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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식장갑 가이버 제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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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식장갑 가이버 - GUYVER THE BIOBOOSTED ARMOR -

                                                    제1화 -유니트-



"쳇, 뭔 놈의 비가 이렇게 오는지..."

비가 내리는 한밤중의 도로를 한대의 트럭이 달리고 있었다. 트럭 운전수는 밤인데다 비까
지 내려 앞이 잘 안 보이는지 연신 짜증을 냈다. 이런 날에는 아무래도 사고 위험성이 높고
그래서 평소보다 더욱더 긴장해야 한다. 안 그래도 아까 사고를 낼 뻔해서 운전사는 스트레
스가 극에 달해 있었다.

"흥, 무슨 사정인진 모르겠지만 나 아니었음 당신 비 쫄딱 맞으면서 밤새도록 걸어야 했을
거유. "

"....."

운전사는 조수석에 앉은 남자에게 말을 걸었지만 그는 아까부터 묵묵부답이었다. 여기 저기
찢어진 옷을 입고 며칠동안 제대로 씻지도 못했는지 상당히 지저분한 몰골이었다.

한시간 전쯤에 이 남자가 갑자기 도로 한가운데로 뛰어들어서 사고가 날 뻔했었다. 트럭 운
전사는 당연히 소리를 버럭 지르며 화를 냈지만 이 남자는 다짜고짜 조수석 문을 열더니만
도쿄까지만 태워달라고 하면서 현금뭉치를 내 보이는 것이었다. 꼬깃꼬깃 구겨진 지폐들이
었지만 액수가 꽤 큰데다 마침 도쿄로 가는 중이어서 그냥 태워줬었다. 그때 이후로 가끔씩
말을 걸어봤지만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도쿄에 들어왔다고 말해도 아무 반응도 없었다. 그러나, 운전사는 그가 자꾸 백미러를 쳐다
본다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게다가 상당히 남루한 옷차림하며 무엇보다 그가 지금 커다란
가방을 품안에, 그것도 아주 소중한 것인 마냥 꼭 끌어안고 있는 모습에도 주목했다. 이쯤에
서 결론은 나왔다.

"형씨, 당신....쫓기고 있지?"

"....."

"당신 가방 안에 뭐가 들었어? 하여튼 아주 소중한 물건인가 봐?"


남자가 흠칫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운전사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어때, 당신이 원하는 곳 어디라도 데려다 주지. 그러니깐 그거.....반반씩 나누는 게 어때?"

"......"

"가방 안에 뭐가 들었어? 돈? 아니면 마약? 헤헤...."


그러자 남자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건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아냐. 알아서 좋을 것 없어."

-끼이이익!!!!

갑자기 운전사가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바람에 남자는 앞으로 몸이 크게 쏠리고 말았다.
안전벨트를 매지 않았으면 앞유리에 머리를 부딪혔을 것이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남자는 크
게 당황했다. 남자가 큰 목소리로 무슨 짓이냐며 항의했다. 그런데 운전사의 얼굴은 상당히
화가 난 모습이었다. 그는 남자의 안전벨트를 강제로 풀고는 남자를 차 밖으로 내동댕이쳤
다.

"으윽!!"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남자가 고통스러운 듯 신음을 흘렸다. 갑작스러운 운전사의 태도 변
화에 남자는 어리둥절해 했다. 그러나 길게 생각할 틈이 없었다.

-퍼억!!

"이 새끼가! 감히 누굴 우습게 알아!!"

운전사가 땅바닥에 쓰러진 남자의 복부를 발로 힘껏 걷어찼다. 고통스러워하며 배를 움켜쥔
남자를 향해 운전사는 계속 발길질을 하였다. 남자의 얼굴은 곧 피투성이가 되었다. 남자는
잔뜩 웅크리면서 운전사의 발길질을 그저 받기만 하였다.

"쳇, 재수가 없을려니깐 어디서 별것도 아닌 게 나타나선 까불어!"

땅바닥에서 신음하고 있는 남자를 향해 한차례 욕설을 퍼부은 운전사는 남자가 품에 소중히
안고있던 가방을 들어 보였다. 상당히 지저분한 가방이었지만 안에 들어있는건 아마도 잘만
하면 한방에 인생역전을 이뤄낼 수 있는 물건이 들어있을 것이었다. 이제 이 트럭 운전사
생활과도 안녕 이다. 운전사는 가방의 지퍼를 열고 내용물을 도로 위로 쏟았다.

-덜커덩!

그런데 나온 물건은 돈도, 마약도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 기계장치 같은 것이 3개가 나왔을
뿐이었다. 가운데 은빛으로 빛나는 둥근 금속구가 있는 삼각형 모양의 생전 처음 보는 물건
이었다. 기대하던 물건이 안나오자 운전사는 잔뜩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야! 이게 대체 뭐...."

그러나 운전사는 말을 다 잇지 못했다. 자신의 눈앞에 뭔가 거대한 덩치 같은 게 서있었던
것이다. 어두워서 모습이 잘 안보이긴 했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은 인간이 아니었다는 것이
다. 그것이 두 눈을 번뜩이며 다가왔다. 운전사는 공포에 질려서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 떨었
다.

이윽고, 운전사의 처절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그러나 밤 늦은 이 시간에 그의 비명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늘에선 계속 비가 내리고 있었다.


**************************




여느 때와 같은 토요일 아침. 베르단디는 아침식사 준비로 분주하다. 그녀는 기분이 좋은지
연신 콧노래를 부르며 식사를 만들고 있었다. 아침 식사뿐 아니라 직장에서 먹을 점심 도시
락도 같이 싸고 있었다. 도시락은 2인분을 준비해야 했기에 양이 좀 많았다. 물론 여신인 그
녀는 음식을 먹을 필요가 없지만 직장상사인 케이의 선배 지로가 베르단디의 도시락에 푹
빠진 이후론 언제나 2인분을 준비하는 그녀였다.

이런 그녀의 모습을 케이는 응접실에서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베르단디를 처음 만난 이
후로 4년동안 매일 아침마다 반복되는 풍경이지만 케이는 그런 그녀를 보는것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그저 식사를 준비하는 것 뿐이지만 뭐랄까,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이랄까. 세상에
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를 꼽으라면, 케이는 주저 않고 베르단디가 있는 장소라고 대답할 것
이었다.

"케이! 언니를 왜 그런 눈으로 빤히 쳐다보는 거야!"

물론 케이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진 못한다. 조금만 이러고 있으면 반드시 스쿨드가 가만있
지 않기 때문이다.

"내..내가 뭘!"

"그럼 왜 얼굴은 빨개지는 건데?? 흑심이라도 품고 있는 거야?"

"그..그런 거 아냐!"

거실에서 TV를 보고있던 울드는 이런 식으로 옥신각신 하는 둘 사이를 그저 무심한 눈빛
으로 한번 쓱 쳐다보고는 다시 TV로 시선을 돌린다. 거의 매일아침 반복되는 모습이었다.
물론 아침부터 스쿨드가 좋아하는 TV프로가 방송되면 스쿨드는 케이가 뭘 하고 있던 신경
도 안 쓰고 TV에 열중하고 그 대신 울드가 케이를 놀려대는 양상이 전개되지만. 오늘은 울
드도 별로 보고싶은 프로가 없는지 그저 뉴스만 보고 있었다.

"케이씨, 식사하세요."

그 때, 녹색 앞치마를 두른 베르단디가 쟁반에 간단한 아침식사를 담아 가지고 왔다. 여느
때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반찬이지만 베르단디의 정성이 듬뿍 느껴졌다.

"그럼, 잘먹겠습니다."

케이는 웃으며 수저를 들었고 그런 그를 보면서 베르단디는 조용히 미소를 지어 보였다.


- "....경찰은 사체가 신원확인이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진 것과 현금 등 도난물품이 없는 점
등으로 미루어 단순 강도의 소행이 아닌, 원한관계나 정신이상자의 소행으로 보고 수사중
입니다."

"헤에~~ 아침부터 웬 끔찍한 뉴스라니... 살인사건이랜다. 듣자하니 여기서 별로 멀지 않은
곳인데 그래?"


