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입니다.)멸의 계승자.-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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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밖으로 나와 주영이가 앉아있는 벤치로 다가갔다. 오옷, 이제 기분이 다 풀린 듯이 보이는 게 무척이나 기쁜데?
“여, 이제 기분이 다 풀렸나보지?”
“.....흥.”
....아....아직 완전하게 풀린 것 같지 않아 보이는구나.
“그렇게 애 같이 있으면 이쪽이 곤란하다고.”
“누가 애야, 누가!”
누가 애냐고? 좋아, 지금 이 자리에서 당당하게 선포해주지.
“너.”
“증거가 있어? 증거가 있냐고!”
증거? 증거야 당연히....
“지금 니가 하고 있는 짓.”
“그런 걸로 증거가 될 수는 없어! 물적증거를 내놓으란 말이야!”“그래?”
나는 핸드폰을 꺼내어 열고서 캠코더 기능을 눌렀다. 그리고 주영이 촬영.
“....지금 뭐하는 거야?”
뭐하냐니....몰라서 묻는건가?
“물적증거 확보.”
“저기....너무 떳떳하게 증거를 확보하고 있는 거 아니야?”
“원래 증거는 떳떳하게 확보하는 법이야.”
나는 캠코더 기능을 취소하지 않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역대 탐정 중에서 증거를 몰래 숨어서 찾은 탐정은 없다고.”
“....왠지 모르게 설득력이 있는 말인데....”
왠지 모르게가 아니라 확실하게 설득력이 있는 말이라고 나는 보는데.
“자, 어서 아까 전의 행동을 리플레이 시켜봐. 물적증거를 확보해야지.”
“누가 할까보냐!”
하? 그걸 하지 않으면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는데.....
“한번만이라도 좋으니까 리플레이 해주면 안될까?”
“하란다고 진짜로 하는 인간이 이 세상에 몇 있을 것 같니?!”
뭐,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니가 방심하고 있을 때 찍는 방법인데.....실시간 몰래 카메라라도 구입해야 되나?”
“....너, 어떻게 본다면 진짜 무서울 정도로 엄청난 행동력을 과시한다.....”
“그게 바로 나의 장점이지.”
핸드폰을 닫고서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흠, 이왕이면 녹음기도 구입할까?”
“....녹음기는 왜?”
“눈으로 보고 귀로도 들어야지 제대로 된 물적증거 아니겠어?”
“됐거든?!”
그렇게 한참동안 실랑이 아닌 실랑이가 벌어졌다. 나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 그리고 주영이는 그 증거를 확보하게 하지 못하기 위해.
“왠만하면 그만 포기하시지?!”
“그렇겐 못하지. 니가 애 같이 군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려야 하는 중대한 사명이 현재 나한테 있는 이상 그 임무를 반드시 완수하고 말거다.”
“중대한 사명 좋아하시네!”
한참동안 그렇게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결국 주영이가 제 풀에 지쳐 쓰러져 버렸다.
“헥....헥....”
“뭐,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핸드폰을 꺼내어 시간을 보았다. 6시 43분.
“슬슬 배고프지 않아?”
벌써 해는 지고 깜깜한 밤이 되어있었다. 유원지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인공의 빛으로 환하게 비춰져 있었다.
“내가 잘 아는 갈비탕 집이 있는데 거기에서 먹지 않을래? 싸고 양도 많이 주는 데다가 맛있어서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꽤나 유명하다고 알려진 곳이거든.”
거기다가 하숙집 방향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에 들려서 먹을 수도 있다.
“어떻게 할래?”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주영이가 나를 보았다. 호흡은 이제 많이 안정된 상태였다.
“시간도 늦었고 하니 거기에서 먹을 수 밖에.”
“혹시 거기에서 너무 맛있어서 많이 먹다가 체중이 늘어도 난 전혀 상관하지 않을거다?”
농담조로 쿡쿡 웃으며 말했다. 주영이는 그런 나를 흘겨보았다.
“그런 건 여자 앞에서 금기나 다름없다고. 말 좀 가려서 해.”
“그런 말을 한다는 건 그만큼 친하다는 말 아니겠어?”
“정말인지.....말솜씨는 연설가 뺨친다니까.”
“나의 얼마 되지 않는 장점 중에 하나지.”
나는 주영이와 함께 출구로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들의 오늘 하루는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맛있다.”
주영이가 국물을 한 숟갈 떠먹으며 그렇게 감상평을 내렸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던 도중 내려서 온 갈비탕 집은 약간은 낡았다는 느낌을 주는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30년 전부터 해오던 집이기 때문에 건물의 외양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건물의 외양은 맛으로 보충해주고 있기 때문에 이 식당은 언제나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지? 이 식당은 30년 전통의 맛으로 승부하는 가게니까.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치고는 이 식당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야. 오죽하면 이 식당 때문에 이사를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을 정도라고.”
“용케도 이런 집을 알고 있네.”
“뭐, 평소에 자주 사 먹잖아? 돈 내고 먹는 건데 이왕이면 맛있는 집에서 먹는 게 본전 이상을 뽑는 거 아니겠어?”
내 말에 주영이가 자그맣게 웃었다.
“그것도 그렇네. 덕분에 이런 맛있는 집도 알게 되니 말이야. 나중에 부모님 데리고 한번 찾아와야겠어.”
“나중에 약도를 그려줄 테니까 힘내.”
“Thank you."
갈비를 뜯어 먹었다. 갈비답지 않게 부드럽고 쉽게 뼈에서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듣기로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런 갈비탕을 만들게 되었다고 하던데....갈비인데도 불구하고 질기지 않고 부드럽게 씹히면서 깊은 국물의 맛이 일품이다. 거기다가 이 집에서 직접 만들어서 담근 김치 또한 그 맛이 일품이라 할 수 있었다.
“역시 이 집의 갈비탕은 일품이야. 내가 이 맛 때문에 아무리 멀어도 자주 온다니까.”
“왠지 니가 말하니까 강하게 마음에 와 닿는걸.”
그래? 뭐, 나야 별 상관없는 얘기지만.
“어째든 고마워. 덕분에 오늘 한번 실컷 놀았어.”
“실컷 놀아줬다면야 나야 고맙지. 오늘은 너를 위해서 유원지에 갔으니까.”
“응. 정말인지 고마워.”
그녀가 국물을 다시 떠먹었다.
“굳이 뭘 바라고서 데리고 간 게 아니니까 지금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보답은 저기 먼 시베리아 쪽으로 날려버리라고.”
“.....알고 있었어?”
그녀가 뭔가를 들켰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보답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괜히 3년 동안 지낸 게 아니잖아? 넌 무언가를 받으면 꼭 거기에 대한 보답을 하는 스타일이니까. 그런 걸 미연에 방지하고자 일부러 말했으니 보답 같은 것을 할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말라고.”
우우라는 소리를 내면서 그녀가 불만을 표시했지만 난 그 불만을 쌍그리 무시하며 오직 갈비탕을 먹는 것에만 집중하였다. 문득 먹는 도중에 주영이가 계속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영이한테 주의를 주었다.
“어째든 먹기나 해. 곧 있으면 버스가 온다고.”
“.......”
주영이는 그렇게 한참을 노려보다가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수저를 들었다.
저녁을 해결하고서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시간을 맞추었기 때문에 버스는 금방 탈 수가 있었다. 주영이는 많이 피곤했는지 버스에 타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져 버렸다.
“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으니까. 잠시 자도록 내버려둘까?”
아직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
“......”
문득 창밖을 쳐다보았다. 수많은 네온사인들이 거리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벌써 7년인가.....”
스승님한테 인사를 나누고서 이런 도시에 오게 된 지도 벌써 7년이 흘렀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정말인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정말인지 고생이었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일들이 내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서서히 인사를 드리러 가볼까.”
문득 스승님 생각이 미쳤다. 그러고 보니 스승님을 뵙지 못한지도 벌써 7년이나 흘렀구나.
“.......”
건강하실까? 뭐, 스승님이라면 사하라 사막에 있으셔도 전혀 문제없으실 분이니까.
‘이 괴물같은 놈! 너는 내 자식이 아니야!’
“아, 젠장. 또 생각나 버렸네.”
기억을 잊기 위해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언제나 스승님을 생각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떠오르는 기억의 한 조각. 기억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해도 스승님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덕분에 한시도 그때를 잊어본 적이 없다. 그때 그 상황을. 그때 그가 했던 말을.
