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G '아앗 이건 나만의 이야기!' [아앗 평온한 일상이 당신을 감싸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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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아암.”
한 여자가 심심해 죽겠다는 불만이 가득 담긴 하품을 내지른다. 정말 무료함만이 가득한 가게. 이 가게의 주인인 짧은 머리칼이 잘 어울리는 동양계 여성의 미모. 허나 그 미모는 하품 하나로 깡그리 뭉개지고 있었다. 입이 쩍 벌어지며 하품이 연신 튀어나왔고, 눈가에는 눈물방울이 찔끔 흘러나온다.
“오늘은 손님이 전혀 없군요.”
“그러게 말이야. 평상시 같으면 이때쯤 ‘제발 제 바이크 좀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며 달려오는 마니아 녀석들이라도 한두 명쯤 나타나는데 말이야. 불경기인가?”
지로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계 여성이 이미 풀린 지 오래인 일본의 불경기를 들먹이며 뚱하니 밖을 쳐다본다. 정문은 시원스런 바람과 돈을 들고 오실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으나, 어느 누구도 그들의 조그만 가게를 찾으러 발걸음을 재촉하지는 않았다. 정확한 표현을 빌리자면 일반적인 점포나, 기계 수리점이 아닌 컨테이너 하나를 새롭게 개조한 형태의 가게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케이.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네가 오늘 저 부품 담당 아니었냐?”
“에엑? 제가 아니라 선배가 오늘 담당 아닌가요?”
지로가 갑자기 의아하다는 눈길로 바깥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공구박스와 바이크 부품들, 볼트와 너트들을 가리키며 묻는다. 케이는 두 손을 흔들며 자신이 아니라며 결백을 증명하지만 지로의 눈은 작아지며 그의 의중을 계속 묻는다.
“진짜냐?”
“달력을 좀 보세요. 오늘은 23일. 지로 선배 차례라고요. 전 어제부로 다 끝났는데”
“뭐야! 아무리 내가 오늘의 저것 담당이라 해도 그렇지. 이렇게 메미소리만이 들려오는 뙤약볕 아래에서 저 뜨겁게 달궈진 엔진을 손보라고?”
“저기 오늘은 태양빛이 오히려 따뜻한데요? 그리고 곧 가을이라 날씨도 나쁜 게 아니고, 저 엔진은 지금 파라솔 아래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그래서. 저 엔진이 무지 작은 기종이라고 나 혼자 해도 된다는 것이냐? 이 연약한 여자 혼자서”
“그, 그런 것이 아니잖아요! 담당은 중요 부분을 먼저 점검하고, 서포터에게 다음 부분들에 대해서.”
“그~으래서?”
지로가 도끼눈을 뜨고 그를 쳐다보자 항변 한번 못해보고 수그러드는 케이이치. 그들은 대학 간의 경쟁에서 열심히 수고한 바이크의 엔진을 튜닝 겸 점검을 하고 있었다. 각 대학 간의(특히 공대들 끼리)경기에서 그들이 과거 대학시절에 있었던 자동차부의 바이크는 최고 신기록을 세우며 황금빛 1등 트로피를 얻게 되었다. 문제는 바이크의 엔진에 있었다. 비록 좋은 성적을 내며 네코미와 자동차부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동시에 부서 활동 지원금까지 두둑이 얻어 내는데는 성공했으나.
‘역시 돈이 없었던 우리의 기술력으로 가까스로 만들어낸 엔진은 거의 위험직전이란 결과라 뭐 이정도로 그쳐서 다행일까나?’
지로의 절대로 자기가 정비 안하겠다며 케이에게 떠넘기는 항의를 곧이곧대로 들어주며 대충 한귀로 흘려버리는 케이이치. 레이싱에서 승리한 후 자신 앞에 서 있는 이 여자가 술로 완벽하게 깨졌던(?)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어? 웃어!”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선배. 켁!”
지로는 손을 뻗으며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치는 케이를 헤드락이란 마의 기술을 걸어 그에게 지옥이란 어떤 것인가를 몸소 깨닫게 해주었다. 물론 헤드락에 대한 기타비용은 무료였으니, 무료를 좋아하는 지로다운 훌륭한(?) 선택이었다. 당하는 케이 본인은 고통에 몸을 부르르 떨지만 말이다.
