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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입니다.)멸의 계승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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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핸드폰으로 연락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들 앞으로 헬리콥터가 도착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믿어주지 않겠지만 그래도 사실이다. 아, 권력이란 시점을 달리 본다면 편리한 것이라고도 단정 지을 수 있는 순간이로군.

“대단하군. 핸드폰으로 헬리콥터를 부르다니.”

보통은 이런거 생각하지도 못하는데.....

“그거 칭찬인가요?”
“칭찬이야.”
“그거 고마워요.”

그녀의 웃음에서 약간 사악한 웃음을 발견한다. 응? 뭐야, 저 웃음은?

“당신도 SRR에 들어온다면 이런 것쯤은 손쉽게-”
“자, 어서 타자. 시간이 없어.”

이런 시간에도 언제 이형이 나타날 지는 모르는 일이다. 어서 빨리 정보를 얻고서 이형을 해치우는 게 급선무-

“잠깐. 어째서 말을 끊으시는 건가요? 전 아직 말을 다하지 않았답니다.”
“.......무슨 말씀을. 아까 말을 다 끝내지 않았던가?”

분명 모든 이야기를 SRR이라는 곳에서 듣기로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나오시겠다는 건가요?”
“아까 전부터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만.”
“.......후후후후후후후후.......”
“그렇게 웃지마. 기분 나뻐.”

아까 저녁으로 먹은 갈비탕이 올라올 것 같단 말야.

“거기서 뭐하고 있어? 안 올라타?”

이다원이 재촉한다. 벌써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더냐.

“빨리 안타면 출발시킨다?”

그거는 곤란하지.

“자, 그런 고로 희라. 어서 타자고.”
“......어쩔 수 없군요.”

뭐야. 그 아쉽다는 표정은?

“아무 것도 아닙니다. 어서 가죠.”

아니, 그래도 얼굴에는 엄청 아쉽다는 표정이 남-

“어서 가자니까요!”
“알았어.”

그렇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다 들린다고. 난 얼른 주영이를 안고서 헬리콥터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희라도 곧 자리를 잡았다. 모두가 자리를 잡자 이다원이 조종간을 향해 외쳤다. 워낙 프로펠라가 돌아가는 소리가 커서 조종간이 가까이 있는데도 큰소리로 말해야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이! 이륙시켜!”

그의 말에 헬리콥터가 서서히 수직으로 올라간다.......이걸로 우선은 안심인가. 몸의 긴장이 저절로 풀어진다.

“휴, 오늘은 정말인지 지쳤어. 이렇게 많이 움직인 적은 근래에 없었는데 말이야.”
“그런 말을 네자로 운동부족이라고 흔히들 말하죠.”
“냅둬.”

희라의 충고 아닌 충고를 무시하며 아래를 쳐다보았다. 수많은 네온 사이로 비춰진 도시의 야경은 이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아름다운 광경이다.

“.......일단 한숨 잘게. 도착하면 깨워줘.”

기지개를 힘껏 하였다. 나의 말에 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편히 주무세요.”
“.........”

희라의 말에 나는 눈을 감고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잤을까......눈부신 빛에 깨자마자 그 생각부터 들었다. 서서히 눈을 떠보니 새하얀 천장이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었......하얀 천장? 잠깐, 나 분명 아까 전까지만 해도 헬리콥터에 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여기는 또 어디야?”

상반신을 일으키자 그제서야 내가 병원식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뭇 다른 환경에 현재 내가 어디에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으음.....그러니까.......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나온 결론은 결국 모른다였다. 으음.....이 순간만큼은 나도 내 자신이 너무나 무지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다.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니 온통 새하얀 벽 밖에 보이지 않았다.

“어울리지 않게 왠 SF 흉내?”

보통 미래에서 외계인에게 납치되면 흔히 이런 방에 갇히는 장면을 많이 보게 되는데.....아, 레지던트 이블에서도 마지막에 여주인공이 이런 새하얀 방에서 온몸에 주사기를 꽂고서 누워있었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군.

“으음......그러니까......”

머리를 굴려 과거를 회상해보지만 나의 과거는 헬리콥터에서 잠을 청한 이후로 끊어져 있었다. 즉, 그 시간 이후 나는 깨지 않고 계속 잤다는 결론이 나오는 셈이다.

“생각하자생각하자생각하자생각하자.”

하지만 아무리 이렇게 강제식 세뇌로 기억을 해본다고 해봤자 없던 기억이 새로 생겨날 리는-

키이이이잉-

.......응? 키이이이잉? 이 무슨 소리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아.”
“응?”

안경을 쓰고 연구복 차림으로 서류를 들고 서있는 여자가 한명 서 있었다. 에.......그러니까......누구?

“아.....그러니까......”

