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식장갑 가이버 제1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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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
제18화 - 악몽의 포위망 -
케이와 앱톰이 전투를 벌인 현장에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이버와 앱톰이 격렬한 전투로 인해
페허처럼 변해버린 현장에는 전투에서 패배한 앱톰의 남은 팔 부분 밖에는 없었다. 조아노이드는 변신 상태
에서 목숨을 잃을 경우 그 육체는 순식간에 부패돼서 사라져 버린다. 전투 형태로 변신을 하느라 급격하게
증식한 세포들이 급속도로 붕괴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다. 따라서 상식적으로는 남은 앱톰의 팔도 금방 부
패돼서 한줌의 먼지가 되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팔의 손가락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푸슉!!
그러자 잘려진 부분에서 뭔가 하얀 액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액체들은 사방으로 퍼졌고 이윽고 천천히
어떤 형태를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사람의 얼굴이었다. 이윽고 그 얼굴의 윤곽이 확실해 졌다. 앱
톰이었다!
"푸하! 허억! 허억!!"
앱톰이 부활한 것이다! 놀랍게도 남은 오른 팔 한쪽만으로 다시 자신의 육체를 복원한 것이다. 남은 팔 부
분은 그대로 죽은 것이 아니라 급격한 세포 분열을 반복해서 육체를 다시 재구성한 것이다. 앱톰은 잠시 숨
을 헐떡이다가 자기가 다시 살아난 것을 확인하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아무래도 이 앱톰은 그렇게 쉽게 죽는 몸은 아닌 것 같군."
이 놀라운 복원력에 앱톰 자신도 놀라고 있었다. 부상을 입으면 조제통에 들어가서 치료를 받아야 하는 다
른 보통의 조아노이드들과는 달리 자기는 스스로 웬만한 부상정도는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
만 설마 이정도일줄은 몰랐다. 이전의 앱톰에겐 이런 능력이 없었다. 닥터 발카스에 의해 재조제를 받고 나
서 생긴 능력이었다. 발카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 앱톰은 재조재 이후 자기 몸에 나타난 변화를 다 말
하지 않고 일부러 숨겼었다.
"쳇! 하지만 이런 몸으로는 아무것도 못하겠군."
앱톰은 복원된 자신의 몸을 보며 혀를 찼다. 부활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유감스럽게도 완전치는 않았다. 팔
한쪽만으로는 양분이 모자랐던지 지금 그는 오른팔과 머리, 그리고 상체 일부분만이 복원돼 있었다. 다시
살아난 건 다행이긴 하지만 이대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응?"
그 때 앱톰은 누군가가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것도 지축을 울리면서 오는걸 보니 아무래도 보
통 사람은 아니었다. 게다가 혼자 오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최소한 3~4명. 어떤 놈들인지 짐작이 갔다. 그
잘난 하이퍼 조아노이드 4인중 녀석들이었다. 앱톰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후후...마침 배가 고프던 참이었는데 잘 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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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가...."
하이퍼 조아노이드 4인중이 케이와 앱톰이 사투를 벌였던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완전히 진 뒤였
다. 혹시나 해서 전투형태로 변신해서 와봤지만 현장에는 가이버 I 의 모습도 가이버 I 을 압도했다는 '형식
불명의 조아노이드'도 보이질 않았다. 다만 여기저기에 불탄 흔적들과 깊게 패인 지면 등등 여기서 아주 치
열한 전투가 벌어졌었다는 것만 알 수가 있었다.
젝토올은 아주 깊고 길게 지면이 패여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이 흔적은 그 정도로 보건데 가이버의 메가
스매셔가 틀림없었다. 그는 새삼 가이버의 메가 스매셔의 위력에 전율하고 있었다. 그렇게 조그만 몸에서
이런 위력의 빔이 발사된다는게 놀라울 정도였다.
"젝토올. 여기 좀 봐봐."
엘레겐이 가리킨 곳에는 온통 불탄 나무들의 흔적만이 보였다. 상당히 넓은 범위를 불태워 버린 것이 위력
이 보통이 아니었다. 비록 가이버의 메가 스매셔 보다는 좀 약해 보이지만 이쪽도 절대 만만치 않아 보였
다.
"가이버가 쏜 것 같지는 않고....그렇다면 그 정체불명의 조아노이드 인가...."
확실히 그렇다고 밖에는 볼 수가 없었다. 메가 스매셔는 한번 발사하면 다시 에너지가 모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실전에서는 사실상 한번밖에는 못 쓴다고 보면 된다. 그런 스매셔를 두세 번이나 쐈을 리
가 없었다. 게다가 이 불탄 흔적은 스매셔 치고는 다소 위력이 떨어져 보이므로 가이버가 쏜 것이라고 보기
는 어려웠다.
"그럼 대체 뭘 어떻게 해서 이렇게 넓은 범위를 불태워버렸지?"
"으음....아마도 나처럼 불을 내뿜은 걸까?"
다젤브는 다소 자신없는 투로 말했지만 젝토올은 고개를 저었다. 불을 지른 거라면 지면의 풀은 몰라도 나
무들이 모조리 다 밑둥만 남아있을리가 없잖은가.
"보통의 생체 열선포 아냐? 예를 들면 바모아 라든지...."
확실히 이 흔적은 빔 공격에 의한 것이라고 봐야 했다. 지면에는 얕지만 고랑까지 파여 있으니까. 하지만
이 위력이 바모아? 말도 안돼는 소리였다. 한 수십 마리가 한꺼번에 쏘면 또 모를까. 젝토올은 고개를 저으
며 말했다.
"이건 빔 공격이라고 봐야 겠지만 위력이 장난이 아냐. 이 정도 위력을 낼 수 있는 조아노이드는 현재 개발
된 조아노이드들 중에서는 아마도 나밖에 없을걸?"
게다가 젝토올 본인도 이 정도 위력을 내려면 몸에 엄청난 부담을 각오해야한다. 그 때 당시 현장에 있었던
공작원 녀석이 있으면 좀 더 자세한 얘기를 들을 수 있겠지만 녀석은 이상하게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그
때 가스터가 뭔가를 발견한 듯 어딘가를 가리켰다.
"젝토올, 저기 봐. 아무래도 그 녀석 당한 것 같은데?"
가스터가 가리킨 곳을 보자 전투 공작원들이 쓰고 다니는 핼맷이 반쯤 녹은 채로 뒹굴고 있었다. 아까 교신
을 할 때 어째서 중간에 통신이 끊겼나 했더니 빔 공격에 당한 것이었다.
"녀석, 멍하니 있다가 가이버를 쏜 빔에 잘못 맞았나봐. 칠칠치 못하게 시리...."
다젤브가 답답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나 젝토올은 어딘가 석연치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자면 다
젤브의 말처럼 치열한 사투의 와중에 상대 조아노이드가 가이버를 노리고 쏜 빔에 그만 휘말리고 말았다고
봐야 했다. 하지만 어째서 일부러 노리고 쏜 것처럼 느껴질까? 물론 노리고 쐈다는 증거는 없었지만 왠지
육감이 그랬다.
-"4인중이여."
그 때 그들의 머리에 강렬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대로 거역할 수 없는 목소리, 조아노이드들에게는 신이
나 마찬가지인 조아로드의 사념파, 그리고 이들의 직속 상관이라 할 수 있는 닥터 발카스의 사념파였다. 4
인중이 재빨리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닥터 발카스! 죄...죄송합니다. 아직 가이버 I 의 흔적을 찾지 못했습니다."
젝토올이 송구스럽다는 듯 머리를 숙였다. 그러나 발카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만 됐다. 기지로 복귀해라."