울드가 가볍게 혀를 찼다. 그러자 베르단디가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사람의 생명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인데....어째서 저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
는 걸까요..."

"글쎄....이 세상은 생각보다 복잡한 거니깐 말야."

케이는 그 이상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제3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별것 아닌 일로도 사
람들은 크게 다투고 원한을 가지기도 하지 않은가. 베르단디처럼 세상 모든 사람들이 서로
를 아끼고 사랑하면 적어도 아침부터 살인사건 소식이 뉴스에 나오진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서로를 아끼는 세상, 불가능한 일일까?

"고민하고 있어봐야 소용없어."

 케이는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모두의 시선이 케이에게 집중되었다. 젓가락을 집
으며 케이는 말을 이어나갔다.

"슬퍼할 시간 있으면 그 사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는게 낮다고
봐. 어차피 이 세상은 너무 넓고 사람들은 엄청나게 많아. 게다가 그 많은 사람들이 전부 다
제각각인게 이 세상이야. 우리가 한번에 세상을 바꿀 순 없는 거야."

"케이씨...."

"인간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천천히 진화해왔어. 물론 너희 신들이 보기엔 굉장히 짧은 시
간이겠지만 인간입장에선 엄청나게 긴 시간이지. 그 옛날, 신의 참뜻도 모르면서 신의 분노
를 잠재우겠답시고 멀쩡한 사람 수십, 수백을 한꺼번에 제물로 바친다며 죽인 게 인간이야."

확실히 '신의 뜻이다'란 한 마디로 죽어간 인간들이 어디 한 두명인가.....인간이 같은 인간을
제물로 바치고 온갖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다. 그러나, 신의 뜻을 정확히 알고 있던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있었을까....

"야만적이야. 인간들은...."

"맞아, 야만적이야. 우리 인간들은...."

스쿨드가 한마디하자 케이는 쓴웃음을 지으며 긍정하였다. 그러나, 베르단디는 살며시 고개
를 흔들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 스쿨드. 인간은..."

"아니, 베르단디. 사실은 사실이야. 확실히 인간들은 그런 점이 있었어."

베르단디가 반박하려는 찰나, 케이가 그 말을 중간에 끊었다. 베르단디는 그런 케이를 안타
까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울드역시 시선은 여전히 TV에 고정돼 있었지만 귀는 케이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케이는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인간은 변하고 있어. 아주 천천히, 그러나 착실하게. 적어도 인간의 생명은 아주 소
중하다는 것만큼은. 누가 됐든 그 생명의 무게엔 차이가 없다는 걸 확실히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해. 그래서 난 인간에겐 희망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

"케이씨...."

베르단디는 그런 케이를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스쿨드 역시 그런 케이를 마치 다
시 봤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케이가 쑥스러운 듯 뒤통수를 만지작거렸다.

"역시, 대단한걸! 케이! 이 누님도 반하겠는걸?"

그때 울드가 케이의 목에 팔을 걸면서 얼굴을 밀착시켰다. 그리곤 방금 전까지 마시던 걸
케이에게 내밀었다.

"자, 그런 의미에서 이 내가 한잔 주지!"

"........아침부터 술이냐. 나 그거 마시면 오늘 출근 못해."

"오호홋! 까짓 거 제끼고 오늘은 이 울드님이랑 술이나 한잔 기울이자고!"

".........."



**************************


 
케이는 낭패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평소처럼 나왔는데 오늘따라 이상하리 만치 길이
막히고 있었다. 시간상으로 이미 지각은 확정이었다. 남은 문제는, 늦었지만 그래도 얼마나
빨리 도착할 수 있느냐 하는 거였다.

"으으....도대체 오늘따라 왜 이리 막히는 거야."

"그러게요..."

조수석의 베르단디도 근심스런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도대체 이 앞에서 뭔 일이라도 났나?"

"제가 한번 알아볼께요."

"엑? 여기서 법술쓰면...."

"괜찮아요. 간단한 거라서 들키지 않아요."

베르단디는 미소를 지어 보이곤 이내 눈을 감았다. 그리곤 뭔가 낮게 읊조리더니 베르단디
의 등에서 뭔가 튀어나가는 듯한 모습이 잠깐 비쳤다. 케이는 그 장면을 누가 봤을까 싶어
주변을 둘러봤으나 다른 운전자들의 표정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제 분신을 보낸거에요. 금방 알아낼거에요."

그러고 보니, 베르단디는 조그만 분신체를 보내는 능력이 있었다. 이전에 유그드라실이 마비
됬을때 에너지 소비를 줄이기 위해 작은 분신체를 분리시킨 적이 있었다는 걸 케이는 기억
해냈다. 그 분신일 때의 베르단디가 얼마나 귀여웠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베르단디가 뭔가를 알아낸 거 같았다.

"케이씨, 저 앞에서 경찰 분들이 도로를 통제하고 뭔가를 조사하고 계세요. 그래서 막히고
있어요."

"경찰...? 설마...."

그 사건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 살인사건. 사건이 도로 한가운데서 났으니 현장보존을 위해
도로를 통제하면 당연히 막힐 수밖에. 오늘 아침 뉴스를 봤는데도 우회로로 갈 생각을 않고
무심결에 늘 오던 길로 오고만 게 실수였다. 습관이란 과연 무서운 것이었다. 케이가 낭패스
러운 표정을 지었다. 


**************************



"너희들, 지각이야."

케이와 베르단디의 직장, '훨 윈드'에 도착하자마자 지로가 뾰루퉁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지로는 작년 케이가 대학 4학년일 당시까지만 해도 유명 이륜차 메이커에서 신차개발 프로
젝트 등을 맡기도 하는 유능한 인재였지만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과 그 동
안의 저축을 모아 자그마한 카센터 '훨 윈드'를 열었다. 본인의 말로는 '이기기 위한 바이크
가 아닌 즐기기 위한 바이크'를 만들기 위해서 라고 한다.

사실 가게의 규모는 좋게 말하자면 아담한 -대놓고 말하자면 초라한- 정도였다. 인원은 사
장인 지로 본인과 종업원인 케이와 베르단디(경리 담당)까지 전부 3명 정도밖에 안돼는 데
다 건물자체도 제대로 된게 아니라 컨테이너 박스 가져다 놓은 게 전부였다. 사실, 지로의
창업자금의 대부분은 대지 구입비로 날라갔다.(도쿄의 땅갚은 세계적으로 악명 높다. 비록
변두리 라지만) 그래서 처음엔 자금난에 시달리기도 했었다.

그래도 1년남짓한 기간동안 이쪽 업계에선 이제 이름이 꽤 알려지게 되었다. 바이크 메이커
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지로의 인맥 덕도 있지만 철저한 정비와 애프터서비스, 즉 성실함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된 것이었다. (덧붙이자면 이쪽 업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리가
있다는 소문 -물론 베르단디- 도 돌고 있었다)

"죄송해요. 오늘따라 차가 많이 밀려서요."

베르단디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였다. 지로는 가볍게 손 사례를 쳤다.

"뭘, 괜찮아. 괜찮아. 요즘 들어 도로가 많이 밀리는 건 사실이니깐 말야."

"선배, 오늘은 경찰의 검문도 있어서 특히 더 많이 밀렸다고요. 아세요? 어젯밤의 그 살인사
건."

"아! 그거! 뉴스속보에 나오더라. 근데 듣자하니 시체가 완전히 산산조각이 났다던데?"

그 다음부턴 지로의 수다. 도대체 어젯밤에 발생한 사건을 어찌 그리 자세히 아는지 모를
일이었다. 뉴스에 나온 것보다 지로가 들었다는 소문의 양이 훨씬 많았다. 사건 현장엔 사람
이라 추정되는 고기 덩어리들만 널부려져 있었다더라, 경찰의 공식발표는 원한관계나 정신
이상자라지만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견해는 아무래도 인간의 소행은 아니 라더라, 흉기가
사용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억지로 잡아 찟은것 같은데 인간으로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 라더라, 뭔지 모르겠지만 고릴라 아니 그 이상의 엄청난 '무엇'의 소행이라던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베르단디의 얼굴엔 경악과 슬픔이 더해지고 있었고 반대로 케이는 멍
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투로 케이가 말했다.

