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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제1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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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식장갑 가이버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

                                            제16화 - 유니트의 비밀 -





케이는 나무 위에 올라가서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누군가의 접근을 좀 더 쉽게 알아차릴 수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는지 동굴 안은 조용했다.

"....어째서..."

케이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어째서 오늘 낮에 전투를 할 때 식장이 저절로 벗겨진 것일까, 그리고 그
이후로 다시 재식장이 불가능한 이유가 뭘까. 설마 강식장갑이 케이의 몸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간 걸까? 이
제까지 케이가 강식장갑이란 것에서 해방되기를 바란 적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요 근래에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처음에는 가끔 그런 생각이 들었던 적도 있었다. 이런 것이 없었다면 베르단디들이 이런
엄청난 사건에 휘말려들 일도 없으니까. 하지만 어째서 하필이면 지금 강식장갑이 사라진단 말인가. 그 어
느 때보다 힘이 절실히 필요한 이때에...! 베르단디들을 지켜줘야 하는데....

"케이씨."

그 때 베르단디가 나무 위로 올라왔다. 물론 여신인 그녀는 케이처럼 낑낑대며 나무를 탈 필요 없이 간단히
몸을 공중으로 띄워서 올라왔다. 그리고는 케이 바로 옆에 앉았다. 두 사람은 잠시 밤하늘을 바라보며 말없
이 앉아있었다. 잠시 그러던 중 베르단디가 먼저 말을 꺼냈다.

"몸은 괜찮으세요? 왠지 피곤해 보이세요."

"아니...난 괜찮아."

케이는 베르단디에게 걱정 말라는 듯 웃어 보였다. 그러나 베르단디는 여전히 걱정스러웠다. 평소의 케이와
는 달리 지금의 케이는 어딘가 힘이 없어 보였다. 지금의 미소도 어딘가 맥이 빠진 듯한 모습이었다. 베르
단디는 약간 주저하며 말을 하였다.

"혹시....가이버로 변신할 수 없어서 그러시는 건가요?"

"......"

정곡을 찔린 케이는 할 말이 없었다.

"전 믿고 있어요. 지금은 왜 가이버가 케이씨의 부름에 응답하지 않는지 알 수 없지만....."

케이는 베르단디의 말을 그저 듣고만 있었다.

"조만간 반드시 가이버는 케이씨에게 돌아올 거에요. 케이씨의 간절한 외침에 응답해서. 그러니까 지금은
가이버가 잠깐 쉬고 있다고 생각하도록 해요. 네?"

베르단디는 케이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언제나 케이가 힘들 때나 기쁠 때나 함께 했던 베르단디의 포근
한 미소였다. 항상 케이에게 힘을 줬던 그녀의 미소.... 베르단디는 살며시 케이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온기
를 느끼며 케이는 약간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미안해....이렇게 힘들 때 내가 아무런 힘도 돼주질 못하니..."

베르단디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는 케이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케이씨가 포기하시지 않는 한 저에게는 언제나 큰 힘이 되는 걸요."

"베르단디....."

"케이씨는 강한 분, 이 정도로 주저앉으실 분이 아니에요. 그렇죠?"

베르단디의 환한 미소를 케이는 약간 쑥스러워하며 바라보았다. 그리고 케이는 마음을 굳게 먹기로 하였다.
고민만 한다고 뭐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베르단디를 위해서라도 다시 유니트를 불러 낼 수 있도록
힘을 내야 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에취!!"

그 때 나무 밑에서 누군가의 재채기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케이는 허둥대다가 그만 균형을 잃고 말았
다. 베르단디가 황급히 잡아주지 않았다면 분명히 아래로 떨어졌을 것이다. 두 사람은 소리가 난 나무 아래
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그들의 눈에 멋쩍은 듯 웃고 있는 지로가 보였다.

"아하하....내가 그만 분위기 깼냐?"

케이는 그저 한숨만 푹 내쉬었고 베르단디는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 듯한 표정이었다. 케이는 기운 없는
투로 지로에게 물었다.

"잠 안주무시고 여기서 뭐하세요?"

"아...그...그게 차량 점검 좀 하다가 너희 둘이 나무 위에 있길래 뭐하고 있나 싶어서 와봤는데....."

그 말을 들은 케이는 나무 위에서 내려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베르단디가 케이를 안고 나무 아래로 살며시
내려왔다. 지로는 그런 베르단디의 모습을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공중부양이라는건 인간은 보통 불
가능하지 않은가. 물론 지로는 베르단디가 여신이란 사실을 아직은 모르고 있었지만. 나무에서 내려오자 마
자 케이가 지로에게 말했다.

"저도 도와드릴께요."

"뭐, 됐어. 나 혼자 해도 충분하고...."

"그래도 둘이 하면 빨리 끝낼 수 있잖아요. 그래야 선배도 더 쉴 수 있고요."

더 말해도 소용없겠다 싶었는지 지로는 웃으면서 그러라고 승낙하였다. 세 사람은 차들이 주차돼 있는 곳으
로 발걸음을 옮겼다. 




******************************************




"규오 각하, 분석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 어떤가."

"아무래도 각하께서 말씀하신 기능을 가지고 있는 듯 합니다."

"뭐라고! 정말인가?"

유적기지 최하층에 위치하고 있는 한 연구실에서 규오는 연구원에게서 보고를 받고 있었다. 보고 내용이 상
당히 긍정적이었는지 규오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그 연구원은 상당히 나이가 들어 보였고 눈이 나쁜지
커다란 안경을 만지작거린 후에 다시 서류철로 눈길을 돌렸다. 그 연구원은 서류철에 쓰여있는 실험기록등
을 좀 더 살펴본 후 보고를 계속해나갔다.

"예, 하지만 사용방법을 규명하는 건 좀 더 시간을 주셔야 겠습니다."

그의 보고에 규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유리관 안에 들어있는 '그것'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걸 보면
서 규오는 연구원에게 보채듯이 말했다.

"좋아, 가능한 한 서둘러라."

"예. 각하."

"그리고.... 닥터 발카스에게는 절대로 들키지 마!"







최하층을 나오면서 규오는 다시 한번 그 연구원에게 절대로 발카스나 다른 사람에게 '그걸' 들켜서는 안 된
다며 다짐에 다짐을 하고 나왔다. 그걸 들키면 모든게 끝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야망, 현재의 지휘,
그리고 자신의 생명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면서 규오는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닥터 발카스의 행동이 수상했다. 갑
자기 왜 뜬금없이 자기를 지원하겠다며 일본으로 온 걸까. 하이퍼 조아노이드 5인중을 데리고 온 거야 전력
에 플러스가 되니까 고맙기는 하지만 솔직히 그들이 없었다 해도 현재 유적기지의 전력만으로도 가이버들
을 상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자신을 비롯해서 그 누구도 본부기지에 증원을 요청한 적이 없었
고 여기에 가이버란 것이 설친다는 얘기는 한 적도 없는데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온 것일까. 어저께 조제
시설을 둘러볼 때 발카스가 마지막으로 한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리헐트....그 무라카미라는 실험체는 아직도 자네 목숨을 노리고 있을지도 몰라.'

발카스야 그냥 해본 말일지도 몰랐지만 규오에게는 마치 난 모든걸 알고 있다는 듯한 투로 들렸다. 아니 어
쩌면 정말로 다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다만 아직 확신하기에는 증거가 부족해서 자신을 쭉 지켜보고 있기
만 하는 건지도 몰랐다. 뭔가 수상한 낌새를 느꼈으니까 굳이 여기까지 직접 온 것이 아니겠는가.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난간을 잡고 있던 규오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유니트와 식장자를 완전히 분리시키는 방법'이 규명될텐데.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방해
꾼들이 나타나다니...!

