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식장갑 가이버 제2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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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
제23화 - 붕괴의 카운트다운 -
미나카미 산의 정상 부분은 마치 일부러 깎아 낸 듯이 상당히 평평한 곳이다. 그 곳에는 잘 위장된 출입문이 있었고 그 주위를 두 명의 보초가 지키고 있었다. 상공에 먹구름이 끼는 게 왠지 재수가 없어 보인다며 이들은 투덜거렸다. 사실 지금 이 두 사람은 좀 저기압 이었다.
"쳇! 도대체 밑에선 뭐하는 거야? 벌써 한 시간이나 더 서있었다고!"
"뭐, 좋게 생각하자고. 밑에선 무슨 난리가 난 거 같으니까 말이야. 여기 있으면 그 소동에 말려들 일은 없잖아."
그렇게 말하는 그도 다소 언짢기는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예상외의 초과 근무 같은 건 하기 싫은 법이다. 밑에 전화를 해 봐도 지금 비상이 걸렸으니 계속 근무를 서라는 얘기뿐이었다. 상황을 봐서는 교대가 오기는 할런지도 의심스러웠다.
-쿠르릉!
멀리서 천둥 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먹구름이 잔뜩 끼는 게 아무래도 한바탕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근무 더 서는 것도 짜증나는데 비까지 내리냐며 이들이 투덜거렸다. 그 때였다.
-콰콰쾅!!!!
"으악!!"
갑자기 이들 앞의 공터에 벼락이 떨어졌다. 벼락을 맞을 만한 나무나 시설 같은 게 아무것도 없는데도 갑자기 벼락이 친 것이다. 엄청난 빛으로 인해 두 사람은 잠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시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두 사람은 벼락이 떨어진 장소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자리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누..누구..!"
그러나 곧이어 그들의 눈을 보자 두 사람은 다리의 힘이 풀려버린듯 그 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보초들은 강력한 사념파에 압도된 것이다. 벼락과 함께 나타난 사람들은 모두 9명. 바로 크로노스 최고 간부, 12신장의 나머지 멤버들이었던 것이다. 규오가 가장 우려하던 일이 마침내 벌어지고 말았다.
"여기가 미나카미 산이군."
이들은 미국 애리조나의 크로노스 본부기지에서 회의를 마치자마자 바로 이곳까지 공간이동을 해 왔다. 나머지 신장 멤버 9명이 모두 이곳 미나카미 산으로 온 이유는 단 하나, 반란을 꾀하고 있는 리헐트 규오를 숙청하기 위해서 이다. 감히 주군이신 알칸펠에게 반기를 들려 한 죄는 백번 죽어 마땅했다. 비록 규오는 가장 마지막에 조재되었고 그 덕분에 12신장 멤버들 중 가장 최신 기술을 적용해서 만들어져서 전투력이 상당히 높았지만 그래도 여기 모인 9명을 전부 다 상대할 수준은 절대 아니었다. 그런데도 어처구니없이 반란이라니.
처음에 닥터 발카스에게서 온 전문을 받아보았던 이들은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너무 황당해서 처음엔 발카스가 농담하는 줄 아는 신장 멤버도 있을 정도였다. 백보 양보해서 자기들 9명은 그렇다 치더라도 규오 따위가 감히 알칸펠에게 반기를 들다니. 알칸펠은 이들에겐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말이 좋아 같은 조아로드지 알칸펠은 이들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존재인 것이다.
"뭐, 무리도 아니지. 규오는 알칸펠의 위엄을 접하지 못하고 12신장이 되었어. 그러니 감히 알칸펠에게 반기를 들 생각도 하지."
"하긴, 그럴 수도 있죠."
"후후후. 원래 무식한 놈이 용감한 법일세."
신장 멤버들중 가장 체구가 작은 노인이 규오를 비웃었다. 체구가 워낙 작은 그 노인은 다른 신장 멤버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가부좌를 튼 채로 공중에 둥둥 떠 있었다. 여기 있는 신장 멤버 모두는 조아로드로 조재되기 전 알칸펠을 만났었고 곧 그 위대한 모습에 무릎을 꿇고 충성을 맹세했었지만 규오는 알칸펠을 만나보질 못하고 바로 12신장의 일원이 되고 말았다. 마지막 12번째 멤버로서 규오가 결정됐을 당시 이상하게도 알칸펠은 이들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원래 알칸펠은 몇 년씩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이 다반사였으니 다들 좀 변덕스러우신 분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이봐, 이 아래에 뭔가 거대한 힘이 느껴지질 않나?"
그 때 신장 멤버 한 사람이 바닥을 내려다보며 모두에게 물었다. 과연 그의 말대로 미나카미 산속 기지 내부에서 아주 강력한 힘이 느껴지고 있었다. 게다가 상당한 중력의 왜곡도 느껴지고 있었다. 분명 규오는 지금 이 곳 지하 깊숙한 곳에 있고 바로 그 자리에서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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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으윽!!"
알칸펠은 바리어에 온 힘을 집중시키며 간신히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면 갈수록 유사 블랙홀이 빨아들이는 힘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바리어가 깨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렇게 되면 알칸펠은 저 암흑의 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알칸펠이 힘겹게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규오는 큰 소리로 비웃었다.
"크하하하!! 어떠냐 알칸펠! 순간 질량 7천 엑사(exa : 10의 18승)톤의 유사 블랙홀의 맛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던 발카스는 심각한 얼굴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천하의 알칸펠이라 할지라도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면 생존을 장담할 수가 없다. 한시라도 빨리 저 블랙홀을 중화시켜서 알칸펠을 구해야 했다. 그러나 시전자인 규오가 나서지 않으면 중화는 불가능했다. 발카스는 어찌해야 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끼긱! 챙그랑!!
그 순간 갑자기 엘리베이터 전면 유리가 깨져 나가면서 발카스의 몸도 밖으로 빨려 나갔다. 블랙홀이 빨아들이는 힘은 대부분 알칸펠 쪽으로 집중돼 있었지만 이젠 여기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로 커진 것이었다. 발카스는 황급히 바리어를 전개해서 블랙홀의 흡입력에 저항하였다. 간신히 그 자리에 멈춘 발카스는 규오에게 노호성을 터트렸다.
"네 이놈! 리헐트! 당장 그만두지 못해!!"
그러자 규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하였다.
"후훗! 거기 있었냐, 영감. 당신한테는 감사하고 있어. 나에게 12신장 중에서 최강의 힘을 준 것에 대해서 말이야."
이젠 더 감출 것도 없다는 듯 규오는 발카스에게 반말을 하였다. 발카스는 다시 규오를 큰 소리로 꾸짖었다.
"이놈! 난 너에게 이런 짓이나 하라고 그 힘을 준게 아니야! 감히 우리들의 주인이신 알칸펠에게 반기를 들다니!!"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냐? 다 말했으면 얌전히 찌그러져 있어."
"게다가 그 기술을 행성에서 쓰다니! 그게 얼마나 위험한 기술인지 모른단 말이냐!!"
"흥! 그런 건 네가 말 안 해줘도 알고 있어."
규오는 콧방귀를 뀌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발카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 기술은 행성에서는 사용이 금지된 기술이다. 자칫 잘못했다간 지구 전체가 저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갈 수도 있었다. 물론 그 전에 유사 블랙홀을 중화 시켜버리면 되지만 그건 최대한 빨리 서둘러야 했다. 만약 블랙홀이 너무 커지게 되면 시전자도 통제가 불가능해 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저건 진짜 블랙홀이 되고 만다. 이 세상에 종말이 오는 것이다! 발카스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알고 있으면 당장 중화해라!! 이 멍청한 녀석아!"
