가 신세한탄 하듯 증기기관차 마냥 한숨을 푹푹 쉬며 짜증 섞인 욕을 내뱉었다. 모두들 안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가 다시 방 한가운데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는(?) 베르단디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을 고칠 방법을 의논하기 위해서란 목적 하나로 뭉친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방도를 제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분명 바이러스성 질환. 예전에 세레스틴 때와 비슷한 패턴이긴 한데.”
“그러게. 하지만 뭔가 이상하지? 활동주기도 불확실했다가, 갑자기 확실해지고. 마치 찾으려 기다렸다가, 다시 활동하고. 이건 정말 알 수 없는 녀석...”
“어려운 소리는 그만하고! 방법은 찾아낸 거야?”
울드와 페이오스가 베르단디의 몸을 스캔으로 뒤지듯 샅샅이 뒤지는 모습을 보다 못한 스쿨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울드는 스쿨드를 무섭게 째려보았다가 다시 베르단디의 몸 상태를 점검하는데 신경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스쿨드가 언니를 걱정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자위하며 꾹 참고 법술과 마술을 전개하는데 신경을 쏟기로 한 것이었다. 페이오스는 턱을 손으로 한번 쓸어내리며 자신이 깨달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안나. 정말 당신 말대로군요.”
“엉? 뭐가.”
“..............”
“............???”
페이오스의 의문과 안나의 반응에 모두들 두 여신과 마족을 일제히 번갈아 쳐다보았다. 안나는 밖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다시 방문을 열고 바깥 동태를 살펴야만 했다. 케이일행에게는 너무도 낯선 소음이었지만 안나와, 바깥에서 상황을 살피고 있는 인줴, 이반에게는 그동안 잊으려 했던 절망의 소음이었다.
슈우우우욱. 콰콰콰콰쾅.
아아아악! 으아악!!!
슈슈슝 슈슝. 트트특. 트트트트트특
“.....아아. 페이오스 당신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 알겠어.”
“맙소사. 방금 막 베르단디의 몸속에 잠입해 있는 바이러스 활동량이 급상승했어.”
울드의 보고에 모든 것이 확실해 졌다. 그래 바로 그것이다!! 안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밖을 급하게 나갔다. 인줴와 이반이 뭐라고 소리 치고 있었지만 귀에 솜이라도 틀어 박아놓은 것처럼 멍하고 울리며 아무 소리고 들리지 않았다. 안나는 두려움에 미칠 것 같다는 얼굴이 되어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심장박동이 2배는 더 거세지는 것 같았고 얼굴은 눈 덮인 산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창백했다. 안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멍하니 서서 케이 일행과 부하들을 번갈아 보았다. 부하들의 입이 뭐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침착하게 부하들의 입모양을 따라 읽었다.
그 녀 석...이 살포한 바이 러스 라 고 ?
그래. 그렇겠지. 안나는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현실에 믿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지만 수긍하고 있었다. 케이와 스쿨드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어 베르단디의 위태로운 숨소리를 들으며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는. 괜찮을 수 있는거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 녀석이라니??”
“...........”
케이와 스쿨드가 울드를 잡고 흔들며 물었지만 울드는 고개를 돌려버리고 침묵을 지킨 채 안나를 쳐다보았다. 안나에게 직접 설명을 들으라는 듯 한 눈을 한 채. 안나는 울드의 차갑고도 날카로운 시선에 뜨끔한 얼굴이 되었지만 차마 고개를 돌릴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 상황의 심각성을 케이와 스쿨드, 울드, 페이오스에게 설명을 안 할 수도 없었다. 잊고 싶어도, 부인하고 싶어도. 이 상황은.
“일어났습니다.”
“???”
안나의 말에 케이가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어 안나에게 답을 갈구하듯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안나의 흑발을 뚜렷이 응시하고 있었다.
“나와, 천계와, 마계, 세계, 그리고.”
그 녀석이 외면했던 재앙이....
-여기는 사할린 열도 근해. 현재 러시아 해군과 테러리스트 간의 공방이 치열합니다. 앗! 방금 테러리스트 쪽에서 무언가를 발사했습니다.
안나의 설명에 부가라도 하려는 듯 인줴와 이반이 틀어놓은 TV 뉴스의 리포터가 다급한듯 외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화질이 좋지 않아 방금 발사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러시아 해군을 향해 발사된 대함미사일이었을 것이다. 안나는 중얼거렸다.
“천계. 이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천계. 유그드라실 통제실.]
“바이러스 잠식율!!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4번째 방어라인 돌파.”
“그와 동시에 디멘션3(인간계)에서도 전쟁 발발. 치열한 것 같습니다.”
“페이오스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비한정 여신 페이오스는!!”
“곧 올 거랍니다. 좀만 더!!”
천계 또한 안나의 예상과는 달리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안나일행과는 달리 눈과 슬픔이 아닌 몸의 고된 노동과 유그드라실의 상태로 직접 체험하고 있었다. 정말 끔찍하다 못해 울고 싶을 정도로 바이러스는 유그드라실의 통제실과 프로그래머들을 농락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끝까지 버텨보겠다고 방화벽을 급히 전개했던 유그드라실의 삼총사(애니 보신 분들은 아시리라 믿습니다.)들도 5분을 못 버티고 철저히 깨졌기에 상황은 더욱 악화되가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지?”
이런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황당한 바이러스를 만든 자는? 앗! 녹색머리를 탐스럽게 길었던 2급 1종에 속한 관리자 여신은 바이러스의 소유자에게 분노를 터뜨리다가 갑자기 허공에 떠오른 낯선 문자가 표시된 모니터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시 방화벽을 전개하려던 삼총사와 기타 모든 여신들도 경악하기는 마찬가지. 모두의 눈에 작고, 큰 수백이 넘는 광학 모니터들이 허공에 떠올라 이렇게 쓰여 있었다.
-즈뜨라부스뜨부이쪠 앙겔릐(안녕하세요 천사들)-
“.....대체 이게 무슨.”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이 어처구니없는 녀석을 막아줘!! 녹색머리의 여신은 속으로 절규하며 다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히 행동하였다.