만약 그 무라카미라는 실험체가 이대로 발카스에게 산채로 잡혀서 그 녀석이 알고 있는 사실이 모두 그 노
인네의 귀에 들어간다면 자신은 끝장이었다. 실각이 문제가 아니다. 목숨을 포함해서 모든걸 잃을 수밖에
없었다. 녀석을 이대로 살려두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그러나, 뭘 어떻게 해야 녀석을 제거할 수 있을까?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직속부하 넷은 모두 가이버들에게
쓰러졌다. 하이퍼 조아노이드도 상대가 안되는데 일반형 조아노이드 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니 하긴 그
부하 넷이 모두 온전히 살아있다 해도 이길 수가 없을 것이다. 그 무라카미란 녀석은 실험체이긴 해도 어쨌
든 조아로드의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아무래도....내가 직접 나서야 될 것 같군.'




******************************************




아침이 되자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이 구름한점 없는 맑은 하늘이 나타났다. 베르단디는 시즈와 함께 아침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고 일행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동굴 근처에서 간단하게 몸을 풀고 있었다. 어제 전투
에서 부상을 당했던 세 사람은 이제 완전히 괜찮아졌는지 혈색 등이 아주 좋았다.

"후아암~~"

지로가 크게 하품을 하였다. 사실 어젯밤에 지로는 차량들의 상태를 점검하느라 남들보다 늦게 잠자리에 들
었다. 다음날에 험한 산길을 달려야 했기 때문에 구석구석 꼼꼼히 체크하였었다. 물론 차에 실려있는 간단
한 공구 정도로는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응? 그런데 케이는 어디있어?"

주변을 둘러보던 지로는 케이가 안보인다는 걸 알아차렸다. 어제 밤중에 지로와 함께 차를 정비하고 난 후
에 같이 동굴로 들어왔었는데 왜 안보일까? 다른 사람들도 케이가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 때 울드가 나
무 위를 가리켰다.

"저기 있네. 보초라도 서고 있는 건가?"

지로가 그곳을 보니 과연 케이가 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다. 아무래도 자기와 함께 차량 점검을 하고 난 후
에 잠자리에 들지 않고 다시 나무위로 올라간 것 같았다. 지로는 좀 어처구니가 없었다. 피곤하지도 않나?

"케이, 너 거기 있었어? 잠 안잔거야?"

"전 괜찮아요, 별로 피곤하지 않아요...."

말은 그렇게 하지만 지금의 케이는 어딘가 기운이 없어 보였다. 지로는 케이를 걱정된다는 듯 바라보았다.
보초도 좋지만 혼자서 날밤을 새는 게 어딨단 말인가. 다른 사람을 깨워서 교대라도 해야지. 지로가 뭐라고
할려는 찰나, 베르단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러분, 식사하세요." 






재료가 불충분하긴 했지만 베르단디는 그 와중에도 한껏 요리실력을 발휘하였다. 물론 이젠 재료가 거의 다
떨어졌기 때문에 점심은 간단한 샌드위치 정도밖에는 못 먹게 생겼지만 말이다. 맛있는 식사가 끝나자 베르
단디와 시즈는 빈 그릇들을 챙겨서 차로 가지고 갔다. 나머지 사람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쉬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아키토가 무라카미에게 말을 걸었다.

"무라카미씨. 어제 다 못들은 얘기를 계속해서 듣고 싶습니다만."

아키토의 말을 들은 무라카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차에서 그릇들을 정리하고 있던 베
르단디들을 큰 소리로 불렀다.

"베르단디님! 빨리 정리 끝내고 와주십시오. 중요한 얘기가 있습니다."

"네, 잠시만요."

잠시후 베르단디와 시즈가 뒷정리를 마친 후에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녀들이 자리에 앉자 무라
카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여러분께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들 인간은 무엇인가 부터 시작해서 유니트의 비밀, 그리고
저의 사명까지 전부 다."

모두들 긴장한 채로 무라카미를 주목했다. 과연 무라카키가 어제 다 말하지 못했던 유니트의 비밀이란 건
무엇일까. 그 때 무라카미가 베르단디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전에, 우선 베르단디님에게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

"네?"

"우리들 인간은....어떻게 생겨났습니까?"

일행들의 시선이 베르단디에게 집중되었다. 베르단디는 자신이 어릴 때 생각이 났다. 인류의 탄생 역사를
배웠던 그 때, 그 사람이 자신에게 가르쳐줬던 내용이.




******************************************




"자, 베르단디. 오늘은 여기서 공부를 하자꾸나."

세레스틴은 베르단디를 데리고 커다란 나무 그늘 밑에 자리를 잡았다. 수많은 나무들이 있는 이곳 수목원에
서도 특히 눈에 띄는 큰 나무였다. 나무 그늘이 따가운 햇살을 가려주면서 동시에 주변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이곳은 편히 쉬기 딱 좋은 자리였다. 장래에 시간의 수호신으로서 살아갈 베르단디의 전임교사인
세레스틴의 수업은 항상 이렇게 야외의 편안한 분위기에서 이루어졌다. 수업이라고 해서 꼭 교실 안에서만
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는 것이 세레스틴의 생각이었고 특히나 딱딱한 역사 공부 같은 건 마치 옛날얘기를
해 주듯이 편안하게 하는 것이 그의 수업방식이었다.

"그럼, 오늘은....."

"인간이 어떻게 탄생했는지 알려주신다고 하셨죠?"

베르단디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마치 빨리 얘기해 주세요 라는 듯이 말했다. 세레스틴은 그런 베르단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하지만 오늘은 잔혹한 얘기도 나오니 좀 어두운 얘기가 되겠구나."

마치 옛날 얘기를 해주는 할아버지처럼 세레스틴은 조용히 얘기를 시작했다.








창세 신화의 시작은 거인의 탄생부터 시작된다. 하늘도 땅도 없던 시절에 세상은 반은 서리로 반은 불길로
덮여 있었다. 서로 상극인 서리와 불 사이에 기눙가라는 틈이 있었고 그곳에서 최초의 거인 이미르가 탄생
하였다. 불을 만나 녹아내린 서리에서 태어났으므로 이미르와 그의 자손들은 '서리거인'이라고도 불렸다. 그
들은 극과 극이 만나 생겨서 인지 성질도 사납고 흉측하였다.

이미르에 이어서 얼음에서 아우둠라라는 암소가 태어났다. 암소는 배고픈 이미르에게 젖을 먹이면서 자신을
얼음을 핥음으로서 허기를 달랬다. 젖소는 얼음을 빨면서 그 속에 아름답고 늠름한 남자가 갇혀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바로 신들의 시조인 부리(Buri:식료창고)였다. 부리는 얼음속에서 모습을 들어내고, 아들 보르
(Borr:배의 창고)를 낳았다. 보르는 거인족의 딸을 아내로 삼아 세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여기에 탄생한 그
의 아들들이 훗날 천지를 만들어 냈다. 이 세아들의 이름은 각각 오딘(Odinn:격노, 광란), 빌리(Vili:환희, 욕
망, 소원), 베이(Vei:비탄)이다. 현재 천상계의 최고위 신들이 바로 이때 이렇게 태어났다.

그러나 사실상 형제나 마찬가지였던 이들 신들과 서리 거인족은 공존할 수 없는 관계였다. 서리 거인족은
그 시초인 이미르를 포함해서 너무나 흉폭했고 거칠었다. 신들은 이들의 광란이 도를 넘자 자칫 잘못하면
이 세계가 멸망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세계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그들은
압도적인 세력을 가진 서리 거인족과 오랜 세월동안 처절한 전투를 치렀고 마침내 승리를 거뒀다. 거인족의
수장인 이미르는 오딘의 창에 목숨을 잃었다. 이미르의 피에 모든 거인들이 빠져죽고 말았다.

오딘은 이미르의 주검으로 하늘과 땅 계곡 등을 만들었다. 오딘은 이미르의 몸으로 대지를 만들었고, 두개
골로 하늘을 만들었으며 그 밖에 여러 부분으로 세계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새로운 세상을 살아갈 자
신들과 흡사한 생명체를 만들어 냈는데 그것이 바로 인간이었다.

