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식장갑 가이버 제1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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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
제14화 - 비극의 엔자임 II -
"큰일났어요!! 케이씨가....!"
새벽녘에 조용하던 별장 안에서 갑자기 베르단디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베르단디의 비명에 울드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러자 그녀의 눈에 크게 당황해 하고 있는 베르단디가 보였다. 울드는 일단 베르단디를 진정시
키려 하였다.
"베르단디, 일단 진정해. 케이가 어떻다고?"
"케이씨가...케이씨가 어디론가 사라지셨어요!!"
베르단디의 말에 크게 놀란 울드가 서둘러 케이가 있던 방으로 달려갔다. 역시 베르단디의 말대로 케이는
자리에 없었다. 베란다 문이 열려 있는걸 보니 저곳으로 나간 것 같았다. 베르단디는 그 자리에서 울먹이기
시작했다.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잠에서 깨고 나니까 케이씨가....흐흑!"
울드는 베르단디를 살짝 안아서 달래기 시작했다. 울드가 베르단디를 데리고 거실로 나오자 베르단디의 호
들갑에 모두가 잠에서 깨어서 거실로 나와 있었다. 그리고 케이가 없어졌다는 사실을 알고는 모두가 크게
놀랐다. 사실 케이가 어디로 갔는지는 충분히 짐작이 갔다.
"할아버지! 아키토 님이...."
그때 아키토의 방으로 갔던 시즈가 황급히 거실로 달려왔다. 그녀 역시 크게 당황해하고 있었고 손에는 무
슨 쪽지가 들려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 쪽지에 집중되었다. 쪽지의 내용은 간단했다.
'케이와 함께 미나카미 산으로 간다. 걱정 말고 기다리고 있어. -아키토- '
쪽지를 본 무라카미는 안도하였다. 그나마 유적기지의 내부 사정을 잘 아는 아키토가 함께 갔다는 것이 다
행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채 났지도 않은 몸으로 게다가 단 둘이서 그 괴물 5인중을
비롯해서 조아노이드들이 우글거리는 소굴로 쳐들어가다니, 너무 무모한 짓이었다. 베르단디는 그 때 어째
서 케이가 나가는걸 눈치채지 못했을까 하면서 자책하고 있었다. 그 때 린드가 거실에 들어섰다.
"린드! 혹시 케이가 나가는 거 못 봤어?"
그 때 울드가 린드에게 항의하듯이 말했다. 24시간 주변을 경계하겠다고 본인이 말했고 책임감도 강한 인물
이니 아마도 린드는 케이와 아키토가 나가는 것을 봤을 것이다. 못 봤다면 경계를 제대로 서지 않고 있었다
고 몰아붙여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울드의 말에 린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봤다."
그 말에 베르단디를 비롯해서 모두가 다시 한번 놀랐다. 울드와 지로는 어째서 말리지 않았느냐며 따졌다.
베르단디 역시 어째서 그랬냐는 듯한 표정으로 린드를 바라보았다.
"케이의 의지가 너무 강해서 나로서는 말릴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를 믿고 보내주기로 한 거다."
"하지만 녀석은 지금 몸이...!"
"지금은 믿고 기다리자. 혼자 간 것도 아니고 가이버 III 도 함께니까."
이제 와서 린드에게 따져봤자 변하는 건 없다. 울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일단은 린드 말대로 기다려 볼 수
밖에 없었다. 혼자서 적들을 물리치러 간게 아니라 구출이 목적이므로 아마도 무모한 짓은 하지 않을 것이
다. 게다가 함께 간 아키토는 유적기지의 내부사정을 잘 알고 있으므로 몰래 숨어 들어가는 것도 용이할 것
이다. 울드는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는 베르단디의 손을 꼭 붙잡으며 다독여 줬다.
"괜찮겠지, 일단은 기다려보자. 베르단디....."
"네,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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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 안에서 케이마는 그저 우두커니 앉아만 있을 뿐이었다. 그의 머리 속에는 케이의 생각이 한시도 떠나
질 않았다. 그 때 자기가 땅속에 끌려 들어가면서 본 것은 공중에 떠 있던 괴물의 공격을 받고 쓰러지는 케
이의 모습이었다. 케이는 무사할까, 케이 걱정에 케이마의 마음은 시꺼멓게 타들어만 갔다.
"무슨 일이야? 설마 교대? 좀 이르지 않아?"
그 때 감옥 밖이 조금 소란스러워 졌다. 밖에서 경비를 서고 있던 전투원이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
다. 누군가가 이곳으로 오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 그 전투원이 복부를 누군가에게 얻어맞고 쓰러지
는 것이 보였다. 때린 상대는 분명 같은 옷을 입고 있는 크로노스 전투원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주먹을 날
린 걸까? 이윽고 감옥의 문이 열렸다. 케이마는 그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섰다. 이윽고 감옥 안으로 전투
원이 들어왔다.
"케이마씨!!"
그 때 그 전투원이 케이마를 반갑게 불렀다. 그런데 상당히 익숙한 목소리였다. 전투원이 핼맷을 벗자 케이
마의 얼굴이 환해졌다. 전투원으로 변장한 케이였던 것이다. 곧 두사람은 서로 얼싸안으며 재회를 기뻐하였
다.
"무사했구나! 그 때 너한테 큰일이 난 줄만 알았는데..."
"네, 전 무사해요. 케이마씨도 다행히 무사하신 것 같네요."
그 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다. 단지 잡혀온 직후 녀석들이 자기 입과 코를 뭔가로 틀어막아서는 잠시 잠재웠
던 일이 있던 게 다 였다. 그 때 이후 눈을 떠보니 지금 있는 감옥이었고 지금까지 녀석들은 그저 케이마를
가둬두기만 했을 뿐 별다른 짓은 하지 않았었다. 물론 자기가 잠든 사이에 녀석들이 무슨 수작을 부렸는지
모를 일이었지만 일단 지금 자기가 판단했을 때 몸에는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그런데 여긴 어떻게 왔냐. 너무 무모한 짓을 한거 아니냐."
그 말에 케이는 고개를 돌려 밖을 가리켰다. 밖에는 아까 감옥 앞을 지키던 경비병을 때려눕힌 다른 전투원
이 서있었다. 그도 이윽고 핼맷을 벗었다. 그러자 아키토의 얼굴이 나타났다.
"괜찮아요. 마키시마 선배가 여기까지 잠입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아키토 덕분에 케이는 여기까지 무사히 잠입할 수 있었다. 만약 케이 혼자였다면 절대로 여기까지 안 들키
고 무사히 올 수가 없었을 것이다. 설령 적의 저항이 없다해도 걷다보면 어느새 길을 잃을 정도로 유적기지
는 방대한 규모였다. 케이마가 갇혀있는 곳도 아키토가 내부 네트워크를 검색해서 쉽게 찾아낼 수 있었다.
아키토가 서두르라며 재촉하였다. 사실 아직은 구출이 성공한 것이 아니었다. 기껏 여기까지 와서 세사람
다 잡혀버리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오히려 지금부터가 큰일이었다. 케이마가 탈옥한 것은 아마도 금방 들킬
것이다. 그렇다면 이곳으로 적들이 물밀듯이 몰려올게 뻔했다.
-삐잉! -삐잉!!
그 때 경보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역시나 들키고 말았다. 케이와 아키토, 케이마는 황급히 뛰기 시작
했다. 탈출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크아아!!'
모퉁이를 돌자 어느새 조아노이드 들이 이들의 앞에 나타나 있었다. 케이와 아키토는 즉시 가이버로 변신하
였다.
"식장!!"
"가이버!!!"
