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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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part 2.-
제13화 - 알칸펠의 과거 -
지구 지표면으로 부터 고도 약 200km 지점에 거대한 인공의 물체가 떠 있었다. 그 형상은 마치 백과사전의 상상도에나 나오는 고대의 원시 물고기와 비슷한 형태였고 그 길이는 무려 51km에 달했다. 바로 크로노스가 몇 달 전에 건조 완료 후 우주로 날려 보낸 생물형 우주선, '방주'였다.
위성궤도 상에 정지한 방주는 상부에 위치한 아가미 모양의 생체 태양전지 판을 전부 전개해서 태양 에너지를 열심히 흡수하고 있었다. 그 자체가 살아있는 생물인 방주는 태양 에너지를 흡수함으로서 자신의 생명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음과 동시에 장기간에 걸친 우주항해에 대비하고 있었다. 방주 내부에 조성된 생태계의 유지에도 사용되었다.
-위잉!!
방주 선수부에 있는 에너지 앰프 하나가 열리면서 밝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직후 방주의 추진 장치가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그 거대한 거체가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도 200km 지점은 지구의 중력도 약하고 공기 저항도 극히 적어서 우주라고 할 수 있다지만 그래도 51km에 달하는 그 거체가 가볍게 움직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방주는 점점 속도를 올리며 지구의 반대편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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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가 움직인다고?"
방주의 움직임은 미국 애리조나 주의 크로노스 본부기지에서도 확인되었다. 본부기지와 방주를 건조한 사해의 연구소에서는 24시간 내내 방주의 상태를 면밀히 체크하고 있었다. 방주가 기동한다는 사실은 아마 사해의 연구소에서도 확인했을 것이다. 현재 발카스가 부재중이어서 본부 기지의 관리는 임시로 발카스의 비서가 담당하고 있었다.
"누가 올라갔나? 현재는 아무도 없잖아?"
"예. 분명히 그렇습니다만.... 저희는 통보받은 것도 없습니다."
"진로는?"
"현재 날짜 경계선을 통과 중입니다. 이대로 가면 지구의 그늘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 말을 들은 비서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원래대로라면 방주는 항상 지구 자전에 역행하면서 지구의 '낮' 부분에 위치하면서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고 있어야 한다. 아직 방주의 에너지 충전 작업은 완료되지 않은 상태다. 항해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에너지가 모이려면 앞으로 반년은 더 걸린다.
현재 방주 내부에는 아무도 타고 있지 않았다. 최근에 올라간 사람도 없었고 올라가겠다고 신고한 사람도 없었다. 장기간에 걸친 우주 항해에 대비해 방주에 필요한 물자를 올리는 작업은 이미 지난달에 완료돼서 현재는 방주의 에너지가 가득 차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걸 무시하고 어째서 방주가 움직이고 있으며 그것도 하필이면 태양 에너지를 모을 수 없는 지구의 '밤' 부분으로 간단 말인가.
이윽고 방주가 한 점에 정지하였다. 그런데 좌표를 보니 방주가 멈춘 곳은 대서양 한가운데였다. 작은 섬 하나 없는 그야말로 망망대해인 곳이다. 방주는 아무것도 없는 그 곳 상공 158Km 지점에서 가만히 멈춰서 있었다. 비서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에너지 충전을 중지해가면서 까지 가야만 할 이유가 없는 곳이다.
"혹시 모르니까 발카스님께 여쭤보자. 통신 회선을 열어라."
비서는 현재 출타중인 발카스를 찾으라고 관제 요원들에게 명령하였다. 방주를 움직일 수 있는 건 12신장 멤버들뿐이니 아마 멤버 몇 명이 현재 방주를 움직이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일단 방주의 관리 책임자인 발카스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확실할 듯싶었다. 그 때 관제원들이 비명을 지르다시피 보고하였다.
"방주, 함수에 에너지를 집중하고 있습니다!"
"함저의 주포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비서는 크게 놀랐다. 도대체 뭘 포격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방주가 주포 사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방주는 아직 에너지 충전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였다. 자칫 잘못하다간 이 한 번의 주포 사격으로 모든 에너지를 소모할 수도 있었다. 비서는 황급히 관제원들에게 물었다.
"어디를 겨냥하고 있나!"
"현 위치 바로 아래입니다! 그...그런데 거기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나마 대도시 등을 노리는 건 아니라서 다행이었다. 만약 방주의 주포가 인구 밀집지역을 향해 발사된다면 그 위력은 히로시마 같은 건 명함도 못 내밀 정도의 대참사가 벌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의구심이 들었다. 아까운 에너지를 왜 바다 한가운데 같은데다 날리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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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본부기지에서 몰랐다 뿐이지 사실 방주는 그냥 바다 한가운데다가 주포를 쏘려는 게 아니었다.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강림자들의 잊혀진 유산, 시라 섬이 그 바로 아래 있었다. 방주의 주포가 겨냥한 곳은 시라 섬. 그것도 시라 섬의 한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는 알칸펠의 신전이었다. 방주의 함저 부분에서 커다란 두개의 침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 사이에 엄청난 양의 에너지가 집중되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시라 섬에 살고 있는 고대의 동물들도 본능적으로 자기들 머리 한참 위에 강력한 에너지를 가진 거대한 생명체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각자 하던 일들을 멈추고 일제히 하늘로 고개를 들어 올렸다. 상공 150Km 지점이라는 맨 눈으로는 보이지도 않는 까마득히 높은 고도였지만 방주 함수에 집중된 에너지의 강력한 빛은 똑똑히 보였다. 그 모습은 마치 밤하늘에 떠 있는 별과 같았다.
-퍼어어엉!!!
함저의 주포에서 드디어 강력한 빔이 발사되었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발사된 빔은 그대로 시라 섬의 신전 정 중앙에 정확하게 명중하였다. 빔의 맹렬한 기세로 인해 신전 전체가 거세게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빔의 홍수 속에서도 신전은 파괴되지 않았다. 오히려 방주에서 발사된 빔의 전부가 신전 안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신전 안으로 빨려 들어간 방주의 빔 에너지는 그대로 신전의 가장 깊숙한 곳 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그 곳에는 조제통안에 있는 부상당한 무라카미가 있었다.
-부오오오오!!!
방주에서 발사한 에너지는 그대로 조제통으로 집중되었다. 심하게 파손된 무라카미의 조아 크리스털이 강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동시에 조제통 전체가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에너지가 집중되는 바람에 과부하를 견디지 못한 조제통 곳곳에 금이 가면서 내부에 들어있던 배양액들이 밖으로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무라카미의 조아 크리스털이 완전하게 수복되면서 그가 두 눈을 번쩍 떴다.
-파아아앙!!
결국 과도한 에너지를 견디지 못한 조제통이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방 여기저기로 조제통의 파편이 튀었다. 그리고 박살난 조제통이 있던 자리에는 완전히 부활한 무라카미가 서 있었다. 결국 방주의 주포 에너지가 무라카미의 파손된 조아 크리스털을 완전히 복구해 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여기는.....'
무라카미는 정신이 들자 주변을 둘러보았다. 좀 낯선 방안이었다. 아무런 특징도 없는 석실 한가운데에 왜 자기가 이렇게 서 있는지 금방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는 비로소 자기가 마지막에 가이버 III의 기간틱 형태와 싸우다가 조아 크리스털이 파손당해 의식을 잃었었다는 걸 깨달았다. 조아 크리스털은 조아로드의 생명이나 마찬가지인 기관. 그것을 잃은 내가 어째서 아직 살아 있는 것일까. 무라카미는 이런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지금 그의 몸은 마치 푹 자고 일어난 것처럼 아주 개운했다. 그리고 어째서인지 이전보다 힘이 더욱 더 넘쳐나는 것만 같았다.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음! 뭐지?'
