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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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part 2.-
제8화 - 격전! 불타는 요코하마 -
"각오해라! 무라카미! 아니, 이마카람 밀리비너스!! 내가 널 지옥으로 보내주마!"
케이에게서 기간틱을 넘겨받은 아키토는 호기 있게 소리쳤다. 온 몸을 휘감고 있는 엄청난 힘, 이 정도 힘이라면 절대 지지 않는다! 게다가 아키토가 기간틱을 재식장 하면서 기간틱이 먼저 입었던 데미지도 말끔히 복구되었다.
"윽...! 조...좋다!!"
무라카미는 잔뜩 당황해 하였다. 설마 가이버 III도 기간틱을 사용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게다가 지금 태도로 보아서는 상대가 예전 동료였다고 해도 케이처럼 머뭇거릴 것 같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방법으로 싸워야 했다.
"하지만 싸우는 장소는 내가 정한다!"
그렇게 말하면서 무라카미는 어딘가로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아키토 역시 무라카미의 뒤를 쫓아 하늘로 날아올랐다.
"좋아! 네 맘대로 해 봐라!"
-슈우웅!!
아키토와 무라카미가 날아가자 일행은 모두 걱정스럽다는 듯이 그 쪽 방향을 바라보았다. 아키토가 과연 어느 정도까지 해 줄지 걱정이 됐지만 현재로서는 싸울 수 있는 사람은 아키토뿐이었다. 지금으로서는 그를 믿는 수밖에는 없었다. 시즈는 두 손을 꼭 모아서는 아키토의 무사함을 빌었다.
'아키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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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 갑자기 도심지로 오다니. 이번엔 무슨 속셈이지?"
무라카미가 온 곳은 바로 요코하마 시(市) 상공이었다. 무라카미는 이곳까지 아키토를 유인한 후 도심 상공에 멈춰 섰다. 도심의 불빛은 휘황찬란했고 저 멀리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는 야구 경기가 한창인 듯 조명이 대낮처럼 환하게 밝혀져 있었고 수많은 관중들이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아키토는 왜 무라카미가 이런 곳으로 왔는지 의아해 하였다. 여차하면 빌딩 숲 사이로 숨으려고 그러는 것일까?
"그건 바로.....이것 때문이다!!"
-파아앗!
갑자기 무라카미가 기습적으로 절단파를 발사하였다. 아키토는 순간적으로 그 공격을 피했다. 그러나 그 덕분에 빚나간 절단파가 도심을 강타하였다!
-콰콰콰쾅!!!
무라카미가 발사한 거대한 빛의 칼날은 그대로 도심지에 내리 꽂혔다. 절단파는 차례대로 그 앞에 있던 모든 빌딩을 무너트려버렸다. 그 위력은 수km 떨어져 있는 요코하마 스타디움까지 반으로 갈라버릴 정도였다. 이로 인해 건물들 안에 있던 사람들과 경기장에 운집해 있던 수많은 관중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마른하늘의 날벼락이라고 갑자기 대참사가 벌어지자 경기장의 수많은 관중들이 비명을 지르며 경기장 밖으로 나가려 하였다. 요코하마 시내는 이내 대혼란에 빠져들었다.
"후하하하! 자 어떠냐! 넌 내 공격을 피할 수 있지만 만약 피하게 되면 지상은 저 꼴이 돼."
아키토는 그제야 무라카미의 속셈을 간파하였다. 무라카미는 이 요코하마 시 전체를 방패삼으려는 것이었다. 도심 상공에서 기간틱과 조아로드가 정면 대결을 하게 되면 도심은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원거리 공격 한 번 잘못해서 빗나가기라도 하면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죽어나가게 되는 것이다. 즉, 그걸 원치 않으면 공격을 순순히 얻어맞던가 아니면 백병전만을 고집해야 한다. 하지만 무라카미로서는 사람이 몇이 죽던 개의치 않으므로 맘대로 공격을 퍼부을 수 있다. 케이라면 이 상황에서 함부로 공격을 못할 것이다.
....그러나!
-위이잉!
아키토는 한 손을 들어 올리고 복부의 중력 제어구를 조종하였다. 순식간에 그의 손바닥 안에서 강력한 중력탄이 생성되었다. 아키토는 그대로 무라카미를 노리고 프레셔 캐논을 발사하였다.
-파앙!!
"아니?!!"
-콰콰쾅!!
무라카미는 아키토의 프레셔 캐논을 가볍게 피했다. 빗나간 중력탄은 그대로 무라카미의 후방에 있던 요코하마 마린타워를 직격하였다. 마린 타워는 중간 부분이 뚝 부러져 버려서 그 위쪽 구조물이 지상으로 낙하, 큰 피해를 입히고 말았다. 더불어 낙하한 구조물에는 전망대가 있었는데 그 안에 있던 사람들 역시 전부가 다 영문도 모른 채 죽고 말았다. 무라카미는 당황해 하기 시작했다. 저 녀석, 여기가 어디라고 함부로 원거리 공격을 시도한다는 말인가!
"착각하지 마. 무라카미. 난 케이와는 틀려."
"뭐....뭐라고?!!"
"이 전투에 휘말려들어 몇만 명이 죽어나간다 해도 그건 내가 알 바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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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희 아오시마 호텔의 개관 기념식에 와 주신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엄청난 규모의 파티장 안에서 도시유가 단상위에 서서 큰 소리로 인사를 하고 있었다. 오늘은 요코하마에 아오시마 그룹 산하의 아오시마 건설에서 시공한 동양 최대 규모의 호텔이 개관식을 가지는 날이었다. 호텔 최상층부에 마련된 대연회장은 벽면 전체를 강화 유리로 지어서 바깥 풍경이 아주 잘 보였다. 덕분에 밤에는 요코하마 시의 야경이 어우러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연회장 안에는 온갖 고급 요리가 차려져 있었고 관현악단의 아름다운 음악이 분위기를 한층 더 돋우고 있었다. 파티에 초대받은 사람들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제계의 유력인사들을 비롯한 상류층이 주를 이루었고 그중에는 유명 연예인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다. 그들은 각자 최고급의 명품 옷들을 잘 차려입고 나와서 자신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크로노스 측에서는 아무도 안 왔나?"
"초대장을 보내긴 했습니다만...."
하지만 연설을 마친 후 비서와 몰래 이야기를 나누는 도시유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만은 않았다. 정작 그가 가장 초대하고 싶던 인물들은 한명도 안 왔기 때문이었다. 바로 현재 크로노스 일본지부의 고위 간부들이었다. 일본 지부 총독인 푸르크슈탈을 비롯해서 고위 간부들에게 빠짐없이 초대장을 보냈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던 것이다. 현재 여기 모인 사람들은 그저 엑스트라일 뿐. 제일 중요한 인물들은 바로 크로노스의 간부들이었다. 현재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그들에게 잘 보여야 앞으로 사업이 순탄할 터인데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고 있었다. 웬지 그 만이 크로노스에 밉보인 것만 같아서 마음이 점점 초조해져만 갔다.