“하하하. 깜짝 놀랐을까?”
“아마도. 아 스빠시뻐.(고맙습니다.)”
“니예 쟈 슈토(천만에)”
소년이 웃음을 터뜨리며 모니터에서 눈을 떼자 자신의 두목인 소년의 말에 그럴 것이라며 양복차림의 동양인 남자가 맞장구를 쳤다. 소년은 그를 한번 쳐다보았다가 씨익 웃어보였다. 그 눈에는 순수한 기쁨이 담겨 있었다. 뭘 해도 좋다는 의미가 내포된 순수한 기쁨이.... 소년은 남자의 손에 들린 서류같은 것을 힐끔 쳐다보았다가 신음소리 비슷한 콧소리를 내며 컴퓨터 옆에 어지럽혀져 있는 볼펜들 중 하나를 꺼내 싸인을 휘갈겼고 남자는 고맙다고 말했다. 소년도 그에 답하며 벌떡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후아암. 역시 일을 마친 뒤에는 기지개야!.”
“전보다 정보처리능력이 더욱 향상된 느낌입니다. 보스.”
“아아. 보스체면에 더욱 머리가 좋아지고 빨라지지 못하면 살 수 없으니까. 이 한심한 세계는.”
“.............”
자랑스럽다는 듯 말하면서 세상에 가진 자신의 불만을 털어놓는 듯 한 소년의 말에 양복차림의 동양인은 멋지게 키운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소년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양복차림의 남자는 소년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투에 대한 보고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소년은 이렇게 조용히 서서 주위를 둘러보거나 창밖에서 철썩철썩 벽을 때리는 하얀 북해의 파도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두목인 그의 평화를 깨뜨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까쓰빠진 리는 조용히 그의 뒤에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조용히 평화를 즐기던 두 사람이 서 있는 어두운 공간에 별안간 빛줄기가 들어왔다.
쾅.
둔탁한 물체라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이 문을 연 덕택에 보스와 그의 부하가 서 있던 곳까지 빛이 퍼져 나왔고 방안은 대낮처럼 환해졌다. 방안 곳곳에는 붉은색 레이스가 치렁치렁한 커튼과 바닥에 깔린 하얀색 페르시아산 양탄자가 여러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였다. 그러나 양복으로 검은 무리를 만든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보스!”
“어떻게 저희와 상의도 없이!!”
“전쟁? 지금 우리 RLO와 마피아들을 무너지게 할 생각인 것입니까?”
“당장 이 전쟁은 취소!!!”
까쓰빠진 리와 보스라 불린 소년보다 20년은 더 오래 살았을법한 중년, 노년의 남자들이 항의를 하며 두 사람의 계획에 태클을 건 것이다. 그들은 러시아의 각 도시와, 지방의 마피아들을 통솔하는 대부라는 존재들이었다. 정말 위엄 있고, 냉철하고, 또 잔인하기로 전세계에 소문난 자들. 그러나 평소와는 다르게 이 유난히 어두운 방문을 미친 듯이 박차고 들어와 위엄있는 이미지를 철저히 박살내는 러시아 대부들. 보스라 불린 소년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남자들은 마치 인간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아름다운 소년의 미소에 조금 기가 꺾인 듯 찔끔한 채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를 여러 번 보아온 이들도, 그를 만난 지 얼마 안 된 다른 이들도 입만 벌린 채 그의 말 한마디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소년이 러시아어로 인사를 하자 대부들은 떨떠름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가 서양식으로 잘 꾸며진 길다랗고 커다란 탁자로 가 앉으라며 권유했다. 그 위에는 여러 진귀한 음식들이 잘 차려져 나 먹어주십시오! 라며 외치고 있는 듯 했다.
“흠. 보, 보스 잘 먹겠소.”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이것 때문에 온 것이 아니잖소.”
“자자자자. 모두들 모두의 영광이 세상에 퍼지기를 위해 보드카를 한잔씩 듭시다.”
“모든 것은 RLO를 위하여!”
“모, 모든 것은 RLO를 위해....”
평소 같으면 소년의 한마디에 당연히 수긍하며 행복한 얼굴로 잔을 치켜세우며 원샷 했을 이들이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보스의 이런 여유 있는 태도와 그의 옆에 착 달라붙어 앉은 비서인 동양인 가스빠진 리를 좋아 보일 리 만무했다. 결국 배가 유난히 볼록 튀어나오고, 얼굴이 둥그렇게 생겨 삶은 계란을 떠올리게 만드는 검은 양복차림의 남자가 벌떡 일어나 고래고래 악을 질렀다.
“지금 정신이 있는 것이오!! 아무리 우리가 타이푼급같은 핵잠수함을 거래하며 살아가는 최고의 무기 밀매업자들이지만!!!!이 나라 러시아와 전면전을 벌일 능력을 갖춘 이들은 아니란 말이오!! 그런데 이게 무슨 짓이오? RLO란 이름에 걸맞게 행동한다더니 정말로 승산도 없는 전쟁이란 말이오! 우린 이제 그만 두겠소 보스.”
“마, 맞소! 우리 사창가를 관리하는 예밀리아 패밀리 또한 마찬가지요.”
“에떠 야(나 한다, 나도 한다는 뜻)”
“여하튼 우리 마피아측은 이제 당신을 지원하지 않소.”
머리가 새하얀 중년의 남자가 자리에서 스르르 일어나 바로 옆자리에 위치해 입을 가린 채 삐딱하게 앉은 소년에게 말했다. 소년은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몸을 떨며 마피아들을 한명한명 바라보았다. 대부들이 순간 움찔하여 소년의 신기함이 담긴 붉은 눈을 응시하였다. 소년은 웃으며 보드카를 한잔 쭉 들이켰다가 말했다. 저렇게 보드카를 마셨다간 뱉어내는 것은 고사하고 콜록거리며 고통을 호소할 만도한데 그런 것 하나 없이 어른들의 주량을 가볍게 넘어 보이며 말이다.