그 때 무라카미는 아주 거대한 생명반응을 느낄 수 있었다. 좀 더 정신을 집중해보니 이 곳의 바로 위, 그것도 까마득히 높은 곳에 떠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 반응이라면 생물 거함 방주가 틀림없었다. 무라카미는 서둘러 석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왜 방주의 반응이 느껴지는지 신경 쓰였다. 마치 방주가 자기 때문에 일부러 이곳으로 와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밖으로 나온 무라카미는 자기가 있던 장소가 시라 섬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때 요코하마에서 가이버 III에게 패한 자신을 알칸펠이 여기로 데려온 것 같았다. 이 섬의 존재는 발카스를 제외한 그 누구도 모른다. 그리고 발카스는 그 때 당시 미국에 있었고 만약 발카스가 무라카미를 거뒀다면 애리조나 본부 기지로 데려가지 이 곳으로 데리고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무라카미는 서둘러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전속력으로 저 높이 있는 방주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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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득히 높은 고고도로 올라가자 밤인데도 거대한 생물체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 방주가 떠 있는 상공 150km 지점은 대기가 극히 희박한, 그야말로 우주라 할 수 있는 곳이지만 조아로드인 무라카미에게는 별 문제가 없었다. 바리어를 펼치면 그만이기 때문이었다. 방주의 함수 부분에 도착하자 조아로드의 반응을 느낀 방주가 스스로 출입문을 열었다. 무라카미는 그 안으로 들어갔다.
방주 내부로 들어선 무라카미는 방주의 메인 브리지로 가기 시작했다. 방주는 길이만 50Km, 폭도 16Km를 넘기 때문에 메인 브리지까지 걸어가려면 그야말로 한참 걸린다. 아니 브리지뿐만이 아니라 다른 구역을 가는 것도 그냥 가는 건 시간이 너무 걸린다. 그렇기 때문에 방주 내부에는 일종의 고속 교통수단이 있다. 각 구역 출입구 바닥에는 일종의 리니어 카 역할을 하는 원반들이 다수 배치돼 있다. 한두 명 정도만이 탈 수 있는 개인용의 작은 원반부터 십 수 톤 급의 대형 화물도 운반할 수 있는 대형 원반까지 다양한 종류가 비치돼 있었다. 무라카미는 그 중에서 개인용의 소형 원반에 탑승하였다.
메인 브리지로 가는 길은 벽면이 온통 강화 유리로 제작된 사방이 확 트인 통로였다. 그 유리벽너머로 방주 내부에 조성된 광대한 숲이 보였다. 모두 지상에서 가지고 온 식물들로 구성된 것이다. 방주 내부는 지구의 자연 환경과 아주 똑같이 구성돼있다. 기온, 습도, 대기조성, 기압, 심지어 중력도 지구와 같은 1 G(Gravity : 중력)로 맞춰져 있다. 몇 세대에 걸친 장기간의 우주 항해에 대비해서 모든 식량을 자급자족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식량뿐만이 아니라 보통의 우주선처럼 길어야 며칠 타고 가는 항해가 아니라 어쩌면 수백 년이 걸릴 수도 있는 장기간 항해를 견디려면 이렇게 지구와 아주 똑같은 환경을 조성해 둘 필요가 있었다. 숲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조아노이드를 실험할 필요가 있었기에 규모는 매우 작지만 사막도 있고 극지방과 같은 환경에 바다까지 있었다. 이 방주 내부는 그야말로 작은 지구라고 할 수 있었다.
이윽고 무라카미는 방주의 메인 브리지에 도착하였다. 메인 브리지는 12신장 멤버 모두가 모여 방주의 전체적인 컨트롤을 행할 수 있는 방주의 핵심적인 지역이었다. 원형의 커다란 방 중심부에는 신장 멤버들이 자리할 좌석들이 원형으로 배치돼 있었고 그 한가운데에는 마치 탑처럼 모두를 내려다보며 지휘할 수 있는 자리가 있었다. 바로 알칸펠이 앉을 자리였다. 무라카미는 그 쪽으로 올라가 보았다. 역시나 예상했던 대로 그 자리에는 알칸펠이 있었다. 알칸펠은 잠이 들었는지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알칸펠님."
무라카미가 조용히 알칸펠을 불러 보았다. 그러자 알칸펠이 눈을 희미하게 떴다. 그는 건강하게 회복된 무라카미를 보더니 살짝 미소 지었다.
".....깨어났구나, 무라카미."
"어째서 이런 무모한 짓을 하신 겁니까. 지금 몸도 불편하신 분께서."
방주를 기동 시키는 건 12신장 전원의 힘이 필요하다. 방주의 선체 곳곳에는 모두 12개의 에너지 앰프가 위치하고 있다. 이 앰프는 주로 중력제어를 행하는 기관으로서 이걸로 방주는 추진력을 얻는 것이다. 각각의 에너지 앰프는 12신장의 조아 크리스털과 연동돼 있기 때문에 신장 멤버 전원이 모이지 않으면 방주는 움직일 수가 없다. 일단 기동을 성공시켜 일정한 속도를 내는 순항 단계에서는 꼭 멤버 전원이 모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정지 상태에서 방주의 모든 기능을 활성화 시키고 이 육중한 선체를 움직이려면 모두의 힘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알칸펠은 혼자만의 힘으로 이 방주를 기동시켰다. 알칸펠의 절대적인 힘이라면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지만 알칸펠 본인에게도 이건 상당한 부담이 가는 일이다. 더군다나 지금의 알칸펠은 휴면기를 앞둔 상태라서 몸의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다.
"그런 표정 짓지 말라고.... 의식을 잃고 있던 널 내버려둘 수는 없었으니까 말이야."
"알칸펠님...."
"이제 안심하고 잠들 수 있을 것 같군..... 무라카미, 날 시라 섬으로....."
알칸펠은 다시 눈을 감았다. 역시나 무리하게 방주를 혼자서 기동시켜서 지친 모양이었다. 무라카미는 잠이 든 알칸펠을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그리고 시라 섬으로 돌아가기 위해 메인 브리지를 나갔다.
"걱정 말고 편히 주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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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멍청이들아!! 그걸 왜 이제야 보고하는 거야!"
조제시설 시찰차 워싱턴에 나와 있던 발카스는 본부기지의 보고를 받고 노호성을 터트렸다. 스크린 너머의 비서는 발카스의 호통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죄...죄송합니다! 방주에 관해서는 12신장 여러분들께서 관장하시는 것인지라 박사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신 줄 알고...."
"변명은 필요 없다! 지금 방주는 어디 있나?"
-"옛! 좌표를 보내겠습니다!"
곧이어 스크린에 지도가 투영되면서 방주의 위치가 표시되었다. 그 화면을 본 발카스는 깜짝 놀랐다. 지도상에는 아무것도 없는 곳으로 표시되 있지만 발카스는 거기가 어딘지 단번에 알아내었다. 바로 알칸펠의 거처인 시라 섬이었다.
-"현재 방주 내부의 에너지는 거의 바닥난 상태입니다. 그리고 분석 결과 방주가 발사한 빔은 파괴력이 없는 하이탈 빔으로서 어딘가에 에너지를 공급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발카스는 모든 걸 알 수 있었다. 방주를 움직인 것은 다름 아닌 알칸펠이었다. 방주를 움직여서 주포로 현재 부상 중인 이마카람에게 에너지를 주입시켜 치료하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지난 반년 간 방주가 열심히 모아온 에너지를 전부 쏟아 부은 것이다. 그렇다면 방주 계획의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했다. 방주가 다시 처음부터 에너지를 모아야 하니 출발 준비가 완료 되는 건 최소한 반년은 더 걸리게 생겼다. 그러나 알칸펠에게는 그런 문제보다는 이마카람의 치료가 더 급했던 것이 틀림없었다.
