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식장갑 가이버 제1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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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 각자의 결의 -
-콰아앙!! 쿠쿵!!!
아키토의 프레셔 캐논에 맞은 터미널의 입구가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아키토는 계속해서 연발로 프
레셔 캐논을 난사해서 터미널의 입구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육중한 콘크리트 더미들로 인해 이제는 통행이
완전히 불가능해졌다. 환기구가 없는 터널 안이라서 입구가 무너질 때 난 먼지들이 쉽게 빠지질 않았다. 다
른 사람들은 먼지 때문에 기침들을 하고 있었다.
아키토는 모두를 이끌고 제 4구역 최외곽 지역인 리니어 라인 No.2 지점에 도착하였었다. 전력이 공급되어
야 움직일 수 있는 리니어 카의 특성 때문에 사령실에서 4구역 전체의 전기를 끊어버리자 리니어 카들은
당장 무용지물이 되었다. 이래가지고는 빨리 탈출할 수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사실 아키토는 처음부터 리
니어 카를 쓸 생각이 없었다. 규오가 바보가 아닌 이상은 전기를 끊을 건 뻔하거니와 설령 쓸 수 있다해도
도착 지점에 조아노이드들이 잔뜩 매복해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아키토는 처음부터 통로를 걸어갈 생
각을 하고 있었다.
"대체 어떡하려고?"
한참을 걸어야 한다는 아키토의 말에 울드는 약간 불만이 섞인 투로 물었다. 아키토는 손으로 천정을 가리
켰다.
"적당한 지점에서 천정을 뚫고 올라갈 꺼야. 어디쯤에서 올라 갈 건지는 정해뒀으니까 따라만 오라고."
아무리 녀석들이라 할지라도 리니어 라인 전체를 다 감시하고 있을 수는 없으니 어느 지점에서 천정을 뚫
고 올라간 후 재빨리 몸을 숨기면 찾아낼 수가 없을 것이었다. 아키토 혼자라면 모를까 이렇게 데리고 가야
하는 사람들이 많다면 가급적 교전은 피해야 했다. 그들은 어두컴컴한 터널을 한동안 말없이 걷기만 했다.
"마키시마. 저기..."
"네?"
그 때 지로가 아키토에게 말을 걸었다. 아까 감옥에 있을 때와는 목소리가 많이 부드러워진 상태였다. 그야
오해가 풀렸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미안해...사정도 모르고 화를 내서."
"괜찮습니다. 그 상황에서는 저라도 그렇게 화냈을 겁니다."
"그런데 너 우리 때문에 괜히 무리하는 거 아냐? 너 여기에 어렵게 잠입했을 텐데...."
"아뇨, 그것도 신경 쓰실 필요 없어요. 어차피 곧 물러날 생각이었으니까."
지로를 안심시키기 위한 빈말이 아니라 정말로 아키토는 이쯤에서 물러나야 겠다는 판단을 하였었다. 납치
작전이 성공한 직후 아키토가 규오에게 작전 성공을 보고하자 규오가 아키토에게 인질들을 데리고 유적 기
지로 들어오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자택으로 복귀하라는 명령이 나올 줄 알았던 아키토는 조금 의외라
는 생각을 하였다. 게다가 규오는 중대한 할 얘기가 있으니 유적 기지로 오라는 말까지 하였었다. 그 중대
한 얘기란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짐작이 갔다. 아마도 자기를 이때쯤 해서 차기 간부에 어울리는 하이
퍼 조아노이드로 조제하려고 그랬을 것이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조제전 신체검사를 할 때 자신이 가이버란
것을 들키게 된다. 즉, 굳이 이 사건이 아니었어도 어차피 물러날 시기였다는 것이다. 어차피 설령 자기가
가이버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조아노이드 따위가 될 생각은 티끌만큼도 없었지만.
"한가지 더 묻겠다."
그 때 일행의 후미를 지키고 있던 린드가 아키토에게 말을 걸었다. 아키토는 묵묵히 앞만 보고 걷고 있었
다.
"어째서 케이에게 그대의 정체를 숨긴 건가. 목적이 같다면 서로 공동전선을 펼 수도 있었을 텐데."
린드의 말에 다들 궁금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어째서 아키토는 이제까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었을까. 서로 같은 적과 싸우는 처지라면 힘을 합치는 게 더 수월하지 않은가. 아키토는 여전히 앞을 보
고 있는 체로 대답하였다.
"보다시피, 난 여기에 잠입해 있는 상황이었어. 게다가 당신들은 모두 진작부터 크로노스의 감시 하에 있었
지. 그래서 내가 함부로 접촉할 수가 없었어."
"과연...."
"적을 속이려면 먼저 아군부터 속여라.....라는 말도 있잖아? 그렇게 된 거야."
아키토의 설명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런 상황이라면 함부로 접촉을 시도해서 그 동안 공들였
던 탑을 무너트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린드는 여전히 어딘가 석연찮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과연, 단지 그 뿐이었을까? 케이에게 정체를 숨기려 했던 이유가 단지 그것뿐이란 말인가? 지금 정체를 드
러낸 것도 자신들이 잡혀와서 일이 꼬이는 바람에 별수 없이 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린드는 아키토
가 어딘가 수상해 보였다.
"다들 멈춰."
그 때 아키토가 손을 들어 모두 그 자리에서 멈추게 하였다. 어두워서 맨눈으로는 안 보이지만 아키토는 헤
드 센서로 저 앞에 다섯 명의 생명반응을 탐지해 내었다. 게다가 탐지된 반응 자체도 보통 인간의 것이 아
니었다. 그렇다면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아키토는 다른 사람들에게 그 자리에서 꼼짝 말라는 말을 한 이
후 앞으로 걸어나갔다.
"슬슬 모습들을 드러내시지. 이 더러운 쥐새끼들아."
아키토의 말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앞을 보자 과연 몇 명의 사람들이 있는 것이 보였다. 어두워서 잘 안보
였지만 모두 5명이었다. 상황으로 봐서는 크로노스의 전투원들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터널 입구는 봉쇄했는
데 어떻게 앞을 막고 있을 수 있었을까.
"잘도 우리를 눈치챘군. 가이버 III. 그러나 오늘 여기가 바로 네 무덤이다."
"웃기지도 않은 소리 집어치우고 빨리 그 흉한 본모습이나 드러내시지."
그러자 그 남자들이 일제히 조아노이드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모두가 잔뜩 긴장하였다. 변신
을 완료한 그들은 모두 처음 보는 기괴한 조아노이드들로 변신해 있었다. 울드가 저 녀석들은 어떤 놈들이
냐고 스쿨드에게 물어봤지만 스쿨드 역시 처음 보는 놈들이라 고개만 저을 뿐이었다. 그러나 아키토는 조금
도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만 쳤다.
"훗, 겨우 조아노이드 다섯 마리 정도로..... 날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느냐!!"
-부웅!
아키토가 주먹을 힘껏 쥐고 그 조아노이드 무리를 향해 돌격해 들어갔다. 그러자 다섯 마리 중 회색의 큰
뿔을 가진 코뿔소처럼 생긴 조아노이드가 앞으로 나섰다. 아키토는 그 조아노이드를 향해 주먹을 힘껏 휘둘
렀다.
-타악!
"아니!!"
그러나 놀랍게도 그 조아노이드는 아키토의 주먹을 가볍게 막았다. 그 조아노이드는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
"겨우 이 정도냐? 가이버."
-퍼억!!
그 조아노이드 아키토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그 주먹에 맞은 아키토가 뒤로 한참 날려가서는 벽에 충돌하고
말았다. 아키토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겨우 조아노이드 따위가 가이버의 주먹을 막고는 오히려 반격을 하다
니! 아무래도 힘만 무식하게 올려놓은 놈인 것 같았다. 아키토는 곧장 헤드빔을 그 조아노이드에게 난사하
였다.
-푸슝! 푸슝! 푸슝!!
그러나 헤드빔은 그 조아노이드를 상처 입히지 못했다. 오히려 빔이 그대로 그 조아노이드의 체내로 흡수되
고 말았다. 빔을 흡수하는 능력까지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을 못했다. 그 직후 빔을 흡수한 조아노이드의
입에서 갑자기 화염이 뿜어져 나왔다.