덜컥.
“홍차 준비 됐어요!”
“아 고마워. 벨!”
베르단디의 이름을 멋대로 줄여 애칭으로 부르는 지로. 베르단디의 목소리가 응접실에 울려 퍼지기가 무섭게 그녀가 들고 나오는 김을 모락모락 풍기는 찻잔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정문을 나서며.
“문 닫을 테니까 잘들 해보셔!”
“서, 선배!”
지로의 뚱딴지같은 소리에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끼는 케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지로는 하하 커다랗게 함박웃음을 지르며 바깥으로 사라져간다. 케이는 옆에 우두커니 서서 지로의 한마디, 한마디를 곰곰이 떠올리는 베르단디를 떠올리며 할 말을 잃어간다. 그녀는 케이를 대신해 지로에 대해 입을 열었다. 베르단디의 이 말 또한 케이를 침묵의 바다로 다이빙시켰지만 말이다.
“지로 씨는 저희보고 무얼 잘들 해보라고 하신 거죠?”
“아, 하하하........글쎄.”
지로의 뜻을 전혀 해석하지 못하는 베르단디를 위해 케이는 감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얼버무리기가 최고였다.
“쵸르...트!(빌어먹을 자식!)”
“왜 내리자마자 화를 내시는 겁니까?”
우아한 흑발이 흡사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여인네를 떠올리게끔 생긴,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흑발을 가진 미소가 가득한 남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외국인.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남자에게 업힌 여자의 욕지기 섞인 낯선 언어. 여자는 남자와 얼굴 외모가 여러 모로 닮은꼴이었다. 다만 갈색의 머리칼을 지녔고, 그와는 다르게 신경질적인 얼굴이라는 점만 빼면 말이다.
“하! 몰라서 묻나? 난 여객기라는 것이 제일 싫어, 그게 안전하게 만든 민간용 헬기일지라도, 콩코드 제트기일지라도, 심지어 미국이 그렇게 자랑하는 F-35일지라도! 전부 다 엿 같은 것들뿐이라고! 알았어?”
“그렇지만. 멀미가 나는 배를 탈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누, 누가 멀미를 겪는데 앙?! 네 녀석의 그 넉살 좋은 척하는 얼굴만 보니까 화가 치밀어서 먹은 것들이 뒤틀렸을 뿐이지!”
“에후. 도대체 뭐가 좋은 건지 원. 후후!”
여자는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그에게 있는 불평을 모조리 털어놓아 그를 괴롭히지만 그는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지나가다 쳐다보는 동양인들에게 별 것 아니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 두 사람이 공항이 흔들리도록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대다수 일본인들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도 자꾸 눈을 그쪽으로 돌려댔다. 하긴 나오면서부터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미녀를 등에 업고 있는 미남의 등장이란 점이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도 하지만.
“아. 여기서는 그 귀찮은 휠체어 따위는 각성제에게 줘버리라고 던졌다. 그 딴 것 엿 바꿔 먹으라고 해. 야! WH455783 노보 시빌라스크는?”
여자가 언성을 조금 낮추며 세관 앞에서 뭐라 중얼거렸다. 뒤쪽의 이목이 더욱 집중되었지만 남자는 무시하며 조용히 귓속말로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고개를 뒤로 귀쪽을 향한 채 말만 조용히 한 것이기에 귓속말이라 하기에는 우습지만 남들에게 들리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무한궤도에 약간 무리가 생겨서 말입니다. 아마도 옌지니예르가 담당중일 것입니다.”
“뭐? 엔줴가? 그 녀석 혹시 여기까지 오면서 또 이상잡다한 물건들을 챙긴 것은.....”
“그 혹시가 정확하다면요? 저에게 욕이라도 퍼부으시겠습니까?”
피식 웃어 보이며 다리를 절대 쓸 수 없어 내려주질 못하는 여성을 향해 남자가 비아낭거렸다. 엔줴란 이를 막지도 못하고 대책 없이 웃기만 하는 남자를 향해 여자는 코웃음을 치며 조용히 귓가에 입술을 갖다 댔다. 그 모습이 조금 이상야릇하게 느껴져 그들을 꼼꼼히 살피며 친절한 미소를 머금었던 세관의 얼굴이 빨개져갔다.