꽤나 당황하는데......으음, 갑작스런 스피디한 상황에 머리가 따라주지 않는다. 갑자기 저 여자는 왜 나온 거야? 으음......이런 상황에서 저 여자가 나온 타이밍을 고려해서 생각하건대 아마 저 여자의 역할은........

“안내원.”

이것 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음, 이 타이밍에 나올 사람이라고는 이곳이 어디이고 내가 어디에 가야할 지 길을 안내해주는 안내원 밖에 없겠지.

“......예?”

여자가 좀 얼빠진 소리를 내며 얼굴에 약간 당혹한 빛을 내었다. 응? 아닌가?

“니 역할 말이야. 아니야?”
“....무슨 소리이신지....”

저런 소리를 하는 걸 보니 아닌 것 같기도 하고......아, 갑작스런 장소 이동에 머리가 따라가지를 못하고 있어!!!! 누가 와서 이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설명 좀 해줘!!!!!

“아, 저기......김민재씨 이지요?”

....응? 김민재씨? 아, 내 이름을 불렀던 거구나. 한순간 높임을 써서 누군지 헷갈렸네.

“응. 내 이름 맞기는 한데.....누구?”
“아, 저기 저는 유예원이라고 하는데요. 여기에 연구원이예요.”

깎듯이 인사를 하며 자기 소개를 하는 연구원을 보며 나는 내 머리 속에서 떠오른 의문을 그대로 밖으로 표출했다.

“아니, 그건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은 안하고 말이야. 여기가 어디인지 말해줄 수 있겠어?”
“여기는 SRR 기지 안 이예요.”
“아, 여기가 바로 SRR 안이.....무시라?”

여기가 어디라고? SRR 기지 안? 잠깐, 내 기억이 맞다면 3년 전에는 분명히.....

“내가 알기로 이 곳에는 이렇게 새하얀 방은 없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말이야.”
“3년 전에 새로 건축했거든요. 저는 들어온 지 이제 2년이 지나서 잘 모르겠지만 다른 선배들의 말로는 3년 전의 심하게 붕괴되었기 때문에 재건축을 했다고 하더군요.”

....아, 기억 저편에서 둥실둥실 3년 전의 사건이 떠오른다. 그러고 보니 3년 전의 내가 여기를 아주 철저하게 박살내 버렸었지.

“그래, 재건축을 했다 이거지......참, 혹시 주영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있을까?”

문득 주영이가 생각났다. 주영이가 여기에 있다 하더라도 그리 큰 봉변은 당하지 않겠지만 그래도 어디 있는지 정도는 파악해야 좋을 것 같아서 그렇게 물어보았다. 나의 말에 유예원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 미안. 말을 정정할게. 또 다른 외부인은 어디 있어?”
“아, 그 여자 분 말씀하시는 건가요?”

이번에는 제대로 알아들은 모양이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안정실에서 쉬고 계십니다. 원하신다면 안내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만.....”
“아니, 됐어. 지금은 별로 만나고 싶지 않아.”

다시 그때의 주영이가 떠오른다. 부모님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울부짓는 주영이가 다시 생각난다. 지금으로서 주영이를 다시 볼 면목이 없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런 기분이 든다.

“그나저나 여기에는 왜 온거야? 용건이 있으니 왔을 거 아니야.”
“아, 이채원 지부장님께서 당신이 깨셨으면 데려오라고 하셔서요. 그래서 깼는지 확인하러 온 것입니다.”
“아, 그래?”

보나마나 내가 깨어날 시간을 예측하고서 사람을 보낸 게 틀림없을 거다. 아니, 근데 그 녀석이 여기 지부장이라고? 많이도 컸구만.

“뭐, 녀석한테는 듣고 싶은 말들이 쌓여있으니까 가볼까. 안내해줘.”
“알겠어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을 섰다. 나는 그런 그녀를 따라 문을 나섰다. 문을 나서자 역시 하얀색으로 뒤덮힌 채 천장에 간간히 달려있는 등으로 환하게 밝혀져 있는 복도를 걸었다.

“우와, 이거 무슨 제약 회사에 온 것 같은 기분이야.”

아니, 제약 회사도 이렇게까지 하얀 복도를 선호하지 않을거야.

“마음이 청결해지자는 의미에서 건물 안을 전부 하얀색으로 칠해놓은 거예요. 어때요?”
“정신병원으로 사용하면 인기 만점일 것 같아.”

순화된 말로 언덕 위의 하얀 집이라고도 하지.

“.....마음에 안 드시나 보군요.”
“옛날의 건물이 훨씬 더 마음에 들 뿐이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뭔가 굉장히 애매모호한 말씀인데요?”
“그러라고 쓴 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

그렇게 한동안 아무 말도 않은 채 그저 걷기만 하였다. 몇몇 사람들이 지나쳤는데 예원이처럼 연구복을 입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저 평상복을 입고서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었고 정장으로 쫙 빼입은 사람도 간간히 볼 수가 있었다. 그나저나, 3년 전과 비교해서 굉장히 많이 변했구나. 여기.