-화아악!
"우욱!"
맹렬한 화염 공격에 아키토는 황급히 몸을 날려 피했다. 고온에도 견딜 수 있는 강식장갑이었지만 지금의
불길은 위험할 정도로 뜨거웠다. 놈의 화염 공격을 아키토는 피해 다닐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받아랏!"
그 때 뒤쪽에 있던 또다른 조아노이드가 앞으로 나섰다. 보랏빛의 그 조아노이드는 어깨가 이상할 정도로
부풀어올라 있었다. 마치 물주머니처럼 부풀어 있는 그 어깨 부위에는 송곳 같은 것이 곳곳에 돌출 되어 있
었다. 그 때 그 송곳처럼 생긴 것이 밖으로 발사되었다. 그리고는 아키토를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콰앙!
맨 처음 날아온 그 송곳이 아키토 근처의 지면에 떨어지자 큰 폭발이 일어났다. 단순한 송곳이 아니었다.
마치 미사일 같은 이 무기를 본 아키토는 이 녀석들이 보통이 아님을 눈치챘다. 그러나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틈이 없었다. 계속해서 제2탄, 3탄이 날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빠른 속도로 움직이던 아키토는 결국 등
에 그것을 한발 맞고 말았다.
-콰앙!
"커헉!!"
등에 엄청난 충격이 가해졌다. 숨이 막힐 듯한 고통에 아키토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었다. 그 사이에 또 다
른 미사일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아키토는 옆으로 몸을 굴려 이 공격들을 피했다.
-콰콰쾅!!
"마키시마!"
"마키시마 씨!!"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지로와 베르단디들이 크게 동요하였다. 아키토가 고전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들도 마
음이 초조해져만 갔다. 린드는 배틀액스를 단단히 고쳐 쥐었다. 아무래도 이 녀석들은 아까 기지에서 탈출
할 때 싸웠던 다른 녀석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놈들인 것 같았다.
"이...이놈들이!!"
아키토는 힘겹게 일어섰다. 그리고 일어서자 마자 오른쪽 흉부 장갑을 열어젓히고는 메가 스매셔를 가동시
켰다. 메가 스매셔의 빛이 점점 강해지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거기다!"
보랏빛의 조아노이드가 또 한발의 미사일을 발사하였다. 미사일은 그대로 밖으로 노출된 스매셔 발생기관에
박혔다. 그리고 발사직전 미사일이 그대로 폭발하였다.
-콰쾅!!
"으아악!!"
미사일이 터지면서 아키토는 오른쪽 가슴에 큰 상처를 입었다. 미사일의 폭풍 압력은 연약한 조직이던 스매
셔 발사기관을 파괴하고 그대로 아키토의 폐까지 큰 데미지를 입혔다. 아키토는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그 보랏빛 조아노이드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어떠냐, 이 가스터 님의 생체 미사일이..."
"생체..미사일...!"
생체 미사일이 폭발하면서 폐를 크게 다쳐서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공기 흡입구에서 피
가 쏟아져 나왔다. 아키토는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이 녀석들, 보통 녀석들이 아니었다. 이 파워, 다른 일반
조아노이드에는 없는 무기들. 이 녀석들은 하이퍼 조아노이드들이 틀림없었다. 그 때 아키토의 뇌리에 한가
지 사실이 떠올랐다. 크로노스 최고 과학자 닥터 발카스가 심혈을 기울여 조제하였다는, 현 시점에서 최고
의 기술력이 집중된 최고의 엘리트 부대. 그놈들이 틀림없었다.
"....하이퍼 조아노이드 5인중!(五人衆)"
-"거기까지다, 가이버 III. 아니면 제우스라고 불러주랴?"
그 때 어디선가 규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터널 내에 방송용 스피커가 있는 모양이었다. 아키토가 주변을
둘러보니 천정 한쪽 구석에 감시 카메라가 보였다. 규오는 저걸 통해 이 쪽의 일을 전부 다 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스피커에서 계속해서 규오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일본지부에서 제우스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진작에 눈치챘어야 하는 거였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우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쓰러트리고 최고신의 자리에 올랐지...."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주신 제우스는 그의 아버지 '크로노스'를 대지의 가장 깊은 곳에 있는 타르타로스
(Tartaros, 무한지옥)에 가둬두고 자신이 제왕의 자리에 올랐다고 한다. 결국 제우스라는 말은 곰곰히 생각
해 보면 조직내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반란분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즉, 그건 바로 널 가리키는 거다! 마키시마 아키토!!"
일본지부에서 가이버 III 가 그토록 신출귀몰하게 움직일 수 있었던 것도, 마키시마 저택에서 로스트 넘버
코만도의 엄중한 경계망을 뚫고 침투해 들어와서 규오의 암살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아키토가 가이
버 III 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아키토는 힘겹게 말을 하였다.
"거기까지 알고 있었으면서... 왜 나를 이곳으로 부른 거지? 덕분에...큭! 유적기지는 엉망이 되었는데."
-"그건 다 너를 잡기 위한 것이었지."
그 때 스피커에서 규오와는 전혀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상당히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인의 목
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들린 직후 규오의 웃음소리가 다시 울려 퍼졌다.
-"소개하지. 나와 같은 크로노스 '12신장'의 한사람이자 우리 크로노스 최고의 과학자, 닥터 해밀컬 발카스
다!"
발카스라고! 아키토는 그 대목에서 깜짝 놀랐다. 직접 대면해 본적은 없었지만 자주 들어본 이름이었다. 크
로노스 창설 멤버이며 현재 크로노스가 조재하는 조아노이드의 모든 원천기술을 계발한 천재 과학자. 하지
만 그는 미국에 있다고 들었는데 언제 일본에 온 것일까. 계속해서 발카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무리 가이버가 강하다고는 해도 그 베이스는 인간의 육체. 이제까지 기지 내에서 수많은 조아노이드와
교전한 너는 지금 상당히 지쳐있을 것이다."
"큭...!"
-"따라서! 지금의 너는 내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이 5인중을 이기지 못해!!"
5인중 중에서 거대한 사슴벌레처럼 생긴 곤충형 조아노이드가 앞으로 한 발짝 나섰다. 아키토는 발악하듯
그 조아노이드를 향해 헤드빔을 날렸다.
"젠장!"
-푸슝! 티잉!
그러나 헤드빔은 그 조아노이드의 겉표면에서 허무하게 튕겨져 나갈 뿐이었다. 상대방은 그저 코웃음만 쳤
다. 다시 발카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젝토올! 너의 힘을 보여주어라!!"
"분부하신대로 하겠습니다."
곤충형 조아노이드, 젝토올의 머리 부분 뿔이 뒤로 젖혀졌다. 그러자 젖혀진 부분에서 그때까지 숨겨져있던
생체열선포 렌즈가 나타났다. 이윽고 그 렌즈부분에 에너지가 모이기 시작했다. 녀석은 생체 열선포로 무장
한 조아노이드 였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 아키토의 몸 상태는 전투는 고사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조차 쉽지
가 않았다. 아키토의 위기를 본 린드가 배틀액스를 치켜들고 돌격하려 하였다. 바로 그때였다!
-콰콰쾅!!
"아앗!"
갑자기 천정이 붕괴되기 시작했다. 천정이 무너지면서 육중한 콘크리트 더미들이 5인중과 아키토 사이에 떨
어져 내렸다. 천정이 붕괴되면서 발생한 흙먼지로 인해 앞이 잘 안보였다. 잠시 후 그 흙먼지 사이로 뭔가
가 천정에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공중에 뜬 채로 천천히 내려오고 있는 그것을 본 그들은
이윽고 깜짝 놀랐다. 베르단디는 그것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케이씨!!"
천정을 뚫고 온 것은 가이버 I, 케이였다. 위기의 순간 참으로 적절한 타이밍에 나타난 케이를 본 모두의 얼
굴에 기쁨이 감돌았다. 케이는 5인중과 가이버 III 사이에 내려섰다. 케이의 눈에 큰 부상을 입고 주저앉아
있는 가이버 III 의 모습이 보였다.
