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G '아앗 이건 나만의 이야기!' [불청객이 내려와 쇼핑을 내리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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짹째짹~짹짹짹
부릉~부앙 끼긱!
고요한 아침의 정적을 깨는 소음.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모리사토 케이이치네 집의 평온함을 부숴버리는 두 번째 불청객의 등장이었다. 다만 이 불청객은 과거에도 여러 번 그들에게 신세를 진 적이 있었던 여성이었기에 특별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지저귀던 참새들도 깜짝 놀라게 만들어버리는 그녀는 이곳 관동에서 흔히들 퀸이라 불리는 바이크의 귀재이자, 케이이치의 동생이기도 했다.
“여~케이쨩 나 왔어!”
“또 왔냐?”
한두 번 들른 절이 아니기에 익숙하게 부엌과 케이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공간을 찾아오는 메구미. 그녀의 방문을 달갑게 여기지는 않지만 예의상 동생을 맞이하는 케이. 이른 주말 아침에는 3명의 여신들과 1명의 마족이 곤히 잠들어 있었기에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하는 베르단디와 어제 밤 고장 난 바이크를 수리하기 위해 움직이는 케이. 이렇게 두 사람만이 오붓하게 차를 즐기려는 찰나였던 것이다.
“에이에이~뭘 그렇게 싫은 표정을 짓고 있노? 어젯밤에 모처럼 좋은 기회도 만들어 준 사람한테 말이야~!”
“어제 일은 정말 고맙기는 하지만 이렇게 꼭 아침부터 찾아와서 ‘베르단디 밥 줘’할 필요가 있는 거냐?”
끄덕끄덕
오빠의 축 늘어진 어깨를 툭툭 치며 기세를 더 죽이는 메구미. 그녀의 명량하고 쾌활하다 못해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을 보자 한숨을 푹푹 내쉬며 얼른 사라지라는 듯이 말하는 케이이치. 어젯밤의 유성우는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이렇게 허구한 날 찾아오면...
“어머 메구미씨! 일찍 찾아오셨네요?”
“야~역시 베르쨩! 아침식사 준비를 하려고 오늘도 ‘열심히’네? 못된 케이이치(?)는 하루 빨리 이 귀여운 동생양이 다시는 오지 못할 길을 가라고 재촉하는데 말이야~”
“어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으쓱하며 본인을 황당하게 만드는 농담을 거는 메구미. 그녀의 농담에서 ‘다시는 오지 못할 길’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베르단디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만 할뿐이고 케이이치가 웃기지도 않는 장난을 꺼내는 메구미를 제지했다.
드르륵.
“아함? 왜 이리 소란스러워.”
부스스한 은발에, 잠에서 덜 깬 미녀의 등장. 어제 그렇게 많이도 술을 먹고 들어왔는데도 해장국은 필요도 없는 표정의 울드의 등장이었다. 복도에서 들려오는 불청객과 케이들의 언성이 높았는지 조금 불만이라는 얼굴로 케이를 잠깐 노려본다. 케이가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미안하다 빌듯이 손을 싹싹 빈다. 울드는 케이를 쳐다보다가 메구미의 장난기 어린 얼굴에 피식 웃으며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뭐야~집 분위기가 와 이리 뒤숭숭하누?”
관동에서 멀리 떨어진 한 지역의 사투리를 따라하며 케이에게 묻는 메구미. 잠시 후 그녀의 ‘질문의 답’을 차마 설명하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는 케이와 베르단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사투리처럼 메구미의 질문에 정답이 이쪽으로 걸어나왔다.
“잘 잤습니까?”
“묠니르 군도 잘 잤어?”
“......예”
절대 풀릴 것 같지 않은 특유의 무뚝뚝함.
“케이쨩! 저 사람은 누구...?”
이번에도 장난기 가득한 메구미의 질문. 하지만 그녀도 케이처럼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묠니르 혼자에게만 불어오는 특유의 기운에 장난기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케이. 저 사람은 누구냐고?’
그래도 궁금한 것은 못 참는 그녀의 성격상 멈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행여 본인이 들을까 무서워 조용히 물어보는 메구미. 그녀의 귓속말에 하룻밤 만에 묠니르의 무표정에 익숙해진 케이군의 답은.
“손님이다.”
.........마족이라고 설명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노른의 3자매들처럼 신이라고 설명할 수도 없으니 답은 그냥 평범한 인간인 것처럼 속여야 한다. 결국 외국에서 온 베르단디의 친구인 것처럼 장황하게 떠들어대는 남자의 표정에는 난감함이 들어가 있었다. 이 이상한 손님을 집으로 들인데 대한 난감함이...
“손님인 겁니까?
묠니르가 무표정을 풀고, 인형이 아닌 인간인 것처럼 묻는다. 케이 바로 옆에서 친근함을 드러내고 있는 여동생을 보고 말이다.
“안녕~난 모리사토 메구미! 이름을 들으면 알 수 있듯이 난 케이쨩의 동생이란다. 만나서 반가워! 넌 누구?”
척
“.....코드명. 묠니르. 입니다.”
손을 내밀고 용기를 내보는 메구미. 그녀가 다시 쾌활한 표정이 되어 묠니르에게 악수를 청했다. 케이의 온화한 웃음보다는 못하지만 메구미의 행복해 보이는 웃음에 인사만 하고 한시라도 빨리 밖으로 빠져 나가려던 묠니르는 메구미 특유의 웃음에 취해 절로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천천히 위아래로 왔다갔다 움직인다.
“앞으로 잘 지내자. 그런데 이 사람은 몇 살인 거야?”
“메구미!”
벌써부터 앞에 서 있는 적안의 사내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하고 보는 메구미. 그녀의 황당 발언에 케이가 실례라며 제지를 하려 했지만.
“여기 나이로 치면...19살 정도 되었습니다.”