"이 일은 절대 발설치 마라."
-"네?"
"이번 일에 관련된 모든 기록을 삭제하라. 그리고 너희들도 모두 입도 뻥긋 하지 마라. 알겠느냐?"
-"예! 알겠습니다."
발카스는 바로 통신을 끊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역시 알칸펠이 서두르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 동안의 주기로 봐서는 이제 알칸펠에게 수면기가 다시 찾아올 때가 다 돼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가장 믿고 있는 충실한 심복인 이마카람이 몇 년 동안이나 꼼짝도 못한다면 알칸펠로서는 큰일이었다. 저번의 휴면기 중에는 규오가 반란을 일으켰다. 이번에 휴면기에 접어들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현재 12신장 멤버들 중에는 발카스가 보기에 의심스러운 녀석들이 몇 명 있었다. 알칸펠이 휴면기에 접어들기 전에 어서 빨리 가이버 유니트를 회수해야 했다.
하지만 발카스는 한 편으로는 섭섭한 마음도 있었다. 지금 알칸펠은 이마카람을 제외한 신장 멤버들 그 누구도 믿고 있지 않는 것이 틀림없었다. 심지어는 맨 처음부터 알칸펠을 섬겨온 발카스 자신까지 믿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발카스에게 모든 걸 맡겨 놨더니만 가이버 유니트는 지구상에 남아있던 세 개 모두가 다 해방돼 버렸고 12신장이라고 발카스가 뽑아놓은 규오는 반란을 일으키기까지 했으니 발카스를 믿으면 그게 더 이상할 지경이었다.
어쨌든 지금의 알칸펠에게는 남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이마카람이 됐든 발카스가 됐든 아무나 어서 빨리 가이버들을 해치우고 그 컨트롤 메탈을 회수해 와야 했다. 그것만이 알칸펠을 괴롭히는 그 영원한 잠으로 부터 구해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알칸펠이 누구를 믿고 있느냐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발카스의 머릿속에는 온통 알칸펠을 영원토록 반복될 그 고통으로부터 해방시켜야 된다는 생각만이 맴돌고 있었다. 그것이 주인에 대한 하인의 의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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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 섬으로 돌아온 무라카미는 알칸펠을 신전 지하에 위치한 석실 안에 조심스럽게 눕혀 놓았다. 잠이 든 알칸펠의 모습은 아주 평화스러워 보였다. 그러나 알칸펠에게 잠은 고통스러운 시간일 뿐이었다.
"....."
무라카미는 알칸펠을 가만히 내려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가 신전 지하의 조제통에서 치료를 받던 도중 꾸었던 꿈이 생각났다. 아니 꿈 치고는 아주 생생한 장면이었다. 아마도 그것은 태고적 알칸펠의 기억이었던 것 같았다. 알칸펠과 무라카미의 정신은 지금 서로 연결된 상태였다. 알칸펠이 자신에게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심복을 만들기 위해 취했던 조치였다. 그 과정에서 그는 그 옛날 알칸펠의 기억을 보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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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워....여긴 어디지....'
무라카미가 최초로 봤던 광경은 지독한 어둠이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 어떠한 것도 느껴지지 않는 곳. 완벽한 어둠의 세계였다. 이곳이 흔히 말하는 무(無)의 세계가 아닐까.
<눈을 떠라....>
그 때 그의 귀에 누군가의 말이 들려왔다. 마음 속 깊은 곳까지 울리는 소리, 마치 신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 같았다. 그러자 아무것도 없는 어둠속에서 희미한 빛이 하나 생겨났다. 조그만 그 빛은 점점 커지기 시작하더니 이윽고 어떤 형태를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빛은 완전한 형태를 이루었다. 그 모습을 본 무라카미는 깜짝 놀랐다. 바로 알칸펠이었다.
<눈을 떠라. 우리들의 충실한 부하, 알칸펠이여.>
그러자 알칸펠의 앞에 수많은 조그만 빛들이 생겨났다. 그 빛을 본 무라카미는 그것들의 형태가 가이버의 컨트롤 메탈이 내는 빛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목소리는 그 빛들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우리들은 너의 창조주. 너의 주인이다.>
무라카미는 이내 깨달았다. 지금 이 장면은 알칸펠의 기억이었다. 태초에 알칸펠이 강림자들의 손에 의해 창조되어 졌을 당시의 기억. 그렇다면 저 조그만 빛들은 강림자들이 틀림없었다. 어두워서 어떤 모습인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상상은 갔다. 저들은 유니트를 기본적으로 다들 가지고 있었으므로 그가 알고 있던 가이버와 형태면에서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이윽고 갑자기 눈앞이 환해지더니 다른 장면이 펼쳐졌다. 나타난 장면은 우주였다. 그리고 백과사전에서 흔히 본 행성의 모습들이 나타났다. 해왕성부터 시작해서 지구까지 차례대로 나타났다. 그리고 지구를 향해 움직이는 수백 척의 원형의 우주선들이 보였다. 바로 미나카미 산 지하에서 보았던 유적 우주선들이었다. 지금 이 영상은 강림자들이 처음 지구로 왔을 때의 장면이었다. 강림자들은 이렇게 영상으로 알칸펠에게 자기들이 어떻게 이 곳으로 왔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이 장면은 그 때의 알칸펠의 기억이었다.
우주선들은 몇 척씩 짝을 지워 아직 생명의 흔적이 없는 원시 지구의 곳곳에 착륙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지구 각지에서 생명을 창조하였다. 현미경으로 봐야만 보이는 박테리아부터 시작해서 거대한 공룡까지. 그 과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무라카미는 이 사실을 이미 예전에 크로노스 본부기지에서 만난 대학시절 은사인 야마무라 교수에게서 다 들었고 그들의 기록도 보았기 때문에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후 장면이 또다시 바뀌었다. 이번엔 강림자들의 우주선 바깥이었다. 아주 넓은 벌판위에 몇 척의 우주선들이 착륙해 있었고 그 주위에는 강림자들의 손에 의해 창조된 생명체들, 그중에서 가장 정점이라 할 수 있는 존재인 '인류'가 많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알칸펠은 약간 높은 언덕 위에서 이들 원시 인류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들은 너의 부하다. 넌 이 하등한 무리를 통솔하기 위해 그 정점에 선 자다.>
강림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림자들의 말을 들으며 주위를 둘러보던 알칸펠은 문득 그의 발치 부근에 어떤 커다란 생물의 뼈가 나뒹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어떤 생물의 머리뼈였는데 그 크기가 알칸펠의 신장보다 더 컸다. 입으로 생각되는 부위에는 아주 날카로운 이빨들이 잔뜩 있었다. 알칸펠이 그 뼈에 주목하자 다시 강림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생물의 잔해는 우리가 맨 처음 이 별에 와서 조제한 생체 병기다. 하지만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아서 수정을 가했다.>
다시 장면이 바뀌었다. 강림자들이 또 다시 알칸펠에게 옛날의 기록 영상을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눈앞에 펼쳐진 영상은 거대한 공룡들이 지구 곳곳을 거닐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하늘에서 거대한 운석이 낙하해서는 대 폭발을 일으키는 영상이 나왔다. 운석 충돌로 인해 지구의 하늘은 짙은 먼지구름이 뒤덮었고 그로 인해 지구의 환경이 급변하였다. 길고 긴 빙하기가 시작되면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공룡들은 그대로 멸종하였다.