"조심해..! 가이버 I. 이 녀석들은... 쿨럭!!"
그 때 가이버 III 가 공기흡입구로 피를 토해내었다. 깜짝 놀란 케이는 가이버 III 에게 다가가려 하였다. 척
보기에도 말도 하기 힘들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그 때 지로의 외침이 들려왔다.
"마키시마! 괜찮아?!!"
마키시마? 설마 가이버 III 의 정체가 마키시마 아키토란 말인가! 케이는 깜짝 놀랐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일이라서 뭐라 말해야 좋을지도 몰랐다. 설마 그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했었다. 가이버 III 의 정체가
마키시마 아키토 였다니!
그러나 적들은 그런걸 생각하고 있을 틈을 주지 않았다. 베르단디가 비명을 질렀다.
"케이씨!! 위험해요!"
"어딜 보냐! 가이버!!"
그 때 양손이 칼처럼 생긴 하얀 색의 조아노이드가 케이에게 달려들었다. 케이는 반사적으로 옆으로 몸을
피했다. 조아노이드의 칼은 케이의 어깨를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조아노이드는 계속해서 케이에게 맹공을
퍼부었고 케이는 피해 다니기 바빴다.
-부웅!
"윽!"
"하하하! 쥐새끼처럼 피하는 것만 잘 하는군. 그러나!"
상대방 조아노이드가 또 다시 검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아슬아슬한 차이로 피하는데 성공하였다. 조아노이
드의 검은 케이의 가슴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뒤로 물러난 케이는 가슴을 내려다보고는 깜짝 놀랐다. 가
슴 부위에 베인 상처가 난 것이다. 아니, 가슴뿐만이 아니라 검이 스치고 간 여러 군데가 전부 상처투성이
였다. 다행히 강식장갑을 관통해서 안의 피부까지 베일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상대의 검은 강식장갑을
벨 수가 있었다.
"어떠냐, 이 장크루스 님의 고주파 블레이드가. 이 고주파 블레이드는 미세한 주름의 집합, 그곳이 맹렬하게
진동하면서 물체의 분자구조를 파괴하지. 그것이 설령 강식장갑이라 할지라도!"
저 녀석의 칼은 결국 가이버의 고주파 소드와 원리적으로는 같은 물건이라는 소리다. 케이는 바짝 긴장하였
다. 저 칼에 제대로 맞으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다시 한번 장크루스가 케이에게 돌격해 왔다. 이번엔 케
이도 고주파 소드를 전개해서 맞서 싸웠다. 둘의 소드가 서로 맞부딧혔다.
-끼이이잉!!!
"우와악!"
"꺄악!!"
고주파 소드끼리 맞부딫히자 갑자기 터널 내부를 불쾌한 음향이 가득 채웠다. 마치 쇠끼리 강하게 마찰하고
있는 듯한 소리였다. 같은 고주파수로 진동하는 무기끼리 맞부딫히자 고주파음이 더 강하게 증폭이 되어서
울려 퍼진 것이다. 장크루스가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이..이건! 그렇군.... 네 녀석의 소드도 고주파인가!"
그 때 가스터가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케이에게 생체 미사일을 조준하였다.
"물러서! 저녀석은 접근전보다는 내 미사일이... 우왁!!"
-큐우우웅!!
그 때 갑자기 이들의 몸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뭔가가 이들의 몸을 강하게 진동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가이버 III 가 천정에 뚫린 구멍으로 다른 여신들과 함께 상승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와중에 가이버 III 가 소닉버스터를 이들 5인중에게 퍼붓고 있었다.
"케이! 서둘러!!"
아키토는 케이가 고전하고 있는 모습을 보자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고 판단을 하였다. 숫자상으로도 부
상당한 자신을 제외하면 린드를 포함해도 5대2로 열세인데다가 한놈 한놈이 만만치 않은 하이퍼 조아노이
드 부대였기 때문에 계속 싸우다가는 가이버 I 까지 당할 수밖에 없었다. 아키토는 돌격하려던 린드와 울드
들을 말리고 서둘러 도망치자고 하였다.
아키토가 지로를 안고 상승하면서 소닉버스터를 퍼부으며 5인중을 견제하고 베르단디는 케이마를 울드가
스쿨드를 안고 서둘러 상승하였다. 그러나 치명상을 입은 아키토의 몸으로는 녀석들에게 큰 타격을 줄 정도
로 소닉버스터의 출력을 올릴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잠시 몸을 움츠리게 만드는 정도였다. 린드는 이번에
도 후미를 지켰다.
케이도 5인중의 정신이 아키토들에게 쏠려있는 틈을 타서 즉시 상승하였다. 상승하면서 케이도 소닉버스터
를 터널 주변 벽에 방사하였다.
-큐우우우!!
-콰콰쾅!!
"우아악! 이놈들이!!"
커다란 콘크리트 더미들이 떨어져 내리자 5인중은 어쩔 줄 몰라했다. 터널이 붕괴되면서 쏟아져내리는 돌무
더기와 그로 인해 피어오르는 먼지구름으로 인해 케이들을 놓치고 말았다. 케이는 천정의 구멍으로 상승하
면서 계속해서 소닉 버스터를 주변에 조사하였다. 구멍을 메울 생각이었던 것이다.
-쿠쿠쿵!!!
케이는 마침내 밖으로 나왔다. 케이가 무사히 나오자 먼저 나와있던 베르단디를 비롯해서 모두의 표정이 아
주 밝아졌다. 간신히 적의 기지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지면에 착지한 케이는 베르단디들에게 달려갔다. 다
행히도 모두 무사한 듯 했다.
"케이씨! 다행이에요."
베르단디를 비롯해서 모두가 케이에게 달려왔다. 베르단디는 그대로 케이에게 안겼다. 생각 같아서는 식장
을 해제하고 베르단디를 안고 싶었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아직은 적진인지라 식장을 해제할 수가
없었다. 케이는 케이마를 바라보았다.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가이버인 케이의 모습 역시 케
이마에겐 너무나 낯설게 보일 것이었다. 일단은 나중에 한숨 돌리면 차분하게 이야기해야 될 듯 싶었다.
"케이! 위험해!!"
그 때 아키토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이는 반사적으로 베르단디를 밀쳐냈다. 그 직후 케이의 양손
에 뭔가가 감겼다. 케이가 고개를 들자 뱀장어처럼 생긴 조아노이드 한 마리가 공중에 떠 있는 것이 보였
다!
"그렇게는 안 된다! 가이버!!"
-파지직!!
"우아악!!!"
갑자기 온 몸에 엄청난 전기 충격이 가해졌다. 케이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공중에 떠 있던 조아노이
드가 촉수를 통해 강력한 전기 충격을 가하고 있던 것이다! 당황한 베르단디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어떠냐, 이 엘레겐 님의 1만볼트 전기 공격이!"
"케이씨!"
"크으으윽!!"
그 때 케이가 촉수를 양손으로 꼭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이를 악물면서 전기 충격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리
고는 힘겹게 고개를 돌려 베르단디들에게 빨리 도망치라며 소리쳤다. 그 때 숲속에서 한대의 자동차가 튀어
나왔다.
-부와앙!! 끼이익!
차문이 급히 열리면서 한 남자가 베르단디들에게 소리쳤다.
"모두들! 빨리 타요!!"
순간 일행은 주저하였다. 그러자 케이가 힘겹게 말을 이어나갔다.
"베르..단디!! 그 사람은 믿을 수 있어. 그러니까 빨리..!!"
"케이씨! 하지만...!"
그러나 베르단디는 케이를 내버려두고 갈 수가 없었다. 이윽고 베르단디는 케이를 돕기 위해 공격 법술을
외기 시작했다. 그 때 케이마 바로 아래 지면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푸화악!!
"으아악!"
지면 아래에서 튀어나온 것은 젝토올이라 불리던 곤충형 조아노이드 였다. 젝토올은 그대로 케이마를 끌고
지면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케이마씨!!"