인간은 해변가에서 발견된 두개의 나무로 만들어졌는데, 남자는 아스크(Askr:물푸레니무), 여자는 엠브라
(Embre:느릅나무 또는 덩굴풀)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들에게 오딘은 호흡과 생명을, 빌리가 지혜와 신체를
움직이게 하는 힘을, 그리고 베이가 얼굴 모양과 말, 지각력을 각각 전해주었다. 오딘은 이미르의 눈썹으로
대지를 둘러서 그 안에 요물이나 야수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둘러싸인 안쪽이 인간들이 사는 세계 '미드
가르드(Midgardr:둘러싸인 안쪽,대지)'이다. 신들은 미드가르드의 중앙에 신전을 짓고 인간들과 평화롭게 지
냈다.




******************************************




"제가 세레스틴에게 배운 바로는 이렇습니다."

베르단디의 인류의 역사 설명이 끝났다. 그 얘기를 들은 다른 사람들은 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제
까지 그들이 배웠던 다윈의 진화론 같은 건 철저히 무시당한 셈이니까. 다만 같은 여신인 울드와 스쿨드,
린드만이 당연하다는 듯 얘기를 듣고 있었을 뿐이다. 다만 울드는 세레스틴의 이름이 나오자 약간 언짢은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다가 울드가 베르단디의 설명을 보충하듯 말했다.

"마계에 전해지는 인간 탄생 얘기도 이와 비슷해. 다만 주체만 바꼈을 뿐이지. 즉 마계는 마계 중심의 역사
란 소리야."

울드는 반신반마의 몸을 지녔고 실제로 그녀가 태어난 곳도 마계였다. 어머니는 아예 대마계장이고 말이다.
아주 어린 시절을 마계에서 보냈던 울드는 그때에 마계에 전해져 오는 인간탄생의 역사를 배웠던 것이다.
두 사람의 말을 들은 무라카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베르단디를 보며 말했다.

"훌륭하신 선생님 밑에서 배우신것 같군요."

"네, 제겐 여러모로 고마우신 분이었어요."

베르단디의 얼굴에 약간의 홍조가 피어올랐다. 그런 베르단디를 보며 케이는 대체 어떤 사람일까 하는 호기
심이 생겼다. 다만 울드만은 여전히 잔뜩 굳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그 얘기는 틀렸습니다."

그 때 무라카미가 단정적으로 베르단디의 얘기를 부정하였다. 그러자 베르단디를 비롯한 모두가 놀랐다. 대
체 무슨 근거로 그런 얘기를 하는 걸까?

"그 세레스틴이란 분이 베르단디님께 거짓말을 했을 것 같지는 않군요. 그렇다면 그 분도 진실을 모르고 있
었다고 보는 게 옮겠군요."

모두가 무라카미를 주목하였다. 지금부터 무라카미가 말하는 '진실'이란 것이 밝혀질 순간이었다. 무라카미
가 모두에게 설명을 시작하였다.

"우선, 인간을 만든 것은 현재의 신족도 마족도 아닙니다. 바로 그들이 거인족이라 부르던 집단, 현재 크로
노스는 '강림자'들이라 부르던 외계인들이지요."







먼 옛날, 생명체의 흔적이 전혀 없던 이 지구에 내려온 외계인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현재의 신족들이
거인족이라 불렀던 자들, 즉 '강림자' 들이었다. 그들이 진짜 신들이 얘기하는 거인인지는 알 수 없다. 아니
사실 그들에 관해서는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서 왔는지 등등.... 거인족이라 칭해지
는 것도 어쩌면 신족들의 왜곡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그들은 앞으로 다가올 큰 전쟁에 대비해 이곳
지구에서 오랜세월동안 생태계를 조작하여 그들이 원하는 생명체를 만들려고 하였다. 높은 지능, 왕성한 번
식력, 우수한 환경 적응력과 강한 투쟁심과 더불어서 그들이 추구하는 '궁극의 병기'를 만들기 위한 베이스
가 되줄수 있는 범용성이 높은 생명체. 많은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그들은 드디어 거기에 걸맞은 생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 생물이 바로 현재의 인류였다.





"말도 안돼....."

그 때 묵묵히 듣고만 있던 핫세가 중얼거렸다. 사람들의 시선이 핫세에게 집중되었다. 핫세는 기가 막힌다
는 듯한 말투로 무라카미에게 말했다.

"그럼 우리가 외계인이 만든 병기란 말이에요? 우리 인류가!?"

"믿어지지 않을 거라는 건 잘 알지만.....사실이야."

핫세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무라카미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때 스쿨드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전에 일본지부에서 규오가 그런 소리를 한 적이 있어. 케이, 기억나?"

"응? 아...인류가 병기로서 조제된 종이라는 거 말이야? 기억나고 말고."

태연하게 대화를 하는 케이와 스쿨드를 보면서 핫세는 충격을 받았다. 두 사람은 저런 무서운 이야기를 듣
고도 아무렇지도 않단 말인가. 스쿨드 같은 어린애까지도... 그 때 아키토가 이해가 간다는 듯이 고개를 끄
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지. 왕성한 투쟁본능, 도를 넘어선 잔혹성까지....
어쩌면 거기서 비롯된 건지도 모르겠군."

아키토의 말대로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 할 수 있을 정도다. 인류가 문자란 것을 발명해서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하기 시작한 이래로 크고 작은 수많은 전쟁들이 기록에 언급돼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같은 인
간끼리 과연 그런 짓을 저지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잔혹한 짓도 많이 저질렀다. 그리고 인류는 전쟁을
통해 자신들의 문명을 발전시켜왔다. 상대방을 더 많이, 쉽게 죽일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탐구하였고 지
금도 그런 시도는 계속되고 있다.

핫세는 머릿속이 혼란해져만 갔다. 인류가 외계인이 만든 무기라니, 그렇기 때문에 현재의 인류가 그렇게나
잔인한 것이라니. 황당함을 넘어서 이젠 공포마저 느껴졌다. 이런 무서운 얘기를 태연하게 듣고 있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니면 나만 이상해 진 걸까.....




******************************************




"조아노이드는 인류를 전투형으로 조제한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조제'란 아주 짧은 기간동안 그 개체의 유전자에 인위적으로 변이를 일으켜서 필요한 형태나 능력
을 갖추게 하는 것을 말한다. 조아노이드로 조제된 자는 인간으로서의 속성을 지닌 채 전투를 위한 제 2의
형태로 변신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강림자들은 신족들과 대항하기 위해 인류를 기반으로 조아노이드를 개발
하였다. 이를 위해 강림자들은 조아노이드들을 조제할 당시 그들에게 신족들이 사용하는 법술에 대해 높은
저항성을 가지도록 설계하였다.

"과연....그래서 놈들에게 법술이 잘 안 통했던 거군."

무라카미의 설명을 들은 울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째서 놈들에게 법술공격이 안 먹히는지 이제야 의문이
풀린 것이다. 무라카미는 여신들을 바라보며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기본적으로 조제체는 법술을 거부하는 특성을 지니게 됩니다. 그러니 저에게도 여러분들의 회복 법술이 안
먹혔던 거죠."

물론 현재 크로노스가 만드는 조아노이드와 그 때 당시 강림자가 만들었던 조아노이드는 어느 정도 차이가
존재할 것이다. 게다가 크로노스는 그 때의 강림자와는 다르게 천계로 쳐들어간다는 계획은 없는 것으로 보
이므로 굳이 법술거부 기능을 인위적으로 넣었을 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크로노스의 조아노이드 조제기
술은 세계 각지에 묻혀있던 강림자의 유산으로부터 얻은 기술이다. 때문에 현재 생산되는 조아노이드에게도
자연스럽게 그러한 특징이 계승되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강림자들은 이렇게 생산된 수많은 조아노이드들을 통솔하는 사령탑으로서 뿐만 아니라 최고위 신족
과의 전투에서 그들을 압도할 수 있는 최강의 생명체를 만들어 내었는데 그것이 바로 '조아로드'다. 조아로
드는 조아노이드를 훨씬 능가하는 육체와 바리어 등의 특수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어제 제가 엔자임 II 를 조각낸 기술도 그 바리어의 응용입니다."