물론 그건 도시유의 착각이다. 도시유 같이 무슨 건수가 있을 때마다 제계의 인사들이 크로노스에 잘 보이기 위해 이런 식으로 꼬리를 쳤지만 푸르크슈탈은 언제나 그 초대를 거부했던 것이다. 푸르크슈탈 입장에서는 '하등한' 구 인류 따위와 어울릴 이유 같은 건 없었기도 하고 쓸데없는 스캔들을 만들지 않기 위해 공과 사는 엄격히 구분했던 것이다. 현재 크로노스는 엄격하고 평등한 법 집행과 청렴함을 민중들에게 어필하는 중이었기에 총독인 푸르크슈탈을 비롯한 휘하 간부들이 쓸데없이 이런 데에 참석해서 불필요한 소문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쳇! 즐길 줄도 모르는 놈들 같으니. 사람들이 왜 그리 콕 막혔는지."
"회...회장님! 목소리가 너무 크십니다."
도시유가 투덜거리자 비서가 황급히 그를 말렸다. 혹시나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 크로노스 측에서 보낸 비밀요원이 있을까봐 그러는 것이었다. 비밀 요원까지는 아니라도 이곳에는 유력 언론인도 있고 크로노스에게 잘 보일 기회만 노리는 놈들도 수두룩했다. 그런 놈들의 귀에 이런 소리가 흘러들어가 봐야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원래 이런 자리에서는 속마음이야 어찌됐던 무조건 웃어서 속마음을 감춰야 하지만 도시유는 감정이 그대로 다 드러나고 있으니 측근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안 그래도 저번의 뇌물 사건 때문에 크로노스에게 단단히 찍힌 상태였으니 더욱 더 조심해야 했다.
"후우....."
파티에 참석한 사요코는 이곳에 모인 그 어떤 여성보다 한층 더 화려한 드레스와 거기에 걸맞은 미모로 모든 이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런 사람들의 시선을 즐기며 여왕님 행세를 할 터이지만 웬지 오늘은 그럴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사실 이곳도 도시유가 꼭 오라고 다그치지만 않았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샴페인 잔을 든 채 그저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수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춤을 권했지만 그녀는 응하지 않았다.
-사요코씨 만큼은 진실을 봐 주셨으면 해요-
베르단디의 말이 뇌리에서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어째서? 진실이란 게 뭐지? 왜 내가 이러는 걸까? 그녀들을 더 이상 도와주지 않아서 죄책감이라도 느끼는 걸까? 세상은 크로노스 지배이후 더 살기 좋아졌어. 그러면 된 거 아냐? 누가 지배하건 간에 잘 살면 되는 거 아냐? 그런데 왜 이렇게 머릿속이 복잡한 거지?
-쿠쿵~!
그 때 창 밖 너머 도심지 한가운데에서 뭔가가 터지는 듯 한 불빛이 보였다. 음악이 한창 연주되고 있는 파티장안에까지 들릴 정도로 묵직한 폭음도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의아해 할 때 또 하나의 섬광이 보였다. 무슨 불꽃놀이 같은 이벤트는 절대 아니다. 지금 시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 둘씩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들 역시 밖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이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파티는 이내 분위기가 깨지고 말았다. 사요코는 웬지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고개를 돌려 도시유 쪽을 보니 도시유가 측근들과 뭔가 심각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도시유 역시 지금 시내에서 뭔가 큰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사요코는 도시유에게 다가갔다.
"도시유, 대체 무슨 일이야? 밖에서 무슨 일이..."
"아무것도 아냐! 그러니까 안심하라고. 그냥 즐기기만 해."
사요코가 채 다 말하기도 전에 도시유가 먼저 말을 잘랐다. 하지만 사요코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도시유의 표정이 잔뜩 당황해 있는 게 다 보이니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도시유는 사요코가 더 말할 틈을 주지 않고 다시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손님들에게 큰 목소리로 외쳤다.
"당황하지 마십시오! 지금 밖에서 테러리스트들이 소규모 도발을 하고 있다 합니다! 그러나 곧 크로노스 통제국에서 진압할 것이고 이 호텔 자체도 자체 경비요원들이 있으니 절대 안전합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도시유가 뭐라 하건 간에 사요코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녀는 서둘러 파티장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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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스타디움 대파! 현장에서 통제 불능이랍니다!"
"도심지 화재 발생!"
"도심 교통 통제 불가! 소방차 및 구호차량이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클라우드 게이트의 종합 상황실에서 푸르크슈탈은 속속 올라오고 있는 요코하마의 피해 상황을 보고 받으며 치를 떨고 있었다. 도대체 왜 저기로 끌고 가서는 일을 더 크게 만든다는 말인가! 이마카람 녀석이 경솔하게 도심지에서 기간틱과 전투를 벌이는 바람에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었다. 사상자는 추정수치만 벌써 2만이 넘어갔고 재산피해는 집계 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였다. 현장에 파견된 통제국 요원들은 이리저리 도망치는 시민들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푸르크슈탈을 분통터지게 만드는 건 또 있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요코하마로 날아가서 기간틱과 싸워서 이 참사를 막아보고 싶었지만 발카스의 엄명에 의해 그는 이 전투에 개입할 수가 없었다. 가이버 토벌은 전적으로 이마카람 밀리비너스에게만 일임한다는 '알칸펠의 뜻'이라는 말과 함께. 물론 푸르크슈탈을 비롯해서 모든 신장멤버가 그 말에 반발한 것은 당연했다. 도대체 이제까지 오랜 기간 알칸펠을 섬겨온 부하들인 자신들을 제쳐놓고 벼락출세한 실험체 녀석에게 그런 중요한 임무를 맡긴다는 말인가. 알칸펠에게 섭섭한 감정마저 들었다.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니고 알칸펠의 뜻이라는 말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신장 멤버들은 분한 마음을 꾹 참고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런 피해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개입하지 말라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게 푸르크슈탈의 생각이었다. 이마카람이 밀리고 있는 것이 확인된 이상 자기라도 가서 지원을 해야 되는 게 아니냐고 워싱턴에 있는 발카스에게 통신도 해 봤지만 돌아온 대답은 절대 나서지 말고 도심 재해 구조만 하라는 것뿐이었다. 그는 분함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래도....이런 일이 벌어져도...절대로 나서지 말라는 겁니까? 닥터 발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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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하!! 왜 그래! 무라카미! 도망만 다닐꺼냐!!"