"네? 하...하지만"
전혀 뜻밖의 명령에 4인중 멤버들은 당황해 하였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그 '형식불명의 조아노이드'란 것이...."
발카스는 이곳 유적기지에 도착한 후 그동안 일본 지부에서 개발했던 조아노이드의 모든 목록을 열람하였
다. 손종 실험체 같은 실패작을 포함해서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실험 기록을 살펴보았었다. 12신장 멤버이
기도 하지만 그 전에 그는 과학자이고 또한 이곳 일본지부의 연구 개발 성과는 눈부신 축에 들었으므로 과
학자로서 탐구열이 발동한 것이다.
-"젝토올, 내가 이곳의 모든 기록을 다 봤지만 너 정도 위력의 생체 열선포를 가진 녀석은 단 한 명도 없었
다."
젝토올은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지었다. 생체 열선포라는건 그렇게 간단하게 위력을 올릴 수는 없는 무기였
다. 이 정도 위력을 가지게 하려면 처음부터 작정하고 만들어야 하고 그런 조아노이드를 이곳 일본지부에서
만들었다면 실험 기록이 없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 지부에서 만든 조아노이드 일까? 아니, 그
렇다면 어째서 그런 조아노이드를 파견한다는 연락이 없었던 걸까?
-"왠지 예감이 좋지 않다. 그 형식 불명의 조아노이드...아니, 그게 정말 조아노이드인지도 확실치 않아..."
"그..그렇다면..."
4인중과 발카스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엄청난 위력의 생체 열선포를 가지고 가이버와 1대1로 싸워
서 압도할 수 있다는 조아노이드. 그것도 발카스를 포함해서 그 누구도 모른다는 것도 어딘가 수상했다. 정
말 그 녀석이 조아노이드가 맞기는 할까?
그러나 고민에 휩싸여있던 이들은 근처에 있는 큰 나무 위에서 자신들을 주시하고 있는 눈이 있다는 사실
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 눈은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갑자기 그 무언가가 나무 위에서 4인중
을 향해 뛰어내렸다.
-휘잉! 탁!
"우왓!!"
엘레겐은 갑자기 자기 등에 뭔가가 달라붙자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엘레겐의 비명에 모두가 깜짝 놀라
엘레겐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엘레겐의 목을 누군가의 팔이 감싸안고 있는 것이 보였다.
"이놈! 넌 뭐냐! 이거 놓지 못해!!"
엘레겐이 자기 등에 달라붙은 누군가를 떼어놓으려 했다. 그 순간 그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았다. 자기 목을
감싸고 있는 누군가의 팔과 자기 피부가 융합하고 있었다! 지금 이 놈이 자기 몸을 피부를 통해 침투하고
있는 것이었다. 공포에 질린 엘레겐이 비명을 질렀다.
"으아아아!! 사...살려줘!!"
"엘레겐!!"
다른 세 명이 엘레겐을 돕기 위해 달려들려 하였다. 그 때 발카스가 이들에게 위험하니 엘레겐에게 더이상
접근하지 말라고 제지하였다. 그리고는 바로 엘레겐에게 다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엘레겐! 전기 충격이다! 고압전기로 녀석을 떨어져 나가게 해!!"
-파지직!!
엘레겐은 바로 자신의 특기인 전기 충격을 가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더 이상 전압을 올릴수가 없었다. 몸
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이 녀석이 이미 몸속 깊은 곳까지 침투해서 몸을 조종하는 것 같았다. 엘레겐은 곧
의식을 잃었다.
엘레겐은 잠시 발버둥 쳤지만 곧 잠잠해졌다. 그 모습을 본 발카스와 나머지 세명은 이미 틀렸다는 걸 알았
다. 엘레겐은 녀석에게 이미 '먹힌' 것이다. 분노한 가스터가 엘레겐에게 달라붙은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소
리쳤다.
"넌 대체 누구냐!! 얼굴을 보여!"
그러자 엘레겐의 등뒤에 있던 자가 어깨 너머로 얼굴을 드러냈다. 그 얼굴을 본 발카스는 큰 충격을 받았
다. 자기가 너무나 잘 알고 있던 자였다.
-"너..너는...앱톰!!"
발카스의 말에 모두들 그제야 알아챘다. 앱톰, 규오 각하의 전투현장을 먼저 발견하고 나중에 자기들과 합
류할 예정이었던 손종실험체 녀석이었다. 그 때 당시엔 안보여서 공격에 휩쓸려 죽었나 싶었는데.... 아니 그
보다 녀석이 왜 저런 짓을 한단 말인가.
"후후후...."
앱톰이 모두를 비웃듯이 조용히 웃었다. 그리고는 3인중을 바라보며 말했다.
"닥터 발카스, 당신의 사념파가 느껴지는군. 아무래도 엘레겐의 몸이 수신기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발카스에 의해 재조제를 받았던 앱톰은 이후 조아로드의 사념파를 수신하는 기능이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
다. 그래서 서로간에 교신할 일이 있을 것을 대비해서 별도의 사념파 수신장치를 머리에 쓰고 수색 임무에
투입됐던 것이다.
"당신도 잘 알겠지만 원래 우리들 손종실험체들은 조아로드의 사념파를 받아들이기 힘든 체질이지. 내 경우
에는 당신의 실험 덕분에 더욱 더 극단적인 상태가 된 거야. 별도의 수신기가 없으면 사념파를 받아들일 수
가 없을 정도로."
-"으으으....! 임무를 팽개쳐두고 어디로 갔나 했더니만... 이게 대체 무슨 짓이냐! 어서 엘레겐에게서 떨어져
라!!"
발카스가 분노를 폭발시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앱톰은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그렇게는 못하지. 엘레겐은 내 영양분이니까. 가이버 I 과 싸우다 잃은 내 몸을 재생시킬 영양분 말이야."
그 말에 모두들 놀랐다. 그렇다면 엄청난 위력의 빔을 발사하고 가이버를 압도하던 '형식불명의 조아노이드
'가 바로 이녀석이었단 말인가! 앱톰 녀석이 언제 이런 힘을 가지게 됐는지 발카스로서는 놀라울 뿐이었다.
앱톰은 모두를 비웃는 듯이 웃으면서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닥터....당신은 날 너무 가지고 놀았어. 실험도 좋지만 실험 당하는 쪽 입장도 생각해 달라고. 후후후."
-"큭...! 이놈이 감히..!"
"내가 당신네 조아로드의 정신지배에서 해방된 건 알고 있겠지?"
발카스는 처음에 앱톰에 대한 실험을 마무리 지었을 때 앱톰이 사념파를 받아들이는 능력이 거의 사라졌었
다는걸 알았을때 눈치챘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사념파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걸 그냥 '단순 기능이상' 정
도로만 치부한 것이 큰 실수였다. 그것이 바로 사념파를 이용한 정신지배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는 것을
그 때는 왜 몰랐을까.
"그래, 난 이미 조아노이드 같은 하찮은 것이 아니야. 거듭된 조재 실험이 날 별종의 생물로서 진화시킨 거
야."
-"뭐라고!"
"이처럼 난 다른 생물을 '융합포식'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지. 다른 생물을 잡아먹으면서 그 육체는 에너지
로 바꿔서 나의 생명활동에 쓰고 그 생물이 가지고 있던 뛰어난 특징을 나의 것으로 만드는 거지."
엘레겐의 몸이 거의 앱톰에게 다 흡수되어가고 있었다. 엘레겐의 머리는 이미 바짝 쪼그라들어 있었고 그
몸은 이미 앱톰의 것이 되었는지 앱톰은 원래는 엘레겐의 팔이었던 것을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발카스
와 3인중은 경악한 채로 앱톰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그렇게 다른 생물들을 사냥하면서 더욱 더 뛰어난 배틀 크리쳐(전투생물)로서 진화해 나간다. 그것이 바로
지금의 나다!"
