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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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part 2.-
제11화 - 의지의 차이 -
-푸슝!
케이는 도망치는 척후 조아노이드를 겨냥하고 헤드빔을 날렸다. 그러나 상대는 도망치는 와중에도 케이의 헤드빔을 날렵하게 피하였다. 마치 뒤통수에도 눈이 달린 듯이 지금까지 몇 차례의 헤드빔 공격을 능숙하게 피해내었다. 케이는 점점 초조해져만 갔다. 빨리 저 녀석을 잡아야 하는데 좀처럼 잡히지 않으니 미칠 지경이었다.
-푸슝! 푸슝!
척후 조아노이드와 케이의 추격전은 계속 되었다. 케이는 계속해서 헤드빔을 날리면서 놈을 정신없이 추격하였다. 척후 조아노이드는 인근의 가정집 지붕들을 이리저리 건너뛰어 가며 도망쳤다. 때문에 케이는 헤드빔을 조심스럽게 날려야 했다. 헤드빔의 관통력은 수십mm의 강철판도 단숨에 뚫을 정도다. 만약 조준이 잘못돼서 민가의 지붕이라도 뚫고 들어갔다가는 애꿎은 사람들이 희생될 수도 있었다. 그 걱정까지 더해져서 헤드빔 조준도 맘대로 되지 않았다.
이윽고 둘은 주택가를 빠져나왔다. 주택가를 빠져 나오자 한적한 도로가 펼쳐졌다. 허허 벌판에 들어선 덕분에 이젠 조준이 한결 더 쉬워졌다. 막 조준하려는 찰나 척후 조아노이드가 근처에 있던 높은 담장을 훌쩍 뛰어 넘었다. 케이 역시 그 뒤를 쫓아 담장을 뛰어넘었다. 그러자 그의 눈앞에 전혀 의외의 광경이 펼쳐졌다. 척후 조아노이드가 도망쳐 온 곳은 외곽의 폐쇄된 공장이었다.
'왜 이곳으로 도망 온 거지?'
케이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왜 이리로 도망쳐 온 걸까? 그러고 보니 이쪽 방향은 클라우드 게이트와 정반대 방향이었다. 케이들의 은신처를 보고 하러 클라우드 게이트로 가는 거라면 점점 더 도심지 쪽으로 가야하는데도 말이다. 분명히 수상한 행동이었지만 아까까지만 해도 정신없이 추격하느라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설마 상대도 케이의 추격을 두려워해서 정신없이 도망치다 보니 이곳으로 오게 된 것일까, 아니면.....
'날.... 이리로 유인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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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는 조심스럽게 공장 지대를 돌아다녔다. 공장은 폐쇄된 지 꽤 오래됐는지 유리창은 대부분 깨져 있었고 여기저기 쓰레기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한 밤중이고 조명이라고는 하늘에 떠 있는 달 뿐이어서 상당히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케이는 혹시 매복이 없을까 싶어 헤드센서에 온 신경을 집중하였다.
'있다! 3...4...5. 전부 다섯 마리. 게다가 반응도 보통 조아노이드가 아니군.'
역시나 매복이 있었다. 아까의 척후 조아노이드는 미끼였던 것이다. 탐지되는 조아노이드는 전부 5마리. 그것도 이 정도의 반응이라면 하이퍼 조아노이드가 틀림없었다. 함정에 걸린 이상 빠져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고 무엇보다 여기서 그냥 도망치면 베르단디들이 숨어 있는 아지트를 덮칠 가능성이 높았다. 이놈들을 빨리 해치우고 오다기리 주임의 저택으로 돌아가서 모두에게 빨리 이 사실을 알려야 했다.
-푸슝!!
그 때 케이의 바로 발 앞에 강력한 레이저 빔이 작렬하였다. 깜짝 놀란 케이는 황급히 뒤로 점프하여 그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러자 위쪽에서 강력한 위력의 빔이 계속해서 날아왔다. 케이는 자세를 바로잡고 빠른 속도로 이동하면서 그 공격들을 피했다. 상당히 강력한 레이저 빔인데 이걸 이렇게 연사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강력한 생체 열선포 기관을 가진 조아노이드라는 뜻이었다.
"저긴가!"
빔이 날아온 방향과 헤드센서의 탐지 반응을 보고 케이는 빔을 날린 조아노이드의 위치를 파악해내었다. 위치는 케이 앞쪽에 있던 공장 건물 옥상. 케이는 즉시 하늘로 날아올라 그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아...아니!!"
옥상에는 다섯 마리의 조아노이드가 있었다. 그런데 그 다섯 마리는 케이가 전부 아는 놈들이었다. 놀랍게도 1년 반 전에 미나카미 산에서 싸웠던 하이퍼 조아노이드 오인중이었던 것이다! 젝토올, 가스터, 다젤브, 엘레겐, 장크루스. 이들은 틀림없이 전멸했다. 앱톰에게 세 명, 가이버 III에게 한명, 그리고 최후의 생존자인 젝토올을 불과 몇 달 전에 케이가 해치웠다. 그런데 어째서 저 놈들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쿠오오오!!
"우윽!!"
그러나 놀라고 있을 틈이 없었다. 다젤브가 먼저 자신의 특기인 3,000도의 초고열 화염을 케이에게 뿜어내었다. 강식장갑의 화염 방어력이 조금이라도 약했으면 케이는 그대로 숯덩이가 됐을 것이다. 케이는 황급히 다젤브의 화염공격을 해치고 나왔다.
-푸슝! 투웅!!
다젤브의 공격을 신호로 나머지 원거리 공격력을 가진 가스터와 젝토올이 각자의 무기를 케이에게 퍼부었다. 다젤브의 생체 미사일과 젝토올의 생체 열선포가 계속해서 케이에게 날아들었다. 케이는 이 공격들을 간신히 피하였다. 그러나 더 이상은 무리였다. 저 놈들은 1:1로 싸워도 버거운 놈들이다. 이대로 도망만 다녀봐야 조만간 케이는 끝장이었다. 그렇다면 반격을 해야 한다! 케이는 힘차게 외쳤다.
"가이버!! 기간틱!!!!"
-투웅!!
케이의 소환에 응답한 번데기가 즉시 케이의 후방에 나타났다. 그리고 껍질이 열리면서 거인식장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거인식장은 그대로 케이와 합체하였다. 가이버 I 만으로는 무리지만 가이버 기간틱이라면 아무리 하이퍼 조아노이드 5인중이라 할지라도 압도할 수가 있다. 2단 변신이 완료되자 케이는 그대로 하이퍼 조아노이드 5인중을 향해 헤드빔을 발사하는 것을 시작으로 반격에 나섰다.
