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식장갑 가이버 제20화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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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
제20화 - 돌입전야 <상편>-
"몸은 좀 어떠세요?"
"응, 아주 좋아. 마치 푹 자고 일어난 듯 한 느낌이야."
무라카미의 안색은 상당히 밝아보였다. 큰 부상을 입었었고 그것 때문에 변신이 풀리지 않는 등 한동안 위기가 계속됐었는데도 불구하고 다행히 무라카미는 조제통에서 꺼내진지 하루 만에 의식을 회복하였다. 무라카미가 입원한 병실에서 모두가 무라카미의 회복을 기뻐하고 있었다.
"설마 여기가 유적기지 최하층일 줄이야....이거 놀랐는걸."
무라카미는 아직도 잘 실감이 가지 않는 듯 했다. 하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적진 한 가운데라고 하면 어느 누가 놀라지 않을까.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자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곳이 제일 안전한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크로노스의 그 누구도 설마 '가이버와 여신들 일당'이 자기들 발아래에 숨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케이는 무라카미의 변신이 갑자기 풀리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오다기리도 잘 모르겠다는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마도 유적의 생명반응이 쇠약해졌던 무라카미군 에게 활력을 불어넣어준것 같군."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지만 현재로서는 유적의 비정상적인 생명반응이 원인일 것이 확실했다. 물론 조아 크리스털과 유적 간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당장은 알 수가 없었지만 조아로드는 강림자가 만든 생명체이므로 역시 강림자들이 쓰던 유적우주선과 모종의 관계가 있지 않나 하는 추정만 할 뿐이었다. 오랜 기간 동안 유적을 연구했던 오다기리조차도 확실히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다행히 변신이 풀려서 더 이상 생체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아도 됐으니 다행이었지만.
"정말 다행이에요, 무라카미씨. 한동안 어떻게 되시는 줄 알고 걱정했어요."
베르단디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법술로도 치료가 불가능 했으므로 손을 전혀 써볼수가 없다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었는데 무라카미가 무사히 의식을 차리자 너무 기뻤다. 울드도 기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실험도구도 없어서 약도 만들어 줄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회복돼서 다행이네."
약을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는 울드의 말에 바로 스쿨드의 태클이 들어왔다.
"병을 더 악화시키려고 그래!? 정말, 상황이 심각했다는 걸 모르는 거야?"
"호오~ 그러는 넌 정체불명의 고철을 만들어서 무라카미를 잡을 셈 아니었어?"
"고철 아냐!! 잡을 생각도 없었어! 울드의 불량식품 따위와는 차원이 틀리다고!!!"
두 사람은 곧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모두들 그 모습을 보며 웃음 지었다. 어쨌든 두 사람도 무라카미를 치료하기 위해 나름대로 뭔가를 해보려 한건 틀림없었다. 물론 실제로 사용해봤을때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는 미지수지만.
"아무튼 지금은 좀 더 검사를 해봐야 하네. 일단 자네가 회복된 뒤에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기로 하지."
오다기리가 지시하자 하야미가 무라카미의 팔에 주사기를 꽂았다. 혈액을 채취해서 상태를 검사해보려는 것이다. 오다기리의 말대로 아직은 좀 더 지켜봐야 할 때였다. 그래도 큰 고비는 넘긴 셈이었으니 모두는 안심하였다.
하지만 유적의 생명반응이 깨운 것은 무라카미만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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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그래, 바로 이거였어!"
최하층 한구석에 위치한 연구실 안에서 시라이 박사는 희열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유리관 안에 들어있는 타원형의 은빛 물체를 보고 있었다. 규오가 시라이 본인에게 몰래 연구를 명령했던 강림자의 유산, '유니트 리무버'였다.
그동안 시라이는 이것의 기동방법을 알아내기 위해 밤잠도 설쳐가며 연구했었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규오는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서는 재촉을 해댔고 그럴 때마다 시라이는 점점 초조해져만 갔다. 유적기지 최고 과학자라는 자존심도 문제지만 자칫 잘못하면 규오의 손에 죽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일말의 실마리도 보이지 않던 도중 어느 날 갑자기 유적의 생명반응이 비정상적으로 올라가자 드디어 리무버가 반응을 보인 것이다. 그 현상은 시라이에게 결정적인 힌트를 제공하였다. 혹시 리무버는 유적의 바이브레이션과 같은 파동에 동조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고 그 가설을 바탕으로 한 실험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결국 유적의 생명반응이 리무버의 오랜 잠을 깨운 것이다.
"해냈다!! 마침내 리무버의 기동방법을 알아냈어! 우햐햐햐!!!"
시라이는 기쁨에 겨워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했다. 한동안 그렇게 어린아이처럼 날뛰면서 기뻐하던 시라이는 한 가지 깜빡 잊은 게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방법을 알아냈으니 이제 빨리 규오각하께 이 기쁜 소식을 알려야 했다. 시라이는 흥분으로 인해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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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네요~ 이곳에도 온천이 있었다니...."