발카스는 자기가 말도 안돼는 괴물을 만들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른 생물을 잡아먹으면서 자기를 진
화시켜 나가는, 그러면서도 사념파의 통재를 전혀 받지 않는 통재 불능의 괴물을...! 앱톰은 웃으면서 계속
말하였다.
"당신에겐 내가 절호의 실험재료였을지는 몰라도....그 실험이 내 몸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는 좀
더 주의 깊게 살펴야 했어."
이윽고 그나마 남아있던 엘레겐의 머리가 앱톰의 가슴 부분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앱톰은 발카스의 사
념파가 이제 아주 희미해 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후면 발카스의 사념파는 완전히 끊어질 것이다. 엘레
겐의 육체가 완전히 앱톰의 것이 된 것이다. 앱톰이 큰 소리로 광소하며 외쳤다.
"그럼 잘 있어라! 닥터 발카스! 우하하하하!!!!"
앱톰이 엘레겐을 완전히 흡수해 버리자 발카스가 분노를 폭발시키며 외쳤다.
-"젝토올! 다젤브! 가스터! 저 배신자 녀석을 해치워 버려라!!!"
발카스의 명령이 떨어지자 곧바로 3인중이 앞으로 나섰다. 먼저 다젤브가 공격을 개시했다.
"이놈이....잘도 엘레겐을!!"
-고오오!
다젤브의 목이 점점 붉게 물들어갔다. 다젤브의 특기인 초고열방사를 하기 위한 사전 준비였다. 이윽고 다
젤브가 엄청난 화염을 내뿜었다.
"숯덩이로 만들어주마!!"
-푸화악!!
엄청난 화염이 마치 폭포처럼 앱톰을 덮쳤다. 그 화염공격으로 인해 그 일대 숲에 불이 크게 붙었다. 그러
나 모든 것을 태울것만 같은 그 엄청난 화염속에서 앱톰은 태연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젝토
올은 그제야 생전에 엘레겐의 몸은 열에 아주 강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그렇다면 그 특징을 가진 앱톰
녀석에게는 화염 공격같은건 전혀 소용없는 짓이었다.
-철컥!
그 때 태연하게 불길을 맞고 있던 앱톰의 오른쪽 어깨부분이 부풀어오르면서 마치 조개가 열리듯이 위아래
로 열리기 시작했다. 다 열리고 난 후의 모습을 본 젝토올은 깜짝 놀랐다. 저건 생체열선포였다! 젝토올이
다급하게 외쳤다.
"모두 피해!!"
-푸슈웅!!
앱톰이 생체 레이져를 발사하였다. 젝토올과 가스터는 그 공격을 피했지만 한참 화염공격을 하고 있던 다젤
브는 미처 피하질 못했다. 앱톰의 생체 레이져가 다젤브에게 명중하였다.
-퍼억!!
"커허억!!"
"다젤브!"
전신을 뒤덮을 정도로 엄청난 굵기의 레이져에 그대로 노출된 다젤브는 온 몸에 큰 데미지를 입고 비틀거
렸다. 그가 가지고 있는 빔 흡수 능력으로도 다 흡수하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위력이었다. 제대로 서있기도
힘든지 다젤브가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말았다. 깜짝 놀란 젝토올과 가스터가 다젤브에게 달려왔
다.
"다젤브! 이익! 저놈이...!!"
"젝토올! 내게 맡겨!!"
가스터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돌출 되있는 생체 미사일 발사관이 모두 하늘 방향으로 향했
다. 가스터가 앱톰을 조준하며 힘차게 외쳤다.
"이건 어떠냐! 전탄 발사!!"
-파파파팡!!
가스터가 가지고 있던 생체 미사일 전부를 하늘로 발사하였다. 그리고 곧장 뇌파로 미사일들을 원격 조작하
기 시작했다. 그러자 하늘로 솟구치던 미사일들이 일제히 앱톰을 향해 방향을 바꿨다. 미사일들이 앱톰의
사방에서 들이닥쳤다.
-콰콰콰쾅!!!
미사일들이 동시에 착탄하면서 엄청난 폭발이 일어났다. 폭발로 인해 많은 양의 흙먼지가 발생해서 앞이 전
혀 보이질 않았다. 흙먼지 때문에 잘 안보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명중했다면 앱톰은 아마 살점 하나 조차 남
지 않았을 것이다. 가스터는 드디어 해치웠다며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으하하하하!!!!"
그 때 갑자기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틀림없이 앱톰이었다. 녀석이 살아있
단 말인가! 그러나 웃음소리가 메아리 쳐져서 정확한 방향을 알 수가 없었다. 3인중은 당황해 하며 사방을
둘러봤다. 그 때 젝토올이 앱톰을 찾아내었다. 앱톰은 어느샌가 나무 위에 서있었다. 미사일이 명중하기 바
로 직전 그 자리를 빠져나간 것이다. 그야말로 무서울 정도의 스피드 였다.
"재밌는 무기를 가지고 있군. 좋아, 다음 목표는 바로 너다! 가스터."
앱톰이 자기를 가리키자 가스터는 움찔하였다.
"그 때까지 그 몸을 잘 간수하고 있어라. 으하하하!!!"
앱톰은 광소하며 그 자리에서 빠르게 이탈하였다. 나무가지 사이를 재빠르게 건너뛰며 사라져 가는 앱톰을
보며 3인중은 그 자리에서 전율하였다. 단순 실패작 정도로만 치부하고 있었는데 이젠 앱톰녀석은 함부로
싸움을 걸 수가 없는 무서운 괴물로 성장하고 말았다. 한동안 삼인은 말이 없었다. 사념파로 전투 장면을
지켜보던 발카스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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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음..."
"아! 정신이 드세요?"
한동안 조용히 잠자고 있던 베르단디가 이제서야 눈을 떴다. 베르단디가 자는 동안에 크로노스의 조아노이
드가 들이닥치면 어쩌나 하면서 불안에 떨고 있던 핫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한숨 자고난 베르단디는
핫세가 보기에는 괜찮아 보였다. 아까 앱톰이란 괴물에게 호되게 당한 것치고는 다행이었다.
"선배, 괜찮으세요?"
"네, 전 괜찮아요."
베르단디는 핫세에게 걱정 말라는 듯 싱긋 웃어주고는 조용히 법술을 외웠다. 그러자 그녀의 몸을 하얀빛이
감싸더니 옷이 다시 생겨났다. 베르단디가 옷을 다시 만드는 것을 보고 핫세는 너무 놀라서 잠시 말문이 막
혔다. 하긴 베르단디는 여신이라고 하니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전혀 신기할 게 없지만 그래도 핫세에겐 너무
나 놀라웠다. 그 때 핫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베르단디가 이런 식으로 매번 옷을 만들 수 있
다면 옷가게 같은데는 갈 필요가 없지 않을까? 대학에 다닐 적에 베르단디는 거의 매일 옷이 바꼈었다. 케
이의 재정 형편은 뻔히 알고 있던 핫세로서는 베르단디의 옷이 매번 바뀌는게 너무나 수상했었지만 이걸
보니 비로소 의문이 풀리는 것 같았다. 사실 그건 핫세가 아주 정확하게 본 것이었다. 베르단디는 옷을 살
필요가 전혀 없이 길을 가다가 옷가게의 쇼윈도 안을 보거나 패션 잡지를 보면서 원하는 옷을 만들어 입었
으니까.