가이버로 변신한 두 사람은 곧장 조아노이드들에게 돌격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의 기세에 눌린 조아
노이드들이 뒤로 주춤거리기 시작했다.
"이야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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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다 지나가고 동쪽 하늘이 서서히 밝아오는것이 보였다. 물론 아직은 밖은 캄캄했고 시간상으로는 잠자
리에 있어야 할 시간이지만 거실에 나와있던 사람들 누구도 잠자리에 들려고 하지 않았다. 무라카미는 자신
의 리볼버를 점검하고 있었고 린드는 배틀액스를 든 채로 베란다 창문 밖을 응시하고만 있었다. 시즈와 베
르단디는 부엌에서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울드!"
"으...응?"
"울드 차례야!"
스쿨드의 재촉에 깜짝 놀란 울드가 서둘러 자기 패를 집었다. 지금 울드와 스쿨드는 지로, 핫세와 함께 아
침 TV 채널 쟁탈전을 겸한 마작을 하고 있었다. 물론 아직 한밤중에 TV에서 이들 취향에 맞는 재밌는걸
하고 있을 리가 만무했으니 그건 그냥 구실일 뿐이었다. 산 속인 이곳에서는 수신되는 TV채널에 제한이 심
했던 것이다. 사실은 긴장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게임에 임하는 모두가 다 케
이 걱정에 정신이 팔려있는 상황이니 게임이 제대로 진행이 안됐다. 물론 그렇다고 누구도 게임을 그만두려
하지는 않았다. 이걸 그만두면 그야말로 할게 없는 것이다. 이렇게 라도 해서 마음을 진정시켜야 했다. 흥은
안 났지만....
"베르단디씨?"
"....."
"저, 베르단디씨?"
"네!? 왜그러세요?"
"물이 넘치는데요...."
"네? 아, 죄송해요..."
정신이 딴 데 가있는건 베르단디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차를 준비하는 동안 실수가 잦았
다. 지금도 찻잔에 물이 넘치도록 따르고 있던 것이다. 베르단다가 당황해 하면서 행주로 흘러 넘친 물을
닦아내었다. 그녀 역시 케이 생각에 마음이 진정되지 않고 있었다.
"걱정되시는가 봐요....케이씨가."
"....네."
베르단디의 얼굴에 근심이 더해져만 갔다. 그녀 역시 솔직히 지금이라도 케이를 쫓아 미나카미산으로 달려
가고만 싶었다. 처음엔 바로 그러려고 했었고. 그러나 그런 베르단디를 모두가 일치단결해서 말렸다. 지금
가봐야 이미 미나카미 산에서는 교전이 벌어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았고 오히려 케이에게 또 다른 부담만
안겨줄 수 있었다. 하지만 베르단디는 지금 케이의 몸 상태가 너무 걱정되었다. 강식장갑의 회복력에 관해
서는 스쿨드에게 들었지만 베르단디가 보기에는 지금 케이는 안정을 취해야만 하는 상태였다. 그런 베르단
디에게 시즈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말했다.
"솔직히 저도 지금 집중이 안되네요....아키토 님 걱정 때문에...."
시즈는 쿡 하고 웃었다. 홍차는 그 준비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좋은 맛과 향을 내기 위해서는 매 순간 정성
을 들여야 했는데 이렇게 정신이 딴 데 가있으니 제대로 맛이 나올 것 같지가 않았다. 같은 생각을 했는지
베르단디 역시 그 자리에서 살짝 웃었다.
"차가 좀 맛이 없을 거 같네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후훗..."
대상은 다르지만 어쨌든 같은 고민을 가지고 있는 두 여성은 서로를 마주보며 웃고 있었다. 잠시나마 이렇
게 라도 해서 마음속에 가득 들어찬 불안을 거둬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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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콰아아앙!!
미나카미 산 아래의 지면에서 갑자기 엄청난 빛의 기둥이 솟구쳐 올라왔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긴 구멍
으로 케이와 케이마, 그리고 아키토가 걸어나왔다. 메가스매셔로 구멍을 뚫고는 밖으로 나온 것이다. 이제
구출은 거의 성공한 셈이었다. 케이마는 지쳤는지 케이의 등에 업혀서 나왔다. 유적 기지를 탈출하는 동안
에는 숨돌릴 틈도 없이 줄곧 달리기만 했으니 지칠 만도 했다. 그리고 지금부터는 가이버의 힘으로 전속력
으로 별장으로 달려가야 했기 때문에 케이마를 업고 달려야 했다. 일반인은 가이버의 달리는 속도를 따라잡
을 수가 없으니까.
구출이 성공하자 케이는 기뻐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케이마 씨를 구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게
다가 케이마 씨도 별다른 이상이 없고 말이다. 이젠 서둘러 돌아가서 베르단디들을 안심시켜야 했다.
그러나 케이와는 대조적으로 아키토는 왠지 불안한 마음이 떠나질 않았다. 구출 작전이 너무나 쉽게 끝났기
때문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모든게 다 석연치 않았다. 자기들이 다시 케이마를 구하러 올 꺼라는건 바
보가 아닌 이상 예측할 수 있는 문제였건만 기지의 경계 태세는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다. 특히나 감옥쪽은
전투원 달랑 혼자서만 지키고 있던 것이 아예 허술하기까지 했다. 감옥의 위치도 좀 더 깊숙한 지하층으로
옮겼으면 탈출이 어려웠을텐데도 지상과 너무 가까운 곳에 케이마를 감금해 둔 것이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그 하이퍼 조아노이드 5인중은 왜 나타나지 않은 걸까.
"녀석들이 인질을 구출해 갔군요."
"음. 여흥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유적기지의 종합상황실에서 규오와 발카스는 여유 있게 웃으며 스크린을 응시하였다. 가이버가 둘이나 기지
내에서 교전을 벌이는 통에 조아노이드들의 피해가 만만치 않았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가이버들이
다시 이곳으로 와서 인질을 구출해 갈 것이라는 예상은 진작부터 하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걸 기다
리고 있던 참이었고 말이다.
"그건 그렇고, 박사님. 그건 어찌 됐는지요."
"아, 그거 말인가? 뭐, 걱정 말게. 시간이 좀 촉박해서 어느 정도는 날림으로 만들긴 했지만 그래도 만족스
러운 것이 나왔으니까. 엔자임에 대한 자료가 부족해서 거의 내 오리지널 작품이 되었지."
그 말에 규오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다시 스크린을 응시하였다. 발카스 역시 웃으면서 스크린
을 바라보았다. 쇼는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하이퍼 병기를 걸친 햇병아리들아, 이제부터 네놈들에게 지옥이란 걸 보여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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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들은 열심히 숲을 달려가고 있었다. 빨리 별장으로 돌아가서 모두와 함께 이 지역을 벗어냐야 했다. 지
금 있는 별장은 적의 세력권 내에 있기 때문에 발각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마키시마 선배!"
"음! 복병인가."
그 때 케이와 아키토의 머리에 있던 헤드센서에 생명반응이 탐지되었다. 숫자는 모두 셋. 그것도 상당히 강
력한 반응이 나오고 있었다. 보통 조아노이드들이 아닌 것이 분명했다.
-파슈웅!
그 때 케이들 바로 앞을 강력한 레이져 빔이 스치고 지나갔다. 깜짝 놀란 두 사람은 황급히 그 자리에서 물
러났다. 빔이 날아온 곳을 보자 거대한 조아노이드 세마리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 때 터널 속에서 마주
쳤던 하이퍼 조아노이드 5인중. 그놈들이었다. 기지 내에선 왜 안 나타났을까 의문을 품고 있었는데 역시나
여기서 케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아키토가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드디어 행차들 하셨군. 그런데 나머지 두마리는 어딨지?"
