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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제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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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식장갑 가이버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

                                            제17화 - 부활하라! 가이버 I -




케이와 베르단디, 핫세는 서둘러 일행들이 있던 자리로 달려갔다. 가보니 언덕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상당히 강력한 폭발이었던 듯 언덕 전체가 마치 케이크 잘리듯이 깨끗하게 잘려나가 있었다. 언덕
아래쪽에서는 아직도 흰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케이들은 그 곳에서 당황한 채로 깎여나간 언덕 아래쪽
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기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거라면 울드와 스쿨드, 린드, 그리고 무라카미와 아키토,
지로 선배와 시즈와 요헤이 모두는 전부 다 어떻게 된 거란 말인가.

"서...선배!!"

그 때 핫세가 뭔가를 본 듯 겁에 질린 표정으로 케이에게 말했다. 깜짝 놀란 베르단디와 케이는 황급히 핫
세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 자리에 누군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키가 3m는 족히 될듯
굉장히 거대했는데 그 모습은 인간과는 동떨어져 보였다. 그렇다면 조아노이드?

-슈우우

그 때 그 괴물의 몸에서 흰 연기가 뿜어져 나오면서 크기가 점점 줄어들었다. 동시에 전체적인 형태가 괴물
의 모습에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윽고 그것은 완전한 인간의 모습이 되었다. 그의 얼굴을
본 케이와 베르단디는 깜짝 놀랐다. 머리가 엉망으로 헝클어져 있고 얼굴도 상당히 초췌해 보였지만 확실히
알아볼 수 있었다. 리헐트 규오였다! 하필이면 여기서 규오를 만나다니! 일이 꼬여도 이렇게 꼬일 수가 있
을까. 케이는 잔뜩 긴장하였다. 그때였다.

"으으으...."

-털썩!

갑자기 규오가 힘없이 앞으로 쓰러졌다. 케이들은 규오가 갑자기 왜 저러는지 알지 못해서 당황해 하고 있
었다.

"왜...왜 저러지?"

"글쎄요...하지만 죽은 건 아니에요. 살아있다는 것이 느껴져요."

그 때 케이는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다. 언덕이 뭔가 엄청난 힘에 의해 이렇게 완전히 박살났고 그 자리에
와보니 규오가 탈진한 상태로 있다. 그렇다면 이 무지막지한 광경은 규오가 한 짓이란 말인가? 설마 모두들
다 규오의 손에 의해....

-투투투투!!

그 때 바람결에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케이들은 잠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케이는 그 소리
의 정체를 금방 깨달았다. 이건 헬리콥터 소리였다. 그것도 소리가 점점 커지는 게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저 헬기는...

"크로노스야!! 빨리 여기서 도망치자!"




******************************************




규오가 전투를 한 지점에 대형 헬리콥터 두 대가 착륙하였다. 이윽고 헬기의 후부 램프가 열리자 그 안에서
많은 수의 크로노스 전투원들이 내렸다. 그리고 이들 바로 뒤에 이들을 지휘할 목적으로 하이퍼 조아노이드
5인중 - 장크르스가 전사하는 바람에 지금은 4인중이 됐지만 - 일당이 내렸다. 이들은 내리자 마자 쓰러져
있는 규오에게 달려갔다.

"각하께서는 어떠신가?"

"예, 생명에는 지장이 없으십니다. 돌아가서 치료를 받으시면 완쾌되실 겁니다."

같이 따라온 의료진들이 쓰러진 규오의 상태를 살폈다. 규오는 힘을 많이 써서 탈진상태였지만 생명에는 지
장이 없는 수준이었다. 돌아가서 간단한 치료와 함께 당분간 요양하면 금방 회복될 것이었다. 의료진의 보
고에 젝토올은 잘됐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서 젝토올은 데리고 온 부대를 둘로 나누었다. A조는 이 근방을 수색해서 전투 현장에서 벗어난 것으
로 보고된 가이버 I 과 여신 한 명을 체포하고 B조는 이곳에 남아서 조아노이드로 변신 후 잔해를 파헤치
면서 가이버 III 와 프로토 조아로드의 생사를 확인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리고 젝토올 본인을 비롯한 4인중
멤버는 여기 남아서 만약 가이버 III 나 그 프로토 조아로드가 살아있으면 자신들이 나서서 처리하기로 하
였다. 젝토올의 명령이 떨어지자 전투원들이 각자 맡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흩어졌다.

"하지만 젝토올. 규오 각하의 이 무시무시한 공격을 받은 그 녀석들이 살아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B조가 조아노이드로 변신해서는 잔해를 파헤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다젤브가 젝토올에게 굳이 확인
할 필요가 있냐며 물었다. 젝토올 역시 그 생각에는 어느 정도 동의하고 있었다. 솔직히 조아로드의 혼신의
일격을 먹은 녀석들이 살아있는건 고사하고 그 시신이나 온전히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뭐, 그래도 확인은 해 봐야지. 장크루스 같은 일이 또 안 일어나려면...."

장크루스 얘기가 나오자 모두들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그 죽일 놈의 가이버 III 때문에 자신들의 친구가 비
명에 갔으니까 당연한 반응이었다. 젝토올 말대로 또 그때의 전철을 안 밟으려면 철저히 확인을 해 봐야 했
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라하지 않았던가.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그런데, 여기서 현장을 감시하고 있다던 그 손종실험체 녀석은 어찌 된 거야?"

"앱톱이란 녀석 말이야?"

엘레겐의 물음에 다들 똑같은 의문을 품게 되었다. 부상에서 회복된 앱톰은 닥터 발카스의 명령을 받아서
여기서 규오 각하의 전투현장을 지켜보라는 명령을 받았었다. 최초에 이곳에 숨어있던 가이버 일당을 찾아
낸 것도 앱톰이었다. 그런데 그 녀석은 지금 대체 어딨는걸까? 일이 다 끝난 줄 알았으면 진작에 모습을 드
러내서 자기들과 합류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내버려둬. 그 딴 실험동물 녀석. 뭐, 규오각하의 공격에 그만 휘말려서 뒈졌나 보지."

다젤브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긴, 그 딴 실패작 있으나 마나 이니까 상관은 없다. 앱톰 얘기가 나
오자 다들 그의 뒷담화를 까기 시작했다.

"닥터 발카스도 참 이해할 수 없는 분이라니까. 왜 그 딴 실패작 따위에 신경 쓰시는 걸까?"

가이버 I 과의 전투에서 왼팔을 잃고 돌아온 앱톰은 치료를 받음과 동시에 닥터 발카스의 주도하에 다시 제
조제를 받았다. 상황에 맞춰 자신의 몸을 자유자제로 바꾸는 만능형이라는 컨셉에 발카스가 흥미를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나중에 자신이 한 번 그 컨셉에 도전해 보려는 생각으로 이미 그런 시도를 했었던 앱톰을
이용해서 여러 가지 실험을 했던 것이다. 물론 그 실험으로 인해 앱톰은 이제 별도의 수신기 없이는 조아로
드의 사념파를 수신할 수가 없게 되었다. 능력 자체도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한마디로 상태가 더 나빠진
것이다.

"뭐 어때. 그런 실험동물이라도 닥터 발카스의 연구에 도움이 된다면 어느 정도 쓸모는 있는 거야."

"그럼그럼, 애초에 손종실험체라는 것들은 불량품이니까 그런 면으로밖에는 못쓴다고."

이들은 무료한지 앱톰을 비롯한 손종실험체들의 험담을 나누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긍지 높은 최강의
하이퍼 조아노이드 집단인 이들의 눈에는 손종실험체 처럼 실패작의 낙인이 찍힌 녀석들은 그저 쓰레기일
뿐이었다. 아니 사실상 모든 정규 조아노이드 들이 이들처럼 앱톰과 같은 손종실험체들을 멸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근처에 있는 커다란 나무 위에서 자신들을 빤히 지켜보고 있는 눈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왼뺨에 커다란 흉터가 나 있던 그는 이들의 대화를 모두 다 듣고 있었다. 이윽고 그는 머리에 쓰고
있던 수신기를 벗어서 나무 가지 위에 올려놓고는 어딘 가로 빠르게 사라져갔다.