“뭐 엉뚱한 물건들 때문에 일정에 차질만 안 생긴다면 욕 안 해. 다만.”
“다만?”
“네놈 정보가 잘못 되었다면 욕이 아니라 마약을 쳐먹여줄테다. 알겠냐?”
“...............”
그녀의 협박 아닌 협박에 미소를 지은 채 석상이 돼 버린 남자. 남자는 계속 웃는 얼굴을 유지 한 채 그의 등에 업혀 있는 여자에게 뭐라 구시렁거린다.
“후우~무섭군요. 어떤 약일까나? 멀미약일까?”
“멀미 안 한다니까! 멀미 타령 하지 마 이 바보자식! 우욱.”
“와아~멀미다 멀미. 토하네!”
뭐가 그리 신난 지 남자는 그녀를 천장에 닿을락 말락한 높이로 뒤흔들며 자랑하듯 외친다. 여자는 오른손으로 입을 막으며 끈질기게 목을 넘어오는 무언가를 막으려 애썼다. 그들의 모습은 다시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층에서 곧장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주황색 머리칼에 붉은 두 눈동자를 지닌 황색 제복차림의 남자를 빼면 말이다.
“............”
그는 예의 침묵만 지키라고 명령 받은 군인처럼, 얼어붙은 시베리아 벌판처럼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후아 다 끝냈다!”
“굉장해요! 케이씨와 지로씨가 함께라면 어떤 엔진이라도 기뻐할거에요!”
서양인으로 보이는 늘씬한 미녀가 머리칼을 휘날리며 얼굴에 맞지 않게 어린아이마냥 팔짝팔짝 뛰며 좋아한다. 베르단디의 그런 모습에 케이는 등 뒤에 커다란 땀 하나를 삐질 흘리며 너털 웃음소리만 낼뿐이었다.
“암 물론이지! 이 휠윈드의 마담과 어리버리 숫총각이 함께인데 고작 단기통이 다기통으로 바뀐 것을 가지고 뭘~”
‘이게 뭐가 별 것 아 닙 니 까?’
부품도 없이, 그녀 스스로 용접하고, 가공해서 만들었다는 실린더와 부품 몇 개로 낡아빠진 바이크의 단기통을 자그마치 4기통 엔진으로 바꾼 것이 누구인데!! 이런 것. 정말 가능하구나라고 케이는 마음속으로 외치며 조용히 수그러들었다. 어리 버리란 말이 좀 분하기는 해도 말이다. 참고로 지로는 신기 아닌 괴기를 케이에게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봐봐 벨! 이걸 봐! 어때? 메카닉의 세계에서 꼭 없어선 안 될 제도 한번 그리지 않고, 단지 머릿속에 정리해놓은 것을 그대로 기계에 적용시킨다는 이 지로님의 능력이! 어때?”
“그, 그치만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다가는 자칫 잘못하면 위험해질 수도...”
“흥! 됐네요. 제도는 이 몸의 천재 두뇌 속에 고스란히 박혀 계시구요, 시뮬레이션과 계산도 진작 끝내놓았으니 걱정 마시죠 숫총각씨? 그렇게 시간을 줬는데도 손 하나만 잡고 느긋하게 앉아계신 케모군을 위해 이렇게 개조시킨 사람이 누구더라?”
이야기가 왜 이렇게 돼냐구욧! 케이가 마음속으로 마구 외쳤지만. 얼굴만 빨개질 뿐 별 다른 수가 없었다. 정말 그녀가 보여준 제도 없이 마구 튜닝은 보는 케이로 하여금 공포심을 느끼게 만들었다. 혹시 지로는 정말로 정비의 여신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자~어쨌든 이 엔진을 네 바이크에 선물로 줄 테니 자~대신에 내 선물 꼭 사와!”
“안 가져가요. 저렇게 불안한 것을 왜.”
“그렇게 신뢰를 못 하겠으면 한번 타봐!”
