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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제2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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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


제21화 - 부활의 유적 우주선 -






미나카미 산 주변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봄을 지나 여름이 다가 오고 있는 계절이었지만 이 안개 때문에 날씨는 무척 쌀쌀하게 느껴졌다.

".....안개인가, 몰래 들어가기에는 좋은 기회로군."

그리고 미나카미 산이 보이는 언덕 위에서 앱톰은 안개에 쌓인 미나카미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그는 어제 밤에 죽은 공작원들의 몸을 흡수해서 간신히 부활할 수 있었다. 그의 등 뒤에는 크로노스의 전투원 복장을 한 남자 두 명이 같이 서있었다. 앱톰은 미나카미 산을 바라보며 이를 악물었다.

'이놈, 두고 보자! 감히 내게 그런 창피를 안겨주다니....!"

앱톰은 어젯밤 일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최강의 전투 생물로 거듭났다고 여겼었는데 제대로 손도 못써보고 그놈에게 간단하게 당하고 말았다는 게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분명 그 남자는 월등히 강한 존재였다. 그 점은 앱톰도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바로 그 점 때문에 앱톰은 분노하고 있었다. 그 때 당시 자신의 몸은 본능적으로 그 남자에게서 공포를 느꼈다. 가이버와 싸울 때도, 그리고 그 하이퍼 조아노이드 5인중과 마주 쳤을 때도, 발카스의 사념파를 받았을 때도 느끼지 않던 감정이었다. 앱톰은 세상에서 무서울 것이 없다고 여겼다. 그런데 공포를 느끼다니! 앱톰은 그 점이 너무나 수치스러웠다. 최강의 전투 생물이란 이름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어쨌든 어제 마지막으로 봤을 때는 그 남자는 분명 미나카미 산 쪽으로 걸어갔었다. 아마도 분명히 유적 기지로 갔을 것이다. 지금 미나카미 산의 유적 기지에서는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게 틀림없었다.

"좋아, 그럼 가자."

앱톰은 그의 등 뒤에 서있던 다른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핼맷을 쓰고 있는 그 남자들의 왼쪽 얼굴에는 앱톰과 똑같은 긴 흉터가 자리 잡고 있었다.


 

******************************************




"부디 조심하세요, 케이씨."

"응, 걱정마."

베르단디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케이를 배웅하였다. 베르단디 뿐만이 아니라 울드나 스쿨드를 비롯한 모두가 다 나와서 곧 유적 우주선으로 돌입할 케이와 아키토들을 배웅하였다. 한쪽에서는 시즈와 요헤이가 아키토를 배웅하고 있었다.

"아키토님, 부디 몸 조심하시길...."

"도련님... 제발 조심하십시오...."

케이와 아키토는 애써 태연한 척 하였지만 이들도 사실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유적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었기 때문에 솔직히 가이버라고 해서 무사히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보장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있는 정보도 유적 우주선은 용해액을 분비시켜 외적의 침입을 저지하는 구조라는 것 정도였고 이 얘기는 들으면 들을수록 마음속의 불안감이 증폭되기만 하였다.

"흐음... 저기 베르단디."

"네?"

그 때 울드가 베르단디를 부르더니 뭔가 귓속말을 하였다. 그런데 잠시 후 베르단디의 얼굴이 갑자기 빨개지기 시작했다. 케이는 울드가 또 무슨 장난을 치는 건가 싶어 괜히 불안해졌다. 이윽고 울드의 말이 끝났고 베르단디는 여전히 얼굴이 빨개진 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러다가 뭔가 결심한 듯 케이에게 천천히 다가왔다.

"저...케이씨......"

"으...응??"

베르단디는 잠시 케이의 바로 앞에서 머뭇거렸다. 케이가 왜 그러냐고 물으려는 찰나, 갑자기 베르단디가 케이의 볼에 키스를 하였다.

-쪽

"베...베르단디...?!"

베르단디는 얼굴이 더욱 더 빨개졌고 갑자기 기습 뽀뽀(?)를 당한 케이 역시 얼굴이 홍당무가 되었다. 그러자 지로가 좀 짓궂게 휘파람을 불며 케이를 놀려대었다. 다른 사람들도 케이와 베르단디에게 시선을 집중하였다. 당황한 케이는 울드를 바라보았다. 울드는 케이에게 스쿨드 봄버를 던지려는 스쿨드를 꼭 붙잡고 있었다.

"뭐, 별 말 안했어. 사랑하는 연인이 위험한 일을 하려하면 그 연인은 키스를 해 주면서 무사귀환을 비는 것이 인간세계의 관습이라고 말해준 것 정도야."

어디서 또 무슨 드라마를 봤기에 저런 근거 없는(?) 소리를 할까. 하지만 뭐 아무렴 어떤가. 덕분에 기분은 아주 좋았다. 케이는 얼굴이 잔뜩 빨개진 채로 더듬거리며 베르단디에게 말했다.

"고..고마워, 베르단디....꼭 돌아올게..."

"네. 기다릴게요."

베르단디는 케이에게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런 두 사람을 잠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던 아키토가 케이를 불렀다.

"자, 케이. 이제 시작하자."

"네, 그럼... 모두들 잠깐 뒤로 물러나세요."

케이와 아키토는 일행들에게서 좀 떨어졌다. 식장시에 발생하는 강렬한 충격파에 다른 사람들이 다치게 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잠시 서로를 바라본 두 사람은 강하게 외쳤다.

"식장!!"

"가이버!!!"

-투오오옹!!

강력한 충격파를 동반하며 두 사람은 가이버로의 변신을 완료하였다. 변신을 하자 오다기리와 스텝 두명이 뭔가 커다란 배낭 같은 것을 들고 왔다. 등에 질 수 있는 배낭 형태의 금속 박스위에 카메라와 무전기가 설치되 있었다. 스텝들은 케이와 아키토에게 그것을 건네줬다. 두 사람은 그것을 등에 매었다.

"이건 극지 탐사용 장비라네. 이걸 메고 안으로 들어가도록 하게나."