-푸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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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토는 가이버 III로 변신한 채 베루더와 함께 애리조나 주의 그랜드 캐니언에 도착해 있었다. 사방이 바위산뿐인 황량한 이곳에 두 사람이 온 이유는 바로 이곳에 크로노스의 본부 기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루더가 그들의 저 앞에 있는 커다란 바위산을 손으로 가리켰다.
"저기 입니다. 저곳이 바로 크로노스의 본부기지죠. 안에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흠. 어디 한 번 볼까?"
아키토는 베루더가 가리킨 곳을 헤드 센서로 스캔해 보았다. 겉보기에는 푸딩 모양의 평범한 바위산이었지만 자세히 내부를 스캔해 보니 내부에 아주 커다란 규모의 공간이 탐지되었다. 내부의 공간에는 인공적인 구조물들도 보였다. 산 전체를 관통하고도 모자라 지하 아주 깊숙이까지 거대한 구조물이 관통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것은 지하와 지상을 연결하는 엘리베이터 샤프트임에 틀림없었다. 베루더의 말 그대로 저 곳이 놈들의 비밀 기지였다.
"과연 저기가 틀림없다. 용케도 저곳을 알아냈군."
"이래봬도 전 정보원입니다. 저 곳은 예전에 벌써 찾아냈죠. 다만 안에는 들어가 보지 못해서 내부 정보는 전혀 모릅니다."
베루더가 저 곳을 찾아낸 건 약 백 년 전 일이다. 그는 이 인간계에 약 150년 전 부터 머물고 있었는데 그 때부터 크로노스의 존재를 신경 쓰고 있던 마계 상층부가 그에게 미주 지역의 크로노스에 대한 정보를 모으라고 지시를 했었던 것이다. 정보를 모으던 중 그는 우연한 계기에 이곳 애리조나 주의 사막에서 크로노스의 거대 비밀기지의 존재를 감지해 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이곳을 집중적으로 감시하다가 결국 본부기지의 위치를 파악해 내는데 성공하였다. 그 후로 그는 몇 번 내부로 잠입을 시도했지만 본부 기지의 감시망은 마계의 마술식을 이용해도 침투가 불가능할 정도로 철통같았다.
"몰래 들어가실 생각이라면 포기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군요. 불가능합니다."
베루더는 딱 잘라 말했다. 몇 번이나 잠입을 시도했지만 그때마다 번번이 들켜서는 간신히 목숨만 부지해서는 빠져나왔던 것이다. 베루더는 이곳의 철통같은 경계 태세에 혀를 내 둘렀다. 그래서 그는 요 근래에는 거의 본부 기지 잠입시도를 포기하다 시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키토는 베루더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몰래 들어갈 생각은 없다. 이대로 정면으로 치고 들어갈 꺼다."
그 말에 베루더는 깜짝 놀랐다. 아키토 이 남자, 치밀한 작전을 세우고 싸우는 스타일인줄 알았는데 의외로 무대포적인 면도 있었다. 정면 승부는 정말 무모한 짓이었다. 본부 기지의 조아노이드는 베루더가 파악한 바로는 거의 5천이상이나 된다. 그 엄청난 적들을 상대로 단 둘이서 정면 승부를 짓자는 것인가. 베루더 자신도 무모한 전투를 즐기는 편이긴 하지만 이거는 정말 아니다 싶었다. 게다가 이번 작전에서 베루더의 임무는 따로 부여되있다. 즉, 내부로 돌입한 시점에서 적들과 싸우는 것은 아키토 혼자서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도대체 뭘 믿고 저런 소리를 할까?
'역시....기간틱 다크를 소환하려는 것인가. 그거라면 영 불가능한 소리는 아닐지도.....'
베루더의 생각 그대로 아키토는 기간틱으로 변신해서 그대로 본부 기지에 정면 공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조아로드를 압도하는 기간틱의 힘이라면 조아노이드 따위는 아무리 많아봐야 소용없다. 하지만 만약 기지 내부에 조아로드가 있다면 얘기는 전혀 다르다. 명색이 본부기지인 만큼 조아로드가 최소한 한 명 정도는 있지 않을까? 게다가 그 놈이 만약 다른 지역의 조아로드들에게 증원을 요청하면? 1:1이야 이기겠지만 1:2 이상이 되면 아무리 기간틱이라 해도 위험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그럼 지금부터 시작해 볼..... 응?"
"왜 그러십니까?"
기간틱을 소환하려던 아키토가 잠시 머뭇거렸다. 아키토의 행동에 의아해 한 베루더가 그에게 물었다. 아키토는 베루더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케이 녀석....기간틱을 먼저 썼군.'
기간틱을 소환하려던 아키토는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부터 자기도 기간틱을 써야 하는데 케이가 먼저 쓰는 바람에 일이 좀 꼬이고 말았다. 도대체 일본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기에 그러는 걸까? 아키토는 잠시 고민하였다. 이런 경우를 예상은 했었지만 막상 닥치고 보니 좀 당황스러웠다. 이대로 케이가 용무를 마칠 때까지 기다릴까?
'아니, 잠깐. 그럴 필요는 없을지도.... 후후, 마침 잘 됐어. 이번 기회에 확실히 해두는게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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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슝! 콰아앙!!
-푸화악!!
-콰콰콰쾅!!!
하이퍼 조아노이드 5인중은 케이에게 각자의 공격을 있는 대로 퍼부었다. 원거리 공격능력이 없는 엘레겐과 장크루스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인 젝토올, 가스터, 다젤브는 각자의 주 무기인 생체 열선포, 생체 미사일, 초고온 화염을 기간틱인 케이에게 퍼부었다. 그러나 케이는 그 공격을 바리어를 펼쳐 간단하게 막아내었다. 5인중의 실력은 조아노이드들 중에서도 톱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기간틱의 바리어를 뚫을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철컥!
케이는 공격을 막아낸 직후 입가의 장갑판을 열어 소닉 버스터를 준비하였다. 그는 바리어를 풀자마자 곧장 5인중에게 소닉 버스터를 사용하였다.
-큐우우웅!!
기간틱의 소닉 버스터가 작렬하자 5인중이 있던 공장 건물이 순식간에 가루가 되었다. 5인중은 공격이 시작되자 즉시 공장에서 뛰어내려 소닉 버스터 공격을 피하였다. 그리고 지상에 내려서서는 즉시 뒤돌아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기간틱을 상대로 정면승부는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실감했기 때문이었다.
"거기 서!!"
