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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제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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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식장갑 가이버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

                                          제19화 - 바이브레이션(Vibration) -






유적 기지내의 복도를 두 명의 전투원이 걸어가고 있었다. 한 명은 꽤 큰 컨테이너가 실린 수레를 밀고 있
었고 다른 한 명은 앞장서면서 길을 안내하고 있었다. 이들은 이윽고 엘리베이터 앞에서 멈춰 섰다. 앞서가
던 전투원이 ID 카드를 꺼내서 엘리베이터 버튼 부에 있는 카드 체크기에 집어넣자 엘리베이터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잠시 기다리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고 그들은 그것을 타고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엘리베이터를 꽤 여러 번 타네요."

수레를 끌던 전투원이 다른 전투원에게 푸념하듯 말했다. 좀 무거운 수레를 밀면서 한참을 걸어와서 그런지
이 전투원의 얼굴에는 땀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물론 아까부터 줄곧 앞장서서 걷고 있던 다른 전투원도 얼
굴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할 수 없어. 직통 엘리베이터는 체크가 심해서 들킬 가능성이 높아. 이렇게 가급적 남의 눈에 안 띄게 이
동해야 해."

수레를 밀던 전투원이 땀을 닦기 위해 잠시 고글을 벗었다. 고글을 벗자 나타난 얼굴은 케이였다. 지금 아
키토와 케이는 크로노스 전투원의 옷을 입고 기지 내부로 잠입한 것이다. 크로노스의 하급 전투원들의 복장
은 전신 타이츠라서 좀 갑갑했다. 게다가 머리에 쓰는 핼맷도 생각보다 무거웠고 한술 더 떠 얼굴에는 고글
까지 쓰고 있어서 습기가 차기 쉬웠다. 케이가 고글을 벗자 아키토가 주의를 줬다.

"더운 건 알겠지만 좀 참아. 이 엘리베이터는 감시 카메라가 없으니까 다행이지만 다른 구역에선 조심해야
해."

"네, 죄송해요."

케이는 대충 손으로 얼굴을 훔치고는 다시 고글을 썼다. 그리고 케이는 이제까지 끌고 온 컨테이너 옆의 조
그만 창을 살짝 젖히고는 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베르단디, 핫세. 괜찮아?"

그러자 안에서 조그만 목소리로 대답이 들려왔다.

"네, 저흰 괜찮아요. 케이씨."

"선배...더워요...."

컨테이너 안에는 베르단디와 핫세가 타고 있었다. 크로노스 유적기지에는 여성 전투원이란건 없기 때문에
이들에 맞는 전투원 복장은 없었다. 그래서 아키토가 따로 준비한 컨테이너에 몰래 타고 있는 것이었다. 그
러나 이 컨테이너에는 조그만 환기창 빼고는 내부 열기를 식혀줄 만한 것이 없었다. 지금 컨테이너 안은 찜
통 같을 것이다. 그러나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는 더워도 참는 수밖에는 없었다.

"핫세씨, 죄송해요. 법술로 온도를 낮춰보고 싶지만 잘못하면 들킬 수도 있기 때문에...."

베르단디는 여신이므로 온도 변화에 상당히 강했다. 다시 말하자면 남들보다 더위나 추위에 끄떡없을 수 있
다는 것이다. 물론 그녀가 기온을 못 느끼는 건 아니고 '자연과 조화를 이룬다'고 보는 편이 옳을 것이다.
지금 법술을 써서 내부 온도를 낮추는 건 가능하긴 하지만 그랬다간 발카스나 규오에게 기를 들킬 가능성
도 있다며 아키토가 여기 오기 전부터 법술은 기지 내부에선 써선 안됀다고 신신당부를 해서 지금 베르단
디는 법술을 자제하고 있었다.

"둘 다 조금만 참아. 거의 다 왔어."

"네, 케이씨."

"선배....아까부터 그 소리 한 열번은 한 것 같은데요...."

핫세의 투덜거림에 케이는 좀 머쓱해졌다. 그 때 아키토가 주의를 줬다.

"모두 조용히. 이제 밖으로 나가야 해."

그러자 케이는 다시 환기창을 닫았다. 컨테이너 안도 쥐죽은듯이 조용해 졌다.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멈춰서
고 문이 열렸다. 케이와 아키토는 다시 말없이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한참을 걸은 후 이들은 다시 엘리베
이터를 탔다. 이게 몇 번째 엘리베이터인지 이제는 생각도 안 났다. 기지에 잠입하고 나서 한 두시간은 걸
린 것 같았다. 물론 이건 아키토가 비교적 인적이 드문 곳을 골라서 오느라 조금 멀리 돌아온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만큼 이 기지가 거대하다는 반증도 됐다. 케이는 경외감을 넘어서 이젠 슬슬 지겨워 지기 시작했
다. 그 때 아키토가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기쁜 소식을 전했다.

"이게 마지막 엘리베이터야. 조심해. 마지막 관문이 눈앞에 있어."

그 말에 케이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케이는 잠시 상념에 잠겼다. 아까 이
곳에 잠입할 당시 일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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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토는 일행을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안내하고 있었다. 유적기지 최하층이라고 해놓고서는 미나카미 산과
는 전혀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설마 아키토가 장난을 하고 있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 케
이는 그냥 묵묵히 따라가기만 했다. 두사람의 가이버는 빠른 속도로 이동하고 있었다. 이윽고 아키토는 다
쓰러져가는 낡은 절 앞에 멈춰 섰다. 상당히 오랫동안 사람이 방문한 흔적이 없었다. 한밤중이면 귀신이 나
온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였다.

"좋아, 식장을 풀어."

-파앗!

아키토는 그대로 식장을 풀었다. 케이도 등에 업혀있는 핫세를 내려놓고는 식장을 풀었다. 케이와 베르단디
는 절에 오니 잠시 집생각이 났다. 납치 당한 이후로 이제까지 살던 집은 지금 어떻게 됐을지 걱정이 되었
다. 베르단디는 잠시 주변을 그립다는 표정을 지으며 둘러보았다. 그 때 아키토가 마당 한가운데 있는 우물
의 뚜껑을 열었다. 일행은 모두 우물을 내려다보았다. 우물 안에는 물같은건 있지도 않았다. 대신 벽면에 조
그만 난간들이 촘촘히 박혀있었다.

"여기로 내려가는 거야. 비밀통로지."

간단히 설명해준 아키토가 일단 먼저 내려갔다. 우물크기가 작아서 한 사람이 겨우 타고 내려갈 수 있는 수
준이었다. 일행 중에서 가장 체격이 건장한 아키토는 좀 낑낑대면서 내려갔다. 다른 사람들도 한사람씩 우
물 아래로 내려갔다. 아키토보다는 덩치들이 작다지만 그래도 이 통로는 그들에게도 좁아서 내려오는데 고
생해야 했다. 베르단디만큼은 사뿐히 날아서 내려왔지만.

우물 바닥으로 내려오자 어디론가 뚫려있는 작은 통로가 보였다. 아키토가 들고 있는 손전등을 제외하면 조
명같은건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다들 아키토만 보면서 조심해서 움직였다. 한참동안 걷다보니 어느 순간 갑
자기 사방이 확 트였다. 깜짝 놀란 일행은 주변을 둘러보며 어리둥절해 하였다. 이곳은 희미하게 나마 조명
이 있어서 구조를 파악할 수는 있었다. 이들이 나온 곳은 상당히 거대한 터널이었다. 바닥에는 레일이 깔려
있고 벽면은 콘크리트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인위적으로 건축한 터널이었다. 이곳은 바로 유적기지의 물자
반입용 리니어 라인이었다. 아키토는 이곳은 이미 몇년전에 폐선된 곳이라고 하였다.