“와~아직 나이도 어리잖아? 외국인 같은데 베르쨩들처럼 일본어 잘 하네?”
“아직 회화도 익숙지 않고..쉽게 언어를 익힐 어떤 ‘특별한 것’이 있어서 문제는 없습니다.”
“번역기라도 가지고 있는 거야? 굉장한데??”
“모두들 아침 식사 드시러 오세요!!”
복도 안을 가득 매워버린 수다 소리가 베르단디의 말소리에 파묻혀 버린다. 메구미가 자신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묠니르에게 묻는다.
“바이크 좋아하니?”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
“아구아구~”
“.....먹어도 되는 것입니까?”
공손히 베르단디의 음식에 진심으로 감사를 하는 케이이치. 케이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공손하게 베르단디에게 감사를 하는 메구미. 인사 없이 곧바로 식탁 위에 놓인 먹음직한 음식들에 공격의 손길을 뻗치는 울드. 모두들 특유의 인사법을 하는데. 유독 묠니르만.
“....먹어도 되는 것입니까?”
“우걱~응?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처음 만져보는 젓가락을 어설프게 집으며 음식들을 가리키며 이리저리 묻는 묠니르. 계속 음식을 음미하던 사람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이상하게 묠니르를 쳐다보았다.
“아니 아프지 않습니다. 제가..먹어도 되는 겁니까?”
“어이~너 천상에 있을 때 뭐든지 물어보고 먹었냐?”
기분 나쁜 마가 내려왔는데도 특별히 케이네 가족들 중 유일하게 불만 없는 ‘3명’중 한명인 울드가 묠니르를 불렀다. 설마 하는 생각에 묻는 것인데 묠니르의 얼굴은 어떻게 알아맞혔냐는 듯이.
끄덕끄덕.
“그렇습니다.”
그리고 묠니르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생각에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뭐야 이 녀석.’
물론 남을 함부로 부르거나, 말하지 않는 케이이치와 베르단디의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탈도 많고, 말도 많고, 소동도 많이 일어난(?) 그들만의 아침식사 시간은 끝났다.
“잘먹었습니다.”
“잘 먹었어.”
“후아암~더 자러 들어 가 볼까나?”
".....잘 먹었어요.“
제일 먼저 인사 없이 밥상을 떠나며 잠을 자러 간다는 울드. 뒤를 이어 케이이치가 자신의 밥그릇을 부엌 싱크대에 가져다 놓고, 남매는 어딘가 똑같은 점이 있다고. 메구미가 뒤를 잇는다. 잠시 머뭇거리던 묠니르도 두 사람을 본받아 울드의 것까지 치운다.
묠니르의 당황한 표정에 미소를 떠올리며 불러 세우는 베르단디.
“고맙습니다. 묠니르군”
“......괜찮습니다. 그리고 나이도 어리니까 그냥 부르시길.”
겉으로는 표현을 안 하거나 아예 못하지만, 굉장히 쑥스러워 하며 뒷머리만 벅벅 긁던 묠니르가 잠시 후 남아있던 반찬그릇과 빈 접시들을 싹 베르단디에게 가져다준다. 그리고서는
“잘 먹었어요.”
행여 누군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바삐 케이와 메구미를 따라 사라지는 마족이었다.
“맛있었나요? 후훗!”
케이보다 더 어수룩한, 아니 마찬가지로 순진한 그를 보고 중얼거리는 베르단디였다.
덜덜덜덜덜.
“케이쨩. 이 부분이 문제 있는 것 아냐? 아까부터 굉장히 심하게 덜덜 떠는데?”
“그럴 리가 없어. 어제 권총...이 아니라 돌이 튄 부분이 여기였는데 만약 다른 곳이 고장 났다면 그쪽이 아니라 이쪽에 문제가 있어서.....”
메구미와 케이군 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바이크의 메카니즘. 일반인들은 물론, 지금은 단종된 옛 독일사의 BMW R75만 타본 경험이 있는 묠니르 또한 마찬가지였다.
“바이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왜 이 부분이죠? 메구미씨의 말이 맞지 않나요? 분명 총에 맞은 부분은 이 곳이었는데...”
총이라니 그 무슨? 메구미가 이상한 눈빛으로 뭔가를 숨기는 두 남자들을 바라보지만 케이가 절대 아니라며 단지 묠니르가 헛말이 튀어나왔을 뿐이라며 억지로 우긴다.
“바이크는 어느 한 부분이 고장 나면 다른 부분도 결구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돼. 그래서.”
이런저런 설명을 늘여놓으며 자신의 바이크의 세부적인 부분들을 하나둘씩 뜯어보고 살피는 케이이치. 기계에 대해서는 수준급의 엑스퍼트(EXPERT)인 정비사 케이의 말은 역시 맞아 떨어졌다. 케이가 손으로 가리킨 부분에는 부품 몇 개가 어지럽게 균형을 잡고, 가까스로 바이크가 움직일 수 있도록 유지시켜 주고 있었다.
“이제 밸런스를 맞춰 주자고..”
의문이 명쾌하게 풀리자 여러 공구와 정비용 기름을 들고 고장 난 부분을 조금씩 수리하는 우리의 주인공 모리사토 케이이치. 옆에서 이런저런 핀잔을 주던 메구미는 케이의 설명대로 의문이 속 시원하게 풀리자 이제 남은 일은 둘이서 알아서 처리하라는 듯이 뒤쪽으로 물러나 그들만의 수리 방법을 감상한다.
“묠니르군. 거기 있는 스패너(나사를 조이는 용구. 맞나요?)좀 가져다줄래?”
“아 네.”
그를 도와 초보적인 지식(정확히는 아무것도 모르는)을 이용해 케이를 돕는 묠니르의 눈에 그가 말한 스패너란 물건이 포착되었다. 그걸 주워 가져다 주려는데.
“이봐 마족! 아직도 여기 있는 거야?!”
