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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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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제2부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part 2.-

제4화 - 13인 째의 조아로드 -






"그게 무슨 소리야! 젝토올이 죽었다니!!"

이스라엘의 사해 연구소에서 일본지부와 화상통신을 하던 발카스는 충격적인 보고를 받았다. 대 앱톰헌터로서 심혈을 기울여 만든 젝토올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도쿄 신주쿠 상공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플라즈마 현상까지 나타났었고 한 술 더 떠 일본지부 책임자인 푸르크슈탈까지 거기에 그만 휘말려 부상을 입고 현재 의식불명이라는 보고까지 올라왔다. 발카스로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그렇게나 강화하고 대 앱톰용 항체와 바이러스까지 가지고 있던 젝토올이 죽었다는 것도 기가 막힐 노릇인데 그나마 앱톰을 죽였다는 증거도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한마디로 계획은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발카스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박사님, 지금 푸르크슈탈 각하께서 의식을 되찾으셨다 합니다."

"오오! 그래 무사한가?"

-"지금 박사님을 뵙고 싶다 하십니다. 연결해 드리겠습니다."

잠시 후 화상이 다른 곳으로 연결되었다. 화면에는 병실에 누워있는 푸르크슈탈의 모습이 보였다. 링거를 꽃은 채 파리한 얼굴을 한 채로 누워있는 그를 보고 발카스는 충격을 받았다. 발카스 옆에서 같이 통신을 보고 있던 신도 크게 놀랐다. 푸르크슈탈이 힘겹게 말을 하였다.

-"다...닥터..."

"대체 이게 어찌된 일인가! 자네가 어쩌다가 그런 꼴이 된 게야!"

-"그...그것에 관해서 말씀드릴게 있습니다. 실은....."

푸르크슈탈은 몹시 지친 와중에도 자신이 보았던 충격적인 사실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이야기 하였다. 푸르크슈탈의 보고가 계속되면서 발카스와 신의 표정은 점점 심각해져갔다. 보고를 마친 푸르크슈탈은 다시 정신을 잃었다. 그리고 그 직후 일본지부와의 화상통신이 끊겼다. 발카스의 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푸르크슈탈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것은 크로노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될 사안이었다. 발카스는 신에게 즉시 지시를 내렸다. 신 역시 푸르크슈탈의 보고를 듣고 경악해하고 있었다. 그의 안색 역시 발카스와 마찬가지로 창백해져 있었다.

"신...."

"예, 닥터 발카스."

"다른 신장 멤버들을....전부 호출해 주게. 긴급 사태야!"





**********************************************





"자! 신의 한 수!"

"울드!! 그 카드 어디서 난 거야! 치사하게 속임수 쓰기야!!"

옆방에선 지금 울드와 스쿨드가 한창 신나게(?)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아마도 TV 채널권을 놓고 한판 승부를 벌이는 것일 거다. 그 소리를 들은 베르단디는 빙긋 웃었다. 저런 풍경도 참으로 오랜만이었기 때문이었다. 케이가 실종되고 크로노스가 세상을 지배하면서 여기서 숨어살기를 1년.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던 암울한 시기였고 이 집에서는 웃음소리가 들리지 않았었다. 저 두 사람이 예전에 하던 TV 쟁탈전도 요 1년간은 전혀 없었다. 그저 멍하니 지내는 것이 하루 일과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케이와 아키토가 모두 무사히 건강하게 돌아오면서 이 집에는 다시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케이가 돌아옴으로서 지난 1년간의 고통이 단 한순간에 모두 날아가 버렸다. 베르단디는 아직 계속해서 잠자고 있는 케이를 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리고 살며시 손을 들어 그의 볼을 쓰다듬었다. 새벽녘에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온 후 케이는 점심때가 다 되가는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자고만 있었다. 베르단디는 그런 그의 옆을 조용히 지키고 앉아 있었다.

'고마워요....무사해줘서 정말 고마워요. 케이씨....'





옆방에 케이가 곤히 잠들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안방에 모여 있었다. 케이의 수면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오랜만에 재회한 두 사람을 방해하지 말자는 지로의 제안 때문이기도 하였다. 덕분에 그리 크다고는 할 수 없는 안방은 시끌벅적 했다. 울드와 스쿨드는 지금 한창 TV 채널권을 차지하기 위해 보드게임에 열중하고 있었고 린드는 언제나처럼 조용히 명상 중이었다. 이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명상이 잘 되는지 그녀는 미동도 안하고 있었다. 지로와 핫세, 요헤이는 게임을 즐기는 두 사람을 웃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이들의 얼굴도 아주 환해져 있었다.

"그건 그렇고, 벨의 왕자님께서는 아직도 잠자는 중이야?"

지로는 옆방 쪽을 보며 지나가는 투로 말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으니 이제 슬슬 일어날 때도 됐건만 케이는 여전히 잠만 자고 있었다. 케이의 몸 상태는 지극히 정상이었으니까 조금만 기다리면 될 듯싶긴 하지만 그래도 왠지 안달이 나는 지로였다.

"뭐, 좀 더 자게 두죠. 더 잔다고 해서 탈나는 것도 아니고."

아키토가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젝토올과의 전투에서 큰 부상을 입었던 아키토는 강식장갑의 회복력 덕에 상처는 금방 회복되었다. 케이와는 달리 그는 여기 와서 한 시간 정도만 잠깐 눈을 붙였을 뿐이었다. 워낙 기본체력이 좋은 지라 그에게는 이 정도 휴식만으로도 충분했다. 아키토의 옆에는 시즈가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그녀의 얼굴도 눈에 띄게 밝아져 있었다. 시즈는 아키토의 얼굴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는 듯 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음?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나?"

아키토가 시계를 보니 벌써 정오가 거의 다 되었다. 아키토는 리모컨을 들어 TV를 켰다. 정오 뉴스를 청취하려는 것이었다. 오늘 새벽에 있던 전투에 대해 크로노스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 뉴스에서는 그저 오늘 새벽에 벌어진 '사고'를 현재 조사 중이라는 짤막한 발표뿐이었다. 공식 발표 예정은 아침 뉴스에서 예고하기는 정오라고 했으니 이제 슬슬 시간이 다 되었다. 그 때 울드가 TV 앞을 막아섰다.

"잠깐! 이곳에서는 말이지.... 승자만이 채널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

"승자?"

어리둥절해 하는 아키토에게 울드와 스쿨드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마작 판을 들이밀었다. 그걸 보자 아키토는 이들의 의도를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아키토는 좀 당황스럽다는 표정이었고 시즈는 그런 그를 보며 조용히 미소 지었다. 아키토는 둘의 승부(?)에 흔쾌히 응했다.

"좋아. 해 주지. 단, 곧 있으면 뉴스가 시작되니까 단판 승부다."

"후후...단판승부라. 그거 좋지."

"TV 채널은 내 꺼야! 곧 있으면 동물의 낙원 할 시간이라고!"