‘어딘가 멀리 가버려! 이 괴물자식!’
“잊자. 생각해봤자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니 잊자.”
스스로 암시를 걸며 다시 기억의 깊은 곳으로 밀어 넣기를 수십번. 어느새 익숙한 거리가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 정류장은.....]
그리고 안내방송이 들리면서 익숙한 이름이 들렸다. 이제 내려야 할 때인가? 옆에서 곤히 자고 있던 주영이를 깨웠다.
“주영아. 다 왔으니까 이제 일어나.”
“....으음.....”
“주영아.”
“음....무슨 일이야....”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눈을 비비며 주영이가 부스스하게 일어났다.
“도착했어. 이제 내려야지.”
“응....”
나한테 몸을 기대면서 천천히 한발짝씩 걸음을 옮겼다.
“이제 그만하고 잠 좀 깨.”
“그렇지만...졸리단 말이야.....”
하품을 하며 그렇게 나의 말에 답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익숙한 거리가 눈앞에 보였다. 우리동네였다. 동네라는 말이 어울리게 고층 아파트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었으며 오로지 보이는 거라곤 주택 밖에 없는 동네. 높아봤자 2층이 한계인 동네가 바로 내가 사는 동네다. 공원을 중심으로 4Km가 바로 우리 동네의 크기. 아니, 내가 어째서 이런 것들을 알고 있는 거지?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들을 버리는 게 나의 신조인데....
“....뭐, 상관없나?”
일단은 집에 가는 게 급선무니까.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건물이 보인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하숙집인 동시에 주영이의 집이기도 한 곳이었다.
“자, 그럼 들어가.....”
....뭐지? 이 냄새는? 그리고 이 감각은? 뭔가가 이상하다. 무언가가 저 집에 있다. 그리고 희미하게 맡아지는 철분 냄새는.....설마?!
“....주영아.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곧 돌아올 테니까 여기서 꼼짝하지 말고 있어.”
아직도 반쯤은 졸고 있는 주영이는 살며시 바닥에 앉히고 하숙집으로 한걸음씩 걸어갔다. 틀림없어. 가까이 가면 갈수록 진하게 맡아지는 이 냄새는 분명.....
“피냄새.....”
뭐지? 이 불길한 예감은? 그리고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내 안의 무언가가 경고한다. 저 집에는.......이형이 있노라고.
“.....후......”
흥분 되어있는 몸을 가라앉히고자 긴 숨을 내뱉었다. 진정하자. 별 일 없을거야. 아무 일도 없을거야. 지금 맡은 냄새와 이 감각은 내가 잘못 짚은거야. 아무 일도 없을거야. 그러니까 진정하자.
“......”
어느새 문앞에 도착했다. 맨 먼저 관리인 아저씨의 집부터 들어가도록 하자. 내 방에 가봤자 있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으니까. 문고리를 잡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아저씨. 계세......”
그르르르릉......
그곳은 이미 피의 향연으로 변해있었다. 무언가가 무언가를 물고서 서있었다. 사람같지 않은 기괴한 모습. 지나치게 부풀어 올라와 있는 근육. 살기로 번뜩이는 눈. 그것은 우리들이 보통 이형이라고 부르는 존재였다. 이형의 존재가 그 피의 향연의 중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이형의 존재가 물고 있는 것은 바로....
“.....아저씨.....”
이미 사람이라고도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린 관리인 아저씨의.....머리였다.
그르르르르릉.......
“.....뭐냐, 너는.”
이 상황에서 패닉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 정도로 내 정신이 단련되어 있다는 증거인가? 나는 가슴 속 깊이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간신히 억누르며 이형에게 말을 걸었다.
“말해라......”
어째서......
“왜 이곳에 왔는지를......”
그르르르르릉.....
“말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확실히......
“죽여 버리겠다.”
그르르르르릉.....
하지만 적은 이형의 존재. 이형의 존재가 보기에는 나조차도 이형의 존재로 보이겠지. 어차피 이형의 존재끼리 말이 통한다는 것은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어째서......어째서.....”
분명 어제만 하더라도 밝게 웃으면서 나한테 인사를 해주던 아저씨와 아줌마였다. 그런 아저씨와 아줌마가 무슨 죄가 있단 말이냐.....
“죄라면.....나한테 있는데.....”
그르르르릉.
“......묻겠다.”
.......
“어째서 아줌마와 아저씨가 나를 대신해서 죽어야만 했던 것이냐.”
.......
“그 대답을 하지 않을 경우.....”
....그릉!
“지금 여기서 죽여버리겠다.”
죽여버리겠다.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다고!
“확실히 이 자리에서 고통스럽게 죽여버리겠어어어어어!!!!!!”
분노가 치솟아 오른다. 이성이 본능이 녀석을 죽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대로 놔두면 안되는 녀석이라고 외친다. 죽이라고 외친다. 그래서 난.....그 본능과 이성이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그아아앙!!!
“닥쳐어어어어!!!!”
그 주둥아릴 닥치란 말이야아아아!!!!!
그아아앙!!!
일직선으로 다가온다. 빠르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 스피드로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몸을 한바퀴 돌린다. 왼발을 주축대로 이용해서 그대로 회전력을 가속시킨다. 오른발을 든다. 유선형으로 매끄럽게 뻗어나가는 다리. 유선형으로 그리는 다리는 곧 아래로 하강하면서....이형의 존재의 머리를 있는 힘껏 내리친다.
크아앙!!!!
이형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진다. 이형이 고통스럽다는 듯이 외친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내가 말했지! 확실히 죽여버리겠다고!
그아아아앙!!!
이형의 머리를 밟고 있는 다리를 주축대로 삼아 다시 한번 몸을 회전시킨다. 그리고 이번에는 왼발이 유선형을 그리면서 이형의 등을 내리친다. 그리고 이형의 다리를 잡아 힘차게 던진다.
크아아앙!!
그리고 나도 달려나간다. 이형이 날아간 쪽으로. 이형의 벽에 부딪쳤다. 그와 동시에 나는 젘프를 했다. 그리고 두발을 힘껏 뻗어 이형의 등을 다시 한번 힘차게 쳤다.
크아아아아!!!!
벽이 무너진다. 균열이 일어나며 벽이 무너지고 나와 이형은 밖으로 나왔다.
“큭!”
이형이 바닥에 떨어졌다. 미처 중심을 잡지 못한 나는 그대로 이형이 땅에 떨어지자마자 허공을 날더니 바로 앞에 가로막혀 있었던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손을 교차시켜서 낙법을 행한다. 손으로 벽을 막았다지만 워낙 충격이 큰지라 벽에 균열이 일어나며 무너진다. 둔탁한 충격이 손을 통해 머리에서부터 전해져왔다.
“젠장.....너무 오랜만의 전투라 뒷마무리가 허술했나....”
보통 사람이라면 가벼운 뇌진탕 선고를 받겠지만 나는 다르다. 순간적으로 낙법을 행해서 다행히 충격만 왔을 뿐, 뇌진탕까지는 진행하지 못한 것이다. 이형의 존재를 쳐다본다. 이형도 나를 쳐다본다.
“.....절대로....용서못해.....”
절대로 용서못해. 나의 일상을 파괴한 저 이형을 난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다.
“절대로.....”
“민재야!”
귀에 익은 소리가 들린다. 주영아?!
“주영아?! 어서 피해!”
“민재야? 이게 도대체 무슨.....”
주영이가 구멍이 뚫린 곳으로 안을 들여다본다. 피의 향연이 아직 건물 안에 남아있는 것을 생각해냈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어서 피하란 말이야!”
얼른 자세를 고치고 일어나서 주영이한테 다가가서 주영이를 안고서 재빨리 건물을 벗어났다.
“민재야?! 이게 무슨....”
“설명은 나중에 할테니까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마!”
지금은 우선 주영이를 데리고 도망치는게 급선무다. 나 혼자라면 상관이 없지만 일반인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상대는 이형의 존재. 사람들이 이형의 존재를 거부하고 그 존재를 말살할려는 것처럼 이형의 존재가 우리 인간들을 봤을 때는 이형의 존재로 보일 것이다. 이형의 존재를 거부하고 말살한다. 즉, 만약에 이형의 존재가 주영이를 본다면 죽일려고 들 것이다. 그리고....주영이한테 그런 장면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크아아아앙!!!