거침없는 아키토의 공격에 무라카미는 도망 다니기 바빴다. 처음에 의도했던 요코하마 시민들을 인질 삼는 작전은 아키토가 시민들의 생사를 깡그리 무시해 버림으로서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원래 처음 알았을 때부터 케이보다 더 비정해 질 수 있는 녀석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설마 이렇게까지 막 나가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조건이 완전히 대등해진 이상 무라카미에게 승산은 없었다.
"젠장! 이거나 먹어라!!"
-파파팡!!
무라카미는 도망가면서 아키토에게 황급히 그래비티 불렛을 난사하였다. 수많은 작은 중력탄들이 아키토에게 날아갔다.
-팅! 티팅!!
그러나 아키토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그는 오른 주먹에 최소한의 바리어를 펼친 채 자기에게 날아오는 중력탄들을 전부 다 튕겨내었다. 신기에 가까운 아키토의 실력에 무라카미는 혀를 찼다. 아키토의 전투 센스는 그야말로 천재적이라고 까지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의 전투 센스와 기간틱의 강력한 힘이 합쳐진 지금, 아키토는 천하무적이었다.
"이얍!!"
-투오오옹!!
아키토가 곧장 프레셔 캐논으로 반격하였다. 무라카미는 그 공격을 즉시 바리어를 펼쳐서 막아내었다. 상상 이상으로 강렬한 충격에 무라카미는 경악하였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아키토는 그 상태에서 프레셔 캐논의 출력을 점점 올리기 시작했다. 무라카미는 식은땀을 흘리며 바리어에 에너지를 집중하였다.
"하하하! 뭐 하는 거냐! 바리어로 온 힘을 다 써버릴꺼냐!!"
무라카미의 바리어가 기간틱의 프레셔 캐논 공격에 점점 무너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라카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이대로 마냥 버틸 수만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몸을 움직였다가는 그대로 바리어가 무너지고 만다.
-파지지!! 퍼어엉!!!
"크아악!!"
-쿠웅!!
결국 견디다 못한 무라카미의 바리어가 깨지고 말았다. 프레셔 캐논에 직격당한 무라카미는 그대로 뒤로 튕겨나가 바로 뒤편에 있던 대형 호텔의 객실 안으로 처 박혔다. 바로 오늘 정식으로 개관한 아오시마 콘체른의 특급 호텔이었다. 바리어가 무너지기 직전 온 몸의 에너지를 끌어올려 단단히 대비한 덕분에 치명상은 면했지만 무라카미는 그 때 받은 충격으로 온 몸이 후들거렸다. 확실히 기간틱의 능력은 무라카미의 예상을 훨씬 초월하였다. 규오를 능가하는 중력의 고수로 다시 태어난 자기를 설마 중력공격으로 압도할 줄이야.
"이제 알겠지? 기간틱의 힘을."
"큭..."
"이 기간틱은 너희들의 보스인 알칸펠과의 대전을 전제로 해서 만들어진 거야. 그러니 고작 그 부하인 네 녀석이 상대가 될 리가 없지."
순간 무라카미의 마음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깟 변신 좀 했다고 어디서 애송이가 감히 알칸펠님의 존함을 함부로 한 단 말인가. 무라카미는 후들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그리고 다시 한 번 힘을 끌어올려 공격을 시도하였다. 무라카미의 양 손에서 빛의 소용돌이, 스파이럴 크랏샤가 발사되었다.
"감히 어디서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냐!!"
-슈와아아앙!!!
무라카미의 스파이럴 크랏샤가 아키토를 향해 맹렬히 회전하며 날아갔다. 아키토는 바리어를 펼쳐서는 여유 있게 그 공격을 막아내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무라카미의 공격 따위는 바리어를 절대 뚫을 수가 없었다.
"응? 어디 갔지?"
그런데 공격이 끝난 직후 무라카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아키토는 피식 웃었다. 함부로 주둥이 놀리지 말라며 당장이라도 돌격할 것처럼 떠벌이더니 그저 도망만 갔던 것이다. 방금 전의 스파이럴 크랏샤는 그저 시간벌기 용도뿐이었다. 아키토는 즉시 헤드 센서를 가동시켰다. 아무리 멀리 도망친다 해도 가이버의 헤드 센서, 그것도 탐지 범위가 비약적으로 향상된 기간틱의 헤드 센서를 벗어날 수는 없다. 잠시 주변을 탐색하던 그는 곧 무라카미의 위치를 파악해 내었다.
"거기냐!"
-파슝!!
아키토의 이마 한 가운데의 메인 헤드빔포가 빔을 발사하였다. 강력한 한 줄기 열선이 호텔의 벽면을 관통해 나갔다. 그 와중에 빔의 진로에 있던 사람들의 몸이 순식간에 증발해 버렸다. 아키토의 헤드빔은 그대로 호텔을 순식간에 관통, 반대편 외벽으로 빠져 나가 있던 무라카미의 왼쪽 옆구리를 정확하게 맞췄다. 헤드빔은 무라카미의 옆구리를 완전히 관통하였다. 큰 충격을 받은 무라카미가 비틀 거렸다.
'알칸펠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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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는 그 순간 그 때 일이 생각났다. 방주가 기동한 이후 알칸펠과 무라카미는 단 둘이서 먼저 지상으로 내려왔다. 알칸펠은 무라카미를 데리고 대서양 쪽으로 날아갔었다. 한참을 날아간 끝에 알칸펠은 대서양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조그만 섬에 도착하였다.
그 섬은 특이한 곳이었다. 섬의 사방을 크고 작은 십 수 개의 소용돌이가 감싸고 있었다. 마치 외부의 침입뿐만 아니라 안에 있는 것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듯 한 소용돌이들이었다. 놀라운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섬 전체를 덮고 있던 각종 나무들과 풀들은 전부 무라카미가 처음 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섬 안에는 이제껏 본적도 없는 특이한 모양의 동물들이 배회하고 있었다. 물론 무라카미가 알고 있는 동물도 있었다. 그러나 그 동물은 다름 아닌 공룡이었다. 고대에 다 멸종해 버리고 지금은 영화나 백과사전, 박물관에 뼈로만 남아 있는 그 공룡들이 한가로이 배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라카미는 지구상에 이런 섬이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알칸펠님. 여기가 대체 어디입니까?"
"내 집이다."
그렇게 말한 알칸펠은 무라카미를 섬의 중심부로 데리고 갔다. 섬의 중심에는 돌로 쌓아올린 거대한 신전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고대 마야 문명의 신전을 보는 것 같은 형태의 건축물이었다. 알칸펠과 무라카미는 그 신전의 발코니에 내려섰다. 그 곳에서는 섬의 모습이 한눈에 다 보였다. 잠시 두 사람은 말없이 섬을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이 곳은 나의 집. 여기를 아는 자는 헤밀컬 발카스뿐이다. 다른 신장 멤버들은 아무도 모르지. 그리고 무라카미 마사키. 넌 내가 나의 집으로 초대한 유일한 자다."