**********************************************






케이는 꿈을 꾸고 있었다. 꿈속에서 그는 족히 수백 마리는 될 듯 한 조아노이드 부대와 대치하고 있었다. 그의 뒤쪽에는 베르단디와 울드, 스쿨드, 지로, 핫세, 그리고 요헤이와 시즈가 있었다. 이들은 모두 눈앞에 있는 조아노이드 무리를 보며 공포에 질려 있었다. 케이는 어느새 가이버 I 으로 변신해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는 역시 가이버로 변신해 있는 아키토, 그리고 조아로드의 전투 형태로 변신해 있는 무라카미, 배틀 엑스를 꽉 움켜쥐고 있는 린드가 있었다. 이들이 함께 싸워주기에 케이는 두려움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곧 무시무시한 전투가 시작되었다. 수많은 조아노이드들이 달려들었지만 케이들의 힘 앞에 조아노이드들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갈 뿐이었다. 이런 놈들뿐이라면 얼마든지 덤빈다 해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이들을 엄청난 밝기의 섬광이 덮쳤다. 케이는 잠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잠시 후 그가 정신을 차린 순간 케이는 자신이 땅바닥에 쓰러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키토와 린드까지 모두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의 바로 앞에서 규오가 만신창이가 된 무라카미를 들어 올려 보이고 있었다. 케이는 무라카미를 구하기 위해 일어나려 했지만 어째서인지 몸이 맘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그 때 케이는 규오의 뒤 쪽으로 여러 개의 그림자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모두 열 한명. 크로노스 12신장이 틀림없었다. 이들의 가운데에는 미나카미 산에서 보았던 황금빛으로 빛나는 조아로드의 모습이 있었다. 그 무시무시한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조아로드. 케이는 억지로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키토 역시 그 때 쯤에는 일어서 있었다.

규오의 조아 크리스털이 강하게 빛나면서 무라카미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것이 보였다. 무라카미의 조아 크리스털과 규오의 그것이 공명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케이가 지켜보는 가운데 무라카미의 조아 크리스털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경악한 케이가 무라카미에게 달려가려 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 아키토의 몸 왼쪽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깜짝 놀란 케이는 무심결에 자기 몸을 내려다보았다. 케이 자신의 몸도 발아래부터 시작해서 급격하게 소멸해 가고 있었다.

'베르단디....'

케이는 뒤에 남겨진 베르단디들을 애타게 바라보았다. 그녀들을 수많은 조아노이드들이 포위한 상태였다. 겁에 질려 베르단디 품에서 우는 스쿨드, 싸우려고 하는 울드, 그리고 그 와중에도 케이를 슬픈 눈을 한 채로 바라보고 있는 베르단디.... 케이는 절망하였다. 이대로, 이대로 끝이란 말인가……. 베르단디들을 지켜주지도 못한 채로....

'힘....힘이 필요해. 베르단디를 지켜줄 수 있는 힘이...! 그 어떤 것에도 지지 않는 강한 힘이!'

그리고 케이는 보았다. 조아노이드의 무리들 한 가운데서 생전처음 보는 거대한 거인이 천천히 일어서고 있는 것을. 그 거인의 출현에 조아노이드들은 우왕좌왕 하였다. 거인은 그 황금의 조아로드와 대치하였다. 케이는 직감할 수 있었다. 그가 그토록 바라던 절대적인 힘. 베르단디를 지켜줄 수 있는 궁극의 힘. 그의 간절한 소망이 구현된 것이 바로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거인의 모습이란 걸.

어느새 케이는 바로 그 거인이 되 있었다. 그는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손 안에는 베르단디들이 있었다. 베르단디가 아주 환한 얼굴로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케이씨....케이씨....'




**********************************************




"으...음...."

"케이씨? 정신이 드시나요?"

케이가 드디어 눈을 뜨기 시작했다. 케이는 여전히 졸립다는 눈으로 잠시 천정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비로소 베르단디를 보았다. 베르단디가 케이를 눈물을 글썽거리며 내려다보고 있었다.

"베르단디....."

"케이씨... 다행이야, 무사하셨군요...."

"응...베르단디는...괜찮아?"

그녀는 울먹이면서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는 손을 들어 베르단디의 눈물을 살며시 닦아 주었다. 베르단디는 바로 케이의 손을 꼭 잡고 자신의 볼에 갔다 대었다. 베르단디는 한동안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케이의 손을 통해 베르단디의 따뜻한 체온과 눈물방울이 전해져왔다. 케이 역시 한동안 그런 베르단디를 미소 지은 채 바라보았다.

"고마워요...정말 고마워요....이렇게 무사해 주셔서..."

"보고 싶었어. 언제나...."

"저도 보고 싶었어요. 케이씨..."

-덜컥

그 때 방문이 살며시 열렸다. 문 틈 너머로 메구미가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아침에 바깥 상황도 살펴볼 겸 잠시 찬거리를 사러 갔다 오는 길이었다. 케이가 지금쯤이면 일어났을까 싶어서 살짝 들여다 본 것이다. 그리고 메구미는 케이가 눈을 뜨고 있는 것을 보았다.

"케이!! 깨어났구나!"

"메구미?"

메구미가 방안으로 후다닥 달려 들어왔다. 케이는 그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메구미는 곧장 케이를 꼭 끌어안았다.

"정말 걱정했단 말이야! 어쩜 그렇게 사람 속을 새까맣게 태울 수 있어!"

"하하, 미안미안."

메구미가 호들갑을 떠는 통에 다른 사람들 까지 전부 케이가 깨어난 것을 알게 되었다. 다들 황급히 작은 방으로 몰려왔다. 그리고 케이의 무사함을 기뻐하였다.

"정말 오랜만이야, 케이."

"난 네가 어떻게 된 줄만 알았다고!"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말하는 통에 케이는 다소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웃음을 잃지 않으면서 모두에게 일일이 대답해 주었다. 케이의 표정이 아주 밝아 보여서 모두는 안심하였다.

"전 괜찮아요. 몸도 아주 개운하고...."

-꼬르륵

그 때 케이의 배에서 묘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는 잠시 말없이 케이의 배만 바라보았다. 케이의 얼굴은 순식간에 빨개졌다. 울드는 재밌다는 듯이 케이를 놀려 대었다.

"호오? 네 배는 안 괜찮다고 보채는데?"

"아! 죄송해요. 금방 식사 만들어 드릴께요."

베르단디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달려갔다. 시계를 보니 벌써 점심때가 다 되 있었다. 시즈 역시 부엌으로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키토님도 시장하시죠? 식사 준비하겠습니다."

시즈는 그대로 부엌으로 나갔다. 울드도 부엌 쪽을 한번 힐끗 보고는 시즈와 같이 나갔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대로 케이 곁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탁탁탁탁

부엌에 나와 보니 베르단디는 도마 위에 식재료를 올려놓고 열심히 다듬고 있었다. 그런데 뒤에서 보니 베르단디가 자주 손을 얼굴로 가져가는 것이 보였다. 양파라도 다듬는 건가 싶어 울드는 슬며시 베르단디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이내 베르단디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있었다. 다듬는 재료 때문이 아니라 케이가 무사하단 것 때문에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 자꾸 눈물이 나는 것이었다. 울드는 그런 베르단디의 어깨를 살며시 감싸 쥐었다.

"네가 맘고생이 제일 심했겠구나...."

"어...언니... 흑..."

"그래, 이제 괜찮아...."

두 자매는 그렇게 조용히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시즈도 그런 두 사람을 미소를 지은 채 바라보고 있었다.





**********************************************






"맛있어! 베르단디. 이런 맛 정말 오랜만이야."

"잘됐다!! 입에 잘 맞으신다니 다행이에요."

"한 그릇만 더."

케이는 마치 걸신이 들린 듯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베르단디는 기쁜 마음으로 케이에게 밥을 한 공기 더 퍼줬다. 식사를 마친 다른 사람들도 그런 케이를 기쁜 마음으로 보고 있었다.

-"도쿄상공에서 핵이 폭발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답변해 주십시오."

-"안심하십시오. 핵은 아닙니다. 위력이 아주 강한 폭탄이었지만 핵은 절대 아닙니다. 방사능 수치 등은 여전히 정상입니다. 이 도표를 봐 주십시오."

식사를 하면서 케이들은 TV를 통해 크로노스 일본 지부의 공식 발표를 보고 있었다. 크로노스 통제국 대변인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기자들의 질문에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뭐 확실히 핵은 아니다. 거기까진 맞는 말이었지만 그 정도의 엄청난 폭발을 그냥 아주 강력한 폭탄이라고만 하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었다. 모두는 재밌다는 듯이 TV를 보고 있었다.

