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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 Tales De Ragnar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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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섭게 휘몰아치는 눈발이 니플하임의 단 하나뿐인 도시 니플헬(Niflhel)의 입구,
 굘(Gjoll)의 다리를 세차게 뒤흔들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옮기던 소녀
는 짧은 비명을 지르며 난간에 팔을 감았다. 오랜 세월 동안 손질 없이 방치되어
온 난간 사이로 비죽비죽 튀어나온 날카로운 얼음송곳이 소녀의 팔에 긴 상처를
남겼다. 다리의 흔들림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었고, 그에 따라 얼음송곳들
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더더욱 세차게 소녀의 흰 살갗을 파고들었다. 영겁의 시
간 동안 내리는 눈에 뒤덮여 처음 축조되었을 때의 색깔을 찾아볼 수 없는 다리
가, 조금씩 선홍색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포기할 수 없어..."

 낮게 중얼거렸다.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했다. 소녀가 건너왔던 다리 저편에서 아
직도 '그 무언가'와 싸우고 있을 가룸을 위해서라도 소녀는 계속 걸어야 했다. 그
옛날, 이 곳에 떨어지고 나서부터 방금 전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었던, 다급
한 가룸의 목소리가 아직도 소녀의 머릿속에 울리고 있었다.

[흐베르겔니르의 샘으로 가십시오! 중간에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발걸음을 늦추어
서는 안 됩니다. 제가 바로 따라갈 테니까, 최대한 빨리!]

 장난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진지한 가룸에게 등을 떠밀리다시피 하여 그녀
의 저택, 엘류드니르(Eljuðnir)를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그때까지도 소녀는 도대
체 왜 가룸이 그리도 다급한 목소리로 소녀에게 피하라고 하는지, 무슨 일이 일어
난 것인지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니플헬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굘의 다
리 초입에 다다랐을 때, 소녀는 가룸이 그렇게 동요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체가, 흩어져 있었다.



이곳은 죽은 자들의 안식처 니플하임이고 그렇기에 시체는 소녀에게 있어 일상에
가까웠다. 그러나 지금 소녀의 붉은 눈동자에 비치는 시체들에게는 언제나 보이
던 영혼이 없었다. 한 방울의 피도 없이, 그 인생을 증거할 증표 하나도 없이 조각
난 한 사람의 파편을 보며 소녀는 공포로 몸을 떨었다.

그들은 아마도 니플헬에서 가장 처음으로 ‘높은 곳’에서 떨어진 ‘그 무언가’를 보았
을 것이고 그 압도적인 힘에 파괴되었을 것이다. 시체의 표정ㅡ마지막의 사념으
로 보건대, 그들은 자신의 몸을 분쇄하는 거대한 힘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자신이
소멸되는지도 모른 채 허무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아마 니플헬의 전사 중 가장 뛰어난 가룸이라고 해도 그것을 막아낼 수는 없을 것
이다. 가룸은 필시 소녀를 도망치게 할 시간을 벌기 위해 뒤에 남아 그것을......

소녀는 생각을 중단했다.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흐베르겔미
르의 샘까지 도망쳐서 아무 생각 없이 가룸을 기다리고, 모든 일이 끝난 후 마중나
온 가룸과 함께 다시 엘류드니르의 저택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너무도 희박함을 알면서도, 소녀는 소망에 몸을 맡기
고 아무 생각 없이 다시 한 걸음을 떼었다.

-------------------------------

"크오오!"

 흡사 짐승의 외침과도 같은 기합과 함께 파이크와 핼버드가 공중에서 격렬히 맞
부딪혔다. 핼버드를 들고 있었던 백발의 여인이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중병(重兵)
인 핼버드의 무게를 무시하기라도 한 듯이, 그녀는 이리 저리로 핼버드를 돌려 가
며 잔상을 그려 가는 파이크를 모조리 튕겨내고 있었다. 파이크를 든 근육질의 흑
발 남성, 지옥의 수문장 가룸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는 새에 신음이 흘러나왔다.

'신(神)급의 힘인가...'

 되튕겨나오는 파이크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힘으로 인해 이미 몸은 그 압도적인
힘의 차이를 느끼고 있었지만, 그는 아직까지도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니플헬
의 수문장으로서 그는 설령 그가 여기에서 죽는 한이 있어도 일개 발키리아에게
등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시르 신족의 하녀 따위가!'

 그는 다시금 파이크를 내질렀다. 강맹한 힘에 의한 충격파가 여인의 백발을 이리
저리 휘날렸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 실체가 없는 혼백마저도 꿰뚫어 버린다는 가
룸의 충격파도, 여인의 앞에서는 그저 '조금 센 바람' 정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다.

'그토록 오랜 세월 동안 수련을 쌓고, 서열을 높이기 위해서 그다지도 애를 썼건
만...그 결과가 결국 발키리아 따위에게 농락당할 정도라니...'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니플헬 최고의 전사로서의 능력, 그가 지금까지 믿고 있었
던 자신의 능력에 대한 마지막 자존심이, 한 아스 신족의 발키리아 여인의 손에 의
해 무참히 부러져 나가고 있었다.

