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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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part 2.-
제18화 - 출격! -
"베르단디, 어서 와서 봐봐. 큰일 났어."
울드가 심각한 표정으로 응접실로 나온 베르단디를 맞았다. 울드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 모두는 지금 TV앞에 모여 앉아 심각한 표정으로 화면을 보고 있었다. TV에는 현재 뉴스가 방송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상당히 심각했다.
-지금 보시는 화면은 그저께 아카리가오카 지구에서 테러 행위를 하던 가이버 일당 중 한 명의 모습입니다.-
"저...저건 앱톰이잖아?!"
화면에 나오는 '가이버 일당'이란 것은 다름 아닌 앱톰이었다. 그러나 화면에 나온 앱톰의 모습은 아주 처참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앱톰의 몸은 완전히 돌로 변해 버려 있었다. 게다가 그 몸 역시 큰 부상이라도 당했는지 머리와 오른팔을 포함한 상반신 일부만이 남아있는 모습이었다. 케이를 무사히 탈출시키고 앱톰 자신은 결국 놈들에게 잡히고 만 것이다. TV에서는 앵커가 이 '가이버 일당'은 현재 방일중인 세 명의 신장 멤버에 의해 잡혔다고 전했다. 그 말은 현재 일본에 조아로드가 무려 최소한 세 명이나 와 있다는 뜻이었다.
-놀랍게도 이 외계 생명체는 석화된 상태에서도 아직 살아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현재 서서히 생명활동이 저하되고 있는 것이 감지되고 있으며 오늘밤쯤에는 완전히 생명활동이 정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통제국 생화학반은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분석 작업을 벌일 예정이며....-
"그럴 수가! 앱톰씨!!"
베르단디가 비명을 지르다 시피 하였다. 예전에야 무슨 일이 있었든지 간에 지금 앱톰은 같이 크로노스에 맞서 싸우는 동지와 같다. 게다가 앱톰은 케이를 구해주려다가 저렇게 되고 만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 그를 도와줘야 했다. 하지만 그 의견에 린드는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된다. 너무 위험해."
"하지만 린드! 앱톰씨는..."
"네 기분은 이해하지만 이런 뻔 한 함정에 또다시 뛰어들 수는 없다."
린드의 말대로 이번에도 케이를 꾀어내려는 함정이란 것이 뻔히 보였다. 저렇게 온 몸을 돌로 만들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아예 완전한 돌로 만들어서 앱톰을 죽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죽이지 않고 저렇게 살려둬서 만천하에 공개를 했다. 그것도 그 목숨이 사실상 오늘 밤까지라고 밝히고 있다. 그를 구하고 싶으면 오늘 밤 안에 당장 여기로 오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린드의 의견에는 다른 모두도 동의하였다.
"베르단디, 나도 같은 생각이야. 구하러 가는 건 너무 위험해."
울드 역시 베르단디를 말렸다. 지금 일본에는 조아로드만 최소한 세 명, 어쩌면 더 있을 수도 있었다. (실제로 신까지 포함해서 모두 네 명) 게다가 앱톰이 현재 있는곳은 크로노스 일본 지부 건물인 클라우드 게이트. 적들의 본거지다. 한술 더 떠 시간은 오늘 밤까지 밖에 없다. 목적지가 어딘지 분명하고 언제 올지 시간까지 확실한 마당에 놈들이 케이나 베르단디들의 구출 시도를 못알아차릴리가 없다. 기습작전 같은 건 처음부터 성립될 수가 없고 몰래 잠입하는 것도 놈들이 빈틈없이 경계망을 둘러치고 있을 것이 뻔 한데 성공할 리가 없다. 게다가 이쪽은 클라우드 게이트의 내부 구조조차 전혀 모르지 않은가.
"아뇨, 최소한 그건 모르지는 않습니다. 그건 제가 잘 알고 있습니다."
"하야미씨? 그건 어떻게 아세요?"
그 때 하야미가 나섰다. 물론 하야미 역시 현재의 클라우드 게이트의 내부에 들어가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유적 기지에 있을 때부터 설계 도면 등은 자주 접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내부 구조에 관해서는 훤했다. 그러나 실제 건설되면서 설계 변경이 이루어졌을 수도 있어서 정확도는 보증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내부 구조를 안다고 해도 이번에는 너무 무모한 일이었다. 역시나 린드는 반대하였다.
"내부 구조를 안다해도 너무 위험하다. 적들도 작정하고 우릴 기다리고 있을 거다."
"그렇다면.....앱톰씨는...."
"안됐지만 포기하는 수밖에."
린드는 아주 비정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 조아노이드들이야 그렇다 쳐도 조아로드 세 명까지 동시에 상대할 수는 없었고 결정적으로 케이는 기간틱의 주도권을 아키토에게 뺏긴 상태다. 싸우다가 그저께처럼 또 아키토에게 기간틱을 뺏기게 되면 이번에는 목숨을 장담할 수가 없다. 이 결정에 반대하던 베르단디도 케이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말에 더 이상 강하게 반대하지 못했다. 베르단디 역시 그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던 것이다.
"케이에게는 절대 비밀로 하자. 알게 되면 당장이라도 앱톰을 구하러 가자고 할 거야."
지로의 의견에 모두가 동의하였다. 케이의 성격상 동료가 위험에 처했다면 분명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적의 규모가 너무 큰 상황이고 케이의 몸 역시 아직 완전히 회복된 것이 아니므로 구하러 가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앱톰!'
그러나 케이는 이 사실을 모두 다 알고 말았다. 케이는 응접실 문 밖에서 베르단디들의 대화를 다 듣고 말았다. 사실 그는 일부러 엿들으려고 했던 것이 아니다. 다시 자리에 누웠지만 그 때 갑자기 용변이 급해져서 화장실을 가려고 나왔다가 그만 우연히 열려있는 응접실 문을 통해 이 사실을 다 알고 만 것이다. 케이의 안색은 대번에 창백해졌다. 무사히 도망친 줄 알았지만 설마 잡혔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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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슨 짓들이야!!"