******************************************




"어때, 찾았어?"

"아니, 전혀."

A조는 곧 2~3명 단위로 흩어져서 전투가 벌어졌던 현장 주변의 숲을 이잡듯이 뒤지고 있었다. 도망친 것으
로 확인된 가이버 I 과 여신 한 명을 찾는 것이 이들의 임무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이렇다할 흔적조차 찾지 못했다.

'.....안되겠어, 이대로는 위험해!'

케이와 베르단디, 핫세는 풀숲에 숨어있었다. 주변에 크로노스의 전투원들이 쫙 깔린 상태라서 함부로 움직
일 수가 없었다. 지금 함부로 움직이면 반드시 들키고 말 것이다. 움직이려면 밤이 되어서 주변이 어두워져
야 하는데 그 때 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이런 풀숲에 숨어있어봐야 들키는 건 시간
문제였다.

"이봐, 출격전에 들었던 브리핑이 정말일까?"

"아, 가이버 I 이 식장을 못하게 됬다는거 말이야?"

풀숲에 숨어있는 케이들의 귀에 공작원들이 나누는 대화가 들려왔다. 이들은 케이가 가이버로 변신할 수 없
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간단한 일이야, 가이버 I 은 변신불능, 가이버 III 일당은 규오 각하께서 해치우셨으니 방해할 놈은 없어."

그 말에 숨어있던 모두가 크게 놀랐다. 결국 모두들 규오에게 당하고 만 것이다. 베르단디의 안색은 특히
더 창백해 졌다. 울드랑 스쿨드도 당하고 말았다는 생각에 그녀는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케이는 베르단디
의 손을 꼭 쥐어줬다. 주변에 적들이 있기 때문에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케이는 베르단디에게 모두들 반드
시 살아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안심하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런 케이의 마음을 알았는지 베르단디는 살
며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찾았다! 여기 있다!!"

그 순간 케이들의 등 뒤쪽 방향을 뒤지던 전투원 한 명이 케이들을 찾아내고야 말았다. 케이들은 서둘러 수
풀을 빠져나와서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주변에 있던 전투원들이 케이들을 쫓아오고 있었다.

"크아아아!!!'

짐승의 포효 소리가 들리자 케이가 뒤를 돌아보았다. 전투 공작원들이 조아노이드로 변신해서 케이들을 쫓
아오고 있었다. 덩치가 커졌음에도 이들의 동작은 오히려 더 날쌔졌다. 순식간에 전투원들이 케이들의 바로
뒤에까지 따라붙었다.

"나의 이름은 베르단디! 바람이여!! 그대의 힘을!"

-후아앙!!

베르단디가 황급히 법술을 외웠다. 곧이어 맹렬한 바람이 불어오더니 바짝 쫓아오던 조아노이드들을 뒤로
밀어버렸다. 갑작스러운 강풍에 조아노이드들이 뒤로 날려갔다. 바람 때문에 넘어진 조아노이드들은 잠시
숲에서 웬 바람이 이렇게 부냐고 어리둥절해 했다. 그러다가 그들은 비로소 생각해내었다. 출격전 브리핑에
는 가이버 I 과 함께 천상계의 여신도 한 명 있으니 조심하라는 얘기도 들었었다. 그렇다면 아까의 바람은
저 여신이 일으킨 마법 같은 걸까?

"흥! 바람 정도로 우리가 죽을까 보냐!"

그러나 뒤로 밀려났다는 것 빼고는 별다른 충격도 없었기에 이들은 곧 안심하였다. 여신이라 해도 역시 별
거 아니었다. 조아노이드들이 다시 추격을 재개했다.

"서...선배!! 또 쫓아와요!!"

핫세가 비명을 질렀다. 베르단디가 그 자리에 멈춰 서서는 좀 더 강력한 공격 법술을 준비하였다. 그녀는
상대가 누구건 간에 공격법술을 쓰는 걸 내켜하질 않았다. 원래 천성이 너무나 착해서 남을 해치는 공격 법
술은 좋아하질 않았지만 지금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녀의 등에서 홀리 벨이 나와서 같이 법술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케...케이 선배!! 베...베르단디 선배 등에서 뭔가가!"

"아? 홀리 벨 말이야?"

아니 그러니까 이름 말고 저게 대체 뭐냐고요, 핫세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그 순간 베르단디가 머리 위
로 양팔을 교차해서는 높히 올렸다. 그리고는 힘껏 아래로 내리쳤다.

"크로스! 윈드 블레이드!!"

-키이잉!!

그 순간 베르단디의 손에서 강력한 바람의 칼날이 발사되었다. 그 칼날은 이쪽으로 달려오던 조아노이드 무
리의 선두에 있던 녀석에게 제대로 명중하였다.

-촤악!!

"꾸애액!!"

칼날을 정통으로 맞은 조아노이드의 상체에 십자 모양의 커다란 상처가 났다. 그 상처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 조아노이드는 고통스러운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베르단디는 깜짝 놀랐다. 지금 수준에
서는 상당히 강력한 공격이었는데도 조아노이드가 죽지 않은 것이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약해져서 위력이
떨어진 걸까. 아무튼 일단 한 녀석은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동료의 피를 본 다른 조아노이드들
이 흥분하기 시작했다는 게 문제였다.

"이...이년이!!"

"용서 못해!!"

조아노이드 네다섯 마리를 한꺼번에 상대하는 건 힘들겠다고 판단한 베르단디가 다른 법술을 외우기 시작
했다. 그녀의 몸 주위가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저대로 내버려두면 위험하다고 판단한 조아노이드
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무의 정령들이여, 나의 이름은 베르단디. 그대들의 아름다운 가지를 움직여 우리를 지켜다오!"

법술 영창이 끝나자 갑자기 주위에 있던 나뭇가지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조아노이드들에게 달려
들어서는 그들의 팔과 다리를 칭칭 감았다. 나뭇가지와 넝쿨에 감긴 조아노이드들이 그걸 풀기 위해 안간힘
을 썼다.

"역시 베르단디! 최고야!!"

케이는 베르단디의 법술에 진심으로 감탄하였다. 그러나 베르단디의 얼굴은 여전히 잔뜩 굳은 표정이었다.
그녀는 다급하게 말했다.

"얼마 버티질 못해요! 빨리 여길 벗어나지 못하면!!'

-투둑!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조아노이드들이 나무가지를 부러트리기 시작했다. 잠시 막는데는 성공했지만 단
지 그뿐이었다. 깜짝 놀란 케이들이 다시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그 때 그들의 바로 앞을 또 다른 조아노이드가 가로막았다. 깜짝 놀란 핫세가 비명을 지를 때 베르단디가
다시 한번 공격 법술을 구사하였다.

"바람의 프레스!!"

베르단디가 양손을 모으자 그녀의 손에 주변에 있던 공기가 압축되기 시작했다. 베르단디가 그렇게 준비한
압축 공기탄을 바로 앞의 조아노이드에게 발사하였다.

-퍼어엉!!

"쿠악!!"

공기의 폭발로 인해 그 조아노이드는 뒤로 몇 미터나 날려가서는 나무에 부딪혔다. 그 충격으로 나무가 부
러질 정도였다. 앞이 뚫리자 케이들이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케이는 달리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그
의 눈에 그 자리에 주저앉은 베르단디가 보였다. 깜짝 놀란 케이는 서둘러 베르단디에게 다시 돌아왔다.

"베르단디!!"

"저...전 괜찮아요..."

