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쓰는 여신님-세계를 구하기 위해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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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렷, 경례!”
“수고하셨습니다!”
“오냐, 딴데로 새지 말고 바로 집에 가라.”
오늘의 수업이 모두 끝났다. 아이들은 저마다 모여서 집으로 향한다. 가인의 죽마고우인 재영도 가방을 다 싸고는 가인들 돌아보았다.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지 수업시간 내내 집중을 못하고 멍하니 있던 가인.
“어이, 유가인. 뭐하냐. 수업 끝났다.”
“어? 으, 응.”
재영이 말하고 나서야 수업이 끝났다는 걸 알았다. 그 사실을 인지하자 가인은 씁쓸해졌다. 밤에 꿈에서 피스 대원들이 바다 속에 가라앉는 꿈을 꾸었다. 그들이라면 괜찮을거라 생각하지만 계속 불안한건 어쩔 수 없었다.
뭘 하고 있는 거야, 그들이 돌아왔을 때 내가 이러고 있으면 분명 야단 칠거야. 정신 차려야지. 무사히 돌아오기로 약속했잖아. 그래, 그들을 믿자. 그들은 나 따위가 걱정해줄 정도로 약하지 않아.
스스로 자신을 타일러 보지만 좀처럼 가라앉은 기분은 되살아날 줄 모른다.
“또 멍하니 있는다. 집에 안갈거야?”
“가인, 무슨 일이 있는거야? 오늘 내내 멍하니 있던데…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어?”
옆에 있던 테레이아도 하루 종일 이상하게 행동하는 가인을 보고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평소 그렇게 활달하던 그가 종일 멍하니 있으니 그를 어느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상하게 생각하는게 당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에게 피스메이커의 일을 말해줄 수는 없었다.
“미안, 별 일 아니야. 그러니 그런 표정 하지 마.”
가방을 매고 둘을 지나쳐 가는 가인의 어깨가 오늘따라 축 쳐져있는 것 같았다. 그런 친구를 둘은 말없이 바라보았다.
“하아.”
오늘 벌써 몇 번째 한숨이던가. 수업엔 전혀 집중이 안되고 떠오르는 생각은 온통 꿈에 나타났던 영상 뿐. 원래 꿈은 잠에 깨고 나면 금방 잊어버리기 마련에다. 하지만 이번에 꾼 꿈은 뇌리에 강력하게 아로 박혀 좀처럼 잊혀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가인의 옆에선 테레이아가 같이 걷고 있었다. 여기까지 오면서 가인은 한숨만 쉴 뿐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걱정, 불안, 초조
그런 복합적인 표정이 가인의 얼굴에 떠올라 있었다. 테레이아는 가인의 걱정에 무엇때문인지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가인에게 마땅한 위로의 말을 해주지 못했다. 자신은 단순히 가인의 클레스메이트인 테레이아 민체스터여야 한다. 자신은 끝까지 친구여야 한다.
‘친구?’
테레이아는 그 말을 떠올린 자신을 비웃었다. 뭐가 친구란 말인가. 애초에 그런 개념의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다. 어떤 미사여구를 가져다 붙이더라도 인간 관계는 상호간의 이익이 성립되어야만 존재한다. 더구나 친구라는 관계가 실제로 존재할 수 있다 쳐도, 가인과 자신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왜냐하면 거짓이니까.
그에게 보여준 모습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거짓이니까. 믿음과 신뢰라는 것이 성립되지 않는데 어떻게 자신과 그를 친구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가인, 사실 난 테레이아가 아니야. 내 진짜 이름은 리리스. 인간이 아닌 너희들이 몬스터라 부르는 존재. 난 단지 옴팔로스의 열쇠인 너한테 접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했어.’
이것이 그녀가 가인에게 말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설령 말한다 해도 그순간부터 그와 자신은 더 이상 친구로 있을 수 없다. 그와 자신은 다르기 때문에.
‘그래도 현재는 친구로서의 의무에 충실해야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가인에게 막 입을 열려는 순간.
“……테레이아.”
“에? 어, 응.”
막 입을 열려는 순간 가인이 먼저 말을 걸어오니 그만 당황해버렸다. 그런 그녀를 가인이 잠시 이상하다는 듯이 바라보다가 이내 별 일 아니라 생각하고는 자신이 부른 이유를 말했다.
“미안한데 오늘은 나 혼자 가고 싶거든? 미안.”