클라우드 게이트의 최상층부에 위치한 최고 간부 집무실, 클라우드 헤드. 바로 그 안에서 지금 네 명의 신장 멤버가 모여 있었다. 신은 쿨메그닉, 자빌, 카브라알에게 핏대를 세워가며 소리치고 있었다. 그저께 사로잡은 앱톰의 모습을 언론에 공개해 버린 일 때문이었다. 신에게는 단 한마디 말도 안하고 이들이 멋대로 공개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발카스의 실험 실패로 인해 태어난 괴생명체인 앱톰의 존재는 크로노스의 일급 기밀사항이었다. 그런데 그걸 이렇게 경솔하게 공개해 버리다니.
"너무 그렇게 열 내지 마, 신. 너한테 한 마디 말도 없이 공개한 건 미안하게 됐어."
하지만 신이 아무리 화를 내도 오히려 세 명의 신장 멤버는 그저 어디 개가 짖나 하는 식의 표정들 이었다. 쿨메그닉은 그저 히죽 웃으면서 능청스럽게 말했다.
"일반 시민한테 보여줘봐야 누가 그것의 진짜 정체를 알겠어. 안 그래?"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경솔하게 행동하는 것은...."
"오히려 이 방송으로 도망친 가이버 I을 끌어들일 수 있다고 보는데. 우린 말이야."
그 순간 신은 깜짝 놀랐다. 녀석들, 그게 목적이었나? 가이버 I을 이곳 클라우드 게이트로 불러내기 위해? 만약 정말 그렇다면 이건 큰 문제다. 가이버 I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이곳으로 올 거면 기간틱의 형태로 올 것이다. 그 강대한 전투력을 가진 기간틱이 여기 와서 한바탕 날뛴다면 이번엔 이곳이 위험해 진다. 안 그래도 몇 달 전 가이버 기간틱이 이곳 클라우드 게이트에 정면 공격을 가했을 때 이곳의 경비 부대는 놈에게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지 않았던가.
"그 점은 걱정안해도 되네. 여기엔 우리 신장 멤버가 자네까지 넷 이나 있잖은가. 그리고 우리가 앱톰의 목숨을 쥐고 있으니 녀석도 함부로 날뛰지 못할 거야."
카브라알이 신의 우려에 간단하게 답하였다. 카브라알 역시 가이버 기간틱과의 교전 같은 건 별로 걱정 안 해도 된다는 듯이 편안한 표정이었다. 별로 긴장감 없는 이들의 모습에 신은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가이버 기간틱과의 전투가 그저 간단한 놀이쯤으로 보이는 건지.
"그리고 어차피 가이버 녀석들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잖아. 푸르크슈탈의 원수도 갚아야지. 가이버의 퇴치는 푸르크슈탈 생전의 부탁이기도 했고."
그 말을 들은 신은 뭔가 속에서 욱하는 감정이 치솟는 것만 같았다. 아직까지는 그저 신의 개인적인 추측에 불과하지만 푸르크슈탈의 죽음에는 이 세 명이 관련돼 있을 지도 몰랐다. 이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왠지 수상했던 탓도 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왠지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런 놈들이 감히 푸르크슈탈의 이름을 함부로 언급하다니.
"어...어쨌든 이곳 일본 지부의 지휘는 당분간 내가 한다. 이건 워싱턴의 닥터 발카스와도 상의해서 결정한 일이야. 앞으로는 내 허락 없이 함부로 행동하지 않도록. 알았어?!"
신은 쿨메그닉과 자빌을 강하게 쏘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신은 카브라알에게도 분명히 다짐을 받겠다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카브라알 노사! 노사께서 닥터 발카스와 함께 현재 우리 12신장 멤버 중에서는 웃어른이시긴 하지만 여기서는 제 지시를 따라주셔야 합니다! 아시겠습니까?!"
"알았네, 알았어. 뭐 요새 젊은 것들은 너무 무서워."
물론 카브라알 역시 무서워하는 기색 같은 건 전혀 없었다. 신의 말 같은 건 그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내는 식의 태도만 보이고 있었다. 말로만 알았다고 하면서 여전히 건들거리고만 있는 이들 세 명을 보면서 신은 간신히 화를 억누르고 있었다. 쿨메그닉 일당은 그대로 집무실을 나서면서 지나가듯이 한 마디 하였다.
"조만간 우리가 필요해 질 거야. 그땐 사양 말고 도움을 청하라고."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면서 집무실을 나가는 그들을 보면서 신은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이놈들, 지금 뭔가 아주 위험한 꿍꿍이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무대는 바로 이 곳 클라우드 게이트가 될 것이며 그 시간은 바로 오늘 밤이 될 것이 틀림없었다. 신은 어느새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저 놈들의 속셈은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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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이 어두워지자 케이가 몰래 은신처에서 밖으로 나왔다. 잡초가 무성한 마당에서 케이는 행여나 누가 따라 나오지나 않았을까 살피고 또 살폈다. 지금 케이는 앱톰을 구하러 가기 위해 다른 사람들 몰래 밖으로 나온 것이다.
솔직히 아직 몸 상태가 완전치는 않았다. 그래도 거동조차 못할 정도는 아니고 전투가 가능할 것 같은 컨디션인지라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건 둘째 치고 자기를 도우려다 앱톰이 사로 잡혔는데 이대로 모른 척 할 수는 없다는 것이 케이의 생각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구해야 했다. 결국 모두가 '우려하던' 대로 케이는 행동하기 시작했다.
'베르단디.... 미안해.'
케이는 지금 입고 있는 털스웨터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이 스웨터는 베르단디가 케이를 위해 한 올 한 올 정성들여 짠 옷이었다. 여신이라서 굳이 이렇게 손으로 안 해도 법술만으로도 순식간에 이런 옷을 만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수고를 한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따뜻하게 지내길 빌면서. 하지만 지금 이렇게 이걸 입고 있자니 마치 사형장에 죄수가 끌려가기 전에 깨끗한 수의로 갈아입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케이는 고개를 휘휘 저어 그런 재수 없는 생각을 떨쳐버리려 하였다. 하긴 확실히 이번 일은 케이에게는 너무나 위험한 일이라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리라.