그러나 조금도 괜찮아 보이질 않았다. 숨소리도 거칠었고 땀도 비오듯 흘리고 있었다. 연속으로 강력한 법
술을 구사하는 바람에 체력이 순식간에 고갈된 것이다. 원래 일급신인 그녀에게는 이 정도의 능력이야 별것
아니었지만 지상계에 머무는 동안에는 힘을 억제하는 봉인구를 착용하고 있어야 했기 때문에 -베르단디의
경우에는 귀걸이- 사용할 수 있는 힘이 제한돼 있었다. 그래서 맘껏 싸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상대는 법술
공격에 강한 저항성을 가지고 있는 조아노이드. 그것도 한 두마리도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의 베르단디 혼자
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케이는 베르단디를 부축해서는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크아악!!"

그러나 얼마 못 가 다시 따라 잡히고 말았다. 이번엔 조아노이드 들이 사방을 포위해서 빠져나갈 틈이 없었
다. 베르단디는 이젠 서 있는 것도 힘겨운지 연신 숨을 크게 몰아쉬고 있었다. 더 이상 법술을 구사하는 것
은 무리였다. 그 모습을 본 케이는 핫세에게 베르단디를 부축하게 한 다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그리고 큰
소리로 외쳤다.

"가이버어어어!!!!!"

"으힉!!"

조아노이드 들이 케이가 가이버로 변신하려고 하자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아무런 일도 안 일
어나자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조아노이드 들이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포위망을 좁혀왔다.

"어...어째서!!"

케이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역시 이번에도 가이버는 나타나질 않았다. 지금 변신하지 않으면 베르단
디와 핫세를 지켜줄 수가 없는데 어째서 나타나질 않는단 말인가! 조아노이드들이 일제히 케이에게 달려들
었다.

"단념해라! 이 애송아!!"

-퍼엉!!!

그 때 엄청난 섬광이 조아노이드 들을 덮쳤다. 빔의 홍수에 휩쓸린 조아노이드들은 순식간에 소멸돼 버렸
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놀랐다. 그리고 모두가 빔이 날아온 방향을 처다 보았다. 빔
으로 인해 발생한 흙먼지 때문에 시야가 흐렸지만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잠시 후
연기가 좀 가라앉아서 시야가 확실해 지자 다들 크게 놀랐다. 조아노이드들이 경악해서는 뒤로 주춤거렸다.

"가...가이버 III ?!!"

"마키시마 선배!"

놀랍게도 빔을 날린 건 가이버 III 였다. 규오의 중력공격에 죽은 줄만 알았던 가이버 III 가 멀쩡히 살아있
자 조아노이드 들은 공포에 질렸다. 반면 케이와 베르단디, 핫세는 정말 기뻤다. 다행히도 아키토는 그 와중
에도 살아있었던 것이다. 가이버 III 가 케이들 바로 앞에서 조아노이드 들을 막아섰다.

"그 4인중 놈들이 오면 골치 아파. 여긴 내게 맡기고 너흰 어서 피해."

"마키시마 선배. 하지만..."

"어서!"

가이버 III 가 강한 어조로 말하자 케이는 더 말할 수가 없었다. 하긴 자기는 현재 가이버로 변신이 안되니
있어봐야 별 도움은 안됐다. 그는 잔뜩 지친 베르단디를 업고는 핫세와 함께 서둘러 그 자리를 빠져나갔다.
케이들이 빠져나가는 동안 가이버 III 는 조아노이드 들을 기백으로 압도하며 그 자리에 꼼짝 않고 서 있었
다. 조아노이드 들은 가이버 III 때문에 케이들을 뒤쫓지 못했다. 케이들이 멀리 갔다고 판단한 가이버 III
가 조아노이드 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에게 모리사토 케이를 넘겨줄 수는 없다."

"뭐라고....!"

"왜냐하면....녀석은 내 사냥감이니까."





******************************************





"역시 총사령관 각하십니다. 회복속도가 아주 빠르신 데요."

유적기지내의 간부전용 의무실로 옮겨진 규오는 그곳에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다행히도 규오의 부상은
그리 크지 않아서 이대로 안정만 취하면 내일쯤에는 정상적으로 활동할 수 있다고 의료진이 진단을 내렸다.

침대에 누운채로 규오는 그 때 전투당시 일을 회상하였다. 확실히 가이버의 메가 스매셔는 가공할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워낙 갑작스럽게 당했다고는 하지만 그 때 규오는 분명 최대 출력의 바리어를 펼쳤었다. 그
런데 메가 스매셔의 빔은 바리어를 뚫고 자신에게 데미지를 줬었다. 그나마 바리어 덕에 스매셔의 위력이
반감돼서 이 정도지 만약 제대로 맞았다면 자신은 틀림없이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뭐 이젠 상관없다. 좀 고생하긴 했지만 어쨌든 그 위험한 프로토 조아로드 녀석이랑 가이버 III 를
해치워버렸으니 한 짐 덜게 되었다. 남은 건 트라우마로 인해 식장이 불가능해진 가이버 I, 모리사토 케이
녀석을 잡아오기만 하면 됐다. 그리고 나서....

"닥터 발카스 께서 오셨습니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간호원이 규오에게 발카스의 방문을 알렸다. 발카스가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참으로 터무니없는 짓을 했더군. 설마 자네가 직접 나설 줄이야."

"하하, 죄송합니다. 아무 말도 없이 나가서."

발카스는 태연하게 말했지만 그는 이미 규오의 의중을 간파하였다. 처음엔 확신이 서질 않아서 이렇다할 행
동을 취하지 못했지만 아까 녀석이 아무 말도 없이 직접 그 무라카미라는 실험체를 처리하러 나간 것을 보
고 발카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이 남자의 어리석은 야망을.... 하지만 일단 자기 혼자서는 수를 쓸 수가
없다. 일단은 다른 신장 멤버들이 올 때까지는 시간을 벌어야 했다. 우선은 표정관리를 하면서 기왕이면 좀
더 확실한 증거를 포착해야 했다.

"한참 조제 중이던 엔자임 II 두마리를 억지로 끌고 나갔더군."

"죄송합니다. 그만 두 마리다 망치고 말았습니다."

"변신한지 얼마 안돼서 스스로 자멸해 버리고 말았지? 아직은 일주일 정도 더 조정을 해야 하는 것들이었
어."

최초에 사용했던 엔자임 II 네 마리 이외에는 준비된 엔자임들이 없었으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 만
들었던 프로토타입 네마리는 즉시 써먹어야 하니까 발카스로서도 서둘러서 만든 거지만 그 후에 만들 녀석
들은 두고두고 써먹어야 했기 때문에 절차대로 차근차근 만들고 있었다. 그래서 조제기간이 그렇게 긴 것이
었다. 규오는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도 그 골칫거리 가이버 III 와 실험체 녀석을 말살했으니 된 거 아닙니까."

그런데 발카스는 별로 기뻐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왠지 탐탁찮은 표정이었다. 잠깐 수염을 매만지던
그는 규오에게 충격적인 말을 하였다.

"그 가이버 III 녀석 말인데.... 아까 4인중에게서 보고가 들어왔네."

"네?"

"녀석이 살아있다더군."

"뭐라고요!!"

규오는 경악하였다. 자신이 온 힘을 다해 가한 그 공격을 받고도 녀석이 살아있단 말인가!




******************************************




"베르단디 선배, 괜찮으세요?"

"네...전 괜찮아요..."

한참을 달린 케이들은 우연히 발견한 동굴 안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물론 이런 동굴 안에 숨어있다고 크로
노스 놈들이 못찾을리는 없었다. 가능한 한 빨리 이 지역을 벗어나야 했지만 베르단디가 너무나 힘겨워 했
기 때문에 더 갈 수가 없었다. 아까부터 조아노이드들을 상대하느라 무리하게 법술을 구사한 베르단디는 힘
이 다 빠졌는지 안색이 창백하기까지 했다. 당장이라도 베르단디는 푹 잠을 자서 체력을 보충해야 했지만
지금 당장 조아노이드와 싸울 수 있는 사람은 베르단디 뿐이므로 편히 잘 수가 없었다. 억지로 잠을 쫓으려
노력하는 그녀를 보면서 케이는 심한 무력감을 느꼈다. 지금이야말로 가이버가 필요한 시기인데....