그 모습을 본 케이가 그 쪽으로 달려가려 하였다. 그 때 케이를 붙잡고 있던 엘레겐이 케이를 향해 또 하나
의 촉수를 날렸다. 그 촉수는 케이 이마에 있던 컨트롤 메탈에 제대로 명중하였다. 엄청난 전기 충격이 그
대로 컨트롤 메탈에 직접 가해졌다.
-파지직!!
갑자기 컨트롤 메탈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케이의 강식장갑이 그대로 벗겨지고 말았다. 그 모습을 본 모
두가 깜짝 놀랐다. 강식장갑이 저절로 벗겨진 것이다! 케이는 그대로 앞으로 쓰러졌다.
"케이! 케이이이!!!"
케이마는 끌려 들어가면서도 아들의 이름을 애타게 불렀다. 그러나 케이는 손가락 하나 움직일 수가 없었
다. 땅속으로 끌려 들어가는 케이마를 보며 케이는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린드가 케이마를 돕기 위해 달려
들었으나 이미 케이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엘레겐은 여전히 공중에 뜬 상태로 케이를 내려다보았다.
"훗! 어떻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저 상태대로 라면 전기 채찍 한방이면...!"
-파슈웅!!
"크악!!"
그 때 엘레겐의 어깨를 강력한 레이져빔이 스치고 지나갔다. 엘레겐이 빔이 날아온 방향을 쳐다보자 그 곳
에는 아직 무사한 왼쪽 흉부장갑을 열어 젖힌 가이버 III 가 있었다. 무사한 한쪽으로 메가 스메셔를 날린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 날아온 빔은 평소의 메가 스매셔 보다 형편없이 가늘었다.
'쳇! 머리를 노렸는데...!'
아키토는 제대로 명중시키지 못하자 혀를 찼다. 억지로 메가 스매셔의 에너지를 끌어올려 아직 무사한 왼쪽
흉부로 메가 스매셔를 날려 봤지만 놈을 해치우질 못했다. 다량의 출혈로 인해 눈앞이 가물거려 조준이 빚
나간 것이다. 물론 메가 스매셔라면 평소 수준의 위력이 나온다면야 조준을 별로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을 만
큼 넓은 범위를 커버하지만 지금은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라서 원래 위력의 10분의 1도 나오질 않았다. 머리
등의 급소를 노려야 해치울 수 있었던 것이다.
무리하게 에너지를 끌어올린 아키토는 빈혈이 급격히 악화돼서 제대로 서있기도 힘들었다. 부상을 입은 엘
레겐이 가이버 III 에게 전기채찍 공격을 하려하였다.
-투쾅!!
"커헉!!"
그 때 무라카미의 대형 리볼버가 불을 뿜었다. 무라카미의 탄환은 엘레겐의 옆구리를 관통하였다. 엘레겐은
경악하였다. 고작 권총으로 하이퍼 조아노이드인 자신의 몸을 뚫고 상처를 주리라고는 전혀 예상 못했다.
상당히 고위력의 탄환을 발사하는 총이었다. 무라카미는 계속해서 제2탄, 3탄을 날렸다.
-투쾅! 투쾅!
"크으윽!!"
계속해서 날아온 탄환에 엘레겐은 큰 상처를 입었다. 권총이라고 얕잡아 봤다가는 목숨이 위험할 지도 몰랐
다. 엘레겐은 일단 구멍 속으로 도로 후퇴하였다. 후퇴하는 엘레겐을 본 무라카미는 일단 총을 거두고 아키
토를 부축하였다. 사실 그 역시 엘레겐의 머리를 노렸지만 무라카미의 총은 위력이 높은 대신 정확도가 떨
어진다. 게다가 반동도 강해서 정밀사격은 영 무리였다. 일단은 쫓아버린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무라카미
가 모두에게 소리쳤다.
"자! 다들 빨리 차에 타요! 여길 벗어나야 합니다!!"
종합사령실에서 빠른 속도로 도망치는 가이버 일당의 차를 보는 규오와 발카스의 표정은 뜻밖에도 여유가
있어 보였다. 다 잡은 가이버 일당을 놓치고 말았고 게다가 발카스가 자랑하던 하이퍼 조아노이드 5인중 중
한명도 상당한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허허 하고 웃을 상황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들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어차피 녀석들은 이 지역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규오가 명령을 내려서
이 지역의 경찰력이 총동원돼서 시외로 나가는 도로는 모두 봉쇄 중이었다. 차를 끌고 여길 나갈 수는 없었
다. 그렇다고 산세가 험한 이 지역을 부상자들을 데리고 걸어서 갈 수는 더더욱 없었다. 부상당한 엘레겐도
조제통에서 한나절만 보내면 완치될 수준이었다.
"게다가 우리에겐 가이버 I 의 아버지라는 훌륭한 인질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리헐트. 그 인질 말인데...."
발카스가 음흉하게 웃으며 말했다.
"마침 내게 좋은 생각이 떠올랐어."
******************************************
"세상에.... 믿을 수가 없어..."
핫세는 큰 부상을 입은 가이버 III 의 오른쪽 가슴이 완전히 복원된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보통 인간이라
면 진작에 죽었어야 할 큰 부상을 입고도 의식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경이로운데 한두 시간만에 부상이 회
복까지 되는 것이 정말 믿어지지 않았다. 사실 전신을 복원하는데 단 몇 시간이면 충분한 가이버에게 이정
도 부상은 단시간에 회복이 가능한 수준이었지만 아까 아키토가 엘레겐에게 메가 스매셔를 쏘는 바람에 상
당한 에너지를 소비해서 강식장갑이 부상치료에 사용하는 에너지가 부족해져서 회복이 늦어지고 말았다. 어
쨌든 이제 아키토는 간신히 식장을 벗을 수 있게 되었다.
-파앙!
"큭!"
식장을 벗은 아키토가 비틀 거렸다. 지금까지 격렬한 전투를 치렀고 큰 부상까지 당했으니 체력이 바닥난
건 당연했다. 곁에 있던 지로가 황급히 아키토를 부축하였다. 아키토의 얼굴엔 땀이 흥건했고 큰 부상을 입
었던 오른쪽 가슴 부위는 큰 구멍이 뚫린 옷 사이로 피부에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체력까
지 회복시키기에는 유니트의 에너지가 다소 부족했던 것이다.
아키토는 괜찮다고 말하면서 자세를 바로 하였다. 말로는 괜찮다고 하지만 눈가에 짙게 그늘이 져 있는 것
이 피로가 보통이 아닌 듯 싶었다. 지로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키토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핫세는 선뜻
아키토에게 다가가질 못했다. 아까 얘기를 들어서 가이버 III 가 아키토란 것을 알고는 있었으나 막상 이렇
게 직접 보니 다가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왠지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전 괜찮습니다. 그런데 케이는요?"
아키토의 물음에 지로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케이가 누워있는 무라카미의 차를 바라보았다. 그 안에서
는 베르단디가 의식을 잃고 있는 케이를 간호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베르단디가 치유법술을 수 차례 걸었지
만 케이는 아직까지 의식이 없었다. 간호하는 베르단디의 얼굴엔 수심이 가득했다.
"괜찮을 꺼야, 베르단디... 케이는 곧 정신을 차릴 꺼야."
울드의 위로에 베르단디는 힘없이 미소를 지어 보이기만 하였다. 곁에서 지켜보던 울드와 스쿨드 역시 케이
걱정에 마음이 무거웠다. 특히나 스쿨드의 걱정은 더했다. 이제까지 케이의 격렬한 전투를 수없이 지켜봤지
만 적의 공격으로 식장이 강제로 벗겨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 아무래도 그 때 그 뱀장어 녀석의 전기 채찍
에 급소인 컨트롤 메탈을 맞은 것이 타격이 컸던 모양이었다.
아키토는 케이 곁에 있는 세 여신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천상계의 여신들이라 해도 가이버 I, 케이
를 써먹을 수가 없다면 솔직히 별 필요도 없는 존재들이었다. 자기 뜻대로 움직여 줄 리가 만무했으니까.
그러나 케이는 아직은 살아 있었다. 따라서 섣불리 그들을 '적으로' 만드는 것은 결코 현명하지 못했다.
"그건 그렇고, 선배. 저 남자는 누굽니까?"
"응? 무라카미 씨? 글쎄, 나도 누군지는 잘...."