베르단디는 오랜만에 온천물에 몸을 담가서 그런지 기분이 좋은 듯 가볍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베르단디, 울드, 스쿨드는 참으로 오랜만에 자매들끼리 온천욕을 즐기고 있었다. 울드와 스쿨드도 온천에서 참으로 오랜만의 여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베르단디는 이곳 최하층에 온천까지 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웠다.
이곳 미나카미 산의 유적기지에는 이런 온천도 있었다. 물론 이곳은 최하층 스텝만을 위한 온천이어서 다른 곳에서 놀러올 일은 없었기 때문에 크로노스에 들킬 걱정같은건 안 해도 됐다. 이 온천은 이곳 최하층 스텝을 위한 크로노스의 배려중 하나다. 다만 지하기지인 관계로 다른 온천에서처럼 하늘이 보이질 않아서 온천이라기보다는 마치 목욕탕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물론 자연석으로 욕탕을 만들고 주변에는 대나무로 만든 담장도 치는 등 가능한 한 일반 온천의 분위기가 나게끔 노력은 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울드 입장에서는 아쉬운 건 또 있었다.
"온천이라면 당연히 술이 있어야 하는데 여긴 왜 없냐고~"
"우웅! 울드는 언제나 술타령이야!"
울드는 언제나처럼 술타령을 하였고 스쿨드는 역시 언제나처럼 울드에게 핀잔을 주었다. 울드는 술을 못마신다는게 너무나 불만스러웠다. 따뜻한 온천에 몸을 담근 채로 마시는 술은 그야말로 꿀맛이거늘. 실험실에서 만든 에틸알콜 따위는 울드의 입맛을 전혀 만족시켜주질 못했다. 그거만 빼면 여기 생활은 편했다. 비록 숨어 지내야 하긴 하지만.
조금 의외로 들릴지 모르지만 크로노스는 연구원들의 복지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었다. 그들이 언제나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연구원들의 요구에도 상당히 귀를 기울이고 있었고 최소한 물질적으로는 부족한 점은 없도록 배려하였다. 연구원들을 노예처럼 쥐어짜기만 해봐야 성과가 나오진 않는다는 건 크로노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크로노스의 전폭적인 지원과 높은 복지수준 덕에 이곳에 잡혀왔음에도 크로노스에 적극적으로 협력을 맹세하는 과학자들도 상당수였다. 또한 심정적으로는 크로노스에 반감을 가지면서도 현재의 생활에 그냥 만족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래서 오다기리들은 동지를 함부로 더 모을 수가 없었다. 자칫 잘못했다가는 크로노스에게 자신들의 목적을 들킬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라카미씨도 무사하시고, 언니랑 스쿨드, 그리고 다른 분들과도 모두 무사히 만났으니 정말 다행이에요."
"그러게 말이야. 정말 다행이야. 난 언니 걱정에 잠도 안 왔다고."
베르단디의 말에 스쿨드가 맞장구를 쳐 줬다. 그 때 울드가 짖굳은 표정을 지으며 베르단디에게 말했다.
"스쿨드 말이지, 네가 없으니까 너 보고 싶다며 밤에 잠도 안자고 징징 짜고 오다기리 주임한테도 가서 '베르단디 언니 좀 찾아주세요'하고 울고 불며 생떼를 쓰기도 했었어. 그리고...."
"우...울드으으!!!"
부끄러운 사실을 울드가 다 폭로하자 당황한 스쿨드가 얼굴이 새빨개진 체로 울드의 입을 막기 위해 달려들었다. 물론 물속이니 만큼 금방 다가가진 못했고 울드는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한 채로 도망 다니면서 계속해서 스쿨드를 놀려댔다. 다급해진 스쿨드는 물을 마구 뿌려서라도 울드의 입을 막으려고 하였다. 두 자매의 장난 때문에 온천탕 안은 순식간에 시끄러워 졌다.
"울드! 말하지 마!!!"
"오~호호홋!! 역시 넌 아직 어린애야. 오호호호!"
"울드 바보오오!!!"
울드와 스쿨드는 욕탕 안을 이렇게 휘젓고 다녔고 베르단디는 그저 웃으면서 그 둘을 바라보았다. 사실 저것도 다들 맘에 여유가 생겼으니까 가능한 것이다. 이 오랜만에 평화가 베르단디는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녀도 마음껏 웃을 수 있었다.
-삐잉! 삐잉!
그 때 갑자기 욕탕 안에 경보가 울렸다. 깜짝 놀란 세 자매는 불안한 눈으로 서로를 응시했다. 잠시 동안의 평화는 이렇게 깨졌다. 아쉽긴 하지만 무슨 일이 생긴 게 틀림없는 이상 한가하게 목욕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세 자매는 즉시 탕 밖으로 나갔다.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물론 법술로 순식간에 옷을 구성했다) 막 밖으로 나가려는 참이었는데 그 때 탈의실 안으로 지로와 핫세가 들어왔다. 지로는 마침 온천욕이나 같이 하려고 베르단디들을 찾아다녔는데 막상 베르단디들이 먼저 끝내자 좀 투덜거렸다. 물론 그런 걸로 맘 상할 인물은 아니었지만. 베르단디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지로씨, 저 경보 혹시 무슨 일인지 아시나요?"