아키토가 레일 위에 놓여있던 리니어 카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조수석에 올려놨던 옷과 핼맷을 케이에게 건
냈다. 케이가 그것을 받아보니 크로노스 전투원의 유니폼이었다. 아마도 이걸 입고 몰래 잠입하는 것 같았
다. 그리고 베르단디와 핫세에게는 짐칸에 실려있는 컨테이너를 가리키며 그 안에 들어가라고 하였다. 하지
만 컨테이너는 두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너무 작았다. 물론 억지로 들어간다면 들어갈 수야 있겠지만 잠깐
가는 것도 아닐텐데 이건 너무 불편할 듯 싶었다. 핫세와 케이는 좀 걱정스럽다는 듯이 컨테이너를 살폈다.

"잠깐만요, 좋은 방법이 있어요."

그 때 베르단디가 조용히 법술을 외웠다. 그러자 그녀의 몸 주위를 하얀빛이 감싸더니 순식간에 베르단디의
크기가 작아졌다. 마치 귀여운 인형 수준으로 작아진 베르단디를 보면서 아키토는 놀랍다는 반응을, 핫세는
좀 얼이 빠진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하도 이런걸 많이 봐서인지 이제 핫세는 별로 놀랍지도 않았
다. 케이는 얼굴이 좀 빨개진 체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언제봐도 저 모습은 너무 귀여우니까. 하여튼 베
르단디가 작아진 덕분에 공간이 생겼다.

"빨리 울드 언니랑 스쿨드를 보고 싶어요. 다른 분들 도요."

베르단디가 설렌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자 아키토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걱정 마세요. 다들 잘 있습니다. 특히 자매분들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쌩쌩하니까. 다만...."

"네?"

"아니...나머진 가서 얘기하죠. 자, 빨리 안으로."

아키토와 케이는 전투원 옷으로 갈아입었고 두 여자는 컨테이너 속으로 들어갔다. 아키토는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잠시 후 리니어 카에 시동이 걸리면서 계기판과 헤드라이트에 불이 들어왔다. 일단은 이걸
로 유적기지 입구까지 간 다음 최하층까지는 걸어갈 예정이었다. 차량용 엘리베이터는 화물 체크가 심하기
때문에 이용할 수가 없다고 아키토가 말했다.

"일단 기지 내에 들어가면 검문같은거는 내가 알아서 하겠다. 넌 그냥 조용히 따라오기만 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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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마지막 관문이야. 조심해."

아키토의 말에 케이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통로 앞쪽에 경비원 두명이 서있는것이 보
였다. 최하층부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검문소였다. 케이는 마른침을 삼키면서 수레를 앞으로 밀었다. 여
기가 가장 큰 고비였다. 아키토가 먼저 가서는 품속에 넣어뒀던 서류를 꺼내 보였다.

"최하층의 연구진이 주문한 연구용 기자재의 운반이다."

"그런 통보는 받은 적이 없는데?"

"긴급사항이라서 미처 통보가 안된 모양이야. 이것이 위임장이다."

경비원 한명이 잠시 서류를 훑어보았다. 서류는 겉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없다. 흠잡을데 없이 완벽하게 작
성된 '위조 서류'니까. 경비원은 고개를 갸웃거리고는 서류를 다시 넘겨주었다. 아키토와 케이는 다시 앞으
로 나아갔다.

"잠깐, 그 컨테이너를 한번 열어 봐야 겠어."

갑자기 경비원이 이들을 제지하였다. 그 말에 깜짝 놀란 케이는 등에 식은땀이 났다. 아키토 역시 잔뜩 긴
장하였다. 서류는 그야말로 완벽할 텐데 무슨 문제가 있기에 잡은 걸까. 둘은 일단 그 자리에서 멈췄다. 아
키토가 다시 그 경비원과 얘기를 하였다.

"무슨 문제라도?"

"아, 딴 건 아니고 규정상 화물은 내용물을 확인해 봐야 해."

다행히 서류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니었다. 그러나 당연히 여기서 열어볼 수는 없었다.

"조금 급한 건데 이대로 그냥 가면 안되겠나?"

"그건 안되지. 규정이니까 말이야."

"헤헤, 설마 여자가 들어있는건 아니겠지?"

옆에 있던 다른 경비원이 농담을 걸었다. 케이는 속으로 뜨끔하였다. 물론 저건 단순한 농담이겠지만 지금
케이는 전혀 웃음이 나오질 않았다. 마치 들킨 것만 같았다. 아키토는 태연하게 웃으면서 - 아니 태연하게
보이려고 노력하면서 - 경비원들에게 말했다.

"농담도 심하군. 이건 외부공기와 접촉하면 안된다는 엄중한 지시를 받았어. 반드시 규정된 장소에서 규정
된 인원만이 열어볼 수 있다고."

"흐음....그래?"

"좀 봐달라고. 여기서 이걸 열면 우리가 호되게 문책 받게 돼."

경비원들은 미심쩍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다시 아키토에게서 서류를 넘겨받아 읽어봤다.
자세히 보니 서류에는 과연 '규정된 장소 이외에는 개봉 금지'라는 주의사항이 쓰여 있었다. 하지만 이 조
항은 규정을 완전히 위반하는 내용이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화물은 무엇이 됐든 철저히 검문해야 하는게 원
칙이었다. 경비원 한 명이 뭔가 잠시 생각하더니 어딘 가로 전화를 걸었다. 케이와 아키토는 잔뜩 긴장하기
시작했다.

"응? 자네 왜 그래? 얼굴이 땀 투성이야."

그 때 다른 경비 한 명이 케이의 얼굴을 보고는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케이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뭐라 둘러대야 할지 몰라 케이는 당황해하였다.

"아! 이..이건 말이야, 그..그래! 더워서..좀 더워서 그래. 아하하..."

케이는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하려 하였지만 그게 뜻대로 되진 않았다. 당황한 그는 말을 더듬었고 그 모습
을 본 아키토도 점점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와서 일이 다 틀어지게 생겼다!

"음...그런가? 하긴 뭐 우리 제복이 좀 갑갑하긴 해. 그치?"

다행히도 그 경비는 별로 이상한 점은 못 느꼈는지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받았다. 고비는 넘긴 것 같
지만 케이와 아키토는 여전히 잔뜩 긴장돼 있었다. 아직 위기는 끝난 게 아니었다.

"어이, 너희들. 통과해도 좋아."

그 때 전화를 하던 경비원이 아키토와 케이에게 손짓하였다. 간신히 위기를 넘긴 셈이었다. 케이들은 다시
수레를 끌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들의 등뒤로 경비원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이봐, 이거 어떻게 된 거야? 규정 위반이라고."

"낸들 어쩌라고. 밑에서 빨리 안 보내고 뭐하냐고 호통을 치는데 내가 뭐 힘이 있냐."




******************************************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 두 사람은 이윽고 무슨 관제실로 보이는 방안으로 들어갔다. 그 방안에서는 여러
사람들이 각자 앞에 있는 컨솔을 조작하며 어떤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케이들이 들어서자 이들이 일
제히 하던 작업을 멈추고는 케이들을 바라보았다. 그 중에서 나이가 들어 보이는 중년의 연구원 한 명이 얼
굴에 미소를 띄우며 케이들에게 다가왔다. 케이는 그 사람의 눈에서 상당히 강한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유적기지 최하층부 자유 해방구에 온 것을 환영하네. 케이군."