그러고 보니 케이와 아키토 앞에 나타난 건 세마리 뿐이었다. 나머지 둘은 대체 어딨는걸까. 그 물음에 젝
토올이 웃으며 대답하였다.
"후후. 다젤브와 가스터는 너희들 아지트로 갔다."
"뭐라고!!"
그 말에 케이와 아키토는 크게 놀랐다. 어쩐지 일이 너무 잘 풀린다더니 결국 함정이었던 것이다. 가이버
둘이 모두 나온 틈을 타서 소위 말하는 '빈집털이'를 걸어 온 것이다. 물론 린드가 남아 있으므로 아주 빈
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린드 혼자서 그 하이퍼 조아노이드 둘을 감당하기는 어려울것이 분명했다. 케이는 베
르단디가 걱정돼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베르단디 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 모두가 위험했다.
"케이, 이 녀석들은 내가 상대할 테니 넌 빨리 별장으로 돌아가."
아키토의 말을 들은 케이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아키토라 해도 저 굉장한 하이퍼 조아노이드 셋을 상대로
혼자 싸울 수는 없었다. 케이는 말도 안돼는 소리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아키토는 다시 한번 빨리 돌
아가라며 케이를 다그쳤다.
"마키시마 선배, 하지만 선배 혼자서는..."
"난 걱정 말고 빨리."
"...그럼 부탁합니다!!"
케이는 그대로 케이마를 업은채로 아키토를 지나쳐서 현장에서 이탈하였다. 아키토 혼자 싸우게 한다는 것
이 불안했지만 할 수 없었다. 지금 별장에 남아있는 베르단디들도 위험한 것이다. 여기서 저 놈들을 상대할
시간은 없었다.
아키토는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케이를 한번 본 다음 다시 3인방 녀석들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녀석들은 케
이를 추적할 생각은 없는지 아키토만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키토는 마침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녀석들은 케이가 목표가 아니라 바로 아키토를 목표로 삼고 있던 것이다. 아키토로서는 다른데 신경 안 쓰
고 전력으로 싸움에 임할 수 있게 되었다.
"좋아, 네놈들 상대는 내가 해주마."
아키토는 3인방 앞을 막아섰다. 그러자 젝토올이 코웃음을 쳤다. 바로 이틀 전에 뜨거운 맛을 보고도 아직
도 정신을 못 차리다니. 젝토올 뿐만 아니라 나머지 둘도 그 자리에서 비웃고 있었다.
"훗....그렇게 당하고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냐. 넌 우리 셋의 상대가 못돼."
"그럴까? 이번에는 저번과는 다를껄? 한번 매운맛을 보여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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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놈들! 가이버들이 없을 때 쳐들어오다니...!"
울드는 커튼을 살짝 젖혀서 밖을 살펴보았다. 집밖은 온통 숲인지라 누가 어디에 있는지, 또 몇 명이나 있
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적이 쳐들어온 것은 분명했다. 집 부근에 결계를 쳐놓고 경계를 서고 있던 린
드가 확신하고 있었으니 안 믿을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여길 안 걸까요..."
핫세가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물었다. 무라카미는 리볼버의 상태를 점검하면서 핫세의 질문에 대답하였다.
무라카미 역시 잔뜩 긴장된 듯한 목소리였다.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다는 거지. 이곳의 존재를 말이야. 우리가 놈들을 너무 우습게 봤어."
동시에 무라카미는 미나카미 산으로 떠난 케이와 아키토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만약 그 말대로 놈들이 처음
부터 여길 알고 있었다면 어째서 바로 추격해오지 않았을까. 그때 당시 격전 끝에 가이버 두 명 모두 큰 부
상을 입고 있는 상태에서 자신들은 사실상 맞서 싸울 능력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그렇다면 놈들은 처음부터
가이버들이 여길 떠나는걸 노리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전부 거대한 함정이었다는 결론
이 나왔다. 지금 두 사람은 큰 위험에 직면해 있을지도 몰랐다.
"케이씨.... 무사하실까요..."
베르단디 역시 케이가 걱정이 되는지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거실에 모인 그 누구도 그 질문에
는 대답할 수가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케이들이 무사하기만을 빌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당장 눈앞
에 나타난 적들을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가장 큰 문제였다.
"다들 여기 있어라. 함부로 움직이면 위험해."
린드 역시 잔뜩 긴장한 체로 베틀액스를 꽉 움켜쥐었다. 그녀는 이 별장 주변에 결계를 쳐 두었었다. 이 결
계는 단순히 누군가의 접근을 미리 알려주는 능력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결계 내로 침투를 시도하는 적을 그
자리에서 봉인하는 능력까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 침투한 적들은 이것을 간단하게 돌파하였다. 보통 사람
은 절대 아니었고 조아노이드가 틀림없었다. 그것도 보통 조아노이드가 아니었다. 조아노이드에게 법술이
잘 안 통한다는 것은 타력혼간사에서 벌어진 전투당시 확실히 깨달은 거였지만 그걸 감안해서 결계 구성에
신경을 썼던 만큼 결계가 너무나 쉽게 뚫린 것에 린드는 상당히 놀라고 있었다. 게다가....
"상대는 모두 둘. 겨우 둘이서 여길 올 정도면 절대 보통 조아노이드는 아닌 것 같군."
무라카미는 혼잣말처럼 말하며 창문 밖을 응시하였다. 아직 놈들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가까이 온 것
을 느낄 수가 있었다. 보통 조아노이드가 아니라는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그때 유적기지에서
마주쳤던 하이퍼 조아노이드 5인중이란 말인가! 스쿨드가 겁을 먹은 듯 베르단디에게 매달렸다. 그 순간 갑
자기 무라카미가 큰 소리로 외쳤다. 그리고는 베란다 문을 활짝 열어 젖혔다.
"왔다!! 모두들 여기 가만히 있어!"
그와 동시에 무라카미와 린드가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가자마자 과연 그 때 보았던 5인중 중 2명이 서있는
것이 보였다. 흰 코뿔소 같이 생긴 녀석과 생체 미사일 발사관을 갖춘 보랏빛의 조아노이드. 무라카미는 곧
장 그의 리볼버를 흰색의 조아노이드에게 겨누고 연거푸 방아쇠를 당겼다.
-투쾅!! 투쾅!!!
-퍼엉! 콰쾅!!
아무리 무라카미의 리볼버가 정확도가 떨어진다고 해도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빛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발사한 탄환은 그대로 그 조아노이드에게 명중하였다. 그러나 곧이어 무라카미는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
다. 녀석은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았다. 웬만한 조아노이드의 피부는 관통해 들어갈 수 있는 그의 대구경
권총이 전혀 안 통하는 것이었다. 당황한 무라카미가 계속해서 총을 발사하였다.
-투쾅! 투쾅! 투쾅!
실린더에 남아있던 총탄 세발을 모두 다 맞췄지만 그 조아노이드는 꼼짝도 안 했다. 그 광경을 본 린드도
깜짝 놀랐다. 겉껍질이 상상이상으로 단단한 놈이었다. 린드가 지금까지 조아노이드들을 상대할 때 썼던 목
을 노리는 전법도 소용이 없을 듯 싶었다. 상대하려면 눈처럼 연약할 수밖에 없는 부분을 노리던가 아니면
가이버의 고주파 소드 같은 걸로 베어버려야 했다. 그러나 눈 같은 곳은 노리기도 힘들고 찌르기가 아닌 이
상은 눈을 공격한다고 죽일수도 없다. 그리고 린드의 배틀액스는 고주파 소드같은 기능을 흉내낼 수가 없었
다. 한마디로 당장은 대책이 없었다. 그 코뿔소 같은 조아노이드가 껄껄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 보통의 조아노이드라면 모르겠다만 이 다젤브 님에게 그런 장난감이 통할 거 같으냐!"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무라카미가 일단은 탄환을 다시 장전하였다. 저 다젤브라는 녀석은 모르겠지만 옆
에 있는 생체미사일 조아노이드 -그 때 듣기로는 가스터라고 하였다- 는 몸이 상당히 날씬해 보이는 게 총
탄이 통할 상대 같아 보였다. 그러나 만약 다젤브가 앞에 서서 방패역할을 해주고 가스터가 뒤에서 생체 미
사일을 날려대면 대책이 없었다. 옆을 보니 린드역시 잔뜩 긴장한 모습이었다. 아마도 무라카미와 똑같은
생각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쩔 수 없군."