"그럴 순 없어!! 중화는 알칸펠을 없앤 다음이다! 설령 그 전에 저게 진짜 블랙홀이 되더라도 중화는 안 해!!!"
-쿠오오오!!!!
블랙홀의 크기가 더욱 더 커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블랙홀의 흡입력도 더욱 더 강해졌다. 주변 시설물의 파괴가 더욱 더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도 버티고 있는 알칸펠의 바리어도 점점 약해지기 시작했다. 천하의 알칸펠이라도 더 이상 바리어를 유지하기가 힘들었다. 발카스는 이제 절규하듯 규오에게 외쳤다.
"이대로라면 너도 무사하지 못해!!! 왜 그걸 모르는 거야!"
"어차피 이대로 알칸펠이 살아 있으면 내게 미래는 없어. 죽을 거라면 나 혼자 죽지는 않아! 다 같이 죽는 거다!!"
규오는 이제 이판사판 이었다. 설령 지금당장 블랙홀을 중화시킨 다음 리무버를 순순히 넘겨주고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싹싹 빈다고 해도 일이 이 지경까지 된 이상 알칸펠이 규오를 용서할 리가 없었다.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마찬가지라면 차라리 같이 죽자는 것이다. 발카스는 애타는 심정으로 알칸펠과 규오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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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서둘러! 최하층이 붕괴되는 건 이제 시간문제야!"
-쿠르르릉!!
최하층 구역의 벽면이 쩍쩍 갈라져 나가고 있었다. 유적 우주선이 에너지를 급속 충전하자 지하의 마그마 층이 그 영향을 받아 이렇게 지진이 일어나고 있었다. 안 그래도 오랜 세월동안 유적 기지 최하층은 잦은 지진으로 인해 구조적으로 많이 약해져 있었다. 지금 당장 무너진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오다기리를 비롯한 연구실 스텝들과 베르단디 들은 최하층부의 복도를 따라 열심히 뛰고 있었다. 이들의 목적지는 유적 우주선. 케이가 우주선 내부에 보통 인간도 머무를 수 있는 거주 구역을 마련했다고 하니까 이제 거기 타기만 하면 되었다. 이제 잠시 후면 우주선의 발진 준비가 끝날 것이다. 오다기리 들이 오랜세월동안 구상해 오던 반격작전이 이제 실행단계만 남은 것이다.
이들은 탈출하면서 손수레에 커다란 컨테이너 하나를 싣고 달리고 있었다. 그동안 오다기리들이 연구했던 유적의 연구 성과들, 그리고 강림자의 유산에 관한 기록들과 더불어 조아노이드에 대한 자료들 까지, 앞으로 크로노스와의 싸움에서 상당한 도움이 돼줄 수 있는 각종 자료들이 담겨 있었다.
"다들 조금만 더 힘내! 이제 거의 다 왔어!"
오다기리들은 이윽고 유적 우주선 바로 근처까지 왔다. 이제 조금만 더 달리면 유적 우주선이 있는 지하 대공동에 도착한다. 바로 그 때였다.
"응?"
"뭐...뭐지? 느낌이 좀 이상한데...?"
일행은 달리다 말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어째서인지 몸이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다. 아니 그 보다는 마치 뭔가가 그들을 들어 올리는 듯 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건 단순한 느낌만이 아니었다. 머리가 긴 여성들의 머리카락이 저절로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람 같은 건 불지도 않는데도 신기한 일이었다.
"꺄악! 언니!!"
"스쿨드?!"
그 순간 갑자기 스쿨드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스쿨드는 잔뜩 겁에 질려있는 모습이었다. 물론 스쿨드는 하늘을 날 수 있긴 하지만 지금 스쿨드의 반응을 봐서는 본인의 의사와는 전혀 상관없이 몸이 뜨고 있는 것 같았다. 일행이 놀라고 있는 그 순간 다른 사람들의 몸도 허공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다들 비명을 질렀다.
"뭐...뭐야!!"
"꺄악!!"
베르단디는 그 순간 중력이 이상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도대체 뭔지는 모르겠지만 위쪽에서 뭔가가 그녀들을 빨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이상중력에 대응해서 즉시 법술을 외웠다.
"만물을 다스리는 대지의 힘이여! 그 힘을 되돌려 우리들의 발을 다시 대지에 올려다오!"
베르단디의 몸이 하얗게 빛나면서 법술이 발동되었다. 그러나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그들의 몸은 여전히 위로 계속해서 떠오르기만 하고 있었다. 베르단디는 당황해 하였다. 법술까지 무시할 정도로 엄청난 힘이었다. 울드나 린드까지 가세해서 다시 한 번 법술을 외워봤지만 상황은 호전되지 않았다. 이윽고 이들은 천정에 몸이 닿았다. 천정으로 막혔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의 몸은 계속해서 떠오르려고만 하였다. 이 현상이 이대로 계속되다간 다들 천정에 쥐포처럼 납작해 진 채로 달라붙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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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으윽!!"
"아아아...!"
규오의 유사 블랙홀은 이제 미나카미 산 바깥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블랙홀이 빨아들이는 힘으로 인해 정상에 있던 몇 그루의 나무는 그대로 부러져 버렸고 경비원 두 명은 강력한 중력으로 인해 그 자리에 쓰러진 채로 일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들의 전신은 엄청난 압력을 받아 그야말로 쥐포처럼 납작해지기 일보직전이었다. 12신장 멤버들은 재빨리 바리어를 펼쳐서 이상 중력에 맞서고 있었다. 신장 멤버들은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대체 뭐지? 이 이상중력은!"
중력의 영향은 이제 상공의 구름에까지 미치고 있었다. 상공의 구름이 이 미나카미 산을 중심으로 해서 거대한 소용돌이를 형성하고 있었다. 구름까지 이곳으로 끌어 모을 정도로 지금 이 일대의 중력이 비정상적으로 강력해지고 있었다. 도대체 지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이건 규오의 짓일까?"
"설마 그럴 리가. 녀석이 우리 중에서 중력을 가장 잘 다룬다는 건 인정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규오의 능력은 다들 인정하고 있었다. 중력제어에 관해서라면 알칸펠을 제외하면 그가 가장 뛰어났다. 하지만 아무리 규오라 해도 이렇게 넓은 범위에 걸쳐 이런 고중력을 펼칠 능력은 안됐다. 다들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꼭 그렇지만도 않지. 만약 규오가 금지돼 있는 그 기술을 쓴 거라면....!"
그 말에 모두는 경악하였다. 절대로 사용해선 안 되는 금단의 기술, 유사 블랙홀! 만약 정말로 그거라면 이 정도의 대규모 중력이상이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게다가 규오는 바로 그 기술을 쓸 수 있는 조아로드이고 말이다. 하지만 그건 절대로 행성에서는 써서는 안 되는 금단의 기술. 우주공간에서의 사용도 극히 신중해야 하는 위험한 기술이었다. 아니 사실 따지고 보면 그건 기술이라고도 할 수 없었다. 블랙홀을 컨트롤 하는 것이 극도로 힘들뿐만 아니라 까딱 잘못해서 통제에 실패하면 그대로 이 세상의 멸망으로 직결되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써서는 안 된다는 것과 못쓴다는 건 다른 얘기다. 정 안된다면 아무리 금단의 기술이라 해도 쓸 수 있는 것이다. 기술이란 건 원래 쓰라고 있는 거니까. 그렇다면 남은 의문은 단 하나. 도대체 상대가 누구 길래 이런 기술까지 쓰는 걸까? 그리고 그 시점에서 모두의 머릿속에 떠오른 건 단 하나뿐이었다.
....알칸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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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으으으...!!"