"응? 아, 경보는 규오 때문에 낸 거야. 규오가 최하층에 내려왔다던데."
지로의 말에 베르단디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스쿨드나 울드는 별로 걱정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보나마나 또 시라이 박사의 연구실로 갔을 게 뻔할 테니까. 게다가 행여나 규오가 이곳으로 온다고 해도 연구실에서 오다기리나 만나겠지 설마 온천이나 무라카미가 있는 입원실에 갈 것 같진 않았기 때문에 다들 별 걱정들은 안했다.
"하여튼 일단은 조심해. 혹시 모르니까 말이야. 그건 그렇고 나 벨이랑 같이 목욕하고 싶었는데...체엣."
'벨'이란 지로가 베르단디를 부르는 애칭이었다. 베르단디는 웃으면서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다음에 같이 하도록 해요. 그런데 혹시 케이씨나 린드, 시즈씨는 같이 안 왔나요?"
베르단디는 문득 다른 사람 생각이 나서 지로에게 물었다. 그러자 지로와 핫세는 약간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베르단디는 두 사람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로는 이걸 말해줘야 하나 하는 표정을 지은채로 쭈뼛거리면서 대답하였다.
"으음.... 지금 케이랑 린드는 체력 단련장에 있긴 한데 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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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웅!
"우왁!!"
케이는 이번에도 형편없이 바닥을 뒹굴었다. 린드는 조금도 사정 봐주질 않고 케이를 있는 힘껏 바닥에 매다 꽂았다. 바닥에 매트가 깔려 있다지만 매다 꽃힐때마다 케이는 답답한지 연신 콜록거렸다. 케이의 얼굴에는 땀이 비 오듯 흐르고 있었지만 그와 대조적으로 린드는 땀 한 방울 흐르지 않았다.
최하층에 마련된 체력 단련실에서 린드와 케이는 서로 대련을 하고 있었다. 다만 케이는 가이버 상태가 아닌 그냥 맨몸이었다. 가이버 I 으로 싸운다면 혹 모르겠지만 그냥 맨몸으로 싸운다면 케이는 절대로 승산이 없었다. 케이는 이제까지 살면서 누구와 싸운다는 것을 모르고 살아온 보통 사람인 반면 린드는 천상계에서도 톱클래스에 들어가는 전사였으니까 말이다. 케이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간신히 일어섰다.
"이익!"
케이가 먼저 공격을 하였다. 달려오면서 있는 힘껏 주먹을 휘둘러 봤지만 린드는 그걸 가볍게 흘렸다. 그리고는 달려온 케이의 기세를 그대로 역 이용해서 또 다시 바닥에 매다 꽂았다. 케이는 바닥에 누운 채로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 그러나 린드는 사정 봐주지 않고 곧장 케이의 팔을 꺾어서 제압하였다.
"으악! 항복! 항복!"
"누워있다고 적이 봐주진 않아. 정신 바짝 차려."
린드는 곧 팔을 풀어주었다. 케이는 잠시 매트 위에 누운 채로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힘겹게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린드는 별다른 자세를 취하진 않고 그저 케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동작이 너무 크다. 움직임은 최소화하고 항상 몸의 균형을 생각해."
"헉! 헉! 으...응. 명심할께."
"그리고....."
-휘잉!
갑자기 린드의 모습이 사라졌다. 케이가 아차 싶었을 때는 이미 린드는 케이의 바로 앞까지 육박해 들어온 후였다. 린드는 그대로 케이의 가슴팍을 거칠게 밀었다.
-팍!
"커헉!!"
린드의 공격에 케이는 그대로 뒤로 날려가 바닥에 볼품없이 나뒹굴었다. 쓰러진 채로 케이는 가슴을 움켜쥐며 콜록거렸다. 눈으로는 따라 갈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스피드였다.
"항상 상대방을 주시하라. 빈틈을 보이는 순간 넌 이미 죽어있다."
"허억! 허억!!"
이번엔 케이도 충격이 큰지 한동안 누워서 숨을 헐떡이기만 했다. 계속해서 얻어맞기만 했으니 당연한 일이지만. 그 때 누군가가 체력단련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린드가 고개를 돌려보니 베르단디였다.
"케이씨!"
"헉헉...아, 베르단디..."
"괜찮으세요?"
어떻게 알았는지 베르단디는 허겁지겁 단련실로 들어와서는 케이에게 치유법술을 걸었다. 효과가 금방 나타나는지 케이의 숨소리는 이내 안정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울드와 스쿨드도 따라 들어왔다. 그녀들도 케이의 몰골을 보며 혀를 찼다.
"세상에~ 린드, 전혀 안봐줬구나?"
"봐주지 말라고 케이가 말했다."