“후훗. 그러시겠죠. 솔직히 제 행동이 지금 하기에는 너무 무모해 보이죠?. 아무리 병기공학을 더욱 발전시키고, 당신들이 가진 여러 무기들과 구소련의 열정이 담긴 무기들을 사들인다. 손 쳐도 푸친 대통령 이후로 더욱 막강해진 러시안 파워와 미국의 수퍼파워를 상대로 싸울 수는 없어 보인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죠?”
“그, 그건. 어쨌든 우리의 사업과 우리의 생명에 위해를 끼칠 수는 없소! 그런 이유로 우리는.”
“탈퇴를 하신다!? 뭐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표트르 안드례예비치.카엘린.”
“...........”
평소같으면 카엘이나, 안드례이, 뾰쨔라며 다양한 애칭을 써서 대부들의 총수를 불렀을 소년이지만 그는 이제 자신을 떠나겠다는 대부들의 총수에게 애칭을 쓸 이유가 없어져버렸기에 처음 만났을 때처럼 공손하게 그의 전체이름을 불렀다. 남자는 왜인지 어디선가 불어오는 듯 한 북풍에 덜덜 떨듯 몸을 움츠리며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뭔가 이상하다. 평소와 달리 눈빛이 조금 매섭다 못해 독하다! 남자는 생각했고 그의 생각대로 정말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윙~철크럭. 윙~철크덕. 철크덕 철크덕.
“뭐, 뭐야 저건!”
대부들 중 한명이 깜짝 놀라 자신들이 열고 들어온 입구로 들어오는 그것을 가리켰다. 아니 그것이 아니라 생명체인가? 모두들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며 만찬을 침입한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놀란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들의 시선을 느낀 ‘그것’은 기분 나쁜 쇳소리를 내며 힘겹게 여기까지 걸어왔다. 소년 바로 옆에 선 그것의 키는 3m를 조금 넘거나 그 이상으로 컸다. 대부들은 소년과 거인의 키를 비교하며 걸리버 여행기를 떠올렸다. 그에 못 미치는 거인이지만 이 거인은 굉장했다.
“이게 뭔가 슈미?”
표트르 안드례예비치 카엘린이 바싹 타들어가는 목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왠지 소년이 일부러 거인을 불렀다는 생각에 걱정이 된 것이었다. 슈미는 그를 한번 쳐다보곤 씨익 웃으며 거인이 자신의 의자 등받이 위에 올려놓은 길다랗고 커다란 손가락을 어루 만지며 말했다.
“그 옛날 나치가 만들어낸 비밀병기입니다. 유태인들의 주술이자 유일한 방어술이었던 골렘술(강령술)을 이용하고, 당시 독일이 앞서 나가려 했던 무선 통신기의 원리를 이용해 만들려한 골렘 ‘쾨니히스 골렘’입니다. 뭐 현대로 치자면 무인 이족보행 로봇병기 정도? 조금 기종명이 길죠? 훗.
“........나치의 것이었다고?”
허. 말도 안돼. 이런 무기가 세상에 존재했단 말인가? 대부들은 슈미 두목의 설명에 신기해하며 골렘의 위아래를 끊임없이 몸으로 훑었다. 길다란 황토색 로브로 전신을 가리고 있기에 색이 어떻고, 주무장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생김새는 정말 로봇틱했다. 골렘은 두 개의 시뻘건 안광을 대부들에게 자랑하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주위를 살폈다. 입주위에서는 방독면이라도 씌운 것처럼 커다란 필터 같은 것이 툭 튀어나와 있었고 그것에서 자그마한 숨소리같은 것이 들려왔다. 철봉보다 더 굵직하고 커다란 푸른색 손가락 길이를 보고 어떤 이는 저것이 슈미의 머리를 파괴해버리는 묘한 상상을 했다. 그 정도로 커다란 손과 로봇틱한 회색 갑옷 같은 몸체는 정말 압도적이었다. 이것이 슈미가 강조한 마술이란 상상 속에서나 나올 힘의 위력이었던가?
“자~아이야. 이제 파티시간이다. 움직여보렴?”
모두들 골렘의 위용에 넋이 나가 있어 슈미가 골렘에게 뭐라 했는지 아무도 듣지를 못했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눈치 챈 표트르가 품속에 숨겨둔 기관단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슈미를 향해 분당 500발이 넘는 어마어마한 속도의 탄환들이 퍼부어졌다. 노란불꽃들이 다 쏟아졌고 이제 슈미는 피를 흘리겠지? 그러나 큰 오산이었다. 슈미 한명을 다 가려버릴 정도로 골렘의 푸른 손은 거대했다. 골렘의 푸른 손 주위에 기관단총의 총탄들이 박혀 있었다.
“하하하. 뭐 하시는 것입니까?”
“맙소사! 넌 설마 이걸로!! 우릴 죽여 버리겠다는 것이냐?”
“뭐, 뭐라고!”
“이 자식!!”
철컥~ 철커덩.
뒤늦게 사태를 깨달은 대부들이 권총이나 조립형 기관단총 따위를 꺼내며 식탁에서 벌떡 일어났다. 능력이 좋고, 뛰어나지만 어린아이라고 무시한 결과가 바로 이것이라니. 모두들 경악하며 빨간 눈을 요리조리 돌리며 자신들을 노려보는 골렘을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것의 입에서 낮게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후우우우욱.”
“사, 살려줘.”
“저런 괴물 따위”
“슈, 슈미! 정말 우릴 죽일 셈인가?”
“흠. 그렇게 해볼까요? 뭐 나쁘진 않죠. 어차피 이 RLO의 진정한 목적은 인류의 멸망이니까. 당신들같이 술집과 창부, 무기로 돈 버는 인류 중에서도 최악인 인류를 먼저 쓸어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죠?”