케이는 도망치는 5인중을 뒤쫓기 시작했다. 5인중은 그대로 공장 지대의 본관 건물로 생각되어지는 큰 건물 뒤쪽으로 달아났다. 케이 역시 그들을 쫓아 그 쪽으로 향했다. 건물 뒤쪽으로 돌아서자 케이의 눈앞에 넓은 공터가 펼쳐졌다. 그리고 그는 그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인물을 보게 되었다. 이마에 보라색의 조아 크리스털을 장비한 익숙한 모습의 전투 형태를 가진 조아로드. 죽었다고 생각했던 무라카미였다!
"무...무라카미씨?!!"
무라카미의 출현에 충격을 받은 케이는 그대로 경직되었다. 그 때 그 빈틈을 놓치지 않고 엘레겐의 전기 채찍이 케이의 발목을 휘감았다. 그리고 곧장 자신의 주특기인 1만 볼트 전기 충격을 가해 왔다.
-파지지직!!
"아악!!"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나머지 5인중 멤버들이 케이에게 총 공격을 퍼부었다. 다만 원거리 공격능력이 없는 장크루스는 이번에도 나서지 않았다. 잠시 동안 케이는 5인중의 집중 공격을 그대로 얻어맞았다. 케이의 몸 여기저기에 생체 열선포와 미사일들이 작렬하였다.
"으윽!"
공격이 멈추자 케이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다행히 기간틱의 장갑 외피는 이전의 가이버 I 보다 훨씬 강력하기에 파괴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꽤 큰 충격이었는지라 케이는 잠시 동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런 케이를 보며 무라카미는 꼴좋다는 듯이 비웃고 있었다.
"케이, 너란 녀석은 정말이지...."
그런데 무라카미의 목소리가 이상했다. 평소에 케이가 알고 있던 무라카미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게다가 지금 무라카미의 행동도 이상했다. 케이와 베르단디들의 위치를 알아냈으면 기습 공격을 걸어올 텐데 왜 굳이 케이만 이 곳으로 유인한 것일까? 베르단디들이 옆에 있다면 케이가 맘대로 싸우기가 힘들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을 텐데도. 게다가 방금 전에 5인중의 공격을 받고 잠시 주춤거릴 때 결정적인 찬스임에도 왜 공격에 나서지 않은 것일까?
-키이잉!
그 때 케이의 듀얼 컨트롤 메탈이 묘한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이 느낌은 마치 기간틱을 벗을 때의 느낌과 흡사했다. 케이가 기간틱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어리둥절해 있던 그 순간, 갑자기 기간틱이 케이에게서 벗겨져 나갔다.
-파앗! 철컥!!
벗겨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어느 샌가 케이의 뒤 쪽에서 번데기가 나타나더니 기간틱을 수용하고 어디론가 공간이동을 해 버렸다. 케이는 경악하였다. 기간틱이 저절로 벗겨진 것이다! 자신은 절대로 해제 명령을 내리지 않았는데도 갑자기 기간틱이 강제 해제된 것이다. 케이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간틱을 소환한 건 잠깐 뿐이어서 에너지는 아직 충분했다. 게다가 아까 공격을 받기는 했지만 그 정도 충격으로 벗겨질 기간틱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어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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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후후...."
바로 그 시각 지구 반대편의 미국 애리조나 주 그랜드 캐니언에 번데기가 출현하였다. 그리고 아키토는 기간틱 다크로의 변신을 마쳤다. 그렇다. 케이의 기간틱이 강제 해제된 이유는 바로 아키토가 기간틱을 호출했었기 때문이었다. 아키토는 자신의 생각대로 되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바로 이런 경우, 즉 하나뿐인 기간틱을 두 사람 중 어느 한쪽이 먼저 썼을 때 나머지 한 명도 급히 기간틱을 써야 하는 일이 벌어지면 과연 우선순위는 누구에게 있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먼저 사용한 사람에게 우선순위가 있을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아키토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가이버끼리의 우열을 가리는 요소는 식장자의 능력이다. 식장자의 능력이 우수한 쪽이 더 강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식장자의 의지에 따라 소환되는 기간틱의 경우에는 혹시 소환자의 의지가 좀 더 강한 쪽에 우선순위가 있지 않을까?
아키토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하였다. 케이가 먼저 기간틱을 사용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 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아키토의 명령에 기간틱이 응답한 것이다. 그렇게 아키토는 케이에게서 기간틱을 뺏어오는데 성공한 것이다. 누가 됐건 내 앞을 막으면 싸워서 쓰러트린다, 자신의 신념이 확고하게 서 있는 아키토의 의지가 좀 더 강했던 것이다. 옛 동료가 적이 됐다고 싸우지도 못하는 나약한 녀석을 기간틱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기간틱은 결국 아키토를 자신의 진짜 주인으로 인정한 것이다.
"우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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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꼴좋게 됐구나. 케이. 결국 그 잘난 기간틱을 가이버 III 녀석에게 뺏기고 말았구나."
케이는 당황해 하며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재소환 명령에 기간틱은 전혀 응답하지 않았다. 가이버 I 만으로는 지금 상황에서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 그런데 무라카미와 5인중은 전혀 공격해 오지 않았다. 오히려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
"하지만 그건 네 녀석이 자초한 일. 누굴 탓할 수도 없어."
-슈우욱, 츄욱
그 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무라카미와 5인중 멤버들이 한 덩어리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마치 고무 찰흙을 하나로 뭉치듯이 하나의 개체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들이 갑자기 하나의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본 케이는 깜짝 놀랐다. 앱톰의 전투 형태였던 것이다!
"애...앱톰?! 네가 왜...!!"
"흥. 방금 전 그 놈들은 다 내가 분신을 한 거야. 내 능력 벌써 잊었냐?"
"그...그럼 아까의 척후 조아노이드도...."
"그래. 바로 나다. 이 멍청아."
앱톰은 자신의 몸을 여러 개의 개체로 나눠서 그것들이 각자 따로 전투를 벌일 수 있는 이른바 '군체'의 능력이 있다. 분신술의 일종이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양자는 전혀 다른 기술이다. 분신술의 경우에는 적을 혼란시킬 목적으로 실체가 없는 환영이나 고속 이동을 이용한 잔상을 이용하는 게 보통이다. 물론 이런 것들은 독립적으로 움직일 수도 없고 전투 능력같은건 더더군다나 없다. 그러나 앱톰의 군체는 다르다. 군체의 경우에는 앱톰의 체조직을 따로 분리시켜 그것을 하나의 의식을 공유하는 이른바 '별도의 생명체'로 만드는 기술이다. 그리고 그 군체들이 각자 다른 능력을 지닌 형태로 변신해서 싸울 수 있기까지 하다. 즉 분신술은 숫자는 많아 보이지만 근본적으로 전투를 할 수 있는 존재는 본체 단 하나 뿐이지만 앱톰의 군체는 실제로 맞서 싸우는 숫자 자체가 늘어나는 것이다. 물론 이 기술은 앱톰의 체조직을 따로 떨어트려 성장시켜야 하기 때문에 앱톰 본인의 양분 소모가 큰데다가 주변에 융합 포식할 수 있는 조아노이드가 없다면 만드는 데도 상당히 긴 시간을 요하기 때문에 쉽게 쓸 수 있는 기술은 아니다. 앱톰은 이 기술을 1년 반 전에 미나카미 산에서 우연한 기회에 익혔었다.