울드는 그런 린드를 보며 졌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케이가 격투에는 초보정도도 아니고 아예 무지하다시피 하다는 걸 알면서도 인정사정없이 공격하다니, 역시 린드 다웠다. 베르단디들이 들어왔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잠깐 휴식시간이 생겼다. 케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땀을 닦았다. 베르단디가 물을 갖다 주자 목이 엄청마른듯 물병째로 벌컥벌컥 마셔댔다. 그 모습을 보면서 린드가 케이에게 말했다.
"강해지고 싶어 하는 마음은 알겠는데 이런다고 단기간에 강해질 수는 없다."
육체의 강함이란 건 그렇게 쉽게 올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오랜 기간 동안 꾸준하게 자신을 단련해야 강해질 수 있는 것이다. 머리로 하는 일이라면 단기간에 어떻게 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예를 들어 시험 전날에 벼락치기 공부를 한다던지 하는 식으로. 물론 그런다고 성적이 확 오를 수는 없지만 최소한 어느 정도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육체의 단련은 그럴 여지가 전혀 없다. 그야말로 정공법으로 차근차근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언제까지나 여기 숨어있을수도 없는 노릇이고 오다기리도 무라카미가 회복되는 데로 바로 유적기지 탈출작전을 시작한다고 했던 것이다. 그리고 현재 무라카미의 상태를 보건데 조만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며칠 동안 케이의 육체가 굉장히 강해질 리가 없었다. 오히려 이런 식의 단련은 체력만 떨어트릴 수도 있었다. 차라리 그 동안 푹 쉬어두면서 컨디션을 최고조로 만들어두는게 더 나았다.
"하하...그건 나도 알아. 그래도 이대로 편히 놀고 있을수는 없더라고."
"케이씨...."
"난 이제까지 싸움같은건 모르고 살아왔으니까, 그래서 며칠 동안 싸우는 법만이라도 배워두는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가이버의 전투력은 식장자의 능력에 따라서 결정된다. 식장자의 능력이 뛰어나면 가이버도 엄청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 전에 케이가 상대했던 리스카의 경우에도 그렇다. 싸움엔 영 젬병이었던 케이는 특수부대 출신이던 리스카에게 패배직전까지 몰렸었다. 다행히 운이 좋아서 리스카의 컨트롤 메탈이 고장 난 틈을 타서 쓰러트릴 수 있었지만 그런게 없었다면 죽는 건 케이였을 것이 뻔했다. 사실 지금까지의 전투도 솔직히 운이 좋아서 이기거나 거의 이판사판식으로 싸워 이긴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앞으로 전투는 점점 더 격화돼 갈께 뻔 한데 운만 믿고 그런 식으로 싸울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최소한 조금이라도 싸우는 요령을 배워두면 이길 확률이 조금이라도 올라가지 않을까. 언제 무슨 무기를 쓰고 주먹을 어떻게 뻗으며 상대의 행동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이걸 깨우치려면 직접 몸으로 배워야 했다. 그래서 린드에게 부탁해서 이렇게 사서 고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따 오후에는 마키시마 선배한테 배우기로 했어. 린드도 수행할 시간은 있어야지."
그 말에 울드와 스쿨드는 잠시 그 광경을 상상해 봤다. 아키토라고 그 성격에 케이를 봐주면서 할 것 같지는 않았다. 오히려 린드보다 더하면 더했지. 아마 끝날 무렵쯤 되면 케이는 거의 시체나 다름없게 되지 않을까. 베르단디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케이를 바라보았다. 제발 이쯤에서 그만둬 달라는 간절한 눈빛을 하면서. 그러나 케이는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좀 쉬었으니 계속 해야지. 린드, 부탁해."
"할 수 없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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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오.....리무버가....!"
-위이잉!
최하층부 한쪽 구석에 위치한 시라이 박사의 연구실 안에서 규오의 환희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금 규오는 전투 형태로 변신을 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오른팔에는 은색의 기다란 타원형 물체가 끼워져 있었다. 시라이 박사가 밤잠을 설쳐가며 연구하던 바로 그 물건이었다. 그 물체는 지금 규오의 조아 크리스털과 연동돼 있었다. 규오의 생체 리듬에 맞춰 물체는 마치 꽃봉우리가 벌어지듯이 벌어졌다가 다시 닫혀졌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규오는 미친 듯이 웃었다.
"마침내 유니트 리무버는 이 규오의 것이 되었다!! 우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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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각하, 일전에 약속 하셨던 것은...."
규오는 전투 형태를 풀고 다시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그런 그를 보면서 시라이는 잔뜩 굽실거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전의 약속을 확인하였다. 규오는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
"걱정마라. 내가 조직을 장악하면 너를 개발국 국장 자리에 앉혀주마. 저 발카스의 후임으로 말이야."
"그...그래만 주신다면 정말 감사합니다아아...!"
"조금만 기다려라. 그 때가 되면 발카스를 포함해서 나머지 신장 멤버 녀석들도 모두 이세상 사람이 아니게 될 테니까."
