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G '아앗 이건 나만의 이야기!' [진짜 불청객은 항상 당신과 함께?(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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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건!’
부아아아앙.
음악을 듣던 그의 머릿속을 번뜩 스쳐 지나가는 엔진 배기음. 그것은 모터바이크라 불리는 이륜차가 질주하는 모습이었다. 음악에 심취해 있던 그의 머릿속에는 음악이 전하는 의미들이 색칠이 덜된 흑백사진마냥 떠올랐다.
“이건 정말 바이크의 움직임을 묘사한 곡 같아.”
부다다당 부아앙!
피아노와 같이 조용한 곡에만 어울린다는 악기들로 이렇게 맹렬한 소리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의아할 만도 하지만 케이나 베르단디 어느 쪽도 그런 의문은 신경 쓰지 않았다. 너무도 아름다운 질주이기에 그들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바이크는 커다란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것과 운전자는 멈추기를 거부하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끼릭.
갑자기 음악이 조용해지더니 바이크의 브레이크 소리. 어떻게 소리를 냈는지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케이는 그저 이 아름다운 질주가 어떻게 끝나고, 왜 멈췄는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케이를 베르단디가 달래 앉혔다.
“걱정 마세요. 끝난 것이 아니라 진짜 질주와 능력은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그의 생각을 읽었다는 듯 베르단디가 거부할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케이는 어린아이 마냥 고개를 끄덕이며 앉았다. 그리고 피아노와 첼로, 바이올린의 질주는 그녀의 말대로 진짜 시작되었다.
좀 전과는 비교가 되는 화려한 음향, 연주가들이 조금 고생할 것 같은 빠른 리듬은 바이크가 새롭게 지날 흙길과 언덕, 장애물들을 완성해냈고, 운전자와 바이크의 질주하는 모습도 라울이란 도화지 위에 그린다. 배기음은 공중에 떠오르고, 브레이크 소리를 내지 않는다. 마치 중력과 마찰이란 이 세계를 둘러싼 당연한 법칙들에 대항하듯이 말이다. 케이와 베르단디는 TV 속의 스턴트맨들의 죽음을 담보로 건 묘기를 떠올리며 질주에 빠져 든다.
‘굉장하다. 정말로 이런 음악이 가능한 거야?!’
‘놀라워요.’
그녀와 그의 감탄사였다. 하지만 질주를 깨닫지 못하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그저 듣기만 할 뿐 아무런 감흥도 느끼질 못하고 있었다. 음악은 어느새 클라이맥스를 지나 멈출 것 같지 않던 질주를 멈추기 위해 서서히 느려지고 있었다. 화려함도 사라지고 처음의 자세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다 멈추었다. 바이크의 배기음과 모터의 날렵한 움직임은 들려오지 않는다. 다시 손님들의 웅성거림과 울드들의 알 수 없는 장난 소리가 들릴 뿐.
“정말 위험한 묘기야. 누가 만들었을까? 이렇게 대단한 곡을…….”
“이 곡을 지은 이는 정말로 바이크와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 분명해요. 그 두 가지를 위해서라면 주저하지 않는 자에요. 특히 바이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것을 보니. 케이씨와 비슷한 것 같지 않아요?”
“하하 그런가? 하지만 이 음악을 만든 사람은 대단해. 그 사람이 나와 비교가 될 수 있는 상대일까? 솔직히 걱정인데?”
베르단디의 칭찬 같은 물음에 쑥스러워하며 웃는 케이. 자상한 얼굴의 소유자 베르단디는 계속 말을 잇는다. 케이는 그녀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르는 자신을 여신들 다음으로 푹 빠지게 만들어준 작곡가에 대해서 최대한 많은 것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많은 의문들을 풀어 줄 위대한 분이 그 앞에 있다.
“하지만 무언가 그를 막아섰어요. 장애물들은 그와 바이크는 모든 것을 뛰어넘었지만 그를 기다리는 무언가를 뛰어넘지는 못했어요. 그는 지금 여기 있어요. 그리고 그는 지금은 바이크의 꿈을 꾸지는 못하지만 이따금씩 질주를 하는 꿈을 꾼다.”
“질주를 못 한다.”
케이는 꿈도 꿔보지 못한 상황이다. 그것을 타고 질주의 쾌감을 느끼는 것을 막는 장애물, 혹은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은 해보았지만 케이에게 그들은 미미한 영향을 끼칠 뿐이었다. 하지만 이 작곡가는 달랐다. 그는 케이만큼, 아니면 케이보다 더 열정을 지닌 자였는데 그의 꿈이 멈춰버린 것이다.
“꿈만 가지고 살 수는 없겠지?”
케이의 혼잣말에 베르단디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꿈을 꾸며 살아갈 수는 없지만 행복은 언젠가 찾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하지만 베르단디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케이의 입이 먼저 움직였다.
“그래 꿈만 가지고 사는 바보가 되지는 못하지. 하지만 작곡가도 언젠가는 꿈이 아니라 행복을 찾았을 거야. 나는 벌써 그 행복이 곁에 있잖아 안 그래?”
“네!”
