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입니다.)멸의 계승자.-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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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창한....정말인지 화창한 날씨였다. 이런 날에는 정말인지 매화주가 적격일 것이다.
"그래, 가는거냐?"
몇년 동안 들어온 익숙한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스승님이었다. 나는 한껏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그동안 밀린 일이 제법 있어서요. 해결 좀 하러 가는 겁니다."
".....괜찮겠나? 속세는 너한테 있어서 지옥이나 다름없거늘."
지옥이라.....확실히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내 마음을 굽힐 마음이 전혀 없다.
"한걸음을 내딛으면 세상이 달라보인다고 말했던게 누구시죠?"
"......잘 갔다오거라."
결국 스승님도 어쩔 수 없다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배웅해주었다. 자, 스승님의 허락도 받았겠다. 더 이상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생각은 없다.
"그럼.....잠시 세상 구경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세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시작했다.
1장. 멸의 계승자.
"......심심해."
주룩주룩 비만 온다. 쳇, 오늘은 유원지에서 밤새도록 놀 계획이었는데.....하늘이 그런 내 뜻을 알아주지 못하는구나. 뭐, 이런 비가 오는 날에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심심하면 집안일이나 도와. 어떻게 된 녀석이 자기 방을 이렇게까지 어지럽힐 수 있어?"
누가 내 머리를 두드리며 그렇게 말한다. 앳된 여자 목소리. 3년 동안 지겹게 나한테 참견을 해오는 관리인 집 딸인 이주영이다. 참고로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냅둬. 집안일은 나하고 적성 자체가 맞지 않은 일인걸."
"그렇다 하더라도 이 정도 방이 어지럽혀 있으면 곰팡이가 쓸거나 벌레 천국일 텐데......어떻게 그런 것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건지.....신기하다니까."
"그것도 다 능력인거지."
나는 입을 한껏 벌려 하품을 크게 했다. 그러고 보니 졸리네.....한숨 자볼까.
"눕지마. 눈도 붙이지 마. 어떻게 이런 방에서 잠이 올 수가 있어?"
그녀가 어이없어하며 나한테 뭔가를 건네준다. 뭐지?
"내가 온 이상 얼렁뚱딴 넘어갈 생각하지마. 우선은 쓰레기부터 버려."
그것은 쓰레기 봉투였다. 하? 이번에는 내가 어이가 없었다.
"내가 왜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데?"
"니 방이잖아. 자기 방은 자기 스스로 청소하라고."
청소?
"내가 왜 청소를 해야되는데?"
"......너는 이 방을 쓰레기 창고로 만들 셈이니?"
한번 내 방을 쭉 살펴보았다. 으음.....상당히 쓰레기가 쌓여져 있다. 산을 이루고 있을 정도다.
"벌써 쓰레기 창고인데 뭘....."
"아직은 회복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얼른 청소나 하라고, 청소."
그녀가 나를 억지로 일으킨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긴 했지만......정말 하기 싫다.
"안하면 안될까?"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움직여. 마침 비도 오겠다, 밖에 나가지도 못할테니 오늘은 청소만 해."
".....켁."
나에게 있어서 그건 사형 선고를 받는거나 마찬가지인 말이다. 나는 손을 들며 말했다.
"밥은 탕수육으로 시켜줄거지?"
"내가 만들거야."
.....그건 싫은데.....
"나는 중화음식을 먹고 싶어."
"맨날 중화음식을 먹고서 몸이 배겨나겠어? 오늘은 그냥 내 말을 들어."
더 이상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아.....어쩔 수 없지. 청소하자, 청소.
"그런데 오늘은 수업이 없는 날인가 보지?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내 방에 찾아온 걸 보면."
쓰레기를 줏어서 봉투에 넣는 작업을 하며 그렇게 물었다.
"수업이 없는게 아니라 갑작스럽게 휴강이 되버렸거든. 교수님이 많이 편찮으신가봐."
"헤에......그 고릴라가?"
그녀는 경제학과에 속해있는 학생이다. 오늘 수업은 분명 그녀의 전공인 경제학. 그녀가 항상 수업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그때 느꼈던 수업의 감상을 나한테 들려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학 시간표를 외워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몇번 대학에 가서 경제학 교수을 보았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경제학 교수를 머리 속에 떠올렸다. 교수라는 직책이 무색할 정도로 우락부락한 몸에 고릴라를 닮은 얼굴. 영락없이 고릴라의 모습 그 자체이기에 나는 그 교수를 고릴라라고 부르고 있었다.
"고릴라라니....아무튼 네이밍 센스는 기가 막힐 정도라니까. 교수님을 보자마자 고릴라라고 말한 건 니가 처음이라고."
"고릴라처럼 생겼으니까 고릴라라고 부른게 뭐가 나빠?"
그렇게 생긴 그 사람이 잘못한거지.
"아무튼 그 사건을 계기로 교수님은 고릴라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고. 교수님이 마음이 좋아서 다행이지. 아마 성격이 불 같았으면 너는 무사하지 못했을껄?"
"글쎄.....근데 병명은 뭐래?"
"나도 잘 모르겠어. 아마 독감일거야."
"독감?"
쓰레기를 다 치워간다. 나는 속도를 더욱 올려서 얼마 남지 않은 쓰레기를 차곡차곡 봉투에 집어넣었다.
"움직이지도 못 할 정도로 병이 심해서 못 나왔다는데.....괜찮으실까 몰라."
"그러고 보니 독감 예방 접종 포스터가 요즘 유난히 눈에 띄던데......그게 그런 이유에서였나?"
지금은 겨울. 확실히 지금 쯤이면 독감이 유행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독감이라.....한번도 걸려보지 못해서 크게 와닿지 않는 말인데.....뭐,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 패스할래."
".....너처럼 세상을 대충 사는 사람은 흔치 않을거야."
"그래?"
"그래."
뭐, 그런 사람이 있든 말든 나하고는 별 상관없는 말이다. 아, 쓰레기 다 줏었다.
"끝났어."
"그래? 그럼 이거."
그녀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나한테 들이밀었다. 이건 또 왜 나한테 주는거야?
"쓸어."
".....뭐?"
"바닥, 쓸으라고."
빗자루를 받기는 했지만 그녀의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곧 그녀의 말을 이해한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내가 왜? 바닥은 니가 쓰는 거 아니였어?"
"난 지금부터 설거지하러 들어갈꺼야. 거기다가 힘 쓰는 일은 남자가 제격 아니야?"
"아니, 빗자루로 바닥을 청소하는게 힘 쓰는 거랑 상관있을 것 같지 않은데...."
"자. 그렇게 알고 난 부엌으로 들어간다?"
이주영은 보는 사람마저 시원하게 만들어줄 미소를 생긋 지으며 부엌으로 총총 들어갔다.
".....당했군."
이래나 저래나 내가 집을 대부분 청소하는 꼴이 되고 말았잖아. 아무튼 잔머리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뭐, 가끔씩 청소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렇게 나는 차츰차츰 밀린 청소를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청소를 시작한지 5시간이 흘러서야 집안은 그런대로 말끔해졌다는 수준에 이르렀다.
"후우.....이제야 좀 사람이 산다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네."
이주영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슥 훔치면서 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나름대로 깨끗해 졌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반짝반짝 거릴 정도는 아니지만.
".....배고파....."
문득 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밥 줘....."
"그 전에 뭐 사야할 게 있어. 잠시만 기다려봐."
그녀는 근처에 있던 메모지와 펜을 집어들더니 곧 메모지에다가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곧 다 적었는지 메모지를 뜯어서 그것을 나한테 주었다. 이건 또 뭐야? 종이를 살펴보니-
애호박
양파
된장
청량고추
고춧가루
소금
계란
파
.......
이것들 외에도 수많은 식료품들이 메모지에 적혀있었다.
"마트에 가서 사와. 돈은 니 걸로 해결하고."
".....내가 왜?"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지만 갖다오는게 상당히 귀찮다.
"니가 갖다 와."
"안돼. 이건 니가 먹을 음식들이니까 니가 사와. 어떻게 된 애가 기본적인 조미료조차 없을 수 있니?"
"나는 라면과 중화음식만 있다면 상관없어."
나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젓더니-
"귀차니즘도 정도가 있는 법이지. 얼른 가서 사오지 못해?"
"그래도-"
"군말하지 말고 어서 갖다와!"
가만히 그녀를 살펴보니 절대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을 생각이다. 하....나는 왜 유독 이 여자 앞에만 서면 이리도 작은 존재가 되는건지.....어쩔 수 없나....
"알았어. 마트에 가서 이 메모지에 적힌 것들을 사오면 되는거지?"
"그래. 아, 식후 디저트로 과일도 사와."