"....도대체 그걸 어디서 다 들으셨어요?"

"뉴스에서."

"뉴스엔 그렇게 자세하게는 안나왔는데요?"

"오호홋! 이 누나가 발이 좀 넓니? 여기저기 정보통이 있단다~~♡"

웃음과 오버액션으로 얼버무리는 지로를 보며 케이는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저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지로의 말중 7~80% 정도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가
는 법이다. 그것도 천리를 가고 난 이후엔 엄청나게 '살이 붙은' 상태로 도착한다. 소문이란
건 다 그런 법이다.

"그건 그렇고, 그 사건 너네 집에서 별로 멀지않은곳에서 벌어진 거 같던데? 문단속 잘하고
자야겠다. 게다가 거긴 좀 외진 데잖니. "

"아, 그건 걱정안하셔도 되요. 밤페이 군이랑 시글이 잘 지켜주고 있으니깐요."

"밤페이? 아, 그때의 그 로봇? 그런데 시글? 그건 또 뭐야?"

지로의 물음에 베르단디는 문제없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 순간 케이가 끼여들었다.

"아! 그..그건요! 최근에 기르기 시작한 개 이름이에요! 누..누가 부탁해서 잠깐 기르고 있는
커다란 늙은 개 에요! 예, 늙은 개..."

"케이씨??"

잔뜩 당황한 케이가 대충 얼버무리자 베르단디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케이를 바라봤
다. 베르단디는 케이가 왜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하지만 케이 입장에서는 거
짓말을 안할수가 없었다.

밤페이나 시글 둘다 현대 과학력을 가뿐하게 뛰어넘는 오버 테크놀로지의 산물(밤페이는 솔
직히 디자인감각은 좀 아니다 싶지만 대놓고 스쿨드에게 그런 말을 할 용기가 케이에겐 없
었다)인 것이니까 될 수 있으면 외부인 들에게 안알려지는게 좋았다. 밤페이야 지로가 한번
은 본적이 있으니 그렇다 치지만 시글은 좀 곤란했다. 현재 기술발전속도로는 먼 미래에나
등장할 법한 고차원적인 로봇 아닌가. (하는 짓거리로 봐선 그렇게 안보이긴 하지만...)

 커다란 늙은 개라고 변명한 이유는 지로의 관심을 끊기 위한 수단이었다. 조그만 개 두마
리 라고 했다간 얼마나 귀엽냐면서 달려들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로는  귀여운 거라면 사족
을 못쓰니까. 일반 도로상에선 달릴 수도 없는(도로 교통법 위반) 값비싼 레이스용 사이드카
를 단지 귀엽다는 이유만으로 사들인 지로니깐 말이다. 어쨌든 현재의 생활이 위험해 질 수
있는 일은 가급적 피해야 했다.

"자! 자! 일 시작하자고! 베르단디는 장부 정리할 것도 있을 거고, 난 정비할 것도 있고! 그
치? 아하하!!"

대충 웃음으로 얼버무리면서 케이는 베르단디의 등을 떠밀며 데스크 쪽으로 갔다. 베르단디
는 영문도 모른 채 그저 떠밀려갔고 그런 둘의 모습을 지로는 상당히 의심스럽다는 눈초리
로 쳐다봤다. 사실, 장부정리는 어제 다 끝났고 케이몫의 정비 일은 아직 없었다. 그때, 구세
주의 나팔 소리가 울렸다.

-따르르릉!!

-똑! 똑!

전화가 오는 것과 거의 동시에 문밖에서 노크소리가 들렸다. 베르단디가 전화를 받았고 지
로가 밖의 손님을 맞았다.

"네, 훨 윈드 입니다."

"어서 오세요~~ 뭘 도와 드릴까요??"

케이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한 낮의 도로 위를 대형 트럭 2대가 달려가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화물운송 트
레일러 였다. 그래서 인지 사람들은 그 차량들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다만 대형차량
2대가 한꺼번에 도로 위를 달리는 게 신경 쓰이는 몇몇 운전자들이 짜증을 좀 냈을 뿐이다.

그러나, 안에 실려있는 건 단순한 화물이 아니었다.

"도망중인 실험체가 어제 밤 이 근처에서 출몰했다는 보고다."

화물칸 안에는 검은색 유니폼을 입고 커다란 하얀색 핼맷을 쓰고 고글로 얼굴을 가린 사내
들 30명 가량이 앉아있었다. 이 들 중에서 한 남자는 조장인 듯 다른 사람들에게 상황 전파
를 하고 있었고 나머지는 묵묵히 그의 말을 듣고 있었다.

"C조의 보고에 따르면 사건 현장부근엔 놈을 찾을 수 없었다고 한다. 따라서 놈은 다른 지
역으로 이동했을 것이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할 테니 아마 이 근처의 숲속에 숨
어 있을 것이다. "

창문도 전혀 없고 단지 천장 위의 환기구가 외부 공기가 들어오는 유일한 통로인 이곳 안은
봄인데도 불구하고 찜통 같았지만 사내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조장의 목소리에 어느
순간 힘이 들어갔다.

"알았나! 우리들의 임무는 '유니트'의 탈환이다! 유니트는 전부 3개. 어떻게 해서든 전부 찾
아내라. 실험체 녀석은 말살한다! "

이윽고, 어느 산 속 도로의 갓길에 트럭이 멈췄다. 운전사가 주변을 한번 둘러보며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자 운전석에 있는 마이크로 화물칸의 사람들에게 아무도 없음을 알렸다.
그러자 트럭 뒤 화물칸의 문이 열리며 검은 옷의 사내들이 뛰쳐나왔다. 사내들은 곧 사방으
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어서 서둘러! 녀석이 누군가와 접촉하기 전에 유니트를 탈환해야 한다!"



**************************



"자! 오늘은 이만 접자."

지로가 기지개를 켜면서 말했다. 오후 4시, 훨 윈드의 토요일 일과가 마무리되었다. 토요일
엔 일을 아예 쉬거나 영업을 하더라도 2시쯤에는 마무리하는 게 보통인데 오늘따라 수리 의
뢰가 많이 들어와서 눈코뜰새 없이 바빴다. 덕분에 황금 같은 토요일 오후를 대부분 날렸다
며 지로가 투덜거렸다. 월급쟁이도 아니고 자기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 할 말은 아니었지
만 말이다.

케이와 베르단디가 가게 청소를 하면서 퇴근 준비를 하였다. 그사이 지로는 친구랑 통화하
는지 전화기를 붙잡고 깔깔거리고 웃으며 통화를 하고 있었다. 메모도 하는걸 보니 아무래
도 약속을 잡은 모양이다.

"그럼, 저 옷갈아입고 나올께요."

정리를 다 마친 후 베르단디가 탈의실로 들어갔다. 그 사이 통화를 마친 지로가 케이에게
말을 걸었다.

"흐음~~ 역시나 너 같은 녀석에겐 베르단디 같은 애인이 있다는 게 불가사의 한 일이란 말
씀이야...."

".....무슨 뜻이에요? 그거..."

"뭐, 그냥. 베르단디는 너무나 완벽한 사람이라고나 할까? 예쁘고, 상냥하고, 성실하고...."

그거야, 인간이 아니라 여신이니깐. 케이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울드나 스쿨드, 페
이오스 등이 하는 짓들을 보자면 여신이라고 무조건 다 만능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
었다.

...이런 생각을 그들 앞에서 얘기했다간 아마도 날 개구리로 만들거나 번개로 바짝 구워버리
겠지. 스쿨드 같으면 얼굴에다 바보라고 글씨를 새겨넣던가 날 밤페이의 샌드백 쯤으로 만
들어 버릴지도....잠시 개구리가 된 자신을 생각해본 케이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건 그렇고, 모처럼의 토요일인데 베르단디랑 어디 데이트 안갈 꺼야?"