이 장비는 오다기리가 유적 내부 탐사에 대비해서 준비한 무선장비였다. 등에 메는 배터리와 송수신 유닛, 그리고 어깨 너머로 드러나는 카메라와 무선 마이크로 구성돼 있었는데 어깨 부근에 오게 되는 카메라에 찍힌 영상은 그대로 이곳 연구실로 전송될 수 있었고 같이 탑재되있는 무전기를 이용해서 오다기리들과 교신을 할 수 있게 한 장비였다. 깊은 동굴 속같이 전파가 밖으로 송출되기 힘든 환경을 고려해서 상당히 강력한 출력을 낼 수 있어야 했기에 등 부분의 금속 박스 내부의 대부분은 고출력을 낼 수 있는 배터리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무게가 만만치 않게 나갔지만 어차피 가이버 상태인 케이와 아키토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 장비는 스쿨드님이 좀 더 강화한 장비라네. 유적 우주선 내부까지 들어가도 우리와 교신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을 꺼야."

오다기리가 스쿨드를 바라보며 말하자 스쿨드는 어깨를 으쓱 하였다. 스쿨드가 손 댄 메카라면 일단 성능은 믿을 수 있었다. 단 한 가지만 빼고. 케이는 좀 불안한 마음이 들어서 스쿨드에게 물었다.

"스쿨드...설마 여기에 자폭장치 넣은 거 아니겠지?"

"뭐, 처음엔 넣었었는데 할아버지가 굳이 그건 필요없을거 같다고 하셔서 그냥 뺐어."

혹시나 했었는데 역시나 였다. 도대체 스쿨드의 발명품은 어째서 한결같이 자폭장치를 가지고 있는 걸까. 그나마 이번 장비는 오다기리가 옆에서 스쿨드의 폭주(?)를 억눌러서 다행이었다. 만약 그냥 내버려뒀었다면 자폭장치뿐만 아니라 온갖 쓸데없는 기능들이 잔뜩 추가 됐을 것이 뻔했다. 케이는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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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발카스는 자료 보관소에서 앱톰에 대한 그간의 실험 기록을 보고 있었다. 발카스는 뭔가 생각할 일이 있으면 주변에 아무도 들이지 않고 혼자 골똘히 생각하곤 했기 때문에 지금 보관소에는 발카스 혼자 있었다.

앱톰의 실험 기록을 보면서 발카스는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기록만 봐서는 별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 대체 어디가 어떻게 잘못 됐길래 그런 괴물이 나오고 만 것일까. 상대 조아노이드를 융합포식 하면서 포식 대상의 주요 특징을 복사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그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신을 보다 더 강력한 전투 생물로 발전시켜 나간다. 어떻게 보면 스스로 진화하는 아주 이상적인 병기라 할 수 있었지만 어처구니없게도 앱톰은 실험을 하던 도중 조아로드의 사념파에서 완전히 해방되어 버리기까지 하고 말았다. 통제 불능의 무서운 괴물을 자기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발카스는 창피해 죽을 지경이었다. 앱톰은 그야말로 발카스 일생일대의 수치라 할 수 있었다.

규오가 딴 생각을 품고 있다는 것도 지금 신경 쓰이는 판에 앱톰의 문제까지 생기자 발카스는 골치가 아파왔다. 며칠 전 애리조나 본부에 규오의 반역에 대해 연락을 취했으니 이제 곧 다른 12신장 멤버들이 달려올 것이다. 물론 12신장들 중에서는 속세를 떠나 은둔해 있는 경우도 있었으므로 모두를 소집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어쨌든 신장 멤버들이 오기 전까지는 앱톰은 정리해야 했다.

"음! 이...이 기운은...!"

그 때 발카스는 엄청난 기운을 느꼈다. 발카스의 이마에 붙어있는 조아 크리스털이 그 힘에 반응하며 붉으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강력한 에너지, 게다가 그 기운도 아주 낯익은 것이었다.

"설마...그 분이 오신건가!"

발카스는 황급히 콘솔을 조작해서 유적 기지내의 여러 곳을 검색하였다. 유적 기지 곳곳에는 보안용의 감시 카메라가 있었고 그래서 중앙 사령실등에서 언제 어느 곳도 손쉽게 볼 수 있었다. (최하층의 경우에는 오다기리와 그 스텝들이 미리 조작을 가해서 사령실로는 늘 왜곡된 정보만이 전달됐다. 물론 그 누구도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고 말이다) 발카스는 기운이 느껴지는 방향을 바탕으로 그 쪽 방향의 여러 곳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이윽고 그는 그 힘을 발산하는 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카메라에는 규오와 바로 '그 분'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발카스의 손이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아...알칸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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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오."

"......"

규오의 얼굴은 이미 땀 투성이었다. 알칸펠의 강렬한 위압감에 압도된 그는 지금 서있는것도 힘겨울 지경이었다. 알칸펠이 뭣 때문에 여기 왔는지, 그리고 자신에게 무슨 말을 할지 규오는 잔뜩 긴장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순순히 그걸 넘긴다면 이번 한번만큼은 큰맘 먹고 눈감아 줄 수도 있다. 내 계획을 위해서는 너와 나를 포함해서 12명의 조아로드가 있어야 하니까."

"무...무슨 소리야?"

규오는 알칸펠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짐작이 가질 않았다. 그러나 알칸펠이 보기에는 규오는 괜히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만 같아 보였다. 잠깐 피식 웃은 알칸펠이 다시 말했다.

"거짓말 마라. 넌 여기서 그걸 찾아냈을 거야. 좋게 말할 때 당장 그걸 넘겨라."

"무..무엇을?"

"한번 더 묻겠다. 유니트 '리무버'는 어디 있나?"

'뭐...뭐라고!!'

알칸펠의 말에 규오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알칸펠이 여기로 온 이유가 유니트 리무버 때문이라니! 리무버에 관해서는 자기가 연구를 맡겼던 시라이 박사를 제외하면 그 누구도 모를 텐데 도대체 어떻게! 그렇다고 시라이가 일러바친 것도 아니었다. 시라이 따위가 뭔 재주로 규오 자신도 못 만나본 알칸펠에게 사실을 알릴 수 있을까. 규오는 낭패감에 몸을 떨었다. 이제 고지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이 시점에서 자기 말고도 리무버에 대해 알고 있는 신장 멤버가 또 있었고 그것도 하필이면 알칸펠이라니!

