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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님팬픽 Always 외전 - Wishing for your happy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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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뭘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누군가에게 사랑 받는 것.

하지만 난 이별의 슬픔을 감당할 자신이 없기에 누군가를 사랑할 수 없나보다.

Always 외전 - Wishing for your happy

당신의 행복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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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갈 준비, 했어?”

“응?”

“학교 갈 준비 말이야. 이름표 달았니?”

“응.”

요즘 들어 유지는 무언가를 혼자 골똘히 생각하는 일이 많아 진 듯 했다.

“벌써 시간 다 됐어, 가자.”

나는 유지를 바이크의 옆 좌석에 태우고 헬멧을 씌어주고는 시동을 걸었다. 헬멧 아래로 삐져나온, 밀크를 떨어뜨린 다즐링 티 같은 옆은 갈색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가는 손목과 흰 목덜미, 남자애 이었지만 그녀의 모습이 많이 남아 있다.
...... 날 닮은 것 보단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유지를 학교 정문 앞에 데려다주고나서 휠윈드에 도착한 나는 먼저 출근해 있는 지로 선배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그녀도 빙긋 웃으며 인사에 답해준다.

“안녕? 몸은 좀 어때?”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요.”

“그래, 너무 무리 하지 말고.”

“네, 고마워요 선배.”

10년 전 작은 컨테이너에서 시작한 가게였지만 이제 종업원도 세 명이나 되는 어엿한 매장의 사장님이 된 선배였다. 그동안 몇 번의 위기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선배를 중심으로 네코미 공대 자동차부의 후배들인 종업원들은 힘을 합쳐 잘 넘겨 왔다. 이들 중 가장 크게 흔들린 건 분명 나였지만, 사정을 너무도 잘 아는 그들은 나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았고, 특히 지로선배는 내가 몇 번이나 근무시간과 일수를 채우지 못해도 월급을 꼬박꼬박 챙겨주었다. 평소에 보아온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으로 사람을 보고 판단하는 건 역시 잘못된 일이다.

9개월 전 베르단디가 병으로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가게 된 후 나는 급속도로 무너져갔다. 울드와 스쿨는 어떻게든 나를 진정시키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우울증으로 말 수가 줄고,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물론 직장에 제대로 다닐 수조차 없었다. 스쿨드는 나에게 유지를 봐서라도 제발 정신 차리라고 타일렀지만 그때는 그 말도 귀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울드와 스쿨드는 천상계의 일 때문에 잠시 다녀온다고 하고 집을 떠났다. 그게 그녀들을 마지막으로 본 때였다. 나와 유지를 챙겨주던 그녀들이 떠나자 정신적 공황상태는 곧 육체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술에 손을 대게 된 나의 건강은 위험한 상태로까지 이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슬픔에 잠겨 앨범을 보던 나는 문득 유지의 잠든 모습을 지켜보았다. 유지의 얼굴은 희다 못해 창백해 보였고, 정말 비쩍 말라서 보기 애처로울 정도였다. 집안은 온통 먼지가 쌓이고 정리 되지 않은 난장판이었다. 나는 퍼뜩 정신이 돌아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래선 안 된다. 그녀를 봐서라도…….
이건 베르단디에게 죄를 짓는 거라고…….

그때부터 나는 직장에 다시 나가게 되었고, 병원에서 치료도 꼬박꼬박 받았다. 하지만 망가져버린 몸과 마음은 쉽사리 예전처럼 돌아오려 하지 않았다. 길가다 갑자기 쓰러져 버리기도 하고, 손이 덜덜 떨려 정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때도 많았다. 하지만 지로선배는 그런 나를 나무라지 않고 조용히 지켜보았다.

유지가 엄마가 없음을 알고 어디 갔냐고 물을 때 나는 이렇게 말해줬다.

너무도 아름답고 자상한 엄마는 하느님의 부름으로 여신이 되어 천상계에 간 것이라고…….

물론 유지는 베르단디들이 여신인걸 몰랐고, 실제 내가 아는 천상계와 여신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한 말이었지만 유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럼... 언제 다시 볼 수 있는 거야?”

“으...응...?”

“얼마나? 내일? 아니면... 일주일?”

유지의 물음에 나는 대답 할 수 없었다. 그저 내 얼굴을 볼 수 없도록 유지를 끌어안고 울음소리를 꾹 누르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는 일 밖에는...