"자, 그럼.....가이..!!"
"케이 씨!!!"
가이버로 변신 하려는 찰나 베르단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케이는 변신을 하려다 말고 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어떻게 눈치 챘는지 베르단디가 마당에 나와 있었다. 베르단디의 눈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당황한 케이가 머뭇거리자 베르단디가 황급히 달려와서는 케이의 두 손을 꽉 붙잡고 그를 말렸다.
"케이 씨! 가면 안 돼요! 이건 함정이라고요!!"
"알아...베르단디. 하지만 난 가야 돼."
케이의 눈이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사실 케이 역시 크로노스 놈들이 앱톰의 영상을 공개한 이유가 자기를 꾀어내기 위한 덫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키토 때문에 기간틱을 맘대로 쓸 수가 없어서 제대로 싸울 수도 없다는 것도 확실히 자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케이는 앱톰을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적으로서 사투를 벌이기도 했지만 그저께 앱톰은 자신의 적이었던 케이를 구해주었다.
"그러니까 이번엔 내가 그를 구해줄 차례야. 은혜를 갚아야지."
"....."
베르단디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케이가 이렇게 나올 거라는 것을. 그리고 심정적으로는 베르단디 역시 앱톰을 구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적의 함정 속으로 일부러 뛰어드는 너무나 무모한 일인지라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싶지 않은 베르단디는 어떻게 해서든지 케이를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케이의 의지는 이미 확고했다. 케이는 베르단디의 눈가의 이슬을 살며시 닦아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가서 앱톰의 구출에만 전력할거야. 무모한 짓은 안할께. 그리고 클라우드 게이트에는 전에도 한 번 쳐들어간 적이 있고...."
"그렇다고 해서 너만 혼자 보낼 수는 없지."
그 때 뒤에서 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이 뒤돌아보니 어느새 하야미까지 나와 있었다. 마치 케이가 이렇게 나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여유로운 표정이었다. 하야미는 천천히 두 사람 바로 앞까지 걸어 나왔다.
"나도 같이 가겠어. 케이가 무모한 짓을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로서."
"위험해요! 하야미씨까지 끌어들일 수는 없어요!"
"후후, 이래봬도 나 꽤 도움이 될 걸? 유적기지에서 몇 년씩이나 지내면서 크로노스의 감시 시스템에 관해서는 아주 빠삭하다고. 게다가 넌 클라우드 게이트의 자세한 구조가 어떤지 모르잖아? 난 알고 있어."
크로노스에게 납치된 이후 쭉 그들의 노예처럼 살아왔던 하야미는 자연히 크로노스의 각종 감시 시스템에 대해서 훤히 알게 되었다. 확실히 케이 혼자서 크로노스의 감시망을 돌파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전에 클라우드 게이트에 한 번 가봤다고 하지만 그건 기간틱으로 정면 공격을 걸었던 상황이어서 감시 시스템의 기능을 볼 기회조차 없었고 그나마 그 곳에 있던 시간도 아주 잠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하야미가 함께 간다면 케이로서는 하야미의 안전까지 신경 써야 하기 때문에 무모한 시도 자체를 할 수가 없게 된다. 케이 혼자라면 괜히 무리하다가 놈들에게 당할 수도 있었다.
"그리고, 나 역시 앱톰에게 갚아야 할 빚이 있어. 같은 손종 실험체로서."
"하야미씨...."
케이는 더 이상 반대할 수가 없었다. 하야미의 말에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하야미가 옆에서 도와준다면 놈들의 감시 시스템에 들키지 않고 앱톰을 구해올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케이는 하야미의 동행을 허락하였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만 있던 베르단디도 케이에게 간청하였다.
"저도, 저도 가게 해 주세요. 저도 케이씨를 돕고 싶어요!"
"미안, 베르단디는 여기 있어. 베르단디까지 위험에 빠트릴 수는 없어."
"하지만....!"
베르단디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케이는 그저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둘 뿐이라면 혹 모르겠지만 셋 이상으로 인원수가 늘어나게 되면 그 때는 은밀하게 움직이는 것이 힘들어진다. 그리고 케이로서는 베르단디가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할 수가 없었다. 사용할 수 있는 힘에 제한이 걸려있다는 것도 문제고. 베르단디는 계속 애원했지만 케이는 그것만큼은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는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네....알겠어요. 전 여기서 기다릴께요."
"미안, 널 못 믿어서가 아니라 너 만은 위험에 빠트리기 싫어서 그런 거야. 이해해 줘."
"다만 한 가지만 약속해 주세요.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시겠다고."
"응....약속할게. 반드시 돌아오겠어...."
그리고 두 사람은 그대로 깊은 포옹을 하였다. 품에 안긴 베르단디의 몸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가 너무나 두려워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케이는 그런 베르단디를 안심시키려는 듯 양 팔에 더욱 더 힘을 줘서 그녀를 껴안았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다시 한 번 다짐하듯이 속삭였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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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투투투
미국 애리조나 주의 그랜드 캐니언의 황량한 대지 위를 한 대의 대형 헬리콥터가 날아가고 있었다. 이 헬기는 이윽고 어느 바위산 근처에서 잠시 호버링을 하였다. 그러자 바위산 측면부의 비밀 통로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헬리포트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 바위산은 크로노스의 본부기지이고 헬기는 바로 크로노스 소속이었다. 헬리포트가 나오자 헬기는 바로 그 위에 착륙하였다. 헬기가 착륙하자 비밀 통로는 다시 조용히 닫혔다.
기지 내부 헬기 이착륙장에는 새로 도착한 헬기를 크로노스 요원들이 토잉카(항공기용 견인차)를 연결해서 기지 내부로 끌고 갔다. 승강장에 도착하자 헬기의 뒷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헬기에서 나올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몇 명의 과학자와 보안요원들이 달려갔다. 이 헬기는 캐나다 지역의 조제 시설을 시찰하고 돌아온 '닥터 장' 일행이 탄 헬기였다.