"하하...그거 참 편리하네요....옷 걱정은 안해도 되니까..."
베르단디는 핫세가 저런 말을 하는 이유를 몰랐지만 그냥 빙긋 웃어주었다. 베르단디는 동굴밖을 내다봤다.
밖이 어두운 것이 밤이 된 것 같았다. 아까 앱톰이 나타났을때는 저녁 무렵이었으니 한 몇 시간은 잔 것 같
았다. 다행히도 그 동안 이렇다할 큰 일은 없던 모양이었다.
"케이씨는 아직 안 돌아오신 건가요?"
"네....아까 그 괴물과 싸우러 나가신 이후로는 아직 까지요...."
베르단디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동굴 밖을 보았다. 케이에게 구출된 직후 자신은 더 견디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졌었기 때문에 그 이후는 못 봤지만 아마도 케이는 앱톰과 싸우기 위해 동굴 밖으로 나갔을
것이다. 그로부터 한참 지났는데도 케이가 아직까지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 때문에 베르단디는 케이가 걱정
되었다.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베르단디는 동굴 입구 쪽으로 시선을 둔 채로 생각하였다. 앱톰이 말한 케이마씨의 비극적 죽음. 그것도 자
신들의 의사와 상관없는 무의식중에 벌어진 일이라고 하지만 그 아들인 케이와 사투를 벌인 끝에 아들의
손에 죽었다니.... 베르단디는 그 일이 아직까지도 믿어지지 않았다. 그 일로 인해 케이는 마음에 깊은 상처
를 입고 기억을 부분적으로 잃고 그 뿐만이 아니라 가이버의 힘을 잃기까지 할 정도였다.
"케이선배는....정말 굉장해요. 어떻게 그런...."
핫세는 감탄한 듯이 말했다. 핫세의 말에 베르단디도 전적으로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 말은
안 했지만 베르단디는 핫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케이는 그런 엄청난 비극을 접하고도 굴하
지 않았다. 깊은 절망을 뛰어넘어 다시 치열한 전장으로 몸을 던졌다. 바로 베르단디를 구하기 위해서. 4년
동안 케이와 함께 지내면서 베르단디는 케이의 강인한 마음을 수도 없이 보았다.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
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의 모습, 베르단디가 그에게 반한 이유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너무나도 가혹한 일을 겪었다. 그래도 케이는 주저앉지 않고 이번에도 앞으로 나아갔다.
슬픔을 가슴에 새기면서.... 베르단디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갑자기 베르단디가 눈물을 흘리자
핫세는 깜짝 놀랐다.
"서..선배! 왜 그래요? 어디 아픈거에요?"
"아...아뇨...전 괜찮아요...."
베르단디의 눈에서는 계속해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핫세는 베르단디가 우는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
었다. 베르단디는 도저히 견딜수가 없었다. 이런 가혹한 길을 걸어야 하는 케이의 운명이 너무나도 슬펐다.
핫세가 그녀를 측은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베르단디...."
그 때 동굴 밖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깜짝 놀랐지만 곧 그 목소리의 주인공
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케이였다. 베르단디가 그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서서는 케이에게 달려갔다. 동굴 입
구에는 식장을 해제해서 보통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케이가 서 있었다. 베르단디는 그대로 케이의 품에
안겼다.
"케이씨! 무사하셨군요!"
"...다녀왔어."
베르단디는 그를 꼬옥 끌어안았다. 마치 케이의 무사함을 확인하려는 듯이. 케이가 무사한 것을 알자 베르
단디는 비로소 안심이 되었다. 케이는 그녀의 등을 토닥이면서 안심하라고 말해주었다.
"늦게 와서 미안해. 주변에 다른 추적자들이 있을까봐 일부러 멀리 돌아왔거든. 동굴 부근에 와서도 다른
적이 없나 확인하느라...."
"흑! 으흐흑!!"
"베르단디?"
그런데 베르단디는 케이를 안은 채로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케이는 베르단디가 왜 이리 서글프게 우는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저 케이가 늦게 와서 걱정이 되었던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다가 케
이는 비로소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베르단디...."
"흑흑흑...."
베르단디는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케이는 포옹을 풀고는 베르단디를 마주 보았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케이는 그 눈을 보고 마음이 아파왔다.
"난 어떠한 고난이 닥치더라도.... 널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극복해 낼거야. 난 널 목숨걸고 지켜줄 꺼니까...."
"흐흑...케이씨..."
"그러니까....웃어주지 않을래? 난 너의 웃는 모습이 제일 보고 싶어."
케이는 베르단디를 보며 그대로 미소를 지었다. 베르단디는 손으로 눈물을 훔치고는 케이에게 미소를 지어
줬다. 최소한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겠지만 그녀의 눈에서는 여전히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어서 상
당히 어색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케이를 위해서라도 더 이상 울 수는 없었다. 베르단디는 눈물을 다시 훔치
고는 미소를 지으려 노력하였다.
"전...전 웃어요. 웃고 있어요... 흑...흑...."
잠시 후 두 사람은 다시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그 모습을 보며 핫세 역시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핫세에겐 이런 가혹한 현실에도 굴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케이의 모습이 너무나도 커 보였다. 그리고
너무나도 슬퍼 보였다.
동굴안에서는 한동안 베르단디의 흐느낌만이 울려 퍼졌다.
******************************************
아침이 밝았다. 케이는 혹시나 적이 쳐들어 올까봐 불침번을 서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 사실 어젯밤에는 베
르단디가 자신이 불침번을 서겠다고 했지만 케이가 억지로 자기가 서겠다고 하였었다. 베르단디도 여러 가
지로 힘들었었기 때문에 좀 더 휴식을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일은 남자가 해야 한다는 자존심 비슷한 것도 작용하였다.
아침이 밝아오자 케이는 동굴 근처에 있던 냇가로 나가서는 세수를 하면서 잠을 쫓았다. 생각 같아서는 오
전 동안만이라도 동굴 안에서 한 숨 자고 싶었지만 이곳은 적지인데다가 어제 앱톰이랑 그런 격렬한 전투
를 치렀으니 크로노스 놈들이 이 지역을 이잡듯이 뒤질게 뻔했다. 좀 있다가 베르단디와 핫세를 깨워서는
서둘러 이 곳을 떠나야 했다.
"케이씨..."
그 때 베르단디가 냇가로 나왔다. 어느새 베르단디도 일어나 있었다. 푹 자서 그런지 그녀의 얼굴에는 화색
이 돌았다. 베르단디는 걱정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케이에게 다가왔다.
"괜찮으세요? 어제 거의 쉬시지도 못했잖아요."
"응? 아...난 괜찮아. 걱정하지마."
베르단디가 조용히 법술을 외웠다. 그러자 그녀의 손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베르단디는 그렇게 손에
법술력을 맺히고는 케이의 머리를 살며시 감싸듯이 머리 위에 손을 얹었다. 그러자 손에 맻혀있던 법술력이
케이의 머리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러자 케이는 이내 머리 속이 개운해 졌다는 것을 느꼈다. 수면부족으
로 인해 머리에 두통이 느껴졌었는데 그게 말끔히 치유된 것이다.
"고마워, 덕분에 머리 속이 개운해 졌어. 역시 베르단디야."
"별 말씀을요, 이 정도는 케이씨가 저에게 해 주신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에요."
베르단디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케이를 바라보았다. 어제는 그야말로 통곡하다시피 했는데 지금은 많이
진정된 모양이었다. 그 미소를 바라보던 케이는 대번에 얼굴이 빨개졌다. 베르단디의 저 미소만 보면 케이
는 왠지 많이 부끄러워져서 그녀를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숫기가 부족하다고나 할까.