그 말만 남기고선 골목 저편으로 사라져버리는 가인. 그런 가인을 테레이아는 슬픈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가인…미안, 네가 보는 나는 진실된 내 모습이 아니야. 넌 진실을 알게 되도 날…친구라 생각해 줄거니?”
그렇게 중얼거리는 테레이아의 눈에서 눈물이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그의 앞에서 솔직해질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홀로 슬퍼하면서.
테레이아를 두고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버린 가인은 얼마 못가 참견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을 목격했다.
“…왜 이래. 새삼스럽게, 있는거 다 아니까 잔말 말고 내놔.”
“정말 없어요.”
퍼억!
“네가 이 형님들이 핫바지로 보이냐? 누굴 속이려 들어. 이 새끼가 한동안 봐줬더니 감을 잃었구나. 빨리 안 내놔?!”
말로만 들어봤던 학생의 돈을 갈취하는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학생은 가인이 재학중인 한성고등학교의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의 주위로 5명의 불량배들이 그 학생을 포위하고 있었다. 이것만 해도 끼어들 이유는 충분했다. 그런데 그 학생은 가인이랑 같은 반 클레스메이트였다. 이름은 김우석. 반가인회에 가입하지 않은 몇 안되는 남학생이었다. 언제나 내성적이고 조용하게 지내는 아이였는데 이런 곳에서 봉변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멈춰!”
가인은 크게 외치며 그들에게 돌진했다. 누가 보나 나쁜쪽은 돈을 뺏으려던 불량배들이기 때문에 아무 거리낌 없이 공격을 했다. 가인의 움직임은 상당히 빨랐다. 평범한 사람의 동체시력으로는 그의 움직임도 제대로 잡아내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가인은 우선 우석의 오른쪽에 있던 불량배의 배에 약간의 발경을 실어 내지르고 그 옆에 있던 자의 왼쪽 다리를 가격해 쓰러트렸다. 오리하르콘의 동화작용과 그동안 브루스와 진우, 마리에게 수련을 받았던 터라 한방 한방에 상당한 힘이 실려있었다. 다리를 공격하느라 자세가 낮아진 틈을 타 한명이 뒤에서 각목으로 내려치려 했지만.
칠성권(七星拳) 승룡퇴(昇龍槌)
가인은 바로 승룡퇴를 시전해 턱을 두 번 올려찼다. 아무리 수련한 지 1년이 안되었다지만 그래도 제자는 제자. 초식 하나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건 말이 안되는 일이다. 브루스의 스파르타식 수련을 생각해보라. 안떠올리고 싶어도 그럴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도 전사경은 끌어올리지 않았으니 살아있는 것이지 제대로 맞았다면 그 자리에서 죽었을 것이다.
“큭! 넌 뭐냐?”
“같은 반 친구인데요. 그렇게 말하는 아저씨들은 누구죠? 세상을 너무 쉽게 살아가려고 하는군요.”
“뭐라고?! 네가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자신 있으면 덤벼보시죠. 사양하지 않겠습니다. 나는……당신 같은 사람들을 경멸하니까.”
좀 전에 그렇게 당하고 다시 덤빌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끝까지 싸우거나 이대로 도망가서 잠적하거나 도망갔다가 패거리를 몰고 와 복수하는 것. 그중에서 흔히 악당들이 많이 써먹는 방법은 도망갔다가 패거리를 몰고 와 복수하는 것인데 이들도 그 엑스트라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국은 두고 보자! 라는 말만 남기고 쓰러져 있는 동료는 챙기지도 않은 채 그대로 내빼버렸다.
“괜찮아?”
“응. 괜찮아. 그런데 유가인, 너야말로 괜찮겠어? 저들이 이대로 가만있지 않을 텐데.”
우석은 자기 때문에 같은 반 친구가 위험에 처할까봐 전전긍긍한 표정이었다. 그가 알기로 저들은 조폭이랑 관련이 있는 자들이었다. 잘못하면 진짜 죽을 수도 있었다.
“걱정 마. 저런 놈들에게 당할 정도로 약하진 않으니까. 앞으로 또 이런일이 있으면 말하고. 그나저나 아직도 이런 짓을 하는 사람이 있었네. 그런데 난 왜 여태 보질 못했지?”
“그보다 너 싸움 잘하더라. 뭐 배우고 있는 거라도 있어?”
“아, 브루스한테 중국 무술을….”