그리고 조아노이드는 조아로드에게, 조아로드는 강림자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하도록 유전자 조작이 가해졌
다. 즉 조아로드는 조아노이드에게 '사념파'라고 하는 일종의 텔레파시 비슷한 조아로드 특유의 능력으로
복종시킬 수 있는 것이다. 무라카미가 그제와 어제 조아노이드를 조종할 수 있던 것도 바로 사념파를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강림자 역시 사념파 비슷한 것으로 조아로드를 부릴 수 있었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강림자들이 원하던 궁극의 병기 시스템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인류는 신족과의 전쟁터로 내몰리지 않았다. 왜냐하면 어느 날 갑자기 강림자들이 모든 실험을 중단
하고 서둘러 지구에서 철수했기 때문이었다. 대체 그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어째서 실험이 완
성단계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을 포기한 것일까. 신족과의 전쟁이 끝나서? 아니면 전혀 다른 세
력의 간섭이 있어서? 어쨌든 그 이유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아무튼 인류는 실용화 직전에 방기되었다. 시험적으로 조제되었던 조아노이드들은 그대로 보통의 인류와 교
배를 거듭해 나갔고 그 피는 점점 흐려져만 갔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 전해지는 여러 괴수 전설 -이를테면
늑대인간 같은 것- 중에는 어쩌면 정말 어쩌다가 나타난 조아노이드의 후손의 모습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강식장갑도 인류를 기반으로 한 생체실험의 와중에서 만들어진 물건인가요?"

아키토의 물음에 무라카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원래 강식장갑은 강림자들이 쓰던 물건이야. 그것도 표준장비로서."

그 말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유니트가 강림자들이 쓰던 물건일 줄이야. 천계와 마계가 유니트를 노리는 이
유가 이것 때문일지도 몰랐다. 울드는 린드에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냐고 물었지만 린드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사실 유니트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듣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질문조차도 허용되지 않았었다. 무라카
미는 계속해서 설명을 해 나갔다.







유니트는 강림자들의 표준장비로서 사용되었으며 아마도 거의 전원이 이것을 식장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
된다. 유니트는 식장자의 형태나 성질에 따라 기능의 증폭과 컨디션 등이 자동으로  조절된다. 강림자들이
어떤 집단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다양한 외계인들의 혼성집단이라 한다면 이만큼 범용성이 높은 장비도
없을 것이다. 물론 강식장갑 자체도 어디선가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르지만 진실은 아무도 모른
다.

이곳 지구에서의 실험이 거의 마무리 되갈 무렵, 강림자 중 한 명이 좀 색다른 실험을 제안했다. 자신들이
만든 전투 생명체, 즉 인류에게 자신들의 표준장비인 강식장갑을 식장시켜 보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병기
로서 조제된 생물체에게 강식장갑이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아주 놀라웠다.

강식장갑을 식장한 인류는 강림자들 자신이 식장했을 때보다도 수십배, 아니 수백배에 달하는 능력 증폭치
를 기록했다. 시험삼아 실시한 모의전투도 이 인류의 식장체의 압승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런 사실보다 강
림자들이 더 경악한 사실은 식장한 인류는 자신들의 정신지배로부터 완전히 해방된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유니트는 식장한 인류의 투쟁심을 한층 더 끌어올린 다는 것까지 알게 되었다.

"투쟁심을 끌어올린다고요?"

케이의 물음에 무라카미는 고개를 끄덕였다. 케이는 그제서야 이해가 갔다. 자신이 조아노이드와 싸울 때
아무렇지도 않게 상대를 베어버리고 싸움에 몰두할 수 있었던 이유를.... 그리고 저번에 왈큐레들과의 싸움
에서도 그들을 죽일 기세로 달려들었던 이유를. 모든게 다 유니트가 케이의 마음속 깊이 있던 투쟁심을 끌
어올렸기에 가능했던 일인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가이버로 변신했을 때 케이 자신은 왠지 모르게 흥분된
감정을 항상 느끼고 있었다.

"조아노이드를 훨씬 능가하는 전투력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병기로서 자신들이 제어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
한 인류의 식장체, 강림자들은 그것을 '규격외품', 그들 말로 가이버라고 불렀습니다."

"......."

그리고 여기서 더욱더 놀라운 사실이 판명됐다. 만약 조아로드로 조제된 인류가 이 유니트를 식장할 경우
그 조아로드는 자신들의 정신지배에서 해방되는 것은 물론, 강림자 자신들도 도저히 어찌해볼수 없는 힘을
가진 '절대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이었다.

"그럴수가!"

무라카미의 말에 모두들 크게 놀랐다. 절대적인 존재라니....

"그렇다면 천계가 유니트를 노리는 것도 그것 때문일까?"

울드가 무라카미에게 물었지만 그는 거기에 대해서는 확답을 못했다. 신족이 식장 했을 경우에 관한 데이터
는 존재하지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자신들의 표준장비를 적인 신들에게 장착시키는 짓은 안할것이
다. 그 부분은 무라카미 역시 추측에 의존할 수밖에는 없었다.

"아마도....단순히 힘이 쎄진다고 그런 것만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유니트를 손에 넣으면 천계는 현재 마계와
의 세력 균형을 무너트릴 수도 있겠지요. 그래서 노리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때 스쿨드가 눈을 반짝거리며 무라카미에게 질문하였다.

"저기! 저기요! 그렇다면 일급신인 언니가 가이버를 식장하면 케이가 식장했을 때보다도 훨씬 더 쎄질까
요?"

"스쿨드...."

베르단디는 난감하다는 듯이 스쿨드를 말렸고 무라카미는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는 듯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울드는 잠시 가이버가 된 베르단디의 모습을 상상해봤다. 그러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
각해 봐도 역시 베르단디에게는 가이버 같은 건 안 어울렸다. 다시 무라카미의 설명이 이어졌다.

"어쩌면 바로 그 사실 때문에 강림자들이 실험을 중단하고 이 별을 떠난 건지도 모릅니다. 어디까지나 추측
일 뿐입니다만...."
 
무라카미가 지금까지 얘기한 사실들은 크로노스가 세계 각지에 묻혀있는 강림자들의 유산을 분석하면서 알
아낸 사실이다. 사실 지금 크로노스의 모든 과학기술은 바로 이 강림자들의 유산을 철저히 분석해내서 획득
한 것이다. 그러나 방금 전에 말한 유니트에 대한 비밀은 현재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크로노스의 연구
진들이나 12신장 멤버들까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단 한사람, 리헐트 규오만을 제외하고는...

"규오만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요?"

"그렇다면 규오의 목적은...."

무라카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그는 모두의 우려를 확인시켜 주었다.

"규오는 유니트를 자신이 식장해서 남은 11명의 신장멤버를 제거하고 자신이 지배자의 자리에 앉으려는 것
입니다!"




******************************************




"........"

핫세는 이때까지 무라카미의 얘기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이런
비현실적인 얘기를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핫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핫세? 왜 그러니?'

지로의 물음에 핫세는 간단하게 대답하였다.

"잠깐...볼일 좀 보고 올께요...."

그리고는 핫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숲속으로 들어갔다. 지로가 너무 멀리 가지 말라며 소리쳤지만 핫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런 핫세를 베르단디는 걱정스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 때 무라카미가 다시 설명
을 하기 시작했다.