"어서 오십시오. 고생 많으셨습니다, 닥터 장."
과학자 한 명이 헬기 바로 앞에 서서 내리고 있는 사람들을 반갑게 맞이하였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헬기에서 내리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알고 있던 닥터 장이 아니라 처음 보는 얼굴의 사람들이었다. 남자 다섯, 여자 하나 해서 모두 6명이었는데 하나같이 검은 색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있는 그 사람들은 원래 등록된 탑승자 현황에는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저....그런데 누구신지요? 닥터 장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닥터 장? 아 그 노인네 말인가. 여기 사막 어딘가에서 말라 죽고 있겠지."
일행의 한 가운데 서 있던 남자가 비꼬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과학자는 아직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그 순간 같이 동행한 보안 요원이 이들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이...이럴 수가! 이 사람들은 레지스탕스다!"
"레지스탕스라고?!!"
"저 남자의 얼굴, 생각났습니다! 기간틱 다크 마키시마 아키토입니다!!"
보안 요원의 비명을 신호로 그 근처에서 일하고 있던 다른 사람들 전부가 이쪽을 주목하였다. 기간틱 다크! 크로노스 최악의 적이 바로 이 곳 기지에 쳐들어 온 것이다! 요원들이 즉시 아키토들에게 달려들어 체포하려고 하였다.
-위이잉
그 때 시즈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리셀더로 조제되면서 얻은 능력인 사념파로 이들 보안요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순식간에 그 자리에 있던 모든 보안 요원들이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이들이 멍하니 서 있자 깜짝 놀란 과학자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들 얼이 빠진 표정들이었다.
"뭣들 하고 있어! 저 녀석들을 빨리 체포해!!"
-콰악!
그러나 오히려 그의 옆에 있던 보안 요원이 그 과학자를 움직이지 못하게 꽉 붙들었다. 과학자는 빠져 나가려고 발버둥 쳤지만 보안 요원의 힘은 굉장히 강했다. 그는 이제 공포에 질려 덜덜 떨기 시작했다. 이 과학자를 제외한 다른 요원들은 모두 조아노이드로 조제를 받은 몸들이라 전부 시즈의 사념파에 지배당한 것이다.
"아무래도 여기서 조제를 받지 않은 사람은 너 뿐인 것 같군."
아키토는 그 자리에서 손가락을 가볍게 튕겼다. 그러자 레지스탕스 대원 한 명이 앞으로 걸어 나와서는 솥뚜껑 같은 거대한 손으로 그 과학자의 얼굴을 꽉 움켜쥐었다. 그는 그대로 손아귀에 힘을 주었고 그 힘을 견디지 못한 과학자의 얼굴이 그 자리에서 찢어지고 말았다. 과학자의 비명이 울려 퍼지는 동안 그 주위에 있던 크로노스 보안 요원들은 그저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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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P 전용기 도착. 닥터 발카스께서 귀환하셨습니다.
본부 기지의 헬기 착륙장에 또 한대의 대형 헬기가 착륙하였다. 그러자 그 곳에서 일하고 있던 크로노스 요원들 전원이 하던 일을 멈추고 황급히 헬기 바로 뒤 쪽에 나란히 도열하였다. 워싱턴의 피해 복구를 진두지휘하던 발카스가 본부 기지로 돌아온 것이다. 이젠 발카스가 없어도 작업 자체는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었고 또한 아키토가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알 수가 없어서 불안한 마음에 예정보다 일찍 귀환한 것이다. 도착한 발카스를 비서가 마중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닥터 발카스."
"그래. 그 동안 별일 없었나?"
"예, 아직까지는 이상 없습니다."
그저 쓸데없는 기우였을까. 여기로 오는 내내 어딘가 마음 속 한구석이 불안했던 발카스였다. 다행히 별 일 없었다고 하니 방에서 좀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 며칠 동안 여러 가지 큰일이 많아서 신경이 많이 날카로워진 상태니까 별의 별 걱정을 다하는 것만 같았다. 발카스는 다소 피곤한 표정을 지으며 헬리포트를 걸어가고 있었다.
"음!"
"왜 그러십니까? 닥터."
"저건 뭐지?"
그 때 발카스가 손으로 어느 한 지점을 가리켰다. 비서가 그 쪽을 보자 바닥에 피가 흥건히 젖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 피는 마치 그 위로 뭔가를 질질 끌고 간 것같이 길게 뻗어 있었다. 처음엔 페인트 아닐까 싶었지만 자세히 보니 역시나 피였다. 그것도 아직 다 굳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이 틀림없었다. 비서는 당황해 하며 말했다.
"다...닥터! 이건 피 같습니다!!"
"나도 알아!! 이 멍청아! 왜 여기에 피가 있느냐는 말이야!"
그러나 줄곧 중앙 사령실에서 기지 전체의 관리에 분주하게 움직이던 비서가 헬기 착륙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비서가 대답하지 못하자 발카스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양 옆으로 도열한 이곳의 요원들에게 소리쳤다.
"말해!! 여기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냐!"
그러나 보안요원들은 발카스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듯 한 표정들뿐이었다. 피가 저렇게 바닥에 홍건한 건 놀라운 일이지만 어쩌다가 저렇게 됐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이들이 말을 하지 않자 발카스는 강력한 사념파를 이들에게 직접 방사하였다. 말을 안 하겠다면 강제로라도 입을 열게 할 생각이었다.
-키이잉!
사념파가 보안요원들에게 방사되었다. 보안요원들은 모두 조아노이드로 조제를 받은 사람들. 조아로드의 사념파에는 절대적으로 복종하게 된다. 그런데 사념파로 그들의 의식에 접속한 발카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들은 그동안 보았던 기억을 전부 봉인 당했다. 조아로드는 사념파로 조아노이드에게 절대적인 명령을 내린다. 그것은 다시 말해서 응용하기에 따라서는 사념파로 조아노이드로 조제된 인간의 기억을 조작하거나 지울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금 여기 있는 보안 요원 전원은 강력한 사념파를 방사하는 누군가에 의해 기억을 잃은 것이다.
