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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아래의 그대에게..(2)-Ci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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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하늘의 햇살이 따사롭다. 그 사이로 단지 주머니에 손을 넣은채 걸어갈 뿐이었다. 이제와서 새삼스럽게 무엇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정말로 우습다. 적어도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생각했던 정말이지 지금의 추억속의 나에게 있어서 이것은 우스운 일이었다.

 "..보고싶군요. 다시 한번만 이라도 말이죠."

 가을 하늘치고는 구름이 많다고 생각되는 날씨. 마치 청일색이던 나의 하늘에 구름이라는 일말의 인간미와 그리고 사라질 뻔한 감정을 던져준 그 존재에 대해서.. 사무치도록 그리움이 가슴 한 구석을 져며왔다.

 시릴만큼 파란 가을 하늘을 바라보면서, 걸어갔다.

***

 "우음.. 어느새 집에 왔던 것인가?"

 눈을 뜨자 서서히 시력이 회복되고, 이내에 익숙한 패턴의 벽지가 보여졌다. 가만히 숨을 고른 후에 일어나기 위해서 몸을 뒤척였다. 하지만 그 뒤척임을 실행하려는 순간, 갑작스레 숨이 막혀오면서 나의 의식을 뒤헝클어 버릴 정도의 통각이 전해져왔다.

 "윽! --크흑! ..하아.. 하아.. 하아.."

 간신히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이윽고 어제 무슨 일을 했었는지 기억나기 시작했다. 뭐랄까? 스스로도 정말 무모하다고 생각할 정도일까? 오랫만에 나타난 사도를 잠재우기 위해서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수백의 사자(死者)들이 골목 여기저기에서 스멀스멀 기어나오고, 사도는 나를 비웃으면서 가로등 위에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단지 거기까지였다. 무엇에 울컥한 것일까? 어쩌면 추억의 단편에 의한 충동일 것이리라. 온몸은 베이고 찢겨졌다. 하지만 손수 하나하나 모든 사자들을 완전히 불태워 버린뒤에 가로등에서 이제껏 나를 비웃는 사도를 바라봤다. 그리고 사력을 다해서 마지막으로 흑건을 날렸다.

 "......"

 이후에는 기억이 희미하다. 단지 기억나는 것은 거의 사라져가는 의식을 붙잡고서 천천히 이곳, 나의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던 기억 뿐이었다.

 어젯밤의 기억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무렵 쇠로 만들어진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살며시 고개를 돌리자 단발머리가 정만 잘 어울리는 한 남자가 비닐봉지를 든채 들어오고 있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더니 곧 비닐봉지를 탁자에 내려두고서 나에게로 다가왔다.

 "뮤리엘.."

 "이런~ 집정관님도 참.. 이런 몸인데도 움직이시려고 하시다니. 다시 붕대를 묶어야 겠군요. 간신히 막았던 상처가 도로 벌어졌어요."

 "그건 저도 방금 알게된 사실이라서 말이죠."

 "이젠 더 이상 죽어도 살아날 수 없는 몸이시면서, 조금 쯤은 자신을 위할 줄도 아셔야죠."

 "뭐, 그렇게 말씀을 안하셔도 할껍니다만은.."

 라고 말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왠지 모르게 얼굴이 뜨거워졌다고 해야할까? 그의 얼굴을 보니 왠지 그 사람을 떠올려 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상냥해서.. 그래서 언제나 상처를 입히기도, 입기도 쉬웠던 사람을 떠올려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뮤리엘은 들고온 비닐봉지에서 새하얀 붕대를 꺼내어 상처에 대었던 붕대를 풀어버리고 다시 꽉 동여맸다.

 "아야야야... 아파요."

 "그나저나 이렇게 깨어나셔서 말씀도 하실 정도라니, 역시 보통의 체력은 아니군요. 집정관님."

 "누누히 말씀하지만요. 여자에게 체력이 보통이 아니라던가, 아니면 죽어도 살아날 수 없는 몸이라던가 하는 말은 조금 실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소리죽여 웃고서는 그대로 부엌을 향하여 등을 돌리며 물었다.