숲속에 들어선 핫세는 이내 어딘 가로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조금이라도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
더이상 저런 이상한 얘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머리가 이상해지는 것만 같았다. 어째서 내가 이렇게 도망
다녀야 하고 저런 말도 안돼는 얘기를 듣고 있어야 하지? 핫세는 마음속에서 미친 듯이 울부짖었다.

'이제...이제 싫어! 저런 얘기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케이 선배도, 마키시마 선배도 이상하게 변하고 베르단디 선배는 아예 인간도 아닌 신이라니! 어째서 내가
이런 현실과 동떨어진 사건에 휘말려야 되지? 내가 뭘 잘못했길레...! 돌아가고 싶어....집으로, 가족들에게로,
친구들에게로, 평소 같은 평화로운 생활로.....

핫세는 계속 달렸다. 이 지독한 악몽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




유니트의 비밀을 알게된 규오는 다른 신장멤버가 이 사실을 아는 것이 두려워서 연구에 참가했던 스텝들을
조용히 암살해 버렸다. 그러나 암살 당한 연구원 중 한사람이 위에 보고하지 않고 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했
던 야마무라 교수의 존재까지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유니트에 관해 연구하던 관련 스텝들의 의문의 죽음을 접한 교수는 당시 이 연구의 총 책임자였던 규오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시점에서 규오의 야망을 눈치챘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수년전 미나카미
산 아래에서 발견한 것이 바로 그 유니트 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교수는 애리조나 본부로 오기 전 미나카미
산의 유적기지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유니트의 발굴을 현장에서 직접 목격했던 사람이
었다.

교수는 생각하였다. 만약 이 유니트가 크로노스와 싸우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의 손에 들어간다면 그건
그에게 더할 나위 없이 큰 힘이 돼 줄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규오나 다른 12신장 멤버들의 손에 들어간다
면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래서 야마무라 교수는 목숨을 걸고 규오를 암살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그래서 규오가 조아로드로의 최종 조제를 시작했을 때 그를 암살하기 위해 무라카미를 포함한 규오
의 시작체 4명을 선동해서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목적을 이루어도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는 무모한 반란
을.....

"하지만 실패했습니다.... 하필이면 그 때 애리조나 기지에는 다른 12신장 멤버들이 모두 모여있었거든요. 시
기를 잘못 잡았던 거죠."

무라카미는 분하다는 듯 이를 갈았다.

암살에 실패한 야마무라 교수와 다른 실험체 세명은 일행 중에서 가장 부상이 가볍던 무라카미를 목숨을
걸고 기지 밖으로 탈출시켜 주었다. 자신들의 유지를 이어주길 바라면서. 그 후 천신만고 끝에 일본으로 돌
아온 무라카미는 신분을 숨긴 채 프리 르포라이터라는 직함을 내세우면서 크로노스의 일본 내 동향을 살피
고 유니트의 소재를 캐기 시작했다. 규오는 언젠가 반드시 일본으로 올 것이므로 어떻게 해서든 규오가 유
니트를 손에 넣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가능하면 유니트를 손에 넣어 무라카
미 자신이 그것을 식장해서 그 힘으로 크로노스에 맞서 싸울 것. 이것이 바로 무라카미에게 주어진 임무였
다. 그러나 여기서 예상치 못한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미나카미 산의 유적기지에서 도쿄에 있는 일본지
부였던 맥스제약으로 유니트가 이송되던 도중 일단의 손종실험체 들에게 유니트가 도난 당한 것이다.

"그 후의 일은 자네들이 더 잘 알고 있겠지."

무라카미는 케이와 아키토를 번갈아 보았다. 무라카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그 두사람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유니트의 행방을 찾아내었을 때는 이미 세 개의 유니트 전부가 해방된 뒤였고, 그 중에 한 개는 영원
히 사라진 뒤였어...."

영원히 사라진 유니트, 그것은 케이가 쓰러트린 가이버 II, 리스카의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한동안 일행은
말이 없었다. 특히나 케이는 왠지 모르게 죄책감 비슷한 것이 들었다. 자기보다는 무라카미가 유니트를 가
지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됬을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때 지로가 먼저 입을 열었다.

"뭐...잘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 유니트란 걸 규오는 이제 못 가지게 된 거잖아요? 그렇다면 처음에 의도
하셨던 목적은 달성된 거 같은데요."

"그렇기는 합니다만....."

무라카미는 지로의 말에 금방 긍정의 뜻을 비추지는 않았다. 확실히 규오의 손에 유니트가 떨어지는 것을
막는다는 최우선 과제는 달성되었다. 하지만 규오는 어째서인지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컨트롤 메탈을 손에
넣는다고 해도 메탈에는 이미 먼저 식장 했던 사람의 모든 유전정보가 기록돼 있기 때문에 규오 자신이 식
장을 할 수는 없다. 그런데 어째서 그렇게 메탈에 집착하는 걸까. 혹시 무슨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닐
까....




******************************************




그 때 케이는 베르단디의 행동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다. 아까부터 베르단디가 자꾸 뒤쪽 숲을 돌
아보는 것이었다. 의아해진 케이가 물었다.

"왜 그래? 베르단디."

"네? 저기.... 왠지 핫세씨가 걱정이 되어서..."

그러고 보니 잠깐 볼일 보러 간다고 해놓고는 이상하리 만치 시간이 오래 걸리고 있었다. 핫세 얘기가 나오
자 다들 핫세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핫세는 영문도 모르고 이런 큰 일에 말려들었고 때문에
정신적으로 많은 충격을 받았을 거라는 건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다. 케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제가 가서 찾아올께요."

"아, 저도 같이가요. 케이씨."

케이가 일어서자 베르단디도 따라서 일어섰다. 그러자 스쿨드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나도 갈....읍!!"

그 때 갑자기 울드가 스쿨드의 입을 틀어막고 못 움직이게 꽉 끌어안았다. 울드의 갑작스러운 기습(?)에 스
쿨드는 당연히 바둥거렸고 그런 두 사람을 베르단디는 의아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물론 케이는 저 두사람이
왜 저러는지 단번에 눈치챘고 말이다. 케이는 그저 한숨만 내쉬었다. 울드는 베르단디에게 아무것도 아니라
며 얼버무렸고 베르단디는 의하해 하면서도 케이와 같이 숲속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멀리 갔다고 생각됬
을때 울드는 스쿨드를 놔주었다. 자유로워진 스쿨드는 곧장 울드에게 바락바락 소리를 질렀다.

"왜 잡아!! 나도 같이 가겠다는데!"

"넌 어떻게 낄데 안낄데 구분도 못하냐. 저 두사람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지게 해 주라고."

울드의 말에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좀 어이가 없었다. 핫세를 찾으러 간 거지 데이트하러 간 건 아니지 않
은가. 그러나 울드의 말에 스쿨드는 이제 지나치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아악!! 케이가 언니에게 무슨 짓(?)을 하면 어떡해!!"

"난 오히려 했으면 좋겠는데. 케이는 좀 더 적극적으로 변해야 한다고."

그 말에 현장에 있던 모두가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스쿨드만은 여전히 씩씩거렸지만.

"잠깐! 모두들 조용히!!"

그 때 갑자기 린드가 벌떡 일어서더니 모두에게 외쳤다. 린드의 행동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왜 그러냐고
묻자 린드는 대답대신 배틀액스를 꺼내들더니 숲쪽으로 돌아섰다. 누군가가 여기로 오는 것이 틀림없었다.
핫세나 베르단디들일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린드가 저런 반응을 보일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었다.

"놈이다...."

그 때 무라카미 역시 무언가를 느낀 듯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그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모두가 깜짝 놀랐다. 무라카미가 저런 반응을 보일 정도로 엄청난 놈이 오고 있다는 말인가. 모두들 그 자
리에서 벌떡 일어서서는 린드가 노려보고 있는 쪽으로 돌아섰다. 이윽고 숲속에서 누군가가 걸어나왔다. 그
런데 그 사람을 본 모두가 경악하였다.