....디저트까지 드실 생각입니까?
".....알았어."
신발장에 가서 신발을 신은 뒤에 우산을 집어들고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잘 갖다 와. 딴데로 새지 말고."
.....내가 무슨 초등학생이냐? 이 나이에 그런 말을 듣게.
"......."
밖을 보니 아까보다 기세는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잿빛으로 물들인 하늘은 여전히 자신의 원래 색으로 돌아올 생각을 전혀 안하고 있다.
"빨리 날이 갰으면 좋겠는데...."
그래야 유원지로 놀러가지. 아, 혼자 가는 것은 심심하니 이주영도 같이 부를까?
"원하지는 않았지만 집을 청소해 줬으니까 그 보답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겠지?"
스스로 내린 결론에 스스로 만족하며 나는 대문을 열고서 밖으로 나갔다. 비 진짜 많이 온다.
"마켓이 어디 있더라....."
그러니까.....아마도 왼쪽으로 500m가서 사거리가 나타나면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300m 지점에......있었지, 아마?
"그러니까 왼쪽이라면......"
나는 차츰 기억을 더듬어가며 마트로 향해 발걸음을 향하였다.
마트에 도착했다. 제법 큰 편에 속하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왠만한 물건들은 전부 다 있어서 근처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이 마트을 이용한다....고 이주영이 말해줬다. 솔직히 말해 나는 마트에 오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평소에는 근처 구멍가게에서 라면을 사거나 중화요리를 시키서 먹기 때문이다. 중화요리도 충분히 맛있는데 왜 주영이는 그 맛을 몰라주는건지.....괜시리 슬퍼지네.
‘영양 밸런스를 생각해야지, 영양 밸런스를! 중화요리만 먹어서 어쩌자는거야!‘
아, 지금 환청이 들렸다. 이거 문제야. 이제는 멋대로 주영이의 목소리가 환청이 되어서 들려온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볼까?
"한번 곰곰히 생각해 봐야겠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굉장히 활기찼다. 뭐, 대부분이 아줌마라는 사실이 조금 그렇지만.
"에, 그러니까 사올 것들이...."
카트를 끌며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메모지를 꺼내 하나하나 천천히 살펴보았다. 에, 그러니까 우선은 애호박부터......애호박이 어디 있지....아, 저기 애호박 있다.
"우선은 하나 완료. 그 다음은....."
양파라.....아, 근처에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다행이네. 양파도 구했고 이제 그 다음은......
"......."
차곡차곡 식재료가 쌓이기 시작한다. 으음.....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얼른 후딱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서 쉬고 싶어......
툭.
"아, 죄송합니다."
누군가하고 어깨를 부딪쳤다. 으음.....나답지 않게 식재료 구하기에 너무 푹 빠져있었던 모양이다. 옆에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니.....
"오랜만입니다. 김민재님."
응? 고개를 돌리니 마트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을 듯한 검은 양복을 잘 차려입은 한 남자가 서있었다. 아, 그러니까.....
"누구였더라........"
"여전히 사람을 기억하시는 건 서투르시군요."
그는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나한테 내밀었다. 명함이었다. 거기에는
국가 특별 진압 관리청 소속
이채원
"...이채원?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이름인데....."
머리를 열심히 굴린다. 심층 심리 안까지 구석구석 이채원이라는 이름의 정체를 찾아보았다. 이채원.....이채원.....이채원......
"....아."
생각났다.
"언제나 뒤에서 팝콘과 콜라를 먹으며 구경하는 녀석."
".....저의 대한 평가는 고작 그 정도입니까?"
그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렇게 되물었다. 나는 두부 한모를 카트 안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사실이잖아."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저도 저의 역활이라는 게 엄연히 존재합니다만?"
"그런건 나하고 하등 상관없는 일. 그런걸 알아봤자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뭘......"
".....언제나 이상한 곳에서 정곡을 찌르시는군요."
애써 태연한 척 표정을 유지한 채 그는 나를 따라다녔다. 우선 나한테 달라붙어 있는 혹은 철저히 무시하자. 에, 그러니까 이제 살 것은.....없나?
"좋아. 이제 계산이 남았다. 계산대가......아, 저깄다."
계산대로 걸어가서 줄이 비교적 적은 쪽으로 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줄이여, 빨리 없어져라~ 이 몸이 배가 고파 쓰러지겠다~
"......제가 왜 당신한테 왔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보나마나 막노동의 현장으로 끌고 갈려는 정부의 음흉한 속셈을 알려줄려는 거겠지. 너의 말을 들어서 막노동 하러 가느니 그저 철저히 무시해서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밥을 먹고 한숨 푹 자는게 더 나을거야."
"무시한다면서 대답은 하시는군요."
"미안해. 내 성격상 대답은 반드시 해야겠거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차례차례 카트 안에 있던 식재료를 꺼내어 계산대에 올려두었다.
"우선은 제 얘기부터 들어주세요. 이번 의뢰는 정말인지-"
"싫어. 안 들어."
점원이 웃으며 차례차례 내가 올려두었던 물건을 하나씩 집어들어 계산을 시작한다. 점점 액수가 커져간다. 아.....들고 갈려면 엄청 귀찮겠네. 봉투 3봉지를 30원을 주고 받은 다음 계산된 물건을 차례차례 봉투에 집어넣었다.
"그러지 마시고 한번이라도-"
"너에게 의뢰를 듣느니 차라리 한숨 더 자는게 내 건강한 인생사에 훨씬 더 유익해."
어느새 계산이 끝났다. 총액 38690원. 생각보다 비싸네. 나는 봉투를 들고서 문밖으로 나갔다. 이채원이 뒤따라 나온다. 정말인지 끈질기네.....아, 정말. 뭐라고 한마디 해줘야겠어. 나는 이채원을 바라보면서 내 결심을 말했다.
"어째든 나는 더 이상 국가에게 관여받고 싶지 않아. 애초에 나는 용병이었고 그저 너희들이 주는 의뢰금이 짭잘했기 때문에 몇개의 일을 받아서 했을 뿐이야. 나는 국가가 기르는 개 따위가 아니야."
"물론 그건 압니다. 하지만 이번 의뢰는 정말인지 당신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예요. 다른 계승자들이 전부 하던 일을 내팽캐치고 그 일에 매달렸지만 끝내 성공한 계승자가 없단 말이예요. 심지어 저희가 관리하는 계승자 중에 정예 중의 정예라고 불려지고 불의 계승자와 물의 계승자조차도 쩔쩔매고 있는 상황이란 말입니다."
아무리 그렇게 간절한 표정으로 말해봤자 나한테는 별로 와닿지 않는 말이다.
"흥미없어. 애초에 정예라고 불려지는 그 숯덩이와 웅덩이도 너희들이 관리하는 다른 계승자들과 비교했을 때 정예라고 불려지는거다. 내가 봤을 때는 아직도 햇병아리를 벗어나지 못한 애송이들에 불과해."
"그러니까 당신한테 부탁하는거 아닙니까."
"흥미 없다고 말했을 텐데?"
나와 그의 눈이 마주친다. 그는 그 나름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굳은 결의를 가지고 있었다. 좋은 눈을 가지게 되었네. 하지만 그런 눈으로 나를 본다 하더라도 내 생각에는 변함없어.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의 생활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이 생활을 내 손으로 부술 생각은 전혀 없어."
".....지금으로서는 당신을 움직일 방법이 없군요.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래, 생각 잘 했어. 거기에 있는 사람들로도 그 의뢰인지 뭔지를 해결할 수가.....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하?"
이 남자, 지금 뭔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 같은데?
"내일은 직접 집으로 찾아가겠으니 그렇게 아시고 저는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이...이봐! 내 얘기를 제대로 들은거야?! 난 그 의뢰인지 뭔지를 맡을 생각이 없다니까!"
"그럼....."
내 말을 철저히 무시하며 그는 몸을 돌려 나하고는 정반대의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이봐!
"나의 의견도 존중해달란 말이다! 이 이기주의자!"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다. 하....내일 우리집으로 직접 온다고? .....귀찮아. 내가 무슨 인연이 있다고 저 녀석을 연일 만나냐? 그런건 이쪽에서 사양이다.
"....결정했다. 내일은 비가 오든 안 오든 무조건 야외활동을 감행한다."
그렇게 결심 아닌 결심을 하며 나는 천천히 집으로 이동했다.
기분 좋은 냄새가 퍼졌다. 이 냄새는.....된장찌개 냄새이다. 흠.....뭔가 본격적인데?
꼬르르르르.....
".......배고파......"
음식 냄새를 맡으니까 더 배고파진다.....
"조금만 참아. 조금만 있으면 전부 완성되니까."