"데...데이트?! 아! 그...그게 말이죠. 시간도 어디 가긴 좀 늦었고 베르단디도 피곤할 꺼구...
그리고..."

".....으휴~~ 이 답답한 총각아...."

케이가 빨개진 얼굴로 더듬거리며 대답하자 지로가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설레
설레 저으며 말했다. 순진한 것도 정도가 있지, 어떻게 이런 녀석이 베르단디 같은 여자를
얻었는지 불가사의 할 지경이었다. 이런걸 보고 있자면 '용감한 자가 미인을 얻는다'란 말이
꼭 100% 맞는 말은 아니다라는 생각도 들 지경이었다. 지로가 케이의 양어깨에 손을 짚으
며 말했다.

"그럼 넌 먹고, 자고, 일하러 오고 이런 것만 반복해대면 베르단디가 행복해 할거라 생각했
어? 가끔씩은 말이지....둘이 색다른 대로 놀러도 가고 그래야하는거야!"

"아..아니 그런 건 아니지만...."

"데이트란 것의 의미를 너무 크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단 말야. 너란 녀석은 말.이.야! 어디
값비싼 레스토랑이나 엄청 멀리 떨어진 커다란 유원지나 복잡한 시내 중심가에서 쇼핑을 해
야 하는 게 아니란 말야! 시간? 꼭 이른 아침부터 시작해야 하는 게 데이트는 아니라구! 남
는 자투리 시간을 둘이 같이 즐겁게 보내면 그게 데이트지 뭐야!"

"...."

지로의 속사포 같은 말을 케이는 얼굴을 붉힌 채로 그저 듣기만 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었다. 정말 자신이 데이트란 것의 의미를 너무 크게 생각한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었다. 뭐 꼭 엄청난 빅이벤트가 있어야만 데이트는 아니지 않은가.

"흐으응~~ 근데 지금은 4시 반 넘었단 말이지....어디 놀러가긴 확실히 시간이 부족하구....좋
아! 이 누나가 좋은 델 소개시켜주지!"

"네?! 어디, 어딘데요??"

"여기서 가까우니 가는 시간도 절약되고, 그러면서 둘이 조용히 분위기 잡기도 딱 좋고, 멋
진 풍경까지 있는 스페셜한 곳이 있지! 돈도 안들어!"

"......네! 그래서요?"

"학교 뒤쪽에 숲있지? 그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호수있는거 알지? 바로 거기야!"

"......."

어디 멋진곳인줄 알았는데 막상 듣고나니 케이는 다소 실망하였다. 거기라면 케이도 알고
있다. 묘실 공대 뒤쪽 항공학부로 가는 도로로 가다보면 빠지는 길이 있는데 그 길로 들어
서면 호수가 하나 있다. 그렇게 큰 호수도 아니고 무슨 특색이 있는 곳도 아니다. 접근성도
그리 좋지 않다. 걸어가기엔 확실히 먼데다 오토바이로 간다고 해도 근처까지만 간 다음에
호수 근처 도로에 세워두고 숲속을 걸어 들어가야 한다. 제대로 된 인도같은건 없기 때문에
걷는 게 좀 힘들다. 이래저래 인기가 있는 데이트 코스라 하긴 글른 곳이다 보니 묘실 공대
출신이라도 이 호수의 존재를 끝까지 모르고 졸업하는 경우는 흔했다. 케이의 얼굴에 실망
하는 빛이 역력히 드러났다.

"흐응~ 너 지금 실망하는 것 같은데 말야....넌 그곳의 진가를 저~언혀 모르고 있어! 거기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하나있지!"

"...아, 그런가요?"

케이는 별로 기대 안 한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케이의 표정 따윈 무시한 체로 지
로는 마치 엄청난 비밀을 얘기하는 것마냥 들뜬 체로 얘기하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남녀가 토요일 저녁, 그곳에서 지는 해를 보고 있으면 평생 잊을 수 없는 엄청난
일이 생긴다는 거지! 어때? 멋지지 않아?"

분명, 방금 지어낸 말일 것이다. 그 호수의 존재야 케이도 알고 있었지만 그런 얘기는 들어
본 적도 없었다. 케이가 별 반응이 없자 지로가 뚱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뭐야...그래서 가기 싫다 이거야? 그냥 집에 가서 밥이나 먹고 잠이나 자겠다, 이거니?"

"아니...그게 아니라..."

"어딜 가는데요?"

그때 옷을 다 갈아입은 베르단디가 탈의실에서 나왔다. 전체적으로 푸른색의 화사한 원피스
를 입고 나온 그녀는 오늘따라 더욱더 아름다워 보였다. 그런 베르단디의 모습을 본 지로가
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베르단디~ 오늘 케이가 분위기 좋은 곳으로 널 데리고 가겠대. 아이, 베르단디는 참 좋~겠
다!"

"아아, 그래요? 그럼 지로 씨도 같이 가실래요?"

"......"

가끔씩 지로는 베르단디의 행동이 이해가 안갈 때가 있었다. 아니, 도대체가 데이트 장소에
제3자 더러 같이 가자고 하다니? 순진하다고 해야 하나? 아님, 정이 많다고 해야하나? 아니
면....

"아하하, 이 내가 거길 뭐하러 가? 두사람 훼방 놓고 싶지 않으니깐 둘만 가서 오붓한 시간
보내라고."

"훼방...을 놓는다고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

분명 단어의 뜻을 모르는 건 아닐 꺼다. 그래, 무슨 단어인지 모르는 건 아닐 꺼다. 설마, 아
닐 꺼야. 지로는 머리 속이 점점 더 복잡해지는 듯 하였다.

"어쨌든 난 따로 약속도 있고 그리고 그 장소는 꼭 둘만이 가야 하는 곳이야. 어딘진 케이
에게 물어봐."

그렇게 말하며 지로는 케이에게 가볍게 윙크를 해 보였고 베르단디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
정으로 케이를 쳐다봤다. 그리고 케이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가게문을 닫으며 케이와 베르단디는 지로에게 가볍게 인사를 하였다. 둘의 인사에 간단하게
답한 지로가 케이에게 윙크를 하며 말했다.

"케이, 잘해보렴."

"....."

대체 뭘 잘해보란 건지. 하긴, 별다른 대안도 없었다. 모처럼의 토요일인데 시간은 부족하고
결정적으로 돈도 없다(...). 그렇다고 이대로 그냥 집에 들어가면 어디 갈지 잔뜩 기대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베르단디가 실망할 지도 모른다. 게다가, 저녁놀이 지는 호수가....어딘가 낭
만적인 데가 있지 않은가. 지로선배가 얘기한 전설같은거야 믿지도 않지만.

"자, 그럼 가볼까? 베르단디. 잠깐 어디 들렸다 가자."

"네, 케이씨."

베르단디가 살짝 미소지으며 대답했고 그런 그녀의 얼굴을 본 케이는 조금 쑥스러워했다.
베르단디가 조수석에 오르자 케이가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부르르릉!!!



**************************




"하아...하아..."

녀석들이다. 분명히 녀석들이 왔다.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어젯밤 그곳에서 상당
히 멀리 떨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녀석들은 벌써 여기까지 왔다. 남자의 마음은 점점 초조해
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 검은 유니폼의 남자들이 여기저기 뒤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꽤 많은 인원이 온
것같아 보였다. 남자는 수풀 속에 몸을 숨겼다. '놈들'이 여기까지 수색하고 있는 이상 섣불
리 움직이는 건 위험했다. 차라리 숨어 있다가 밤에 이동하는 게 더 안전했다. 그때까진 들
키지 않기를 비는 수밖에 없었다.

"....."

남자가 웃옷주머니에서 작은 사진 한 장을 꺼내보았다. 남자와 어떤 여성이 한명 나란히 서
있고 그들의 앞에는 귀여운 여자아이하나가 해맑게 웃고 있었다. 그 남자의 가족사진인것
같았다. 남자의 얼굴에 슬픈 표정이 나타났다.

'돌아갈 꺼야...반드시 너희들 곁으로! 원래의 몸으로 돌아가서....!!'