지로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남자의 배짱을 사랑하는 여신 앞에서 그대로 들어내 보이라며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린다. 안타면 무언가 금전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심보가 분명했다. 방금 한 말 취소! 그녀는 정비의 악마다. 라고 케이는 자신의 감탄을 수정했다.
“그, 그럼 선배가 이걸 직접 타봐요! 선배는 신뢰하고 있을 것 아닙니까? 선배의 엔진을.”
“어머나~난 내 두뇌와 내 두뇌 속 시뮬레이션을 믿는다고 했지. 엔진을 믿는다는 소린 아니었는데.”
‘정말 악마다!’
“왜. 꼬우냐?”
눈을 가늘게 치켜세우며 자 치킨레이스(일명 죽음의 레이스)를 시작하세요! 라며 붉은 깃발을 휘날리는 것만 같은 지로의 모습에 케이는 속으로 울며 겨자 씹어 먹기란 새로운 언동을 생각해보았다.
“그렇다면 제가 이 아이를 타봐도 될까요?”
“절대 안 돼!”
베르단디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방금 막 엔진 이수가 끝난 암청색과 검은색이 조화를 이룬 혼다제 쉐도우 - 커스텀을 어루만지며 물어본다. 일순간 케이와 지로는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탈법한 이 커스텀을 타고 질주하는 베르단디의 모습을 떠올리며 알 수 없는 기쁨을 느꼈으나 역시 그녀에게 이런 위험한 물건을 쥐어주기에는 교육상(?) 안 좋다고 판단했는가 보다. 둘이 동시에 안돼를 외치며 다시 말싸움(?)을 시작하자 베르단디는 안타까운 얼굴이 되어 중얼거린다.
“이 아이는 엄청 흥분해 있어요. 조금 진정하렴. 곧 질주를 시작할 수 있을 거야.”
베르단디가 안타까운지 슬픈 얼굴이 되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바이크를 잘 타이르며 어루만져준다. 그 모습에 케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난감을 느끼며 뒷머리를 긁적인다. 그 모습을 보고 악귀가 강림한 얼굴이 된 지로가 흡족한 얼굴로 그를 토닥이며 누구보고 들으라는 듯이 비아낭거렸다.
“아~벨양의 소원을 들어줄 사람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요? 천재 미녀 정비사의 무궁무진한 두뇌를 믿지 않는 숫총각님밖에 없는데. 아~하늘이시여!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
미치겠다! 결국 속으로 이런 제도지 한 장 없이 지로의 머릿속에서 탄생한 괴물 바이크(참고로 정말 어이없게도 이 다기통 엔진은 자동차에 쓰이는 엔진보다 조금 아랫단계의 것이다.)를 전신으로 바람을 느끼며 질주해야 한다니. 아무리 질주를 좋아하는 케이라 해도 이런 시험용의 희생물이 되기는 싫지만. 걱정 없다는 베르단디의 한마디에 더욱 더 큰 걱정이 들고야 말았다.
“전게 갑자기 개조했던 EMERGENCY 모델(만화책 최근판을 보시라!)보다 훨씬 안전하니까 걱정 마세요 케이씨. 지로씨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성들여서 개조했으니까요.”
잠깐. 그렇다면 그때 베르단디가 타고 온 그 이멀전시는 얼마나 위험했다는 것인가?!
‘물론 위험하지는 않았죠! 단지 저 아이는.’
흥분하고 있을 뿐. 마치 장난감 총을 가지길 원하는 아이에게 최강의 장난감 총이 주어지자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과녁으로 느껴지는 모든 것에 발포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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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만화책판을 막 봤습니다. ㅋㅋㅋ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스쿨드와 울드의 작품을 본 이들의 입이 떡 벌린 장면.]
ㅋㅋㅋ
참고로 다음 편에서는 도저히 바이크라 할 수 없는 기괴한 작품이 등장할 예정입니다.
오늘 엔진을 바꾸고 흥분한 쉐도우750과는 비교도 안되는 녀석이죠 ㅋㅋㅋ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답변 잊지 마세요!
한 여자가 심심해 죽겠다는 불만이 가득 담긴 하품을 내지른다. 정말 무료함만이 가득한 가게. 이 가게의 주인인 짧은 머리칼이 잘 어울리는 동양계 여성의 미모. 허나 그 미모는 하품 하나로 깡그리 뭉개지고 있었다. 입이 쩍 벌어지며 하품이 연신 튀어나왔고, 눈가에는 눈물방울이 찔끔 흘러나온다.
