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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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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part 2.-

제6화 - 부상! 경이의 생물전함 -




"후우~"

사요코는 자신이 살고 있는 오피스텔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하루 일과를 끝낸 이후 집으로 돌아오는 사요코의 어깨는 왠지 무거워 보였다. 빨리 들어가서 얼른 씻고 침대에 눕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일이 힘들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네코미 공대를 졸업한 이후 사요코는 그룹 산하의 OO전자의 디자인실에 입사하였다. 사요코는 사실 취업같은건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룹의 회장인 그녀의 아버지가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학교 다닐 때야 학생이니까 하고 싶은 데로 하게 두긴 했지만 이제 졸업을 한 지금은 사회인이 된 만큼 착실히 일을 해야 한다며 그녀를 억지로 회사에 입사시켰다. 그래서 지금 그녀는 평사원으로서 근무하고 있었다. 물론 신분을 속이지는 않았기 때문에 다들 그녀의 부모가 누군지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비록 평사원이라 할지라도 직장 내에서 그녀를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네코미 공대에서 산업 디자인을 전공했고 미술 동아리에서 주도적인 활약을 하기까지 했던 그녀에게 디자인실 근무는 딱 적성에 맞는 일이라 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룹 총수의 외동딸이라는 후광과 재학시절 뭇 남성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미모 -비록 네코미 공대 퀸 자리는 베르단디에게 뺏기고 말았지만-, 그러면서도 상당히 지적인 면모까지 더해지면서 학교에서와 마찬가지로 사요코는 회사에서 남성 사원들 사이에서 인기 폭발이었다. 다시 한 번 '여왕의 전설'이 부활한 셈이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사요코는 별로 기쁘지 않았다. 결국 '그녀'를 넘어서지는 못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바로 '그녀' 때문에 입장이 난처해지기까지 했으니 조금도 기쁘지가 않았다.

엘리베이터는 이윽고 사요코가 사는 층수에 멈춰 섰다. 그녀는 다른 입주자들처럼 한 방만 쓰는 게 아니었다. 아예 해당층 전체를 다 쓰고 있었다. 혼자 살기에는 지나치게 넓은, 그야말로 궁궐과도 같은 평수였지만 어차피 청소는 고용원이 정기적으로 하고 있으니 유지가 어려울 것도 없다. 사요코는 한숨을 내쉬면서 문을 열었다.

"어서 오세요."

그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요코는 혼자 살고 있다. 누가 퇴근 후의 그녀를 맞아 줄 리가 없다. 깜짝 놀란 그녀는 고개를 번쩍 들어 소리가 난 쪽을 보았다. 놀랍게도 그 쪽에는 베르단디가 서 있었다. 깜짝 놀란 사요코는 비명을 질렀다.

"꺄악! 너...너 도대체 네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저...만나고 싶다고 하셔서 찾아왔어요. 놀라셨다면 죄송해요."

베르단디는 고개를 숙여 사요코에게 사과하였다. 이 오피스텔 전체는 경비업체와 계약을 맺고 각종 침입 방지 시스템이 깔려 있는데다 사요코의 방은 한층 더 특별하게 관리되고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층수도 상당히 높고 창문은 아예 열수도 깰 수도 없는 특수 강화유리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무도 베르단디의 무단침입(?)을 막지 못한 것이다. 사실 베르단디는 거울을 통해서 순간이동을 해 왔기 때문에 인간의 능력으로는 막을 수도 없었지만 사요코는 그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물어볼 생각도 안 들었다. 그저 무슨 요술이라도 부린 걸로 생각하는 게 속편할 듯싶었다.

잠시 마음을 진정시킨 사요코는 본격적으로 용건을 꺼냈다.

"뭐, 좋아. 네가 여길 어떻게 들어왔는지는 묻지 않겠어.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니까. 내가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보자고 한 거야."

"네, 말씀하세요."

"왜 내가 널 도와야 하는 거지?"

"네? 무슨...말씀이신지...."

"크로노스에 쫓기고 있는 범죄자 신분인 너를 왜 내가 도와야 하는 거냐고."

사요코는 팔짱을 낀 채 베르단디를 노려보고 있었다. 사요코에게 있어서 베르단디들을 돕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었다. 동북아 지부 총독인 푸르크슈탈 본인이 직접 베르단디들의 사진을 가리키며 범죄자로 규정까지 할 정도면 그야말로 '최고 악질'이라 할 수 있었다. 이런 사람들을 어떤 형태가 됐던 도와주게 되면 그 사람 역시 처벌을 받게 된다. 그것도 아주 무거운 중벌을. 게다가 만약 사요코가 그런 일로 잡혀 들어가게 되면 부모님은 물론 그룹 전체까지 심대한 타격을 입게 된다.

예전의 라이벌이라 할 수 있는, 자기보다 훨씬 인기가 많았던 '얄미운 여자'가 자기 앞에 나타나서 제발 도와달라고 사정할 때만 해도 솔직히 승리감을 느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기도 했다. 크로노스에게 왜 쫓기게 됐는지는 비밀로 했던 게 좀 마음에 걸리기는 했었지만 뭐 놈들에게 들키지만 않으면 되는 거 아닌가 싶어서 은신처도 구해주고 그 동안의 생활비도 지원해주고 그랬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의 푸르크슈탈의 특별 기자회견을 보고서야 사요코는 자기가 아주 큰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난 이제 더 이상 너희들을 도와줄 수가 없어. 크로노스가 지목한 1급 범죄자들인 너희들을 말이야. 게다가 범죄내용도 아주 기상천외 하던데? 우주에서 온 에일리언들을 돕는다고? 세상에..."

"그건 아니에요!"

그 때 베르단디가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리고 간절하게 사요코에게 진실을 말하기 시작했다.

"가이버는 우주에서 온 에일리언 같은 게 아니에요. 인간, 사요코 씨와 같은 인간이에요."

"그런 요상한 겉모습에다 하늘도 날아다니고 광선도 맘대로 쏴대는게 인간이야?"

"가이버는 몸 겉에다가 입는 갑옷의 일종이에요. 그리고 가이버 I 은 바로 케이 씨고요."

순간 사요코는 자기 귀를 의심하였다. 케이? 설마 그 어벙한 모리사토 케이? 그 녀석이 그런 요상한 갑옷을 입고 클라우드 게이트를 공격했다고? 평생 오토바이 밖에 모르던 녀석이 테러리스트?

"풋...! 아하하하!!"

갑자기 사요코가 온 집안이 떠나갈 듯이 웃어젖혔다. 베르단디는 그런 그녀의 반응을 이해하지 못해 그저 불안한 눈으로 사요코를 보고만 있었다. 한동안 웃던 사요코는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뭐, 아주 재밌는 농담이었어. 너도 이런 개그 할 줄 아네?"

"정말이에요. 믿어주세요. 가이버는 정말로 케이씨라고요."

"그만! 누가 그런 허무맹랑한 말을 믿을 것 같아!"