역시 케이는 절대로 실망하거나 좌절하는 이가 아니었다. 그는 자기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행복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는 행복하다고 자신한다. 그의 말은 베르단디처럼 세상을 꿰뚫어보는 지혜를 가진 현자 같았다. 다만 그의 말에도 하나 틀린 것이 있었다. 물론 그가 틀렸다는 사실은 베르단디도 잘 알지 못하니 탓할 필요도, 기분 나쁘게 생각할 이유도 없지만 말이다.
“허허허. 아니면 행복을 찾았던가 말이죠. 허허허.”
낯익은 목소리에 케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베르단디의 시선도 남자의 목소리에 쏠렸다. 통통한 체구의 남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콧수염을 잘 다듬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쏠리자 그가 머쓱한지 뒷머리로 손을 움직였다.
“두 사람 다 놀랍군요.”
“예?”
케이가 반문했다.
“여기 있는 수많은 사람들. 아니 그 전에도 찾아왔던 손님들 중 어느 누구도 작곡가가 바이크를 좋아하는 자였고, 스턴트에 목숨을 걸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자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인식은 음악의 진정한 의미를 꿰뚫어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고 클래식에서 떨어져 나온 ‘짝퉁음악’처럼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는 않아요!”
베르단디가 아니라고 말했다. 지배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설명한다.
“이건 그냥 비유입니다. 하지만 모두들 아무런 감흥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심지어 음악의 전문가라는 사람들까지도 말이죠. 그들의 머릿속에는 평생 이미 죽은 것이 틀림없는 바흐나 모차르트 같은 이들을 쫓고 있을 뿐이죠. 그들은 이미 죽은 사람인데도 말이죠.”
“...........”
“쫓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죠. 그들의 음악을 진정으로 느끼고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좀 실례가 되는 발언이겠군요. 하지만 제가 본이들은 절대로 음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단지 자신들의 꿈을 위한 수단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 것이죠. 이미 세상에 없는 이들을 꿈의 수단이라고 말이죠.”
지배인은 아쉽다는 얼굴로 뒷머리만 긁적이며 곁눈질로 베르단디를 살폈다. 지배인은 그녀와 케이가 정말 맘에 들었는지 거대 식당의 주인이란 본분을 잊고 정중하게 대했다.
“자신의 행복을 찾는다. 그게 뭐가 됐든 말이죠.”
“하하하. 여자 분이 당당하군요. 맞습니다. 그게 정확하겠죠?”
지배인이 껄껄 웃어 보이며 콧수염을 다듬었다. 그러다 품속에서 작은 쪽지를 꺼내 두 사람의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명함에는 다카하시란 그의 이름과 함께 라울 레스토랑의 위치와 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것을 빤히 쳐다보는 케이와 베르단디에게 지배인 다카하시가 권유했다.
“작곡가는 바이크를 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거대한 이곳과 ‘질주의 변주곡’을 작곡하고 있습니다. 방금 그 곡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죠. 아직도 그 곡의 완결은 존재 하지 않답니다. 나의 행복이 담기려면 말이죠.”
“아 그 곡을 지은 이가 바로 당신?!”
케이가 탄성을 지르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지금 나의 행복을 키워 가기 위해서 노력중이랍니다. 그런데 오늘 당신들이 찾아온 것이죠.”
“........”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식당을 세우기는 했지만 나의 진정한 꿈은 모든 이들이 느낄 수 있는 질주의 변주곡 완성이랍니다. 바이크의 배기음부터 바이크의 묘기들을 완벽히 표현 할 수 있는…….”
“그렇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실력으로는 이 정도밖에 구현을 못 하겠더군요. 다만.”
“??”
“당신들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두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제 느낌에는…….당신들이 나를 도와준다면 가능하지도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떻습니까? 당신들이 무슨 일을 하던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단지 이곳으로 들어와서 저를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헛! 이게 소위 ‘스카우트’라는 것인가? 지배인의 제안에 케이의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하였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그들이 어떤 출신이든 상관하지 않고 좋은 자리에 앉혀주겠다는 말은 어떤 이가 들어도 호기심이 발동하고, 고민이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자신의 꿈과 행복이 명확한 사람들 ‘모리사토 케이이치’같은 이에게는 절대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케이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빨랐다.
“행복은 자신이 찾는 것이에요. 아까 케이씨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행복은 돈이나 꿈으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계시겠죠?”
“......”
“케이씨와 저는 지금처럼 바이크와 지이로 씨, 스쿨드와 울드언니,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우리들의 행복을 개척하고 싶어요. 아! 참고로 케이 씨는 언젠가 자신의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꿈이랍니다.”
그녀의 설명에 지배인은 계속 머리를 긁적이며 꿀 먹은 벙어리마냥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케이는 오른 쪽 눈을 감았다 뜨며 소위 ‘윙크’라고들 하는 행동을 취했다. 인간들 사이에서 이 행동은 자신의 존재를 연인에게 부각시키는 행동이지만 때로는 자신의 의견도 비슷하다며 동의를 표할 때의 행동이기도 하다.
“한방 제대로 먹은 것 같군요. 후훗! 역시 그렇겠군요? 다른 사람들이 알아먹는 질주의 변주를 위해서는 역시 내가 노력해야겠군요.”