그 박사는 케이가 올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웃으면서 말했다. 다른 연구원들도 케이들을 바라
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아키토와 케이는 그 자리에서 핼맷을 벗었다. 그리고 아키토가 컨테이너를 열고 안
의 두사람에게 밖으로 나와도 된다고 말했다.

"이 분은 이곳 최하층부를 책임지고 있으신 오다기리 연구주임님이시지. 우리를 숨겨주시고 도와주신 분이
야."

아키토는 케이에게 오다기리 주임을 소개하였다. 오다기리는 반갑다는 듯이 악수를 청했고 케이는 송구스럽
다는 듯한 몸짓으로 이를 받았다. 조그만 몸으로 변신해 있던 베르단디는 그 자리에서 바로 원래의 모습으
로 돌아왔다. 그 모습을 본 연구원들은 놀라움으로 탄성을 내 질렀다. 오다기리는 웃으면서 베르단디와 핫
세에게도 인사를 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전 이곳의 책임자인 오다기리라 합니다."

"베르단디라고 합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하..핫세라고 합니다."

베르단디 역시 웃으면서 오다기리와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오다기리는 베르단디의 변신 모습을 봐도 별로
놀란 표정이 아니었다. 마치 베르단디가 여신이란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
에 있는 다른 연구 스텝들의 표정도 오다기리와 마찬가지 였다.

"두 자매분들께 베르단디 님에 대한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천상계의 고위 신족이시라고요."

"네. 일급신 2종 비한정 클래스입니다. 저...그런데 언니와 스쿨드는 지금 어디에....."

베르단디는 약간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걱정 마십시오. 안 그래도 지금 사람이 부르러 갔으니까 곧 있으면...."

-위잉.

그 때 연구실의 문이 열리면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곳을 본 오다기리는 미소를 지었다. 호랑이
도 제말하면 온다더니 그 말이 딱 들어맞았다. 베르단디들도 그 쪽을 보았다. 거기에는 애타게 찾던 울드와
스쿨드가 서 있었다.

"언니이~!!"

베르단디를 본 스쿨드가 그대로 쏜살같이 달려와서는 베르단디에게 안겼다. 스쿨드는 베르단디의 가슴에 얼
굴을 묻고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베르단디 역시 눈물을 흘리며 스쿨드를 꼬옥 안아줬다.

"으아앙~! 언니, 언니! 보고 싶었어...."

"스쿨드! 무사했구나....다행이야..."

두 자매는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떨어질 줄을 몰랐다. 한발 옆에서 지켜보던 울드도 베르단디에게 다가왔
다. 울드의 눈가에도 이슬이 맻혀있었다. 주위에 다른 사람들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울드는 베르단디의 어깨
에 손을 얹으며 약간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베르단디...."

"울드 언니...."

울드는 그대로 양팔을 벌려서는 베르단디와 스쿨드를 같이 껴안았다. 세 자매는 이렇게 한데 엉켜서는 한동
안 떨어질 줄 몰랐다. 서로 죽은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됐으니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케이씨가...케이씨가 저희를 지켜주셨어요...."

베르단디의 말에 울드는 고개를 들어 케이를 바라보았다. 케이는 베르단디의 말에 약간은 쑥스러워 했다.
울드는 포옹을 풀고는 케이에게 다가가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다시 힘을 되찾았구나...."

"응. 베르단디를 지키기 위해서...."

"...고마워. 정말 고마워...."

울드는 목이 매인 듯 더 말을 잊지 못했다. 그렇게 깊은 절망을 딛고 일어설 정도로 베르단디를 사랑하는
남자가 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기뻤다. 더 이상 말은 필요 없었다. 울드는 케이를 가볍게 포옹하였다.

-짝짝짝짝!!

주위에 있던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모두의 무사함과 재회를 축하하는 의미였다. 그리
고 그렇게 험한 길을 해치고 돌아온 케이와 베르단디, 핫세에게 보내는 경의의 표시이기도 했다. 세 사람은
환한 표정으로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 때 케이들의 눈에 또다른 반가운 사람들이 보였다. 베르단디 자매들의 재회에 방해가 안되려고 한발 옆
으로 물러나 있던 린드와 지로, 시즈와 요헤이 였다. 아키토 말대로 다들 정말로 무사했던 것이다. 이들 역
시 베르단디들에게 다가와서 재회를 기뻐하였다.

"하하! 너희들 정말 무사했구나!"

"지로 선배!.... 켁!!"

"하핫! 녀석, 애인을 지켜줬다니 무슨 백마 탄 왕자 같잖아!"

지로는 케이의 목에 팔을 두르며 -거의 조르다 시피 하면서 - 오랜만에 장난을 치고 있었다. 숨이 막혔지만
케이도 지로와의 재회가 너무 기뻤다. 케이 역시 그동안 베르단디들 앞에서는 태연한 척 했지만 마음 한구
석에서는 언제나 불안했었다. 이들의 웃음소리에 한동안 브리핑 룸 내부가 시끌벅적해졌다.

"케이!"

그 때 스쿨드가 베르단디의 품에 안긴 채로 케이를 불렀다. 그런데 스쿨드는 조금 화가난 표정을 지어 보이
고 있었다. 내가 뭔 잘못을 했나 싶어서 케이는 조금 긴장하였다.

"내가 없다고 그 동안 언니에게 무슨 짓 하진 않았겠지?"

"아...아니야! 아무 짓도 안 했어!"

그 '무슨 짓'이란게 뭔지는 케이도 금방 알아챘고 그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고개를 저었다. 그러자 울드가
짓궂은 표정을 지으며 케이에게 바짝 붙었다.

"호오~ 아무 짓도 안 했어?"

"그..그래! 믿어 줘!"

"아니, 아니...내가 말하고 싶은 건 네가 정말로 아무 짓도 안 했다는 사실 자체를 문제삼고 싶은 거라고. 남
자라면 그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대쉬해 봐야 하는 거 아냐? 그래서 둘 사이를 더욱더 진전도 시켜보고..."

"울드!!"

케이와 스쿨드가 동시에 소리쳤다. 케이는 부끄러워서 그런 거고 스쿨드는 그게 무슨 망발이냐는 의미로 소
리친 것이다. 두 사람의 반응에 주위에 모든 사람들이 폭소를 터트렸다. 물론 베르단디만은 지금 세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울드는 핫세를 잠시 바라본 후 푸념하듯
말했다.

"하긴....둘만 있는 건 아니었으니 힘들었겠구나..."

"...방해꾼이라서 미안하네요, 정말."

핫세의 투정어린 말에 모두들 다시 한번 폭소를 터트렸다. 케이는 멋적은듯 머리를 긁적이며 주위를 둘러보
았다. 그리고 케이는 한사람이 빠졌다는걸 알아챘다.

"저, 그런데 무라카미씨는요?"

케이의 질문에 모두들 갑자기 얼굴 표정이 굳어졌다. 갑자기 주위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지자 케이와
베르단디는 순간 당황해 하였다. 설마 무라카미씨에게 무슨 일이? 오다기리가 케이들을 어딘가로 안내하였
다. 오다기리가 안내한 곳에는 거대한 철제문이 있었다. 그가 문 옆에 있는 패널을 조작하자 문이 스르르
열렸다. 일행들은 그 안으로 들어갔다.

"무라카미는 여기있네."

그 순간 케이들은 깜짝 놀랐다. 방안에는 조아노이드를 조재하는 조재통이 있었고 무라카미는 그 안에 들어
있었다. 그것도 전투 형태를 하고 있는 상태에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케이가 다급하게 오다기리에게 물었
다.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거죠? 무라카미씨에게 무슨 일이...."