<강력한 생체병기를 만들기 위해 이것저것 시도해 봤지만 이 녀석들은 영 가망이 없었다. 그래서 우린 일부러 거대 운석을 낙하시켜 지구의 환경을 급변시켰지. 실패작들을 한꺼번에 쓸어버릴 생각으로 말이야.>
강림자들의 말을 들은 무라카미는 소름이 끼쳤다. 자신들이 만든 생명체가 맘에 안 든다고 가차 없이 쓸어버리는 강림자들의 냉혹함에 질린 것이다. 최초에 강림자들은 처음부터 강력한 생체 병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현재 흔히들 알고 있는 공룡이었다. 그런데 이게 뜻대로 되지가 않았다. 지구 각지에 퍼진 강림자들이 각 지역에서 각자 연구에 매진한 결과 통일되지 않은 수많은 종의 공룡들이 만들어졌다. 형태나 능력 등이 전부 다 제각각인 것 까지는 참을 수 있다 쳐도 정작 중요한 문제는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공룡들이 영 신통찮은 물건들이었다는 점이었다. 개발과정에서 요구 사항들은 끊임없이 늘어났고 그것들을 전부 실현시키려고 이것저것 기능들을 덧붙여 나가다 보니 그 크기는 점점 커져만 갔다. 그러나 크기의 증가에 비해 지능의 증가 속도는 아주 더뎠고 더욱이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도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래서 강림자들은 연구를 중단하고 처음부터 다시 연구를 시작할 요량으로 지구에 운석을 낙하시켜 공룡들을 쓸어버린 것이다.
지구의 환경이 다시 안정돼갈 무렵 강림자들은 또 다른 생명체를 탄생시켰다. 이번의 연구 목표는 이전의 실패를 거울삼아 좀 더 현실적으로 이루어졌다. 처음부터 강력한 생체 병기를 만들게 아니라 범용성이 뛰어난 '소재'를 만들어 그걸 기본으로 각각의 임무에 맞는 다양한 형태의 생체 병기를 만들어 나가기로 한 것이다. 높은 지능, 왕성한 번식력, 뛰어난 환경 적응력에 병기로서 가장 필요한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왕성한 투쟁 본능을 가진 생물체.
그것이 바로 현재의 인류였다.
<알칸펠이여. 넌 이들을 지휘하기 위해 우리가 만든 '조아로드'라고 하는 생명체다.>
알칸펠의 이마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의 이마 속에 숨어 있던 조아 크리스털이 활성화 되면서 그의 육체가 조아로드의 전투 형태로 변하였다. 무라카미가 알고 있는 알칸펠의 전투 형태 그대로였다. 알칸펠은 무라카미 자신이나 다른 12신장 멤버들과 달리 태초에 강림자들이 직접 조제한 '오리지널 조아로드'인 것이다.
알칸펠의 조아 크리스털이 찬란하게 빛났다. 그러자 지상에 모여 있던 원시 인류들의 모습도 변하기 시작했다. 덩치들이 커지면서 그 모습도 변하기 시작했다. 무라카미도 익히 알고 있는 그 모습, 바로 조아노이드들이였다. 태초에 강림자들이 직접 만든 조아노이드들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알칸펠. 우린 앞으로 너와 같은 존재를 열한 명 더 만들 것이다. 그리고 그 열두 명의 알칸펠을 필두로 수억 마리의 조아노이드 군단을 편성해서 앞으로 일어날 전쟁에 투입할 것이다.>
<알칸펠이여, 군림하라. 너의 지휘를 필요로 하는 이 하등한 존재들 위에. 그리고 우리를 위해 싸워라.>
이것으로 모든 실험이 종료되었다. 인류라고 하는 (물론 당시의 강림자들이 '인류'라는 호칭을 쓰지는 않았겠지만) 기본 소재에서 시작해서 그것을 바탕으로 다양한 임무에 대응할 수 있는 수많은 형태의 조아노이드들을 만들어 냈고 그런 그들을 통합지휘하며 그 자체도 강력한 전투력으로 직접 적을 물리칠 수 있는 조아로드까지. 이것이 바로 강림자들이 추구하던 궁극의 병기 시스템의 완성이었던 것이다. 강림자들은 자신들의 실험 결과에 극히 만족하였다.
그런데 좀 특이한 생각을 한 강림자가 한 명 있었다. 그는 자신들이 만든 기본 소재, 즉 인류라는 생명체에 또 다른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그는 모두에게 한 가지 실험을 더 해 보자고 제안하였다. 다른 강림자들 역시 그의 의견에 호기심을 보이고 이내 동의하였다. 그들은 즉시 실험에 착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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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칸펠은 그의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며 언덕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그로서는 그의 주인들이 언급했던 전쟁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잘 몰랐다. 하지만 그는 주인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각오가 되 있었다. 알칸펠의 마음은 그의 주인인 강림자들에 대한 충성심과 신뢰로 가득 차 있었다.
"응?"
그 때 그의 눈에 벌판을 걸어가고 있는 어떤 물체가 보였다. 자세히 보니 그 것은 좀 옅은 녹색의 껍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알칸펠은 이 근처에서 저런 생물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그러고 보니 저 모습은 그의 주인의 모습과 매우 흡사했다. 하지만 주인은 아닌 것이 확실했다. 알칸펠의 기억을 보고 있던 무라카미는 직감적으로 저것이 인류 최초의 가이버, 가이버 0(Zero) 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때 강림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라지 마라. 알칸펠. 저건 우리의 실험 중 하나다.>
"주인님? 저건 대체 뭡니까?"
<아직 조아노이드로 조제되지 않은 기본 소재에 우리들의 표준 장비인 강식장갑을 입혀 보았다.>
"예? 어째서 그런 실험을....."
-쿠웅!!
그 때 지축을 울리면서 뭔가 거대한 생물이 그 가이버에게 다가가는 것이 보였다. 훗날 티라노 사우르스라는 학명으로 불리는 공룡이었다. 공룡은 가이버를 보더니 크게 포효하였다.
"쿠아아아아!!!!"
공룡은 그 가이버를 잡아먹을 기세로 으르렁 거렸고 가이버는 그 자리에서 멈춰 서서는 싸울 자세를 갖추었다. 다시 강림자들의 설명이 이어졌다.
<이번 실험의 목적은 병기로서 개발된 종에 대해 우리들의 강식장갑이 과연 어떤 영향을 끼치느냐 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럼 실험을 시작하도록 한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공룡이 가이버에게 달려들었다. 티라노 사우르스는 먼저 그 거대한 발로 가이버를 짓밟으려 하였다. 가이버는 그 공격을 가볍게 피했다. 그리고 바로 공룡의 뒤쪽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티라노 사우르스 역시 넋 놓고 당하고만 있지는 않았다. 그 거대한 덩치와는 달리 아주 민첩한 동작으로 몸을 돌리더니 자신의 거대한 꼬리로 가이버를 강하게 후려쳤다. 등을 가격당한 가이버는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크아아!!"
티라노 사우르스는 즉시 땅에 쓰러진 가이버를 입으로 물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보며 강림자들은 실망한 듯이 혀를 찼다. 생각보다 너무 빨리 승부가 난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공룡은 이미 다 멸종했지만 연구용 샘플로서 보관하기 위해 그 DNA들은 강림자들이 가지고 있었다. 그 수많은 DNA 중에서 가장 포악하고 전투력이 뛰어난 걸 골라서 이번 모의전에 쓰기 위해 다시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만들면서 근력이나 반응속도 등을 원판보다 더 향상시켰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인류의 가이버는 저렇게 간단히 먹히고 말았.....
