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날개 1화-몬스터(6)
페이지 정보
본문
카이안에게 머리를 맞고 기절한 다음 날부터 케이는 기존에 하던 수련과 병행해서 새로운 수련을 하게 되었다. 카이안이 지금까지 용병 생활을 하며 깨달은 모든 것을 케이에게 전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용병이 알아야 할 것들과 몬스터를 상대할 때라든가 예기치 못한 위급 상황이 다가왔을 때의 최선의 대처법이나 서바이벌에 필요한 모든 지식 등을 최대한 자세히 가르쳤다. 그리고 하루에 2시간씩 카이안과의 대련이 수련에 추가되었다. 케이가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에 나온 결과였다. 케이의 나이 13세 때, 일어난 케이의 비극이었다.
케이는 입으로는 불평을 하면서도 카이안이 제안하는 수련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했다. 수련을 착실하게 따라가기만 해도 자신의 실력이 부쩍 는다는 걸 알기에.
“하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케이는 아무도 들어줄 리 없는 외침을 하늘에 토했다. 케이가 지금 하는 수련은 물속에서 검을 휘두르는 것이었다. 카이안의 말로는 물속에서도 물 밖에서와 다름없는 속도로 검을 움직일 수 있다면 지상에서는 검의 속도가 두 배 이상은 빨라질 거라나 뭐라나. 분명 며칠 수련을 해본 결과 카이안의 말이 신빙성이 어느 정도 있다고는 느끼고 있지만 이건 힘들어도 너무 힘들었다. 손과 발에는 여전히 10kg 짜리 쇠덩어리가 달려있고 물속이라 공기는 희박하고 검은 뜻대로 안 휘둘러지고 신경 써야 되는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사악한 아버지, 혹시 이거 일부러 괴롭히는 거 아니야?’
카이안에게 수련을 받기 시작한 지 3년, 계절이 3번 변할 동안 케이는 카이안에게 수련을 빙자한 고문을 받아야 했다. 그 어떤 말도 통하지 않았다. 카이안이 그 날 정해준 수련을 끝내지 못하면 그 날 밥은 없는 건 기본이었다. 그렇게 쫄쫄 굶기고는 다음 날 그대로 수련을 강행했다. 그것도 전 날 다 못 채운 분량까지 덤으로 얹어서. 더군다나 그는 사악하게도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케이를 굴렸다. 며칠간 밥을 굶긴 뒤 아사(餓死)직전에서야 간신히 죽지 않을 만큼의 식량을 준 뒤, 또 다시 수련을 빙자한 고문을 강행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이 여지껏 살아 남은게 대견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걸로 오전 수련은 끝이다. 주어지는 휴식 시간은 점심을 먹는 시간과 1시간이라는 약간의 자유시간. 그 이후에는 또 다시 카이안에게 훈련을 빙자한 고문을 받아야 한다.
‘근데 어째서 하면 할수록 익숙해져야 하는 수련이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걸까?’
몇 달에 한번씩 새로운 수련이 추가되기는 하지만 하루 종일 같은 것만 하고 있으면 싫은 것도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케이는 전혀 익숙해지지가 않는 것이다. 하루 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될 것 같았던 목검의 무게도 하루가 지나니 다시 무거운 것처럼 느껴지는 기분. 현재 케이가 사용하는 목검의 무게는 10kg이다. 티아가 열흘에 한번씩 마법으로 무게를 늘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을 수밖에. 그것도 모르고 케이는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 수련에 의문을 품고 있었다.
“어머, 오전 수련은 끝난 거니?”
케이는 얼굴에 드리우는 그림자에 고개를 돌려보았다. 그곳에는 몸을 반쯤 숙이고서는 케이를 바라보는 여인이 있었다.
“아, 이즈미 씨. 이곳엔 어쩐 일로…….”
“우후훗, 산책이야.”
“……하아.”
이 말, 언제 들었던 것 같은데.
케이가 수련하는 곳은 마을 근처에 있는 널따란 호수였다. 마을 근처에는 이런 호수가 몇 개 있었는데 이런 곳은 흔히 동물들이 물을 마시러 오는 곳이었다. 이곳은 호수지만 반대편에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어서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젖줄로 삼고 있었다.
“역시 여기는 경치가 좋구나. 물이 반짝반짝 빛나는게 너무나 아름다워.”
그 말에 케이도 방금 전까지 자신이 수련하던 호수를 바라보았다.
쏴아아.
불어오는 바람에 맞춰서 조금씩 흔들리는 수면. 그런 수면에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며 물결에 따라 조금씩 빛을 반사시켜 마치 호수에 은빛의 가루들을 풀어놓은 것처럼 호수가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
특히 이곳은 몇 안되는 호수들 중에서도 가장 숲과 멋진 조화를 이룬 곳으로써 가끔 마을 사람들이 산책을 나오는 곳이기도 했다. 그런 이 호수에서 케이가 수련을 해왔던 이유는 단순히 이곳의 호수가 가장 깊기 때문에. 이곳도 카이안이 지정해준 장소였던 것이다.
“케이도 그렇게 생각하지?”
“우, 우왓! 놀랐잖아요. 이즈미 씨!”
갑자기 이즈미의 얼굴이 불쑥 나타나자 케이는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우후훗.”
이즈미는 평소처럼 그저 방긋이 웃어넘길 뿐이었다.
쏴아아아.
숲 저편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흩날리는 금빛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호수를 바라보는 이즈미의 모습은 그녀의 뒤에 있는 호수와 어울려 매우 아름다운 장면을 연출해냈다.
“예쁘네요.”