브루스를 떠올리니 나머지 피스 대원들이 차례로 떠오르고 또 다시 그들이 바다에 빠지는 기분 나뿐 꿈이 떠오른다. 그들의 걱정 때문에 가인은 또다시 우울해졌고 그런 가인의 반응을 보고 우석은 자신이 뭘 실수했나 생각을 해야 했다.
‘맞다. 채영 씨에게 물어보면 되겠구나. 왜 여태 그 생각을 못했지?’
가인은 방금 떠오른 생각에 다급해졌다. 때문에 우석에게 잘 가라는 말도 안하고 바로 지하철역을 향해 뛰었다. 유레카로 가는 건 아니고 일단 집으로 가면서 무전을 칠 생각이었다. 그렇게 다급하게 사라지는 가인을 우석은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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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오퍼레이터의 치프 윤채영은 책상에 엎드려있었다. 어재부터 시작된 강행군에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버린 것이다.
“치프, 잠깐이라도 쉬는게 어때요?”
“쉴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너무 무리하셨어요. 우리처럼 교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오퍼레이터 삼인방은 채영 앞에 커피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말대로 채영은 어재부터 밤을 꼬박 새우는 강행군을 했다. 그나만 삼인방은 교대 하면서 조금씩 쉬기라도 했지만 채영은 내리 밤을 샌 걸로 모자라 지금도 계속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쉴 수는 없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니까.”
벌써 피스 대원들과 연락이 끊긴지 12시간이 지났다. 무엇 때문인지 무전은 되지 않고 AI슈츠의 전기 신호에 의한 그들의 생명 수치만이 아직까지는 그들이 살아있다는 것만을 알려줄 뿐이었다. 채영은 무전으로 그들의 상황을 물어오던 가인을 떠올렸다. 그때는 진 사령관의 명령으로 거짓을 말하기는 했지만 가인의 성격상 피스메이커가 진실을 숨겼다는 사실을 알면 강한 불신감을 드러낼 것이다.
‘도대체 사령관님은 무슨 생각이신 걸까.’
대원들의 태반이 연락 불통인데 어떻게 저리도 태연할 수 있는 거지? 왜 가인 씨에게는 상황을 알리지 말라고 한걸까?
채영은 자신의 뒤에서 무표정하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진 사령관과 수정을 돌아보았다. 그나마 그들이 자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는게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역시 내색은 않고 있지만 그들도 피스 대원들의 신변이 걱정스러울 것이다. 채영은 다시 생명 수치로 눈을 돌렸다.
‘도대체 다들 뭐하고 있는 거에요? 살아있다면 대답해줘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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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물이 수면 위로 떨어지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퍼진다. 유리는 두 눈을 감은 채 호흡을 고르고 있다가 이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몸을 격하게 뒤틀었다. AI핼맷 사이로 들어난 그녀의 얼굴은 식은땀으로 촉촉이 젖어있었다.
“이제…더이상은 무리야.”
“참아요, 유리 양, 조금만 더 힘을 내요.”
시민은 유리를 달래주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우는 턱까지 차오르는 물과 머리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진흑 천장을 바라보며 쓴 웃음을 지었다.
“이건 정말 최악의 환경이군요.”
“웃으면서 할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좀 더 위기의식을 가지십시오.”
마리는 진우를 엄하게 꾸짖으며 유리를 좀 더 위로 끌어올리려 노력했다. 쿠사나기의 몸이 사라지면서 원래의 해저 터널이 드러났다. 하지만 쿠사나기가 해저 터널에 그대로 몸을 씌우고 있었기에 다행이 물에 흽쓸리는 것은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꾸만 쏟아지면서 차오르는 물과 물에 섞여든 진흙들이 뭉쳐서 벽을 만들어 맘대로 움직일 수도 없고 숨도 재한해서 쉬어야 했다.
그렇게 12시간을 버티고 있자 점점 정신이 아늑해져 갔다. 계속되는 긴장과 물에 대한 공포로 체력이 바닥나고 있는 것이다. 제일 먼저 쓰러진 것은 유리였다. 발을 디딜 공간조차 제대로 없었기에 간신히 중력장을 조절해 버티고 있었지만 정신력이 바닥나자 밑으로 가라앉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진우와 마리, 시민이 번갈아 들어주고는 있었지만 내리 12시간을 그러고 있자 그들도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
푸확
그때 물속에서 뭔가가 진우 일행에게로 재빨리 떠올랐다. 그것은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브루스였다.