진실을 알기에는 유지는 아직 너무 어렸다. 앞으로도 한참동안 나는 거짓말을 계속할 생각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유지도 사실을 알 때가 올 것이다. 그때가 오면... 나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오후4시, 아직 휠윈드의 일과가 끝날 시간이 아니었지만 학교를 마친 유지를 데리러 가봐야만 했다. 그래서 난 항상 이렇게 다른 사람들 보다 먼저 퇴근 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에 눈치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죄송해요. 오늘도 먼저 가볼께요.”

“또 그런다, 미안해 할 것 없다니까. 우리가 그런 사이였냐?”

지로 선배 뒤에 있던 하세가와도 거들었다.

“선배, 운전 조심하세요.”

“걱정 마. 이제 괜찮다니까.”

그들을 뒤로 하고 나는 유지를 데리러 가기 위해 초등학교로 방향을 잡았다. 유지를 태우고 집으로 향하니 벌써 해가 지기 시작했다. 낮에는 포근한 편이었는데 해가 지자 갑자기 날씨가 쌀쌀해졌다. 그래서 나는 잠시 바이크를 세워 유지에게 재킷을 벗어 주고 다시 집을 향래 출발했다. 해안도로에 접어들자 12월의 차가운 바닷바람이 사정없이 몸 안으로 스며들어들었다.

“안 추워?”

“응?”

유지는 내가 걱정스러웠는지 말을 걸어왔다.

“옷 벗어줬잖아. 괜찮아?”

“응. 이제 거의 다 왔잖아.”

하지만 희미한 확신과는 다르게 내 몸 상태는 서서히 나빠졌다. 입술은 부들부들 떨렸고, 가슴도 답답해졌다. 집에 도착해서 바이크에서 내릴때는 눈앞이 깜깜해지고 어지러워 제자리에 서 있기 조차 힘들었다. 결국 바닥에 주저앉아서 거칠게 숨을 내쉬는 나에게 유지가 걱정스러운 어투로 말했다.

“아빠, 괜찮아?”

“응, 조금 있으면.”

“그래?”

한동안 바이크에 등을 기대고 있었지만 머리는 통증은 계속되었고, 숨 쉬는 것도 힘들었다. 시야도 여전히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그런 나를 보던 유지는 내가 벗어주었던 재킷을 벗더니 다시 나에게 덮어 주었다.

“아빠.”

“응?”

나는 유지의 부름에 힘겹게 대답했다.

“노래 해줄까?”

“응.”

유지는 남자아이였지만 가느다란 목소리로 평소 베르단디가 요리와 빨래를 할 때 흥얼거리던 ‘계란씨, 계란양’ 과 ‘이불을 널어요.’를 불러주었다. 내가 이렇게 힘겨워 하면 간혹 노래를 불러 주곤 했는데, 신기하게도 효과가 있었다.

지금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머리와 가슴의 통증이 사라졌고 호흡하기도 수월해졌다. 유지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고, 겉으로 표시는 나지 않았지만 어쩌면 유지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어라?”

“왜?”

“정말이야. 감쪽같이 다 나았어.”

“그치?”

“응.”

“굉장하지?”

“정말 그러네.”

고통이 진정되자 나는 몸을 일으켰다. 유지가 옆에서 작은 손으로 부축해주었다. 하늘은 어느덧 붉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겨울의 노을이니 아마 분명 얼마 가지 못할 것이다.

“해 지는 거 잠깐 보고 들어갈까?”

“응.”

나와 유지는 나란히 바이크를 기대고 앉아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엄마, 보고 싶다.”

“나도 그래.”

한참 있다가 다시 유지가 말했다.

“나 때문에 엄마가 죽었어?”

그 말에 가슴 한구석이 저려왔다. 무언가를 알고 물어본 걸까?

“아냐.”

“정말?”

“정말이지. 왜 그런 생각을 했어?”

“그냥.”

다시 한참 지나서 이번에는 내가 말했다.

“정말로 그런 거 아냐.”

“알고 있어.”

“그럼 됐다.”

“응.”