“...아 노른의 자매로군요!”
부스스한 흑발의 소녀가 묠니르를 잡아먹을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갈아입었는지 어젯밤에 자기 직전 입었던 잠옷은 온데간데없고 그녀만의 기계 작업을 위해 갈아입는 평상복차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녀에 대해서 뒤늦게 어젯밤 기억을 떠올린 묠니르가 인사를 하며 뒤늦은 자기소개를 한다.
“정보부 SA급. 확인불가능. 한정이나 비한정인 이종족..”
스쿨드가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그녀는 지난밤에 자신이 없는 동안 묠니르가 일으킨 마족 습격 사건에 대해 굉장히 적의와 분노를 가지고(어린 아이 특유의 자존심을 건드린 사건이 주요했지만.)묠니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덕택에 일어난 그녀와의 신경전 아닌 신경전에 휘말려버린 묠니르.
“흥~소속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않네요!”
“아! 그렇습니까?”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묠니르. 정말 맘씨 좋은 것인지 위선인지...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를 쏘아붙이는 스쿨드. 하지만 마는 자신에게 화내는 건지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일반 마들과는 틀리게 어제 일로 고장 난 바이크만 고치는데 시간을 투자했다.
“이봐! 당신!! 남의 로봇들을 고장 냈는데 한다는 소리가 겨우 ‘그렇습니까’야?”
“??”
“최소한 ‘죄송합니다!’....라고 사죄 정도는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어린아이의 끈질김은 참 대단했다. 어제 베르단디와 울드등 기타 모든 이들에게는 로봇을 부순데 대하여 스쿨드를 대신해 사죄를 했는데 오늘 또 사죄를 하란다. 그것도 손님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사죄합니다...라고 말입니까?”
“이봐~일본어가 틀렸잖아! 사죄합니다..가 아니고 ‘미 안 합 니 다 ! ’ ”
“스쿨드. 이제 그만해! 묠니르가 뭣도 모르고 한 일이잖아..”
“알았다구 케이!”
케이가 고치다 말고 그녀를 제지하자. 볼멘소리로 씩씩거리다 알았다며 포기해버리는 스쿨드. 자신만의 작업 공간으로 쾅~문을 닫고 들어가 마저 남은 수리를 한다. 로봇이라든지, 마족이라든지, 비한정이라든지..인간계에서는 잘 쓰지 않는 단어들의 남발에 메구미는 눈만 껌뻑거리며 두 사람을 쳐다볼 뿐이다.
“미안. 스쿨드가 저래 보여도 원래 착한 아이야.”
“알고 있습니다. 모두들 맘씨 좋습니다..”
“하하..그렇긴 하지.”
“아직 어린데...조금은 전투의 기본이 갖춰지지 않았으나 뛰어난 골렘입니다. 기동성은 최고였죠...”
묠니르의 칭찬. 뒤를 이어 들려오는 한 여성의 목소리.
“스쿨드의 발명품은 원래 굉장한 것이 많아! 아마 그 아이는 세계 최고의 기술자가 될 걸?”
자다 말고 부스스한 머리카락, 그리고 잠이 덜 깬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던 울드의 말이었다. 베게를 껴안고, 침을 조금 흘리는 어리벙벙한 글래머의 모습은 두 사람의 할말을 잃게 만들었다. 특히 케이의 생각은...
‘전혀 울드 같지 않아!’
울드의 이런 모습 처음이야! 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 관동 방송국들에서 방영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해보는 케이였다.
“그럼 잘들 고치라고~조금 소란스러우니까 조심하고...”
“아 네...”
쾅~
자는데 불만이 많았는지 들으라는 듯 미닫이문을 세게 밀고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울드.
“.................”
서로의 얼굴만 껌뻑껌뻑 바라보다가 바이크에 대해 뒤늦게 깨달은 두 남자들은.
“마저 고칠까?”
“.....예”
수많은 시간이 흐른 뒤 흡사. 인간과도 같이 움직이는 바이크의 매커니즘을 완전히 고치는데 성공한 두 사람. 정밀한 부품 몇 개 때문에 곤란한 적이 한 둘이 아니었지만 그 때 마다 케이의 친절한 설명과 뛰어난 솜씨 덕분에 위기는 무사히 넘어갔고, 기름칠까지 다 끝내 전보다 더욱 매끈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바이크의 엔진 음이 들려왔다. 마치 주인과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듯 했다.
“뛰어난 솜씨군요. 제가 BMW R-75를 탈 때는 이런 걸 고칠 줄 아는 사람들은 없었는데 말입니다. MG-42 머신 건이라면 또 모를까...”
“MG? 어쨌든 바이크를 타본 적이 있는 거니?”
“몇 번 타봤습니다. 그것 덕택에 잠깐 동안 전세가 역전 된 적이 있거든요..”
이미 반세기 전에 단종된 기억속의 이름을 꺼내는 묠니르. 자신이 알고 있는 바이크의 역사 속에서 그 이름을 되새기며 찾아보지만....
“민간인용이 아니라...잘 모르겠는데.”
“그럴 겁니다. 제가 탄 것이 그 기종이 맞는지 지금도 이름이 가물가물하거든요...”
다시 기억속의 한 때를 회상하며 스스로 고개를 들어 올리는 묠니르. 씁쓸하다는 그의 얼굴은 케이에게 어제 달빛 아래에서 자신의 판단을 기다리는 어린 마족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난 마족. 지금은 감정을 제어하고, 반드시 없애야겠다는 일념 하나 덕택에 지금까지 살아남는데 성공했습니다.”
무표정의 마족이 지금까지 살아오는 방식...
“덕택에 적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고, 남이 친하게 지내자고 해도 언젠가 내가 죽거나 그들이 죽어서 슬퍼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사랑도 마찬가지였죠..”