“도대체 뭐야! 저 것은!”
있는 힘껏 달리면서 어떻게든 이형의 존재를 따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저 무식한 근육은 폼으로 달고 있는 것이 아니였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아, 보통은 보면 근육과 반비례해서 속도는 떨어지기 마련인데 저것은 왜 그 반대냐고요! 아니, 내가 지금까지 잘못된 상식을 갖고 있었던거냐?!
“미.....민재야?! 저건 도대체......대체 무슨 일이.....”
“설명은 나중에 한다니까!”
아줌마 아저씨가 생각난다. 보여주고 싶지 않다. 물론 아저씨와 아줌마를 죽인 저 이형을 용서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우선 주영이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이형을 죽이는 것은 그 다음에 할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현재 일직선으로 달리고 있었다. 도망가는 자의 입장에 있을 때 일직선으로만 도망가는 것은 그리 바람칙하지 않은 도망 방법이다. 도망치는 원칙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바로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상대방이 따라잡기 전에 따돌려서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주택으로 가득 찬 동네이다. 물론 나 정도 되는 인간이라면 지붕 위로 올라가 요리저리 피하면 되지만 문제는 내 뒤를 쫒는 이형이다. 저런 무식한 몸이니만큼 무게도 장난이 아닐 것이다. 저런 몸무게가 지붕 위로 올라선다하면......
“......아마 손해배상은 전부 내 책임 하에 들어가겠지.”
그것만은 죽어도 피하고 싶다.
크아아아아아!!!!
“....주영아, 미안!”
“뭐? 자....잠깐 민재야 지금 뭘.....”
주영이 말을 들을 새도 없이 높이 던졌다. 그리고 이형을 바라보았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이형이 보였다.
“닥치라고 아까 분명히 말했을텐데!!!”
왼발을 바닥에 힘차게 꽂으며 강하게 주축대를 만들고 그 주축대를 삼은 왼발에 힘을 강하게 실어서 허리를 틀어서 오른손으로 있는 힘껏 녀석의 턱을 올려쳤다. 그와 동시에 왼손으로 녀석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며 녀석의 머리에 확실한 카운터를 먹였다. 보통 인간이라면 아무리 못해도 머리뼈가 부서지는 중상을 입힐만한 위력적인 공격이다.
“이것이.....마지막이다!!!”
녀석의 머리를 잡고서 오른발을 들어 무릎으로 힘껏 다시 녀석의 머리를 쳤다. 이번 공격도 상당히 위력적인 공격이라 할 수 있는 공격이다. 못해도 턱뼈는 확실히 부러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보너스다!”
오른발을 펴서 반원을 그렸다. 녀석의 머리 위에 내 발이 있다. 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그대로 녀석의 머리에다가 내 다리를 내리쳤다.
.....크아아아악!!!!
이것이 불과 1초 만에 일어난 상황이다. 너무나도 신속한 공격이었는지 이형이 나중에서야 고통의 비명을 지른다.
“.....읏차.”
“꺄악!”
그리고 나중에서야 느릿느릿하게 내려오는 주영이를 붙잡았다. 상황종료.
“다친데 없어?”
“없긴 하지만.....”
주영이가 힐끔 이형의 존재를 바라본다. 그 눈에는 현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었다. 이형이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는 인간이 갖는 전형적인 눈빛이다.
“저건....뭐야? 어째서....우리집에서 나온거야?”
“.......”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다.
“엄마는? 아빠는?”
“......”
“내려줘. 엄마 아빠한테 갈거야.”
눈앞의 현실을 믿지 못하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현실이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않은 눈이다. 주영이는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예상을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현실은 언젠가 알아야하는 법이다.
“그만해, 주영아. 아저씨와 아줌마는.....죽었어.”
“......뭐?”
“죽었다고....했어.”
말하기가 무척이나 괴롭다.
“무슨....소리야?”
“......말 그대로야. 아저씨와 아줌마는 죽었어. 저 이형한테.”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
“엄마 아빠가 왜 죽어? 민재야, 그거 농담하는 거지? 그렇지? 그거 농담치고는 정말 재미없는 농담이야.”
“......”
“내려줘, 나 이제 집에 갈거야.”
“.....난 이런 일로 농담 같은 거 하지 않아.”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믿고 싶지 않는 현실을 믿어야만 하는 주영이는 곧 그 경악에 찬 눈에서 한줄기 눈물을 흘린다.
“.....거짓말이지?”
“....미안. 내가 갔을 때는 이미.....”
“거짓말이야.....거짓말이야.....”
그녀가 부정한다.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
“거짓말이야.....엄마, 아빠는 죽지 않았어. 내가 가면 이제 왔냐는 듯 상냥하게 웃어주시며 나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주실거야....”
“....정말....미안해. 너한테.....그런 장면은 보여주고 싶지 않아.”
“....거짓말이야!!!!”
그녀가 몸부림을 친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몸부림을 친다.
“거짓말이야거짓말이야거짓말이야거짓말이야아아아아아!!!!!!!”
“.......”
“거짓말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
“.......”
“엄마 아빠가 돌아가셨을 리 없어!!!!!”
“......주영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정말인지.....미안......
크아아아아악!!!!
“.....뭐.....!”
이형의 소리가 들린다. 찟어지는 듯한 울음소리. 말도 안돼! 지금 그 공격을 맞고 일어선다는 것은.....
크아아아아악!!!!
뒤를 돌아본다. 이형이 날카롭게 세워져 있는 손톱을 올려 긁는 것이 보였다.
“.....커......”
주영이의 등을.
“.....주영아!!!!!!”
따듯한 무언가가 내 얼굴에 묻는다. 주영이가 무언가에 물들어 간다. 새빨간 무언가에.
“민.....재야......”
“......주영아?”
그녀가 나를 본다. 눈에....생기가 없다.
“그거....거....짓......”
“......주영아?”
“........”
“주영아? 정신 차려봐.”
“........”
“주영아?”
“........”
농담이지? 겨우 그깟 손톱에 긁혔다고 죽은 거 아니지? 그렇지? 그러니까......제발 눈 좀 떠봐, 주영아.
“.........”
“........으아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현실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주영이는......죽었다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주영이는 죽었지만 죽었다고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난 그런 마음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주영이를 보았다. 새빨간 피로 물들어져 가는 주영이를.....
“......나 때문이야......”
그때 내가 뒤만 돌아보지 않았더라면......돌아보지만 않았더라면.....
“.....미안해.....”
정말인지.....미안해.....
“지금.....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손가락을 이빨로 깨문다. 우직 소리가 나면서 깨문 손가락에 피가 흘러나온다. 검은 피. 일반적으로 죽어버린 피라고 불리는 색깔의 피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나중에 원망을 들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주영이를.....지금 이 곳에서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
“정말 미안해....주영아.”
그 검은 피를 주영이에 상처 부위에 떨어뜨린다. 한방울.....또 한방울.....다섯방울 정도가 상처 부위에 떨어졌다. 이제......충분하다.
“.......”
주영이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아직도 이쪽을 경계하며 섣불리 공격을 못하고 있는 이형을 바라본다.
“.....많이 기다리게 했군.”
크르르르르르.....
“진심으로 상대해주마.”
주영이를 저런 모습으로 만든 죄를 톡톡히 치르게 해주지.
“영광으로 알아. 3년 만에 사용하는 힘이라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그르르르르르르......
이형이 경계를 한다. 나도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달라진 공기의 흐름을 느끼고.
“조절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지만.....”
그딴 게 지금 여기서 뭔 대수야.
“각오해라. 이형.”
가슴 속 깊이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느낀다. 온 몸 전체에 길을 만든다. 최대한 길을 넓힌다.
“.....하.....”
온 몸에 힘이 구석구석 미친다. 그 힘을 증폭시킨다. 오른손에 그 힘을 집중시킨다. 집중시킨 결과 오른손에 만들어두었던 길이 겉으로 드러난다. 수많은 길들이 서로 교차가 되면서 오른손은 마치 문양을 그려놓은 듯 했다.
“....간다.”
오른손에 모여 있는 힘을 이형한테 겨눈다.
“.....너의 본질은 아까 전에 파악했다.”
남은 것은....너의 본질을 멸하는 것.
“너의 존재를......멸하겠다.”
크아아아아!!!