‘3년 전에 새로 건축했거든요. 저는 들어온 지 이제 2년이 지나서 잘 모르겠지만 다른 선배들의 말로는 3년 전의 심하게 붕괴되었기 때문에 재건축을 했다고 하더군요.’
“.........”

뭐, 그 이유의 80%가 나 때문이지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응?.......아아. ”

갑작스런 말에 그녀가 하는 말이 일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곧 그녀의 이야기가 나를 가르키고 있음을 알 수가 있었다.

“여기에서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름 정도는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인사라서요.”
“.....그 정도로 내가 난리를 심하게 피웠었나?”

여기 있는 사람들에게 파괴마라고 인식이 되어있겠군. 뭐, 그런 말을 들어도 어쩔 수가 없지만 말이야.

“뭐, 그 이야기도 들었어요. 재건축의 원인이 바로 김민재씨 라면서요?”
“어쩔 수가 없었다고. 그때 당시에는.”

정말 그때 당시에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무슨 이득이 남는다고 이런 쓸모없는 건물을 부수겠어? 뭐, 철거비라도 두둑히 준다면 아무련 후회나 미련도 없이 부숴버리겠지만.

“그런가요?”
“그런거야.”

적당히 상대해가며 그녀의 안내를 받은 지 대략 4분 정도가 지났을 것이다. 어느 문 앞의 멈춰섰다. 그녀가 멈춰서자 나도 자연히 멈춰섰다. 음....저 문인가?

“도착했어요. 여기예요.”
“응, 고마워.”

그녀에게 감사를 표하고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제 일어나셨습니까? 기다렸습니다.”

웃으며 인사를 하는 이채원과

“.........”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차희라.

“쳇, 일어났나.”

내가 일어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다원이 있었다. 방을 둘어보았다. 여전히 하얀색 벽들로 둘러싸인 방이지만 책상이며 그 앞에 탁자이며 기본적인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어서 아까 전에 내가 서 있던 방에 비하면 훨씬 더 따듯하면서도 가정적인 이미지가 물씬 풍겨났다.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이채원의 말에 그 삭막한 방을 생각한다. 방 한가운데에 병원식 침대만 있던 그 방을.

“별로. 그런 삭막한 방에서는 아무도 잘 수가 없을거야. 도대체 뭐야, 그 방은?”
“새로 재건축을 했기 때문에 방의 수를 조금 늘렸습니다. 그렇기에 안 쓰는 방들이 있는데요. 마침 당신이 재울 방이 없어서 아무도 안 쓰는 방에다가 이동식 침대를 갖다놓고 거기에 누워드렸습니다만.....뭐가 잘못됐는지?”
“......한참 잘못됐어.....”

손님을 그딴 싸구려 방에다가 둔다는 것 자체가 정말로 잘못됐어.......

“뭐, 그건 우선 잠시 다른 곳에다가 놔두고.....갑작스럽긴 하지만 본론부터 듣고 싶어.”
“본론.....인가요?”

.....응? 시선이 잠시 벽 쪽으로 향해 있는 것 같은데......기분 탓인가?

“그래, 애초에 내가 여기에 온 것은 그 이형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야.”
“애당초 이 사건은 관여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복수까지 하지 않는다고 말한 적은 없어.”
“그런가요.”

그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 웃음에는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있는 듯 했다.

“그 이형을 봐버린 이상 나 몰라라 할 수는 없잖아. 거기다가-”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간신히 억누르며 말을 이었다.

“-내 일상을 파괴한 자의 말로를 내 손으로 직접 하고 싶거든.”
“.....화나셨나요?”
“말 안해도 잘 알고 있을거라 생각하는데?”

그와 나의 눈이 부딪친다. 분노를 억누르고 있는 나의 눈과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는 그의 냉정한 눈이 부딪친다. 그렇게 부딪치자마자 그는 시선을 떨구며 나지막이 한숨을 쉬었다.

“당신의 결심은 잘 알았습니다......어떤 정보를 듣고 싶으신 거지요?”
“처음부터 끝까지.”

의자에 몸을 맡기며 그가 입을 열리기를 기다렸다. 그의 입은 곧 열렸다

“차희라씨 한테서 얼만큼 들으셨지요?”
“어느 생체 연구 기관에서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실험체라는 것까지.”
“흠, 그런가요? 그럼 설명하기가 한층 더 쉬워지겠군요.”

마침 문이 열리면서 비서로 보이는 여자가 다과와 커피를 가지고 들어왔다. 책상 앞에 그것들을 놓더니 이내 고개를 한번 숙이고서 다시 밖으로 나갔다. 나는 앞에 놓여진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미안하지만 블랙으로 다시 줄 수 있겠어?”
“여기 있습니다.”
“땡큐.”