“응? 그렇지. 특히 햇살이 수면에 비쳐서 반짝거릴 때가 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
“아뇨. 그 호수의 앞에 서있는 이즈미 씨의 모습이 예쁘다고요.”
이즈미는 케이의 말이 의외였던 듯, 눈이 동그레져서 그를 바라본다. 케이 군, 대담하네. 우후훗.
“어머, 어머.”
살짝 눈웃음을 그리며 이즈미는 서서히 케이에게 다가갔다.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던지라 이즈미는 금세 케이 앞에 설 수 있었다.
스윽.
슬며시 양손을 케이의 얼굴에 댄다. 케이의 키는 160cm, 이즈미의 키는 그보다 5cm 더 컸기에 케이는 그런 이즈미를 올려다보아야 했다.
“케~이~군, 지금 나에게 고백한 거야?”
“옛?”
이건 또 무슨 소리래? 장난하시는 건가? 흠냐. 아! 그 말을 오해하신건가. 그럼 나도 장단을 맞춰볼까?
“흐음, 글쎄요. 만약 고백이라고 한다면 저와 사귀어주실 건가요?”
“우후훗, 케이라면 환영이야. 어때? 진짜 고백이었어?”
이걸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케이는 이즈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즈미는 여전히 그 특유의 웃음을 짓고서는 케이를 바라본다.
‘끄응, 엄청난 포커페이스. 도저히 진심을 읽을 수 없다.’
결국 그녀의 맘을 읽기를 포기한 케이. 항복 선언을 한다.
“에휴, 몰라요. 이즈미 씨, 장난은 이쯤에서 그만하죠. 전 이제 슬슬 수련 시간이 다 되서 그만 가볼게요.”
“그래, 수련 열심히 하렴.”
“네.”
서둘러 집으로 달려가는 케이. 이즈미는 그 자리에 서서 멀어저가는 케이의 등을 바라보았다. 케이를 바라보는 이즈미의 얼굴이 왠지 조금 어두워 보이는 것은 착각일까?
“……바보, 뭐가 장난이야. 이런 걸로 장난을 할 리가 없잖아.”
나직한 중얼거림은 케이에게 닿지 못하고 바람에 흩어졌다. 그녀의 우울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호수는 빛나고 있었다.
시간은 유수같이 흘러 케이는 18살이 되었다. 그 날도 케이는 변함없이 정해진 분량의 수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녀왔습니다.”
“케이, 잠시 일루 오거라.”
평소 이런 일이 흔치 않았기에 케이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카이안의 앞에 가서 앉았다. (바닥이 아니다. 의자에 앉은 거다.)
“자. 이걸 받아라.”
케이에게 내밀어지는 길다란 물건 하나. 길이 1m 40cm, 폭 3cm정도의 바스타드 소드 였다. 시중에서 돈 몇푼 주고 구할 수 있는 널리고 널린 그런 물건이 아니라 검면에 포효하는 드래곤이 정교하게 양각된, 척 보기에도 명검이라 불릴 만한 그런 검이었다.
“이걸 왜 제게?”
“그 검은 내가 용병 일을 할 때, 사용하던 것이다. 이제부터는 너의 파트너가 될 검이기도 하고.”
“그러니까 이걸 왜 제게 주냐고요?”
“왜긴. 너도 이제 슬슬 용병을 해봐야지. 우선 가까운 길드의 지부가 아덴 영지에 있으니 그곳으로 가서 용병 등록을 하고 오거라. 서둘러야 한다. 왕복에 보름 정도 걸릴테니 말이야.”
“지금 출발하라고요?”
“그래, 자, 이걸 받아라.”
카이안은 케이에게 하나의 주머니를 전해주었다.
“이건?”
“확장 마법이 걸린 마법 주머니다. 내 기억이 맞다면 보존마법도 걸려있으니 식량도 상할 수 있는 음식도 얼마든지 넣고 다닐 수 있을거야.”
“어느 정도나 넣을 수 있는데요?”
“에…그러니까 이런 집 네 채 정도는 들어갈 수 있을거다.”
“그거⋯많이 들어가는 건가요?”
“왜? 적다고 생각하냐? 그정도면 꽤 들어가는 걸 텐데?”
“아뇨. 보통 이런 마법주머니가 흔한가 해서요.”
“그리 흔하지는 않지만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잃어버리면 가만 안둔다. 자자, 서두루지 않으면 보름 내에 다녀오질 못한다. 얼른 서둘러라.”
“알았어요. 그리 재촉하지 마세요.”
케이는 카이안의 재촉에 마지못해서 허리에 바스타드 소드를 차고 주머니를 품에 넣고서는 집을 나섰다. 햇빛이 대지를 비추는 오전에서 오후로 넘어가는 시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이것이 카이안과 케이가 나눈 생의 마지막 대화였다.
-------------------------------------------------------------
좀 짧습니다. 아마 다음편이 몬스터편의 마지막이 되겠군요.
댓글목록

베이더경님의 댓글
베이더경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요즘 스트레이 읽고 있답니다.[굉장히 재미있었다는..]
그런데 여신 베르단디님 지적 하나 있습니다.
일 때문에 자주 못 다니시는 것 같아 보이는데.
팬들을 위해서[오피를 본 독자들은 이 글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을 팬으로 지칭하겠음.]
조금 전개를 빨리 하시는게 좋지 않을까요?
원래 저도 전개를 이러쿵~저러쿵 소동 때문에 느긋하게 하려 했으나.
시간에 치이고 밟히고 하는 바람에 요즘은 급전개 중입니다.
[아직 안 나오는 녀석들의 등장까지 -_-]
암튼 연재하십쇼! 건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