알칸펠, 규오는 한번도 만나보질 못했던 남자다. 크로노스의 창시자이자 조직의 총수. 다른 모든 신장들이 두려워 한다는 절대적인 존재. 솔직히 조아로드로 막 조제됬을때는 새롭게 생긴 자신의 힘에 자신감이 생겨서 다른 신장멤버들이 얘기해주던 알칸펠이 어떤 분이라는 소리는 규오의 귀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었다. 알칸펠은 일년에 몇 번 열리는 12신장 전체 회의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었다. 그러니 규오로서는 알칸펠의 위엄을 느껴볼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자리에서 직접 마주치고 보니 규오는 엄청난 위압감이 전신을 휘감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공포로 인해 손가락 하나 조차 맘대로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규오는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알칸펠은 자신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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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와 아키토는 그대로 유적 우주선의 외벽 쪽으로 천천히 접근해갔다. 두 사람은 잔뜩 긴장한 채로 말없이 걷고만 있었다. 오다기리가 말해줬던 유적 우주선의 용해액 얘기가 자꾸 떠올랐다. 억지로 잊으려고 했지만 쉽게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강식장갑이 유적 우주선의 출입과 어떤 관계가 있다면 유적 근처에 갔을 때 아마도 무슨 반응이 나올 것이다. 오다기리의 생각은 그랬다. 그러나 아무 반응도 없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억지로 열고 들어가 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아키토는 여차하면 메가 스매셔를 날려서라도 유적의 외벽을 열고 안으로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두 사람은 유적 우주선의 외벽 바로 앞에 도착하였다. 막상 도착은 했지만 이제부터 뭘 해야 하나 싶어서 두 사람은 잠시 머뭇거렸다. 그때였다.

-키이잉

갑자기 케이의 컨트롤 메탈이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직후 아키토의 메탈도 빛나기 시작했다. 분명히 무슨 일이 벌어지려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잔뜩 긴장한 채로 유적의 외벽 부분을 바라보았다.

-쿠르르르....

그 순간 유적의 외벽에 저절로 커다란 구멍이 생기기 시작했다. 케이와 아키토는 물론 중계 카메라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상황실의 모두는 깜짝 놀랐다. 역시 오다기리의 예상이 맞았다. 강식장갑을 가진 자가 들어가고자 하면 유적은 스스로 그 통로를 여는 것이었다.

"좋아, 가자. 케이."

아키토가 먼저 앞장서서 유적 외벽에 생긴 통로로 걸어 들어갔다. 케이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어 긴장된 마음을 진정시킨 다음 통로로 들어갔다. 외벽이 무척 단단하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의외로 피하 조직층은 매우 부드러웠다. 푹신한 침대 매트리스 위를 걸어가는 느낌이었다. 케이는 혹시나 용해액이 스며 나오지는 않을까 싶어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이윽고 막다른 길이 나왔다. 아마도 여기쯤이 오다기리 주임이 말하던 피하조직층의 끝부분인 것 같았다. 두 사람은 잠시 벽 앞에 멈춰 서서 기다렸다. 조금만 기다리고 있으면 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이다.

-슈르륵!

그 때 주위를 둘러보던 아키토는 깜짝 놀랐다. 자기들 뒤쪽의 통로가 닫히고 있었다!

"케이! 뒤를 봐!!"

아키토의 외침에 케이가 고개를 돌렸다. 바로 그 직후 통로가 닫히고 말았다. 순식간에 두 사람은 피하 조직층 안에 갇히고 말았다. 두 사람은 잔뜩 긴장한 채 주위를 둘러보았다.

-쏴아아!!

"웃!"

"이..이건!!"

갑자기 천정에 무수히 많은 조그만 구멍들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거기에서 다량의 투명한 액체가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당황해서 허둥대는 동안 그 액체는 순식간에 두 사람이 갇혀 있던 좁은 공간을 가득 채우고 말았다. 가이버는 물속에서도 호흡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익사할 리는 없지만 이것이 만약 용해액이라면 정말 큰일이다. 케이와 아키토는 당황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이 수상한 액체가 공간을 가득 채웠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몸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이들이 지금 등에 메고 있는 통신장비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용해액이라면 가이버인 이들은 몰라도 기계인 통신장비는 당장에 녹아버렸어야 하는 거 아닌가.

-"위험하네! 두 사람 다 즉시 탈출해!!"

무전으로 잔뜩 당황한 오다기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지금의 액체가 무슨 용해액인줄 알았는가 보다. 상황실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통신장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이건 무해한 액체다. 아키토가 바로 응답을 하였다.

"괜찮습니다, 주임. 뭔지는 모르겠지만 독이나 용해액은 아닌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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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토의 대답이 들려오고 화면상으로도 두 사람이 무사한 것이 확인되자 상황실에서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특히나 사랑하는 사람을 안으로 들여보낸 베르단디와 시즈의 걱정은 더 했었다.

"아무래도 저건 그냥 물 같군. 아무튼 다행이야..."

오다기리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아무래도 유적 우주선은 내부에 물을 가득 채워놓고 다니는 구조인 것 같았다. 강식장갑을 입은 식장자는 물속에서도 익사할 염려는 없으니까 문제는 없었다.

"스쿨드, 저거 방수되지?"

"날 뭘로 보는 거야! 수심 천 미터까지 방수된다고!!"

울드의 다소 실없는 질문에 스쿨드가 발끈하고 나섰다.

"잠깐! 무슨일이 벌어지려 합니다."

울드와 스쿨드가 막 티격태격 하려는 찰나, 오다기리가 화면을 보면서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들 긴장된 얼굴로 대형 스크린을 주시하였다. 케이와 아키토의 바로 앞에 있던 벽이 스르르 열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드디어 유적의 내부로 돌입하는 것이다!