이 근처였다. 약속장소는 바로 이 근처에 있었다. 이제 골인지점이 눈앞에 있었다. 도착만
하면 자유와 행복이 기다리고 있는 골인지점이.... 그리고 이 저주받을 몸을 원래대로 고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곳이었다.

그 남자는 약속했다. 이 물건들을 빼돌려서 자기에게 갖다주면 반드시 원래의 몸으로 되돌
려주겠다고.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려보내 주겠다고. 이 물건을 빼돌리는 건
상당히 위험한 일이었다. 이것을 빼돌릴 당시 같이 협력했던 동지들은 모두 그 놈들 손에
죽었다. 이제 남은건 그 혼자였다. 가족들을 위해서, 그리고 함께 행동하다 비참하게 죽어간
동지들을 위해서라도 여기서 잡힐 순 없었다.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이었다. 무슨 커다란 통속에 억지로 쳐 넣어진 후 곧바로 정신을  잃
었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이런 끔찍한 몸이 되있었다. 지옥에나 있을법한 흉한 괴물로
되는 몸이....

변신할 땐 그는 거의 이성을 잃어버렸다. 뭐든지 부수고 싶었고 누구든지 찢어 죽이고 싶었
다. 주체할 수 없는 분노가 그의 정신을 지배했다. 하지만 기억만은 선명하게 남았다. 자신
이 무슨 짓을 했는지에 대한 기억만은 아주 선명하게.... 그리고 그 기억은 밤마다 그 남자를
괴롭혔다. 그런 자신을 그들은 그저 실험용 흰쥐로만  취급하였다. 이런 저런 약물을 주사하
고 툭하면 '조제통' 속에 처넣었다. 그럴 때마다 남자의 몸과 마음은 엉망이 되어갔다.

어젯밤 트럭 운전사도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운전사에게 실컷 얻어맞고 그가 '그
물건'에 손대는 것을 보자 그의 마음을 분노가 지배하기 시작했었다. 그리곤 곧 이성을 잃
었고.... 다시 이성을 되찾았을 때 그 운전사는 형체를 알아볼 수가 없을 정도였다.

"...크...크으으윽!! 크흐흑!!!"

남자는 수풀 속에서 머리를 감싸쥐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




"와아~~ 이런 곳이 있었네요. 정말 멋져요."

호수에 도착하자 베르단디가 탄성을 질렀다. 저렇게나 베르단디가 좋아하는 걸 보니 역시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케이는 역시나 이 호수 자체는 별로 라는 생각이 들
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이제 슬슬 해가 지기 시작하면서 저녁놀이 호수 위를 붉게 물들이는
광경은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여기 몇 번 와본적이 있는 케이도 이 시간
대엔 한번도 온 적이 없었다.

둘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베르단디가 샌드위치 가게에서 사온 음료와 샌드위치
종류를 펼치기 시작했다. 베르단디가 직접 만든 것이 더 맛있지만 아무런 계획 없이 즉흥적
으로 온 것이라서 음식을 만들 여유같은건 없었다. 문득, 케이는 베르단디에게 미안한 마음
이 들었다.

"저기...베르단디."

"네. 케이씨"

"미안. 좀 더 좋은 곳에 데려다 주고 싶었는데 당장은 여기밖에 갈데가 없네.... 돈도 없고."

둘이 같이 벌고 있음에도 케이네의 생활이 별로 나아지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돈은 전혀
벌 생각이 없으면서 이래저래 돈 쓰는 일은 많은 두 '식객'이 집안에 존재하니까. 울드의 취
미라 할 수 있는 음주를 위해 매달 나가는 술값도 있고, 약 제조도 무시 못한다. 천계에서
가져와야 하는 약재가 대부분이지만 가끔 인간계에서도 조달하니깐. 문제는 이렇게 돈을 들
여 만든 약들이 영 신통찮다는 거다. 가장 큰 지출은 스쿨드가 기계 발명에 들이는 각종 부
품 값과 전기세였다. (요즘은 자가 발전기 덕에 전기세가 다소 줄긴 했지만) 그리고 케이의
바이크 유지비 역시 꽤 되는 편이다. 베르단디가 꼼꼼히 돈 관리 안 했더라면 아마도 진작
에 파산 했을 것이다.

"아니에요, 케이씨. 여기도 아주 멋진 걸요. 오늘 이런 곳에 데려와주셔서 전 너무나 기뻐
요."

"그래도...."

"크고, 화려하고...그런 것만이 행복은 아니에요."

베르단디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마치 뭔가를 느끼려는 듯이.

"케이씨, 느껴지세요? 여기 넘쳐나고 있는 생명의 기운들이..... 크기에 상관없이 열심히 생을
살고 있는 여러 생물들, 바람이 생명을 실어 나르고 있는 궤적, 잔잔한 호수의 평화로운 모
습, 그리고 하루를 마감하며 우리 모두에게 아름다운 빛을 보여주고 있는 태양...."

"....."

"여기엔 그 모든 것들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조화를 이뤄내고 있어요. 그리고 평화로워요.
정말 마음이 평온해지는걸 느껴요. 이런 곳을 보여주셔서 고마워요, 케이씨."

베르단디는 눈을 뜨며 케이를 향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케이의 얼굴은 대번에 새빨개
졌고 시선을 어디다 둬야할지 몰라 허둥댔다.

"왜 그러세요?"

"아, 아니...아무 것도 아냐."

케이는 여전히 쑥스럽다는 표정을 짖고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케이는 살며시 베르단디의
손을 잡았다. 베르단디의 얼굴엔 계속 미소가 맷혀있었다. 언제 잡아도 따뜻한, 그리고 포근
함을 느낄 수 있는 손.

"고마워, 베르단디.....네 덕에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볼 수 있었고 언제 어디서든 행복을 느
낄 수 있게 되었어...."

"아니에요, 그것은 전부 다 케이씨의 마음이에요."

"난, 항상 너에게 고마워하고 있어. 이렇게 네가 내곁에 있게 된건 내가 무심결에 던진 소원
때문이지만, 다시 한번 그 때가 온다해도 난 주저앉고 똑같은 소원을 말할거야..."

베르단디의 얼굴에 약간의 홍조가 띄었다. 그녀의 손을 잡은 케이의 손에 약간의 힘이 들어
가기 시작했다. 마치 용기를 내려는 듯이. 그래, 여기서라면 할 수 있을 거야. 평소의 케이라
면 부끄러워서 입안에서만 맴돌 말, 그러나 오늘만큼은 반드시 말하리라. 케이의 심장은 거
칠게 뛰기 시작했다. 약간 더듬거리면서 케이가 말하기 시작했다.

"베르단디....난 이 세상에서....너를....제일 좋아....."

"잠깐!! 거기까지!!!!!!"

-부와왕!!

그때 숲속에서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깜짝 놀란 케이와 베르단디가 숲쪽으로 고개를 돌렸
다. 거기엔 험지 주행모드로 변형한 밤페이를 타고 있는 스쿨드가 있었다. 스쿨드의 얼굴은
왠지 모르게 화가 나있었다. 사실 이유는 뻔했지만 지금 그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으윽!....스쿨드!"

"어머, 스쿨드도 왔구나. 어서 와."

베르단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지만 케이는 도저히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좌절모
드 였다. 분위기가 한참 무르익은 상태였는데! 베르단디에게 말할 수 있었는데!! 어떻게 결
정적인 순간에 튀어나올 수 있는가.

"언니에게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거야! 이런 으슥한 곳으로 언니를 데려오다니!! 케이는 음흉
해!"

밤페이에서 내린 스쿨드가 다짜고짜 케이에게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안 그래도 기분 최악
인데 저런 소리까지 듣고있자니 케이는 점점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스쿨드가 왜 저런 행동
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베르단디는 그저 멀뚱히 쳐다만 볼뿐이었다.

".....내가 뭘 어쨌다고...그저 베르단디랑 산책 좀 온거 뿐인데..."

"산책을 이런 으슥한 데로 와?! 뭔가 속셈이 있는 거야!"