"크으으으...."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가이버는 먹히지 않았다. 티라노 사우르스는 가이버를 씹으려 하였지만 오히려 가이버가 티라노 사우르스의 입 안에서 이빨들을 꽉 붙잡고는 버티고 있었다. 생각이상으로 강한 그 힘에 오히려 티라노 사우르스가 쩔쩔매기 시작했다. 그렇게 버티던 가이버는 오른손에 강하게 힘을 주었다. 그러자 티라노 사우르스의 송곳니가 그대로 박살나 버렸다.
"꾸에에엑!!!!"
이빨이 부서지는 고통 때문에 티라노 사우르스는 입을 크게 벌리며 포효하였다. 그 순간 가이버는 입 안에서 즉시 뛰쳐나와서는 지면에 사뿐하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즉시 팔 부분의 고주파 소드를 전개하고는 반격을 하였다. 가이버는 티라노 사우르스의 머리까지 한 번에 도약하였다. 식장하기 전의 인류라면 엄두도 못 낼 정도의 높이였다.
-부웅!! 촤아아악!!!
그리고 가이버는 티라노 사우르스를 향해 고주파 소드를 휘두르며 내려왔다. 그러자 놀랍게도 티라노 사우르스는 머리부터 세로로 쪼개지고 말았다. 그렇게 티라노 사우르스는 두 토막이 나며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 장면을 본 강림자들은 깜짝 놀랐다.
<저럴 수가!>
<놀라운 전투력이야! 설마 이렇게까지 될 줄은...!>
강림자들은 전혀 의외의 결과에 크게 흥분하였다. 원래 이번 모의전을 준비하면서 강림자들은 특별히 튠업한 공룡이 설마 질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저 인류의 식장체가 얼마나 버틸까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히려 식장체가 단숨에 공룡을 해치워버린 것이다. 조아노이드 수백 마리에 필적하는 전투력을 가진 개조 공룡을 저리도 간단하게 해치울 줄이야.
<능력치의 증폭도를 봐. 우리들이 식장했을 때보다 수십, 아니 수백 배의 증폭도를 보이고 있어.>
이건 전혀 의외의 발견이었다. 설마 인류와 강식장갑의 결합이 이런 결과를 보이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융합한 생명체의 능력치를 증폭시키는 능력을 가진 강식장갑. 강식장갑은 그들의 수많은 연구 결과물들 중에서도 특히 우수한 부류에 속한 물건이긴 하지만 이 정도로까지 능력이 증폭된 경우는 없었다. 조아노이드를 뛰어넘는 슈퍼 병기의 탄생이었다. 결과가 이렇게 나온 이상 기존의 연구 계획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었다.
<좋아, 오늘 실험은 여기까지. 식장체, 식장을 풀고 그 자리에서 대기해라.>
강림자들은 가이버에게 명령을 내렸다. 인류를 만들면서 강림자들은 인류에게 자신들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도록 유전자 조작을 가했다. 물론 알칸펠 역시 그런 조치를 받았고 알칸펠도 강림자들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했다. 그리고 알칸펠 역시 강림자들처럼 인류와 그 인류를 바탕으로 해서 만든 조아노이드들에게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분명히 강림자들이 명령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가이버는 식장을 풀지 않았다. 명령은 틀림없이 전달됐을 텐데도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강림자들은 이상함을 느끼고 다시 한 번 식장을 풀라고 명령을 내렸다.
<뭐하는 거냐, 빨리 식장을 풀어라.>
<우리말이 안 들리나? 식장을 풀라니까.>
그러나 이번에도 가이버는 식장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근처에 있던 강림자들의 우주선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는 오른쪽의 흉부 장갑을 활짝 열어 젖혔다. 그 모습을 본 무라카미는 깜짝 놀랐다. 저건 메가 스매셔였다!
-퍼어어엉!!!
-콰아앙!!!
가이버의 오른쪽 가슴에서 강력한 빔이 발사되었다. 그 빔은 그대로 날아가서는 이런 것을 전혀 예상도 못하고 있던 강림자들의 우주선에 정통으로 명중하였다. 스매셔는 그대로 우주선을 관통하였고 우주선 내부에 있던 강림자들 다수가 그 공격에 희생되고 말았다. 파괴된 우주선 내부에 가득 들어차있던 양수가 폭포수처럼 흘러나왔다.
<이..이럴 수가!!>
<우리를 공격하다니!>
인근에 있던 다른 우주선들에 타고 있던 강림자들이 비명을 지르며 허둥지둥 대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인류의 식장체가 자신들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 강대한 전투력으로 오히려 공격을 걸어온 것이다. 통제 불능의 괴물이 나오고 만 것이다. 어쨌든 지금은 원인 분석보다는 빨리 저 식장체를 해치워야 했다.
<알칸펠! 조아노이드 부대를 이끌고 저 녀석을 해치워라!!>
"알겠습니다! 주인님."
알칸펠은 즉시 전투형태로 변신하였다. 그리고 알칸펠의 지시에 따라 근처에 있던 조제된 인류들이 전부 조아노이드로 변신하였다. 알칸펠은 조아노이드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리들의 주인님을 배신한 저 녀석을 해치워라!"
"크아아아!!!"
조아노이드들은 괴성을 지르면서 가이버에게 달려들었다. 그러자 가이버는 양 팔의 고주파 소드를 전개하고는 조아노이드들을 향해 돌격해 들어갔다. 하나같이 다 자기 덩치보다 훨씬 큰 조아노이드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오고 있는데도 가이버는 전혀 위축됨이 없었다. 가이버는 조아노이드들에게 고주파 소드를 휘둘렀다.
-파앗! 촤악!! 슈칵!
고주파 소드가 한 번 지나갈 때마다 어김없이 조아노이드가 두 토막, 세 토막이 나며 쓰러졌다. 아주 단단한 껍질을 가지고 있는 조아노이드도 어떠한 충격도 흡수할 수 있는 탄력 있는 신체를 가진 조아노이드도 물체의 분자 결합을 풀어버리는 고주파 소드 앞에서는 무력했다.
-푸슝! 푸슝!!
이번엔 가이버가 헤드빔을 난사하였다. 높은 관통력을 자랑하는 헤드빔이 한 번 발사될 때 마다 조아노이드들이 쓰러져갔다. 한 마리, 혹은 두세 마리가 한꺼번에 꼬치 꿰이듯이 꿰뚫리기도 하였다. 막기에는 빔의 위력이 너무 강했다.
-큐우우웅!!!
이번엔 가이버의 입 부분에 있는 금속구가 강하게 진동하였다. 바로 소닉 버스터였다. 물체의 공명 주파수를 튜닝해서 그 주파수에 맞는 음파를 보내 물체를 파괴해 버리는 가이버의 광역 제압 병기였다. 가이버를 노리며 달려들던 수많은 조아노이드들이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가루가 되고 말았다.
"이럴 수가...!"
알칸펠 역시 저 식장체의 전투력에 경악하였다. 조아노이드가 떼로 달려들어도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번엔 알칸펠이 직접 나서야 했다. 그가 가이버에게 달려들려고 하는 그 순간 강림자들의 명령이 전해져왔다.
<기다려라, 알칸펠.>
"주인님?"
<이걸 써라.>
-파아앗!
강림자들의 우주선에서 어떤 물체가 알칸펠의 바로 앞에 전송되어왔다. 길쭉한 타원형의 은색 물체였는데 알칸펠은 처음 보는 물건이었다. 알칸펠은 일단 그 물건을 받아 들었다.