“사부님, 가셨던 일은 어떻게 됐습니까?”
“터널의 중앙에서 물이 쏟아지고 있어 우리가 왔던 길로는 되돌아갈 수 없다. 반대편의 섬 쪽도 붕괴가 일어났더군. 이 상태로는 조만간 여기도 물에 잠길 거다.”
“역시.”
진우는 처음부터 기대하지도 않았기에 실망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씁쓸한건 어쩔 수 없었다. 특히나 터널 아래로 가라앉은 182구역의 주민들을 생각하면 더 그랬다. 그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있었으니까.
“브루스. 터널을 억지로 뚫어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바닷물이야 중력장을 조절하면 어떻게 될 것 같은데?”
“흐, 무리다. 그전에 진흙더미에 깔려 압사 당할거다.”
브루스는 택도 없다는 듯 비웃음을 흘렸다. 마리는 그 태도에 마음이 상해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다면 붕괴된 터널의 입구를 뚫는 건? 진우 씨의 슈팅 스타나 저의 단공이라면 가능합니다만.”
“그걸 누가 몰라서 이러는 줄 아냐? 지금 여기의 개개인은 각자 터널을 빠져나갈 힘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그럼 도대체 왜!”
마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브루스는 혀를 차며, 기진맥진해 있는 유리를 가리켰다.
“저 애물단지는 두고 갈 샘이냐? 터널을 부수는데 전심전력 하면서 남을 챙길 틈이 있을 것 같아?”
“아.”
마리는 자신의 성급한 생각에 부끄러워했다. 브루스는 모두가 안전하게 빠져나갈 방법을 모색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시민의 부축을 받고 있던 유리가 입을 열었다.
“나는……괜찮으니까.”
“유리 양?”
모두의 시선이 유리에게로 향했다. 유리는 창백한 얼굴로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나……모두의 발목을 붙잡고 싶진 않아.”
“유리! 쓸대 없는 소리 하지마라! 널 두고 갈 수 있을 리가 없잖아!”
“하지만 이대론 모두가 죽어버리는 걸! 살 수 있는 사람은 살아야지 뭐땜에 같이 죽으려고 해!”
“유리 양. 같이 죽는게 아니에요. 같이 살 방법을 찾고 있는 거에요.”
“모두가 살 방법은 없어! 이미 브루스가 말했잖아. 그러니 어서 가란 말야!”
그렇게 울부짖던 유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울면 안되는데, 이러면 모두가 떠나기 힘들어지는데……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유리는 시민의 품에 안겨 울었다. 마음 편하게 일행을 보내줄 생각이었는데 그러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다.
유리의 애처로운 울음소리에 마리는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돌려버렸고, 진우는 한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자신들이 뭐가 오라능력자고 뭐가 피스메이커란 말인가. 능력을 지녔던 만큼 자괴감은 깊었다. 시민은 유리를 힘껏 끌어안으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럴수록 유리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만 갔다. 피스 대원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자괴감에 빠져 있을 때…….
쏴아아
일행이 있는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갑자기 소용돌이가 생겨났다. 피스 대원들이 불안한 표정으로 소용돌이를 바라보고 있을 때, 갑자기 소용돌이에서 빛이 나더니 한 사람이 그 속에서 솟구쳐 올랐다.
퍼억!
좀전에도 말했지만 천장은 머리가 닿을 정도로 가까워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솟구쳤으니 결과는 뻔하지 않은가.
“아야야야. 뭐야 도대체.”
머리를 문지르며 투덜거리는 그 사람은 바로 일행을 구하기 위해 온 스쿨드였다. 스쿨드는 물을 통해 이동할 수 있었다. 베르단디의 점과 가인의 꿈으로 인해 그들이 물속에 있을거란 판단으로 스쿨드를 보낸 것이다.
“에헤헤, 모두 오래 기다렸지? 걱정 마. 이 천제 스쿨드 님께서 구하러 왔으니까.”
피스 대원들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스쿨드를 바라보았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것도 정도껏이지. 도대체 무슨 수로 구하겠다는 것인가. 구해줄려면 입구를 뚫어주던가!
“뭐야, 그 표정은. 내가 설마 아무 방법도 없이 왔겠어? 정말, 언니가 부탁해서 왔더니만 불청객 취급이나 하고, 확 그냥 가버릴까 보다. 어쩌구 저쩌구 중얼 중얼….”