"후훗, 녀석들 둘러대느라 진땀 흘리고 있군."

울드는 허둥대는 통제국의 반응을 보며 즐기고 있었다. TV에서는 계속해서 기자들의 질문공세가 이어졌다.

-"조아노이드끼리 전투를 벌였다는 얘기가 있습..."

-"말도 안 됩니다. 조아노이드끼리 싸우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통제국 폭발물 처리 반원들의 폭탄제거 작전 행동을 잘못 보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대변인이 기자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그 모습을 본 모두는 실소를 터트렸다. 참으로 궁색한 답변이었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때인데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짓을 한단 말인가. 어제 밤의 격렬한 공중전은 이미 모든 시민들이 다 똑똑히 목격했다. 그리고 대중들 사이에서는 디카나 폰카등을 안가지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였기에 증거물도 넘쳐났다. 벌써 인터넷 상에서는 그 때의 공중전 장면을 찍은 사진들이 수도 없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통제국에서 그런 게시물들을 보이는 데로 삭제하고 다녔지만 애초에 모든 게시판을 다 통제할 능력이 통제국 측에는 없었다.

"녀석들 입장에서는 가이버나 앱톰의 존재를 공표할 수가 없지. 그 둘의 존재는 크로노스의 지배력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니까."

아키토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크로노스 입장에서는 오늘 새벽의 전투는 절대로 숨겨야 하는 일이었다. 가이버나 앱톰의 존재는 사라져버린 민중들의 저항의지를 다시 불태울 수도 있는 것이었다. 단 하루 만에 전 세계를 제압해버린 크로노스의 힘에 민중들의 저항의지는 꺾였다. 그러나 그 힘에 대항할 수 있는 자들이 있다면 얘기는 다르다.

"인터넷만 봐도 알 수 있어. 확실히 지금 사람들이 동요하고 있어. 아무도 통제국의 말을 믿지 않고 있다고."

인터넷 게시판들을 검색해 보던 지로가 말했다. 통제국의 영향아래 있는 공중파나 케이블 TV 방송, 그리고 신문 등의 기존 언론 매체들은 이번 전투를 애써 축소하고 은폐하려 하는 것이 다 보였다. 메구미가 사온 여러 신문들을 봐도 온통 통제국의 말만 적혀 있었다. 그러나 인터넷은 달랐다. 여러 게시판에는 벌써 어제 '사건'에 대한 크로노스 측의 발표에 의문점들을 조목조목 따지는 글들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었다. 이제야 비로소 민중들이 크로노스의 말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건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아무리 케이들이 열심히 싸운다 해도 민중들이 거기에 호응해 주지 않으면 크로노스를 쓰러트릴 수가 없다. 직접 싸워달라는 말이 아니다. 크로노스의 달콤한 말에 현혹되지 말고 진실을 보며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만 달라는 것이 지금 이들이 대중에게 바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다면 이제...."

"반격이지! 이제 우리가 한 방 먹여줄 차례야!"

울드는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그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녀석들이 대가를 치룰 차례였다. 지로 역시 울드의 말에 동조하였다.

"마키시마는 미국에서 레지스탕스를 결성했다고 하고 그리고 케이는! 가이버 I 은 엄청난 파워 업을 이룩했어! 싸움은 지금 부터야."

"그런데 케이, 그 때 그 거인은 대체 뭐야?"

스쿨드가 제일 궁금해 하던 것을 물었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케이에게 집중되었다. 다들 대체 그게 뭔지 궁금해 죽을 지경이었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케이는 당황해 하였다. 그는 더듬거리며 간신히 대답하였다.

"그...글쎄? 뭐가 뭔지 나도 잘...."

"정말! 그게 말이 돼? 자기가 바로 그 거인이었으면서!"

케이의 맥 빠지는 대답에 스쿨드가 바로 핀잔을 주었다. 하지만 케이로서도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미나카미 산에서의 전투에서 정신을 잃은 후 어느 순간엔가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는 바로 여기 있었으니까. 게다가 그로부터 1년이나 시간이 지났다는 것도 놀라운데 자기가 처음 보는 거인으로 변해 있었다니? 그리고 오늘 새벽 전투에서 자신이 젝토올을 완전히 압도했다니, 케이는 전혀 모르는 얘기뿐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은 케이의 이런 반응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들이었지만 아키토는 그런 케이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케이는 아마 아무것도 모를 거야. 아마도 오늘 새벽의 전투는 케이는 무의식 상태로 전투를 한 것으로 생각돼."

"무의식 상태?"

아키토는 모두에게 천천히 설명하였다. 가이버는 식장자의 의식이 끊길 경우 식장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컨트롤 메탈이 강식장갑을 자체적으로 조종해서 외부의 위협에 대응하는 능력이 있다. 그런 식으로 식장자가 의식을 되찾을 때까지 강식장갑은 스스로 싸우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점이 하나 있다. 이전의 무의식 전투를 볼 것 같으면 강식장갑은 식장자의 생명을 보호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행동했었다. 상대가 누가 됐건 간에 식장자를 위협한다 싶으면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퍼부었던 것이다. 주위 사람들 같은 건 완전히 무시하였었다.

하지만 오늘 새벽의 싸움은 다르다. 사해 연구소에 있던 케이의 번데기가 별안간 일본 쪽으로 공간이동을 했고, 도착 직후에도 아키토와 린드가 핀치에 몰린 상황에서 갑자기 베르단디의 외침에 반응해서 깨어났고, 게다가 젝토올의 미사일 세례로부터 모두를 바리어로 지켜 주기까지 했다. 무의식 전투를 하는 가이버가 남을 지켜주다니, 이전까지의 무의식 전투에서는 볼 수 없던 행동이었다.

"꿈을 꾸고 있었어요. 지금까지 줄곧...."

"꿈이요?"

케이는 담담한 얼굴로 지금까지 자신이 꾸었던 꿈을 모두에게 얘기하였다. 무라카미가 죽는 장면에서 시작해서는 결국 자신도 죽어가는 그 악몽을. 그리고 뒤에 남겨진 베르단디들.... 1년 전 미나카미 산에서의 전투에서 하늘에 떠 있던 황금의 조아로드에 의해 튕겨진 메가 스매셔는 유적 우주선을 폭파시켰고 그리고 케이의 육체를 소멸시켰다. 자신의 몸이 소멸되는 순간 케이는 가이버가 되고 난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였다. 그러나 동시에 이대로는 죽을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베르단디를, 모두를 지켜주고 싶다. 그 누구도 희생시키고 싶지 않다.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 강한 힘을 원한다. 전 줄곧 그 생각만 했었던 것 같아요....."

"케이씨...."

베르단디는 감격해 하며 케이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케이의 말을 들은 아키토는 비로소 모든 걸 이해할 수 있었다. 아키토는 1년 전 미나카미 산에서 자신이 봤던 광경을 모두에게 말했다. 유적의 항행 제어구가 하나로 합쳐지더니 자신과 케이의 컨트롤 메탈을 끌어들이는 장면을.

"케이의 강한 의지를 접한 유적의 항행 제어구가 반응한 거라고 생각해. 그리고 강식장갑의 강식세포와 유적의 세포를 하나로 융합해서 그 거인을 만들어 낸 걸 꺼야."

"과연, 그렇게 생각하면 앞뒤가 맞는군."

린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키토의 의견에 동의하였다.

"조아로드와 대등하게 싸울 수 있으면서 동료들을 지켜줄 수 있는 절대적인 힘. 그것이 바로 케이의 새로운 육체인 그 거인이지."

"그런데 뭔가 폼 나는 이름 같은 거 없을까? 자꾸 그 거인, 그 거인 이라고만 하니까 왠지 좀 멋이 없는 것 같아."