"놈이다....놈이 왔어!"
그리고 여기서 이런 짓을 할 만한 이유와 능력을 가진 자는 발카스가 아는 한도 내에서는 딱 한 사람뿐이었다. 바로 레지스탕스의 상위 조제체 그리셀더! 그 여자가 여기 본부기지에 온 것이다. 그리고 그 여자만 혼자서 왔을 리는 만무하다. 그리셀더는 레지스탕스의 조제체 군단, 리베르타스들을 지휘하는 여왕이다. 그런 중요한 존재를 혼자 보낼 정도로 어리석은 아키토가 아니다. 틀림없이 녀석도 여기 함께 왔을 것이다! 발카스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비상을 걸어라!! 제 1급 경계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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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부 통로 분단! 격벽 셔터 내립니다!!"
"전 엘리베이터 동력 정지! 현 위치에 고정!"
중앙 관제실은 제 1급 경계태세가 발령됨에 따라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1급 경계태세시 행동 매뉴얼에 따라 기지내의 모든 통로의 격벽 셔터가 닫히며 모든 엘리베이터 역시 사용불능이 된다. 그렇게 해서 일단 침입자의 발을 묶은 후에 철저하게 신원이 확인된 자만 필요할 때만 문이나 엘리베이터를 작동시켜 원하는 곳으로 이동시키게 된다. 일단 기지 내에서 기간틱 다크나 리베르타스의 모습이 발견되지 않고 있으니 녀석들이 지금 당장은 그저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상황실에서는 분주하게 아키토 일행을 찾기 위해 기지 곳곳에 배치된 감시 시스템을 체크하고 있었다. 이제 녀석의 위치를 확인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중요한 건 녀석이 왜 이기지에 왔느냐 하는 것이다. 게다가 아키토의 위치를 파악한다고 해도 녀석을 잡는 것은 조아노이드 부대로는 무리다. 녀석은 바로 기간틱 다크이지 않은가. 발카스는 초조한 표정으로 상황실의 전면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형 스크린은 화면을 다시 여러 부분으로 나누어서 각 지역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비상사태에 다들 당황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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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눈치 챘군. 훗."
최하층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키토는 잠시 피식 웃었다. 아키토들이 타고 있던 엘리베이터도 중앙 관제실에서 정지시킨 상태였다. 생각보다 대응이 빠른 걸 보니 역시 닥터 발카스가 여기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작전을 좀 더 빨리 하는건데라고 잠시 생각해 봤지만 다 부질없는 생각이다. 발카스의 일정까지는 이쪽에서도 알 방법이 없으니까. 그리고 들킨다 해도 상관없다. 안 들키면 좋기야 하지만 어차피 이번 작전은 들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세운 작전이다. 모든 것은 계획대로 되고 있는 셈이다.
"샤프트 갱도로 나간다."
"Yes, Sir!!"
아키토의 명령이 떨어지자 같이 따라온 레지스탕스 대원 한 명이 엘리베이터 벽면 바로 앞에 다가섰다. 엘리베이터의 앞 벽면은 강화 유리로 제작돼서 기지 한 가운데를 관통하는 거대한 엘리베이터 샤프트 갱도가 똑똑히 보였다. 이윽고 레지스탕스 대원이 그 유리를 주먹으로 힘껏 쳤다.
-콰차앙!!
강화 유리로 제작된 벽면이 힘없이 깨져나갔다. 그리고 그렇게 유리를 부순 후에 모두들 그 아래로 뛰어내렸다. 아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암흑의 터널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주저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뛰어 내렸다. 레지스탕스 대원 네 명이 전부 뛰어내린 후 시즈가 바로 그 뒤를 따라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녀 역시 이런 까마득한 높이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주저함이 없었다. 이제 엘리베이터 안에는 아키토만이 남았다. 잠시 후 그가 힘차게 외쳤다!
"식장!!!"
-퍼어엉!!
가이버로 변신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충격파로 인해 엘리베이터는 크게 파손되었다. 가이버 III로 변신한 아키토는 그대로 아래로 뛰어내리면서 또 한 번 큰소리로 외쳤다.
"그리고! 오너라! 기간틱!!"
-투오옹!!
아키토의 호출에 따라 검은색의 번데기가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껍질이 열리면서 아키토의 기간틱이 나왔다. 기간틱은 그대로 아키토와 합체하여 기간틱 다크가 완성되었다. 합체 이후 아키토는 더욱 더 속도를 올리며 급강하하였다. 먼저 아래로 내려간 다른 멤버들을 붙잡아줘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셀더인 시즈는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나머지 리베르타스들은 비행이 불가능하므로 착지는 아키토가 도와야 했다. 아키토는 이내 먼저 내려간 부하들을 따라잡았다. 이들은 이미 낙하 중에 각자의 전투 형태로 변신한 후였다. 리베르타스들은 각자 기간틱 다크의 거대한 몸에 매달렸다. 시즈 역시 아키토의 등에 매달려 착지에 대비하였다. 이윽고 본부 기지 샤프트 갱도의 끝에 도착하였다. 바로 본부기지 최하층 구역이다. 아키토는 중력 제어구를 조종하여 낙하 속도를 줄였다.
-후우웅!!
드디어 아키토들은 최하층부에 착지하였다. 이미 엘리베이터로 들키지 않고 상당한 거리를 내려온 덕분에 아무도 이들이 최하층까지 오는 것을 저지하지 못했다. 이제 막 도착한 이들의 눈앞에 거대한 원형의 구조물이 보였다. 마치 그 유명한 인도의 타지마할의 꼭대기 부분을 보는 것 같은 이 구조물은 바로 P.W.G (Psycho Wave Generator) 로서 조아로드의 사념파를 기계적으로 확대 증폭시킬 수 있는 증폭 장치였다. 그 출력은 전 세계의 모든 크로노스 지부들 중 최대출력으로서 여기서 증폭된 사념파는 전 지구를 커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셀더. 파괴해."
"예."