"그래도 다행이에요. 마키시마 씨가 살아 계셔서...."

베르단디는 아키토가 살아있어서 정말 기뻤다. 그렇다는 것은 울드나 스쿨드,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살아있
을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아마도 다들 지금쯤 어딘가에 숨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러나 케이는 왠지 석연치 않았다. 아까는 경황이 없어서 미처 몰랐지만 분명히 그 때 봤던 아키토는 어딘가
좀 달라 보였다. 겉모습은 틀림없이 가이버 III 가 맞지만 왠지 다른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고나 할까....

"베르단디...."

"네?"

"나 좀 도와줄래? 어떻게 해서든 난 가이버의 힘을 되찾아야 해. 지금 당장."

아키토 문제는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 지금 당장은 가이버를 식장할 수 없는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야 했다.
케이는 그 자리에서 웃옷을 벗었다. 그러자 핫세가 기겁하며 고개를 돌렸다.

"에?! 서..선배..!!"

핫세의 반응은 개의치 않고 케이는 웃옷을 벗은 다음 등을 돌렸다. 그리고는 손으로 자기 어깨 부근에 나있
는 부스럼을 가리켰다. 베르단디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서는 그 부스럼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일전에 자기
가 법술로 치료하려다 결국은 못했던 그 부스럼이었다.

"전에 스쿨드랑 의논을 해 봤었는데....이 등의 부스럼은 아마도 강식장갑을 부르는 일종의 호출기 같은 기
능을 하는 것 같애."

"아..그랬군요. 그래서 법술이 안 통했던 걸까요?"

"아마 그럴꺼야. 문제는 이게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내가 아직 강식장갑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의미한다는 거지."

물론 강식장갑이 완전히 사라졌는데도 그 흔적만 남아있는 것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케이는 솔
직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 베르단디는 그 부스럼을 살며시 만져보며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케이가 윗통을 벗어붙였는데도 천연덕스럽게(?) 등을 매만지는 베르단디를 보며 핫세는 온갖 망상의 나래를
펼쳤다. 보통 여자라면 (물론 베르단디는 여신이라지만) 저런 상황에서는 좀 부끄러워해야 정상 아닌가? 그
런데도 아무렇지도 않아 하는걸 보면 의외로 저 두사람 실은 갈데까지(?) 간 건지도..... 더 이상 참을 수 없
게 된 핫세가 소리쳤다.

"아..알겠으니까 선배! 옷 좀 입어요!!"

"에? 아...미, 미안!"

케이는 그제야 얼굴이 빨개진 체로 허둥대며 옷을 입었다. 베르단디는 그런 두사람의 반응을 이해 못하겠다
는 표정을 지었다. 옷을 입은 케이가 베르단디와 핫세를 향해 돌아앉았다.

"어쨌든 지금의 난 원인만 알게 되면 다시 가이버가 될 수 있을 것 같애."

"그렇다면... 어제 싸울 당시에 갑자기 갑옷이 벗겨진 상황부터 생각해 봐야 겠네요."

케이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가이버로 변신하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실제로 차안에
서 정신을 차린 후 밖으로 나와서 바로 식장을 했었으니까. 그런데 그 후 상대 조아노이드를 본 순간 갑자
기 식장이 풀린 것이다. 오늘 아침 얘기를 들으면서 그는 그 조아노이드가 엔자임 II 라는 이름이란 걸 알
았다. 엔자임.... 확실히 기억나는 이름이다. 그 때 대학 뒤편 호수가에서 자기는 바로 그런 이름을 가진 조
아노이드와 싸워서 패했었으니까. 강식장갑 분해효소를 가진 대 가이버용 조아노이드, 아마도 어제 녀석은
그 때 싸웠던 녀석의 발전형 인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게 가이버로 못되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

케이는 여전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어쨌든 그 엔자임 II 란 녀석을 본 순간부터 이런 것은 확실하다. 그렇
다는 것은 그 이전에 케이가 엔자임 II 와 마주친 적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언제 봤던 걸까.
뭔가 머리속이 뿌얬다. 뭔가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있는 듯한.....

"난....분명 그 녀석을 어제 처음 봤어. 하지만 왠지 그 이전에도 한번 마주친 적이 있는 것 같아. 하지만 잘
생각이 안나..."

"혹시...그저께 밤에 미나카미 산에 가셨을 때 보시지 않았나요?"

"미나카미 산? 거기는 왜?"

"그저께 가셨었잖아요. 케이마씨를 구하시러...."

그 순간 케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케이마씨? 내가 케이마씨를 구하러 갔었다? 그제야 생각났다. 며칠 전
에 케이는 분명 미나카미 산으로 갔었다. 납치된 베르단디들과 케이마씨를 구하러. 그리고 탈출 과정에서
자신은 공격을 받아 쓰러지고 케이마씨는 다시 녀석들에게 붙잡혀갔다. 그 후에 자신은 다른 사람들 몰래
아키토와 함께 미나카미 산으로 다시 잠입하였었다. 그리고 분명히 케이마씨를 구출해서 나왔는데.... 그 후
는? 아니 그것보다 어째서 지금까지 케이마씨 생각을 전혀 못하고 있던 거지?

"으으윽!!"

케이는 갑자기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 오기 시작했다. 케이는 머리를 감싸쥐며 괴로워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베르단디가 황급히 케이에게 다가갔다.

"케이씨! 왜 그러세요? 어디가 아프신 건가요?"

그러나 케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한동안 괴로워하던 케이는 그 자리에서 바닥에다가 토를 하기까지 했다.
케이의 상태가 이상해지자 핫세는 무서워서 벌벌 떨었고 베르단디는 케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법술을 시전
하려 하였다. 그 때 케이가 베르단디의 손을 잡아서 제지하였다.

"케이씨!"

"난...난 분명히 케이마씨를 구하러 갔었어...그래서 무사히 구출했었고...그런데...그런데 그 뒤가 생각이 안
나...."

그 말을 들은 베르단디는 깜짝 놀랐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케이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다는 뜻이 된다.
바로 그저께 일을 기억 못한다는 것은 그렇게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것도 사소한 일도 아니고 케이
마씨 일인데. 케이는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베르단디에게 말했다.

"베르단디...."

"네...."

"나한테 법술을 걸어서....기억을 되살려 줄 수 있어?"

물론 할 수 있다. 공격법술처럼 많은 힘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니까. 그러나 베르단디는 다른 이유로 법술
을 시전하는걸 망설였다. 그녀는 왠지 무서웠다. 기억을 되살리면 아주 무서운 사실을 알게 될 것만 같았다.
그래서 베르단디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케이는 그녀에게 다시 한번 부탁하였다.

"난...난 알고 싶어. 그 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케...케이씨, 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가르쳐줄까?"

그 때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세 사람은 황급히 고개를 돌려 동굴 입구 쪽을 바라보
았다. 그러자 그들의 눈에 가이버 III 의 모습이 보였다. 베르단디와 핫세가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마키시마 씨!"

"마키시마 선배!"

그러나 어쩐 일인지 가이버 III 는 식장을 풀지 않고 있었다. 주변에 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케이는 지금의 가이버 III 는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잠시 가이버 III 를 바라보던 케이는 그의
이마를 보고 결정적인 사실을 알아차렸다. 가이버라면 이마에 반드시 있어야 하는 컨트롤 메탈이....없다!!

"베르단디! 핫세! 물러서! 이녀석은 마키시마 선배가 아냐!!"

케이는 베르단디들을 막아서며 그 가짜 가이버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그 가짜가 웃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
에 그의 몸 여기저기서 수증기가 피어오르면서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다.