그 때 옆에 있던 아키토가 대신 설명하였다.

"너희들이 사라지고 난 직후 규오가 그 현장에 나타났었어."

"그...그렇다면 규오가...!"

"우린 규오와 전투를 벌였지. 그러나 역부족이었어."

아키토는 그 때를 회상하며 굳은 얼굴로 설명하였다.




******************************************




"다 같이 지옥에 처박아주마!!!"

-쿠르르릉!!!

규오의 몸이 황금색으로 빛나면서 주변 대지가 격렬하게 진동하고 있었다. 규오의 몸에서 발산되는 엄청난
에너지를 느낀 울드와 린드는 경악하였다. 이것이 바로 진짜 조아로드의 전투력이란 말인가! 조아로드가 고
위 신족을 압도하기 위해 만들어 졌다는 것은 과연 허언이 아니었다. 그 힘은 무라카미 역시 느끼고 있었
다. 녀석은 중력조종에 능통한 조아로드, 이번 공격은 틀림없이 일정 지역에 순간적으로 고중력을 가해서
전체를 날려버리는 공격일 것이다. 이제 와서 도망가는 건 무리였다. 무라카미가 모두에게 급히 소리쳤다.

"모두들! 내 주위로 모여!!"

무라카미의 지시에 따라 다른 사람들이 모두 무라카미 주위에 모였다. 부상을 입은 린드는 울드가 부축하였
다. 모두 모인 것을 확인한 무라카미가 모두를 감싸는 바리어를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본 규오는 코웃음을
쳤다.

"훗, 바리어냐? 시작품 따위의 바리어로 이 규오의 공격을 막겠다는 거냐!"

다른 일행들 역시 불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규오와 무라카미의 전투력 차이는 아까 확실히 보았다. 게다가
지금의 무라카미는 결코 가볍지 않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런 몸으로 만든 바리어가 과연 규오의 공격
을 막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그래도 다들 일말의 기대는 가졌다. 그래도 자신이 있으니까 이렇게 모이
라고 한 것 아닐까? 린드가 다소 기운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부상을 입은 린드는 지금 울드가 회복 법술을
걸어서 치료하고 있었지만 금방 나을 수는 없었다.

"막을 수....있는 건가?"

"제 몸이 정상이라 할지라도 저건 못 막습니다."

그 말에 일행들은 우왕좌왕하였다. 못 막을 거면 가능한 한 멀리 도망갈 생각을 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
러나 사실 규오의 공격이 작렬하면 이 지역 전체가 날아간다. 사실상 도망쳐도 소용없었다. 무라카미는 다
른 방법을 시도해 보려 하였다.

"마키시마, 중력제어구를 쓸 수 있나?"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는 왜...?"

"내가 신호하면 즉시 그걸 사용해서...."

아키토는 무라카미의 작전을 금방 이해하였다. 그는 즉시 의식을 집중해서 중력제어구를 가동시켰다. 이제
문제는 타이밍을 얼마나 잘 잡느냐 였다. 기회는 단 한번뿐!

"그럼 죽어라!!!!"

-콰아아앙!!!!

드디어 규오가 축척해둔 모든 에너지를 폭발시켰다. 그 순간 무라카미가 외쳤다.

"지금이다!!"

"우오오오!!!!"

-키이이잉!!

그 순간 가이버 III 의 중력제어구가 작용하면서 일행들은 모두 바리어에 둘러싸인 채로 땅속으로 빨려 들
어갔다. 그리고 모두가 있던 자리를 규오의 공격이 덮쳤다. 규오를 중심으로 사방이 대 폭발을 일으켰다. 모
든 것을 날려버릴 것만 같은 엄청난 폭발 속에서 규오는 미친 듯이 웃고 있었다.

-쿠콰콰콰!!!

"으하하하하!!!!!! 맛이 어떠냐, 벌레놈들아아아!!!! 크하하하하!!!!"




******************************************




"후우, 어떻게 무사히 내려온 것 같군."

아키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아키토뿐만이 아니라 모두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마터면 규오
의 공격으로 죽을 뻔했으니까.

무라카미의 작전은 멋지게 성공했다. 일단 바리어로 일행들을 감싼 다음 규오의 공격이 시작되면 가이버 III
가 중력제어구를 사용해서 모두 다 함께 땅속으로 재빨리 파고 들어간다는 계획을 세웠다. 규오의 공격으로
인해 지각이 갈라지면 쉽게 그 틈새를 비집고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이건 말이 쉽지 타
이밍이 한 박자라도 늦었다가는 그대로 규오의 공격을 뒤집어 쓸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작전이었다. 그야말
로 이판사판이었지만 그 때 당시에는 이것밖에는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 여기서 어떻게 나가느냐인데..."

아키토는 난감하다는 듯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지금 깊은 땅속에 파묻혀 있었다. 무라카미의 바리어
덕분에 흙더미에 매몰되지는 않았지만 무라카미라고 언제까지나 바리어를 유지하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 이
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무라카미씨, 괜찮으세요?"

지로는 무라카미가 다소 걱정되었다. 그런데 무라카미는 바리어를 유지하고만 있고 대답이 없었다. 뭔가 이
상한 점을 느낀 지로가 몇 번 그를 불러봤지만 무라카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그를 살펴보던 지로가 깜
짝 놀라 소리쳤다.
 
"큰일이야! 의식을 잃었어!!"

"뭐라고요!"

그 소리에 다들 크게 놀랐다. 바리어를 전개해 놓은 상태로 기절했단 말인가. 변신 상태를 유지한 채로 기
절을 한 경우는 이제까지 없었다. 역시나 무라카미는 너무 무리한 것이다.

-쏴아아아!!!

그 때 한쪽에서 물이 터져나왔다. 그것을 신호탄으로 이곳 저곳에서 물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아마도 근처
에 지하수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 광경을 본 모두는 공포에 질렸다. 무라카미의 바리어는 점점 약해지고 있
었다. 역시나 의식을 잃은 상태로는 바리어를 완전하게 유지할 수가 없었다. 이제 덕분에 이대로 가다간 다
들 익사하게 생겼다. 가이버인 아키토나 여신들은 혹 모르겠지만 보통 사람인 지로, 시즈, 요헤이와 의식을
잃고 있는 무라카미는 위험했다.

"어떡해! 나 혼자서는 이 많은 사람들 다 못 데리고 가~~!"

물로 공간 이동이 가능한 스쿨드야 여차하면 그냥 빠져나갈 수 있지만 이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데리고
갈 능력은 없었다. 그렇다고 스쿨드가 이들을 내팽개치고 도망갈 위인도 아니었다. 능력이 되는 울드와 린
드는 물로는 공간이동을 할 수가 없었다. 물이 점점 차 오르자 다들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하였다.

"음! 이건...."

그 때 아키토의 머리에 있던 헤드센서가 뭔가를 탐지해냈다. 상당히 넓은 빈 공간이 느껴진 것이다. 처음에
는 지하 수맥이 아닐까 의심도 했지만 다시 검색을 해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수맥이라면 물로 가득차
있는 것이 느껴져야 하는데 그 공간은 그저 비어있었던 것이다. 두께도 다행히 그렇게 두껍지는 않은 듯 싶
었다. 프레셔 캐논 한 방이면 뚫을 수 있는 수준이었다. 아키토가 복부로 손을 모아서 프레셔 캐논을 준비
하였다.

"다들 물러서."

-파앙!! 콰아앙!!!