뜬금없이 지로가 불쑥 '거인'의 명칭문제를 들고 나왔다. 그 말에 울드와 스쿨드가 즉시 반응하였다.

"가이버 주사로 쑥쑥! 빅Z!!"

이건 울드의 제안. 당연히 모두는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저 빅 Z란 울드가 즐겨 보는 어린이(...) 특촬물로서 히어로가 몸을 거대화 할 때 주로 쓰는 것이 주사기란 것이 특이한 점이었다. (때문에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아이들에게 마약 투여를 권장한다며 반대 운동까지 벌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거인은 주사로 커지는 것도 아니므로 전혀 관계없다.

"가이버 슈퍼 울트라 메카니컬 하이퍼 이그니션 파워 업 파츠!!"

이건 스쿨드의 제안. 이것 역시 단번에 각하. 너무 긴 건 둘째 치고 아무 의미 없는 단어의 나열일 뿐이었다.

"케이씨가 만든 거니까 케이씨가 정하는 게 옳다고 봐요."

베르단디가 웃으면서 모두에게 가장 상식적인 제안을 하였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다시 케이에게 집중되었다. 케이는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하였다. 갑자기 이름같은 걸 지으려니 케이로서는 난처할 수  밖에 없었다. 케이가 계속 끙끙대고만 있자 울드가 답답하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원 참. 그냥 빅 Z 로 하면 좀 좋아? 대충대충 하라고.”

“언니, 이름을 짓는다는 것은 자신을 나눠주는 아주 중요한 일이에요. 한 생명의 개성의 확정이자 각성이니까요.”

베르단디는 그렇게 울드에게 웃으면서 핀잔(?)을 주었다. 그러다 잠시 후 케이가 두 손바닥을 딱 치며 고개를 들었다. 뭔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 같았다.

"이건 어떨까요? 두 영어 단어를 합친 건데요. 우선, 거인이라고 하니까 gigantic(자이갠틱 : 거대한, 거창한) 이라는 단어. 그리고 제가 메가 스매셔보다 훨씬 강력한 스매셔를 쐈다고 했었죠? 그래서 메가보다 더 상수인 giga(기가 : 10억의)를 합쳐서 말하는 거죠."

"그렇다면....."

"기간틱.... 가이버 기간틱(Guyver Gigantic). 이건 어때요?"

케이의 말에 모두들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가이버 기간틱, 모두들 참으로 멋진 이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거인은 케이가 만든 것이니 만큼 그것의 이름을 지을 권리는 케이에게 있었다. 어차피 그런 걸 떠나서 모두들 기간틱이란 이름을 반대할 생각은 없었다. 이렇게 그 거인의 이름은 '가이버 기간틱'으로 결정되었다.

"그럼 그 때 쏜 스매셔는 메가가 아니라 '기가 스매셔'가 되는 거네?"

"딱 어울리는걸. 기간틱, 기가 스매셔.... 케이, 의외로 머리 잘 굴리잖아?"

".....그 의외로란 건 무슨 뜻이야."

울드의 말에 모두들 웃음을 터트렸다. 그 때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려대었다. 베르단디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숨어산다고 하면서 전화가 왔다는 것에 케이는 놀랐다. 숨어 산다면 연락처를 아무도 몰라야 하는 거 아닌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이 집에 전화를 걸어 오는 건 단 두 군데. 메구미가 전화를 하든가 아니면 천계에서 베르단디들에게 연락해 올 때 이다. 그리고 메구미가 지금 여기 있으므로 전화가 올 데는 단 한곳뿐이다.

"아, 페이오스. 오랜만이야."

역시나 천계의 전화였다. 잠시 전화 통화를 하던 베르단디가 울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언니, 페이오스가 오늘 새벽에 있던 일을 물어보는데요? 혹시 천계에 보고 하는 거 깜빡 하신거에요?"

울드는 피식 웃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베르단디에게서 전화기를 넘겨받았다. 사실 오늘 새벽의 전투 같은 일은 천계에 긴급 사항으로 보고해야 하는 일이었지만 울드는 일부러 보고하지 않았다. 나서서 싸울 생각은 안하고 웅크리고만 있는 천계에 대해 일종의 심술을 부린 것이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건 직무 태만으로 징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일이었지만. 울드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통화를 하였다.

"왜 전화했어?"

그러자 수화기 너머로 페이오스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왜 전화했냐니! 그게 지금 할 소리야! 오늘 새벽에 있었던 그 엄청난 플라즈마 현상은 대체 뭐야! 그리고 그 격렬한 전투는 또 뭐고! 게다가 왜 전화는 지금까지 안 받았던 거야!"

울드는 '짜증나서 전화선 빼 버렸었다'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그냥 목구멍에서 삼켰다. 그랬다간 위에서 무슨 징계를 내릴지 알 수 없으니까. 그냥 이 일대 전화선이 잠시 먹통이 되었었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2급신인 울드는 거짓말을 거리낌 없이 하였다. 참고로 울드가 빼 놨던 전화선은 사정을 모르는 핫세가 다시 연결해 놓았다.

하여튼 페이오스의 말을 들어보니 천계 역시 지금 난리가 난 상태였다. 오늘 새벽, 천계 역시 도쿄 상공에서 거대한 플라즈마 반응을 확인하였다. 그 위력은 천계가 자랑하는 결전 병기, '궁그닐'의 위력을 월등히 초월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 게 지상계에서 관측되었으니 천계로서는 그게 크로노스가 만든 새로운 무기인줄 알고 공포에 질려 있다는 것이었다. 하긴 그런 일이 일어났는데 천계가 놀라지 않을 리가 없지. 울드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했다.

"윗사람들한테 가서 딱 한마디만 해. 기간틱, 가이버 기간틱이 나타났다고 말이야."

-"기간틱? 그건 또 무슨...."

"보고서는 나~ 중에 작성해서 올릴께. 안녕~~"

울드는 그 즉시 전화를 끊고는 전화선을 다시 뽑아버렸다. 그리고 전화기에다 대고 혀를 내밀며 매롱을 하였다. 그런 울드의 행동을 의아하게 바라보는 모두에게 울드는 한 마디만 하였다.

"뭐 어때서? 재밌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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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도쿄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베루더는 전화로 마계 정보부와 전화 통화를 하고 있었다. 아키토를 따라 사해로 온 그는 아키토가 그 번데기와 같이 사라져 버리자 그대로 다른 레지스탕스 대원들과 함께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고 말았다. 그와 다른 대원들이 미국 본부로부터 받은 지령은 일단은 현지에서 대기하라는 것뿐이었다. 베루더는 그 때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쫓아갔어야 했다며 후회하였지만 이미 버스는 떠난 뒤였다.

"결국 난 아무것도 없는 이곳에서 저 남정네들과 같이 숨어 지내야 한다는 건가?"

-"일단은...그러셔야 합니다."

"나도 일본으로 가면 어떨까?"

-"거기에 대해서는 위에서 지침이 하달됐는데 일본 지역은 마라님이 정찰해 보기로 하셨습니다."

그 말을 들은 베루더는 한숨만 푹 내쉬었다. 마라는 원래 정보부 소속도 아닌데 어쩌다 보니 인간계의 일본지역에 체류하는 기간이 늘어나서 얼김에 정보 수집임무에 투입된 것에 불과했다. 전문 요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전투력이 막강한 것도 아니고, 한술 더 떠 베루더가 보기에는 어딘가 좀 모자라는 구석까지 보여서 무척 걱정되었다. 그러나 마계는 가능한 한 추가로 요원을 파견하는 것은 자제하고 있었다. 만에 하나 크로노스와 교전이 벌어져서 신변에 무슨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만약 지상계 파견 요원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길 경우 타블렛 계약이 되 있는 천계의 누군가가 희생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천계가 가만 있을 리 없었기 때문이었다.