알칸펠의 얼굴에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다. 이제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었다. 블랙홀의 영향으로 인해 거대한 엘리베이터 샤프트의 절반가량이 뜯겨져 나갔다. 무수히 많은 파편들이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규오는 미친 듯이 웃으면서 오히려 블랙홀을 더 키워버렸다.
"크하하하!! 그 잘난 바리어가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쿠오오오!!!
"사라져라! 알칸펠!!!"
-파지직!!
그 순간 갑자기 알칸펠의 바리어가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블랙홀의 흡입력에 바리어가 깨지기 일보직전이었던 것이다. 당황한 알칸펠은 바리어에 힘을 집중하려 하였지만 그의 체력은 이미 한계에 달해 있었다.
-파아앗!!
그리고 그 직후 바리어가 결국은 깨져버리고 말았다. 바리어가 사라지자 알칸펠의 몸은 그대로 블랙홀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알칸펠은 잠시 버텨봤지만 견디지 못하고 이내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우...! 우아아아아!!!!!"
"됐다!!!"
"아..알칸펠!!!"
알칸펠이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리자 규오는 두 주먹을 불끈 움켜쥐며 환호하였고 발카스는 경악하였다. 그러나 기쁨은 잠시, 이제부터가 큰일이었다. 규오는 유사 블랙홀을 심각하게 바라보았다. 지금 블랙홀은 규오가 보기에도 너무 위험할 정도로 커져 있었다. 이제 와서 규오 자신의 능력으로 중화가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든 저걸 중화시켜야 했다. 알칸펠에게 이겼지만 자기도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버리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규오는 양 손에 에너지를 모아서 블랙홀을 중화할 준비를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뒤쪽에 있던 발카스를 불렀다.
"어이, 영감. 거기서 그러고만 있지 말고 손 좀 빌려주시지."
"네...네 이놈! 감히 그런 뻔뻔한 소리를...!"
"죽고 싶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서둘러!!"
발카스는 잠시 이를 악물며 분노를 참다가 할 수 없이 규오를 돕기로 하였다. 저 블랙홀을 그냥 내버려 둘 경우 이 세상은 멸망하게 된다. 알칸펠의 복수를 하는 것도 살아남아야 할 수 있는 것이다. 발카스는 규오와 나란히 선채로 양 손에 중화 에너지를 모았다. 두 사람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며 에너지를 모았다. 그러다가 규오가 큰 소리로 외쳤다.
"중화!!!"
-화아악!!
두 사람의 손에서 강력한 에너지파가 블랙홀을 향해 쏘아졌다. 그 에너지는 맹렬한 속도로 날아가서는 블랙홀과 부딪혔다. 그러나 잠시 후 그 에너지파는 되튕겨지고 말았다. 발카스는 고개를 저었다.
"안돼, 너무 성장시켰어!"
"쳇! 한 번 더!!"
곧 두사람은 다시 한 번 에너지를 모아 중화를 시도하였다. 이번엔 좀 더 힘을 기울여 에너지를 발사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블랙홀은 에너지파를 퉁겨내었다. 규오와 발카스는 점점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설마 늧은 걸까!
"한 번 더!!!"
규오는 발악하듯 에너지를 모았다. 발카스 역시 혼신의 힘을 다해 에너지를 모았다.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였다. 블랙홀은 이미 어마어마하게 거대해져 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흡입력의 대부분은 전방에 집중돼 있었지만 이젠 사방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규오나 발카스 역시 더 이상 현 위치를 지키기 힘들 정도로 블랙홀이 강해지고 있었다. 잠시 후 두 사람은 다시 한 번 에너지파를 발사하였다.
-투오오오오!!!!!
"중화!!"
규오와 발카스의 에너지파가 블랙홀 전체를 감싸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혼신의 힘을 다해 중화를 시도하였다. 두 사람의 에너지가 맹렬히 소용돌이치듯 블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블랙홀은 여전히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규오와 발카스의 조아 크리스털이 강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지금 두 사람은 가지고 있는 모든 생체 에너지를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규오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사라져라아아!!!!!"
-화아악!!
그 순간 블랙홀의 중심에서 강렬한 섬광이 쏟아져 나왔다. 섬광으로 인해 두 사람은 앞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그 순간 주변에 불고 있던 강렬한 돌풍이 잠잠해 지기 시작했다. 급속도로 뜯겨져 나가던 엘리베이터 샤프트 구조물과 주변의 벽들도 잠잠해 졌다. 발카스 역시 자신의 바리어에 가해지던 강한 압력이 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시력이 어느 정도 회복된 두 사람은 앞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블랙홀은 사라진 상태였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모든 것을 집어 삼키던 암흑의 구멍은 사라지고 그저 엉망으로 부서진 벽면만이 보였다. 중화에 성공한 것이다!
"후후후...후하하하하하!!!"
규오는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환호하였다.
"이겼다! 알칸펠에게 이긴 거야! 이 리헐트 규오님이 말이야!!! 와하하하!!!!"
규오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미친 듯이 웃기만 하였다. 저럴 만도 했다. 알칸펠을 블랙홀로 밀어 넣고도 자신은 이렇게 살아있으니 정말 이긴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다른 신장멤버 전원이 한꺼번에 덤벼도 못 이긴다는 그 알칸펠을 규오 혼자서 물리친 것이다.
"으하하하하!!! 으하하....으..으윽..!"
갑자기 규오의 조아 크리스털이 빛을 잃었다. 그리고 규오는 정신을 잃고 갱도 아래로 추락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블랙홀을 중화하는 과정에서 모든 생체 에너지를 소진하는 바람에 탈진한 모양이었다. 정신을 잃은 규오는 끝이 보이지 않는 엘리베이터 갱도 아래로 떨어졌다. 곧이어 규오의 모습은 갱도 아래의 어둠에 묻혀버렸다. 발카스는 잔뜩 굳은 얼굴로 어두운 갱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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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다당!!
"어이쿠!!"
"으악!!"
"꺄악!!"
갑자기 오다기리들을 빨아들이던 힘이 사라졌다. 천정 높이까지 떠올랐던 이들은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했다. 끌고 오던 컨테이너가 바닥에 떨어지면서 둔탁한 소리를 내었다. 단단히 봉해둔 덕에 내용물이 밖으로 쏟아지진 않았다. 갑자기 힘이 풀리는 바람에 대비를 못한 사람들은 그대로 볼품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베르단디와 울드, 린드 만은 하늘을 날 수 있으니까 가볍게 착지할 수 있었지만 아직 미숙한 스쿨드 만은 다른 사람들처럼 그대로 바닥에 떨어져 버렸다.
"히잉~~ 아파아~ 훌쩍!"
떨어질 때의 충격이 큰지 스쿨드는 엉덩이를 문지르며 울상을 지었다. 베르단디가 서둘러 스쿨드를 살폈다. 다행히 크게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큰 부상은 입지 않았다. 두 사람 정도만 가볍게 발목을 삐어서 베르단디가 회복 법술을 걸어주었다. 충격이 어느 정도 가신 후 다들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위를 쳐다보았다.
"대체 무슨 일이었던 걸까요?"
"글쎄...나도 모르겠군."
사람들이 오다기리에게 물어봤지만 그라고 이 현상을 알리가 없었다. 그러나 무라카미만큼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이건 규오가 한 짓이 틀림없었다. 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규오가 금단의 중력병기, '유사 블랙홀'을 쓴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블랙홀이 완전히 중화된 이후이고 말이다. 무라카미 역시 유사 블랙홀의 존재 자체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 겪어본 건 이번이 처음 이었다.
"아무튼 다들 서두릅시다!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하고요!"