기관총에 난자되는 이방인의 모습. 정보부에서 자신과 친하게 지내려 말을 걸지만 얼마 못가 무덤덤해지거나 죽어 명부에서 사라진 동료들...
그리고 한때의 누군가가 떠오른다.
“제가 세상물정 모르니까 남아야 된다고요? 흐~ 웃기지도 않는 소리! 노른의 자매들 중 한명이 파괴를 하는 마왕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유그드라실이 박살나서 막지 못한 정보부입니다...”
이런 내가 뭘 어쩌겠다고?!
“마는 마. 울드라는 자도 여신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울드도 넘치는 힘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에게 그런 상황이 옵니다..”
그런데 당신! 모리사토 케이이치라는 당신 인간은!!
“저만의 휴가를 즐길 것입니다! 아니지!! 저만의 감정을 죽이는 방법을 찾을 겁니다!!!”
그러니까 나의 생활에 관여하지 마!
존칭을 버리고 자기 앞에 서 있는 어리석고 순진한 인간에게 속으로 수만가지 욕을 내뱉는 묠니르. 케이는 복잡한 얼굴이 되어 그를 보며 씁쓸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하지만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지.....
“너 혼자만 그런 짐을 지면 안 되는 거란다.”
뭐라고?
“그랬어. 너의 정보대로 한때 울드가 각성..아니 폭주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힘을 쓰지 못한 데 대한 불만 때문에 스스로의 마성을 깨운 적이 있었어. 그래서 나나 베르단디, 스쿨드, 그리고 세상이 위험해질 뻔한 적이 한번 있었지.”
“그렇게 알고 있다면 다행입니다. 그럼 전..”
하지만!
케이가 그의 말을 끊고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그와 눈을 마주친다. 사람 좋은 미소가 넘치는 그의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버린다. 왠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아이가 아버지에게 혼나는 것처럼.
“그 사건은 이제 끝났단다. 물론 울드가 또 언젠가 마성을 깨울지도 몰라..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건 자신이 언젠가 버텨야 할 인생의 고비에 불과해. 그건 너도 마찬가지란다.”
“??”
“그녀도 자신 스스로 그 위기를 벗어났어. 물론 울드도 그런 사실을 많이 두려워하고 우릴 피하기도 했지만...지금의 그녀는 우리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가족이란다.”
그런 겁니까? 울드라는 반신반마...왠지 부럽군요!
“네가 얼마나 오랫동안 수많은 일을 겪고, 너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몰라. 하지만!”
최소한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렴. 다른 이를 위해서만 너의 온 힘을 쏟아서는 안 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해. 상처만 입힐 뿐이지..
“....후훗 말이 너무 길어졌구나. 그런데 판단...이라고 했니?”
“......그렇습니다.”
케이가 곰곰이 생각하며 묠니르가 두려워하는 적월로 변할 가능성이 있는 달을 바라본다. 달은 정말 평온했다. 그리고 달빛에 따라 조용히 움직이는 조그만 무언가. 그 무언가가 케이에게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
‘케이씨 알아서 판단하세요!!’
케이의 입에서 바로 답이 나온다.
“...그렇다면 남을지 떠날지 판단은 네가 알아서 해.”
“아 예...예?”
..............잠깐 동안 풀벌레 소리만 들려온다.
“자신이 즐거워질 수 있는 날에 대한 판단을 남에게 맡긴다는 것은 너무 바보 같지 않니?”
“그런....것인가요?”
“그런 거야”
“.......그럼. 일단은 남겠습니다.”
...............바보라고 말하려다 진짜 바보는 자신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던 그의 입에서 억제된 듯 한 의지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은 남습니다. 하지만 동료도 만날 겁니다.”
“그렇게 하렴!”
........이제 산책은 끝날 시간. 두 사람이 저 멀리 자신들의 절이 있는 곳으로 사라져 간다. 그리고 무언가. 달빛이 조금 더 환해지자 한 존재가 나타난다. 베르단디를 수십 배로 축소한 듯 한 조그만 인형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분신이라고도 하는 술법의 일종이었다.
“케이씨...”
잘 판단 하셨어요!
“그나저나. 남은 방이 문제인데...오늘은 내 방에서 자라!”
집 앞에 도착하자 뒤늦게 페이오스로 인해 남은 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케이가 그에게 제안한다. 그러자 묠니르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반문한다.
“지금은 다른 곳에서 근무하나, 한때는 정보부였습니다. 모든 정보에 나와있지 않은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저는 다른 곳에서 잠을 자겠습니다.”
“엥?”
그게 무슨 소리야? 방이 없다니까! 이렇게 말하려던 케이가...
“전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잠을 특이하게 잡니다.”
“??!! 설마!!”
잠을 특이하게 잔다고? 어떻게...물어보려던 케이의 뇌리속을 스쳐 지나가는 조금 특이한 형태로 자는 전투부 요원 한명!
‘린드?’
“설마가 진짜입니다. 저도 그 여신처럼 앉아서 잠을 청합니다. 다만...”
라이플과 함께 벽에 기대어 잘 뿐이죠.
‘...................’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 알 수 없는 복잡한 케이의 심정은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게끔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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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첫 번째 이야기...그러니까 괴짜 마족들과 엉뚱했던 신족들과, 순박한(?)인간의 동거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담부터는 이들이 펼치는 황당무계한 코믹 스토리를
그려보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따끔한 비평과 칭찬들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부릉~부앙 끼긱!
고요한 아침의 정적을 깨는 소음. 절대 깨지지 않을 것 같은 모리사토 케이이치네 집의 평온함을 부숴버리는 두 번째 불청객의 등장이었다. 다만 이 불청객은 과거에도 여러 번 그들에게 신세를 진 적이 있었던 여성이었기에 특별히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지저귀던 참새들도 깜짝 놀라게 만들어버리는 그녀는 이곳 관동에서 흔히들 퀸이라 불리는 바이크의 귀재이자, 케이이치의 동생이기도 했다.