"안녕들 하신가, 여러분."

"규...규오!!"

놀랍게도 숲에서 나온 건 규오였다. 평소에 즐겨입던 양복차림이 아니라 파란색 타이즈에 황금빛 흉갑을 갖
춘 전투복 차림이었다. 규오가 모두를 돌아보다가 무라카미에게 시선을 맞췄다.

"네 놈이냐, 무라카미라는 실험체 녀석이."

"그래....만나고 싶었다, 규오!"

무라카미는 규오를 직접 대면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의 강렬한 위압감에 무라카미는 온 몸이 떨렸
다. 역시나 진정한 조아로드라 할 수 있었다. 변신을 하지도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이런 엄청난 기운을 발산
하고 있을 줄이야. 규오는 무라카미를 가소롭다는 듯이 바라보며 말했다.

"실험체 주제에 감히 이 리헐트 규오에게 맞서다니..."

"......"

"바보녀석! 네 놈의 어리석음을 깨닫게 해주마!!"

-키이잉!!

그 순간 규오의 이마에서 강렬한 섬광이 뿜어져나왔다. 그 엄청난 빛에 모두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그리
고 그와 동시에 규오의 몸이 변하기 시작했다. 덩치가 폭발적으로 커지고 얼굴의 형태도 변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빛이 사그라들자 무라카미들은 앞을 볼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괴물같은 모습으로 변신을
완료한 규오를 보고 그 자리에서 경악하였다. 조아로드의 전투 형태, 규오가 드디어 자신의 진정한 힘을 드
러낸 것이다. 규오가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럼 보여주마, 진정한 조아로드의 힘을!!"

그 순간 아키토가 앞으로 달려나왔다. 그리고 힘있게 외쳤다.

"식장!!"

-퍼엉!

가이버로 변신을 완료한 아키토가 규오의 앞에 섰다.

"규오! 설마 네 녀석이 제발로 여기까지 올 줄이야.... 유적기지까지 가는 수고를 덜었군."

아키토의 호기있는 모습을 본 규오는 오히려 피식 웃기만 하였다. 이렇게 자신의 힘을 드러낸 상황에서는
가이버라 해도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다만 지금은 저 녀석보다는 저 무라카미라는 실험체를 말살하
는게 더 급했다. 규오는 자기가 데리고 온 두 남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서둘지 마라, 아키토. 네 녀석의 상대는 이 녀석들이니까."

-투둑! 찌이익!

"쿠아아악!!"

규오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두 남자가 일제히 조아노이드로 변신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아키토는
경악하였다. 바로 엔자임 II 였던 것이다! 지금 규오 하나만도 쉽지 않은데 저 골치 아픈 녀석들까지 상대를
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아키토는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규오는 여유 있게 웃으며 말했다.

"이 녀석들이 네 몸을 산산조각 낸 다음에 내가 직접 네 놈의 이마에서 컨트롤 메탈을 파내주마."

"착각하지 마라! 규오!!'

그 때 무라카미가 큰 소리로 외치며 앞으로 나섰다. 무라카미의 이마 역시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배틀
모드로 변신하려는 것이었다.

"나 역시 이대로 당할 생각은 없다...."

-화아악!!

그리고 한순간에 무라카미는 배틀 모드로의 변신을 완료하였다. 그러나 완성형이라 할 수 있는 규오와 그
규오를 위한 실험체였던 무라카미는 전투력에 있어서 차이가 너무 컸다. 그 사실은 무라카미 자신도 잘 알
고 있었다. 1:1로 정면에서 싸울경우 이길 가능성 같은 건 없었다. 그러나!

"설령 내 몸이 부서지더라도.....너 만은 반드시 쓰러트린다!!"







조아로드 리헐트 규오, 그의 전투 형태를 본 린드는 단단히 전율하고 있었다. 그 기백만으로도 그녀의 등에
는 식은땀이 날 정도였다. 옆에 있던 울드도 그런 규오의 힘을 느꼈는지 잔뜩 굳은 표정이었다. 하지만 린
드는 긍지 높은 왈큐레, 여기서 등을 보일 수는 없다. 분명 규오는 이제까지 그녀가 전투부로 살아오면서
마주친 적들 가운데 가장 강하다고 할 만 했다. 그렇다고 싸움을 포기할 그녀가 아니었다.

게다가, 승산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울드."

린드는 앞을 응시한 체로 울드를 불렀다. 울드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여전히 린드는 규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가이버 III 에게 가세해. 그리고 그가 엔자임들을 물리칠 수 있도록 도와줘. 가능한 한 빨리."

"알았어!"

"법술이 안 통하는 저놈들을 상대로 가장 강력한 공격을 할 수 있는 것은 메가 스매셔를 가진 가이버 III
뿐이야. 그가 가세하지 않으면 저 놈을 이길 수 없어."

린드는 규오의 의도를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었다. 1대1이라면 규오 자신의 힘만으로도 아마 가이버 III 를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규오 입장에서도 가이버의 메가 스매셔 만큼은 특히 조심해야 할 무기일
것이다. 엔자임들은 바로 그 가이버를 봉쇄하기 위해 데리고 나온 것일 지도 몰랐다. 엔자임 II 들이 가이버
III 를 쓰러트리면 좋겠지만 아니라 할 지라도 그 과정에서 메가 스매셔를 소모하게 하거나 지치게 만든다
면 자신이 상대하기가 한층 수월해 지니까. 게다가 어째서인지 지금의 규오는 가이버 보다는 무라카미가 목
표인 듯 해 보였다. 무라카미 제거에 전념하기 위해서라도 가이버 III 를 묶어둘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린드는 배틀액스를 치켜든 채로 앞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무라카미의 바로 옆에 섰다. 무라카미가 깜짝
놀라며 말했다.

"린드 님! 여기는 저에게 맡기고 당신은 일행들을...."

그러나 린드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건 당신이 더 잘 알텐데."

무라카미는 더 말릴 수가 없었다. 확실히 자기 혼자서는 규오를 이길 수가 없었다. 아니, 이기는 건 고사하
고 버티는 것도 가능한지 의문이었다. 린드가 도와준다면 그래도 좀 더 잘싸울수 있을 것이다. 규오는 그런
그들을 비웃었다.

"흥! 신족 나부랭이가 감히 이 내게 덤비다니. 뭐 좋다...."

규오의 엄청난 기세에 린드와 무라카미는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부터 엄청난 싸움이 시작될 것이었다. 그것
도 아주 절망적인 전투가.....

"둘다 지옥으로 보내주마!!"




******************************************




"핫세!!"

"핫세씨! 어디 계세요!!"

케이와 베르단디는 핫세를 찾아 숲속을 해매고 있었다. 아까부터 계속 큰 소리로 외쳐도 핫세는 대답이 없
었다. 이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리 간 건지, 아니면 들리면서도 대답을 할 수가 없는 건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케이가 난감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큰일이네...이대로 가다가 크로노스에게 발각이라도 되면..."

이 지역은 크로노스의 세력권이기 때문에 경솔하게 혼자서 돌아다니는 건 너무 위험했다. 베르단디는 그 때
자기가 같이 따라갔어야 했다고 후회하고 있었다.

"아, 케이씨. 제가 한번 다른 분들께 물어볼께요."

"다른분? 누가 있어?"

케이는 의아해 했지만 베르단디는 대답 대신 근처에 있던 큰 나무로 걸어갔다. 그리고 위를 쳐다보며 말했
다.

"저, 실례합니다. 혹시 이렇게 생긴 분 못 보셨나요?"

