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그 한마디가 어려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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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날이 끝나가는 느즈막한 9월의 어느날이다.
왠지모르게 이전보다 더 높아진, 더 푸르러진듯한 하늘은 보는사람으로 하여금 상쾌한 기분을 가지게 한다.
정정. 보는이로 하여금 상쾌한 기분을 가지게 한다. 왜냐하면…
-케이이치 씨, 계속 멍하니 있으면 치히로 씨에게 야단맞아요.
라면서 눈은 똑같이 하늘을 바라보는 이 여인때문이다.
그녀의 이름은 베르단디. 1급신 2종 비한정, 도우미 여신 사무소 소속 여신. 아니면 나 케이이치와 같이 동거하는 여인. 그것도 모자라다면 항상 따스하게 웃어주는 나만의 그녀. 이쁘고, 착하고, 상냥하고, 자상하고……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그녀.
내가 그녀와 산지도 벌써 몇 년째인지. 그리고 이런 행복한 삶을 사는게 몇 년째인지.
-하늘이 참… 맑아요.
-응, 그렇네. 천상계의 하늘도 이럴까나?
-네, 대체로 이렇게 맑아요. 그래도 전 지상계의 하늘이 더 좋은거 같아요.
-왜?
-그야… 같이 하늘을 볼 사람이 있으니까요.
같이 하늘을 볼 사람…인가. 같이 하늘을 볼 사람… 하하, 왠지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베르단디의 이런 표현방식… 너무나도 나에게 꼭 맞춘 방식이다. 이런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울 뿐이다. 직접적으로 사랑한다고 하진 않아도 사랑한다는 감정을 결코 숨기지는 않는 말투. 스스럼없이 나를 향해 「당신이 너무 좋아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정도로. 너무 좋아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이라고 외치는 눈동자….
-케이이치 씨, 하늘도 좋지만 이대로라면 늦지 않을까요?
-응, 그럴꺼야. 어서 출발해야겠지? 오늘은 수리할 바이크가 이미 네 대나 있으니…
-오늘 하루도 힘내요.
-오늘 하루도 힘내자.
바이크에 시동을 걸자 기분좋은 진동이 몸으로 전해져 온다. 헬멧을 쓰고 흘끔 베르단디를 바라봤다. 내 작은 기척도 놓치는 법이 없는 그녀는, 작은 눈길도 알아채 방긋 웃었다. 그녀다운 수수한 미소. 보는 이로 하여금 추운 겨울날 모닥불을 쬐는 듯 따뜻한 온기를 가지게 하는 미소. 언제나까지, 내 생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은… 미소.
타리키혼간지사(寺)를 나와 네코미 시 시내로 향했다. 오늘은 이미 수리할 바이크가 네 대나 있다. 그 말은 오전 내내 그것만 붙잡고 늘어져도 밥먹고 오후까지 그것과 씨름해야 할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또 거기에 오늘 수리 들어온 바이크가 겹쳐지면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쁠 것 같다.
그래도 힘차게 출근길을 달릴 수 있는 이유는, 바이크란 나에게 있어 기쁨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석들이 부아아앙 달릴 때 나는 형용할 수 없는 힘을 느낀다. 그녀석들의 힘찬 엔진소리가 나에게 심장이 뛰고 있음을 알려준다. 마치 내 안에 에너지가 온몸으로 퍼지는 걸 느낀다고 할까.
출근길에 뺨을 스치는 바람은 상쾌한 것이었다. 파란 하늘도, 여름철 녹음(綠蔭)이 아직도 여전한 숲도, 저멀리 가을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도, 모두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물론 살짝살짝 옷깃에 닿는 베르단디의 부드러운 머릿결도 말이다.
……이런 행복을 혼자 가져도 되는걸까…? 나란 녀석은.
* * * * *
오후 6시. 이미 여름은 거진 다 지나가서 한 낮의 더위도 한풀 꺾인 요즘이다. 거기에 6시는 이제 해가 슬슬 바다로 기울기 시작하는 때라 슬슬 시원한 바람마저 불고 있다.