“열심히 하세요. 행복과 꿈 모두 항상 당신에게 미소를 짓기를…….”
베르단디의 축복이 담긴 인사에 지배인은 영화 속 귀족들의 무도회에서 할 것 같은 인사를 해 보인다. 자신의 제안이 거절당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고 오히려 해답을 찾았다는 생각에 뿌듯한 것이다. 마지막 남은 의문을 풀기 위해 지배인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당신과 케이이치씨는……. 보통 인간이 아닌 것 같군요.”
“저는 여신 베르...”
“윽! 말 하면 안 돼”
절대 거짓말을 못하는, 아니 할 수 없는 베르단디의 입을 재빨리 틀어막으며 지배인에게 미소를 보내는 케이. 하지만 지배인의 의문은 절대로 풀리지 않았고, 날카로운 심문의 눈빛을 보낸다. 그는 여신이라는 단어까지 확실히 들은 것이었다.
“여신이라. 당신이 진짜 여신인지, 아니면 나와 같은 인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정말로 아름다우신 분이시군요. 얼굴뿐만 아니라 보기 드물게 마음도 말이죠.”
“감사합니다.”
“아 저야 말로. 축복의 인사에 감사드립니다.”
지배인과 베르단디가 서로의 칭찬으로 화기애애해졌다. 아 저기…….왠지 소외된 듯한 분위기에 케이가 뭔가 말을 꺼내려 들었지만 지배인이 더 빨랐다.
“하지만 제생각에는 말입니다.”
“??”
“......여신님과 있는 케이이치. 당신이 더 범상치 않아요. 당신은 굉장히 특별한 사람인 것 같군요. ”
“?!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즐거운 식사가 되시길.”
어둠으로 둘러싸인 곳. 이곳은 마치 영화 속의 테러리스트들이 모여 암울한 표정을 짓고, 칙칙한 의복에, 검은 기운을 풍기는 대화로 화면을 가득 채울 것 같은 이 장소. 불행히도 전쟁마니아 TV 시청자들이나, 미국의 CIA같은 이들이 좋아할 만한 대화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곳이었다. 어둠으로 둘러싸인 곳은 조용하고 음침하지만 테러리스트들은 없었다. 단지 AK, 일명 아카보라고 부르는 경기관총을 멜빵째 어깨에 두른 사내와 어두운 곳에서 눈 버릴 생각은 하지도 않고 독서삼매경에 빠진 여성이 한명 있을 뿐이었다. 다만 여성은 사내나 일반인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끼기기기긱.
그녀가 앉아 있는 의자가 요란스럽게 움직였다. 의자의 좌우에는 커다란 고무 타이어 두 개가 달려 있었다. 의자는 휠체어라고 부르는 장애우들을 위해 인간들이 발명해낸 물건이었다. 그녀는 이 휠체어의 혜택을 평생 받아야 되는 이들 중 하나였던 것이다. 너무 익숙해진 휠체어의 움직임에 그녀는 별 반응 없이 독서를 진행할 뿐이었다.
“어때! 찾은 것은 어때?”
“죄송합니다만. 역시 반응은 이것뿐인 걸까요?”
역시 눈 버릴 생각은 않고 컴퓨터란 바보상자의 타자를 열심히 두드리던 AK를 맨 남자. 남자의 눈은 페인트로 칠한 것처럼 붉은 색이었다. 묠니르를 떠올리게 만드는 20대 초반의 남자. 다만 그의 외모는 비슷할 뿐 묠니르와는 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 아니라 차분하다는 생각이 드는 모습이었다. 머리 색 또한 그와는 전혀 달랐다. 그의 머리색은 케이이치같은 동양인들의 흑발이었다.
“후유. 역시 소득이 없는 거겠지.”
“어쩌겠습니까? 천계에서 근무할 시절의 당신이라면 가능했겠지만 지금 이곳의 열악한 상황과 기술수준으로는 한계입니다. 뭐…….이런 물건처럼 쓸 만한 것들은 있지만 말이죠.”
철컥.
경쾌한 쇳소리. 남자는 AK라는 위험한 흉기의 옆으로 튀어나온 노리쇠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랬다가 다시 안전을 위해 달아놓은 스위치를 돌렸다. 이제 어떤 이들도 이 안전스위치란 봉인장치를 옆으로 돌리지 않는 한 절대로 이 고물덩어리가 흉기가 되어 불을 뿜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것으로는 무리야. 녀석들은 정말로 강하다. 용병이란 용병들은 최대한 알아보고, 아깝지만 우리의 자금줄도 써먹을 수 있으면 써야겠지? 아프간이나 과거 소비에트 전우들. 2차 세계 대전의 전우들까지 이용해서라도 최대한 뜯어내고, 또 최대한 써내.”
“예? 하지만 하루에 수백만 달러씩 거저 들어오는 우리가 꼭 그런 식으로 빚 독촉 자들처럼 살아야 되는 겁니까? 아무리 그 녀석들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미친! 엉뚱한 소리는 집어치워. 이 쵸르트!(빌어먹을 자식)”
“사실 아닙니까? 솔직히 언제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시끄럽다니까. 넌 그 것들을 몰라!”