슈미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미소는 어딘가 미묘하게 달랐다. 분명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키득거리며 지나가던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악동들처럼 보였다. 그의 날카롭다 못해 무서울 정도로 번뜩 뜨인 빨간 눈들이 웃음을 지은채 대부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 이 북해 바다에서 사라져 주세요.
“걱정마십시오. 이 쾨니히스 골렘의 힘은 야마토급 전함의 선체가 아주 살짝 으스러지게 할 정도의 풀파워로 끌어 올릴 수도 있습니다. 뭐 야마토 입장에서는 살짝 긁히는 정도겠지만? 어쨌든 그 정도 힘이면 죽는 것도 한순간이겠죠? 왜냐면 주먹으로 내리칠 때 뇌에 가해지는 충격이 한순간일 테니.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다 스비다니야(안녕히 가세요)”
“니, 니옛(안돼!!)”
투투투투투퉁. 타탕. 타타타타탕 퍼퍽~푸콰악!
“으으. 이건. 슈미 넌. 이런 것을 만들어서 정말....세계를 상대로 전쟁이라도 벌일 생각인 것이냐?”
“호오~운 좋게 피하셨군요? 팔 하나가 끊어지는 것으로 끝났으니 다행입니다. 뾰쨔”
표트르 안드례예비치 카엘린은 고통에 덜덜 떨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슈미는 정말로 다행이라는 듯 표트르의 애칭을 부르며 손을 내밀었다. 남자는 슈미를 공포와 불신이 가득 담긴 눈으로 노려보았고 슈미는 그의 눈빛과 감정을 읽었는지 무안한 듯 건넨 손을 치워버렸다.
“무, 묻는 말에 답해!”
“까쓰빠진 카엘린(카엘린 씨). 당신에게 제의를 하나 하죠. 당신은 마피아두목입니다. 하지만. 나를 만난 이후 매춘사업이나, 불법무기사업, 기타 여러 사업들에 관여하지 않고 우리에게 협력했습니다. 우리의 이상이 맘에 든다면서요. 그렇죠?”
“...........”
“난 당신의 진정한 러시아 군인의 면모를 좋게 보고 있습니다. 한심한 부르주아놈들에게 보이는 강직함이랄지, 시베리아 유형으로 내몰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보여주는 그 기개라든지. 여하튼 당신이 맘에 듭니다. 만약 당신이 우리 군에 들어와 인간 프로젝트에 끼여주신다면. 당신에게 기꺼이 부귀와, 생존, 그리고 새 팔을 드릴 요량이 있습니다만? 어떠신지?”
“끄흐흐흐흐흐흐흐.”
표트르는 실성한 사람인양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맘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방금전까지 살아 움직였던 마피아들은 전부 고깃조각이 되어 음식 위에 떨어지거나, 피를 흘리고 바닥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물론 뇌가 터진 후 몸이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반사신경에 불과했지만. 그것을 영화 감상하듯 바라보며 웃던 표트르가 말했다.
“미친놈.”
“.......후우. 알겠습니다. 그렇게 원하신다면야. 고통 없이 보내드리죠. 하지만 이번에는 피하시면 안 됩니다. 안 그러면 몸이 2등분 된 채 비명만 지르는 상황이 전개될지도 모르거든요.”
휘이이이익.~퍽~
뾰쨔의 최후는 그리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짜부러진 케익처럼 형체만 조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땅바닥과 함께 가라앉아 있었다. 하얀 카펫에 하얀 뇌수와 검붉은 피가 적셔졌지만 슈미는 상관하지 않고 자신 앞에 있는 거위구이를 우걱우걱 씹어 삼켰다. 주인의 명령이 없자 골렘은 그르르르 기괴한 신음소리같은 것을 내며 방독면같은 얼굴과 몸 곳곳에 튄 피를 하얀 카펫으로 닦았다.
“이걸로 내부 정리는 완료.”
“..................”
“왜? 뭔가 이상한가?”
“아닙니다. 그저.”
“그저?”
“제가 어제 막 담근 까푸스타에 피가 상당히 튀어서 말입니다.”
“상관없어. 나 그 음식 별로 안 좋아해.”
“분명히 먹겠다고 약속 하신 걸로.”
“알았어. 먹으면 되잖아.”
슈미와 리는 곳곳에 사지가 잘린 채 쓰러져 있거나, 피가 튀어 엉망이 된 음식들을 한번 둘러본 뒤 다시 오붓한 점심식사를 즐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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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다 피가 더 튀는 부분이었습니다.[우웩~!]
밥먹다 보시는 분들이 날린 짱돌을 맞아도 드릴 말씀이 없는....[퍼퍽]
하지만 불행히도 이 정도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힘든일이 케이일행에게
닥쳐오는 것은 물론이죠.
그것은 물론 안나일행과 천계에도 닥쳐올 것이고.
지금 다른 곳에서 여행(?)을 하고 있을 묠니르도 마찬가지.
다음 시간에 올릴 편은 케이일행과 사할린 열도의 상황, 그리고 묠니르의 이야기를
올리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잘 보내시길.
*추신 : 저 광학기능사 오늘 시험 봤습니다!! 잘 본 것 같습니다!! 합격을 기도해주세요^^
[퍼퍽]
방문이 열리더니 안나가 얼굴을 빼꼼 내밀고 바로 앞에 침울하게 앉아 있는 스쿨드에게 물었다. 안나의 질문에 스쿨드는 슬픈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가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또 울었는지 스쿨드의 눈에는 마른 눈물자국들이 어지럽혀져 있었다. 안나는 물어본 내가 바보다라고 자책하며 방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녀의 손에는 간호를 위해 직접 정성을 다해 우려낸 붉은 색 수프가 담긴 접시가 들려 있었다. 물론 들고 온다 한들 베르단디가 도통 깨어날 생각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전혀 쓸모가 없게 돼 버렸지만 말이다. [저 주세요! 라고 외쳤다가 케이와 안나의 합공격에 나가떨어진 이반을 제외하곤 모두 다 침울해 있었다.]
“............”
“.............”