무라카미는 겨누고 있던 권총을 내렸다. 지금으로서는 그 방법밖에는 없었다. 무라카미가 의식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런 무라카미를 린드는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지금 뭐하는 건가. 당신은 싸울 방법이 없을 것 같으니 안으로 들어가. 여긴 내가 맡는다."
그러나 무라카미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그는 계속해서 다젤브와 가스터를 노려만 볼뿐이
었다. 린드가 다시 한번 재촉하려는 찰나 무라카미가 입을 열었다.
"한번 저 녀석들에게 해볼만한게 있습니다."
"그게 뭔가?"
"사념파로 저 녀석들을 조종해서 서로 싸우게 해 보겠습니다."
"사념파?"
거기까지 말해준 무라카미는 다시 의식을 집중하였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이 으르렁거리던 다젤브
와 가스터가 그 자리에서 멈칫하였다. 그리고 서로를 쳐다보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본 린드
는 깜짝 놀랐다. 지금 무라카미는 저 녀석들을 자유자재로 조종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조아노이드를 마
음먹은 대로 조종하는 게 가능하단 말인가.
******************************************
'베르단디! 제발 무사해야 해!'
케이는 한시도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가고 있었다. 자기가 없는 동안 적들이 그곳으로 처들어가리라고는 생
각조차 못했다. 어서 빨리 돌아가서 그녀들을 구해야 했다. 린드 혼자서는 절대로 감당 못할 적들이었다. 그
런데 분명히 미나카미 산에 올 때와 같은 길을 달리고 있는 건데도 왜 이리 멀게만 느껴질까. 케이는 마음
이 점점 급해져만 갔다.
"케이, 그 갑옷 입고 있으면 답답하지 않냐?"
한동안 케이의 등에 업혀만 있던 케이마가 어렵사리 말을 걸었다. 왠지 지금의 케이에게는 말을 걸기가 힘
들었던 것이다. 아무리 이상한 갑옷을 걸치고 있다 해도 자기 아들이 틀림없건만 그저께의 싸움도 그렇고
왠지 다른 사람 같기만 하였다.
"네? 아...아뇨. 오히려 쾌적해요. 강식장갑은 식장자의 컨디션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시켜 주니까요. 더위에
도 추위에도 강해요."
"아, 그...그러니."
말을 건다는 게 오히려 바보같은 소리만 했다고 케이마는 자책하였다. 지금 케이의 처지는 무척 곤란한 상
태인데도 아버지로서 그런 말밖에는 할 줄 모르다니....
"저...죄송해요, 케이마 씨. 저 때문에 괜히 이런 일에 말려드시고..."
"응? 아...아니다. 이건 네 잘못이 아냐."
"하지만..."
"신경쓸거 없다. 너나 나나 운이 조금 없던 거 뿐이야. 자세한 얘기는 그 때 감옥 안에서 베르단디에게 다
들었다."
케이마는 케이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리고는 케이에게 계속해서 하고픈 말을 하였다. 케이는 그저 묵묵히
들으며 달리고 있었다.
"난 네가 자랑스럽다. 넌 이런 지독한 역경을 만났어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싸웠어."
"......"
"넌 네가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위험한 싸움에 몸을 던졌다. 그건 아무나 못하는 일이야. 아무리 슈
퍼맨 같이 쎄진다고 해도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야....."
"......"
"넌 정말 훌륭하게 컸구나. 정말 다 컸어....."
케이는 그 자리에 멈췄다.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 더는 달릴 수가 없었다. 눈물이 앞을 가렸기 때문이었다.
케이마를 내려놓고 케이는 그대로 식장을 풀었다. 케이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케이마씨...! 저는...저는...!"
"칭찬해 줬는데 울긴 왜 우냐. 녀석..."
케이마는 케이를 살짝 안고 등을 다독여 줬다. 자기 품안에서 우는 케이를 본 케이마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
다. 아까 다 컸다고 한 말은 잠시 보류해야 하나 라고 농담처럼 생각하는 케이마 였다. 이렇게 우는 모습을
보니 아직은 자기가 보기에는 몸만 큰 애같았다. 한동안 케이는 케이마의 품속에서 하염없이 울기만 하였
다.
한동안 울던 케이는 마음이 진정되었는지 케이마의 품속에서 떨어졌다. 그리고는 다시 구호를 외치고는 가
이버로 변신하였다. 그리고 다시 케이마에게 업히라고 등을 내밀었다. 그 등이 한없이 넓고 믿음직해 보여
서 케이마는 흐믓했다. 잠시 그 등을 바라보던 케이마는 다시 케이에게 업혔다.
정말 훌륭하게 컸구나....케이마는 마음이 뿌듯해졌다. 집에 돌아가면 타카노씨에게 우린 정말 훌륭한 아들을
뒀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눈을 떠라...."
순간 케이마는 움찔하였다. 갑자기 머리 속이 울리면서 엄청난 위압감을 가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그의 몸속에서 뭔가가 끓어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의 심장도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눈을 떠라...엔자임 II !!"
-투두둑!
케이마는 자신의 등에서 뭔가가 튀어나오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 케이마의 등쪽에서 옷을 뚫고 4개
의 집게팔이 튀어나왔다. 케이마는 자신의 몸에 뭔가 변화가 생겼다는 것에 경악하고 있었다. 그 순간 4개
의 집게팔이 아래로 꺾이더니 자기를 업고 뛰고 있던 케이에게 달려들었다. 케이마가 미처 경고하지도 못했
다.
-촤악!
"우악!!"
한참 달리고 있던 케이는 갑자기 자기의 양팔을 뭔가가 베고 지나가자 깜짝 놀랐다. 양팔의 고통 때문에 케
이는 그만 업고 있던 케이마를 놓치고 말았다. 그리고 케이 역시 앞으로 쓰러졌다.
"으윽..! 대체 뭐지? 이...이건!'
무심결에 자기 팔을 본 케이는 깜짝 놀랐다. 양팔의 강식장갑이 베였는데 베인 부위가 타들어가고 있었다.
강식장갑을 벨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란 것도 놀라웠는데 상처부위가 타들어가기까지 하다니.... 그 순간 케
이는 이런 상처를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은 틀림없이 강식장갑 분해효소.... 엔자임이
가지고 있는 그것에 의한 상처였다!
"이...이게 대체 뭐야!!"
그 때 당황해 하는 케이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케이가 서둘러 고개를 돌려 케이마를 보자 충격적인 광경
이 보였다. 케이마의 등에서 4개의 괴상한 집게팔이 튀어나와서 움직이고 있었다! 케이 역시 그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대체 케이마의 몸에 무슨 일이 생긴 거란 말인가.....
-"엔자임 II, 가이버 I 을 박살내버려라!"
그 순간 또한번 케이마의 머리 속에 아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소리를 들은 케이마는 더 이상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머리 속이 비워지면서 가슴속에서 뭔가가 끓어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은....