다른 사람들이 무슨 일이냐고 묻기도 전에 아키토는 곧장 그쪽을 향해 프레셔 캐논을 발사하였다. 프레셔
캐논으로 인해 벽면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그리고 그 직후 무라카미가 쳐두었던 바리어가 사라져 버렸
다. 바리어가 사라지고 프레셔 캐논으로 인해 주변에 엄청난 진동이 가해지자 물줄기가 더욱 더 거세졌다.
아키토는 서둘러 모두에게 구멍 쪽으로 빠져나가라고 외쳤다. 실신한 무라카미는 전투 상태에서의 몸무게가
140kg에 육박했기 때문에 아키토가 들쳐업고 나왔다.

구멍을 빠져 나오자 뭔가 거대한 터널 같은 곳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키토는 이내 이곳이 유적 기지의 리
니어 라인 중 하나라는 것을 알아챘다. 곳곳에 물이 흐르고 있고 건설자재등이 버려져 있는 것으로 보아서
는 라인 건설중에 지하 수맥을 만나서 공사를 중단한 것으로 보였다. 여기가 버려져 있는 곳이라면 아마도
감시 시스템등이 구축돼 있지 않을 테고 그렇다면 크로노스는 아키토들을 찾아내지 못할 것이다.

-부우우웅!!

그 때 터널 저 편에서 자동차가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그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두개의 불빛이
이쪽으로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저것은 자동차의 헤드라이트 같았다. 그렇다면
크로노스일까? 아키토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메가 스매셔를 준비하였다.

"젠장! 빨리도 찾아냈군."

-철컥!

지금은 아무도 싸울 힘이 남아있지 않았다. 초전에 메가 스매셔같은 큰 기술로 한방에 날려버리지 못하면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미 한번 스매셔를 쏴 버렸기 때문에 에너지가 모이는 속도가 너무 더뎠다.
린드도 아직 회복이 덜 된 몸을 억지로 일으키며 싸울 준비를 하였다. 다들 잔뜩 긴장한 채로 다가오는 자
동차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자동차가 이들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잠깐 기다리게! 우린 적이 아니야!!"

그 때 자동차에서 누군가가 황급히 몸을 일으키며 큰 소리로 외쳤다. 상대방의 행동에 다들 의아해 하였다.
적이 아니라니? 이윽고 자동차에서 일단의 사람들이 내렸다. 그런데 내린 사람들의 모습이 예상과는 달랐
다. 크로노스의 전투원들이 아니라 다들 흰 가운을 입고 있는 게 무슨 연구원들 같았다. 개중에는 꽤 나이
가 들어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어쨌든 싸우려고 온 사람들은 아닌 것 같았다. 아키토는 일단 스매셔를 다
시 원위치 시켰다. 그 사람들중 안경을 낀 중년의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아무래도 그들의 리더 같았다.

"우리는 이제까지 자네들과 만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네. 우린 한 편이야."
.
.
.
.
.
.
.
.
.
"그 때 당시에 우리는 규오와 자네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

그리고 바로 오다기리가 아키토 다음으로 케이들에게 설명하였다.

"하지만 조아로드와 정면 대결은 아직은 너무 무모한 일. 그래서 우린 자네들이 어떤 방법으로라도 현장에
서 도망치려 할거라고 판단하였지."

그렇게 판단한 오다기리는 아키토들의 도주 루트 몇 군데를 나름대로 예상하였다. 몇 군데 루트를 추정한
이후 이들은 서둘러 전투현장으로 달려갔다. 이번 기회에 어떻게 해서든 가이버들과 만나야 했다. 크로노스
와 싸우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가장 든든한 아군이 될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자칫 크
로노스의 의심을 받을 수 있다는 위험을 무릅쓰고 기지 밖으로 나간 것이다. 물론 나갈 때는 적당한 핑계거
리를 만들어서 나갔지만 그래도 너무나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다. 이들은 전투 현장부근까지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찾았고 그래서 찾은 길이 바로 아키토들이 빠져나온 폐쇄된 리니어 라인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기지를 빠져나오는데 너무 시간을 지체한 오다기리들이 바로 그 근처까지 왔을 때는 전투가 이미
끝난 이후였다. 연구실에 남아있는 스텝들에게서 전투경과를 무전으로 보고 받은 오다기리는 이미 다 틀렸
다는 느낌이 들었었다고 한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계속 달려갔고 그 결과 다행히도 터널로 빠져나
온 아키토들과 만났었던 것이다.

"천행이었지....하마터면 자네들을 못 만날뻔 했으니까."

그 후로 오다기리들은 부상으로 의식을 잃은 무라카미와 잔뜩 지쳐있던 아키토들을 간신히 이곳 유적기지
최하층으로 몰래 데리고 들어오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오다기리들은 곧장 이곳에 있는 조제설비로 무라카
미의 치료를 시도하였었다.

"오다기리 주임님. 무라카미씨는 괜찮으신 건가요?"

베르단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일행들은 모두 걱정스러운 눈으로 무라카미를 바라보았다. 오다기
리는 한숨을 내쉬며 무거운 어조로 말했다.

"글쎄요...조아로드는 제 전문 분야가 아니라서 뭐라 확언은 못하겠지만....일단 상당히 쇠약해져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오다기리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조제통안의 무라카미를 바라보며 설명하였다. 이곳 최하층부의 연구실은 이
곳에 잠들어 있는 강림자의 유적을 조사하는 것이 주된 일이다. 따라서 윗층의 조아노이드 실험/조제 구역
과 같은 충분한 설비가 없다. 게다가 여기 있는 스텝들도 오다기리 본인을 포함해서 조제에 관한 건 전문분
야가 아니란 것도 문제였다. 특히나 상대가 조아로드라면 더더욱 그렇다.

어쨌든 일단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세포 성장 촉진제를 투여해서 규오와의 전투에서 잃은 왼팔을
비롯해서 여러 손상부분등은 복원해놓았다. 이 치료법은 일반 조아노이드나 조아로드나 다 똑같이 적용되는
것이므로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정작 가장 큰 문제는 현재 무라카미는 전투형태 그대로 의식을 잃고 있
다는 점이었다. 전투형태는 엄청난 에너지 소모를 불러오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도 무라카미는 상당한 수
준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현재는 일단 조제통 속에서 일종의 영양제를 투입하는 것으
로 에너지 소모분을 보충해 주고 있었지만 그것은 그저 응급처치에 불과할 뿐, 한시라도 빨리 전투형태를
풀어줘야 했다.

"허나 그러고 싶어도 우리로서는 현재 속수무책입니다. '조아 크리스탈'을 비롯해서 조아로드 특유의 에너
지 순환계는 조아노이드와는 전혀 다르지요. 그래서 어디에 무슨 문제가 생긴 건지 원인 규명조차 제대로
못하고 있습니다......"

조아 크리스탈이란 조아로드의 이마에 심어져있는 일종의 에너지 발생기관이다. 조아로드는 조아노이드를
훨씬 뛰어넘는 전투력과 바리어 등의 특수 능력을 구사한다. 이를 보통의 조아노이드와 같은 방법으로 만드
는 것은 불가능하다. 막대한 에너지 소모문제 때문이다. 따라서 조아로드는 다른 방법으로 에너지를 생성해
야 하는데 그 핵심적인 기관이 바로 조아 크리스탈이다. 조아 크리스탈은 조아로드의 에너지 공급 등을 전
적으로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조아로드에게는 생명과도 같은 부분이다.

그러나 조아 크리스탈은 그 조제방법과 구조등이 일급 기밀로 묶여 있기 때문에 아주 소수의 과학자만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무라카미가 조제된 곳은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 본부기지. 이곳에는 자료가 없
었다. 따라서 현재 오다기리를 비롯한 이곳 최하층 스텝으로서는 함부로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야. 법술로 치료를 해주고 싶어도 조제체는 법술을 거부하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시도
는 해 봤지만 다 튕겨내더라고."