오다기리의 말에 다들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언제 최하층이 무너져 내릴지 알 수가 없는 판국이었다. 이들은 이윽고 통로를 빠져나와 유적 우주선이 격납돼 있는 대 공동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계속해서 열심히 달려 유적 우주선의 외벽 근처까지 다다랐다. 바로 그 때였다!
-콰쾅!!!
그 순간 근처에 뭔가 커다란 것이 떨어졌다. 낙하 충격으로 인해 콘크리트로 포장된 바닥은 완전히 박살이 나면서 큰 구덩이가 파였고 주변은 먼지 구름이 자욱하게 일었다. 모두는 잠시 긴장된 얼굴로 그 먼지 구름을 응시하였다. 잠시 후 먼지 구름 안에서 뭔가 거대한 덩치가 일어서는 것이 보였다. 그 덩치는 일어서자마자 바로 먼지구름을 해치고 깊게 파인 구덩이에서 걸어 나왔다. 그것이 걸어 나오자 모두는 경악하였다. 놀랍게도 떨어져 내려온 건 리헐트 규오였다!
"크윽...! 잠시 정신을 잃었었군. 여기는... 응?"
그 순간 규오도 오다기리와 베르단디 일행을 보고 말았다. 그리고 규오는 잠시 이해가 안 간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다기리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어째서 여기에 여신들과 무라카미라는 실험체 녀석이 있는 걸까? 잠시 후 규오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이 이를 갈았다.
"흐흐흐.... 역시 그랬던 거냐. 지금까지 네놈들이 어디 숨어 있나 했었는데...이제 보니 저 놈들이 숨겨줬던 거였군."
규오는 오다기리들을 강하게 노려보았다. 규오의 시선을 받은 오다기리와 스텝들의 온몸에는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오다기리는 기가 막혔다. 거사가 실행되기 직전인데 어떻게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 있단 말인가! 하필이면 탈출 직전에 규오와 마주치다니. 그가 예상하던 것들 중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가 나오고 말았다. 오다기리와 그외 스텝들은 공포를 느꼈다.
무라카미 역시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이제 일이 이렇게 된 이상 규오와 일전을 벌이는 수밖에는 없었다. 대체 규오가 왜 위에서 떨어져 내려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모든 걸 다 들킨 이상 규오가 자신들을 이대로 내버려 둘리가 만무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여기서 규오를 쓰러트리던가 하다못해 탈출을 방해하지 못하게 제압이라도 해서 시간을 벌어야 했다. 무라카미는 모두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규오를 막고 있겠습니다. 그 사이에 여러분은 우주선에 타십시오."
그 말에 모두는 크게 놀랐다. 저번에 규오와 싸웠을 때 무라카미는 규오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냥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던 것이다. 그런데 혼자서 규오를 막겠다니! 무라카미가 앞으로 걸어 나가자 핫세가 황급히 달려와 무라카미의 옷깃을 잡고 말렸다.
"무라카미 씨! 안돼요! 지금 무라카미 씨의 몸은...."
그 때 무라카미는 조용히 하라는 듯 오른손 검지를 세워서는 핫세의 입술 근처에 갖다 대었다. 무라카미는 살며시 미소 지으며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조용히 말했다.
"지금이 바로 그 때야. 난 걱정 말고....케이를 부탁해."
핫세는 더 이상 무라카미를 말리지 못했다. 그녀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무라카미의 등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 린드가 무라카미에게 가세하려 하였지만 그는 린드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자신을 믿고 맡겨 달라는 듯 한 눈빛을 한 채로. 린드는 이해가 안 간다는 듯 한 얼굴로 말했다.
"그대는 규오의 상대가 될 수 없다. 그건 잘 알고 있을 텐데."
"예,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건 규오의 컨디션이 정상일 때 얘기지요."
"그렇다면 지금의 규오라면 승산이 있다는 건가?"
"절 믿고 어서 우주선으로 대피하십시오. 방법이 있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무라카미는 규오를 항해 당당히 걸어갔다. 무라카미가 가까이 다가오자 규오는 가소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비켜라! 이 쓰레기야! 너 따위는 백 명이 덤벼도 내 상대가 못돼!!"
"그럴까? 규오. 지금의 넌 꽤나 지쳐있는것 같은데. 게다가 전신의 G.P(Gravity Point) 까지 전부 다 써버렸군."
무라마키의 말대로 원래 G.P가 있어야 하는 자리에는 그냥 빈 구멍만이 있었다. 무라카미의 말을 들은 규오는 그제야 아차 싶었다. 아까 위에서 알칸펠에게 유사 블랙홀을 구사하느라 전신의 G.P 를 전부 다 소모해 버린 것이다. G.P 는 중력제어를 위해서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일종의 에너지 앰프다. 이제 규오는 하늘을 나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그 이외에 다른 것들은 모두 불가능해 졌다. 중력탄 공격 등은 말할 것도 없고 바리어 조차도 필 수가 없게 되었다. 물론 충분한 휴식을 취하면 G.P는 다시 생성되지만 그 시간이 꽤나 오래 걸리는 데다 그것도 전투 형태를 풀어야만 회복이 가능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말도 안 돼는 소리였다.
"규오!! 오늘 이 자리에서 너와의 질긴 악연을 끊겠다!!!"
규오는 당황한 듯 뒤로 주춤거렸다. 그 때 울드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녀의 몸을 하얀 바람 같은 것이 뒤덮었다. 여신들이 법술로 옷을 갈아입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바람이 사라지자 그녀는 여신 특유의 전투복을 입은 모습이 되었다. 그 모습을 본 베르단디들은 깜짝 놀랐다. 울드는 규오를 강하게 노려보며 말했다.
"호오, 그래?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아예 저 녀석을 없애버리고 가자고!"
-파아앗!!
그와 동시에 울드는 그녀의 천사, '월드 오브 엘레강스'를 소환하였다. 여신이 천사를 소환한다는 것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법술을 구사할 때 이다. 전투복을 입고 천사를 소환했다는 것은 그냥 시간을 끄는 정도가 아니라 전력을 다해 상대를 쓰러트리겠다는 의미였다. 당황한 베르단디가 거의 비명처럼 울드를 불렀다.
"언니!! 지금은..."
"말리지마! 저 녀석만큼은 절대로 용서 못해!! 절대로!"
울드는 그 때의 그 비극적인 장면을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아들이 자신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처절한 사투를 벌여야 했던 그 광경을. 그리고 결국은 그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게 되는 비극을. 그것뿐만이 아니다. 크로노스에 대해 알면 알수록 울드는 이놈들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다. 사람을 조아노이드라는 끔찍한 몸으로 만들어서는 그 정신을 맘대로 조종해서 하나의 도구처럼 부리는 놈들이었다. 도대체 생명이 뭔지 알고 그런 저주받을 짓을 한단 말인가. 이놈들에 비하면 마족은 차라리 착한 편이었다. 그 수장 중 하나이며 케이 아버지의 원수이기도 한 규오가 지금 바로 눈앞에 있다. 게다가 놈은 잔뜩 지치기까지 했다. 복수를 할 절호의 기회였다.
"확실히 지금이야 말로 절호의 찬스다."
그 때 린드도 등에 지고 있던 배틀액스를 꺼내서는 울드 옆에 섰다. 린드까지 나서자 무라카미를 비롯한 모두가 당황해 하였다. 특히 오다기리는 안절부절 하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최하층의 지진은 계속되고 있었다. 언제 최하층이 붕괴될 지 알 수 없는데다가 여기서 이런 식으로 시간을 지체하다가는 위에서 조아로드 발카스를 비롯한 증원 병력이 내려올 지도 몰랐다. 그렇게 되면 작전은 실패다!