이형이 다가온다. 마치 자신의 위험을 깨달았다는 듯 필사적으로 다가오는 듯이 보였다. 당하기 전에 죽인다....라는 건가?
“귀여운 짓을......”
“민재씨! 비키세요!”
.....희라?! 어째서 여기에?!
“비키세요!”
희라의 말대로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한발짝 뒤로 물러가는 순간에 엄청난 양의 무언가가 이형을 감싼다. 저것은.....물?!
쩌.....쩌저저적.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물이 얼어버린다. 얼음 속에 갖힌 이형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얼음 속에 갇혀 있을 뿐이었다.
“으라차차찻! 이제 내가 나설 차레인가?!”
.....이다원까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만 얌전히 죽어달라고! 이 괴물!”
이다원의 손에 새빨간 무언가가 뿜어져 나온다. 피는 아니다. 그것은.....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이었다.
“간다아아아아!!!!”
이형이 갇혀 있는 얼음에 불꽃에 활활 타오르고 있는 자신의 손을 갖다 대었다. 순식간에 불에 휩싸인 얼음.
“지옥의 업화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마!”
순간 그의 등에서 날개가 돋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제법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엄청난 양의 열기. 새하얀 불꽃이 얼음을 덮친다.
“큭!”
서둘러 주영이를 안고서 몸을 돌렸다. 저 멍청한 자식! 이런데서 저런 온도를 뿜어내는 게 어딨어?! 하마터면 주영이가 불에 타 버릴 뻔 했잖아!
“민재씨! 이쪽이예요! 어서 도망가요!”
희라가 내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이러지도 못하고 희라가 끄는 대로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이다원이 뒤따라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희라!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저 이형은 뭐지?! 저게 너희들이 말하던 그 사건인 것이야?!”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말씀드릴께요! 우선은 피하는 것이 급선무예요!”
이토록 감정이 격한 희라는 처음 본다. 그런 희라에 기색에 눌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희라가 이끄는 대로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여기라면 안심이겠네요.”
한참을 달려가다 희라가 선택한 곳은 공원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가 아까 그 이형이 나타났을 때 신속하게 대응을 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있는 곳은 나무라고는 전혀 없는 공원의 중심이었다. 이곳이라면 이형도 숨을 데가 없기 때문에 나타난다 하더라도 우리들 눈에 쉽게 띌 것이다.
“다원씨. 실험체는 어떻게 됐죠?”
“업화의 불꽃으로 녀석의 몸을 산산조각 내버렸어. 당분간 녀석이 나타나는 일은 없을거야.”
“그거 다행이네요.”
희라가 안도의 한숨을 쉰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저 이형의 정체가 도대체 뭐지?
“희라.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거야? 저 이형은 뭐지? 저 이형이 너희들이 말한 소위 그 사건인지 뭔지 하는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을 그대로 희라에게 내뱉었다. 희라는 나의 말에 말하기가 어렵다는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결심을 굳혔는지 굳은 얼굴로 날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당신의 말대로 저 괴물은 우리들이 맡고 있고 전에 당신한테 의뢰를 했던 당신이 말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괴물의 정체는 어느 생체연구기관에서 도망친 실험체입니다.”
“.....실험체?”
“얘기하자면 조금 길어지겠는데......괜찮겠어요?”
그녀는 날 바라보지 않고 주영이를 바라보았다. 피로 물들어진 주영이를 보고서 난 쓴 웃음을 지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어. 응급처치는 다 했으니까. 지금 병원에 가봤자 별다른 소용은 없을거야.”
“.....무슨 소리죠?”
“....내 피를 주입시켰어.”
“.....네?”
“내 피를 주입시켰다고 했어.”
잠시 동안 나의 말을 이해 못했는지 희라는 침묵을 지키다가 곧 내 말을 이해했는지 경악의 찬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당신.....”
“어쩔 도리가 없었어. 그때 당시만 해도 목숨이 끊어지기 일보직전 이었으니까. 병원에 가도 사망판정을 받았을 상태였어.”
주영이의 등을 만졌다. 아까 이형한테 긁혔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등은 매끄러웠다.
“원망 받아도 할 수 없지. 하지만 그때가 최선의 방법이었어.”
“어이, 민재. 지금 너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나 하는 소리냐?”
다원이의 소리에는 조용한 분노가 섞여있었다. 물론 잘 알고 있지.
“죽는 걸 살펴보는 것보단 훨씬 나아.”
“넌 지금 아무 상관도 없는 일반인을 우리들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는거야.”
“3년 전의 너희들이 했던 짓은 이것보다 더 잔인했어.”
나의 말에 할 말을 잃었는지 더 이상 다원이의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주영이를 바라본다. 아까 심한 중상을 입은 사람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된 호흡으로 잠을 자고 있었다.
“.....이제 서서히 그 이형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은데......”
무슨 실험체라고 한 것 같은데........
“그건 도대체 뭐지? 무슨 실험체라는 거야?”
나의 말에 그녀는 다시 말을 하기를 주저했다. 보지는 않았지만 이다원도 말하기를 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뭐지? 두 사람이 이렇게 말하기를 꺼릴 정도라니.....저 이형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인가?
“어차피 전에 너희들이 말했던 그 사건인지 뭔지 하는 것이 저 이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만 이실직고 해. 저 이형 때문에 이 여자의 일상은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어. 이 여자의 대한 보상은 너희들의 죽음으로도 모자랄거다.”
“....어이, 말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니야?”
“한번 더 말하지만 니놈들이 나와 그녀한테 했던 짓을 생각하면 너희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게 죽여도 속이 시원치 않을 판이야. 뻔뻔하게 얼굴을 들이미는 것도 솔직히 짜증이 날 정도라고.”
“......흥, 밴댕이 소갈딱지군가 따로 없군.”
“거기다가 이번 사건만 해도 그래. 그 사건인지 뭔지를 너희들이 빨리만 처리했더라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거다. 거기다가 너희들은 나와의 약속을 보기 좋게 깨뜨리지 않았나? 내가 분명 3년 전에 너희들한테 이렇게 약속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숨을 한번 돌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더 이상 나를 그쪽 세계로 끌어들이지 말아달라는 약속을.”
“....그건 그렇지만.....그래도 민재씨.”
“변명은 필요없어. 나한테 변명이 소용없다는 것을 차희라, 니가 더 잘 알텐데?”
“.......알겠어요. 전부 다 얘기해 드리죠.”
그녀가 나지막한 한숨을 쉬었다.
“단, 여기서 이야기를 할 수 없어요. 일급기밀로 국가에서 정해놓은 사건이라서 자세한 사항을 들을려면 SRR로 돌아가야 해요.”
“SRR?”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뭐였더라?
“Special Repression Rescue 특별 진압 구조대에 약자예요.”
아, 그러고 보니까 아까 네리무도 그런 말을 했었었지? 으음.....어쩌지? 저 이형의 관해서는 듣고 싶지만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다지 내키지 않은데......
“.....에잇.”
별 수 없지.
“좋아, 가주지. 단.”
주영이를 가르켰다.
“이 여자도 같이 가는 것을 조건으로 그 이형에 대해 듣도록 하지.”
“.....어쩔 수가 없군요.”
그녀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당신의 말대로 이번 일은 전부 저희들의 책임이니까요.....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녀는 곧 휴대폰의 숫자판을 천천히 누르기 시작했다.
“여, 이제 기분이 다 풀렸나보지?”
“.....흥.”
....아....아직 완전하게 풀린 것 같지 않아 보이는구나.
“그렇게 애 같이 있으면 이쪽이 곤란하다고.”
“누가 애야, 누가!”
누가 애냐고? 좋아, 지금 이 자리에서 당당하게 선포해주지.
“너.”
“증거가 있어? 증거가 있냐고!”
증거? 증거야 당연히....
“지금 니가 하고 있는 짓.”
“그런 걸로 증거가 될 수는 없어! 물적증거를 내놓으란 말이야!”“그래?”
나는 핸드폰을 꺼내어 열고서 캠코더 기능을 눌렀다. 그리고 주영이 촬영.
“....지금 뭐하는 거야?”
뭐하냐니....몰라서 묻는건가?
“물적증거 확보.”
“저기....너무 떳떳하게 증거를 확보하고 있는 거 아니야?”
“원래 증거는 떳떳하게 확보하는 법이야.”