그가 내 준 블랙을 받고서 한 모금 마셨다. 쓴 맛이 영락없는 블랙커피였다.

“여전히 블랙을 좋아하시는군요.”
“이걸 먹을 때만큼은 내가 살아있다는 느낌을 실감하게 되거든. 맛은 진짜 없지만.”

여전히 느끼는 거지만 지독할 정도로 쓰다고. 블랙은.

“샛길로 빠지는 것은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하고 서서히 본론으로 넘어가 보실까?”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었습니다.”

그가 얼굴에서 웃음을 거뒀다.

“우선 중점적으로 알고 싶으신 것이 무엇인가요?”
“그 이형의 특징.”
“예를 들면?”
“차희라와 이다원. 그리고 여러 계승자가 상대했는데도 불구하고 쓰러뜨리지 못했던 녀석의 결정적인 특징.”
“흐음......”

그는 커피를 집어 들어 한모금 마셨다.

“결정적인 특징은......고속재생.....이라고 해야 하나요.”
“고속 재생? 귀찮은 놈이군.”

그의 말을 듣자 왜 차희라와 이다원이 그렇게 애를 먹었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긴, 그들의 능력으로는 고속 재생을 상대할만한 여력은 그다지 많이 없겠지.

“무적의 갑옷을 물과 불로 깨뜨리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지.”

그것은 말 그대로 무적의 갑옷이다. 데미지를 입어도 그 데미지조차 무효화시키고 아무리 데미지를 축적시켜도 그 축적시켜 놓은 데미지조차 무효화시키는 능력을 가진 고속 재생은 말 그대로 무적의 갑옷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거기다가 육체적 능력은 이미 정부에 소속되어 있는 계승자들조차 뛰어넘고 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이군. 무적의 갑옷이라 갑옷을 뚫는 것만도 상당한 일인데 거기다가 육체적 능력까지 여기 소속되어 있는 전원의 능력을 뛰어넘다니......”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했다. 그래, 그래서 내 공격을 받고도 녀석이 태연히 공격을 했던거야. 아무리 육체를 부순다 하더라도 고속 재생 앞에서는 그런 데미지야 모기한테 물린 것보다 더 약할 테니까.

“태운다 하더라도 그건 단순히 물질의 세포를 변형시킬 뿐. 결과적으로 세포 그 자체를 없애버리는 것은 아니니 다원이도 녀석의 상대로는 되지 않겠군.”
“.....쳇.”

다원이가 혀를 차며 조용히 나의 말을 수긍했다.

“그래서 당신에게 이 일을 맡길려고 한 것입니다.”
“그렇군. 나의 힘은 고속 재생조차 무효화시킬 수 있을 테니까.”
“물질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본질 자체를 이 세상에서 무효화시키는 힘. 즉, 그 물질의 존재 자체를 무로 되돌리는 힘. 그것이 바로 당신이 가지고 있는-”
“멸의 힘.....이지.”

씁쓸하게 웃으며 남아있던 커피를 단숨에 마셨다.

“계승자 중에서도 최강의 힘을 갖고 있다고 일컬어지는 힘이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런 나의 힘에도 몇 가지 제약은 있어. 그 첫 번째가 바로 물질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면 힘을 발휘할 수가 없어.”
“동시에 당신이 가지고 있는 최대의 약점.....이죠?”
“뭐, 그런 셈이지.”

나의 힘. 즉, 몇 천년 전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이 힘을 계승하고 나의 힘은 말 그대로 물질의 본질을 파악하고 그 본질을 이 세상에서 무효화, 즉 그 존재 자체를 무로 되돌리는 힘이다. 무조건 물질의 본질을 파악해야지만 그 본질 자체를 이 세상에서 무효화 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내가 가지고 있는 제약 중에서 가장 최대의 제약이자 동시의 약점으로 남는 제약이다. 즉, 물질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면 나는 그저 보통 범인들보다 신체능력이 좋은 사람일 뿐이다.

“거기다가 또 다른 약점은 이 힘은 초근접전에서 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것이야. 즉, 나의 오른손이 녀석의 신체에 닿지 않는 한은 절대로 녀석에게 멸의 힘을 먹일 수가 없어.”

이것이 바로 나의 두 번째 제약이다. 오직 이 힘은 오른손에 닿아야지만 그 역할을 실행할 수가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바로 구현화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불이라 물은 그 자체에 형태가 있기 때문에 그 형태만 유지한다면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겠지만 애당초 나의 힘은 멸이라고 하는 형태 그 자체가 없는 힘이다. 때문에 이 힘은 자신의 힘이 미치는 범위, 즉 오른손이라는 공간 속에서 밖에 그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당신의 비정상적인 신체능력의 원인이 되지요.”