아키토는 본격적인 작전에 앞서 이것을 먼저 파괴할 생각이었다. 이걸 그냥 내버려 뒀다간 언젠가는 반드시 화근이 될 것임에 틀림없었다. 기회가 있을 때 박살내 두는 것이 좋았다. 시즈는 리베르타스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리베르타스, '모드 B' 형으로!"
"Yes, sir!!"
-끼릭! 쿠쿡!!
명령을 받은 리베르타스들의 양쪽 어깨가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부풀어 오른 어깨의 형태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중심부에 커다란 원형의 크리스털 비슷한 물체가 생겨났다. 이윽고 그 크리스털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리베르타스의 3단계 변신 모드 중 하나인 '생체 열선포 형태 - 모드 B-'였다. 기본 형태이며 격투전에 특화된 형태가 모드 A, 그리고 모드 B는 원거리전에 특화된 형태였다. 하나의 리베르타스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런 변신 능력을 만든 것이다.
"목표 P.W.G! 발사!!"
-투오오옹!!!
리베르타스 네 명의 강력한 생체 열선포가 P.W.G에 명중하였다. 리베르타스의 생체 열선포의 위력은 크로노스의 일반적인 생체 열선포 조아노이드인 바모아의 열 배에 달했다. 이들 네 명이 한꺼번에 그 에너지를 집중하자 거의 가이버의 메가 스매셔에 필적하는 위력의 빔이 생성되었다.
-쿠콰콰쾅!!!
잠시 빔 공격을 견디는 듯하던 P.W.G의 외벽이 결국에는 뚫리고 말았다. 리베르타스들의 빔에 관통당한 P.W.G는 여기 저기서 불길을 내뿜으며 그 자리에서 완전히 파괴 되었다.
"최하층부에 기간틱 다크 일당 출현!! P.W.G 가 파괴당했습니다!"
중앙 사령실의 발카스는 잔뜩 긴장된 표정이었다. 놈들이 벌써 저기까지 가 있을 줄이야. P.W.G가 파괴된 것은 뼈아픈 손실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기간틱 다크가 여긴 또 왜 왔느냐 하는 것이다. 설마 이번에야 말로 기가 스매셔를 날려서 이 기지를 송두리째 날려버릴 생각인 걸까? 하지만 발카스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럴 생각이라면 부하들을 데리고 올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냥 자기 혼자 쳐들어와도 충분한 것을 말이다. 역시 이번에도 무슨 꿍꿍이속이 있는 것이 아닐까?
"최하층의 하이퍼 조아노이드 경비 부대가 적들과 교전에 들어갑니다!"
그 순간 관제원의 보고가 들려왔다. 최하층부를 지키고 있는 정예 하이퍼 조아노이드 부대 백여 명이 리베르타스들에게 달려들고 있는 것이 대형 스크린에 투영되었다. 아무리 리베르타스가 강하다고는 해도 저 쪽은 겨우 네 명. 이쪽은 한 명 한 명의 전투력은 리베르타스들보다 딸릴지는 몰라도 그렇다고 그렇게 만만한 존재는 아닌 하이퍼 조아노이드들이다. 그 숫자는 무려 백 명. 아무리 강력한 조제체라고 해도 이런 수적 열세를 뒤집을 수는 없다. 다만 발카스는 일반 조아노이드 부대는 웬만해서는 출전시키지 않기로 하였다. 리베르타스와는 전투력의 차이가 너무나 클 뿐더러 오히려 하이퍼 조아노이드 부대의 작전에 방해만 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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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아아악!!!"
"크아아!!"
하이퍼 조아노이드 부대가 한꺼번에 리베르타스 들에게 달려들었다.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적임에도 리베르타스들은 전혀 거리낌 없이 맞돌격을 하였다. 그리고 가장 선두에 달려오던 조아노이드들을 해치우기 시작했다.
-퍼억!! 콰직!! 푸욱!!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리베르타스들은 맨 선두에 달려오던 하이퍼 조아노이드들을 단 일격에 해치웠다. 리베르타스의 주먹이 뻗을 때마다 조아노이드들의 머리가 깨지고 심장이 관통 당했다. 몇 마리의 선두 조아노이드가 힘없이 쓰러지자 다른 조아노이드들이 잠시 주춤거렸다.
"큭! 무...물러서지 마라!! 돌격!!"
하지만 그렇다고 백 명이나 되는 대 부대가 겨우 네 명에게 등을 돌릴 수는 없었다. 지휘관의 외침에 이들은 다시 리베르타스들에게 돌진하였다.
"우오옷!!"
-키이잉!!
하이퍼 조아노이드들 중 한 명이 높이 점프하였다. 온 몸에 고슴도치처럼 아주 날카로운 가시가 빽빽이 박힌 하이퍼 조아노이드였다. 그는 공중에서 몸을 둥글게 말아서는 그대로 리베르타스들에게 돌진해 들어갔는데 그 모습이 마치 거대한 회전 톱날 같았다. 자신의 몸을 둥글게 말아 그 몸을 맹렬히 회전시켜 상대방을 분쇄하는 '스핀 크래셔'가 특기인 하이퍼 조아노이드 '본젤'이었다.
-쿠콰콱!!!
리베르타스들은 재빨리 사방으로 흩어져 본젤의 몸통 박치기를 피했다. 본젤의 공격은 지면을 깊이 파고 들어갈 정도로 강력했다. 물론 이 공격에 당한 리베르타스들은 없지만 어쨌든 그로 인해 이들이 흩어지자 그 틈을 노리고 하이퍼 조아노이드들이 사방에서 리베르타스들을 덮쳤다.
"받아랏!"
-파지직!!
리더 격인 하이퍼 조아노이드가 자신의 이마에 있던 뿔에서 강력한 전기 에너지를 생성시켜서는 그대로 리베르타스 한 마리에게 발사하였다. 이 조아노이드는 '가베인'이라고 하는 하이퍼 조아노이드로서 대기중의 산소를 끌어 모아 체내의 수소와 융합시켜 강력한 전기 에너지를 만드는 '생체 연료전지'를 탑재한 조아노이드였다. 이 공격에 얻어맞게 되면 그 어떤 상대도 순식간에 새까맣게 타 버리는 것이다.