무라카미는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공손히 예를 올렸다. 다른 신장 멤버들에게 비밀로 하는 곳에 초대를 받았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었다.
"!! 알칸펠님!"
그 순간 갑자기 알칸펠이 앞으로 쓰러졌다. 무라카미는 용수철처럼 튀어나가서는 알칸펠이 땅에 쓰러지기 직전에 받아내었다. 무라카미는 즉시 알칸펠의 상태를 살폈다. 안색은 정상인 것 같은데 대체 어디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알칸펠은 고개를 떨군채 힘없이 중얼거렸다.
"....잠이 오는 거다...."
"잠이요?"
"무라카미....날 신전 지하로 데려다 다오...."
무라카미는 말없이 알칸펠을 안아 들고는 신전 지하로 통하는 돌계단을 걸어갔다. 조명이 거의 없어 상당히 어두웠지만 무라카미에겐 이 정도는 문제없었다. 이윽고 무라카미는 신전 지하 끝까지 도착하였다. 그러자 무라카미의 눈에 거대한 돌벽이 보였다. 그 돌벽에는 기묘한 모양의 생물이 조각돼 있었다. 마치 새와 같은 날개를 가지고 그 이마에는 푸른 돌이 박혀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생물의 발아래에는 수많은 다른 동물들이 경배를 하고 있는 듯 한 모습이 조각돼 있었다. 무라카미는 직감적으로 이 생물이 다른 모든 생물의 정점인 알칸펠을 상징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채었다.
-쿠르르르!
무라카미가 가까이 다가가자 돌벽이 양쪽으로 스르르 갈라지며 열렸다. 그러자 그 너머에 돌로 된 제단이 보였다. 무라카미는 알칸펠을 그 단위에 살며시 눕혔다. 알칸펠은 마치 꿈속을 헤매듯이 중얼거렸다.
"....잠이 오는 주기가 점점 더 빨라지고 있다....이대로 가면 조만간...나는 또 다시 기나긴 휴면기에 들어갈 거야...."
"....."
무라카미는 묵묵히 듣기만 하였다. 휴면기, 알칸펠에게 그런 게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었다.
"내가 이 지긋지긋한 잠에서 해방되려면....유니트를 손에 넣는 수밖에는 없다.....무라카미, 난 너에게 그 임무를 맡기기 위해.....널 내 충복으로 만든 거다....."
"예, 알칸펠님."
"그러니까....부탁한다.....반드시 유니트를 손에 넣어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안심하고 편히 쉬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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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지 않아아아!!!!"
-파아앗!!
무라카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쳤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그의 온 몸에 고루 퍼져 있던 G.P(Gravity Point : 중력제어부)가 사방으로 발사되었다. 발사된 G.P들은 아키토를 향해 똑바로 날아갔다. 아키토는 곧장 바리어를 전개해서 무라카미의 역습에 대비하였다. 대체 뭘 하려는 건지는 몰라도 발사된 구체들이 상당한 에너지를 품고 있었기 때문에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휘익!!
그런데 이상하게도 G.P들은 아키토에게 날아가서 부딪히는 게 아니라 아키토의 앞 이십여 미터 정도에서 서로 한데 뭉쳤다. 그리고 그 직후 뭉쳐진 G.P들이 강한 섬광을 발하였다. 강렬한 섬광으로 인해 아키토는 잠시 시야가 가려졌다. 강렬한 섬광이긴 하지만 뭔가가 폭발하는 것은 아니다. 아키토는 대체 무라카미가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쿠오오오!!!
그 순간 갑자기 아키토는 자기 몸이 그 구체들이 있는 곳으로 끌려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보니 구체들이 한 데 뭉쳤던 자리에는 그저 검은 공간만이 있었다. 그리고 그 공간쪽으로 대기가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어떤 색깔도 보이지 않는 순수한 암흑의 공간. 게다가 주위 사물을 무서우리만치 강하게 빨아들이는 모습. 저 것은 마치....블랙홀 같았다!
바로 그랬다. 궁지에 몰린 무라카미는 최후의 순간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금단의 기술 '유사 블랙홀'을 사용한 것이다! 어떤 기술도 먹히지 않고 모든 면에서 기간틱에 밀리는 무라카미에게 남은 기술은 바로 이 유사 블랙홀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기술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자폭이나 마찬가지인 행동이었다. 만약 기간틱이 너무 오래 버티다가 중화 타이밍을 놓치게 되면 시전자인 무라카미조차도 중화가 불가능해지는 순간이 오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저 유사 블랙홀은 진짜 블랙홀이 되고 말 것이고 곧바로 이 지구의 멸망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윽! 이...이건....!"
아키토는 바리어를 한층 더 강화하여 그 자리에서 블랙홀의 힘에 저항하였다. 설마 무라카미가 이런 짓을 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를 문다고 하던가. 이런 능력이 있는 줄 알았으면 가지고 놀게 아니라 즉시 끝내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후회는 아무리 빨리 해도 늦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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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사 블랙홀의 크기가 점점 더 커져가고 있었다. 주위의 모든 사물들이 블랙홀 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블랙홀 바로 근처에 있던 아오시마 호텔 역시 무사하지 못했다. 블랙홀의 흡입력에 견디지 못한 창문들이 먼저 깨져 나갔다. 그리고 그 파편들은 그대로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호텔 자체는 진도 7 이상의 지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건축되었다지만 블랙홀의 흡입력은 그 차원이 틀렸다. 가장 약한 유리를 시작으로 철근 콘크리트 제의 건물 벽면까지 쩍쩍 갈라져 나갔다.
"꺄아아아!!!"
"우아아!!"
"사람살려어어!!!"
호텔 최상부에 위치한 파티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도시유의 말만 믿고 대피를 하지 않고 있던 손님들 전부가 블랙홀의 흡입력에 잡히고 말았다. 먼저 파티장의 유리 벽면이 산산조각이 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과 파티장안의 각종 집기들이 블랙홀 쪽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바둥거렸지만 속절없이 빨려 들어갈 뿐이었다.
도시유는 현장에 없었다. 이미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을 감지한 측근들이 서둘러 그를 아래쪽으로 대피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손님들을 대피시키지 않고 그대로 파티를 강행하였다. 설마 전투가 여기서 진행될까 싶었던 그들은 괜히 손님들을 대피시킨다고 불안에 떨게 했다가 상황이 그대로 종료돼 버리면 체면이 크게 구겨질까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대피시켜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으나 그 사람은 도시유 본인이 저지하였다. 도시유도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범죄나 다름없는 이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이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게 되었다. 도시유가 좀 더 안목이 있는 인물이었다면 손님들을 대피시켰겠지만 정작 그는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회장 전용 엘리베이터 안에서 안도의 한숨만 내쉬고 있을 뿐이었다.