빌어먹을. 안나가 신세한탄 하듯 증기기관차 마냥 한숨을 푹푹 쉬며 짜증 섞인 욕을 내뱉었다. 모두들 안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가 다시 방 한가운데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는(?) 베르단디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을 고칠 방법을 의논하기 위해서란 목적 하나로 뭉친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방도를 제시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분명 바이러스성 질환. 예전에 세레스틴 때와 비슷한 패턴이긴 한데.”
“그러게. 하지만 뭔가 이상하지? 활동주기도 불확실했다가, 갑자기 확실해지고. 마치 찾으려 기다렸다가, 다시 활동하고. 이건 정말 알 수 없는 녀석...”
“어려운 소리는 그만하고! 방법은 찾아낸 거야?”
울드와 페이오스가 베르단디의 몸을 스캔으로 뒤지듯 샅샅이 뒤지는 모습을 보다 못한 스쿨드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울드는 스쿨드를 무섭게 째려보았다가 다시 베르단디의 몸 상태를 점검하는데 신경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스쿨드가 언니를 걱정하고 있어서 그렇다고 자위하며 꾹 참고 법술과 마술을 전개하는데 신경을 쏟기로 한 것이었다. 페이오스는 턱을 손으로 한번 쓸어내리며 자신이 깨달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안나. 정말 당신 말대로군요.”
“엉? 뭐가.”
“..............”
“............???”
페이오스의 의문과 안나의 반응에 모두들 두 여신과 마족을 일제히 번갈아 쳐다보았다. 안나는 밖에서 들려오는 요란한 소리에 다시 방문을 열고 바깥 동태를 살펴야만 했다. 케이일행에게는 너무도 낯선 소음이었지만 안나와, 바깥에서 상황을 살피고 있는 인줴, 이반에게는 그동안 잊으려 했던 절망의 소음이었다.
슈우우우욱. 콰콰콰콰쾅.
아아아악! 으아악!!!
슈슈슝 슈슝. 트트특. 트트트트트특
“.....아아. 페이오스 당신이 무슨 소리를 했는지 알겠어.”
“맙소사. 방금 막 베르단디의 몸속에 잠입해 있는 바이러스 활동량이 급상승했어.”
울드의 보고에 모든 것이 확실해 졌다. 그래 바로 그것이다!! 안나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밖을 급하게 나갔다. 인줴와 이반이 뭐라고 소리 치고 있었지만 귀에 솜이라도 틀어 박아놓은 것처럼 멍하고 울리며 아무 소리고 들리지 않았다. 안나는 두려움에 미칠 것 같다는 얼굴이 되어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심장박동이 2배는 더 거세지는 것 같았고 얼굴은 눈 덮인 산을 떠올리게 만들 정도로 창백했다. 안나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듯 멍하니 서서 케이 일행과 부하들을 번갈아 보았다. 부하들의 입이 뭐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침착하게 부하들의 입모양을 따라 읽었다.
그 녀 석...이 살포한 바이 러스 라 고 ?
그래. 그렇겠지. 안나는 일어나지 말았으면 하는 현실에 믿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지만 수긍하고 있었다. 케이와 스쿨드는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어 베르단디의 위태로운 숨소리를 들으며 걱정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언니는. 괜찮을 수 있는거지?”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 녀석이라니??”
“...........”
케이와 스쿨드가 울드를 잡고 흔들며 물었지만 울드는 고개를 돌려버리고 침묵을 지킨 채 안나를 쳐다보았다. 안나에게 직접 설명을 들으라는 듯 한 눈을 한 채. 안나는 울드의 차갑고도 날카로운 시선에 뜨끔한 얼굴이 되었지만 차마 고개를 돌릴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이 상황의 심각성을 케이와 스쿨드, 울드, 페이오스에게 설명을 안 할 수도 없었다. 잊고 싶어도, 부인하고 싶어도. 이 상황은.
“일어났습니다.”
“???”
안나의 말에 케이가 도통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어 안나에게 답을 갈구하듯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안나의 흑발을 뚜렷이 응시하고 있었다.
“나와, 천계와, 마계, 세계, 그리고.”
그 녀석이 외면했던 재앙이....
-여기는 사할린 열도 근해. 현재 러시아 해군과 테러리스트 간의 공방이 치열합니다. 앗! 방금 테러리스트 쪽에서 무언가를 발사했습니다.
안나의 설명에 부가라도 하려는 듯 인줴와 이반이 틀어놓은 TV 뉴스의 리포터가 다급한듯 외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화질이 좋지 않아 방금 발사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분명 러시아 해군을 향해 발사된 대함미사일이었을 것이다. 안나는 중얼거렸다.
“천계. 이 사실을 알고는 있을까?”
[천계. 유그드라실 통제실.]
“바이러스 잠식율!! 더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런! 4번째 방어라인 돌파.”
“그와 동시에 디멘션3(인간계)에서도 전쟁 발발. 치열한 것 같습니다.”
“페이오스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비한정 여신 페이오스는!!”
“곧 올 거랍니다. 좀만 더!!”
천계 또한 안나의 예상과는 달리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안나일행과는 달리 눈과 슬픔이 아닌 몸의 고된 노동과 유그드라실의 상태로 직접 체험하고 있었다. 정말 끔찍하다 못해 울고 싶을 정도로 바이러스는 유그드라실의 통제실과 프로그래머들을 농락하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끝까지 버텨보겠다고 방화벽을 급히 전개했던 유그드라실의 삼총사(애니 보신 분들은 아시리라 믿습니다.)들도 5분을 못 버티고 철저히 깨졌기에 상황은 더욱 악화되가고 있었다.
“도대체 누구지?”
이런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황당한 바이러스를 만든 자는? 앗! 녹색머리를 탐스럽게 길었던 2급 1종에 속한 관리자 여신은 바이러스의 소유자에게 분노를 터뜨리다가 갑자기 허공에 떠오른 낯선 문자가 표시된 모니터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시 방화벽을 전개하려던 삼총사와 기타 모든 여신들도 경악하기는 마찬가지. 모두의 눈에 작고, 큰 수백이 넘는 광학 모니터들이 허공에 떠올라 이렇게 쓰여 있었다.