다음날, 토요일이라 일찍 학교를 끝낸 유지와 함께 숲으로 향했다. 평소처럼 주말에는 절 뒤의 산으로 산책을 가는 것이었다. 기온은 전날보다 더 떨어져서 눈이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잎이 거의 다 떨어져버린 앙상한 가지가 머리 위를 덮고 있었다. 새들도 지저귀지 않았다. 유지와 나는 서로 손을 잡고 아무 말 없이 그냥 걸었다. 뭔가 말을 입에 담기에는 너무나 우울한 분위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고요했다. 이따금 생각난 것처럼 불어오는 바람이 나뭇가지를 흔들며 투두둑하고 콩을 뿌리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어느새 사방은 하얗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유지는 생전 처음 보는 눈이 신기했는지 이리저리 만져보고 심지어 입안에 넣어보기까지 했다. 그러면서도 머리위에 앉는 눈은 계속 해서 털어내는걸 보니 감촉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산책의 목적지인 벚나무가 있는 공터에 다다르자 날씨는 더 추워졌고 하늘은 많이 어두워졌다. 새끼손톱만 한 눈들이 이제는 제법 굵어져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고 사방은 매우 조용했다. 나는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로 마음을 정하고 유지에게 말했다.

“자, 돌아가자.”

그러나 유지는 내 말을 듣고 있지 않았다. 엄청나게 진지한 표정으로 뭔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눈과 눈썹을 가까이 붙이고 그로서는 퍽 어른스러운 눈빛으로 오로지 한 지점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시선 끝을 더듬어 따라가 보았다.
사방이 온통 눈 내리는 백색 풍경 속에 단 한 점의 엷은 색채가 있었다. 속눈썹에 들어오는 눈을 손끝으로 뿌리치며 다시 한 번 찬찬히 응시해보았다. 그것은 금세 그것이라고 알 수 있는 너무나 그리운 윤곽이었다.



잘못 보았을 리가 없다.

베르단디다.



그녀가 흰 털실 스웨터를 걸치고 벚나무 아래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저 그리운 실루엣, 무어라 비유할 수 없어 ‘그 것’ 이라고 밖에는 표현할 수 없는, 그것은 그녀가 나를 향해 뿜어내는 친밀한 단어 같은 것이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단어. 나는 그것을 다시금 느끼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유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도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눈을 큼지막하게 뜨고 입은 O자로 벌리고 있었다.

쿵...쿵... 심장 박동소리가 머리에 울릴 만큼 요동치고 있었다.



‘올해 첫눈이 오면, 전 반드시 케이와 유지를 보러 올 거예요.’

벚꽃이 쏟아지던 3월. 베르단디가 우리 곁을 떠나기 며칠 전 핏기 없는 입술로 가늘게 속삭이던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때는 베르단디를 앞으로 영원히 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공포가 나의 모든 이성과 감정을 지배하고 있어 그 말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적어도, 눈이 녹기 전까지는 함께 있을 거예요.’

‘그런 말 하지마. 왜 꼭 떠날 것 같이 말하는 거야?’

그때 나는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는 베르단디의 손을 꼭 잡으며 설마설마 했지만 얼마못가 현실은 가혹하게 찾아 왔다. 나와 울드와 스쿨드가 보는 가운데 베르단디의 형상은 환한 빛의 무리가 되어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저기... 병을 고치러 천상계에 잠깐 올라간 거지?’

스쿨드는 얼이 빠진 표정을 짓다 곧 펑펑 울기 시작했고 울드는 감정을 억제 하려는 듯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지만 눈물이 새어나오는걸 막을 수 없었는지 볼이 젖어 가고 있었다.

‘울드? 스쿨드? 왜이래? 병만 고쳐지면 다시 같이 지낼 수 있는 거잖아.’

그녀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도 곧 베르단디의 ‘죽음’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었고 한동안 나는 현실을 부정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나는 무너져 간 것이다.



‘올해 첫눈이 오면, 전 반드시 케이와 유지를 보러 올 거예요.’

‘반드시...’

‘만나러 올 거예요...’



“아빠?”

거의 넋 나간 사람처럼 그녀를 향해 뚫어져라 보고 있던 나에게 유지는 벼르고 별렀던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처럼 작디작게 속삭였다.

“큰일 났어.”

그는 몇 번이고 급하게 눈을 깜빡였다.

“엄마가... 엄마가 천상계에서 돌아와버렸어.”