나는 캠코더 기능을 취소하지 않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역대 탐정 중에서 증거를 몰래 숨어서 찾은 탐정은 없다고.”
“....왠지 모르게 설득력이 있는 말인데....”
왠지 모르게가 아니라 확실하게 설득력이 있는 말이라고 나는 보는데.
“자, 어서 아까 전의 행동을 리플레이 시켜봐. 물적증거를 확보해야지.”
“누가 할까보냐!”
하? 그걸 하지 않으면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는데.....
“한번만이라도 좋으니까 리플레이 해주면 안될까?”
“하란다고 진짜로 하는 인간이 이 세상에 몇 있을 것 같니?!”
뭐, 그것도 일리 있는 말이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니가 방심하고 있을 때 찍는 방법인데.....실시간 몰래 카메라라도 구입해야 되나?”
“....너, 어떻게 본다면 진짜 무서울 정도로 엄청난 행동력을 과시한다.....”
“그게 바로 나의 장점이지.”
핸드폰을 닫고서 다시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흠, 이왕이면 녹음기도 구입할까?”
“....녹음기는 왜?”
“눈으로 보고 귀로도 들어야지 제대로 된 물적증거 아니겠어?”
“됐거든?!”
그렇게 한참동안 실랑이 아닌 실랑이가 벌어졌다. 나는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서. 그리고 주영이는 그 증거를 확보하게 하지 못하기 위해.
“왠만하면 그만 포기하시지?!”
“그렇겐 못하지. 니가 애 같이 군다는 것을 만천하에 알려야 하는 중대한 사명이 현재 나한테 있는 이상 그 임무를 반드시 완수하고 말거다.”
“중대한 사명 좋아하시네!”
한참동안 그렇게 실랑이를 벌인 끝에 결국 주영이가 제 풀에 지쳐 쓰러져 버렸다.
“헥....헥....”
“뭐,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핸드폰을 꺼내어 시간을 보았다. 6시 43분.
“슬슬 배고프지 않아?”
벌써 해는 지고 깜깜한 밤이 되어있었다. 유원지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인공의 빛으로 환하게 비춰져 있었다.
“내가 잘 아는 갈비탕 집이 있는데 거기에서 먹지 않을래? 싸고 양도 많이 주는 데다가 맛있어서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꽤나 유명하다고 알려진 곳이거든.”
거기다가 하숙집 방향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돌아가는 길에 들려서 먹을 수도 있다.
“어떻게 할래?”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주영이가 나를 보았다. 호흡은 이제 많이 안정된 상태였다.
“시간도 늦었고 하니 거기에서 먹을 수 밖에.”
“혹시 거기에서 너무 맛있어서 많이 먹다가 체중이 늘어도 난 전혀 상관하지 않을거다?”
농담조로 쿡쿡 웃으며 말했다. 주영이는 그런 나를 흘겨보았다.
“그런 건 여자 앞에서 금기나 다름없다고. 말 좀 가려서 해.”
“그런 말을 한다는 건 그만큼 친하다는 말 아니겠어?”
“정말인지.....말솜씨는 연설가 뺨친다니까.”
“나의 얼마 되지 않는 장점 중에 하나지.”
나는 주영이와 함께 출구로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들의 오늘 하루는 그렇게 저물고 있었다.
“.....맛있다.”
주영이가 국물을 한 숟갈 떠먹으며 그렇게 감상평을 내렸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던 도중 내려서 온 갈비탕 집은 약간은 낡았다는 느낌을 주는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30년 전부터 해오던 집이기 때문에 건물의 외양은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건물의 외양은 맛으로 보충해주고 있기 때문에 이 식당은 언제나 손님들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그렇지? 이 식당은 30년 전통의 맛으로 승부하는 가게니까. 이 지역에 사는 사람들치고는 이 식당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야. 오죽하면 이 식당 때문에 이사를 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을 정도라고.”
“용케도 이런 집을 알고 있네.”
“뭐, 평소에 자주 사 먹잖아? 돈 내고 먹는 건데 이왕이면 맛있는 집에서 먹는 게 본전 이상을 뽑는 거 아니겠어?”
내 말에 주영이가 자그맣게 웃었다.
“그것도 그렇네. 덕분에 이런 맛있는 집도 알게 되니 말이야. 나중에 부모님 데리고 한번 찾아와야겠어.”
“나중에 약도를 그려줄 테니까 힘내.”
“Thank you."
갈비를 뜯어 먹었다. 갈비답지 않게 부드럽고 쉽게 뼈에서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듣기로는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거쳐서 이런 갈비탕을 만들게 되었다고 하던데....갈비인데도 불구하고 질기지 않고 부드럽게 씹히면서 깊은 국물의 맛이 일품이다. 거기다가 이 집에서 직접 만들어서 담근 김치 또한 그 맛이 일품이라 할 수 있었다.
“역시 이 집의 갈비탕은 일품이야. 내가 이 맛 때문에 아무리 멀어도 자주 온다니까.”
“왠지 니가 말하니까 강하게 마음에 와 닿는걸.”
그래? 뭐, 나야 별 상관없는 얘기지만.
“어째든 고마워. 덕분에 오늘 한번 실컷 놀았어.”
“실컷 놀아줬다면야 나야 고맙지. 오늘은 너를 위해서 유원지에 갔으니까.”
“응. 정말인지 고마워.”
그녀가 국물을 다시 떠먹었다.
“굳이 뭘 바라고서 데리고 간 게 아니니까 지금 머릿속에서 생각하고 있는 보답은 저기 먼 시베리아 쪽으로 날려버리라고.”
“.....알고 있었어?”
그녀가 뭔가를 들켰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보답 같은 것을 생각하고 있었구나.
“괜히 3년 동안 지낸 게 아니잖아? 넌 무언가를 받으면 꼭 거기에 대한 보답을 하는 스타일이니까. 그런 걸 미연에 방지하고자 일부러 말했으니 보답 같은 것을 할 생각은 꿈에도 꾸지 말라고.”
우우라는 소리를 내면서 그녀가 불만을 표시했지만 난 그 불만을 쌍그리 무시하며 오직 갈비탕을 먹는 것에만 집중하였다. 문득 먹는 도중에 주영이가 계속 나를 노려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영이한테 주의를 주었다.
“어째든 먹기나 해. 곧 있으면 버스가 온다고.”
“.......”
주영이는 그렇게 한참을 노려보다가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수저를 들었다.
저녁을 해결하고서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시간을 맞추었기 때문에 버스는 금방 탈 수가 있었다. 주영이는 많이 피곤했는지 버스에 타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져 버렸다.
“뭐, 여러 가지 일이 있었으니까. 잠시 자도록 내버려둘까?”
아직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까.
“......”
문득 창밖을 쳐다보았다. 수많은 네온사인들이 거리를 밝게 비추고 있었다.
“.....벌써 7년인가.....”
스승님한테 인사를 나누고서 이런 도시에 오게 된 지도 벌써 7년이 흘렀다.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정말인지 많은 일들이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정말인지 고생이었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일들이 내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서서히 인사를 드리러 가볼까.”
문득 스승님 생각이 미쳤다. 그러고 보니 스승님을 뵙지 못한지도 벌써 7년이나 흘렀구나.
“.......”
건강하실까? 뭐, 스승님이라면 사하라 사막에 있으셔도 전혀 문제없으실 분이니까.
‘이 괴물같은 놈! 너는 내 자식이 아니야!’
“아, 젠장. 또 생각나 버렸네.”
기억을 잊기 위해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언제나 스승님을 생각하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떠오르는 기억의 한 조각. 기억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해도 스승님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덕분에 한시도 그때를 잊어본 적이 없다. 그때 그 상황을. 그때 그가 했던 말을.
‘어딘가 멀리 가버려! 이 괴물자식!’
“잊자. 생각해봤자 별로 좋은 기억이 아니니 잊자.”
스스로 암시를 걸며 다시 기억의 깊은 곳으로 밀어 넣기를 수십번. 어느새 익숙한 거리가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음 정류장은.....]
그리고 안내방송이 들리면서 익숙한 이름이 들렸다. 이제 내려야 할 때인가? 옆에서 곤히 자고 있던 주영이를 깨웠다.
“주영아. 다 왔으니까 이제 일어나.”
“....으음.....”
“주영아.”
“음....무슨 일이야....”