갑자기 사요코가 큰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웃음을 거둔 채 무섭게 베르단디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당황해하는 베르단디를 보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내가 당장이라도 통제국에 전화하면 너는 끝장이야. 알아?"

물론 사요코는 당장 전화할 생각은 없었다. 만약 그랬다가는 사요코 본인도 의심을 받기 때문이다. 이 건물의 방범 시스템은 베르단디의 출입을 막기는커녕 감지조차 못했고 그런 상황에서는 상식적으로 판단해 봤을 때 사요코가 들여보내준 것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잡혀간 베르단디가 만에 하나 사요코가 지원했음을 폭로하게 되면 그것도 큰일이었다. -물론 베르단디는 그럴 위인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단지 반응을 떠 보는 수준이었다.

"사요코씨. 믿어 주세요. 지금의 크로노스에게 속으시면 안돼요. 그들은 말로는 인류를 위한다고 하지만 그들의 속마음은 달라요. 이대로 가다간 정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되요."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지? 세상은 옛날보다 더 살기 좋아졌어."

사요코의 말은 대다수 일반 시민들의 생각과 일치했다. 제압 이후 크로노스의 폭정은 없었다. 조아노이드로의 강제 조제도 없었다. 사회는 빠르게 안정됐고 경기는 제압 이전보다 더 호황이었다. 범죄율은 저하되었고 의료 서비스를 비롯한 전반적인 삶의 질도 향상되었다. 국제적으로는 내전이나 분쟁 등이 깨끗이 종결되었으며 나라간의 분쟁 같은 것도 없어졌다. 지구 환경 복원사업도 순조롭게 진행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크로노스의 음모 같은 거 얘기해 봐야 누가 믿어줄까?

"조아노이드가 되면 12신장의 사념파에 완전히 지배당하게 되요. 모든 자유를 뺏기게 되는 거에요. 이런 식으로 가면 언젠가는 모든 인간이 그들의 노예가 되고 말아요."

"상관없잖아? 그렇게 해서 이전보다 더 살기 좋아지면 그걸로 된 거야."

사요코의 말에 베르단디는 큰 충격을 받았다. 사요코마저 크로노스에 대한 인식이 저렇게 바뀌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사실 사요코는 베르단디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사념파가 뭔지도 모르고 또 그게 어떻게 조아노이드를 부리는 지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말 해봐야 그저 일반적인 주인과 하인의 개념 수준으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것이 한 개인의 자유와 의지를 완전히 앗아가 버린다는 것임에도.

"그건 아니에요! 그것은..."

"그만! 더 듣고 싶지 않아! 당장 여기서 나가!"

사요코는 베르단디의 말을 끊고는 화가 난 표정으로 문을 가리켰다. 베르단디는 더 이상 사요코를 설득할 수 없음을 알고는 어깨를 힘없이 늘어뜨린 채 문 쪽으로 걸어갔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 전 베르단디는 문가에 서서 한마디 하였다.

"사요코씨. 제 말을 안 믿어 주셔도 좋아요. 다만, 이거 한 가지는 생각해 주세요."

"....."

"힘으로 남을 누른 자들이 어떻게 평화를 논할 수 있으며 어떻게 밝은 미래를 얘기할 수 있을까요. 부디 사요코씨만큼은 진실을 봐 주셨으면 해요."

베르단디는 마지막으로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는 문을 닫고 나갔다. 사요코는 한동안 베르단디가 나간 문을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그녀의 귓가에 계속해서 베르단디의 마지막 말이 맴돌았다.

'진실....진실이라고? 진실이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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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달째군. 쳇!"

베루더는 망원경으로 저 멀리 있는 크로노스의 사해 연구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족인 그에게는 망원경은 불필요하지만 주위에 있는 다른 레지스탕스 대원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는 이렇게 인간 시늉을 해야 했다. 다른 대원들도 모두 망원경이나 망원 렌즈를 장착한 카메라 등으로 사해 연구소를 관측하고 있었다.

케이의 번데기를 탈취하러 왔다가 아키토가 번데기와 함께 실종된 지도 벌써 한 달이 흘렀다. 그 동안 아키토를 따라왔던 베루더를 포함한 레지스탕스 멤버들은 사해 연구소 관찰 임무가 주어졌다. 미국의 레지스탕스 본부에서 하달된 명령이었는데 명령권자는 놀랍게도 아키토였다고 한다. 본부의 말로는 그는 공간이동 후 일본에 도착하였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모두는 크게 놀랐다. 도대체 어떻게 사해에서 지구 반대편인 일본까지 날아갈 수 있었던 것일까.

하여튼 명령이 떨어졌으니 이들은 한 달 동안 연구소 주변에 은신해 있으면서 연구소 주위를 살펴보고 있었다. 아키토로서는 그 곳이 도대체 뭐하는 곳인지 미심쩍었던 것이다. 하지만 멀리서 지켜보는 것 이상은 할 수가 없었으니 그 동안 이들로서도 더 이상 알아낸 것은 없었다. 아직까지는 별 일이 없었다.

그러나 베루더는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지금 저 멀리 연구소엔 아주 강력한 기를 가진 자들이 무려 열 명이나 모여 있었다. 이 정도 기라면 틀림없이 조아로드다. 그것도 열 명이나 모였다면 12신장들이다. 저기서 무슨 회의라도 열리는 것 같았다. 할 수만 있으면 그곳으로 날아가서 대화 내용을 엿듣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위험한 일이라서 베루더는 애써 자제하였다.

"확실히....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건 사실인데.... 문제는 저 놈들이 지금 뭐하고 있느냐 하는 거다."

망원경으로 연구소를 관측하던 베루더는 영 맘에 안 든다는 듯 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지금 12신장들은 연구소 상층부에 자리 잡은 헬리포트에 모여 있었다. 뭐라 말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 그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뭔가 열심히 얘기하고 있었다. 현재 모여 있는 인원은 모두 열 명. 다른 두 명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쩌면 지금 저들은 그 두 명을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다른 레지스탕스 멤버들도 잔뜩 긴장한 채로 망원경으로 관측하거나 사진을 찍고 있었다.

"음! 이 기는!"

그 때 베루더는 아주 강력한 기 두개가 연구소 쪽으로 빠르게 날아가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 중에 하나는 그 잠재 파워만으로도 다른 신장멤버들을 압도할 정도의 강력한 기였다. 틀림없이 크로노스의 총수, 알칸펠이다.

"드디어 오셨군. 최종보스께서 말이야."

베루더는 마른침을 삼키며 헬리포트를 주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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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칸펠과 이마카람 밀리비너스, 그러니까 무라카미는 사해 연구소에 다른 멤버들보다 늦게 도착하였다. 다른 신장멤버들은 일제히 그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알칸펠에게 경의를 표했다. 알칸펠이 발카스에게 말했다.

"헤밀컬. 준비는 다 됐나?"

"예. 70% 정도 완성된 상태입니다. 시운전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좋아. 그럼 어디 한 번 해 볼까?"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모두 그 자리에서 일제히 일어섰다. 알칸펠은 사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까지 걸어가 섰다. 그리고 알칸펠을 선두로 해서 모두들 뒤쪽에 2열로 나란히 도열하였다. 이제 모든 준비는 다 끝났다.