"후후후, 과연 단번에 간파해내는군. 하지만 이 모습으로 끝까지 널 속일 생각은 없었어."

이윽고 가이버의 모습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건장한 체격을 가진 인간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케이는 그
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 왼뺨에 있는 커다란 흉터,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모습이었다. 그 때 자신이
무라카미와 핫세와 함께 미나카미 산으로 처음 왔을 때 자신들을 공격했던 그 가짜 가이버 녀석이었다. 전
번의 가이버 변장은 어딘가 어설펐지만 이번에는 그야 말로 거의 완벽하게 가이버 III 의 겉모습을 흉내내
었다.

"넌 분명히 그 때의 가짜 가이버...."

"기억하고 있군. 그래, 난 네 녀석에게 당했던 솜룸, 다임과 함께 너에게 도전했던 로스트 넘버 코만도의 한
명, 앱톰이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생겼다. 아까 전에 조아노이드들에게 포위됬을때 케이들을 구해준 가이버 III 는 아무
래도 이 녀석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같은 편을 공격한 걸까?

"그런데 왜 네가 아까 우리를 구해준거지?"

케이의 물음에 앱톰은 코웃음을 쳤다.

"구해줘? 착각하지마. 난 내 사냥감을 딴 놈들이 가로채는게 싫었을 뿐이야."

"사냥감?"

"넌 솜룸과 다임의 원수니까. 반드시 내 손으로 널 죽이고 싶었다."

솜룸이란 녀석은 모르겠다. 하지만 다임이란 이름은 기억이 났다. 그 때 앱톰과 싸울 때 대지와 융합해서
케이를 공격하던 수수께기의 적, 그 때 분명히 앱톰은 그를 다임이라 불렀다. 그렇다면 앱톰의 목표는 그들
의 복수란 말인가. 앱톰이 비릿한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넌 미나카미 산에서 네 아비를 구출해 나왔을 때 겪은 어떤 사건으로 인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어.
그래서 식장이 불가능한 거야."

"대체.... 무슨 사건이지?"

"후후...말해주는거야 어렵지 않다만 정말 괜찮겠냐? 지금도 이모양인데 사실을 모두 알았을 경우 네가 온전
할 수 있을까? 아마도 미쳐버릴껄?"

그 말에 깜짝놀란 베르단디는 앱톰에게 간절한 목소리로 외쳤다.

"제발!! 제발 그만해요! 이 이상 케이씨를 괴롭히지 말아요!!"

그녀는 사실을 아는 것이 너무나도 무서웠다. 그로 인해 케이가 어찌 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케이는 손을
들어 베르단디를 말없이 제지하였다. 케이는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가이버의 힘이 필요해. 베르단디와 핫세를 지켜주려면!"

"케이씨...."

앱톰은 잔인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아....그런 각오라면 말해주지. 케이, 네 녀석은....."

케이는 마른침을 삼켰다. 베르단디와 핫세도 잔뜩 긴장한 채로 앱톰을 주시하였다.

"네 녀석은...! 그 손으로 네 아비를 죽였다!!"




******************************************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앱톰의 충격적인 말을 들은 케이와 베르단디, 핫세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특히
나 케이는 온 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말도 안돼는....! 내가, 내가 케이마씨를 죽였다니! 그럴 리가 없어!!

"네 아버지 모리사토 케이마는 닥터 발카스에 의해 자기도 모르는 세에 조아노이드 엔자임 II 로 조제돼 있
었지."

"그럴수가....케이마씨가!"

"그런 것도 모르고 넌 네 아비를 구출해 나왔고 네 아비는 발카스의 사념파에 의해 이성을 잃고는 엔자임
II 로 변신해서 너를 공격했어. 그리고! 결국은 그 손으로 네 머리를 박살내 버렸지!! 우하하하!!"

"아아...."

베르단디는 그 자리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 자상하던 케이마씨가 자기 아들
을 해쳤다니.... 이들의 반응이 재밌다는 듯 앱톰은 잔인하게 웃으면서 얘기를 계속하였다.

"발카스와 규오는 이렇게 생각한 거야. 아무리 가이버라 해도 머리를 부숴 버리면 단순한 고깃덩어리에 불
과하니까 컨트롤 메탈을 파내기가 수월할 거라 생각한 거지. 하지만 그건 전혀 틀린 생각이었어."

"....."

"식장자의 의식이 끊기자 강식장갑은 과잉방어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컨트롤 메탈에는 식장자의 의
식이 끊어지게 되면 주변의 위협으로부터 식장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자기가 알아서 싸우는 기능이 있는
것 같아. 뭐, 하긴 그 부분은 네 녀석이 더 잘 알지도 모르겠군."

앱톰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동굴 안에는 앱톰의 광기어린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허나, 그 결과!! 너와 네 아버지의 육체는 서로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사투를 벌이게 됐지. 그리고 결국
엔....."

"으아아아아아!!!!!"

갑자기 케이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케이는 비로소 모든게 다 생각났다. 유적기
지에서 케이마씨를 구출해 나온 후 갑자기 케이마씨가 조아노이드로 변신했었다. 그리고 케이마씨의 공격에
정신을 잃었었고 그가 정신을 다시 차렸을 때 그의 눈에는 메가 스매셔로 인해 온통 불타버린 숲과 더불어
잘려져서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엔자임 II 의 팔이 보였다.

"그건...그건....바로 케이마씨의...팔이었어...!!"

"케...케이씨..."

바닥에 엎드린 채로 케이는 오열하고 있었다. 그리고 베르단디 역시 그런 케이를 감싸안은 채로 같이 울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비극이 일어날 수가.... 설마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이야.... 어떻게 이다지도 잔혹한 일이
있을 수 있을까....

"그걸 깨달은 넌 그 충격으로 부분적인 기억상실에 빠졌지. 왜냐하면....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죽인 셈이 됐
으니까! 으하하하!!!"

"그만해!!!!"

그 때 핫세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그녀 역시 이런 충격적인 얘기를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핫세의 눈에
서도 눈물이 끝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당신들이...당신들이! 아저씨를 그런 괴물로 만들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 모든 건 다 당
신들 때문이야!!"

그러나 앱톰은 핫세의 한 맺힌 목소리에 콧방귀만 꼈다. 그는 실실 웃기까지 하면서 말했다.

"아니지. 이건 애초에 다 저 녀석이 유니트에 접촉했기 때문에 생긴 비극이야. 안 그래? 케이."

케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케이와 베르단디는 여전히 쓰러진 채 그대로 울고 있었다.

"아무리 식장을 원해도, 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혐오하고 증오했던 거야. 가이버가 되는 너 자신을 말이
야! 그래서 식장이 불가능했던 거야."

앱톰이 케이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모든건 다 네놈 때문이야. 아버지의 죽음도, 규오 사령관의 손에 죽은 네 동료들도, 솜룸도, 다임도! 전부
다 네놈이 가이버가 됐기 때문에 죽은 거라고!"

"내가...나 때문에....모두가...."

베르단디는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아니에요! 그건 케이씨 잘못이 아니에요... 으흑!!"

앱톰은 케이와 베르단디 바로 앞에 멈춰 섰다. 그 순간 앱톰이 갑자기 순식간에 베르단디를 낚아챘다.

"꺄악!!"

"그리고 이 여신님에게 곧 닥칠 일도 다 네놈 때문이지!"

앱톰은 베르단디의 양 손목을 꽉 움켜쥐었다. 안 그래도 체력이 고갈된 상태였던 베르단디는 앱톰의 강한
완력에 저항할 수가 없었다. 베르단디의 비명에 케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앱톰에게 달
려들었다.

"그만둬!!"

-퍼억!

"헉!!"