“오늘은 손님이 전혀 없군요.”
“그러게 말이야. 평상시 같으면 이때쯤 ‘제발 제 바이크 좀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며 달려오는 마니아 녀석들이라도 한두 명쯤 나타나는데 말이야. 불경기인가?”
지로라는 이름을 가진 일본계 여성이 이미 풀린 지 오래인 일본의 불경기를 들먹이며 뚱하니 밖을 쳐다본다. 정문은 시원스런 바람과 돈을 들고 오실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입을 떡하니 벌리고 있으나, 어느 누구도 그들의 조그만 가게를 찾으러 발걸음을 재촉하지는 않았다. 정확한 표현을 빌리자면 일반적인 점포나, 기계 수리점이 아닌 컨테이너 하나를 새롭게 개조한 형태의 가게이지만 말이다.
“그런데 케이. 네가 왜 여기 있는 거냐? 네가 오늘 저 부품 담당 아니었냐?”
“에엑? 제가 아니라 선배가 오늘 담당 아닌가요?”
지로가 갑자기 의아하다는 눈길로 바깥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공구박스와 바이크 부품들, 볼트와 너트들을 가리키며 묻는다. 케이는 두 손을 흔들며 자신이 아니라며 결백을 증명하지만 지로의 눈은 작아지며 그의 의중을 계속 묻는다.
“진짜냐?”
“달력을 좀 보세요. 오늘은 23일. 지로 선배 차례라고요. 전 어제부로 다 끝났는데”
“뭐야! 아무리 내가 오늘의 저것 담당이라 해도 그렇지. 이렇게 메미소리만이 들려오는 뙤약볕 아래에서 저 뜨겁게 달궈진 엔진을 손보라고?”
“저기 오늘은 태양빛이 오히려 따뜻한데요? 그리고 곧 가을이라 날씨도 나쁜 게 아니고, 저 엔진은 지금 파라솔 아래에서 느긋하게 휴식을.”
“그래서. 저 엔진이 무지 작은 기종이라고 나 혼자 해도 된다는 것이냐? 이 연약한 여자 혼자서”
“그, 그런 것이 아니잖아요! 담당은 중요 부분을 먼저 점검하고, 서포터에게 다음 부분들에 대해서.”
“그~으래서?”
지로가 도끼눈을 뜨고 그를 쳐다보자 항변 한번 못해보고 수그러드는 케이이치. 그들은 대학 간의 경쟁에서 열심히 수고한 바이크의 엔진을 튜닝 겸 점검을 하고 있었다. 각 대학 간의(특히 공대들 끼리)경기에서 그들이 과거 대학시절에 있었던 자동차부의 바이크는 최고 신기록을 세우며 황금빛 1등 트로피를 얻게 되었다. 문제는 바이크의 엔진에 있었다. 비록 좋은 성적을 내며 네코미와 자동차부의 위상을 바로 세우고, 동시에 부서 활동 지원금까지 두둑이 얻어 내는데는 성공했으나.
‘역시 돈이 없었던 우리의 기술력으로 가까스로 만들어낸 엔진은 거의 위험직전이란 결과라 뭐 이정도로 그쳐서 다행일까나?’
지로의 절대로 자기가 정비 안하겠다며 케이에게 떠넘기는 항의를 곧이곧대로 들어주며 대충 한귀로 흘려버리는 케이이치. 레이싱에서 승리한 후 자신 앞에 서 있는 이 여자가 술로 완벽하게 깨졌던(?) 모습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어? 웃어!”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선배. 켁!”
지로는 손을 뻗으며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치는 케이를 헤드락이란 마의 기술을 걸어 그에게 지옥이란 어떤 것인가를 몸소 깨닫게 해주었다. 물론 헤드락에 대한 기타비용은 무료였으니, 무료를 좋아하는 지로다운 훌륭한(?) 선택이었다. 당하는 케이 본인은 고통에 몸을 부르르 떨지만 말이다.
덜컥.