희라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나의 힘은 초근접전에서 밖에 그 효력이 미치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통 계승자들에 비하면 몇 배나 뛰어넘는 신체능력을 가지고 있지. 뭐, 굳이 오른손을 쓰지 않더라도 멸의 힘을 원거리로 쏠 수 있는 방법이 있기는 하지만 그건 너무나 무식한 방법이야. 만약에 멸의 힘을 원거리로 쏠려고 한다면 나를 중심으로 반경 3Km는 완전히 초토화가 나고 말거야.”

오른손이 하얗게 될 정도로 세게 쥐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분노로 미쳐버릴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녀석의 본질은 이미 파악했어. 나머지는 녀석의 몸에다가 이 오른손을 갖다대기만 하면 되는 거지.”
“.....언제 왼손을 쓰신거죠?”
“녀석의 머리를 잡고서 무릎으로 한방 날려버릴 때.”

나의 힘은 다시 말하지만 물질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면 쓸 수 없는 힘이다. 그렇기에 나는 물질을 파괴하는 힘과 동시에 물질의 본질을 파악하는 힘도 갖고 있는 것이다. 그 힘을 담당하는 것이 바로 이 왼손이다. 왼손으로 물질의 본질을 파악하고 오른손으로 물질의 본질을 이 세상에서 무효화 시킨다. 이것이 바로 내가 계승한 힘의 정체인 것이다. 이 왼손은 내가 힘을 발휘하든지 말든지 무조건 상관없이 스치기만 하더라도 그 물질의 본질을 파악할 수가 있는 것이다. 아까 전에 그 이형의 머리를 두 손으로 잡았으니 이미 그 이형의 본질은 파악하고 있다. 때문에 이제 남은 일은 힘을 사용해서 녀석의 몸에다가 이 오른손을 박는 일만 남은 것이다.

“흐음......요점은 잘 알았어. 고속재생을 쓰는 이형이란 말이지.....거기다가 신체능력까지 차희라와 이다원을 넘어설 정도라면.....아아, 귀찮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들 나를 쳐다본다.

“어디를 가시는 건지요?”
“하숙집에.”
“거기는 왜?”
“그걸 몰라서 물어?”

나는 녀석을 흘겨보며 몸을 돌려 문 쪽으로 나아갔다.

“내 무기 가지러 가는 거잖아.”
“......경찰한테는 연락을 해둘테니 천천히 찾아도 상관없습니다.”

헷, 역시 눈치 하나만은 수준급이라니까.

“너의 그 눈치만은 정말인지 마음에 든다니까.”
“나중에 핸드폰으로 연락을 해드릴 테니 이후에 사정은 핸드폰으로 아시기 바랍니다.”
“오케이. 고마워. 아, 그리고 주영이는 왠만하면 하숙집에 들여놓게 하지 못하게 해줘.”
“주영이? 아, 그 여자 분을 말씀하시고 계시는 겁니까. 알겠습니다만.....왜죠?”
한순간 내가 보았던 피의 향연이 생각난다. 그리고 그 향연의 중심에 서있던 이형이-

....으드득.

....아차, 그만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간 모양이군. 진정하자. 진정해.

“그런 지옥을 보는 것은 나 하나로도 충분하기 때문이야.”
“.....그런가요.”
“그리고 내 하나 밖에 없는 친구를.....이 세계로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어. 그 점 잘 기억해.”

주영이는 이 속세로 와서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내 절친한 친구이다. 그 친구를 이쪽 세계로 끌어들이는 짓은 그 누구보다 내가 용서할 수가 없다. 설령 그 끌어들이는 사람이 나라면 나는 내 자신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친구.....인가요?”
“유일하게 마음까지 터놓을 수 있는.....그녀 외에 내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지.”
“......알겠습니다. 그 사람을 그곳으로 데려다주지 않겠다라고 약속하죠.”
“주영이를.....부탁한다.”

아무 주저함도 없이 문밖으로 나섰다. 문을 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까 그 다과를 갖다주었던 비서가 보였다.

“새로 재건축을 했기 때문에 길을 해맬 것입니다. 안내원이라도 붙이셔야지만 밖으로 나갈 수가 있을 거예요.”

.....여전히 경이로울 정도의 눈치. 저것만은 정말인지 존경한다.

“그 분을 밖으로 나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세요.”

이채원의 말에 비서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쪽입니다. 따라오세요.”

그녀의 안내를 받으며 나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이건 여담이지만 밖으로 나오자마자 벤츠 한 대가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을 때 나는 그의 눈치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벤츠를 타고서 하숙집에 도착했다. 예상은 했지만 경찰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테이프로 집 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나는 당당히 그것을 무시하며 문을 열고서 안으로 들어갔다. 이채원이 손을 써둔 덕분인지 경찰이라고 여겨지는 사람들은 없었다.