방금 전에 있었던 하이퍼 조아노이드 5인중과 무라카미는 앱톰이 만들었던 군체였다. 5인중 중에서 4명의 DNA 정보를 가지고 있는 앱톰에게는 이들을 그 능력과 모습까지 똑같이 복제하는 건 일도 아니다. 그리고 DNA를 가지고 있지 않은 장크루스와 무라카미의 경우에는 그냥 겉모습만 흉내 낸 것이다. DNA정보가 없으니 능력카피까지는 못하지만 그냥 겉모습만 하라고 한다면 앱톰이라면 못할 것도 없다.
"어째서 이런 짓을 한 거지?"
케이는 왜 앱톰이 이런 짓을 해가면서 자신을 유인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앱톰이었기에 망정이지 그는 방금 전까지만 해도 크로노스에게 아지트의 존재를 들킨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던 것이다. 설마 오늘이야 말로 결판을 내자고 불러낸 것일까?
"왜 그러냐고?! 네 녀석의 태도가 미적지근한 게 마음에 안 들어서 그렇다!!"
-휘익! 찰싹!!
"아악!!"
앱톰의 전기 채찍이 케이의 안면을 후려쳤다. 케이는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 다행히 앱톰은 채찍으로 그냥 후려치기만 했을 뿐 전기 공격까지는 하지 않았다. 케이는 앱톰이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도..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케이!! 넌 대체 뭘 위해서 싸우는 거냐!!"
"뭘 위해서 라니?"
"친구들을 위해서? 그래서 옛 동료였던 무라카미에게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고 패한 거냐! 흥, 가소롭군!"
무라카미 얘기가 나오자 케이도 그만 발끈하였다. 앱톰이 왜 저러는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듣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무라카미 씨가 어떤 사람이었는데....
"시끄러! 네가 뭘 안다고! 우리와 무라카미 씨는...."
"그래! 난 몰라!!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아!!"
케이가 소리치려는 순간에 앱톰이 먼저 소리 질러서 케이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그리고 앱톰은 케이에게 중요한 사실 하나를 가르쳐 주었다.
"내가 아는 건 단 한 가지. 네가 그 때 무라카미와의 싸움을 포기한 대가로 너는 네 친구들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들었다는 사실이야!"
"!!!"
케이는 그대로 경직되었다. 그랬다. 그건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자기가 무라카미와의 싸움을 포기하는 바람에 베르단디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두의 목숨까지 위기에 처했었던 것이다. 그 때 당시 지상에서 엔자임 III들과 싸웠던 아키토와 앱톰, 린드 뿐만이 아니라 뒤에서 지원했던 베르단디들까지 전부 전투는 고사하고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 그 때 아키토가 기간틱과의 융합에 실패했었다면....무라카미는 틀림없이 모두를 죽였을 것이다! 자신의 행동이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케이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네 녀석이야 어디서 뒹굴다가 뒈지던 내가 알바 아니지만...."
앱톰은 케이에게 바짝 다가섰다. 그리고 갑자기 케이의 목을 꽉 움켜쥐고 번쩍 치켜들었다. 앱톰의 손에 잡힌 케이는 괴로운 듯이 버둥거렸다.
"컥!"
"그렇게 되면! 그렇게 무기력하게 죽으면 네 손에 죽은 솜룸과 다임의 죽음은 개죽음이 돼버려!!"
-부웅!! 콰앙!!!
"우아악!!"
앱톰은 그대로 케이를 건물 벽면을 향해 힘껏 던졌다. 케이는 그대로 십여 미터를 날아가서는 벽면에 볼품없이 쳐 박혔다. 앱톰의 강력한 힘에 의해 건물 벽면이 움푹 패이며 금이 갔다. 케이는 잠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땅에 쓰러진 케이를 향해 앱톰은 침을 뱉듯이 말했다.
"지금의 널 죽이는 거는 간단해. 허나, 이렇게 약해진 네 녀석 따위 죽여 봐야 솜룸과 다임은 기뻐하지 않아."
앱톰이 보기에는 지금의 케이는 옛날보다 훨씬 약해졌다. 물론 기간틱을 얻은 지금은 전투력으로만 보자면 옛날보다 굉장히 강한 것 같아 보인다. 그러나 가이버 III에게 의지력에서 밀려서 기간틱을 저리도 쉽게 뺏긴다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1년 반전에 앱톰 자신과 솜룸, 다임의 손종 실험체부대, 그리고 그 하이퍼 조아노이드 5인중과 사투를 벌이던 당시의 케이는 싸울 의지가 넘쳐났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그리고 소중한 동료들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던 그 때의 케이가 훨씬 더 강하게 느껴지는 앱톰이었다.
-부웅!!
앱톰은 등의 날개를 펼쳐서 어딘가로 날아가 버렸다. 케이는 그런 앱톰의 모습을 그저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결국 그는 앱톰의 말에 하나도 반박할 수가 없었다. 결국 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무책임하게 싸움을 포기하는 바람에 케이는 모두의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설령 예전의 동료였다고 해도 무라카미는 케이를 비롯해서 모두를 확실히 죽이려고 왔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옛 정에 얽매여 싸움을 포기하고 말았고 그런 나약한 마음은 결국 기간틱의 주도권을 아키토에게 뺏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케이."
그 때 케이의 옆에서 누군가가 케이를 불렀다. 깜짝 놀란 케이가 고개를 돌리자 그 자리에는 린드가 서 있었다. 깜짝 놀란 케이는 황급히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도대체 여길 어떻게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그것보다 아까부터 자신과 앱톰의 대화를 다 들었을까?
"리...린드. 난...."
"베르단디가 걱정하고 있다."
허나 린드의 표정은 평소처럼 차분할 뿐이었다. 대화를 다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케이는 차마 물어볼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왠지 못된 짓 하다가 들킨 어린아이 같은 심정이었다. 그런 케이의 마음과는 관계없이 린드는 평소와 같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 네가 잠시 바깥을 순찰중이라고 둘러대긴 했지만 여기 오래 있으면 모두가 의심할 거다. 일단 빨리 돌아가자."