틀림없이 분노였다. 어째서? 어째서 분노가 느껴지는 걸까? 아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더 이상 아
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은 뭐든지 부수고 싶을 뿐!
"크아아아!!!'
"케이마 씨!!"
케이마의 옷 여기저기가 찟어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케이마의 몸이 폭발적으로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
고 얼굴과 피부색도. 잠시 후 케이마는 흰색의 거대한 조아노이드로 변신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케이는
경악하였다. 케이마 씨가, 케이마 씨가 조아노이드라니....!
******************************************
-촤악!
"끄아악!!"
양팔이 잘려나간 장크루스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잘려나간 손목에서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장크
루스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단 한번 교차했을 뿐인데도 가이버 III 는 자신의 양팔을 잘라버린 것이
다. 전에 한번 싸웠던 가이버 I 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민첩했고 검술에도 능한 놈이었다.
"장크루스!!"
깜짝 놀란 엘레겐이 가이버 III 에게 전기채찍 공격을 시도하였다. 필살의 의지를 담은 4개의 전기채찍이 가
이버 III 에게 날아갔다.
"받아라!!"
그러나 가이버 III, 아키토는 이들 채찍을 가볍게 피했다. 그리고는 고주파 소드를 휘둘러서 촉수 4개를 모
두 잘라버렸다. 엘레겐 역시 순식간에 공격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엘레겐이 당황해 하는 찰나, 아키토가 양
손을 복부로 모았다. 순식간에 양 손 사이에서 웜홀이 생성되면서 프레셔 캐논의 발사준비가 완료되었다.
"마지막이다!!"
-파아앙!!
아키토가 엘레겐에게 최후의 일격을 먹이기 위해 프레셔 캐논을 발사하였다. 엘레겐은 피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 순간 엘레겐의 앞을 젝토올이 대신 막아섰다. 프레셔 캐논은 그대로 젝토올에게 명중하였다.
-투우웅!
프레셔 캐논의 충격으로 인해 젝토올의 겉껍질이 움푹 패였다. 그러나 젝토올은 여전히 건재하였다. 이윽고
움푹 패였던 겉껍질이 다시 원래대로 펴졌고 그 모습을 본 아키토는 깜짝 놀랐다. 녀석에겐 프레셔 캐논이
효과가 없단 말인가! 정말이지 놀라울 정도로 신축적이고 강인한 장갑이었다. 놀라기는 젝토올 덕분에 목숨
을 건진 엘레겐 역시 마찬가지 였다.
"제...젝토올. 괜찮아?"
"난 괜찮아. 그건 그렇고....과연 그때랑은 확실히 틀리구나, 가이버 III."
젝토올에게서 아까 같은 여유가 사라졌다. 세명의 하이퍼 조아노이드를 상대하고 있음에도 전혀 밀리지 않
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순식간에 자기 동료 둘을 부상을 입힐 줄이야. 그 중에서도 양팔을 잘린 장크
루스는 이제 공격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애송이라고 얕잡아만 보다간 큰일 날것만 같았다. 젝토올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 그리고는 머리의 뿔을 뒤로 젖혀 빔발생기관을 꺼냈다.
"물러서 있어 엘레겐, 장크루스. 녀석의 상대는 내가 한다."
-파슈우웅!!
순간 젝토올의 머리에서 강력한 레이저빔이 발사되었다. 레이저빔은 그대로 아키토를 스쳐 지나가서는 뒤쪽
의 나무에 명중하였다. 어른이 양 팔 둘레보다 굵은 커다란 나무 밑둥이 그대로 소멸하였다. 나무가 쓰러지
는 모습을 본 아키토는 빔의 위력에 전율하고 있었다. 저런 강력한 열선을 쏠 수 있다니! 바모아 같은건 감
히 비교도 안돼는 위력이었다.
"어떠냐, 가이버 III. 내 생체 열선포가."
"큭!"
젝토올의 장갑 여기저기가 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키토는 경악하였다. 장갑이 열리면서 드러난 것
은 생체열선포 기관이었다! 머리에 있는 것뿐만 아니라 전신에 생체 열선포를 두르고 있는 놈이었던 것이
다. 젝토올이 의기양양한 목소리로 외쳤다.
"오인중의 리더이자, 최강의 하이퍼 조아노이드인 나 젝토올을....이길 수 있을 것 같으냐!!"
******************************************
유적기지내 종합사령실에서 규오와 발카스는 각지에서 오는 영상정보를 느긋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젝토올
들이 간 곳, 그러니까 가이버 III 가 있는 곳은 비록 예상과는 달리 엘레겐과 장크루스가 부상을 입었지만
그래도 젝토올이 있으니 그에게 맡겨두면 문제없을 듯 싶었다. 규오는 화면을 다시 엔자임 II 가 있는 곳으
로 돌리라고 지시하였다. 화면이 전환되자 엔자임 II 에게 형편없이 밀리고 있는 가이버 I 이 보였다. 단순
히 분해효소를 탑재한 조아노이드여서가 아니라 상대가 바로 자기 아버지이기 때문에 지금 가이버 I, 케이
는 반격이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속수무책으로 공격을 피해 다니고만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두사람
은 재밌다는 듯이 웃었다.
"자, 그럼 저녀석을 어떻게 요리할까?"
발카스의 말에 규오가 손으로 자기 머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녀석의 머리를 박살내게 하시지요. 식장자의 의식이 끊어지면 가이버는 단순한 고깃덩어리에 불과해 지니
까 컨트롤 메탈을 파내는 게 수월할 겁니다."
"후훗, 좋아. 그렇게 하도록 하지."
발카스가 잔인하게 웃으면서 다시 의식을 엔자임 II 에게 집중하였다. 그의 이마에 박혀있는 붉은 수정이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크아아아!!"
케이마가 다시 한번 돌격해 왔다. 케이는 필사적으로 케이마의 공격을 피하고 있었다. 그의 몸에는 여기저
기 자잘한 상처들이 늘어만 갔다. 그러나 그렇다고 반격할 수는 없었다. 상대는 다름 아닌 케이마 였다. 다
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아버지...! 그런데 어떻게 공격을 한단 말인가. 가이버의 무기를 쓰면 케이마를 죽이
게 되는데..... 케이마가 정신을 차리길 빌면서 도망만 다닐 수밖에는 없었다.
"카악!!"
-푸슉!
그 때 케이마가 입에서 뭔가 흰색의 액체를 밷어내었다. 케이는 미처 피할틈도 없이 그걸 얼굴에 맞았다.
-치이익!
"아아악!!"
그 순간 케이의 양 눈이 타 들어갔다. 강식장갑을 녹여버린걸로 봐서는 이건 틀림없이 분해효소였다. 놀랍
게도 이번 조아노이드는 강식장갑 분해효소를 상대방에게 뿜어낼 수도 있었다. 전작인 엔자임 I 이 탑재한
분해효소는 대기중에 노출될 경우 그 효과가 급격히 떨어지지만 이번의 엔자임 II 의 분해효소는 발카스가
직접 계량에 나서서 대기 중에 노출돼도 효과가 떨어지지 않게 되었다.
케이는 두 눈이 보이지 않게 되자 크게 당황하였다. 강식장갑의 회복력이라면 금방 회복이 되겠지만 문제는
지금 당장 눈이 보이지 않는다면 케이마의 공격을 피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케이는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자! 엔자임 II, 녀석의 머리를 박살내 버려라!"
"크르르르..."
발카스의 사념파에 조종되고 있는 엔자임 II, 케이마가 그 무시무시한 손을 높히 들어올렸다. 그대로 내리쳐
서 케이의 머리를 박살내려는 것이었다. 그 순간 케이가 처절하게 외쳤다.
"케이마씨이이!!!"