울드도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며 말했다. 케이와 베르단디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조제통안을 들여다보았
다. 무라카미는 여전히 미동도 안하고 있었다.

"자, 여러분. 걱정 마시길. 우리들이 어떻게든 무라카미군을 고쳐보일테니까요. 여러분들은 힘들게 여기까지
오셨으니 피곤들 하실 테지요. 우선 충분히 쉬어두시지요."

오다기리가 케이와 베르단디, 핫세에게 휴식을 권했다. 하긴 여기서 걱정만 하고 있는다고 뭐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므로 일단은 다들 푹 쉬어두기로 하였다. 사실 케이는 그저께 밤부터 격한 전투를 치렀으면서도
잠 한숨 제대로 자지 못했다. 게다가 식사도 거의 하지 못했고 말이다.

"이쪽으로 오시지요. 전 하야미 토시아키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을 안내해드리겠습니다."

하야미라고 자신을 소개한 연구원이 케이들을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밖으로 나가면서 이들은 다시 무라카
미를 돌아보았다. 무라카미는 과연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




"베르단디, 한 그릇만 더."

"네, 많이 있으니까 천천히 드세요."

베르단디는 웃으면서 케이가 내민 밥그릇에 밥을 담아줬다. 그러기가 무섭게 핫세도 한 그릇 더달라고 그릇
을 내밀었다. 걸신들린듯 밥을 먹는 이들을 베르단디를 비롯해서 울드와 스쿨드, 지로와 그리고 이들을 여
기까지 안내한 하야미가 웃으면서 보고 있었다. 시즈는 주방에서 혹시 반찬이 모자랄까봐 다른 반찬들을 더
만들고 있었다. 식사를 할 필요가 없는 베르단디는 옆에서 이들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케이와 핫세는 일단 식당으로 직행해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꼬박 하루 동안 굶고 난 이후 먹는 음식
이라 그런지 정말 꿀맛이었다. 겨우 하루 정도였지만 그 동안 이리저리 쫓겨다니고 격한 전투를 치르면서
정신적 긴장이 극에 달해있었기 때문에 지칠 대로 지쳐있어서 공복감이 더 했다. 숲속에 있을 때는 크로노
스에게 들킬까봐 먹을 것을 찾으러 다니지도 못했었다. 그래서 케이는 물론 평소에 소식하는 편인 핫세까지
도 걸신들린 듯 먹고 있었다.

이곳 최하층 부는 사실상 다른 곳과는 독립된 공간이다. 그래서 식사도 이곳의 전용 식당이 따로 있었고 식
재료등도 윗층에서 정기적으로 공급받아서 자체적으로 조리해서 먹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주방에는
요리사를 비롯한 조리 인원이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지금 케이와 핫세가 먹고 있는 식사도 베르단디가 손
수 만들었다.

"이렇게 된게 다 오다기리 주임님 때문이죠."

이들을 식당으로 안내한 하야미가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하였다. 원래는 크로노스 측에서 조리사와 그 외 보
조 몇 명을 파견해서 식사를 만들어줬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다기리들은 크로노스에 반격을 할 기회만을 노
리고 -즉, 크로노스 입장에서는 반역자들- 있었기 때문에 위에서 파견된 이들을 신뢰할 수가 없었다고 한
다. 조리사들이 어쩌면 조아노이드이거나 크로노스에 충성하는 사람들이라서 오다기리를 비롯한 이곳 스텝
들을 감시하러 온 것일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오다기리는 적당한 구실을 붙혀 이들을 철수시켰다.
이곳 최하층은 인원도 얼마 없고 연구에 바빠서 식사시간도 일정치가 않기 때문에 고정 배치된 조리반은
필요 없다고 둘러댄 것이다. 식재료만 공급해 주면 식사는 우리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였고 이것이 받아들여
져서 조리사들은 곧 철수하였다.

"덕분에 이제까지는 저희들 중에서 매일 두명씩 당번을 둬서 식사를 준비했지요. 뭐 솔직히 맛은 그냥 포기
하고 살았었습니다. 하하하."

하야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면서 웃었다. 식재료야 언제나 질 좋은 재료들이 들어왔지만 그걸 요리할 사
람의 실력이 형편없어서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지로도 쓴웃음을 지으면서 말했다.

"하야미씨를 비롯해서 여기 스텝분들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도저히 눈뜨고 못 봐주겠더라. 그래서
너희들이 올때까지 시즈씨가 식사당번을 맡았지. 내가 옆에서 보조해주고 말이야."

"안 그래도 두 여성분이 식사를 만들어주신 이후부터는 식사시간이 정말 기다려졌죠."

물론 여자라고 요리를 더 잘하는 건 아니다. 요리를 잘하는 데에는 남녀의 구별은 없다. 실제로 유명 호텔
의 주방장은 대부분 남자니까. 요리는 그야말로 손맛이라 할 수 있고 이곳의 스텝들은 다들 그 손맛이 형편
없었다는 것뿐이다. 그래서 시즈와 지로가 팔 걷어붙이며 식사를 준비한 이후로 이들도 오랜만에 '인간다운
'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 때 시즈가 추가로 만든 반찬을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 마침 반찬이 거의 다 떨어졌던 참이라서 아쉬웠던
케이와 핫세는 만세라도 부르고 싶었다. 시즈가 웃으면서 반찬을 상위에 올려놓았다.

"이제 베르단디씨도 오셨으니 더욱 더 기대하셔도 되요. 베르단디씨는 저보다 요리 실력이 더 좋으시니까
요."

"어머, 아니에요. 시즈씨야 말로 잘하시는걸요."

두 여성은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사실 실제로도 두 사람의 요리 실력은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다.

"쳇, 뭐 식사는 좋다 이거야. 그런데 어째서 여기엔 술이 없는 거야."

울드는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컵을 들어 그 안에 들어있는 액체를 쭉 마셨다. 차나 물은 아니었고 이곳에 있
는 실험설비를 이용해서 울드가 직접 만든 에틸알콜이었다. 술이 고픈 울드가 일단 아쉬운 데로 만들어보긴
했지만 솔직히 맛은 제대로 된 술에 비할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을 본 스쿨드는 입술을 삐쭉였고 하야미는
졌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전에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연구활동에 방해된다고 크로노스가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고요."

"흥! 난 술을 마셔야 연구가 더 잘되."

울드의 말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울드는 울드, 어딜가나 변하질 않았다.

"저, 그런데 하야미씨. 궁금한 게 있는데요."

"응? 뭔가?"

"아까 연구실의 스크린에 비쳐졌던...언덕 같이 생긴 그 원형의 구조물은 뭐죠?"

케이는 식사를 마치고 하야미에게 궁금히 여기던 것을 물었다. 바로 연구실 내부의 대형 스크린에 비쳐졌던
거대한 언덕같은 원형 구조물에 관한 것이었다. 생전 처음보는 것인지라 궁금했었지만 아까 그 자리에 있을
때는 미처 물어보지 못했었다. 베르단디 역시 그것이 궁금했기 때문에 식기를 치우다 말고 하야미의 말을
기다렸다.

"그건 강림자의 유산이라네. 강림자들이 이 지구상에 남긴 유적. 이곳이 '유적 기지'라고 불리게 된 이유지."

"강림자의 유산이라고요?!"

"응. 그건 원래 강림자들이 타고 다니던 우주선이야."