"이것이....유적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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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와 아키토는 벽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섰다. 드디어 유적 우주선의 내부로 돌입한 것이다. 녹색의 빛이 감돌고 있는 유적 우주선의 내부에는 물이 가득차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크고 작은 기둥들이 어지럽게 교차하고 있었다. 마치 수중 동굴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었다. 내부는 아주 깜깜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녹색의 빛이 감돌고 있어서 앞을 보는데는 지장이 없었지만 그래도 뭔가 어두운 느낌이 드는 것이 다소 으스스했다.

"아, 마키시마 선배."

케이가 뒤를 가리키자 아키토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들이 들어온 통로가 스르르 닫히고 있었다. 닫힌 통로는 이윽고 완전히 메워져서 주변의 벽과 전혀 구분이 가지 않게 되었다.

"역시 그랬던 거군...."

아키토는 이제야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이 유적 우주선에는 원래 고정된 출입구 같은 것은 없는 셈이다. 강식장갑을 가진 생명체가 들어가거나 나오기를 원하면 그 부분에 있는 벽이 스스로 통로를 여는 것이다. 그러나 강식장갑이 없이 외부에서 억지로 들어오려 하는 '적'에 대해서는 피하조직층이 다양한 용해액을 분비해서 침입자를 저지하는 구조로 되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제까지 크로노스가 이 유적 우주선을 제대로 연구하지 못했던 것이다.

"오다기리 주임, 우리들이 있는 곳은 어디입니까?"

아키토는 바로 무전을 날려서 상황실에 현재 위치를 물었다. 두꺼운 피하 조직층이 있음에도 스쿨드의 통신 장비는 확실히 위력을 발휘해서 오다기리와의 통신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예상도에 따르면 그 곳은 거주구나 창고 같은 것이 있는 곳 같네. 그대로 쭉 직진해 보게나. 그러면 아마도 메인 브릿지로 갈 수 있을 거야."

두 사람은 중력 제어구를 조종해서 하늘을 나는 듯 한 감각으로 물속을 해쳐 나갔다. 이런 물속에서는 걸어 다니는 것 보다는 이렇게 날아다니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었다. 본격적인 탐험은 이제 부터였다. 두 사람은 잔뜩 긴장한 채로 유적의 중심부를 향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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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쩔 거냐. 규오."

규오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알칸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알칸펠의 위압감에 규오는 숨이 막히는 듯 했다. 그 명을 거역하면 죽음만이 있다는 것을 규오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러나!

"대...대답은...."

"대답은?"

"대답은!  NO 다아아아!!!!!"

-파아아앙!!! 콰콰쾅!!

규오는 즉시 전투형태로 변신을 하였다. 전투 형태로 변신하면서 생긴 강력한 에너지로 인해 바닥와 천정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갑작스러운 폭발로 인해 화재경보기가 작동하면서 주위에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콰콰쾅!!

"우악!"

"뭐..뭐야!!"

복도를 걷고 있던 전투원 두명은 갑작스러운 폭발과 함께 천정이 무너져 내리자 비명을 질렀다. 폭발의 영향으로 인해 조명이 나가버려서 복도는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천정의 붕괴로 인해 주변에는 엄청난 양의 흙먼지가 날리고 있어서 숨쉬기가 거북했고 시야도 좋지 않았다. 그런데 그 흙먼지 너머로 뭔가 거대한 덩치가 웅크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좀 더 앞으로 걸어가서 그 덩치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초...총사령 각하?!!"

놀랍게도 천정을 뚫고 내려온 것은 전투형태로 변신한 규오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규오가 전투형태를 하고 있는 걸까? 이들은 황급히 규오에게 다가가려 하였다. 그 때 갑자기 규오가 벌떡 일어서더니 이들 중 한명을 거칠게 옆으로 밀쳤다.

"방해 말고 저리 비켜!!!"

-퍼억!!

규오의 강한 힘에 떠밀린 전투원은 그대로 벽에 부딪혀서 머리가 박살나고 말았다. 다른 한명은 공포에 질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공작원들을 쏜살같이 지나친 규오는 그대로 바리어를 전개하면서 최고 속도로 복도를 따라서 날아갔다.

"대...대체 왜 저러시지?"

남은 한명은 규오때문에 머리가 박살나서 죽은 동료와 규오가 달려간 방향을 번갈아 보면서 의아해 하였다. 대체 무슨 일이 있길래? 그러나 그는 바로 그의 등 뒤에 내려오는 다른 사람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키이잉!

"윽! 으...으아악!!!"

갑자기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공작원은 잠시 머리를 감싸 쥐며 고통스러워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의 머리가 풍선 터지듯이 터져 버렸다.

-퍼엉!!

복도에 있던 공작원을 사념파로 없애버린 알칸펠은 규오가 도망간 방향을 바라보며 웃었다.

"훗. 이 알칸펠에게서 도망칠 수 있다고 생각한 거냐? 어리석은 놈 같으니...."





'그래.... 차라리 도망쳐라, 리헐트...'

규오의 폭발적인 변신과 알칸펠이 방출하고 있는 강력한 힘에 의해 그 곳에 있던 방범 카메라는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그래서 지금 스크린에는 아무것도 투영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화면이 나오지 않아도 발카스는 모든 상황을 다 파악할 수 있었다. 발카스는 한동안 화면도 나오지 않는 스크린을 바라보며 숨을 죽였다.

알칸펠이 상대라면 정말로 그냥 도망치는게 나았다. 알칸펠은 규오 따위가 어찌할 수 있는 분이 아니었다. 아니, 설령 규오나 자신을 포함해서 나머지 11명의 신장 멤버가 한꺼번에 덤빈다 해도 알칸펠에겐 이길 수 없다. 규오의 시작체인 무라카미란 녀석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규오를 이길 수 없는 것처럼..... 물론 그렇다고 알칸펠 앞에서 도망치는 것도 거의 불가능 하긴 하지만 정면 승부보다는 차라리 나았다.