“홍차 준비 됐어요!”
“아 고마워. 벨!”
베르단디의 이름을 멋대로 줄여 애칭으로 부르는 지로. 베르단디의 목소리가 응접실에 울려 퍼지기가 무섭게 그녀가 들고 나오는 김을 모락모락 풍기는 찻잔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는 정문을 나서며.
“문 닫을 테니까 잘들 해보셔!”
“서, 선배!”
지로의 뚱딴지같은 소리에 얼굴이 확 달아오름을 느끼는 케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지로는 하하 커다랗게 함박웃음을 지르며 바깥으로 사라져간다. 케이는 옆에 우두커니 서서 지로의 한마디, 한마디를 곰곰이 떠올리는 베르단디를 떠올리며 할 말을 잃어간다. 그녀는 케이를 대신해 지로에 대해 입을 열었다. 베르단디의 이 말 또한 케이를 침묵의 바다로 다이빙시켰지만 말이다.
“지로 씨는 저희보고 무얼 잘들 해보라고 하신 거죠?”
“아, 하하하........글쎄.”
지로의 뜻을 전혀 해석하지 못하는 베르단디를 위해 케이는 감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얼버무리기가 최고였다.
“쵸르...트!(빌어먹을 자식!)”
“왜 내리자마자 화를 내시는 겁니까?”
우아한 흑발이 흡사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여인네를 떠올리게끔 생긴,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흑발을 가진 미소가 가득한 남자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외국인.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리기가 무섭게 남자에게 업힌 여자의 욕지기 섞인 낯선 언어. 여자는 남자와 얼굴 외모가 여러 모로 닮은꼴이었다. 다만 갈색의 머리칼을 지녔고, 그와는 다르게 신경질적인 얼굴이라는 점만 빼면 말이다.
“하! 몰라서 묻나? 난 여객기라는 것이 제일 싫어, 그게 안전하게 만든 민간용 헬기일지라도, 콩코드 제트기일지라도, 심지어 미국이 그렇게 자랑하는 F-35일지라도! 전부 다 엿 같은 것들뿐이라고! 알았어?”
“그렇지만. 멀미가 나는 배를 탈 수도 없는 것 아닙니까?”
“누, 누가 멀미를 겪는데 앙?! 네 녀석의 그 넉살 좋은 척하는 얼굴만 보니까 화가 치밀어서 먹은 것들이 뒤틀렸을 뿐이지!”
“에후. 도대체 뭐가 좋은 건지 원. 후후!”
여자는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그에게 있는 불평을 모조리 털어놓아 그를 괴롭히지만 그는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지나가다 쳐다보는 동양인들에게 별 것 아니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이 두 사람이 공항이 흔들리도록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모습이 신기했는지 대다수 일본인들은 그들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데도 자꾸 눈을 그쪽으로 돌려댔다. 하긴 나오면서부터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는 미녀를 등에 업고 있는 미남의 등장이란 점이 그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만도 하지만.
“아. 여기서는 그 귀찮은 휠체어 따위는 각성제에게 줘버리라고 던졌다. 그 딴 것 엿 바꿔 먹으라고 해. 야! WH455783 노보 시빌라스크는?”
여자가 언성을 조금 낮추며 세관 앞에서 뭐라 중얼거렸다. 뒤쪽의 이목이 더욱 집중되었지만 남자는 무시하며 조용히 귓속말로 그녀의 물음에 답했다. 고개를 뒤로 귀쪽을 향한 채 말만 조용히 한 것이기에 귓속말이라 하기에는 우습지만 남들에게 들리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었다.
“무한궤도에 약간 무리가 생겨서 말입니다. 아마도 옌지니예르가 담당중일 것입니다.”
“뭐? 엔줴가? 그 녀석 혹시 여기까지 오면서 또 이상잡다한 물건들을 챙긴 것은.....”
“그 혹시가 정확하다면요? 저에게 욕이라도 퍼부으시겠습니까?”
피식 웃어 보이며 다리를 절대 쓸 수 없어 내려주질 못하는 여성을 향해 남자가 비아낭거렸다. 엔줴란 이를 막지도 못하고 대책 없이 웃기만 하는 남자를 향해 여자는 코웃음을 치며 조용히 귓가에 입술을 갖다 댔다. 그 모습이 조금 이상야릇하게 느껴져 그들을 꼼꼼히 살피며 친절한 미소를 머금었던 세관의 얼굴이 빨개져갔다.