"젠장! 하필 오늘 같은 날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왜 이리 되는 일이 없는 거야!!"
"회장님, 일단 고정하시고 지금은 안전하게 대피하는 것만 생각하십시오."
-쿠쿵!!
도시유가 투덜거리던 그 순간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그리고 곧바로 내부 조명이 전부 꺼지더니 불그스름한 비상 조명이 들어왔다. 엘리베이터의 층수 버튼에 들어와 있던 불도 전부 꺼졌다. 당황한 측근 중 한명이 비상 전화기를 들어 관리실과 통화를 시도했으나 그 마저도 불통이었다. 도시유들은 불안한 눈으로 천정만 올려다보았다.
"어...어!"
"뭐...뭐야!!"
그 순간 이들의 몸이 스르르 떠오르기 시작했다. 정지돼 있던 엘리베이터도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유사 블랙홀의 영향력이 이들에게 까지 미친 것이다. 엘리베이터 견인 크레인이 위치한 최상층부가 블랙홀의 영향으로 완전히 박살나면서 엘리베이터들이 멈춰 버리고 이윽고 서둘러 도망치던 도시유들까지 잡아버린 것이다.
"이...이봐!! 어떻게 된 거야!"
"저...저희도 잘 모르겠습니다!!"
"젠장!! 빨리 어떻게 좀 해봐!!"
이들의 몸은 곧장 엘리베이터의 천장에 바짝 붙었다. 천장에 도달했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의 몸은 계속해서 위로만 올라가려고 하였다. 당연히 이들은 온 몸에 극심한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온 몸이 벽면에 바짝 달라붙는 바람에 이들은 전부 고통스러워했다.
"이놈들아!! 천정이라도 뜯어서 구멍을 만들어!!"
"으아아...!! 회...회장님!!"
그나마 도시유는 먼저 빨려간 측근들이 쿠션 역할이라도 해 줘서 그나마 덜 고통스러웠으니 저렇게 되지도 않는 소리를 지를 수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딱딱한 벽면에 그대로 압착된 상태였는지라 말도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고 그저 비명만 질러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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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 한 가운데서 대규모의 이상 중력현상 확인!! 비정상적으로 중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클라우드 게이트의 상황실 내부에서 푸르크슈탈은 충격적인 보고를 들었다. 대규모 이상 중력현상.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푸르크슈탈이 자리에서 용수철이 튕겨 오르듯이 벌떡 일어섰다. 그는 새파랗게 질린 채로 비명처럼 소리쳤다.
"안 돼!! 대체 왜 그걸 쓰는 거야!! 다 죽는단 말이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이마카람 녀석이 궁지에 몰리자 결국 금단의 중력병기 '유사 블랙홀'을 사용하고 만 것이다. 마치 1년 전 규오가 알칸펠을 잡겠답시고 설쳐댔을 때와 똑같았다. 규오와 똑같은 과오를 저지르다니! 죽을 거면 저 혼자 죽을 것이지 이게 대체 무슨 짓이란 말인가. 유사 블랙홀은 통제가 쉽지 않은 기술. 자칫 잘못하다간 이 지구가 그대로 소멸되고 만다!
"워싱턴의 닥터 발카스를 연결해라! 빨리!!"
관제원들이 황급히 워싱턴을 연결하였다. 잠시 후 상황실의 대형 스크린에 발카스의 모습이 나타났다. 발카스가 연결되자 푸르크슈탈은 다짜고짜 소리부터 질렀다.
"닥터!! 이마카람 녀석이 유사 블랙홀을 사용했습니다!"
-"뭐라고! 어쩌자고 그런..."
"이 지경까지 와도 그냥 보고만 있으라는 겁니까! 전 가겠습니다! 가서 어떻게 해서든 이마카람 녀석을 막을 겁니다!!"
푸르크슈탈은 발카스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바로 통신을 끊어버렸다. 이 세상의 멸망으로 까지 갈 수도 있는 중대한 사안을 눈앞에 두고도 그냥 구경만 할 수는 없었다. 자신 만이라도 가서 빨리 블랙홀을 중화시켜야 했다. 도대체 왜 가이버 토벌전에 나서지 말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푸르크슈탈은 즉시 빌딩 밖으로 뛰쳐나간 다음 요코하마 쪽으로 전속력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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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 조아로드란 녀석들 끝내주는 기술을 쓰는데?"
"히...힐드님!! 살려주세요~!!"
요코하마에 와서 아키토와 무라카미의 전투를 지켜보던 힐드와 마라 역시 유사 블랙홀의 영향에 놓이게 되었다. 힐드는 아무리 분신체라고는 해도 과연 대마계장답게 간단히 마술식으로 실드를 펼쳐서 블랙홀에 저항하였다. 그러나 마라는 생전 처음 보는 무시무시한 공격에 바짝 얼어붙은 듯 실드로 저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채 근처의 가로등을 붙잡고 낑낑대고만 있었다. 잠시 한심하다는 듯이 마라를 보던 힐드는 피식 웃으면서 마라를 자신의 실드 영역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그러나 웃을 때가 아니었다. 꽤 거리가 벌려진 곳이었는데도 유사 블랙홀의 흡입력은 대단했다. 주변에 있던 쓰레기통 등의 가벼운 물체들은 벌써 블랙홀 쪽으로 빨려갔고 지금은 자동차 같이 무거운 물체까지도 떠오르고 있을 정도였다. 주변에 있던 인간들 역시 블랙홀 쪽으로 빨려가고 있었다. 호텔 근처에 있던 요코하마 코스모월드(요코하마의 대표적 유원지)의 세계 최대의 관람차(높이 112.5m)조차도 블랙홀의 영향으로 회전축이 부러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힐드라고 안심하고 있을 때는 아니었다. 지금이야 힐드 본인의 실드로 블랙홀의 흡입력을 막고는 있었지만 천분의 일 분신채인 지금의 몸으로는 사용할 수 있는 마술식의 위력에 한계가 있다. 이대로 블랙홀의 영향이 강해지면 이들에게도 위기가 닥칠 것이 분명했다.
"히이잉~~!! 전 죽기 싫어요! 힐드님!!"