지로 역시 무라카미를 몰랐다. 아까 도망쳐 오면서 간단하게 통성명한게 다인 것이다. 지금 그 남자는 린드
와 함께 주변을 둘러보러 잠시 자리를 비웠다.
"핫세는 누군지 알아? 아까 저 사람이랑 같이 왔잖아."
"아..아뇨. 저도 엉겁결에 따라온거라서...."
지로의 물음에 핫세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핫세가 보기에도 보통 사람은 아니었다. 스스로를 르포라이터
라고 하지만 저 사람의 행동은 단순히 그런 사람 같지는 않았다. 게다가 크로노스에 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는 듯 해 보였고, 무엇보다 그런 엄청난 권총까지 가지고 다니는 것도 어딘지 모르게 수상했다.
"어쩐지 귀가 가렵더라니...제 얘기를 하고 계셨습니까?"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고 하던가. 언덕 위에서 무라카미와 린드가 내려오고 있었다. 무라카미는 웃으면서
지로들에게 다가왔다.
"제가 수상하게 보이는 거야 어쩔 수 없겠지만 지금은 믿을 수밖에 없을 텐데요?"
"아... 죄송합니다. 도와주셨는데..."
"아뇨, 당연한 겁니다.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그건 그렇고...."
무라카미는 자신의 차를 바라보았다. 밖에서는 안이 잘 안보였지만 아무래도 케이는 아직까지 의식을 회복
하지는 못한 것처럼 보였다. 무라카미는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주변은 이미 크로노스가 봉쇄한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 인간 세계의 경찰들이 쫙 깔렸어."
린드가 긴장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크로노스는 이 지역 경찰력까지 손아귀에 넣고 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지금 당장은 자동차로 시외로 빠져나가는 건 무리였다. 그렇다고 부상당한 케이를 데리고
산길을 걸어가는 것은 말도 안돼는 소리였다. 다들 고민에 빠져있을때 아키토가 나섰다.
"저, 무라카미 씨."
"응?"
"제가 가리키는 곳으로 차를 몰아주십시오. 잠시 몸을 숨길만한 장소를 알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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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살려다오!"
"케이마씨!!"
조아노이드가 케이마 씨를 땅속으로 끌고 들어가고 있었다. 케이는 혼신의 힘을 다해 그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케이마 씨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케이 자신의 발목도 점점 땅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
다. 케이는 애타게 다시 한번 케이마를 불렀다. 그때 였다.
-촤악!
공중에 뜬 조아노이드가 케이를 향해 촉수를 날렸다. 그 촉수에 이마를 맞은 케이는 머리가 깨져오는 고통
을 느꼈다. 케이는 비명을 질렀다. 그 때 케이의 귓가에 베르단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이씨!!"
"케이씨! 정신이 드시나요?"
케이가 힘겹게 눈을 뜨자 바로 베르단디의 얼굴이 보였다. 베르단디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럴 만
도 했다. 케이 자신은 몰랐지만 그는 꼬박 이틀동안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의 베르단디의 맘고
생은 더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베르단디는 울먹이며 케이의 손을 두손으로 꼭 쥐었다.
"베르단디..."
"정신이 드셨군요."
그 때 또다른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이가 고개를 돌리자 허리까지 내려오는 검은 긴 생머리를 한 젊
은 여성이 케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케이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베르단디씨 께서 걱정 많이 하셨어요. 지난 이틀동안 케이씨 곁을 한시도 떠나시지 않았답니다."
이틀이라고? 내가 그렇게나 오래 기절해 있었단 말인가? 그러고 보니 케이는 그 때 그 뱀장어 같은 조아노
이드의 전기 채찍 공격에 이마를 맞았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그 이후 바로 정신을 잃었었는데 그게 이틀전
일이었다니... 케이는 침대에서 일어나려고 하였다. 깜짝 놀란 베르단디가 케이를 다시 눕히려 하였다.
"아! 아직은 좀 더 안정하셔야 해요."
"난 괜찮아, 그러니까 걱정....어라?"
그런데 일어나려던 케이는 갑자기 심한 어지러움을 느꼈다. 케이는 다시 힘없이 뒤로 눕고 말았다. 베르단
디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케이의 이마에 손을 대고 열이 있나를 확인하였다. 그리고는 물수건을 짜서는 케
이의 머리에 놓아주었다.
"오! 정신이 드신 겁니까."
그 때 또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이가 시선을 돌리자 상당히 인자해 보이는 노인이 서 있었다.
물론 케이는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 노인이 옆에 있던 여성에게 말하였다.
"시즈, 가서 다른 분들을 모셔오너라. 케이씨가 깨어나셨다고 말이야."
"네, 할아버지."
시즈라 불린 그 여성은 방밖으로 나갔다. 그 노인이 웃으면서 케이와 베르단디의 곁에 다가왔다. 베르단디
와는 이미 인사를 나눴는지 베르단디는 그 노인에게 미소를 지었다. 케이는 힘없이 그 노인에게 물었다.
"저... 대체 누구 신지요. 그리고 여기는...."
"저는 이 별장의 관리인인 오누마 요헤이라고 합니다."
요헤이라는 이름의 노인이 천천히 설명하였다. 이곳은 마키시마 가의 여름별장 이었다. 사실 더 정확한 용
도를 따지자면 아키토가 이곳 미나카미 산 일대에서 무슨 일이 있을 때를 대비해서 만든 은신처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했다. 요헤이는 이곳에서 손녀딸인 시즈와 함께 별장을 관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요헤이는 젊
었을 적부터 아키토의 집안 일을 돌보던 집사 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키토와도 아주 잘 아는 사이라고 하였
다.
-덜컹!
그 때 방문이 벌컥 열렸다. 케이가 그 쪽을 쳐다보자 울드와 스쿨드, 지로와 핫세까지 있었다. 다들 케이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서둘러 달려온 것이다. 그녀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케이! 깨어났구나!"
"얼마나 걱정했다구, 요녀석!!"
잠시 방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사실 다들 지난 이틀동안 케이가 깨어나질 앉자 케이 걱정에 한시도 마음 편
히 있지를 못했던 것이다. 울드랑 지로는 케이에게 장난을 치면서 반가움을 표시하고 있었다. 물론 케이는
아직은 좀 더 안정을 취해야 하는 환자인지라 그런 그녀들을 베르단디는 말리기 바빴다. 스쿨드와 핫세도
서로 손을 맞잡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핫세는 여기 올 때 입고 있던 불편한 복장이 아니라 어디서 났
는지 모르겠지만 핫세 몸에 꼭 맞는 바지랑 나시티를 입고 있었다.
문밖에서는 린드와 무라카미가 서있었다. 린드는 케이가 정신을 차린 것을 확인하고는 다시 밖으로 나갔다.
경계 근무에 다시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무라카미가 케이를 안 만나볼거냐고 말했지만 린드는 나중에 좀 더
회복되면 만나겠다며 그냥 밖으로 나갔다.
'어딘지 모르게 상당히 딱딱한 여신이군. 천계 전투부는 다 저런가?'
무라카미가 잠시 딴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방안에서 지로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안돼! 너 지금 제정신이야?"
"하지만 지로 선배!"
어느새 분위기가 심각하게 바뀌어 있었다. 무라카미가 방안으로 들어서서 어찌된 일인지 물었다. 그러자 베
르단디가 무라카미를 간절히 비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무라카미 씨, 케이 씨가...! 당장에 미나카미 산으로 가시겠다고..."
케이는 케이마가 다시 잡혀갔다는 것을 알자 지금 당장 유적기지로 가서 구해오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케이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면서 구출작전은 무리였다. 울드 역시 그런 케
이를 타일렀다.
"우린 여기서 일단 체력을 비축해 둬야 해. 그래야 구출작전이고 뭐고 하지."
"그래요, 케이씨. 케이마 씨는 괜찮으실 꺼에요. 그러니까 일단은 여기서 푹 쉬셔야 되요..."
"하지만 베르단디! 나는...!"