그러나 앱톰은 베르단디를 잡고 있는 채로 케이의 복부에 발길질을 하였다. 앱톰의 일격에 케이는 그 자리
에 주저앉고 말았다. 케이는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케이가 쓰러지자 베르단디가 울부짖었다.

"케이씨!! 케이씨!"

케이는 숨이 막히는지 연신 기침을 해댔다. 그러면서 그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앱톰과 베르단디를 보았다.

"베르단디는...놔줘...그녀는 아무런...관계가 없어!"

"후....웃기지마. 널 괴롭히는 데는 이 여자를 이용하는게 최고인데 내가 왜 놔줘?"

앱톰은 쓰러진 케이를 보며 빈정대었다. 그러자 베르단디가 눈물을 흘리며 앱톰에게 소리쳤다.

"제발! 제발 케이씨를 괴롭히지 말아요!! 그는 아무런 잘못이 없어요! 케이씨도 가이버가 되고 싶어서 된게
아니란 말이에요!!"

"흥! 남 걱정보다는 당신 걱정이나 해!!"

그 순간 앱톰의 얼굴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덩치가 폭발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조아노이드로 변신하
고 있는 것이다. 이윽고 변신이 완료된 앱톰의 모습을 본 케이는 충격을 받았다. 하얀색의 거대한 조아노이
드, 평생 잊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그 모습이었다.

"에..엔자임 II !"

베르단디는 양 팔목을 꽉 잡힌 데다가 힘이 다 빠져서 제대로 저항하지 못했다. 체력의 고갈로 인해 법술조
차 맘대로 구사할 수가 없었다. 그저 눈물을 흘리면서 케이를 부르는 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앱톰이 잔인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자, 모리사토 케이. 가이버로 변신해라. 이 여신님을 구하고 싶다면 말이야."

"으...으윽!!"

케이는 두려웠다. 그래서 간절히 빌었다. 지금 이 순간이야말로 가이버의 힘이 필요한 때였다. 베르단디를
구하기 위해....! 케이는 혼신의 힘을 다해 외쳤다.

"가이버어어어!!!!"

"....."

"케...케이씨...."

그러나 이번에도 강식장갑은 소환되지 않았다. 케이는 깊은 절망에 빠졌다. 가이버가 되질 못하면 베르단디
를 구할 수가 없다. 이렇게 간절히 빌고 있는데 이렇게 원하고 있는데도 아직도 부족하단 말인가. 앱톰은
그 모습을 보고는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는 등에 나와있는 4개의 집게팔을 앞으로 꺼냈다.

"흥! 왜 그러냐, 이 여자를 구하려면 어서 서두르라고. 안 그러면 이 여자는.... 이렇게 된다!"

-휘잉! 촤악!

"꺄아악!!"

동굴안에 베르단디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앱톰이 4개의 집게팔을 조작해서 베르단디의 옷을 찟
고 있었다. 공포에 질린 베르단디는 계속해서 비명을 질렀다. 경악한 케이가 맨몸인 상태로 앱톰에게 달려
들었다.

"그만둬어어!!!"

-푸욱!

그 순간, 앱톰의 집게팔 하나가 케이의 복부를 꿰뚫었다. 케이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커헉!"

"안돼! 케이씨!!!"

베르단디는 울면서 케이에게 달려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앱톰의 손을 뿌리치기엔 역부족이었다. 앱톰이 다
시 한번 두 손을 꽉 쥐자 베르단디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앱톰은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힘겹게
베르단디를 바라보고 있는 케이를 비웃었다.

"사랑하는 여자가 갈가리 찢겨 죽는 꼴을 그 두눈으로 똑똑히 봐둬라. 하긴, 그 출혈량을 보니 이 여자보다
는 네가 먼저 뒈질지도 모르겠군."

-휘잉! 촤악! 찌익!!

앱톰은 집게팔을 쉴새 없이 휘둘렀다. 앱톰의 집게팔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베르단디의 옷이 여기저기 찢어
져 나갔다. 베르단디는 어떠한 저항도 할 수가 없었다. 이윽고 그녀는 완전히 알몸이 되고 말았다. 새하얀
피부와 아름다운 몸의 곡선이 그대로 다 드러나고 말았다. 절대로 함부로 남에게 보여줄 수 없는 부끄러운
모습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보여줘야 하는 모습을 이런 식으로 드러내고 말았다.

"호오~ 역시나 여신은 다르군. 이렇게나 아름다운 몸매일 줄이야...크크크."

앱톰이 베르단디의 몸을 보며 천박한 웃음을 흘렸고 베르단디는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앱톰이 집게팔을 움
직여서는 베르단디의 몸 여기저기를 쿡쿡 찔러보며 희롱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고 분노한 케이는 몸을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나 이미 케이는 심한 출혈로 인해 몸의 힘이 급격하게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상하게 눈꺼풀이 점점 무거워져만 갔다.

"자, 그렇다면 여신의 피부 속은 어떤지 지금부터 한번 뜯어볼까? 후하하하!!"

앱톰이 다시 네게의 집게팔을 베르단디에게 대려 하자 케이는 그만두라고 소리치려 하였다. 그러나 목소리
도 이젠 제대로 나오질 않았다. 케이는 자신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베르단디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나 그
얼굴도 이젠 점점 희미해져만 갔다. 이윽고 지독한 암흑이 찾아왔다.



 
******************************************




"케이...."

그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이는 감았던 눈을 떴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베르단디도 앱톰도
핫세도.... 그렇다면 난 죽은 걸까.... 결국 난 아무 것도 못하고 죽은 건가....

"케이."

또 다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번엔 더욱 더 선명하게 들렸다. 케이는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그 쪽엔 케이마씨가 서있었다. 그렇구나, 역시나 난 죽었구나. 케이는 그렇게 생각
하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기 손에 의해 흔적도 없이 타죽은 케이마씨가 저렇게 멀쩡한 모습으로 서 있을
리가 없었다. 케이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 때 케이마가 케이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케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깜짝 놀란 케이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그의 눈에 미소를 짓고 있는 케이마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에 케이는 당황하였다. 자기를 원망할
줄 알았는데.....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여긴 네가 올 데가 아냐."

"......"

"자, 어서 돌아가거라. 그리고 다시 한 번 해보는 거야. 간절히 너만을 기다리고 있는 여신님이 있어."

"케이마씨....저는...."

케이마는 고개를 저으면서 케이의 말을 중간에 막았다. 마치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안다는 듯이....케이마는
케이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를 띄운 채로.

"그때에도 말했지만....난 네가 정말 자랑스럽다. 넌 자랑스러운 내 아들이야."

"케이마씨...."

케이는 목이 매여서 제대로 말도 못했다. 그의 눈에서 조용히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케이마가 손으로
그 눈물을 닦아주었다.

"자, 다시 한번 해보거라. 다시 한번......"

케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굳게 마음먹으며 다시 한번 큰 소리로 외쳤다.







"가이버어어어어!!!!!!"

숨이 넘어간 것 같았던 케이가 혼신의 힘을 다해 소리쳤다. 앱톰은 아직도 그런 힘이 남았냐며 빈정대었다.
그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콰아아앙!!!

케이의 몸 주변에 엄청난 충격파가 발생하였다. 그리고 그 충격파 속에서 푸른색의 강식장갑, 가이버가 모
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서는 케이의 몸 여기저기에 달라붙었다. 드디어
케이는 가이버로 변신을 완료하였다.

-키이잉!!

케이의 이마에 자리잡은 컨트롤 메탈이 찬란한 빛을 발했다. 그 직후 케이는 곧장 앱톰에게 달려들었다. 그
리고는 당황해하는 앱톰의 턱을 힘껏 걷어찼다.

-퍼억!

"큭!!"