짜증이 한꺼번에 밀려옴을 느낀 휠체어의 여성은 적색 별들이 그려진 제복의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신경안정제라고 하는 약품. 그녀는 매일 그런 것을 복용하고 있었다. 물 한잔 없이 알약들에 화풀이 하듯 씹으며 여자가 말을 내뱉었다. 그녀 또한 붉은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흑색이 아닌 갈색의 머리칼을 우아하게 땋았다는 것만 빼면 묠니르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것들이 풀려나면 사태는 최악이다. 네놈이 한 때 냉전 시대 때 다뤄봐서 알고, 요즘도 유명해졌다는 그 정보기구들이나 비밀공작원들. 예컨대 CIA나 뭐 기타 잡것들...다 쓸모가 없어진다!”
“??”
“아무튼. 그것들을 막을 수 있는 놈들은 얼마 안 돼. 그렇다고 천계와 마계가 직접 개입할 수는 없어. 그랬다간 평화로운 이 세계는 혼란이 되거나, 문명이 잡아 먹혀버린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돼.”
“...........”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여자의 날카로운 눈빛과 짜증 섞인 설명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부정하고 싶지만 오래전에 겪어봤던 현실은 진실이었다. 절대로 그 때 자신이 코를 골며 꾸었을 꿈이 아닌 것이다.
“물론 개입은 하겠지만. 우리는 딱 한명을 제외한 모두가 그들을 믿지 않아. 그놈들은 정말 밥맛덩어리들이거든.”
“그, 그런 말씀은 함부로 하시지 않는 것이...”
“어쨌든 그 건은 됐고, 이제 슬슬 철수할 때도 되지 않았냐? 이곳이 마지막 접수처야. 반세기가 넘도록 돌아다니며 접수해둔 최종 은닉처란 말이다.”
은닉처?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비밀병기는 가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뭔가 작동상의 오류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제 생각은.”
“바보. 이건 최첨단 하이테크널러지야! 이런 것에 고장이란 것이 있다면 뭐 하러 내가 이런 고생을 하겠냐?”
“...........”
남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휠체어의 여자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어쨌든 철수는 뒤로 미루고..우리나, 천계가 희망하는 최고의 그 님은? 하하하!”
여자가 신경안정제를 한 알 더 씹으며 묻는다. 남자는 예의 차분한 얼굴로 컴퓨터의 모니터를 보여주었다. 그것에는 숫자들과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인터넷으로 확인하는 계좌, 금융 정보를 알려주는 공식사이트였다. 그녀가 이게 뭐가 어쨌냐며 남자에게 물었다.
“잘 보십시오.”
“계좌가...조금 비었군. 의외인데?”
여자는 멍하니 글씨들과 숫자에만 집중하며 중얼거렸다. 있을 수 없는 상황에 어이없어하며 이를 드러냈다. 욕만 퍼부을 것 같은 붉은 색 두 눈동자는 웃고 있었다. 남자가 계속 설명을 했다.
“계좌가 최근에 쓰인 것은 어제 오후입니다. 추적지는 일본이었고, 법정대리인은 모리사토 케이이치라는 20대의 남성으로 밝혀졌습니다.”
“계좌가...비었어. 비었어.”
“뭐가 그리 이상하십니까?”
하지만 남자의 질문에 여자는 대답하지 않고 자료를 모두 넘겨주었으니 서둘러 모니터를 꺼서 절약해달라고 외치는 무의미한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녀석의 돈이 빠져 나가는 이유는 당연해. 무슨 일을 위해서겠지?”
“........”
“아프간의 최후 연구진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철수시킨다. 그리고.”
“???”
“케이인지 뭔지 하는 제패니스의 자료같은 것은 대충 있냐? 뭐 예를 들어 집이나 뭐 그딴 것.”
“네..”
“.........”
여자의 침묵에 남자는 복잡한 표정이 되어 뒷머리만 벅벅 긁어댔다. 그의 AK도 움직이는 손을 따라 흔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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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렇게 끝입니다! 어찌 묘사나 비유보단 점점 말이 많아지는 그런 느낌이군요.
아! 카렌밥님. 전에 러시아인의 이름 중 ‘세르게이’라는 이름이 흔하냐고 물어보셨죠?
그것에 대한 답변을 오늘 자유게시판에 올려놓았습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길.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받아 적고 올린 것이지만.
확실치는 않을 수도 있으니 이해를..[그래도 거의 97%정도 맞을 겁니다.]
여하튼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앞으로 자유게시판이나 웃음게시판도 자주 들러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런데 유머 센스가 없는데 어떡한다냐 -_-]
부아아아앙.
음악을 듣던 그의 머릿속을 번뜩 스쳐 지나가는 엔진 배기음. 그것은 모터바이크라 불리는 이륜차가 질주하는 모습이었다. 음악에 심취해 있던 그의 머릿속에는 음악이 전하는 의미들이 색칠이 덜된 흑백사진마냥 떠올랐다.
“이건 정말 바이크의 움직임을 묘사한 곡 같아.”