케이는 다시 일어서려 하였다. 그러나 베르단디의 슬픈 눈동자를 본 케이는 동작을 멈췄다. 일렁이는 그녀
의 눈동자를 본 케이는 일단 다시 뒤로 누웠다. 또 베르단디에게 걱정을 끼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솔직히
아직도 머리속이 어지러웠다. 베르단디가 다시 그의 이마에 물수건을 놓았다.
"당장은 쉬는 게 중요해, 케이 군."
"무라카미 씨...."
"자네는 큰 부상을 입었었어. 그리고 다들 지쳐있고. 그러니까 지금은 전열을 가다듬을 때야. 구출 작전을
한번에 성공시키려면 모두가 최상의 컨디션이어야 해. 그러니 잠시 쉬고 있으라고."
무라카미의 말에 케이는 반박할 수가 없었다. 케이는 길게 한숨을 쉬며 다시 눈을 감았다. 왠지 모르게 피곤했다.
******************************************
"베르단디 씨, 여기 다 됐어요."
"어머, 벌써요? 정말 고마워요, 시즈 씨."
부엌에서 베르단디와 시즈의 담소가 들려왔다. 특히나 베르단디의 목소리는 상당히 밝았는데 아무래도 케이
가 정신을 차린 덕분일 것이었다. 여기 온지 이틀정도였지만 어느새 두 사람은 상당히 친해져 있었다. 그리
고 베르단디는 시즈를 도와 평소보다 갑자기 늘어난 인원의 식사준비를 하였다. 두 여성 모두 요리 실력은
출중했기 때문에 식사는 상당히 맛있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 때 거실에서 한참 마작에 열중하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고 싶다는 울드, 동물 프
로를 봐야 한다는 스쿨드, 오늘의 스포츠를 봐야 한다는 지로에 뉴스를 봐야 한다는 무라카미가 가세해서
이곳에 비치되 있던 유일한 게임, 마작을 하고 있었다. 무라카미는 사실 게임을 할 생각이 없었지만 TV채
널을 차지하는 자는 승리한 자 뿐이라는 것이 이곳의 법칙이라며 우기는 울드와 스쿨드의 등쌀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게임에 참가했던 것이다. 별로 TV를 보고 싶은 생각이 없던 핫세는 거실 한 쪽에서 책을 읽
고 있었다.
"여러분, 식사 준비가 다 됐어요."
그 때 거실로 베르단디가 나와 식사가 다 됐음을 알렸다. 그 사이 시즈는 다른 곳에 있던 요헤이를 부르기
위해 어딘 가로 갔다. 울드들은 게임을 중단하고 식당을 겸하고 있는 부엌으로 왔다. 다들 각자 자리를 잡
고 앉았다. 그리고 베르단디는 쟁반 위에 따로 식사를 챙기고는 어딘 가로 걸어갔다. 아직도 누워있는 케이
몫의 식사였다.
"케이군은 아직도 입니까?"
무라카미의 질문에 울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아침에 깨어났을 때보다는 많이 회복된 상태지만 그래도
좀 더 누워있어야 했다. 울드는 잔에 술을 따라 쭉 들이켰다. 요헤이가 특별히 내준 과일주였다. 교양 없게
초저녁부터 술이냐는 스쿨드의 핀잔에 울드가 아이스크림이 어째서 식사가 되냐며 아직도 어린애라는 식으
로 반격해서 잠시 식탁 위에는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그 때 시즈와 요헤이가 부엌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 역시 곧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 마키시마 선배께서는요?"
핫세가 시즈에게 묻자 그녀는 웃으면서 답하였다.
"아키토 님께서는 저녁 식사를 거의 안하신답니다. 정 출출하시면 간단하게 스프나 드시는 정도지요."
지로와 핫세는 겨우 고거 같고 되냐는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아키토 역시 큰 부상을 당했으면서 충분히 영
양을 섭취해 둬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다 나았다고는 해도 너무 여유부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시즈는
별 걱정 없다는 듯이 웃고만 있었다. 식사를 하면서 무라카미가 다시 말을 하였다.
"케이군은 일단 납득한 것 같은데....일단은 회복이 중요합니다."
"그래요, 그렇지만 그 녀석 정말로 납득한 건지는....."
지로는 걱정스럽다는 듯이 케이가 누워있는 방 쪽을 바라보았다. 가끔 방에 가봤지만 케이의 표정은 언제나
잔뜩 굳어있었다. 케이마의 걱정이 한시도 떠나질 않는 듯 해 보였다. 언제라도 말리지만 않으면 바로 뛰쳐
나갈 기세였다. 그런 그의 마음을 읽었는지 베르단디는 잠시 식사를 준비할 때를 제외하고는 케이 곁을 떠
나질 않았다. 울드 역시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후우...약이라도 만들어주면 좋겠는데...잡혀오느라 실험도구며 약재며 다 두고 왔으니...."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바로 스쿨드가 핀잔을 줬다.
"울드의 약 같은 거 먹으면 오히려 증세가 악화된다고! 크으...! 내 공구며 부품들만 있다면 절호의 정신안정
기계를 만들어 줄 수 있을 텐데..."
"네 불량품 같은걸 썼다간 오히려 미쳐버릴껄?"
"불량품 아냐! 울드의 불량식품이랑 비교하지 말라고!!"
곧 두사람은 서로 설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지로가 남의 집 식탁에서 이게 무슨짓들이냐며 꾸짖는 와중에도
요헤이와 시즈는 그저 웃기만 하였다. 사실 그 동안 쭉 이 별장 안에서 둘이서만 살던 요헤이와 시즈로서는
이런 떠들썩한 분위기가 참으로 오랜만이었던 것이다.
******************************************
저녁식사후 무라카미는 응접실에서 자신의 리볼버를 손질중이었다. 아무래도 목숨과 관계된 물건이다 보니
구석구석 꼼꼼히 살펴보고 있었다. 그 때 스쿨드가 응접실로 나왔다. 침실로 가기는 했지만 아직 자기는 좀
이른 시간이라 밖으로 나온 것이다.
"착한 어린이는 일찍 자는 거에요. 후후."
"어린애 아녜요!! 메~!"
무라카미의 농담에 스쿨드는 혀를 삐쭉 내미는 것으로 대답했다. 역시나 스쿨드는 어린이란 말에 민감했다.
그 때 스쿨드의 눈에 무라카미의 총이 보였다. 호기심이 발동한 스쿨드가 무라카미에게 바짝 다가갔다.
"한 번 들어봐도 되요?"
"잘못하면 다쳐요. 아가씨."
또 어린애 취급한다고 생각한 스쿨드가 삐쳤는지 양 볼을 크게 부풀렸다. 무라카미는 웃으면서 총을 스쿨드
에게 건넸다. 별 생각 없이 총을 잡은 스쿨드는 하마터면 총을 떨어트릴 뻔했다. 무게가 굉장히 무거웠기
때문이었다.
"으으으..! 뭐가 이렇게 무거워!"
"하하하, 발등 찍지 않도록 조심해."
무라카미가 가볍게 들길레 무게가 가벼운 줄 알았던 스쿨드는 깜짝 놀랐다. 한 손은 고사하고 두손으로, 그
것도 보통 권총 잡듯이 잡는 건 포기하고 벽돌 들듯이 들어도 힘겨울 정도로 무거운 총이었던 것이다. 무라
카미는 웃으면서 스쿨드에게서 권총을 회수하였다.
"이 녀석은 특별 주문품이야. 사용 탄약은 44매그넘의 7배의 화약을 집어넣은 24번 게이지의 덤덤탄을 사용
하지. 사용탄약이 워낙 무식한 놈이라서 그 반동을 견디려고 내구성과 무게를 늘리고 보니 이 지경이 됐어.
덕분에 가지고 다니는 것 자체가 큰 일이지."
스쿨드는 무라카미의 손에 있는 총을 꼼꼼하게 살펴보고 있었다. 무게 문제만 아니라면 자기가 직접 들고
이리저리 살펴봤을 것이다. 그런 스쿨드의 모습에 무라카미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 나이의 여자아
이라면 총보다는 인형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하는거 아닌가?
"헤에~ 탄을 여기 원통형의 실린더에 넣고 쏘는 거군요. 5연발이라.... 탄이 너무 강해서 이렇게 한 거네요?"