다행이 오늘 수리의뢰 들어온 바이크는 별로 많지 않아 어떻게든 오늘 내로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결정적인건 오전에 치히로 선배의 엄청난 의욕으로-"이 치히로가 그날 할 일을 그날 못끝내는 일이 발생하다니! 절대로 이틀이나 그렇게 될 순 없어!"-평소보다 1.5배의 속도로 정비한 것이었다. 더 무서운점은 그러고도 불량점검은 제로, 즉 질 역시 평소와 똑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케이이치. 오늘 좀 일찍 끝나면 갈 곳이라도 있어?
가게 문 닫으면서 선배가 하는 말이다.
-엥? 갈 곳이요? 아니 뭐… 딱히 일정이 있는 건 아닌데…
-흐~음, 그렇구나. 참, 베르단디랑은 요새 어떻게 되 가?
어… 갈 곳 있냐고 물어보다가 갑자기 베르단디랑 진도는 어떠냐고 물어보는건 무슨 연관이 있어서일까...-_-; 아무튼 치히로 선배는 어딘가 갑작스러운 면이 좀 있다. 첫 만남때 갑자기 부실에 들이닥쳤던 것도, 갑자기 레이스 제안했던 것도…
-음~;; 뭐 어떻게 되가냐고 물어보신다면 딱히 뭐라 대답을…
-너 설마... 아직도 "좋아해" 가지고 호들갑이란 호들갑을 다 떠는건 아니지?
호…호들갑이라니;; 이봐요 선배. 그게 나한테 얼마나 어려운 말인데. 뭐 몇 번 했지만서도, 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시뻘개지는건 어쩔 수 없다. 그런 점에서도 베르단디에게 너무 감사하고 있다. 이렇게 못난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끊임없이 믿어주는 그녀니까.
-아,아하하;; 설마요;
-그래그래~ 지금쯤이면 "사랑해" 따위는 "안녕~"보다 쉬워야지.
이,이봐요-_-;
-그래서말인데~ 자, 이거!
그렇게 말하는 선배의 손에 들려있는 건 이번 달 월급봉투. 어째 저번 달 보다 두둑해진거 같은데?!
-가서 베르단디한테 맛있는 것도 사주고, 좋은 것도 좀 보여주고 해라 좀. 넌 어째 사내자식이 그리 숫기가 없냐?
-…결국 월급봉투 주는거면서 미화하지 마세요.-_-
-어쭈? 답답한 남자친구 둔 베르단디가 안타까워서 조언 좀 해줬더니 기어오르는거야?
-(도리도리)
-그래~ 그래야지. 어쨌든 오늘은 "사랑해" 성공해라?
-오,오늘은 이라뇨-_-;; 그걸 언제 하든 그건 제 마음인겁니다. 선배도 참…
-그래, 확실히 그걸 말하는 때는 네 마음이지. 하지만…
-…?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은 항상 기다리고 있어. 여태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쭉 그럴꺼야.
* * * * *
-해변이요?
-응, 베르단디. 최근들어 이 시간대의 바닷가에 가본 적도 없잖아.
-그것도 그렇네요… 저는 케이이치 씨와 함께라면 어디든지 좋아요.
-아하하, 뭔가 좀 쑥스러운데. 자, 그럼 가볼까?
-후후, 네!
다시 부르르릉. 석양이 지는 바닷가로 향하는 중이다. 오늘은 그녀에게 꼭 전하고 싶다. 항상 한심하게 좋아한다는 말도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나니까. 오늘은 좀 더 나가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싶다. 정말 너를 사랑한다고,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언제나 내 곁에서, 나와 함게 웃고 떠들고 울고 화내고 슬퍼하며 그렇게 있어줬으면 한다고. 나 정말 못난 놈이지만, 그래도 너를 사랑하는 것, 정말 있는 힘껏 내 인생을 다해 널 사랑하는 건 자신있다고.