"쿨메그닉."

"예!"

-키이잉!

알칸펠이 신장 멤버중 한 명을 먼저 호명하자 얼굴에 아프리카 원주민 같은 문양을 새기고 다부진 체격의 흑인이 곧바로 대답하였다. 그의 이마에 자리 잡은 조아 크리스털이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카브라알."

"예."

다음을 호명하자 일행 중에서 가장 체구가 작은 노인의 이마에서 조아 크리스털이 빛나기 시작했다. 알칸펠은 차례대로 각 신장 멤버들을 호명하기 시작했다. 자빌, 리엔쯔이, 와펠다노스, 푸르크슈탈, 신, 가레노스, 발카스, 칼레온, 이마카람. 호명 받은 자들의 이마에서 조아 크리스털이 강렬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우르르르르릉!!

그러자 연구소를 비롯해서 사해 일대가 갑자기 지진이 난 것처럼 격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해 바다 역시 파도가 격렬하게 치기 시작했다. 이 갑작스러운 지진에 근처에서 관측을 하고 있던 베루더들은 물론이고 사해 근처에 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당황해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 알칸펠."

마지막으로 알칸펠의 조아 크리스털이 찬란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지진이 한층 더 격렬해졌고 사해 바다는 더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알칸펠이 사해를 내려다보며 큰 소리로 외쳤다.

"자! 깨어나라. 거대한 생명아!"

-쿠오오오오!!!

그 직후 사해 호수면이 크게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물속에 있던 '그것'이 드디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지면은 이제 둘로 갈라질 기세로 흔들리고 있었고 온 천지에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 알칸펠은 한 손을 높이 들어 올려 큰 소리로 외쳤다.

"우리들의 '방주'여!"

-투오오오오!!!

드디어 사해 바다 속에 있던 거대한 물체가 떠올랐다. 그것이 떠오르면서 사해 바닷물 전부가 다 밖으로 쏟아질 기세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 거대한 물기둥 속에서 전체 길이만 50Km가 넘는 초거대 우주선, 크로노스가 조직의 총력을 기울여 조제하던 초생명체, 방주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방주의 위용은 엄청났다. 원시 어류의 형태를 하고 있는 그 거체가 하늘에 떠 있는 그 모습 자체가 압도적이었다. 하늘에 떠 있는 방주의 모습은 사해 기지의 12신장들과 조직원들, 그리고 기지 근처에 잠복해 있는 베루더들뿐만 아니라 사해에서 수 Km 이상 먼 곳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도 똑똑히 보였다. 사람들은 마치 시간이 정지되기라도 한 듯 방주를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었다. 아무도 그 어떠한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제길...."

베루더 역시 말문이 막혔다. 저런 황당한 걸 만들어 내다니! 사해 기지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이후 지금까지 불과 넉 달 만에 놈들은 사해 바다 전체를 조제통 삼아서 저런 괴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것으로서 아키토를 비롯한 모두가 궁금하게 여기던 사해 연구소의 용도가 밝혀졌다. 베루더는 이런 단기간 안에 저런 초거대 우주선을 건조해 낸 크로노스의 저력에 공포까지 느껴졌다. 만약 저 놈들이 그 창끝을 마계를 향해 겨눈다면....!

"대체...네 놈들의 진짜 목적은 뭐냐, 알칸펠...!"

베루더는 방주에서 다시 연구소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멀리 알칸펠을 비롯한 12신장 멤버들의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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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라고?!!"

다음날 인터넷 뉴스를 본 베르단디들은 경악하였다. 지금 포털사이트 뉴스 코너는 온통 사해에서 건조되어 시험 비행에 성공한 '방주'에 관한 뉴스들로 가득했다. TV 뉴스, 신문의 1면 또한 모두 방주의 모습을 담은 사진과 관련 기사들로 가득 찼다. 구름을 해치고 나타나있는 거대한 생물형 우주선의 모습에 케이와 베르단디, 그리도 다른 사람들 역시 숨을 죽였다. 아키토 역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녀석들, 사해에서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나 했더니 이런 걸 만들고 있던 것이다.

"사해 호수 전체의 수질을 변화시켜 배양액으로 조성, 그리고 그 광활한 배양액의 바다에서 크로노스는 단 4개월 만에 전장 50km의 초거대 우주선을 만들어내었다."

신문에 실린 방주의 건조 과정을 지로가 또박또박 소리 내며 읽었다. 신문에는 다른 내용도 실려 있었다. 방주는 그 자체가 놀랍게도 하나의 생명체이며 총 길이 51,020m, 폭 16030m이고 내부는 장기간의 우주 항행을 대비해서 지구의 환경과 같은 독립적인 생태계가 조성돼 있다는 내용이었다. 크로노스가 주창했던 '인류의 외우주 진출'이 바로 이 방주로 실현되게 되었다며 각 언론은 대서특필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체 이런걸 어떻게 만들어 낸 거죠?"

"아마도 1년 전 미나카미 산에서 얻은 유적 우주선의 파편조각을 베이스로 만들어 낸 거겠지."

케이의 물음에 아키토가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아키토는 단순히 추정을 해본 것뿐이지만 그 것이 바로 정답이었다. 크로노스는 미나카미 산에서 알칸펠의 손에 의해 파괴된 유적 우주선의 파편을 코어로 해서 이 방주를 건조해 낸 것이다. 우주를 날아다닐 정도로 강인한 생명력을 자랑하던 유적 우주선의 세포라면 방주에 쓰기는 딱 적합한 소재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런 단기간에 이런 황당한 걸 건조해 낼 줄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이 방주의 존재가 민중들에게 끼칠 영향이었다. 외우주 진출. SF 영화에나 나올법한 얘기가 이렇게 아주 현실적으로 다가왔으니 민중들의 마음을 단단히 뒤흔들 건 불 보듯 뻔했다. 그것도 불안이나 공포가 아닌 '신시대'의 도래라는 사람을 두근거리게 하는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상징물로서 말이다. 크로노스는 이런 식으로 자신들의 위대함을 민중들에게 강하게 어필하였다. 이제부터 놈들과의 싸움은 더욱 더 힘들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승무원 모집 공고도 있네요."

베르단디가 신문을 보다 1면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방주에 승선할 '우주인'들을 선발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일정표를 보니 반년 후 일차 모집을 해서 서류 심사와 적성 검사를 거쳐 선발된 인원들은 모두 사해의 연구소에서 각종 훈련을 받는다고 되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저 방주가 발진태세를 갖추게 되는 건 약 1년 정도라고 봐야 했다. 그런데 승무원 모집 요건 중에 한 조항이 모두의 시선을 모았다. 승무원 응모 조건 중에 '조아노이드로서 조제를 받은 자'여야 한다는 조항이 있던 것이다. 분명 크로노스는 이런 식으로 민중들에게 은근히 조아노이드로의 조제를 받아야 한다는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안 그래도 크로노스는 조제를 받은 사람에겐 여러 가지 특혜를 주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것을 누리기 위해 자진해서 조아노이드가 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젠 외우주 진출이라는 인류 역사의 큰 획을 그을 장소에 가려면 조아노이드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었다. 응모하고 안하고의 여부를 떠나 이 사건으로 인해 조제 희망자가 더욱 더 늘어날 건 분명했다. 