"....으...응."
"돌아가면 적당히 바깥바람도 쐴 겸 주변 순찰 좀 했다고 둘러대라. 모두는 지금 그렇게 알고 있다."
그렇게 말한 린드는 그대로 아지트 쪽으로 날아갔다. 케이 역시 린드를 쫓아 하늘로 날아갔다. 아지트로 돌아가는 케이의 모습이 오늘따라 더욱 더 무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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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쳐의 위치는 파악했나?!"
"놓쳤습니다! 감시 시스템에 피해가 큽니다!!"
크로노스 본부 기지의 중앙 관제실이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갑자기 본부 기지 최상층 부를 뚫고 정체불명의 적이 난입한 것이다. 최상층부의 헬기 이착륙장을 뚫고 난입한 적은 그대로 바닥을 맹렬한 기세로 부수면서 아래로 내려갔다. 그 속도가 워낙 빨라 조아노이드 경비 부대가 미처 대응하지 못했다. 중앙 관제실은 적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라고 이들은 갑작스런 사태에 혼란에 빠져들고 있었다.
-콰아앙!!
갑자기 관제실 정문이 크게 터져 나가면서 뭔가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폭발사고에 대비해서 제작된 두터운 강철제 문이 너무나 어이없을 정도로 가볍게 터져 나갔다. 공포에 질린 관제원들이 일제히 바닥에 엎드렸다. 대부분은 바닥에 바짝 엎드린 채로 부들부들 떨어대고 있었지만 일부는 용기를 내서 간신히 정문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정문에 처음 보는 커다란 몸집을 가진 검은 거인을 볼 수 있었다.
"중앙 관제실과 연락이 안 됩니다!"
"제 1 플로어 C, D 구역에 대규모 화재 발생!"
본부 기지의 최하층부 최고 간부 집무구역에서 발카스는 심각한 표정으로 상황실의 대형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쳐들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30분도 안돼서 기지 전체가 큰 피해를 입었다. 처음엔 어디선가 폭발 사고 같은 게 일어난 줄 알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어쨌든 적의 공격이 확실한 이상 응전을 해야 하지만 적의 정체나 숫자 등이 전혀 파악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부대를 움직였다가는 오히려 혼란만 부추길 수 있었다.
"앗! 중앙 관제실에서 호출이 옵니다!"
그 때 관제원이 뜻밖의 보고를 해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중앙 관제실은 호출에 아무도 응답하지 않았었다. 적의 공격으로 모두 다 죽거나 통신 시스템이 파괴된 줄로만 알았는데 혹시 생존자가 있는 걸까? 아니면 근처에 있던 경비부대가 중앙 관제실을 다시 탈환한 것일까? 발카스는 마른 침을 삼키며 전면의 대형 스크린을 처다 보았다. 화면이 지직 거리면서 잠시 후 중앙 관제실과의 통신이 연결되었다.
"아...아니!!"
그런데 스크린에 나타난 인물은 크로노스의 대원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검은 거인의 모습이 있었다. 그 거인이 통신을 열어서 이곳을 호출한 것이다. 간부 집무구역의 관제원들은 저 거인의 정체를 알 수 없어서 술렁거렸지만 발카스는 저것이 무엇인지 대번에 알 수 있었다. 그가 알고 있던 기간틱과는 색깔이나 몸의 일부 디테일이 좀 다르긴 했지만 틀림없었다. 저것은 기간틱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정체는....
"네 놈이었냐, 가이버 III 마키시마 아키토!!!"
-"과연 눈치 하나는 빠르시군. 닥터 발카스. 이 모습은 나의 파워 업 형태, '기간틱 다크'라고 하지. 어때, 멋지지 않나?"
아키토는 화면 너머에서 발카스를 보며 빈정대듯이 말했다. 발카스는 분함을 꾹 누르고 말을 이어 나갔다. 녀석이 이곳에 온 목적을 알아내야 했다.
"이 무례한 놈! 이곳엔 왜 온 거냐!!"
-"뻔 한 얘길. 내 목적은 크로노스의 타도. 우선은 그 시작으로 이 본부 기지를 완전히 날려버리려고 왔지."
"네 따위에게 그게 가능할 듯싶으냐!"
-"물론이지. 이 기간틱 다크라면 충분해. 난 지금 당장 최하층으로 내려가겠다. 그리고 거기서 위를 향해 기가 스매셔를 날리겠다."
그 말을 들은 발카스는 경악하였다. 기가 스매셔는 메가 스매셔의 백배의 위력을 낸다. 만약 기지 지하에서 위쪽을 향해 그걸 쏜다면 이 본부 기지는 완전히 파괴돼버리고 만다! 꼭 쥔 발카스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럼 이따가 맨 아래층에서 보자고."
아키토는 거기까지 말하고는 통신을 끊어 버렸다. 발카스는 공포에 질려 잠시 동안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이 기지가 생겨난 이래로 최악의 위기였다. 크로노스의 역사가 시작된 이곳이 단 한 놈에게 무참하게 사라질 판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다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비상! 비상을 걸어라!! 총원 전투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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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카스의 지시에 따라 기지내부에 비상벨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모든 통로가 봉쇄되었고 각층을 운행하던 엘리베이터는 전부 운행을 멈추고 병력의 이동에만 사용될 수 있도록 중앙 관제실에서만 컨트롤되었다. 물론 기간틱 다크가 엘리베이터를 쓸리는 없지만 이들은 지금 비상수칙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샤프트 갱도 내의 자이언트 셔터를 긴급 폐쇄합니다!"
-쿠오옹!! 쿠르르르!!!
본부 기지 전체를 관통하는 세 개의 초대형 엘리베이터 샤프트 갱도에 있던 자이언트 셔터가 굉음을 울리면서 천천히 닫히고 있었다. 본부기지의 엘리베이터 갱도는 바위산 꼭대기 부근부터 지면에서 지하 5Km 아래까지 일직선으로 관통하고 있는 거대한 공동(空洞)이다. 비상시에는 이곳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철근콘크리트 제의 거대한 차단벽이 존재하는데 이것이 바로 자이언트 셔터다. 두께만 거의 50m에 달하고 완전히 닫는 데만 거의 20분은 걸리는 이 차단벽은 원자력 발전소의 그것을 초월하는 강도를 자랑한다. 사실상 핵폭탄 이외에 이것을 완전하게 파괴할 수 있는 무기는 없을 정도다. 이런 격벽이 상층부부터 최하층까지 전부 5개가 존재하였다. 그러므로 이론상으론 이것을 닫아 놓으면 최하층까지는 절대로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자이언트 셔터 레벨1 부터 레벨 3까지 차단 완료! 레벨 4는 8분후, 레벨 5는 12분후 작업 완료 예정입니다."