"천계에서는 뭐 반응 없고?"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아마도 우리와 같겠지요."

마계 역시 도쿄 상공에서 벌어진 그 '거인 식장'의 출현에 경악해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거인이 발사한 빔포의 위력은 마계 전체를 충격에 빠트릴 정도였다. 도쿄 상공에서 벌어졌던 플라즈마 현상의 에너지 크기가 상상을 초월했던 것이다.

"알았다. 그렇다면 대기하고 있지, 뭐. 후우~ 젠장맞을.... 여긴 너무 깡촌인지라 놀 만한 장소가 없어. 전화도 잡화점에 있는 낡은 전화 한대가 다라고."

-"지금 자신의 입장을 생각하시길."

"알았어, 알고 있다고. 젠장, 난 뭐 농담도 못하냐.

베루더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딱딱한 억양에 눈살을 찌푸렸다. 활달하다 못해 좀 덜렁대기까지 하는, 정보부 요원으로서는 좀 자격미달이랄 수 있는 성격의 베루더에게는 이런 벽촌 생활을 못 견뎌 했다. 하지만 어차피 베루더를 포함한 레지스탕스 요원들은 싫어도 조만간 여길 떠나야 한다. 가구 수가 얼마 안 되는 이런 마을에서는 외국인인 이들은 너무 눈에 잘 띄었다. 일단은 미국에서 온 다큐멘터리 제작진이라고 둘러대기는 했지만 여기 오래 머물다가는 꼬리가 밟히고 만다. 베루더는 위장 목적으로 목에 걸고 있는 카메라를 만지작거리면서 수화기에 대고 말했다.

"다음 연락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어. 또 마을에 자리 잡는다는 보장이 없거든. 하여간 사정이 되면 연락하지. 별로 연락할 거리도 없다고 본다만."

-"조심하십시오."

거기까지 말한 베루더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가게 주인에게 백 달러 지폐 두 장을 '통화료'로 내었다. 마계로 거는 전화는 인간계 전화국에 기록이 남지 않으므로 통화료가 나오지 않지만 어쨌든 돈은 내야 했다. '국제 전화'라고 해도 베루더의 통화시간이 겨우 몇 분 정도라는 걸 봤을 때 이백달러는 너무 비싼 돈이었지만 가게 주인이 그 정도는 내야 한다고 고집을 부리니 아쉬운 입장에서는 줄 수밖에 없었다. 베루더는 투덜거리며 잡화점 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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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 베르단디랑 모두가 그 폭발 속에서도 살아 남았다는 게 말이야."

식사 후 케이들은 과일 등을 후식 삼아 먹으며 다시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리고 케이는 모두에게 그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물었다. 솔직히 케이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유적 우주선이 대폭발을 일으키는 그 와중에도 어떻게 다들 이렇게 무사히 살아 있을 수 있었을까. 사과를 깎던 베르단디가 잠시 손을 멈추고는 미소 지으면서 대답하였다.

"케이씨 덕분이에요."

"나? 내가? 난 아무것도..."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정황상 네가 한 거라고 밖에는 볼 수 없다."

린드까지 가세해서는 케이가 한 일이라고 하자 케이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케이에겐 어떤 기억도 없었다. 우주선이 폭발할 당시엔 그것까지 신경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케이 역시 전신이 소멸되고 있었으니까. 베르단디와 린드가 차근차근 설명해 주었다.

일단 그 때 우주선이 폭발했던 당시 베르단디들 역시 순간이동 법술 같은 걸 구사할 여유가 없었다. 다들 꼼짝없이 이대로 죽는구나 싶던 그 순간 모두를 새하얀 빛이 뒤덮었었다. 우주선이 폭발하는 섬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어느 샌가 그들은 우주선 안이 아닌 엉뚱한 장소에 있었다. 천국이나 지옥이 아닌 인간계, 그리고 그 장소도 베르단디들이 아주 잘 아는 장소였다. 바로 몇 년간 케이와 베르단디들이 함께 살아왔던 집, 타력본원사 앞마당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부터는 순전히 추정이지만 아마도 케이는 우주선이 12신장에게 집중공격을 받기 시작하자 전황이 극도로 불리하다는 것을 깨닫고는 모두를 탈출시켜야 한다는 생각을 무의식중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때까지만 해도 케이와 유적 우주선의 항행 제어구는 정신적으로 연결돼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케이의 의지를 수신한 유적 우주선이 최후의 힘을 쥐어짜내 마지막 순간 안에 타고 있던 베르단디들을 밖으로 순간이동 시켰던 것이다. 이들이 이동된 곳이 케이와 베르단디들의 추억이 서려 있는 타력본원사 앞마당 이었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일단 탈출은 성공했지만 이들은 타력본원사에 머물 수는 없었다. 그 곳은 이미 크로노스에게 들킨 곳이었기 때문에 언제 다시 놈들이 들이닥칠지 몰라 모두는 서둘러 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그 후 메구미의 도움을 받아 인적이 비교적 드문 이곳의 투룸을 임대해서 지금까지 1년 동안 숨어 지냈던 것이다. 케이와 아키토의 귀환을 기다리며...

"에헤헤~ 사실은 여기를 마련한 건 내가 아냐. 나 역시 베르단디들을 도울 입장이 못됐는걸."

메구미는 멋쩍은 듯 혀를 삐쭉 내밀었다. 크로노스의 지구 제압 이후 가이버 I, 케이의 친동생이었던 메구미 역시 크로노스의 집중 감시 대상이 되었기 때문에 함부로 행동할 수가 없었다. 자칫 잘못하다가는 베르단디들의 목숨이 위험했던 것이다. 게다가 학생 신분인 메구미는 베르단디들이 숨어 지내는데 필요한 자금을 대 줄 능력이 없었다. 제압 이후 지로와 베르단디 네의 예금 계좌는 크로노스에 의해 모조리 동결되었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녀 역시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했다. 일단 크로노스에게 노출되지 않았으면서도 이들을 맘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충분하게 도와줄 수 있으면서 비밀을 확실하게 지켜줄 수 있는 믿음직한 조력자에게.....

"에엑?! 그래서 사요코에게 부탁한 거야?"

메구미의 입에서 사요코의 이름이 나오자 케이는 깜짝 놀랐다. 확실히 사요코라면 이들을 도와줄 수 있다. 재벌가의 무남독녀 외동딸이니 동원 가능한 자금이야 충분하다 못해 넘쳐흐르고 있고 가이버니 조아노이드니 이런 것과 얽힌 적도 없으니 크로노스가 의심하지도 않는다. 게다가 어떤 일을 해도 그녀는 손가락 까딱 하는 일 없이 아랫사람들에게 시키면 되니까 그녀 자신이 위험에 노출될 일도 없다.

물론 사요코는 처음에는 거절 했다. 원래 베르단디를 라이벌로 여기고 있던 것도 있지만 베르단디들이 크로노스의 지명 수배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더더욱 협력하기를 꺼려했다. 이들을 돕는다는 것은 사요코뿐만 아니라 그녀의 가족까지 위험해질 뿐만 아니라, 그룹에까지 치명타를 가할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베르단디가 몰래 찾아가서 간곡히 부탁하니까 도와주기로 했어. 그래서 이런 은신처도 구할 수 있었고 1년간 베르단디들이 숨어 지낼 수 있도록 물질적으로 충분하게 지원해 주기까지 했지."

"원래 사요코 씨는 따뜻한 마음씨를 가지신 분이니까요. 겉으로는 아닌 척 해도 언제든지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마음을 가지고 있는 분이세요."

베르단디와 메구미의 설명을 들었어도 케이는 아직까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 사요코가? 언제나 베르단디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그 사요코가? 하지만 그건 케이의 일종의 편견이었다. 사실 사요코는 베르단디를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인정하고 있던 것이다. 물론 본인은 겉으로는 절대 그런 티를 안 내지만.