“여~케이쨩 나 왔어!”
“또 왔냐?”
한두 번 들른 절이 아니기에 익숙하게 부엌과 케이들이 함께 식사를 하는 공간을 찾아오는 메구미. 그녀의 방문을 달갑게 여기지는 않지만 예의상 동생을 맞이하는 케이. 이른 주말 아침에는 3명의 여신들과 1명의 마족이 곤히 잠들어 있었기에 일어나서 아침을 준비하는 베르단디와 어제 밤 고장 난 바이크를 수리하기 위해 움직이는 케이. 이렇게 두 사람만이 오붓하게 차를 즐기려는 찰나였던 것이다.
“에이에이~뭘 그렇게 싫은 표정을 짓고 있노? 어젯밤에 모처럼 좋은 기회도 만들어 준 사람한테 말이야~!”
“어제 일은 정말 고맙기는 하지만 이렇게 꼭 아침부터 찾아와서 ‘베르단디 밥 줘’할 필요가 있는 거냐?”
끄덕끄덕
오빠의 축 늘어진 어깨를 툭툭 치며 기세를 더 죽이는 메구미. 그녀의 명량하고 쾌활하다 못해 장난기가 가득한 얼굴을 보자 한숨을 푹푹 내쉬며 얼른 사라지라는 듯이 말하는 케이이치. 어젯밤의 유성우는 정말 고마운 일이지만...이렇게 허구한 날 찾아오면...
“어머 메구미씨! 일찍 찾아오셨네요?”
“야~역시 베르쨩! 아침식사 준비를 하려고 오늘도 ‘열심히’네? 못된 케이이치(?)는 하루 빨리 이 귀여운 동생양이 다시는 오지 못할 길을 가라고 재촉하는데 말이야~”
“어이! 뭔 소리를 하는 거야?”
고개를 저으며, 어깨를 으쓱하며 본인을 황당하게 만드는 농담을 거는 메구미. 그녀의 농담에서 ‘다시는 오지 못할 길’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베르단디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반문만 할뿐이고 케이이치가 웃기지도 않는 장난을 꺼내는 메구미를 제지했다.
드르륵.
“아함? 왜 이리 소란스러워.”
부스스한 은발에, 잠에서 덜 깬 미녀의 등장. 어제 그렇게 많이도 술을 먹고 들어왔는데도 해장국은 필요도 없는 표정의 울드의 등장이었다. 복도에서 들려오는 불청객과 케이들의 언성이 높았는지 조금 불만이라는 얼굴로 케이를 잠깐 노려본다. 케이가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미안하다 빌듯이 손을 싹싹 빈다. 울드는 케이를 쳐다보다가 메구미의 장난기 어린 얼굴에 피식 웃으며 화장실로 들어가 버렸다.
“뭐야~집 분위기가 와 이리 뒤숭숭하누?”
관동에서 멀리 떨어진 한 지역의 사투리를 따라하며 케이에게 묻는 메구미. 잠시 후 그녀의 ‘질문의 답’을 차마 설명하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는 케이와 베르단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사투리처럼 메구미의 질문에 정답이 이쪽으로 걸어나왔다.
“잘 잤습니까?”
“묠니르 군도 잘 잤어?”
“......예”
절대 풀릴 것 같지 않은 특유의 무뚝뚝함.
“케이쨩! 저 사람은 누구...?”
이번에도 장난기 가득한 메구미의 질문. 하지만 그녀도 케이처럼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묠니르 혼자에게만 불어오는 특유의 기운에 장난기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케이. 저 사람은 누구냐고?’
그래도 궁금한 것은 못 참는 그녀의 성격상 멈춘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행여 본인이 들을까 무서워 조용히 물어보는 메구미. 그녀의 귓속말에 하룻밤 만에 묠니르의 무표정에 익숙해진 케이군의 답은.
“손님이다.”
.........마족이라고 설명하기도 뭐하고, 그렇다고 노른의 3자매들처럼 신이라고 설명할 수도 없으니 답은 그냥 평범한 인간인 것처럼 속여야 한다. 결국 외국에서 온 베르단디의 친구인 것처럼 장황하게 떠들어대는 남자의 표정에는 난감함이 들어가 있었다. 이 이상한 손님을 집으로 들인데 대한 난감함이...
“손님인 겁니까?
묠니르가 무표정을 풀고, 인형이 아닌 인간인 것처럼 묻는다. 케이 바로 옆에서 친근함을 드러내고 있는 여동생을 보고 말이다.
“안녕~난 모리사토 메구미! 이름을 들으면 알 수 있듯이 난 케이쨩의 동생이란다. 만나서 반가워! 넌 누구?”
척
“.....코드명. 묠니르. 입니다.”
손을 내밀고 용기를 내보는 메구미. 그녀가 다시 쾌활한 표정이 되어 묠니르에게 악수를 청했다. 케이의 온화한 웃음보다는 못하지만 메구미의 행복해 보이는 웃음에 인사만 하고 한시라도 빨리 밖으로 빠져 나가려던 묠니르는 메구미 특유의 웃음에 취해 절로 손을 내밀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손을 맞잡고 천천히 위아래로 왔다갔다 움직인다.
“앞으로 잘 지내자. 그런데 이 사람은 몇 살인 거야?”
“메구미!”
벌써부터 앞에 서 있는 적안의 사내의 프라이버시 침해(?)를 하고 보는 메구미. 그녀의 황당 발언에 케이가 실례라며 제지를 하려 했지만.
“여기 나이로 치면...19살 정도 되었습니다.”
“와~아직 나이도 어리잖아? 외국인 같은데 베르쨩들처럼 일본어 잘 하네?”
“아직 회화도 익숙지 않고..쉽게 언어를 익힐 어떤 ‘특별한 것’이 있어서 문제는 없습니다.”