마라는 이제 눈물콧물 다 흘려가며 힐드만 꼭 부둥켜안고 있었다. 상대가 대마계장이기 때문에 지금 그녀의 행동은 무엄함 그 자체라는 것도 잊을 정도였다. 하지만 힐드 역시 지금 그런 것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중요한 건 지금 바로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힐드는 바리어를 펼친 채 블랙홀의 흡입력에 저항하는 검은 기간틱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 이제 그 거인식장으로 어떻게 할 셈인지 보여주려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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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윽! 이...이대로는...!"
아직까지는 버틸 만 했지만 그렇다고 언제까지 이러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블랙홀의 흡입력은 더욱 더 강해지고 있었다. 아키토는 점점 마음이 초조해져만 갔다. 탈출은 고사하고 현재 좌표를 유지하는 것도 버거울 지경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기간틱의 모든 에너지를 바리어로 소모할 수는 없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했다.
'침착해라! 침착해! 분명 방법이 있을 거야.'
아키토는 정신을 가다듬고 헤드 센서를 총동원해서 전방의 유사 블랙홀을 스캔하였다. 인위적으로 블랙홀을 만드는 게 가능하다면 분명 소멸시키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소멸시킬 수도 없는 걸 만들어 둘 정도로 어리석고 대책 없는 크로노스 놈들이 아니다. 아키토는 필사적으로 블랙홀의 내부를 스캔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뭔가를 발견해내었다.
'음! 저건가. 저게 블랙홀을 만드는 건가!'
블랙홀의 중심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에너지체들이 맹렬하게 회전하고 있었다. 그것들은 그저 무질서 하게 도는 것이 아니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가며 돌고 있었다. 저것들이 중심부에서 서로 연계해가며 초중력의 공간을 형성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키토의 판단은 정확했다.
그렇다면, 저것들의 연계 플레이를 끊거나 그 흐름을 방해할 수만 있다면 블랙홀을 소멸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기간틱의 무기들 중에서 그게 가능한 것이 딱 한 가지 있다. 그러나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하다. 자칫 잘못하다간 에너지만 헛되게 낭비하고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대로 가만히 버티고 있는 것보다는 낮다!
"좋아! 해보는 거야!!"
-철컥!!
-우오오옹!!!
아키토의 양쪽 가슴의 장갑판이 활짝 열렸다. 그러자 드러난 스매셔 발생장치에 에너지가 모이기 시작했다. 그랬다. 지금 아키토는 블랙홀 내부의 G.P들의 연계를 끊기 위해 기가 스매셔를 사용하려는 것이다!
-투와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드디어 기가 스매셔가 발사되었다. 블랙홀을 만들어낸 무라카미와 멀리서 이들을 지켜보고 있던 힐드도 깜짝 놀랐다. 설마 기가 스매셔를 블랙홀을 향해 쏠 줄이야. 그러나 블랙홀은 빛조차도 흡수한다는 초중력의 공간. 역시나 예상대로 기가 스매셔 역시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본 무라카미는 아키토를 비웃었다. 무슨 생각을 한 건지는 몰라도 그래봐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 불과할 뿐이다. 좀 있으면 그나마 기가 스매셔마저 에너지가 바닥나서 기간틱은 어둠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팟!!
그 순간 갑자기 블랙홀의 중심부에서 강렬한 섬광이 뿜어져 나왔다. 무라카미는 잠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어느 센가 유사 블랙홀은 소멸되고 기간틱의 기가 스매셔가 하늘로 쭉쭉 뻗어 올라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놀랍게도 기가 스매셔가 기어코 유사 블랙홀 내부의 G.P들의 연계 활동을 끊어 버린 것이다! 유사 블랙홀조차 소멸시켜 버리는 기가 스매셔의 엄청난 에너지양에 무라카미는 질려 버렸다.
"이...이럴 수가! 유사 블랙홀이!!"
블랙홀이 소멸됨에 따라 주위의 중력이 전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 때까지 블랙홀 쪽으로 빨려가던 사물들과 사람들이 전부 다시 땅 아래로 추락하였다. 블랙홀의 흡입력으로 인해 급격히 부서지고 있던 아오시마 호텔은 간신히 완전 붕괴만은 면했다. 그러나 호텔의 상층부는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
"무라카미. 당신 참으로 위험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군. 나도 순간 아찔했어."
아키토의 목소리에 무라카미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기간틱은 건재했다. 무라카미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 유사 블랙홀을 쓰려고 전신의 G.P를 전부 다 소모해 버린데다가 부상까지 당한 무라카미는 더 이상 기간틱에 맞선다는 것이 불가능했다. 아키토가 주먹을 쥐고 그 곳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보였다. 무라카미로서는 더 이상 남은 수단이 없었다.
"이젠 더 이상 봐주지 않겠다. 지금 확실히 끝장을 내 주마."
아키토는 주먹에 에너지를 집중하였다. 아키토는 이번 한 방으로 확실하게 무라카미의 숨통을 끊을 생각이었다. 기간틱의 위력에 도취돼 무라카미를 너무 가지고 놀았던 게 화근이었다. 쥐는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 블랙홀 같은 위험한 기술까지 구사하는 녀석을 상대로 더 이상 시간을 끌 수는 없었다. 에너지를 모은 아키토가 그대로 무라카미에게 돌진해갔다.
"이야아아압!!!"
"우..우아아!!"
무라카미는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순식간에 무라카미에게 접근한 아키토의 주먹이 무라카미의 이마에 작렬하였다.
-퍼어억!!
"끄아아아아!!!!"
기간틱의 강력한 펀치가 그대로 무라카미의 조아 크리스털을 깨 버렸다. 무라카미의 처절한 비명이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조아 크리스털은 조아로드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부분. 그것을 잃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뜻했다.
"마지막이다아아!!!"
아키토가 다시 한 번 결정타를 먹이기 위해 주먹에 힘을 집중하였다. 바로 그 순간 기간틱의 듀얼 컨트롤 메탈이 밝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파아앙!!
"뭐...뭐야!"
아키토가 재공격을 하려는 그 순간 기간틱이 저절로 벗겨져 버렸다. 그리고 벗겨진 거인 식장은 어느 샌가 나타난 번데기 안에 수납되고는 다른 차원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키토는 그 이유를 직감할 수 있었다. 기가 스매셔를 쓰는 바람에 기간틱 본체의 에너지를 거의 다 소모해서 기간틱이 강제로 해제된 것이다. 하필이면 바로 이 순간에 거인 식장을 쓸 수가 없게 된 것이다!
-풍덩!!
아키토가 공격할 찬스를 놓친 순간에 의식을 잃은 무라카미는 힘없이 바로 아래에 있던 바다 속으로 빠져버렸다. 아키토는 끝장을 볼 생각으로 무라카미를 추격하였다. 결정타를 입고 의식을 잃은 무라카미라면 굳이 기간틱이 아니라 해도 숨통을 끊을 수 있다. 아키토 역시 무라카미가 떨어진 물속으로 들어갔다.