케이의 목소리를 들은 케이마는 순간 정신이 들었다. 케이를 내리치려던 손이 그대로 아래로 스르르 내려졌
다. 케이마는 지금 자기가 아들을 해칠 뻔했다는 사실에 경악해하고 있었다. 그 순간 케이마의 뇌리에 어떤
목소리가 강하게 울려 퍼졌다.
-"쳐라!!!"
그 목소리를 들은 케이마는 다시 정신을 잃었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케이마는 그대로 케이의 머
리를 향해 손을 내리쳤다.
-콰직!!
엔자임 II 의 손톱이 그대로 가이버 I 의 머리를 파고 들어갔다. 머리가 부서진 케이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
다.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리고 가이버 I, 케이는 그대로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크...크으으으...!!"
-"잘했다, 엔자임 II. 아니, 모리사토 케이마. 자, 이제 녀석의 이마에서 컨트롤 메탈을 끄집어내라."
그러나 발카스의 명령에도 엔자임 II 로 조제된 케이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케이마의 머리 속은 극도
의 혼란상태였다. 아까부터 자꾸 머리 속에서 거역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래서 손을 상대에게 내리쳤다. 그런데 내리치고 보니 쓰러진 상대방은 바로 자신의 아들, 케이였다. 가이
버란 것으로 변신한 케이.... 그런데 내가 아들을 해치다니....! 머리 속에서 지금도 계속해서 울려 퍼지는 목
소리로 인해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그러나 충격을 받은 케이마는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뭐하고 있냐! 어서 메탈을 끄집어내라니까!!"
발카스가 계속해서 사념파를 방사하고 있었지만 엔자임 II 는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서있을 뿐이었다. 가이
버 I 의 피로 범벅이 된 자신의 손을 물끄러미 응시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설마 이렇게 강력한 사념파를 내
뿜고 있는데도 원래 인간으로서의 의식을 유지하고 있단 말인가. 혹시 너무 급하게 조제를 해서 조제과정에
서 뭔가가 잘못된 것일까.
"음! 이건..."
그 때 발카스의 뇌리에 또 하나의 사념파가 잡혔다. 지금 일본에 있는 사념파를 낼 수 있는 12신장 멤버는
자신과 규오밖에 없는데 지금 규오는 사념파를 발산하고 있지 않았다. 정체불명의 제3의 인물이 내고 있는
것이었다. 발카스가 그 사념파를 역추적하기 시작했다. 잠시후 위치를 확인한 발카스가 의아하다는 듯 고개
를 갸우뚱거렸다. 그곳은 다젤브와 가스터가 출동한 녀석들의 아지트 였던 것이다. 발카스가 관제원들에게
명령을 내려서 그곳을 스크린에 비추게 하였다. 그러자 발카스와 규오 앞에 어처구니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
-푸슝! 푸슝!!
"큭! 제기랄!!"
아키토는 욕지거리를 내 뱉으며 젝토올의 위력적인 생체열선포 공격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피하고 있었다.
젝토올은 전신에 골고루 퍼져 있는 열 개가 넘는 생체열선포를 순차적으로, 때로는 한꺼번에 쏘기도 하면서
아키토를 궁지로 몰아넣고 있었다. 젝토올이 도망만 다니는 아키토를 보면서 껄껄 웃고 있었다.
"하하하!! 왜 그러냐, 가이버 III ! 도망만 다니는 게 네 유일한 특기냐!"
아키토라고 도망만 치고 싶겠는가. 그러나 달리 뾰족한 수가 없었다. 프레셔 캐논은 안 통한다는 것이 아까
증명되었고 소닉 버스터를 쓰는 것도 상대가 강인한 저항성을 가지고 있는 하이퍼 조아노이드라면 별로 소
용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여긴 숲속이라서 소닉 버스터의 음파 공격에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 메가 스매셔
로 한방에 불태워 버리고 싶긴 하지만 저렇게 연속으로 빔을 쏴대기 때문에 도저히 틈이 보이질 않았다. 바
짝 접근해서 고주파 소드로 베어 버리려 해도 젝토올은 접근 자체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 촘촘하게 빔을
날리고 있었다.
젝토올이 날린 빔때문에 주변의 나무들에 불이 붙었다. 불길이 점점 거세지기 시작하면서 연기로 인해 시계
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이를 본 아키토는 잘만 하면 접근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어쨌
든 바짝 접근할 수만 있다면 고주파소드로 한번에 베어버릴수가 있었다.
-파슈웅!!
"크윽!!"
순간 아키토가 실수를 하고 말았다. 젝토올의 빔 공격을 제대로 피하지 못하고 왼팔에 맞은 것이다. 비록
제대로 맞은 게 아니라 스쳐 지나간 거지만 아키토는 마치 팔이 통째로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아키토가 그대로 덤불 속으로 추락하였다.
"잡았다! 드디어 잡았어!!"
아키토가 빔에 맞은 것을 본 젝토올이 의기양양하게 소리치며 아키토가 쓰러진 지점으로 달려갔다. 그런데
막상 그 자리에 가 보니 가이버 III 의 모습은 보이질 않았다. 당황한 젝토올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함께 달
려온 엘레겐과 장크루스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제..제길! 찾아봐! 놈은 멀리 못 갔어!"
"하..하지만 젝토올, 불길과 연기 때문에 주변이 잘 안보여."
장크루스가 잔뜩 긴장한 채로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바로 그때였다!
-푸화악!!
장크루스 근처에 있던 땅에서 갑자기 뭔가가 솟구쳐 올랐다. 장크루스가 제대로 반응하기도 전에 그 물체는
장크루스 바로 앞까지 육박하였다.
-촤아악!!
갑자기 장크루스가 머리에서부터 세로로 길게 쪼개지고 말았다. 두 조각이 난 장크루스는 대량의 피를 내뿜
으며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깜짝 놀란 젝토올과 엘레겐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고주파 소드를 전
개한 체로 서있는 가이버 III 가 보였다. 어느틈엔가 가까이 접근해서는 장크루스를 베어버린 것이다!
"장크루스!!!"
"이...이놈이!!"
젝토올이 황급히 생체열선포를 가이버 III 에게 겨누고 발사하였다. 그 순간 갑자기 가이버 III 의 모습이 사
라졌다. 무슨 도깨비 마냥 갑자기 가이버 III 가 사라지자 젝토올은 당황하였다. 하지만 주변을 둘러보던 젝
토올은 이내 가이버 III 가 어디로 도망쳤는지 금새 찾아낼 수 있었다.
"이...이럴수가! 땅속으로 도망치다니!!"
아까 까지만 해도 가이버 III 가 서있던 땅 부근에 커다란 구멍이 파여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녀석은 마치
두더지 마냥 땅속을 파헤치며 이동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땅속으로 고속 이동하는 건 자기의 특기이건만 놈
은 그걸 똑같이 흉내내며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던 것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땅속을 파헤치며 이동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놈이 땅속에 있는 이상은 공격이 불가능했다. 젝토올이 잔뜩 긴장한 체로 엘레겐에게 경
고하였다.
"조심해, 엘레겐. 놈은 근처에 있어....."
"제..젝토올!"
젝토올과 엘레겐은 서로 등을 맞댄 체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어디서 녀석이 튀어나올지 알 수가 없었
다.
'좋아, 한놈은 해치웠으니 이쯤에서 물러날까....'