"이...이 년들이! 천계의 여신 나부랭이들과 시작체 녀석이 날 잡겠다고?!!"
규오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이를 갈며 말했다. 울드나 린드는 규오가 강하게 노려보아도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울드는 손에 법술로 화염을 만들었고 린드는 고주파 액스를 가동시켰다.
"후후후. 여기 머물고 있는 동안 너 같은 놈들을 잡을 수 있는 법술을 연구하였지. 과연 맛이 어떤가 한방 먹어 보지 않겠어?"
"저번과는 다르다. 규오."
울드는 월드 오브 엘레강스와 함께 법술을 발사할 준비를 마쳤고 린드는 고주파 액스를 치켜들고 돌격할 준비를 하였다. 사실 울드의 법술 연구는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진전은 있었다. 지금이야 말로 그간의 성과를 시험해 볼 좋은 기회였다. 저번처럼 일반 조아노이드 조차 가볍게 댄 수준 정도의 상처만 주는 정도는 절대 아니었다. 그리고 린드 역시 이번에야 말로 자신이 있었다. 스피드는 분명 린드가 규오보다 우세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스쿨드가 만들어준 고주파 액스라는 강력한 펀치도 생겼다. 비록 동력 문제 때문에 20분 이상 쓸 수는 없었지만 어차피 고주파 병기는 일격필살, 그 정도면 충분했다.
"이것들이! 감히 누굴 우습게 알아!!"
화가 난 규오가 울드와 린드에게 성난 황소처럼 돌격해 오기 시작했다. 울드와 린드가 맞받아칠 준비를 하였다. 바로 그 때였다.
-휘익! 콰직!
그 때 규오에게 어떤 물체가 날아왔다. 규오는 황급히 팔을 올려서 그걸 막았고 규오의 팔에 부딪힌 그 물건은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던져진 물체는 스쿨드가 만들었던 무전기였다. 규오와 다른 사람들은 그게 날아온 쪽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유적 우주선에서 나온 가이버 III, 아키토가 있었다!
"다들 잠깐 기다려. 규오 녀석에게 유감이 있는 건 당신들뿐만이 아니지. 저 녀석은 내가 상대해 주겠어."
"아키토 님!!"
아키토의 모습을 보자 시즈와 요헤이의 표정은 대번에 밝아졌다. 맘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럴 수가 없었다. 놀란 건 이들만이 아니었다. 규오 역시 아키토가 유적 우주선에서 나오자 당황해 하였다.
"오랜만이군, 규오."
"네...네놈이! 훗, 하긴 여기 저 놈들이 있었다면 너도 있는 게 당연하지. 후후후.... 우하하하!!!"
잠시 당황해하던 규오는 갑자기 쿡쿡 웃기 시작하더니 이내 큰 소리로 껄껄 웃기 시작했다. 규오의 행동에 다들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아키토는 다소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지금 자기가 압도적으로 불리하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
"뭐냐, 나랑 만난 게 그렇게도 기쁘냐?"
"기쁘냐고? 물론 기쁘고말고! 이렇게 쉽게 내게 찬스가 굴러왔으니까 말이야!!"
-파아앗!!
갑자기 규오의 조아 크리스털이 강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규오는 큰 소리로 외쳤다.
"오너라! 유니트 리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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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챙그랑!
"히익!"
유리관 안에 있던 리무버가 갑자기 저절로 떠오르면서 유리관을 깨버렸다. 깜짝 놀란 시라이는 그대로 뒤로 엉덩방아를 쪟었다. 안 그래도 아까 연구실 내의 집기들이랑 자기 몸이 허공으로 떠올랐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던 시라이는 이제 리무버가 제멋대로 움직이기 시작하자 패닉상태에 빠져들고 있었다. 시라이가 뒤로 자빠진 채로 덜덜 떨고만 있던 사이 리무버는 그대로 연구실 밖으로 빠져나갔다.
시라이의 연구실 밖으로 나간 리무버는 빠른 속도로 어딘가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리무버는 아주 넓은 공간 밖으로 나갔다. 유적 우주선이 있는 지하 대공동이었다. 리무버는 계속 날아가서 규오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왔구나!"
규오는 오른팔을 위로 올렸다. 그러자 리무버의 뒤꽁무니가 활짝 열렸고 그대로 규오의 팔에 끼워졌다. 규오의 팔에 끼워진 리무버는 곧 앞부분이 활짝 열렸다. 규오의 팔을 통해 규오의 생체 에너지가 리무버로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모두는 저게 뭔지 몰라서 잔뜩 긴장한 채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유적 우주선 안에 있던 케이도 그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저게 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처음 이곳의 메인 컴퓨터에 접속했을 때 보았던 영상 기록에 나오던 바로 그 도구였다. 기록돼 있는 내용대로라면 저건 분명...!
"조심해, 마키시마. 저건 상상도 못할 무서운 무기임에 틀림없어!"
무라카미가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아키토에게 경고하였다. 그러자 아키토는 즉시 고주파 소드를 전개하였다.
"만약 그렇다면.... 발사태세가 갖춰지기 전에 놈의 팔을 잘라버리면 돼!!"
-파앗!
아키토는 그대로 높이 도약해서 규오에게 날아갔다. 그러자 규오가 황급히 리무버를 아키 토에게 겨눴다. 그리고 아키토가 규오에게 거의 다 다다랐을 무렵 리무버에서 한줄기 강한 빛이 쏘아졌다. 아키토는 피할 세도 없이 그 빛을 그대로 쏘였다.
-파아앗!!
"우웃!!"
당황한 아키토는 중력 제어구를 조종해서 황급히 멀찌감치 뒤쪽으로 물러났다. 아키토는 잠시 자신의 몸을 살펴봤다. 그러나 아무런 상처도 보이질 않았다. 무슨 생체 열선포 비슷한 건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것 같았다. 그 때 아키토의 컨트롤 메탈이 빛나기 시작했다.
-키잉.... 파앗!!
"욱?!!"
갑자기 아키토의 강식장갑이 반쯤 벗겨졌다. 갈라진 장갑 틈새로 아키토의 얼굴과 몸이 확실히 보였다. 모두는 그 모습을 보며 경악하였다. 식장이 저절로 벗겨진 것이다! 이윽고 다시 컨트롤 메탈이 빛을 발하더니 강식장갑이 다시 아키토에게 입혀졌다.
-철컥!
"뭐...뭐야? 이건!"
아키토는 충격을 받은 듯 그 자리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무라카미가 아키토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황급히 그에게 달려갔다. 무라카미가 보기에 아키토는 다행히 크게 다친 데는 없는 것 같았다. 하지만 도대체 저게 뭐 길래 식장이 벗겨 질려 한 것일까?
"오다기리 주임님! 저건 대체 어떻게 된 건가요?"
시즈가 애타는 표정을 지으며 오다기리에게 물었다. 그러나 오다기리도 저게 뭔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아까의 광경을 놓고 생각해 보자면 저 물체는 강식장갑을 강제로 해제시킬 수 있는 물건이 아닐까 싶었다.
-"저건 그렇게 간단한 물건이 아닙니다."
그 때 모두의 머릿속에 케이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갑자기 울려 퍼지는 케이의 목소리에 다들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유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케이가 유적 우주선의 능력 중 하나를 사용해서 모두에게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규오에게 만은 텔레파시를 쏘지 않아서 규오는 케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저 물체는 '리무버'라고 하는 겁니다. 저것의 파동을 맞게 되면 컨트롤 메탈에 있는 식장자의 데이터가 모두 지워지게 됩니다."
"그..그게 무슨 뜻인가? 케이군."