그런데 규오가 도망가는 방향이 조금 이상했다. 내부 감시 시스템의 정보에 따르면 규오는 지금 밑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어째서 밑으로 가는 걸까? 도망갈 거면 위로 올라가서 밖으로 나갈 생각을 해야지 그대로 아래로 내려가기만 해서 뭘 어쩌자는 걸까. 그대로 최하층까지 내려가 봐야 독안에 든 쥐일 뿐이었다. 규오가 공포에 질려서 그냥 생각 없이 내려가기만 하는 걸까? 그 순간 발카스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까 분명히 알칸펠은 규오에게서 '리무버'란 것을 요구하였다. 그렇다면 혹시 규오는 그 리무버를 가지고 도망치려는 것일까?

'설마! 리무버란 것이 최하층에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떻게 해서든 규오보다 먼저 최하층으로 내려가서 그 리무버란 것을 확보해놔야 했다. 발카스는 서둘러 자료실 밖으로 뛰어나갔다.




******************************************




케이와 아키토는 유적의 중심 부분에 있는 벽을 열고 들어갔다. 들어가 보니 다소 좁은 방이 있었다. 방의 중심 부분에는 무슨 둥근 탁자 비슷한 것이 놓여있을 뿐이었고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이 방안 역시 물이 가득차 있었다. 케이는 방 중심에 있는 원형 구조물로 바짝 다가갔다. 그리고 자세를 낮춰서 그 구조물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응? 마키시마 선배."

"왜 그래?"

"이 모양....어디선가 본 것 같지 않나요?"

원형 구조물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그 나뉘어져 있는 곳의 표면에는 무언가의 틀 같은 것이 보였다. 모양을 보아하니 원래 이 자리에 뭔가가 박혀있었던 것 같았다. 좀 둥그스름한 이 삼각형 모양의 틀을 자세히 보던 케이와 아키토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선배, 이건 설마...!"

"그래, 유니트야. 틀림없이 이 자리에 유니트가 끼워져 있던 거야."

그제야 두 사람은 이 틀들이 식장하기 이전의 초기 상태의 유니트와 전체적인 윤곽이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틀림없었다. 예전에 크로노스가 억지로 들여보냈던 조아노이드들은 결국 여기까지 왔던 것이다. 그래서 이 방안에 있던 유니트를 가지고 밖으로 나갔던 것이다. 바로 이 방에서 모든 일이 시작된 것이다. 케이와 아키토는 왠지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응? 그런데 여긴 또 뭐죠?"

케이가 뭔가를 또 찾아낸 것 같았다. 유니트가 끼워져 있던 구조물들이 만나는 한가운데 꼭짓점이었는데 이 사이에도 뭔가 빈 공간이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이 자리에도 뭔가를 끼워놨던 것 같았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 공간은 괜히 만들어 놓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케이는 무전으로 오다기리에게 자문을 구했다.

"오다기리 주임님. 보이세요?"

-"그래, 잘 보이네."

"뭔가가 이 자리에도 있던 것 같아요. 혹시 짐작가시는거 없으세요?"



******************************************




유적 우주선의 중심부까지 들어갔어도 다행히 전송돼오는 영상은 아주 깨끗했다. 그래서 상황실에서도 그 구조물을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틀의 모양을 볼 것 같으면 상당히 길쭉한 타원형의 물체가 끼워져 있었던 것 같았다. 오다기리는 잠시 생각을 해 봤지만 도대체 짐작이 가질 않았다.

"나도 잘은 모르겠네. 다만 어쩌면 시라이 박사가 연구중인 바로 그 물건일 수도 있겠군."

그 때 당시 유적 우주선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유일한 조아노이드는 3개의 유니트를 포함해서 몇 점의 내부 물건을 가지고 나왔었다. 어쩌면 그 중에 하나를 규오가 입수해서는 시라이 박사에게 연구시킨 건지도 몰랐다.

"그 시라이 박사란 사람, 뭘 연구하고 있는 건지 혹시 모르십니까?"

"글쎄, 나도 모르겠군. 자기 연구에 대해서는 웬만해서는 얘기를 안 하는 사람이니까 말이야."

무라카미의 물음에 오다기리는 고개를 저었다. 오다기리도 시라이가 뭘 연구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원래 시라이 박사는 자기 연구만 신경 쓰는 외곬수라서 오다기리와도 별로 말을 안했다. 게다가 한참 연구에 몰두할 때면 자기 연구실에서 두문불출 하며 아무도 만나려 하질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어딘가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 유적 기지에 있는 모든 연구원들의 연구 기록은 무조건 중앙 데이터베이스에 등록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권한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연구 기록파일을 열람할 수 있고 말이다. 물론 자세한 연구 과정을 다 보려면 최고 관리자 권한이 있어야 하지만 오다기리 쯤 되면 누가 무슨 연구를 하는지 정도는 쉽게 검색할 수 있다. 그러나 시라이의 연구 기록은 어디에도 등록돼 있지 않았다. 이것은 다시 말해 그 연구는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극비사항이라는 뜻이다.

만약 그 물건이 바로 저 자리에 있던 물건이고 또한 그것이 유니트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규오의 손아귀에 들어갔다면 이건 정말 큰일이었다. 모두의 표정은 심각해졌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그 시라이라는 녀석의 방으로 쳐들어가 보면 어때?"

울드다운 과격한 말이었지만 오다기리는 고개를 저었다. 규오가 하루가 멀다 하고 만났던 시라이 박사다. 만약 그런 짓을 했다가 규오가 눈치 채기라도 하는 날에는 모든 게 끝장이었다. 시라이 문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지금은 유적의 탐사를 계속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케이군, 마키시마군. 예상도에 따르면 아마 자네들 바로 아래층이 메인 브릿지 일거야. 거기로 한번 가보게."



******************************************




오다기리의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러자 바닥에 저절로 큰 구멍이 생겼다. 두 사람은 그 구멍 밑으로 내려갔다.