"빨리 해줘......배고파 돌아시겠어....."
"예이 예이."
이미 식탁에는 각가지 반찬들이 놓여져 있었지만 이주영은 그것들을 전혀 먹게 해주지 않았다. 메인 요리가 올려져 있지 않은 이상 먹는 것은 금지라고 하며.....
"이건 고문이야......"
고문도 이런 생고문이 따로 없어.....아, 먹을 걸 앞에 두고 참아야 한다니.....이 몸이.....이 내가.....
"좀 참을 수 없어? 이제 곧 있으면 완성되니까."
"참고 있잖아....."
나는 참고 있다. 나는 참고 있다. 나는 참고 있다. 나는 참고 있다........
꼬르르르르.....
"배고파....."
참지 못하겠어.....지금이라도 당장 저 식탁 위의 차려져 있는 유혹의 원인들을 남김없이 먹고 싶어~
"자, 다 됐다."
주영이가 식탁 위에다가 된장찌개를 올려놓았다. 오! 드디어 다 된 것인가? 드디어 이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재빨리 의자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식탁에는 여러가지 반찬들이 놓여져 있었다. 이건 계란말이. 이건 나물 무침. 이건 연근 조림? 그토록 짧은 시간에 이런 걸 다 만들었단 말인가? 능력도 좋으셔라.
"어때?"
"맛있어."
진실로 그렇게 느꼈다. 간도 알맞게 맞춰져 있었고 양도 적당하다. 실로 몇 년 만에 먹는 제대로 된 식탁이었다.
"정말?"
"정말."
된장찌개도 짜지 않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었다. 맛있다. 이렇게 먹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네.
"다행이다. 맛이 없으면 어쩌나하고 걱정했거든."
"그런 소리 하지마. 너의 음식은 내가 인정할 정도니까 자신감을 가져."
이래뵈도 음식의 관해서는 꽤나 까다로운 편이라 할 수 있다. 한 때 미식가로서 활동했던 적이 있는 만큼 음식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아, 그러고 보니 내일 수업이 오전 밖에 없지?"
문득 유원지가 생각났다. 나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맞는 말인데....그건 왜?"
"만약 괜찮다면 내일 유원지에 같이 갈래?"
"....헤?"
잠시 내 말을 이해 못 했나보다. 나는 다시 한번 말을 강조하였다.
"내일 괜찮다면 유원지에 같이 가자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주영이는 곧 손을 파닥거리며-
"지지지지지지지금 무무무무무슨 소소소소리를 하하하하하고 있는 거야!"
당황하고 있다. 확실히 당황하고 있다. 뭣 때문에 저렇게 당황하고 있는거지?
"청소해주고 밥까지 차려줬으니 그 보답으로 같이 유원지에 놀러가자는 건데....내가 뭐 잘못 말했어?"
"에?"
"에가 아니잖아, 에가."
나 참. 도대체 지금까지 뭘 들은거야? 다시 한번 말해줘야 하나? 귀찮아 죽겠네.
"보답을 하고 싶으니까 같이 놀러가자고."
"아.....아~ 보답?"
쟤 갑자기 왜 저런데? 왜 저렇게 당황하고 왜 저렇게 딱딱한 행동을 보여준대냐? 내가 마트에 갖다오는 사이에 이상한 약이라도 먹었나? 아니, 내 집에 이상한 약 같은 것은 없을텐데....
"그래서 어쩔거야? 갈거야, 말거야?"
"가.....갈께....."
뭐야, 얼굴은 왜 새빨개 지는건데?
"그럼 내일 몇시에 만날까? 오전 수업이라면 12시 전에 끝나겠지? 그러면 1시에 공원에서 만나는게 어때?"
"으....응."
밥을 젓가락으로 휘저으며 그녀가 답했다. 왜 또 저래? 밥이 아깝다.
"그러면 그렇게 알고 밥이나 먹자. 아, 그리고 오늘은 고마웠어."
"벼.....별 말을 다.....서로 돕고 사는게 다....당연하잖아......"
제발 좀 휘젓지 마. 으깨져.
이래저래 시간은 흘러갔다. 주영이는 밥을 먹고서 디저트로 사온 과일까지 먹고서 설거지까지 한 다음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뭐, 집이라 해봤자 내가 2층에 살고 주영이는 2층에 사니 굳이 집이라기 보다는 방이라고 하는데 더 어울릴 것이다.
"........"
시계를 보니 12시가 다 되고 있었다. 이제 몇 분만 있으면 다음날로 넘어가게 된다.
"....TV나 볼까."
딱히 잠이 오지 않아 옆에 있던 리모콘을 들어 전원을 눌렀다. 뭔가 재미있는 것 안할까? 오, 드디어 화면이 나온다. 구식이라 그런지 화면이 나오는 것도 상당히 느리지만 볼 수만 있다면 대만족이다. 우선 MBC부터 볼까.
"재미없는 거고."
그럼 KBS-1,2에서는....
"별로 흥미가 가지 않아."
마지막으로 SBS에는.....
"오, 영화한다."
한번도 보지 못한 영화이다. 헐리우드 영화였다. 간만에 보고 잘까?
"......."
영화 내용은 별거 없었다. SF와 액션을 합해놓은 영화였는데 우주선 불시착으로 외계행성에 떨어진 다섯명의 지구인들이 다시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외계인들과 싸우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액션신이나 배경이 상당히 훌륭했기에 금세 영화에 몰입할 수가 있었다. 오, 주인공들이 밀리고 있다. 저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까?
"오, 저런 방법으로 빠져나오네?"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지만 이 영화 시나리오 담당자는 알고나 있을까? 저런 작전은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물론 할 수는 있겠지만 만약에 한다면 엄청난 정밀도와 집중력을 요한다. 정말인지 전투에 특화된 사람이 아닌 이상 해낼 수 있는 확률은 극히 적을 것이다.
"....뭐, 영화니까 저렇게 한번에 성공할 수 있는 거겠지만."
계속 볼까? 결말이 궁금해진다.
"......"
영화는 곧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우주선을 전부 탄 다섯명의 주인공들이 뒤따라온 외계인들과 우주에서 교전을 벌인다. 결국 어렵게 우주인의 우주선을 따돌린 그들은 서로 외계 행성에서 벗어난 걸 기뻐하며 지구로 돌아온다. 그리고-
THE END
영화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스토리로 만든 영화이지만 스토리 진행이 깔끔했기에 나름대로 높은 평점을 주고 싶은 영화였다. 시계를 보니 2시가 다 되가고 있었다.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흐른건가? 그만 자야겠다. TV를 끄고서 불까지 끈 다음에 침대로 들어가서 나는 곧 잠을 청하였다. 아니, 잠을 청할려고 했다.
똑똑똑.
저 노크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야, 누가 이 시간에 찾아온거야? 신문값은 3일전에 냈는데?
"누구세요?"
똑똑똑.
내 말은 무시하고 계속 문을 두드린다. 뭐야?
"누구시냐니까요?"
똑똑똑.
계속 무시하면서 노크를 하시겠다? 이봐, 어디 사는 누가 내 잠을 방해하려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늦은 시간에 남의 집을 찾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을 몰라?
똑똑똑.
"....아, 진짜."
어쩔 수 없이 문으로 걸어갔다. 그래, 니 똥 무지 굵다. 문고리를 잡고서 힘차게 열었다.
"누군데 이런 시간에 찾아-"
"안녕하십니까."
철컹.
요즘 들어 환청이 계속 들리는군. 아무도 없는데 노크소리가 들리다니. 거기다가 점심 때 쯤에는 주영이의 소리가 환청이 되어서 들렸었지? 이거 진짜 가까운 시일 내에 병원에서 진단을.....
똑똑똑똑똑똑똑.
".........."
철컹.
".....이 대가는 비싸게 먹힐 줄 알아."
"이거 정말인지 죄송합니다."
이채원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웃지 마. 열 받아."
"하지만 이 미소가 저의 트레이드 마크-"
"죽고 싶으면 계속 그러던지."
나의 협박에도 그는 여전히 싱글벙글이었다.
".....무슨 일이야?"
"어제 말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찾아뵙는다고요."
"보통은 아침에 찾아오는게 예의가 아니었던가?"
"아침에 오면 그 전에 당신은 도망칠게 뻔하니까요. 아,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주 내 행동을 꿰뚫어 보는군. 나는 옆으로 비켰다.
"들어와."
"이거 고맙습니다. 아, 다른 분들도 계시는데 부디-"
"난 그 애송이들까지 포함해서 들어오라고 한거야."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이채원 의외에 다른 두명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두명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누가 애송이야, 누가!"