'예언대로인가, 결국 벼랑 끝에 몰리게 되었군...'

 젊었을 적 친우에게 들었던 그의 최후에 대한 예언을 한 번 곱씹으며 그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마셨다. 직후 그의 몸에서 분출되기 시작한 이질적인 투기를 느꼈
는지, 여인은 핼버드를 든 채로 그를 응시했다.

 눈을 감기 전, 그는 서리에 가려 희미한 윤곽만이 남은 굘의 다리를 힐끔 바라보
았다. 그가 이대로 도망친다면 이곳의 지리를 전혀 알지 못하는 발키리아로부터
몸을 빼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러나 발키리아의 목표는 원래부터 소녀 하
나뿐. 니플하임의 서리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굘의 다리를 아직 건너지 못한
소녀를 찾아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소녀를 안전하게 흐베르겔미르의 샘까지 도
착하게 하려면 아직은 시간을 벌어야 했다.



그리고, 눈 앞의 발키리아를 더 붙잡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소녀와의 이별을 자기
손으로 선택해야 한다는 잔인한 선고였다.



‘흐베르겔미르의 샘에 도착해서도, 당신은 아마 절 기다리겠지요.’

 그가 소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던졌던 '바로 따라가겠다'는 말, 소녀는 그것을 철
석같이 믿을 것이 분명했다. 옛날, '높은 곳'으로부터 떨어졌을 때, 그녀를 처음 만
났던 그 때부터 그녀의 성격은 그러했었으니까.

‘정말이지 바보같은 분...그렇기에 우리에겐 가장 소중한 분이십니다. 당신은.’

 순백의, 그러나 칼날처럼 날카로운 털이 가룸의 몸을 휘감았다. 뼈가 우드득거리
는 소리와 함께 가룸의 몸은 점점 더 인간의 형태를 잃어 가고 있었다. 동시에 가
룸이 지니고 있던 지금까지의 기억들이, 산산이 부서져 눈발의 형태로 휘날리기
시작했다.

“살아남으십시오. 살아남아서 다시 엘류드니르로...”

 마지막 한 조각의 이성이 야성에 침식될 때까지, 가룸은 그 말만을 끝없이 되뇌었
다.

-------------------------------

 적색의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흩날리는 서리
에 방해받지 않는 소녀의 눈에는,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흰색의 개-가룸의
모습이 확연히 보이고 있었다. 예전, 그는 그의 '본모습'에 대하여 소녀에게 이야
기해 준 적이 있었다.

[제 본모습? 아쉽지만 그건 보여드릴 수가 없군요. 물론 누군가와 싸우는 데는 그
편이 더 나을 수 있겠지만, 당신이 살아 있는 한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소녀는 그 이유에 대해 물었고, 가룸은 근육질의 거대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수
줍은 미소를 지었다.

[제 힘의 매개는 인간으로서의 제가 가지고 있던 기억...아마 개의 형태를 취하고
다시 인간의 형태가 될 때쯤이면, 저는 당신이 하늘에서 떨어졌을 때의 기억도 당
신이 나의 군주가 되었을 때의 기억도 모두 잃어버렸을 겁니다. 그런데 저는, 당신
에 대한 것 어느 하나도 잊고 싶지 않거든요. 설령 그것이 저의 생명을 거두어 간
다 해도...]

 소녀는 가룸을 믿었다. 그녀는 가룸이 ‘생존을 위해서’ 본모습을 드러내는 일은 지
금까지도,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걸 확신했다. 오만 가지 생각이 전광의 속도로 소
녀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고 마침내 소녀는 아까부터 외면해 왔던, 자신의 두려움
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거짓말쟁이!"

 서리의 땅과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눈물이 지면을 두드린 순간, 땅을 흔드는 커다
란 포효가 니플헬을 울렸다.

-------------------------------

 니플헬의 지축을 뒤흔든 가룸의 포효는 굘의 골짜기를 뛰어넘어 니플헬이 놓여
있는 대지ㅡ니플하임 전역에 메아리쳤다. 니플헬에 있어서 상징적인 존재였던 수
문장 가룸의 피를 토하는 듯한 포효는 니플하임에 거주하는 다른 ‘생명 없는 야
수’들에게 그의 마지막을 고하는 메시지였다. 그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하늘을 바
라보았다. 강한 눈보라 때문에 니블헬이 보이진 않았지만 그들은 이제 만날 수 없
는 곳으로 가 버린 동포를 위해 고개를 숙였다.

ㅡ그 날, 죽음의 도시ㅡ니플헬의 이름이 현세의 책 속에서 그 모습을 감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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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자...어쨌든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린 댓가로 글을 올려야 하는 태상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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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상™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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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람들의 댓글을 먹고살고 있습니다. 라고 말해도 제가 댓글을 받고 싶었던 두 분 다가 알리미로 감상을 말해버렸으니...그래도 여기 댓글란을 공란으로 비워두는 게 어째 맘이 안 놓어셔 염치불구하고 댓글 달고가는 태상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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