-즈뜨라부스뜨부이쪠 앙겔릐(안녕하세요 천사들)-
“.....대체 이게 무슨.”
제발 누구라도 좋으니! 이 어처구니없는 녀석을 막아줘!! 녹색머리의 여신은 속으로 절규하며 다시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히 행동하였다.
“하하하. 깜짝 놀랐을까?”
“아마도. 아 스빠시뻐.(고맙습니다.)”
“니예 쟈 슈토(천만에)”
소년이 웃음을 터뜨리며 모니터에서 눈을 떼자 자신의 두목인 소년의 말에 그럴 것이라며 양복차림의 동양인 남자가 맞장구를 쳤다. 소년은 그를 한번 쳐다보았다가 씨익 웃어보였다. 그 눈에는 순수한 기쁨이 담겨 있었다. 뭘 해도 좋다는 의미가 내포된 순수한 기쁨이.... 소년은 남자의 손에 들린 서류같은 것을 힐끔 쳐다보았다가 신음소리 비슷한 콧소리를 내며 컴퓨터 옆에 어지럽혀져 있는 볼펜들 중 하나를 꺼내 싸인을 휘갈겼고 남자는 고맙다고 말했다. 소년도 그에 답하며 벌떡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후아암. 역시 일을 마친 뒤에는 기지개야!.”
“전보다 정보처리능력이 더욱 향상된 느낌입니다. 보스.”
“아아. 보스체면에 더욱 머리가 좋아지고 빨라지지 못하면 살 수 없으니까. 이 한심한 세계는.”
“.............”
자랑스럽다는 듯 말하면서 세상에 가진 자신의 불만을 털어놓는 듯 한 소년의 말에 양복차림의 동양인은 멋지게 키운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소년의 뒷모습만 바라보았다. 양복차림의 남자는 소년에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전투에 대한 보고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소년은 이렇게 조용히 서서 주위를 둘러보거나 창밖에서 철썩철썩 벽을 때리는 하얀 북해의 파도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두목인 그의 평화를 깨뜨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까쓰빠진 리는 조용히 그의 뒤에 서서 바라보기만 했다. 그렇게 조용히 평화를 즐기던 두 사람이 서 있는 어두운 공간에 별안간 빛줄기가 들어왔다.
쾅.
둔탁한 물체라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이 문을 연 덕택에 보스와 그의 부하가 서 있던 곳까지 빛이 퍼져 나왔고 방안은 대낮처럼 환해졌다. 방안 곳곳에는 붉은색 레이스가 치렁치렁한 커튼과 바닥에 깔린 하얀색 페르시아산 양탄자가 여러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하였다. 그러나 양복으로 검은 무리를 만든 사람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보스!”
“어떻게 저희와 상의도 없이!!”
“전쟁? 지금 우리 RLO와 마피아들을 무너지게 할 생각인 것입니까?”
“당장 이 전쟁은 취소!!!”
까쓰빠진 리와 보스라 불린 소년보다 20년은 더 오래 살았을법한 중년, 노년의 남자들이 항의를 하며 두 사람의 계획에 태클을 건 것이다. 그들은 러시아의 각 도시와, 지방의 마피아들을 통솔하는 대부라는 존재들이었다. 정말 위엄 있고, 냉철하고, 또 잔인하기로 전세계에 소문난 자들. 그러나 평소와는 다르게 이 유난히 어두운 방문을 미친 듯이 박차고 들어와 위엄있는 이미지를 철저히 박살내는 러시아 대부들. 보스라 불린 소년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남자들은 마치 인간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처럼 아름다운 소년의 미소에 조금 기가 꺾인 듯 찔끔한 채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를 여러 번 보아온 이들도, 그를 만난 지 얼마 안 된 다른 이들도 입만 벌린 채 그의 말 한마디가 떨어지길 기다리고 있었다. 소년이 러시아어로 인사를 하자 대부들은 떨떠름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년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가 서양식으로 잘 꾸며진 길다랗고 커다란 탁자로 가 앉으라며 권유했다. 그 위에는 여러 진귀한 음식들이 잘 차려져 나 먹어주십시오! 라며 외치고 있는 듯 했다.
“흠. 보, 보스 잘 먹겠소.”
“그렇지만 지금 우리는 이것 때문에 온 것이 아니잖소.”
“자자자자. 모두들 모두의 영광이 세상에 퍼지기를 위해 보드카를 한잔씩 듭시다.”
“모든 것은 RLO를 위하여!”
“모, 모든 것은 RLO를 위해....”
평소 같으면 소년의 한마디에 당연히 수긍하며 행복한 얼굴로 잔을 치켜세우며 원샷 했을 이들이지만 상황이 상황인 만큼 보스의 이런 여유 있는 태도와 그의 옆에 착 달라붙어 앉은 비서인 동양인 가스빠진 리를 좋아 보일 리 만무했다. 결국 배가 유난히 볼록 튀어나오고, 얼굴이 둥그렇게 생겨 삶은 계란을 떠올리게 만드는 검은 양복차림의 남자가 벌떡 일어나 고래고래 악을 질렀다.
“지금 정신이 있는 것이오!! 아무리 우리가 타이푼급같은 핵잠수함을 거래하며 살아가는 최고의 무기 밀매업자들이지만!!!!이 나라 러시아와 전면전을 벌일 능력을 갖춘 이들은 아니란 말이오!! 그런데 이게 무슨 짓이오? RLO란 이름에 걸맞게 행동한다더니 정말로 승산도 없는 전쟁이란 말이오! 우린 이제 그만 두겠소 보스.”
“마, 맞소! 우리 사창가를 관리하는 예밀리아 패밀리 또한 마찬가지요.”
“에떠 야(나 한다, 나도 한다는 뜻)”
“여하튼 우리 마피아측은 이제 당신을 지원하지 않소.”