바로 아래에도 방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넓은 공간이었다. 벽 주변에는 뭔가 원형의 거울 비슷한 것이 잔뜩 박혀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방 한가운데에 무슨 원탁 비슷한 것이 놓여 있었고 그 위에 정체불명의 은빛 금속구가 놓여 있었다. 천정을 올려다보니 천정에도 이와 똑같이 생긴 원탁 모양의 구조물이 있었고 거기에도 아래와 똑같은 금속구가 매달려 있었다. 이 두개는 서로를 마주보는 형태로 배치돼 있었다. 그러나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그저 빈 공간일 뿐이었다.

"여기가....메인 브릿지 일까요?"

"글쎄, 오다기리 주임의 예상도가 맞다면 그렇겠지만...."

흔히 상식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우주선의 조종석과는 상당히 달라서 좀 당황스러웠다. 무슨 조종간이나 컨트롤 패널 같은 것은 눈 씻고 찾아봐도 안보였다. 여기가 정말 메인 브릿지라면 그 옛날 강림자들은 이 우주선을 어떻게 조종했을까?

-키이잉!

"메탈이 또?!"

그 순간 갑자기 두 사람의 이마에 있던 컨트롤 메탈이 빛나기 시작했다. 또 무슨 일이 벌어지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두 사람은 긴장한 채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키이잉!

잠시 후 메인 브릿지의 한가운데 있던 원탁의 금속구도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천정을 바라보니 천정의 금속구도 똑같이 빛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가이버의 컨트롤 메탈과 무슨 공명을 하는 것 같았다.

-화아악!!

갑자기 벽 주위에 있던 거울 비슷한 것들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 덕에 좀 어두웠던 방안이 아주 환해졌다. 두 사람은 약간 불안한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




그 광경은 상황실의 오다기리 들에게도 전송되어졌다. 지금 유적 우주선에 무슨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 틀림없었다. 모두들 숨을 죽인채로 스크린을 보고 있었다. 그 순간 연구원들이 잔뜩 긴장하며 외쳤다.

"유적의 생명반응 급상승!! 지금까지 본적이 없는 기세로 오르고 있습니다!"

유적의 강렬한 생명반응으로 인해 발생하는 강력한 펄스가 우주선 외벽에 붙혀놓았던 계측 장비들을 순식간에 태워버렸다.  오다기리는 마른 침을 삼켰다. 틀림없었다. 유적 우주선은 지금 수만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것이다. 유적 우주선의 부활이었다.

-우르르릉!!

"꺅!"

갑자기 상황실 내부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무슨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 깜짝 놀란 스쿨드가 베르단디에게 매달렸다. 베르단디는 품에 안겨있는 스쿨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스쿨드를 진정시키려고 하였다. 그러나 베르단디 역시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유적의 생명반응이 활발해 질때마다 최하층은 항상 지진에 시달려 왔었다는 오다기리의 말은 들었었고 요 며칠전에는 그것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었지만 이번엔 저번보다도 그 정도가 심했다.

'케이씨...'

베르단디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스크린을 바라보았다.




******************************************




-파지직!

방의 중심부에 위치해 있던 두개의 금속구들이 점점 더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그 금속구들은 서로를 향해 한줄기의 빛을 쏘았다.

-파아앗!

그러자 금속구들 사이에 정체불명의 빛의 구가 생성되었다. 케이와 아키토를 비롯해서 영상으로 이를 전송받아 보고 있던 상황실 사람들도 모두들 깜짝 놀랐다. 다들 당황해하면서 오다기리에게 질문하였지만 그라고 저게 뭔지 알리가 없었다. 이들은 긴장한 채로 그 빛의 구를 바라보았다.

"아! 이...이건!"

"몸이 저절로!"

그 순간 갑자기 케이와 아키토의 몸이 저절로 두둥실 떠올랐다. 두 사람은 중력 제어구를 쓸 생각도 안했는데 갑자기 떠오른 것이다. 두 사람의 몸은 허공에 나타난 빛의 구를 향해 가기 시작했다. 저 빛이 둘을 끌어당기고 있는 것이다!

"큭!"

-위이잉!

아키토는 순간적으로 복부에 의식을 집중시켜 중력 제어구를 가동시켰다. 빛의 구가 끌어당기는 힘에 맞서 중력제어를 시도하자 아키토의 몸은 곧 그 자리에서 멈춰 섰다. 그러나 케이는 미처 그럴 생각을 하지 못했다. 잔뜩 당황한 그는 허공에서 그저 허우적댈 뿐이었다.

"마키시마 선배! 저...저 좀 도와줘요!!"

"케이! 중력 제어구를 조종해! 의식을 집중해!!"

그러나 케이가 중력 제어구를 조종하기도 전에 그의 몸은 빛의 구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말았다. 케이가 빛의 구 안으로 빨려 들어가자 빛이 한층 더 강렬해졌다.

-파아앗!

"우와악!!"

"케이!!!"

빛의 구 안에서 케이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케이는 그 안에서 몸을 벌벌 떨어대고 있었다. 아키토는 어떻게 도와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케이가 무사하기만을 빌며 상황을 지켜보는 수밖에는 없었다.

-철컥!

"으...으으으..."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케이가 고개를 천정 쪽으로 들어 올리더니 그 직후 그의 이마에 있던 컨트롤 메탈이 분해되기 시작했다! 컨트롤 메탈의 내부 부품 등이 차례대로 밖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




"아! 메탈이..!!"

상황실에 있던 사람들도 공황상태에 빠졌다. 특히나 가이버에 대해 잘 알고 있던 스쿨드는 크게 당황해하고 있었다. 가이버에게 있어서 컨트롤 메탈은 가장 중요한 부분, 급소다. 그것이 만약 분해돼 버리게 된다면 식장자는 강식장갑에게 먹혀버리고 마는 것이다!

"언니! 케이를 빨리 구하지 않으면 위험해!!"

"스쿨드! 설마!"

"저대로 내버려 두면 케이는 죽는단 말이야!"

"아..안돼! 케이씨!!"