-휘익!
그러나 그가 노렸던 리베르타스는 이 공격을 아주 간단하게 피했다. 그는 두 번째, 세 번째 공격을 퍼부었지만 리베르타스는 전혀 맞지 않았다. 놈의 스피드가 예상보다 빨랐다. 아니, 그게 아니다. 처음엔 몰랐는데 어째서인지 시야가 점점 가물거리고 정신집중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평소처럼 조준이 그리 쉽게 되지 않았다. 확실히 지금 자기 몸에 무슨 이상이 생긴 것이다.
-크아아아아!!!!
사방에서 적들이 달려들고 있음에도 리베르타스들은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오히려 하이퍼 조아노이드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기 시작했다. 이미 이들은 하나로 뒤엉켜 난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렇게 분투하고 있는 리베르타스들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그리셀더 -시즈-의 이마의 크리스털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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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저럴 수가! 정예 대원들만 모았는데 저렇게 간단히...!"
중앙 관제실에서는 최하층의 전투 장면을 보면서 다들 전율하고 있었다. 압도적인 수의 하이퍼 조아노이드부대가 단 네 명의 리베르타스들에게 고전하고 있던 것이다. 피해가 점점 커지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황급히 기지내의 다른 전투원들에게 급히 최하층으로 내려가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이대로 내버려 뒀다간 패배가 확실해 보였으므로 그 전에 증원 병력을 내려 보내려는 것이다.
발카스만큼은 하이퍼 조아노이드 부대가 고전하고 있는 이유를 금방 알아차렸다. 바로 저 여자, 그리셀더 때문이었다. 그리셀더 역시 사념파로 리베르타스 및 조아노이드의 정신을 지배할 수 있다. 리베르타스들이 싸우는 동안 후방에서 그리셀더가 자신의 사념파로 조아노이드들의 정신에 끼어들게 되면 하이퍼 조아노이드는 정신에 혼란이 오게 된다. 그러니 신경이 분산된 저 하이퍼 조아노이드들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나마 발카스가 여기서 사념파로 그리셀더를 견제하고 있으니 망정이지 발카스마저 없었으면 아마 저 하이퍼 조아노이드들은 그리셀더가 시키는 대로 복종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런데 기간틱 다크는 어디 있지?"
그 순간 발카스는 중요한 사실을 알아차렸다. 대 난투극이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는 기간틱 다크가 보이지 않았다. 보이는 것은 후방의 그리셀더와 하이퍼 조아노이드들 틈에 뒤섞여 마구 싸우고 있는 리베르타스들 뿐. 그 눈에 확 띄는 기간틱 다크의 거체가 보이지 않았다. 발카스의 말에 관제원들이 그제야 기간틱 다크가 사라진 것을 눈치 채었다. 리베르타스들의 대 난투극에 정신이 팔려 그만 그의 존재를 놓치고만 것이다. 그렇다면 놈은 어디로 간 걸까?
"서....설마! 그 놈이 거길 갈 생각으로...!!"
발카스는 직감적으로 아키토의 작전을 눈치 채었다. 최하층부에서 아키토 녀석이 노릴 '중요 목표'는 사실 딱 하나밖에 없었다. 이 기지의 가장 밑바닥, 지하의 대 공동에 위치한 강림자의 유적, '우라누스의 성궤(聖櫃)'! 리베르타스들을 끌고 온 건 양동작전을 위한 것이었다. 발카스의 얼굴이 대번에 새파래졌다.
"어서 빨리 고속 엘리베이터를 준비해라! 당장 최하층으로 가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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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여기에 이런 것이 있을 줄이야.'
기간틱 다크, 아키토는 발카스의 예측 그대로 본부 기지 맨 밑바닥의 대공동에 와 있었다. 위에서 리베르타스들이 시간을 벌어주는 사이 그는 몰래 이곳에 올 수 있었다. 대공동에 도착한 아키토의 눈앞에 거대한 원형의 바위, 아니 마치 산 같은 거대한 물체가 있었다. 이 모양을 그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바로 미나카미 산 지하에서 봤었던 강림자의 우주선, 그 우주선이 말라죽어 화석이 된 모습이었다. 아키토가 본부 기지에 이렇게 쳐들어 온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 작전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바로 헤커링과의 대화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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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리조나 본부 기지 지하에요?"
"아, 그렇다네. 뭐 정확히 말하자면 이미 말라죽은 화석이지만."
이 얘기가 나온 것은 순전히 우연이었다. 워싱턴의 조제시설을 성공적으로 공격하고 돌아온 후 아키토는 헤커링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날따라 얘기가 꽤 길어졌었는데 어쩌다 보니 강림자의 유적 우주선 얘기까지 나왔었다. 우주선 얘기가 나오자 헤커링이 그제야 생각났다는 듯이 애리조나 본부 기지의 지하에 잠들어 있다는 강림자의 우주선 얘기를 꺼낸 것이다.
"안됐지만 자네가 일본의 미나카미 산에서 봤다는 그 살아있는 우주선과는 전혀 달라. 이미 태고적에 말라 죽은 우주선의 잔해뿐일세. 강식장갑 같은 유물도 안 나왔지."
"아, 그렇습니까?"
헤커링의 말을 들은 아키토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태고적에 이미 말라죽은 우주선이라면 더 볼 것도 없었다. 게다가 안에서 아무것도 출토되지 않았다니. 지구 곳곳에는 지하 깊숙이 묻혀있는 그런 강림자의 유적들이 꽤 된다. 그리고 일 년 반전에 소실된 미나카미 산의 살아있는 유적 우주선을 제외하고는 이미 다 화석으로 변해버린 것들뿐이다. 고고학적으로는 대단한 발견이겠지만 지금의 아키토에게는 쓸모없는 돌무덤일 뿐이었다.
"다만 그 기억 중추만큼은 살아있다네."
바로 그 순간 헤커링의 다음 말에 아키토는 두 귀가 번쩍 뜨였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우주선의 기억 중추가 살아있다고?