"저....저기 베르단디. 이따가 핫세를 깨운 다음 여기를 벗어나자."
케이는 얼굴이 빨개진 체로 황급히 화제를 딴 데로 돌렸다. 역시 그는 이런 분위기에는 쥐약이었다. 케이는
땅바닥에 있던 잔돌을 줍고는 괜히 개울에다가 던지면서 말했다.
"네, 하지만 어디로 가죠?"
"글쎄...."
-첨벙!
케이는 개울에다가 계속해서 돌을 던졌다. 사실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무작정 돌아다닐 수는 없다. 그렇
다면 어디로? 어제 밤새도록 케이는 그 문제로 고민했다. 그리고 오늘 아침 무렵 그는 어느 정도 생각을 정
했다.
"일단 마을로 내려가자. 마을에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크로노스 녀석들이 우릴 발견해도 함부로 공격해 오진
않을 꺼야."
이것이 케이가 내린 결론이었다. 마을 사람들 틈에 섞이면 보는 눈이 많으니 크로노스도 함부로 공격에 나
서진 못할 것이다. 크로노스는 조아노이드를 들키지 않기 위해 여러 가지로 신경을 쓰니까 말이다. 그렇게
마을로 내려가면 시외로 빠져나갈 방법을 찾기도 쉬울 것이다.
"그런 다음에 울드나 스쿨드, 린드들과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 그들은 분명 살아있어. 분명
히."
-첨벙!
어제 나타났던 가이버 III 는 앱톰이 변장했던 가짜였다.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살아있을거라는 희망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베르단디는 더욱 더 울드들의 걱정 때문에 불안해하였다.
"걱정마, 다들 살아있어. 난 그렇게 믿어."
"케이씨...."
베르단디는 미소를 지으며 케이를 바라보았다. 케이의 말을 들으니 불안이 가시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다
시 희망을 가지기로 하였다. 케이와 베르단디는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물론 케이는 평소
에도 그랬던 것처럼 얼굴을 붉히면서 쑥스럽다는 듯이 서있었지만. 케이는 좀 더 용기를 냈다. 그렇게나 바
라마지 않던 참으로 로맨틱한 분위기 아닌가. 케이는 베르단디에게 다가가서는 그녀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베르단디의 얼굴에 옅은 홍조가 나타났다. 케이는 좀 더 용기를 내서.....
"꺄아악!!"
그 때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케이는 허둥대다가 그만 뒤로 넘어져서는 개울에 빠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아까 그 목소리는 틀림없이 핫세였다! 두 사람은 서둘러 동굴 쪽으로
뛰어갔다. 그러나 동굴까지 뛰어갈 것도 없었다. 두 사람은 개울가에 있던 큰 바위 뒤편에 주저앉아 있는
핫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으..으히익! 뱀이야! 뱀!!"
핫세는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케이가 핫세가 보고 있던 방향을 보자 과연 조그만
뱀 한마리가 보였다. 그 뱀은 핫세의 호들갑 때문에 되려 깜짝 놀라서는 도망가고 있었다. 케이는 일단 핫
세를 진정시켰다.
"일단 진정하고....너, 여기서 뭘하고 있었냐?"
"에...아...그러니까 씻으러 나왔는데 뱀이...."
"아니....뱀은 아무래도 좋아. 바위 뒤에 숨어서 뭣하고 있었냐고."
핫세는 얼굴이 빨개진 체로 우물거리기만 할뿐 대답하지 못했다. 케이는 대충 짐작이 갔다. 아마도 일어난
후 씻으러 나왔다가 자신과 베르단디가 분위기를 잡고 있자 바위 뒤에 숨어서 엿보고 있던 거겠지. 그러다
가 근처를 지나가던 뱀을 보고는 호들갑을 떤 거겠지. 모처럼 잡은 분위기가 망가지자 케이는 한숨만 푹 내
쉬었고 핫세도 그런 케이의 마음을 알았는지 면목없다는 듯이 고개를 푹 숙였다. 베르단디만이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이해를 못해서 어리둥절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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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산길을 걸어 내려온 케이들은 점심 무렵에는 드디어 다케시로 마을에 내려올 수 있었다. 그 동안은
한번도 크로노스의 조직원들과 마주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야말로 엄청난 행운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
였다. 그러나 숲속에 몸을 숨길 수 있던 산속에서와는 달리 이번에는 확실히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얼마 안돼서 금방 들키고 말 것이었다. 게다가 내려 온 걸로 다 끝난 것이 아니다. 울드들과 연락을 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또한 이 지역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도 찾아야 했다.
세사람은 다케시로 마을의 상점가를 거닐고 있었다. 점심때라서 그런지 상점가에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있었
다. 이렇다면 크로노스는 함부로 행동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선배....혹시 돈 좀 없으세요?"
핫세가 다소 기운 없는 목소리로 케이에게 물었다. 점심때가 돼서인지 배가 고파서 저러는 것 같았다. 그러
나 케이 역시 돈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생각해보니 어제 아침이후로는 사실상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 근
처 식당에서 풍겨 나오는 음식 냄새가 이들의 후각과 식욕을 강하게 자극하고 있었다.
"케이씨, 잠깐 전화 좀 할께요."
그 때 공중전화를 보자 베르단디가 그 쪽으로 달려갔다. 동전은 일행들 모두가 다 없었지만 상관없었다. 베
르단디는 긴급통화 버튼을 누른 후 다이얼을 눌렀다. 사실 긴급통화 버튼을 누르면 일반 번호로는 전화를
걸 수 없지만 지금은 별로 상관없다. 왜냐하면 베르단디가 전화를 걸려는 곳은 이곳 '인간계'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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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우...."
페이오스는 휴게실에 앉아서 한숨만 푹푹 내쉬고 있었다. 베르단디들과 연락이 완전히 끊긴지 벌써 일주일
째였지만 생사조차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연락이 전혀 안 되기에 규정을 위반해 가면서 까지 지상으
로 내려가 봤지만 베르단디들이 살던 절은 엉망으로 부숴진채 방치돼 있었다. 척봐도 무슨 큰 싸움이 벌어
진 것이 틀림없었다. 게다가 임무 수행차 내려간 린드조차도 연락이 전혀 되질 않아서 지금 전투부는 비상
이 걸려있는 상태였다.
아니, 전투부 뿐만이 아니다. 지금 천계 최고 평의회 같은 곳은 아주 난리가 났다. 하계에 내려가 있는 베르
단디들이 모두 실종되자 천계에서는 연일 대책회의가 열렸다. 지금 최고 평의회는 두 가지로 의견이 갈려있
는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인간계로 내려가서 크로노스와 일전을 벌여야 한다는 강경파와 아직은 섣불리 움
직일 때가 아니라는 신중파로 나뉘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던 간에 이대로 크로노스를 내버려두면 너무
위험하다는 데에는 모두가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나 크로노스의 정확한 전력도 모른 채로 싸움을
거는 것은 솔직히 너무 무모한 일이었다. 게다가 전면전을 벌이려면 생명을 공유한다는 타블렛 계약이 얽혀
있는 마계의 협조가 필요했다. 그러나 마계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답변을 보내오질 않았다. 마계에서도 의견
이 갈린 건지 아니면 아예 나서지 않기로 결정한 건지는 알 수가 없었다.
페이오스는 그 동안 백방으로 베르단디들의 생사를 확인하려 애썼다. 상부에서 연일 베르단디들의 소재를
파악하라고 독촉이 떨어져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거와는 무관하게 페이오스 역시 베르단디들이 너무나도 걱
정되었기 때문이었다. 평소에는 라이벌이라고 하면서 베르단디와 거리를 두려는 듯 해 보여도 사실 그녀는
베르단디를 속으로는 인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단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죽은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을
알아냈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확신은 못하지만....