"그렇다면 놈들은 왜 이런걸 만든 거지?"

린드의 의문에 모두들 고민에 빠졌다. 단순히 민중에게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만 하려는 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단지 그런 목적에만 쓰기에는 이 방주는 너무 거창한 물건이었다. 분명히 크로노스는 이 방주를 사용하려 할 것이다. 그렇다고 놈들이 정말로 인류의 미래를 위해 외우주에 진출하려 하는 거라 볼 수는 없었다. 분명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거다.

"다들 생각해 봐. 이 우주선에 탑승하려면 일단 조아노이드가 돼야만 해.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어?"

아키토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긴장한 채로 아키토의 말만 기다렸다.

"12신장 놈들도 여기 타겠지. 그리고 12신장에 의해 통솔되는 수천, 아니 수만, 어쩌면 억 단위의 조아노이드 무리. 다시 말해 조아노이드 일개 군단이 구성되는 거지."

"그...그렇다면...!"

"이 배는 '전함(戰艦)'이 되는 거야."

모두는 크게 놀랐다. 전함? 도대체 우주에서 뭐와 싸우려고 그러는 거란 말인가! 이게 무슨 스타워즈도 아니고 너무나 황당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아키토의 말을 달리 반박할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딱딱 들어맞는 내용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우주를 탐험만 할 거라면 왜 승무원 전원이 조아노이드여야 한다고 못 박았단 말인가.

"혹시....천계에 쳐들어가려고 그러는 걸까?"

"천계는 게이트를 통해야 갈 수 있다. 가는 길이 완전히 틀려."

케이의 추측에 린드가 간단하게 선을 그었다. 린드의 말대로 가는 길이 완전히 다르다. 천계로 가는 건 일종의 순간이동. 그렇기에 단순히 우주로 나간다고 천계로 갈 수는 없다. 게다가 놈들의 진짜 목적이 뭔지도 알 수 없기 때문에 속단은 금물이었다. 놈들이 천계로 향하는 게이트를 열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건 둘째 문제였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어디까지나 추측에 불과하다. 현재로서는 놈들의 진짜 의도를 파악하기엔 정보가 너무 부족했다.

-따르르릉!

"아, 전화가 왔네요. 제가 받을께요."

"아냐. 내가 받을께. 보나마나 천계에서 전화하는 거겠지."

울드가 베르단디를 제지하며 전화를 받았다. 역시나 울드의 예상대로 천계에서 온 전화였다. 울드는 한동안 천계와 통화하였다. 그러다가 그녀가 잠시 짬이 났는지 송화기 부분을 손으로 막고 모두에게 재빨리 말했다.

"역시 지금 천계도 난리가 났어. 바로 방주 때문에 전화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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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를 박차고 날아오른 방주는 그 이후 12신장 멤버들을 태우고 상승을 시작, 마침내 대기권을 돌파하였다. 위성궤도상에 정지한 방주는 표면의 생체 태양 전지판을 일제히 전개해서 태양 에너지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지상에서는 대기의 산란 등의 이유로 태양 에너지의 흡수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대기권을 벗어나서 그 에너지를 최고의 효율로 얻기 위함이었다. 

"좋아. 이제 이대로 내버려두기만 해도 방주는 태양 에너지를 흡수해서 자체의 성장 에너지로 변환할 꺼야. 나머지 미진한 부분은 방주 스스로가 완성시킬 걸세."

발카스는 방주 내부의 메인 브리지에서 컨트롤 패널을 조작하면서 다른 신장 멤버들에게 설명하였다. 컨트롤 패널이라고는 하지만 이 패널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냥 은색의 쟁반을 갔다 붙여놓은 것 같은 모양이었다. 메인 브리지의 컨트롤 패널들은 모두 스위치를 조작하는 게 아니라 12신장의 사념파에 반응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별도의 복잡한 기계류는 필요치 않았다.

물론 기계류가 전혀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방주가 자체적으로 만들어 낼 수 없는 복잡한 정밀 전자부품등은 모두 지상에서 날라와서 설치해야 한다. 그것뿐만이 아니다. 12신장들이 이 배안에서 다스릴 조아노이드 군단이 소모할 각종 물자류와 더불어 방주 내부에 조성될 '생태계'의 유지에 필요한 각종 물자들이 수도 없다. 그 것들을 모두 날라와서 본격적인 항해에 나설 수준까지 준비하는 것만도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그건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닥터 발카스."

그 부분은 신을 비롯한 다른 신장 멤버들이 하겠다고 나섰다. 사실 위에 열거한 일들은 귀찮기는 하지만 어려운 일들은 아니다. 물자를 날라 오는 일에까지 발카스가 신경 쓸 필요는 없었으니 이제 그의 할 일은 다 끝난 셈이었다. 가장 어려운 고비였던 방주의 건조가 성공적으로 끝났으니 말이다. 발카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큰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니 웬지 몸이 축 처지는 느낌이었다. 그동안의 팽팽한 긴장감이 갑자기 확 풀려서 그런 것일 것이다.

"그런데 알칸펠님은 어디 계신가?"

문득 발카스는 알칸펠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고 보니 이마카람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발카스의 물음에 쿨메그닉이 대답하였다.

"한 발 먼저 지상으로 떠나셨습니다. 그 남자와 함께요."

그 남자란 바로 이마카람 밀리비너스를 말하는 것이었다. 하긴 이마카람은 별도의 임무가 없으면 항상 알칸펠을 바로 곁에서 수행하는 것이 주된 임무이니 알칸펠이 안 보인다면 그 역시 안 보이는 건 당연했다. 이마카람 얘기가 나오자 발카스를 제외한 다른 신장멤버들이 못마땅하다는 표정들을 지어보였다.

"대체 그 남자는 뭡니까? 한낮 규오의 실험체였던 녀석이 갑자기 12신장이라니요. 12신장의 이름이 울겠습니다."

"말이 너무 지나치네. 자빌."

옆에서 듣던 신이 자빌을 제지하였다. 자빌이라 불린 검은 터번을 쓴 남자는 거기서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숙청된 규오를 대신할 새로운 신장 멤버로서 이마카람 밀리비너스를 결정한 것은 바로 알칸펠이었으니 그 이상 말했다간 알칸펠에 대한 불경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1년 전 미나카미 산에서 알칸펠은 갑자기 무슨 생각에서인지 가이버들과 함께 알칸펠에 대항하다가 죽은 규오의 시작체 -이전에는 무라카미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를 새로운 신장 멤버로 임명한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는 회수한 규오의 조아 크리스털을 이식해서 되살려낸 것이다. 물론 그 뒤로 발카스가 신체의 세세한 조정 작업등을 하긴 했지만.