'음! 이 반응은!'
그 때 아키토의 헤드 센서가 이쪽으로 빠르게 접근해 오는 물체를 탐지해 내었다. 이 반응의 정도로 봐서는 조아로드. 일본에서 무라카미 말고 조아로드가 또 있다면 그것은 일본 지부 담당인 푸르크슈탈일 것이다. 아키토는 욕지거리를 내 뱉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으면 무라카미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릴 수 있었을 텐데 하필이면 바로 이 순간에 조아로드가 또 나타난 것이다. 기간틱이 다른 차원에서 에너지를 다시 충전하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지금의 아키토로서는 푸르크슈탈을 상대할 수가 없었다. 분하지만 일단은 훗날을 기약해야 할 때였다.
'할 수 없군. 일단은 여길 피해야 해.'
아키토는 수면 아래에서 푸르크슈탈에게 들키지 않도록 신중하게 헤엄쳐서 현장을 이탈하였다. 밤인데다가 물속이고 아키토의 강식장갑의 색깔도 마침 검은색인지라 크게 요란만 떨지 않으면 들키지는 않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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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이럴 수가..."
요코하마 시까지 직접 날아온 푸르크슈탈은 눈앞에 펼쳐진 참상을 보고 신음을 흘렸다. 시내 곳곳에 불길과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무작정 도로로 쏟아져 나와 시내는 대 혼란이 벌어져 있었다. 저 멀리 반 토막이 난 요코하마 스타디움이 보였다.
푸르크슈탈은 유사 블랙홀이 펼쳐졌던 요코하마 코스모월드 부근으로 가 봤다. 이상 중력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곳으로 날아오면서 클라우드 게이트의 종합 상황실에서 들은 정보에 따르면 기간틱이 기가 스매셔를 날려 유사 블랙홀을 소멸시켰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도시에 도착하기 직전에 푸르크슈탈은 하늘로 쭉쭉 뻗어 오르는 거대한 빛의 기둥을 보았었다. 그것이 바로 기가 스매셔였던 것이다. 유사 블랙홀조차 소멸시켜 버리는 기간틱의 가공할 전투력에 푸르크슈탈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처참하군...."
블랙홀이 있던 코스모월드 일대는 더욱더 처참했다. 거의 1년 내내 수많은 인파가 붐비는 코스모월드의 모든 놀이기구는 완전히 박살나 있었다. 코스모월드가 자랑하는 세계 최대의 대관람차도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잔해의 아래에는 유사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다가 블랙홀이 소멸되자 그대로 아래로 추락해 버린 처참한 모습의 시신들이 즐비했다. 유원지의 특성상 이곳에는 수많은 아이들과 청소년이 포함된 가족들이 많이 놀러왔었다. 한 때의 추억을 만들러 왔다가 그만 비명에 가고 만 것이다. 유원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건설된 일본 최대 규모의 호텔 -아오시마 호텔- 의 경우에는 건물의 3분의 1이 사라져 있었다. 호텔의 특성상 많은 사람들이 투숙해 있었을 것이고 그들 역시 결국은 전부 다 희생됐을 것이다.
그런데 이마카람과 기간틱의 반응이 느껴지지 않았다. 전투는 이미 끝난 것이다. 어디로 가서 또 한바탕 벌이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요코하마에는 없었다. 더 이상 이곳의 피해가 확대되지는 않을 테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블랙홀도 소멸됐으니 일단 이 세상이 멸망하는 건 피할 수 있었다.
-화아악!!
그 때 푸르크슈탈의 뒤 쪽에서 강한 빛이 나타났다. 깜짝 놀란 푸르크슈탈이 뒤돌아서자 그 쪽에서 공간이 일그러지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가 공간이동을 해 오고 있는 것이었다. 빛의 강도는 더욱 더 강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양 쪽으로 갈라진 공간의 틈새에서 온 몸이 황금빛으로 둘러싸인 사람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을 본 순간 푸르크슈탈은 전율하였다. 그 사람의 몸에서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힘과 위압감. 푸르크슈탈을 비롯한 12신장의 정점!
"아...알칸펠님!!"
전혀 생각지도 못한 알칸펠의 강림에 푸르크슈탈은 황급히 예를 취했다. 하늘위에 떠 있는 상태인지라 무릎을 꿇을 수는 없었고 대신 고개를 깊이 숙여 보였다. 다른 신장 멤버들 중에서 아무나 빨리 와서 유사 블랙홀을 중화시키는데 힘을 빌려달라고 긴급 통신을 날리기는 했지만 설마 알칸펠이 직접 오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런데 알칸펠에게는 통신을 보내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평소에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니까- 어떻게 알고 여길 온 것일까?
"푸르크슈탈인가. 그래, 무라카미는 어디 있지?"
"예? 아, 예! 그게....제가 왔을 때는 이미 전투가 끝나 있어서....저도 어디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알칸펠은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요코하마 시의 참상이라도 보는 걸까. 하지만 파괴된 도시를 보는 알칸펠의 표정은 차가울 뿐이었다. 사실 그에겐 도시가 어찌 되건 관심 없었다. 알칸펠에게 중요한 건 지금 딱 한사람의 생사뿐이었다. 한동안 주변을 둘러보던 알칸펠이 바다를 응시하였다.
-파앗!!
-쿠오오오오!!!!
갑자기 알칸펠의 두 눈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바다가 둘로 갈라지기 시작했다. 알칸펠이 그의 강력한 염력으로 바닷물을 양 옆으로 밀어내는 것이었다. 눈앞에 펼쳐지는 모세의 기적을 푸르크슈탈은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염력 조종으로 바닷물을 양 옆으로 가르는 것 정도는 푸르크슈탈도 할 수 있었지만 수 Km에 달하는 거대한 물길을 단 한순간에 만들어내는 알칸펠의 그것은 차원이 달랐다. 물론 이 정도는 알칸펠의 능력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그런데 갑자기 바다는 왜 가른 것일까?
"무라카미...!"
갈라진 바다의 틈 사이에서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는 무라카미가 발견되었다. 알칸펠은 즉시 무라카미의 몸을 띄워서는 자신에게로 끌고 왔다. 무라카미의 처참한 모습을 본 알칸펠의 눈이 크게 흔들렸다. 푸르크슈탈 역시 무라카미의 상태를 보고 신음을 흘렸다. 기간틱에게 정말 지독하게 당하고 말았다. 특히나 그의 이마에 박힌 조아 크리스털이 깨져 있는 것을 보고는 이미 가망이 없는 게 아닌가 싶었다.
"....."