하지만 발카스는 이 자이언트 셔터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상대는 다름 아닌 기간틱. 이런 격벽 정도는 아마도 파괴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게 얼마나 걸릴지가 관건이었다. 중요한 건 어떻게 해서든 녀석이 최하층으로 가는 시간을 늦춰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버는 동안 이쪽은 대응책을 마련해야 했다.
"기간틱 다크, 자이언트 셔터 레벨 1에 출현! 레벨 1의 보안부대가 곧 교전에 들어갑니다!"
관제실이 숨 가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전면의 대형 스크린에 이미 닫힌 자이언트 셔터 위에 내린 기간틱 다크에게 떼거리로 달려들고 있는 조아노이드들의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저것들 역시 기간틱 앞에서는 추풍낙엽일 뿐이다. 그저 단 1초라도 시간을 벌수만 있다면 충분했다. 발카스는 다음 명령을 내렸다.
"좋아. 희생이 얼마가 나오건 간에 녀석의 발목을 최대한 붙잡아라. 그리고 생체 열선포를 가진 조아노이드들을 한 마리도 남김없이 싹 모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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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우웅!!!
"웃! 보스가 한바탕 하고 있는 것 같군."
복도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아키토와 함께 기지내로 잠입한 베루더는 직감적으로 기간틱 다크가 뭔가 엄청난 일을 벌인 것이라는 걸 알았다. 하긴 덕분에 이렇게 놈들의 눈에 띄지 않게 기지 내를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지만.
이게 아키토의 작전이었다. 먼저 아키토가 기간틱 다크로 변신해서 본부 기지에 정면 공격을 가한다. 그렇게 되면 적들의 시선은 온통 아키토에게만 쏠릴 것이다. 그 틈을 타서 베루더가 기지내로 몰래 잠입, 아키토가 지정한 '목표'를 확보한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본부 기지내의 전투 병력은 온통 아키토에게만 집중돼있어서 베루더의 존재까지는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우선 베루더는 이곳 본부 기지의 내부 구조를 전혀 모른다. 아키토 역시 그건 몰랐기 때문에 그는 지금 백사장에서 바늘 찾기 식으로 목표를 찾아 해맬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가 찾아다니는 목표는 물건이 아니라 멀쩡히 살아 움직이는 '인간' 이었다. 기지 내에 비상이 걸린 이상 어딘가로 대피했을지도 모를 노릇이었다. 그렇게 되면 찾기가 더 힘들어진다.
'일단은 실험. 개발 구역으로 가는 수밖에. 단서는 거기뿐이다!'
베루더는 엘리베이터 문 앞에 섰다. 버튼을 눌러봤지만 엘리베이터는 작동하지 않았다. 기지내의 모든 엘리베이터가 통제된 것이다. 잠깐 짜증을 부린 베루더는 두어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는 엘리베이터 문을 겨누고 손바닥을 펼쳐보였다. 잠시 숨을 고른 그가 큰 목소리로 외쳤다.
"합!!!"
-콰앙!!
베루더의 손에서 기공파가 발사 되서는 엘리베이터 문을 파괴하였다. 그렇게 해서 강제로 문을 연 베루더는 그대로 엘리베이터 통로 아래로 뛰어내렸다. 이런 식으로 해서 적들의 시선도 피하고 도착 시간도 단축하려는 것이었다. 일일이 비상계단을 뛰어 내려갈 시간 따위는 없었다. 아무리 아키토가 기간틱 다크라고는 해도 여기서 계속 싸우다가 적들의 증원이라도 왔다가는 골치가 아파지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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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아!!!"
"우워어어어!!!!"
자이언트 셔터 레벨 2에서 또 다시 전투가 시작되었다. 이미 레벨 1의 셔터는 기간틱의 공격에 대파되고 말았다. 레벨 1의 자이언트 셔터를 돌파한 아키토를 향해 또 다시 수많은 조아노이드 무리가 달려들었다. 이들에게 내려진 명령은 단 하나, 목숨을 버려서라도 기간틱 다크를 최하층까지 보내지 말 것.
그러나!
"우글우글 거리는 게 무슨 바퀴벌레들 같군. 흡!!!"
-위이잉!!
아키토는 주먹을 꼭 쥐고 주먹에다가 에너지를 집중시켰다. 중력조절용 에너지 앰프를 가진 기간틱의 타격기, '그래비티 펀치(Gravity punch)'였다. 조아노이드들이 아키토를 사정권에 넣은 바로 그 순간 아키토는 바닥에 주먹을 있는 힘껏 내리쳤다.
"타앗!!"
-콰아아앙!!!!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폭팔시 발생한 강력한 충격파는 아키토에게 달려들던 조아노이드들을 저 멀리 튕겨내 버렸다. 한 순간에 수십 마리의 조아노이드가 산산조각이 나 버렸고 더불어 공격받은 자이언트 셔터 레벨 2 역시 한 방에 관통당하고 말았다. 아키토는 뚫린 구멍 사이로 몸을 던져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눈앞에 저 아래쪽에 있는 자이언트 셔터 레벨 3과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는 백 마리는 더 되 보이는 조아노이드 무리가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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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언트 셔터 레벨 2 대파!! 막을 수가 없습니다!!"
"기간틱 다크, 레벨 3에 도착! 레벨 3의 경비부대가 교전에 들어갑니다!"
발카스는 굳게 입을 다문 채 말 없이 전면의 대형 스크린을 주시하였다. 역시나 기간틱에게는 자이언트 셔터라 해도 무력할 뿐이었다. 옆에 있던 발카스 직속 비서는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발카스에게 간청하였다.
"닥터! 어서 빨리 피하십시오! 여기계시면 위험합니다!"
그러나 발카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는 도망갈 생각 자체가 없었다. 지금 이 본부기지에 있는 조아로드는 자신뿐이다. 만약 자기가 이대로 도망간다면 남은 병사들을 지휘할 사람이 없게 된다.
사실 지금 당장 발카스가 여기서 도망친다 해도 아무도 뭐라 욕할 수가 없다. 상대는 조아로드를 압도하는 가이버 기간틱이다. 조아로드라고는 하지만 이제까지 전투하고는 별로 인연이 없는 삶을 살아온 과학자인 발카스가 혼자서 어찌해 볼 수 있는 상대는 절대 아니었다. 게다가 발카스는 크로노스의 두뇌라고 까지 불릴 정도로 크로노스에겐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조아노이드 및 조아로드의 조제, 그리고 방주 계획까지. 그의 손을 거쳐 가지 않은 게 없을 정도다. 그리고 지금의 크로노스에게는 이 본부기지가 설령 파괴된다 해도 다시 재건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간틱 다크가 이 기지를 그냥 부수게 놔둘 수만도 없었다. 지금의 크로노스는 옛날처럼 어둠속에 숨어 암약하는 비밀결사가 아니다. 지구의 하등한 구 인류들을 지배하는 지배자였다. 그런 지배자의 본부가 단 한명의 불온한 자에게 박살이 나게 되면 크로노스의 체면은 땅에 떨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에게는 이 기지를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이유가 또 있었다.