“번역기라도 가지고 있는 거야? 굉장한데??”
“모두들 아침 식사 드시러 오세요!!”
복도 안을 가득 매워버린 수다 소리가 베르단디의 말소리에 파묻혀 버린다. 메구미가 자신 특유의 웃음을 지으며 묠니르에게 묻는다.
“바이크 좋아하니?”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
“아구아구~”
“.....먹어도 되는 것입니까?”
공손히 베르단디의 음식에 진심으로 감사를 하는 케이이치. 케이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공손하게 베르단디에게 감사를 하는 메구미. 인사 없이 곧바로 식탁 위에 놓인 먹음직한 음식들에 공격의 손길을 뻗치는 울드. 모두들 특유의 인사법을 하는데. 유독 묠니르만.
“....먹어도 되는 것입니까?”
“우걱~응?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처음 만져보는 젓가락을 어설프게 집으며 음식들을 가리키며 이리저리 묻는 묠니르. 계속 음식을 음미하던 사람들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이상하게 묠니르를 쳐다보았다.
“아니 아프지 않습니다. 제가..먹어도 되는 겁니까?”
“어이~너 천상에 있을 때 뭐든지 물어보고 먹었냐?”
기분 나쁜 마가 내려왔는데도 특별히 케이네 가족들 중 유일하게 불만 없는 ‘3명’중 한명인 울드가 묠니르를 불렀다. 설마 하는 생각에 묻는 것인데 묠니르의 얼굴은 어떻게 알아맞혔냐는 듯이.
끄덕끄덕.
“그렇습니다.”
그리고 묠니르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의 생각에 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뭐야 이 녀석.’
물론 남을 함부로 부르거나, 말하지 않는 케이이치와 베르단디의 표현은 조금 다르지만.
어쨌든 탈도 많고, 말도 많고, 소동도 많이 일어난(?) 그들만의 아침식사 시간은 끝났다.
“잘먹었습니다.”
“잘 먹었어.”
“후아암~더 자러 들어 가 볼까나?”
".....잘 먹었어요.“
제일 먼저 인사 없이 밥상을 떠나며 잠을 자러 간다는 울드. 뒤를 이어 케이이치가 자신의 밥그릇을 부엌 싱크대에 가져다 놓고, 남매는 어딘가 똑같은 점이 있다고. 메구미가 뒤를 잇는다. 잠시 머뭇거리던 묠니르도 두 사람을 본받아 울드의 것까지 치운다.
묠니르의 당황한 표정에 미소를 떠올리며 불러 세우는 베르단디.
“고맙습니다. 묠니르군”
“......괜찮습니다. 그리고 나이도 어리니까 그냥 부르시길.”
겉으로는 표현을 안 하거나 아예 못하지만, 굉장히 쑥스러워 하며 뒷머리만 벅벅 긁던 묠니르가 잠시 후 남아있던 반찬그릇과 빈 접시들을 싹 베르단디에게 가져다준다. 그리고서는
“잘 먹었어요.”
행여 누군가 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바삐 케이와 메구미를 따라 사라지는 마족이었다.
“맛있었나요? 후훗!”
케이보다 더 어수룩한, 아니 마찬가지로 순진한 그를 보고 중얼거리는 베르단디였다.
덜덜덜덜덜.
“케이쨩. 이 부분이 문제 있는 것 아냐? 아까부터 굉장히 심하게 덜덜 떠는데?”
“그럴 리가 없어. 어제 권총...이 아니라 돌이 튄 부분이 여기였는데 만약 다른 곳이 고장 났다면 그쪽이 아니라 이쪽에 문제가 있어서.....”
메구미와 케이군 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바이크의 메카니즘. 일반인들은 물론, 지금은 단종된 옛 독일사의 BMW R75만 타본 경험이 있는 묠니르 또한 마찬가지였다.
“바이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왜 이 부분이죠? 메구미씨의 말이 맞지 않나요? 분명 총에 맞은 부분은 이 곳이었는데...”
총이라니 그 무슨? 메구미가 이상한 눈빛으로 뭔가를 숨기는 두 남자들을 바라보지만 케이가 절대 아니라며 단지 묠니르가 헛말이 튀어나왔을 뿐이라며 억지로 우긴다.
“바이크는 어느 한 부분이 고장 나면 다른 부분도 결구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돼. 그래서.”
이런저런 설명을 늘여놓으며 자신의 바이크의 세부적인 부분들을 하나둘씩 뜯어보고 살피는 케이이치. 기계에 대해서는 수준급의 엑스퍼트(EXPERT)인 정비사 케이의 말은 역시 맞아 떨어졌다. 케이가 손으로 가리킨 부분에는 부품 몇 개가 어지럽게 균형을 잡고, 가까스로 바이크가 움직일 수 있도록 유지시켜 주고 있었다.
“이제 밸런스를 맞춰 주자고..”
의문이 명쾌하게 풀리자 여러 공구와 정비용 기름을 들고 고장 난 부분을 조금씩 수리하는 우리의 주인공 모리사토 케이이치. 옆에서 이런저런 핀잔을 주던 메구미는 케이의 설명대로 의문이 속 시원하게 풀리자 이제 남은 일은 둘이서 알아서 처리하라는 듯이 뒤쪽으로 물러나 그들만의 수리 방법을 감상한다.
“묠니르군. 거기 있는 스패너(나사를 조이는 용구. 맞나요?)좀 가져다줄래?”
“아 네.”
그를 도와 초보적인 지식(정확히는 아무것도 모르는)을 이용해 케이를 돕는 묠니르의 눈에 그가 말한 스패너란 물건이 포착되었다. 그걸 주워 가져다 주려는데.
“이봐 마족! 아직도 여기 있는 거야?!”
“...아 노른의 자매로군요!”