노을진 바닷가는 핑크빛과 샛노란 하늘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둥근 해가 지면서 못내 아쉬운듯 뿜어내는 파스텔톤의 붉은 기운은 온 하늘을 뒤덮는 것 같았다. 아, 정말 아름다운 하늘이다.
-저… 베르단디.
-네, 케이이치 씨.
-아… 어… 그… 저… 음… 그러니까…
또 시작됐다. 내 울렁증. 도대체 나란 놈은 왜이렇게 울렁증이 심한건지! 아아, 신이시여. 도대체 나는 정녕 남자가 맞는겁니까?!
-케이이치 씨… 안색이 안좋아요…
또 시작됐다. 그녀의 걱정. 도대체 그녀는 왜이렇게 나에게 민감한건지! 아아, 신이시여. 도대체 그녀는 왜이리 나에게 민감한겁니까?!
-그래, 베르단디. 난 지금 너무 아파.
신에게 투정부린 효과가 있던 걸까? 갑작스럽게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온 몸이 편해지는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그렇지 못한것 같다. 안절부절안절부절, 내 얼굴과 내 행동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체크하고 있는게 느껴졌다. 분명 그녀의 머릿속에선 지금 내 감정을 분석하는 작업이 한창일 것이다.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걸 못하는 내가 너무 한심해서, 그래서 너무 아파.
-무슨… 말인데요?
-나 말야… 정말 너무 꼴불견이지.
-왜 그런 얘기를 해요, 케이이치 씨…
-이렇게 너를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한데,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인데… 그걸 표현해줄 딱 세 글자짜리 단어도 제대로 말 못하다니…
-케이이치 씨…
-그래도 오늘은 꼭 하고싶어. 베르단디 니가 너무 고마우니까. 너를 너무, 너무…
해야만 한다. 간단한 세 글자 짜리 단어다. 움직여라, 혓바닥아. 열려라, 입술아. 퍼져나가라, 내 목소리야… 이렇게나 고맙고, 이렇게나 아름답고, 이렇게나 눈부시는 그녀를 위해… 한심한 나같은 놈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듣기 위해 여태까지 쭉 참고 기다려 왔던 그녀를 위해… 온 몸의 세포야, 깨어서 나를 도와다오…!
-…사랑하니까.
말해버렸다.
두 눈 질끈 감고 내뱉어버렸다. 당장에 찾아오는 감정은 후련함. 드디어 해냈다는 만족감. 그리고 두 눈을 살며시 뜨니…
-케…케이이치 씨!
그녀는 울고 있다. 떨리는 목소리로, 아니 정말로 손을 떨고 있다. 파란 가을하늘보다 더 파란 커다란 눈망울이 흔들리고 있다. 노을 때문일까, 뺨이 붉게 물들어 있다. 그녀가 점점 다가온다. 다가온다. 다가온다… 더 가까이, 오로지 내 눈에 그 큰 눈망울을 고정시킨 채, 점점 더 가까이…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케이이치 씨! 아주 많이 사랑해요…
그녀의 마음은 폭발해 버린 것 같다. 더불어 내 마음도 폭발해버렸다. 정말 뻥 터져버려서 이젠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다. 말에 실린 힘을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어서, 두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속눈썹에 방울방울 달려있는 투명한 액체가 보일 정도로, 그녀의 따뜻하고 보드라운 살결이 느껴질 정도로,
……그녀의 촉촉한 입술이 느껴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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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책 다보고 허무감을 달래기 위해 즉흥적으로 써봤습니다.
그냥 케이이치와 베르단디의 사랑얘기만 썼습니다. 뭔가 장황하게 벌리면 마무리 못할껄 뻔히 알기에(..)
덧. ㅠㅠ 원래 스샷을 찍은게 있는데 URL을 못찾겠습니다 ㅠㅠ 원래 네이버 여신님 카페에 먼저 올렸던 건데..
왠지모르게 이전보다 더 높아진, 더 푸르러진듯한 하늘은 보는사람으로 하여금 상쾌한 기분을 가지게 한다.