"나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발카스가 얘기는 해 주었지. 선체 내부에 아주 커다란 원형의 빈 공간이 있는데 그 곳 한가운데에 사람 머리만한 금속구 두개가 하나는 바닥에 하나는 천정에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태로 배치돼 있다더군."
그 말을 들은 아키토는 경악하였다. 두 개의 금속구, 그것은 바로 유적 우주선의 항행과 기능을 제어하고 그 밖에 모든 실험 기록 등을 저장하는 저장장치의 역할도 하는 유적 우주선의 핵심 부품, 항행제어구다! 그런 것이 아직도 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미나카미 산의 유적 우주선이 가지고 있던 항행제어구는 케이가 기간틱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간틱의 듀얼 컨트롤 메탈로 변화해 버려서 이제는 이 지구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물건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조아로드인 발카스는 그 옛날 그 금속구에 손을 대어서 강림자들이 남긴 방대한 실험기록등을 살짝 엿본 모양이야. 뭐 터무니없는 실험기록들이 많았던 모양이지만 그래도 현재 크로노스의 과학 기술의 근원은 바로 그 금속구들에게서 얻은 거라고 하더군."
아키토가 어떤 반응을 보이던 간에 헤커링은 자기 할 말을 계속했지만 아키토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항행제어구가 아직도 존재한 다는 것과 그것이 아직까지도 훌륭하게 기능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아키토는 아직도 뭔가 말하려는 헤커링의 말을 중간에 끊고 다급히 헤커링에게 질문하였다.
"그렇다면 그 금속구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응? 뭐 아직도 거기 그냥 있을 걸세. 발카스를 비롯한 12신장들은 그 유적을 신성시 여겨서 그 금속구를 함부로 뜯어낸다던가 하는 짓은 안 했던 거 같으니까. 무리도 아니지. 거기서 크로노스의 모든 역사가 시작됐으니까 그들 입장에서는 성지(聖地)아닌가."
"그렇습니까....후후."
그 순간 아키토가 회심의 미소를 지어보였다. 마치 희열에 들뜬 것 같아 보이는 아키토의 태도를 본 헤커링은 순간 그의 생각을 금세 눈치 채었다. 헤커링은 반신반의 하면서 아키토에게 질문하였다.
"서...설마 자네, 그것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건가?"
"물론이죠. 그것만 있으면 크로노스를.....아니 전 세계를 뒤집어엎을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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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지는 바로 눈앞에 있다. 저 거대한 화석 안에 들어있다는 항행제어구만 손에 넣을 수 있다면 현재의 전세를 완전히 뒤집어 버릴 수 있다. 지금 발카스를 비롯한 크로노스 놈들의 신경은 온통 위에서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리베르타스들에게 집중돼 있다. 이 틈에 유적의 외벽을 부수고 안에 들어가서 그 금속구를 손에 넣고 탈출하면 된다. 아키토는 유적 우주선으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콰콰쾅!!
바로 그 순간 아키토의 발 바로 앞에 강력한 빔이 쏘아졌다. 그 빔은 아키토의 바로 앞 지면에 아주 깊은 도랑을 만들어 버렸다. 마치 이 선 부터는 더 이상 넘어올 생각 말라는 듯이. 깜짝 놀란 아키토는 빔이 날아온 방향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유적 우주선의 화석 위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놀랍게도 발카스였다!
"더 이상 성궤(聖櫃)에 접근하지 마라! 이 무례한 녀석아!!"
발카스가 아키토를 노려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아키토는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저 영감, 나이 먹으면서 눈치만 늘었는지 이쪽의 의도를 빨리 간파해 내고 말았다. 이렇게 되면 승부를 피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아키토는 이내 피식하고 웃었다. 그는 여유 있게 발카스에게 말했다.
"이거 오랜만이군, 닥터 발카스. 마중나와주다니 고마운데. 허나, 당신 혼자서 이 기간틱을 막을 수 있을 거라고 보는가?"
발카스의 전투 형태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봐야 평생을 싸움보다는 연구에만 종사해왔다. 그리고 겨우 혼자서 기간틱과 싸우려 하다니. 아무리 저게 중요한 물건이라고 해도 간이 어지간히 붓지 않고서야....
"혼자가 아니다."
그 때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아키토가 허둥대고 있을 때 발카스의 양 옆에 새로운 그림자가 나타났다. 적들이 또 있었던 것이다! 한 명은 얼굴 일부를 제외한 온 몸이 아주 긴 검은 털로 뒤덮인 마치 원시인 같이 생긴 자였고 또 한명은 얼굴 반쪽을 가릴 정도로 앞머리가 긴 동양계의 남자였다. 아키토는 저 두 사람을 알고 있었다. 두 사람 다 12신장 멤버로서 검은 털 쪽은 '와펠다노스', 동양계의 남자는 '리엔쯔이'였다.
"닥터 발카스의 지시로 이곳 최하층부에 숨어 있었지만 설마 이렇게 빨리 나설 수 있게 될 줄이야."
"훨씬 더 지루하게 기다릴 줄 알았는데 의외로 빨리 쳐들어 왔군."
놀랍게도 발카스는 아키토가 이 우라누스의 성궤를 노리고 쳐들어 올 것을 예측이라도 한 듯이 이들 두 명의 신장을 미리 매복시켜 두고 있던 것이다! 조아로드 세 명과 정면 대결해야 할 판이었다. 아키토는 순간 망설여졌다. 아무리 기간틱이 강하다고는 해도 과연 조아로드 세 명을 상대로 싸울 수 있을까? 게다가 그들의 능력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도 큰일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다. 상대가 몇 명이 됐든 간에 이 작전은 그대로 밀어붙여야 했다. 지금 아니면 절대 이런 기회가 다시 오지 않으니까.
'물러날 수는 없다! 물러날 생각도 없다! 난 반드시 그걸 손에 넣을 것이다!!'
Next episode 제19화 '수라의 개막' coming soon......
p.s : 흐흐...이제부터 아주 기나긴 하룻밤이 시작됩니다. (아키토가 있는 미국쪽은 낮이니까 기나 긴 한 낮이 되겠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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