부다다당 부아앙!
피아노와 같이 조용한 곡에만 어울린다는 악기들로 이렇게 맹렬한 소리를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의아할 만도 하지만 케이나 베르단디 어느 쪽도 그런 의문은 신경 쓰지 않았다. 너무도 아름다운 질주이기에 그들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있었다. 바이크는 커다란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것과 운전자는 멈추기를 거부하고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끼릭.
갑자기 음악이 조용해지더니 바이크의 브레이크 소리. 어떻게 소리를 냈는지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다. 케이는 그저 이 아름다운 질주가 어떻게 끝나고, 왜 멈췄는지가 궁금할 따름이다.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케이를 베르단디가 달래 앉혔다.
“걱정 마세요. 끝난 것이 아니라 진짜 질주와 능력은 이제부터 시작이에요.”
그의 생각을 읽었다는 듯 베르단디가 거부할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케이는 어린아이 마냥 고개를 끄덕이며 앉았다. 그리고 피아노와 첼로, 바이올린의 질주는 그녀의 말대로 진짜 시작되었다.
좀 전과는 비교가 되는 화려한 음향, 연주가들이 조금 고생할 것 같은 빠른 리듬은 바이크가 새롭게 지날 흙길과 언덕, 장애물들을 완성해냈고, 운전자와 바이크의 질주하는 모습도 라울이란 도화지 위에 그린다. 배기음은 공중에 떠오르고, 브레이크 소리를 내지 않는다. 마치 중력과 마찰이란 이 세계를 둘러싼 당연한 법칙들에 대항하듯이 말이다. 케이와 베르단디는 TV 속의 스턴트맨들의 죽음을 담보로 건 묘기를 떠올리며 질주에 빠져 든다.
‘굉장하다. 정말로 이런 음악이 가능한 거야?!’
‘놀라워요.’
그녀와 그의 감탄사였다. 하지만 질주를 깨닫지 못하는 대부분의 손님들은 그저 듣기만 할 뿐 아무런 감흥도 느끼질 못하고 있었다. 음악은 어느새 클라이맥스를 지나 멈출 것 같지 않던 질주를 멈추기 위해 서서히 느려지고 있었다. 화려함도 사라지고 처음의 자세로 돌아온 것이다. 그러다 멈추었다. 바이크의 배기음과 모터의 날렵한 움직임은 들려오지 않는다. 다시 손님들의 웅성거림과 울드들의 알 수 없는 장난 소리가 들릴 뿐.
“정말 위험한 묘기야. 누가 만들었을까? 이렇게 대단한 곡을…….”
“이 곡을 지은 이는 정말로 바이크와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 분명해요. 그 두 가지를 위해서라면 주저하지 않는 자에요. 특히 바이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것을 보니. 케이씨와 비슷한 것 같지 않아요?”
“하하 그런가? 하지만 이 음악을 만든 사람은 대단해. 그 사람이 나와 비교가 될 수 있는 상대일까? 솔직히 걱정인데?”
베르단디의 칭찬 같은 물음에 쑥스러워하며 웃는 케이. 자상한 얼굴의 소유자 베르단디는 계속 말을 잇는다. 케이는 그녀의 설명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음악에 대해서 잘 모르는 자신을 여신들 다음으로 푹 빠지게 만들어준 작곡가에 대해서 최대한 많은 것을 알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많은 의문들을 풀어 줄 위대한 분이 그 앞에 있다.
“하지만 무언가 그를 막아섰어요. 장애물들은 그와 바이크는 모든 것을 뛰어넘었지만 그를 기다리는 무언가를 뛰어넘지는 못했어요. 그는 지금 여기 있어요. 그리고 그는 지금은 바이크의 꿈을 꾸지는 못하지만 이따금씩 질주를 하는 꿈을 꾼다.”
“질주를 못 한다.”
케이는 꿈도 꿔보지 못한 상황이다. 그것을 타고 질주의 쾌감을 느끼는 것을 막는 장애물, 혹은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은 해보았지만 케이에게 그들은 미미한 영향을 끼칠 뿐이었다. 하지만 이 작곡가는 달랐다. 그는 케이만큼, 아니면 케이보다 더 열정을 지닌 자였는데 그의 꿈이 멈춰버린 것이다.
“꿈만 가지고 살 수는 없겠지?”
케이의 혼잣말에 베르단디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꿈을 꾸며 살아갈 수는 없지만 행복은 언젠가 찾을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하지만 베르단디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케이의 입이 먼저 움직였다.
“그래 꿈만 가지고 사는 바보가 되지는 못하지. 하지만 작곡가도 언젠가는 꿈이 아니라 행복을 찾았을 거야. 나는 벌써 그 행복이 곁에 있잖아 안 그래?”
“네!”
역시 케이는 절대로 실망하거나 좌절하는 이가 아니었다. 그는 자기 앞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행복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그는 행복하다고 자신한다. 그의 말은 베르단디처럼 세상을 꿰뚫어보는 지혜를 가진 현자 같았다. 다만 그의 말에도 하나 틀린 것이 있었다. 물론 그가 틀렸다는 사실은 베르단디도 잘 알지 못하니 탓할 필요도, 기분 나쁘게 생각할 이유도 없지만 말이다.