정정. 보는이로 하여금 상쾌한 기분을 가지게 한다. 왜냐하면…
-케이이치 씨, 계속 멍하니 있으면 치히로 씨에게 야단맞아요.
라면서 눈은 똑같이 하늘을 바라보는 이 여인때문이다.
그녀의 이름은 베르단디. 1급신 2종 비한정, 도우미 여신 사무소 소속 여신. 아니면 나 케이이치와 같이 동거하는 여인. 그것도 모자라다면 항상 따스하게 웃어주는 나만의 그녀. 이쁘고, 착하고, 상냥하고, 자상하고……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그녀.
내가 그녀와 산지도 벌써 몇 년째인지. 그리고 이런 행복한 삶을 사는게 몇 년째인지.
-하늘이 참… 맑아요.
-응, 그렇네. 천상계의 하늘도 이럴까나?
-네, 대체로 이렇게 맑아요. 그래도 전 지상계의 하늘이 더 좋은거 같아요.
-왜?
-그야… 같이 하늘을 볼 사람이 있으니까요.
같이 하늘을 볼 사람…인가. 같이 하늘을 볼 사람… 하하, 왠지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베르단디의 이런 표현방식… 너무나도 나에게 꼭 맞춘 방식이다. 이런 그녀가 너무 사랑스러울 뿐이다. 직접적으로 사랑한다고 하진 않아도 사랑한다는 감정을 결코 숨기지는 않는 말투. 스스럼없이 나를 향해 「당신이 너무 좋아요. 도무지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를 정도로. 너무 좋아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이라고 외치는 눈동자….
-케이이치 씨, 하늘도 좋지만 이대로라면 늦지 않을까요?
-응, 그럴꺼야. 어서 출발해야겠지? 오늘은 수리할 바이크가 이미 네 대나 있으니…
-오늘 하루도 힘내요.
-오늘 하루도 힘내자.
바이크에 시동을 걸자 기분좋은 진동이 몸으로 전해져 온다. 헬멧을 쓰고 흘끔 베르단디를 바라봤다. 내 작은 기척도 놓치는 법이 없는 그녀는, 작은 눈길도 알아채 방긋 웃었다. 그녀다운 수수한 미소. 보는 이로 하여금 추운 겨울날 모닥불을 쬐는 듯 따뜻한 온기를 가지게 하는 미소. 언제나까지, 내 생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은… 미소.
타리키혼간지사(寺)를 나와 네코미 시 시내로 향했다. 오늘은 이미 수리할 바이크가 네 대나 있다. 그 말은 오전 내내 그것만 붙잡고 늘어져도 밥먹고 오후까지 그것과 씨름해야 할 공산이 크다는 뜻이다. 또 거기에 오늘 수리 들어온 바이크가 겹쳐지면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쁠 것 같다.
그래도 힘차게 출근길을 달릴 수 있는 이유는, 바이크란 나에게 있어 기쁨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녀석들이 부아아앙 달릴 때 나는 형용할 수 없는 힘을 느낀다. 그녀석들의 힘찬 엔진소리가 나에게 심장이 뛰고 있음을 알려준다. 마치 내 안에 에너지가 온몸으로 퍼지는 걸 느낀다고 할까.
출근길에 뺨을 스치는 바람은 상쾌한 것이었다. 파란 하늘도, 여름철 녹음(綠蔭)이 아직도 여전한 숲도, 저멀리 가을 햇살에 반짝반짝 빛나는 바다도, 모두 나를 행복하게 해주었다. 물론 살짝살짝 옷깃에 닿는 베르단디의 부드러운 머릿결도 말이다.
……이런 행복을 혼자 가져도 되는걸까…? 나란 녀석은.
* * * * *
오후 6시. 이미 여름은 거진 다 지나가서 한 낮의 더위도 한풀 꺾인 요즘이다. 거기에 6시는 이제 해가 슬슬 바다로 기울기 시작하는 때라 슬슬 시원한 바람마저 불고 있다.