"음...그렇다면 다른 연구원 분들은 어디 계셔? 함께 빠져나왔잖아? 하야미 씨나 다른 분들은...."

"그...그건..."

같이 탈출했던 최하층 스텝들 얘기가 나오자 다들 갑자기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케이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베르단디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떠나셨어요....그 날, 탈출 직후에...."

최하층 스텝들은 타력본원사에서 베르단디들과 헤어졌다. 최하층 스텝까지 함께 지내려고 하면 인원수가 너무 많아 들킬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건 부차적인 이유였고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들은 그동안 품고만 있던 계획을 실행에 옮기려 했던 것이다.

"그 계획이란 게 뭔데?"

"생존을 위한....몸부림이라고나 할까...."

울드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하였다. 이들은 떠나면서 베르단디들의 짐 속에 몰래 편지 한통을 넣어두고 갔다. 베르단디들이 나중에 은신처에서 편지를 발견했을 때 이들은 그것을 읽어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크로노스에서 부리는 연구원들은 거의 모두가 다 미조제의 보통 인간들이다. 조아노이드라면 사념파로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지만 보통 인간에게는 조아로드의 사념파가 통하지 않는다. 그런 연구원들을 강제로 복종시키기 위해 크로노스는 연구원들에게 일종의 바이러스를 주사하였다. 이 바이러스는 처음에는 뇌세포를 활성화 시키는 작용을 한다. 쉽게 얘기해서 머리 회전이 빨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이 바이러스는 폭발적으로 증식해서 뇌세포를 완전히 파괴해 버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투여 받은 사람은 그대로 미쳐버리고 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종의 시한폭탄을 연구원들에게 심어둔 것이다. 오다기리를 포함한 최하층 스텝들 역시 예외 없이 그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었다.

이 바이러스를 억제할 수 있는 왁찐이 있는데 이것을 정기적으로 주사 받으면 바이러스의 폭발적 증식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크로노스는 그 왁찐을 가지고 연구원들을 위협했던 것이다. 엉뚱한 생각을 품은 '반동분자'에게는 왁찐의 공급을 중지해 버리면 되니까. 오다기리들은 처음에는 그 왁찐의 제조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왁찐의 제조방법 등은 철저히 비밀이었고 크로노스는 왁찐을 나눠줄 때도 그때그때 필요한 양만을 주었기 때문에 연구에 쓸 만한 여분도 거의 없었다. 이들은 오랜 세월동안 왁찐의 배양에 몰두했지만 결국 실패하였다.

바이러스를 완전히 무력화 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조아노이드로 조제를 받으면 바이러스는 그대로 무력화가 되고 만다. 그러나 조아노이드로 조제를 받게 되면 결국 12신장의 사념파에 완전히 지배당하게 되므로 오히려 자살골을 넣는 셈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그래서 오다기리들이 유적 기지에서의 탈출 작전을 세웠을때 이들 스텝들은 모두 최악의 경우를 각오하고 있었다.

"편지의 마지막에는 한번 해보고 싶은 방법이 있다고만 적혀 있었어. 그리고 성공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말도 같이 적혀 있었고....."

지로는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1년 동안 아무런 소식도 없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들의 그 계획은 실패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모두는 침통한 얼굴이 되었다. 스쿨드는 고개를 돌려 방구석에 마련한 조그만 탁자위에 놓인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탁자위에는 죽은 오다기리와 무라카미의 영정 사진과 위패, 유적기지 최하층 스텝들의 단체 사진이 액자에 담겨 있었다. 사진 속의 미소 짓는 오다기리의 모습을 본 스쿨드의 눈가에 이슬이 맺히기 시작했다. 베르단디는 그런 스쿨드를 뒤에서 꼭 끌어안으며 위로하였다.

"하지만 전 믿고 있어요. 그분들 역시 어딘가에 살아 계시리라고요."

베르단디는 아직까지 그들의 생존을 굳게 믿고 있었다. 1년 동안 소식이 없다는 것은 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겠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계획이 성공해서 이들이 지금까지 살아 있으면서도 베르단디들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어서 연락을 못하고 있는 거라고 볼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미 죽은 무라카미나 오다기리의 사진 옆에는 위패가 있었지만 나머지 스텝들의 위패는 없었다. 생존을 믿고 있기에 베르단디가 위패를 놓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

케이는 고개를 돌려 그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굳게 결심하였다.

'이어 받겠습니다. 여러분의 의지를, 그 불타는 영혼을, 인간을 지키기 위한 싸움을 이어받겠습니다..... 지켜 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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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리조나 그랜드캐년에 위치한 크로노스의 본부기지, 그 최하층에 위치한 최고 간부회 12신장 전용 회의실인 '천구의 방'에 12신장 멤버들이 대형 원탁을 중심으로 빙 둘러 앉아 있었다. 물론 전부 다 온 것은 아니었다. 푸르크슈탈은 현재 일본에서 요양 중이었고 총수인 알칸펠도, 그리고 숙청된 규오를 대신해 새로 임명된 신장 멤버도 역시 오지 않아서 전부 9명이 있을 뿐이었다. 지금은 발카스가 일본에서 직접 모아온 정보를 모두에게 브리핑하는 중이었다.

"다들 중앙을 봐 주게."

발카스가 컨트롤 패널을 조작하자 원탁의 중앙에 3차원 입체 영상이 투영되었다. 투영된 영상을 본 신장 멤버들은 깜짝 놀랐다. 이제까지 듣도 보도 못한 거인이 나타나 있었다. 이 영상은 푸르크슈탈의 기억을 토대로 합성한 것으로서 며칠 전에 도쿄 상공에서 일어난 강렬한 플라즈마 현상은 바로 이 녀석이 일으킨 것이라는 발카스의 설명이 이어졌다. 푸르크슈탈의 증언에 따르면 이것은 가이버의 '강화형'이거나 최소한 가이버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신장 멤버들은 이 거인의 이마에서 가이버의 컨트롤 메탈과 '매우 흡사한' 물체를 보고 또 한 번 놀랐다.

"상세한 내용은 각자 앞에 있는 개인 디스플레이에 있으니 참고하게나."

신장 멤버들은 각자 탁자 앞에 있던 개인 디스플레이를 조작하였다. 여기저기서 놀라움의 탄성이 들려왔다. 주로 젝토올과의 전투 기록이었는데 그 때 당시 도쿄 상공에서 관측된 플라즈마 반응의 에너지 위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가이버의 메가 스매셔와 비교했을 때 그 백배에 달하는 에너지가 관측되었다는 것이다. 저게 진짜 가이버라면 그야말로 엄청난 파워업을 이룩한 것이었다.

"이 일이 있기 바로 전에 사해 연구소에서 예의 그 '번데기'가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마도 그거와 모종의 관계가 있는 듯 합니다."

신이 모두에게 보충 설명을 하였다. 정황상 그 번데기에서 저 거인이 튀어 나왔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저걸 보면 아무래도 가이버들은 살아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1년 전 미나카미 산에서 알칸펠의 공격을 뒤집어쓰고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참으로 질긴 놈들이었다. 모두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그래, 가이버들이 살아 있다고?"

갑자기 회의실 안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그들은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그 곳에는 놀랍게도 알칸펠이 서 있었다. 놀란 신장 멤버들이 서둘러 일어서서는 예를 갖추었다. 제압 후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던 알칸펠이 갑자기 나타나자 모두들 깜짝 놀랐다. 하지만 알칸펠은 이런 식으로 갑자기 나타났다가 사라졌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므로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었다. 알칸펠은 원탁의 한 가운데에 있는 '거인'의 입체영상을 흥미 있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재미있군. 그렇다면 지금 부터는 네가 나서야 할 때인 것 같구나."