규오는 한번 씩 웃어주고는 연구실 밖으로 나갔다. 시라이는 잔뜩 들뜬 체로 규오가 나갈 때까지 계속 굽실거렸다. 개발국 국장, 시라이에게는 영광의 정점이나 마찬가지인 자리였다. 그것도 크로노스 최고의 과학자라 불리는 발카스를 밀어내고 말이다. 그는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킬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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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규오는 시라이와의 약속같은건 지킬 생각이 없었다. 알게 뭔가, 리무버를 손에 넣은 이상 이제 그 녀석은 쓸모없었다. 오히려 다른 누군가에게 쓸데없이 리무버나 자신과의 약속에 대한 일을 떠벌리기 전에 없애버려야 했다. 하지만 그건 좀 있다 하기로 하고 일단은 가이버들의 소재를 찾는 것이 더 시급했다. 리무버를 쓰려면 가이버들이 있어야 하니까 말이다.
'후후후....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이 세상은 내 것이 된다.'
상층부로 올라가는 엘레베이터 안에서 규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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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늧은 시간, 베르단디는 케이가 곤하게 잠든 것을 확인하고는 케이 방을 나왔다. 낮에 혹독한 훈련을 한 덕에 케이는 자리에 눕자마자 그대로 뻗어버렸다. 그런 그를 잠시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베르단디는 잠자리에 들기 위해 방으로 갔다. 그런데 울드와 스쿨드가 보이질 않았다.
두 사람을 찾아다니던 베르단디는 당직 근무를 서고 있던 연구원에게 둘의 위치를 물어보려고 상황실로 갔다. 가보니 상황실에는 지로가 하야미와 함께 뭔가 열심히 자료를 뒤적이고 있었다. 베르단디가 들어서자 두 사람이 반갑게 맞이하였다.
"아, 벨. 어서와."
"어서 오십시오, 아직까지 안 주무셨군요."
"네, 저기 혹시 울드 언니랑 스쿨드가 어디 있나 해서요."
"아, 그 두 분이라면 각각 115호 자료실과 123호 연구실에 있으실 겁니다."
하야미는 모니터에 내부 약도까지 띄워주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베르단디는 감사 인사를 하였다. 그런데 그녀는 갑자기 지로가 이 늧은 시간까지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 졌다. 베르단디의 질문에 지로는 웃으며 모니터 화면을 보여주었다.
"크로노스의 활동이나 조직, 그리고 조아노이드란 것에 대한 각종 자료들을 모으고 편집하고 있는 중이야."
"그걸 어디다 쓰시려고요?"
"응, 여기서 나가면 곧장 언론에 이걸 알리려고."
지로는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제까지 지로가 보았던 격렬한 싸움, 조아노이드, 조아로드 리헐트 규오의 가공할 힘과 더불어 이곳 미나카미 산 지하의 거대 기지까지.... 크로노스란 조직은 알면 알수록 두려울 지경이었다. 게다가 더욱 더 큰일인 것은 하야미의 말로는 크로노스는 조아노이드 대원들을 이미 전 세계 곳곳에 심어둔 상태라고 하였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12신장의 명령이 떨어지면 전 세계에 퍼져있는 크로노스의 조아노이드 들이 일제히 본성을 드러내서는 인간사회를 공격할 것이라 하였다.
조아노이드는 전투 형태로 변신하기 전까지는 보통의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유전자 검사 같은걸 해도 조아노이드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으면 판별할 수가 없다고 한다. 그런 놈들이 어느 날 갑자기 전세계의 군사, 행정기관의 핵심 지역 내부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웬만한 총으로도 쓰러트릴 수 없고 모든 면에서 인간을 훨씬 초월하는 강력한 괴물들이 기습적으로 공격에 나서면 인간 사회는 거의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처음 그 계획을 들었을 때는 너무 황당한 얘기인지라 웃었던 지로지만 이곳에서 계속 크로노스에 대한 자료를 모으다 보니 이젠 그것이 너무나 공포스럽게 다가왔던 것이다.
"그래서 그 전에 사람들에게 크로노스의 존재를 알리고 경고하려고. 내 친구들 중에는 언론인도 있고 꽤 영향력 있는 편집장도 있어. 어떻게든 해볼 수밖에."
물론 모르는 사람 입장에선 너무 황당한 얘기인지라 아무도 지로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걸 함부로 떠들고 다녔다간 크로노스에게 비밀리에 암살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위기를 알면서도 어떤 이유가 됐든 주저하는 건 인간으로서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이 지로의 소신이었다.
"나, 최선을 다해 볼 거야. 어떻게 해서든 이걸 사람들에게 알리겠어. 미친년 소리 들어도 좋아.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지로의 눈에는 의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런 지로를 보며 베르단디는 무척 감명 받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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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실을 나온 베르단디는 하야미가 가르쳐준 그 방들로 향했다. 도대체 이 시간까지 두 사람이 뭐하고 있을까 궁금해진 베르단디는 일단 간단한 야식거리를 챙겨들고는 두 사람을 찾아갔다. 우선은 스쿨드가 있다고 하는 연구실 이었다. 연구실 안에 들어서자 그 안에는 뭔가 기계제작에 열중하고 있는 스쿨드의 모습이 보였다.