"...그 보다, 여긴 대체 어떻게 온 거야?"

"부품 사러 시내에 나갔다가 케이 바이크를 봤어. 그런데 절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더라고.
그래서 뭔가 위험한 생각이 들어서 몰래 미행했지!"

아, 그랬던 거군. 그런데 계속 듣자하니 기분이 점점 나빠졌다. 이건 뭐 딴사람이 들으면 케
이가 파렴치범에 납치범쯤으로 오인될 만한 발언들뿐이었다. 그렇다고 화를 낼수도 없고....
케이는 그저 한숨만 푹 내쉬었다.

"스쿨드, 여기 너무 좋단다. 케이씨 덕에 오늘 처음 와봤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야.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응? 으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베르단디가 웃으며 스쿨드에게 말하자 스쿨드는 얼떨결에 대답했다. 사실 언니를 케이로 부
터 지키겠다는(?) 일념 하나로 달려온 그녀에게 풍경같은게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스쿨드가 베르단디 품안에 파고들며 어리광을 부렸고 베르단디는 그런 스쿨드의 머리를 살
며시 쓰다듬으며 미소짓고 있었다. 고백 직전에서 방해를 받고 지금은 아예 베르단디를 스
쿨드에게 뺏긴(?) 처지가 된 케이는 완전히 참담한 심정이 되었다. 땅이 꺼져라 한숨이나
푹 내쉬는 케이였다.

"그래, 언니가 가서 아이스크림좀 사올께. 여기서 좀 놀다가 집에 가자. 스쿨드."

"와! 언니 최고!"

"그럼 케이씨, 잠깐 다녀올께요."

"...아 그래. 잘 다녀와."

그렇게 말하며 베르단디는 바이크를 세워둔 곳으로 걸어갔다. 물론 그녀가 바이크를 몰고
갈 건 아니었고 백미러를 통해서 공간이동으로 갔다 올려는 것이다. 도착지점에서 누군가에
게 들킬 가능성도 있지만 빨리 갔다올 수있고 무엇보다 인간세상에서 4년씩이나 있은 베르
단디였다. 법술사용장면을 들키면 안 된다는 것 정도는 진작에 알고 있던 만큼 인적이 뜸한
곳의 유리나 거울 등에서 나올 것이다.

베르단디가 숲속으로 사라지자 호숫가엔 케이와 스쿨드, 그리고 밤페이만이 남았다. 뻘쭘해
진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호수만 쳐다보고 있었다.

"...정말이지 한시도 맘을 놓을 수 없다니깐."

"내가 무슨 파렴치범이냐....하아, 이번에야말로 말할 수 있었는데...."



**************************




남자는 계속 수풀 속에서 웅크리고 있으면서 흐느끼고 있었다. 그때 근처에서 뭔가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찾았다! 여기다, 여기!!"

'아차!!'

수풀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남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들켰다! 남자는 재빨리 수풀 밖으로
튀어나갔다. 그 때 남자의 앞에 뭔가가 불쑥 나타났다.

"헉!"

검은 유니폼을 입은 사내 두사람이 재빨리 남자의 앞을 막아섰다. 이윽고 십여명 정도의 인
원이 남자를 완전히 포위하였다. 남자의 얼굴엔 낭패감과 공포감이 함께 나타났다. 퇴로가
완전히 막힌 것이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약속장소까진 얼마 안 남았는데!
저 많은 인원을 뚫고 나갈 가능성 같은 건 없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것 같았다. 남자는
가방 속으로 손을 집어넣고 '그것'의 스위치를 눌렀다.

"어디까지 갔나 했는데....겨우 여기냐? 실험체 No.281?"

"....실험체라고?? 닥쳐!! 난, 난 그따위 숫자가 아냐! 내 이름은 야마오카 쇼우지다!"

검은 유니폼의 사내들은 그의 말은 들은 체도 안하고 점점 사방에서 조여오고 있었다. 야마
오카란 남자의 등뒤는 거대한 흙벽. 더 이상 물러설 장소는 없었다. 야마오카가 결단을 내렸
다.

"...으으으! 으아아아악!!!! 크아악!!!"

야마오카의 입에서 인간의 것이 아닌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곧
이어 야마오카의 눈이 붉게 충혈 되면서 입에서 송곳니가 무섭게 자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의 옷 여기저기가 찟어지기 시작했다.

"카아악!!"

야마오카의 덩치가 점점 커짐과 동시에 그의 얼굴은 원래의 인간의 얼굴과는 완전히 다른
흉측한 괴물의 모습이 되었다. 몸의 피부는 마치 인간의 근육조직이 외부로 노출된 듯한 모
습을 띄게 되었다. 변신이 완료되자 그의 키는 2m이상 커졌다. 덩치도 변신전의 호리호리한
모습이 도저히 상상이 안될 정도였다.

그러나 검은 유니폼의 사내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 일부는 오히려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이
었다. 사내들 중에서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다들 물러서."

그는 핼맷을 벗었다. 그런데 핼맷을 벗은 그의 눈 역시 붉게 충혈되 있었다. 이윽고 그의 옷
여기저기가 찟어지기 시작하면서 덩치가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피부는
초록색으로 변해가기 시작했으며 이마부분에서 앞으로 길게 뿔이 자라기 시작했다.

변신이 완료되자 그 역시 엄청난 크기의 괴물이 되있었다. 그것도 야마오카보다 한층 더 큰
거구를 자랑하는 괴물이. 야마오카가 위압감을 느낀 듯 뒤로 주춤거렸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녹색의 괴물이 말했다.

"자, 그럼 한번 놀아볼까? 실험체."

"....크..크아악!!"

야마오카가 자신보다 큰 녹색 괴물에게 달려들었다. 야마오카는 그 괴물을 향해 주먹을 힘
껏 내질렀다. 그러나 괴물은 그의 주먹을 한 손으로 간단히 잡았다. 자신의 주먹이 막히자
당황한 야마오카는 반대쪽 주먹을 그 괴물의 얼굴을 향해 날렸다. 그러나 그것마저 막혔다.
결국 서로 힘겨루기 자세처럼 손을 맞잡은 모양이 되었다. 녹색 괴물이 가소롭다는 듯 말했
다.

"크크크, 겨우 이 정도냐? 좀 더 힘을 내보란 말이다!!"

녹색 괴물이 양팔에 힘을 주기 시작하자 야마오카는 자신의 팔에 엄청난 부담이 걸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도저히 감당이 안돼는 엄청난 힘이었다. 녹색 괴물은 여유 있게 야마오카를
밀어붙이며 앞으로 전진하기 시작했고 그는 결국 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등이 흙벽
에 닿았다. 이젠 더 물러설 수도 없었다.

"지옥으로 보내주마! 애송아!!"

-콰직!!

녹색괴물이 힘을 주자 야마오카의 양팔이 부러져 나가며 대량의 피와 함께 뼈가 밖으로 튀
어나왔다. 그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캬아아아아!!!!"

"으하하하!!!"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잔인하게 웃던 녹색괴물이 그의 얼굴을 거대한 손으로 덮었다. 그리
고는 손아귀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야마오카가 고통스러운 듯 버둥거렸다.

"실험체주제에 완성체인 날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느냐!!"

바로 그 때!


**************************



-콰아앙!!!

"뭐, 뭐야!!"

케이와 스쿨드의 뒤편 숲쪽에서 엄청난 폭발음이 들려왔다. 놀란 두 사람과 밤페이가 뒤를
돌아보자 그 쪽 방향에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다. 폭음에 놀란 듯 새들이 일제히 날아
오르는 것도 보였다.

"무..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스쿨드가 당황해하며 물었지만 케이 역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도리가 없었다. 도심
한가운데도 아니고 뭐 특별한 것도 없는 숲 한가운데서 폭발이 일어날 리가 없지않은가.

-퉁!

"꺅!"

그때 두사람의 앞에 뭔가가 떨어졌다. 갑작스럽게 뭔가 커다란게 떨어지자 스쿨드가 비명을
질렀다. 폭발당시 생긴 파편일까? 케이는 떨어진 물체를 쳐다봤다.