“뭐 엉뚱한 물건들 때문에 일정에 차질만 안 생긴다면 욕 안 해. 다만.”
“다만?”
“네놈 정보가 잘못 되었다면 욕이 아니라 마약을 쳐먹여줄테다. 알겠냐?”
“...............”
그녀의 협박 아닌 협박에 미소를 지은 채 석상이 돼 버린 남자. 남자는 계속 웃는 얼굴을 유지 한 채 그의 등에 업혀 있는 여자에게 뭐라 구시렁거린다.
“후우~무섭군요. 어떤 약일까나? 멀미약일까?”
“멀미 안 한다니까! 멀미 타령 하지 마 이 바보자식! 우욱.”
“와아~멀미다 멀미. 토하네!”
뭐가 그리 신난 지 남자는 그녀를 천장에 닿을락 말락한 높이로 뒤흔들며 자랑하듯 외친다. 여자는 오른손으로 입을 막으며 끈질기게 목을 넘어오는 무언가를 막으려 애썼다. 그들의 모습은 다시 주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2층에서 곧장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 주황색 머리칼에 붉은 두 눈동자를 지닌 황색 제복차림의 남자를 빼면 말이다.
“............”
그는 예의 침묵만 지키라고 명령 받은 군인처럼, 얼어붙은 시베리아 벌판처럼 입을 꽉 다물고 있었다.
“후아 다 끝냈다!”
“굉장해요! 케이씨와 지로씨가 함께라면 어떤 엔진이라도 기뻐할거에요!”
서양인으로 보이는 늘씬한 미녀가 머리칼을 휘날리며 얼굴에 맞지 않게 어린아이마냥 팔짝팔짝 뛰며 좋아한다. 베르단디의 그런 모습에 케이는 등 뒤에 커다란 땀 하나를 삐질 흘리며 너털 웃음소리만 낼뿐이었다.
“암 물론이지! 이 휠윈드의 마담과 어리버리 숫총각이 함께인데 고작 단기통이 다기통으로 바뀐 것을 가지고 뭘~”
‘이게 뭐가 별 것 아 닙 니 까?’
부품도 없이, 그녀 스스로 용접하고, 가공해서 만들었다는 실린더와 부품 몇 개로 낡아빠진 바이크의 단기통을 자그마치 4기통 엔진으로 바꾼 것이 누구인데!! 이런 것. 정말 가능하구나라고 케이는 마음속으로 외치며 조용히 수그러들었다. 어리 버리란 말이 좀 분하기는 해도 말이다. 참고로 지로는 신기 아닌 괴기를 케이에게 보여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봐봐 벨! 이걸 봐! 어때? 메카닉의 세계에서 꼭 없어선 안 될 제도 한번 그리지 않고, 단지 머릿속에 정리해놓은 것을 그대로 기계에 적용시킨다는 이 지로님의 능력이! 어때?”
“그, 그치만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다가는 자칫 잘못하면 위험해질 수도...”
“흥! 됐네요. 제도는 이 몸의 천재 두뇌 속에 고스란히 박혀 계시구요, 시뮬레이션과 계산도 진작 끝내놓았으니 걱정 마시죠 숫총각씨? 그렇게 시간을 줬는데도 손 하나만 잡고 느긋하게 앉아계신 케모군을 위해 이렇게 개조시킨 사람이 누구더라?”
이야기가 왜 이렇게 돼냐구욧! 케이가 마음속으로 마구 외쳤지만. 얼굴만 빨개질 뿐 별 다른 수가 없었다. 정말 그녀가 보여준 제도 없이 마구 튜닝은 보는 케이로 하여금 공포심을 느끼게 만들었다. 혹시 지로는 정말로 정비의 여신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자~어쨌든 이 엔진을 네 바이크에 선물로 줄 테니 자~대신에 내 선물 꼭 사와!”
“안 가져가요. 저렇게 불안한 것을 왜.”
“그렇게 신뢰를 못 하겠으면 한번 타봐!”