“......아직 치우지 않았군.”

거실로 들어서자 여전히 지워지지 않은 피들이 거실 전체를 장식하고 있었다. 시체는 어떻게든 처리한 모양이지만 아무래도 피까지는 어떻게 되지 않았던 모양이다.

“......자, 보면 그저 열만 받을 뿐이니까. 방으로 돌아가자. 방으로.”

일단 피들을 무시하며 이층으로 올라갔다. 계단으로 올라가 내 방으로 들어섰다. 아직 경찰이 내 방까지는 검사하지 않았는지 내 방은 내가 유원지에 나간 후에 모습 그대로였다. 좋아, 아직 경찰이 검사하지 않았다면 무기는 아직 그쪽에 있겠지.

“내 기억으로는 분명히.....여기다가 처박아둔 걸로 기억하는데.....”

옷장을 뒤졌다. 옷장을 뒤지자 곧 손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만져졌다. 옳거니, 찾았다.

“이제 꺼내보실까?”

다른 한손도 집어넣어 만져지는 어떤 것을 꺼내었다. 그것은 단단한 흑단나무로 만들어진 직사각형 모양의 커다란 상자였다. 으음, 3년 전에 구입하고서 지금까지 단 한번도 관리를 안한 채 놔두고 있었지만 비싼 값은 하는군. 3년 전에 샀는데도 불구하고 전혀 썩은 부분이 없이 마치 새 것 같아.

“......다시는 이것을 꺼내지 않을 줄 알았는데.”

뚜껑 부분을 잡고서 조심스럽게 열었다. 나무 냄새가 퍼진다. 그리고 그 안에서 보이는 것은 검은색의 커다란 권총이었다. 모양은 데저트 이글과 비슷했지만 세세한 부분에서 데저트 이글과 확연히 틀렸다. 예전에 알고 있던 건 스미스(총만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장인)한테 특별 주문으로 제작한 권총이다. 데저트 이글을 모델로 만들어진 총이니 만큼 외형이 데저트 이글과 닮아있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역시 인생의 앞날은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른다니까.”

권총을 들었다. 묵직한 느낌이 제법 기분 좋게 느껴졌다. 하지만 조심하게 다루어야 하는 총이다. 조준이라든지 경량화라든지 그런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파괴만을 추구한 총이기에 총신의 길이가 데저트 이글보다 1.5배나 더 길면서 무게도 30Kg이라 무거움을 자랑한다. 덕분에 파괴력은 전차포를 능가하는 정도여서 그다지 큰 불만은 없지만 말이다. 사용하는 탄환은 단 한가지 타입 밖에 없다. 워낙 괴물같은 파괴력이 나오도록 설계하였기에 탄환도 그에 맞춰서 제작될 수 밖에 없었는데 그 탄환의 이름이 바로 작렬탄이라고 하는 것이다. 관통력과 파괴력을 동시에 갖추도록 설계되어진 탄환이여서 일단 한번 쏘면 그 조준한 물체의 안까지 파고 들어간 다음 탄환 자체가 내부 안에서 폭발하는 탄환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파괴력만을 추구한 총이기 때문에 이 총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자는 나를 포함해서 이 세계에 그다지 많이 없다. 아니, 이 총은 특별 주문이라서 이 세계에서 이와 똑같은 총은 없으니 쓸 수 있는 사람은 나 밖에 없을지도.....

“뭐, 그게 그거지.”

옷장에서 옷을 찾아서 입었다. 청바지에다가 티셔츠를 입고서 그 위에다가 검은색의 단촐한 외투를 껴입고서 뒷 춤에다가 총신을 억지로 끼워 넣었다. 윽, 좁아.

“뭐, 이 정도면 사람들 앞에서도 쉽게 눈에 띄지 않겠지.”

핸드폰을 외투 안주머니에 넣었다. 탄창은 현재 없는 관계로 이채원한테 연락이 온다면 제작해 달라고 할 생각이다. 그 녀석의 권력이라면 순식간에 작렬탄 정도야 한시간 만에 원하는 만들 수가 있을 것이다.

“자, 그럼 여기서의 할 일도 끝났으니.....”

이제 나가보실까? 방을 나와 일층으로 내려가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거실을 지날 때 나는 피 냄새로 잠시 이성을 잃을 뻔 했지만 간신히 참고서 밖으로 나왔다. 상쾌한 바람이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자, 이제부터는 뭐하면서-

“어디 가는거야?”
“전화 기다리는 동안 어디서 시간 좀 때울까......응?”

잠깐. 여기에서는 절대로 들릴 리가 없는 목소리일-

“뭐야? 뭐가 그렇게 놀란거야?”
“......주영아?”