-"즉, 해방 이전의 원래 유니트 상태로 강식장갑이 초기화 돼 버린다는 겁니다."
"뭐라고!!"
그 말을 들은 모두는 경악하였다. 규오가 시라이 박사에게 연구시켰던 물건이 바로 저거였다. 규오는 저것의 작동 메커니즘을 규명하기 위해 비밀리에 시라이에게 연구를 명했던 것이고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왔던 이유도 조금이라도 더 빨리 리무버의 작동 방법을 규명해 내라고 시라이를 닦달하였던 것이다. 저것만 있으면 유니트가 해방됐다 할지라도 손에 넣을 수 있으니 규오가 안달할 만도 했다.
아키토는 이를 악물었고 무라카미는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되면 가이버 III 는 싸움에 나설 수가 없다. 자칫 잘못하다가 리무버의 파동에 제대로 맞게 되면 강식장갑을 규오에게 뺏기고 마는 것이다. 여신들이 함께 가세한다 해도 위험하다. 규오는 아마도 여신들의 공격은 그냥 얻어맞는 한이 있더라도 악착같이 가이버 III 를 노릴 것이다. 가이버 I, 케이가 함께 싸운다면 혹 모른다. 둘 중 하나가 공격을 당한다 할지라도 다른 한명이 규오에게 치명타를 가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지금 케이는 유적 우주선 안에서 우주선의 발진 준비에 온 힘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런 중요한 순간에 케이가 밖으로 나오게 되면 탈출 작전은 그걸로 실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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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쳇! 어디서 희한한 장난감을 찾아내 가지고는! 그것도 함께 박살내 주마!!"
울드는 그대로 화염의 법술을 규오에게 조준하였다. 리무버의 파동은 가이버에게만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울드로서는 전혀 거리낄 게 없었다. 게다가 놈이 가지고 있는 게 그렇게나 위험한 물건이라면 같이 파괴해 버려야 마땅했다. 그 때 린드가 울드를 제지하였다.
"잠깐 기다려. 법술은 쓰지마라."
"그게 무슨 말이야! 법술을 쓰지말라니! 그럼 나더러 싸우지 말라는 소리야?"
"법술 공격으로 인해 리무버가 파괴되면 안 된다. 저건 반드시 온전한 상태로 가져가야 한다."
울드가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며 반문하려는 순간 린드는 고주파 액스를 치켜들고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곧장 규오에게 돌진해 들어갔다. 순식간에 린드는 규오의 바로 앞까지 육박해 들어갔다. 그 순간 규오는 그제야 린드가 돌격해 들어온 것을 눈치 채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린드의 고주파 액스가 힘차게 내리쳐졌다. 목표는 리무버가 장착된 규오의 오른팔!
-부웅! 키잉!!
"윽!!"
그러나 그 찰나의 순간 규오는 간신히 몸을 비틀어서 아슬아슬하게 린드의 고주파 액스를 피했다. 린드의 공격은 규오의 오른팔을 맞추지 못하고 가슴 부위에 얕은 상처를 입히는 정도로 끝났다. 빚나간 린드의 고주파 액스는 그대로 바닥을 가르면서 깊숙이 박혔다.
규오는 왼손으로 자신의 가슴 부분을 만져봤다. 놀랍게도 피가 흐르고 있었다. 조아로드의 육체는 대단히 강력하기 때문에 보통 칼이나 도끼 같은 거로는 상처를 입힐 수가 없다. 아까 전에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여기 최하층까지 곧장 떨어져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규오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지 않았다는 것이 그 증거다. 일전에 린드와 싸웠을 때도 린드의 공격력은 규오의 몸에 치명타를 가할 힘까지는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간단하게 규오의 가슴에 기다란 베인 상처를 만든 것이다. 그것도 그저 스치기만 했을 뿐인데도.
"이...이년이! 그 도끼는 설마!!"
규오는 린드가 들고 있는 배틀 액스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날 부분이 하얀 빛을 내면서 묘한 소리를 내며 진동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저건 고주파수로 진동하는 무기다. 고주파수로 진동하면서 접촉하는 물체의 분자 결합을 풀어버리는 무기, 그 종류의 무기 앞에서는 강도 같은 건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린드는 두 눈을 부릅뜨며 낮은 목소리로 위협하듯이 말했다.
"아까 분명히 말했다. 이전과는 다르다고."
규오는 분하다는 듯이 이를 갈며 린드를 노려보았다. 전에는 공격력이 딸려서 스피드에서 뒤진다 해도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었지만 지금은 사정이 전혀 다르다. 저 무기에 제대로 맞으면 몸이 아무리 단단해도 한방에 끝장이었다. 게다가 규오 자신은 지금 중력탄도 바리어도 구사가 불가능 했다. 바리어를 쓰지 못한다면 고주파 병기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남은 G.P 는 주먹에 남은 조그마한 것 몇 개정도. 이거 가지고는 잔재주 수준의 기술밖에 할 수가 없었다.
"크으윽...!"
규오와 린드는 서로 대치하면서 빈틈을 노리고 있었다. 규오는 저 고주파 액스를 피하면서 린드에게 한 방 먹일 기회를 노리고 있었고 린드는 규오의 오른팔에 있는 리무버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도 규오에게 치명타를 가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잠시 둘은 서로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잔뜩 긴장한 채로 둘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었다.
-우르르릉!!!
무라카미는 긴장된 얼굴을 한 채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유적 우주선의 에너지 충전으로 인해 지진의 강도가 더욱 더 커지고 있었다.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애초에 무라카미가 규오를 상대하겠다 한 이유도 최대한 시간을 끌어서 일행이 탈출할 시간여유를 벌겠다는 것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일이 꼬이고 말았다. 하지만 무라카미가 보기에는 린드에게도 승산이 있어 보였으므로 지금은 린드의 승리를 빌면서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다. 여전히 두 사람은 서로를 노려보며 대치하고 있었다. 바로 그 때!
"타앗!!"
린드가 고주파 액스를 높이 치켜들며 규오에게 돌격해 들어갔다. 규오는 순간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린드의 스피드가 너무 빨라 규오가 섣불리 대응할 수가 없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린드가 규오의 머리를 노리고 배틀액스를 휘둘렀다. 순간 당황한 규오는 무심결에 리무버가 장착된 오른팔을 들어 올려서 얼굴을 방어하려 하였다.
"큭!"
공격 방향 바로 앞을 리무버가 가로막자 당황한 린드가 황급히 공격을 멈췄다. 고주파 액스의 날은 리무버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조금만 공격이 더 빨랐으면 리무버까지 같이 베어 버릴 뻔 했다. 린드는 재빨리 고주파 액스를 회수해서는 빠른 속도로 규오의 등 뒤로 돌아갔다.
-휘익!
린드는 순식간에 규오의 등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규오의 등을 노리고 다시 한 번 공격을 시도 하였다. 그러나 그 순간 규오는 재빨리 뒤돌아서서 린드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그러자 린드는 이번에도 공격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리무버의 길이가 너무 길어서 규오의 상반신을 거의 다 커버할 수 있을 정도였기 때문에 함부로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린드가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규오는 의아해 하였다. 첫 번째 일격도 그렇지만 방금 전만 해도 린드는 자신에게 얼마든지 치명타를 가할 수 있었다. 고주파 액스라면 설령 팔로 막으려 해도 아주 쉽게 자신을 두 토막 낼 수 있다. 그런데 어째서 공격을 안하는 걸까? 아니, 어쩌면 못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 이유는....
"크크크... 그렇군. 왜 결정적인 순간에 네 년이 머뭇거렸나 했는데.... 너도 이걸 노리는 거였군? 이 리무버를 말이야."