지로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남자의 배짱을 사랑하는 여신 앞에서 그대로 들어내 보이라며 그의 어깨를 툭툭 건드린다. 안타면 무언가 금전적인 조치를 취하겠다는 심보가 분명했다. 방금 한 말 취소! 그녀는 정비의 악마다. 라고 케이는 자신의 감탄을 수정했다.
“그, 그럼 선배가 이걸 직접 타봐요! 선배는 신뢰하고 있을 것 아닙니까? 선배의 엔진을.”
“어머나~난 내 두뇌와 내 두뇌 속 시뮬레이션을 믿는다고 했지. 엔진을 믿는다는 소린 아니었는데.”
‘정말 악마다!’
“왜. 꼬우냐?”
눈을 가늘게 치켜세우며 자 치킨레이스(일명 죽음의 레이스)를 시작하세요! 라며 붉은 깃발을 휘날리는 것만 같은 지로의 모습에 케이는 속으로 울며 겨자 씹어 먹기란 새로운 언동을 생각해보았다.
“그렇다면 제가 이 아이를 타봐도 될까요?”
“절대 안 돼!”
베르단디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방금 막 엔진 이수가 끝난 암청색과 검은색이 조화를 이룬 혼다제 쉐도우 - 커스텀을 어루만지며 물어본다. 일순간 케이와 지로는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탈법한 이 커스텀을 타고 질주하는 베르단디의 모습을 떠올리며 알 수 없는 기쁨을 느꼈으나 역시 그녀에게 이런 위험한 물건을 쥐어주기에는 교육상(?) 안 좋다고 판단했는가 보다. 둘이 동시에 안돼를 외치며 다시 말싸움(?)을 시작하자 베르단디는 안타까운 얼굴이 되어 중얼거린다.
“이 아이는 엄청 흥분해 있어요. 조금 진정하렴. 곧 질주를 시작할 수 있을 거야.”
베르단디가 안타까운지 슬픈 얼굴이 되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바이크를 잘 타이르며 어루만져준다. 그 모습에 케이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난감을 느끼며 뒷머리를 긁적인다. 그 모습을 보고 악귀가 강림한 얼굴이 된 지로가 흡족한 얼굴로 그를 토닥이며 누구보고 들으라는 듯이 비아낭거렸다.
“아~벨양의 소원을 들어줄 사람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요? 천재 미녀 정비사의 무궁무진한 두뇌를 믿지 않는 숫총각님밖에 없는데. 아~하늘이시여! 하늘도 참 무심하시지.”
“..........”
미치겠다! 결국 속으로 이런 제도지 한 장 없이 지로의 머릿속에서 탄생한 괴물 바이크(참고로 정말 어이없게도 이 다기통 엔진은 자동차에 쓰이는 엔진보다 조금 아랫단계의 것이다.)를 전신으로 바람을 느끼며 질주해야 한다니. 아무리 질주를 좋아하는 케이라 해도 이런 시험용의 희생물이 되기는 싫지만. 걱정 없다는 베르단디의 한마디에 더욱 더 큰 걱정이 들고야 말았다.
“전게 갑자기 개조했던 EMERGENCY 모델(만화책 최근판을 보시라!)보다 훨씬 안전하니까 걱정 마세요 케이씨. 지로씨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성들여서 개조했으니까요.”
잠깐. 그렇다면 그때 베르단디가 타고 온 그 이멀전시는 얼마나 위험했다는 것인가?!
‘물론 위험하지는 않았죠! 단지 저 아이는.’
흥분하고 있을 뿐. 마치 장난감 총을 가지길 원하는 아이에게 최강의 장난감 총이 주어지자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과녁으로 느껴지는 모든 것에 발포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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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만화책판을 막 봤습니다. ㅋㅋㅋ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스쿨드와 울드의 작품을 본 이들의 입이 떡 벌린 장면.]
ㅋㅋㅋ
참고로 다음 편에서는 도저히 바이크라 할 수 없는 기괴한 작품이 등장할 예정입니다.
오늘 엔진을 바꾸고 흥분한 쉐도우750과는 비교도 안되는 녀석이죠 ㅋㅋㅋ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답변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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