갑자기 아무것도 없었던 문 밖에서 사람의 인영이 나타났다. 보기에도 다혈질로 보이는 남자와 단아한 미소를 지으며 침착함을 보여주는 여성이었다. 소리를 친 것은 남자 쪽이었다. 굳이 소개를 하자면 남자의 이름은 이다원. 여자의 이름은 차희라였다. 둘 다 국가에 소속 되어있는 자들이었다. 아마 그 소속되어 있는 이름이 특별 진압 구조대였지? 뭐, 소개는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겠다.
"말해! 누가 애송이라는 거야?!"
"소리지르지 마. 밑에 관리인들이 깨겠다. 그리고 애송이가 달리 누가 있겠어?"
나는 이다원과 차희라를 번갈아 가르키며 말했다.
"너희 둘이지."
"이.....이 자식이....."
그렇게 열을 내봤자 손해보는 건 내가 아니라 너일텐데....아무튼 쓸데없는 일에 힘을 쓰는 건 여전하군.
"죄송해요, 민재씨. 다원이가 당신을 만난다는게 너무 좋아서 이러는 거예요."
"어이, 희라! 말 정정해! 나는 이 녀석을 만나는 것만큼 세상에서 가장 재수없는 일이 없단 말이다앗!"
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소리 지르지 말라고 말했잖아? 밑에 있는 사람들이 깨면 니가 책임질거야?"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일을 대비해서 이 집 주위에 나노머신을 뿌려놨으니까요. 핵폭탄이 폭발하지 않는 이상 밑의 층까지 소리가 도달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채원의 말에 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아무튼 이런 일에는 준비성이 철저하다니까.
"아무튼 들어와."
이다원과 차희라가 들어오고 나서야 나는 문을 닫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삼인방이 앉아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로 끼어 앉았다.
"미리 말해두는데 대접은 기대 안하는게 좋아. 과자같은 것도 없을 뿐더러 설사 있다 하더라도 예의도 모르는 것들한테 줄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화나셨습니까?"
"상당히."
더군다나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잠이 들기 바로 직전에 문을 두드렸었지.
"그래, 무슨 일이야? 의뢰같은 쓸데없는 이야기이면 지금 나가주길 바래."
나는 문을 가르키며 말했다. 나의 말에 이채원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그 얘기를 할려고 온 거 맞는데요?"
"그럼 나가."
교섭 끝. 더 이상 들어볼 얘기도 없다.
"아니, 그래도 얘기 정도는-"
"싫어."
"그래도_"
"나가. 난 더 이상 국가를 상대로 의뢰를 받고 싶지 않아."
"아직까지도....과거를 잊지 못한 건가요?"
"너희들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그렇게 되지 않았어!!"
희라의 말에 그만 화를 내버렸다. 나는 서둘러 흥분을 진정시켰다.
"어째든 나는 더 이상 국가를 상대로 의뢰 따위는 받지 않아. 지금도 간간히 들어오고 있는 의뢰로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어."
"그러지 말고-"
"같은 말 계속 반복하게 하지마. 나는 더 이상 국가의 대한 의뢰는 일절 받지 않아."
"....그만하고 가자. 이건 시간 낭비야. 안하고 싶다는 놈 계속 설득해봤자 소용이 없어."
다원이의 말에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다. 그래, 말 한번 잘했어. 이미 결정한 내 마음은 그 누구도 바꿀 수가 없는거야.
"하지만 당신도 알잖아요. 이번 사건은 정말 김민재가 아니면 해낼 수가 없어요. 김민재, 당신이 3년전 그 사건으로 국가를 불신하고 있다는 것은 여기 있는 전원은 다 알고 있어요. 물론 당신은 용서 할 생각은 없겠죠. 그녀의 일은 정말로 안됐어요.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예요."
"그래, 그건 너의 말이 맞아. 하지만 차희라, 지금 그녀는 어떤 상태인 줄 알고나 하는 소리야?"
나의 말에 차희라가 입을 다물었다.
"너희들만.....너희들의 그 쓸데없는 생각만 안했더라면 그녀는 평범한 인생을 살 수가 있었어. 너희들이 그녀의 인생을 망쳐놨어. 너희들이 나의 미래를 망쳐놨어. 너희들이 나의 모든 것을 앗아버렸어!"
바닥을 주먹으로 쳤다. 집이 흔들린다. 하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그저 이 분노를 어떻게든 표출하고픈 생각 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눈 앞에서 잃어본 경험이나 있나!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깨달은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나! 분노에 몸이 불타고 있는데 참아야만 했던 상황이 한번이라도 찾아왔는가!"
"......"
"당연히 없겠지! 대의를 위해 소의를 버린다? 그딴 헛소리는 쥐새끼한테 지껄이라고 그래! 미안하다고? 그래, 너희들은 그 한마디면 모든게 끝나겠지! 하지만 거기의 피해자는 어떤지 조금이라도 생각해봤나! 너희들에게 희생당한 피해자의 분노를 한번이라도 정면에서 맞부딪쳐 본 적이 있냔 말이다!"
"......"
"국가의 개 따위한테 들어줄 귀 따위는 없어! 나는 새다! 높은 하늘을 향해 자유를 찾아 힘차게 비상하는 새다! 비상하는 새는 인간들에게 길러진 애완동물 따위를 바라보지 않아! 오직 자유를 찾아 힘차게 비상하고 오직 자유를 위해 힘차게 자신의 미래를 개척한다!"
"......민재씨....."
"나가! 당장 나가! 5년전에 너희들하고 잠시나마 손을 잡았던게 나의 가장 큰 오점이야! 더 이상 나한테 나타나지 마!"
침묵이 흐른다. 자연스러운 침묵이 아닌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알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당신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군요."
곧 이채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이어 다원이도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그만 가도록 하죠. 더 이상 이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희라. 이제 그만해. 녀석은 3년 전부터 우리들한테 마음을 닫았어."
"....알겠어요."
희라도 자리에 일어났다. 모두들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쪽으로 걸어가는 소리가 내 등뒤로 들렸다.
".....어이, 이채원."
나는 이채원을 불렀다. 등 뒤에서 그가 대답했다.
"뭐죠?"
"안된다고 무조건 포기하지 마. 적이 신이 아닌 이상 반드시 공략법은 있어. 단지 너희들이 마주하고 있는 상대가 자신을 공략하는 방법을 철저히 숨기고 있어서 어렵게 느껴질 뿐이야. 그리고 너희들이 의지할려는 나한테도 약점은 존재한다."
"....어째서 그런 걸 알려주는거죠? 우리들은 정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이라고요?"
왜 알려주냐고? 쳇, 당연한 걸 묻지마.
"나는 정부를 믿지 않지. 너희들은 내가 싫어하는 그 정부를 위해 일하는 자들이고.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너희들은 정부에서 일하는 자들이기 전에 단순한 인간이다."
"......"
"이유는 단지 그거 뿐이야."
시계를 문득 쳐다본다. 2시 23분.
".....고맙습니다. 당신이 방금 한 말씀을 잘 기억하죠."
"잘 가라. 너희 둘도."
"당신도 몸 건강하세요."
"쳇, 난 역시 네 놈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 말을 끝으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돌아간 것이다. 곧 들리지 않았던 벌레 소리가 들린다. 이제 정말로 가버린건가....
"....그럼 이제 정말로 자보실까."
그제서야 난 침대 속으로 들어가 진짜로 잠을 청하였다.
"그래, 가는거냐?"
몇년 동안 들어온 익숙한 소리에 나는 고개를 돌렸다. 스승님이었다. 나는 한껏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그동안 밀린 일이 제법 있어서요. 해결 좀 하러 가는 겁니다."
".....괜찮겠나? 속세는 너한테 있어서 지옥이나 다름없거늘."
지옥이라.....확실히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내 마음을 굽힐 마음이 전혀 없다.
"한걸음을 내딛으면 세상이 달라보인다고 말했던게 누구시죠?"
"......잘 갔다오거라."
결국 스승님도 어쩔 수 없다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배웅해주었다. 자, 스승님의 허락도 받았겠다. 더 이상 여기서 시간을 지체할 생각은 없다.
"그럼.....잠시 세상 구경 좀 하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나는 세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시작했다.
1장. 멸의 계승자.
"......심심해."
주룩주룩 비만 온다. 쳇, 오늘은 유원지에서 밤새도록 놀 계획이었는데.....하늘이 그런 내 뜻을 알아주지 못하는구나. 뭐, 이런 비가 오는 날에 기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심심하면 집안일이나 도와. 어떻게 된 녀석이 자기 방을 이렇게까지 어지럽힐 수 있어?"