아직 잠이 덜 깼는지 눈을 비비며 주영이가 부스스하게 일어났다.
“도착했어. 이제 내려야지.”
“응....”
나한테 몸을 기대면서 천천히 한발짝씩 걸음을 옮겼다.
“이제 그만하고 잠 좀 깨.”
“그렇지만...졸리단 말이야.....”
하품을 하며 그렇게 나의 말에 답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익숙한 거리가 눈앞에 보였다. 우리동네였다. 동네라는 말이 어울리게 고층 아파트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가 없었으며 오로지 보이는 거라곤 주택 밖에 없는 동네. 높아봤자 2층이 한계인 동네가 바로 내가 사는 동네다. 공원을 중심으로 4Km가 바로 우리 동네의 크기. 아니, 내가 어째서 이런 것들을 알고 있는 거지? 내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 지식들을 버리는 게 나의 신조인데....
“....뭐, 상관없나?”
일단은 집에 가는 게 급선무니까.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건물이 보인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하숙집인 동시에 주영이의 집이기도 한 곳이었다.
“자, 그럼 들어가.....”
....뭐지? 이 냄새는? 그리고 이 감각은? 뭔가가 이상하다. 무언가가 저 집에 있다. 그리고 희미하게 맡아지는 철분 냄새는.....설마?!
“....주영아. 여기서 잠시만 기다려. 곧 돌아올 테니까 여기서 꼼짝하지 말고 있어.”
아직도 반쯤은 졸고 있는 주영이는 살며시 바닥에 앉히고 하숙집으로 한걸음씩 걸어갔다. 틀림없어. 가까이 가면 갈수록 진하게 맡아지는 이 냄새는 분명.....
“피냄새.....”
뭐지? 이 불길한 예감은? 그리고 가까이 가면 갈수록 내 안의 무언가가 경고한다. 저 집에는.......이형이 있노라고.
“.....후......”
흥분 되어있는 몸을 가라앉히고자 긴 숨을 내뱉었다. 진정하자. 별 일 없을거야. 아무 일도 없을거야. 지금 맡은 냄새와 이 감각은 내가 잘못 짚은거야. 아무 일도 없을거야. 그러니까 진정하자.
“......”
어느새 문앞에 도착했다. 맨 먼저 관리인 아저씨의 집부터 들어가도록 하자. 내 방에 가봤자 있는 사람이라곤 아무도 없으니까. 문고리를 잡는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아저씨. 계세......”
그르르르릉......
그곳은 이미 피의 향연으로 변해있었다. 무언가가 무언가를 물고서 서있었다. 사람같지 않은 기괴한 모습. 지나치게 부풀어 올라와 있는 근육. 살기로 번뜩이는 눈. 그것은 우리들이 보통 이형이라고 부르는 존재였다. 이형의 존재가 그 피의 향연의 중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이형의 존재가 물고 있는 것은 바로....
“.....아저씨.....”
이미 사람이라고도 부를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린 관리인 아저씨의.....머리였다.
그르르르르릉.......
“.....뭐냐, 너는.”
이 상황에서 패닉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은 그 정도로 내 정신이 단련되어 있다는 증거인가? 나는 가슴 속 깊이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간신히 억누르며 이형에게 말을 걸었다.
“말해라......”
어째서......
“왜 이곳에 왔는지를......”
그르르르르릉.....
“말하지 않는다면.....”
그때는 확실히......
“죽여 버리겠다.”
그르르르르릉.....
하지만 적은 이형의 존재. 이형의 존재가 보기에는 나조차도 이형의 존재로 보이겠지. 어차피 이형의 존재끼리 말이 통한다는 것은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어째서......어째서.....”
분명 어제만 하더라도 밝게 웃으면서 나한테 인사를 해주던 아저씨와 아줌마였다. 그런 아저씨와 아줌마가 무슨 죄가 있단 말이냐.....
“죄라면.....나한테 있는데.....”
그르르르릉.
“......묻겠다.”
.......
“어째서 아줌마와 아저씨가 나를 대신해서 죽어야만 했던 것이냐.”
.......
“그 대답을 하지 않을 경우.....”
....그릉!
“지금 여기서 죽여버리겠다.”
죽여버리겠다. 죽여버리겠어. 죽여버리겠다고!
“확실히 이 자리에서 고통스럽게 죽여버리겠어어어어어!!!!!!”
분노가 치솟아 오른다. 이성이 본능이 녀석을 죽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대로 놔두면 안되는 녀석이라고 외친다. 죽이라고 외친다. 그래서 난.....그 본능과 이성이 시키는 대로 몸을 움직였다.
그아아앙!!!
“닥쳐어어어어!!!!”
그 주둥아릴 닥치란 말이야아아아!!!!!
그아아앙!!!
일직선으로 다가온다. 빠르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 스피드로 나를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
몸을 한바퀴 돌린다. 왼발을 주축대로 이용해서 그대로 회전력을 가속시킨다. 오른발을 든다. 유선형으로 매끄럽게 뻗어나가는 다리. 유선형으로 그리는 다리는 곧 아래로 하강하면서....이형의 존재의 머리를 있는 힘껏 내리친다.
크아앙!!!!
이형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진다. 이형이 고통스럽다는 듯이 외친다.
“아직 끝나지 않았어!!!”
내가 말했지! 확실히 죽여버리겠다고!
그아아아앙!!!
이형의 머리를 밟고 있는 다리를 주축대로 삼아 다시 한번 몸을 회전시킨다. 그리고 이번에는 왼발이 유선형을 그리면서 이형의 등을 내리친다. 그리고 이형의 다리를 잡아 힘차게 던진다.
크아아앙!!
그리고 나도 달려나간다. 이형이 날아간 쪽으로. 이형의 벽에 부딪쳤다. 그와 동시에 나는 젘프를 했다. 그리고 두발을 힘껏 뻗어 이형의 등을 다시 한번 힘차게 쳤다.
크아아아아!!!!
벽이 무너진다. 균열이 일어나며 벽이 무너지고 나와 이형은 밖으로 나왔다.
“큭!”
이형이 바닥에 떨어졌다. 미처 중심을 잡지 못한 나는 그대로 이형이 땅에 떨어지자마자 허공을 날더니 바로 앞에 가로막혀 있었던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손을 교차시켜서 낙법을 행한다. 손으로 벽을 막았다지만 워낙 충격이 큰지라 벽에 균열이 일어나며 무너진다. 둔탁한 충격이 손을 통해 머리에서부터 전해져왔다.
“젠장.....너무 오랜만의 전투라 뒷마무리가 허술했나....”
보통 사람이라면 가벼운 뇌진탕 선고를 받겠지만 나는 다르다. 순간적으로 낙법을 행해서 다행히 충격만 왔을 뿐, 뇌진탕까지는 진행하지 못한 것이다. 이형의 존재를 쳐다본다. 이형도 나를 쳐다본다.
“.....절대로....용서못해.....”
절대로 용서못해. 나의 일상을 파괴한 저 이형을 난 절대로 용서할 수가 없다.
“절대로.....”
“민재야!”
귀에 익은 소리가 들린다. 주영아?!
“주영아?! 어서 피해!”
“민재야? 이게 도대체 무슨.....”
주영이가 구멍이 뚫린 곳으로 안을 들여다본다. 피의 향연이 아직 건물 안에 남아있는 것을 생각해냈다.
“지금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야! 어서 피하란 말이야!”
얼른 자세를 고치고 일어나서 주영이한테 다가가서 주영이를 안고서 재빨리 건물을 벗어났다.
“민재야?! 이게 무슨....”
“설명은 나중에 할테니까 지금은 아무 말도 하지마!”
지금은 우선 주영이를 데리고 도망치는게 급선무다. 나 혼자라면 상관이 없지만 일반인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상대는 이형의 존재. 사람들이 이형의 존재를 거부하고 그 존재를 말살할려는 것처럼 이형의 존재가 우리 인간들을 봤을 때는 이형의 존재로 보일 것이다. 이형의 존재를 거부하고 말살한다. 즉, 만약에 이형의 존재가 주영이를 본다면 죽일려고 들 것이다. 그리고....주영이한테 그런 장면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크아아아앙!!!
“도대체 뭐야! 저 것은!”