불의의 일격을 당한 앱톰은 베르단디를 놓치고 뒤로 쓰러졌다. 케이는 쓰러지기 직전의 베르단디를 안아 들
고는 재빨리 그 자리에서 뒤로 크게 점프하며 물러났다. 그리고는 핫세의 바로 앞에 착지하였다. 핫세는 갑
작스러운 사태에 멍해있었다. 그 때 잠시 정신을 잃고 있던 베르단디가 힘겹게 눈을 떴다. 그러자 그녀의
눈앞에 가이버로 변신한 케이의 모습이 보였다.

"케...케이씨..."

케이는 대답대신 베르단디에게 고개를 한번 끄덕여 줬다. 이제는 괜찮으니 안심하라는 듯이. 케이는 핫세에
게 베르단디를 넘겼다.

"케이 선배...."

"핫세, 베르단디를 부탁해."

핫세는 대답대신 간신히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목이 매여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잠시 베르단디의 상태를
살핀 케이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간다! 앱톰!!"

"큭...!"

"가이버가 부른 재앙은 가이버로 매듭짓는다!!!"

-키이이잉!

케이의 이마에 있는 컨트롤 메탈이 찬란한 빛을 발하였다. 가이버 I, 케이의 완전한 부활이었다.

"후후후....드디어 식장 했구나, 가이버 I.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앱톰은 넘쳐 오르는 희열에 몸을 떨었다. 그래, 그래야지. 솜룸과 다임의 복수를 제대로 하려면 가이버로 변
신한 녀석을 자신의 힘으로 쓰러트려야 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이 최강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녀석들도 저승
에서 편히 눈을 감을테니까. 변신도 못하는 녀석 죽여봐야 그 둘은 조금도 기뻐하질 않는다!

"이번엔 단단히 각오하는게 좋아! 닥터 발카스에 의해 재조제된 난 이미 예전에 내가 아니니까!!"

-꾸국! 투두둑!

갑자기 앱톰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케이는 깜짝 놀랐다. 아까의 가짜 가이버 III 도 그렇고
지금의 앤자임 II 도 그렇고 녀석은 아무래도 자신의 몸을 자유자재로 바꾸는 능력이 있는 듯 했다. 잠시
후 앱톰이 변신을 완료했다.

"바..바모아?"

"봐라!! 세포셈플만 손에 넣으면 어떠한 조아노이드로도 변신할 수 있으며!"

-투둑! 슈욱!

또 다시 앱톰의 모습이 바뀌기 시작했다. 바모아로 변신했던 앱톰의 몸이 갑자기 녹색으로 변하면서 좀 더
커다란 덩치를 가진 뭔가로 바뀌기 시작했다.

"그레골?"

"단순히 형태뿐만 아니라 그 능력까지도 완전히 카피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엔 그레골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녀석은 상황에 맞춰 자신의 몸을 순식간에 바꿀 수 있다는 뜻이
었다. 아마도 원거리 공격을 할 때는 바모아로, 접근전은 그레골로 수행하려는 모양이었다. 그 때 앱톰의 모
습이 또 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런 재주도 생겼다!!!"

또 다시 변신한 앱톰의 모습을 본 케이는 큰 충격을 받았다. 이번에 변신한 건 케이도 처음 보는 조아노이
드 였다. 그런데 그 모습을 자세히 보던 케이는 중대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지금 앱톰은 앞서 변신한 엔
자임 II, 바모아, 그레골의 모습을 몽땅 합친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바모아의 생체 열선포에 그레골과 엔자
임 II 의 몸이 반반씩 섞인 형태였다. 즉, 지금 저 녀석은 각각의 조아노이드의 특징을 한 데 모은 것이었
다.

"간다! 가이버 I !! 네손에 죽은 솜룸과 다임의 원수를 갚아주마!!"

케이는 고개를 돌려 베르단디와 핫세를 바라보았다. 지금 베르단디는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
다. 여기서 싸우다가는 자칫 잘못하면 핫세와 베르단디가 말려들 것만 같았다. 게다가 이곳 동굴 안은 맘껏
싸우기에는 너무 좁았다. 여기서는 싸울 수가 없었다.

"이쪽이다! 앱톰!!"

케이는 높히 도약해서 앱톰을 뛰어넘었다. 그리고는 앱톰을 유인하듯이 동굴 밖으로 달려나갔다. 앱톰 역시
그런 케이를 쫓아 밖으로 나갔다.

"....."

한동안 핫세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왠지 가슴이 벅차 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다. 케이는 이 엄청난 시련
을 극복해 내었다. 아버지의 죽음이라는 절망을 딛고 사랑하는 이를 구하기 위해 다시 싸움에 자신의 몸을
던졌다. 핫세의 눈에는 눈물이 쉴새없이 흘러내렸다.

"베르단디 선배...."

핫세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베르단디를 바라보았다. 베르단디는 고른 숨소리를 내면서 잠들어 있었
다. 그것도 아주 편안한 얼굴로, 이제는 걱정 없다는 듯이 말이다. 핫세는 자기가 입고 있던 점퍼를 벗어서
베르단디에게 덮어주었다. 그리고는 베르단디를 아주 부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저 정도로 자신을 사랑해
주는 남자가 있는 베르단디가 지금 이 순간 핫세는 너무나도 부러웠다. 핫세는 동굴 밖을 응시한 채로 간절
히 빌었다.

'케이선배...제발 무사히 돌아와 주세요. 베르단디 선배를 위해서라도...'




******************************************




케이와 앱톰은 숲 속을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케이는 헤드빔을 발사해서 앱톰을 견재하였다. 그러나 앱톰
은 거대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재빠른 동작으로 헤드빔을 피하였다. 싸우는 도중에 케이는 앱톰에게 물었다.

"앱톰! 어째서냐! 어째서 그렇게까지 솜룸과 다임의 일에 집착하는 거야!"

"크아악!"

-촤악!

앱톰의 대답은 날카로운 손톱 공격이었다. 엔자임 II 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덕에 지금 그의 손톱에는 분해
효소가 분비되고 있었다. 케이는 그 공격을 간신히 피했다. 케이의 가슴 장갑에 기다란 손톱 자국이 났다.

"그 두 녀석은.....로스트 넘버즈가 되기 전부터 아주 친한 친구였어."

앱톰은 이를 갈면서 대답하였다. 분노에 찬 앱톰의 설명이 이어졌다.

로스트 넘버즈란 정규 번호를 할당받지 못한 실패작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들은 조제실험의 실패로 인해 제
대로 된 조아노이드가 되질 못하고 단 1대로 끝나버리는 돌연변이채였다. 크로노스는 조제실험을 할 당시
생겨난 이러한 실패작들을 모아서 '손종실험체'라 부르며 여러가지 비인간적인 인체실험을 가하고 있었다.
이런 그들을 크로노스가 제대로 대우해줄리가 만무했다. 정규 조아노이드들은 그들을 실패작이라며 멸시했
고 실험실의 과학자들은 그들을 실험용 생쥐 취급을 하였다.

손종실험체들은 기지 밖으로 나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다. 죽을 때까지 평생을 실험실에 갇혀 지내면서 여
러 가지 고통스러운 실험에 동원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손종실험체들 중 일부는 정규 조아노
이드들에는 없는 특이한 능력을 가지게 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런 그들을 따로 모아 편성한 전투 부대가
바로 앱톰이 소속됐던 '로스트 넘버 코만도'였다. 이렇게 따로 편성된 자들은 그나마 임무가 있다면 바깥
세상 구경도 할 수 있고 크로노스의 전력으로서 취급되어 질 수도 있었지만 그나마 그런 것도 없는 녀석들
은 철저하게 외면 당했다. 물론 그렇다고 로스트 넘버 코만도가 뭔가 다른 대접을 받는 것도 아니다. 그들
역시 임무가 없다면 여러가지 고통스러운 실험에 동원되어야 했으며 정규 조아노이드 대원들에게 멸시 받
는 건 다 똑같았다.

죽음조차 자기 맘대로 할 수가 없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단 한가지 위안이 되는 것은 같은
처지의 동료들뿐이었다. 이들 손종실험체들은 서로를 위로하고 보듬으면서 이 힘겨운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
다.