누가 내 머리를 두드리며 그렇게 말한다. 앳된 여자 목소리. 3년 동안 지겹게 나한테 참견을 해오는 관리인 집 딸인 이주영이다. 참고로 대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다.
"냅둬. 집안일은 나하고 적성 자체가 맞지 않은 일인걸."
"그렇다 하더라도 이 정도 방이 어지럽혀 있으면 곰팡이가 쓸거나 벌레 천국일 텐데......어떻게 그런 것들은 하나도 보이지 않는건지.....신기하다니까."
"그것도 다 능력인거지."
나는 입을 한껏 벌려 하품을 크게 했다. 그러고 보니 졸리네.....한숨 자볼까.
"눕지마. 눈도 붙이지 마. 어떻게 이런 방에서 잠이 올 수가 있어?"
그녀가 어이없어하며 나한테 뭔가를 건네준다. 뭐지?
"내가 온 이상 얼렁뚱딴 넘어갈 생각하지마. 우선은 쓰레기부터 버려."
그것은 쓰레기 봉투였다. 하? 이번에는 내가 어이가 없었다.
"내가 왜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데?"
"니 방이잖아. 자기 방은 자기 스스로 청소하라고."
청소?
"내가 왜 청소를 해야되는데?"
"......너는 이 방을 쓰레기 창고로 만들 셈이니?"
한번 내 방을 쭉 살펴보았다. 으음.....상당히 쓰레기가 쌓여져 있다. 산을 이루고 있을 정도다.
"벌써 쓰레기 창고인데 뭘....."
"아직은 회복될 가능성이 있으니까 얼른 청소나 하라고, 청소."
그녀가 나를 억지로 일으킨다. 어쩔 수 없이 일어나긴 했지만......정말 하기 싫다.
"안하면 안될까?"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움직여. 마침 비도 오겠다, 밖에 나가지도 못할테니 오늘은 청소만 해."
".....켁."
나에게 있어서 그건 사형 선고를 받는거나 마찬가지인 말이다. 나는 손을 들며 말했다.
"밥은 탕수육으로 시켜줄거지?"
"내가 만들거야."
.....그건 싫은데.....
"나는 중화음식을 먹고 싶어."
"맨날 중화음식을 먹고서 몸이 배겨나겠어? 오늘은 그냥 내 말을 들어."
더 이상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아.....어쩔 수 없지. 청소하자, 청소.
"그런데 오늘은 수업이 없는 날인가 보지?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내 방에 찾아온 걸 보면."
쓰레기를 줏어서 봉투에 넣는 작업을 하며 그렇게 물었다.
"수업이 없는게 아니라 갑작스럽게 휴강이 되버렸거든. 교수님이 많이 편찮으신가봐."
"헤에......그 고릴라가?"
그녀는 경제학과에 속해있는 학생이다. 오늘 수업은 분명 그녀의 전공인 경제학. 그녀가 항상 수업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그때 느꼈던 수업의 감상을 나한테 들려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대학 시간표를 외워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몇번 대학에 가서 경제학 교수을 보았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경제학 교수를 머리 속에 떠올렸다. 교수라는 직책이 무색할 정도로 우락부락한 몸에 고릴라를 닮은 얼굴. 영락없이 고릴라의 모습 그 자체이기에 나는 그 교수를 고릴라라고 부르고 있었다.
"고릴라라니....아무튼 네이밍 센스는 기가 막힐 정도라니까. 교수님을 보자마자 고릴라라고 말한 건 니가 처음이라고."
"고릴라처럼 생겼으니까 고릴라라고 부른게 뭐가 나빠?"
그렇게 생긴 그 사람이 잘못한거지.
"아무튼 그 사건을 계기로 교수님은 고릴라라는 별명을 갖게 되었다고. 교수님이 마음이 좋아서 다행이지. 아마 성격이 불 같았으면 너는 무사하지 못했을껄?"
"글쎄.....근데 병명은 뭐래?"
"나도 잘 모르겠어. 아마 독감일거야."
"독감?"
쓰레기를 다 치워간다. 나는 속도를 더욱 올려서 얼마 남지 않은 쓰레기를 차곡차곡 봉투에 집어넣었다.
"움직이지도 못 할 정도로 병이 심해서 못 나왔다는데.....괜찮으실까 몰라."
"그러고 보니 독감 예방 접종 포스터가 요즘 유난히 눈에 띄던데......그게 그런 이유에서였나?"
지금은 겨울. 확실히 지금 쯤이면 독감이 유행하는 시기이기도 하다.
"독감이라.....한번도 걸려보지 못해서 크게 와닿지 않는 말인데.....뭐, 나하고는 상관없는 일이니 패스할래."
".....너처럼 세상을 대충 사는 사람은 흔치 않을거야."
"그래?"
"그래."
뭐, 그런 사람이 있든 말든 나하고는 별 상관없는 말이다. 아, 쓰레기 다 줏었다.
"끝났어."
"그래? 그럼 이거."
그녀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나한테 들이밀었다. 이건 또 왜 나한테 주는거야?
"쓸어."
".....뭐?"
"바닥, 쓸으라고."
빗자루를 받기는 했지만 그녀의 말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곧 그녀의 말을 이해한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내가 왜? 바닥은 니가 쓰는 거 아니였어?"
"난 지금부터 설거지하러 들어갈꺼야. 거기다가 힘 쓰는 일은 남자가 제격 아니야?"
"아니, 빗자루로 바닥을 청소하는게 힘 쓰는 거랑 상관있을 것 같지 않은데...."
"자. 그렇게 알고 난 부엌으로 들어간다?"
이주영은 보는 사람마저 시원하게 만들어줄 미소를 생긋 지으며 부엌으로 총총 들어갔다.
".....당했군."
이래나 저래나 내가 집을 대부분 청소하는 꼴이 되고 말았잖아. 아무튼 잔머리 하나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뭐, 가끔씩 청소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
그렇게 나는 차츰차츰 밀린 청소를 해결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청소를 시작한지 5시간이 흘러서야 집안은 그런대로 말끔해졌다는 수준에 이르렀다.
"후우.....이제야 좀 사람이 산다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네."
이주영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슥 훔치면서 개운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뭐, 나름대로 깨끗해 졌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반짝반짝 거릴 정도는 아니지만.
".....배고파....."
문득 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시간이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밥 줘....."
"그 전에 뭐 사야할 게 있어. 잠시만 기다려봐."
그녀는 근처에 있던 메모지와 펜을 집어들더니 곧 메모지에다가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곧 다 적었는지 메모지를 뜯어서 그것을 나한테 주었다. 이건 또 뭐야? 종이를 살펴보니-
애호박
양파
된장
청량고추
고춧가루
소금
계란
파
.......
이것들 외에도 수많은 식료품들이 메모지에 적혀있었다.
"마트에 가서 사와. 돈은 니 걸로 해결하고."
".....내가 왜?"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지만 갖다오는게 상당히 귀찮다.
"니가 갖다 와."
"안돼. 이건 니가 먹을 음식들이니까 니가 사와. 어떻게 된 애가 기본적인 조미료조차 없을 수 있니?"
"나는 라면과 중화음식만 있다면 상관없어."
나의 말에 그녀는 고개를 젓더니-
"귀차니즘도 정도가 있는 법이지. 얼른 가서 사오지 못해?"
"그래도-"
"군말하지 말고 어서 갖다와!"
가만히 그녀를 살펴보니 절대로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을 생각이다. 하....나는 왜 유독 이 여자 앞에만 서면 이리도 작은 존재가 되는건지.....어쩔 수 없나....
"알았어. 마트에 가서 이 메모지에 적힌 것들을 사오면 되는거지?"
"그래. 아, 식후 디저트로 과일도 사와."
....디저트까지 드실 생각입니까?
".....알았어."
신발장에 가서 신발을 신은 뒤에 우산을 집어들고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잘 갖다 와. 딴데로 새지 말고."
.....내가 무슨 초등학생이냐? 이 나이에 그런 말을 듣게.
"......."
밖을 보니 아까보다 기세는 누그러졌지만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잿빛으로 물들인 하늘은 여전히 자신의 원래 색으로 돌아올 생각을 전혀 안하고 있다.
"빨리 날이 갰으면 좋겠는데...."
그래야 유원지로 놀러가지. 아, 혼자 가는 것은 심심하니 이주영도 같이 부를까?
"원하지는 않았지만 집을 청소해 줬으니까 그 보답이라고 하면 자연스럽겠지?"
스스로 내린 결론에 스스로 만족하며 나는 대문을 열고서 밖으로 나갔다. 비 진짜 많이 온다.
"마켓이 어디 있더라....."
그러니까.....아마도 왼쪽으로 500m가서 사거리가 나타나면 다시 오른쪽으로 꺾어 300m 지점에......있었지, 아마?