“허허허. 아니면 행복을 찾았던가 말이죠. 허허허.”
낯익은 목소리에 케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베르단디의 시선도 남자의 목소리에 쏠렸다. 통통한 체구의 남자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콧수염을 잘 다듬고 있었다. 두 사람의 시선이 쏠리자 그가 머쓱한지 뒷머리로 손을 움직였다.
“두 사람 다 놀랍군요.”
“예?”
케이가 반문했다.
“여기 있는 수많은 사람들. 아니 그 전에도 찾아왔던 손님들 중 어느 누구도 작곡가가 바이크를 좋아하는 자였고, 스턴트에 목숨을 걸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자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들의 인식은 음악의 진정한 의미를 꿰뚫어보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고 클래식에서 떨어져 나온 ‘짝퉁음악’처럼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는 않아요!”
베르단디가 아니라고 말했다. 지배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설명한다.
“이건 그냥 비유입니다. 하지만 모두들 아무런 감흥 없이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입니다. 심지어 음악의 전문가라는 사람들까지도 말이죠. 그들의 머릿속에는 평생 이미 죽은 것이 틀림없는 바흐나 모차르트 같은 이들을 쫓고 있을 뿐이죠. 그들은 이미 죽은 사람인데도 말이죠.”
“...........”
“쫓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죠. 그들의 음악을 진정으로 느끼고 사랑하는 이들에게는 좀 실례가 되는 발언이겠군요. 하지만 제가 본이들은 절대로 음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단지 자신들의 꿈을 위한 수단으로 밖에 여기지 않는 것이죠. 이미 세상에 없는 이들을 꿈의 수단이라고 말이죠.”
지배인은 아쉽다는 얼굴로 뒷머리만 긁적이며 곁눈질로 베르단디를 살폈다. 지배인은 그녀와 케이가 정말 맘에 들었는지 거대 식당의 주인이란 본분을 잊고 정중하게 대했다.
“자신의 행복을 찾는다. 그게 뭐가 됐든 말이죠.”
“하하하. 여자 분이 당당하군요. 맞습니다. 그게 정확하겠죠?”
지배인이 껄껄 웃어 보이며 콧수염을 다듬었다. 그러다 품속에서 작은 쪽지를 꺼내 두 사람의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명함에는 다카하시란 그의 이름과 함께 라울 레스토랑의 위치와 번호가 적혀 있었다. 그것을 빤히 쳐다보는 케이와 베르단디에게 지배인 다카하시가 권유했다.
“작곡가는 바이크를 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거대한 이곳과 ‘질주의 변주곡’을 작곡하고 있습니다. 방금 그 곡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죠. 아직도 그 곡의 완결은 존재 하지 않답니다. 나의 행복이 담기려면 말이죠.”
“아 그 곡을 지은 이가 바로 당신?!”
케이가 탄성을 지르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난 지금 나의 행복을 키워 가기 위해서 노력중이랍니다. 그런데 오늘 당신들이 찾아온 것이죠.”
“........”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식당을 세우기는 했지만 나의 진정한 꿈은 모든 이들이 느낄 수 있는 질주의 변주곡 완성이랍니다. 바이크의 배기음부터 바이크의 묘기들을 완벽히 표현 할 수 있는…….”
“그렇군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실력으로는 이 정도밖에 구현을 못 하겠더군요. 다만.”
“??”
“당신들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두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제 느낌에는…….당신들이 나를 도와준다면 가능하지도 않을까 생각합니다. 어떻습니까? 당신들이 무슨 일을 하던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단지 이곳으로 들어와서 저를 도와주시지 않겠습니까?”
헛! 이게 소위 ‘스카우트’라는 것인가? 지배인의 제안에 케이의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들이 교차하였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그들이 어떤 출신이든 상관하지 않고 좋은 자리에 앉혀주겠다는 말은 어떤 이가 들어도 호기심이 발동하고, 고민이 되기는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자신의 꿈과 행복이 명확한 사람들 ‘모리사토 케이이치’같은 이에게는 절대 통하지 않는 말이었다. 케이는 자신의 의견을 말하려 했다. 하지만 그녀가 빨랐다.
“행복은 자신이 찾는 것이에요. 아까 케이씨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고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행복은 돈이나 꿈으로 찾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계시겠죠?”
“......”
“케이씨와 저는 지금처럼 바이크와 지이로 씨, 스쿨드와 울드언니,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우리들의 행복을 개척하고 싶어요. 아! 참고로 케이 씨는 언젠가 자신의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꿈이랍니다.”
그녀의 설명에 지배인은 계속 머리를 긁적이며 꿀 먹은 벙어리마냥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케이는 오른 쪽 눈을 감았다 뜨며 소위 ‘윙크’라고들 하는 행동을 취했다. 인간들 사이에서 이 행동은 자신의 존재를 연인에게 부각시키는 행동이지만 때로는 자신의 의견도 비슷하다며 동의를 표할 때의 행동이기도 하다.