우리는 멈칫멈칫 그녀에게 다가갔다. 무서웠기 때문이 아니다. 설사 저것이 베르단디의 유령이라해도 내가 두려워 할 리가 없지 않은가? 단지 아주 작은 공기의 흔들림조차도 그녀의 존재를 마구 지워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유지도 분명 똑같은 마음이었으리라. 갑자기 뛰어들어 베르단디에게 안기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별하기 전 내게 이렇게 말했다. ‘올해 첫눈이 오면 케이와 유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반드시 보러 올 거예요.’ 그러니까, 베르단디는 그 약속을 성실히 지키려고 이렇게 우리를 만나러 와준 것이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까지 다가갔을 때, 나는 분명하게 보았다. 이마와 양 볼에 있는 문장을... 그녀는 베르단디와 꼭 닮은 누군가가 아니었다. 그녀는 베르단디 그 자체였다.



가슴속으로 수천수만 번을, 아니 헤아릴 수 없이 외쳤던 그 이름...



“베르단디.”

그녀는 우리의 기척을 느꼈는지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베르단디와 눈이 마주치자 막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케이씨?”

가늘고 높은, 말끝이 살짝 떨리는 저 그리운 목소리.

“베르단디... 베르단디 맞는 거야?”

나는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겨우 참고 있었다. 그렇게 되면 유지도 덩달아 울어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와 유지를 번갈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베르단디의 머리와 어깨에는 하늘에서 내린 눈이 살포시 내려와 앉고 있었다. 분명... 환영은 아니리라.

“저기... 손, 잡아 봐도 될까?”

베르단디에게 손을 내밀자 그녀는 천천히 손을 뻗어 내 손을 잡아 주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흠칫하며 그녀의 손을 놓치고 말았다. 날씨 때문인지 차가웠지만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온기가 전해졌었다. 내 눈 앞에 있는 그녀는 분명 유령도 아니었다. 감촉도 느낄 수 있고, 온기도 가지고 있었다.

유지도 멈칫멈칫 다가가 자그마한 손을 내밀어 베르단디의 분홍색 치맛자락을 조심스럽게 붙잡았다. 그녀는 유지에게 미소를 지으려 했지만 뭔가 어중간한 표정이 뺨에 맴돌았다.



뭘까? 이 기묘한 위화감.



“엄마?”

유지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베르단디를 불렀다.

“내가... 엄마?”

베르단디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묻자 유지는 멍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정말 유지를 알아보지 못하는 듯 했다. 나는 재빨리 유지의 목덜미를 잡아 뒤로 돌려 세운 후 귀에 대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은, 내가 하는 말에 넌 맞다고 옆에서 거들기만 해. 알았지?”

내 눈을 바라보는 유지의 갈색 눈동자 안에는 혼란이 가득했지만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지는 이윽고 마음을 정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응’ 하고 대답했다.

“정말이야. 유지는 우리 아들이야.”

“저와... 케이씨의?”

“응. 그런데... 기억나지 않는 거야?

베르단디는 한동안 무언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녀와 나 사이에 끝없이 굵은 눈송이들이 내렸다. 그 눈들이 순식간에 쌓여버려 우리 사이를 막아버릴 것처럼...

“그럼 전 케이씨와 결혼한 건가요?”

“으, 응.”

“그렇군요...”

그녀의 표정은 수긍하는 것 같았지만 정말 기억이 나서 그렇다기 보다는 남을 의심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냥 그대로 나와 유지의 말을 믿어버린 것 같았다.

“그럼 전 여기서 뭘 하고 있었죠?”

“응? 아.... 아 그래, 산책. 산책을 하고 있었어.”

“산책... 인가요?”

“우리는 셋이서 이곳에 왔어. 늘 다니던 주말의 산책이야. 그렇지 유지?”

“응. 산책이야. 맞아.”

나는 말을 재차 확인했고, 유지는 나의 말에 맞장구 쳐주었다.

“그렇군요...”

“아무튼 함께 집에 가자. 그러다 보면 분명 기억도 돌아올 거야.”

“그럴까요?”

“그럼.”

나는 미소 짓고 있지만 힘없는 표정으로 앉아 있는 베르단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녀는 나의 손을 잡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머리와 어깨에 앉아 있는 눈이 후드득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자, 서둘러 돌아가자. 이러다 감기 들어.”




숲 속 오솔길을 베르단디와 유지가 나란히 걷고, 나는 그 뒤를 따라 갔다. 처음에는 들썽거리며 어쩔 줄을 모르던 유지가 이윽고 마음을 정했는지 자신의 손을 그녀를 행해 내밀었다. 그것을 알아본 베르단디가 곧바로 손을 잡아주었다. 손이 맞닿았을 때, 유지가 흠칫 베르단디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녀는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 그만 견디지 못한 유지가 소리 내어 울기 시작했다.