"그러니까 왼쪽이라면......"
나는 차츰 기억을 더듬어가며 마트로 향해 발걸음을 향하였다.
마트에 도착했다. 제법 큰 편에 속하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왠만한 물건들은 전부 다 있어서 근처에 사는 모든 사람들은 이 마트을 이용한다....고 이주영이 말해줬다. 솔직히 말해 나는 마트에 오는 건 오늘이 처음이다. 평소에는 근처 구멍가게에서 라면을 사거나 중화요리를 시키서 먹기 때문이다. 중화요리도 충분히 맛있는데 왜 주영이는 그 맛을 몰라주는건지.....괜시리 슬퍼지네.
‘영양 밸런스를 생각해야지, 영양 밸런스를! 중화요리만 먹어서 어쩌자는거야!‘
아, 지금 환청이 들렸다. 이거 문제야. 이제는 멋대로 주영이의 목소리가 환청이 되어서 들려온다. 정신과 치료를 받아볼까?
"한번 곰곰히 생각해 봐야겠는데....."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나는 마트 안으로 들어갔다. 사람들이 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굉장히 활기찼다. 뭐, 대부분이 아줌마라는 사실이 조금 그렇지만.
"에, 그러니까 사올 것들이...."
카트를 끌며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메모지를 꺼내 하나하나 천천히 살펴보았다. 에, 그러니까 우선은 애호박부터......애호박이 어디 있지....아, 저기 애호박 있다.
"우선은 하나 완료. 그 다음은....."
양파라.....아, 근처에 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다행이네. 양파도 구했고 이제 그 다음은......
"......."
차곡차곡 식재료가 쌓이기 시작한다. 으음.....이제 얼마 남지 않았네. 얼른 후딱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서 쉬고 싶어......
툭.
"아, 죄송합니다."
누군가하고 어깨를 부딪쳤다. 으음.....나답지 않게 식재료 구하기에 너무 푹 빠져있었던 모양이다. 옆에 사람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다니.....
"오랜만입니다. 김민재님."
응? 고개를 돌리니 마트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을 듯한 검은 양복을 잘 차려입은 한 남자가 서있었다. 아, 그러니까.....
"누구였더라........"
"여전히 사람을 기억하시는 건 서투르시군요."
그는 품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나한테 내밀었다. 명함이었다. 거기에는
국가 특별 진압 관리청 소속
이채원
"...이채원? 어디서 많이 들어봤던 이름인데....."
머리를 열심히 굴린다. 심층 심리 안까지 구석구석 이채원이라는 이름의 정체를 찾아보았다. 이채원.....이채원.....이채원......
"....아."
생각났다.
"언제나 뒤에서 팝콘과 콜라를 먹으며 구경하는 녀석."
".....저의 대한 평가는 고작 그 정도입니까?"
그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렇게 되물었다. 나는 두부 한모를 카트 안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사실이잖아."
"부정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저도 저의 역활이라는 게 엄연히 존재합니다만?"
"그런건 나하고 하등 상관없는 일. 그런걸 알아봤자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데 뭘......"
".....언제나 이상한 곳에서 정곡을 찌르시는군요."
애써 태연한 척 표정을 유지한 채 그는 나를 따라다녔다. 우선 나한테 달라붙어 있는 혹은 철저히 무시하자. 에, 그러니까 이제 살 것은.....없나?
"좋아. 이제 계산이 남았다. 계산대가......아, 저깄다."
계산대로 걸어가서 줄이 비교적 적은 쪽으로 서서 순서를 기다렸다. 줄이여, 빨리 없어져라~ 이 몸이 배가 고파 쓰러지겠다~
"......제가 왜 당신한테 왔는지 궁금하지 않습니까?"
"보나마나 막노동의 현장으로 끌고 갈려는 정부의 음흉한 속셈을 알려줄려는 거겠지. 너의 말을 들어서 막노동 하러 가느니 그저 철저히 무시해서 집으로 돌아가 따뜻한 밥을 먹고 한숨 푹 자는게 더 나을거야."
"무시한다면서 대답은 하시는군요."
"미안해. 내 성격상 대답은 반드시 해야겠거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차례차례 카트 안에 있던 식재료를 꺼내어 계산대에 올려두었다.
"우선은 제 얘기부터 들어주세요. 이번 의뢰는 정말인지-"
"싫어. 안 들어."
점원이 웃으며 차례차례 내가 올려두었던 물건을 하나씩 집어들어 계산을 시작한다. 점점 액수가 커져간다. 아.....들고 갈려면 엄청 귀찮겠네. 봉투 3봉지를 30원을 주고 받은 다음 계산된 물건을 차례차례 봉투에 집어넣었다.
"그러지 마시고 한번이라도-"
"너에게 의뢰를 듣느니 차라리 한숨 더 자는게 내 건강한 인생사에 훨씬 더 유익해."
어느새 계산이 끝났다. 총액 38690원. 생각보다 비싸네. 나는 봉투를 들고서 문밖으로 나갔다. 이채원이 뒤따라 나온다. 정말인지 끈질기네.....아, 정말. 뭐라고 한마디 해줘야겠어. 나는 이채원을 바라보면서 내 결심을 말했다.
"어째든 나는 더 이상 국가에게 관여받고 싶지 않아. 애초에 나는 용병이었고 그저 너희들이 주는 의뢰금이 짭잘했기 때문에 몇개의 일을 받아서 했을 뿐이야. 나는 국가가 기르는 개 따위가 아니야."
"물론 그건 압니다. 하지만 이번 의뢰는 정말인지 당신이 아니면 해낼 수 없는 일이예요. 다른 계승자들이 전부 하던 일을 내팽캐치고 그 일에 매달렸지만 끝내 성공한 계승자가 없단 말이예요. 심지어 저희가 관리하는 계승자 중에 정예 중의 정예라고 불려지고 불의 계승자와 물의 계승자조차도 쩔쩔매고 있는 상황이란 말입니다."
아무리 그렇게 간절한 표정으로 말해봤자 나한테는 별로 와닿지 않는 말이다.
"흥미없어. 애초에 정예라고 불려지는 그 숯덩이와 웅덩이도 너희들이 관리하는 다른 계승자들과 비교했을 때 정예라고 불려지는거다. 내가 봤을 때는 아직도 햇병아리를 벗어나지 못한 애송이들에 불과해."
"그러니까 당신한테 부탁하는거 아닙니까."
"흥미 없다고 말했을 텐데?"
나와 그의 눈이 마주친다. 그는 그 나름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굳은 결의를 가지고 있었다. 좋은 눈을 가지게 되었네. 하지만 그런 눈으로 나를 본다 하더라도 내 생각에는 변함없어.
"미안하지만 나는 지금의 생활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 이 생활을 내 손으로 부술 생각은 전혀 없어."
".....지금으로서는 당신을 움직일 방법이 없군요. 오늘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그래, 생각 잘 했어. 거기에 있는 사람들로도 그 의뢰인지 뭔지를 해결할 수가.....
"내일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하?"
이 남자, 지금 뭔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 같은데?
"내일은 직접 집으로 찾아가겠으니 그렇게 아시고 저는 이만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이...이봐! 내 얘기를 제대로 들은거야?! 난 그 의뢰인지 뭔지를 맡을 생각이 없다니까!"
"그럼....."
내 말을 철저히 무시하며 그는 몸을 돌려 나하고는 정반대의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이봐!
"나의 의견도 존중해달란 말이다! 이 이기주의자!"
어느새 사라지고 말았다. 하....내일 우리집으로 직접 온다고? .....귀찮아. 내가 무슨 인연이 있다고 저 녀석을 연일 만나냐? 그런건 이쪽에서 사양이다.
"....결정했다. 내일은 비가 오든 안 오든 무조건 야외활동을 감행한다."
그렇게 결심 아닌 결심을 하며 나는 천천히 집으로 이동했다.
기분 좋은 냄새가 퍼졌다. 이 냄새는.....된장찌개 냄새이다. 흠.....뭔가 본격적인데?
꼬르르르르.....
".......배고파......"
음식 냄새를 맡으니까 더 배고파진다.....
"조금만 참아. 조금만 있으면 전부 완성되니까."
"빨리 해줘......배고파 돌아시겠어....."
"예이 예이."
이미 식탁에는 각가지 반찬들이 놓여져 있었지만 이주영은 그것들을 전혀 먹게 해주지 않았다. 메인 요리가 올려져 있지 않은 이상 먹는 것은 금지라고 하며.....
"이건 고문이야......"
고문도 이런 생고문이 따로 없어.....아, 먹을 걸 앞에 두고 참아야 한다니.....이 몸이.....이 내가.....