"주인님, 이것은 무엇입니까?"
<유니트 '리무버'라고 한다.>
"리무버?"
<그 장비는 강식장갑의 컨트롤 메탈의 모든 정보를 소거해서 초기화 시키는 장비다. 이걸 사용하면 저 놈에게서 강식장갑을 손쉽게 벗겨낼 수 있다.>
곧이어 리무버의 아랫부분이 열리더니 알칸펠의 오른 팔에 합체되었다. 그리고 알칸펠의 몸에서 생체 에너지를 받아 들여 해제 파동 발사 시에 필요한 에너지가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알칸펠은 그의 주인의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것이 없어도 알칸펠 자신의 전투력이라면 충분히 저 놈을 제압할 수 있을 텐데도 어째서 이런 것을 주는 걸까?
"이런 것이 없어도 전 이길 수 있습니다."
<그건 안 돼! 만약 네가 저 놈에게 당하게 되면 우린 놈을 막을 모든 수단을 잃게 된다. 명령대로 해라, 알칸펠!>
실제 능력이나 알칸펠의 의사 같은 것과는 관계없이 주인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알칸펠은 더 이상의 군소리 없이 주인의 명령에 충실하였다. 그는 즉시 리무버에 에너지를 더 강하게 주입하여 발사준비를 서두르기 시작했다. 이윽고 리무버의 발사 준비가 모두 완료되었다. 알칸펠은 곧장 가이버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좀 더 다가가라, 아직은 거리가 너무 멀다.>
주인은 알칸펠에게 좀 더 접근할 것을 명령하였다. 아무래도 리무버는 근거리가 아니면 소용없는 장비인 것 같았다. 실제로 리무버의 사정거리는 10m 내외다.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질 경우 리무버를 가진 자는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식장 자에게 위험하리만치 가깝게 접근해야 했다.
가이버 역시 헤드 센서로 알칸펠의 접근을 탐지하였다. 그는 다가오는 알칸펠을 향해 똑바로 섰다. 그리고는 왼손을 들어 왼쪽의 흉부 장갑을 활짝 열어 젖혔다. 아직 발사하지 않은 왼쪽의 스매셔를 날리려는 것이었다. 알칸펠은 급히 바리어를 전개하고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바로 그 순간 가이버의 메가 스매셔가 불을 뿜었다.
-퍼어어엉!!!
발사된 스매셔의 섬광은 순식간에 알칸펠을 덮쳤다. 그리고 계속해서 앞으로 뻗어나가 2~3km 정도 떨어져 있던 또 다른 강림자의 우주선의 선체에 명중하였다. 이번에는 강림자들 역시 단단히 대비하고 있어서 우주선 주위에는 이미 강력한 바리어가 둘러쳐져 있는 상태였다. 허나 바리어를 둘러치고 있어도 메가 스매셔의 위력은 선체를 거세게 뒤흔들 정도로 강력했다. 선체가 심하게 흔들리자 그 안에 있던 강림자들이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철컥!
그러나 그 엄청난 빔의 홍수 속에서도 알칸펠은 건재했다. 오른팔에 차고 있던 리무버 역시 무사했다. 강력한 알칸펠의 바리어 덕분이었다. 알칸펠이 건재하자 상대방 가이버는 경악하였다. 알칸펠은 상대방이 다음 행동을 할 틈을 주지 않고 즉시 리무버를 가이버에게 겨눴다. 즉시 강림자들의 명령이 떨어졌다.
<쏴라!!>
-파아앙!!!
리무버에서 한 줄기 빛이 가이버를 향해 쏘아졌다. 그리고 그 빛은 가이버에게 정확하게 명중하였다. 그러자 가이버의 식장이 강제로 해제 되었다. 벗겨진 장갑들은 해방되기 이전의 유기 물질로 변환되면서 컨트롤 메탈을 중심으로 뭉쳐졌다. 그리고 이내 해방되기 이전에 유니트 상태로 돌아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칠게 날뛰던 식장자는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땅바닥에 주저앉은 채 알칸펠을 바라보고 있었다. 또 다시 강림자들이 명령을 내렸다.
<해치워라!>
-파앗!!
알칸펠이 두 눈을 부릅뜨며 식장이 벗겨진 원시 인류에게 강력한 염력을 발사하였다. 그러자 그 인류의 몸이 순식간에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원시 인류는 고통스러워하며 발버둥 쳤지만 이내 숨이 끊어져 버렸다. 재가 돼 버리는 건 순식간이었다.
간단하게 임무를 마친 알칸펠은 땅바닥에 떨어져 있는 유니트를 바라보았다. 저것이 바로 자신의 주인들이 입고 있는 갑옷이었다. 겉보기에는 조그만 물체일 뿐인데 이런 것이 어떻게 해서 저 하등한 인류를 이렇게 까지 만들어 놓은 걸까? 그는 순간 호기심이 일었지만 강림자들은 알칸펠에게 그걸 절대로 만지지 말라고 명령하였다. 알칸펠은 그 명령을 받고 황급히 유니트에서 멀어졌다. 이윽고 강림자들은 강식장갑 유니트와 리무버를 회수해 갔다. 그러나 알칸펠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강식장갑에 대한 호기심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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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쿠쿠쿠쿠쿵!!!
그 사건이 있은 지 며칠 후, 갑자기 강림자들의 우주선이 일제히 굉음을 울리며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지상에는 원시 인류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천지를 진동시키면서 일제히 날아오르는 우주선들의 모습은 그야 말로 장관이었다. 그러나 알칸펠은 한가하게 그걸 감상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그의 주인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몰라서 몹시 당황스러웠다. 알칸펠에게는 일언반구도 없이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는 것이다. 알칸펠이 황급히 그의 주인을 불렀다.
"주인님?"
-쿠쿠쿠쿠!!
"주인님!!"
그러나 강림자들은 알칸펠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았다. 뭔가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알칸펠은 즉시 전투 형태로 변신해서는 그의 주인들을 쫓아 하늘로 날아올랐다. 우주선들은 무서운 기세로 상승을 하고 있었고 순식간에 대기권을 돌파하였다. 알칸펠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해 그들을 쫓아갔다. 그리고 쫓아가면서 계속해서 그의 주인들을 불렀다.
"주인님!!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알칸펠이냐.>
지구에서 어느 정도 멀어진 시점에서야 강림자들이 자신들을 쫓아오는 알칸펠을 감지하고 그의 부름에 응답하였다.
<우린 오늘 이 별을 떠난다. 이 곳에서의 모든 실험은 종료되었다.>
그러고 보니 주위에 떠 있는 우주선들이 한두 대가 아니었다. 수 없이 많은 강림자들의 우주선. 지구 각지에 퍼져있는 강림자들 전원이 한꺼번에 이륙한 것이 틀림없었다. 알칸펠은 갑작스러운 주인의 결정에 당혹해 하면서 간절한 목소리로 애원하였다.
"그럼 우리들도 데려가 주십시오!"
<그건 안 된다.>
"어째서 입니까?!"
알칸펠은 주인들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머지않은 장래에 그의 주인들의 명령에 따라 주인들의 적들과의 전쟁에 투입되어질 것이라고 하더니만 이제 와서 느닷없이 데려갈 수 없다니. 주인의 곁에서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삶의 전부이던 알칸펠에게는 절망적인 말이었다. 강림자들은 알칸펠의 기분 따위는 상관없다는 투로 계속 얘기하였다.