 "저녁은 뭘로 해드릴까요? 카레면 좋겠죠?"

 "카레라면야.. 용서해드리죠."

 솔직히 보통체력은 아니라고 하지만, 시각은 그 사이에 마비되어 있었다. 아무래도 상처가 중하긴 한 모양이다. 느끼지는 못하고 있지만, 지금쯤 상처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로 인해서 대부분의 감각들이 마비나, 아니면 그에 준하는 상태에 달해 있을께 뻔하다. 다행히도 그 와중에 청각은 제 기능을 해주고 있었다.

 부엌이라고 생각되는 방향에서 도마에 칼 닿는 소리와 그리고 냄비 뚜껑을 여닫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들으면서 몸의 긴장을 푼채로 가만히 누워있자, 이내에 인식기관들이 제 기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희미하던 초점이 하나로 뭉쳐지자 곧 익숙한 모습이 비취었다.

 하얀 블라우스, 그리고 흰 살결과 금발, 그리고 붉은 눈동자로 나를 유심히 바라보며 싱글벙글 웃고 있는 그 모습..

 "다.. 당신이 어째서 이곳에! 으윽!"

 "아아? 뭐야? 천하의 시엘이 그런 상처에 이렇게 싸매고 누워있는 거야?"

 "시.. 시끄럽습니다! 어째서 당신이 이곳에 있는 것이죠!"

 그러자 이 하얀 흡혈귀는 고개를 갸우뚱 거리더니 곧 실실 웃으면서 일어날 뿐이었다. 왠지.. 나만 손해본 기분이지만, 그렇다고 어찌할 도리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갑작스레 감정을 앞세워서 일어났더니, 온몸에서 이전의 그 통증이 다시금 모든 것을 마비시켜 버렸다.

 "저런저런~ 집정관님 또 움직이신 겁니까? 그러면 못쓴답니다."

 부엌에 있을 줄 알았던 뮤리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하얀 흡혈귀는 내 침대에서 일어나서는 슬쩍 자리를 피해주었다. 뮤리엘은 다시금 붕대를 슬쩍슬쩍 손보고서는 곧 하얀 흡혈귀를 향해서 물었다.

 "그러나 저러나.. 어쩐 일이시죠? 알퀘이드 브륜스터드."

 "누가 들으면 싸우러 온 줄 알겠군. 사실 알려줄 것도 있고, 부탁할 것도 있고 해서.."

 "부탁이라니.. 누가 들어줄까봐서요.. 아야야.."

 절며하게 붕대를 고침으로써 나의 입을 막은 뮤리엘은 평범한 목소리로 알퀘이드를 향해서 말했다.

 "그렇다면 듣고서 생각해보죠."

 "오! 역시 말이 통하는군 단발머리!"

 "단발머리가 아니고, 뮤리엘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부르십시요."

 왠지 뮤리엘의 목소리는 상쾌했다. 아아.. 저건 분명히 내가 하는 말과 비슷한 그거다. 뭐, 이제와서 뮤리엘에게 그만두라고 해도, 저 말투는 의외로 중독성이 강해서 빠지면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저 동병상련의 동지애를 느끼면서 넘겼다.

 "일단 어제가 무슨 날이었는지는 알겠지? 너희 둘다.."

 "예. 그런데 그것과 무슨 상관입니까?"

 뮤리엘이 되물었다. 그러자 알퀘이드는 약간 뜸을 들이더니 곧 다시 입을 열었다.

 "약간 어감이 이상하지만, 죽음의 인식. 죽음의 인식이 되어있지 않았어. 분명히 이전까지는 죽음의 인식이 이뤄지고 있었는데, 그것이 지금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죽음의 인식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면 시체가 사라졌다는 말씀이신가요?"