그러나 젝토올의 예상과는 달리 아키토는 땅속을 조용히 파내면서 현장에서 이탈하고 있었다. 아키토는 복
부의 중력제어구를 조종해서 땅속에 터널을 만들며 전진하고 있었다. 프레셔 캐논을 준비하는 요령으로 손
끝에 고중력의 웜홀을 생성시켜서 눈앞에 있는 흙을 양 옆으로 밀어내면서 전진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방법이라면 잘만 이용한다면 한마리 정도는 더 해치울 수 있겠지만 이미 상대방도 이쪽의 수법을
알고 거기에 대해 대비하고 있을 것이 뻔했기에 함부로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일단은 한마리 해치우고 놈
들의 발을 묶은 것에 만족해야 했다. 게다가, 아까부터 아키토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래
도 케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저놈들과 싸우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서둘러서
케이에게 가 봐야 했다.
******************************************
"크르르....!"
"쿠아아...."
갑작스러운 상황 반전에 린드는 깜짝 놀랐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조아노이드들이 서로를 노려보며 대
치하기 시작한 것이다. 설마, 무라카미가 말한 해볼만한 방법이란 게 이거란 말인가. 대체 어떻게 했기에 조
아노이드들이 서로 으르렁거리게 만들었을까. 도대체 사념파란것이 무엇일까. 린드는 무라카미의 정체가 의
심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도 무라카미는 다젤브와 가스터에게 계속해서 의식을 집중하였다.
"자, 싸워라. 너희들은 지금부터 적이야. 상대방을 물리쳐라!"
"카아악!!"
"크아아아!!"
갑자기 두 조아노이드가 서로에게 달려들어 힘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린드뿐만 아니라
집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모두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이유야 어쨌든 잘된 일이었다. 저렇게 서로 싸워서 둘
다 같이 죽어주면 이쪽으로서는 위험을 피할 수 있으니까.
유적기지 종합상황실에서 이를 지켜보던 발카스와 규오는 기가 막혔다. 갑자기 왜 가스터와 다젤브가 서로
싸운단 말인가. 어처구니가 없어진 발카스가 강력한 사념파를 방사하면서 소리쳤다.
"이 멍청한 놈들아!!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
순간 발카스의 강력한 사념파를 받은 다젤브와 가스터는 퍼뜩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그리고는 당황해
하며 서로의 손을 풀었다. 발카스의 꾸짖음에 둘은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반면 무라카미의 표정에는 낭패
감이 깃들었다. 조금만 더하면 손 안대고 코를 풀 수 있는 상황이었다. 자신도 느낄 수 있는 이 강력한 사
념파는 아마도 닥터 발카스가 틀림없었다. 그가 개입한 거라면 자신으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이...이놈이! 감히 우리에게 창피를 주다니!!"
-쿵쿵쿵!!
성난 다젤브가 지축을 울리며 무라카미에게 돌진해오기 시작했다. 그 순간 린드가 무라카미의 앞으로 뛰쳐
나가면서 돌진해 오는 다젤브를 향해 배틀액스를 있는 힘껏 내리쳤다.
-까앙!!
"큭!!"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린드의 배틀액스는 다젤브의 단단한 장갑을 뚫지 못했다. 거의 본능적으로 린드는
배틀액스를 놓고는 황급히 옆으로 비켜섰다. 만약 그 자리에 1초라도 더 있었다가는 다젤브의 뿔에 복부를
꿰뚫렸을 것이다. 참으로 유효 적절한 행동이었지만 그 덕분에 이제 무라카미가 속수무책으로 꿰뚫리게 생
겼다. 린드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물러나!! 위험하다!"
그러나 무라카미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총을 땅에 떨어트리고는 양팔을 앞으로 뻗었다. 마치 그대로
다젤브를 힘으로 멈추겠다는 듯이. 린드가 다시 달려가서 막을 틈도 없이 다젤브가 무라카미와 충돌하고 말
았다.
-쿠웅!!
그러나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무라카미가 다젤브를 멈춰 세웠다. 체격 면에서도 세네배에 달하는 거대한
조아노이드를 힘으로 멈춰 세운 것이다. 비록 다젤브의 기세 때문에 뒤로 1m 가량 주루룩 밀리긴 했지만
무라카미는 두 다리로 굳건하게 서있었다. 현장에 있던 모두가 그 광경을 보고 경악하였다. 보통 인간이 하
이퍼 조아노이드를 힘으로 멈춰세우다니!
"이...이럴수가! 넌 도대체 정체가 뭐냐!!"
다젤브 역시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무라카미를 노려보았다. 무라카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멈추기는 했지만 상대의 힘이 너무 강해서 더 이상은 버틸 수가 없었다. 무라카미의 얼굴에
서 땀이 비오듯 흐르기 시작했다. 할 수 없이 '그걸' 쓰는 수밖에는 없었다. 무라카미가 힘차게 소리쳤다.
"수(獸)! 신(神)! 변(變)!!!"
그러자 무라카미의 이마가 녹색으로 밝게 빛나기 시작했다. 이윽고 무라카미가 입고 있던 옷이 그대로 타
없어지면서 무라카미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귀가 길게 뻗기 시작했고 피부색도 변하기 시작했다. 그 모
습을 본 모두가 경악하였다. 설마 무라카미도 조아노이드란 말인가!
"아아...!!"
"이 모습, 이 위압감...."
다젤브와 가스터가 뒤로 주춤주춤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뭔가에 겁을 먹은 듯해 보였다. 린드
역시 무라카미에게서 굉장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무라카미의 기세에 겁을 먹은 듯해 보였다. 무
라카미가 한 발짝 앞으로 걸음을 내딛자 두 조아노이드는 두발짝 뒤로 물러설 정도였다.
"당신은 설마..! '조아로드' 인가!!"
두 조아노이드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조아로드? 린드는 처음 듣는 말이었다. 스쿨드도 조아로드란 말은
해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무라카미는 보통의 조아노이드라고 볼 수가 없는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고
있었다. 그렇다면 무라카미는 조아노이드를 뛰어넘는 또 하나의 절대적 존재란 말인가.
-"다젤브! 가스터!"
그 때 다젤브와 가스터의 머리에 발카스의 사념파가 수신되었다. 두 조아노이드는 그 자리에서 허둥대고 있
었다.
-"후퇴하라! 너희들이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유적기지에서 여기를 지켜보고 있던 발카스는 이들에게 후퇴명령을 내렸다. 놈의 정체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아노이드의 상대는 아니었다. 다젤브와 가스터는 그대로 뒤돌아서 현장에서 도망쳤다. 무라카미는 추격할
생각까지는 없는 듯 그대로 서 있었다.
-슈우우
다젤브와 가스터가 숲속으로 사라진 것을 확인한 무라카미가 변신을 풀었다. 그 직후 갑자기 무라카미가 앞
으로 쓰러졌다. 옆에 있던 린드가 재빨리 무라카미를 부축하였다.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는 게 아무래도 변
신으로 인해 체력이 많이 소모된 듯 싶었다. 하지만 지친 것을 제외하면 다행히도 무라카미에겐 별다른 상
처는 보이지 않았다.
"무라카미 씨!"
그 때 집안에서 지켜보고 있던 베르단디와 울드가 밖으로 뛰쳐나왔다. 베르단디가 무라카미의 상태를 살피
며 치유 법술을 걸려고 하였다. 그 때 무라카미가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전 괜찮습니다. 그리고 저에겐 치유 법술이 잘 안 통하니까 그만 두십시오."
"네? 하지만 무라카미씨는 지금..."
베르단디는 무라카미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째서 법술이 안 통한다는 걸까? 울드 역시 의문을 가졌
다. 법술이 안 통한다는건 또 어째서고 아까 무라카미가 보여줬던 변신 장면도 그렇고 이 남자는 의문 투성
이였다. 게다가 이 남자는 자신들이 여신이란 사실을 들었어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었다. 아니, 마치 처음부
터 알고 있었다는 듯한 태도였다. 이 남자는 도대체 정체가 뭐란 말인가.