부스스한 흑발의 소녀가 묠니르를 잡아먹을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갈아입었는지 어젯밤에 자기 직전 입었던 잠옷은 온데간데없고 그녀만의 기계 작업을 위해 갈아입는 평상복차림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녀에 대해서 뒤늦게 어젯밤 기억을 떠올린 묠니르가 인사를 하며 뒤늦은 자기소개를 한다.
“정보부 SA급. 확인불가능. 한정이나 비한정인 이종족..”
스쿨드가 코웃음을 치며 말한다. 그녀는 지난밤에 자신이 없는 동안 묠니르가 일으킨 마족 습격 사건에 대해 굉장히 적의와 분노를 가지고(어린 아이 특유의 자존심을 건드린 사건이 주요했지만.)묠니르를 바라보고 있었다. 덕택에 일어난 그녀와의 신경전 아닌 신경전에 휘말려버린 묠니르.
“흥~소속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않네요!”
“아! 그렇습니까?”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묠니르. 정말 맘씨 좋은 것인지 위선인지...속으로 중얼거리며 그를 쏘아붙이는 스쿨드. 하지만 마는 자신에게 화내는 건지도 모른다는 표정으로 일반 마들과는 틀리게 어제 일로 고장 난 바이크만 고치는데 시간을 투자했다.
“이봐! 당신!! 남의 로봇들을 고장 냈는데 한다는 소리가 겨우 ‘그렇습니까’야?”
“??”
“최소한 ‘죄송합니다!’....라고 사죄 정도는 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어린아이의 끈질김은 참 대단했다. 어제 베르단디와 울드등 기타 모든 이들에게는 로봇을 부순데 대하여 스쿨드를 대신해 사죄를 했는데 오늘 또 사죄를 하란다. 그것도 손님이 보는 앞에서 말이다.
“사죄합니다...라고 말입니까?”
“이봐~일본어가 틀렸잖아! 사죄합니다..가 아니고 ‘미 안 합 니 다 ! ’ ”
“스쿨드. 이제 그만해! 묠니르가 뭣도 모르고 한 일이잖아..”
“알았다구 케이!”
케이가 고치다 말고 그녀를 제지하자. 볼멘소리로 씩씩거리다 알았다며 포기해버리는 스쿨드. 자신만의 작업 공간으로 쾅~문을 닫고 들어가 마저 남은 수리를 한다. 로봇이라든지, 마족이라든지, 비한정이라든지..인간계에서는 잘 쓰지 않는 단어들의 남발에 메구미는 눈만 껌뻑거리며 두 사람을 쳐다볼 뿐이다.
“미안. 스쿨드가 저래 보여도 원래 착한 아이야.”
“알고 있습니다. 모두들 맘씨 좋습니다..”
“하하..그렇긴 하지.”
“아직 어린데...조금은 전투의 기본이 갖춰지지 않았으나 뛰어난 골렘입니다. 기동성은 최고였죠...”
묠니르의 칭찬. 뒤를 이어 들려오는 한 여성의 목소리.
“스쿨드의 발명품은 원래 굉장한 것이 많아! 아마 그 아이는 세계 최고의 기술자가 될 걸?”
자다 말고 부스스한 머리카락, 그리고 잠이 덜 깬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던 울드의 말이었다. 베게를 껴안고, 침을 조금 흘리는 어리벙벙한 글래머의 모습은 두 사람의 할말을 잃게 만들었다. 특히 케이의 생각은...
‘전혀 울드 같지 않아!’
울드의 이런 모습 처음이야! 라는 방송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어 관동 방송국들에서 방영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도 해보는 케이였다.
“그럼 잘들 고치라고~조금 소란스러우니까 조심하고...”
“아 네...”
쾅~
자는데 불만이 많았는지 들으라는 듯 미닫이문을 세게 밀고 안으로 들어가 버리는 울드.
“.................”
서로의 얼굴만 껌뻑껌뻑 바라보다가 바이크에 대해 뒤늦게 깨달은 두 남자들은.
“마저 고칠까?”
“.....예”
수많은 시간이 흐른 뒤 흡사. 인간과도 같이 움직이는 바이크의 매커니즘을 완전히 고치는데 성공한 두 사람. 정밀한 부품 몇 개 때문에 곤란한 적이 한 둘이 아니었지만 그 때 마다 케이의 친절한 설명과 뛰어난 솜씨 덕분에 위기는 무사히 넘어갔고, 기름칠까지 다 끝내 전보다 더욱 매끈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바이크의 엔진 음이 들려왔다. 마치 주인과 사고를 일으킨 장본인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듯 했다.
“뛰어난 솜씨군요. 제가 BMW R-75를 탈 때는 이런 걸 고칠 줄 아는 사람들은 없었는데 말입니다. MG-42 머신 건이라면 또 모를까...”
“MG? 어쨌든 바이크를 타본 적이 있는 거니?”
“몇 번 타봤습니다. 그것 덕택에 잠깐 동안 전세가 역전 된 적이 있거든요..”
이미 반세기 전에 단종된 기억속의 이름을 꺼내는 묠니르. 자신이 알고 있는 바이크의 역사 속에서 그 이름을 되새기며 찾아보지만....
“민간인용이 아니라...잘 모르겠는데.”
“그럴 겁니다. 제가 탄 것이 그 기종이 맞는지 지금도 이름이 가물가물하거든요...”
다시 기억속의 한 때를 회상하며 스스로 고개를 들어 올리는 묠니르. 씁쓸하다는 그의 얼굴은 케이에게 어제 달빛 아래에서 자신의 판단을 기다리는 어린 마족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난 마족. 지금은 감정을 제어하고, 반드시 없애야겠다는 일념 하나 덕택에 지금까지 살아남는데 성공했습니다.”
무표정의 마족이 지금까지 살아오는 방식...
“덕택에 적이 피를 흘리며 쓰러져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었고, 남이 친하게 지내자고 해도 언젠가 내가 죽거나 그들이 죽어서 슬퍼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사랑도 마찬가지였죠..”