베르단디는 법술을 구사해서는 손에 핫세의 얼굴 모양을 투영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핫세의 인상착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케이가 고개를 위로 들어보니 나무 위에 다람쥐 한 마리가 있었다. 과연 베르단디, '
다른 분들' 이란 바로 이 숲의 동물들을 얘기하는 거였다. 그런데 아무래도 다람쥐가 핫세를 본 것 같았다.
베르단디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못 봤다고 한다면 진작에 돌아섰을 것이다. 잠시 후 베
르단디가 다람쥐에게 인사를 하고는 다시 케이에게 돌아왔다.

"케이씨! 다람쥐씨가 핫세씨가 저쪽으로 가셨대요."

베르단디는 웃으면서 한 방향을 가리켰다. 그러나 케이는 그쪽을 안 보고 베르단디만 보고 있었다. 이전에
도 본 모습이지만 그래도 왠지 동물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는 베르단디가 너무나도 신비로워 보였기 때
문이었다. 단지 '여신이니까'란 한마디로는 설명하기 어렵다고나 할까?

"왜 그러세요?"

"응? 아..아무 것도 아냐. 아하하..."

케이는 얼굴이 빨개진 체로 황급히 얼버무렸다.




베르단디가 가끔씩 근처에 있는 동물들에게 - 그 중에는 뱀도 있었다. 대개의 여자라면 그냥 도망갔을지도
모르는 뱀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는 모습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물론 베르단디는 모든걸 사랑한다고 해
도 과언이 아니니까 따지고 보면 신기할 것도 없지만 - 물어가며 케이를 안내하였다. 이윽고 두 사람은 마
침내 나무 밑에서 웅크리고 앉아있는 핫세를 찾아낼 수 있었다. 베르단디와 케이는 핫세가 무사한 것을 알
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핫세씨. 다행이야, 무사하셨군요."

"걱정했었어. 자, 그만 돌아가자."

그런데 케이와 베르단디가 말을 걸어도 핫세는 그저 웅크리고만 있었다. 베르단디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
으며 핫세의 어깨에 손을 대었다. 그 때 갑자기 핫세가 큰 소리를 지르며 베르단디의 손을 뿌리쳤다.

"만지지 마요!"

"하...핫세씨?"

고개를 든 핫세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었다. 여기서 계속해서 울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케이와 베르단디
가 뭐라 말하려는 순간 핫세가 발악하듯 소리쳤다.

"날 내버려둬요! 이제 더 이상 아무 것도 듣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핫세..."

핫세는 케이를 원망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소리쳤다. 핫세가 왜 이러는지 알지 못하는 두 사람은 당황해
하면서 핫세의 말을 그저 듣고만 있었다.

"모두 다 이상해요! 케이 선배랑 마키시마 선배는 무슨 괴물처럼 변하고, 베르단디 선배는 아예 인간이 아
니라 신이라 하고, 영문도 모른 체 괴물들에게 납치 당하질 않나, 이젠....이젠! 인간이 외계인이 만든 무기라
니요!!"

"...."

"이제 싫어요....돌아가고 싶어요...원래의 생활로, 집으로, 가족들한테로.....으흐흑!!"

거기까지 말한 핫세는 다시 고개를 무릎사이에 파묻고는 펑펑 울기 시작했다. 하긴 무리도 아니었다. 단지
조아노이드를 한 번 봤다는 이유만으로 핫세는 영문도 모른 체 이런 거대한 사건에 말려들고 만 것이다. 지
금까지 겪은 일만으로도 사실 심약한 데가 있는 핫세에게는 너무나도 견디기 힘든 일이 틀림없었다. 가만히
핫세를 지켜보던 베르단디는 주저앉아 있는 핫세를 조용히 끌어안았다. 이번에는 핫세도 뿌리치려 들지 않
았다.

"인간은...결코 무기가 아니에요. 설령 그 옛날 강림자들이 그런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해도 인간은 절대로
무기가 아니에요."

"....."

"서로를 사랑하고, 위하며, 상대를 위해 울어줄 수 있는 그런 따뜻한 마음을 가진 게 인간이에요. 만약 진짜
로 순수한 무기라 한다면 절대로 그럴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무기란 상대방을 해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
이니까요....."

베르단디는 인간계에서 케이와 함께 4년을 지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일을 겪었다. 기쁜 일, 슬
픈 일 그리고 인간들의 아름다운 모습도 봤지만 반대로 추악한 모습도 보았었다. 그 하나하나의 모든 일들
이 베르단디에게는 소중한 추억이었다. 그리고 케이와의 사랑.... 베르단디는 확실히 느꼈다. 인간은 정말로
아름다운 존재라는것을.

무라카미의 말은 사실일 것이다. 그 옛날 신들의 적이었다는 거인족, 즉 현재 크로노스와 무라카미가 '강림
자'라고 부르는 존재가 자신들이 원하는 궁극의 무기를 만들기 위해 그 조제 베이스로 만든 것이 인간이라
는 것. 그래서 그게 어떻단 말인가. 현재의 인간들은 그런 강림자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미래를 위해 힘차
게 살아가고 있는데 말이다. 베르단디는 믿고 있었다. 처음 탄생 당시는 어땠을지 모르나 지금의 인간은 절
대로 무기같은게 아니라는 것을.

"핫세...."

베르단디의 품에 안겨있는 핫세에게 케이가 말했다. 케이는 핫세에게 만큼은 반드시 이 말을 꼭 해줘야 겠
다고 생각하였다.

"미안해. 나 때문에 네가 이런 험한 일에 말려들게 되어서...."

"...."

"나도 당장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내가 어떻게든 해볼께. 반드시..."

"케이 선배, 베르단디 선배....흑...."

핫세는 베르단디 품에 안긴 채로 흐느꼈다. 베르단디는 그런 핫세를 어루만지며 위로하였다. 




******************************************




"쿠아악!!"

"윽!"

엔자임 II 의 맹렬한 공격을 아키토는 간신히 피했다. 분해효소 때문에 근접전을 할 수가 없는 아키토로서
는 어떻게 해서든 거리를 벌려서 원거리 무기로 승부를 봐야 했지만 엔자임 II 들은 아키토를 앞뒤로 포위
해서는 빠져나갈 틈을 주질 않았다. 아키토의 몸에는 이미 여기저기 엔자임의 손톱에 긁힌 상처가 늘어만
갔다.

"카악!"

-푸슉!

"웃!!"

엔자임 II 의 공격을 피했다고 생각되는 찰나에 엔자임이 입으로 분해효소를 내뱉었다. 간발의 차이로 분해
효소를 피하기는 했지만 아키토로서는 미칠 지경이었다. 메가 스매셔 한방이면 한꺼번에 정리해 버릴 수 있
지만 잘 훈련된 저 두녀석의 합동 공격은 그럴 틈을 주질 않았다.

"화염 소환!!"

-푸화악!!

"쿠악!"

울드는 이번에는 화염 공격을 엔자임 II 에게 퍼부었다. 전격 공격으로는 큰 데미지를 주지 못하니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염으로 아주 태워버릴 생각을 해 본 것이다. 그러나 엔자임은 여전히 움직이고 있었다. 게다
가 한마리에게만 불을 붙이면 옆에 있던 놈이 분해효소를 내뿜어서는 동료의 몸에 붙은 불을 꺼주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두마리 다 한꺼번에 불을 붙이려고 해도 아키토에게 바짝 붙어서는 떨어지려 하지 않으니
함부로 강력한 기술을 걸 수도 없었다. 자칫 잘못하면 아키토까지 같이 말려들 상황이었다.

"으윽!! 역시나 안 통하네! 뭐 저런 놈들이 다 있담!!"

하다못해 엔자임들이 자기에게 달려들기라도 하면 그나마 아키토가 공격할 찬스가 생기겠지만 엔자임 II 들
은 울드의 공격은 그냥 얻어맞으면서 집요하게 아키토만을 노리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접근전 능력이 없는
울드로서는 속수무책이었다.







-카아앙!!