주영이가 서있었다. 환자복에다가 파란색 가운을 걸치고 있는 모습에 약간 헷갈리기도 했지만 얼굴은 영락없는 주영이였다.

“너, 여기는 어떻게-”
“집 주인이 자기 집에 가겠다는 데 누가 뭐라고 그래?”
“......이채원, 그 녀석이 데려다준 건가......”

그것 말고는 도저히 생각할만한 상황이 없다. 이 자식, 아까 전에 나하고 약속을 했으면서 그 약속을 바로 이렇게 보기 좋게 깨뜨려버려?

“그 자식. 이따 만날 때 몇 대 제대로 패야겠군.”
“아니야. 이건 내가 가고 싶다고 그 사람한테 말해서 온 거 뿐이야. 그 사람은 필사적으로 말렸다고.”
“말 안 해도 다 알아. 필사적이라고 해봤자 그 자식 성격에 한두번 말려본 거겠지.”
“다 알고 있네?”
“단 일주일만 녀석하고 사귄다면 대부분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을 거야.”

절로 한숨이 나온다. 답답함에 머리를 긇는다. 그나저나, 주영이가 아까 뭐라고 말하더라? 집에 들어간다? 그것만은 들어줄 수가 없다.

“미안하지만 아무리 니가 집 주인이라 하더라도 못 들어가.”
“굳이 들어가겠다면?”
“강제로라도 들어가지 못하게 할 거야.”

그녀가 나의 눈을 똑바로 쳐다본다. 나도 그녀의 눈을 똑바로 바라본다. 곧 그녀는 나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는 것을 나는 볼 수 있었다.

“사실.....이었구나......”
“.....그래.”
“거짓말이길 바랬어........여기에 왔을 때도  정말인지.....정말인지 거짓말이길 바랬는데......”
“.........”

뭐라고 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지금 그녀한테 위로를 해봤자 소용이 없을 것이다. 지금 그녀한테 가장 필요한 것은 현실을 스스로 깨닫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째서......어째서......”

그렇게 울음을 참고 있던 그녀는 곧-

“어째서어어어어어!!!!!!!!!”

그 마음 속에 쌓여있던 모든 울분을 여기서 다 쏟아냈다.

“어째서어어어어어어!!!!!!!!!!”
“........제기랄.”

하늘을 바라본다. 너무나도 푸른 하늘이었다.

“진짜 배경 한번 분위기를 따라가 주지 못하는군.”

비가 시원하게 내렸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야.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난 이 날 두 번째로 운명이라는 이름의 작자를 진심으로 저주하고 또 저주했다.



“.......이제 진정이 되었어?”

나의 말에 주영이는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아침이고 하니까 간단하게 편의점 음식이라도 먹으면서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릴까?”
“.....마음대로 해.”

어이어이.

“언제까지 풀이 죽어있을 거야? 그런다고 현실이 꿈이 되지 않아.”
“알고는 있지만.....그래도.......”
“........”

아직까지도 풀이 죽어있는 모습을 보자니 돌연 짜증이 솟구쳤지만 그래도 주영이의 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므로 그저 가만히 아침해가 떠있는 푸른 해를 바라보았다. 벌써 1시간 째 하숙집에서 벗어나고 있지를 못하고 있잖아.....

“.......있잖아. 지금부터 내 혼잣말이니까 굳이 대답하지 않아도 돼.”

뭐랄까. 그냥 입에서 나오는 소리이다. 생각하지도 않고 그저 입에서 나오는 소리이다. 하지만 나는 별 상관을 하지 않는다.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든 나하고는 지금부터 일절 상관없는 말이다.

“......”
“사람은 말이야. 내가 생각할 때는 그날 하루치 식량과 자신이 재미있어하는 장소만 있다면 언제든지 즐겁게 살아갈 수가 있다고 믿고 있어.”
“........”
“그리고 말이야. 내가 가장 사람답게 산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때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오직 자신의 신념을 향해서 앞만 보고 걸어갈 때야.”
“........”
“그리고 내가 가장 떳떳하다고 말할 수 있을 때는 어떠한 장애물이 있더라도 그 장애물을 뛰어넘고 뛰어넘어서 언젠가 도착할 자신의 꿈을 이룩할 때라고 생각해.”
“........”
“나는 말이야. 만약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하더라도 당당하게 가슴을 피고서 앞날을 위해서 열심히 살아갈 거야.”
“........”
“그리고 내가 나중에 죽고서 부모를 만난다면 이렇게 말할 거야.”
“........”
“나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 전부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 즐겁게 살았으며 더 사람답게 살았고 더 떳떳하게 살다가 당신들을 만난 거라고.”
“........”

조용히 주영이를 바라본다. 주영이도 나를 바라본다. 나는 주영이를 향해 힘껏 웃어주며 말했다.