"응? 저게 뭐지?"

그런데 떨어져온 물체는 파편이라 보기엔 좀 이상하게 생겼다. 푸른색의 삼각형 물체였는데
가운데엔 은빛의 금속구가 박혀있는, 무슨 기계장치 같아 보였다. 케이와 스쿨드, 둘 다 처
음 보는 물건이었다.


**************************



"실험체 녀석이 폭탄을 숨기고 있었던 듯 합니다."

검은 유니폼의 사내들중 한 명이 헬멧에 달린 마이크로 어딘가에 계속 보고를 올리고 있었
다. 그의 뒤편으론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해하는 나머지 사람들과 부상을 당했는지 무릎을
꿇고있는 녹색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야마오카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단지 괴물의 바
로 앞에 야마오카였을것으로 추정되는 시꺼멓게 그을린 시체만 한 구 엎어져 있을 뿐이었
다.

"가까이 있던 그레골은 폭탄이 터지면서 부상을 당했습니다. 생명에 지장이 있다거나 한건
아닌데, 다만 변신기능이 망가져서 전투형태를 풀지 못하고 있습니다."

남자의 보고는 계속됐다. 보고를 하는 그도 무척 당황스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문제의 유니트 말인데....그게 폭탄이 터지면서 다 어디론가 튕겨져 날아간 듯 합니
다. 우선 바위에 부딪혀 떨어진 한개를 회수하긴 했는데 표면에 약간의 손상이 있는 듯 합
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보고를 마친 남자가 주변의 다른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다들 아직도 우왕좌왕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남자가 한심하다는 듯 크게 외쳤다.

"이 멍청이들아! 지금 뭣들하고 있냐! 빨리 흩어져서 나머지 유니트를 찾아! 사람들이 곧 몰
려올지도 모른단 말이다!"



**************************




아까의 폭발후 날아온 물체를 스쿨드는 호기심이 발동한 듯 이리저리 돌려보고 있었고 그런
스쿨드의 모습을 케이는 약간 불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봤다.

"흐~음. 겉의 이 금속재질은 좀 특이한 걸? 무슨 금속인지 잘 모르겠어. 철은 확실히 아니
고...언뜻 보면 플라스틱 같다는 느낌도 들지만 확실히 그건 아냐. 폭발에도 견딘 거 보면 내
구성은 확실한 거 같고....속의 물질은 대체 뭘까?"

"스...스쿨드! 그거 빨리 내려놔. 그러다가..."

"가만 좀 있어봐. 살펴보는 중이잖아. 흐음....말랑말랑 한게 무슨 쿠션같은 걸까? 안에 든 뭔
가를 보호하려고? 그럼.... 가운데 있는 이 금속구는 무슨 스위치 같은 걸까? 이걸 누르면 열
리는 걸 꺼야."

스쿨드가 가운데 은빛으로 빛나는 금속구를 누르려고 하자 기겁한 케이가 달려들었다. 그리
고는 스쿨드에게서 그것을 빼앗으려고 하였다.

"위험하다니깐! 그만 보고 내려놔!"

"아앙! 무슨 짓이야! 분석 중이란 말야!"

마치 재밌는 장난감을 안 뺏기려고 발버둥치는 아이처럼 스쿨드가 투정을 부리며 그것을 꽉
쥐었다. 아무래도 위험한 물건 같다고 판단한 케이는 스쿨드에게서 그것을 빼앗기 위해 힘
을 주었다. 그렇게 두사람이 옥신각신 하는 도중 케이가 가운데 금속구에 손을 대었다. 그러
자 금속구가 안으려 밀려들어갔다. 뭔가 스위치를 누른 것 같은 감각에 케이가 깜짝 놀라며
그것에서 손을 떼었다.

"스..스위치 같은 걸 눌렀어..."

"에엑?! 케이 바보! 신중하게 분석한 후 눌러봐야 하는 건데!!"

스쿨드가 그 기계장치를 쳐다봤다. 그런데 그 장치에 뭔가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가운데
밀려들어간 금속구 주변 테두리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빛의 세기가 점점 더 강해지기 시
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파악한 스쿨드가 긴장한 표정으로 그 장치에 얼굴
을 바짝 갖다대었다. 그러자 안에 쿠션 같은 것들에도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쿠션'
이라 생각되는 것들이 꿈틀거리며 움직이고 있었다!

"꺄아악!"

깜짝 놀란 스쿨드가 그것을 휙 던졌고 케이는 엉겁결에 그것을 받아들었다. 케이에게도 역
시 안쪽의 쿠션 같은 게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것은 쿠션이 아니다. 마치 서로 엉
켜있던 뱀들이 스르르 풀리는 것 같은 이 모양은....혹시 이것은 생체조직?

그때였다.

-파앙!!

큰 소리가 나면서 기계장치 겉부분의 금속판들이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그리곤 안쪽에 있던
생체조직이 바깥으로 튀어나오면서 가장 가까이 있던 케이를 덮치고 말았다.

"으아악!!"

"꺄아아악!!!"

생체조직은 곧 케이의 전신을 휘감았고 전혀 의외의 사태에 놀란 스쿨드가 계속 비명을 질
렀다. 생체조직은 케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신을 모두 휘감았다. 생체조직이 케이를 바짝
조이는지 케이가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숨을....숨을 쉴 수가 없어....'

케이는 전신이 뭔가로 조여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또한 뭔가가 몸안으로 들어오는 듯한 느
낌도 들었다. 귀나 입, 코, 피부의 땀구멍에 이르기까지......전신의 모든 구멍으로 뭔가가 스
며들어오는 느낌.

"케...케이!!"

겁에 질린 스쿨드가 케이를 불러봤지만 케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사이 기계장
치의 중앙에 있던 금속구가 케이의 이마라 생각되는 부위로 이동하여 자리를 잡자 푸른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생체조직 여기저기서 푸른색의 점액을 내뿜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
에 단순히 케이의 몸을 휘감고만 있던 생체조직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이마의 금속구
를 중심으로 머리 양옆과 복부에 또다른 금속구들이 튀어나오고 머리에선 기다란 뿔이 생기
기 시작했다. 양팔에도 기다란 돌기가 생기는 등 무질서하기만 한 아까의 모습과는 달리 확
실히 어떤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는 인상이 들었다.

"케이! 괜찮아? 케이!!"

스쿨드는 여전히 겁에 질린 듯한 목소리로 애타게 케이를 불렀지만 그는 여전히 대답이 없
었다. 그 때 케이의 눈이라 추정되는 부분이 열렸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아주 새빨간, 눈이
라 생각되는 부분. 그것을 본 스쿨드는 더욱더 공포에 떨었다. 그 때 케이의 목소리가 들렸
다.

"스...스쿨...드..."

"케...케이!!"

"..도...도와 줘...도와 줘...!"

케이가 괴로운 듯한 목소리로 말하며 스쿨드에게 다가갔다. 겁에 질린 스쿨드는 뒤로 주춤
거리며 물러섰고 그런 스쿨드의 모습에 위험을 느낀 밤페이가 봉을 들고 케이의 앞을 막아
섰다. 케이가 스쿨드에게 계속 다가갔다.

"...도..도와....으...으아악!!"

갑자기 케이가 머리를 감싸쥐며 비명을 질렀다. 그런 케이를 스쿨드는 그저 바라만 볼 수밖
에 없었다.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듯 케이가 크게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베..베르...단디!!"

케이는 무의식적으로 베르단디를 찾았다. 그 때 비틀거리던 케이가 그만 발을 헛디디고 말
았고 중심을 잃은 그의 몸은 그대로 물 속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풍더엉!!

"케이!!"

그 모습을 본 스쿨드가 호수가로 달려가 물 속을 들여다봤지만 수면 위의 파문 때문인지 아
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스쿨드는 울먹이며 계속 케이를 불렀다.



**************************



"케이 씨?"