"언니! 언니! 이것 좀 봐봐!"
베르단디가 들어온 것을 알아차린 스쿨드는 밝은 표정을 지으면서 베르단디에게 매달렸다. 베르단디가 책상 위를 보자 그 위에는 커다란 배틀액스가 놓여있었다. 아마도 스쿨드는 배틀액스에다가 무슨 장치를 추가하려는 것 같아 보였다. 아직은 미완성인지 배틀액스 주변엔 각종 부품과 케이블이 잔뜩 놓여있었다. 스쿨드는 배틀액스 에다가 전기선을 연결하였다.
"자! 그럼 스위치 온!!"
-위이잉!
스쿨드가 스위치를 누르자 배틀액스의 날 부분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 진동하기 시작했다. 스쿨드는 잠시 책상 위를 뒤지다가 쓰다 남은 듯 한 금속 막대기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 막대기를 들고 도끼날 바로 위로 가져갔다. 스쿨드는 잔뜩 기대에 부푼 표정으로 베르단디를 바라보았다.
"언니, 이걸 바로 위에서 도끼날 쪽으로 떨어트리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음...그야 그냥 튕겨나가지 않을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베르단디의 말이 맞았다. 아무리 날이 날카롭다 해도 힘껏 내려치는게 아니라 물체를 그저 그 위로 툭 떨어트리면 잘리지 않고 그냥 튕겨나갈 뿐이다. 게다가 떨어트리는 물체가 두부같이 엄청 약한 물건도 아니고 웬만한 강도를 가지고 있는 금속이라면 더 그렇다. 물체를 자르는 것은 날만 날카로워서는 안 된다. 자르는 순간에 힘이 가해져야 하는 것이다.
"그럼 잘 봐봐! 이 스쿨드의 발명품을!"
스쿨드는 씩 웃으면서 그 금속 막대를 도끼날 위로 떨어트렸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도끼날에 부딧힌 금속 막대기가 아주 간단하게 두토막이 난 것이다. 그 광경을 본 베르단디는 깜짝 놀랐다. 그냥 튕겨나가야 하는 게 정상인데 저렇게 쉽게 잘리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그렇다면 저 도끼날은...
"어때! 어때! 멋지지? 이건 내 회심의 역작, '고주파 액스'야! 날 부분이 고주파수로 진동하면서 물체의 분자 결합을 풀어버리지. 가이버의 고주파 소드와 같은 거라고."
그 말을 들은 베르단디는 또 한번 놀랐다. 과연 듣고 보니 날 부분이 하얗게 빛나면서 묘한 진동음도 느껴지는 것이 가이버의 고주파 소드와 꼭 닮았다. 그렇다면 방금 전에 금속봉이 간단하게 잘린 것이 다 설명이 된다. 고주파소드 앞에서는 물체의 강도는 의미가 없다고 전에 케이가 설명해 줬었으니까 말이다.
"굉장하구나! 어떻게 이런걸 만들었니?"
"히힛! 난 천재니까!"
베르단디의 감탄어린 칭찬에 스쿨드는 한껏 부풀어 올랐다. 스쿨드의 발명의 주된 목적은 바로 베르단디의 관심을 받는 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말이다. 베르단디는 역시 스쿨드의 발명품은 최고라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스쿨드가 너무나 좋아한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 고주파 액스를 다시 보니 스쿨드가 쓰기에는 너무 크고 무거워 보였다. 게다가 스쿨드는 저런 무기를 쓰는 방법을 배운 적도 없고 말이다.
"스쿨드, 그런데 저거 네가 쓸거니?"
"아니, 저건 린드가 쓸 거야. 린드가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어."
"린드가?"
"응, 크로노스와 싸우려면 보통의 무기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말이야."
이제까지 크로노스와 싸워오면서 린드는 절실히 느꼈다. 현재 자신의 능력으로는 제대로 맞서 싸울 수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그래서 린드는 이곳에 온 후 몸이 회복되자 바로 수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어떤 수행을 한다 할지라도 단기간에 강해질 수는 없었다. 법술도 놈들에겐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무기만이라도 강화해 보자 하는 생각에 린드는 스쿨드에게 무기 제작을 의뢰한 것이다. 어떠한 물체도 베어버릴 수 있는 가이버의 고주파 소드와 같은 물건을 말이다. 그래서 스쿨드는 자신의 실력을 한껏 발휘해서 지금 이렇게 고주파 액스를 제작한 것이다.
"이제 조금 남았어. 동력 문제만 해결하면 되. 내일은 완성할 수 있을 거야."
베르단디는 장하다는 듯이 스쿨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베르단디에게 칭찬받은 스쿨드는 기분이 좋은 듯 환하게 웃었다. 그 때 방안으로 누군가가 들어왔다. 오다기리 주임이었다.