그럴 만도 하다. 거의 1년 만에 엄마의 손을 잡아 본 것이다.

“이제 곧 베르단디도 다 생각이 나겠지만... 유지는 지독한 울보야.”

나는 말했다.

“그냥 어쩔 줄 몰라서 그래. 베르단디의 기억이 사라져버렸으니까... 그러니까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다정하게 대해줘. 지금까지도 베르단디는 내내 그렇게 해왔지만.”

베르단디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유지의 가느다란 어깨를 끌어당겨 품에 안아주었다. 유지는 한참이나 엄마의 온기를 느끼며 긴 울음 끝의 노곤함과도 같이 기분 좋게 엄마의 존재에 취해 있는 듯 했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그렇게 걸어갔다. 유지는 어느새 흥이 올랐는지 가면서 간간히 눈으로 장난도 쳤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는 베르단디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윽고 셋이서 눈이 쌓이는 숲을 벗어나 집에 도착하자 주위는 이미 어두워져있었다.

“여기가... 우리 집인가요?”

베르단디가 기억하는 집의 모습이 예전의 모습이라면 분명 낯설게 느껴질게 분명했다. 잡초와 깨어진 기왓장은 눈에 덮여 표시나지 않았지만 어수선한 마루, 금이 간 창문... 이런 모습은 분명 한눈에 봐도 차이가 날 테니까. 최근 들어 몸이 어느 정도 회복 된 후로는 집의 복구를 위해 힘썼지만 절까지 포함된 이 넓은 곳을 나와 유지 둘이서 유지해 간다는 것은 힘들었다. 하지만 한번도 이사 따위는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여기는 베르단디와의 모든 추억이 남겨진 곳이니까.

“미안해, 좀 지저분하지? 자, 일단 이리로 들어와.”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는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베르단디는 집안 여기저기를 휘휘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베르단디의 기억 속에 있는 집의 풍경과는 차이가 있는 모양이었다. 집 안은 한 달 전쯤 메구미가 와서 청소를 도와준 덕분에 그나마 바깥보다는 약간 나았지만 그래도 베르단디에게 보이기에는 무안할 정도였다.

“케이씨, 전 집이 이렇게 되도록 청소도 안했었나요?”

“아냐아냐, 베르단디는... 누구보다 솜씨가 좋았어.”

베르단디는 거실을 둘러보다 벽면에 걸려있는 사진을 발견하고는 손으로 먼지를 슥슥 문질렀다. 사진 속 주인공은 바로 나와 베르단디, 울드, 스쿨드 그리고 베르스퍼를 안고 있는 유지였다. 그들은 표정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왜 집이 이렇게 되었나요? 그리고... 울드 언니와 스쿨드는?”

“그게, 베르단디는 몸이 많이 안 좋았어... 몇 달간 그냥 계속 누워있었으니까. 그리고 울드와 스쿨드는 천계에 일이 생겨서 잠시 올라갔어.”

“그렇군요...”

베르단디는 시들어버린 꽃이 꽂혀있는 꽃병을 쓰다듬고 있었다. 꽃은 살아생전의 생기는 하나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시들어버려 있었다. 메구미가 청소해주며 꽂아 놓은 것 같은데... 지금까지 그냥 방치 해둔 것이다. 베르단디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바라보다 두 손을 꽃에 대고 법술을 외웠다. 하지만 법술은 시행되지가 않았다.

법술...? 법술은 유지가 태어나고부터 사용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녀가 법술을 쓰려고 하는 걸로 보아서는 최소한 최근 6년의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듯 했다. 그리고 지금의 베르단디의 안색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혼자 눈 내리는 숲에서 얼마나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몸은 인간이나 다름없는 베르단디에게 그건 충분히 부담될 수 있었다.

간단히 저녁식사를 한 후 나는 베르단디를 방으로 안내했다.

“베르단디, 방으로 가볼래?”

“네, 그래요.”

내가 앞장서서 걸었고 그 뒤를 베르단디와 유지가 따라갔다. 유지는 슬그머니 베르단디의 손을 잡았고, 베르단디도 그런 유지의 손을 따뜻하게 감싸주었다.