스쿨드의 분석에 무라카미는 정말 놀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생각하고 있던 여자아이의 이미지가 순식
간에 부서져 나갔다. 스쿨드가 이렇게 핵심을 찌를 줄은 몰랐다. 도대체 부모가 누구기에 총에 대해 저 정
도의 지식이 있는 걸까? 사실 스쿨드는 총에 대해 관심이 있다기 보다는 단지 기계라는 거에 흥미를 가진
것이었지만 그래도 뛰어난 기술자인 스쿨드는 한눈에 다 알아봤다. 곧이어 스쿨드는 무라카미의 총의 구조
며 작동원리등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았고 무라카미는 스쿨드의 말에 감탄하고 있었다.
고위력 탄을 견딜 수 있는 정도는 자동권총류 보다는 리볼버 쪽이 더 유리하다. 물론 자동권총류 중에도 데
저트 이글 같이 50.AE 같은 고위력 탄을 쓸 수 있는 종이 있기는 하지만. 그러나 구조가 복잡해지면 그만
큼 내구성에도 악영향을 끼치게 되므로 통상의 탄환보다 훨씬 강력한 탄환을 쓰고 싶으면 단순한 리볼버
스타일로 가는 것이 유리하다. 무라카미의 리볼버는 고위력 탄을 소화하기 위해 실린더가 보통의 권총보다
훨씬 두껍다. 그 상태에서 6연발로 가게 되면 필요한 내구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실린더가 커질 수밖에 없
기 때문에 휴대성 문제를 고려해서 탄수를 줄인 것이다. 안 그래도 장탄수가 딸리는 리볼버에서 한 발을 더
뺀다는 것은 불리한 일이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스쿨드는 총에 대해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니 몰랐지만 사실 이 정도 수준의 탄약은 권총에 적용하
기엔 무리가 많은 탄약이었다. 엄청난 반동 때문이다. 거기에 더해 무라카미의 리볼버는 휴대문제 때문에
총열은 8인치를 적용하였다. 보통의 권총이라면 상당한 장총신이지만 이 탄약에게는 너무 짧은 총렬이었고
그래서 발사할 때 발생하는 미처 다 연소되지 못한 화염이 장난이 아닌데다 원거리에서는 명중률이 떨어졌
다. 조아노이드가 목표라고는 해도 위력만 높인 이 총은 실용성 면에서는 낙제점이었다.
메카패치 스쿨드 답게 그녀는 곧 무라카미에게 이것저것 총에 대해 묻기 시작했고 무라카미는 오랜만에 생
각이 맞는 상대를 만난 듯 즐거운 표정으로 스쿨드와 여러가지 총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스쿨드
가 두 눈을 초롱초롱 하게 뜨고 그 말을 들은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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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겨진 가보의 일부를 현금으로 바꿔뒀습니다. 당분간은 쓰실 수 있을 겁니다."
"폐를 끼쳤군. 요헤이."
"아뇨, 이 정도는 제가 주인님 내외께 받은 은혜에 비하면 턱도 없습니다."
요헤이는 멋쩍은 듯 웃으며 말했다. 어쨌든 요헤이 덕분에 당분간의 활동 자금 문제는 해결되었다. 이곳은
잠시 몸을 숨길 은신처일 뿐이었다. 적진 한가운데라는 점은 변함이 없었기에 조만간 이곳을 떠나야 했다.
"도련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별난 일이군. 자네가 내게 할 말이 있다니."
아키토는 여전히 뒷짐을 진 채로 창문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요헤이는 잠시 주저하다가 결심을 굳힌 듯 말
을 하였다.
"복수를.... 그만둬 주십시오."
"...."
"저도 아키토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저 죽일 놈의 겐죠가 모든 것을 빼앗아 갔지요..."
요헤이의 꼭 쥔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때의 일은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럴 수가! 주인님, 사모님!! 도련님을 그런 놈한테 보내신다니요!!"
서재에서 아키토의 부모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오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요헤이는 믿을 수 없다
는 듯 아키토의 부모에게 묻고 있었다. 어린 아키토는 서재 밖에서 이를 슬픈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아키토의 친부는 견실한 중소기업의 사장이었다. 그래서 아키토는 어릴 적에 남부럽지 않게 클 수 있었다.
부친은 사업 때문에 바쁠 터인데도 저녁 식사만큼은 꼭 집에 돌아와서 할 정도로 가족들을 끔찍하게 아꼈
고 어머니는 매우 인자하신 분이었다. 그리고 집사였던 요헤이는 아키토를 마치 친손자처럼 잘 대해주는 마
음씨 좋은 할아버지 였다. 요헤이와 같이 들어왔던 손녀딸 시즈는 외동아들이던 아키토의 좋은 여동생이었
다. 아키토의 집에서는 늘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렇게 행복하던 집안에 어느 날 먹구름이 드리워졌다. 갑자기 아키토의 부친의 회사 경영이 극도로 악화되
기 시작했다. 거래처들은 어디서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하나 둘 거래를 끊기 시작했다. 회사의
자금 사정은 극도로 악화되기 시작해서 부도 직전으로까지 몰렸다. 다급한 마음에 그 동안 거래하던 은행에
달려가 보았지만 은행은 대출을 거부하였다. 아키토의 부모는 절망 속에 빠져들었다.
그 때 구원의 손길이 다가왔다. 한동안 연락을 끊고 지내다시피 했던 친형, 마키시마 겐죠가 전폭적인 자금
지원을 해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실제로 겐죠는 대형 제약회사를 거느리고 있던 만큼 동원할 수 있는 자금
은 충분하였다. 겐죠의 자금지원이 시작되자 회사는 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연락을 끊고 살았다고는
해도 역시 한 핏줄이었다. 그 때까지는 몰랐다. 그것이 순진한 착각이었음을....
자금지원의 대가로 아키토를 내놓으라며 겐죠가 말하자 부부는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 자신들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내줄 수 있단 말인가. 해도 너무한 조건이라며 아키토의 부모는 항의를 하였다. 그러나 겐죠는
눈하나 깜짝 안하고 그런 식으로 나온다면 자금지원을 끊는 수밖에는 없다며 으름장을 놓았다. 아키토의 부
친은 크게 흔들렸다. 회사는 이제 위기를 막 벗어났을 뿐 정상을 회복한 것은 아니었다. 이 상황에서 겐죠
의 자금지원이 끊긴다면 이번에는 꼼짝없이 부도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자신만 바라보고 있는 사원들과 그
가족들을 전부 길거리로 내앉게 할 수는 없었다.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키토의 부친은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그리고.....
"도련님!! 보시면 안됩니다!"
요헤이가 서둘러 아키토를 끌어내고 있었다. 아키토는 그대로 굳은 채로 요헤이에게 끌려나왔다. 억지로 겐
죠에게 입양된 후 몇 년의 세월이 흘러 오랜만에 생가를 찾은 아키토는 충격적인 모습을 보았다. 서재에서
나란히 목을 맨 부모의 모습을....
아키토를 떠나보낸 후 아키토의 부친은 필사적으로 노력해서 겐죠의 자금지원으로 부터 자유로워 질 수 있
었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욱 더 노력해서 그 때 진 부채를 갚으려고 하였다. 아키토를 도로 데려오기 위
해....
그 때 우연히 거래처 사람으로부터 알게 되었다. 그 때 당시 자신들은 거래를 끊고 싶지 않았다는 것이었
다. 그러나 외부에서 강한 압력이 들어와서 어쩔 수 없이 거래를 끊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안 아키토의 부모는 백방으로 알아봤다. 그 결과 그때당시 부도 사태는 겐죠가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이었다
는 것을 알아낼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 간신히 다시 일으킨 회사의 재무 구조도 결코 견실한 것이 아니었
다. 이미 겐죠의 술수로 인해 모든 자금줄은 겐죠의 손아귀에 있었고 그가 지시만 하면 언제라도 자금줄이
막힐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아키토를 다시 찾아올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절망에 빠진 부부는 아키토에게 미안하다는 내용의 유
서를 남긴 채 나란히 목숨을 끊었다.