스쿨드는 속이 많이 상했는지 끝없이 투덜거렸다. 이 모습을 보고 어딜 봐서 구해주러 왔다고 한단 말인가. 한참 후에 진정된 스쿨드를 통해 빠져나갈 방법을 듣게 됬을 때, 브루스를 빼고는 모두 동일한 생각을 했다.
‘말도 안돼!’
브루스의 생각은.
‘무슨 방법으로 이들을 아스트랄 계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거지?’
“자자. 시간이 없으니 일단 모두 손을 잡아. 서둘러.”
스쿨드의 재촉에 의해 피스 대원들은 서로 손을 잡았다. 그리고 스쿨드랑 제일 가까이 있던 시민의 나머지 손을 스쿨드가 잡았다.
“자, 그럼 간다.”
그들이 빠져나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스쿨드가 이동하는 방법은 물을 통해 작은 게이트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생성한 게이트를 통해 모두를 대리고 나가는 것이다. 이 방법은 세레스틴이 왔을 때 한번 케이에게 써먹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파아아앗!
물의 소용돌이가 한차례 빛나고 사라졌을 때, 터널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그때까지도 차오르고 있는 물과 수면 아래 가라앉은 182구역 주민들의 시체 뿐. 어디에도 피스 대원들은 보이지 않았다.
묘실공대 중앙 분수대.
몇 년간 평화로웠던 그곳에 작은 이변이 생겼다. 갑자기 분수대의 물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을 본 사람들은 모두 중앙분수대로 몰려들었다.
“뭐야,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인지 누구 아는 사람 없어?”
분수대 주변은 온통 이런 말로 시끌벅적한 상태. 분수대의 물은 점점 회전을 빨리했고 소용돌이가 절정에 달했을 때,
번쩍!
한줄기 빛과 함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람들이 튀어나왔다. 그들은 두말 할 것 없이 스쿨드에게 구출된 한국지부의 피스 대원들이었다. 스쿨드가 왜 곳으로 나왔냐 하면 그동안 너무 익숙해졌기에 자기도 모르게 이곳을 떠올린 것이다. 스쿨드의 작은 실수로 인해 묘실공대의 학생들과 피스 대원들 모두 혼란스러워졌다.
“아차차, 실수네. 여기가 아닌데…근데 이곳도 묘실공대가 있었구나. 언제 시간 내서 거기도 찾아가 볼까?”
웅성 웅성
“갑자기 물에서 튀어나왔어. 혹시 저들이 몬스터라는거 아니야?”
“아니야. 저 복장을 보니 혹시…그 피스메이커란 거 아닐까?”
이런저런 말들로 인해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스쿨드는 지체 없이 모두를 대리고 다시 물속으로 사라져버렸다. 그들이 사라지자 묘실공대 학생들은 한동안 분수대 앞에서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가 수업에 지각했대나 뭐래나.
파아아앗!
시민의 집의 욕조에서 강한 빛이 나더니 이윽고 우당탕 하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케이 일행은 그 소리가 들리자 욕실 앞으로 모여들었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 욕실에서 하나 둘씩 피스 대원들이 걸어나왔다.
“다녀왔어요, 언니.”
“어서 와, 스쿨드. 생각보다 늦었는데 무슨 일이 있었니?”
“아하하하. 아무 것도 아니야. 아무것도. 언니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야.”
“그러니? 뭐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손 씼고 오렴. 식사를 준비해 놨으니. 여러분도 오세요. 음식은 많이 있어요.”
그렇게 케이 일행이 식당으로 사라지자 그 자리에 남아 있던 피스 대원들은 서로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도대체……뭐가 아무 일도 아니라는 거야.”
글쎄, 뭘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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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2년 10월 9일날 인천과 부산, 그리고 제주도에 S급 몬스터 용마인들이 출현. 부산과 인천은 여신(女神)울드와 페이오스가 각각 나서서 스머그와 레비아탄을 봉인. 제주도는 피스 대원들이 출동해 쿠사나기를 소멸시켰습니다. 더군다나 이번엔 사망자들도 무수히 많았습니다. 부산과 제주도는 자연 재해로 무마할 수도 있지만 인천은 산성비, 그것도 사람과 건물을 녹일 정도의 산성비가 내렸던지라 그것만은 자연 재해로 덮을 수도 없습니다. 인천에서만 사망자가 수백을 해아리니까요.”