규오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웃으면서 리무버를 들어 보였다. 린드의 표정은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점점 초조해져 가는 린드였다. 규오가 자신이 맘대로 공격을 못하는 이유를 알아차린 이상, 이제는 함부로 공격을 시도할 수가 없었다. 공격이 들어오면 규오는 리무버를 들어 올려 보이며 벨 테면 베어보라는 식으로 나올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리무버에 어떠한 상처도 주지 않고 규오만 해치우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린드!! 뭐하는 거야! 그냥 베어버려!"
멀리서 보고 있던 울드가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러나 린드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럴 순 없다! 리무버는 반드시 온전하게 회수해야 한다! 저건 내 임무 수행을 위해서는 꼭 있어야 하는 도구다!"
린드가 천계에서 명령받은 임무, 그것은 유니트 가이버를, 정확히는 유니트의 핵심부품인 컨트롤 메탈을 가져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이버에게서 컨트롤 메탈을 무리하게 적출할 경우 식장자는 강식장갑에게 먹히고 만다. 생애의 벗인 케이를 희생시킬 수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의 눈앞에 식장자의 몸에서 안전하게 컨트롤 메탈을 분리해 낼 수 있는 도구가 나타났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지금 자칫 리무버가 박살날까봐 적극적으로 공격하지 못하는 것이다. 울드는 다시 큰 소리로 린드를 재촉하였다.
"그깟 임무가 뭐 대수라고 그러는 거야!! 그냥 부수라니까!!!"
"난 임무를 포기하겠다고 한 적이 없다!! 유니트는 반드시 천계로 가지고 간다!"
규오는 둘의 언쟁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천계 놈들이 어째서 유니트를 노리는가에 대해서는 관심 없었다. 어차피 자신과 같은 이유겠지. 그보다 중요한 건 이제 칼자루는 자신에게 넘어왔다는 것이다. 린드의 스피드가 아무리 빠르다 해도 일격을 먹이려면 규오의 바로 근처까지 와야 했다. 게다가 저런 할버드 스타일의 길쭉한 무기는 한번 공격을 시작하면 급격한 방향 전환이 힘들다. 공격이 들어오면 규오는 그저 고주파 액스의 공격궤도 안에 리무버를 갖다 놓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린드는 그 자리에서 공격을 멈출 것이고 그 틈을 타서 린드에게 일격을 가하면 되었다. 규오가 보기에는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해서 공격력은 대폭 상승했지만 방어력은 그 때 그 수준인 것으로 보였다. 한방이라도 제대로 먹이면 전투불능에 빠트릴 수 있을게 확실했다.
"후후후, 지금 한가한가 보지? 동료끼리 입씨름이나 하고 있는걸 보니."
규오가 실실 웃으면서 린드와 울드를 도발하였다. 그러자 울드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화염 법술을 날렸다.
"이 자식! 뭐가 어쩌고 어째!! 콘슈 바이 파이어!!!"
-푸화악!!
울드와 월드 오브 엘레강스가 같이 만들어낸 최대급의 화염 법술이 규오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자 린드가 그녀의 쌍둥이 천사, 쿨민트와 스피어민트를 소환한 다음 최대급의 실드를 만들어 내었다. 그리고 울드의 화염 법술을 막아 버렸다.
-파아앙!!
"으윽!!"
울드의 화염 법술은 린드가 만들어낸 실드에 막혀 소멸해 버렸다. 그러나 실드로 막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충격의 일부가 린드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일부라고는 하지만 콘슈 바이 파이어가 워낙 위력이 강력한 고위 법술이다 보니 린드에게 전해진 충격이 만만치 않았다. 린드는 그 직후 한쪽 무릎을 꿇었고 울드는 경악하였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크게 놀라 말문이 막혔다.
"무..무슨 짓이야! 규오를 감싸다니!!"
"리무버는...절대로 파괴 되선 안 된다...!"
충격이 상당한 듯 린드의 몸 여기저기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임무에 대한 린드의 고지식함에 울드는 치를 떨었다. 울드는 이제 도저히 법술 공격을 시도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또 한 번 공격법술을 날렸다가는 이번에는 몸이라도 날려서 막을 것만 같았다. 여기서 자기들끼리 이렇게 옥신각신 해 봐야 규오만 이로울 뿐이었다. 저 멀리서 규오가 이 광경을 보며 큰 소리로 웃고 있었다. 자신들을 비웃고 있는 것이다. 울드는 분하다는 듯이 입술을 꽉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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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와 아키토도 그 광경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리무버에 대한 집착 때문에 린드가 마음대로 공격하지 못하고 오히려 같은 편의 공격을 대신 막아 주느라 데미지까지 입자 어처구니가 없었다. 린드도 보통 고집이 아니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규오를 물리칠 수 있는 아군 전사는 이제 더 이상 싸울 수가 없었다. 지금은 상처 입은 린드를 베르단디가 뒤로 데리고 가서는 회복법술을 걸어주고 있었다. 무라카미는 결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아키토에게 말했다.
"마키시마, 내가 나서서 규오를 저지 하겠다. 그 사이에 넌 모두를 데리고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
"혼자서 싸울 생각입니까?! 무모한 짓입니다!"
아키토는 무라카미를 말렸다. 아무리 규오가 지쳐있다고는 해도 무라카미에게는 너무나 벅찬 상대였다. 린드처럼 스피드만이라도 규오를 능가한다면 혹 모르겠지만 무라카미에게는 그런 스피드를 낼 능력이 없었다. 싸운다면 규오와 비슷한 방식인 육박전으로 싸우게 되지만 그렇다고 공격력이 규오를 대적할 만한 수준인 것도 아니었다. 무라카미 혼자서는 도저히 무리였다. 그 사실은 무라카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내 말 들어! 지금 중요한 건 두 가지. 하나는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탈출하는 것. 또 하나는 절대로 규오에게 강식장갑을 넘겨줘서는 안 된다는 거야!"
"무라카미씨..."
"유적의 에너지 충전이 끝나면 난 신경 쓰지 말고 바로 발진하라고 케이에게 전해줘. 그 때가 되면 난 기회를 봐서 유적의 외벽에 매달리겠다. 그 때 날 수용해주면 돼."
거기까지 말한 무라카미는 규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 사이 규오는 리무버의 생체 에너지 충전을 마쳤다. 아까는 충전된 에너지가 모자라서 아키토의 강식장갑을 완전히 벗기지 못한 거지만 이제는 그럴 일은 없었다. 이젠 정말로 가이버 III 는 싸움에 나설 수가 없었다.
"규오! 이번엔 내가 상대해 주마!!"
"크크크...제 분수도 모르는 놈이 까불기는."
"각오해라, 규오! 수! 신! 벼...!!"
-끼이이잉!!
'허억! 모..몸이...!'
그 순간 갑자기 무라카미의 몸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 무라카미의 이마에는 미처 다 드러나지 못한 조아 크리스털이 불규칙하게 점멸하고 있었다. 변신이 중간에 멈춰버리자 무라카미는 당황해 하였다. 다시 시도해 보려고 해도 어째서인지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모두는 무라카미가 갑자기 꼼짝도 하지 못하자 당황해 하였고 규오는 그런 무라카미를 비웃었다.
"후후후후, 벌써 잊었느냐? 넌 나를 만들기 위해 시험 제작된 실험체라는 것을. 네 놈의 이마에 박혀있는 조잡한 가짜 크리스털과 내 진짜 조아 크리스털은 공명현상을 일으키기 쉽지."