"좀 참을 수 없어? 이제 곧 있으면 완성되니까."
"참고 있잖아....."
나는 참고 있다. 나는 참고 있다. 나는 참고 있다. 나는 참고 있다........
꼬르르르르.....
"배고파....."
참지 못하겠어.....지금이라도 당장 저 식탁 위의 차려져 있는 유혹의 원인들을 남김없이 먹고 싶어~
"자, 다 됐다."
주영이가 식탁 위에다가 된장찌개를 올려놓았다. 오! 드디어 다 된 것인가? 드디어 이 불행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재빨리 의자에 앉았다.
"잘 먹겠습니다."
그리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식탁에는 여러가지 반찬들이 놓여져 있었다. 이건 계란말이. 이건 나물 무침. 이건 연근 조림? 그토록 짧은 시간에 이런 걸 다 만들었단 말인가? 능력도 좋으셔라.
"어때?"
"맛있어."
진실로 그렇게 느꼈다. 간도 알맞게 맞춰져 있었고 양도 적당하다. 실로 몇 년 만에 먹는 제대로 된 식탁이었다.
"정말?"
"정말."
된장찌개도 짜지 않고 구수한 맛이 일품이었다. 맛있다. 이렇게 먹는 것도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네.
"다행이다. 맛이 없으면 어쩌나하고 걱정했거든."
"그런 소리 하지마. 너의 음식은 내가 인정할 정도니까 자신감을 가져."
이래뵈도 음식의 관해서는 꽤나 까다로운 편이라 할 수 있다. 한 때 미식가로서 활동했던 적이 있는 만큼 음식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
"아, 그러고 보니 내일 수업이 오전 밖에 없지?"
문득 유원지가 생각났다. 나의 질문에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맞는 말인데....그건 왜?"
"만약 괜찮다면 내일 유원지에 같이 갈래?"
"....헤?"
잠시 내 말을 이해 못 했나보다. 나는 다시 한번 말을 강조하였다.
"내일 괜찮다면 유원지에 같이 가자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주영이는 곧 손을 파닥거리며-
"지지지지지지지금 무무무무무슨 소소소소리를 하하하하하고 있는 거야!"
당황하고 있다. 확실히 당황하고 있다. 뭣 때문에 저렇게 당황하고 있는거지?
"청소해주고 밥까지 차려줬으니 그 보답으로 같이 유원지에 놀러가자는 건데....내가 뭐 잘못 말했어?"
"에?"
"에가 아니잖아, 에가."
나 참. 도대체 지금까지 뭘 들은거야? 다시 한번 말해줘야 하나? 귀찮아 죽겠네.
"보답을 하고 싶으니까 같이 놀러가자고."
"아.....아~ 보답?"
쟤 갑자기 왜 저런데? 왜 저렇게 당황하고 왜 저렇게 딱딱한 행동을 보여준대냐? 내가 마트에 갖다오는 사이에 이상한 약이라도 먹었나? 아니, 내 집에 이상한 약 같은 것은 없을텐데....
"그래서 어쩔거야? 갈거야, 말거야?"
"가.....갈께....."
뭐야, 얼굴은 왜 새빨개 지는건데?
"그럼 내일 몇시에 만날까? 오전 수업이라면 12시 전에 끝나겠지? 그러면 1시에 공원에서 만나는게 어때?"
"으....응."
밥을 젓가락으로 휘저으며 그녀가 답했다. 왜 또 저래? 밥이 아깝다.
"그러면 그렇게 알고 밥이나 먹자. 아, 그리고 오늘은 고마웠어."
"벼.....별 말을 다.....서로 돕고 사는게 다....당연하잖아......"
제발 좀 휘젓지 마. 으깨져.
이래저래 시간은 흘러갔다. 주영이는 밥을 먹고서 디저트로 사온 과일까지 먹고서 설거지까지 한 다음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뭐, 집이라 해봤자 내가 2층에 살고 주영이는 2층에 사니 굳이 집이라기 보다는 방이라고 하는데 더 어울릴 것이다.
"........"
시계를 보니 12시가 다 되고 있었다. 이제 몇 분만 있으면 다음날로 넘어가게 된다.
"....TV나 볼까."
딱히 잠이 오지 않아 옆에 있던 리모콘을 들어 전원을 눌렀다. 뭔가 재미있는 것 안할까? 오, 드디어 화면이 나온다. 구식이라 그런지 화면이 나오는 것도 상당히 느리지만 볼 수만 있다면 대만족이다. 우선 MBC부터 볼까.
"재미없는 거고."
그럼 KBS-1,2에서는....
"별로 흥미가 가지 않아."
마지막으로 SBS에는.....
"오, 영화한다."
한번도 보지 못한 영화이다. 헐리우드 영화였다. 간만에 보고 잘까?
"......."
영화 내용은 별거 없었다. SF와 액션을 합해놓은 영화였는데 우주선 불시착으로 외계행성에 떨어진 다섯명의 지구인들이 다시 지구로 돌아가기 위해 외계인들과 싸우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액션신이나 배경이 상당히 훌륭했기에 금세 영화에 몰입할 수가 있었다. 오, 주인공들이 밀리고 있다. 저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까?
"오, 저런 방법으로 빠져나오네?"
제법 괜찮은 아이디어지만 이 영화 시나리오 담당자는 알고나 있을까? 저런 작전은 실제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물론 할 수는 있겠지만 만약에 한다면 엄청난 정밀도와 집중력을 요한다. 정말인지 전투에 특화된 사람이 아닌 이상 해낼 수 있는 확률은 극히 적을 것이다.
"....뭐, 영화니까 저렇게 한번에 성공할 수 있는 거겠지만."
계속 볼까? 결말이 궁금해진다.
"......"
영화는 곧 클라이맥스로 향한다. 우주선을 전부 탄 다섯명의 주인공들이 뒤따라온 외계인들과 우주에서 교전을 벌인다. 결국 어렵게 우주인의 우주선을 따돌린 그들은 서로 외계 행성에서 벗어난 걸 기뻐하며 지구로 돌아온다. 그리고-
THE END
영화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어디에서나 있을 법한 스토리로 만든 영화이지만 스토리 진행이 깔끔했기에 나름대로 높은 평점을 주고 싶은 영화였다. 시계를 보니 2시가 다 되가고 있었다. 벌써 이렇게 시간이 흐른건가? 그만 자야겠다. TV를 끄고서 불까지 끈 다음에 침대로 들어가서 나는 곧 잠을 청하였다. 아니, 잠을 청할려고 했다.
똑똑똑.
저 노크소리가 들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뭐야, 누가 이 시간에 찾아온거야? 신문값은 3일전에 냈는데?
"누구세요?"
똑똑똑.
내 말은 무시하고 계속 문을 두드린다. 뭐야?
"누구시냐니까요?"
똑똑똑.
계속 무시하면서 노크를 하시겠다? 이봐, 어디 사는 누가 내 잠을 방해하려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늦은 시간에 남의 집을 찾는 것은 예의에 어긋난다는 것을 몰라?
똑똑똑.
"....아, 진짜."
어쩔 수 없이 문으로 걸어갔다. 그래, 니 똥 무지 굵다. 문고리를 잡고서 힘차게 열었다.
"누군데 이런 시간에 찾아-"
"안녕하십니까."
철컹.
요즘 들어 환청이 계속 들리는군. 아무도 없는데 노크소리가 들리다니. 거기다가 점심 때 쯤에는 주영이의 소리가 환청이 되어서 들렸었지? 이거 진짜 가까운 시일 내에 병원에서 진단을.....
똑똑똑똑똑똑똑.
".........."
철컹.
".....이 대가는 비싸게 먹힐 줄 알아."
"이거 정말인지 죄송합니다."
이채원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웃지 마. 열 받아."
"하지만 이 미소가 저의 트레이드 마크-"
"죽고 싶으면 계속 그러던지."
나의 협박에도 그는 여전히 싱글벙글이었다.
".....무슨 일이야?"
"어제 말하지 않았습니까? 오늘 찾아뵙는다고요."
"보통은 아침에 찾아오는게 예의가 아니었던가?"
"아침에 오면 그 전에 당신은 도망칠게 뻔하니까요. 아,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주 내 행동을 꿰뚫어 보는군. 나는 옆으로 비켰다.
"들어와."
"이거 고맙습니다. 아, 다른 분들도 계시는데 부디-"
"난 그 애송이들까지 포함해서 들어오라고 한거야."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다. 이채원 의외에 다른 두명이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두명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누가 애송이야, 누가!"