머리가 새하얀 중년의 남자가 자리에서 스르르 일어나 바로 옆자리에 위치해 입을 가린 채 삐딱하게 앉은 소년에게 말했다. 소년은 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몸을 떨며 마피아들을 한명한명 바라보았다. 대부들이 순간 움찔하여 소년의 신기함이 담긴 붉은 눈을 응시하였다. 소년은 웃으며 보드카를 한잔 쭉 들이켰다가 말했다. 저렇게 보드카를 마셨다간 뱉어내는 것은 고사하고 콜록거리며 고통을 호소할 만도한데 그런 것 하나 없이 어른들의 주량을 가볍게 넘어 보이며 말이다.
“후훗. 그러시겠죠. 솔직히 제 행동이 지금 하기에는 너무 무모해 보이죠?. 아무리 병기공학을 더욱 발전시키고, 당신들이 가진 여러 무기들과 구소련의 열정이 담긴 무기들을 사들인다. 손 쳐도 푸친 대통령 이후로 더욱 막강해진 러시안 파워와 미국의 수퍼파워를 상대로 싸울 수는 없어 보인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죠?”
“그, 그건. 어쨌든 우리의 사업과 우리의 생명에 위해를 끼칠 수는 없소! 그런 이유로 우리는.”
“탈퇴를 하신다!? 뭐 좋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표트르 안드례예비치.카엘린.”
“...........”
평소같으면 카엘이나, 안드례이, 뾰쨔라며 다양한 애칭을 써서 대부들의 총수를 불렀을 소년이지만 그는 이제 자신을 떠나겠다는 대부들의 총수에게 애칭을 쓸 이유가 없어져버렸기에 처음 만났을 때처럼 공손하게 그의 전체이름을 불렀다. 남자는 왜인지 어디선가 불어오는 듯 한 북풍에 덜덜 떨듯 몸을 움츠리며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은 예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뭔가 이상하다. 평소와 달리 눈빛이 조금 매섭다 못해 독하다! 남자는 생각했고 그의 생각대로 정말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윙~철크럭. 윙~철크덕. 철크덕 철크덕.
“뭐, 뭐야 저건!”
대부들 중 한명이 깜짝 놀라 자신들이 열고 들어온 입구로 들어오는 그것을 가리켰다. 아니 그것이 아니라 생명체인가? 모두들 자신들의 눈을 의심하며 만찬을 침입한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놀란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들의 시선을 느낀 ‘그것’은 기분 나쁜 쇳소리를 내며 힘겹게 여기까지 걸어왔다. 소년 바로 옆에 선 그것의 키는 3m를 조금 넘거나 그 이상으로 컸다. 대부들은 소년과 거인의 키를 비교하며 걸리버 여행기를 떠올렸다. 그에 못 미치는 거인이지만 이 거인은 굉장했다.
“이게 뭔가 슈미?”
표트르 안드례예비치 카엘린이 바싹 타들어가는 목으로 침을 꿀꺽 삼키며 물었다. 왠지 소년이 일부러 거인을 불렀다는 생각에 걱정이 된 것이었다. 슈미는 그를 한번 쳐다보곤 씨익 웃으며 거인이 자신의 의자 등받이 위에 올려놓은 길다랗고 커다란 손가락을 어루 만지며 말했다.
“그 옛날 나치가 만들어낸 비밀병기입니다. 유태인들의 주술이자 유일한 방어술이었던 골렘술(강령술)을 이용하고, 당시 독일이 앞서 나가려 했던 무선 통신기의 원리를 이용해 만들려한 골렘 ‘쾨니히스 골렘’입니다. 뭐 현대로 치자면 무인 이족보행 로봇병기 정도? 조금 기종명이 길죠? 훗.
“........나치의 것이었다고?”
허. 말도 안돼. 이런 무기가 세상에 존재했단 말인가? 대부들은 슈미 두목의 설명에 신기해하며 골렘의 위아래를 끊임없이 몸으로 훑었다. 길다란 황토색 로브로 전신을 가리고 있기에 색이 어떻고, 주무장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생김새는 정말 로봇틱했다. 골렘은 두 개의 시뻘건 안광을 대부들에게 자랑하듯 이리저리 움직이며 주위를 살폈다. 입주위에서는 방독면이라도 씌운 것처럼 커다란 필터 같은 것이 툭 튀어나와 있었고 그것에서 자그마한 숨소리같은 것이 들려왔다. 철봉보다 더 굵직하고 커다란 푸른색 손가락 길이를 보고 어떤 이는 저것이 슈미의 머리를 파괴해버리는 묘한 상상을 했다. 그 정도로 커다란 손과 로봇틱한 회색 갑옷 같은 몸체는 정말 압도적이었다. 이것이 슈미가 강조한 마술이란 상상 속에서나 나올 힘의 위력이었던가?
“자~아이야. 이제 파티시간이다. 움직여보렴?”
모두들 골렘의 위용에 넋이 나가 있어 슈미가 골렘에게 뭐라 했는지 아무도 듣지를 못했다. 무언가 이상하다고 눈치 챈 표트르가 품속에 숨겨둔 기관단총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슈미를 향해 분당 500발이 넘는 어마어마한 속도의 탄환들이 퍼부어졌다. 노란불꽃들이 다 쏟아졌고 이제 슈미는 피를 흘리겠지? 그러나 큰 오산이었다. 슈미 한명을 다 가려버릴 정도로 골렘의 푸른 손은 거대했다. 골렘의 푸른 손 주위에 기관단총의 총탄들이 박혀 있었다.
“하하하. 뭐 하시는 것입니까?”
“맙소사! 넌 설마 이걸로!! 우릴 죽여 버리겠다는 것이냐?”
“뭐, 뭐라고!”
“이 자식!!”
철컥~ 철커덩.
뒤늦게 사태를 깨달은 대부들이 권총이나 조립형 기관단총 따위를 꺼내며 식탁에서 벌떡 일어났다. 능력이 좋고, 뛰어나지만 어린아이라고 무시한 결과가 바로 이것이라니. 모두들 경악하며 빨간 눈을 요리조리 돌리며 자신들을 노려보는 골렘을 두려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것의 입에서 낮게 신음소리가 튀어나왔다.