다행이 오늘 수리의뢰 들어온 바이크는 별로 많지 않아 어떻게든 오늘 내로 끝낼 수 있을 것 같다. 결정적인건 오전에 치히로 선배의 엄청난 의욕으로-"이 치히로가 그날 할 일을 그날 못끝내는 일이 발생하다니! 절대로 이틀이나 그렇게 될 순 없어!"-평소보다 1.5배의 속도로 정비한 것이었다. 더 무서운점은 그러고도 불량점검은 제로, 즉 질 역시 평소와 똑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케이이치. 오늘 좀 일찍 끝나면 갈 곳이라도 있어?
가게 문 닫으면서 선배가 하는 말이다.
-엥? 갈 곳이요? 아니 뭐… 딱히 일정이 있는 건 아닌데…
-흐~음, 그렇구나. 참, 베르단디랑은 요새 어떻게 되 가?
어… 갈 곳 있냐고 물어보다가 갑자기 베르단디랑 진도는 어떠냐고 물어보는건 무슨 연관이 있어서일까...-_-; 아무튼 치히로 선배는 어딘가 갑작스러운 면이 좀 있다. 첫 만남때 갑자기 부실에 들이닥쳤던 것도, 갑자기 레이스 제안했던 것도…
-음~;; 뭐 어떻게 되가냐고 물어보신다면 딱히 뭐라 대답을…
-너 설마... 아직도 "좋아해" 가지고 호들갑이란 호들갑을 다 떠는건 아니지?
호…호들갑이라니;; 이봐요 선배. 그게 나한테 얼마나 어려운 말인데. 뭐 몇 번 했지만서도, 할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리고 시뻘개지는건 어쩔 수 없다. 그런 점에서도 베르단디에게 너무 감사하고 있다. 이렇게 못난 나를 알아주고 이해해주고 끊임없이 믿어주는 그녀니까.
-아,아하하;; 설마요;
-그래그래~ 지금쯤이면 "사랑해" 따위는 "안녕~"보다 쉬워야지.
이,이봐요-_-;
-그래서말인데~ 자, 이거!
그렇게 말하는 선배의 손에 들려있는 건 이번 달 월급봉투. 어째 저번 달 보다 두둑해진거 같은데?!
-가서 베르단디한테 맛있는 것도 사주고, 좋은 것도 좀 보여주고 해라 좀. 넌 어째 사내자식이 그리 숫기가 없냐?
-…결국 월급봉투 주는거면서 미화하지 마세요.-_-
-어쭈? 답답한 남자친구 둔 베르단디가 안타까워서 조언 좀 해줬더니 기어오르는거야?
-(도리도리)
-그래~ 그래야지. 어쨌든 오늘은 "사랑해" 성공해라?
-오,오늘은 이라뇨-_-;; 그걸 언제 하든 그건 제 마음인겁니다. 선배도 참…
-그래, 확실히 그걸 말하는 때는 네 마음이지. 하지만…
-…?
-그걸 받아들이는 사람은 항상 기다리고 있어. 여태까지도 그래왔고, 앞으로도 쭉 그럴꺼야.
* * * * *
-해변이요?
-응, 베르단디. 최근들어 이 시간대의 바닷가에 가본 적도 없잖아.
-그것도 그렇네요… 저는 케이이치 씨와 함께라면 어디든지 좋아요.
-아하하, 뭔가 좀 쑥스러운데. 자, 그럼 가볼까?
-후후, 네!
다시 부르르릉. 석양이 지는 바닷가로 향하는 중이다. 오늘은 그녀에게 꼭 전하고 싶다. 항상 한심하게 좋아한다는 말도 제대로 해본 적도 없는 나니까. 오늘은 좀 더 나가 사랑한다고 얘기하고 싶다. 정말 너를 사랑한다고, 내 곁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언제나 내 곁에서, 나와 함게 웃고 떠들고 울고 화내고 슬퍼하며 그렇게 있어줬으면 한다고. 나 정말 못난 놈이지만, 그래도 너를 사랑하는 것, 정말 있는 힘껏 내 인생을 다해 널 사랑하는 건 자신있다고.