“한방 제대로 먹은 것 같군요. 후훗! 역시 그렇겠군요? 다른 사람들이 알아먹는 질주의 변주를 위해서는 역시 내가 노력해야겠군요.”
“열심히 하세요. 행복과 꿈 모두 항상 당신에게 미소를 짓기를…….”
베르단디의 축복이 담긴 인사에 지배인은 영화 속 귀족들의 무도회에서 할 것 같은 인사를 해 보인다. 자신의 제안이 거절당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고 오히려 해답을 찾았다는 생각에 뿌듯한 것이다. 마지막 남은 의문을 풀기 위해 지배인이 다시 물었다.
“그런데 당신과 케이이치씨는……. 보통 인간이 아닌 것 같군요.”
“저는 여신 베르...”
“윽! 말 하면 안 돼”
절대 거짓말을 못하는, 아니 할 수 없는 베르단디의 입을 재빨리 틀어막으며 지배인에게 미소를 보내는 케이. 하지만 지배인의 의문은 절대로 풀리지 않았고, 날카로운 심문의 눈빛을 보낸다. 그는 여신이라는 단어까지 확실히 들은 것이었다.
“여신이라. 당신이 진짜 여신인지, 아니면 나와 같은 인간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정말로 아름다우신 분이시군요. 얼굴뿐만 아니라 보기 드물게 마음도 말이죠.”
“감사합니다.”
“아 저야 말로. 축복의 인사에 감사드립니다.”
지배인과 베르단디가 서로의 칭찬으로 화기애애해졌다. 아 저기…….왠지 소외된 듯한 분위기에 케이가 뭔가 말을 꺼내려 들었지만 지배인이 더 빨랐다.
“하지만 제생각에는 말입니다.”
“??”
“......여신님과 있는 케이이치. 당신이 더 범상치 않아요. 당신은 굉장히 특별한 사람인 것 같군요. ”
“?!저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하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즐거운 식사가 되시길.”
어둠으로 둘러싸인 곳. 이곳은 마치 영화 속의 테러리스트들이 모여 암울한 표정을 짓고, 칙칙한 의복에, 검은 기운을 풍기는 대화로 화면을 가득 채울 것 같은 이 장소. 불행히도 전쟁마니아 TV 시청자들이나, 미국의 CIA같은 이들이 좋아할 만한 대화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는 곳이었다. 어둠으로 둘러싸인 곳은 조용하고 음침하지만 테러리스트들은 없었다. 단지 AK, 일명 아카보라고 부르는 경기관총을 멜빵째 어깨에 두른 사내와 어두운 곳에서 눈 버릴 생각은 하지도 않고 독서삼매경에 빠진 여성이 한명 있을 뿐이었다. 다만 여성은 사내나 일반인들과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끼기기기긱.
그녀가 앉아 있는 의자가 요란스럽게 움직였다. 의자의 좌우에는 커다란 고무 타이어 두 개가 달려 있었다. 의자는 휠체어라고 부르는 장애우들을 위해 인간들이 발명해낸 물건이었다. 그녀는 이 휠체어의 혜택을 평생 받아야 되는 이들 중 하나였던 것이다. 너무 익숙해진 휠체어의 움직임에 그녀는 별 반응 없이 독서를 진행할 뿐이었다.
“어때! 찾은 것은 어때?”
“죄송합니다만. 역시 반응은 이것뿐인 걸까요?”
역시 눈 버릴 생각은 않고 컴퓨터란 바보상자의 타자를 열심히 두드리던 AK를 맨 남자. 남자의 눈은 페인트로 칠한 것처럼 붉은 색이었다. 묠니르를 떠올리게 만드는 20대 초반의 남자. 다만 그의 외모는 비슷할 뿐 묠니르와는 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이 아니라 차분하다는 생각이 드는 모습이었다. 머리 색 또한 그와는 전혀 달랐다. 그의 머리색은 케이이치같은 동양인들의 흑발이었다.
“후유. 역시 소득이 없는 거겠지.”
“어쩌겠습니까? 천계에서 근무할 시절의 당신이라면 가능했겠지만 지금 이곳의 열악한 상황과 기술수준으로는 한계입니다. 뭐…….이런 물건처럼 쓸 만한 것들은 있지만 말이죠.”
철컥.
경쾌한 쇳소리. 남자는 AK라는 위험한 흉기의 옆으로 튀어나온 노리쇠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그랬다가 다시 안전을 위해 달아놓은 스위치를 돌렸다. 이제 어떤 이들도 이 안전스위치란 봉인장치를 옆으로 돌리지 않는 한 절대로 이 고물덩어리가 흉기가 되어 불을 뿜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것으로는 무리야. 녀석들은 정말로 강하다. 용병이란 용병들은 최대한 알아보고, 아깝지만 우리의 자금줄도 써먹을 수 있으면 써야겠지? 아프간이나 과거 소비에트 전우들. 2차 세계 대전의 전우들까지 이용해서라도 최대한 뜯어내고, 또 최대한 써내.”