그 말을 들은 무라카미는 그제야 원인을 알 수 있었다. 규오의 크리스털과 공명을 하게 되면 무라카미의 크리스털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에너지 순환 등이 엉망진창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전신에 영향이 가게 되서 몸을 맘대로 움직일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규오는 결국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무라카미를 죽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규오는 왼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그리고, 내가 전신의 G.P를 거의 다 소모한 건 사실 이다만.... 아직은 이 주먹이 남아있다."
그것을 본 무라카미는 경악하였다. 아직 주먹 쪽에 G.P 가 남아있던 것이다. 비록 아주 작은 것이라고는 해도 저 정도만 있으면 꼼짝도 못하는 자신의 몸을 파괴하는 데는 충분한 위력의 중력탄을 날릴 수 있다. 저 주먹에서 나오는 기술이라면.... 그래비티 불렛(Gravity Bullet : 중력지탄)이다!
"죽어라! 무라카미!!"
-파파팡!!
규오는 무라카미를 향해 힘껏 주먹을 뻗으면서 그래비티 불렛을 날렸다. 몸을 움직일 수 없는 무라카미는 그야 말로 속수무책이었다. 린드와 베르단디가 무라카미를 돕기 위해 달려 나가려는 찰나 갑자기 누군가가 이들을 제치며 재빨리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그 기세 그대로 무라카미를 어깨로 힘껏 부딪혀서 옆으로 밀어 버렸다. 그러나 그 직후 그는 규오의 그래비티 불렛을 얻어맞고 말았다. 순식간에 그의 몸 여기저기가 관통당하고 말았다.
-퍼퍼퍽!!
"허어억!!"
"꺄악!! 할아버지!!!"
"오다기리 주임님!!"
스쿨드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무라카미를 몸으로 덮쳐서 구한 사람은 다름 아닌 오다기리 주임이었던 것이다. 큰 부상을 입은 오다기리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다. 놀란 사람들이 서둘러서 오다기리에게 달려갔다. 그 모습을 본 규오는 웬 날파리 한마리가 끼어들어 훼방을 놨다며 혀를 찼다. 그리고는 다시 주먹에 힘을 모아서 그래비티 불렛을 준비하였다.
"흥! 쓸데없는 짓이다. 이걸로 네놈들 전부 다 지옥으로 보내주마!"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바닥에 쓰러져 있던 무라카미의 기가 점점 더 강해지기 시작하더니 그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서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규오는 경악하였다. 분명 자신의 조아 크리스털의 영향 때문에 손가락 하나 꼼짝할 수 없을 텐데 일어서다니!
"규오....!! 널 반드시 죽이고 말테다!! 수! 신! 변!!!!"
-화아악!!
다시 일어선 무라카미는 혼신의 힘을 다해 외쳤다. 그의 이마의 조아 크리스털이 강렬한 섬광을 발하기 시작했다. 규오가 놀라고 있는 사이에 그는 전투 형태로의 변신을 완료하였다. 그 모습을 본 핫세는 숨을 죽였다. 무라카미는 기어코 생애 마지막 변신을 한 것이다. 그의 인생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우오오오!!!"
무라카미가 규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규오의 복부를 주먹으로 힘껏 가격하였다.
-퍼억!!
"크허억!!"
무라카미의 주먹에 맞은 규오는 그대로 뒤로 한참 날려가서는 바닥에 볼품없이 처박혔다. 규오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 시작체 녀석 주먹 따위에 자기가 이런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화가 난 규오는 그래비티 불렛을 무라카미에게 날렸다.
"이 실험체 따위가!!"
-파슈슈슝!!
그러나 무라카미는 날아오는 중력탄들을 바리어를 펼쳐 간단하게 막아내었다. 그것도 전신을 다 덮는 바리어가 아니라 오른손에만 바리어를 전개하여서 가볍게 한번 휘두르는 것만으로 튕겨내 버렸다. 그 것을 본 규오는 경악하였다. 일전에 자신과 싸웠을 때는 이정도 공격도 막지 못해 쩔쩔 매던 녀석이 갑자기 어디서 저런 힘이 났단 말인가. 그것도 자신의 조아 크리스털과의 공진현상까지 극복해 내다니! 저 실험체 따위가 자신을 압도하는 힘을 내고 있다는 것을 도저히 인정할 수가 없었다.
규오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 무라카미의 몸을 움직이고 있는 것은 분노와 강한 의지였다. 오다기리가 자신을 대신해서 쓰러지는 모습을 보자 무라카미의 마음 깊은 곳에서 분노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분노는 무라카미의 의지와 호응해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하였고 결국에는 규오의 크리스털 주박을 깨버렸다. 무라카미는 지금 이 순간 남아 있는 모든 생명 에너지를 불태우고 있었다.
'여기서 끝나게 할 수는 없다. 네 놈들의 사악한 힘과 맞서 싸울 의지를! 나의 유지를 이어 받아줄 젊은 생명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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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윽..."
"할아버지!! 할아버지! 정신 차리세요!"
오다기리는 힘겹게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스쿨드는 울먹이면서 오다기리를 계속 불렀다. 오다기리는 그런 스쿨드를 보며 걱정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베르단디는 서둘러 오다기리에게 회복 법술을 걸려 하였다. 그러나 오다기리의 부상을 본 그녀는 과연 치료가 가능할까 걱정이 되었다. 몸 여기저기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고 그 곳을 통해서 피가 너무 많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이미 가망이 없었다. 그러나 포기할 수는 없었다. 베르단디는 손을 모아서 회복 법술을 준비하였다. 그 순간 오다기리가 온 힘을 다해 그녀의 손을 잡으며 제지하였다.
"베르..단디님.. 이러고 있을 때가...아닙니다...! 어서 빨리... 유적 안으로...!"
"하지만 오다기리 주임님! 어서 빨리 치료하지 않으면..."
"제 치료는...안에 들어가서 해도....늦지 않습...쿨럭!!!"
그 순간 오다기리가 피를 한 움큼 토해 내었다. 피를 토한다는 것은 폐도 상당한 손상을 입었다는 뜻이다. 서둘러 치료를 해야 했다. 잠시 기침을 해대던 오다기리는 다시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무라카미 군의...의지를...헛되게 하지...말아 주십시오!!"
베르단디는 더 이상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오다기리의 의지를 도저히 꺾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무라카미를 바라보았다. 무라카미는 지금 자신보다 두 배는 더 거대한 규오와 처절하게 싸우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금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규오를 강하게 밀어 붙이고 있었다. 무라카미의 주먹에 맞은 규오가 또 다시 바닥에 쓰러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무라카미의 의지.... 지금 베르단디의 눈에는 무라카미가 자신의 영혼을 불태우며 싸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언니! 빨리 할아버지를 고쳐줘!! 이대로 가다간!"
스쿨드는 울먹이면서 베르단디에게 매달렸다. 그 때 오다기리가 손을 들어 올려서는 스쿨드의 눈에 맺힌 눈물을 닦아 주었다. 그리고는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나는 괜찮으니까 더 이상 울지 말라는 듯이. 베르단디는 이윽고 결심하였다.
"알겠습니다....그럼 빨리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죠."
"언니!!"
"스쿨드, 할아버지의 뜻을 헛되게 해서는 안 돼. 너도 그건 잘 알겠지?"
베르단디의 눈에도 이슬이 맺혀 있었다. 스쿨드는 오다기리를 다시 한 번 보았다. 오다기리는 여전히 미소를 띠고 있었다. 잠시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던 스쿨드는 눈물을 참으면서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단디는 서둘러 오다기리의 몸에 법술을 걸어서 공중에 살짝 띄웠다. 안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오다기리의 몸이 가능한 한 충격을 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다.
몸이 전투가 가능할 정도로 회복된 린드는 사실 다시 규오에게 달려들어서 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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