작전 본부실에 무거운 침묵이 내리깔렸다. 상황은 매우 심각했다. 인명 피해도 막심했고 그곳에 터를 잡고 살던 주민들을 이주시키거나 보수작업을 다시 거주하게 하는 문제도 만만치 않았다. 한곳만 그렇게 되도 피해액은 상상 이상인데 한곳도 아닌 무려 세곳이 그렇게 되버린 것이다. 세곳을 복구하는데 드는 비용도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 것이다.
“그렇죠. 하지만 182구역의 주민들은 생존자가 단 한명도 없으니…개다가 이번일로 피스 블루를 제외한 한국지부의 모든 피스 대원들이 죽을 뻔 했으니……다행이 스쿨드가 구해줬다고 하더군요. 여태까진 반신반의했는데 이젠 진짜로 여신이란 걸 믿어야 될 것 같습니다.”
안경을 쓸어올리며 하는 닥터의 말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게이트라니, 아니 디멘션 트렌스퍼도 이루어지는 마당에 게이트가 그리 특별할 건 없다 생각하겠지만 이건 차원도약과는 차원이 다르다. 더군다나 게이트를 물속에 생성시켜 많은 인원을 이동시킨 것이다. 만약 이 방법을 잘만 활용한다면 피스 대원들의 출동 시간은 반 이상을 줄일 수 있다.
강이나 물과 가까이 있는 곳에 몬스터가 나타난다면 게이트로 바로 이동이 가능하기에 인명피해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스쿨드가 쉽게 협조해 주지 않을 거라는 거지만. 혹시 모른다. 아이스크림으로 유혹하면 넘어올지도. 하지만 이들은 아직 스쿨드의 약점을 모르기에 그 방법은 쓸 수가 없다.
“그건 다행이지만……정말 큰일이네요. 그동안엔 수도에만 공격을 하더니 왜 갑자기 다른곳에서…….”
“오라의 주인을 노린거겠지.”
수정의 물음에 진 사령관이 답했다. 오라의 주인을 노리는데 왜 다른곳을 공격한단 말인가. 수뇌부들의 시선이 모두 진 사령관에게로 모였다.
“각기 다른 세곳을 공격하면서 피스 대원들을 분산시킨 뒤, 오라의 주인을 노린다는 생각이었겠지만 우리에겐 그들이라는 변수가 있었기에 그들은 오라의 주인을 노리지 못한 거지. 하지만 그들이 이렇게까지 나온다는 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노리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오라의 주인을 노린다는 것은 결국 가인 군을 노린단 말이 아닙니까? 그러고 보니 전에 사령관님이랑 중국에 갈 때를 빼고는 가인군은 단 한번도 서울 밖으로 나간적이 없군요. 이것도 진 사령관께서 하신 일입니까?”
“그렇다.”
닥터의 질문에 진 사령관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이대로는 가인이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 어떻게 그렇게 태연하게 말할 수 있는 거에요?!”
이번에는 시더가 강하게 따지고 나섰다. 적은 점점 더 압박해오는데 오라의 주인을 보호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피스 대원들과 따로 떨어뜨려서라도 서울에 머물게 하다니, 이제는 진 사령관이 진짜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피스 블루를 한시라도 빨리 각성시키려면 가이아의 주변에서 떨어뜨리지 않는 것이 좋다. 이것이 우리를 위해서도, 피스 블루를 위해서도 좋다.”
도대체 뭐가 좋다는 거야! 좋은건 당신 뿐이겠지! 마음속으로는 이렇게 외치고 있지만 그래도 자신의 상관이자 한국 지부의 총 사령관이었다. 어쩔 수 없이 그의 결정을 따를 수 밖에.
“그건 그렇고 페이오스 씨와 울드 씨에게 봉인당한 스머그와 레비아탄은 어떻게 하죠? 이대로 내버려 둘 수도 없는데…….”
“글쎄요.”
수정의 말에 작전 본부실에는 침묵만이 감돌았다.
방안의 불이 모두 꺼져있어 어두운 원룸. 그 어두운 방안에 한쪽에 놓여진 침대에 쪼그려 앉아있는 사람이 있었다. 에메랄드 빛 머리칼의 아름다운 소녀. 테레이아 민체스터 아니, 몬스터의 5대 간부 중 하나, 바르의 별인 리리스였다.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끝없이 눈동자가 흔들리고 있었다.
난 어째서 하지 못했던 거지? 무엇 때문에? 난 유메를 구하고 싶지 않은 거야? 그게 아니면 도대체 왜?