“예? 하지만 하루에 수백만 달러씩 거저 들어오는 우리가 꼭 그런 식으로 빚 독촉 자들처럼 살아야 되는 겁니까? 아무리 그 녀석들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미친! 엉뚱한 소리는 집어치워. 이 쵸르트!(빌어먹을 자식)”
“사실 아닙니까? 솔직히 언제 그렇게 될지도 모르는데 너무 심각하게 생각한다면.”
“시끄럽다니까. 넌 그 것들을 몰라!”
짜증이 한꺼번에 밀려옴을 느낀 휠체어의 여성은 적색 별들이 그려진 제복의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신경안정제라고 하는 약품. 그녀는 매일 그런 것을 복용하고 있었다. 물 한잔 없이 알약들에 화풀이 하듯 씹으며 여자가 말을 내뱉었다. 그녀 또한 붉은색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다만 흑색이 아닌 갈색의 머리칼을 우아하게 땋았다는 것만 빼면 묠니르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것들이 풀려나면 사태는 최악이다. 네놈이 한 때 냉전 시대 때 다뤄봐서 알고, 요즘도 유명해졌다는 그 정보기구들이나 비밀공작원들. 예컨대 CIA나 뭐 기타 잡것들...다 쓸모가 없어진다!”
“??”
“아무튼. 그것들을 막을 수 있는 놈들은 얼마 안 돼. 그렇다고 천계와 마계가 직접 개입할 수는 없어. 그랬다간 평화로운 이 세계는 혼란이 되거나, 문명이 잡아 먹혀버린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돼.”
“...........”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여자의 날카로운 눈빛과 짜증 섞인 설명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부정하고 싶지만 오래전에 겪어봤던 현실은 진실이었다. 절대로 그 때 자신이 코를 골며 꾸었을 꿈이 아닌 것이다.
“물론 개입은 하겠지만. 우리는 딱 한명을 제외한 모두가 그들을 믿지 않아. 그놈들은 정말 밥맛덩어리들이거든.”
“그, 그런 말씀은 함부로 하시지 않는 것이...”
“어쨌든 그 건은 됐고, 이제 슬슬 철수할 때도 되지 않았냐? 이곳이 마지막 접수처야. 반세기가 넘도록 돌아다니며 접수해둔 최종 은닉처란 말이다.”
은닉처?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비밀병기는 가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뭔가 작동상의 오류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제 생각은.”
“바보. 이건 최첨단 하이테크널러지야! 이런 것에 고장이란 것이 있다면 뭐 하러 내가 이런 고생을 하겠냐?”
“...........”
남자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휠체어의 여자를 바라보아야만 했다.
“어쨌든 철수는 뒤로 미루고..우리나, 천계가 희망하는 최고의 그 님은? 하하하!”
여자가 신경안정제를 한 알 더 씹으며 묻는다. 남자는 예의 차분한 얼굴로 컴퓨터의 모니터를 보여주었다. 그것에는 숫자들과 알 수 없는 문자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인터넷으로 확인하는 계좌, 금융 정보를 알려주는 공식사이트였다. 그녀가 이게 뭐가 어쨌냐며 남자에게 물었다.
“잘 보십시오.”
“계좌가...조금 비었군. 의외인데?”
여자는 멍하니 글씨들과 숫자에만 집중하며 중얼거렸다. 있을 수 없는 상황에 어이없어하며 이를 드러냈다. 욕만 퍼부을 것 같은 붉은 색 두 눈동자는 웃고 있었다. 남자가 계속 설명을 했다.
“계좌가 최근에 쓰인 것은 어제 오후입니다. 추적지는 일본이었고, 법정대리인은 모리사토 케이이치라는 20대의 남성으로 밝혀졌습니다.”
“계좌가...비었어. 비었어.”
“뭐가 그리 이상하십니까?”
하지만 남자의 질문에 여자는 대답하지 않고 자료를 모두 넘겨주었으니 서둘러 모니터를 꺼서 절약해달라고 외치는 무의미한 모니터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이 조심스럽게 열렸다.
“녀석의 돈이 빠져 나가는 이유는 당연해. 무슨 일을 위해서겠지?”
“........”
“아프간의 최후 연구진들은 모두 다른 곳으로 철수시킨다. 그리고.”
“???”
“케이인지 뭔지 하는 제패니스의 자료같은 것은 대충 있냐? 뭐 예를 들어 집이나 뭐 그딴 것.”
“네..”
“.........”
여자의 침묵에 남자는 복잡한 표정이 되어 뒷머리만 벅벅 긁어댔다. 그의 AK도 움직이는 손을 따라 흔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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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이렇게 끝입니다! 어찌 묘사나 비유보단 점점 말이 많아지는 그런 느낌이군요.
아! 카렌밥님. 전에 러시아인의 이름 중 ‘세르게이’라는 이름이 흔하냐고 물어보셨죠?
그것에 대한 답변을 오늘 자유게시판에 올려놓았습니다.
한번 확인해 보시길.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받아 적고 올린 것이지만.
확실치는 않을 수도 있으니 이해를..[그래도 거의 97%정도 맞을 겁니다.]
여하튼 즐거운 주말 보내시고, 앞으로 자유게시판이나 웃음게시판도 자주 들러보도록 하겠습니다.[그런데 유머 센스가 없는데 어떡한다냐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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