<이 별에서 만들어 진 생물들은 기본적으로 우리의 명령을 거부하는 인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그리고 우리의 기본 장비인 강식장갑과의 접촉은 그 인자를 표면화시킨다는 것이 우리와 상부의 결론이다.>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진 병기라 할지라도 이쪽에서 통제가 불가능하다면 그건 이미 병기로서는 가치가 없다. 폭주하는 골칫거리일 뿐이지.>
<따라서 우린 이 별을 떠난다. 더 이상 이 곳에는 용무가 없어.>
알칸펠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와 그의 부하들, 이 별 전체가 그의 주인들에게서 버림받은 것이다. 알칸펠은 떨리는 음성으로 다시 물었다.
"그...그럼 저희는 앞으로 어찌해야 합니까?"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너희는 이제 더 이상 아무런 가치도 없어.>
알칸펠에게는 사실상의 사형선고였다. 주인에게 버림받은 존재는 그 가치를 잃게 된다. 알칸펠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기다려 주십시오. 이럴 거라면.... 이제 와서 우리를 버릴 거라면.....어째서 우리를 만드신 겁니까!"
알칸펠은 절규하였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역시 처음으로 그의 주인에게 저항하였다. 그는 더욱 더 속도를 높이면서 강림자들의 우주선에 접근하였다.
"주인님!! 대답해 주십시오!!!"
<다가오지 마라!!>
-파지지직!!
"끄아아아아!!!"
그러나 알칸펠의 한 맺힌 절규에 대한 강림자들의 대답은 정체불명의 광선뿐이었다. 강림자의 우주선에서 마치 번개가 치는 듯 한 괴광선이 알칸펠에게 발사 되었고 이 광선을 정통으로 맞은 알칸펠은 온 몸을 뒤흔드는 극심한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 알칸펠은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전진하지 못했다. 고통스러워하는 알칸펠을 뒤로 하며 강림자들의 우주선은 더욱 더 멀어져갔다.
<너희들에게 있어서 절대로 삼가야 할 형태인 식장체, 그것은 우리가 도저히 제어가 불가능한 규격외품(강림자들의 언어로 '가이버'라 불림)이다.>
<우리는 이전의 그 사건을 중앙에 보고하고 지시를 기다렸다.>
<그 결과 사건의 심각성을 알게 된 중앙에서는 이 행성에서의 모든 실험을 중단하고 그 동안의 실험의 결과물들은 모두 말살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중앙은 이미 행성 파괴 병기를 가동시켰다. 따라서 우리도 여기서 꾸물거리고 있을 틈이 없다.>
강림자들의 우주선이 하나 둘씩 공간 이동을 하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로 그들은 지구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것이다. 수백 대에 달하던 우주선들이 순간이동으로 빠져 나가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마지막으로 공간 이동을 하는 우주선에서 알칸펠에게 최후의 말을 남겼다.
<마지막 명령을 내리마. 모두 그 자리에서 그냥 죽어라.>
비정하다 못해 잔인하기까지 한 말을 남기며 마지막 우주선까지 공간 이동으로 사라졌다. 우주선들이 모두 떠나 간 우주는 평소처럼 아주 조용했다. 그 공허한 공간에서 알칸펠은 깊은 슬픔에 싸인 채 그저 둥둥 떠 있기만 하였다. 이제까지 믿고 따라오던 주인에게, 그에게는 부모나 마찬가지인 강림자들에게 버림 받았다는 사실이 그의 몸에 생기를 빼앗았다. 그렇게 무기력하게 있으면서 알칸펠은 끊임없이 자문하였다. 도대체...도대체 난 무엇일까. 나의 생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까.
"응?"
그 순간 알칸펠은 우주 저 편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면서 뭔가가 이쪽으로 건너오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런데 공간이 일그러지는 정도가 너무나 엄청나게 컸다. 이제까지 공간 이동을 하는 거는 여러 번 봐 왔지만 저 정도는 아니었다. 공간의 일그러짐의 정도가 지구와 거의 맞먹을 정도의 크기 같아 보였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거대한 뭔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다!
-투우우우웅!!!
알칸펠의 예감은 적중했다. 공간을 뛰어넘어 날아온 것은 초거대 운석, 아니 지구와 거의 맞먹을 정도로 거대한 행성이었다! 강림자들이 얘기했던 행성 파괴 병기란 것은 바로 저걸 말하는 것이었다. 초거대의 소행성을 날려 보내 상대방 행성을 완전히 파괴하는 궁극의 병기. 방어자 측에서는 사실상 전혀 대책이 없었다. 같은 크기의 소행성을 날리지 않는 이상 그 어떠한 병기로도 파괴나 진로 변경이 불가능했다. 모습을 드러낸 강림자의 행성 파괴 병기에 알칸펠은 공포에 질렸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그는 즉시 자세를 바로 잡았다.
'몸이 맘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아까 알칸펠이 맞았던 괴 광선은 조제체의 생체 기능을 떨어트리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았다. 몸에 힘이 맘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몸의 상태가 정상이라 할지라도 저 소행성을 막을 수 있을까 말까인데 지금 이 상태로는 도저히 무리였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고 온 몸에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이대로 죽을 수는 없다. 살고 싶다. 이 생각이 알칸펠의 마음에 가득했다. 그는 지금 그의 주인의 의지에 정면으로 저항하기 시작한 것이다.
-부우우웅!!!
알칸펠은 바리어를 펼쳤다. 그리고 그 크기를 점점 확대시켜 나가기 시작했다. 온 몸의 생체 에너지를 모두 쥐어짜내서 그는 바리어의 범위를 계속해서 확장시켰다. 이윽고 그 크기는 지금 돌진해 오는 소행성과 맞먹는 정도로 까지 거대해졌다. 그렇게 되자 알칸펠은 그대로 그 소행성을 향해 정면으로 돌격하였다.
'주인님....'
-슈우우웅!!!
'전 이대로 죽을 수 없습니다. 언젠가 저 만의 군대를 이끌고....'
알칸펠과 그 소행성이 거의 충돌 직전에 이르렀다. 그는 점점 희미해져만 가는 의식을 이를 악물어가며 추스르려 애썼다. 그의 두 눈에 소행성의 표면이 아주 가깝게 보였다.
'별의 바다를 건너 당신들을 만나는 그 순간까지..... 전 살아남을 겁니다!!'
-콰아아아아아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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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칸펠의 혼신의 일격으로 강림자들이 날려 보낸 소행성은 그대로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지구 그 자체를 날려 버리려던 강림자들의 의도는 좌절되었다. 그러나 파괴된 소행성의 파편들 중 거대한 것 몇 개가 결국은 지구로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지구에 떨어진 거대 파편들은 결국 지구 전체의 환경을 격변시키고 말았다. 하늘을 뒤덮은 짙은 먼지구름으로 인해 다시금 지구에 빙하기가 닥쳐왔고 그걸로 이 지구의 자연 환경은 멸망이나 다름없는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그 영하의 지옥 속에서도 인류는 결국 살아남았다. 얄궂게도 강림자들이 의도했던 뛰어난 환경 적응력 덕분이었다. 큰 피해를 입긴 했지만 지구는 이렇게 구원 받았고 그 구세주는 다름 아닌 알칸펠이었던 것이다.
알칸펠의 기억은 여기까지였다. 그 뒤로 무라카미가 본 것은 우주선의 잔해가 기억하고 있던 단편적인 영상이었다. 소행성을 파괴한 알칸펠은 너무 무리하는 바람에 그 몸의 생체 에너지를 전부 소모해 버렸다. 그러나 그는 어찌어찌 그가 처음 태어났던 장소로 돌아오는데 성공했다. 그 자리에는 인류 최초의 가이버가 파괴한 우주선의 잔해가 있었다. 이 우주선은 중추 신경을 파괴당해서 그 기능을 대부분 잃었지만 그래도 알칸펠에게는 다행히도 생명 유지 장치의 기능은 유지되고 있었다. 우주선에 남아있던 바이탈 포트안에 들어간 알칸펠은 그 뒤로 수 만년 후 발카스가 그 자리에 올 때 까지 기나긴 잠과 각성을 반복해 온 것이다.