"두 분다 안 주무시는지요?"
"아! 할아버지!"
스쿨드는 오다기리를 아주 반갑게 불렀다. 베르단디는 스쿨드가 저런 식으로 남을 친근하게 부르는 것을 처음 봤다. 오다기리가 들어오자 스쿨드가 아주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아무래도 자신이 없는 동안 스쿨드는 오다기리와 꽤 가까워진 모양이었다. 스쿨드는 오다기리에게도 베르단디에게 시범보일때 처럼 자신의 발명품인 고주파 액스를 자랑하였다. 오다기리 역시 고주파 액스의 위력을 보면서 감탄하였다.
"정말 멋지군요. 역시 스쿨드 님이신데요."
겉으로 보면 오다기리는 스쿨드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인다. 물론 천계와 인간계의 시간 개념이 다르다 하므로 실제 살아온 시간으로 따져 보자면 스쿨드가 더 오래 살았을 게 확실하지만 어쨌든 이렇게 같이 놓고 보면 할아버지와 손녀사이처럼 보였다. 그런고로 어른인 오다기리는 스쿨드에게 말을 놓아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지만 오다기리는 신족인 베르단디나 울드, 스쿨드, 린드에게는 꼬박꼬박 경칭을 붙혔다.
"에헤헤~ 별거 아니에요."
오다기리의 칭찬에 스쿨드는 몸을 배배꼬면서 부끄러워하였다. 베르단디는 그런 스쿨드의 모습을 보면서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저런 모습을 보니 정말 친할아버지와 손녀지간 같아 보였다. 스쿨드가 저렇게나 다른 사람과 친근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니 베르단디도 기분이 좋아졌다. 스쿨드는 베르단디에게 하듯이 스스럼없이 오다기리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오다기리 주임님과 많이 친해진 모양이네요."
"하하, 그렇게 됐습니다. 정말 귀엽고 사랑스러운 여신님이더군요. 스쿨드 님은요."
오다기리의 말에 스쿨드는 얼굴을 붉히며 수줍어하였다. 유적기지에 처음 왔을 때 스쿨드는 베르단디의 생사를 알 수 없자 상당히 침울해져 있었다. 그런 스쿨드를 보자 오다기리는 스쿨드가 금방 기운을 차릴 수 있도록 바쁜 와중에도 항상 신경을 써 주었었다. 그 이후 베르단디와 다시 만난 이후에도 스쿨드는 뭔가 크로노스의 과학력이나 이곳 유적에 대해 궁금한 것이 생기면 언제나 오다기리에게 달려가서 물어보곤 했고 오다기리는 한번도 싫은 내색 하지 않고 열심히 가르쳐 주었다. 다른 스텝들도 스쿨드를 무척이나 귀여워하고들 있었다.
"두고 보세요! 이 고주파 액스가 끝이 아니니까! 저것만 끝나면 크로노스에 대항할 수 있는 무기를 잔뜩 만들 테니까!"
사기충천한 스쿨드의 모습을 본 오다기리와 베르단디는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가 오다기리는 무릎을 꿇으면서 스쿨드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리고 마치 친손녀에게 말하듯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말아요, 스쿨드님까지 싸우게 할 수는 없으니까. 내게 맡겨주지 않겠어요? 내게 아주 좋은 반격작전이 있어요."
"네? 정말요?"
"그럼요, 무라카미 군이 회복되는 데로 바로 시작할 거에요. 그리고 난 솔직히 스쿨드 님까지 이 피비린내 나는 싸움에 말려들게 하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번엔 내게 맡겨줘요."
오다기리의 말에 스쿨드는 기대에 찬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단디는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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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쿨드의 방을 나온 베르단디는 울드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에 가보니 울드 역시 컴퓨터를 조작하면서 어떤 일에 열중하고 있었다. 베르단디는 울드에게 차를 건넸다.
"언니, 여기 차 드세요."
"응, 고마워."
울드는 베르단디에게서 차를 받아서 한 모금 마셨다. 차를 건네면서 베르단디는 울드가 들여다보던 모니터 화면을 보았다. 모니터에는 조아노이드에 관한 자료들이 떠 있었다. 잠시 놀란 베르단디가 책상 위를 보니 그 위에는 각종 서류들과 더불어서 실체화 된 법술 공식도 펼쳐져 있었다. 베르단디는 그 중에 한 권의 서류를 집어 들었다. 대충 훑어보니 조아노이드의 유전자 정보 등에 관한 자료들이었다. 밤 늧은 시간까지 울드는 조아노이드에 관한 자료를 보고 있던 것이다.
"언니, 지금 이 시간까지 뭘 하시고 계셨던 건가요?"
"아, 조아노이드에 대해서 연구중이야."
울드는 잠시 쉴겸 모니터에서 눈을 뗐다. 시계를 보니 벌써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조아노이드에게 우리들의 법술이 잘 안통하는건 알고 있지?"