기관총에 난자되는 이방인의 모습. 정보부에서 자신과 친하게 지내려 말을 걸지만 얼마 못가 무덤덤해지거나 죽어 명부에서 사라진 동료들...
그리고 한때의 누군가가 떠오른다.
“제가 세상물정 모르니까 남아야 된다고요? 흐~ 웃기지도 않는 소리! 노른의 자매들 중 한명이 파괴를 하는 마왕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유그드라실이 박살나서 막지 못한 정보부입니다...”
이런 내가 뭘 어쩌겠다고?!
“마는 마. 울드라는 자도 여신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울드도 넘치는 힘의 감정을 억제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에게 그런 상황이 옵니다..”
그런데 당신! 모리사토 케이이치라는 당신 인간은!!
“저만의 휴가를 즐길 것입니다! 아니지!! 저만의 감정을 죽이는 방법을 찾을 겁니다!!!”
그러니까 나의 생활에 관여하지 마!
존칭을 버리고 자기 앞에 서 있는 어리석고 순진한 인간에게 속으로 수만가지 욕을 내뱉는 묠니르. 케이는 복잡한 얼굴이 되어 그를 보며 씁쓸하게 미소 지을 뿐이었다. 하지만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지.....
“너 혼자만 그런 짐을 지면 안 되는 거란다.”
뭐라고?
“그랬어. 너의 정보대로 한때 울드가 각성..아니 폭주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힘을 쓰지 못한 데 대한 불만 때문에 스스로의 마성을 깨운 적이 있었어. 그래서 나나 베르단디, 스쿨드, 그리고 세상이 위험해질 뻔한 적이 한번 있었지.”
“그렇게 알고 있다면 다행입니다. 그럼 전..”
하지만!
케이가 그의 말을 끊고 자신보다 나이가 어린 남자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그와 눈을 마주친다. 사람 좋은 미소가 넘치는 그의 얼굴에 자신도 모르게 주눅이 들어버린다. 왠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아이가 아버지에게 혼나는 것처럼.
“그 사건은 이제 끝났단다. 물론 울드가 또 언젠가 마성을 깨울지도 몰라..하지만 말이야!”
하지만!!
“그건 자신이 언젠가 버텨야 할 인생의 고비에 불과해. 그건 너도 마찬가지란다.”
“??”
“그녀도 자신 스스로 그 위기를 벗어났어. 물론 울드도 그런 사실을 많이 두려워하고 우릴 피하기도 했지만...지금의 그녀는 우리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가족이란다.”
그런 겁니까? 울드라는 반신반마...왠지 부럽군요!
“네가 얼마나 오랫동안 수많은 일을 겪고, 너 자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몰라. 하지만!”
최소한 너를 소중하게 생각하렴. 다른 이를 위해서만 너의 온 힘을 쏟아서는 안 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절대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지 못해. 상처만 입힐 뿐이지..
“....후훗 말이 너무 길어졌구나. 그런데 판단...이라고 했니?”
“......그렇습니다.”
케이가 곰곰이 생각하며 묠니르가 두려워하는 적월로 변할 가능성이 있는 달을 바라본다. 달은 정말 평온했다. 그리고 달빛에 따라 조용히 움직이는 조그만 무언가. 그 무언가가 케이에게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
‘케이씨 알아서 판단하세요!!’
케이의 입에서 바로 답이 나온다.
“...그렇다면 남을지 떠날지 판단은 네가 알아서 해.”
“아 예...예?”
..............잠깐 동안 풀벌레 소리만 들려온다.
“자신이 즐거워질 수 있는 날에 대한 판단을 남에게 맡긴다는 것은 너무 바보 같지 않니?”
“그런....것인가요?”
“그런 거야”
“.......그럼. 일단은 남겠습니다.”
...............바보라고 말하려다 진짜 바보는 자신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던 그의 입에서 억제된 듯 한 의지가 튀어나온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일단은 남습니다. 하지만 동료도 만날 겁니다.”
“그렇게 하렴!”
........이제 산책은 끝날 시간. 두 사람이 저 멀리 자신들의 절이 있는 곳으로 사라져 간다. 그리고 무언가. 달빛이 조금 더 환해지자 한 존재가 나타난다. 베르단디를 수십 배로 축소한 듯 한 조그만 인형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분신이라고도 하는 술법의 일종이었다.
“케이씨...”
잘 판단 하셨어요!
“그나저나. 남은 방이 문제인데...오늘은 내 방에서 자라!”
집 앞에 도착하자 뒤늦게 페이오스로 인해 남은 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케이가 그에게 제안한다. 그러자 묠니르는 말도 안 된다는 표정으로 그에게 반문한다.
“지금은 다른 곳에서 근무하나, 한때는 정보부였습니다. 모든 정보에 나와있지 않은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서...저는 다른 곳에서 잠을 자겠습니다.”
“엥?”
그게 무슨 소리야? 방이 없다니까! 이렇게 말하려던 케이가...
“전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잠을 특이하게 잡니다.”
“??!! 설마!!”
잠을 특이하게 잔다고? 어떻게...물어보려던 케이의 뇌리속을 스쳐 지나가는 조금 특이한 형태로 자는 전투부 요원 한명!
‘린드?’
“설마가 진짜입니다. 저도 그 여신처럼 앉아서 잠을 청합니다. 다만...”
라이플과 함께 벽에 기대어 잘 뿐이죠.
‘...................’
뭐라고 표현해야 될지 알 수 없는 복잡한 케이의 심정은 서둘러 집으로 들어가게끔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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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첫 번째 이야기...그러니까 괴짜 마족들과 엉뚱했던 신족들과, 순박한(?)인간의 동거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담부터는 이들이 펼치는 황당무계한 코믹 스토리를
그려보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따끔한 비평과 칭찬들 부탁드립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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