알칸펠은 고개를 살짝 뒤로 돌리며 말했다. 알칸펠의 뒤 쪽에 또 다른 누군가가 서 있었다. 검은 장발의 남자였는데 얼굴에는 짙은 검은색 바이져를 쓰고 있었다. 이 사람이 바로 알칸펠이 직접 임명한 새로운 신장 멤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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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알았다. 일단은 난 여기 며칠 더 머물러야 할 것 같으니까 그 때까지는 일체의 작전 행동을 하지 마라."

아키토는 미국의 레지스탕스 본부에 전화로 그 간의 상황보고를 받으면서 동시에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전력의 핵심인 아키토가 빠진 상태였으므로 레지스탕스 대원들은 당분간은 적극적인 공격작전을 벌일 수가 없게 되었다.

케이는 요 며칠간 이곳에서 상황 파악에 분주하였다. 이제부터 크로노스와의 정면 대결을 벌여야 할 순간이었다. 크로노스는 이제 더 이상 어둠속에 숨어 암약하는 비밀결사가 아니라 전 세계를 지배하는 거대한 힘이었다. 크로노스는 민중들의 마음속을 교묘하게 파고 들어가 그 저항의지 자체를 꺾어나가고 있었고 민중들을 굴복시켜 나갔다. 이렇게 불리한 상황에서 그들과의 싸움은 신중하게 해 나가야 했다.

"작전 개시는 오늘 밤이다. 목표는 클라우드 게이트."

아키토는 모두에게 선언하였다. 그 말에 모두들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크로노스에 대해 반격을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고 반격의 주체는....

"케이! 잘 해보라고. 기간틱의 힘을 보여주는 거야."

"드디어 시작이군. 기간틱이라면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선배라면 잘 해낼 거라 믿어요."

다들 케이의 새로운 힘, 가이버 기간틱에 거는 기대가 컸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할 적의 본거지에 대한 정면 공격을 기획할 정도였다. 게다가 일본 지부 통제국사 클라우드 게이트에는 조아로드까지 있다! 대 조아로드용 식장 기간틱의 위력을 테스트 해볼 절호의 기회였다.

"메구미, 그건 어떻게 됐어?"

"응? 아, 타카노씨 말이지? 걱정 마. 이미 피신하셨다고 연락이 왔어."

메구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리며 대답하였다. 메구미는 케이의 생존을 확인하자마자 고향으로 달려가서 어머니인 타카노 에게 케이의 귀환을 알렸다. 그리고 즉시 집을 떠나 몰래 마련한 은신처로 숨게 하였다. 크로노스에게 승부를 걸어서 가이버의 건재함을 과시하게 되면 그 가족인 타카노 역시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어서 메구미가 즉시 손을 쓴 것이다. 이번에도 사요코의 도움이 매우 컸음은 물론이다.

"아마도 나 역시 이젠 다시 집중 감시대상이 될 지도 모르겠어. 그렇게 되면 아마도 거의 못 올 꺼야."

"메구미..."

"에이~ 케이, 그런 표정 짖지 말라고. 빨리 놈들을 물리쳐서 이 동생을 해방시켜 주면 되는 거야. 알겠어?"

케이는 잠시 안쓰러운 얼굴로 메구미를 보다가 이내 미소 지었다. 메구미는 역시 강했다. 아마도 사막 한가운데 던져놔도 넉살 좋게 살아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였다.

"케이씨...."

베르단디는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두 손을 꼭 모아 쥐고 있었다. 이제부터 처절한 싸움을 전개할 케이가 너무나 걱정되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녀도 가이버 기간틱의 위력을 똑똑히 봤지만 그래도 상대가 너무나 강한 놈들인지라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케이는 그런 그녀의 어깨에 살며시 손을 올리며 말했다.

"걱정 마, 베르단디. 꼭 무사히 돌아올께."

"네. 케이씨라면 분명히 잘 해내시리라고 믿어요. 이제까지 그 어떤 역경도 견뎌내신 분 이시니까요."

베르단디는 불안을 떨쳐버리려는 듯 환하게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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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와 아키토는 가이버로 변신한 채로 어느 건물 옥상위에 올라가 있었다. 이들의 눈에 저 멀리 우뚝 솟아올라 위용을 과시하고 있는 클라우드 게이트의 모습이 비쳤다. 오늘의 목표는 클라우드 게이트에 있는 12신장 멤버중 한명인 푸르크슈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닥터 발카스도 있었다고 하는데 그 녀석은 사해로 갔다더군. 그런고로 지금은 푸르크슈탈이란 녀석 혼자 뿐일 터. 일단은 그 놈이 목표다."

공격 작전은 비교적 단순하다. 우선 케이가 기간틱으로 변신해서 클라우드 게이트에 정면 공격을 가한다. 그러면 크로노스는 요격부대를 내 보낼 거고 그 혼란을 틈타 아키토가 몰래 클라우드 게이트에 잠입해서 푸르크슈탈의 소재를 찾는다. 푸르크슈탈을 찾게 되면 케이는 다른 놈들은 모두 무시하고 곧장 그 곳으로 가고 아키토는 그 동안 푸르크슈탈이 어디로 도주하지 못하게 놈의 발을 묶어둔다. 이것이 오늘의 계획이었다.

"그럼 시작하자. 케이, 최대한 멋지게 해 보라고."

아키토는 그대로 빌딩 아래로 몸을 날렸다. 아키토의 모습은 이내 보이지 않았다. 아키토가 클라우드 게이트로 출발하고 약 5분후에 케이가 공격을 시작하기로 되 있었다. 케이는 초조한 마음으로 5분을 기다렸다. 케이는 천천히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가다듬었다. 긴장되기는 했지만 두려운 마음은 없었다. 그는 베르단디의 격려를 떠올리며 초조한 마음을 진정시켰다.

이윽고 5분이 지났다. 케이는 정신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키이잉!

케이의 이마에 있는 컨트롤 메탈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의 등 뒤쪽 공간이 일그러지기 시작하더니 무언가가 공간이동을 해 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케이의 뒤쪽에 번데기가 출현하였다. 케이가 힘차게 외쳤다!

"가이버!! 기간틱!!!!"

-투오오옹!!!

번데기가 전개되면서 가이버의 새로운 갑옷, 가이버 기간틱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기간틱이 케이의 몸을 둘러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케이의 컨트롤 메탈과 기간틱의 듀얼 컨트롤 메탈이 합체 되면서 드디어 케이의 2단 변신이 완료되었다.

-키이잉! 푸슈우욱!!

입 양쪽의 공기 흡입구에서 공기가 빠른 속도로 순환하였다. 합체가 완료되자 케이는 고도를 낮게 잡고 클라우드 게이트 쪽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고도를 낮게 잡자 밑에 있던 사람들이 케이의 모습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시민들은 처음 보는 물체가 클라우드 게이트 쪽으로 날아가자 우왕좌왕 하기 시작했다. 낮게 날아가는 이유는 시민들에게 이렇게 기간틱의 존재를 과시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




"크리쳐(Creature: 정체불명의 생물) 접근! 곧장 이쪽으로 날아오고 있습니다!"

"요격부대 출동하라! 절대로 이곳에 접근시키면 안 된다!"

클라우드 게이트의 종합 관제실이 숨 가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기간틱의 요격을 위해 비행형 조아노이드 부대가 먼저 출격하기 시작했다. 건물 외벽에는 생체 열선포를 가진 바모아 부대가 모습을 드러내고 생체 열선포를 충전하기 시작했다. 클라우드 게이트의 요격 체계는 3단계로 구성되는데 일단 하늘을 날 수 있는 비행형 조아노이드 부대가 1차 요격을, 그리고 건물 외벽에서 생체 열선포로 일종의 대공화망을 구성하는 바모아 부대가 2차 요격. 마지막으로 건물 안으로 침입한 적에 대해서는 내부에 대기 중인 하이퍼 조아노이드 보안 부대가 나서는 방식이었다.