"네."
"그래서 지금 새로운 법술 공식을 연구 중이야. 조아노이드에게 통할 수 있는 법술을 말이야."
울드는 이곳에 온 이후 오다기리 등에게 부탁해서 조아노이드에 관한 여러 자료를 넘겨받았다. 울드는 생각했다. 조아노이드란 것이 과거 강림자들이 신족들의 법술에 견딜 수 있도록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면 거기에 대응하는 법술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마치 병균에 대항하는 백신이 있듯이 말이다. 앞으로 계속 크로노스와 싸워 나가려면 일반 조아노이드 조차 경미한 상처 정도밖에는 못 주는 현재의 법술식으로는 무리였다. 하다못해 린드처럼 몸으로 싸울 수 있다면 혹 모르겠지만 울드에게는 그런 재능은 없었다. 게다가 몸으로 싸우는 것도 상대에 따라서는 무리였다. 법술을 쓸 수가 없다면 이들에겐 핸디캡이 너무 컸다.
울드의 연구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사실상 현재의 신족 전사들로는 크로노스와 정면 승부를 할 경우 승리를 장담할 수가 없었다. 법술을 쓸 수가 없다면 하이퍼 조아노이드까지 볼 것도 없이 당장 일반 조아노이드들 조차도 상당한 위협이었다. 그리고 저 엄청난 힘을 가진 조아로드, 리헐트 규오도 엄청난 위협이었다. 게다가 울드가 보기에는 규오도 최고 보스는 아닌 것 같았다. 분명 저보다 더 엄청난 놈이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조제체들에게 통할 수 있는 법술식을 완성할 수 있다면 이것은 앞으로의 싸움에서 천계와 자신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울드는 단지 그것 때문에 연구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베르단디....너, 알고 있지?"
"......"
"케이 아버지에 관한 일...."
베르단디는 슬픈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베르단디는 아직도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지금도 어딘가에 케이마씨가 살아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그건 사실 베르단디의 마음속에 부질없는 바램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런다고 케이마씨가 살아돌아올리 없는데도....
"그 광경을 보면서, 그리고 그 후에 케이가 힘을 잃었을 때, 그리고 또 나의 힘이 적에게 안 통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 자신이 엄청 초라해 지더라고. 난 이것밖에 안되나 싶었어...."
"언니...."
"그래서 시작한 거야. 케이에게, 그리고 모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
베르단디는 스스로에게 반문하였다. 과연 나는 뭘까. 나는 케이씨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고 있을까. 린드도, 울드 언니도, 스쿨드도 각자 자신의 특기로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모두들 가혹한 운명에 당당히 맞서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문득 베르단디는 여기 오기 전 다케시로 마을 부근에서 아키토가 한 말이 떠올랐다. 싸우는 게 싫으면 그냥 천계로 돌아가라는 말. 베르단디는 지금까지 계속 그 말이 맘에 걸렸다. 그말 그대로 나는 이제까지 그냥 눈을 감은채로 도망치려고만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 전....전 과연 뭘 할 수 있을까요?"
"응? 무슨 소리야?"
베르단디는 자신의 마음을, 그리고 여기 오기 전에 있었던 일들을 다 말했다. 한동안 가만히 듣기만 하던 울드는 부드럽게 웃었다.
"넌 지금 케이에게 가장 큰 도움이 되고 있잖아?"
"네?"
"케이는 지금 너를 지켜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어. 아까 봤지? 린드에게 실컷 얻어맞으면서도 싸우는 방법을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하는 거 말이야."
베르단디는 아까 낮의 일이 생각났다. 평생 격투기 같은 건 해본적도 없는 케이가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모습은 베르단디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케이의 마음은 이해하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그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넌 케이가 힘들어 할 때 그의 옆에서 격려해주면 되. 그가 다시 기운내서 일어날 수 있도록. 그건 우리들 중에서도 너 밖에 할 수 없는 거야."
"언니..."
"너무 초조해 하지 마. 당장은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도록 하자."
울드는 다시 모니터로 눈을 가져갔다. 그리고 화면을 보면서 동시에 노트에 뭔가를 적기도 하였다. 잠시 울드의 연구 모습을 지켜보던 베르단디는 조심스럽게 울드에게 말을 건넸다.
"저...언니, 저도 같이 해도 될까요?"
"응?"
"앞으로는 저도 싸울거에요. 더 이상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그리고 케이씨의 짐을 조금이라도 나눠지고 싶어요. 그러니까 앞으로의 싸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저도 언니처럼 법술식을 연구해 보고 싶어요."
울드는 잠시 베르단디를 바라보다가 이내 미소를 지었다.
"좋아, 안그래도 안 풀리는 데가 있었는데 좀 도와줘."
두 자매는 이내 법술공식에 매달렸다. 유적기지 최하층의 밤은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하편에서 계속....
p.s : 글이 너무 길어서 중간에 짤리는 군요....-ㅅ-;;; 상, 하로 나눠서 올리겠습니다.....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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