 뮤리엘은 약간 의외라는 것처럼 입을 열었다. 가만히 있으려니 다시금 시력이 회복되었다. 아무래도 지금 내 체력은 의식과 무의식을 왔다갔다 하는 수준임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일단은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기로 했다. 탁자에는 뮤리엘이 만들었을 법한 카레가 모락모락 김을 내 뿜고 있었다. 하지만 냄새를 맡지 못한 것으로 봐서는 아직도 후각은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분명히 시체는 남아있어. 단지 단백질 덩어리가 분해되는 과정의 정보 외에는 더 이상 느껴지는 것이 없어. 그게 이상하다는 거야."

 "그렇군요. 확실히 이상하네요. 사람이 죽게 되면 그 자리에서는 그 사람의 기원을 찾을 수 있죠. 하지만 그 기원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은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거나, 아니면 시체가 사라진 경우.. 하지만 시체는 남아있다고 하셨죠?"

 "응. 확실해. 정령으로써 보장할 수 있다구."

 "그렇다면 부탁하실 것이란거.. 의외로 쉽게 유추되는군요."

 뮤리엘은 마지막에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 역시 그 부탁이라는 것에 대해서 쉽게 생각할 수 있었다. 아마도 떠도는 영혼의 강제적인 반물질화를 부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통은 악령퇴치를 위해서 사용하는 기법이긴 하지만, 교회 내에서도 이단적인 기법으로 몰려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은 이제 매장기관 이외에는 거의 없다.

 "그렇지만, 강령술로는 대화가 불가능 합니다. 어쨌든 악령퇴치 술법이니까요."

 "그런 소릴 할 줄 알았어 단발머리. 걱정따윈 접어두라고 일단 영혼만 불러온다면, 대화는 내가 할테니까."

 "..당신 자연의 정령인 주제에 조금 위험한 발언을 자주 하시는군요. 그러다가 억지력에 맞부딫히면 당신만 죽습니다."

 뮤리엘은 그다지 탐탁치 않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단지 가만히 눈을 감을 뿐이었다. 그러자 곧 뮤리엘의 한숨소리가 새어나오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뭐.. 집정관님께서도 원하신다면야.."

 "좋았어! 도움이 될때도 있구나. 이 시엘이가 말야."

 "누누히 말씀드리지만, 흡혈귀씨 따위보다야 훨씬 도움이 잘되요. 으윽!!"

 아무래도 한동안은 저 하얀 흡혈귀를 만나서는 안 될것 같았다. 안 그랬다가는 온몸의 상처가 아무는 일이란 없을듯 싶었으니 말이다.

***

 "편안한 밤이지?"

 가만히 칼끝을 내렸다. 그리고 발아래 헐떡이고 있는 마지막 점을 향해서 떨어뜨렸다.

 ......

 아무런 저항도 없이 살점을 파고들어 버린 칼끝과, 그리고 아무런 느낌없이 소멸해버린 점을 보면서 왠지 히죽 웃고 싶었다.

 "그래. 나도 참 편안한 밤이야."

 부드러운 목소리.. 어느새 바람이 불어와 흑단같은 머릿결을 살며시 휘날리고 사라진다. 그믐의 밤이 지난 아주 희미한 달빛 아래에서.. 해맑은 웃음소리가, 바람결에 흩어져 가는 듯 싶었다.

***

-月光の低い部品のあなたに(달빛 아래의 그대에게)..-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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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밥님의 댓글

♡카렌밥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예~!

시엘씨 다운 글이 탄생하셨습니다~!

 뭐랄까...  훨씬 매끄러워졌달까요. 예전에 비해 읽는게 부드러워졌습니다. 계속 읽을테니..

[카레라면....@_@.... 너무행]

(소설쓰기를 잊어버린 카렌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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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더경님의 댓글

베이더경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크어어!! 나는 언제 저렇게 매끄러워져!!! [이젠 자포자기 수준으로 글 쓴다는...]

그런데 시엘님의 글에는 아..압박적인 카레가 나오는군요. [만화를 보고 떠오른...푸훗! -퍼퍽]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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