그 때, 스쿨드에게 줄 아이스크림을 사러 시내에 나온 베르단디는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
다. 방금 케이가 자신을 부른 듯한.....그것도 아주 애타는 목소리로....그녀의 마음속에 불안감
이 번지기 시작했다.


"손님, 전부 다 계산해서 5,700엔 입니다. 손님?"

"....."

"저, 손님??"

"네? 아, 죄송합니다. 얼마죠?"


서둘러서 계산을 마친 베르단디는 도망치듯이 가계를 빠져나왔다. 그리곤 서둘러서 가까운
골목으로 뛰기 시작했다. 늘 갖고 다니는 콤팩트의 거울로 공간이동을 시도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케이의 신변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 같았다. 베르단디의 마음이 점점더 급해지기
시작했다. 

'케이씨! 제발 무사하세요!'



**************************



"케이! 어떻하지, 어떻해!!"

스쿨드는 잔뜩 당황한 체로 그 자리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고 그런 스쿨드를 보며 밤페
이도 덩달아 당황한 듯 머리를 이리저리 회전하고 있었다. 자신이나 밤페이가 들어가 꺼내
줄 수 있다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였다.

그 때, 숲쪽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밤페이가 경
보를 울렸고 그러자 스쿨드가 숲쪽을 보며 소리쳤다.

"언니! 언니야? 케이가!"

그러나, 숲에서 나온 것은 베르단디가 아니었다. 검은 유니폼을 입고 고글과 헬멧으로 얼굴
을 가린 십여명의 사람들, 그리고 거대한 .....녹색 괴물!

"...!!"

충격적인 광경을 본 스쿨드는 다리가 풀린 듯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괴물을 마족으로
판단한 밤페이가 재빨리 스쿨드의 앞을 막아섰다. 스쿨드들을 본 남자들이 혀를 찼다.

"쳇, 들키고 말았군. 차라리 그 자리에 가만있지 그랬어."

"시끄러, 어차피 그 자리에 있었어도 누군가에게 들킬 상황이었다고."

괴물이 퉁명스럽게 대꾸하자 스쿨드는 더욱 더 놀랐다. 괴물이 말을 한다니!

"뭐, 할 수 없지. 그레골.....저 계집애를 죽여."


그러자 '그레골'이라 불린 녹색 괴물이 스쿨드에게 성큼성큼 다가가기 시작했다. 스쿨드의
얼굴은 아주 새파래졌고 밤페이는 가까이 오지 말라는 듯 그레골에게 봉을 들이대며 위협하
였다. 그러자 그레골이 코웃음치며 말했다.

"흥, 어디서 고철 따위가! 둘다 완전히 끝장을.....응?"

그 때 갑자기 그레골이 걸음을 멈추며 뭔가를 바라보았다. 주변의 다른 사내들도 뭔가를 보
고 놀란 듯한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그런 모습들을 본 스쿨드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뭔진
모르겠지만 자신이나 밤페이를 보고 놀란 건 아니었다. 그렇다면...? 스쿨드는 고개를 뒤로
돌렸다.

"!!"

그러자 자신의 등뒤에 서있는 '무엇'이 보였다. 그것은 보통사람 정도의 키였고 머리위로는
긴 뿔이 나있었다. 그리고 하늘색의 피부.... 아니 피부라기 보단 갑옷을 입고 있는 듯한 모
습, 그리고 이마에 있는 원형의 금속부분에서 푸른빛이 계속 빛나고 있었다. 스쿨드는 그 금
속구가 상당히 신경 쓰였다. 마치 어디선가 본 듯한 모양이었다.

-푸슈우욱!!!

입이라 생각되는 조그만 금속구 양옆의 작은 돌출부에서 공기가 빠져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래도 그곳은 공기흡입구 인 것 같았다. 스쿨드는 이 모든 상황이 전혀 이해가 가질 않
았다.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숲에서 나온 저 수상한 사람들과 저 괴물은 뭐고 갑자기
자신의 등뒤에서 나타난 이건 또 뭐란 말인가. 밤페이 역시 갑자기 나타난 수수께끼의 물체
(사람인지 아닌지도 알 수가 없었다)가 적인지 아군인지 판단할 수 없어서 혼란스러워 하고
있었다.

그 '수수께끼의 인간형 물체'가 주변을 한번 둘러보더니 그레골 앞에 성큼성큼 다가가기 시
작했다. 마치 별것 아니라는 듯이. 그리곤 자신보다 몇 배는 거대한 그레골의 바로 앞에 섰
다. 그러자 그레골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하!! 이건 또 뭐야! 나랑 한번 해보자 이거냐?"

그레골이 주먹을 쥐고 그 물체 앞에 위협하듯 흔들어 보였다. 그레골의 주먹은 그 물체의
머리보다 더 커 보였지만 그것은 전혀 위축되는 모습이 없었다. 그러자 그레골이 괴성을 지
르며 달려들었다.

"크아아악!! 갈가리 찢어주마!!"

곧 그레골과 그 물체가 서로 양손을 마주잡고는 힘겨루기를 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너무
무모한 짓이었다. 그레골의 덩치는 그 물체보다 몇 배나 컸다. 주변의 남자들도 가소롭다는
듯한 표정으로 둘의 대결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금만 있으면 그레골이 아까의 실험체 마냥
저것도 양팔을 분질러 버릴 것이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아까의 자신만만한 모습과는 달리 그레골이 오히려 쩔쩔매는 듯해
보였다. 아까의 실험체보다 훨씬 작은 덩치의 저 물체는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듯해 보였
다. 설마, 저 굉장한 그레골이 밀릴까....장난이라도 치고 있는 걸까?

"어이! 그레골! 장난 그만하고 빨리 해치워! 시간 없단 말야!"

검은 유니폼의 사내들중 한 명이 답답하다는 듯 소리쳤다. 그러나 그레골은 오히려 더 당황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사내들이 뭔가 일이 잘못됐다는 걸 눈치채기 시작했다. 설마! 인
간은 아닌 것 같지만 그래도 체구가 저렇게 차이가 나는데 그레골이 밀릴 리가!!

-키이이잉!!

그때, 그 물체의 이마에 있는 금속구가 기이한 소리를 내며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그 물체가 양팔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레골의 양팔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부
러져 나갔다.

-우두둑!! 콰직!!

"크아아아아아!!!!!"

그레골의 양팔이 부러지면서 동시에 대량의 피가 뿜어져 나왔다. 그 끔찍한 모습을 본 스쿨
드는 비명을 지르며 눈을 질끈 감았고 주변의 남자들은 크게 놀랐다. 저 가는 팔로 그레골
의 저 무시무시한 굵기의 양팔을 부러뜨리다니!!
고통스러운 듯한 신음을 흘리며 그레골이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그 물체가 그레
골에게 다가섰다. 그리고는 그레골의 얼굴 양옆을 두 손바닥으로 누르기 시작했다. 마치 손
바닥을 모아서 그 사이에 낀 풍선을 터뜨리려는 듯이. 졸지에 양 손바닥 사이에 낀 풍선 신
세가 된 그레골이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질렀다.

-퍼억!!

이윽고 그레골의 머리가 풍선 터지듯 터져나가며 피와 뇌수가 사방으로 튀었다. 턱 위쪽으
로 머리부분을 잃은 그레골의 거구가 힘없이 뒤

댓글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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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렌밥님의 댓글

카렌밥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허억...

처음에는 전혀 다른 두개의 소설인 줄...

조금의 변화와 퇴고가 거듭되면 엄청나 글이 탄생하겠는데요, 이거.. 대단하십니당!

기대할께용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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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버님의 댓글

가이버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가이버 만화(애니든 원작이든) 보신 분들이라면 저에게 돌을 던질겁니다. -_-;;;; 대단하긴요. orz

p.s : 으으....몇번이나 검토했지만 올려놓고 보니 마음에 안드는도다.....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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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더경님의 댓글

베이더경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계속 연재 부탁드립니다!! 완전히 다른 장르의 애니가 새로운 창작 패러디를 만들다!!

맘에 듭니다......[쿠..쿨럭!! 난 과연 저런 문체로 쓸  수가 있을까나...-자괴감모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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