하야미의 설명에 케이들은 크게 놀랐다. 저것이 바로 인류를 만들었다는 강림자들이 썼던 우주선이라니! 그
런 것이 지구상에 있다는 것이 너무 놀라웠다. 하야미의 설명은 계속됐다.

"강림자들은 이곳 지구를 떠났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이곳에 있는 우주선은 지구에 그대로 남겨지게 된
거지. 사실 저 유적은 지금까지...."

-삐잉! 삐잉!

그 때 식당 안에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그 경보음에 하야미나 울드, 스쿨드등은 크게 놀랐고 케
이나 베르단디, 핫세는 영문을 몰라 당황해하였다. 어디서 불이라도 난 걸까? 아니면 무슨 큰 일이 생긴 걸
까? 하야미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서는 그대로 식당 밖으로 나갔다. 그의 뒤를 쫓아 케이들도 황급히 식당
밖으로 달려나갔다. 이들은 상황을 알기 위해 서둘러 연구실 쪽으로 달려갔다.




******************************************




"무슨 일인가요!"

케이들은 서둘러 연구실로 들어섰다. 안에 들어와보니 아키토와 린드, 그리고 연구실 스텝들이 긴장한 표정
으로 메인 스크린을 바라보고 있었다. 스크린에는 놀랍게도 규오가 비쳐지고 있었다!

"규오다. 규오가 여기 최하층에 내려온거야."

아키토의 설명에 케이들은 경악하였다. 설마 자신들의 존재를 들킨걸까? 그러나 오다기리는 그건 아니라고
설명해주었다. 아마도 규오는 언제나 처럼 시라이 박사의 연구실로 가는 것 같다고 하였다.

"시라이 박사라뇨?"

"이 최하층의 총책임자지. 서류상으로는 말이야."

원래 직책상으로는 시라이 박사가 이곳 최하층의 최고 책임자였다. 그러나 시라이 박사는 과학자로서의 학
식은 깊었지만 외곬수인지라 자기 연구 이외에는 아무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런 사람이 최하층의 관리
를 잘 할 리가 없었고 때문에 그 다음 직급인 오다기리가 이곳의 실질적인 총책임자가 된 것이다. 요즘 시
라이 박사는 뭔가 새로운 연구를 시작해서 자기 실험실에서 거의 나오질 않는다고 한다. 연구 중에는 자기
방에는 아무도 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오다기리도 요 근래에는 그를 만나보질 못했다.

"그렇다면 규오는 왜 그곳으로 가는 거죠?"

"글쎄....아무래도 시라이 박사의 연구와 무슨 관계가 있지 않나 싶군."

오다기리도 확답은 못했다. 시라이 박사가 뭘 연구하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이곳 유적기지의 데이터
베이스에도 박사의 연구기록은 등록돼 있지 않았다. 게다가 규오도 항상 이곳에 올 때마다 수행원 한 명 없
이 조용히 왔다 가곤 했다. 마치 자기가 이곳 최하층에 온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듯이 말
이다. 이것은 아무래도 시라이 박사의 연구가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져선 안돼는 규오의 비밀이라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




규오는 심각한 표정으로 최하층부 유적옆을 걸어가고 있었다. 시라이 박사의 연구실로 가려면 이 길로 가는
것이 가장 빠르기 때문에 갈 때마다 그는 이 길로 갔다.

규오는 걸으면서 마음이 점점 초조해져만 갔다. 아직 이빨은 드러내지 않았지만 발카스는 자신의 계획을 눈
치채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조금만 있으면 발카스가 행동에 나설 것이고 그렇게 되면 모든게 끝장이었
다. 그런데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시라이는 아직도 '리무버'의 기동방법을 해독하지 못하고 있었다. 자신 있
다고 큰 소리 떵떵쳐놓고는 연구를 맡긴지가 한참 됐는데도 아직도 무소식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그 허풍쟁
이의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고 싶었지만 이제 와서 다른 과학자에게 연구를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그
냥 꾹 참는 수밖에는 없었다.

"음! 뭐지? 이 느낌은...."

그 때 규오는 이상한 기운을 느꼈다. 뭔가 머리를 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분명 유적의 반응이
었다. 일전에 여길 왔을 때도 이런 묘한 감각을 느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그 때는 그냥
좀 머리가 띵한 정도로 끝났었는데 오늘은 틀렸다. 머리가 심하게 아파 오기 시작했다. 규오는 머리를 감싸
쥐며 괴로워하였다.

"으...으으으!"

-키이잉!

그 때 규오의 이마에서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규오의 머리에 심어져 있는 조아 크리스탈이 활
성화되고 있는 것이다. 조아로드들은 평소에는 머리 속에 조아 크리스털을 숨겨두고 있다가 - 규오처럼 전
혀 안보이게 숨어있는 경우도 있지만 발카스처럼 부분적이나마 노출된 경우도 있다 - 전투가 벌어지면 전
투형태로 변신하면서 밖으로 꺼내게 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규오는 꺼낼 생각조차 안 했는데도 조아 크리스
털이 멋대로 활성화되고 있었다. 게다가 에너지 순환이 완전히 제멋대로 돌아가기 시작해서 규오는 크리스
탈을 전혀 컨트롤 할 수가 없었다.

"크...으...으아아!!"

점점 두통이 심해지자 규오로서는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었다. 고통을 견딜 수 없게된 규오는 비명을 질렀
다.

"으아아아아!!!!"





******************************************




"유적의 생명 반응 급상승!"

갑작스러운 사태에 스텝들은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오다기리는 일단 모두를 진정시켰다. 뭐가 어떻게 돌아
가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가능한 한 이 상황을 모두 기록이라도 해둬야 했다. 그 와중에 케이는 이해
가 안돼는 것이 있었다. 생명반응이라니? 저 유적이란 게 생물체란 말인가? 아니면 유적 안에 있는 뭔가 수
상한 생물? 궁금해진 케이는 오다기리에게 물었다. 오다기리는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대답해 주었다. 그 역
시 잔뜩 흥분돼 있었다.

"살아있는걸세. 저 유적은 말이야. 저 강림자의 유적은 그 자체가 살아있는 생물체야."

"네? 저 거대한 게 생물이라고요?"

"그 옛날 강림자들이 타고 다녔던 저 유적은 그 자체가 독자적으로 살아 숨쉬는 생물이야."

강림자들은 자신들이 우주를 여행할 때 사용할 우주선을 상당히 독특한 방식으로 만들었다. 흔히들 우주선
하면 기계를 떠올리겠지만 강림자들은 그들의 우주선을 조아노이드를 만들듯이 스스로 살아 숨쉬는 생물로
만들었다. 독자적으로 생명활동을 유지하면서 손상 부분등을 스스로 복구하고 강림자들의 장기 항해에 대비
해서 필요한 양식등을 만들어 낼 수 있고 - 뭘 먹었는지는 모르겠지만 - 승무원들의 안락한 거주를 위한
하나의 조그만 생태계를 목표로 한 것이다.

그 옛날 강림자들은 이 별을 떠났다. 그러나 떠나면서 몇몇 우주선들은 노후화나 기타 이유로 인해 지구각
지에 버려졌고 그 대부분은 이미 태고 적에 말라죽어 화석이 되버렸다. 문자 그대로 유적이 되고 만 것이
다. 그런데 그 중에 단 하나, 가사상태에 빠진 채로 지금까지 살아있는 우주선이 있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
곳 미나카미 산의 유적이었던 것이다. 이곳 유적기지는 바로 이 '살아있는 유일한 우주선'을 연구하기 위해
그 위에 세워진 것이다.