하지만 대부분의 신장 멤버는 드러내놓고 말을 못한다 뿐이지 이마카람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겨우 시작체였던 녀석, 그것도 감히 크로노스에게 저항하기까지 했던 녀석을 자기들에게 단 한마디 의논도 없이 12신장 대열에 합류시키다니. 물론 지구 제압이라는 거사를 눈앞에 두고 급히 새 신장 멤버를 충원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고 12신장의 최고 정점인 알칸펠이 꼭 다른 멤버들에게 의견을 구해야 할 이유도 없지만 그래도 다들 섭섭함을 느끼고 있었다. 12신장의 자리가 이런 식의 낙하산 인사로 이루어져도 되는거냐는게 모두의 생각이었다. 게다가 놈은 한때 크로노스의 적이었던 남자. 언제 배신을 할지 알 수 없는 것 아닌가.

"그 점은 걱정 안 해도 되네. 그 남자는 절대 우리를, 알칸펠님을 배신하지 않아. 그렇게 조치를 취해놨으니까."

발카스는 모두에게 분명하게 말했다. 발카스가 그렇게 해놨다면 더는 할 말이 없었다. 크로노스 최고의 과학자를 믿지 못하면 누굴 믿는단 말인가. 모두들 반론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잠시 브리지 내부는 침묵에 휩싸였다.

"저,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만."

침묵을 깬 것은 금발의 긴 머리를 한 젊은 남자였다. 그의 왼쪽 어깨에는 전체적으로 파란색 계열을 하고 있는 커다란 어깨 보호대가 얹혀 있었다. 실용성 보다는 외양에 치중한 듯 한 모습이었다. 모두들 그 남자를 주목하였다.

"뭔가? 칼레온."

"대체 알칸펠님은 평소에는 어디서 뭘 하시는지요? 오랫동안 모습을 안 보이시는 일도 잦고 찾아뵙고 싶어도 어디 계신지 알 수가 없으니...."

"쓸데없는 데 관심두지 말게. 규오 녀석처럼 되고 싶지 않다면 말이야."

의외로 격한 발카스의 반응에 칼레온은 그대로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칼레온으로서는 그저 알칸펠의 기이한 행동들이 좀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인데도 발카스는 마치 칼레온이 큰 죄를 저지른 것 마냥 극단적으로 반응하고 있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놀라기는 다른 신장 멤버들도 마찬가지였다. 브리지 안은 다시금 침묵 속에 빠져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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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해에 나가 있던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미국 LA에 있던 아지트에 도착한 건 방주 기동 후 며칠이 지난 뒤였다. 한밤중에 아지트에 도착한 후 대부분의 대원들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숙소로 향했고 일행의 임시 단장 노릇을 했던 '제프리'가 베루더와 함께 단장실로 향했다. 단장실 문을 열자 풍만한 몸집의 사내가 사람 좋은 미소로 두 사람을 반겼다. 부단장인 제이콥스 퇴역 미 육군 중령이었다. 지금은 아키토가 부재중인지라 그가 대신해서 레지스탕스를 지휘하고 있었다.

"여, 어서 오게. 고생 많았어."

"아아, 고생은 뭐. 그래, 그동안 별일 없었어?"

"요새 작전도 없으니까. 허허."

제이콥스는 단장실 안의 냉장고에서 맥주를 한 캔씩 꺼내 제프리와 베루더에게 건네줬다. 잠시 세 사람은 맥주로 목을 좀 축였다. 그리고 바로 베루더가 제이콥스에서 질문을 하였다.

"보스에게선 무슨 연락이 없었습니까?"

"있었지. 3일전에 한번. '그것'을 손에 넣기 전에는 돌아갈 수 없으니 조용히 대기하라고만 하던데?"

-콰직!

갑자기 제프리가 손에 들고 있던 맥주 캔을 힘껏 쥐어서 찌그러트렸다. 다 마시지도 않은 맥주가 넘쳐흘러서 그의 손에 잔뜩 묻었다. 그리고는 그는 벽에다 대고 신경질 적으로 그것을 집어 던졌다. 제프리가 흥분하자 베루더가 그를 말렸다.

"좀 진정하십시오. 대체 무슨 일 때문에..."

"무슨 일이냐고?! 지금 이런 판국에 보스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래!"

제이콥스까지 나서서 잔뜩 흥분한 제프리를 말렸다.

"이봐, 제프리. 자네답지 않게 왜 그래? 왜 그리 흥분하는 거야?"

"우린 봤단 말이야! 그 괴물을 이 두 눈으로 직접!!"

"방주....말인가?"

크로노스가 조제한 초거대 생물 전함 얘기는 이미 이곳 미국에서도 연일 화재거리였다. 사람들은 CNN 뉴스를 보며 공중에 떠 있는 그 거대 전함의 위용에 넋을 잃었다. 그리고 그것은 민중들에게 '인류의 외우주진출'이라는 거대한 꿈을 실감나게 느끼게 함과 동시에 크로노스에 대한 경외와 공포심을 확실히 각인하였다. 제프리는 여전히 잔뜩 흥분한 채로 소리쳤다.

"생각해봐! 길이만 30마일(mi= 1마일은 약 1.6km)이 넘는 괴물의 모습을! 하늘에 떠 있는데도 불구하고 꼬리 쪽은 희미해서 보이지도 않았단 말이야!!"

제프리의 외침에 제이콥스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 역시 크로노스가 만든 방주에 전율하고 있었다. 아니 그 만이 아니라 레지스탕스의 멤버 모두가 동요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맞서 싸우고 있는 적들의 가공할 능력에 모두들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는 상태였다. 다소 흥분이 가라앉은 듯 제프리가 단장실의 소파에 털썩 주저앉고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우리가....우리가 정말 이길 수 있을까? 그런 엄청난 걸 만들어내는 놈들과 싸워서...."

"나도...모르겠네."

제이콥스 역시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크로노스의 조제시설 몇 군데를 파괴했다고는 하지만 그 정도 피해는 전 세계에 걸쳐있는 놈들의 세력을 생각해 보자면 타격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나마도 자신들의 힘만으로 한 것도 아니고 아키토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아키토가 부재중인 지금 나머지 레지스탕스 멤버들은 그저 숨죽이며 숨어있을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로서는 보스를 믿어볼 수밖에 없어. 뭔가 대책을 세우고 있겠지. 좀 더 인내하고 기다려 보세."

제이콥스가 다시 맥주 한 캔을 더 꺼내서는 제프리에게 권했다. 제프리는 속이 탄다는 듯이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만 있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베루더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키토라고 해도 별달리 뾰족한 수가 없을 듯싶었다. 상대하는 적들의 덩치가 너무 컸다. 게다가 방주는 그 존재만으로도 사람들의 마음을 격하게 뒤흔들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마계는, 대마계장님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문득 베루더는 지금 마계의 정책이 잘못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정도의 놈들이라면 놈들이 본격적으로 들고 일어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없으니 일단 조사가 먼저다 하는 식으로 그 동안의 황금 같은 시간을 다 날려먹은게 지금의 이 상황이었다. 이제 와서는 전면전을 걸고 싶어도 마계 단독으로는 승산이 희박해 보였다. 적들의 전력이 너무 커진 뒤였다.