우주선의 잔해는 완전히 죽지는 않아서 잔해를 중심으로 일정 구역 전체에 강력한 사이코 필드를 펼쳤다. 그 필드 덕분에 우주선을 중심으로 우주선 주변은 격변하는 바깥의 자연 환경에도 불구하고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래서 태고적에 이미 사라져 버린 동식물군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 수 만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그 일대는 육지에서 바다로 변해 버렸지만 사이코 필드가 처져 있는 부분만은 남을 수 있었고 그 곳이 바로 오늘날의 시라 섬이 된 것이다. 시라 섬의 신전은 시라 섬에 살고 있던 고대 인류가 우주선 안에 잠들어 있는 그들의 주인인 알칸펠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그를 경외하여 그에게 바치기 위해 우주선의 잔해 위에다가 세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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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는 치료 받는 도중에 보았던 알칸펠의 기억을 곱씹으며 석실 밖으로 나갔다. 그는 그 안에서 알칸펠의 과거를 보았다. 그걸 볼 수 있었던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아마도 그가 치료 받고 있던 조제통이 수 만 년 전부터 알칸펠이 써 오던 것이라서 그 안에 잔류 사념이 남은 것일 수도 있고 아니면 알칸펠의 정신과 연결돼 있는 동안 알칸펠의 기억이 흘러 들어온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건 무라카미는 이제 알칸펠의 마음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그의 마음 속 깊이 자리 잡은 슬픔, 그리고 그의 진정한 목적을. 크로노스의 창설부터 시작해서 지구 제압, 무라카미를 자신의 충실한 부하로 만든 것, 그리고 저 우주에 떠 있는 생물전함 방주의 건조까지. 모두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었다.
-쿠웅.
"....."
석실의 육중한 문이 닫혔다. 무라카미는 문 밖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한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던 무라카미는 천천히 쓰고 있던 고글을 벗었다.
'하지만 알칸펠. 나는.....'
Next episode 제14화 '세 신장의 함정' coming soon....
p.s : 이번엔 순 알칸펠 얘기만....-ㅅ-;;; 하지만 이 이야기는 원작에서도 꽤 깨는 부분이고 스토리에도 중요한 부분인지라 언급 안 할수가 없네요. ^^;; 아아, 베르단디님은 언제나 나오려나....... (작가인 저도 몰라요~~ 퍽!!)
댓글목록

카렌밥♡님의 댓글
카렌밥♡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총평은,
카렌밥은 괴수 취향이나 우주적 스케일의 내용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에 카렌밥 취향이 아닌 글. 게다가 카렌밥이 좋아하지 않는 문체. 하지만, 제 취향이 아님에도 계속 읽게 되었다는 것이 특이합니다. 전체적으로 큰 문제는 없어 보이고 표현만 조금 다변화하면 어떨까 아쉬움이 남습니다만, 상당한 수준의 글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가이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너무나 쉽게 잘 읽었습니다.
오오, 지구에 있는 애들은 명령에는 복종하나 각자의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군요. 영화 '아일랜드'와 같은 인류의 고찰적 작품에서는 종종 "인간에게는 돌발변수가 있다"고 표현을 하곤 하는데, 여기서도 돌발 변수의 가능성을 적용시킨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가들도 인간이니까 그런걸까요. 불확실, 호기심이라는 건... 작가들 입장에서는 구미가 당기는 좋은 소재인 것은 물론 작가 자신의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듯 합니다. 그러니까 보통 이런 류의 글들이 정체성에 관한 고찰도 병행되어지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노아의 방주와 같은 계획은 지금에도 노르웨이에서 하고 있습니다만, 지구와 똑같은 조건에서 독립된 생태계를 만들어볼려는 시도는 1990년대 이후로 나타나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지구와 같은 조건으로 만들어도 어디선가에서 문제가 생겨서 번번히 실패했기 때문에, 과학자들은 "생각지도 않던 변수가 많아서 지구와 같은 생태계를 만들기란 확률에 의존해야한다."라고 매듭지었던 듯합니다. 결과적으로 제2의 지구를 만드는 것은 철저한 계획에 불확실성을 포함하지 않으면 불가능 한 것일 겁니다. 무한 우주라면 확률이론을 적용해서 수천에 수만의 수천조가 되는 확률로 지구와 같은 환경이 만들어지고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겠지만요, 이건 조금 딴 얘기군요.
앞으로도 잘 읽겠습니다. 그러고보니 상당한 글 길이네요. 혀를 둘렀습니다.

베이더경님의 댓글
베이더경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흠!!!! 뭐야 결국은 강림자들의 배신이잖아!!!!그리고 단지 군대 끌고 가고 싶어서 이 지구 침략[이 아니라 주권 회복?]을 한 것인가!!!!
에라이 죽어라!!! 우리 자랑스런 제국군 앞에!![퍼퍽]
.....카렌밥님의 말대로 아직 우리 인류는 적응력 뛰어나고 강력한 생명체는 커녕.
기본적인 능력도 아직 갖춰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뭐 SF영화에서처럼 우연히 뛰어나고 강력한 생명체를 만들어낸다손 쳐도......
그것이 이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뭐 애초에 우리가 사는 곳과 똑같은 지구와 같은 환경을 찾는 것도 힘든데....당연한 것이겠죠? 여하튼 건필!!!

가이버님의 댓글
가이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카렌밥//취향이 아님에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표현 문제는 저도 생각하고 있는 거지만 그게 쉽지가 않네요. ㅠ.ㅠ 지루하죠....제 글. orz
인간의 정체성 문제는 원작에서 작가님이 계속 얘기하고 있는 것입니다만 그 스토리를 거의 베끼다시피 하는 제가 과연 그 십분의 일이나마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지 걱정입니다. -_-;;;; 고찰까지 하기에는 제 역량이...;;; 하지만 시도는 해 보고 싶네요.
방주 같은 경우에는 그냥 단순하게 '크로노스의 앞선 과학력'으로 해결했다는 것으로 보시면 되겠습니다. (이 무책임한 놈! 퍽퍽!!) 아니 그게 원작에서도 아직 방주에 관해서는 그렇다고만 언급되고 자세하게 나오질 않아서....;;; 저도 언젠가 TV에서 지구 자연환경과 똑같은 환경을 만들어보려다가 실패한 얘기를 본 게 생각나네요. 달인가 화성인가에 돔 형태의 구조물을 짖고 지구와 같은 환경을 조성해 보려 했는데 실험도중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너무 증가해서 결국엔 실패했다죠. 원인은 흙속에 있던 미생물들의 호흡때문이랬나 뭐랬나...-ㅅ-;;
길이는 좀 줄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
베이더경//근데 사실 따지고 보면 인류만큼 대단한 생물도 없죠. 기본 능력치만 놓고 보자면 인류는 다른 포유류에 비해 나을게 없습니다. 힘이 쎄기를 하나, 빨리 달리기를 하나. 그렇다고 한 번에 십 몇 마리씩 나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지금 인류의 위치는 자연계에서 어디쯤에 위치했는지 따져 보면 어떨까요. ^^;; 그리고 이렇게 약한 종족이 살아남는 정도도 아니고 60억 씩이나 불어나서 지구 곳곳에 퍼져 있는 걸 보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