"페이오스! 페이오스!!"
그 때 휴게실로 누군가가 뛰어들어왔다. 유그드라실 관제실 오퍼레이터인 크로노 였다. 그녀는 무슨 큰 일
이라도 났는지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페이오스는 또 위에서 독촉하는 거라 지레짐작하고는 시큰둥하게 대
답했다. 그러면서 여유 있게 찻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뭐야, 또 위에서 호출이야?"
"헉헉! 그..그게 아니라... 허억!!"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만 같은 크로노와는 대조적으로 페이오스는 아주 여유 있게 홍차의 향을 느끼면
서 차를 마셨다.
"베르단디 한테서 연락이 왔어요!!!"
"푸웁!!!"
******************************************
케이와 핫세는 초조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베르단디가 어디로 전화를 걸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지금 그들은 크로노스의 감시망에 포착됬을것이 확실했다. 다만
이곳은 사람이 많이 다니는 다케시로 마을 상점가라서 보는 눈이 많아서 함부로 행동을 못하고 있다 뿐이
지 기회만 되면 반드시 달려들 것이 확실했다. 가능한 한 빨리 이 지역을 벗어나서 안전한 곳으로 가야 했
다. 물론 베르단디 역시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녀 역시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 때 상대
방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베르단디?!!"
"아! 페이오스!"
드디어 페이오스와 연락이 닿자 베르단디의 얼굴이 환해졌다. 수화기에서 들려오는 페이오스의 목소리는 당
황함이 느껴졌다.
-"걱정했었어! 대체 지금까지 어디 있던 거야! 지금 천상계는 너희들 때문에 난리가 났단 말이야!"
"미안, 자세한 얘기는 할 시간이 없어. 그것보다 울드 언니나 스쿨드, 린드 한테서는 연락 없었어?"
시간이 없는 관계로 베르단디는 바로 용건부터 말했다. 어제 이후로 지금까지 베르단디는 울드와 스쿨드,
린드 걱정 때문에 한시도 맘이 편치 못했다. 규오의 공격에 노출된 그들이 잘못된 것만 같았다. 그래서 빨
리 여기를 빠져나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전화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전혀. 아직까지는 연락이 없어. 소재는 고사하고 생사확인조차 안되고 있어."
"그럴수가....."
베르단디의 얼굴에 근심이 더욱 더 짙어졌다. 일말의 희망을 갖고 전화를 했지만 긍정적인 소식은 없었다.
수화기에서 페이오스의 심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르단디, 아무튼 당장은 너 만이라도 천계로 돌아와. 거긴 너무 위험해."
"그건 안돼. 난 계약을 이행해야 해."
베르단디가 말하는 계약이란 케이와 맺은 것을 말했다. 너같은 여신이 계속 내곁에 머물러 달라는 소원. 원
칙적으로는 소원을 빈 케이가 그걸 해지하거나 주신의 강제 소환 명령이 있기 전까지는 베르단디는 계속
지상계에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지금은 원칙만 따질 데가 아니었다. 페이오스는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럼 케이씨도 같이 데리고 오던가! 규정 위반이긴 하지만 사정만 잘 설명하면..."
"안돼! 그랬다간 케이씨의 목숨이 위험해!"
-"그건 또 무슨 소리야?"
페이오스는 베르단디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인간이 혼자서 게이트를 통과하는 건 불가능하긴 하지만
여신이 도와준다면야 어렵지 않은 일이므로 목숨이 위험할 일은 없다. 그렇다고 설마 천계에서 누가 케이를
죽이려 들까. 그러나 페이오스는 천상계가 가이버의 컨트롤 메탈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
다. 천계가 가이버를 잡으려고 전투부를 파견했다는 사실도 그녀는 모르고 있었다. 페이오스가 이해를 못하
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그건....사실 천계는 케이씨를 노리고 있어. 정확하게는 가이버의...."
베르단디는 페이오스에게 사정을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 때 케이가 베르단디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베르단디! 크로노스야!! 빨리 도망쳐야 해!"
깜짝 놀란 베르단디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검은 양복의 남자들이 보였다. 그것
도 상당한 살기를 품고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크로노스가 틀림없었다.
"미안! 페이오스, 나중에 다시 전화할께!"
그리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그 즉시 세 사람은 서둘러 달리기 시작했다. 녀석들이 자신들을 찾아낼 거
라는 건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행동에 나설 줄은 몰랐다. 기껏
해야 미행 정도만 할 꺼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큰 오산이었던 것이다. 크로노스 조직원들이 그들을 쫓아
달려오기 시작했다. 조직원들은 케이들을 쫓아오면서 휴대한 무전기로 유적기지에 케이들을 발견했다는 보
고를 하였다.
******************************************
'이놈들.... 어젯밤 이후로 어디로 갔나 했더니만....'
유적기지에서 다케시로 마을에 나가있는 공작원들의 보고를 받은 발카스의 표정은 심각했다. 발카스는 저들
의 의도를 곧 간파해낼 수 있었다. 녀석들이 마을에 내려온걸 보니 아무래도 시외로의 탈출을 기도하고 있
는 것이 틀림없었다. 들킬걸 뻔히 알고 있을텐데도 마을로 내려온 걸 보면 보는 눈이 많다면 아무래도 자신
들이 함부로 정체를 드러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리라. 녀석들이 주제에 얕은꾀를 부리고 있는 것이
다. 발카스가 현지의 공작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잡아라! 변신을 해서라도 잡아!!"
-"네? 하..하지만..."
발카스의 명령에 공작원들이 당황해 하였다. '아직'은 조아노이드를 함부로 드러내면 안돼는 때인데도 불구
하고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변신하라는 발카스의 명령에 공작원들이 당황해하는건 당연했다. 그러나
발카스는 확실히 못을 박았다.
"상관없다! 지금은 비상사태야. 여차하면 그 지역 전체를 봉쇄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라!"
-"알겠습니다!"
조아노이드를 들키지 않게 하는 것보다는 지금은 가이버 I 을 잡는 게 더 시급했다. 뒷수습이야 나중에 어
떻게든 할 수 있으니까 상관없었다. 발카스가 초조하게 스크린을 바라보는 동안 그의 뒤쪽에 도열해 있던
젝토올과 다젤브, 가스터가 발카스에게 건의를 하였다.
"닥터 발카스, 만약 가이버 I 이 정말로 부활했다면 저희들이 나가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반형 조아노이드
들은 가이버의 상대가 못됩니다."
그러나 발카스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보통의 조아노이드는 가이버를 못 이긴다. 하이퍼 조아노이드인 이들
만이 상대할 수 있다. 그러나 어제의 앱톰 문제도 있기 때문에 함부로 이들을 밖으로 내보낼 수가 없었다.
출동했다가 만약 이들이 앱톰의 먹이가 되기라도 한다면 그게 더 큰일이다. 발카스는 3인중에게 그냥 계속
휴식을 취하고 있으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스크린을 응시하며 말했다.
"어차피 너희들이 없어도, 가이버 I 을 잡을 방법은 있다. 지켜만 보거라."
******************************************
발카스의 명령이 떨어졌으니 더 이상 망설일 이유는 없었다. 공작원들이 일제히 조아노이드로 변신하였다.
-투둑! 찌이익!!
"크아악!!"