하여튼 말단 정보부원인 베루더로서는 더 이상의 생각은 의미가 없었다. 그가 뭐라고 건의해 봐야 위에서는 그저 '참고'만 할 뿐이고 베루더로서는 군대의 파병에 관한 그 어떠한 권한도, 발언권도 없으니까 말이다.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조사나 철저히 진행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위에서 시키는 대로 조사만 한 것이 벌써 백년도 넘는다. 크로노스에 관한 자료는 보낼 만큼 보냈다고 생각했는데도 마계는 끝내 움직이지 않았다. 자료가 부족하다고 생각한 걸까, 아니면 아예 겁먹고 움츠린 걸까.

'맛없군....'

베루더는 마시고 있는 맥주가 그다지 맘에 안 들었다. 오늘따라 더욱 더 그랬다. 1945년 4월, 정보수집임무를 망각하고 잠시 붉은 군대에 소속돼서 베를린에서 국회의사당을 점령하고 난 이후 마셨던 보드카가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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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도쿄 시내 인적이 드문 뒷골목을 한 남자가 부지런히 달리고 있었다. 그 남자는 상당히 남루한 차림의 옷을 입고 있었다. 그는 무언가에 쫓기는 듯이, 아니 무언가를 쫓는 듯이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그는 이윽고 어느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 곳은 막다른 골목이었고 그 앞쪽에는 쓰레기 더미 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아...아니! 분명히 이쪽으로 가는 걸 봤는데...."

-푸슝!!

그 순간 그 남자의 등 뒤쪽에서 강력한 레이저빔이 날아왔다. 그 빔은 남자를 지나쳐서는 남자의 앞에 있던 벽을 뚫어버렸다. 강력한 열선에 맞은 담벼락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남자는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쥐새끼처럼 내 뒤를 미행하다니."

남자는 말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 쪽에는 검은 가죽점퍼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왼뺨에는 커다란 흉터가 있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그 남자의 오른손 바닥에는 생체 열선포 발생 기구가 생겨나 있었다. 저 남자는 오른손을 생체 열선포로 변환시켜 빔을 날린 것이다. 그 흉터의 남자, 앱톰이 방금 전까지 자신을 뒤쫓던 남루한 차림의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 이마카람인가 뭔가 하는 놈이 온 뒤로 너 같은 놈들이 늘어나서 짜증난단 말이야. 물론 내게 들키면 그 자리에서 요절들을 내줬지만."

"기...기다려! 앱톰. 난 당신의 적이 아니야!"

남자는 허둥대며 뭐라 말하려 하였다. 그러나 앱톰은 남자의 말 따위는 무시하고 그 남자의 목을 움켜잡았다. 앱톰에게 목을 잡힌 남자는 숨이 막혀 괴로운 듯 버둥거렸다. 앱톰은 그 남자를 가소롭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흥. 그 딴 변명은 지옥에 가서 염라대왕 앞에서나 해."

-슈우욱

"끄...끄어억!!"

앱톰은 그 자세 그대로 남자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역시 이놈도 조아노이드이다. 그런데 이렇게 쉽게 잡히는 거 보니 이 녀석도 이제까지의 녀석들처럼 별거 아닌 것 같았다. 뭐 이렇다 할 능력은 없는 듯싶으니 그냥 이대로 흡수해서 양분으로나 삼아야.....

'이...이게 뭐야!'

그 순간 앱톰은 중대한 사실 하나를 알아 차렸다. 앱톰은 그 자리에서 남자의 흡수를 중지하였다. 그리고 그의 목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앱톰에게서 풀려난 남자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는 켈록거리기 시작했다. 앱톰은 그 남자를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 전에 이 남자를 흡수하려 했을 때 앱톰은 느낄 수 있었다. 이 남자의 유전자 형질. 그건 일반 조아노이드와는 다른 형태였다. 이 유전자 형질은 조아노이드가 아니라.....

"너...너 설마....손종 실험체냐?"

앱톰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옛날의 자기와 같은 손종 실험체라니! 크로노스에 절대적으로 충성하고 특이한 능력이 있는 놈들이라면 로스트 넘버 코만도로 편성돼서 이렇게 바깥출입도 가능하지만 그런 게 아무것도 없는 놈들은 평생 연구실 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 게 손종 실험체들이다. 그런데 지금 이 남자는 손종실험체이면서도 이렇게 밖에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그 남자는 한동안 켈록 거리다가 간신히 진정이 되었는지 앱톰을 보며 말했다.

"내 이름은 하야미 토시아키. 앱톰, 당신을 찾고 있었어. 제발 내 말을 좀 들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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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힐드(힐드의 천분의 일 분신)는 베르단디들의 은신처가 내려다보이는 어느 건물 옥상 위에서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에는 누가 보기에도 확실히 알 수 있을 정도로 지루함이 비쳐 보였다. 곁에서 힐드와 같이 베르단디들의 은신처를 내려다보던 마라가 힐드에게 물었다.

"어디 편찮으십니까? 안색이 안 좋으신 것 같습니다."

"심심해서 그래...."

힐드는 처음에 케이가 파워 업을 하고 돌아오자 그들이 곧장 크로노스에 정면 대결을 하리라 생각하고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크로노스와 케이들의 전쟁에 관한 정보를 최대한 획득해서 미래를 대비해야 한다는 사명감도 있었지만 반쯤은 마치 흥미진진한 액션영화를 보는 것 같이 순전히 재미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케이가 귀환 후 딱 한번 기간틱이란 걸로 클라우드 게이트에 돌격해 들어갔던 이후로 단 한 번도 밖으로 나올 생각을 안하니 따분해 미칠 지경이었다.

"할 수 없군."

가볍게 한숨을 내쉰 힐드는 어디서 났는지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힐드님, 어디로 거시는 겁니까?"

"크로노스 일본 통제국."

"예?! 갑자기 거기는 왜...."

"나오지 않겠다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야지. 두고만 보라고. 아, 여보세요?"

통제국과 연결됐는지 힐드는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통화 내용을 듣던 마라의 안색이 하얗게 변하기 시작했다. 지금 힐드는 베르단디들의 은신처를 신고하고 있던 것이다. 대마계장이라고 하면(마계의 존재 자체를 안 믿는 인간들도 상당히 많다) 안 믿어줄 것 같아서 적당히 인간인척 연기까지 해 가며 신고하고 있었다. 이윽고 신고를 마친 힐드는 핸드폰을 껐다. 그녀의 표정은 마치 재밌는 일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잔뜩 들떠 있었다.

"히...힐드님! 어째서 신고를...!"

"말했잖아? 안 나온다면 나올 수밖에 없게 만들겠다고."

"그...그러다가 여신들 중 누군가가 죽으면..!"