"이 곳은 우리들의 성지다. 절대로 저런 놈에게 넘겨줄 수는 없어!"
이곳 본부기지 지하에는 태고적에 강림자들이 타고 왔던 우주선의 잔해가 잠들어 있다. 비록 미나카미 산의 살아있는 유적과는 달리 다 말라 비틀어져 화석이 돼 버린 물건이지만 크로노스 과학력의 기초는 바로 이곳에서 입수한 것이다. 즉 크로노스 역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본부기지였다. 크로노스의 모든 구성원에게 이곳은 성지(聖地)라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어떤 수를 쓰던 간에 반드시 지켜내야만 하는 곳이었다.
"닥터 발카스. 보고 드립니다."
그 때 하급 전투원 한 명이 발카스에게 달려와서는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다른 소식을 전했다.
"지시하신 대로 현재 전투중인 요원들을 제외한 레벨 3부터 5까지의 생체 열선포형 조아노이드 부대 총 217명이 최하층부에 집결하였습니다."
그 말에 발카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모든 준비는 다 됐다. 슈퍼 병기를 걸쳤다고 남의 성지를 휘젓고 다니는 괘씸한 놈에게 한 방 먹여줄 수 있는 준비가. 발카스는 황급히 최하층으로 내려가는 직통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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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아아아!!!"
자이언트 셔터 레벨 3에서 드디어 전투가 벌어졌다. 아키토는 이번에도 끊임없이 몰려나오는 조아노이드 부대를 보며 혀를 찼다. 과연 본부기지답게 숫자 하나는 끝내주게 많았다. 하지만 두려운 마음 같은 건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이젠 좀 지겹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뭐 지겹다고 안 싸울 수는 없는 노릇이니 베루더로부터 소식이 올 때 까지는 놈들과 적당히 놀아줘야 했다. 아키토는 양 팔을 들어 올려 가슴께에 모았다. 그리고 자신에게 몰려오는 조아노이드 부대를 조준하였다.
-촤아아!!
그러자 그의 팔에 있던 6개의 고주파 소드가 길게 늘어났다. 고주파 소드는 마치 한 마리의 용처럼 적진을 휘젓고 다녔다. 고주파 소드들이 현란하게 춤추자 수많은 조아노이드들이 그야말로 토막이 났다. 조아노이드들은 아키토에게 접근조차 못했다.
-촤악! 슈칵!!
고주파 소드는 물체의 분자 결합 자체를 풀어버리는 것으로 상대를 베는 무기. 아무리 많은 수가 뭉쳐있다 해도 고주파 소드의 진행을 막을 수는 없다. 게다가 기간틱의 고주파 소드는 그 길이도 기간틱의 신장에 몇 배 이상 길게 늘어날 수 있고 검 날도 채찍처럼 자유자재로 휘어지며 다양한 궤도로 공격을 할 수 있다. 이렇게 집단으로 덤벼오는 적들에게는 최고의 무기였다.
-스르릉! 철컥!!
아키토는 고주파 소드를 거둬들였다. 그리고 복부의 중력 제어구를 조종하면서 양 손을 한데 모아 또 다른 조아노이드 무리를 겨냥하였다. 이번엔 기간틱의 프레셔 캐논을 날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순식간에 양 손 사이에 초중력의 웜홀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헤드 센서로 다수의 적을 조준한 후 프레셔 캐논을 발사하였다.
-파파파팡!!!
손 사이에 모인 웜홀이 강력한 충격파로 변환되면서 수많은 중력탄이 크레모아처럼 조아노이드 부대를 덮쳤다. 이 공격으로 인해 또 다시 수많은 조아노이드들이 산산조각이 났다. 다수의 중력탄을 만들기 위해 위력을 떨어트린 것이라고는 하지만 그 조차도 조아노이드들에게는 파멸적인 위력이었다. 이렇게 기간틱과 조아노이드는 그 차원이 틀렸다.
"우오오오!!!!"
그러나 조아노이드들은 전혀 위축되지 않고 끊임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이들은 지금 발카스의 사념파에 지배되있기 때문에 공포를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저 명령에 따라 맹목적으로 기간틱에게 달려드는 것이었다. 사념파의 지배를 받지 않는 상태였다면 진작에 도망들을 갔을 것이다. 아키토는 다시 고주파 소드를 꺼내기 위해 준비하였다. 그 때 그의 귀에 달려있던 무전기에 신호가 왔다. 베루더와 통신하기 위해 식장하기 전에 미리 달아놓은 휴대용 무전기였다.
-"보스, 목표를 확보했습니다."
"좋아, 잘했다. 그럼 다음 단계다."
아키토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이곳 본부기지 내부 구조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기에 과연 베루더 혼자서 목표를 확보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됐었지만 베루더는 마계의 정보원답게 멋지게 일을 해냈다. 아키토의 예상보다 일찍 목표를 확보한 것이다. 아키토 혼자서 했었다면 아주 힘들거나 어쩌면 불가능했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기간틱 다크인 자신에게 적들의 공격이 집중될 테니 그 상황에서 적들을 상대하면서 목표까지 확보하는 건 확실히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베루더 덕에 이젠 목적을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후, 좋아. 그렇다면 이제 슬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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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우우웅!!!
지하 갱도 전체가 쩌렁쩌렁 울릴 정도의 엄청난 폭음이 들려왔다. 발카스는 잔뜩 찌푸린 얼굴로 저 멀리 위쪽에 자이언트 셔터 레벨 5를 보고 있었다. 폭음의 강도가 아까보다 훨씬 큰 것으로 보아 자이언트 셔터 레벨 4까지 뚫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미리 진영을 짜 놓을 수 있었으니 다행이었다. 어차피 자이언트 셔터에 큰 기대를 하지 않기도 하였고.
발카스가 있는 곳은 자이언트 셔터 레벨 5를 지난 곳, 바로 본부기지 최하층이었다. 이곳에는 12신장의 사념파를 기계적으로 확대증폭 시켜줄 수 있는 밤톨 모양의 거대한 구조물인 사이코 웨이브 제너레이터, 통칭 P. W. R이 있었다. P. W. R 자체는 비록 모양은 다르지만 세계 각지의 지부는 다 갖추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곳의 P. W. R의 출력은 전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여서 전 세계를 커버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이곳에서 지하로 더 내려가면 바로 강림자의 우주선, 크로노스가 '우라누스의 성궤'라고 부르는 유적이 있었다. 즉 이곳이 최후 방어선인 셈이었다.