"그보다는...베르단디 님. 제 옷좀 만들어 주실 수 있습니까?"
지금 무라카미는 알몸 상태였다. 변신을 하면서 입고 있던 옷이 순식간에 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베르단
디가 법술을 외우자 무라카미의 온 몸을 빛이 감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아까 까지 무라카미가 입고
있던 옷이 다시 만들어 졌다. 옷이 갖춰지자 무라카미가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마당에 주차돼 있
는 자기 승용차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깜짝 놀란 베르단디가 그를 말리기 시작했다.
"아! 무라카미 씨, 지금은 쉬셔야 해요."
"죄송하지만...급히 가볼 데가 있습니다."
"거기가 어디인데요? 지금 이런 몸으로 가셔야 할 정도로 급한 가요?"
그 질문에 무라카미는 머뭇거리기만 할 뿐 대답하지 못했다. 베르단디가 재차 물어도 그는 그냥 적당히 얼
버무리려고만 하였다. 그 때 울드가 앞으로 나섰다.
"그렇다면 혹시 모르니까 내가 같이 가도록 하지. 베르단디랑 린드는 만약을 대비해서 여기 남아있어."
울드는 그렇게 말하고는 바로 조수석 문을 열고 안에 탔다. 무라카미는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운전석
에 올랐다. 걱정스러운 표정을 짖고 있는 베르단디에게 울드는 걱정 말라는 듯이 웃어 주었다. 이윽고 무라
카미가 차를 서둘러 출발시켰다.
"혹시 케이 때문이야?"
별장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자 울드가 물었다. 무라카미는 잔뜩 굳은 표정으로 대답하였다.
"눈치 한번 빠르시군요."
"베르단디에게 제대로 말 못하는걸 보고 대충 짐작은 했다만.... 케이에게 무슨 일이 있는 거야?"
무라카미는 금방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동안 침묵하던 무라카미는 방금 전 보다 한층 더 굳은 표정으로 말
했다.
"예, 케이군이 위험합니다. 어쩌면 베르단디 님은 모르시는 게 좋을지도 모릅니다. 아주 처절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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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12신장 이외에도 조아로드의 힘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 또 있다니! 이건 말도 안돼....!"
규오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이 세상에 조아로드는 자신과 발카스를 포함해서 12명밖에
없다. 바로 그 조아로드들이 크로노스 12신장을 구성하고 있고 말이다. 그런데 13번째의 조아로드라니! 도저
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까 그 무라카미라는 남자가 보여준 능력들을 보고 있자면 달리 반박할 말이
없었다. 자신들과 똑같이 사념파로 조아노이드를 조종하고 게다가 조아로드의 배틀 스타일로 변신까지 하였
었다.
발카스 역시 난감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13번째의 조아로드라는건 있을 수가 없었다. '그분'을 제외하
고 다른 신장 멤버들의 조제는 모두 자신이 직접 하였으니까. 그러므로 그가 모르는 조아로드라는건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순간 관제원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사령관님! 가..가이버 I 이....!!"
그 때 두사람은 아차 싶었다. 무라카미라는 이상한 녀석에게 정신이 팔린 탓에 가이버 I 을 깜빡 잊고 있었
다. 사령실의 모니터가 급히 엔자임 II 가 있는 현장을 비췄다. 그 순간 쓰러진 가이버 I 의 컨트롤 메탈이
밝게 빛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 직후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
다. 뇌가 박살난 가이버 I 이 천천히 일어서고 있었다!
"아...아니! 저럴수가!"
"머리는 파손된 그대로인데 어째서...!!'
두 사람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틀림없이 엔자임 II 가 뇌를 박살냈는데도 가이버 I 이 멀쩡히 움직이
고 있었다! 발카스가 다시 한번 사념파를 방사해서 엔자임 II 에게 명령을 내렸다.
"에에잇! 죽여라!! 그 질긴 녀석을 완전히 박살내버려!"
반면 규오는 옆에서 긴장된 표정으로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잘 생각해보니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다. 일
본지부에서 막 부활했던 가이버 I 은 지부 건물을 그저 아무 의미도 없이 부수고 다녔다. 그의 앞길을 막는
건 조아노이드이건 벽이건 간에 전부다 부술 뿐이었었다. 지금도 그때랑 완전히 똑같았다. 지금의 가이버 I
은 왠지 무의식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시점에서 규오는 비로소 깨달았다. 유니트 가이버의 또 하나의 기능을. 식장자가 의식을 잃고 일
정시간이 지나도록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면 강식장갑 시스템은 식장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과잉방어 행
동에 들어간다. 즉 그 시점에서는 컨트롤 메탈이 직접 강식장갑을 움직여서 주변의 모든 위협을 제거해 나
가는 것이다. 강식장갑의 성질을 생각해보면 충분히 예측할 수 있는 기능이었다. 지금의 저 녀석은 가이버 I
이긴 하지만 모리사토 케이는 아니었다!
규오는 마른침을 삼키며 모니터를 응시하였다. 이제부터 아무런 망설임도 없는 가이버의 진정한 전투력이
발휘될 순간이었다.
******************************************
"아까 그 조아노이드들의 정신과 동조됬을때 알아낸 겁니다."
"그럴수가!! 그 아저씨가 조아노이드라니!"
차안에서 울드는 무라카미가 아까 쳐들어온 조아노이드들의 사고와 동조됬을때 알아낸 사실들을 듣고는 경
악하였다. 하지만 너무나 충격적인 내용이라서 무라카미의 말이 모두 거짓말인 것처럼 들렸다. 케이마가 조
아노이드로 되다니! 게다가 조아노이드로 된 케이마가 케이를 해칠꺼라니....
"그것도 강식장갑을 분해할수 있는 특수효소를 가진 놈인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울드는 생각나는 게 있었다. 일전에 스쿨드가 얘기해 줬던, 케이가 한번 패했었다는 조아노이드 '엔
자임'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만약 그렇다면 케이는 정말 위험했다. 상대가 케이마인지라 반격을 할 수가 없
는데다가 분해효소 때문에 그냥 방어만 하는 것도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현장으로 달려가
서 케이마를 막아야 했다. 무라카미 역시 케이 걱정에 마음이 급해졌다. 무라카미는 액셀레이터를 더 힘있
게 밟았다.
"저기만 돌면 됩니다! 다 왔어요!!"
어느세 무라카미의 차는 케이와 케이마가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무라카미는 차를 세우고 울드와 함께 서둘
러 하차하였다. 그리고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현장에 도착한 두 사람은 큰 충격을 받았다. 가이버 I, 케이와
처음 보는 흰색의 거대한 조아노이드가 대치하고 있었다. 저 조아노이드가 설마 케이마란 말인가!
"크아아!!"
조아노이드가 된 케이마, 엔자임 II 가 가이버 I 을 후려치려 하였다. 그러나 가이버 I 은 그 공격을 가볍게
피하고는 곧장 고주파 소드를 전개하였다. 그리고 바로 엔자임 II 의 오른팔을 베어버렸다. 팔이 잘려나가면
서 대량의 피가 밖으로 뿜어져 나왔다.
"카아아악!!"
엔자임은 잘린 부위를 움켜쥐면서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엔자임은 곧장 등에
나와있는 4개의 집게팔중 하나를 가이버 I의 왼쪽 가슴에 찔러 넣었다.
-푸욱!!
"크르르르...."
강식장갑을 분해하면서 엔자임의 집게팔은 가이버 I 의 왼쪽 가슴을 완전히 관통하였다. 엔자임은 관통한
상태 그대로 가이버 I을 공중으로 천천히 들어올렸다. 그 순간 가이버 I 이 헤드빔을 쏴서 그 집게팔 중간
을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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