푸르크슈탈은 관제실의 최고 간부 자리에서 요격 작전이 진행되는 상황을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푸르크슈탈은 놈들이 이곳에 올 거란 것은 예전부터 짐작하고 있던 만큼 별로 놀라진 않았다. 그리고 조아노이드 부대로는 놈을 막을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쪽은 비장의 카드가 있다. 그는 고개를 살짝 돌려 뒤에 서있는 남자를 응시하였다.

"놈들이 나타났군. 곧 자네 차례가 올 거야."

"....."

짙은 바이저를 쓰고 있는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전면의 대형 스크린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1차 요격 부대가 적과 접촉! 곧 전투에 들어갑니다!"

관제요원의 보고가 들리자 푸르크슈탈은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제부터 본 게임에 앞서 '오프닝 쇼'가 벌어질 참이었다.






**********************************************






"카아아악!"

저 멀리 수많은 비행형 조아노이드가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케이는 일반 시민들이 싸움에 휘말려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고도를 높였다. 그리고 선두에 날아오는 적을 향해 헤드빔을 발사하였다.

-푸슝! 푸슝!

기간틱의 이마에 있는 3개의 생체 레이저 발사장치에서 연속으로 헤드빔이 발사되었다. 가이버 I 때보다 훨씬 강력해진 빔포의 연속 사격에 조아노이드들이 속수무책으로 격추되었다. 그러나 수가 너무 많아 전부 다 잡을 수가 없었다. 조아노이드들이 사방으로 퍼져서 케이를 포위하였다. 그리고 전부 한꺼번에 케이를 향해 날아들기 시작했다.

-스릉!

케이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양 팔의 고주파 소드를 전개하였다. 조아노이드들이 사정거리 내에 접근하자 케이의 고주파 소드가 길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촤악! 슈칵!

"끼에에엑!!"

"카아아!!!"

고주파 소드가 아주 길게 늘어나면서 채찍처럼 후방과 측면으로 접근하던 조아노이드들을 후려쳤다. 기간틱의 고주파 소드는 가이버 I 의 그것과 달리 자기 신장보다 몇 배나 길게 늘어날 수 있었고 그 궤도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었다. 전방으로 발사되는 헤드빔의 탄막사격과 양팔의 고주파 소드의 현란한 검무에 조아노이드 요격 부대는 추풍낙엽이었다. 조아노이드들은 케이의 근처도 접근해보지 못하고 우수수 떨어지고 있었다.

케이는 앞이 확 트였음을 느꼈다. 1차 요격 부대를 돌파한 것이다. 잠시 후 케이의 눈에 빌딩 밖으로 몸을 드러낸 바모아 부대가 보였다. 바모아들이 먼저 선제공격을 걸어왔다.

-푸슝! 푸슝!

-파지직!

수많은 바모아들의 생체 열선포 공격이 날아왔다. 케이는 바리어를 전개해서 그 공격을 가볍게 받아내었다. 그리고 입 부분의 보호판을 열고 소닉 버스터를 가동시켰다.

-큐우우웅!!!

"끼에에엑!!"

가이버 I 의 소닉 버스터 보다 더 넓은 범위를 공격할 수 있는 기간틱의 소닉 버스터 공격에 바모아 부대가 순식간에 소멸해 버리고 말았다. 케이는 그대로 빌딩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건물 외벽에 전개된 다른 바모아 부대에게 공격을 퍼부었다. 케이는 양 손을 복부에 모아 프레셔 캐논을 준비하였다. 기간틱의 프레셔 캐논은 최대 출력으로 한 점에 에너지를 집중시켜 발사할 경우 클라우드 게이트를 붕괴시킬 수 있을 정도이다. 그와는 반대로 위력을 떨어트린 여러발의 중력탄으로 쪼개서 동시에 다수의 목표를 공격하는 것도 가능하다. 케이는 바로 후자의 공격 방식을 택했다. 기간틱의 양 손에서 에너지가 모이더니 순식간에 수십발의 중력탄이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퍼퍼엉!!

"꾸에에엑!!"

단 한 번의 공격으로 2차 방어망까지 전멸되었다. 무수히 많은 중력탄이 명중한 클라우드 게이트의 곳곳에서 검은 연기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케이는 그대로 전속력으로 건물 안으로 돌진해 들어갔다.

-콰쾅!!!

기간틱의 돌진력 앞에 클라우드 게이트의 외벽은 허무하게 뚫려 버렸다. 건물 안으로 돌입한 케이는 그대로 앞으로 달려 나가며 눈앞에 보이는 모든 조아노이드들을 쓰러트려 버렸다. 바로 그 때였다.

"크르릉!!"

"쿠우우우...."

케이의 앞을 막아서는 일단의 조아노이드 부대가 보였다. 헤드 센서에는 이들의 생체 에너지 반응이 상당히 높게 나왔다. 마지막 요격 부대, 하이퍼 조아노이드 보안 부대가 틀림없었다. 보통의 조아노이드를 훨씬 뛰어넘는 능력을 가진 하이퍼 조아노이드만으로 구성된 부대이니 만큼 이들의 전투력은 상당히 높았다. 그러나!

-위이잉!

케이는 주먹을 꽉 쥐고 그곳으로 힘을 모았다. 주먹에 있는 에너지 앰프가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케이는 그 상태 그대로 하이퍼 조아노이드들을 향해 주먹을 힘껏 뻗었다.

-퍼어엉!!

강력한 충격파가 하이퍼 조아노이드들을 덮쳤다. 그 충격파를 정통으로 맞은 하이퍼 조아노이드들은 그대로 뒤로 튕겨져 나갔다. 이들은 이렇다 할 공격도 못해보고 단 한방에 전멸해 버리고 말았다. 기간틱의 충격파는 하이퍼 조아노이드들을 전멸 시킨 것으로도 모잘라 복도의 벽면 전체를 완전히 붕괴시켜 버렸다. 거대한 클라우드 게이트 전체가 심하게 진동할 정도였다.

-"케이."

"마키시마 선배?"

그 때 케이의 머리에 아키토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이버끼리 가능한 가이버만의 텔레파시 통신이었다.

-"놈이 있는 곳을 찾았다. 몸 풀기는 그 쯤 하고 이곳으로 바로 와."

"알겠습니다."




**************************************





"저...전멸입니다! 하이퍼 조아노이드 부대 전멸!!"

"으으...! 도저히 안되겠습니다! 전투력의 차원이 다릅니다!!"

순식간에 3차 방어망까지 전멸해 버리자 클라우드 게이트의 종합 상황실은 패닉 상태에 빠져 들었다. 수많은 조아노이드 부대를 단숨에 전멸시켜 버리는 적의 압도적인 힘에 모두들 경악하였다. 단 한 사람,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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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더경님의 댓글

베이더경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복제인간인가? 아니면 반동분자 배신자인가? 허허허. [궁금모드 쿨럭!]

그나저나 약 4편 정도면 가이버님의 아바타가 등장할 차례인데..

동생의 마구마구 다운로드 작전으로 인해 컴터의 본체가 치명적인 바이러스의 어택을 받은 듯.....

저번 주부터 해서 오늘까지 컴터로 아무것도 못하고 있다는.[고치는 날짜가 언제인지도 불확실한지라..]

에고고 여하튼 빨리 돌아오길 기대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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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버님의 댓글

가이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거야 뭐 5화 보시면 해소될 의문입니다. ^^;;; 기대해 주시길...(퍽!)
그건 그렇고 저 나오려면 4화나 기다려야 합니까....orz 힘내시길....^^


기왕이면 컴터는 각자 쓰는게 제일 좋아요. -_- 돈 좀 깨지지만 그게 제일 속편하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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