마라가 여신들을 걱정해서 저러는 건 절대 아니다. 천계와 마계 사이에 체결된 계약인 타블렛 때문이었다. 통제국이 들이닥치면 전투가 벌어질 건 불 보듯 뻔했고 그 와중에 저곳에 있는 여신들 중 한명이라도 목숨을 잃게 되면 마계의 누군가도 죽게 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울드는 바로 힐드의 친 딸 아닌가. 딸이 있는 걸 뻔히 알면서 통제국에 신고하다니. 마라는 힐드의 의중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힐드는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대답하였다.

"걱정 마. 여차하면 울드는 내가 빼낼 거야. 나머지는 뭐 알아서 하겠지. 우리 쪽 한두 명 죽는 거 정도는 감수할 수 있어. 그것보다는 마라. 이제 곧 신나는 싸움이 한 판 벌어질 테니 어디 가서 팝콘 좀 사오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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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셨습니까."

"...."

이마카람 밀리비너스가 클라우드 게이트 지하실험구역에 온 푸르크슈탈에게 인사를 하였지만 푸르크슈탈은 잔뜩 굳은 얼굴 표정만 짓기만 했다. 12신장 멤버들 중에서는 사교성이 좋고 차분한 성격의 그 조차 새 신장 멤버인 이마카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 때 그저 소모품에 불과한 실험체였던 녀석이 갑자기 벼락출세해서 12신장이 되었으니 누가 그걸 좋게 볼까. 사실상 이마카람은 알칸펠과 발카스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발카스조차 그를 맘에 들어 한 것은 아니다. 그저 알칸펠의 지시니까 묵묵히 따르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마카람은 푸르크슈탈의 이런 차가운 태도를 별로 개의치 않았다. 그 역시 다른 신장 멤버들의 생각 같은 건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는 다른 멤버들의 생각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오로지 그의 군주, 알칸펠의 의지만이 중요할 뿐.

"이건 뭔가?"

"닥터 발카스께서 젝토올의 재조제를 하시면서 동시에 개발을 진행시키던 물건입니다."

푸르크슈탈은 방금 전까지 이마카람이 보고 있던 조제통을 보았다. 모두 4기였는데 배양액이 가득차 있는 안에는 사람의 모습이 있었다. 이들은 지금 깊은 수면 중인지 눈을 감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이마카람이 계속해서 설명을 하였다.

"아마도 박사께서도 가이버들이 생존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셨던 모양입니다. 그러니까 보통 때는 별 필요도 없는 이런 것들을 만들어 두신 거겠죠."

푸르크슈탈은 실험기록철을 집어 들어 조제통 안에 있는 것이 뭔지 확인하였다. 기록을 보는 푸르크슈탈의 눈에 순간 놀라움의 빛이 스쳐갔다. 이 녀석들은 보통 조아노이드들이 아니었다. 종래의 조아노이드들을 훨씬 뛰어넘는 능력들을 가진 신형 조아노이드. 역시 닥터 발카스라는 찬탄이 나올만한 물건이었다. '소모품'치고는 대단한 물건이었다. 조제는 이미 완료 돼있는 상태였고 지금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를 막기 위해 조제통 안에서 슬립(sleep)모드를 취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 당장이라도 출동은 가능한 상태였다.

"뭐, 사냥개는 준비됐군. 문제는 사냥감이 지금 어디 있느냐는 건데...."

전국적으로 수배령을 내리고 두둑한 현상금을 걸어 두었지만 아직까지 가이버들의 소재에 관한 변변한 제보 한건 들어오지 않았다. 같이 수배령을 내린 여신들의 소재 역시 파악되지 않았다. 윗선에 보고되지는 않았지만 가끔씩 장난전화나 엉뚱한 사람을 지목한 잘못된 제보만 오는 정도였다.

"가이버들이야 당연히 없애야 하지만 여신들은 어쩔 건가?"

"잡아와서 실험체로나 쓸까요? 아니면 알칸펠님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노래하는 인형쯤으로 만드는 것도 좋겠죠."

질문한 푸르크슈탈이나 대답하는 이마카람이나 천계의 반응 같은 건 신경 쓰지 않았다. 만약 그녀들을 건드렸다가 천계가 보복을 해올 가능성이 있었지만 12신장 멤버 그 누구도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았다. 1년 전 제압전 당시 천계는 충분히 자신들을 공격해 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어떤 이유인지는 몰랐지만 다들 그저 천계가 겁먹어서 웅크리고만 있는 걸로 해석하였다. 그 때도 나서지 않았던 놈들이 여신 한 두 명 죽는다고 나설지는 의문이었다. 아마도 어쩔 수 없는 사고 당한 셈 치고 묻어버리겠지. 전 세계를 압도적인 무력으로 장악한 12신장 멤버들의 자신감은 가히 하늘을 찌를 기세였다. 

"보고 드립니다!"

그 때 요원 한 명이 푸르크슈탈과 이마카람이 있는 곳으로 뛰어 들어왔다. 요원은 두 사람에게 경례를 올린 후 푸르크슈탈에게 서류철을 건넸다. 그것을 훑어본 푸르크슈탈의 눈이 번쩍 뜨였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던가? 동양의 속담 중에 그런 게 있다지? 그 말이 딱 맞았군."

"그렇다면 설마...."

"놈들을 찾았다."

그 말에 이마카람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는 즉시 근처에 있던 연구원들에게 조제통 안에 있던 4명의 출격준비를 하라고 명령하였다. 연구원들이 즉시 부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 네 명은 제가 쓰겠습니다. 가이버들을 사냥할 사냥개로서 말이죠."

"맘대로 해."

이마카람도 출격준비를 하기 위해 실험구역을 나섰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푸르크슈탈은 싸늘한 눈초리로 노려보았다.

'어차피 네 녀석도 사냥개에 지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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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씨, 여기 떡 드실래요?"

"응? 으...응. 고마워. 잘 먹을께."

그러나 떡을 받아드는 케이의 표정에는 기쁜 모습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저 주니까 먹는다는 식으로 무미건조한 표정을 지으며 우물거리고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 케이를 보며 베르단디는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무라카미가 적으로 돌아선 것에 적잖이 충격을 받아서 저러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의 그녀로서는 더 이상 어찌해 볼 방법이 없었다. 케이를 위해서도, 무라카미를 위해서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녀의 얼굴에도 근심이 짙어져 가고 있었다.

'역시 안 되겠어. 이대로는......'

아키토는 무기력한 케이의 모습을 보니 속이 탈 지경이었다. 다시 살아난 무라카미와 마주친 이후로 지금까지 케이는 이 좁은 투룸 안에서 무기력한 모습으로 주저앉아만 있을 뿐이었다. 시간은 이들의 편이 아니다. 이렇게 시간 낭비만 하고 있을 동안에도 크로노스는 부지런히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반격은 가능한 한 빨리 해야 했다. 하지만 반격의 핵심이 되어야 할 기간틱을 소환할 수 있는 케이가 저 모양이었다. 아무리 기간틱이 강력하다 해도 식장자의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일 뿐이다. 사자가 지휘하는 양의 군대는 양이 지휘하는 사자의 군대를 이긴다던가.