요헤이의 눈에서는 어느덧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의 원흉인 겐죠에 대해, 그리고 무력했던
자신에 대한 분노의 눈물이었다.
"하지만..! 그 겐죠는 이제 죽었습니다. 그러니 아키토 님께서도 이제 이런 위험한 일은...!"
"무리하지 말게, 요헤이."
아키토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아키토 역시 그 때 그 일은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부모의 비참한 죽음,
그리고 그 원수를 아버지라고 부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무력함....
"난 이미 복수라는 작은 감정은 버렸어."
"그...그러시다면..."
복수, 그런 감정도 있다. 그러나 아키토는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간 마키시
마 겐죠, 알고 보니 그 역시 거대한 조직의 한낮 피라미일 뿐이었다. 크로노스라는 거대한 힘에 조종당한
꼭두각시...
아키토는 깨달았다. 결국 이 별에서는 '힘'이 전부다. 힘앞에서는 다른 모든 것은 모두 무의미하다. 힘이 있
다면 모든 것을 손에 넣을 수 있고 또한 그 어떤 것도 잃을 일이 없다. 그래서 아키토는 굳게 결심하였다.
힘을, 최강의 힘을 손에 넣을 것이다. 가이버든 뭐든 간에 뭐든지 이용해서 최강의 힘을 손에 넣어 이 별의
왕좌에 오를 것이다. 그것은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아키토의 마음을 꽉 채우고 있던 절대 명제였다.
한때는 그런 목표가 너무 힘겨워서 잠시 방황한 적도 있었다. 제약회사 일과는 상관없는 네코미 공대에 겐
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입학하기도 하고 자동차부 활동을 하면서 바이크에 빠져든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는 곧 깨달을 수 있었다. 이런다고 도망칠 수는 없다는 것을. 도망칠 수 없다면 오히려 도전해서 반드시 힘
을 손에 넣고야 말겠다고 굳게 다짐하였다. 그렇게 다짐한 후 그는 바로 자동차부를 탈퇴하였던 것이다. 잠
시 쉬기 위한 요람 따위는 이제 그에게는 필요 없었다.
'나는 제우스! 이 별의 왕좌에 오를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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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웅~! 언니, 케이도 이제 어느 정도 회복됐는데 꼭 여기서 자야해?"
"미안, 스쿨드. 하지만 아직은 안심할 수 없어..."
스쿨드는 오늘밤도 베르단디가 케이 방에서 자려고 하자 삐진 듯 했다. 좋아하는 언니랑 같이 한 방에서 단
둘이 자고 싶었는데도 베르단디는 케이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베르단디는 어제 밤처럼 케이방에 있는 소파
에 자리를 깔고 있었다. 케이는 지금 침대에서 자고 있는 중이라서 베르단디와 스쿨드는 목소리를 낮췄다.
케이 본인은 이제 괜찮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베르단디가 보기에는 아직은 좀 더 안정을 취해야 했다. 게다
가 한가지 더 걱정되는 일도 있었다. 다시 크로노스에 붙잡힌 케이마씨를 구하러 간다며 미나카미 산으로
혼자 쳐들어갈까봐 염려되었던 것이다. 몸도 다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절대로 무리였다. 일단 작전을
세운 뒤 모두가 힘을 합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은 체력을 비축해둬야 했다.
"우웅~ 그럼 나도 여기서 잘래. 그래도 되.... 아야야!!"
그 때 울드가 스쿨드의 귀를 잡아당기면서 억지로 방에서 끌고 나왔다. 아프다고 소리치는 스쿨드의 비명같
은건 무시했다. 스쿨드는 안 끌려나오려고 반항했지만 소용없었다.
"아야야!! 아프단 말야!!"
"조용히 해. 다들 자고 있다고."
"케이가 언니에게 뭔가 이상한 짓 하면 어떡해!"
"하면 하는 데로 잘 된 일이지. 뭐, 오히려 난 케이가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왔으면 좋겠는데?"
티격태격하며 멀어지는 두사람을 미소지으며 바라보던 베르단디는 다시 침실 안으로 고개를 돌렸다. 다행히
도 케이는 그 소란에도 잠을 깨지 않았다. 잠시 케이를 바라보던 베르단디는 케이의 이불을 끌어올려주고는
조용히 그의 볼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조용히 속삭였다.
"걱정마세요, 케이씨. 케이마씨는 무사하실 거에요....그러니까 지금은 푹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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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엣! 또 졌어..."
"하하하, 아직은 무리라고 했잖니."
억지로 케이마씨를 졸라서 자전거 레이스를 벌였지만 레이스는 고사하고 땅바닥을 구르기만 하였다. 이제
자전거를 배워서 비틀 거리나마 간신히 혼자 움직이게 될 수 있게된 상태에서는 당연히 경주는 무리이건만
자신감이 좀 붙자마자 케이는 케이마에게 '도전'을 하였다. 결과는 이렇게 흙투성이가 되기만 하고 말았지
만.
"자, 어디 보자. 다행히도 크게 다치진 않은 듯 하구나."
케이마는 웃으면서 일회용 밴드를 케이의 무릎에 붙혀주었다. 까진 무릎부위가 무척 아팠지만 케이마씨가
만져주자 아픔이 가시는 듯 했다. 그저 밴드만 붙인 정도였는데도 신기했다. 케이는 힘차게 다시 일어섰다.
그 모습을 케이마는 웃으면서 바라보고 있었다.
"돌아갈까? 타카노 씨가 저녁식사를 준비해 놨을 테니까."
"응!"
케이는 케이마와 나란히 자전거를 끌고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해는 어느덧 서쪽으로 지고 있었다. 저녁
놀이 물든 하늘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나, 언젠가 아빠를 이길 수 있을까?"
"물론이지, 너라면 반드시 날 능가할 꺼야. 그리고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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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더경님의 댓글
베이더경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질문 하나 있습니다.
크로노스에서 조아노이드가 된 12신장들인가? 어쩄든 그놈들 말입니다.
인간이 아니라, 다른 종의(외계인이라 해두죠.)사람들인겁니까?
솔직히 저 같으면 순순히 생체실험같은 것을 내 몸에 미쳤다고 하라고 둘 것 같지는 않은데...
1. 혹시 세뇌를 당한 인간들인가요?[흔히 나오는 정신조작기구 같은 것에 의해서 -_-]
2. 아니면 유전자 조작을 통해서 미리 만들어낸 생명체들?[이게 제일 정확한 것 같군요..]
3. 인간 납치, 아니면 기타 원래 크로노스 사람들이 전부 개조된 상태를 원하는 광신도들이었다든지..[이것도 고려는 해봐야 되는 것인가...]
어쩄든 답변 주시길. [...기관단총 수준으로 커진다라...재미있군요.]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시험 끝난 주말에 뵙도록 하죠!

베이더경님의 댓글
베이더경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솔직히 전 메카니즘에 대해서 묘사할 능력도 없습니다..[공고생이라면서 실은 밀리터리도 얼치기로 알고 있는 광기술과 놈이라...]
그래서 바이크를 동경하면서도, 정작 그게 어떻게 움직이고, 원리가 뭔지도, 엔진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바보넘이라는..[쿨럭.]
어쩄든 그래서 제 글은 아마 펴엉생~최소한 애니에서 나온 묘사대로 하는 것도 불가능 할 것 같군요..
[그런데 가이버는 설명이 되어 있는 애니라니 할말이 없다는...]
그건 그렇고 크로노스라는 이름...
어디선가 본 느낌이다 싶었는데 역시 그리스 신화였군요...

가이버님의 댓글
가이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2신장에 관해서는 14화와 16화에 설명이 나올 예정입니다만...미리 조금만 설명드리자면 첫번째 리플의 예시 중에서는 3번째 것이 가장 근접합니다. -ㅅ- 12신장은 조아노이드들을 통솔하기 위해 만들어진 최강의 생명체, '조아로드'라고 불리우지요. 12신장 중에는 지구인도 있고 외계인도 있고 만들어진 생명체도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앞으로 계속 본문속에서 등장할 예정입니다. ^^;;;;;
...그리고, 저도 메카니즘 묘사할 능력은 없습니다....orz 후지시마 씨가 세삼 대단해 보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