거리 한복판에서 멀쩡한 사람이 갑자기 괴물로 변신하자 주변에 있던 마을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서 비명을
질렀다. 그 비명 소리에 케이와 베르단디가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러자 조아노이드가 자신들을 쫓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세 사람은 경악하였다. 이렇게 사람이 많은 데서 대놓고 변신까지 할 줄은 생각조차 못
했다. 셋은 힘껏 달렸지만 결국 얼마못가 조아노이드들에게 따라 잡히고 말았다.
"베르단디!"
케이는 같이 달리던 베르단디와 핫세를 옆으로 밀쳤다. 덕분에 두 사람은 간신히 조아노이드의 손에 잡히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케이 자신이 잡히고 말았다. 조아노이드는 케이의 양어깨를 두 손으로 꽉 붙잡았다.
그 순간 케이가 강하게 외쳤다.
"가이버어어!!!"
-퍼어엉!!
강식장갑을 소환할때 발생하는 강력한 충격파로 인해 케이를 붙잡은 조아노이드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조아노이드들이 바짝 긴장하였다. 역시 보고대로 가이버 I 은 부활한 것이다! 그렇다면
절대로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었다. 조아노이드들이 케이의 주변을 둘러싸며 신중하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철컥! 부우웅~
케이는 고주파 소드를 전개하고 곧장 바로 앞에 있는 조아노이드에게 달려들었다. 케이 입장에서는 서둘러
서 이 지역을 도망치는 게 우선 이었기 때문에 서둘러 승부를 지어야 했다. 지금 이 녀석들과 여기서 싸움
같은걸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케이가 힘껏 고주파 소드를 휘둘렀다.
-촤악!!
"끄아악!!"
고주파 소드에 베인 조아노이드가 엄청난 양의 피를 쏟으며 반으로 쪼개졌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조아
노이드들이 일제히 달려들기 시작했다. 케이는 자기 옆쪽에서 돌격해오는 조아노이드를 바라보며 헤드빔을
쏘려 하였다.
-위잉!
"윽! 이런!"
그러나 바로 그 조아노이드 뒤쪽에는 공포에 질린 마을 사람들이 서 있었다. 헤드빔은 한점에 강력한 에너
지를 집중시켜 발사하는 무기, 때문에 범위는 좁지만 관통력은 상당히 강력했다. 지금 여기서 헤드빔을 날
렸다가는 상대 조아노이드의 몸을 뚫고 나가서 그 뒤에 서있는 일반시민까지 맞춰버릴 가능성이 높았다. 케
이는 헤드빔 발사를 포기하고 그대로 조아노이드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높이 도약하면서 상대 조아노이드
의 턱을 힘껏 걷어찼다.
-퍼억!!
케이의 강력한 발차기에 조아노이드는 턱이 박살나면서 뒤로 쓰러졌다. 주변을 둘러본 케이는 낭패한 표정
을 지었다. 마을 사람들이 우왕좌왕 하면서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었다. 개중에는 도망가는 사람도 있었지
만 그건 아주 소수고 대게는 그 자리에서 이 싸움을 불안한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심지어는 뭐가 좋은지
디카나 폰카로 이 장면을 찍어대며 히히덕 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부근에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원거리
무기는 아무 것도 쓸 수가 없었다. 결국 방법은 육박전뿐이었다.
******************************************
"여보, 저거 지금 영화 촬영중 일까요?"
근처에 있는 생선가게에서도 격투 장면이 생생하게 보였다. 그 장면을 생선가게 주인인 여자가 불안한 눈으
로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너무 비현실적인지라 그렇게 무섭게는 보이질 않았다. 이상한 괴물들이 서로
싸우고 있는 게 마치 아들이 자주 보는 특촬물에 나오는 괴물들과 비슷하였으니 무슨 영화촬영 중인가 하
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늘 여기서 무슨 촬영이 있을 거라는 얘기는 전혀 듣지 못했다. 전에 한
번 여기서 영화를 촬영한 적이 있긴 했지만 그 때는 이른 아침부터 촬영 스테프들이 각 가게를 오가면서
촬영에 협조해 달라고 부탁하며 다녔었다. 가게에서 촬영현장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고 있으면 '배경'이
제대로 안 사니까 당연한 조치였다. 게다가 그때는 카메라며 스테프 들이며 정신없이 왔다갔다하는 통에 장
사도 제대로 안됐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런 사람들은 코빼기도 보이질 않았다.
"에휴, 또 옆에 편의점이랑 식당은 장사 잘 되겠구먼. 우리만 파리 날리고.... 안그래요? 여보."
영화 촬영이 있다면 스테프 들이 요기할 일이 있으니 식당이랑 편의점은 장사가 잘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
나 생선가게인 이곳에서 스테프들이 뭘 사갈리는 만무했다. 여자는 그렇게 푸념을 늘어놓으며 남편을 바라
보았다.
"크...크으으..."
그런데 남편의 상태가 이상했다. 어디가 아픈지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며 이상한 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걱
정이 된 여자가 남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
"크으으...크아아아!!!"
그 순간 갑자기 남편의 몸이 폭발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남편의 얼굴이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여자는 그 자리에 주저앉으며 비명을 질렀다.
"아...아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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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아악!!!"
비명소리가 들려오자 케이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어떤 가게 안에서 갑자기 튀어나오는 조아
노이드의 모습이 보였다. 케이는 깜짝 놀랐다. 왜 저 녀석이 가게 안에서 튀어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도 녀석들이 무고한 사람들까지 인질로 잡으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러나 케이는 새롭게 나타
난 조아노이드가 크로노스와는 아무 상관없는 그 가게의 주인 아저씨라는 생각은 전혀 하질 못했다. 케이는
새롭게 나타난 '적'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야압!"
-퍼억!!
케이의 강력한 정권에 맞은 그 조아노이드가 뒤로 쓰러졌다. 케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주변을 둘러보았
다. 그러자 골목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조아노이드의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 싸움을 계속하는 건 자신들도
불리하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너무 위험했다. 그러나 조아노이드가 사방에서 계속 나타나고 있어서 도망치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서..선배..."
핫세는 무서운지 베르단디에게 꼭 붙어 있었다. 베르단디는 핫세를 달래면서 주변을 돌아봤다. 도대체 어떻
게 된 일인지 조아노이드들이 끝도 없이 나타나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마을은 완전히 크로노스의 수중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베르단디가 불안한 눈으로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케이를 바라보았다.
"아빠! 아빠! 어디 아퍼?"
그 때 그녀의 눈에 어떤 부녀의 모습이 보였다. 한 5~6살이나 됬을것 같은 여자아이와 그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였는데 아버지의 모습이 어딘가 이상했다. 머리가 아픈 듯 그 남자는 머리를 감싸쥔 채로 그 자리에 무
릎꿇고 신음하고 있었다. 베르단디가 그 두사람을 돕기 위해 그 곳으로 달려가려 하였다.
"크아아아!!!"
그 순간 갑자기 그 남자의 몸이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한 마리의 조아노이드로 변신하였다. 갑작스러운 아버
지의 변화에 아이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트렸고 그 모습을 본 베르단디와 핫세는 큰 충격을 받았
다. 저 사람이 조아노이드라니! 그렇다면 설마 저 아이 아버지도 크로노스의 조직원이란 말인가?
"으으아악!! 미...미노루!!"
"쿠아아아!!!"
그 때 다른 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마을 청년 한명이 조아노이드로 변신하고
있었다. 그것을 신호탄으로 부근에 있던 마을 사람들의 상당수가 조아노이드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케이와
베르단디는 그제야 이곳에서 조아노이드들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를 알아차렸다. 어느 샌가 이 곳
다케시로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강제로 조아노이드로 조제되있던 것이다. 그리고 케이들
이 나타나자 크로노스일당이 사념파를 방사해서는 이들을 한마리의 짐승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상상이상으
로 잔인한 크로노스의 행위에 케이들은 경악하였다.