“후우우우욱.”
“사, 살려줘.”
“저런 괴물 따위”
“슈, 슈미! 정말 우릴 죽일 셈인가?”
“흠. 그렇게 해볼까요? 뭐 나쁘진 않죠. 어차피 이 RLO의 진정한 목적은 인류의 멸망이니까. 당신들같이 술집과 창부, 무기로 돈 버는 인류 중에서도 최악인 인류를 먼저 쓸어버리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죠?”
슈미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미소는 어딘가 미묘하게 달랐다. 분명 웃고 있었지만 그의 눈은. 키득거리며 지나가던 사람에게 돌을 던지는 악동들처럼 보였다. 그의 날카롭다 못해 무서울 정도로 번뜩 뜨인 빨간 눈들이 웃음을 지은채 대부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자. 이 북해 바다에서 사라져 주세요.
“걱정마십시오. 이 쾨니히스 골렘의 힘은 야마토급 전함의 선체가 아주 살짝 으스러지게 할 정도의 풀파워로 끌어 올릴 수도 있습니다. 뭐 야마토 입장에서는 살짝 긁히는 정도겠지만? 어쨌든 그 정도 힘이면 죽는 것도 한순간이겠죠? 왜냐면 주먹으로 내리칠 때 뇌에 가해지는 충격이 한순간일 테니.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다 스비다니야(안녕히 가세요)”
“니, 니옛(안돼!!)”
투투투투투퉁. 타탕. 타타타타탕 퍼퍽~푸콰악!
“으으. 이건. 슈미 넌. 이런 것을 만들어서 정말....세계를 상대로 전쟁이라도 벌일 생각인 것이냐?”
“호오~운 좋게 피하셨군요? 팔 하나가 끊어지는 것으로 끝났으니 다행입니다. 뾰쨔”
표트르 안드례예비치 카엘린은 고통에 덜덜 떨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슈미는 정말로 다행이라는 듯 표트르의 애칭을 부르며 손을 내밀었다. 남자는 슈미를 공포와 불신이 가득 담긴 눈으로 노려보았고 슈미는 그의 눈빛과 감정을 읽었는지 무안한 듯 건넨 손을 치워버렸다.
“무, 묻는 말에 답해!”
“까쓰빠진 카엘린(카엘린 씨). 당신에게 제의를 하나 하죠. 당신은 마피아두목입니다. 하지만. 나를 만난 이후 매춘사업이나, 불법무기사업, 기타 여러 사업들에 관여하지 않고 우리에게 협력했습니다. 우리의 이상이 맘에 든다면서요. 그렇죠?”
“...........”
“난 당신의 진정한 러시아 군인의 면모를 좋게 보고 있습니다. 한심한 부르주아놈들에게 보이는 강직함이랄지, 시베리아 유형으로 내몰릴 수도 있는 상황에서 보여주는 그 기개라든지. 여하튼 당신이 맘에 듭니다. 만약 당신이 우리 군에 들어와 인간 프로젝트에 끼여주신다면. 당신에게 기꺼이 부귀와, 생존, 그리고 새 팔을 드릴 요량이 있습니다만? 어떠신지?”
“끄흐흐흐흐흐흐흐.”
표트르는 실성한 사람인양 웃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맘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방금전까지 살아 움직였던 마피아들은 전부 고깃조각이 되어 음식 위에 떨어지거나, 피를 흘리고 바닥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물론 뇌가 터진 후 몸이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반사신경에 불과했지만. 그것을 영화 감상하듯 바라보며 웃던 표트르가 말했다.
“미친놈.”
“.......후우. 알겠습니다. 그렇게 원하신다면야. 고통 없이 보내드리죠. 하지만 이번에는 피하시면 안 됩니다. 안 그러면 몸이 2등분 된 채 비명만 지르는 상황이 전개될지도 모르거든요.”
휘이이이익.~퍽~
뾰쨔의 최후는 그리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그는 짜부러진 케익처럼 형체만 조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땅바닥과 함께 가라앉아 있었다. 하얀 카펫에 하얀 뇌수와 검붉은 피가 적셔졌지만 슈미는 상관하지 않고 자신 앞에 있는 거위구이를 우걱우걱 씹어 삼켰다. 주인의 명령이 없자 골렘은 그르르르 기괴한 신음소리같은 것을 내며 방독면같은 얼굴과 몸 곳곳에 튄 피를 하얀 카펫으로 닦았다.
“이걸로 내부 정리는 완료.”
“..................”
“왜? 뭔가 이상한가?”
“아닙니다. 그저.”
“그저?”
“제가 어제 막 담근 까푸스타에 피가 상당히 튀어서 말입니다.”
“상관없어. 나 그 음식 별로 안 좋아해.”
“분명히 먹겠다고 약속 하신 걸로.”
“알았어. 먹으면 되잖아.”
슈미와 리는 곳곳에 사지가 잘린 채 쓰러져 있거나, 피가 튀어 엉망이 된 음식들을 한번 둘러본 뒤 다시 오붓한 점심식사를 즐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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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보다 피가 더 튀는 부분이었습니다.[우웩~!]
밥먹다 보시는 분들이 날린 짱돌을 맞아도 드릴 말씀이 없는....[퍼퍽]
하지만 불행히도 이 정도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도 더욱 힘든일이 케이일행에게
닥쳐오는 것은 물론이죠.
그것은 물론 안나일행과 천계에도 닥쳐올 것이고.
지금 다른 곳에서 여행(?)을 하고 있을 묠니르도 마찬가지.
다음 시간에 올릴 편은 케이일행과 사할린 열도의 상황, 그리고 묠니르의 이야기를
올리겠습니다. 즐거운 주말 잘 보내시길.
*추신 : 저 광학기능사 오늘 시험 봤습니다!! 잘 본 것 같습니다!! 합격을 기도해주세요^^
[퍼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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