"전원 빔 에너지 충전 개시!!"
발카스의 명령이 떨어지자 2백 명가량의 생체 열선포형 조아노이드들이 일제히 생체 열선포를 전개하고는 빔에너지를 충전하기 시작했다. 2백 명가량의 조아노이드들의 생체 열선포에서 나오는 열기로 지하 공간은 후끈 달아올랐다. 발카스는 사념파를 방사하여 이곳에 모인 조아노이드들의 의식을 통제하였다.
기간틱의 위력이 절대적인 건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 압도적인 힘에 정면으로 맞서면 조아로드인 발카스라 해도 목숨이 위험했다. 게다가 기간틱은 조아로드처럼 바리어까지 구사한다. 웬만한 공격으로는 약간의 타격조차 줄 수가 없다.
하지만 바리어는 방어기술. 공격을 하려면 그 순간에 바리어를 풀어야 했다. 발카스는 바로 그 점을 노렸다. 즉 기간틱이 자이언트 셔터 레벨 5를 부수는 그 순간 여기 모인 생체 열선포형 조아노이드들이 일제사격을 퍼붓는다. 그것도 그냥 막무가내로 쏘는 게 아니라 발카스 자신이 사념파로 철저히 통제해서 모두가 동시에 빔을 발사해서 그 것들이 한 점에 정확히 모이도록 초점을 맞춘다. 그런 식으로 빔에너지를 모으게 되면 위력 면에서는 가이버의 메가 스매셔를 능가하는 위력이 나올 것이다. 물론 기가 스매셔에는 한참 모자라지만 그 정도면 충분하다. 아무리 기간틱이라 해도 바리어도 없이 그 정도 위력의 빔을 정통으로 얻어맞는다면 절대로 무사할 수 없다! 이것이 발카스의 대책이었던 것이다.
"자아, 어서 오너라 아키토! 네 놈에게 뜨거운 맛을 보여주마!"
조아노이드들은 모두 발사준비가 끝났다. 그리고 발카스 본인도 준비 완료되었다. 그는 머리위의 자이언트 셔터 레벨 5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제 어디가 됐든 뚫리기만 하면 그 쪽으로 빔을 집중한다. 그렇게 하면 이길 수 있다!
-부웅! 부웅!
-오오옹!!
최하층에는 조아노이드들의 생체 열선포에서 나는 소리만 들려올 뿐 모두들 잔뜩 긴장한 채로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 발카스 역시 잔뜩 긴장한 채로 아키토가 돌입해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 식으로 5분, 10분, 20분이 흘러갔다. 그런데 자이언트 셔터에는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발카스는 점점 더 초조해져만 갔다. 지금쯤이면 벌써 돌입해 들어왔을 시간인데 녀석은 아직 인가?
"닥터 발카스! 큰일입니다!"
그 때 비서가 발카스에게 헐레벌떡 달려왔다. 발카스는 위로 향해 있던 시선을 비서에게로 돌렸다. 비서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무슨 일이냐."
"저...그...그게 기간틱 다크가...."
"꾸물대지 말고 빨리 말해!"
"기간틱 다크가 없어졌습니다."
"뭐라고!!"
전혀 의외의 소리에 발카스는 크게 놀랐다. 이건 또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란 말인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 최하층으로 맹렬한 기세로 돌진해 오던 녀석이 갑자기 사라졌다니! 조아노이드 부대를 압도적인 전투력으로 밀어붙이며 오던 녀석이 설마 도망이라도 갔단 말인가?
"대체 그게 무슨 소리야?! 녀석은 지금 어디 있어!!"
"감시 시스템이 대부분 파괴돼서 현재 위치를 정확히 파악할 수는 없지만....일단 이 기지를 나간 건 확실합니다."
발카스는 맥이 탁 풀렸다. 그렇다면 녀석의 목적은 이 본부기지를 파괴하는 것이 아니란 뜻이었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지금쯤 벌써 최하층으로 뛰어들어 왔을 터. 분명 뭔가 다른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 철수를 했다면 그 목적을 이루었다는 뜻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녀석은 대체 뭘 노리고 여길 온 것이란 말인가. 발카스는 머릿속이 점점 더 복잡해 지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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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이이잉!!
아키토와 베루더는 본부 기지를 무사히 빠져나와 지금은 하늘을 날고 있었다. 이제 목적을 이루었으니 아지트로 철수하려는 것이다. 아키토의 양 손에는 본부기지를 탈출할 때 같이 훔쳐가지고 나온 자재 반입용 소형 컨테이너가 들려있었다.
"좋아, 잘 해줬다. 베루더. 역시 내 생각대로 유능한 요원이군."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보스가 내부를 온통 휘저은 덕에 일이 생각보다 쉬었죠."
베루더가 확보한 목표는 지금 아키토가 들고 있는 컨테이너 안에 있었다. 이제 기지로 돌아가서 다음 단계에 착수할 차례였다.
"그런데 보스. 전 보스가 목표를 확보했어도 일단 저 곳을 끝장낼 줄 알았습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어."
베루더는 아키토의 말이 의외라는 듯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아키토는 진심이었다. 처음부터 그의 목적은 본부기지에 있는 것으로 확인된 '목표'를 손에 넣는 것이었다. 그의 힘을 빌어야만 다음 계획을 진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만약 본부 기지를 끝장내겠다고 기가 스매셔를 쓰게 되면 아키토에게 위기가 닥칠 수도 있었다. 기가 스매셔는 일격 필살. 그 엄청난 위력을 끌어내기 위해서 소모되는 에너지는 엄청나다. 일단 한 번 쏘면 기간틱의 에너지가 바닥나서 거인 식장이 강제로 해제돼 버리게 된다. 만약 그렇게 된 상태에서 또 다른 조아로드가 증원을 오게 되면 모든 게 끝장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과연 저 사람이 우리에게 협조해 줄까요?"
베루더는 컨테이너를 가리키며 아키토에게 물었다. 제우스의 우뢰가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꼭 필요한 인재였다. 문제는 이렇게 강제로 납치된 그가 과연 아키토에게 협보해 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베루더의 질문에 아키토는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다.
"걱정 마. 우리에게 협조하지 않고는 못 배길걸? 그를 달래는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자넨 그건 신경 쓸 필요 없어."
Next episode 제12화 '아키토의 책동'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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