그 말을 들은 베르단디는 서둘러서 주머니에 있던 콤팩트를 꺼냈다.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유적 우주선 안으로 공간이동을 시도하려는 것이다. 벽면에 거울 비슷한 것들이 잔뜩 붙어 있으니 들어갈 수는 있을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지로가 화면을 보며 아키토에게 다급하게 무전을 날렸다.

"마키시마! 뭐하고 있어! 빨리 케이를 구해줘!!"

그러나 마키시마는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지로가 다시 한 번 재촉하려는 순간 아키토가 먼저 무전을 날려 왔다.

-"진정하세요, 선배. 아무래도 그런 걱정은 안 해도 될 거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울드는 황급히 공간이동을 시도하려던 베르단디를 말렸다. 아키토의 말대로 상황이 어딘가 좀 이상했다. 컨트롤 메탈이 정말 부서진 거라면 강식장갑은 지금쯤 벌써 해방돼서 케이의 몸을 침식해 들어가야 하는데 아직까지 케이의 몸에는 아무런 변화가 보이질 않았다. 오다기리 역시 아키토의 생각과 같았다. 그는 손수건으로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내며 말했다.

"아무래도 저건 유적의 함정 같은 건 아닌 거 같습니다. 다들 저걸 보세요."

오다기리는 모두에게 설명하였다. 지금 빛의 구는 바닥과 천정에 있는 금속구의 정 중앙에 생성돼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아주 가느다란 빛이 마치 실처럼 위아래의 금속구와 연결돼 있었다. 저 모양은 마치 양쪽 금속구 사이를 저 빛의 구가 연결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리고 케이는 바로 그 중심에 위치해 있고 말이다. 바로 저것이 유적의 메인 시스템과 접속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그럼 케이씨는 무사하신 건가요?"

"글쎄요...일단 겉보기에는 괜찮아 보이긴 합니다만..."

그러나 유적의 메인 시스템과 접속되게 되면 식장자에게 어떤 영향이 가는지에 대한 데이터가 전혀 없었으니 오다기리로서도 속단할 수는 없었다. 저건 인류가 만든 게 아니라 바로 까마득히 먼 옛날에 강림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러므로 인류가 만든 컴퓨터처럼 간단하게 접속될 것이라 볼 수는 없었다.

화면에 보이는 케이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아마도 빛의 구에 끌려들어가면서 그만 정신을 잃은 것 같아 보였다. 이들은 초조하게 화면을 바라보며 케이가 다시 의식을 회복하기만을 빌었다. 베르단디는 두 손을 꼭 모아 쥐며 간절히 빌었다.

'케이씨...! 제발 무사하세요!'




 
******************************************





'여기는....?'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았다. 케이는 지금 어떤 어두운 공간에 있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일까?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케이의 눈앞에 갑자기 어떤 영상이 펼쳐졌다. 깜짝 놀란 케이는 숨죽이며 그 영상을 주시하였다.

먼저 우주의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우주 저편에서 아주 많은 숫자의 우주선들이 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우주선들은 앞부분이 유적기지 최하층에서 봤던 유적 우주선과 많이 닮아 있었다. 지금 보이는 우주선들은 타원형으로 생긴 모습에 무슨 안테나 같은 것이 뒤쪽으로 달려있는 모습이었다. 마치 계란 뒤쪽에다가 바늘을 꽃아둔 모습이랄까? 유적 기지 최하층에 자리 잡고 있는 유적 우주선은 지면에 반쯤 묻혀있어서 전체 윤곽을 본 적은 없었다. 아마도 유적 우주선의 원래 모양은 저렇게 생긴 것 같았다.

그 우주선들은 태양계 내를 날고 있었다. 토성, 목성, 화성을 지나 그들은 마침내 지구라고 생각되는 푸른색의 별에 착륙하였다. 곳곳에서 화산이 분출하고 하늘은 검은 구름으로 뒤덮여 있으며 대지에는 생명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원시 지구, 강림자들은 그런 별의 곳곳에 착륙하였다.

그리고 뒤이어 다른 영상이 나오기 시작했다. 먼저 아메바 비슷한 아주 작은 미생물이 나왔다. 그러다가 이윽고 그것은 제대로 된 형태를 가진 물고기 비슷한 것이 되었다. 옛날 생물도감 같은 데서 봤었던 원시 생물의 상상도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그것은 좀 더 확실한 물고기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것이 뭍으로 나오면서 그 지느러미는 발이 되었다. 뭍으로 나온 생명들은 좀 더 거대한 덩치의 도마뱀 비슷한 것으로 변했다. 그러다가 그것이 더욱 더 커지면서 케이도 익히 잘 알고 있는 공룡의 모습으로 변해갔다.

그 순간 공룡의 모습들이 한 순간에 자취를 감추고 그 자리에는 포유류들이 나타났다. 흔히들 잘 아는 매머드라든지 현대의 사자나 표범 비슷한 맹수들이 활개치고 다니고 소처럼 생긴 좀 순해 보이는 동물들의 무리도 보였다. 그러다가 드디어 인간이 나왔다. 비록 겉모습만 봐서는 지금의 원숭이랑 거의 구별이 안가는 모습들이었지만 돌멩이를 들고 다니면서 짐승을 사냥하고 무슨 도구처럼 쓰는 모습은 틀림없이 인간의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그 원숭이들은 좀 더 진화해서 현재의 인류와 많이 비슷해져 갔다.

여기까지 본 케이는 비로소 이게 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틀림없이 강림자들의 생명창조의 기록이었다. 무라카미는 말했었다. 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강림자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그들의 목표는 궁극의 생체병기를 만들기 위한 베이스가 돼 줄 수 있는 소재. 이 지구상에서 번성했고 또한 사라져갔던 여러 생물들은 바로 그것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던 도중 나왔던 생물체들인 것이다. 이 영상은 강림자들의 연구 과정을 함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윽고 한 무리의 괴물들이 영상에 나왔다. 바로 조아노이드들이었다. 인류라는 높은 범용성을 가진 소재가 탄생하자 강림자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들이 생각하던 생체 병기를 만들어내었다. 그것이 바로 조아노이드.