아키토는 그 동안 케이에게 싸워야 한다며 윽박도 질러보고 타일러도 봤지만 그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어떻게 해서든 우선 무라카미부터 원래대로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 케이의 생각이었다. 그것을 위해 베르단디들과 함께 법술로 어떻게 해볼 수 없을까 자문도 구해봤지만 베르단디들 역시 뾰족한 수는 없었다. 물론 베르단디들은 조제체들에게 통하는 법술식을 완성시키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조아노이드에 한해서다. 조아로드에게도 같은 법술이 먹힐 것인지도 의문이었는 데다가 무엇보다 어쩌다가 무라카미가 그렇게 됐는지 알 수가 없는 이상 아무 법술이나 함부로 걸 수가 없었다. 원인을 알아야 처방도 나오는 법이다.

지금 이대로는 설령 싸우러 나간다 해도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게 분명했다. 보나마나 무라카미가 그 즉시 나타나서는 케이의 앞을 막아설 테니까. 그러면 케이는 또 주저하면서 싸움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최악의 경우 기간틱이 지던가, 아니면 저번처럼 꼬리를 내리고 도망쳐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아키토는 달랐다. 무라카미가 예전 동료이긴 해도 사정이야 어쨌든 지금은 적이다. 적은 쓰러트려야 한다. 자신의 앞길을 막는 것이라면 무조건 쓰러트린다. 케이와 아키토는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달랐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아키토는 결론을 내렸다.

'역시 케이는 틀렸어. 녀석은 기간틱이라는 절대적인 힘을 쓸 자격이 없어. 만약 그걸....기간틱을 내가 가질 수만 있다면!'




*********************************************




"우웅~ 케이는 요즘 만날 저러고만 있어.... 뭐하자는 거야."

"스쿨드, 케이씨도 요즘 너무 힘드셔."

스쿨드의 투정에 베르단디가 조용히 스쿨드를 말렸다. 케이가 파워업 해 돌아오면서 조만간 크로노스 놈들을 물리치고 이곳에서 나갈 수 있을 거라 기대했던 스쿨드에게는 실망이 너무 컸다. 아니 스쿨드만이 아니라 이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그랬다. 하지만 상대가 무라카미인 이상 싸움을 할 수는 없었다.

"이젠 사요코도 우릴 도와줄 수 없다고 하고....이거 큰일인데. 이대로 가다간 조만간 우리 생활비가 바닥난다고."

지로가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가장 큰 후원자가 포기하고 나간 것은 이들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여신들이야 아무것도 안 먹어도 된다 쳐도 다른 보통 인간들은 식사를 해야 하는데다 그 외 각종 요금 -전기세나 수도세, 가스비 등등의 생활비- 등도 고려해야 한다. 그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이제 이들의 친지나 가족들을 크로노스의 마수에서 피할 수 있도록 은신처를 유지시켜 줄 수 있는 방법도 사라졌다는 것이 큰 문제였다. 케이의 어머니인 타카노씨 역시 이젠 사요코의 지원을 전혀 기대할 수 없게 되었다.

"베르단디, 한 번 더 설득해 보자. 지금 이대로는...."

"아뇨, 더 이상 사요코씨를 끌어들일 수는 없어요."

베르단디는 울드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사실 사요코로서도 지금까지 사실상 목숨을 걸고 한 일이었던 것이다. 베르단디로서는 더 이상 사요코를 이 위험한 일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다. 지원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은 아까웠지만 베르단디에겐 그런 것 보다는 사요코의 안전이 더 중요하게 보였다. 하지만 어쨌든 후원자가 있기는 있어야 했다. 그러나 사요코 수준의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최소한 이들이 알고 있는 범위 내에는 아무도 없었다.

-똑똑

그 때 누군가가 대문을 두드렸다. 베르단디는 조심스럽게 문 앞으로 가서 투시 법술을 구사하였다. 여기 올 사람은 사실상 메구미 한 사람 뿐이지만 그래도 항상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케이들이 살아 있는 것을 크로노스들이 알아 버렸으니 더욱 더 조심해야 했다. 잠시 투시 법술로 문 밖을 내다본 베르단디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옆에 있던 핫세가 물었다.

"베르단디 선배? 왜 그러세요? 누군데요?"

"아, 메구미 씨에요. 그런데 오늘은 혼자서 오신 게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면서 베르단디는 문을 열었다. 그러자 왠지 잔뜩 긴장해 있는 메구미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메구미의 뒤 쪽에 검은 가죽점퍼를 입고 검은 선글라스에 왼뺨에 커다란 흉터가 있는 남자가 서 있었다. 바로 앱톰이었다!

"애...앱톰?!!"

앱톰을 본 모두가 크게 놀라 소리쳤다. 갑자기 앱톰이 여기 왜 왔단 말인가. 출입문 쪽이 왠지 시끄럽다고 생각해서 밖으로 나와본 케이도 크게 놀랐다. 앱톰은 그런 그들의 반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심드렁하게 말했다.

"무슨 귀신이라도 본 듯한 얼굴들이군. 걱정마라. 난 여기 용무가 없으니까. 내 일은 바로 저 녀석을 안내해 주는 것뿐이니까."

그렇게 말하면서 앱톰은 자기 뒤쪽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앱톰의 뒤를 향했다. 좀 남루한 옷차림의 한 사내가 서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모두가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입니다, 여러분."

"하...하야미씨?!!"





Next episode 제7화 '검은 거인식장' coming soon.....



p.s : 이번 편 쓰는거 거의 3주나 걸렸습니다...orz 그런데 결과물은 마음에 안 드는군요. 방주의 위용 묘사나 스토리 흐름이나....역시 난 미숙해....ㅠ.ㅠ 하여간 이거 쓰느라 그간 모아둔 비축분 싹 다 날렸군요. 어흑....;;;

p.s 2 : 이번에는 전투는 없지만...다음편은 내내 전투. -ㅅ-;;

p.s 3 : 베루더의 설정 중 하나. 그는 지상에 체류한 시간이 지상 시간으로 백년은 넘었습니다. 그 기간 내내 미국에만 있던 건 아니고 2차 대전당시 동부 전선에도 가 있었다는 설정입니다. 붉은 군대에 소속되서 베를린으로~!! 를 외치며 열심히 총질했다는....본편과는 별로 상관없는 설정이 있습니다. ^^;;

뭐, 어쩌면 동부 전선에서 묠니르(베이더경 님의 창작 케릭...^^;;)와 만났을지도 모르죠. (....먼산)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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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더경님의 댓글

베이더경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하하하 이번기회에 아예 세계관을 합쳐버리는 것이 어떨런지[동시에 욕 얻어 먹고 수퍼레이져 한방 먹는다.]

농담입니다. 그런데 상당히 늦은 연재속도로 인해 가이버님은 약 3편은 더 지나서야 나오실듯.

정말 죄송합니다 -_-  어떻게든 속도를 올리겠습니다. 오늘부로 방학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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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버님의 댓글

가이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정말 합칠까요? -_-;;; <- 저 역시 농담...;;;

...방학이시라니 좋으시겠어요. 흑....놀고 싶어...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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