"크아악!"
조아노이드가 되버린 마을 사람들이 케이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케이는 공격을 피하기만 할 뿐 함부
로 반격을 할 수가 없었다. 이들은 크로노스의 조직원이 아니다. 무고한 희생자들일 뿐이었다. 케이는 차마
그들을 쓰러트릴 수가 없었다.
-퍼억!
"우악!!"
그러나 워낙 수가 많아서 다 피할 수가 없었다. 결국 케이는 조아노이드의 주먹에 얼굴을 맞고 뒤로 퉁겨져
나갔다. 깜짝 놀란 베르단디와 핫세가 케이에게 달려왔다.
"케이씨!!"
"케이 선배!"
그 때 그녀들에게 조아노이드 한 마리가 달려들었다. 베르단디가 재빨리 법술을 외우려 하였다. 그 순간 베
르단디는 이 조아노이드가 원래는 무고한 이곳 주민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때문에 함부로 공격법술을 외
울 수가 없어서 그녀는 그 자리에서 머뭇거렸다. 그 때 쓰러져 있던 케이가 재빨리 베르단디에게 달려왔다.
"위험해!"
-콰악!
케이는 베르단디의 앞을 막아서서는 그 조아노이드의 손을 잡고 힘겨루기를 하기 시작했다. 상대 조아노이
드는 라모티스, 가이버와는 완력 면에서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약한 조아노이드이다. 평소라면 가뿐하게 제
압할 수 있겠지만 케이 역시 지금은 차마 공격할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베르단디가 바람의 법술을 구사하였
다.
-후우우웅!!
갑자기 어디선가 맹렬한 바람이 불어와서는 그 조아노이드를 멀리 밀어버렸다. 그러나 단지 밀기만 했을 뿐
상대방은 전혀 타격이 없었다. 차마 공격할 수가 없어서 고육지책으로 바람의 힘으로 밀기만 한 것이다. 세
사람은 한데 모여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느 샌가 그들은 사방으로 포위돼 있었다. 도망치려면 저들을 쓰
러트려야 했다. 그러나 케이도 베르단디도 공격은 할 수가 없었다. 저들은 단지 사념파에 의해 이성을 잃고
크로노스의 꼭두각시가 된 것일 뿐이지 적은 아니었다.
"베르단디, 핫세, 미안해. 난 도저히 저들과는 싸울수가 없어....!"
"네, 저도 그래요. 케이씨...."
그러나 두 사람이 머뭇거리는 동안에도 조아노이드로 변한 마을 사람들이 서서히 포위망을 좁혀오고 있었
다. 싸울수도 없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잡힐 수는 더더욱 없었다. 케이가 베르단디에게 말했다.
"베르단디, 어떻게 안될까? 저들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릴수만 있다면...."
"예, 한번 해볼께요."
베르단디가 법술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녀 역시 케이와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케이의 말을 금
방 이해할 수가 있었다. 잠시 그녀의 몸 주위가 하얗게 빛나기 시작하더니 주변에 돌풍이 불기 시작했다.
"바람이여 불어라, 그 자유로운 손으로 우리의 모습을 감추어다오."
-후우우우!!!
베르단디들의 주변을 중심으로 엄청난 속도의 회오리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 바람으로 인해 주변에 흙먼
지가 자욱하게 일기 시작했다. 그로 인해 시계가 나빠져서 조아노이드들은 대혼란에 빠졌다.
"좋아! 지금이야!!"
-휘잉!
케이는 핫세를 업고 베르단디와 함께 근처의 높은 건물의 지붕위로 날아올랐다. 아래에서는 아직도 조아노
이드들이 서로 뒤엉켜서는 케이들을 찾고 있었다. 다행히 아무도 이곳으로 날아오르는걸 보지 못한 것 같았
다. 세 사람은 잠시동안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상상이상으로 끔찍한 크로노스의 만행에 이들은 할말
을 잃었다. 마을 사람들 대부분을 강제로 조아노이드로 만들다니! 도대체 크로노스는 인간을 뭘로 알고 있
다는 말인가...
"이건...이건 마치...."
핫세는 뭔가 말하려다가 깜짝 놀라며 손으로 입을 막았다. 그러면서 케이의 눈치를 살폈다. 케이는 말없이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핫세는 다 말하지 않았지만 그는 핫세가 뭐라 말하려 했는지 알았다. 케이는 무
거운 음성으로 말했다.
"그래...케이마씨와 같아...!"
케이마씨때와 같았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크로노스에 의해 한 마리 짐승으로 변해버린 이들은 언제
든지 크로노스에 의해 자신의 의사와는 관계없는 짓을 저질러야 했다. 이들은 그 순간부터 진정한 자유란
것을 잃고 말았다. 과연 이 만행으로부터 이들을 구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쿠웅!!
그 순간 케이들이 있던 건물 옥상에 뭔가가 떨어졌다. 깜짝 놀란 그들이 고개를 돌렸다. 떨어진 건 바모아
였다! 깜짝 놀란 케이가 그 바모아를 공격하려 하였다.
"젠장! 어느 틈에!"
"안돼요! 케이씨!!"
그 순간 베르단디가 케이를 말렸다. 저 조아노이드가 크로노스의 조직원인지 아니면 이곳 마을 사람인지 도
저히 알 수가 없었기에 말린 것이다. 케이는 곧 베르단디의 의도를 깨달았다. 할 수 없이 케이는 핫세를 다
시 업고는 베르단디와 함께 하늘 높히 점프하였다. 그리고 난 후 바로 복부의 중력제어구를 조종해서 하늘
로 날았다.
"꺄아아아!!!"
하늘을 날기 시작하자 깜짝 놀란 핫세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핫세에겐 미안하긴 하지만 지상에는 조아
노이드로 변한 마을사람들이 잔뜩 있었기 때문에 하늘로 날아가는 수밖에는 없었다.
-푸슝!!
그 순간 이들의 바로 옆으로 한줄기 레이저빔이 스쳐지나갔다. 깜짝 놀란 케이와 베르단디가 빔이 날아온
방향을 보자 그 쪽 아래에 한 무리의 바모아들이 있었다. 이들이 케이들을 노리고 어깨에 탑재한 생체 레이
저 포를 발사하기 시작했다.
-푸슝! 푸슝!!
"베르단디! 조심해!!"
케이와 베르단디는 고도를 낮췄다. 저렇게 바모아들이 빔을 날려대면 하늘을 나는 것도 위험했다. 강식장갑
을 입고 있는 케이는 모르겠지만 등에 업혀있는 핫세나 옆에 날고 있는 베르단디는 맞으면 위험했다. 두 사
람은 근처에 있는 집들의 지붕들을 엄페삼아 낮게 날기 시작했다. 이렇게 하니 바모아 들이 조준을 제대로
못해서 생체 레이저들이 날아오지는 않았지만 대신 지상에 있던 조아노이드들이 이들을 발견하고 말았다.
조아노이드들이 괴성을 지르면서 케이들을 추격하였다.
-푸슝! 콰앙!!
바모아들 중 어느 한 마리가 날린 빔이 어느 집 지붕을 뚫고 들어갔다. 근처에 있던 높은 건물의 옥상에 포
진한 바모아들은 케이들이 조금이라도 보이기만 하면 가차없이 빔을 날렸다. 이래가지고는 눈먼 빔에 집안
에 있는 누군가가 죽거나 크게 다칠 수도 있었다. 할 수 없이 케이는 지면에 내려앉아서는 힘껏 달리기 시
작했다. 다만 베르단디 만은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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