있는 힘껏 달리면서 어떻게든 이형의 존재를 따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저 무식한 근육은 폼으로 달고 있는 것이 아니였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계속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아, 보통은 보면 근육과 반비례해서 속도는 떨어지기 마련인데 저것은 왜 그 반대냐고요! 아니, 내가 지금까지 잘못된 상식을 갖고 있었던거냐?!
“미.....민재야?! 저건 도대체......대체 무슨 일이.....”
“설명은 나중에 한다니까!”
아줌마 아저씨가 생각난다. 보여주고 싶지 않다. 물론 아저씨와 아줌마를 죽인 저 이형을 용서할 생각은 전혀 없다. 하지만 지금은 우선 주영이를 안전한 곳으로 피신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이형을 죽이는 것은 그 다음에 할 일이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현재 일직선으로 달리고 있었다. 도망가는 자의 입장에 있을 때 일직선으로만 도망가는 것은 그리 바람칙하지 않은 도망 방법이다. 도망치는 원칙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바로 이리저리 방향을 바꿔가며 상대방이 따라잡기 전에 따돌려서 안전한 곳으로 피신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주택으로 가득 찬 동네이다. 물론 나 정도 되는 인간이라면 지붕 위로 올라가 요리저리 피하면 되지만 문제는 내 뒤를 쫒는 이형이다. 저런 무식한 몸이니만큼 무게도 장난이 아닐 것이다. 저런 몸무게가 지붕 위로 올라선다하면......
“......아마 손해배상은 전부 내 책임 하에 들어가겠지.”
그것만은 죽어도 피하고 싶다.
크아아아아아!!!!
“....주영아, 미안!”
“뭐? 자....잠깐 민재야 지금 뭘.....”
주영이 말을 들을 새도 없이 높이 던졌다. 그리고 이형을 바라보았다.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이형이 보였다.
“닥치라고 아까 분명히 말했을텐데!!!”
왼발을 바닥에 힘차게 꽂으며 강하게 주축대를 만들고 그 주축대를 삼은 왼발에 힘을 강하게 실어서 허리를 틀어서 오른손으로 있는 힘껏 녀석의 턱을 올려쳤다. 그와 동시에 왼손으로 녀석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치며 녀석의 머리에 확실한 카운터를 먹였다. 보통 인간이라면 아무리 못해도 머리뼈가 부서지는 중상을 입힐만한 위력적인 공격이다.
“이것이.....마지막이다!!!”
녀석의 머리를 잡고서 오른발을 들어 무릎으로 힘껏 다시 녀석의 머리를 쳤다. 이번 공격도 상당히 위력적인 공격이라 할 수 있는 공격이다. 못해도 턱뼈는 확실히 부러졌을 것이다.
“그리고 이건 보너스다!”
오른발을 펴서 반원을 그렸다. 녀석의 머리 위에 내 발이 있다. 난 인정사정 볼 것 없이 그대로 녀석의 머리에다가 내 다리를 내리쳤다.
.....크아아아악!!!!
이것이 불과 1초 만에 일어난 상황이다. 너무나도 신속한 공격이었는지 이형이 나중에서야 고통의 비명을 지른다.
“.....읏차.”
“꺄악!”
그리고 나중에서야 느릿느릿하게 내려오는 주영이를 붙잡았다. 상황종료.
“다친데 없어?”
“없긴 하지만.....”
주영이가 힐끔 이형의 존재를 바라본다. 그 눈에는 현실을 믿지 못하겠다는 뜻이 담겨져 있었다. 이형이 존재하는 것을 부정하는 인간이 갖는 전형적인 눈빛이다.
“저건....뭐야? 어째서....우리집에서 나온거야?”
“.......”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다.
“엄마는? 아빠는?”
“......”
“내려줘. 엄마 아빠한테 갈거야.”
눈앞의 현실을 믿지 못하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현실이 이루어지는 것을 바라고 있지 않은 눈이다. 주영이는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의 예상을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현실은 언젠가 알아야하는 법이다.
“그만해, 주영아. 아저씨와 아줌마는.....죽었어.”
“......뭐?”
“죽었다고....했어.”
말하기가 무척이나 괴롭다.
“무슨....소리야?”
“......말 그대로야. 아저씨와 아줌마는 죽었어. 저 이형한테.”
“....말도 안 되는 소리하지 마....”
“......”
“엄마 아빠가 왜 죽어? 민재야, 그거 농담하는 거지? 그렇지? 그거 농담치고는 정말 재미없는 농담이야.”
“......”
“내려줘, 나 이제 집에 갈거야.”
“.....난 이런 일로 농담 같은 거 하지 않아.”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믿고 싶지 않는 현실을 믿어야만 하는 주영이는 곧 그 경악에 찬 눈에서 한줄기 눈물을 흘린다.
“.....거짓말이지?”
“....미안. 내가 갔을 때는 이미.....”
“거짓말이야.....거짓말이야.....”
그녀가 부정한다. 현실을 부정하고 있다.
“거짓말이야.....엄마, 아빠는 죽지 않았어. 내가 가면 이제 왔냐는 듯 상냥하게 웃어주시며 나에게 시원한 음료수를 주실거야....”
“....정말....미안해. 너한테.....그런 장면은 보여주고 싶지 않아.”
“....거짓말이야!!!!”
그녀가 몸부림을 친다.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어서 몸부림을 친다.
“거짓말이야거짓말이야거짓말이야거짓말이야아아아아아!!!!!!!”
“.......”
“거짓말이야아아아아아아아아!!!!!!”
“.......”
“엄마 아빠가 돌아가셨을 리 없어!!!!!”
“......주영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정말인지.....미안......
크아아아아악!!!!
“.....뭐.....!”
이형의 소리가 들린다. 찟어지는 듯한 울음소리. 말도 안돼! 지금 그 공격을 맞고 일어선다는 것은.....
크아아아아악!!!!
뒤를 돌아본다. 이형이 날카롭게 세워져 있는 손톱을 올려 긁는 것이 보였다.
“.....커......”
주영이의 등을.
“.....주영아!!!!!!”
따듯한 무언가가 내 얼굴에 묻는다. 주영이가 무언가에 물들어 간다. 새빨간 무언가에.
“민.....재야......”
“......주영아?”
그녀가 나를 본다. 눈에....생기가 없다.
“그거....거....짓......”
“......주영아?”
“........”
“주영아? 정신 차려봐.”
“........”
“주영아?”
“........”
농담이지? 겨우 그깟 손톱에 긁혔다고 죽은 거 아니지? 그렇지? 그러니까......제발 눈 좀 떠봐, 주영아.
“.........”
“........으아아아아아아아악!!!!!!!”
하지만 현실은 냉혹하다. 현실은 이렇게 말해주고 있었다. 주영이는......죽었다고.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주영이는 죽었지만 죽었다고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난 그런 마음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주영이를 보았다. 새빨간 피로 물들어져 가는 주영이를.....
“......나 때문이야......”
그때 내가 뒤만 돌아보지 않았더라면......돌아보지만 않았더라면.....
“.....미안해.....”
정말인지.....미안해.....
“지금.....내가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손가락을 이빨로 깨문다. 우직 소리가 나면서 깨문 손가락에 피가 흘러나온다. 검은 피. 일반적으로 죽어버린 피라고 불리는 색깔의 피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거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 나중에 원망을 들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주영이를.....지금 이 곳에서 죽게 내버려둘 수 없다.
“정말 미안해....주영아.”
그 검은 피를 주영이에 상처 부위에 떨어뜨린다. 한방울.....또 한방울.....다섯방울 정도가 상처 부위에 떨어졌다. 이제......충분하다.
“.......”
주영이를 잠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아직도 이쪽을 경계하며 섣불리 공격을 못하고 있는 이형을 바라본다.
“.....많이 기다리게 했군.”
크르르르르르.....
“진심으로 상대해주마.”
주영이를 저런 모습으로 만든 죄를 톡톡히 치르게 해주지.
“영광으로 알아. 3년 만에 사용하는 힘이라고.”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그르르르르르르......
이형이 경계를 한다. 나도 확연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달라진 공기의 흐름을 느끼고.
“조절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지만.....”
그딴 게 지금 여기서 뭔 대수야.
“각오해라. 이형.”
가슴 속 깊이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느낀다. 온 몸 전체에 길을 만든다. 최대한 길을 넓힌다.
“.....하.....”