"유적의 생명반응은 가끔 저렇게 갑자기 증가하였었네. 마치 잠을 자던 와중에 잠깐 잠에서 깨는 것 같다고
나 할까. 물론 그 주기는 일정치 않지만.... 그런데 이번에는 수치가 이상하게 크단 말이야."

오다기리는 다시 콘솔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확실히 이번에는 생명반응 증가치가 평소보다 컸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우르릉!!

실험실 내부가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탁자 위에 올려놓은 찻잔들이 밑으로
떨어져서 깨졌다. 당황해하는 케이들에게 오다기리는 유적의 생명활동이 활발해지면 이런 지진이 일어난다
고 설명해주었다. 케이들은 이곳이 무너질까봐 안절부절못하였지만 오다기리들은 익숙해져 있는지 각자 일
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케이씨! 저걸 보세요!"

그 때 베르단디가 다른 모니터를 가리켰다. 케이를 비롯한 모두가 그쪽을 보자 모니터에 유적 옆에서 비틀
거리고 있는 규오의 모습이 비쳤다. 카메라를 등지고 있어서 얼굴 표정을 볼 수가 없었지만 뒷모습만 봐도
지금 규오가 정상이 아니란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설마 유적의 생명반응과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그 때
다른 연구원이 비명처럼 소리쳤다.

"주임님! 큰일입니다!"

"으! 이번엔 또 뭔가!"

"조제소의 수치가 이상합니다!"

조제소라면 무라카미가 있는 곳이다. 그 말은 곧 지금 무라카미에게 무슨 큰 일이 일어났다는 뜻이었다! 오
다기리와 케이들이 서둘러서 조제소로 달려갔다. 서둘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모두는 크게 놀랐다. 무
라카미의 이마에 있는 조아 크리스털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주임님! 저건 대체...."

"글쎄...나도 저건 잘 모르겠네. 어쩌면 무라카미군의 조아 크리스털이 유적의 바이브레이션에 동조돼 있는
건지도 모르지."

그렇게 본다면 지금 밖에서 규오가 비틀거리고 있는 이유가 설명이 된다. 규오와 무라카미는 질은 비교할
수 없지만 어쨌든 조아 크리스털을 가지고 있다. 유적의 생명반응에 두개의 크리스털이 공명을 일으키고 있
다면 조아로드의 신체에도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조아 크리스털은 조아로드의 핵심 부분이니까.

오다기리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무라카미를 지켜보았다. 지금 쇠약해져 있는 무라카미의 몸으로는 유적과
의 공명현상을 견디지 못할지도 몰랐다. 소리의 진동을 견디지 못한 유리잔이 깨지듯이 자칫 잘못하면 무라
카미의 몸이 파괴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이들에게는 달리 손쓸 방법이 없었다. 지금은 그저 무라카
미가 무사하기만을 빌 수밖에 없었다.

"주임님! 유적의 생명반응이 감소하고 있습니다."

그 때 연구원들이 유적이 다시 평소 상태로 돌아오고 있다고 보고하였다. 그와 동시에 무라카미의 조아 크
리스털의 빛도 약해져 갔다. 공명 현상이 그친 것이다. 오다기리는 한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글부글!

"응? 저건!"

"무라카미씨!!"

갑자기 조제통 안에 있던 무라카미의 몸 주변에서 엄청나게 많은 거품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그 거품들은
이윽고 무라카미의 전신을 완전히 덮어버렸다. 오다기리는 급히 콘솔을 조작해서 현재 상태를 체크하기 시
작했다. 케이들은 당황해 하면서 조제통을 바라보고 있었다.




******************************************




"으으으....!"

유적의 생명반응이 멈추면서 규오도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깨질 것 같이 아프던 머리도 이젠 어느
정도 괜찮아 졌다. 규오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은 채로 숨을 가다듬었다.

'뭐지...방금 전의 그 현상은..!'

규오는 방금 전에 벌어진 일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유적 쪽에서 뭔가 일어나고 있
다는 느낌이 든 순간 머리가 깨질듯이 아파 왔고 특히 조아 크리스탈은 거의 통제가 불가능했었다. 그렇다
면 혹시 유적의 생명반응과 자신의 조아 크리스탈이 공명하기라도 했다는 건가? 그러나 이곳에는 그동안
여러번 와봤지만 이런 일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게다가 또 한가지 묘한 느낌도 받았다. 유적뿐만이 아니라 다른 존재도 느껴졌었던 것이다. 마치 뭔가가 자
신의 조아 크리스털과 싱크로 되있다는 느낌.... 이 느낌은 그 때의 무라카미라는 실험체 녀석을 처음 만났
을 때 느낀 것과 같았다. 그렇다면 혹시 녀석이 이 근처에 있다는 뜻...?

"훗, 설마 그럴리가."

규오는 잠시 고개를 젓고는 그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때 이후로 녀석의 행방을 알 수 없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설마 이 기지 안에 있을까. 규오는 바보 같은 생각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아마도 아까 유적과의
공명 중에 비슷한 느낌을 받고 착각한 건지도 몰랐다. 어쨌든 지금은 그런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는 다시 시라이 박사의 연구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혹시나 규오가 여기로 와서는 원인을 물어볼까봐 안절부절 하던 스텝들은 규오가 그냥 시라이 박사의 연구
실로 가버리자 다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무라카미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
자 연구소 안은 다시 긴장에 휩싸였다. 조제통안에서 순식간에 무수히 많이 일어난 거품으로 인해 안은 전
혀 보이지 않았다. 연구실 스텝들과 케이들은 다들 긴장된 표정으로 조제통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조
제통안을 가득 채웠던 거품들이 사라지면서 무라카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 이럴수가! 이건..."

"무라카미씨!"

오다기리를 비롯해서 모두는 크게 놀랐다. 거품이 걷히자 나타난 것은 다시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무라카미의 모습이었다. 그 동안 그렇게 노력했어도 풀리지 않았던 전투형태가 갑자기 풀려버린 것이다. 모
두들 놀란 얼굴로 무라카미를 바라보고 있었다.






Next episode 제20화 '돌입전야' coming soon.....



p.s : 히잉~ 날씨 더무 더워요....의욕 다운....orz 그래서인지 이번 편은 어째 묘사가 좀 맘에 안든다는....;;;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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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더경님의 댓글

베이더경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리무버??? 그건 또 뭐야?!

우주선이 살아있다는 소리에 순간 저그의 공중 투하 드랍쉽인 '오버로드'가 떠올랐다는....

역시나 크로노스 내부에도 적들은 존재하는 군요..

그런데 조아로드의 그 강력하다는 에너지 공격. 혹시 린드의 부스터까지 끌어모아서 쓰면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중.

답변 부탁드리고 즐거운 주말 드디어 휴가 보내러 갑니다!! 건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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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버님의 댓글

가이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확실히 오버로드 라고 해도 할말이 없군요. -ㅅ-;;

으음...그리고 질문하신 내용은....제 묘사력 부족을 통감하고 있습니다...orz 애니를 보신다면 더 실감나실 텐데.... 뭐, 무라카미와 린드의 몸이 정상이고 린드가 부스터를 전부 다 쓴다면 한번은 막을 수 있을겁니다. 다만 그래봐야 다음 공격이 오면 속수무책이란게 문제고, 그 때 당시에는 두 사람다 몸이 정상이 아니었죠. ^^;;

p.s : 그런데 우째서 저에게 똥침을....-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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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더경님의 댓글

베이더경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ㅋㅋ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대신 노래를 불러드리죠. 으라라라라!! [검은 가면에 변태스런 숨소리를 내뿜는 중년 남성?의 노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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