규오의 주먹과 맞부딫힌 린드의 배틀액스가 산산조각이 나면서 흩어졌다. 단 한번을 못 견디고 배틀액스가
깨질 정도였으니 규오의 공격력은 그야말로 엄청났다. 린드가 황급히 규오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푸하하! 네놈들의 힘은 겨우 이 정도냐!"

규오가 큰 소리로 웃으면서 린드와 무라카미를 비웃었다. 린드와 무라카미 쪽도 상황이 좋지 못했다. 아니,
울드쪽에 비하면 이쪽은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 규오의 공격력이 너무 강한데다가 이쪽에서 어떤 공격을
가해도 조아로드의 특기인 바리어로 막아버리니 대책이 없었다. 무라카미는 발악하듯 손에 에너지를 집중시
킨 후 힘차게 내려치면서 절단파를 발사하였다.

"하압!"

-슈와앙!

그러나 이번 공격역시 규오의 바리어 앞에 허무하게 막히고 말았다. 규오는 그런 무라카미를 비웃으며 주먹
을 꽉 쥐었다. 그러자 규오의 주먹에 에너지가 집중되기 시작했다.

"그럼 이번엔 내가 한번 공격해 볼까."

-팡! 파팡!!

규오가 무라카미와 린드에게 손을 뻗고는 쥐고 있던 주먹을 확 펼쳤다. 그러자 그의 손에 맻혀있던 에너지
들이 마치 산탄처럼 사방으로 퍼졌다. 린드는 간신히 그 공격들을 피할 수 있었지만 무라카미는 미처 피하
질 못했다. 규오가 쏜 에너지탄들이 순식간의 그의 몸 이곳저곳을 관통해 들어갔다.

-퍼퍼퍽!!

"허억!!"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며 무라카미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어떠냐, 그래비티 불렛(Gravity Bullet)의 맛이. 이건 겨우 20% 정도의 출력이라고."

차원이 다른 규오의 전투력에 린드는 전율하고 있었다. 이것이 크로노스의 최고 간부회 12신장의 실력이란
말인가. 이전에 엔젤이터 사건당시 대마계장 힐드의 분신체와 잠시 싸웠을 때도 절망같은건 느끼지 않았던
린드였다. 그러나 지금의 규오는 도저히 어찌해 볼 수 없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여기서 도망칠
수는 없었다. 린드는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올렸다. 이윽고 그녀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천계와 마계에 걸쳐 널리 소문난 진정한 힘을 발휘할 때 나타난다는 '황금의 눈동자'였다.

"간다, 규오."

"후후후....이제 좀 해볼 생각이 드셨나보군."

규오도 아까보다 린드의 기운이 훨씬 올라갔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규오는 긴장하기는커녕 오히
려 재밌다는 듯이 웃기만 하였다. 린드가 자세를 잔뜩 낮췄다.

-슈욱

그 순간 린드가 갑자기 사라졌다. 그 직후 규오의 얼굴을 뭔가가 강하게 후려치고 지나갔다.

-퍼억!

"큭!"

깜짝놀란 규오는 황급히 뒤돌아 섰다. 그러자 어느새 자신의 뒤편에 서있는 린드의 모습이 보였다. 규오는
크게 놀랐다. 자기 눈에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스피드였다. 바리어를 펼칠 틈도 없었다. 얼굴을 만져
보니 약간의 피가 묻어 나왔다.

"호오...정말로 놀라운 스피드군. 내 눈에 보이지 않다니."

그러나 규오는 별로 흔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여유 있게 웃어 보이기까지 할 정도였다.

"....."

린드의 얼굴은 여전히 굳은 채였다. 자신의 모든 힘을 끌어올렸지만 역시나 역부족이었다. 분명히 스피드만
으로는 규오를 능가했지만 문제는 그것만으로는 싸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싸움은 스피드만 가지고 하는 게
아니다. 상대방에게 결정타를 가할 힘이 있어야 하는데 규오의 맷집이나 체력 등은 린드를 훨씬 초월하고
있었다. 이렇게 스피드로 압도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계속 써먹다가는 크게 한방 먹고 만다.

린드가 다시 자세를 낮췄다. 린드 역시 그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이번 공격으로 규
오에게 치명타를 가해야 했다. 규오는 세 번째까지 자신의 공격을 허용할 정도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린드는 이를 악물었다.

-슈욱

다시 한번 린드가 규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 순간!

-퍼억!!

"커억!"

"린드님!"

크게 놀란 무라카미가 소리쳤다. 린드의 손 날이 규오의 목에 닿기 직전에서 멈춰있었다. 그리고 린드의 복
부에는 규오의 주먹이 꽃혀있었다. 규오의 강펀치를 맞은 린드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리고 규오의
웃음소리가 그녀의 귀에 들려왔다.

"후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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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밥님의 댓글

♡카렌밥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요즘 코멘트가 안올라오네요.

에구... 좋은 글이 묻혀지는 거는 아닐런지 생각이 들어 아쉽습니다.

그래도 저는 지켜보고 있당께요..


지켜보고 있어용~~ @_@
 ㅡ,ㅡ;; 뭐하자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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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버님의 댓글

가이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좋은 글은 아니죠. 제 글이요...ㅜㅅㅜ 너무 길고 또 가이버라는 매니악한 작품이 주가 되다보니....or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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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더경님의 댓글

베이더경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제발 보고 나면 코멘들을 올려주시오 독자들!!!! [안 그러면 우리 매니아 작가들이 설 자리가 없어져요!!!]

크크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질문 몇가지 하고 넘어갑니다!!

우선 첫번째로..식장을 쓰기는 힘들 것 같은데...혹시 마들과 천이 생각해놓은 어떤 다른 대응병기가 있는지요?
[전에 세레스틴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갈겼던(?) 최후의 무기 궁구닐같은..물론 광학위성병기는 아니겠지만..]


두번쨰로 글을 보니 인류는 만들어진 무기라고 했습니다. 강림자들에 의해서...그리고 어떤 거대한 전쟁을 대비하기
위해서 인간들을 만들었다고 하셨는데요....그 거대한 전쟁이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혹시 서로간의 내전? 아니면 우주전쟁?? 그것도 아니면...크로노스들[강림자들]보다 더 무서운 다른 외계종족이라도?
아니면 천하고 마를 가리킨 단어??


볼수록 의문심과, 열혈을 불태우는 강식장갑 가이버!!! [정말 원작 읽어보고 싶습니다만...없어요!!!!]

열심히 건필해주시길..[저도 곧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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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버님의 댓글

가이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매번 코멘 주시는 베이더경께 경의를 표하며...^^;;;


1. 천계의 현재 사정에 대한건 앞으로 18화에 언급할 예정입니다.^^ 일단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천계 역시 사태의 심각성은 인식하고 있다는 거지요. 물론 실제 행동을 하느냐 마느냐하고는 별개의 문제지만....(먼산)

2. 가이버 원작에서는 강림자들이 누구랑 싸우기 위해 그런 실험을 했는지는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습니다. 본 팬픽에에서는 짐작하셨겠지만 현재의 천계와 마계가 강림자들의 상대입니다.

3. 그리고 크로노스는 강림자들의 후손같은게 아닙니다. 제 글 솜씨가 부족하다보니 헷갈리시는 것 같은데...orz 크로노스는 그 옛날 강림자들이 남겨놓고간 유적을 연구해서 거기서 얻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조아노이드를 만들었습니다. 조직을 창시한 자는 강림자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만(스포일러 주의....-ㅅ-) 그 이외에 십이신장 멤버들은 한두명 제외하고는 강림자들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 조직을 창시한 놈은 조만간 등장 예정이군요. (먼산) 그리고 그 조직을 창시한 자도 출신지는 이곳, 지구입니다.


...그리고 원작 만화는 이제 못구해요. 학산 문화사가 재판을 안하니.... 저도 가지고 있던거 다 잃어버렸어요....엉엉엉....ㅠ.ㅠ 헌책방 뒤지거나 아니면 애니를 보시는 수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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