그 때 영상에 다른 무언가가 나타났다.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사람이 아니었다. 약간 녹색 비슷한 갑옷을 입은 모습은 케이에겐 상당히 낯익었다. 그리고 그의 이마에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은빛의 금속구.... 케이는 비로소 저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저건....가이버!'

저 모습은 틀림없이 가이버였다. 케이는 그 순간 무라카미가 해줬던 얘기가 떠올랐다. 그 옛날 강림자들이 단순한 호기심 차원에서 인류에게 강식장갑을 입혀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식장체는 놀랍게도 강림자들의 정신지배에서 해방되었다. 강림자들은 전혀 통제가 불가능한 인류의 식장체를 '규격외품', 그들의 언어로 '가이버'라고 불렀다. 지금 이 영상은 그 때의 상황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이 인류 최초의 가이버는 강림자들이 식장했을 때보다도 더 높은 능력 증폭치를 기록했다. 기록 영상에선 최초의 가이버와 다수의 조아노이드의 전투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조아노이드들은 그 압도적 수적 우세를 바탕으로 파상 공세를 가했지만 가이버를 전혀 당해내지 못했다. 그야말로 추풍낙엽 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다른 영상이 상영되기 시작했다. 그 가이버를 누군가가 어떤 기계 장치 같은 것으로 겨누는 장면이 나왔다. 이윽고 그 장치에서 강렬한 빛이 발사되었다. 그리고 가이버는 그 빛에 정통으로 쏘였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강식장갑이 저절로 벗겨지더니만 다시 원래의 유니트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케이는 크게 놀랐다. 저건 식장을 잠깐 해제시키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해방되기 이전의 원 유니트 상태로 돌려버린 것이다. 도대체 그 물체가 뭐길래 저런 게 가능하단 말인가!

'케이씨...!'

그 때 어디선가 희미하게 베르단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르단디? 어째서 지금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지?

'케이씨!'

베르단디의 목소리가 점점 더 강하게 들려왔다. 그러자 갑자기 지금까지 상영되던 영상이 끊어졌다. 그 직후 케이의 눈앞이 굉장히 환해졌다. 케이는 잠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




-"케이씨!! 무사하세요?"

"...베르단디?"

-"다행이야! 무사하셨군요!"

"으..응.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난 괜찮아."

무전기에서 베르단디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아마도 아까 그 영상을 보던 도중 베르단디의 외침 덕분에 정신이 든 것 같았다. 케이는 잠시 상황 파악이 안 되는 듯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내 케이는 자기가 지금 유적 우주선의 메인 브릿지안의 금속구들이 생성시킨 빛의 구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까 그 빛속으로 빨려 들어간 직후 잠시 정신을 잃었던 것 같았다. 도대체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을까. 그 때 오다기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말 들리나? 케이군!"

"오다기리 주임님, 죄..죄송합니다. 전 지금 뭐가 뭔지..."

-괜찮으니까 우선 내 말부터 잘 듣게, 케이군."

오다기리는 다급한 목소리로 설명하였다.

-"현재 자네는 유적 우주선의 메인 시스템에 접속돼 있는 것 같아."

"제...제가요?"

그 옛날 강림자들은 아마도 지금의 케이와 마찬가지의 방식으로 유적을 조종했을 것이다. 강식장갑과 식장자의 두뇌가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적 우주선 역시 식장자의 정신과 직접 연결돼서 작동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상당히 특이한 시스템이지만 현재 인간의 기술 중에도 뇌파만으로 기계를 움직이는 기술이 있으므로 아주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다. 따라서 지금의 우주선은 케이의 통제 하에 놓여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바로 그것을 시험해 봐야 했다.

-"그러니까 시험 삼아서 지금 유적의 진동을 멈춰보지 않겠나? 이대로 가면 이곳 최하층은 붕괴돼 버릴 꺼야."

오다기리의 말대로 이 상태로 진동이 계속되면 정말 이곳 최하층이 무너져 내릴지도 몰랐다. 지금 이 순간에도 최하층부의 벽면 곳곳이 쩍쩍 갈라져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케이는 짧게 심호흡을 한 후에 말했다.

"예, 한번 해보겠습니다!"

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자신감이 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해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이 우주선이야 말로 모두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모두를 위해.... 그리고 베르단디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 우주선을 조종해내 보이겠어! 케이는 의지를 굳게 다지며 의식을 집중하였다. 곧 그의 이마에 있는 컨트롤 메탈이 그런 케이의 의지에 호응하듯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우주선이여, 진동을 멈춰라!'

-키이잉!

그러자 잠시 후 격렬하게 진동하던 유적 우주선이 거짓말처럼 잠잠해졌다. 결국 케이가 유적 우주선을 손에 넣은 것이다!

-"와아아!!"

-"해냈다! 해냈어!!"

-"최고다! 케이, 넌 최고야!"

상황실에 있던 사람들의 환호성이 무전기를 통해서 들려왔다. 우주선의 컨트롤에 성공한 케이의 마음은 환희로 벅차올랐다. 이제 정말 반격의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케이는 똑똑히 느끼고 있었다. 이 우주선의 에너지 흐름, 그리고 신경의 분포 등등... 우주선의 모든 것이 똑똑히 보였다. 그리고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우주선 전체가 자신의 육체가 된 것만 같았다.

'틀림없어.... 난 지금 이 우주선의 두뇌가 된 거야!'







Next episode 제22화 '혼란의 유적기지' coming soon.....



p.s : 이번 화는 설정을 올려야 하는데 설정 게시판에 글을 올릴수가 없네요. 게시물 보는 것 조차 안돼고....orz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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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더경님의 댓글

베이더경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호오오!! 건필!! [잘 읽고 있습니다.!!]

저도 오늘 올리기는 했는데...글 곳곳이 틀린 부분이 있더군요.[오타.]

내일 쓸 때는 좀 더 만전을 기해야 될 것같다는. 건필하세요!! [역시 스쿨드의 발명품은 위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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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버님의 댓글

가이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스쿨드의 발명품은 위대하긴 한데... 곧잘 이상한 방향으로 폭주해 버린다는게 문제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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