알칸펠은 의식을 잃은 상태인 무라카미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다시 차원의 문을 열고는 어딘가로 공간이동을 하였다. 푸르크슈탈은 그 광경을 넋을 잃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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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힐드님! 저....저....저....!"
"말 안 해도 알아."
파괴된 유원지의 잔해 사이에 숨어서 알칸펠의 강림을 지켜보던 힐드와 마라는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마라는 알칸펠의 몸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기운 만으로도 압도당해서 말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벌벌 떨어대고 있었다. 힐드의 얼굴 역시 잔뜩 굳어 있었다. 대마계장인 힐드조차도 알칸펠의 힘에 적잖이 놀라고 있는 모습이었다. 대마계장이 이렇게 긴장해하고 있으니 1급마라고는 해도 전투원도 아닌 마라 정도는 얼어붙는 것이 당연했다.
힐드는 처음 접한 크로노스 총수의 힘에 크게 놀라고 있었다. 그 옛날 강림자 녀석들이 고위 신족을 압도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 최강의 생명체, 조아로드. 과연 그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저 가만히 서 있었을 뿐인데도 그 몸에서 풍겨 나오는 위압감은 힐드의 전신을 강하게 압박할 정도였다. 힐드 자신의 본체가 지금 당장 이곳으로 와서 그 봉인구를 모두 벗어버리고 최대의 파워를 낸다고 해도 상대가 저 알칸펠이라면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다른 12신장 녀석들이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알칸펠은 힐드로서도 도저히 쉽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음?'
순간 힐드는 자신의 볼에 무슨 액체가 흐르자 그것을 손등으로 닦아내었다. 어느새 힐드는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비로소 자기가 알칸펠에게 한 순간이나마 긴장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힐드는 자존심이 상했다. 대마계장인 내가, 이 지구정도는 한 순간에 멸망시켜 버릴 수도 있는 이 내가 두려워하는 적이라니! 만만치 않은 강적이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힐드로서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이 세상 그 어떤 존재도 두려워하지 않던 힐드였다.
'재밌군. 알칸펠이란 녀석....그 존재만으로도 날 이렇게까지 만드는 구나."
하지만 힐드는 일개 무사가 아니라 마계를 책임지는 대마계장이다. 자존심 상한다고 무모한 일전을 벌일 인물도 아니고 적이 강하다고 언제까지나 쫄아있을 인물도 아니다. 곧 그녀의 머리는 차갑게 식었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져야 한다. 그녀의 판단에 따라 차후 마계의 운명이 결정된다.
어쨌든 크로노스와의 일전은 더욱 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우선 알칸펠에 대한 정보를 가능한 한 많이 모으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야 뭔가 대응방법도 생기는 것이다. 상대가 쉽지 않은 놈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날 힐드는 절대 아니다. 싸움이란 결국 마지막까지 서 있는 자가 승리하는 것. 섣부른 행동을 하는 자는 제일먼저 탈락하는 게 전쟁인 것이다.
"자, 일단 철수하자. 마라, 이제 그만 벌벌 떨어. 추해 보인다고."
힐드의 표정에 다시 여유가 돌아왔다. 그녀는 아직도 잔뜩 경직돼 있는 마라를 끌고 어딘가로 공간이동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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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씨, 괜찮으세요?"
"응...이제 거의 다 나았어."
베르단디에게 말하는 케이의 목소리에는 여전히 기운이 없었다. 강식장갑의 회복능력 덕분에 케이의 부상은 많이 낮기는 했지만 아직은 좀 더 안정을 취해야 했다. 베르단디는 생각 같아서는 자신이 직접 케이에게 회복 법술을 걸어 주고 싶었지만 가이버는 법술을 거부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그대로 강식장갑의 회복력을 믿고 가만히 있는 것이 나았다. 어차피 베르단디 자신도 지금 심하게 지쳐 있는 상태였다.
엔자임 III들과 전투를 벌였던 숲에서 케이와 베르단디들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케이는 이제 부상이 거의 다 나은 상태였고 린드는 스스로 자기 몸에 회복 법술을 걸어 상처를 치료하였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는 떨어진 체력까지는 회복하지 못한다. 후방 지원을 했었던 베르단디나 울드도 많이 피곤해 하였다. 특히나 사용할 수 있는 법술의 능력에 제한이 걸려있는 베르단디의 피로도가 더 컸다. 메가 스매셔에 사지가 다 날아가 버린 앱톰은 이제야 잘린 부위에서 새 팔과 다리가 자라나고 있었다. 엔자임 III에게서 옮은 바이러스들이 중화된 모양이었다. 무리하게 전투형태로 변신해서 마지막에 전투에 끼어든 하야미는 싸운 시간 자체는 극히 짧았지만 피로도는 다른 사람 못지않았다. 손종 실험체로 조제되면서 어딘가 신체에 무리가 온 것인지 하야미의 안색은 여전히 창백하였다.
전투에 직접 끼어들지 않은 다른 사람들 역시 기진맥진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엔자임들과 베르단디들의 사투를 조마조마하게 지켜본 그들도 지금 살았다는 안도감에 긴장감이 확 풀려버려 기운이 쭉 빠진 상태였다.
"......"
시즈는 아키토가 싸우러 간 이후부터 지금까지 요헤이의 시신 앞에서 꼼짝도 않고 앉아 있었다. 손수건으로 대충 요헤이의 얼굴을 덮고 머리맡에 앉아있는 시즈의 표정에는 짙은 슬픔이 나타나 있었다. 모두들 그런 시즈에게 어떤 말도 붙일 수가 없었다. 지금 가족을 눈앞에서 잃은 시즈에겐 그 어떤 위로의 말도 도움이 안 됐다.
"음!"
"왜 그러세요? 케이씨."
"마키시마 선배가....돌아왔어."
갑자기 케이의 헤드 센서에 아키토의 반응이 탐지되었다. 그 말에 모두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라카미와의 승부가 마무리 된 것이다. 아키토가 적 앞에서 도망칠 위인은 아니므로 아마 끝까지 싸웠을 것이고 그렇다는 것은 무라카미의 목숨은 이미....
케이가 어느 한 곳을 가리켰다. 모두가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아키토의 모습이 보였다. 분명 무사히 돌아왔으니 기뻐해야 할 일이건만 모두는 웬지 그런 아키토의 모습에서 서늘한 한기 같은 것을 느꼈다.
Next episode 제9화 '발카스의 회상' coming soon.....
p.s : 요코하마는 근처도 안 가본 녀석이 요코하마 시내 묘사하려니까 창피하군요. -_-;;;;
p.s 2 : 요헤이 할아버지는 별다른 대사도 없이 그냥 죽어버리고....원작에서도 존재감 제로의 캐릭터였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최소한 제 팬픽에서만큼은 어느정도 존재감을 드렸어야 하는데.....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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