"그런 소중한 내 친구들을.....네가 다 죽인 거야!!"

앱톰은 분노로 몸을 떨었다. 지금 숲속에는 분노한 앱톰의 외침만이 들려왔다.

"비참하게 죽어간 녀석들을 위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단 한가지! 그건 가이버 I, 네 녀석을 쓰러트려서
우리가 최강이라는 걸 입증하는 거다!!!"

그렇기 때문에 앱톰은 명령을 어겨가면서 같은 크로노스의 전투원들을 해치우고 아까 베르단디와 케이들을
구해준 것이었다. 남이 아닌 자신의 손으로 원수를 갚기 위해.

그 순간 케이는 중대한 사실 하나를 깨달았다. 지금 저 녀석은 크로노스의 명령과는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
는 것이 틀림없었다. 불현듯 케이는 오늘 아침 무라카미가 해 준 말이 떠올랐다. 무라카미는 말했었다. 조아
노이드는 조제를 할 때 크로노스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도록 유전자 조작이 가해진다는 것을. 그렇게 해서 조
제된 조아노이드는 조아로드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을 하게 된다. 그런데....그런 조아노이드가 명령을 어
겼다?? 그렇다면 설마 앱톰은....!

"기다려! 앱톰! 설마 넌 지금...."

케이는 당황해서는 앱톰에게 뭔가 더 물어보려 하였다. 자신의 짐작이 맞는지 확인하려 하였다. 그 때 앱톰
의 양쪽 어깨에 있던 생체 열선포가 활짝 열렸다. 그리고 빔에너지가 충전되기 시작했다.

"문답무용!! 죽어라, 가이버!!!"

-푸화악!!!

곧바로 앱톰의 생체열선포가 불을 뿜었다. 엄청난 위력의 빔이 날아오자 케이는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 그
공격을 피했다. 방금 전까지 케이가 있던 자리부근의 숲이 순식간에 불타올랐다. 실로 엄청난 위력의 빔 공
격이었다.

"미꾸라지처럼 잘도 피하는군! 그렇다면 이건 어떠냐!!"

-추와악!!

그 때 앱톰이 입에서 어떤 액체를 밷어내었다. 케이는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그 액체를 무릎에 맞았다. 그
러자 무릎부분이 순식간에 타들어갔다. 케이가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치이익!!

"우왁!!"

케이는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설마 진짜 엔자임과 마찬가지로 입에서 분해효소를 내뿜을 수 있을 줄은 몰
랐다. 어쨌든 덕분에 지금 케이는 다리를 움직이기가 힘들었다. 이렇게 되면 아까의 빔공격이나 분해 효소
액 공격이 다시 날아올 경우 제대로 피할 수가 없게 된다.

-푸슉! 푸슉!

앱톰이 연속으로 분해 효소액을 내뱉었다. 다리가 안 움직이는 케이는 일단 황급히 몸을 굴려서 그 공격들
을 피했다. 물론 조금만 기다리면 다리는 회복되겠지만 그 조금이 문제였다. 상대방은 그럴 틈을 주질 않았
다.

"카아아!!"

그 때 앱톰이 케이에게 돌격해 왔다. 다급해진 케이는 앱톰에게 헤드빔을 쐈다.

-푸슝!

헤드빔은 앱톰의 몸을 관통하였다. 그러나 그 정도는 앱톰에게는 치명타가 될 수 없었다. 오히려 코끼리를
단검으로 찔러서 화만 돋군 셈이 되고 말았다. 분노한 앱톰이 케이를 힘껏 걷어찼다.

"이놈이 감히!!"

-퍼억!!

"우아악!!"

앱톰의 공격에 케이는 그대로 뒤로 몇 미터나 날려가 나무에 부딪혔다. 그 충격으로 나무가 부러질 정도 였
으니 충격이 보통 큰 것이 아니었다. 케이는 그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섰다. 그러면서 그는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괴력은 그레골 하고는 차원이 달랐다. 아까의 생체 열선포도 바모아 같은 거와는 비교
가 안 될 정도로 강력했다. 그렇다면 녀석은 단지 상대방의 특기를 흉내내는 정도가 아니라 그 위력을 몇
배로 증폭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봐야 했다. 예전처럼 겉모습만 흉내 내는 정도가 아니었다.

"후후후... 슬슬 끝장을 내 볼까?"

앱톰이 잔인하게 웃으면서 생체 열선포를 전개하였다. 그러자 케이도 다급하게 양손을 흉부 장갑으로 가져
갔다. 그 순간 앱톰이 케이에게 분해 효소액을 발사하였다. 케이는 피할 틈도 없이 황급히 양손을 교차해서
그걸 막아내었다.

-치이익!!

"아아악!!!"

케이의 양손이 맹렬한 기세로 타 들어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앱톰이 코 웃음을 쳤다.

"호오? 메가 스매셔 만큼은 지키겠다는 거냐. 하지만 손이 그 모양이어서는 어차피 스매셔는 못 써!!"

케이는 아차 싶었다. 양손이 염산을 맞은 것처럼 타들어 가고 있었다. 양 손가락은 물론이고 팔꿈치까지 제
대로 움직이질 않았다. 이렇게 되면 양쪽 흉부 장갑을 열어 젖혀야 발사되는 메가 스매셔를 쏠 수가 없었
다. 물론 손이 아주 없어진 건 아니므로 조금만 기다리면 양손을 움직일 수 있겠지만 문제는 앱톰이 기다려
줄 리가 만무했다는 점이었다. 다리도 맘대로 안 움직이는 지금 케이는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앱톰이 생체
열선포의 에너지를 충전하면서 의기양양하게 소리쳤다.

"이 승부는 나의 승리다!!!"




******************************************




"그래 여긴가, 가이버 III 가 나타났다고 하는 지점이."

젝토올을 비롯한 하이퍼 조아노이드 4인중은 전투요원의 안내를 받아 문제의 그 현장을 살펴보러 나왔다.
강력한 빔 공격으로 인해 주위에 있던 나무나 풀들이 모두 다 타버린 채였다. 확실히 이렇게 강력한 빔공격
이라면 아마 가이버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을 것이다. 물론 그 때 당시 현장에 있던 조아노이드가 모조
리 전멸해 버려서 확증은 없지만.

"이거 참, 어떻게 그 지경에서 놈이 살아남을 수 있었지?'

가스터가 주위를 둘러보며 혀를 찼다. 규오각하의 강력한 중력공격을 정통으로 얻어맞고도 살아남다니, 정
말이지 기가 막혔다. 가이버는 불사신이란 말인가.

"뭐 어쩌면 오히려 잘 된 셈이지."

그 때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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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더경님의 댓글

베이더경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적나라라니...이런!!! [우드드득]

즐거운 연재 잘 하세요!!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건필!!! [학원 쉬는 시간에 조용히 글 쓰는중.]

린드 언니나 울드씨![스트립을 보여줘.. -우드득]가 당하다니......

뭐 당할리야 있겠냐만...어쩄든 크로노스의 세력은 지금 다시 봐도 무섭군요.

부제 이름도 무섭습니다..컬!

지금 저는 식당에서의 헤프닝&귀찮은 불청객의 강림사건을 열심히 쓰는중..[글이 너무 딱딱해지는 것 같아서 지웠다,썼다를 반복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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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버님의 댓글

가이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울드나 린드 스트립.....이랄건 없고 그 비슷한 씬은 나중에 나올 예정입니다....(먼산) 그런데 부제 이름이 무섭다뇨?? *.* 전 열혈이 느껴지는 이름이라 생각해서 지은 건데.... 남자가 위기의 여자를 구하는 시츄에이션은 모든 남자들의 혼을 불태우는 내용 아니겠습니까? ^^;;;

베이더경께서도 건필하세요. ^^ 홧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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