“그래야 나를 낳아준 부모한테 조금이라도 효도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
“......뭐라는 거야. 아까부터 횡설수설이잖아.”

주영이가 웃는다. 환하게 정말인지 환하게 나한테 보여주는 미소를 지었다.

“쓸데없는 소리는 그만하고 서서히 밥이나 먹으러 갈까? 돈은 니가 쏘는거지?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옷을 바꿔 입어서 지갑이 없어.”
“.......어련하시겠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영이도 같이 일어났다.

“날씨도 화창하고 하니 시원한 콩나물 국밥으로 하루를 시원하게 시작하는 게 어때?”
“맛있는 집 알고 있어?”
“조금 멀기는 하지만. 차가 있으니까 그거 타고 가는 게 어때?”
“차?”
“타고 왔잖아. 그곳에서. 안 보이지만 그래도 예상 정도는 하고 있어. 누가 미쳤다고 환자복을 입힌 사람을 그대로 가게 놔두냐? 니가 환자복을 입고서 여기에 온 것도 니가 고집에 고집을 피워서 옷을 갈아입을 새도 없이 여기로 와서 그런 거잖아. 내가 알고 있는 한 이채원은 남의 물건을 주웠으면 어떤 한이 있더라도 주인을 찾아내서 돌려주고야 마는 그런 성격을 가진 남자거든. 아마 너한테 최소한 옷이라도 입고 가라고 말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다 알고 있네?”
“말했잖아. 인생 경험은 너보다 풍부하다고. 그런 상황 판단 쯤은 식은 국물을 마시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야.”
“네. 네. 잘 알았습니다.”

주영이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희미하긴 하지만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린다. 역시, 있었군.

“......그럼 네비게이션은 나한테 맡겨주시고 일단 콩나물 국밥부터 먹은 다음에 시원하게 시작하자고.”

하늘은 여전히 쾌청했지만 나의 마음은 아까 전과 달리 저 푸른 하늘처럼 맑게 개어있었다. 그것은 주영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즐겁고 사람답게 그리고-”
“떳떳하게 살기 위해서?”
“.....그런 셈이지.”

나는 이제 막 새로운 세상을 디딜려고 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한껏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러는 사이 차에 도착했다. 내가 타고 온 차와 똑같은 검은색 벤츠였다.

“그 곳에는 벤츠 밖에 없나보지?”
“설마......”

주영이가 깔깔 웃으며 뒷문을 연다. 좋아, 이제 나의 네비게이션 능력을 발동시켜서 내가 자주 다니는 콩나물 국밥 집으로 한번 가보실-

“......주영아.”
“.....듣고 있어.”

눈앞의 상황에 나는 황당함을 느꼈다. 그것은 필시 주영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뒷자석에서 나와 주영이가 본 것은-

“-꽤나 깔끔하게 다림질까지 해서 잘 개어놓은 주영이의 옷이었다.”
“.......왜 상황 설명을 하는 거야?”
“나도 모르게 나오고 말았어.”

정말로 뒷 자석에는 깔끔하게 개어놓은 주영이의 옷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으흠......이채원. 니놈의 눈치에 정말인지 무서움이 드는구나.

“우선은 갈아입는 게 어떨까?”
“.......응.”

우와, 얼굴이 새빨개졌어. 진짜로 새빨개졌어.

“그럼 나는 갈아입는 동안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응.”

새빨개진 얼굴로 주영이가 차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자 나는 벤츠에 등을 기대서 하늘을 바라보며 주영이가 옷을 다 갈아입기를 기다렸다.

“.......”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한참 시간이 지나자 뒤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등을 돌려서 보니 주영이가 여전히 새빨개진 채로 조그맣게 문을 두드렸다. 나는 문을 열고서 주영이 옆에 앉았다. 문득 앞을 보니 가운과 환자복이 놓여져 있었다.

“.........”
“.........”

어색한 침묵이 흐른다. 으음, 이런 어색함은 질색인데.......대화를 하고 싶은데 대화의 틈이 보이지 않아.

“.........하늘이 참으로 맑다.”
“.........응.”

아, 갑자기 사이도 어색해진다. 공기가 불편해진다.

“........그럼 갈까?”
“......응.”

조금은 어색한 침묵이 흐른 채로 자동차는 천천히 속력을 내어 내 안내로 콩나물 국밥집으로 향해 갔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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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더경님의 댓글

베이더경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잘 쓰시네요. 인칭에 알맞게 묘사도 잘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시길. [추천?] 누르고 갑니다 [퍼퍽]

이왕에 저한테도 답변을...

그런데 여러번 보았는데도 불구하고 솔직히 내용은 조금 햇갈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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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님의 댓글

『☞추억™』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홋역신 이글의팬은 저입니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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