“여긴 기억하겠지?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 베르단디가 쓰던 방이야. 결혼 후엔 내 방에서 같이 지냈지만.... 지금은 곤란하겠지? 그러니... 여기서 쉬도록 해.”

베르단디는 내 말을 듣고는 볼이 약간 붉어졌다.

“죄송해요... 케이씨.”

“응? 아냐아냐, 그럼 오늘은 이만 푹 쉬도록 해. 유지는 나와 같이 잘 거니까.”

베르단디의 방에서 나온 나와 유지도 방에 와서 누웠지만 둘 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유지도... 잠이 안와?”

“응...”

“잘 들어, 유지”

나는 소리 죽여 말했다.

“엄마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있어.”

“그런거야?”

“응. 아빠랑 유지와 같이 살았던 때의 일은 기억 하지 못하는 것 같아. 나와 결혼 한 일도...”

게다가, 라고 말하며 나는 작은 헛기침을 했다.

“그것도, 엄마가 봄에 우리랑 이별을 했었다는 것도.”

“응.”

“그러니까 그걸 비밀로 해둘 생각이야.”

“어떤걸?”

“어떤거냐니. 그러니까, 엄마가 어느 곳에도 가지 않았고, 계속 유지랑 아빠랑 셋이서 이 집에서 살았던 것으로 해두겠다고.”

“어제도?”

“그렇지.”

“그 전날도?”

“그래.”

“만약 엄마가 물어보면 뭐라고 해?”

“뭘?”

“여러가지.”

“네가 잘 알아서 대답해.”

“못할지도 몰라.”

“그런 때는 그냥 울면서 넘어가. 갑자기 와앙 울면 돼.”

“그런 거야?”

“응. 기왕 이렇게 엄마가 돌아왔으니까, 그런 식으로 슬픈 이별을 했다는 건 모르는 편이 좋다고 생각해.”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렇지? 그리고 만약 엄마가 사실을 알게 되면 다시 천상계에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싫어.”

“그게 싫다면 너도 꿋꿋하게 잘해줘, 알겠지?”

“응. 해볼게.”

나는 그녀가 예전에 했던 말을 머릿속에서 되뇌고 있었다. ‘올해 첫눈이 오면 돌아올 거예요.’ 라고 다짐하던 그때, 그 다음에 덧붙였던 말이다. ‘적어도 다시 눈이 녹기 전까지는 케이씨와 유지의 곁에 함께 있을 거예요.’

생각해보면 유지는 이미 엄마와의 이별을 한 차례 경험한 바 있었다. 오랜만에 다시 해후한 엄마와도 이윽고 다시 이별하는 날이 온다면 이 재회에는 처음부터 슬픔이 준비되어 있는 셈이다.

‘눈이 녹을 때 까지’라고 베르단디는 말했었다.

나는 몸을 뒤척이며 잠을 이루려 노력하는 유지에게 마음속으로 살그머니 말했다.

‘지금 마음껏 엄마에게 어리광을 피워두렴...’






꿈을 꾸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았지만 좋은 꿈이 아니었던 건 확실했다. 잠에서 깨어 주변을 둘러보니 아직 캄캄한 밤이었다. 그런데 내 옆에 자고 있어야 할 유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가슴이 철렁 했지만 곧 베르단디가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고는 진정이 되었다. 유지가 이 밤중에 갈 곳은 아마 거기 밖에 없을 테니까. 여기에 놀라는걸 보니 난 아직 베르단디가 돌아온 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베르단디의 방문 앞까지 왔지만 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자고 있을 텐데 괜히 문 열다가 깨울 수도 있는 일이고, 아내였다지만 그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의 방에 밤중에 불쑥 들어가는 거도 좀 그랬다. 베르단디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겠지만...

한동안 그렇게 방문 앞에서 서성이는데 방안에서 베르단디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케이씨.”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내 짐작이 맞다는걸 눈으로 확인 할 수 있었다. 유지는 베르단디의 옆에 잠들어 있었다.

“몸은 좀 어때?”

잠들어 있는 유지를 바라보고 있던 베르단디는 천천히 시선을 나에게로 돌렸다.

“머리가 조금... 아파요.”

“열이 있나? 그렇게 추운 날씨에 오래 있었으니 감기에 걸렸는지도 모르겠다.”

베르단디는 긍정인지 부정인지 알 수 없는 불명료한 끄덕임을 보였다.