갑자기 아무것도 없었던 문 밖에서 사람의 인영이 나타났다. 보기에도 다혈질로 보이는 남자와 단아한 미소를 지으며 침착함을 보여주는 여성이었다. 소리를 친 것은 남자 쪽이었다. 굳이 소개를 하자면 남자의 이름은 이다원. 여자의 이름은 차희라였다. 둘 다 국가에 소속 되어있는 자들이었다. 아마 그 소속되어 있는 이름이 특별 진압 구조대였지? 뭐, 소개는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겠다.
"말해! 누가 애송이라는 거야?!"
"소리지르지 마. 밑에 관리인들이 깨겠다. 그리고 애송이가 달리 누가 있겠어?"
나는 이다원과 차희라를 번갈아 가르키며 말했다.
"너희 둘이지."
"이.....이 자식이....."
그렇게 열을 내봤자 손해보는 건 내가 아니라 너일텐데....아무튼 쓸데없는 일에 힘을 쓰는 건 여전하군.
"죄송해요, 민재씨. 다원이가 당신을 만난다는게 너무 좋아서 이러는 거예요."
"어이, 희라! 말 정정해! 나는 이 녀석을 만나는 것만큼 세상에서 가장 재수없는 일이 없단 말이다앗!"
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소리 지르지 말라고 말했잖아? 밑에 있는 사람들이 깨면 니가 책임질거야?"
"아,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일을 대비해서 이 집 주위에 나노머신을 뿌려놨으니까요. 핵폭탄이 폭발하지 않는 이상 밑의 층까지 소리가 도달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채원의 말에 절로 고개가 저어진다. 아무튼 이런 일에는 준비성이 철저하다니까.
"아무튼 들어와."
이다원과 차희라가 들어오고 나서야 나는 문을 닫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삼인방이 앉아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로 끼어 앉았다.
"미리 말해두는데 대접은 기대 안하는게 좋아. 과자같은 것도 없을 뿐더러 설사 있다 하더라도 예의도 모르는 것들한테 줄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
"화나셨습니까?"
"상당히."
더군다나 타이밍도 기가 막히게 잠이 들기 바로 직전에 문을 두드렸었지.
"그래, 무슨 일이야? 의뢰같은 쓸데없는 이야기이면 지금 나가주길 바래."
나는 문을 가르키며 말했다. 나의 말에 이채원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그 얘기를 할려고 온 거 맞는데요?"
"그럼 나가."
교섭 끝. 더 이상 들어볼 얘기도 없다.
"아니, 그래도 얘기 정도는-"
"싫어."
"그래도_"
"나가. 난 더 이상 국가를 상대로 의뢰를 받고 싶지 않아."
"아직까지도....과거를 잊지 못한 건가요?"
"너희들만 아니었다면 그녀는 그렇게 되지 않았어!!"
희라의 말에 그만 화를 내버렸다. 나는 서둘러 흥분을 진정시켰다.
"어째든 나는 더 이상 국가를 상대로 의뢰 따위는 받지 않아. 지금도 간간히 들어오고 있는 의뢰로 먹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어."
"그러지 말고-"
"같은 말 계속 반복하게 하지마. 나는 더 이상 국가의 대한 의뢰는 일절 받지 않아."
"....그만하고 가자. 이건 시간 낭비야. 안하고 싶다는 놈 계속 설득해봤자 소용이 없어."
다원이의 말에 고개를 조용히 끄덕였다.다. 그래, 말 한번 잘했어. 이미 결정한 내 마음은 그 누구도 바꿀 수가 없는거야.
"하지만 당신도 알잖아요. 이번 사건은 정말 김민재가 아니면 해낼 수가 없어요. 김민재, 당신이 3년전 그 사건으로 국가를 불신하고 있다는 것은 여기 있는 전원은 다 알고 있어요. 물론 당신은 용서 할 생각은 없겠죠. 그녀의 일은 정말로 안됐어요.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예요."
"그래, 그건 너의 말이 맞아. 하지만 차희라, 지금 그녀는 어떤 상태인 줄 알고나 하는 소리야?"
나의 말에 차희라가 입을 다물었다.
"너희들만.....너희들의 그 쓸데없는 생각만 안했더라면 그녀는 평범한 인생을 살 수가 있었어. 너희들이 그녀의 인생을 망쳐놨어. 너희들이 나의 미래를 망쳐놨어. 너희들이 나의 모든 것을 앗아버렸어!"
바닥을 주먹으로 쳤다. 집이 흔들린다. 하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그저 이 분노를 어떻게든 표출하고픈 생각 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눈 앞에서 잃어본 경험이나 있나! 자신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 깨달은 적이 한번이라도 있었나! 분노에 몸이 불타고 있는데 참아야만 했던 상황이 한번이라도 찾아왔는가!"
"......"
"당연히 없겠지! 대의를 위해 소의를 버린다? 그딴 헛소리는 쥐새끼한테 지껄이라고 그래! 미안하다고? 그래, 너희들은 그 한마디면 모든게 끝나겠지! 하지만 거기의 피해자는 어떤지 조금이라도 생각해봤나! 너희들에게 희생당한 피해자의 분노를 한번이라도 정면에서 맞부딪쳐 본 적이 있냔 말이다!"
"......"
"국가의 개 따위한테 들어줄 귀 따위는 없어! 나는 새다! 높은 하늘을 향해 자유를 찾아 힘차게 비상하는 새다! 비상하는 새는 인간들에게 길러진 애완동물 따위를 바라보지 않아! 오직 자유를 찾아 힘차게 비상하고 오직 자유를 위해 힘차게 자신의 미래를 개척한다!"
"......민재씨....."
"나가! 당장 나가! 5년전에 너희들하고 잠시나마 손을 잡았던게 나의 가장 큰 오점이야! 더 이상 나한테 나타나지 마!"
침묵이 흐른다. 자연스러운 침묵이 아닌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알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당신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하군요."
곧 이채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뒤이어 다원이도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그만 가도록 하죠. 더 이상 이 사람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희라. 이제 그만해. 녀석은 3년 전부터 우리들한테 마음을 닫았어."
"....알겠어요."
희라도 자리에 일어났다. 모두들 밖으로 나가기 위해 문쪽으로 걸어가는 소리가 내 등뒤로 들렸다.
".....어이, 이채원."
나는 이채원을 불렀다. 등 뒤에서 그가 대답했다.
"뭐죠?"
"안된다고 무조건 포기하지 마. 적이 신이 아닌 이상 반드시 공략법은 있어. 단지 너희들이 마주하고 있는 상대가 자신을 공략하는 방법을 철저히 숨기고 있어서 어렵게 느껴질 뿐이야. 그리고 너희들이 의지할려는 나한테도 약점은 존재한다."
"....어째서 그런 걸 알려주는거죠? 우리들은 정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 이라고요?"
왜 알려주냐고? 쳇, 당연한 걸 묻지마.
"나는 정부를 믿지 않지. 너희들은 내가 싫어하는 그 정부를 위해 일하는 자들이고. 하지만....."
".....하지만?"
"하지만 너희들은 정부에서 일하는 자들이기 전에 단순한 인간이다."
"......"
"이유는 단지 그거 뿐이야."
시계를 문득 쳐다본다. 2시 23분.
".....고맙습니다. 당신이 방금 한 말씀을 잘 기억하죠."
"잘 가라. 너희 둘도."
"당신도 몸 건강하세요."
"쳇, 난 역시 네 놈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 말을 끝으로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돌아간 것이다. 곧 들리지 않았던 벌레 소리가 들린다. 이제 정말로 가버린건가....
"....그럼 이제 정말로 자보실까."
그제서야 난 침대 속으로 들어가 진짜로 잠을 청하였다.
댓글목록

카렌밥♡님의 댓글
카렌밥♡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시르베이느님이라면...
아, 제가 댓글 적는 건 처음일지도 모르겠네요.
아마, 2번 연속으로 올라온 걸 보니 전에 준비해놨던 글을 올리신듯 하군요.
역시 고참이신지라 좋은 필력을 보이십니다.
소설란에 새로 글 쓰시는 분들이 많지 않은 가운데 가뭄 속의 단비를 만난 기분이랄까요. (좋아, 좋아!)
읽어보니 확실히 전개감이 있고, 긴장을 놓을 때 쯤 다시 잡게 하는 군요. 기대됩니다.
약간 아쉬운건 전개의 끈. 그러니까 전개의 끈을 조일 때와 놓을 때를 잡는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그리고 아직까지는 스토리 진행이 매끄럽지만 다소 식상하게 느껴지는 듯 합니다. 문체 자체도 읽기에는 쉽지만 평이하달까요. 이건 장점도 될 수 있고 단점도 될 수 있는 거라 비판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
계속 읽겠으니 연재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