‘네가 슬플 때 같이 슬퍼해줄게.’
가인.
‘네가 기쁠 때 같이 기뻐해줄게.’
오라의 주인. 옴팔로스의 열쇠.
‘오늘부터 네 이름은 리리스야. 밤의 여왕이란 뜻이야.’
유메.
‘우린 가족이야.’
유메, 모르겠어. 난 어떻게 해야만 좋지? 응? 제발 알려줘. 유메.
“흑….”
“하하, 무슨 슬픈 일이라도 있습니까. 눈물을 보이다니 밤의 여왕답지 않군요.”
흠칫!
누군가 아무런 기척도 없이 그녀의 방안에 들어와 있었다. 자신이 알기로 여태 단 한명밖에 없었다. 피스 블랙 한시영! 그 인류의 배반자밖에!
“누구 맘대로 들어오는 거지? 네 녀석과는 말하고 싶지 않으니 당장 꺼져!”
“하하. 환대를 기대한 건 아닙니다만 너무 싸늘하군요. 오늘따라 여왕님께서 상당히 저기압이십니다. 아아.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몇 가지 소식을 알려드리러 온 것뿐이니.”
역시 재수 없어! 리리스는 시영의 웃음을 볼때마다 왠지 기분이 나빠졌다. 딱히 밉보인건 없지만 한시영이라는 인물 자체가 꼴도 보기 싫었다. 리리스는 한시영과 쌍둥이라는 한시민을 떠올렸다. 분명 생긴건 똑 닮았는데 이렇게 차이가 날까. 한시민은 볼수록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한시영은 단지 떠올리는 것 만으로도 오체분시를 해서 재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태워서 세상에서 그 존재를 지우고 싶을 정도다.
“무슨 소식? 얼른 말하고 꺼져버려.”
그렇게 말하는 리리스의 목소리에는 싸늘한 한기가 묻어있었다. 가인을 대할때와는 행동이 180도 아니, 차원이 달랐다. 목소리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아니지, 시민은 목소리만으로 죽일 수 있구나.)리리스는 한시영을 수백번도 더 죽일 수 있었을 것이다.
“우선 스머그님과 레비아탄님이 봉인당했습니다.”
“뭐?”
누가 봉인당해? 어떻게? 누구에게? 무슨 수로?
리리스의 눈은 시영에게 이런 질문을 쏟아내고 있었다. 시영은 그 눈빛의 의미를 용캐 알아듣고 하나씩 답변해 주었다.
“스머그님은 페이오스라는 여자에게, 레비아탄님은 울드라는 여자에게 봉인당했습니다. 그 둘이 엄청난 실력자라는 것과 이름 왜에는 딱히 알아낸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영체에서 기억을 읽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 저 자체가 거부당했습니다. 솔직히 이런 일은 처음이라 상당히 당황스러웠죠.”
그럴 것이다. 지금껏 그가 영체에서 정보를 읽어들이고자 하면 누구도 막을 수가 없었다. 시영은 이 능력으로 인해 상대의 기술과 습관이나 기억 등을 알아내고 상대의 기술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헌데 이 능력이 처음으로 막힌 것이다.
“할 말은 그것 뿐? 그렇다면 얼른 꺼져버려.”
그리고선 리리스는 고개를 팩 돌려버렸다. 시영이 어지간히도 보기 싫었나 보다. 하긴 자꾸만 가인을 괴롭히는데 그녀의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전부터 좋아하지 않았지만 가인과 엮이고 나서부터 더욱 싫어진 것이다.
“뭐 그러죠. 여왕님께 더 미움 받기 전에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그럼 이만.”
말이 끝나자 시영은 바로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시영이 사라지자 리리스는 다시 다리사이로 얼굴을 묻고 옛 기억을 하나씩 떠올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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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oord입니다. 이번걸로 어둠편(내가 지어놓고 제목을 까먹었다.ㅡㅡ)이 끝났습니다. 뭐 몇 분이라도 봐주시는 분이 있으니 일단은 계속 써나가겠습니다만…실은 다음 작품을 벌써 구상중에 있습니다. 냐하하하. 쓰게 될지는 미지수입니다. 그럼 다음편을 기대(아무도 기대 안하는데…훌쩍.)해주세요.
*그리고 피스 대원들의 과거 얘기를 써볼까 하는데 어떠세요? 얘기가 궁금하시다면 리플을 남겨주세요. 원하면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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