“아직,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그쪽으로 가도 돼?”

희미한 미소를 짓는 베르단디.

“물론이죠.”

나는 베르단디의 베갯머리로 다가가 무릎을 꿇고 그녀의 이마를 짚어 보았다. 희미하게 열이 있는 것 같았다.

“열이 있는 것 같아, 미열이지만.”

“괜찮아요. 아마 자고 나면 나을 거예요.”

무척 신기한 기분이었다.
베르단디의 이마에 손을 댔을 때 감촉, 온기, 그녀의 냄새.
언젠가도 분명 서로 나누었을,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적인 대화들.
그녀가 9개월 전에 죽었다는 게 아무래도 거짓말인 것만 같다. 나는 베르단디가 죽는 내용의 현실과 같이 생생한 꿈을 꾸다 바로 지금 눈을 뜬게 아닐까?

“귀여운 아이네요, 유지군.”

그러나 그녀의 말이 그것을 부정한다. 나는 뭔가 서글퍼져서 마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당신 아이야.”

“그렇죠? 그 기억이 얼른 되살아나면 좋겠는데.”

“...괜찮아.”

그리고 찾아온 한동안의 고요함.

“난, 내방으로 다시 돌아갈 테니 베르단디는 이만 쉬도록 해.”

조용히 일어서서 방문을 열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저기, 케이씨?”

“응?”

등 뒤에서 베르단디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베르단디는 반쯤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케이씨와 저, 그리고 유지군... 어제까지만 해도 川자를 그리며 한 방에서 자고 있었겠죠?”

“으... 응.”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다. 어제는 아니지만 베르단디와 헤어지기 전까진 그랬으니까.

“저라면 괜찮아요.”

괜찮다니... 나와 한 방에서 같이 자는 걸 말하는 걸까?

“케이씨의 쓸쓸한 눈동자, 저 때문이지요? 제가 기억을 잃어버려서...”

“......”

“제가 기억을 잃었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어요. 케이씨에 대한 감정, 느낌까지 잃은 건 아니니까요.”

잠깐 망설이다가 그렇게 유지를 가운데 두고 베르단디 옆에 나란히 누웠다. 결혼한 지 꽤 되었어도 베르단디와 가까이 있으면 항상 가슴이 설렜는데, 지금은 가슴 뛰는 소리가 베르단디에게 들릴까봐 걱정 될 정도였다. 하지만 고개를 살짝 들어 보니 베르단디는 피곤했는지 어느새 잠이 들어 있었다. 나는 입을 다물고, 옅은 달빛에 은은하게 비친 베르단디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았다. 호흡에 맞추어 그 모습이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문득 그녀의 마지막 나날들이 되살아나서 가슴에 통증이 내달렸다. 다시 한번, 나는 잃어야 하는 걸까?
곁에 있고 싶다. 내내, 앞으로도 계속. 내가 죽을 때까지. 지금 내 옆에 누워있는 베르단디가 설사 유령이라도 상관없다. 우리의 일을 잊어버렸다 해도, 그래도 괜찮다.
곁에 있어만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 내가 먼저 죽게 된다면 베르단디가 지금 나와 같은 처지가 되지 않을까? 그것도 영원히...
여신과 인간의 사랑이 아름다운 이야기로 그려질 수 있겠지만, 그녀와 나 사이에는 결국 필연적인 슬픔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해도, 만약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난 과연 포기 할 수 있을까?

“잘 자.”

...나는 가만히 그녀에게 밤 인사를 건넸다.



========================================================

실은 예전 콘테스트에 제출 했던 작품 입니다. 그런데 그때 용량문제로 잘려버린 부분도 많았고(절반정도..), 부족한 시간때문에 저 스스로도 아쉬운 부분이 많아서 새로 재구성 했습니다.

(예전에 문의 해봤는데 리메이크 허용된다고 들었던 기억이;;)

앞부분은 스토리상 출품작과 거의 차이가 없고 오타수정 및 단어와 문장 부분에 손봤습니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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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ka님의 댓글

pika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역시 역시... 좋아요 >.<

으음...

안타깝지만....

리메고 뭐고.. 상관안하는게 당연하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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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더경님의 댓글

베이더경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벨 사마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리메가 되었다면? 원작이 그대로 있단 소리??

찾아서 열심히 보도록 하겠습니다.[퍽]

즐거운 하루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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