노을진 바닷가는 핑크빛과 샛노란 하늘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둥근 해가 지면서 못내 아쉬운듯 뿜어내는 파스텔톤의 붉은 기운은 온 하늘을 뒤덮는 것 같았다. 아, 정말 아름다운 하늘이다.
-저… 베르단디.
-네, 케이이치 씨.
-아… 어… 그… 저… 음… 그러니까…
또 시작됐다. 내 울렁증. 도대체 나란 놈은 왜이렇게 울렁증이 심한건지! 아아, 신이시여. 도대체 나는 정녕 남자가 맞는겁니까?!
-케이이치 씨… 안색이 안좋아요…
또 시작됐다. 그녀의 걱정. 도대체 그녀는 왜이렇게 나에게 민감한건지! 아아, 신이시여. 도대체 그녀는 왜이리 나에게 민감한겁니까?!
-그래, 베르단디. 난 지금 너무 아파.
신에게 투정부린 효과가 있던 걸까? 갑작스럽게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으며 온 몸이 편해지는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그렇지 못한것 같다. 안절부절안절부절, 내 얼굴과 내 행동까지 하나하나 세심하게 체크하고 있는게 느껴졌다. 분명 그녀의 머릿속에선 지금 내 감정을 분석하는 작업이 한창일 것이다.
-너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그걸 못하는 내가 너무 한심해서, 그래서 너무 아파.
-무슨… 말인데요?
-나 말야… 정말 너무 꼴불견이지.
-왜 그런 얘기를 해요, 케이이치 씨…
-이렇게 너를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한데,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다 날 지경인데… 그걸 표현해줄 딱 세 글자짜리 단어도 제대로 말 못하다니…
-케이이치 씨…
-그래도 오늘은 꼭 하고싶어. 베르단디 니가 너무 고마우니까. 너를 너무, 너무…
해야만 한다. 간단한 세 글자 짜리 단어다. 움직여라, 혓바닥아. 열려라, 입술아. 퍼져나가라, 내 목소리야… 이렇게나 고맙고, 이렇게나 아름답고, 이렇게나 눈부시는 그녀를 위해… 한심한 나같은 놈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듣기 위해 여태까지 쭉 참고 기다려 왔던 그녀를 위해… 온 몸의 세포야, 깨어서 나를 도와다오…!
-…사랑하니까.
말해버렸다.
두 눈 질끈 감고 내뱉어버렸다. 당장에 찾아오는 감정은 후련함. 드디어 해냈다는 만족감. 그리고 두 눈을 살며시 뜨니…
-케…케이이치 씨!
그녀는 울고 있다. 떨리는 목소리로, 아니 정말로 손을 떨고 있다. 파란 가을하늘보다 더 파란 커다란 눈망울이 흔들리고 있다. 노을 때문일까, 뺨이 붉게 물들어 있다. 그녀가 점점 다가온다. 다가온다. 다가온다… 더 가까이, 오로지 내 눈에 그 큰 눈망울을 고정시킨 채, 점점 더 가까이…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케이이치 씨! 아주 많이 사랑해요…
그녀의 마음은 폭발해 버린 것 같다. 더불어 내 마음도 폭발해버렸다. 정말 뻥 터져버려서 이젠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다. 말에 실린 힘을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어서, 두 발자국 떨어진 곳에 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녀의 속눈썹에 방울방울 달려있는 투명한 액체가 보일 정도로, 그녀의 따뜻하고 보드라운 살결이 느껴질 정도로,
……그녀의 촉촉한 입술이 느껴질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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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 만화책 다보고 허무감을 달래기 위해 즉흥적으로 써봤습니다.
그냥 케이이치와 베르단디의 사랑얘기만 썼습니다. 뭔가 장황하게 벌리면 마무리 못할껄 뻔히 알기에(..)
덧. ㅠㅠ 원래 스샷을 찍은게 있는데 URL을 못찾겠습니다 ㅠㅠ 원래 네이버 여신님 카페에 먼저 올렸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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