온 몸에 힘이 구석구석 미친다. 그 힘을 증폭시킨다. 오른손에 그 힘을 집중시킨다. 집중시킨 결과 오른손에 만들어두었던 길이 겉으로 드러난다. 수많은 길들이 서로 교차가 되면서 오른손은 마치 문양을 그려놓은 듯 했다.
“....간다.”
오른손에 모여 있는 힘을 이형한테 겨눈다.
“.....너의 본질은 아까 전에 파악했다.”
남은 것은....너의 본질을 멸하는 것.
“너의 존재를......멸하겠다.”
크아아아아!!!
이형이 다가온다. 마치 자신의 위험을 깨달았다는 듯 필사적으로 다가오는 듯이 보였다. 당하기 전에 죽인다....라는 건가?
“귀여운 짓을......”
“민재씨! 비키세요!”
.....희라?! 어째서 여기에?!
“비키세요!”
희라의 말대로 한발짝 뒤로 물러섰다. 한발짝 뒤로 물러가는 순간에 엄청난 양의 무언가가 이형을 감싼다. 저것은.....물?!
쩌.....쩌저저적.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물이 얼어버린다. 얼음 속에 갖힌 이형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얼음 속에 갇혀 있을 뿐이었다.
“으라차차찻! 이제 내가 나설 차레인가?!”
.....이다원까지?!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만 얌전히 죽어달라고! 이 괴물!”
이다원의 손에 새빨간 무언가가 뿜어져 나온다. 피는 아니다. 그것은.....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이었다.
“간다아아아아!!!!”
이형이 갇혀 있는 얼음에 불꽃에 활활 타오르고 있는 자신의 손을 갖다 대었다. 순식간에 불에 휩싸인 얼음.
“지옥의 업화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마!”
순간 그의 등에서 날개가 돋은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제법 떨어져 있는데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엄청난 양의 열기. 새하얀 불꽃이 얼음을 덮친다.
“큭!”
서둘러 주영이를 안고서 몸을 돌렸다. 저 멍청한 자식! 이런데서 저런 온도를 뿜어내는 게 어딨어?! 하마터면 주영이가 불에 타 버릴 뻔 했잖아!
“민재씨! 이쪽이예요! 어서 도망가요!”
희라가 내 손을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이러지도 못하고 희라가 끄는 대로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뒤에서 이다원이 뒤따라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희라!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저 이형은 뭐지?! 저게 너희들이 말하던 그 사건인 것이야?!”
“자세한 것은 나중에 말씀드릴께요! 우선은 피하는 것이 급선무예요!”
이토록 감정이 격한 희라는 처음 본다. 그런 희라에 기색에 눌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저 희라가 이끄는 대로 달릴 수 밖에 없었다.
“.....여기라면 안심이겠네요.”
한참을 달려가다 희라가 선택한 곳은 공원이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가 아까 그 이형이 나타났을 때 신속하게 대응을 할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가 있는 곳은 나무라고는 전혀 없는 공원의 중심이었다. 이곳이라면 이형도 숨을 데가 없기 때문에 나타난다 하더라도 우리들 눈에 쉽게 띌 것이다.
“다원씨. 실험체는 어떻게 됐죠?”
“업화의 불꽃으로 녀석의 몸을 산산조각 내버렸어. 당분간 녀석이 나타나는 일은 없을거야.”
“그거 다행이네요.”
희라가 안도의 한숨을 쉰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저 이형의 정체가 도대체 뭐지?
“희라.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거야? 저 이형은 뭐지? 저 이형이 너희들이 말한 소위 그 사건인지 뭔지 하는건가?”
생각하고 있던 것을 그대로 희라에게 내뱉었다. 희라는 나의 말에 말하기가 어렵다는 듯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내 결심을 굳혔는지 굳은 얼굴로 날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당신의 말대로 저 괴물은 우리들이 맡고 있고 전에 당신한테 의뢰를 했던 당신이 말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그 괴물의 정체는 어느 생체연구기관에서 도망친 실험체입니다.”
“.....실험체?”
“얘기하자면 조금 길어지겠는데......괜찮겠어요?”
그녀는 날 바라보지 않고 주영이를 바라보았다. 피로 물들어진 주영이를 보고서 난 쓴 웃음을 지었다.
“걱정할 필요는 없어. 응급처치는 다 했으니까. 지금 병원에 가봤자 별다른 소용은 없을거야.”
“.....무슨 소리죠?”
“....내 피를 주입시켰어.”
“.....네?”
“내 피를 주입시켰다고 했어.”
잠시 동안 나의 말을 이해 못했는지 희라는 침묵을 지키다가 곧 내 말을 이해했는지 경악의 찬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당신.....”
“어쩔 도리가 없었어. 그때 당시만 해도 목숨이 끊어지기 일보직전 이었으니까. 병원에 가도 사망판정을 받았을 상태였어.”
주영이의 등을 만졌다. 아까 이형한테 긁혔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등은 매끄러웠다.
“원망 받아도 할 수 없지. 하지만 그때가 최선의 방법이었어.”
“어이, 민재. 지금 너의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나 하는 소리냐?”
다원이의 소리에는 조용한 분노가 섞여있었다. 물론 잘 알고 있지.
“죽는 걸 살펴보는 것보단 훨씬 나아.”
“넌 지금 아무 상관도 없는 일반인을 우리들의 세계로 끌어들이고 있는거야.”
“3년 전의 너희들이 했던 짓은 이것보다 더 잔인했어.”
나의 말에 할 말을 잃었는지 더 이상 다원이의 말은 들려오지 않았다. 주영이를 바라본다. 아까 심한 중상을 입은 사람이라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안정된 호흡으로 잠을 자고 있었다.
“.....이제 서서히 그 이형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을 듣고 싶은데......”
무슨 실험체라고 한 것 같은데........
“그건 도대체 뭐지? 무슨 실험체라는 거야?”
나의 말에 그녀는 다시 말을 하기를 주저했다. 보지는 않았지만 이다원도 말하기를 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뭐지? 두 사람이 이렇게 말하기를 꺼릴 정도라니.....저 이형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인가?
“어차피 전에 너희들이 말했던 그 사건인지 뭔지 하는 것이 저 이형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까 그만 이실직고 해. 저 이형 때문에 이 여자의 일상은 완전히 파괴되어 버렸어. 이 여자의 대한 보상은 너희들의 죽음으로도 모자랄거다.”
“....어이, 말이 너무 심하신 거 아니야?”
“한번 더 말하지만 니놈들이 나와 그녀한테 했던 짓을 생각하면 너희들은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게 죽여도 속이 시원치 않을 판이야. 뻔뻔하게 얼굴을 들이미는 것도 솔직히 짜증이 날 정도라고.”
“......흥, 밴댕이 소갈딱지군가 따로 없군.”
“거기다가 이번 사건만 해도 그래. 그 사건인지 뭔지를 너희들이 빨리만 처리했더라면 사태가 이 지경까지 악화되지는 않았을 거다. 거기다가 너희들은 나와의 약속을 보기 좋게 깨뜨리지 않았나? 내가 분명 3년 전에 너희들한테 이렇게 약속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숨을 한번 돌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더 이상 나를 그쪽 세계로 끌어들이지 말아달라는 약속을.”
“....그건 그렇지만.....그래도 민재씨.”
“변명은 필요없어. 나한테 변명이 소용없다는 것을 차희라, 니가 더 잘 알텐데?”
“.......알겠어요. 전부 다 얘기해 드리죠.”
그녀가 나지막한 한숨을 쉬었다.
“단, 여기서 이야기를 할 수 없어요. 일급기밀로 국가에서 정해놓은 사건이라서 자세한 사항을 들을려면 SRR로 돌아가야 해요.”
“SRR?”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데.....뭐였더라?
“Special Repression Rescue 특별 진압 구조대에 약자예요.”
아, 그러고 보니까 아까 네리무도 그런 말을 했었었지? 으음.....어쩌지? 저 이형의 관해서는 듣고 싶지만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다지 내키지 않은데......
“.....에잇.”
별 수 없지.
“좋아, 가주지. 단.”
주영이를 가르켰다.
“이 여자도 같이 가는 것을 조건으로 그 이형에 대해 듣도록 하지.”
“.....어쩔 수가 없군요.”
그녀는 다시 한숨을 내쉬며 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당신의 말대로 이번 일은 전부 저희들의 책임이니까요.....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그녀는 곧 휴대폰의 숫자판을 천천히 누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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